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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자격 혁신이 필요하다

Innovation is needed for architect qualifications

의무가입제가 복원됐다. 그동안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환경이 극복된 것이다.
이제 더 중요해진 것은 바로 ‘건축사’라는 본질이다. 건축사는 누구이며, 역할과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법령에 따르면, ‘건축사’란 국토교통부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工事監理) 등 제19조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건축을 기획·계획, 설계하는 싱크탱크 지식인이며, 국가가 이에 대한 자격·책임을 부여한 법적 전문가다.
이제 우리 ‘건축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의무가입이 시행되며 역할에 대한 문제가 생길 때 더 이상 누구를 탓할 핑계거리가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건축계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1970년대 초반 월간 <건축사> 기록을 보면 각종 결의대회와 자성의 문구들이 많다. “설계·감리 위법을 하지 말자! 현장을 가서 도면 확인을 하자! 설계비를 제대로 받자!”
낯설지 않은 구호들이다. 2022년, 이 구호가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이런 행위 주체인 ‘건축사’에게 원인이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변호사와 달리 자율적 징계가 아닌 관리대상으로 처우 받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행정부가 건축사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어쩌면 자격의 출발부터 재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건축사를 배출하는 교육과 시험제도를 살펴보고, 근본적인 DNA를 바꿔야 한다. 현재 시스템은 자율적 판단의 주체로 건축사를 바라보고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바꿔야 ‘자율적 징계, 인허가,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능과 기술 중심의 자격시험과 달리 건축사의 본질인 설계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자격시험 출제·합격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국토부가 주목하는 미국식 컴퓨터 시험은 포괄적 해석 능력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기능적 테스트다. 건축사는 전문가로서 학식과 소양을 갖추고, 실무역량 함양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컴퓨터 시험은 적절하지 않다. 컴퓨터로 보지 않을 뿐이지 그동안 치러진 우리나라의 건축사 자격시험도 개별적 업무능력 평가 중심이다. 그러나 시험 과목 편성·구성 비율이 잘못돼 있다.
이젠 바꿔야 한다. 인문적이고, 직업윤리를 최소한으로 검증해야 하는 자격시험에 반드시 ‘면접을 통한 본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업에 대한 기본 개념과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다면 평가를 해야 한다. 당연히 필기-설계를 통한 테스트는 그 전에 거쳐야 하며, 실무수련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실무적으로 건축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설계해결 능력 테스트가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실무적 접근에서 건축사보 관련 ‘건축사법’ 개정도 필요하다. 단순 건축사 보조자 역할이 아닌 ‘건축사 위임’을 전제로 한 학·경력 인정으로 역할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한국적 특성에 맞게 건축사 위임을 받아 감리나 유지관리, 리모델링 검증 또는 각종 건축 조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제는 공무원이 징계위를 소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국가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전문가로서의 ‘건축사’ 환경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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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을 국가가 진다? 때로는 분담하는 것도 지혜

Does the state take all responsibility?
But sometimes sharing is wisdom

대한민국의 건축사 산업, 특히 설계 산업의 구조가 건강한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수많은 건축 관련 발주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내용이지만, 공공 직영의 경영적 성과는 운영의 비효율성은 물론이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공이 운영하는 순간, 다양성과 공정성 그리고 우열이 아닌 분배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공공이 운영하면서 민간처럼 속도와 효율을 강조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산간 오지의 국민도 국민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더라도 전기도 보내고,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성별을 흡수하고 균형 있게 운영해야 하는 것이 공공의 의무이며 사명이다.
공공의 운영이나 직발주는 민간에 비하면 업무 효율성이나 융통성이 없다. 문제는 공공 건축을 운영·발주하는 공기관이나 지자체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한다는 점이다. 세금이나 각종 부담금, 운영자금을 전적으로 공공이 운영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세금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런 고민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었고, 정부 재원이나 지자체 재원 등 세금으로 진행되는 건축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설계공모 대상 확대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하나의 성과다. 이전의 발주 공무원의 영향력으로 진행된 공공건축 설계와 달리 공개적인 설계공모로 선정된 공공건축의 질적 향상은 지난 몇 년간의 성과로 입증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공개적인 설계공모를 통한 설계선정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물론 심사에 대한 시각은 다르지만.
그런데 이 정도면 만족할 상황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계단 올라섰다면, 이제는 좀 더 세밀하고 깊이 있는 결과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방식도 대상도 확대하고, 보다 근본적인 출발점부터 재고해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세금을 무한정 사용하기보다는 효율적 운영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의 장점과 공공성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반드시 공공이 발주하고 운영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운영 심사를 통한 재정지원으로 운영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상당하다. 보건이나 치안 관련 시설의 경우는 공공의 운영이 필요한 반면 노인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등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완전히 민간에서 운영하는 것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준 공적 조직이 될 수 있는 협동조합이나 복지재단 같은 조직에 위임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물론 지속적인 운영감시와 감독을 통해 지원금 반환이나 회수, 또는 엄격한 징벌 등의 책임감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공공직발주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 절차뿐만 아니라 운영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당연히 공정한 제3자의 건축 설계 심사를 통한 건축사 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설계에 대한 행정 단축과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고, 심사 선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질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각종 공공적 성격을 가진 시설뿐 아니라 임대 주택을 포함한 공공 주거시설까지 확대해야 한다.
전문성과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공공직발주의 압박감으로부터 공무원들을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들은 일선에서 뛰는 실무자가 아니라, 행정 지원과 기획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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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이 있어야 대한민국 건축사가 산다

Korean architects can lead our society with the right of self-determination

푸념처럼 수도 없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낮다는 말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왜 건축에 대한 사회적 수준이 이리 낮은가!”라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시장에서 만나보면 많은 사람들이 건축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자재 빼먹는 시공업자를 연상한다. 부실시공과 자재 빼먹는… 사실 대부분 건축사들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건설, 시공 분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건축과 건설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건축을 하려면 설계를 해야 한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부지기수며, 처음 집을 지으려는 이들도 설계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여전하다. 이런 환경이니 설계를 주 업으로 하는 건축사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그 이유뿐일까?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건축사 단독의 자기결정권 같은 문제 말이다.
국가가 전문자격을 준 전문가 중 대표적인 분야가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건축사다. 그런데 유일하게 건축사는 비전공 아마추어인 공무원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뿐인가? 심의나 사용승인 과정에서 무수한 비자격 비전공자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다른 건축사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나의 건축이 완성된다. 즉,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진행할 수 없는 유아적 권리를 가진 국가 자격인 셈이다. 한마디로 당사자가 책임지고 완성할 수 없다. 자기결정권이 없다.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하고 책임질 수 없는 구조의 대한민국 건축사 제도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당신 말이 맞아?”라고 되묻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의심하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계속 이중 삼중의 법과 제도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부수적인 절차와 과정이 늘어나 점점 본말이 전도된, 한마디로 불필요한 것들이 늘어나 비용과 인적 자원의 소모를 늘려가는 상황이다. 이러니 건축사가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다.
건축사들의 자기 결정권은 건축 인허가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리를 더 강화하는 만큼 책임을 강력하게 지면 된다. 이미 안전사고 등으로 고의성 여부에 따라 사망사고가 나면 건축사는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법적으로 책임의 한도는 살벌하게 강화되어 있는데, 권리는 여전히 제한받고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의 크기에 따라 복잡성을 핑계로 건축사의 자기 결정권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백번 양보해서 범위를 축소하면 된다. 대체로 2,000∼3,000제곱미터 정도는 건축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인허가 대체, 신고로 해도 된다. 이미 해체부터 시작해서, 착공 및 공사 과정 내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들이 있으니 더 이상 옥상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건축사가 책임지고 자기결정권으로 인허가를 주도한다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위상이 올라간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구조로 인해 설계비도 자동으로 현실화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시간 단축 등으로 신뢰경제의 경제적 생산성을 온 국민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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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가 아마추어 취급받는 대한민국 설계공모전

Korea design competition
where architects are treated as amateurs

나는 건축사다. 그리고 박사학위가 있고, 정부 추천도서를 3권이나 저술했다. 여러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또 30년 넘게 현업에서 실무 중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묻는다. 나는 프로인가, 아마추어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 여러 공공기관에서는 건축사를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조달청을 비롯한 많은 관들의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 건축 수준이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저변에는 현장에서 수십 년째 일하는 경험이 풍부한 건축사들을 업자 취급하는 사회 인식이 있고, 그런 인식으로 공공건축을 진두지휘하는 기관들이 많다.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만, 실력이 검증되고 입증된 공공건축, 특히 최근 서울에서 몇 년간 진행된 공공프로젝트는 이전과 확연한 차이와 성과를 보여주었다. 프로젝트 서울이 한 예이다.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공공건축 설계공모의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위원들의 인적 구성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 현업에서 다수의 설계를 진행한 대학교수들과 다양한 연령층의 현업 건축사들이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당선작을 뽑고 있다.
하도 말 많은 설계공모인지라 영상을 생중계도 하고, 심사 참관 신청을 받기도 한다. 물론 심사위원과 생각과 관점이 달라 공모에서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그 이면의 또 다른 부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업 건축사가 완전히 배제된 조달청이나 기타 기관의 설계공모전에 대한 소문이 깨끗하지 않고, 실제 각종 부정부패로 종종 수사도 받고 법적 징벌도 받는 경우가 많다. LH의 설계공모나 각종 공기관의 설계공모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분노하는 것은 현업에서 프로로 일하는 수많은 건축사들의 경력과 경험에서 비롯된 피드백이 보다 나은 공공건축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현업 건축사들은 충분한 안목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업 건축사들의 설계공모 심사위원 배제에 대한 발주처들의 거부 이유는 황당을 넘어 참담하다. 이해당사자의 심사는 부정할 수 있다는 핑계다.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알렉한드로 아라베나, 이토 도요… 이들은 여전히 일선에서 활동하는 현역들이다. 세계적인 스타아키텍트(STARCHITECT)인 이들은 이해당사자라는 이유로 심사위원에 배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건축설계공모 심사에 현업 건축사들이 반드시 참여한다. 물론 실적과 경험으로 검증된 자들이다.
왜 조달청과 LH 등은 현업 건축사들을 배제하는가? 가끔 수준 낮은… 등의 자존심 상하는 표현도 들려온다. 그렇다면 당선된 경험이 있거나, 각종 상을 수상한 건축사이거나, 하다못해 법에 표현된 ‘역량 있는 건축사’들을 심사에 청빙하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심사위원으로 추천하는 건축사 단체의 역할도 제대로 해야 한다. 지인 추천 등의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는 그동안의 비난과 폄하를 극복하기 어렵다. 더욱 까다롭고 엄격하게 해야 한다. 이런 자아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설계공모에 현업 건축사들이 단 한 명도 없는 공모에 분노가 느껴진다.
심사위원에 단 한 명의 건축사도 포함되지 않은 설계공모는 모든 현업 건축사들이 보이콧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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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 건축과 부동산 · 파괴된 도시의 공공성 · 우울한 미래전망

Dunchon Jugong · Architecture & Real Estate · Destroyed Urban Publicness · Gloomy Future Prospects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이 멈췄다.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컨소시엄의 마찰로 수 조원 단위의 사업 현장이 멈춘 것이다. 작은 건설 현장은 종종 대금 지급 문제로 멈추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이런 조 단위의 사업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 현상이 이제야 벌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오래전 재개발, 재건축의 황당한 계약을 목격한 적 있다. 상세 내역도 없고, 도면도 없이 턴키 방식으로 건설사와 290여 가구의 아파트가 계약된 것이다. 사회적 통념의 범위 안에서 조합원들이 이해하고 승인하고 집행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계약은 엉뚱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상호 간 묵시적 합의로 진행된다. 21세기 경제 기반인 신뢰 경제(Trust Economy)의 선진 사례(?) 실천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허술한 계약 진행은 수많은 소송과 고발, 수사와 구속이 난무하는 범죄현장의 온상이자 부정부패와 떼쓰기 민원의 극단 현장이기도 하다. 모두가 쉬쉬하면서 여전히 사건 사고가 나도 원래 그렇다는 인식으로 둔촌 주공 아파트 현장 멈춤이 벌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벌어질 일이고, 아마도 우리나라 부동산 경제가 멈추지 않는 이상 계속 벌어질 것이다.
이런 암울한 전망에 전문가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왜 멈추지 못하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재건축·재개발 시장은 아파트라는 표준화된 우리나라 특유의 부동산 화폐 기능이 작동해 상상을 초월하는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파친코처럼 잘만 돌리면 평생 벌 돈이 쏟아져 나오는 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횡재하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과연 누가 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재건축·재개발을 부채질하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학자들이나 경제시사 평론가들은 심지어 관계로 나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다못해 유튜버들조차 전문가 대접받으며 여기저기서 초빙되고 있다.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전문가니 비전문가니 같은 말은 하지 말자. 냉정하게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이 선호하는 대단지 아파트로 도시가 영역화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지면에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언급이라도 한 줄 프린트되어야 그나마 전문가적 양심에 변명할 수 있다. 위성지도를 보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등의 전국 도시들이 거대한 암덩이들이 차지한 것처럼 영역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공공적 기능의 첫 번째인 도로가 폐쇄되고, 거대한 공간들이 사유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공동주택이라는,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고층 주거 건축이 자리한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토지, 도시 공간의 공공성을 언급하면서 제안한 고층 주거가 오히려 도시 공간의 사유화를 극단화시키는 도구가 되다니! 공공 공급적 의미의 표준화된 건축 형식이 현금에 버금가는 유가증권 기능을 갖는 아이러니가 작금의 대한민국 공동주택 건축 현황이다.
그 사이에서 건축의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손실은 경제적 활력의 지속적 고용과 시장 확장성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한 발언도 하겠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 재생산 중인 현재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면서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뉴스를 보게 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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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대학원을 살리고, 5년제 인증과 실무수련 비율을 연계해야 한다

We need to establish 4+2 graduate school and connect 5-year certification with practical training rate

건축대학이 독립되고, 1년 등록금을 더 내는 5년제 학부과정이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5년제 건축대학 인증제 도입 당시의 기사를 보면, 글로벌 경제에서 건축사의 전문성 인증을 위한 교육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건축사 자격의 국제적 상호 인정을 위한 학교 시스템의 교육 강화 차원에서 4년이었던 학부제도가 1년 더 연장됐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 시험제도 역시 연동(예비시험 폐지)되었다.
5년제 인증제도는 건축사 예비시험 폐지와 연관이 있다. 실무수련의 기간도 마찬가지다. 약 18년의 시차를 두고 2020년부터 건축사 예비시험이 폐지되었고, 예비시험 합격자는 2026년까지 건축사(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2026년 이후 건축사시험 응시 자격은 5년제 인증 건축대학을 졸업한 자에게만 부여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20여 년 전 예측과 달리 전혀 다른 양상과 결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상당수 대학에서 석사 입학자가 점차 줄어들면서 대학의 연구기능이 약화되었다. 물론 교수들의 임용 비율이 높아져서 교수 개개인의 연구 실적과 압박으로 대체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계속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어떤 학문보다 산업계와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하는 건축 관련 학문의 특성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5년제 인증이 과연 건축계에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수년 전부터 대학에서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고, 현장에서는 인력 구조 시스템의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 20년간 대학과 학생 수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제로 늘어난 교육과정을 통해서 실무수련을 해야 하는 예비건축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 않다. 통상 5년제 졸업생의 실무수련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대다수 학생들은 실무수련을 포기하고 있다.
노동 조건의 변화와 법적 근로 환경 강제 개선이 명문화된 현재, 적어도 건축사사무소의 근로 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급여 조건이나 기타 업무환경 역시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5년제 건축대학의 실무수련 비율이 좀처럼 상승하고 있지 않다. 책임과 업무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음에도 전문 인력의 수급 구조가 완전히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건축인들이 비교하는 의료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국민을 일대일로 상대하는 의료계의 경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의과대학 정원은 3,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의과대학은 학년별 유급률이 1~10% 선으로 졸업이 쉽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친 의사시험 합격률은 90%를 상회하고, 전문의 합격률은 95% 선이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언급한 이유는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달리 건축계는 대학과 산업계의 연계 프로그램과 계획이 전무하며, 의료계의 정원제한과 유급 등의 시스템을 논외로 한 채 의사 합격비율만 언급하며 건축계와 비교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더구나 의료계는 간호사와 의사라는 이원화된 업무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조원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제한된 대상을 상대하는 건축사를 의사와 비교하면, 건축계는 업무구조의 이원화와 5년제 인증과 실무수련 비율의 연계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5년제 인증 대학 축소와 4+2년제 대학 확대를 연동시킬 필요도 있다.
지금이라도 건축사 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개혁과 개선이 필요하다. 더 늦으면 지난 20년간 다듬어온 제도가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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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건축의 가치가 액세서리가 된 대한민국 주거정책

Korea’s housing policy in which the value
of architecture for life has become accessories

부동산 가격은 최근 몇 년간 폭풍을 겪었다. 도시화와 인구증가, 그리고 경제성장이 맞물리면서 약 10~15년 주기로 폭등이 진행되었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통해 시작된 1960년대 중반, 1970년대 후반, 88올림픽 이후 현금 유동화와 급격한 경제성장. IMF이후 해제된 부동산 가격 자율화… 그리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부동산 가격의 주기적 폭등은 경제 뉴스에서의 소식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다. 부동산의 영향력과 상승하는 절대가격은 폭등 주기가 반복될수록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다.
최근 유튜브와 SNS의 발달은 정책에 요구하는 시장의 압력을 가시화하고, 또 자극하고 있다. 이는 다시 여론으로 작용하고, 선출직 정치가들은 이에 영향을 받아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겉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정책과 정치 모두 암묵적 영향을 받고 있다.
건축은 이런 세상의 흐름에 발언하거나 훈수를 둔 적 없고, 정책이 실행되면 묵묵히 수주나 하고 설계에 임했지 선제적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 사이 부동산의 본질적 가치와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되거나 무시되면서 가격 상승과 반비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변동의 중심이 되는 건축 유형은 당연히 주택인데, 주택이 가져야 하는 삶의 가치와 공동체 공간이 확보해야 하는 본질적 고민은 액세서리로 다뤄지고 있다. 도시 주거가 가져야 하는 도시에서의 의미와 미래지향성도 철저한 상품화 부가장치로 다뤄지는 형편이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다루는 주거의 경제적 매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즉 부동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올 때 건축의 구성과 도시주거의 핵심 본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주무부처 장관과 고위 관료, 학자들…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유튜버들. 우리 사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어느 누구도 우리 후손의 미래 환경이 될 도시 주거 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가격뿐이다. 정치권부터 시민들까지 모두 주택과 도시주거를 오로지 가격을 보장해 주는 수익상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대상의 접근조차도 일시적 고용과 경제 효과만 생각한다. 지속가능하고 경제적 유발 효과를 고려한 플랫폼 산업으로 보지 않고 단선적 관점으로 대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지속적으로 대안을 고민하고 개선해 보자고 십수 년 동안 발언하고 있지만, 그조차 의미 없이 소비되고 있지 않나 싶다.
보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국가를 계획하고 전략화해야 할지에 대한 장기적 접근이 보이지 않는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지금 당장 갈라보려는 욕심만 보인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물질 중심 사고관이 모두에게 뿌리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가관인 것은 바르셀로나의 도시 공동체에 대한 고민으로 나온 슈퍼블록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상품 가치를 극대화하는 상품전략화 요소일 뿐이다. 橘化爲枳(귤화위지)!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되는 꼴이다.
일만 세대 아파트 단지가 칭송받는 대한민국 주거정책과, 대중의 요구를 뒤쫓아가는 철학 없는 우리 사회가 씁쓸하다. 그리고 이런 물질 만능의 부조리가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관계의 비인간화 같은 사회학적 현상도 있지만, 각종 사고도 그 시그널 같다. 최근 광주의 아파트 붕괴사고도 그런 사이드 이펙트가 아닐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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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가입’, 무엇보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Compulsory membership’, above all, present a vision!

현행 건축사협회 임의가입제가 22년 만에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제로 전환된다. 대한민국 내 여러 직능단체들이 잠시 임의가입을 유지하다 오래전에 의무가입으로의 복원이 진행되었음에도 건축사의 의무가입은 이제야 비로소 마무리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반대 입장이 존재하고, 향후 제도 안착 과정이 창창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어려움과 내부의 갈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건축사 역시 법률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사회적 역할과 동시에 국가 공인 전문가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소명이 있다.
의무가입 시행 이후를 대비해 준비하고 개선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무엇보다 건축사의 윤리적 실천이 강조되고 있다. 수많은 건설 현장의 사건과 사고 이면에는 불법과 탈법, 그리고 무사안일과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건축은 문화 예술적인 성과물인 동시에 기술과 공학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사의 비도덕적 부패와 무능은 곧바로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엽적이고 작은 이익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작은 세계에서 생존해야 하는 특성상 카르텔의 필요와 존재에 대한 이해는 되지만, 이것이 무능이나 부패를 합리화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아닌 말로, 누군가의 담당 구역에 다른 지역의 건축사가 들어갈 때 맹목적으로 배척하고 방해해서는 모두가 공멸하는 시간을 앞당길 뿐이다. 모두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시장과 모두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의무가입을 계기로 건축사들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보다 큰 비전을 제시하고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건축사들이 이를 대한건축사협회에 요구해야 한다.
2022년, 대한건축사협회는 우리 사회에 보다 선명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당면한 대한민국의 과제에 건축사들의 해법과 대안이 등장해야 한다.
당장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부동산의 가격 변화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격안정이라는 숫자에 집중한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이로써 도시 공동체, 사회 공동체는 무시되고 의사결정의 뒤안길에 물러서 있다. 건축사들은 부동산을 구체적 결과물로 만드는 전문가다. 가격 중심의 부동산을 뛰어넘어, 건축이 삶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경제적 질서를 선도하는 첨단 지식산업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 문화 예술적 성과가 그 어느 시대보다 크게 효과를 발휘하는 현재, 건축의 가치와 본질을 선도하는 개방적이고 수준 높은 환경을 이끌어야 한다.
향후 몇 년간 이런 미래에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어떠한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설자리가 결정된다.
2022년! 비전을 제시하라!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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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보존, 장소와 도시의 정체성… 더 나아가 국가의 정체성

Preservation of architecture, identity of place and city…
and furthermore national identity

정체성(Identity)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비즈니스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일의 출발에 정체성 분석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도시는 정주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생산과 소비의 공간이다. 과거와 달리 도시 자체가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인큐베이터이자 생산거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기적 고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극도의 경제성과와, 동시에 윤리적이고 인문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한 낮은 이익의 장기적 생산과정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그 도시의 특성, 더 나아가 국가 정체성과도 연결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은 여러 요소들의 인과관계와 집합에 의해 형성된다. 물론 인위적 광고에 의해서 연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속되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에 의해서 국가 정체성이 만들어지는가? 이는 시간의 흐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사회 정치적 행위부터 시작해서 문화적 생산물들이 혼합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의 정체성은 긍정적인 부분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외부에서 연상하는 인식표가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를 보자. 우주항공 산업이 발달한 프랑스는 그보다 패션과 문화, 그리고 로맨틱한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가 접하는 각종 뉴스 등의 정보와,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대중적인 요인들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은 이미지 인식은 유사한 것들이 나올 경우 증폭되어 더 견고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시간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시간의 연속성을 증명해 줄 장치들이 필요해진다.
국가의 장치들은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다. 바로 장소들이며, 그 장소를 구성하는 건축들이다. 장소 또는 도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가장 큰 이미지 요소가 바로 건축이며, 수많은 건축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각각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며 생존, 보호, 보존되고 있다.
자! 서론이 길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증거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시간의 축적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건축은 얼마나 생존하고, 유지되며 보호되고 있는가? 보존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실하다. 흔적은 복원되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보다 과거의 것이 더 가치가 높으며 그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남산의 힐튼호텔(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헐린다는 소문이다.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인 김종성 박사의 역작이다. 김종성 박사는 이미 국제적으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모더니즘 철학을 잇는 수제자로 국제적 명성이 있는 분이며, 힐튼호텔은 그가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든 건축 명작이다. 그런 건축 작품이 헐린다고 하는데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물론 자본과 시장의 논리로 건축이 사라진, 장소와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진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이웃나라 일본의 타카마츠 신의 기린플라자나 신텍스, 이츠코 하세가와의 주택작품도 어이없는 자본가의 매입과 파괴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형편없는 건물이 건축을 대신하며 서 있다. 우리만 이런 것이 아니니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한다.
그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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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흐름…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The trend of our society that has lost its essence…
Architecture is no exception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두 가지 정책은 공무원 등 관료들의 실적과 업적 쌓기에 딱 좋다. 바로 입시 정책과 주택 관련 부동산 정책이다. 전 세계 학계의 이론과 테스트 정책들이 과감히 시도되고, 수도 없이 폐기된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 두 정책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공약 일 순위에서 빠진 적이 없으며, 비판의 대상으로도 일 순위다. 아마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모든 아이디어는 한 번씩 다 시도해본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입시의 핵심은 서열을 정하고 등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내용을 얼마만큼 이해하느냐를 파악하는 것이고, 이해를 바탕으로 그다음 비로소 학문이나 실무 등에 적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은 수많은 교육과정, 그중에서도 국어와 영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언어는 논리적으로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십수 년 교육과정에서 쏟아 부은 공공이나 사교육의 성과는? 대다수가 에세이든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글이든 A4용지 10장을 채워 쓰기 힘들어하고, 외국인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러니 사고 영역인 글의 이해도를 묻는 문해력이 OECD꼴찌다.
27개월간 아이가 해외에서 공교육을 받도록 한 적이 있었다. 영어를 쓰기, 읽기와 말하기, 듣기로 나눠서 하는 수업이었고, 그곳에서도 시험을 봤다. 깜짝 놀란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담당 교사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의 핵심에서 아이의 점수는 교육의 결과에 대한 측정 도구일 뿐이었으며, 문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읽기, 쓰기 수업 강화반을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위해서 친구들과의 토론 시간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측정 결과에 적합한 처방으로 상담을 마쳤다. 등수나 점수가 중심이 아니다. 사실 이것이 맞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런 본질을 빼놓은 채 입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점수를 나노 단위로 나누어서 등수화하고, 아이들을 대학 입시로 내몬다. 100점과 99점 사이가 있다면 아마도 소수점까지 나눠서 구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시험 문제도 해당 수업의 본질보다는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함정 파기에 혈안이다. 문장은 배배 꼬이고, 지문은 갈수록 길어진다. 문장 간의 접속사 수정으로 함정을 만들어 아이들이 빠져들기를 기다리는 문제들이 상당수다. 이쯤 되면 이해도는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빠지고 형식이 기형적으로 과다해진 사회인 셈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현상이 만연하다.
건축분야에서는 특히 건축사 관련 제도가 그렇다. 법과 행정 체계의 중요성은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을 이해하며 책임을 지는 전문가를 내세워 관리한다. 건축사라는 법적 지위가 만들어진 이유다. 그런 책임이 있는 자를 선정하기 위한 건축사 시험제도가 있다.
그런데 최근 건축사 시험제도 관련 논의를 보면, 건축사의 역할이자 본질인 건축을 잘 이해하고 설계할 능력 있는 자를 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입시의 소수점 입학 테스트 기준처럼 건축에 대한 설계 능력과 이해도 비중이 무척 낮다. 더구나 건축사 합격률과 시험 자격으로 논란이 되니 ‘졸업장=건축사’ 동일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질과 환경 악화를 유도하는 것 같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처럼 본인이 설계한 건축 작품을 설명하고 검증받는 ‘대면 발표 시스템’을 왜 도입하지 못하는 것일까? 영국처럼 ‘건축’의 본질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을까?
혹 건축사 시험 자격 자체를 무력화시켜, 아예 건축사 시험을 없애고 자격증을 받게 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