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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역사적 선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Architecture Criticism
What historical precedents give us?

수도자의 공간, 즉 수도원은 외부와 격리된 은둔자의 공간이다. 세상과 떨어져 스스로 유폐된 공간이기에 주로 깊은 산이나 외딴 시골에 건립되곤 했으며, 내향적인 중정 공간을 형성하여 고립된 위요 공간을 이루었다. 또한 수도사가 거주하는 공간이기에 하나의 셀로서, 자족적인 검박한 생활의 장소이자 영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침묵이 강조되며 개인적인 수양과 규율이 강조되는 집단생활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수도원 공간은 르코르뷔지에 같은 근대건축 거장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으며,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는 데 활용되거나 집합 주거 모델이 되기도 했다. 특히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의뢰한 쿠튀리에 신부는 르코르뷔지에게 ‘르 토로네 수도원’을 방문하여 설계에 참조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방문한 르코르뷔지에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수도원 공간은 영적 공간, 공통 생활공간, 개인 생활공간, 중정, 회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본적인 수도원의 구성 방식은 사각형 중정과 중정을 둘러싸는 회랑, 회랑의 한쪽 편에 접한 성당, 다른 쪽에 접해 있는 공동생활 공간이 있으며, 그 위층에는 기도실, 침실 등이 자리 잡았다. 크게 보면 성당의 영적인 공간과 수도사의 생활공간이 중정을 공유하며 결합한 형태인데, 가장 핵심 공간은 이 두 공간을 구분 지으며 연결하는 공간인 네 변을 가진 정원과 정원을 둘러싸고 형성된 열주가 있는 회랑이다. 내향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이를 둘러싼 회랑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하늘을 마주하는 공간이며, 내부 통로 겸 신앙을 가다듬는 순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매일 여러 차례 의례와 생활을 위해서 지나다니는 이 공간은 건축적으로 보면 강렬한 태양이 내뿜는 빛과 열주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어떻게 조성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르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도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키는 창문을 통해 빛의 변주와 공간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유명한 비유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다소 장황하게 수도원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세빛자매원’이 여러모로 전통적인 수도원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종교적인 차이도 있고, 무엇보다 시대적인 차이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공간의 구성만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건축사가 힘을 빼고 간결하게 디자인한 것을 알 수 있다. 배치나 전체 평면을 보면, 직각 삼각형에 가까운 대지의 형상에 따라 북향에 해당하는 직각 부분은 건물이 둘러싸고 남향의 긴 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열린 형상으로 배치되었다. 달리 보면, 디귿(ㄷ)자 형상으로 대지 외곽을 둘러싸고 배치되고, 중앙 부분에 식당과 친교 공간 건물이 배치되어 중정을 형성하며 한쪽은 길게 뻗어져 나와 독립된 교회당을 이룬다. 이런 중정 공간은 내밀함을 만들어 주변 공간과는 독립된 위요 공간을 만드는데, 가운데 중정은 튼 미음(ㅁ)자 형태로 엄격한 공간은 아니나, 직사각형 수변공간과 야외데크로 이루어져 정적이며 고요한 공간을 이룬다. 중정은 네 단의 낮은 계단을 통해 살짝 들어 올려져 있어 주차장 공간과의 경계를 형성한다. 식당 및 친교 공간과 1층에 사무실 공간 등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침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침실과 복도의 배치는 침실의 향(向)을 우선 고려하여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복도는 중정을 향해 시작되어 건물의 바깥쪽 면을 따라 돌아 다시 중정을 면하여 이어진다. 두 면의 침실은 외부를 향하지만, 한 면은 중정을 향해 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긴 경사로는 복도의 연장으로, 연속되는 산책로를 형성한다. 침실은 독립된 원룸의 형식으로, 작지만 독립적인 거주가 가능하게 소박하지만 밝고 깨끗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세빛자매원> © 임준영

외관은 어찌 보면 작은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기숙사 건물 같기도 하다. 벽돌로 치장된 격자형의 균일한 사각형 유닛이 반복되며, 간결하되 익숙한 외관을 이루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삶이란 무릇 일상의 반복과 익숙함이 빚어내는 풍경 아닌가. 마치 이를 웅변하듯, ‘세빛자매원’은 힘을 빼고 간결하며 반복된 입면을 드러낸다.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가장 따뜻하게 맞이할 것도 반복의 일상이 주는 여유로움 아니겠는가. 낮게 자리 잡은 건물과 2층의 옥상이 각각의 마당과 같이 사용된다는 점도 돋보인다. 긴 동선 끝에 만나게 되는 옥상 마당은 과도하게 채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정에서 벌어지는 작은 행사를 2층의 옥상과 마당에서도 함께 즐기는 모습이 연상된다. 건물의 한쪽 끝단에는 교회당이 놓여 있다. 주차장에 붙은 작은 교회당은 재료와 형태 모두에서 다른 건물과 독립된 건물로 인지되며, 외부에서 접근성도 쉽다. 한눈에 건축사가 정성을 기울인 공간임을 알 수 있는데, 다른 건물이 벽돌로 이루어진 평지붕에 가까운 건물임에 비해, 경사가 급한 박공지붕에 목재로 마감한 외장은 생활공간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이곳이 성스럽고 특별한 공간임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벽돌과 이질적이지도 않다. 내부는 콘크리트 색감으로 소박하게 마감되었고,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각형의 창문이 여럿 어긋나며 배치된다.

건축사가 역사적 선례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형식의 건물이 비슷한 공간구성을 취하며 또한 변용되는 것을 보는 건 흥미롭다. 물론, 필자는 ‘세빛자매원’의 평면을 보며 수도원의 평면을 떠올렸지만, 이 건물은 수도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우선,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적 차이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은둔과 고행의 공간과 은퇴한 선교사들의 편안한 노후를 위한 생활관이라는 큰 차이도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수도원 공간에 대한 연상을 피할 수 없음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연관성이 미약하다는 점이 아쉽게 여겨진다. 우선 가장 중심적인 공간인 중정을 둘러싼 회랑이 복도로 변용되면서 건축적 즐거움이 손상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중정을 둘러싼 각각의 셀들과, 이를 회랑처럼 연결된 복도가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수도원과 유사하고, 벽돌로 감싼 기둥이 유닛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거대한 창호가 그 사이를 메우며 변용되고 있지만, 회랑이 주는 아늑함과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 공간의 율동감은 주지 못한다. 배치나 형태 역시 전형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대지의 형상에 따라 자연스레 중정을 형성하며 향을 고려한 각 실의 배치는 가히 교과서적인 해법이라 할 만하지만, 벽돌로 치장된 익숙한 외관과 더불어 익숙함은 쉽게 상투적인 것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문뜩 스치는 물음, 역사적 선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르코르뷔지에가 역사적 선례를 통해 길어 낸 것은 어떤 고정된 유형이나 형태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마도 선례를 통해 느꼈던 감동의 정체를 고민했을 것이며, 그것이 빛이라는 가장 오래된 건축의 요소가 지닌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 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성당’에 벽과 천장을 뚫고 무수히 꽂아 넣은 빛의 대포는 역사적 선례가 던지는 물음에 대한 르코르뷔지에만의 응답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답이 아니라, 건축함에서 응답을 기다리는 마르지 않는 질문의 샘은 아닐까.

 

글. 이경창 Lee, Kyoungchang 건축비평가·구와미로 건축사사무소 대표

이경창 건축사·구와미로건축사사무소

건축비평가이자 구와미로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다. 건축평론동우회 동인이며, 제5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했다. 건축이데올로기 비평과 건축의 정치성,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여러 증상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엔 지젝을 통한 라깡 읽기에 빠져 있다.
sesang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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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건축여행 ④ 소읍도시 형성과정과 예산발전 문제점 제시

A living and Brenthing Tourism for Architecture ④
Formotional Process of Modern town & Problems on Yesan County development

1. 고려와 조선시대 행정체계상 예산의 위치

고려시대의 치도는 한마디로 역로가 대표적인 육상교통통신시설이었다. 역로의 등급은 대로·중로·소로로 나누고 역정을 배치하였으며, 역은 6등급으로 구분하여 일과에서 5과로 정하고, 일과는 개경에서 서경(평양) 사이였으며 이과는 서경에서 의주 사이였다고 한다. 994~995년 경 역로와 역수를 간추려보면 평구도의 경우 30역, 금교도는 16역, 여교도 12역, 충청주도 34역 등으로 고려의 역제는 22역 역도로 구분되며, 총 525역이란 방대한 역로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 예산은 충청주도의 일부로서 수원, 해미, 예산, 부여, 문의를 연결하는 22역도 중에 하나의 역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길은 사람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도로의 기능을 갖추지 못했으며, 실례로 1178년(명종 8년) 3월에 중방이 소하기를 “길 곁에 옥택, 난원하여 비록 척수이라도 관로(시가지도로인지 지방도로인지 알 수 없음)를 침범한 곳이 있으면 모두 복구토록 명령하소서” 한 것을 보면 도로획지를 무질서하게 점유한 사례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예산의 경우, 충남주도(14번)의 일부였다는 점과 고려조에 상업로로서 역로가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예산이 상업적 거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 역관제도는 고려시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소지왕 9년(AD488)에 우역을 세우고 관로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미 7세기 이전부터 전국적인 교통 통신 체계가 수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왜란과 호란 이후 기능을 잃어가던 역은 19세기 말에 와서 통신, 교통의 일대혁신과 함께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였다. 1882년 우정사 개설, 1884년 우정국 개설, 1885년 전신시설개통 등의 통신방법과 1889년의 경인철도개통을 선두로 각 노선의 철도개통은 역의 고유기능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역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 고려와 조선후기 도시의 예산의 지정학적 위치 고려시대의 역관제도지도

역로[고려 1200년경]에 나타난 예산

(2) 고려와 조선후기 도시의 예산의 지정학적 위치 조선시대의 근대적 행정체계

현재 시직제(市職制), 읍면제(邑面制)의 뿌리는 갑오경장(甲午更張)과 함께 1898년 전국 팔도제(八倒制)를 폐지하고 23부(府)로 개편되면서 명칭을 군(郡)으로 동일하게 하고 조선시대를 통해 유지되어오던 부,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군, 현(縣)의 체계가 개편되었다. 이때 새로 지정된 23부 이외의 부, 목, 군, 현들은 모두 군으로 개칭되었다.

 

(3) 조선시대 지방행정단위와 그에 따른 등급

조선말 충청도는 홍주부와 공주부, 충주부 3개로 홍주부는 태안, 서산, 당진, 해미, 덕산,면천, 신창, 온양, 청양, 대흥, 정산, 부여, 입천, 한산, 홍주 등으로 공주부는 직산, 천안, 목천, 전의, 연기, 공주, 진정, 연산, 진산, 명동, 황간으로 이때 예산은 현에서 군으로 승계된다.
조선시대 지방도시는 수도서울을 제외하고는 군현의 소재지는 소읍으로 최소한 3,000명에서 5,000명의 집단취락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 참고로 ‘대전회통’에 기록된 부, 대도호부, 목, 군, 현의 소재는 다음과 같이 나눈다.

1896년에 23부제가 폐지되고 현재와 같은 13도제가 만들어지면서 이후에 예산군면으로 개칭해 이어지다가 1914년 일인들에 의해 군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때 변의 통폐합은 약 4리 호수 800을 최저기준으로 미달하는 ‘면’은 합병조정하였다.(내무부 앞의책39쪽)
1917년에 연중에 비교적 인구가 많고 상공업이 발달되어 도시적인 면모를 갖춘 곳을 ‘지정면’으로 지정하였으며 예산지방은 1930년 12월 총독부 제령 제 11호로 공포된 읍면제가 시행되면서 지정면이 ‘읍’으로 개칭되었다.

2. 조선후기 도시의 시가지 형태(충청도)

예산시가지 결정요인으로서 입지형태
예산과 같은 도시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이전에 선조들이 자리 잡은 고을(邑)과 마을(村)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시의 입지는 현재의 우리자신이 아닌 선조들이 선택한 결과이며 그 선택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공간이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대지가 자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입지란 인간의 의지와 사고가 반영되어 선택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예산은 내포지방에 속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전화를 입지 않고 평온무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람살기에 가장 적당하여 옛날부터 가거지 도는 복지라고 일컬어져 예부터 많은 부자와 여러 사대부가 이지방에 대를 이어 세거(世居)하였다.
실학자 이중환(1672-1756)이 저술한 택리지에 의하면 “내충천도측위상”이라는 문구가 있다.

(1) 조선시대의 지도(예산)

해동지도(1724~1776),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선후기지방지도(충청도편, 1872)

 

(2) 지도상에 나타난 치도사업의 발전

동국여지도(1700년대)에서 나타난 예산

 

(3) 지도상에 나타난 치도사업의 발전

도로 등급을 9등급으로 나누어 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어로(御路)와 한성부터 전국에 이르는 육대로(六大路), 팔도 각읍에서 사계(四界)에 이르는 거리, 그리고 사연로(四沿路), 대중소(大中小)의 역로(驛路), 파발로(擺撥路), 보발로(步撥路), 봉로(烽路), 해로(海路), 외국과의 해로, 조석(潮汐), 전국 장시의 개시일 등 각종 도로 즉 육로와 해로, 정기시장이 기록돼 있다.

 

3. 예산을 경유하는 도로

한성에서 충청수영, 460里
예산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역으로서 지역을 이동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 역로제도가 소극적으로 이용되고 상업활동이 비하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도로체계자체도 없었으며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임락 이후 도로체제를 정비하고 실학자들이 치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도로를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게 된다. 1700년대까지만 해도 예산은 덕산, 대흥보다도 낮은 현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1895년에 군으로 승격되고, 1896년에 군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는 예산군면으로 대흥과 덕산을 흡수하게 된다. 이는 예산지역이 위치적으로 중요하다는 면을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부터 대한제국말에 상업적 거점으로 큰 역할을 했으며, 전업상인들을 중심으로 상권(시장)이 형성되다보니 사람들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 도로망과 상업 네트워크

고려시대의 도로는 역로(역로, 역관) 가 대표적인 육상교통이자 통신방식이었다. 고려의 역제는 22역도로 구분되며, 총 525역이란 방대한 역로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예산의 경우도 충청주도를 연결하는 34개소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북으로는 개성, 서울, 수원 등을 연결하고 서로는 해미, 서산, 남으로는 부여, 전주 등을 연결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도로는 초기에는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형태였다. 임진왜란 이후 교통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다. 예산의 경우, 1710년에 윤두서(1668~1715)에 의해 제작된 동국여지도를 보면, 대흥, 예산, 당진을 통해서 내포지역에서 해안지역으로 수로나 도로를 통해 연결되고 있는 교통체계를 볼 수 있다.

 

(2) 도로망과 상업네트워크

대한제국 말, 장지연(1864~1920)에 의해서 발행된 대한신지지(지부지도, 1908)를 보면, 신 원(예산)은 동과 북으로는 한양과 평택을 연결하고 있으며, 서로는 태안, 당진과 홍성, 남으로는 청양, 전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로망이 개설된 것을 볼 수 있다.

대한신지지부(1908년)에 나타난 예산

역로(고려, 1200년경), 동국여지도(1700년대), 대한신지지부(1908년)

 

4. 시가지 결정 요인으로서 입지형태

조선시대에 마을의 입지는 풍수지리설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우주 또는 자연과 관계가 있는 생의 충족한 곳을 찾았으며, 넓은 의미로 볼 때 정주지를 선택하고, 정착하여 살아가기 위한 장소로 토지를 찾았다. 토지가 가지고 있는 기(氣)라는 것은 풍수지리의 본질이며, 기는 바람이 있는 곳을 찾아 마을을 형성한다고 보았다.1)
따라서, 예산의 경우, 조정간인 향천사뒷산(광덕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금오산이 주산이 되어 북쪽을 받치고 동서남북의 산이 위요내부를 에워싼 분지로 동쪽에 있는 향천사에서 흘러나오는 내수인 개천이 흘러 외곽을 흐르는 외수인 무한천에 합류하는 형태가 한양의 풍수와 흡사하다.2)

내포지방 지도, 내포지방(대동여지도)

 

5. 1910~30년대 도시공간의 변화

행정체계의 변화와 인구증가
예산은 1700년대까지만 해도 덕산, 대흥보다도 낮은 현의 위치에 있었으나 1895년에 군으로 승격, 1896년에 군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大正 3년)에 예산군면(禮山郡面), 덕산군면(德山郡面), 대흥군면(大興郡面) 등이 모두 예산군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업상인들 중심으로 상권(시장)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상인들 가운데는 서울과 인천의 객주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덕산과 대흥의 부호들이 예산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예산지역은 사방으로 8리요 면적은 35,121방리이며 1914년 인구는 81,458명 중에 일본인이 465명, 중국인이 220여 명이었다. 1920년에는 80,793명(14,835세대) 중에 일본인이 408명(124세대), 중국인이 213명(42세대)이었다.

(1) 행정체계의 변화

예산군면 대흥군면
덕산군면 총독부 1914년
지방행정 면 폐합에 관한
보고 1-35철
(충정도)

 

(2) 행정체계의 변화

예산면 폐합 이후 도면

예산지역은 사방으로 8리요 면적은 35,121방리이며 인구는 81,458명중에 일본인이 465인, 중국인이 220여 명이었다. 예산은 충남에서 물산매매가 성행하고, 경남철도가 통과해서 교통이 편리하였으며, 아산군 선장포와 홍성군 광천포가 국호가 되는 곡물역이 있었다. 따라서 일반산업은 호기를 띄고 발전되었으며, 외부상권의 침범이 적어 경제적으로 활약이 컸으며, 우리나라의 중심으로 되었다.
다음 도면들은 1914년 이전 예산군면, 덕산군면, 대흥군면 등의 경계영역을 보여주며, 통합된 이후의 영역은 지금의 영역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6. 시가지형성과 입지형성, 예산의 시대별 도시변화

경남철도는 1922년에는 천안에서 신례원까지 개통되며 점차적으로 1924~1925년에는 광천과 보령까지, 1931년에는 군산까지 완전개통된다. 예산은 철도개통이후 상대적으로 거주인구가 오히려 증가했다. 통계로부터 1920년에서 1935년까지 예산군의 인구는 약 2만8,000명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본인도 360명 정도 증가했다.
이것은 경남철도에서 당초 계획했던 철도역사위치가 구시가지와 많이 떨어져 있어 한인지식인과 지주들이 예산읍내와 최대한 가까운거리에 건설하도록 청원했고, 그로 인해서 구도시 상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한인들은 기성회(회장 성낙헌)를 조직하고 1만 평(약 33.057제곱미터)의 정거장 터를 경남철도회사 측에 기부하여 이를 성사시켰다.
예산역이 건설됨에 따라 인구증가와 산업발달로 새로운 시가지 계획이 이루어진다. 예산의 서쪽편 도로계획은 상권이 분리될 것을 염려한 시민들이 반대하였으나 성낙헌 씨의 기부로 구시가지와 가까운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여 예산역이 건설됨에 따라 이것은 시대조류이며, 주민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도로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시기에 공립농업학교의 이전과 보통학교의 신축과 급설전화의 개통 등이 예정되고 있어서 도로와 철도의 개설은 예산을 근대도시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국토지리정보원 http://www.ngii.go.kr

운송 및 통신수단의 변화가 근대도시로의 발전
<예산 시가지 변화과정(개항기에서 시대순으로 1970년대까지) _ 김득수 작성>

1925년도(대정14) 도시계획지도, 1967년도 도시계획지도, 1976년도 도시계획지도, 1986년도 도시계획지도

 

(1) 철도부설이전과 이후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비교
<예산군읍 지적>

1911년도 지적, 1950년도 지적

1920년대 지적상의 변화는 사설철도인 경남철도가 1922년 6월 예산까지 개통으로 예산 구시가지와 예산역과의 도로신설로 동서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이 형성되면서, 시가는 서쪽방향으로 서서히 확산되며 도시변화의 분기점이 되었다. 1922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이번에 발전에 기회로 삼아 공립농업학교 이전과 보통학교 신축, 급설전화개통,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도로의 신설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이는 철도부설과 신시가지 건설, 물류의 집산지(경제의 중심) 등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공공시설 즉, 학교, 전화국, 우체국, 은행 등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1927년 일제에 의해 시가지 구획정리가 된 것을 보면 도시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 필지증가와 구도심의 구획정리

1911년 일본인이 많이 살았었던 남서구역을 비교해보면, 먼저 1930년 지적도의 C와 같이 새롭게 도로가 건설되거나 기존 획지가 세장형 형태로 구획 정리가 되었다. 이러한 슈퍼블록은 1930년대 이후에 발생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 필지는 약 5×15미터에서 크게는 약 10×30미터 정도였다. A, B, C에서 보인 약 250×150미터 크기를 가진 큰블록(a1)은 호서은행과 본정통사거리 남쪽을 따라 다시 서쪽으로 양조장을 지나고, 북쪽으로는 제일(감리)교회를 지나 터미널과 만나고 있다. 이들 가로폭은 약 8~10미터였다. 특히 중심지인 본정통과 호서은행, 예산극장을 가로지르는 본정통 사거리를 중심으로 세장형 필지가 두드러지게 증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전통주거인 마찌야(町屋) 가옥으로, 도시공간이 재구성(재생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주거와 상업용도로 사용된 마찌야(町屋)는 옆집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창이 없으며, 좁은 전면폭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건축된 일본 주거건축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1911년, 1927년, 1930년대 지적비교 및 마찌야 상가주택

 

7. 예산 발전에 대한 논의들(1930년대)

(1) 주요 인사들의 미래에 대한 토의
1931년에 동아일보에 의해서 주최된 주요도시 순회좌담에서 9명의 예산 주요인사들의 예산 미래상에 대한 난상토론이 있었다. 이에 관련된 주요의제는 상공업발정책, 교육, 공희당, 차가임대, 전기, 수조, 풍기위생, 농촌진흥책, 시가정리(도시개량), 교통, 물가조절, 충남도청, 관청의 업무 및 정책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주요도시 순회좌담회를 요약해 보면, 예산의 상업은 10년 전보다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상업잘전과 예산의 발전을 위해서 예산의 신·구시가지 중간에 시장의 이전이나 상공회사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가지는 가로등이 없어 불편했고, 경남철도 개통 시 예산읍에 기관건물이 새로 신축되었으며, 시가지도 정리하였다. 당시, 모든 공공시설은 역을 중심으로 배치될 필요가 있으며, 역이 들어서면서 역전으로 옮기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읍과 역의 연장선에서 삼거리 남향에 외장을 세우고, 읍장을 그대로 두고, 한 달에 12장을 둘 것을 검토했으며, 예산에 하천정리 필요성과 특히 삼거리방면에 하천정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지적도 나왔다.

(2) 교통 문제
교통 문제는 역과 읍 사이 교량손상을 지적하고, 지역발전상 문제로 삼았다. 시급한 것으로 대흥통로에 정류소에서 베룩부리까지 직통도로를 계획하고, 역에서 사원내부를 경과하며, 당진군 합덕면 신리(삼거리)로 직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이에 대해 구양교를 신설하고, 이 도로는 삼거리와 연결하고자 했다.삼거리에서 합덕시장 지선으로 고덕면 대천으로 통하도록 하자는 것은 향후 도시의 미래를 내다본 신시가지의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수도 문제
수도 문제로 넓은 평야를 가진 예산에 예당수리조합설립과 조선총독부 방침으로 1931년대 몽리구역인 예산군, 당진군, 아산군 등 3개군의 광대한 평야를 농지정리 계획으로 댐공사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당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설계해 오던 중 지주와 당국간에 마찰이 있는 듯 하나, 총독부에 저항하기로 했다. 대회사인 토지개량주식회사는 기본 측량까지 끝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공사는 군사정권에 이르러 쌀증산대책으로 1960년대에 준공을 보게 된다.

 

(4) 교육 문제
이외에도 교육, 집회장소 문제를 거론했다. 교육 문제는 교육열이 높아서 보통학교에 입학지원자를 전부 수용할 수 없어 학급증설 필요성과 부녀자 교육도 거론했다. 유아교육을 맡은 신명 유치원 이외에 성공회의 유아교육신설에 기대를 하고 있으며, 학부형과 선생님 간의 유대와 친밀함이 참교육이라 생각하고, 학부모의 참여를 강조하였다.

 

(4) 공회당 문제
집회는 공회당이나 교회를 빌려 쓰기는 하지만, 100여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집회장소가 없어 건설할 필요가 있다며 군민의 불편함을 다루고 있다.

 

(5) 풍기위생 문제
하수도 공동변소, 공동정호 등 인근도시와의 위생 문제를 비교하면서, 위생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6) 전기 문제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 문제는 새로운 기계로 교체하고 요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요금감하동맹 등을 조직하여 철저히 촉구했다.

 

(7) 농촌진흥책
소농과 증농의 몰락을 염려하여 농촌진흥책으로 부업권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양돈, 양계 등 농민을 잘 지도하여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농민조합의 필요성과 농민보호를 강조했다.

 

(8) 물가조절 문제
예나 지금이나 중간상인, 중간매매가 성행했으며, 중간 마진을 피하는 방법으로 구매전매조합의 필요성을 느꼈다.

 

(9) 시가정리 하수도 문제 등
시가지에 가등이 없어 생기는 불편함과 당시에 역을 중심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 실책임을 자인하면서 역과 읍을 연장하는 방법, 하수도 문제, 하천정리가 제일 필요성을 강조한다. 비가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전, 답, 시가지는 바다가 되므로 삼거리 방면에 하천 정리를 건의하는 등 시가지 정리문제도 제시했다.

끝으로 도청 이전과 관청의 희망에 대해서는, 이전은 불필요하지만 도청의 이전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대전보다는 천안쪽이 적지이며 도당국이 군민에게 강제로 배포한 기계는 도당국의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밤늦게 까지 장시간을 토론하면서 밤 11시 40분에 폐회하였다.

 

8. 예산읍 승격 제이 (번영회 촉진운동 맹열)

「예산」 충남 예산은 경남선의 중앙에 재하고 거주 호수 2천4백호 인구 일만이천을 포용하는, 모든 행정·교통·위생문화와 산업통신의 충남 서부에 으뜸가는 상업용도일뿐 아니라 앞으로는 수만 정보의 예산 합덕의 양평야 쌀의 곡창을 연결한 지방의 중심 도시이며 본 군내에는 사방에 대소 광산이 발굴되어 활발한 발전의 도정을 밟아 나날이 약진상을 보이게 되어 수년 전부터 군면 당국은 물론 예산 번영회 역원급 지방유지 제씨는 차에 통감한바 있어 예산면을 읍으로 하루 바삐 승격시키는데 대하여 도당국에 진정운동을 거듭하는 한편 면에서는 기본 자료를 수집하여 도당국에 제출하였는데, 도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을 절실히 느꼈음인지 지난 7월 10일부터 6일간 예정으로 도관계관 3인을 현재 예산면에 출장 보내서, 기초조사를 진행 중인데 금번 조사 여하에 따라 금년 10월부터는 여러 해 동안 숙제로 내려오던 읍제 실시가 시행되리라고 시민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식산은행지점설치 문제에 관하여는 식산본점에서는 우금 경남연선에 지점을 두지 못하여 유감으로 생각하는 차에 소화 9년 이래 지방유지들과 예산번영회과 협력하여 식산본점은 물론, 본부 도당국을 여러차례 력방운동을 하여 각 관계 당국에 상당한 인식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산은행본점에서는 경남연선중 예산이 모든 산물의 집산지이요, 넓은 곡작평야에 농산자금대 부의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업의 중심이기 때문에 설치하기를 희망할 뿐만 아니라 지점의 설치 예정지에 편입되었다고 하며 금후 총독부 당국의 한시바삐 결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 가지 긴급문제로 지난 7월 12일 면사무소 계상 회의실에서 번영회를 개최하고 긴장하고 의의 있는 토의를 마치고 오후 7시에 무사 폐회하였다고 한다.
– 동아일보 1939년 7월 19일자 기사

 

9. 예산시장의 쇠퇴와 인구감소

1970년 전후로 해서 시장의 모습은 축소된 형태를 갖게 된다. 새마을 운동과 근대화과정 등 197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하는 공업화에 따라, 가로의 길에 점포가 늘어져 있던 패턴에서 자동차 증가, 가로폭 확장, 운송수단 발전으로 인해 물류집산지의 기능을 가진 중심도시보다는 각각의 도시들이 시장을 모두 설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예산외 다른 지역으로 물류 및 사람들이 이동하며 유입이 소멸되었다는게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70년 이후 정부가 농업위주의 정책보다 중화학공업 등의 육성에 치중함에 따라 농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되었고, 예산내의 시장들도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이 시점에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원인은 시장주변에 집중해있던 공공시설들이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사람들의 유입도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결론으로 내포지방 예산, 홍성 중간지점 충청남도 도청소재지 결정으로 인구 50만여 명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은 예산, 홍성, 삽교, 덕산으로의 인구 분산으로 인구증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
충청남도 발전사(1932년 3월25일 호남일보사간)
일제시대 소읍도시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김득수 석사학위 논문(2003년 8월)

 

글. 김득수 Kim, Deuksoo 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김득수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대표

영등포구지역건축사회 회장(3회 연속),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직무대행, 대한건축사협회 이사·감사 등을 역임하고, 대한건축사협회 50년사 발간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건축·민원조정 위원, 에너지관리공단 건축·도시·관광단지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예산읍 초대 명예읍장으로 위촉(1997.02.15.~2006.12.03.)된 바 있다. 서울특별시 시장 표창 5회와 대통령 표창(제200398호)을 받았으며, ‘일제시대 소읍도시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일제강점기 근대도시의 도시공간 변화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작성했다.
a010634595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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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국건축사협회 컨퍼런스 및 A’22 엑스포 참가보고

2022 AIA Conference and A’22 Expo Report

행사장 콘코스 전경

■ 참가개요

한국건축단체연합(FIKA)은 2022년 6월 22~25일(수~토) 개최된 2022년도 미국건축사협회(AIA)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 4박 6일 간의 일정에 참가하였다. 미국건축사협회(AIA: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주최하는 본 행사는 시카고맥콜믹 플레이스(McCormic Place)와 쉐라톤 그랜드 시카고 등에서 개최되었다.
협회에서는 석정훈 회장을 비롯하여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이건섭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도규태 국제위원,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그리고 조인숙 APEC등록건축사위원회 위원장 등 총 7인의 대표단이 참가하였고, 한국건축가협회(KIA)의 천의영 회장, 강인수 기획위원장이 함께 참가하였다.
우리 협회는 A’22 컨퍼런스 공식행사와 엑스포 관람, 해외단체장 포럼, KIRA-NCARB 회의를 통해 국제적인 현안에 대한 정보 및 AIA의 관점, 건축사 계속교육의 프로그램 및 운영, 나아가 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대표단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우리 협회가 지향하는 건축과 사회적 책임 등의 가치를 공유하였다.
AIA 컨퍼런스 메인 행사 외에도 강의와 건축투어를 포함한 400여 개의 계속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AIA Award와 명예회원 수여식, 추대회원 수여식을 통해 건축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건축사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공로를 격려하였는데, 2022년에는 두 명의 명예추대회원으로 일본의 키쉬 와로(Hon. FAIA)와 프랑스의 로랑 J. 듀퐁(Hon. FAIA)이 추대되었다.
대회 셋째 날 저녁에 진행된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 역시 무척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의 세계적인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사무실의 공간 환경을 보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의 설계사무소의 현장을 바라볼 수 있는 실질적인 견학이 되었다.

 

■ AIA A’22 Conference

미국 시카고에서 6월 22일부터 4일간 열린 본 대회는 미국 사회가 고민하는 ‘다양성의 포용과 공정’이라는 화두를 건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노력을 보여준 행사였다. 이전 1990년대의 AIA 컨벤션이 50~60대 백인 남성들의 독무대였다면, 이제 미국의 건축계는 여성, 흑인,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올해 행사의 특징은 둘째 날 진행된 패널대담에서 가장 잘 표출되었는데, 다양성(Diversity)과 공공안전(Public safety), 공정 (Equity)이라는 화두를 갖고 진행된 대담에서는 패널에 백인 남성을 배제하고, 3인의 초청 패널리스트부터 특이한 구성을 시도했다.
시카고의 성공한 여성건축사 지니 강(Jeanne Gang), 워싱턴 대학 건축대학장으로 건축계 공정의 화두를 선도하는 르네 챙(Renée Cheng/아시아계 여성교수) 그리고 불름버그 시장 재임 시 뉴욕시의 도시 디자인 정책 변화를 이끈 비샨 차크라바르티(Vishaan Chakrabarti/인도계 남성)가 등장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계에서 오스카상이 한국의 <기생충>과 <미나리>에 상을 주는 것 같은 변화가 건축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여성의 참여와 활약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데, 한국의 건축계와 큰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 중에 여성의 참여비율이 눈에 띈다.
시카고 현지에서 각국 대표단에게 확인해 보니, 대한건축사협회 여성회원 비율은 9.5%, AIA는 25%, 유럽의 건축단체 여성비율이 40%라고 한다. 앞으로 건축은 여성인력의 활약이 있어야만 살아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의 참여는 급증하고 있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문제(총기규제 실패로 인한 공공장소의 총기사건)에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제기되었는데,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총기가 무서워 사람들 안전을 지키자고 벙커 같은 건축을 해서는 안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적절한 조경, 오픈스페이스, 외부 무단침입을 방지할 적절한 사회적 거리 등을 통한 건축적인 접근방법과 강화된 총기규제 법안으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이며, 벙커 같은 건축으로 그 해결을 시도한다면 우리의 도시가 더욱 암울해질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행사 3일째에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연단에 등장해서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근 본인의 이름을 딴 대통령 기념관을 건축하고 있는 그는 이를 계기로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할 계기가 많았고, 건축사대회가 자기가 살고 있는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것을 알고 기꺼이 참가를 수락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법률가가 되기 전 건축을 공부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회고하며, 좋아하는 건축으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언급하면서 건축이 가지는 사회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이야기를 끌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 따르면 본인이 사회참여운동가로서 활동을 하던 시기부터 선의에서 비롯된 건축 프로젝트들이 도리어 사회적 격차와 불공정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해왔다고 하였다. 저소득계층을 위해 야심 차게 지어진 주택단지들도 도리어 낮은 에너지 효율과 부실한 단열성능으로 인해 추운 겨울에 저소득층을 더 어렵게 만들어 사회격차를 악화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냈고, 결국 이는 실거주주민에 대한 진지한 배려 없이 지어지는 건축은 반드시 그들을 더 소외시키는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미래에 있어 공정한 건축을 이루기 위해 건축사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덴 하트 회장의 부탁에 대해, 그는 자신의 정치인생에 있어 성공의 토대가 된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대화를 독점하는 것보다 듣고 있을 때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발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믿을 때에야 비로소 진심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자신의 경험이 건축사들에게도 적용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이 기념도서관을 건축할 때의 경험을 통해 귀하고 값비싼 건축재료라면 좋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이고 대중적인 자재를 가지고 더 포용적이고 품격 있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훌륭한 건축을 향한 건축사들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상황을 걱정하기도 했다(오바마는 바로 전날 낙태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보수화된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걱정스럽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행사장 전경

발표 커트사진(오바마)

대담을 진행하는 내내 오바마 대통령은 비록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넓은 식견으로 도시문제에 대하여도 명쾌한 견해를 밝혔다. 그가 제인 제이콥스나 로버트 모지스와 같은 도시디자인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지만, 전임 국가원수가 건축사대회에 연사로 참여해서 건축인들과 격의없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고 부러운 모습이었다.

A’22 website https://conferenceonarchitecture.com

 

■ AIA A’22 건축 엑스포

건축자재전시가 이루어지는 행사장 공간은 로비(Foyer zone)에서 행사장으로 대각선을 잇는 큰 가로를 두고 그 가로를 따라 주로 규모가 작은 참가업체 및 엔지니어링 업체를 배치하였고 전체를 시카고를 대표하는 가로 또는 공원의 이름을 따서 구역을 정했으며 이 구역을 각각 인테리어 자재, 우드, 메탈, 유틸리티, 소프트웨어 등의 특성에 따라 나누어 배치하였다. 세계적인 도시인만큼 Greek Town, Little Italy 등 각 구역을 대표하는 이름들이 인상깊었다.
전시장의 한가운데는 AIA 광장(AIA Plaza)이 설치되어 AIA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엿볼 수 있었으며 관람객들의 휴식을 위한 라운지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편안한 공간의 느낌과 소파, 카펫, 스툴 등이 설치되었다. 로비(Foyer) 공간에 위치한 AIA 스토어에는 이번 대회를 기념해서 제작된 많은 종류의 기념품과 잔문서적, 문구 등이 진열되었다.
전시장 맨 앞에는 대회를 홍보하는 미디어 아트월이 설치되어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대회홍보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전시물이라는 것을 알고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A’22 엑스포는 새로운 제품과 미래, 가장 최신의 기술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자리로서, 최고의 건축 제품 제조업체 약 500곳이 참가했다. 엑스포는 최신 하이테크 재료 및 솔루션에 대한 경험과 상담, 그리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며, 관람객은 이어지는 건축사 계속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지식과 교육이수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특히 A’22 앱의 새로운 기능을 통해 참가업체와의 일대일 미팅 예약과 상호간의 정보교류 서비스가 제공되고, 관람객이 선택한 재료를 무료로 포장하여 배송해주는 새로운 서비스인 Swatchbox가 도입되어 관람객이 일일이 샘플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행사장 전경

행사장 배치 다이어그램

 

■ 세미나 및 계속교육 참가 및 운영

대회 중 세미나는 약 400개 정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주제, 작품 및 경향 등에 대해 60~90분의 세미나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미나 또는 계속교육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서는 사전등록을 하고 대회장 내의 여러 강의공간이나 엑스포 내의 강의장에 세미나 시작 15분 전까지 도착하여 배지를 스캔하고 좌석을 확인해야 한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고 참가를 원하는 경우 세미나 시작 10분 전에 강의실 입구, 또는 투어 라운지로 오면 빈 자리가 있는 경우 선착순으로 참가할 수 있으며, 빈 자리가 없는 경우 미등록자는 입장할 수 없다.

엑스포 현장에서 제공되는 AIA 실무교육은 건축사 계속교육(CE)의 기능을 하며, 최고의 건축제품에 대한 지식을 얻는 단기과정으로, 100개 이상의 과정이 제공되었는데, 지속 가능성·벽 시스템·페인트 기술·코팅·목재 혁신 등을 포함한 주제로 구성되었다.

강의장 입구의 안내패널

 

■ AIA Plaza

엑스포 전시장 한 가운데에 설치되는 AIA Plaza(광장)는 많은 건축사들에게 자부심과 함께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장소로 기억된다. AIA Plaza에서는 매일 12시간 동안 라이브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메인 무대와 워크숍, 소모임, 타운 홀 미팅 등 다양한 성격의 아키텍츠 다이어로그 시리즈가 진행되는데 짧게 진행되는 강의가 관람객에게는 키노트 세션 이상으로 인기가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Deltek의 라이브 프로그래밍 협조를 받아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Plaza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작품전시이다. AIA Awards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로 상을 수여하는데, 그 중에도 올해의 가장 중요한 분야는 세계적인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지속가능한 건축(COTE Top Ten Awards)에 중점을 두었다.

AIA Awards의 분야는 아래와 같다.

– AIA Awards Small Projects
– AIA Awards Education Facilities Design
– AIA Awards Housing
– AIA Awards COTE Top Ten
– AIA Awards Regional & Urban Design
– AIA Awards Interior Architecture
– AIA Awards Architecture
– AIA Honors & Awards 2022: AIA Awards Gold Medal
– AIA Awards Architecture Firm

위 내용을 좀 더 설명하면 2022년 올해의 건축사사무소로는 최근 10년간 뛰어난 건축적 기량을 보여준 매스 디자인그룹(Mass Design Group)이 선정되었고, 올해의 최고 건축사상인 골드메달은 건축이론과 실무에 있어 지속적인 영향력을 나타낸 개인으로서 안젤라 부룩스와 로렌스 스칼파(Angela Brooks, Lawrence Scarpa, FAIA)가 수상하였다. 2022년 건축분야의 건축상은 예산, 규모, 스타일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열한 개의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이들은 놀랄 만큼 창의적인 건축디자인과 공간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설명한 COTE Top Ten 건축상은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는데 AIA는 매년 환경친화적 성능디자인에 특출한 성과를 보여준 열 개의 작품을 선정하고 있고, 작품의 내용을 보면 규모나 디자인보다는 작품에 담긴 지속가능성의 의미와 기술의 측면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AIA Awards 전시공간

또 하나 AIA Awards에서 눈에 띄는 것은 AIA Awards Small Projects이다. 상의 내용을 요약한 것을 보면 “작은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대형 프로젝트의 분위기를 이끈다”고 언급한다. 매년 주제가 제공되고 4개의 유형으로 평가하고 있다.

 

■ A’22, 건축사는 공공적 참여자

AIA Chicago Bridge Program
이번 AIA 엑스포에서 특기할 만한 몇가지의 내용을 추가로 언급한다면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AIA Chicago 부스이다. 대회가 열리는 도시가 시카고인만큼 주최 도시의 부스가 따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전시공간에 모여든 건축사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환담을 나누는 것이 눈길을 끌었는데 전시된 패널을 자세히 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성건축사와 신진건축사 간의 연대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멘토, 멘티 사진 · 전경

각각의 패널 사진은 멘토와 멘티로 기성건축사와 신진건축사 간의 연결을 제공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공식적인 명칭은 ‘AIA Chicago Bridge Program’이라고 한다. AIA Chicago는 시카고의 건축적 유산을 회원과 협력자, 그리고 사회와 함께 잘 지켜 나가기 위해 건축사의 전문성과 지식을 통하여 연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멘토십(mentorship) 프로그램을 13년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사무소를 시작하는 신진건축사들에게 최초 5년에서 10년까지의 기간 중 총 8개월 과정의 일대일 미팅을 통한 큐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들에게 리더십과 자긍심, 그리고 각자의 활동 궤적을 평가해보도록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카고의 건축이 열정적이며, 세대 간의 연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배움으로써 도시의 유산을 건강하게 유지해가는 근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AIA 해외단체장 포럼 /
International Presidents Forum

AIA 해외단체장 포럼은 지구환경과 세계적 공통과제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가져왔다. 올해도 영국, 캐나다를 비롯해 중앙아메리카, 남미,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 참가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다.
AIA 회장 Daniel S. Hart가 주최한 해외단체장 포럼에 석정훈 한국건축단체연합 대표회장은 아시아건축사협의회, 영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코스타리카, 파나마, 일본, 태국의 건축사협회장과 함께 초청되었다.
해외단체장 포럼의 주제는 기후위기(Climate change)라는 인류 공통의 위기에 어떻게 건축이 대응하고 변화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로서, 지구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 지구온도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이 시대에 건축사는 어떻게 이 위기의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단체장들에게 주어진 토론질문 중 첫 번째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각국이 당면한 가장 큰 이슈들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특히 아메리카 국가 단체의 회장들은 기후변화 및 탄소 발생원인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지적하고, 남-북 아메리카 간의 소득격차, 기술력의 격차로 인해 오히려 허리케인, 홍수 등의 광범위한 피해를 입는 곳은 저개발국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제기하였다.
선진국인 영국과 유럽의 협회장들의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장차 선진국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교한 기준에 의해 새로운 장벽이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겠다는 예측이 가능하고, 그럼에도 이 이슈는 세계 건축계의 주요 의제로서 우리의 삶의 행태를 지배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의 전경

좌측부터 이건섭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다니엘 하트(Daniel S.Hart) 미국건축사협회(AIA) 회장, 조인숙 국제위원회 자문위원(APEC 등록건축사위원회 위원장)

 

■ 미국건축사협회 추대회원 메달 수여

2022년 미국건축사협회 추대회원 메달 수여식은 6월 24일 오후 2시에 전설적인 시카고 오디토리엄에서 열렸다. 2022년에는 두 명의 명예추대회원 일본의 키쉬 와로(岸 和郎, 1950~), Hon. FAIA와 프랑스의 로랑 J. 듀퐁(Laurent J. Dupont, Hon. FAIA), Hon. FAIA 및 88명의 신입 추대회원에게 수여가 있었다.
추대회원(Fellow)은 AIA의 최고 영예 중 하나로 AIA 회원들의 탁월한 작업과 공헌을 인정하며 동료 심사위원단의 엄격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다. 명예 추대회원(AIA Honorary Fellowship) 프로그램은 국제적 수준에서 건축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업적과 공헌을 인정한 국제 건축사를 기린다.
추대회원 메달 수여식에 이어 이튿날인 6월 25일 저녁엔 이들을 축하하는 대규모 저녁 만찬이 쉐라톤 호텔의 연회장에서 600여 명이 참석하여 개최되었다.
전날 메달 수여를 받은 두 명의 명예 추대회원 및 신규 추대회원 88명을 한 명, 한 명 호명을 하며 어떤 분야로 추대되었는지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박수를 쳤다. 전 미국건축사협회 회원 중 3%이내에 해당되는 추대회원의 추천대상은 여섯 개 분야로 나눠지며 소속건축사회 (AIA Chapter)로부터 추천되고 앞서 언급한 심사위원회에서 엄선한다
추천 대상의 여섯 분야는 다음과 같다.

① 설계, 도시설계 또는 보존(Design, urban design, or preservation): 직업의 미학적, 과학적, 실용적인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실무관리, 기술실무(Practice Management, or Practice Technical Advancement): 실무기준의 발전을 통해 계획 및 건축,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③ 협회 또는 관련단체를 이끌어 감(Led the Institute, or a related organization): 건설산업과 건축이라는 직업을 조정하기 위해
④ 공공서비스, 정부, 산업 또는 조직(Public service, government, industry, or organization): 개선된 환경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보장하기 위해
⑤ 대체경력, 건설환경과 직접 관련이 없는 조직에서의 자원활동 또는 봉사(Alternative career, volunteer work with organizations not directly connected with the built environment, or service to society): 증가하는 공공 서비스의 직업을 만들기 위해
⑥ 교육, 연구, 저술(Education, Research, Literature): 건축 교육 및 실무수련의 표준을 발전시켜 계획 및 건축,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건축사등록원(NCARB) 관계자들과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조인숙 국제위원회 자문위원,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 NCARB 회의 (National Council of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

엑스포장 내 NCARB부스에서 NCARB와 우리측 교육원/등록원/국제위원회/APEC 등록건축사 위원회와 간담회를 갖고 상호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NCARB측에서는 베일리스 워드(Bayliss Ward)회장, 마이클 암스트롱(Michael J. Armstrong) CEO, NCARB 국제팀이 현재 NCARB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설명하였고, 우리측 교육원 등록원에서 질의한 ① 건축사 실무수련, 경력관리, 계속교육, ② 컴퓨터 기반의 건축사자격시험 등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해주었다. 미국의 52개 주 건축사 제도의 특수성과 시험관리체계의 확실성을 담보로 그들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우리와의 계속된 교류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의 등록시스템과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회의 장면

NCARB의 설명은 주마다 요구조건이 조금식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가 NAAB(National Architectural Accrediting Board)에서 인증한 미국내 24개 대학에서 제공하는 28개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6개 과목 96개 분류 총 3,740시간의 실무경험시간(Practice Management, Project Management, Programming & Analysis, Project Planning & Design, Project Development & Documentation, Construction & Evaluation) 후에 시험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해외 실무자는 담당 건축사가 AIA 멤버일 경우 100% 인정, 아닐 경우는 실무시간 50%만 인정된다. 그리고 건축사 시험은 실무경험의 6개 카테고리와 같은 6개 과목이고, 5년동안 6개 과목 모두 합격해야 자격증이 주어진다고 한다.
컴퓨터 기반의 시험은 1997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97년 ARE 3.0을 시작으로 현재 ARE 5.0으로 25년동안 개량된 형태의 시험이다. 시험 시간도 길고, 시험과목과 문장도 많아 건축의 전반의 전체적인 이해도가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항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드로잉에 대한영역은 3,740시간의 실무 시간에 습득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험에서는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출제한다.
한편 APEC 등록건축사 위원회(APEC 건축사 프로젝트 한국위원회, APEC Architect Project Monitoring Committee, Korea: 위원장 조인숙)는 2025년 APEC 정상회담 한국개최와 관련하여 2024-2025년에 예정된 미국과 2026-2027년에 예정된 한국이 이사국을 서로 맞바꾸어 맡아서 APEC 건축사 중앙이사회(APEC Architect Central Council Meeting)를 2025년에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협의를 했다(주기: 결과적으로는 다각적 검토 하에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맞바꾸는데 동의한다고 2022년 8월 16일자로 NCARB로부터 서신이 왔다).

 

■ 글을 마치며

이번 A’22 컨퍼런스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국제적 교류가 다시 재개되는 그 완충적인 상황에서 개최된 뜻깊은 대회였다. 3년여 간의 공백이 짧지 않지만, 다시 재개하는 국제교류의 현장에서는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각국의 건축사들과 단체들이 진행해 왔던 영상회의는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국제교류의 새로운 방식을 훈련하게 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던 것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국경이 열리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구촌에 있어서 세계의 관심은 온통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비롯하여 2015년 UN과 UIA가 주창하는 17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맞춰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 차원에서의 리더십과 개별이슈 차원에서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건축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이끌어 나가야 할 우리 협회로서는 이 세계적인 이슈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속가능한 목표를 향해 진전된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세부적인 실천과제들을 수립하고 이를 단계별로 성취해 나가며 그 성과를 국내의 여러 분야를 비롯해 국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우리 건축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글. 오동희·이건섭·도규태·조인숙 Oh, Donghee•Rhie, Gibson•Do, Kyutae•Cho, In-Souk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오동희 (주)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건축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에서 건축계획 및 설계를 전공하였으며, 1984년 간삼건축에 참여하여 현재 (주)간삼 대표이사 및 (주)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 및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장, FIKA 산하 한국 UIA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odh@gansam.com

 

 

 

이건섭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건축사

연세대학교 건축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삼성미술관,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 교환교수로 미국 Virginia Tech에서 건축역사 및 이론을 가르쳤다. 현재 삼우설계에 근무 중이며, 글로벌 프로젝트 다수를 담당해왔다. 저서로 포털사이트 Naver에서 오늘의 책으로 선정된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있다.
gibson.rhie@samoo.com

 

 

 

도규태 건축사·TOD 건축사사무소

경희대학교, 영국 AA school 과 Bartlett(UCL)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KPF·삼우설계에서 실무경험 뒤 2011년 TOD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국제위원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공법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축의 아름다운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며 ‘Timeless Design’을 모토로 건축에 임하고 있다.
dokyutae@naver.com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 독일 뮌헨대학교(LMU) 및 뮌헨공대(TUM) 수학(교환장학생)
· UIA WP Heritage & Cultural Identity 위원(International Co-director, 2014-2021)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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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망고, 탱고, 알로하네 부부와 고양이, 강아지가 함께 사는 집

Architecture Criticism _ Mango, Tango, Alohane
A house where a couple live together with cats and a dog

묘한 생김새를 가진 집
경사진 도로를 따라 펼쳐진 단독 주택들을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길의 끝자락에 오묘한 형태를 가진 집이 나타난다. 지붕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 주택들이 백색의 외단열 시스템이나 벽돌 마감인 것과는 다르게 은색의 골강판이 집의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부의 적삼목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집의 형태는 마치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산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고 하는데,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소박하지만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주 부부를 닮아있다.

둥근 배려가 만든 공간
묘각형 주택의 평면은 오각형이지만 모난 구석이 없다. 직각을 이루는 한쪽 모서리를 제외하고 오각형의 둔각 모서리를 내부에서 곡선으로 정리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내부에 들어왔을 때 처음 시선이 닿는 계단의 휘어진 벽면이 자연스럽게 2층의 라운드 처리된 보이드로까지 이어지며 계단을 이루는 벽 자체가 하나의 큰 미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선 벽뿐만 아니라 주방 중앙에 배치한 아일랜드 싱크도 벽처럼 휘어져 있어 유연함을 더한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묘각형 주택에는 최소의 필요 공간을 제외하고는 벽으로 구획된 공간이 없다. 실제로 문이 달린 방은 2층 하나뿐이고 나머지 기능은 층별로 구분되어 있다. 한정된 면적에 개방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나에게는 건축주와 건축사의 작은 배려가 깃든 것이라 느껴졌다. 집의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 이동하고 숨기도 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벽을 나누는 일을 피하고, 문이 필요한 곳의 아래쪽에는 펫 도어를 설치하여 닫혀 있지만 언제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묘각형주택> © 노경

햇살이 머물다 가는 집
자연스럽게 휘어지거나 꺾이면서 유연한 평면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본 묘각형 주택의 매스는 오히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2, 3층의 골강판 부분에는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을 1~2개만 두어 재료가 가진 요철과 위아래로 이어지는 선적인 느낌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채광이 유리한 방향에 창이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집의 기능이 층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이 집의 평면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배치로 보인다. 또한 위로 좁아진 사선형 볼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두꺼워진 벽이 깊이감을 만들며 북측의 안산의 풍광이 한눈에 담긴다.
묘각형 주택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으라면 1층의 간 살창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창을 열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오는 마당의 풍경이다. 해가 좋은 날 마당 앞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창문 너머의 햇살은 곡선의 벽을 타고 더욱 깊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마당의 풍경을 넓게 안아주는 듯하다.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데는 건축주 부부의 의기투합도 한몫 한다. 마당은 조경가인 아내의 실험대이자 캔버스로서 식물들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계절을 만끽하기도 한다. 또한 목공이 취미인 남편은 집안에 필요한 가구나 소품들을 직접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집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창작물보다 집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고양이의 모닝 루틴
하루 동안 묘각형 주택에 머물렀는데 고양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낯선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 둘째 탱고는 특히 더욱 그랬다. 첫째 망고는 경계하면서도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 평소의 본인으로 돌아가 테이블 위를 어슬렁거리거나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다음날이 되어 탱고의 재미있는 모닝 루틴을 보게 되었는데, 건축주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1층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어느새 탱고가 계단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있다. 그러고는 계단 옆에 있는 화분으로 이동해 풀을 뜯어먹는다. 탱고는 채식하는 고양이인가? 조용한 공간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새로운 가족과 공간 변화
건축은 사용자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이용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묘각형 주택에도(예측했거나 하지 못했던) 약간의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가족으로 잔망스러운 강아지 알로하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한곳에 머물며 숨거나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와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강아지가 만난 묘각형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궁금해진다. 고양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엄청 큰 이 캣타워가 너무 좋아요.’
내가 만난 건축주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듯하다. 그만큼 지금 공간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들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박지현 건축사가 얼마나 촘촘하게 건축주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설계를 진행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비유에스의 작품에는 늘 평범하지 않은 소박함이 담겨있다. 지금도 개인의, 다수를 위한 공간을 그리고 있을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 황희정 Hwang, Heejung 야무진 건축사사무소

황희정 건축사·야무진 건축사사무소

영남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환경설계를 공부했다. 건축사사무소 삼간일목을 거쳐 2019년 야무진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였다. 2020년에는 도시 전문 매거진 요즘도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건축과 도시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의 꿈담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thumd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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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코믹북

Architecture Comic Book

글. 김동희 Kim, Donghee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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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_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숨겨진 소나무, ‘송은(松隱)’

Special talk
The hidden pine tree in the middle of Gangnam, ‘Songeun’

이은석 교수 · 기현철 NID 본부장 · 피에르 드 뫼롱
Lee, Eunseok · Ki, Hyunchul · Pierre de Meuron
경희대학교 ·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HdM

ST송은빌딩 © 정지현

6월 14일 화요일 오후에서 저녁 사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9층 김정철 홀에서는 서울과 스위스를 잇는 특별한 온라인 화상 대담이 열렸다. 한국에 세워진 HdM의 첫 건축물 ‘ST송은빌딩’을 주제로 서울에서는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 스위스에서는 HdM을 이끄는 듀오 중 한 명인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가 자리해 이번 프로젝트 준비 초기에 고려했던 맥락부터 건축물의 예술성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에서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를 기다리던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부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은 마침내 화면 속에 드 뫼롱 건축사가 나타나자 인사를 건넸다.

“잘 들리시나요?”

“예 잘 들립니다.”

서울의 늦은 오후와 바젤의 오전 10시가 만났다. 대담이 시작됐다. 대담은 이은석 교수가 질문을 하면 드 뫼롱 건축사가 대답하고, HdM의 한국 측 파트너였던 정림건축의 기현철 본부장이 필요할 때마다 첨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 ▲외형과 볼륨 ▲재료의 사용 ▲예술적 효용성에 대해 대담이 진행됐다. 대담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6월 14일 오후 정림건축 9층 김정철 홀에서는 ST 송은빌딩을 주제로 한국과 스위스를 화상으로 잇는 특별대담이 열렸다.

반세기 전에는 없던 입지 강남…
도심이라는 맥락에서 강력한 존재성 갖길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하 이)_ 먼저 이번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유럽의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중에는 미국과 홍콩에 지사를 두고 세계 전역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HdM도 그러한 사무소 중에 하나인데요. ‘ST송은빌딩’은 한국에 세워지는 HdM의 첫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건축사가 새로 접하는 지역의 건축물을 맡게 되면 그 지역의 특성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접근하는 HdM 만의 방식은 어떠했고, 어떤 인연으로 송은문화재단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이하 드 뫼롱)_ 우선 확실히 할 것이, ‘ST송은빌딩(이하 송은빌딩)’이 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아니고 첫 방문도 아닙니다. 다만 이전에 서울에서 계획 중이었던 프로젝트들이 실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송은빌딩은 우리가 대한민국 서울로 복귀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때, 설계 단계에서 그 작품에 대한 인식·이해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HdM에서 내부적으로 조사를 먼저 진행하는데 사이트에 대한 데이터나 기능적인 법과 관련된 부분, 또는 건축물로서 도시계획의 일환으로만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아우르는 마음, 심리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송은’에서는 정치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극동지역에서 미·중·일·러 등 거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중견국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관심을 갖고 바라봤는데요. 한국은 어떻게 보면 스위스와도 비슷한 입지를 가진 국가입니다.
경제 관련해서도 관심을 갖고 조사했는데, 한국은 많은 대기업들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매우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입니다. 송은빌딩이 위치한 강남지역은 5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개발되지도 않았던 지역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역학관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_ 건축물이 들어선 강남지역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는데….

드 뫼롱_ 그렇습니다. 서울과도 같은 극동아시아 대도시들을 살펴볼 때 건물 교체 주기가 빠른 지역이며, 건축물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송은빌딩처럼) 공적인 기능을 띄는 건물은 수명이 더 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상가들보다 지속가능성, 연속성이 가능하기에 수명이 더 길 수 있습니다.

_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서 ‘송은’의 기업 이미지 또는 맥락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드 뫼롱_ 건축주 측도, 우리 HdM도 이 건축물의 표현이 강력하길 원했습니다. 문화적 기능뿐 아니라 도심이라는 맥락 안에서 강한 존재성과 입지를 갖길 원했던 것이지요.
우선 도시적 맥락은 매우 일반화돼 있었습니다. 도산대로 주변 건축물은 대체적으로 기능적이고 유리와 철근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파리나 비엔나의 큰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균일성은 없었지요. 또 주변 건축물의 높이도 역사도 소재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송은빌딩이 들어설 입지는 도로 언덕의 가장 높은 위치였고, 빌딩의 높이와 관련된 법적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건축적인 표현이 강한 설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가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에게 ST송은빌딩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 기반
이번에도 파트너 정림건축 도움으로 많은 난관 극복

_ 한국 측 파트너 정림건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림건축이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드 뫼롱_ 정림건축은 건축주의 선택으로 저희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위스가 아닌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항상 그곳 파트너사와 협력합니다. 해당 지역의 조건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의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하 기)_ 정림건축의 역할은 기술적인 문제와 법규의 제한에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법규와 심의 인허가 절차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결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일조사선 제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적정 층고를 찾아야 했고, 천정 속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소방, 전기, 기계설비 검토를 기획 단계부터 정확히 진행했습니다. 구조에서는 삼각형의 형태가 만드는 경사진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경사진 기둥, 층고 확보를 위한 포스트텐션보, 지상 1층의 개방감을 위해 기둥을 최소화하는 방법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유리창을 설치하는 방법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저희 소속 디자이너가 HdM에 직접 파견돼 실시간으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드 뫼롱_ 설계에 들어가면서 우선 법적인 제한을 이해해야 했고, 되도록 빨리 건축물이 완성되길 바라는 건축주의 요구도 맞춰야 했습니다, 거기에 초기설계 볼륨이 현행법과 충돌해 현실적으로는 시행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기 본부장이 말씀하신 대로 현지 파트너사 정림건축의 도움이 이번 프로젝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물 형태의 유래에 대해 말하자면 각진 형태, 즉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규정된 각도입니다(prescribed profile). 이 프로젝트를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외부 볼륨의 최대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구조의 최소화, 실제 활용가능한 면적의 극대화 그리고 이 전체의 최적화입니다.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넓은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동시에 지하로 내려가는 램프의 천장이 됩니다. 기 본부장께서 언급하신 대로 제한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최대화·최적화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의 질문에 대답하는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가 도심 속 장소 특징 드러내
공적 성격 갖는 문화기관 설계에도 중요한 요소

_ 통상적으로 HdM 설계는 형태주의(Formalism)적 방식으로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직육면체형 볼륨 사용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첨두형 또는 고딕 형태의 날카롭고 뾰족한 삼각 형태를 선택했는데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남 건물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적인 전략이었는지요?

드 뫼롱_ 송은빌딩의 최종 형태는 좀 전에 언급한 최적화와 최대화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강제로 주어진 조건의 결과물입니다. 주어진 가상의 선을 통해 물리적인 형태가 만들어진 셈이지요.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변에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특징과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점과 강력한 표현을 통해 재현된 아이코닉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볼륨입니다.

_ 측면에서 보았을 때 뾰쪽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막혀 있는 솔리드 한 볼륨이며 최소한의 창문만 있습니다. 건축주의 요청이었는지 아니면 HdM 고유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주변의 건물들과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세 가지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아이코닉 한 상징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손으로 건물의 특징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야말로 도심 속 특정 장소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공적인 성격을 띤 문화 기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_ 이러한 건축사의 의도를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최적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사선제한이 있기 때문에 각층을 서비스하는 코어가 가장 높은 쪽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로 쪽이었습니다. 코어가 대로 쪽으로 있으면 창문을 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렇기에 매우 솔리드하고 가장 작은 창문을 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기능적인 해결 방법과 건축사의 의도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드 뫼롱_ 방금 설명한 기술적인 측면이 있고 또 기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건물 아래쪽에는 전시실이 있는데 자연광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창문이나 개구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또한 주변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은 전부 유리와 철근을 자재로 사용하고 반복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로 모습을 보면 같은 소재, 반복적인 기하학적 파사드의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주변 건물들의 유리, 철근과 대비해 미네랄 월의 외관을 선택했으며, 대로 쪽인 남쪽으로는 오프닝을 최소화시켰습니다. 건물의 가장 높은 쪽인 대로변에 건물에 필요하지만 활용가능한 공간이 아닌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이 위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ST송은빌딩 © 심기섭

여러 고려 끝에 노출콘크리트로 파사드 만들어
중요한 건 한국인들이 건축물을 실제 경험하며 만들어갈 이야기

_ 젊은 건축사들은 HdM의 파사드, 즉 외피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HdM만의 시도가 이뤄졌는지요?

드 뫼롱_ 사전에 다양한 자재를 고려했습니다. 나무, 강철, 금속, 유리 등도 고려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콘크리트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지지하는 구조가 건물 밖에 위치해 있는 셈입니다. 지지하는 구조가 노출되어 있고 그게 바로 콘크리트입니다. 단열재는 건물 안에 있습니다.
코어 파트가 외부에 있고 노출 콘크리트인데, 그렇다면 그 표면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노출 콘크리트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콘크리트를 부을 때 몰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몰드는 목재로 되어 있거나 금속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목재 몰드를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따뜻한 느낌을 주며 자연친화적입니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요소가 건축적 표현에 담겨있습니다.

_ 파사드 이미지의 이면에는 방금 말한 소나무와도 같이 어떤 상징적인 의도를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외벽의 노출콘크리트 파사드 이미지가 현대 건축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가치를 드러내기를 기대하는지, 또 어떤 심오한 상징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기대(to wish)라는 단어 선택이 매우 적절해요. 주장(to pretend)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축사는 이렇다 저렇다 또는 이렇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사회적인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회 또는 일부 집단이 건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건물, 한 건축물의 최고의 운명은 하나의 문화, 사회, 집단이 그 건물은 수용하는 것, 즉 아름답게 여기거나 관심을 갖는 것, 심미적으로 끌린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만의 문화 코드가 어떻게 이 건축물을 수용하고 인식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림건축에서 또 서울 주민들이, 한국 사람들이 이 건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만들어 갈 이야기가 더 중요합니다.

_ 송은문화재단의 뜻을 불어로 번역할 때 ‘pin caché(숨은 소나무)’라고 했는데 한자 은(隱)을 살펴보면 은둔자, ‘ermite’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을 숨어있는 소나무와 같이 후원한다는 것이 송은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HdM에게도 전달되었고, HdM은 이러한 송은의 철학을 아주 적절하게 송판무늬 거푸집을 사용해 송은문화재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을 디자인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드 뫼롱_ 건축은 연결을 돕습니다. 건축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또 건축이 교류를 도모하고 소통의 장을 연다고도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 생활하는 주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해주지요. 예술과 건축은 화합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도심 속 현실,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와도 연결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물리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정신세계와 연결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면, 매우 대단한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의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그리고 하나의 현실 속 또는 하나의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축물을 제안하거나 실현시킨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성공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있었을 때 송은빌딩의 파사드를 직접 만져보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특이해 보여서 이해하기 위해 만져본 것입니다. 또한 입구 현관(porch)이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느낌을 주고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 HdM과 정림건축의 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_ 한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역의 특성과 현대의 미술관이라는 시대성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이 미술관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는지요?

드 뫼롱_ 2021년 가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건물 오프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직접 보니 감동받았고, 건축물 자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개관 후 관람객들이 구경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물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건축물과 전시된 설치물들이 예술적인 생각과 사상 그리고 상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류와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문화를 넘어 사회적 교류의 장, 만남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서정필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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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현대적 기념성과 은둔의 상징

Architecture Criticism
A symbol of modern commemoration and hermitage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이하 HdM) 설계의 송은(SONGEUN)에서는 흔히 건축의 전근대적 관심사라 불릴 만한 건축의 ‘기념성’과 표면에서의 ‘상징’이라는 두 테마가 뚜렷이 나타난다. 여기서의 기념성은 도시 속에서 외향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송은문화재단의 이미지 전략으로써 고전적 건축 수법을 현대화한 것이며, 독특한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징의 기법은 현대 한국 사회와 관계하고 소통하려는 건축 프로그램의 내면적 의지를 표현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지정학적으로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라는 대국들의 틈새에 놓인 스위스의 산업도시 취리히와 바젤에서 성장한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 b.1950)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b.1950)은 유럽과 미국에서 풍미하던 포스트모던 건축의 시대인 1960~1970년대에 그들의 건축 철학을 형성하는 청년기를 보냈다. 알도 로시(Aldo Rossi, b. 1931)의 『도시의 건축(l’Architettura della Citta)』과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b. 1925)의 『건축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에서 주장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그들의 건축 개념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알도 로시는 서양 전통도시 속에서 계승된 유형학과 기념성의 가치를 건축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내고 있었고, 로버트 벤츄리와 같은 미국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근대 건축이 지닌 차가움과 추상적 High-Arts의 무료함에 반기를 들며, 오히려 건축에서의 상징과 유희(Symbol and Fun) 그리고 신체의 기억 등을 통해 지각되는 ‘장소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 건축적 트렌드 속에서, 진보적인 아키텍트 그룹 HdM은 모더니즘 건축에 대안을 제시하고 개선하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한계로부터도 벗어나 ‘순수한 재료의 인지’를 모색하는 현상학(現象學)과 ‘자연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관계의 복합성’ 그리고 숭고한 의고성(擬古性)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기념성(記念性)으로 오늘날의 건축 지경을 넓히고 있다.

 

<ST송은빌딩> 남동측 전경 © 심기섭

기념성의 현대적 복원
19세기 비엔나에서 장식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아돌프 로스(Adolf Loos, b.1870)의 철학과 20세기 초,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b. 1872)을 비롯한 몇몇 네덜란드인들이 주도한 최소주의, 데 스틸(De Stijl)의 추상성은 대다수의 건축사들이 플라토닉한 기본 형상에만 천착하도록 유도하였다. 초기 HdM의 작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현대건축이론가인 쟈크 뤼캉(Jacques Lucan, b. 1947)은 이들의 최근 작품에서 나타나는 강한 수직적 볼륨을 두고서 “새로운 의고주의(un nouvel archaïsme)”1, 즉 고풍스런 볼륨을 채택하려는 경향성이라고 평가한다. 초기 작업에서 한동안 유지했던 미니멀한 직육면체 상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예민하게 자신들이 도그마로 삼았던 초기의 작업 태도를 털어내고, 이제는 타문화권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업적 프로그램 홍보에 더없이 효과적인 도시 속의 기념적 작업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도쿄의 프라다 플래그십 빌딩(2000-2003)을 준공하면서 HdM이 “절대적으로 흥미 없는 도시적 맥락 속에서, 즉 제로에서 우리는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2라고 말한 것을 보면 존재감을 지니고 드러나는 기념적 작업으로 HdM이 상업성에 적응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새둥지’로 불리는 북경의 올림픽 주경기장(2002-2007)에서도 그러한 존재감이 강하게 확인되듯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제안한 그들의 건축이 대부분이 의고적이고 기념적이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하는 송은에서 HdM의 작업이 고딕 형상의 의고적인 기념성을 지향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HdM은 초기에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칭하며 상징주의를 회피하는 건축, 즉 “비재현적 건축(non representative)”을 추구하려 했고, 미니멀한 상자 구축을 지향하였는데도 그들 작업 속에 로버트 벤츄리의 상업적 전략인 “장식된 창고(decoration shed)”가 쉽게 환기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하지만 주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건축물의 존재감은 국제주의 양식의 한계인 익명성의 대안으로서 기념성이 제안되었고, 건축이 거대한 대지와 무미건조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강력한 지표처럼 인식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미니멀 아티스트 도날드 저드(Donald Judd, b. 1928)의 단순 명료한 오브제들이나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b. 1939) 또는 리차드 롱(Richard Long, b. 1945) 의 대지예술이 지향하는 위상학적(topologique)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HdM이 설계하고 그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한 ‘시그널 박스’는 도시 속의 황량한 대지인, 텅 빈 바젤 기차역 선로 위에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는 현대적 오브제이다.
이처럼, 현대도시 서울의 강남도 국제주의 양식의 직육면체 유리 상자들이 도열하고 있는 획일화된 도시이며, 이 무표정한 강남의 대로변에서 송은은 단순한 볼륨의 독특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다. 중세 고딕 성당에서 추구하던 기념성이 하늘에 닻을 거는 수직적 건축 행위를 통해서 낮은 곳의 인간과 높은 하늘을 관계 지으려던 경건한 종교성의 표현이었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기념성은 경제적이고도 실용적인 세속적 전략의 산물이다. 삼각형의 첨두 볼륨은 이 지역 사선제한의 법규적 한계를 풀어내어 최대의 용적을 끌어내려는 경제성에서 비롯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세 도시 속에서 드러난 고딕 성당과 유사한 의고성을 지니며 뚜렷한 실용적 기념성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정면 벽의 대칭성은 코어가 단면적으로 가장 높은 쪽에 위치해야 하는 기능적인 요청에 그대로 순응한 것이지만, 대부분 강남지역의 빌딩들이 각자 편한 대로의 입면을 표현하는 것에 반하여, 송은은 불투명(solid)하고 육중하게 도시에 박히고, 강한 대칭(symmetry)의 미학으로 정면을 구성하여 서울 강남이라는 현대도시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으로 드러난다.

 

내재된 자연의 상징과 소통하는 감각
헤르조그는 자신의 글 ‘자연의 숨겨진 기하학(The Hidden Geometry of Nature)’에서 자신들의 건축적 태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양한 역사적 형태와 혼종 문화가 조합하는 가벼운 절충의 복합성이 그들의 새 관심사라기보다는, 진지하게 “자연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체계가 지닌 복합성(Complexity)”3을 체감하고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송은의 외부 마감 작업에서, 액체화된 석재의 성질을 지닌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소나무란 재료의 특징을 촉촉한 표면에 눌러 전사하여 경화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하는 현상을 흔적으로 남겼다. 이처럼 “오브제는 스스로 언어를 제공한다. 그리고 오브제의 내재적 형성 재료들과 그것들의 구현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재료가 건축의 그대로의 지표(signifiant brut)로 부를 수 있게 정립되거나 재정립된다.”4 송은을 방문하는 누구나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으나, 송은(松隱), 마치 은둔하는 소나무와 같이, 무명 예술가 발굴 사업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려고 한 ‘송은문화재단’의 경영 철학을 HdM은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라는 한국의 지역 파트너 건축사를 통해서 잘 전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들의 작업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던 예술가들의 방식을 거부해 왔었다. 상징적 측면은 전혀 우리 작업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5라며, 비록 취리히 건축과 학생 시절 상징의 건축사 알도 로시가 그들에게 가르친 교육적 영향이 중요했었고, 그로부터 건축 보는 방법을 전수했음을 인정하더라도, 건축이 도시와 관계 맺는 부분에 대해서는 로시의 방식들을 거부했다. 이는 그들이 알도 로시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처럼, 건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은에서는 내재된 소나무의 이미지를 외향적인 건축물의 표피 위에 중의적인 상징의 언어로써 재정립하려 했다. 이것은 결국 동양에서 고상하게 여기며 계승해 오는 겸양과 은둔의 철학, 즉 송은문화재단의 사회환원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건축사들의 의도가 이 건축 작업의 소나무 결 이미지를 통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HdM은 모든 것을 추상화하고 비물질화하는 모더니즘의 이상적 추상화 표현 방식으로부터도 거리를 둘뿐 아니라, 풍토적인 컬러와 역사적 장소의 얄팍한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구상화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가벼운 재료 인식에서도 벗어나, 더 다채롭고도 깊이 있게 재료의 특성을 관찰하고 발굴하여 새롭게 그들의 건축에 부단히 적용하려 한다. 그들과 가까이 교류하는 건축사 아네트 기공(Annette Gigon, b. 1959)의 주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어휘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물들(choses)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사물, 재료, 실체들의 직시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관찰하고 만지고 비교하고 적응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 속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수법이다.”6 라며 자연과 더불어 따스한 자연 현상을 드러내는 참신한 재료를 찾아 지각하는 현상학적 건축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건축물은 물리적인 오브제이지만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또한 보이거나 아니 보이는 것이라도 주변과 부단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7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감각만이 어떤 감각보다도 우선하여 건축 예술의 영역 속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HdM은 송은의 독특한 소나무 거푸집 문양 외피를 제안하면서 시각적 감각을 넘어, 호기심을 동반한 촉각의 경험으로 심리적인 온기를 강화할 뿐 아니라, 오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건축이 사회적으로 주변 도시와 더욱 다양한 감각으로 접촉하게 한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송은 건축과 프로그램에 내재된 문화 예술 활동의 기능에도 부합하는 효과이다.

 

1.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88쪽
2. Willam J.R.Curtis, 「The nature of artifice, a conversation with Jacques Herzog」, “El Croquis” no 109-110. (Herzog & de Meuron, 1998-2002), 27쪽
3. Jacques Herzog, 「The Hidden Geometry of Nature」 (1988), in Wilfried Wang, “Herzog & de Meuron”, Zurich, 1992, 145쪽
4.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20쪽
5. Ibidem. 124쪽
6. Annette Gigon & Mike Guyer, 「The Grammar of Materials」, Mattias Bram과의 대화, “Daidalos”, 1995년 8월호, 「Magic of Materials II」, 53쪽
7. Eunseok Lee & Hyunchul Ki, “건축사” 2022년 7월호, 「A conversation with Pierre de Meuron」

 

글. 이은석 Lee, Eunseok 경희대학교 교수

이은석 경희대학교 교수

1987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1996년 파리 국립 제1대학 판테옹 소르본느를 졸업하고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국립 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프랑스 정부공인건축사(D.P.L.G.)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대표작 중 ‘손양원 기념관’은 2019년 Architecture MasterPrize(AMP)를 수상하였으며, ‘새문안교회’는 2020년 AMP, Architizer A+Award를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2021년 국립한국문학관 국제설계공모와 2022년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국제설계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한 바 있다.
komalee@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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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건축인의 생로병사

The somewhat exciting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of architects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신 한 건축사분의 모바일 부고장이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그분과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는 없다. 다만 비슷한 연배로 추측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부고는 대부분 우리의 조부모님 또는 부모님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부고에 대해 그리 큰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 부고장이 눈이 들어온 것은 특히 건축사 당사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분의 부고가 나에게 마음의 충격으로 남았던 것은 그분을 대신해 그의 가족이 그분의 건축사사무소와 작업하던 설계일, 계약관계 등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의 막막함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무게도 힘든데 그 가족을 오롯이 현실의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궁지로 모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저림이 있다. 이건 건축사라는 직업군의 감정이입일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내 사무소를 정리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개설하고 1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세월의 짐들이 많다. 자료 황화일과 도면이 한가득이고, 나조차도 어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사하는 것과 정리하여 없애는 것은 참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제일 편한 것은 다 버리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걸어온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정리가 쉽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더욱 막막한 생각이 든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야 눈 딱 감고 버린다 치고, 우리의 도면과 데이터들은 어떻게 할까. 건축주에게 나 이제 그만두게 되어 자료를 줄 테니 잘 간직해라, 이러면 되나? 아님 잠적 모르쇠로 하면 될까?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할 때, 인생 스케줄에 대한 생각보다 건축사를 취득했으니 사무소 개소는 한번 해 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독립을 하면 좀 더 무한정으로 내 맘대로 자유로운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적 생각을 했다. 좀 무모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무모한 생각이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재미있게 끌고 가기는 한다. 하지만 시작과 이후의 여정과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로소, 건축과 같이 가는 건축인의 생로병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독립한 건축사들의 평균적 시간으로 보면 건축과를 졸업하고 10년(30대)은 건축실무를 익히고 나머지 20년(40~50대)을 독립해서 운영한다. 사실 큰 사무소를 제외하고 열정적으로 건축설계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5년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한 5년 정도는 사무소 일이 점차 줄다가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럼 대략 60세가 넘을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60세의 정년이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 본인이 점점 젊어지는 건축주를 상대하고 새로운 행정처리를 신세대(젊은 건축사)처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직원이 많거나 큰 법인이라면 이런 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독립해서 개인 사업자로 운영하는 건축사가 이 모든 과정을 포괄적 이해를 하며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찌했든 60세 전후로 우리의 건축설계는 대략 정리될 거라 생각한다. 한 번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축사분들도, 시작하는 건축사분들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모두 겪어내야 할 부분이니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무관심 말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같이 준비하고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본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공간을 만들어 주듯이 우리의 마지막쯤의 공간도 함께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는 의미이다.

사실 글 요청을 받고 건축 인생을 되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려고 수락을 했다. 한 번은 건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는 요량이었고, 후배 건축사에게 10년이 지난 어느 건축사의,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를 정리해서 대방출하고 그들에게 용기도 주는 말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앞으로의 모습이 고민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직원과의 대화에서 건축사협회 경력관리를 하러 갔었는데 폐업신고를 하러 오신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앞의 건축사분의 부고와 같이 오버랩 되었다.

건축사협회에 가서 사무소 개설신고를 했던 기억은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 개설신고를 했을 것이다. 또한 나도 언젠가 그분처럼 사무소 폐업신고를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잠시 상상해 보았을 때 폐업신고는 맘이 편치 않았다. 협회에 들어가는 발걸음조차 별로일 것 같고, 개설신고 때와는 다른 쭈뼛거림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은 뭔지 모르게 찜찜하다.

“건축사사무소 개설하러 왔습니다” VS “건축사사무소 폐업하러 왔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폐업을 하는 것은 꽤나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왠지 슬퍼지는 것 같다. 그동안 수고했음에 축하받을 일인데, 내가 기획하여 스스로 상을 줄 수도 없고… 혼자서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공간을 만들고 그 감성을 논리로 풀어서 형상화하는 대단한 일을 한 건축사다. 이런 건축사가 마지막에 좀 멋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수고한 건축사가 축하받았으면 좋겠고, 그 멋진 일을 건축사협회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건축사협회는 건축사를 교육하고 서류적인 경력을 관리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감성을 채워주는 장소였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건축사협회 차원에서 폐업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건축사협회는 폐업 시 수고한 회원이 아름다운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축사의 위상을 높여 주었으면 한다. 일차적으로는 폐업 서류목록표를 제공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정신적 물리적 관계적 도움까지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무소가 폐업하더라도 건축사협회에 이관된 폐업사무소의 설계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수 있도록 하면 개인 건축사가 걱정하고 찜찜해하는 부분을 일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사업체처럼 사무소를 깔끔히 정리해 주거나, 건축사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은퇴할 수 있도록 감사패를 만들어 축하해 주는 등 감정 프로그램 또한 제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특별히 앞의 사건처럼 건축사가 본인의 업 중 사망한 경우가 생기면 가족들을 도와 사무소를 정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가족들의 막막함에 의지가 되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략 30년 동안 설계를 하고 마무리한 건축사들의 노하우가 연계되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봉사도 좋고 새로운 일자리도 좋다. 건축사협회에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다만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 것과 아예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라는 점에 있어서, 있는 것이 좋겠다는 동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글을 맺으려 하니 후배 건축사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도움이 되는 말들을 해주고 싶었는데 결국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앞으로 닥칠 나의 고민에 대한 생각으로 걱정과 넋두리를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후배 건축사가 선배 건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누구보다도 자기 일처럼 나서 준다. 우리 건축인들은 고립적으로 일을 하여 기본성향들이 독립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고민에 대해 해결해 주려는 이타적인 마음들이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 다들 열심히 노력해 줄 것이다. 그러니 밥을 사 달라는 정도로만 다가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 민경원 Min, Kyungwon 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

민경원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

2011년 11월 어느날, 서초구에 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을 개소하여 작은 규모의 근생건물과 주거를 위주로 설계를 하고 있다. 다음 프로젝트로는 항상 건축사의 자가 건물짓기를 준비하고 있다.
raumplan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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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건축여행 ③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와 보부상의 역할

A living and Brenthing Tourism for Architecture ③
Concerning Yedeok Sangmusa, a guild of back peddlers who were active in Yesan and Deoksan and their roles

1.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의 유래

유래 ①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조직되어 전해 내려온 예산, 덕산 지방의 보부상을 관리하던 정부관서이다. 이성계가 황해도 만호(萬戶)로 있을 때 여진족(女眞族)과 싸우다가 유실에 두부(頭部)를 맞아 추병(追兵)에 쫓기고 있을 때, 행상인 백달원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했다. 이로 인한 인연으로 이성계가 즉위(卽位)한 후에 은혜를 갚는 뜻에서 팔도(八道)의 행상인을 구제하기 위하여 전국 각주군에 임방(任房)을 설치하고 침식, 질병 치료, 장례 등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전매 특권을 부여하였다고 한다.

 

유래 ②

옹기장사1903)

負(부)상과 褓(보)상

이성계가 함경도의 행상들을 이용하여 신왕조를 건설하였으며, 즉위한 후 무학대사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안변(安邊)에 석왕사(釋王寺)를 증축할 때 백달원(白達元)과 동지 80인이 양미(糧米)와 건자재(建資財)를 운반하여 삼척군에 있는 오백라한(五百羅漢)의 불채를 이안한 공로로 지금의 개성군(發佳寺)에 본거지인 임방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어염(魚鹽), 목물(木物), 토기(土器), 수철(水鐵) 등 다섯 가지 물품에 대한 독점권을 주었으며, 옥도장을 하사하였다. 백달원은 태조에 대한 충성심으로 관의 보호를 받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하여 관변단체로 살아남게 된다.

 

유래 ③
보부상들이 공헌한 사실로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의 권율장군에게 수천 명의 양식을 조달했다. 1636년 병자호란의 경우,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하였을 때 상인 하나가 붕대를 감아 주었는데, 이를 본 인조(仁祖)는 전쟁 후에 기지와 충의를 가상히 여겨 보부상의 패랭이 좌우에 면화를 장식하여 쓰도록 하였다고 한다.
홍경래의 난(1811년) 농민전쟁 때 관군을 도왔으며,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년)때는 강화도에 군량을 운반하였고, 남연군의 무덤도굴사건 때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보부상 말살기도로 보부상단이 소멸된다.

상무사 위패를 모신 건물

각종 문서

 

2. 보부상의 역할과 주막, 객주의 상호 영향관계

조선후기 변화 요인의 하나인 보부상의 역할과 주막(酒幕), 객주(客主)의 상호 영향관계를 알아본다. 도시에서 자생하는 5일장이 형성되어가고 있는 장시는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펼치는 지방 장시(場市)문화와 보부상의 역할과 장시(場市), 포구(浦口)를 무대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면서 상업 활동을 하던 보부상 조직과 객주, 주막과의 상호 영향관계를 예산지방의 지리적 특성을 통해서 알아보고 조명하고자 한다.
주거형태로 드러난 이 지역의 건축인 주막의 형태를 알아봄으로써, 조선후기의 주막과 객주라는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발판이 되고 조선후기의 건축형태를 밝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접근으로 예산지방의 지역건축을 이해하는 방법이 되며 넓게는 조선후기에 분포되어 있는 각 지방의 주막과 객주를 통해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2000년대 주점 현재의 모습

덕산재래시장 오일장 모습

덕산재래시장 오일장 모습

 

3. 예산군 시장현황

3-1. 시장현황

 

3-2. 개설한 덕산 장옥 공간배 1877년 현황

 

3-3. 1887년 개설한 전통을 자랑하는 덕산 장옥 모습들

덕산장옥 모습들

 

4. 상업 네트워크

전업 상인들의 출현과 지방시장의 발달에 맞춰 나타난 것이 보부상이다. 보부상은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산 보부상들은 직결지였던 목바리 주막거리를 중심으로 예덕상무사라고 하는 보부상 조직이 설립되어 있었다. 이들이 항만도시와 내포지방을 연결하면서 개척된 상업 네트워크는 식민시기 근대적 상업공간을 성립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5. 기존 물류루트의 유지와 발전요인(보부상의 행적)

5일장 봇짐장수들은 휘장을 걸어 놓았던 물건을 거두어 고리짝에 넣어 닷새 만에 장날을 찾아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으며, 45리의 밤길 고개와 개울을 건너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했던 행상(보부상)들은 주막에서 쉬어 가기도 했다.
객주, 여각도 일반 여행자보다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소라고 볼 때 주막은 서민대중의 숙박업소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객주, 시골에서는 주막이 여숙(旅宿)의 업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주막이라고 하는 곳은 숙박업소라기보다는 음식점의 성격을 띤 곳도 많았다. 주막에서 숙박료라고 하는 것은 음식료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음식을 시키면 별도의 숙박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1999년도 일본 오사카 역사 박물관내에 설치된 목조건축 주막(목수 서산인 김연제씨)의 복원도

기상풍속도첩 (조선후기 민화)

기상풍속도첩(조선후기 민화) 속 건물

조흥은행 백년사 금융박물관에 있는 객주의 모형(민화 풍속도첩)을 재현한 모습(기흥성 제작)

 

6. 부상의 역할과 목바리 주막의 의미

보부상의 행상지는 1리를 보고 5리를 간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인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그 예로 얼마 전에 작고한 예덕상무사 김진용 영감이 젊은 시절 어물장사를 할 때 서산 사(砂)구시에서 덕산장터까지 5킬로미터 고개길 한티고개를 넘어 덕산 목바리에 있는 주막집 뒤뜰 흐르는 물에 어물을 담가두고 잠을 청한 후, 새벽 일찍 일어나서 물 좋은 어물을 지고 새벽길을 떠나야만 덕산장에 당도하여 남보다 한 시세를 더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보부상 간에도 치열한 경쟁관계와 충실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목바리 주막을 지나던 보부상들이 소매하는 물품으로는 삼베, 돗자리, 자리, 삿자리 등과 화로, 솥, 보습, 쇠절구, 낫, 호미, 톱, 도끼, 못, 망치 등 생수철로 이중에 많은 부문은 대장간(덕산읍내리)에서 만든 것이 많다. 건어물로는 명태, 미역, 굴비, 오징어, 대구포 등이 있고, 그밖에도 국자, 대나무로 만든 대바구니, 채반, 토시, 용 수, 패랭이, 방갓, 참빗, 얼레빗의 죽세전이 있다. 또한, 나무뿌리로 만든 솔, 체, 키 등솔 제품이 있고, 짚으로 만든 짚신, 새끼, 멍석, 섬(가마니), 삼태기, 멱서리, 도래방석 등의 와계전이 있었다. 더해서 나무로 만든 물통, 거름통, 지게, 밑판, 실판, 절굿대, 홍두깨, 방망이 등 목물전이 있었다.
이곳에는 해미사구시 포구에서 덕산 재래시장 가는 길목에 이들이 집결한 장소인 목바리 주막거리가 있다. 현재 이 주막거리에는 주막, 주점, 떡집 꽈배기집, 놋쇠퉁정집 등이 주위와 어우러져 옛 모습을 보여주듯이 다소 허물어지고 초가지붕이 함석지붕등이 바뀌긴 했지만,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목바리 주막 표지석

한국건축가협회 오기수 회장 및 임원, 회원들의 덕산 목바리주막거리 답사 전경(2003.5.22)

목바리 주막거리의 실체를 조사했다. 현재 보존상태가 좋은 텅 빈 가옥인 주막(1890년대), 군데군데 벽을 이룬 흙벽이 곳곳에서 떨어져 나가 속살을 드러내는 훼손 등 거의 무방비로 방치된 주점, 꽈배기를 만들고 팔던 주저앉은 함석집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개보수한 떡집과 주점은 아직도 남아있다. 놋쇄퉁정을 제작한 집은 철거되어 그 자리에 2층집 식당이 들어서 있다.

 

6-1. 1호 가옥

일제강점 직후에 건축된 1호 주막은 지금은 채용석씨가 마지막 거주자로서, 65년 동안 주막거리에 살면서 1호집 주막에 세를 얻어 기름집 떡 방앗간을 인수하여 40년 동안 운영하다가 1969년 폐쇄하였다고 한다.

목바리 주막 산증인(성남거주), 채용석씨 딸(채정숙, 1942년생)과 인터뷰

 

6-2. 2호 가옥
2호 건물은 주점으로 사용된 곳으로 실내 중앙에 조리대가 위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서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된다. 조리대에 대한 스케치와 사진을 참고하면 된다.

 

6-3. 3, 4호 가옥
3호 가옥은 주거용 건물은 아니기 때문에 방이나 부엌은 없다. 2개의 건물로 분할되어 있으며, 현재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인 윤규상씨는 덕산에 있는 양조장에서 술을 배급받아 이곳에서 지점 비슷하게 운영하면서 거주하였다. 수덕사 대동리까지 배달을 하였다고 한다. 바로 뒤편의 4호 가옥은 목조건축물로 지어졌으나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벽은 허물어진 상태이다.

6-4. 5호 가옥
현재까지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신순임씨는 13세에 당시 떡집을 운영하던 김태산 씨(1910년생, 72세 사망)에게 시집와 현재까지 떡집을 운영하고 있다.

 

6-5. 6호 가옥
방앗간으로 사용된 건물로 지금은 폐쇄되어 있으며, 주택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일(一)자형 주거이며, 동서방향으로 3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당면에 퇴가 놓여있다. 부엌이 가운데에 있지 않고, 북쪽 면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앗간은 대로변에 정남향으로 놓여 있다. 지붕은 함석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초가지붕이었던 것이 1970년대 이후 개보수되었다고 생각되며, 벽면도 원래는 목조였으나 콘크리트 블록으로 보강된 상태이다.
이 가옥은 접객과 거주자를 위한 문이 대로변에 둘 다 위치하고 있으며, 거주 가옥은 도로면에 접해 있고, 방앗간은 도로변에서 후퇴된 상태에서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정면에 작업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6-6. 7호 가옥

 

7. 덕산목바리 주막거리 사람들(1920년대)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내포 땅에 가면 덕산목바리 있는 보부상이 쉬었다는 밤나무 울타리의 주막에도 들러 보았다. 이런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고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모두 마음뿐이다”는 글귀가 있다.

 

참고문헌

채용석, 채정숙 목바리 산증인 인터뷰
윤규상 월진회 회장. 예덕상무사두목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내포땅의 사랑과 미움 (하) 창작과 비평사 1993
김득수 일제 강점기 소읍도시 현성과정에 관한연구 연세대 석사 학위논문/ 2003년 8월

 

글. 김득수 Kim, Deuksoo 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김득수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대표

영등포구지역건축사회 회장(3회 연속),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직무대행, 대한건축사협회 이사·감사 등을 역임하고, 대한건축사협회 50년사 발간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건축·민원조정 위원, 에너지관리공단 건축·도시·관광단지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예산읍 초대 명예읍장으로 위촉(1997.02.15.~2006.12.03.)된 바 있다. 서울특별시 시장 표창 5회와 대통령 표창(제200398호)을 받았으며, ‘일제시대 소읍도시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일제강점기 근대도시의 도시공간 변화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작성했다.
a010634595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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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건축사연맹 2022년 마드리드 임시총회 및 UIA 2022 국제포럼

UIA 2022 Extraordinary General Assembly(EGA) and UIA 2022 International Forum

1. UIA 2022 임시총회 (EGA)

2022년 5월 16~17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국제건축사연맹(UIA) 임시 총회(EGA)와 더불어 전시회 및 토론회 등이 열렸다. 임시총회 후에는 ‘경제적인 공동주택의 실현: 한계를 넘어서’(저렴 주택 활성화: 장벽 제거”라고도 한다)를 주제로 UIA 2022 국제포럼(AHA Forum)이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린시페 피오 대극장(Gran Teatro Príncipe Pío)에서 개최되었다. 전시회를 제외한 임시총회 및 국제포럼은 현장 참가 및 온라인 참가 모두가 가능하도록 했다.

UIA 총회는 3년마다 열리는데, 정관에 따라 임시 총회를 개최할 수가 있고 이는 이사회 또는 전체 회원단체의 3분의 1 이상의 요청에 따라 사무총장을 통해 회장이 소집할 수 있다. UIA는 이번 임시총회를 통해 전 세계 UIA 회원단체가 관련 사안을 심의하고 2021-2023 임기 중반까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임시총회는 마드리드 건축사협회 본부인 코암 스페이스(Colegio Oficial de Arquitectos de Madrid- Espacio COAM)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임시총회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화상 회의나 온라인 투표 등을 허용하도록 UIA 정관 및 규정의 수정을 승인
– UIA 이사회 및 실무 위원회의 진행중인 활동 및 새로운 제안을 보고하고 논의
– 2021년 총회에서 위임한 대로 제안된 UIA 구조 조정 제안에 대한 업데이트를 제시하고 UIA의 운영 및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
– 2023년 코펜하겐 세계건축사대회와 유네스코-UIA 세계 건축 수도 프로그램의 활동 소개
– 2024년 UIA 국제 포럼 개최도시 선정
– 2021-2023년 임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이사회의 조치가 필요한 모든 문제와 과제의 해결

임시총회 첫날은 회장단과 UIA 실무 그룹(UIA Working Bodies: 이사회, 실무위원회 및 워크프로그램)의 활동보고, 재무보고 등이 있었고 둘째날은 앞으로의 운영계획, 정관개정 및 운영체계 조절, 2023년 차기 대회 준비 및 2024년 차기 포럼개최지 선정, 그리고 각 회원단체에서 발의한 내용의 논의 등을 다뤘다.

실무그룹의 활동보고 중 필자가 속해 있으면서 필자가 2014년~2021년까지 공동디렉터를 했던 ‘건축유산 및 문화유산의 정체성 워크프로그램’의 신규 공동디렉터(방글라데시)가 온라인으로 참여하여, UIA 웹사이트 얼굴페이지에 활동사항이 소상히 써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WP가 처음은 아닌데 이전 팀이 별로 한 일이 없다”고 발표하여 7년간 애쓴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2017년 서울 대회 및 UIA 2019 바쿠 국제포럼시 필자가 주제한 워크프로그램 세미나 및 전시회에 참석했던 다른 나라 건축사회 대표들이 오히려 격분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정관개정 및 운영체계 조절 등은 대체로 회장단에서 준비한대로 진행이 되었으나 내용을 축약하여 좀 더 효율적으로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될 UIA 2022 마드리드 국제포럼 준비사항 최종보고 및 2023년 코펜하겐 총회 준비사항 프레젠테이션 이후 2024년 포럼개최지 제안 발표와 투표가 있었다. 2024년 포럼 개최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 건축사회(Society of Egyptian Architects -SEA)는 2024년 11월 27~29일 “재생 에너지와 천연 자원이 있는 녹색 도시의 미래(Green Cities Future with Renewable Energy and Natural Resources)”라는 주제로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끝단 홍해근처의 휴양도시 샤름 엘 샤이크(Sharm el-Sheikh)에서 개최를 제안했고, 말레이시아 건축사협회(Pertubuhan Akitek Malaysia-PAM)는 “다양한 도시– 인류와 지속 가능한 성장(Diversecity– Humanity & Sustainable Growth)” 이라는 주제로 수도 쿠알라룸프르에서의 개최를 제안했다. 양국의 프레젠테이션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은 보이지 않는 내용보다는 젊은 건축사들의 열정적인 준비된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그리고 사전 리셉션도 한몫 했다. 기권은 한 표도 없었다.

참고로 2024년 포럼개최를 유치하고자 했던 두 회원단체로부터 각각 사전 리셉션 초대가 있었다. 이집트는 임시총회 전날 5월 15일 저녁에 마드리드 소재 이집트 대사관에서 초대를 했고, 말레이시아는 5월 16일 저녁 회장단이 머무는 리우호텔 앞 레스토랑에서 현지음식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필자는 항공 도착이 지연되어 이집트 행사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동시간대에 갑작스레 이사회가 소집돼 회장단이 이집트 행사에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스위스건축사협회, 노르딕섹션, 레바논건축사협회로부터 각각 제안발의가 있었다. 발의 내용으로, 스위스건축사협회 회장 로렌츠 바커는 정관개정에 어차피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서문을 보다 광범위하게 하기 위해 “UIA는 책임과 행동 범위 내에서(UN이 승인한 NGO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형태의 폭력, 차별, 불평등의 근절을 옹호하고 생태계 균형에서 생명을 허용하는 환경 및 기후 조건, 그리고 인류의 웰빙을 촉진한다”는 내용을 서문 말미에 추가하자고 발의했다.

노르딕 섹션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회원자격 박탈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는데, 투표에 부쳐져 결과적으로는 기각되었다. 이에 합류한 회원단체들은 노르딕 섹션으로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파로(섬); 발틱 섹션으로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있고 폴란드 독일 캐나다 미국도 합류했다.

(UIA Nordic Section: Danish Association of Architects(AA), Finnish Association of Architects(SAFA), Swedish Association of Architects(SA), Norwegian Association of Architects(NAL), Icelandic Association of Architects(IF) and Faroese Association of Architects(AF)
UIA Baltic Section: Architects Association of Lithuania, Latvian Association of Architects, Estonian Union of Architects
Association of Polish Architects(SARP) Federal Chamber of German Architects(BAK) Royal Architectural Institute of Canada(RAIC)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AIA))

레바논은 베이루트 항구에 1968년에 지어진 곡식 사일로가 헐려 나가는 위기에 처해있는데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보존을 촉구했다.

사이드 이벤트(Side Event)로는 첫날인 5월 16일엔 “모더니즘 하우징의 전체적 보수(Holistic Renovation of modernism housing)” 전시회 개막식이 동 건물 메르카달 홀(the Sala Mercadal of COAM)에서 있었다. 개막식에는 현장 참가자 모두가 초대되었다. 전시회는 발틱 건축사연맹(Baltic Architects Union-BAUA)과 라트비아 건축사협회(the Association of Architects of Latvia)가 공동 주최하고 UIA 제1지역(서유럽) 및 제2지역(중앙유럽과 동유럽 및 중동)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로, 이미 4월 11일 같은 주제의 국제컨퍼런스가 온라인으로 개최된 바 있다.
같은 날 UIA 워크프로그램 “모두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All Work Programme)”은 “한계를 넘어서(장벽 제거): 만일 주거공간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저렴하거나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Removing Barriers: If Housing is Not accessible, it is Not Affordable or Sustainable)”라는 주제로 웨비나를 했다.
다음날 5월 17일 임시총회 후에는 프랑스문화원과 프랑스 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공동주관으로 “로커스 솔루스(유일한 장소), 보르도의 공공주택 프로젝트(Locus Solus, a public housing project in Bordeaux)” 프레젠테이션과 라운드테이블 토론회가 스페인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렸다. EO Agency의 프로젝트 발표에 이어 프랑스국가건축사협회(CNOA) 부회장인 마르얀 헤삼파르-베론스(Marjan Hessamfar-Verons)의 사회로 라운드테이블 토론이 있었다. 라운드 테이블 토론회엔 건축주와 사용자 및 발르의 스위스건축박물관 관장이 참여했다. 마친 후 옥상정원에서 근사한 칵테일 저녁이 있었다.
또 하나의 사이드 이벤트는 국제포럼 기간 중인 5월 19일 저녁에 있었는데 필자는 포럼일정이 늦어져서 참석하지 못했으나 개요를 여기 소개한다. 이는 영국건축사협회(RIBA), 아일랜드건축사협회(RIAI) 그리고 프랑스국가건축사협회(CNOA) 공동 주최로 “세계 건축 교류- 경제적 공동주택의 부조화(Global Architect Exchange(GAE)- Affordable Housing Mismatch)”라는 주제로 열렸다. GAE는 국제포럼 관련 일련의 온라인 컨퍼런스로 건축전문가 집단과 협업으로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2. UIA 2022 국제포럼

2022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린시페 피오 대극장(Gran Teatro Principe Pio)에서 개최된 UIA 2022 국제포럼 “경제적인 공동주택의 실현: 한계를 넘어서 The Affordable Housing Activation: Removing Barriers(AHA Forum)”는 온 오프라인 하이브리드 형식(직접 현장참석 및 온라인 참석)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또한 성공 사례와 모범 사례를 수집하여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행동 지향적인 솔루션을 통합하고, 모든 것을 Housing의 첫 번째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에서 수집하고자 했다. 3일간의 포럼은 장애(Barrier) 1, 2, 3으로 나누고 각각 하루에 세 개씩의 주제로 포디움 디스커션으로 진행을 해서 어마어마 하게 많은 참가자들이 등장했다. 첫날은 ▲부조화 ▲정책과 규율 ▲사회적 지속 가능성에 대해, 둘째 날은 ▲자금 ▲도시설계 ▲경제적 지속 가능성, 마지막 날은 ▲홍보와 생산 ▲소유권과 거주권 ▲환경적 지속가능성으로 나누어서 진행했다. 내용은 다음 호에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5월 20일 저녁 전체 행사를 마친 후엔 대극장 마당에서 환송 리셉션이 있었다. 연이어 버스로 이동하여, 2006년 개관한 현대예술센터 마타데로 마드리드(Matadero Madrid)에 가서 학생 건축작품 전시회를 보았다. 이곳은 20세기 초 마드리드 아르간주엘라(Arganzuela) 지역 도축장(El Matadero y Mercado Municipal de Ganados: Municipal Slaughterhouse and Cattle Market)이던 곳으로 1996년까지 사용되었다(뒤에 설명). 모든 행사가 끝나고 이 전시장을 방문한 것인데 건축공간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3. 주요 행사장

여기서 임시총회 및 포럼 행사장의 건축물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주요장소는 임시총회 회의장 COAM, 국제포럼장 Gran Teatro Príncipe Pío, 그리고 행사 끝에 방문한 전시장 Matadero Madrid다.

1) 코암 스페이스
(Colegio Oficial de Arquitectos de Madrid: New Headquarters for the Madrid Architects’ Association [COAM])

마드리드 중심부 추에카(Chueca)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마드리드건축사협회 본부이며 마드리드시가 공공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18세기 말 나환자 병원(Colegio de las Escuelas Pías de San Antón)이었는데 2005년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곤살로 모우레(Gonzalo Moure) 설계로 2008~2012에 걸친 전면적 수리 후 2012년 2월 29일 개관했다. 4개층 36,486제곱미터 규모의 새롭고 혁신적인 다목적 공간으로 모든 유형의 이벤트를 담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건축재단(Fundación Arquitectura)과 평생교육원(Instituto de Formación Continuua), 도서관, 여러 전시 공간 및 상점 외에 대학원 과정(대면 및 온라인)도 있다. 또한 실내 수영장, 보육원, 노인 센터, 음악 학교, 레스토랑, 테라스, 이벤트를 위한 다목적 공간, 쇼룸 및 466개 공간의 주차장을 포함한 다양한 시립 시설 및 공공 공간이 있다.(MADRID ARCHITECTS’ ASSOCIATION HEADQUARTERS / MUSIC SCHOOL / SPORTS HALL / NURSERY / DAYCARE CENTER)
붙어있는 나환자 병원의 교회였던 산 안톤(San Antón) 교회는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는데, 무료급식소로 사용되고 있어서 허락을 받고 사람 얼굴을 피해서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곤살로 모우레(Gonzalo Moure)는 마드리드 고등 건축대학(Escuela Técnica Superior de Arquitectura de Madrid, ETSAM: The Higher Technical School of Architecture of Madrid)의 교수(1991~)로 1986년 사무소를 개설한 이래 주로 국내외 현상공모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하며 EU 마스 반 데어 로에 건축상(2013년) 등 많은 건축상을 받았고 특히 이 COAM작품이 대표적이며, 독일 등 유럽에서 활동을 하는 현재 스페인이 자랑하는 건축사다. 특히 그가 재직하고 있는 마드리드 건축대학은 펠릭스 칸델라, 라파엘 모네오 및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 등 수많은 유명건축인을 배출한 곳이다.
참고
https://gonzalomoure.es/ · https://arquitecturaviva.com/works/colegio-oficial-de-arquitectos-de-madrid-10

 

2)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 대극장 (Gran Teatro Príncipe Pío)

1861년에 시작하여 1993년 마지막 기차를 운행한 이후 27년 동안 폐쇄되었던 구 노르테 역(北驛 Estación del Norte)은 “라 에스타시온(La Estación: 기차정거장 역이라는 뜻)”이라는 대규모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로 탈바꿈했다. 극장에서 콘서트, 뮤지컬 카바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쇼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규모 공연 공간이다.
공연장에 따라 수용 인원이 변동되는데 극장의 경우 980석, 카바레 쇼의 경우 991명, 콘서트 경우 1,96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극장 및 카바레 쇼가 예정되어 있을 때 장소 이름은 카이사뱅크 프린시페 피오 대극장(Gran Teatro CaixaBank Príncipe Pío)으로 부르고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으면 워너뮤직 스테이션(Warner Music Station)이 된다.

 

– 라 에스타시온 (La Estación)

7,000제곱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이 다목적 공간은 마드리드의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현장의 주요 장소다. 문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은 물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 라 에스타시온(La Estación: 역이라는 뜻)은 1993년 이후 폐쇄된 기차역인데 프랑스 엔지니어 Biarez, Grasset 및 Ouliac이 19세기에 설계했고 기차역인 북역(Estación del Norte)에 있다.

이 건물은 많은 기능을 유지하면서 전면적으로 수리되었다. 건축유산으로 등재된 이 건물은 전체가 보호되어 있어 다양한 기능에 맞게 보수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검은색 연철과 대리석으로 된 황실계단, 2개의 오래된 리프트(작동하지는 않지만 관람은 가능), 극장에 있던 9개의 원래 램프, 2개의 매표소 및 입구 방풍실인 모더니스트 파빌리온 등이 복원되었고, 누수로 심하게 손상된 장식요소, 난간 및 외부 처마 장식 등도 복구되었다.
그 밖에 알폰소 13세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용했던 작으나 매우 웅장한 귀빈실(the room of authorities)이 지하실에 있다.
라 에스타시온은 극장 자체와 레반테(Levante) 및 포니엔테 \(Poniente)로 알려진 두 개의 타워가 차지하는 중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사무실과 연습실이 있는 타워, 후자는 왕궁, 알무데나 대성당 시에라 데 마드리드가 내려다 보이는 360도 전망대가 있는 타워다.
또한 이 곳에는 3,000제곱미터의 야외 공간이 있어 모든 종류의 공공 및 민간 야외 행사 및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UIA 2022 국제포럼이 끝나고 환송 리셉션이 이 야외공간인 마당에서 열렸다.

 

3) 마타데로 마드리드 (Matadero Madrid)

원래는 루이스 벨리도 이 곤잘레스(Luis Bellido y González 1869~1955) 설계의 복합 단지로 1911년~1925년에 건설된 도축장(Matadero)과 가축 시장이다. 당시 설계는 기능, 구성적 합리성 및 개념적 단순성을 특징으로 하는 복합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 네오 무데하르(Neo-Mudéjar)라는 역사적 모티브가 가미되었다. 시설은 1924년과 1925년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996년 도축장이 폐쇄될 때까지 계속 운영되었다.
21세기 전환기에 마드리드 시의회는 이 공간을 예술 센터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수리를 거쳐 복합 현대예술센터로 2006년에 개관했다. 마타데로 마드리드는 마드리드 시의회 예술부가 추진하고 문화 프로젝트 사무국이 다른 공공 및 민간 조직과 협력하여 관리하는 프로젝트다.

참고로 네오 무데하르(Neo-Mudéjar)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건축 경향인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주로 구현되었고 이베로-아메리카(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적게 나타나는 무어건축 부흥양식이다. 이 건축 운동은 무데하르 양식의 재현으로 나타나는데 말굽 아치, 아라베스크 타일이나 추상적 벽돌 장식과 같은 무데하르 양식요소를 현대 건물의 외관에 사용한 운동이다. 즉, 건축의 무데하르 양식이란 장식적인 이슬람 예술 양식의 모티프와 패턴을 기독교 건축에 적용된 것을 일컫는다. 이슬람 예술에서 파생된 전통적인 구성, 장식 및 장식 요소를 기독교 건축에 적용한 이슬람 공예가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역 기독교 건축 전통의 일부가 되었으며 확장 중인 이베리아 기독교 왕국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및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적용되었다.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행사 관련 세 건축물의 공통점은 역사적 중요건축물을 수리한 후 새로운 기능을 불어넣어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애초 설계도 당대 괄목할만한 건축사가 했고, 나름 당대건축의 특징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새로운 건축적 개입(Architectural intervention)도 국제현상공모 등을 통해 진행된 작품으로 원래의 의도들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현대적 기능을 담을 수 있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주최측에서 그러한 건축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이나 안내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분 아니라 포디움 디스커션을 너무 중요하게 여겼는지 마지막 학생작품 전시관람 외에 도시 탐방이나 건축물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 전무했다.

이번 UIA 2022 마드리드 임시총회 및 UIA 2022 마드리드 국제포럼에는 직전 UIA 제4지역 부회장 한종률 건축사, 현 한국건축가협회 수석부회장 한영근, 그리고 직전 UIA WP Heritage 국제 공동디렉터 조인숙 건축사(필자) 세 사람이 한국의 FIKA를 대표하여 전 일정 현장 참석을 했다.(2022. 06. 15)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UIA WP Heritage & Cultural Identity 위원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choinsou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