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에도 마음이, 일렁인다

Our heart is swayed even by advertisements

광고의 목적은 분명하다. 광고하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거나 사게 만드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이익에 충실해야 좋은 광고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에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유튜브를 볼 때는 5초가 지나기 무섭게 광고 건너뛰기를 누른다.
냉정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광고인들은 ’판다’라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감동을 주거나 웃음을 자아내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 덕에 우리는 때로 광고를 보고 웃기도 하고 뭉클해질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스타워즈의 등장인물이 등장해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해 말하는 콘돔 패키지 광고를 보면 나는 하하 웃지 않을 수 없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편에서 주인공에게 “I Am Your Father(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출생의 비밀을 폭로했던 다스베이더가 콘돔 패키지에 등장해서는 “I will not be your father(나는 네 아버지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우주제국 최고의 전사인 요다는 영화 속 자신의 대사인 “Do or do not, there is no try(하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야, 그냥 ‘해보는’ 건 없어).”를 비틀어 “Come or come not, there is no try.”라는 문안을 들고 나온다. 소극적으로 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립앤롤_패키지 광고 모음

‘원더브라’라는 속옷 브랜드 광고는 19금(禁)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재미있는 상상을 자극한다. 한 장의 과장된 사진으로 원더브라를 입으면 가슴이 훨씬 더 커 보인다는 셀링포인트를 기발하게 전달하고 있는 인쇄 광고들을 살펴보자. 빨대가 길어지거나 손이 커지고 손으로 잡지 않고도 우산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원더브라를 입었기 때문이다.

원더브라_인쇄 광고 모음

세계자연기금(WWF)은 동물, 꽃, 숲, 물, 토양 등 자연자원을 파괴하는 것이 결국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한 인쇄 광고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 장의 광고를 보고 우리는 숲이 없어지면 우리의 폐가 고통을 겪을 것이고, 기후변화는 인간에게도 돌연변이를 일으킬 것이라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

또 어떤 광고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남아프리카의 어린이 치약 광고는 어린 날 경험했던 가슴 아픈 거절이나 상실에 대한 기억을 사랑스러운 비주얼로 소환한다. 광고 안에서 기르던 물고기를 고양이가 잡아먹었거나, 악동의 손에 긴 머리카락 한쪽을 잘렸거나, 서툰 고백을 거절당한 꼬마들은 모두 울고 있다. 아마도 난생처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경험하고 있을 꼬마 신사 숙녀들의 우는 표정이 사랑스럽다. 이 인쇄 광고 시리즈 아래에 들어간 공통된 카피는 “There’ll be plenty of time for pain.” 우리네 인생엔 고통을 겪을 수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니 이를 열심히 닦아 치통이라도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본젤라(Bonjela)_Teething Gel_인쇄 광고_2012

SK텔레콤_기업PR_신문 내리닫이_2007

이런저런 프린트 광고를 찾다가 내가 오래 전에 만들었던 광고들이 떠올랐다. 아직 포털 뉴스보다 종이 신문을 더 많이 보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나는 그림일기를 쓰듯 내 마음을 신문 광고에 적어 넣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을 향해 고백했던 이야기, 만들면서 내 눈가가 먼저 촉촉해졌던 카피가 외장 하드 구석에 먼지가 뽀얀 채 묻혀 있었다.
이제는 소용을 다한 옛 광고를 모니터에 불러내 들여다본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재롱으로 했으면 했던 효도 쿠폰이 거기 있고, 스마트폰 이전 조금은 아날로그 감성의 핸드폰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처럼.
유치하고 촌스럽다, 그립고… 아득하다.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우리집 24時 혹은 24詩

My home 24 hours or 24 poems

‘클렌체’라는 KCC의 창호 브랜드 광고 영상을 보았다. 영상은 집의 24시를 콘셉트로 만들어졌는데 아침 7시, 오후 1시, 저녁 5시, 밤 10시 각각의 시간대 별로 바뀌는 집의 분위기를 한 편의 시처럼 들려주고 있다. 광고를 보고 나도 따라 우리 집의 시간을 대입해 보았다.

 

#1 아침 일곱시, 우리 집.
매미 소리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다.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풍경이 댕그랑 소리를 낸다.
침대는 한밤중보다 더 포근하게 사람을 유혹한다.

자막) 아침

          일곱

          시집

Na)   아침 일곱시 집.

          햇살, 기분 좋은 알람이 되다.

자막) 쾌적한, 4중 유리단창

Na)    KCC가 만든 하이엔드 창, 클렌체.

 

#2 오후 한시, 우리집
한없이 창밖을 쳐다보는 고양이.
슬그머니 새 잎을 내는 화분의 파키라.
햇살 받으며 너울너울 내려앉는 고요.

자막) 오후

          한시 집

Na)   오후 한시 집.

          창이 열리면 마음도 열리니까.

          창 잘했어요.

자막) 탁 트인, 슬림 프레임

 

#3 저녁 다섯시, 우리집
어스름한 저녁 기운이 똑똑 창을 두드린다.
소파와 싱크대가 기지개를 켠다.
주인 몰래 사람의 말을 하던 에어컨과 텔레비전이 수다를 멈춘다.

자막) 저녁

          다섯

          시집

Na)   저녁 다섯시 집.

          문이 닫히면 공연이 시작되고.

자막) 조용하게, 외부 소음 차단

클렌체의 광고는 시간대 별로 4편의 소재가 제작되었는데 아침 7시 편과 오후 1시 편은 TV광고로, 전체를 묶은 60초 소재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영상 속의 자막은 ‘시’와 ‘집’을 붙여 써서 ‘시(詩)집’으로 읽히는 말장난의 재미를 주고 있다. 각각의 시간을 표현하는 카피는 마치 한 줄의 시처럼 간결하고 감성적이다. 마지막 열시 편을 보자.

 

#4 밤 열시, 우리집
커튼을 닫으니 눈꺼풀도 닫히기 시작한다.
공연히 냉장고를 열었다가 찬 기운에 얼굴을 식힌다.
가끔 술 따르는 소리, 가끔 음악소리, 가끔 책장 넘기는 소리.

자막) 밤

          열시 집

Na)   밤 열시 집.

          물 흐르듯 하루가 흘러갑니다.

자막) 매끄러운 소프트 클로징

Na)   창, 삶의 격을 높이다.

          KCC가 만든 하이엔드 창호, 클렌체.

클렌체_24시 집: 창, 삶의 격을 높이다 편_2022

2020년 10월 리서치기업 엠브레인에서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41.6%의 응답자가 2019년에 비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답했다. 또 MBC TV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홍익대학교 유홍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155% 정도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늘어난 재택시간은 지금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집에 머무는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의 집이 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주로 했다면, 언택트(Untact) 시대의 주거공간은 훨씬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집에서 일을 하고, 회의에 참가하고, 수업을 듣고, 운동을 하고, 세끼 밥을 전부 먹기도 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니 멀쩡하던 집이 유난히 좁게 느껴진다. 퇴근 후 밤에만 보던 가구를 환한 대낮에 마주하니 유행에 뒤처진 구닥다리처럼 보인다. 가전제품은 낡아서 어쩐지 제 기능을 못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좁은 집을 갑자기 큰 것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쉬운 대로 미니멀리즘을 흉내내 보겠다고 당근마켓에서 팔아 치워버렸던 소파를 새로 샀다, 소파와 함께 없앴던 텔레비전도 훨씬 더 큰 놈으로 다시 장만했다. 거의 20년을 쓴 에어컨을 바꾸고 커튼을 바꿔 달았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통계청이 집계한 2020년 가구 소매판매액이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들린다.
꽤 오랫동안 내게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곳이었다. 눈뜨면 출근하고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하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의 여파가 나이듦과 상호작용하여 집의 역할이 변했다. 코로나 시대의 트렌드에 발맞추어 나도 집밥을 더 자주 먹고 집에서 유튜브의 요가를 따라 하고 원고를 쓴다. 영화를 집에서 보고 친구도 되도록 집에서 만난다. 하루 24시간이 훨씬 단순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큼직한 가전이나 가구에 그치지 않고 소소한 살림살이를 계속 사들이고 있다. 식기세척기, 요리용 블렌더, 와인냉장고, 선풍기에 더해 거실 조명, 접시, 와인잔은 물론이고 왕얼음 얼리는 얼음틀까지… 나 자신이 비합리적 소비자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여름은 견딜 수 없이 뜨겁고, 근심 없는 가을은 너무나 멀리 있으니까. 어쩌면 집에서 길고긴 겨울잠을 자야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8월, 내 집의 24시간은 더위를 견디며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다.

 

클렌체_24시 집: 창, 삶의 격을 높이다 편_2022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만약 나를 한 줄로 쓴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

If you describe yourself in one sentence, what would it be?

거울을 본다. 차곡차곡 참 알뜰하게도 늙은 이 사람은 누구지? 나에게 내가 낯설다, 어쩐지 좀 민망하다. 염색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미용실을 찾았다. 휴대전화의 지도를 보며 찾아간 허름한 미용실에는 주인인 원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흔한 보조 미용사도 없고 머리를 손질하는 손님도 없었다. 한 시간에 딱 한 명 예약한 손님만 받으며 주인 혼자 꾸려 간다고 했다. “애들 다 대학 졸업했어요, 이제는 그냥 슬슬 즐기면서 하려고요.” 주인의 말에서 느긋함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눈이 참 크고 맑아요. 아주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실 것 같아요.
염색하고 나면 성격처럼 우아해 보일 거예요.”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기다리는 동안 원장이 말했다. 겨우 3만5천 원 염색 값을 내고 그 열 배쯤 되는 칭찬을 들었다. 어쩐지 남는 장사를 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처음 만나는 남에게 나는 차분한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그런데… 과연 나는 차분한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미용실 원장의 가벼운 덕담에 조금 무거운 질문을 품고 데스크톱을 열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새로 올라온 광고들을 보다가 간단한 한 줄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광고 카피를 만났다.

나는 꽤 깊은 사람. 뛰어들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어라, 이거 뭐지? 커서를 뒤로 돌려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피쉬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프립’이라는 취미・여가 활동 플랫폼에서 호스트로 활동하는 프리다이빙 강사 박태현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였다. 박태현은 15년 동안 수영 선수로 활동하다가 수영 강사가 되고, 다시 프리랜서 다이빙 강사로 변신한 실재 인물이다.

박태현O.V) 나는 15년의 수영을 버렸다.

                      잘나가던 수영 선수는 잘나가는 수영 강사가 되었다.

                      문득, 겁이 났다.수영 강사가 내 커리어의 끝일까?

                      남들이 가지 않는 물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뛰어들었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커다란 세상에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욕심과 집착이 사라졌다.

                      물 속의 깊이만큼 내 속의 깊이도 깊어져 갔다.

                      나는 꽤 깊은 사람.

                      뛰어들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대단한 시작은 없어, 시작이 대단한 거지.

                      프립.

자막)            Frip 발견해봐 진짜 나를

프립_영상광고:피쉬맨 박태현 편_2020

프립은 아웃도어, 스포츠, 원데이 클래스, 여행상품, 모임 등 다양한 여가활동을 가르치거나 제공하는 호스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취미・여가 플랫폼이다. 2016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해 2022년 4월 현재 누적회원 120만 명, 누적 호스트 1만7,000명에 이르고 있다. 전체 회원의 92%가 2030 MZ세대, 누구나 호스트가 될 수 있고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특히, 호스트 개인의 특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상품들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립의 참여자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성격을 재해석하고 몰랐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광고는 그들의 발견을 한 줄로 정리한다.
예를 들면, 프립의 주인공 포토그래퍼 장동원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꽤 호기심이 많은 사람. 사진을 찍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홈베이킹을 즐기는 이정인은 다음처럼 스스로를 정리한다.
나는 꽤 인생을 즐기는 사람. 직접 해보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러닝 전도사라는 직업을 새로 만든 안정은의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보자.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전공에 맞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오랜 꿈이었던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비자 문제로 1년을 백수로 지내야 했다.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접어야 했던 때 우연히 만난 달리기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처음 달린지 6개월 만에 첫 풀코스를 완주한 그는 마라톤 풀코스, 철인 3종 경기, 27시간 동안 한라산 111㎞ 완주 등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달리기로 성취감을 맛볼수록 자존감은 높아졌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했다. 그 결과 지금은 러너, 마라토너, 칼럼니스트, 강연자, 모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정은O.V) 나는 인생 실패자였다.

                      6개월 만에 퇴사한 첫 직장, 비자 문제로 합격 취소된 승무원.

                      대인기피증, 우울증.

                      침대에서 1년간 나오지 않았다.

                      그날은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고 눈물이 났다.

                      흘리는 눈물이 창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렸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150번의 마라톤 완주를 끝냈다.

                      나는 꽤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

                      달리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대단한 시작은 없어, 시작이 대단한 거지.

                      프립.

자막)            Frip 발견해봐 진짜 나를

프립_영상광고:러닝전도사 안정은 편_2020

느긋하고, 경쟁을 싫어하고, 비관적인 성격이라 스스로를 싫어했던 정세준은 프립에서 요가를 하면서 생활의 기준이 서서히 바뀌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요가를 하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스스로를 이름없는 화가이자 작은 취준생이라고만 생각했던 김강은은 산에 올라 그림을 그리고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프립의 광고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꽤 넓고 큰 사람. 산에 오르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한 사람을 한 줄로 다 말할 수 없겠지만, 한 줄만 읽어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프립의 광고를 보고 깨달았다. 나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가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신이 없다.
대단한 시작이 아니라 사소한 시작을 한다면 내 안의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될까? 나에 대해 새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아마도 아주 작고 평범한 것이리라. 이를테면, ‘나는 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 같은.
무엇이 되었든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시작’부터 시작해 볼까? 어쩌면 지금은, 내 안에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줄 용감한 시작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프립_영상광고:피쉬맨 박태현 편_2020_유튜브링크

 

프립_영상광고:러닝전도사 안정은 편_2020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초록초록 나무야, 정말정말 고마워!

So green tree, thank you so much!

봄이 되면서 친한 친구들과 ‘동무텃밭’을 만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텃밭이 있어서 싱싱한 채소를 직접 길러 먹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끝이었다. 친구 누님이 꾸리고 있는 꽤 넓은 텃밭의 한 이랑을 빌려 우리들의 밭을 가지게 되었다. 겨우 두어 평쯤 되는 땅인데 무엇을 심을지 농기구는 뭐가 필요한지 날이 풀리기 전부터 단톡방이 수다스러워졌다.
드디어 모종을 심는 날! 목장갑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호미를 든 친구들의 겉모습은 제법 농사꾼 티가 났지만… 그 실상은 우왕좌왕! 땅을 얼마나 파야 하는지, 간격은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 한 구멍에 몇 포기를 심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다행히 친구 누님의 지도 편달이 있어 5월의 ‘동무텃밭’에는 상추, 고추, 토마토, 쑥갓, 가지, 깻잎, 루꼴라, 열무, 파, 부추로도 모자라 완두콩까지 자라고 있다.
한가한 일요일 아침, 점심 상에 올릴 상추를 따려고 ‘동무텃밭’에 갔다. 커피와 크루아상 몇 개를 작은 가방에 담으니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번갈아 몇 번을 따먹었는데도 상추는 장바구니 세 개가 가득 찰 만큼 넉넉하게 자라 있었다.

“토마토는 여기 이렇게 아래 있는 잎을 다 따줘야 위로 쑥쑥 자라요. 고추도 마찬가지야.
저기 파는 한 곳에 너무 여러 포기가 들어가 있어, 뿌리 나눠서 한 세 개씩만 같이 심어요.
이 파는 잘라서 파전 부치면 되겠다, 위를 잘라서 먹어도 다시 자라요.
가위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부드러운지 억센지 느끼면서 살짝 잘라요.”

욕심껏 상추를 따고, 친구 누님의 조언에 따라 파와 부추를 뿌리 나눔해서 심고, 토마토와 완두콩에 지지대를 세웠다. 짧은 작업을 마치고 스프링클러를 빙글빙글 돌려 밭에 물을 주는데 마치 내 새끼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처럼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상추 보따리에 더해 누님이 밭에서 캐어 준 과꽃, 분꽃, 봉숭아, 맨드라미 모종을 거실에 텅 빈 채 방치돼 있던 화분에 옮겨 심었다. 풀풀 날린 흙먼지를 쓸고 닦느라 힘은 들었지만 식물을 집안에 들이니 뿌듯했다.
그래 맞아, 우리 집엔 초록이 부족했어! 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 에어컨, 오디오에 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 심지어 전자 벽시계까지 전자제품은 넘쳐나지만 싱그러운 초록은 너무 없었다. 그래서 자주 잠을 설치고, 그래서 자주 사는 게 심드렁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록 이야기를 칼럼에 쓰고 싶어서, 집을 뛰어넘어 지구에 초록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기업 광고를 찾아보았다.

자막)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Na)    내가 사는 지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지구를 위해 기후 위기와 싸우는 내 친구를 소개할게요.

           사람들이 만든 탄소를 대신 흡수하고

자막) 탄소흡수 모드 ON / 나무 7그루 약 1톤의 이산화탄소 흡수

Na)    자꾸만 뜨거워지는 지구의 열은 시켜주고

자막) 쿨링 시스템 가동 / 도심 숲, 도심 온도 최대 3℃ 저감효과

Na)    폭우 땐 홍수를 막아 내기도 하고

자막) 홍수 방지 시스템 가동 / 숲 토양, 도심 토양 대비 25배 빗물 흡수

Na)    사라져가는 생명들을 품어주는 숲, 고마워!

자막) 멸종 방지 모드 ON / 국내 멸종 위기 야생생물 30년 새 2.9배 증가

Na)    기후 위기와 긴 싸움 중인 지구가 지치지 않게

           숲으로 지구의 지구력을 높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요.

자막) 유한킴벌리는 37년간 5,431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고 있습니다.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지구의 지구력 편_2021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유한킴벌리가 1984년부터 하고 있는 숲 환경 캠페인이다. 광고의 주체인 기업이 도심, 한강, 남산, 학교 등 우리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고 있는 실천이 뒷받침하는 광고라 믿음이 간다. 2019년에 전파를 탄 두 편의 광고는 숲과 나무가 우리에게 해주는 일을 구체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Na)    새벽의 학교.

           나무는 누구보다 일찍 등교해 아이들의 하루를 준비합니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밤새 아이들의 키만큼 낮아진 미세먼지를 숲 속 깊숙이 감춰두고

           잎으로 숨을 쉬며 미세먼지를 붙잡아 둡니다.

           아이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학교가 가장 건강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무들이 준비한 아침의 상쾌한 교실!

           기다려지는 날은 숲에서 옵니다.

자막) 유한킴벌리 학교숲 조성 사업

           유한킴벌리가 생명의 숲, 산림청과 함께 1999년부터 730여 개 학교에 심은 나무들이

           학교와 도심의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있습니다.

Na)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나무의 새벽 편_2019

학교의 나무들은 새벽부터 교실의 상쾌한 공기를 준비하고, 도심의 나무들은 밤새 야근해서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련한다. 나무 덕에 등교길이 즐거워지고 출근 공기가 상쾌하다.

Na)    모두가 퇴근한 밤.
텅 빈 도시에서 나무는 야근을 시작합니다.
당신이 기분 좋게 맞이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서요.
낮 동안 그늘을 만들었던 잎은 내일 더 활짝 필 수 있게 잠시 접어두고
도시보다 차가운 몸으로 쌓여 있던 열을 식힙니다.
당신이 시원한 아침 공기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무들이 밤새 준비한 시원한 아침 바람!
기다려지는 날은 숲에서 옵니다.
자막) 유한킴벌리 도시숲 조성 사업
유한킴벌리가 서울그린트러스트, 생명의 숲과 함께 조성한
도시 곳곳의 크고 작은 숲들이 도심의 뜨거운 열을 식혀줍니다.
Na)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나무의 밤 편_2019

“나는 우리나라 산에 나무가 가득한 거 보면 감개가 무량해.”

올해 아흔이 되신 대학 은사님의 말씀이다. 1933년에 나셨으니 일제와 해방, 전쟁을 모두 겪은 세대이다.

“요즘 사람들은 산에는 나무가 있고 강에 물이 흐르는 걸 당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20대 30대 때에는 도심 주변에 있는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 산에 나무가 없었어. 어렸을 때 제일 신기하고 부러웠던 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면 숲이 우거지잖아? 그걸 난 그림에서만 봤지 클 때까지 눈으로 본 적이 없어. 한자로 나무 목(木)자가 둘이면 수풀 림(林)이지? 셋이면 삼(森)자가 되고. 그것도 한자로 문자로만 알았지.
구공탄이 보급되기 전에는 겨울에 난방을 하려면 장작을 때야 하니 주변 산의 나무는 연료로 벌재를 해서 없고. 6・25사변이 난 후에 군 후생사업이 다른 게 아냐. 군인들이 트럭으로 와서 깊은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장작으로 팔고 말야. 그나마 지리산 같은 데는 나무가 남아 있었는데 빨치산 토벌한다고 다 없애 버리고…
유명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이라고 썼듯이 길은 다 황톳길이고 산도 다 흙산이었어. 내가 요새 기운이 없어서 다른 데는 못 다니고 집 근처 공원만 산책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숲 속을 산보한다는 게 얼마나 큰 축전인지 이건 젊은 사람들은 모르고 노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무심코 흘려 보았던 길가의 가로수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출근길, 아파트 마당에서 만난 이팝나무 가지에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졸졸 흐르는 나무의 수액이 만져지는 듯하다. 꽃봉오리 활짝 연 장미나무는 깔깔 웃음소리를 내고 있다. 모두가 퇴근한 밤이나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에도 나무는 열심히 제 생명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동무텃밭’의 채소들도 내 거실의 꽃모종들도 조금씩 더 푸르게 자라고 있다.
마음도 덥고 몸도 무더운 요즈음,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초록이 있어 다행이다. 참 고맙다.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_지구의 지구력(본편)_2021_유튜브 링크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나무의 새벽 편_2019_유튜브 링크

 

유한킴벌리_기업PR_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나무의 밤 편_2019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냥이 댕댕이와 함께한 자가격리 일주일

One-week self-quarantine with cats and dogs

뱅글뱅글 돌아가는 빌딩 회전문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마주친다. 각자 다른 칸에 들어가 있어서 마주 보진 않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표정이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빌딩 밖으로 나간 남자는 승용차를 타고 떠나고, 빌딩 안에 남은 여자는 아련한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혼잣말.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

그랜저_TVCM_2005

2005년 전파를 탄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광고이다. 비싼 그랜저를 타는 것이 잘 살았다는 증거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광고다. 2009년 그랜저는 한발 더 나아가 물질만능주의를 표현한 광고 사례로 비난받기도 했던 카피를 공중파에 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그랜저_TVCM_2009

시기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여서 과시성 소비를 부추긴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공감은 안 가는데 세상 돌아가는 인심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광고였다.
그런데 근래의 그랜저 광고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함께하는 리더가 되는 것이 곧 이 시대의 새로운 성공’이라고 말하며 따뜻하고 인간적인 리더상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1회용기 사용을 피하기 위해 텀블러는 물론 조각 케이크 닮을 그릇까지 가지고 다니는 상무님, 부하의 말을 끈기 있게 들어주는 상사, ‘착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는 아들의 말에 정지선을 반듯하게 지키는 아빠 등이 2021년 그랜저 광고의 주인공들이다. 그중 한 편을 들여다보자.
결재를 받으러 온 부하 직원이 상사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아이에게 강아지 동생이 생겼냐고 묻는다. 상사의 대답은 어린 강아지를 새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길에서 헤매는 늙은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린 강아지 키우는 것보다 손이 많이 가는 늙은 개를 돌보는 임원의 행동은 그랜저가 지향하는 단호하지만 따뜻한 리더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치이다.

사원) 소연이 동생 생겼네요?

임원) 동생 아니고 언니.

사원) (강아지 사진을 다시 보며)헉!

임원)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더라고.

사원) 근데 나이 많은 강아지들 은근 챙길 거 많다고 하던데…

임원) 그렇다고 그냥 둬?

          힘들어도 챙겨야지.

자막) 내비게이션 연동, 터널 진입 시 자동 외기 차단

          2020 성공에 관하여

          GRANDEUR

          HYUNDAI

그랜저_TVCM:2021 성공에 관하여 유기견 입양편_2020

“엄마, 두 달만 집에 고양이 데리고 있을게요. 아는 형이 키우던 건데 알레르기 때문에 도저히 계속 키울 수가 없다고 해서 제가 받았어요. 저 곧 자취할 방 얻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둘째 아드님이 먼치킨이라는 품종의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를 따라 우주선처럼 생긴 전동 배변통과 커다란 캣타워, 다양한 고양이 장난감이 따라왔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면 막연하게 무서워했다. 둘째가 고양이 폭탄을 던지기 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두 달만 참으라던 아드님은 고양이를 남겨두고 혼자만 집을 떠났다.
고양이가 집에 온 지 두어 달 후. 퇴근해 현관문을 여는데 막 닫히는 큰 아드님의 방문 사이로 이상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시커먼 강아지였다. 기가 막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고양이는 되고 강아지는 왜 안 돼요?”
“최소한 데려오기 전에 허락은 받았어야 하는 거 아냐?”
“빨리 데려가지 않으면 그냥 안락사 시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도대체 엄마를 뭘로 생각하면 이렇게 네 멋대로 굴어?”
“엄마 이 눈을 보고도 화를 낼 수 있어요?”
큰 아들은 보더콜리의 까맣고 순한 눈을 내 얼굴에 들이대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훌쩍 태평양 건너 출장을 떠났다.
두 아드님이 각자의 폭탄을 던진 채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오미크론의 공격을 받아 자가격리하는 신세가 되었다. 혼자 격리되었다면 재택근무를 즐거워하며 병마(?)와 싸울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냥이는 쉬지 않고 종일 울었다. 댕댕이는 하루에 서너 번 응가와 쉬를 하고, 잠깐 방심하면 벽지에 더해 문틀까지 물어뜯었다. 하필 털갈이 중이어서 배설물을 치우고 기진맥진해 겨우 숨을 좀 돌리려고 하면 온몸을 흔드는 털뿌리기 신공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털눈(?)을 날렸다. 내 새끼들 다 키워 이제 좀 편해지려나 했는데 졸지에 강쥐와 냥이의 노예로 전락한 신세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마음 속의 다른 내가 충동질했다. 하지만 엄마 평생의 ‘슈퍼 갑’인 아드님들에게는 감히 투덜댈 수도 없는 노릇! 겨우 애들이 보지 않는 이 칼럼에 부당함을 고자질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유기견을 입양해 돌보는 그랜저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그냥 둬? 힘들어도 챙겨야지.’

이 카피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주 간단한 두 줄이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들이니 힘들어도 그냥 챙길 수밖에 없다고 체념한 나의 마음을…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격리가 끝나는 날 나는 동네 동물병원에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예약했다. 우리 고양이는 만날 수 없는 짝을 찾아 목놓아 우는 괴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애꿎게 같이 갇혀 있던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봄볕 속을 걸었다. 일주일 만에 자유롭게 집밖을 돌아다니는 기쁨을 강아지와 함께 만끽했다.

https://play.tvcf.co.kr/9762

그랜저_TVCM_2005_tvcf링크

 

https://play.tvcf.co.kr/32202

그랜저_TVCM_2009_tvcf링크

 

https://play.tvcf.co.kr/813912

그랜저_TVCM:
2021 성공에 관하여 유기견 입양편_2020_tvcf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우리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

We will never go back

단절이 너무 길다,
거리가 너무 멀다…
코와 입을 가리고, 만지지 못 하고, 목소리를 죽이고, 활짝 웃지 않는 날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가게 문을 닫고 결혼식을 미루고 문상을 삼가고 축제를 취소하고 졸업식과 입학식을 온라인으로 치르고 갓난 아기들까지 마스크를 쓰고… 그렇게 숨죽이며 2년을 살았다. 뼈를 깎는 고통에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2년을 견뎠다. 이제 그만 작별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때가 오지 않았나? 62만 명을 기록한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20만 명대로 떨어진 3월 21일, 원고를 쓰며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는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국경을 닫고 사람들 간의 교류가 급격히 줄어들어 모든 것이 단절됐다고 느껴지던 2020년 여름, 코카콜라는 사람들에게 연결, 협력 그리고 낙관주의의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은 영국의 시인이자 래퍼인 조지 더 포앳(George the Poet)이 자신의 시를 랩으로 부르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호응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의 시는 코로나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일, 가족, 신체, 인종,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팬데믹을 겪기 전에 우리가 무심코 하던 불평과 하찮게 여기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 폭풍을 이겨낸 후에는 전과는 다른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막)         OPEN

                   조지 더 포앳

랩)             이제 그만.

                   잠깐만.

                   정상(Normal)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누가 그래?

                   무엇으로 돌아가는 거야?

                   만약 뉴노멀(New Normal)이 우리가 알고 있던 노멀이 아니라면?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하던 일을 그냥 할 수 없게 되면?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바로 너와 나라면?

                   우리가 만약 개방적인 마음을 갖기로 하고 이런 말을 한다면?

수퍼직원) 두 번 다시 내 직업을 하찮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엄마)         선생님들 휴가가 너무 길다고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랩)             또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서 전학 가고 싶다고도 말하지 않을 거야.

                   내 귀는 이어폰이 아니에요.

                   (사람의 말을 듣는 시간보다 이어폰 끼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소녀)         내가 만약 듣는다면?

랩)             만약 네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내가 놓치고 있다면 어떡하지?

                   내가 만약 그저 조금 웃는다면?

                   여행을 덜 하고 여행의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면?

                   만약 내 음악과 내 요리가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난 춤을 즐기던 사람은 아니지만, 널 위해서라면 리듬에 빠져들 수도 있어.

                   만약 내가 내 거실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나쁜 기억으로부터 배울 거야.

                   나쁜 에너지와는 사회적 거리를 둘 거야.

                   재미있는 게 섹시한 것보다 낫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어쨌거나 난 여전히 귀여워.

                   다시는 내 꿈을 뒷전으로 밀어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네게 친구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가 곁에 있다면?

                   내가 매일, 심지어 월요일까지도 나의 피부색과, 내 몸과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내가 말한 모든 말들을 지킬 거야.

                   투표를 하고 내 목소리를 낼 거야.

                   그거 알아?

택시 기사) 나는 다시는 이 도시에 관광객이 너무 많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랩)              여자답게 내가 이끌게

                   수십 명의 가족을 가지고 싶어.

                   내 조카들에게 사촌을 만들어줄 거야

                   바로 네 옆에 있을게.

                   네, 네, 네라고 말할게.

                   우리가 함께하면 얼마나 더 강한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영원히 가슴에 간직할 거야.

                   우리는 이 폭풍을 이겨낼 거야.

                   그래서 나는…

                   전과 다른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거야.

자막)        #Open Like Never Before

캠페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학생들이 다시 학교를 싫어하고 학부모는 다시 불평하고 택시 기사는 관광객을 지겨워하고 알바생은 자기 일을 하찮게 여겼던 코로나 이전의 ‘노멀’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떠안긴 ‘뉴노멀’을 이긴 후, 우리는 우리 손으로 또 다른 뉴노멀인 ‘오픈노멀(Open Normal)’을 만들어야 한다. 꿈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과 친구들을 더 사랑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어진 하루를 귀하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기나긴 전염병의 대유행을 겪고 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오픈노멀이고 지켜야 할 새로운 가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동안 번잡했던 모임과 만남이 대폭 줄어들었다. 만남을 자제하는 동안 꼭 보고 싶은 몇 사람만 마음에 살아남았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기쁨과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오래된 벗이고, 때로는 갖다 버리고 싶기도 했던 가족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과 사이좋게 지내는 요령이 늘었고,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노력을 시작했다. 안 쓰던 접시를 꺼내 반찬을 예쁘게 담아 먹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준 깨달음이고 선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마스크를 벗게 된다고 해도 코로나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코카콜라_기업PR: Open Like Never Before_2020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다시, 다시!

Again, again!

아내는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동창회에 간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고 노래방에도 가서 유쾌하게 웃고 즐긴다. 그동안 남편은 혼자 골프 연습을 하고 서점에 가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고 전자레인지에 간단한 음식을 데워 먹는다. 반대로 남편이 밖에서 술을 마실 때 아내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한다. 화면은 남편과 아내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고 그 일상 위로 부부가 주고받는 대화가 이어진다.

아내)  다시 태어나도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남편)  에? 무슨 말이야?

아내)  그러니까 만약의 이야기.

남편)  음, 어렵네

아내)  어렵다니?

남편)  이런 종류의 질문에 무책임하게 대답할 수 없는 성격이라 말이야.

아내)  참 착실하시네요.

남편)  게다가 다음 생엔 강아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아내)  그건 그것대로 좋네.

남편)  지금도 어떤 의미론 너의 강아지니까 말야.

아내)  그런 말, 밖에선 하지 마.

남편)  자신은, 있을지도.

아내)  자신?

남편)  또다시 한 번 함께할 자신.

           그 다음은 모르겠네.

자막)  여기서, 함께.

다이와하우스

다이와하우스 공업_기업PR:여기서, 함께:만약 편_TVCM_2017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잔잔한데 이야기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선뜻 그렇다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다음 생에는 강아지로 태어날 것 같다고 엉뚱한 말도 한다. 묻자마자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대답이다. 그렇게 말한 뒤에 남편은 지금도 본인은 어쩌면 아내의 강아지라고, 그래서 다시 한 번 함께 살 자신은 있다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지루함을 아는 이의 성숙함이 느껴지는 답변이다.
일본의 배우 릴리 프랭키와 후카츠 에리가 부부로 등장하는 이 광고는 일본 최대의 건설회사인 다이와하우스 공업주식회사가 만든 것이다. ‘여기서,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과장 없이 따뜻하게 연출한 시리즈 광고 중 한 편이다.
시리즈의 다른 편을 보자. 부부싸움 뒤 남편은 어째도 좋은 일로 싸웠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어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과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쉽게 고개 숙이는 남자가 아니라고 호기를 부리는 남편. 하지만 거래처에 찾아가서는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90도 굽히고 사정을 한다. 나이 먹어도 소중히 대해줘, 라는 아내와 대신 나보다 오래 살아 달라고 주문하는 남편의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남편)  또 어째도 좋을 일로 싸우고 말았다.

아내)  어째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야.

남편)  어라? 내가 나쁜가?

아내)  사과하면 용서해줄 수도 있지만…

남편)  나는 간단히 머리 조아리는 남자가 아니야.

아내)  자기 편할 때만 남자 핑계를 대지.

남편)  역시 억지인가?

아내)  젊었을 땐 좀 더… (젊을 때 사진을 보며)젊을 때부터 별 거 없었네.

아내)  나이 먹어도 소중히 대해 줘.

남편)  좋아.

아내)  차버릴지도 몰라.

남편)  대신 나보다 오래 살아.

자막)  여기서, 함께.

다이와하우스

다이와하우스 공업_기업PR:여기서, 함께 편_TVCM_2011

다시 태어나면 나는 어쩌고 싶을까? 만약을 묻는 광고를 보고 재미 삼아 자문해 본다.
나는 다시,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우리 엄마 딸이 되어 재롱을 부리고 우등상장으로 엄마를 웃게 하고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엄마에게 ‘정신 차리고 오래 살아!’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호통칠 수 있을까? 다시 그럴 수 있을까? 때로는 내다 버리고 싶었던 애물단지 내 아이들을 다시 낳아 무조건 사랑하는 바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야근 다음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소풍에 가져갈 김밥을 싸고, 퇴근하면 옷도 안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슈퍼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다시, 아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인 줄도 모르고 가슴 설레고, 이별인 줄 몰라 자꾸 뒤돌아보는 서툰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열 번 헤어지고 스무 번 다시 만나고 그래도 헤어져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워하는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만약에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산다는 것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알고도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처음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서러움 한 번 없을 것처럼, 배신 한 번 당하지 않을 것처럼 해맑은 얼굴로 세상과 만나고 순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광고 속의 남편처럼 나도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니, 시침 뚝 떼고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구는 내 아이들의 말썽꾸러기 아들로 태어나 복수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착하게 살아야지, 미워하지 말아야지, 더 양보하고 더 배려해야지. 해서 지금 이 생에서는…, 그냥 내키는 대로 살기로 한다. 꽁하고 삐치고 실수하고 넘어지며 가끔 착하고 대부분은 옹졸하고 소심하게 얄밉게 이기적으로 살기로 한다. 변하겠다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일랑 개나 줘버리고 그냥 살던 대로 살기로 한다.
어차피 이번 생은, 이대로 충분하다.

 

다이와하우스 공업_기업PR:여기서, 함께:만약 편_TVCM_2017_유튜브 링크

 

다이와하우스 공업_기업PR:여기서, 함께 편_TVCM_2011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내가 살고 싶은 집

The house where I want to live

바닷가로 난 커다란 창으로 종일 파도의 노랫소리가 들어온다. 조금만 걸으면 낮은 산이 있어 공짜로 도토리와 밤을 주울 수 있다. 텃밭에는 상추와 깻잎, 고추가 알뜰하게 자라고, 라일락과 목련, 장미가 철 따라 꽃을 피운다. 새소리에 잠이 깨고 별빛이 술잔에 담긴다. 부엌의 조리 공간은 식탁을 향해 있고 커다란 팬트리에는 두어 달 먹을 식재료가 넉넉하다. 거실의 벽난로는 겨울을 기다리고, 욕실엔 아주 작은 욕조가 뜨거운 물을 채우고 있다. 안방에는 침대뿐, 단잠을 방해할 아무런 가구도 없다. 세 벽에 책꽂이를 짜서 넣은 서재 한가운데에는 넓은 떡갈나무 책상이 늠름하게 앉아있다.
한눈에 다 보이는 네모난 1층 집, 그곳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사람의 소음보다 자연의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서울 그리고 아파트를 쉽게 벗어나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 꿈꾸는 주거공간은 언제나 지방에 있는 작고 소박한 전원주택이다. 생각은 뱅뱅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선뜻 떠날 용기도 여유도 없는 나는 방송이 보여주는 잘 생긴 집들을 시샘하며 바라본다.
최근에 집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서이기도 하고, 지금 사는 곳에서 이사해야 하는 날이 가까워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아주 작은 집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KCC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의 광고이다.

광고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늦게 불이 꺼지고 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아파트 경비실이 나온다. 경비실은 깜깜한 밤에 주차장을 돌며 주민의 차를 살피고, 새벽부터 입주민들의 출근길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가 하루에 12시간 생활하는 집이다. 대개는 에어컨도 없고, 편안한 책상도 없다. 화장실은 낡았고 세면대는 민망할 정도로 지저분해 보인다.
KCC건설은 작년에 ‘등대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파트 노후 경비실의 환경 개선을 통해 경비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KCC건설의 나눔경영 프로그램이다. 금강 이매촌 아파트를 시작으로 용인, 수원 지역 등 KCC건설이 지은 전국의 아파트 안에 있는 40여 개 노후 경비실의 환경을 무료로 개선해 주고 있다. 내•외부를 보수하고 책상이나 의자 같은 집기류를 교체하고 소형 에어컨과 냉장고를 설치하니 경비실이 환하게 다시 태어난다.

자막)         모두의 불이 꺼지는 시간,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가장 늦은 하루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가장 이른 하루가 또 무사히 시작될 때까지.

자막/NA) 이 작은 집이 우리 모두의 집을 지켜갑니다.

자막)        등대프로젝트

                  KCC건설 스위첸은 노후된 경비실을 리모델링하여

                  더 건강한 환경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NA)          KCC건설 스위첸

KCC건설_스위첸_기업PR:등대프로젝트_TVCF_2021

랜턴을 들고 묵묵히 순찰을 하는 경비원과 불 켜진 경비실, 칠흑 같은 어두운 길과 이를 비추는 손전등의 빛이 화면 가득 보인다. 모두가 잠든 아파트 단지에 홀로 꺼지지 않은 경비실의 불빛은 마치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보인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경비원의 표정은 내가 매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며 만나는 우리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와도 비슷하다.
유튜브에 공개된 스페셜 영상은 등대프로젝트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서 우리는 부산, 용인, 서울, 군포에 있는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의 환경개선 현장을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자막) 730채를 지켜온 집

          496채를 지켜온 집

          276채를 지켜온 집

          수십 년 동안 모두의 집을 지켜온 작은 집들을 위해

          작은 보답을 계속합니다

          KCC 스위첸 등대 프로젝트

          부산 학장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부산 구서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용인 역북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서울 시흥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서울 동작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군포 당동 2차 KCC 금강아파트 경비실

 

NA)   이 프로젝트를 응원해 주신 모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더 든든해진 이 작은 집이

          우리 모두의 집을 더 든든하게 지켜갑니다.

          KCC건설 스위첸

KCC건설_스위첸_등대프로젝트_[Never Ending Story]_바이럴영상_2021

스위첸의 이 TVCF는 2021년 대한민국광고대상 TV영상 대상과 디지털영상 은상을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광고에 주어진 상이라기보다는 이런 광고가 가능하게 한 기업의 철학과 실천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커다란 집을 지키는 가장 작은 집! 바로 경비실이 주인공인 광고를 보고 어릴 때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 그 집엔 상을 펴면 다이닝룸이었다가 방석을 깔면 거실이었다가 이부자리를 펴면 게스트룸이 되는 마루가 있었다. 4남매가 한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좁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 낡고 작아진 그 집에서 45년을 사셨다. 내 나이 다섯 살 때부터 살다가 어른이 되어 분가한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그 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흘린 추억도 그곳에 남아 나를 반겨주었다.
다시 생각하니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나와 함께 자라고 나이 드는 집이다. 아이들의 유년이 오롯이 담겨있는 오래된 집이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아이들이 찾아오면 어릴 적 그대로인 모양을 보고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집이다.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가질 수 없는 집이다.
나는 과연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아니 어디에 살아야 할까?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는 대신 앞으로의 내 삶을 아로새길 수 있는 집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나와 함께 도란도란 늙어갈 다정하고 순한 집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일관성 없는 부동산 대책과 널뛰는 집값, 충분치 않은 주머니 사정에 돌봄이 필요해진 노모까지 고려하면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것에 버금가게…,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다.

 

KCC건설_스위첸_등대프로젝트_TVCF_2021_유튜브 링크

 

KCC건설_스위첸_등대프로젝트_[Never Ending Story]_바이럴영상_2021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나의 새해 소원은 날라리 소시민

My New Year’s wish is an outdoorsy petite bourgeoisie (ordinary citizen)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첫눈이었다. 얼마 만에 맞는 탐스러운 첫눈인지! 길이 미끄럽고, 차가 밀릴 것이라는 걱정보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21세기의 아이들도 기원전부터 내렸던 눈을 맞으며 깔깔 호호 괜히 웃고 뛰었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다. 넘어질까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마스크 속 입이 벙긋거렸다. 마침 내 첫 회사의 선후배들과 약속이 있었다. 금상첨화, 그 회사가 있던 공평동 근처 인사동이었다. 30여 년 전 신입사원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 오랜만에 만난 우리 네 여인은 그때도 있었던 식당을 찾아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인사동답게 전통찻집의 쌍화차를 마셨다.
일행 중 막내는 미국에 살고 있다. 10년 전 키 크고 잘 생긴 남편이 세상을 뜬 후 혼자서 씩씩하게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다. 늦둥이 열 살짜리 딸 위로 넷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착실히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후배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들 사진을 청해서 보았다. 카톡을 찾아 보여주는데 아들의 카톡 아이디가 ‘부자아들♥착한의사와이프’였다.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이게 뭐야?”
“아 이거? 우리 아들 소원이 부자가 되는 거래. 그리고 와이프는 전문직이면서 아이도 같이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래서?”
“그 소원 이루어지라고 화살기도 하는 마음으로 내가 정한 아이디야.”
“하하 그럴 수도 있어?”
“나만 보는 내 카톡이니까 상대방 아이디를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서 적는 거야.”
“그럼 딸 아이디는?”
“딸 아이디는 ‘키180♥전문직멋진남자’야.”
“어머 야 신박하다, 나도 우리 애들 아이디 내가 바라는 대로 고쳐야겠다.”
“호호 난 효딩이라고 입력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다시 써야지!”
모두 낄낄대며 후배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런 아이디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 들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 하물며 어미가 자식을 위해 바치는 기도에는 더 큰 힘이 있지 않을까? 다섯 아이를 기른 후배를 비롯해 첫눈 오는 날의 일행은 모두 ‘엄마’였다. 아들과 딸을 업어 기른, 지금도 등에 ‘자식’이라는 짐을 업고 있는….
여기, 평생 자식을 ‘어부바’하고 있는 엄마의 기원을 닮은 광고 한 편이 있다.

Na)   조금 나아졌으면

        꿈이 이루어졌으면

        일이 잘 풀렸으면

        내일도 웃었으면

        모두 건강했으면

        행운의 일곱 글자를 불러 보세요.

자막) 어부 어부 어부바

Na)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좋은 금융을 부르는 주문,

        평생 어부바 신협.

정말 그럴 것 같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 등에 업혀 있으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 엄마가 등 뒤로 돌린 손으로 엉덩이를 투덕이며 ‘네 꿈이 이루어질 거야’라고 말하면 뭐든지 다 그대로 될 것 같다.

신협_기업PR:행운의 7글자 편_TVCM_2020

새해가 밝았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2022년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2022년이 되면 안식년을 가지겠다고 몇 년 전 아이들에게 얘기했었다. 안식년은 재충전을 위해 생활비를 받으며 쉬는 것이니, 너희들이 엄마의 안식년 월급을 대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두 녀석 다 못 들은 척 대답은 안 하고 웃기만 하더라. 에휴… 내 아이들의 카톡 아이디를 ‘용돈송금효자’로 고치든지 무슨 수를 내야겠다. 사실 막상 2022년이 되니 안식년은 안 해도 좋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만 사라지면 좋겠다. 나도 남도 모두 건강하게 하루에 하나씩 작지만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22년 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전파를 탄 신년 광고를 하나 찾아보았다. 다양한 보통 사람들이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의 소원이 지금보다 소박하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건 나이 탓일까?

자막)      새천년 새희망

남1)       (배영철 29세 회사원)장가 가서 손주 안겨 드릴게요!

여1)       (노안나 35세 주부)애기 아빠 사업,

남2)       (임혁 38세 약사)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3)       (최찬혁 25세 종업원)2억만 벌었으면 좋겠어요.

여2)       (방연경 22세 대학생)장학금 한번 받고 싶어요.

남4)       (왕종만 61세)손주 놈들 용돈 주고 싶지.

여아)     (유선형 6살)과자 안 사먹고요.

남아)     (권홍모 5살)저금해요.

여3)       (김종금 35세 주부)여보 화이팅!

이계진) 새천년 새희망 모두 이루십시오.

             새마을 금고가 있습니다.

자막)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은행-

             새마을 금고

새마을금고_기업PR_TVCM_2000

새해의 희망 말고 신년의 결심을 보여주는 광고도 있다. 그런데 새해 맞이 결심이라는 게 아주 평범하다. 서툰 꼬마 태권도 선수의 결심은 ‘스포츠맨이 되자’이고, 전철을 기다리며 춤추는 아이들의 결심은 ‘중2가 되자’이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결심이 꼭 이루어질 것처럼 만만해 보인다.

자막) 2017

        시인이 되자

        아침형 인간이 되자

        혹은 올빼미가 되자

        프로 방콕러가 되자

        중2가 되자

        탐험가가 되자

        스포츠맨이 되자

        슈퍼 대디가 되자

        사랑꾼이 되자

        진짜 아재가 되자

        병아리가 되자

        2017년의 나 갤럭시와 함께

삼성 갤럭시_새해 편_TVCM_2016

해가 바뀌어도 절대 새해 결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지 오래다. 결심하고 지키지 못해서 실망하느니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불량한 생각 탓이다. 딱히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보니 용기가 난다. 하기 쉬운 결심 하나를 해볼까 솔깃해진다. 매일 하늘 쳐다보기,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기, 하루에 5페이지 책 읽기, 한 시간 일찍 일어나기, 12시 전에 침대에 눕기, 남 얘기 안 하기, 가끔 멍때리기… 이런 것이라면 어느 것을 골라도 많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거창한 결심은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맡기자. 새해에 나는 그저 쉬운 결심을 지키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조용하고 느린 매일을 사는 ‘날라리 소시민’이 되기로 하자.

 

신협_기업PR:행운의 7글자 편_TVCM_2020_유튜브 링크

 

https://play.tvcf.co.kr/14007

새마을금고_기업PR_TVCM_2000_tvcf 링크

 

https://play.tvcf.co.kr/621325

삼성 갤럭시_새해 편_TVCM_2016_ tvcf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

오늘을 살아가세요, 이 말에 기대 하루에 하루만 살았다

Live today!
With this quote in mind, I have lived only for today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어느새 느닷없이 덜컥… 12월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지나온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안갯속처럼 희미하다. 삼백 예순 날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일터에 나가고 잠자리에 들었을 터인데, 문을 쾅 닫고 다른 방에 들어온 것처럼 기억이 멀다. 지난 1년 무슨 일이 있었나, 억지로 머릿속을 뒤져본다. 마스크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고, 재택근무와 취소된 모임들이 뒤를 잇는다. 지난 2년은 성인이 된 후 집에 머문 시간이 가장 길었던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거리두기의 연장선으로 휴대전화에서 페이스북 앱을 지웠더니 남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도 줄었다. 대신 동네 수영장에 다니며 내 몸과 만나는 시간이 늘었다.
대부분의 날이 특별한 사건 없는 무덤덤한 하루였고 고맙게도 마음에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지금’만 의식했다. 바로 ‘오늘’ 해야 할 숙제,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먹는 음식에 집중했고, 끝난 후에는 복기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나의 2021년을 두 줄로 정리하면 ‘오늘을 살아가세요, 이 말에 기대 하루에 하루만 살았다’ 정도가 되겠다. 두 해 전, 한 광고 영상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먼 길을 떠났던 배우 김혜자의 카피에서 빌려온 문장이다.
코오롱스포츠는 20~30대 젊은 모델을 주로 기용하는 아웃도어 광고의 상식을 깨고 여든에 가까운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발탁했다. 2분 30초가량의 광고는 그녀가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혼자 밤을 보내고 거리를 걷고 오로라를 만나는 여정을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카피로 보여주고 있다. 광고라기보다는 짧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자막)           “오늘을 살아가세요.”

                   이 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김혜자O.V)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연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라

                   가볍게 휙 떠나올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겠지요.

                   이 길에서 자꾸만 나의 지난 일들이 겹쳐집니다.

                   하늘이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80을 눈앞에 둔 내 인생의 길 끝에서

                   나는 내 꿈 앞에 서 있습니다.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막)           TRUST 김혜자

                   TRUST KOLON SPORT

코오롱스포츠_기업PR:아이슬란드 김혜자 편_2019

광고 속 김혜자의 말처럼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나는 자주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했고, 지나가버린 어제를 후회했다. 남의 기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도 했다.
커서 생각하니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들은 말 중에는 거짓말, 틀린 말이 많았다. 변화하는 시대에 더이상 맞지 않는 속담이나 격언도 부지기수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또 얼마나 많은 그릇된 환상을 심어주었던가!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어른의 기대나 권선징악의 동화를 유쾌하게 뒤집는 광고가 있는 것을 보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다. 토이킹덤이라는 장난감 가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이 그것이다.

2021 돌JOB이

주인공의 돌잡이가 시작되자

어른들은 다양한 이유로 돌잡이 물건을 가리켰어요.

“청진기를 잡아야지, 그래야 의사가 되지.”

“마이크를 잡아야지, 그래야 연예인이 되지.”

“공을 잡아야지, 그래야 운동을 잘하지!”

주인공은 한참을 고민하다…

돌잡이 물건을 다 거부하며 과감히 외쳤답니다!

제 길은 제가 정해요!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으니 좀 더 커서 생각해 볼게요!

토이킹덤_인스타그램_2021

‘제 길은 제가 정해요!’라고 외치는 인스타그램 속 주인공을 내 아이에게서 본다. 내 아이뿐 아니라 많은 젊은 세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인류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다. 늦었지만 나도 따라 다짐한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자, 오늘에 충실하자!
오로라를 만나러 아이슬란드에 갔던 배우 김혜자는 그 이듬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지만 걷기를 계속한다. 누구나 제 몫의 짐 하나씩을 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이며, 쉬었다가도 끝까지 걸어야 하는 순례자의 길은 우리 인생길과 닮았다.
2021년이 저물고 있다. 지난 열두 달, 멈추지 않고 잘 걸어왔다. 애썼다고 장하다고 내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아듀 2021, 웰컴 2022!’ 조금은 감상적인 마음이 되어 오가는 해(年)에게 인사를 건넨다. ‘올해 참 고마웠어, 내년에도 잘 부탁해.’ 옷 벗은 가로수와 다정하게 밝은 달, 무뚝뚝한 지하철 그리고 신발장에 가지런한 신발에게도 감사의 말을 중얼거린다.
2022년엔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또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새해에도 난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막)           CAMINO DE SANTIAGO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김혜자O.V) 이 길에선 누구나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서로를 응원하며 갑니다.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낼 수 있을까?

                   나를 믿고 가보자.

                   잘못 왔다…

                   누구나 삶의 짐 하나씩은 지고 가지요.

                   씩씩하게 걷지만 가끔은 쉬어가는 거예요.

                   오늘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순례자의 길은 뭐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연습 같아요.

                   인생의 길도 다르지 않겠지요?

                   우리 같이 걸어가요.

자막)           TRUST 김혜자

                   TRUST KOLON SPORT

 

코오롱스포츠_기업PR:산티아고 김혜자 편_2020

코오롱스포츠_기업PR:아이슬란드 김혜자 편_2019_유튜브 링크

 

코오롱스포츠_기업PR:산티아고 김혜자 편_2020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