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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킥스탠드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Kickstand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건축과에 입학 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건축을 해오며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다. 건축사로서의 삶은 갈수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어려운 현실에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러나 건축 이외의 활동을 함으로써 다시 즐겁고 재미있게 건축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건축사사무소를 시작하며 마음먹은 행복한 건축을 하겠다는 초심을 지켜갈 수 있다.
자전거를 세울 때 땅에 넘어지지 않게 받치는 킥스탠드라는 파트가 있다. 건축사들에게는 지쳐 쓰러지지 않고 건축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 누구보다 킥스탠드가 꼭 필요하다. 오디오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책을 쓰거나,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목공작업을 통해 손수 만들어 사용하거나,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이미 취미활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는 건축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건축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킥스탠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른 분야 활동을 통해 자극을 받으며 발전하게 된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자극을 주는 킥스탠드는 음악활동이다.

청춘, 음악이 있는 곳에 나 있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2000년대 초 20대 시절 이야기이다. 대학생이 된 나의 하루는 학교가 있는 신촌이 아닌 홍대의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힙합이라는 음악의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고 수익을 낼 수 있는 큰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대 초 힙합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젊은 청춘들은 서브컬처, 스트릿 컬처에 매료되어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에 모여들었고, 무명의 래퍼들과 비보이, 힙합 DJ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지하연습실에서 실력을 쌓아 갔다. 당장 수입으로 연결되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지만 단지 그 문화와 행위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해했고 젊음의 시간을 기꺼이 바쳤다.
힙합 DJ 중 클럽에서 음악을 트는 믹싱 DJ가 아닌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이리저리 비비고 돌려 소리를 만들어내는 스크래치, 비트저글링 기술을 연마하는 배틀 DJ 씬은 유난히 작았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 테크닉을 배우기 위한 자료는 너무 부족했으며 외국 DMC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돌려보고 연습하며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그 시절 우리는 젊고 가난했지만 모두 힙합에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으며 거기다 너무 순수했다.
한국의 상황은 음악을 하기에 좋지 않았다. 세운상가를 뒤져 피치가 맞지 않는 테크닉스 1200mk2 턴테이블을 직접 고쳐가며 사용했고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아르바이트로 돈이 모이면 LP를 사기 위해 바로 일본으로 달려갔다.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는 힙합 DJ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천국이었다. 2000년대 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서만 레코드 문화가 마니아적으로 남아 있었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DJ들이 디깅하는 모습은 도쿄와 오사카 레코드숍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지도를 보며 레코드숍을 찾아다니고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로컬 레코드숍에 우리는 흥분하며 열광했다. 거의 대부분의 일본 레코드숍 직원들은 현직 DJ인 경우가 많아 새로운 음반을 추천받기 쉬웠고, 그들은 한국에서 찾아온 같은 문화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기꺼이 친절했다. 또한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본의 섬머소닉과 후지락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한 줌의 빛이었다. 한물간 해외 뮤지션들만 내한하는 한국과 달리 현재 전 세계 가장 핫한 뮤지션들의 공연은 섬머소닉과 후지록 페스티벌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대부분 지쳐갔다. 힙합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며 실망한 채 군대나 일터로 흩어졌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왔고 그렇게 평범한 어른이 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노트북은 필수가 되었으며 다뤄야 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시퀀싱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과 건축 프로그램은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상하게 건축이 더욱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환경이 변해갔다.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LP가 다시 유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한국에서는 서울레코드페어와 각종 DJ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아저씨가 되어 버렸지만 씬에는 청춘들이 새롭게 들어왔으며, 그들이 새 문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엠넷의 ‘쇼미더머니’ 방송 이후 마이너한 서브컬처 문화는 대중적 붐업을 받아 큰 자본이 들어오고 그 자본으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다. 10년 만에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만나게 된 옛 동료 DJ들이 있었고 우리는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다.

‘레드불 3style’ DJ 배틀대회

Aftermath, 행복의 건축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과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건물이 지어지는 땅과 건물을 짓기 위한 자본이 필수이며 건물을 설계하는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건축사가 실제 사무실을 운영해 나가며 시간을 할애해 페이퍼 아키텍처 작업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담되고 힘든 현실이다. 이런 현실의 아쉬움을 음악을 함으로써 만회할 수 있다. 건축보다 창작하는데 훨씬 적은 시간이 걸리면서도 준공된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다른 분야 창작활동을 하면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레드불 3style이라는 DJ 배틀 대회가 있다. 현재 전 세계 스트릿 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인 레드불에서 개최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기 전 가장 최근 대회인 2019년 한국 대표를 뽑던 날이 기억난다. 이제는 모두 아빠가 된 DJ 친구들과 오랜만에 클럽에서 같이 관람하며 자극을 받았다. 그 후 우리는 대회에 출전해 보자고 의기투합하였고 2주에 한 번 같이 모여 연습을 한다. 이런 활동은 건축을 하는 데 있어 상상력을 확장시켜주며 변화의 흐름을 일찍 알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와 장비의 디지털화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몇 년 뒤 건축에서도 매우 비슷하게 상황이 변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스마트 디지털화는 모든 분야에서 장르만 다를 뿐 동시대에 이뤄지고 있었고, 앞으로 건축환경이 어떻게 변해 갈지 상상이 가능했다.
또한 현재 주기적으로 성수동 사무실에서 LP(Vinyl), CD,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 형태의 Physical 음반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 ‘STILL Physical’을 개최하고 있다. 음악감상 모임은 건축분야 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극을 받고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막혔던 생각들은 말랑말랑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건축을 하는데 음악활동은 많은 도움이 된다.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되며 40대에 접어든 나의 킥스탠드가 된다.

 

글. 이중희 Lee, Junghee 투엠투건축사사무소

이중희 건축사 · 투엠투건축사사무소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첫발을 내디딘 뒤 2014년 투엠투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다. 준공 후 건축사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스트릿 컬쳐(street culture)에 관심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와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다. 2018년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 감독을 맡아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최근 성수동에서 LP(Vinyl), CD,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 형태의 Physical 음반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 ‘STILL Physical’을 개최하고 있다.
2middl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