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스케치, 결핍을 매만지는 손짓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02 Sketch, hand gestures to make up for lack

시작함에 있어, 결단코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면 도리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순이다. 의식적으로 채워지는 것은 욕심이 될 수 있는데, 채워지는 순간 부족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연의 순리다.

반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즐거운 일은 충만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의식할 수 없게 된다. 스케치는 공허한 시간을 채우는 꽉 찬 즐거움이다. 말로 하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고, 아무것도 없다 하고 넘기기에는 그 안에 함축되어 있을 설명이 궁금해진다. 스케치는 창작된 어떤 근거를 따져보기 전에 감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대개 다소 합리적인 이야기를 도출하고 싶어 하지만, 도출의 과정이 끝나기 전에 미소 짓게 하는 즐거움은 완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지점에서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기 발랄한 스케치 같은 작업 말이다.
새털 같은 생각의 흐름과 편안한 손의 노동이 어우러진 착한 창작활동이 스케치라고도 말하고 싶다. 가볍지만 생각의 뿌리를 간직하기에도 괜찮은, 계획의 씨앗을 만드는 작업이다. 개략적인 그림은 건축을 위한 선행 작업이며, 그리는 사람에게는 그 행위 자체로 학습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거듭해서 건축의 디테일을 그리다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선행학습이 잘 된 스케치는 그 자체로도 쓸만하지만 후속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애당초, 건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하는 질문은 최초의 생각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는 것과 유사한 질문일 수도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것들의 시작은 항상 망설임과 함께 어설프게 시작되기 쉽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제안은 뿌리가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창작활동은 대동소이하게도 생각의 바탕이 그럴싸하지 않으면 결과물도 기대하기 어렵다. 스케치는 그런 생각의 시작점과 생각을 부풀리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스케치는 공간의 시나리오를 미리 작업하는 것, 즉 시놉시스를 만드는 작업과 같다.
내면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아이디어를 끌어올리는 작업으로 생각의 원석을 다듬어 보석이 되기 전단계인 간단한 소묘 작업을 하게 된다. 태생적 가벼움을 전제에 둔 과정이니 마음 편히 각자의 개성대로 그림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른함을 표현할지, 모던하게 정리할지, 추상적으로 암호화된 특색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지 등 과정마다 변화하는 것들을 반영하기 용이하다. 융통성 있는 작업이니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때때로 무용한 작업이 될 수 있음을 알지만 이미 교과서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났으므로 마음이 홀가분해져 재미있는 요소에 먼저 접근할 수 있다.
아주 정직한 그림이라면 로봇이 그릴 만도 하겠지만, 스케치의 태생적 어휘가 자유분방함에서 생기는 것이니만큼 엉뚱함이나 재기 발랄함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재미를 로봇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유라는 것도 시간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식사하다가도 갑자기 생각난 것을 냅킨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개발새발 갈겨가며 그리는 금쪽같은 그 시간이 전부가 될 것이다.

<그림 1>

당연히, 암호화된 속기사의 글자처럼 스케치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암호화처럼 기록할 것이다. 암호화가 추상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남에게 알리는 그림이라면 다이어그램에 가깝다. 보다 더 간략한 표현으로 방향성이나 의도를 부여해 지켜보던 동료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그림 언어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를 다이어그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상 그림이지만 건축다이어그램에 자주 사용하는 방향성 있는 점선 표시는 의도된 애매한 영역을 지향한다.<그림 1, 2>

방법적으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이어그램도, 추상도 아닌 그 중간 단계를 좋아한다. 미술에서는 익숙한 대상을 병치시키며 낯설게 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는 기법을 통과하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서로 다른 종을 붙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드는 시도를 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사람과 물고기 꼬리를 붙이는 것으로 만들어낸 신성한 생명체인 ‘인어’가 그렇다. 물론 반대로 물고기의 머리와 사람의 몸뚱이를 붙여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그림 3>

<그림 3>

극단의 스케치로, 동물과 인간을 결합해 지옥을 나타냈던 <세속적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가 그린 그림은 상상 속의 요괴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상상력의 정점에 있는 스케치이다.

엉뚱한 영화 <바바렐라>에서 우주 악당 듀란듀란이 여자 주인공 바바렐라의 에너지를 망가트리려는 기계장치와의 조합은 꼭 만화 같다. 기계가 여주인공보다 먼저 망가졌으니 악당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람과 기계장치의 연결 또한 스케치스럽다. 거꾸로 스케치가 영화된 느낌이다. 상상력의 스케치가 만화화되고 영화화되면서 내면의 깊숙이 숨겨두었던 새로운 생각을 맛보는 느낌이다. 숨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스케치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주인공 바바렐라가 타고 다닐만한 우주선도 그려본다.<그림 4, 5> 상상력 증폭을 위해 기존 흥미로운 시나리오의 주제를 스케치로 실습하는 작업이다.

<그림 4>

<그림 5>

어찌 보면 건축도 그런 것이 아닌가? 무에서 유의 공간을 만들 때 이런저런 조합을 만들어 끼워 맞춰보고 자료들을 취합하며 생기는 우연의 형태로 만족스러운 때가 있는 것이다. 이성적인 부분 이외의 특정한 창의성은 깊숙한 그 어떤 곳에서 탄생되어야 하는 특별한 아이와도 같다. 그래서 스케치도 서로 다른 종의 연결을 시도함으로써 나의 일상 생각에서 유니크한 형태를 발굴해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특히 병치의 방식은 엉뚱한 조합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종종 시나리오를 동반한다. 단순한 병치를 통해 경계가 도드라지는 것보다 아름다운 여인의 상반신과 유연한 물고기의 꼬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두 요소가 지닌 곡선미를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맞아떨어지면 완성도는 더 높아진다. 물론 가상의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고 시작하는 편이 낫다.<그림 6, 7>

<그림 6>

<그림 7>

그래서 새로운 시작으로 가장 쉬운 것은 서로 다른 것의 창의적 시나리오가 바탕으로 조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방이란 단어가 예술계에서 종종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도, 조합이 너무 빤하거나 원본이 너무 많이 실체를 드러낼 때 주변에서 모방이라 난리 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스케치 작업이 모방을 벗어난 창작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케치로 자신의 것을 만드는 적절함을 쉽게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스케치는 태생적으로 미완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낮은 기대로 시작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다행인 셈이다. 그 어떤 것을 모방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단계란 말이다. 창작의 도움이 될 생각을 움직이게 할 기계장치와 같다. 그래서 자동기술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때가 더 많다.<그림 8> 그렇다면 스케치에 생명을 불어넣어 완성까지 이끄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것은 프랭크 게리가 이야기하는 열정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림 2, 8-9>

<그림 11>

열정이 있다면, 시작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끝은 볼만한 작품이 될 수 있다. 『나는 일러스트 레이터다』의 저자 밥장은 책에서 스케치에 대한 동기 부여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프로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소소하게 시작한 일상의 스케치 작업에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쌓여 작품으로서도 상업적으로도 인정받게 된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스케치가 생명력을 가지면 상대에게 감동과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연쇄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자가 그렸던 간단한 사각형과 원, 그리고 선들의 조합은 누구나 그릴 법한 그림임에도, 여전히 그들의 그림은 현대 미술과 건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소한 스케치라고 하더라도 사소하게 그 수명을 다 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을 전공한 정연석 작가는 입체적으로 그린 카툰 형식의 그림에서 스케일감이 도드라지는 시도를 통해 건축 스케치의 전문성을 배가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픽 아티스트 마티아스 아돌프손(Mattias Adolfsson)의 작업 역시 건축을 공부하며 친구들에게 보여줄 스케치북 낙서에서 시작했다. 흥미롭게 표현된 건축적 형태는 학습된 자료와 내면의 생각에 살을 붙여 만들어낸 결과물로, 좋은 작업물 좋은 과정을 통해 창작하는 작가로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
많은 건축인들이 스케치를 즐겨 하는 것은 생각 표면에 숨어 있던 아이디어를 캐내는 도구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글자의 시도가 가능했던 것도 스케치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그림 9> 원더우먼 영화와 물고기의 매치 또한 그러하다.<그림 10>

<그림 10>

<그림 12>

결론적으로,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은 좋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열정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부족함을 채우며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흥미로운 작업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충분히 새로운 시도의 초석이 될만하다.<그림 11> 소소한 스케치일지라도, 생각을 매만져주는 스케치는 창작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활동을 부추기는 도구가 될 것이다.<그림 12>

 

글. 김동희 Kim, Donghee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김동희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건축사사무소 KDDH 대표이자, 집톡 멤버다. 바바렐라하우스, 주향재, 홍천노일강 펜션, 무주펜션 다다, 인천 북카페하우스, 니나노카페하우스, 춘천로81카페 등의 다양한 주요작품이 있다. ‘부기우기 행성 탐험’, ‘욕망채집장치’ 등의 드로잉 및 설치 작품 전시를 통해 창조적인 공간 창출을 또 다른 은유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6년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대상(무주다다펜션), 2017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행촌공터 3호) 외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저서 <내가 살고 싶은 집 주향재>를 집필했다.
kddh@kdd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