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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창작의 터전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03 A new stimulus for creativity and a place of creation

종합예술가인 건축사의 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창작의 터전은 무엇일까? 개인이 가진 사고의 유연성, 비판성, 정보에 대한 수렴 및 응집력과 더불어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아도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공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창작의 기반이 된다. 창의력은 활동의 결과이다. 그러나 활동 과정에서 놀라운 독창성과 급진적 참신함이 나타나기도 하며,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충동에 의해 창조적 잠재력을 지닌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인지되기도 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축적되며, 예술·과학·기술적 분야, 스포츠 등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활동인 창의성의 주요 기준은 결과의 독창성이다. 창의성의 결과는 주어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종합 예술가적 활동이 요구되는 건축사의 역할과 역량은 이러한 창의적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창의적 결과의 산물은 환경의 영향으로 대다수가 잃어버린다고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의 꾸준한 자기계발과 더불어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정보에 오랫동안 열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지속적인 창의적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는다. 더 나아가 전통적 표현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다. 인상주의, 입체주의 미술로 분류되는 콜라주(collage) 기법은 종이, 타일, 헝겊, 사진 등 조각들을 붙여 모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가 최초로 시도하여 대중화된 미술 기법이다. 콜라주의 어원은 ‘풀칠하다’이지만, 현재 어원은 거의 퇴색되고 미술 기법을 지칭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피카소는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이라는 그림을 그려 자른 종이를 겹겹이 붙인 듯한 입체감을 평면에 표현하였다. 한 개인의 독창성이 미술사조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 대부분은 한 분야의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영역을 다양하게 표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국악과 클래식, 대중음악과 협업을 이루는 음악 장르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오랫동안 열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이뤄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예술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유로움의 ‘즉흥성’은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통해서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를 구축하며, 새로운 가치를 형성한다. 그 영향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다.

건축작업 또한 새로운 경험의 공간을 계획하고 새로운 재료의 조합과 형태를 상상하며 표현의 방법을 고민한다. 표현에 있어서 경계가 없다. 음악과 미술, 사진 등 여러 예술 분야와 더불어 정해진 영역 구분 없이 독창적이며 가치 있는 표현을 위한 고민을 한다. 이러한 건축작업과 더불어 모든 창작 작업은 내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의 자신을 정리하면서 시작된다. 무의식의 확장성은 창작 작업의 과정에서 독창성을 구성해가는 에너지원의 근간이다. 건축사들의 그림 작업이나 사진 작업은 그런 무의식의 흐름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면서 존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역시 그림 그리기를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가구뿐만 아니라 그림 작품활동도 활발하게 했던 르코르뷔지에의 아름다운 색감과 비율은 무의식 속의 천재적인 감각이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

제주 원도심 미래풍경 건축 상상전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무의식은 초현실주의에 기반을 둔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예술사조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고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무의식이 그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창작작업 과정에서 자신이 의식할 수 없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끌리게 된다. 내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함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내재된 감각을 지속적이고 변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의식적인 존재의 기억을 위한 건축사의 창작활동의 도구가 그림과 사진 작업이 아닐까?

건축설계 작업을 할 때면 끄적거리는 스케치로 시작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는 창작의 시발점을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과 같다. 전화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습관적으로 끄적거리는 낙서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건축사들의 대부분이 가진 공통된 습관이다. 끄적거림을 통한 생각의 정리가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건축사들은 평소 설계 작업에서 보여주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림을 통해서 창작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학부 시절 건축부지 현장조사 때에는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에서도 보급형 디지털카메라 제품이 들어오면서 필름 걱정 없이 답사를 다니거나 현장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건축설계를 하면서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공부를 위한 건축물 답사를 다니는 것이다. 여행을 겸한 현장 답사를 통해 많은 사진을 남겼다.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그 순간의 풍경과 감정들을 프레임에 담아 기록하고 저장해둔다. 순간의 느낌은 무의식 속의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프레임에 담긴다. 사진들이 쌓이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게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되고 파악하게 된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사물을 관찰하고 무엇을 보여줄지를 고민한다. 짧은 순간에 색감을 표현하고 구도를 생각한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 마음을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의도를 확실히 전달하고 보여줄 수 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감과 구도와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또한 무의식 속에서 축적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사진을 찍는 것이 정해진 대상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면, 건축작업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건축은 공간에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기술적 측면이 요구되는 분야이며,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창작물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축이라는 창작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그림 그리기나 사진 찍는 활동은 예술분야의 경계를 넘어 건축사의 창의적 활동과 독창성의 표현을 위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시간의 효율성을 의식하다 보니 학부 시절처럼 사진 찍기를 목적으로 하는 답사는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전의 무거운 DSLR 카메라는 아니지만, 요즘에는 휴대폰의 사진촬영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색감이나 셔터의 감성은 큰 카메라를 따라잡지 못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내 손에 있기에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사진 속에서 내 무의식의 자아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일상의 끄적거림, 사진 작업과 더불어 젊은 건축사 5인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래의 도시풍경을 상상해 보는 2020년 ‘제주 원도심 미래풍경 건축 상상전’ 과 2021년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 등 정기적인 전시 활동은 나의 건축관을 정립하고 창작의 연속 선상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극하며 내재된 감각을 변화하고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 활동 역시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와 함께 내가 상상하는 창작활동의 구체화를 위한 수단이 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기회를 만들고 찾아서 다양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고 병행한다면 건축 과정이 좀 더 재미있고 독창적이며 풍성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양현준 Yang, Hyunjun 건축사사무소 소헌

양현준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소헌

제주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로재’와 ‘김한진건축’에서 실무를 익히고, 2019년 건축사사무소 소헌을 설립하여 사물의 가장 원초적인 성질을 바탕으로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한 건축을 이루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함과 압도함보다는 주변에 공간이, 공간에는 사람이 녹아들기를 바라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고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jejusoh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