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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아날로그의 추억

A stubby pencil, analog memories

호랑이 담배 피다 금연할 즈음, 연필을 깎아 도면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실습생 때부터 얼마간 모아온 몽당연필. 왜 그딴 걸 모았느냐구? 기인 같았던 선배 한 분께서 무조건 그러라고 해서다.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사무실에선 모든 드로잉을 할 때 샤프가 아니라 반드시 연필을 쓰게 했다. 점점 짧아지면 볼펜대에 끼워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쓰다가 검사받고 새 연필을 타 쓰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벌꿀 유리병에 몽당연필이 반쯤 채워졌을 무렵 그 선배는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취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네놈이 끝까지 설계밥을 먹을지 아닐지 내 알 바 아니나 혹여 연필 가루 계속 마시고 있다면 강산이 몇 번 변한 아주 먼 훗날, 저 몽당연필이 박물관에 갈 수도, 쓰레기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 건 너 하기에 달렸고, 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99.99퍼센트겠지만 말이야. 껄껄껄.”

이후에도 선배는 종종 취기가 달아오르면 무심한 듯 몇 마디를 툭툭 던져 주곤 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박봉에 청사진 심부름이나 다니는데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다른 길 알아보는 게 어때?” 대다수는 장난기 가득한 놀림이었지만, 간혹 진지한 눈빛으로 어리바리한 초년병의 갈피를 가다듬어 주기도 했다.
‘지금부터 틈만 나면 열심히 끄적거리는 버릇을 길러라. Graphic Thinking, 우리의 언어는 그림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화가의 그림과는 다르다. 그들의 그림은 그 자체가 완성된 작품이지만 우린 과정이다. 머릿속 생각,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그림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거라.’

이후 옮겨 간 두 번째 사무실, 설계실 벽면과 도면함에 가득한 투시도, 계획도면 스케치, 현란한 터치와 세련된 마카 컬러링,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디테일 스케치, 대체 누구의 작품인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당시 얼마 전까지 실장님으로 계셨다가 건축사가 되시어 내가 입사하기 바로 직전에 딴 살림을 차리신 분이었다. 온통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사무실 곳곳에 남아 있는 그분의 흔적들, 글과 그림, 음악을 비롯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예술적 조예, 그를 닮고 싶었다.

일전에 위의 에피소드를 잠깐 SNS에 올렸더니 멘토와도 같은 그 선배께서 얼마 전 책을 한 권 권해 주셨다. 노년의 한 건축사와 그를 존경하는 젊은 후배의 담담한 건축 이야기를 다룬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책이다. 그 속에 비슷한 몽당연필 에피소드가 있어 놀라셨다며….

언젠가는 지인 한 분께서 디지털 시대에 허름한 내 연필 스케치 몇 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외국인 건축주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남해 여자분과 결혼한 스페인 귀족 집안 출신의 젊은 이 양반은 아내의 고향에 부부의 한국 별장 겸 장모님을 위한 전원주택을 짓고자 했다. 몇 장의 스케치가 오고 가고 출국 전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설계비는 한 푼도 깎지 않았으며, 몇 가지 요구사항 외의 모든 것은 건축사에게 맡겨 주었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집이 다 지어지던 날 난생처음으로 눈이 파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와 선물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린 이후,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네 번째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당연히 기인과도 같은 그 선배의 예견은 정확했다. 0.01%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벌꿀 유리병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쓸려온 세월 속에서도 어느 한구석에 용케 숨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옛 생각도 나고 해서 병뚜껑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선반 한편에 올려 두었더니, 오가는 사람마다 유물 바라보듯 호기심을 뿜어낸다. 어느 날엔가 체대 교수 한 친구가 저걸 쏟아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가더니 며칠 후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훈련, 연습, 숙달, 뭐 이런 관련 수업 시간에 몽당연필 사진을 보여 주었단다. 내 친구 건축사인 한 인간이 진화해 가는 피땀 어린 산물이 어쩌고저쩌고…, 물론 지나친 과장과 거품을 덧칠해가며 뻥튀기를 했을 것이다.

박물관은 애초 글렀고 저런 용도라도 쓰였다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건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무엇 하나 내세울게 변변치 못한 물건들 가운데 가장 정감 어린 녀석이 될지도 모를 일, 그저 초라한 범부의 모습이 현실일망정 사실 저 몽당연필 속엔 설익어 투박했으나 푸르렀던 한 시절, 내 청춘의 땀과 추억이 녹아 있음은 분명하니까…….

 

글. 조형장 Cho, Hyungjang 건축사사무소 메종

조형장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메종

동아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양산시 공공건축가 및 부산광역시건축사회, 부산건축제 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해양디자인기술연구원 부원장 겸 전략기획본부장직 등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최근 주요 프로젝트로는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항만개발계획수립’, ‘신전항 어촌뉴딜선정 총괄계획수립’, ‘부산남항 일대 재창조 마스터플랜’, ‘홍티예술촌’, ‘해운대 파라드호텔’ 등이 있으며, 2020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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