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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물 그리고 문

Shadow, water and door

제월당 © 이종민

건축이란 그림자
건축사사무소에 첫발을 디딜 무렵이었다. 폴 루돌프가 설계한 예일대학 건축학부 건물의 매스와 루이스 칸 건축의 짙은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선명함이 무엇보다 먼저 다가오던 때다. 일종의 매너리즘이었다고나 할까? 도면에 실제의 깊이보다 과장되고 두터운 음영을 그려놓고서야 만족하곤 하였다. 내가 다루었던 밋밋한 상업용 건물에 깊이의 변화가 있다면 얼마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도면에 그려 넣은 현실과 다른 몽환적 그림자는 내가 처한 건축에 대한 카타르시스였으며, 꿈이고 환상이었을 테다.
이후로도 그림자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고나 할까? 내게 그림자는 늘 사물보다 우선 관찰 대상이었다. 사진에 빠져 있을 때도, 이미지란 어느 한 시점에 카메라의 조리개를 통과한 빛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주장하였다. 빛과 동체인 그림자가 유형의 실체를 만들고 빛은 그 속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그림자가 지배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또 흘렀나 보다. 사진, 건축, 그림에서의 내 관심은 여전히 그림자다. 특히 내 건축에 충분히 변주되지 못했던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내가 추구한 욕망이 빛의 일종이었다면 그림자는 내가 이룬 건축의 조각이었을까? 좀체 버리지 못하는 미련 속에 건축이란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인간의 본태(本態)이자 근원, 열망인 물
장 그르니에의 책 한 권을 끼고 제주로 떠난 길은 물을 보러 가는 여정이었다. 비행기 창밖은 경계가 없는 몽환적 풍경이었지만, 나는 분명 거대한 수면 위를 나르고 있을 터였다. 철학자는 ‘여행이란 일상적 생활 속에 졸고 있던 감정들을 일깨우는 활력소’라고 썼다.
사방이 물인 내 고향 부산에서 또 다른 물을 보러 간다는 묘한 상황에 나는 꽤 흥분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을 물의 동네에서 살았다. 육지의 끝은 어디에나 물이 있었고, 육지의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수십 분 내에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물을 건너기도 하였다. 건축을 배운 이후로는 타지마할이라는 보석을 띄운 무굴제국의 물과 펜실베이니아 어느 골짜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궁금했으며, 그때마다 여름의 소쇄원과 겨울의 안압지를 찾곤 하였다.
본태박물관의 물은 당돌하고 극적이었다. 지형의 변화를 자연스레 이어주는 데에 물만 한 것이 있었을까? 마치 경계를 버리고 번진 수채화의 한 폭처럼, 건축사는 딱딱한 물성의 콘크리트 사이에 물이라는 무형의 자유 물질을 끼워 넣음으로써 은폐된 기하학의 틈에 몽상을 끌어넣고 있다. 배경이 아닌 이 물은 스스로 형태가 되고 있다. 나는 본태(本態)란 말의 뜻에 물의 이미지를 겹쳐보았다. 아~ 물은 인간의 근원.
반면 방주교회에서의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짐작한 대로 그저 물로 누워있을 뿐이다. 스스로 형태를 만들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물의 희생적 속성. 무척 종교적이었다 할까? 어쩌면 건축의 본질 또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그런 대승적 존재감 말이다. 다시 말하여 그 속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기능 앞에 기꺼이 배경이 됨으로써 건축이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사물이 된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 그 인간과 합일된 존재로만 고양될 그런 숭고함 말이다.
물의 그러한 정적을 깨트린 것은 일순간의 바람이었다. 그 잔잔한 파문에 이 훌륭한 창조물은 생명으로 빛난다. 비로소 박제에서 깨어나는 건축, 무형의 것들이 만들어 내는 유형의 풍경. 아~ 물과 바람의 장단.
다시 장 그르니에를 읽는다. “이런 몽상은 그렇다고 하여 결코 씁쓸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물은 내게 특별하여, 물에 대한 열망은 내 건축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고, 때론 날개를 달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몽상한다. 끝내 물을 곁에 두리라. 오호라! 세상의 절반은 물. 그런 물은 인간의 본태였으며, 방주를 띄운 바다였고, 도시인들이 의지할 최후의 보루이며, 가난한 건축사에겐 하나의 열망이 되기도 한다.

 

문(門)다운 문
500년 전 양산보 선생께서 거소를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이름 짓고, 뒤뜰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뒷문으로 흘러드는 매화향을 맡으며 맑은 달을 바라보려던 마음이었다. 그날 나는 그곳에 앉아 조상의 거소를 지키다 돌아가신 양산보 선생의 후손 故 양재영 선생을 기리며, 제월당 마루에 앉아 뒤뜰에 나무를 심은 두 선비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매화나무가 멍울조차 맺지 못했는데, 마루에 앉은 내 마음이 애절하고 급했다. 조선의 화가 김명국이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를 그려 놓고 매화를 기다린 마음이 그러했겠지. 눈을 밟는 심정이 어찌 나와 달랐을까?
무등산 자락의 소쇄원은 늘 그리운 곳이다. 15년도 더 된 어느 여름, 그곳을 방문하고 탐방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소쇄원을 지키던 양재영 선생께서 읽고 연락을 주셨다. 소쇄원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2009년에 선생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어찌하여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지난 일들을 회고하게 된 것이다.
탐방객이 밟는다고 노란 복수초를 옮겨 심고 있던 선생의 동생께서 내 넋두리를 듣고 반가워했다. 지금은 자신이 소쇄원을 관리한다고 했다. 내가 매화가 곧 피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제월당 뒷문을 열고 “매화 향기가 이리로 들어 광풍각으로 흐르지요.”라고 말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멍울조차 맺지 못한 매화나무에서 모종의 향기가 내게로 확 달려든다. ‘아~ 이것은 꽃의 향기인가? 문의 향기인가? 아니면 사람의 향기인가?’ 나는 비로소 문다운 문을 만나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여전히 날이 차가웠던 어느 날, 나는 찍어온 사진 속의 문을 열고 매화 한 그루를 그려 넣었다. 어찌 선비의 마음에 빗댈까마는 흉내 내어 심매도(尋梅圖)라 이름 붙였다. 봄을 맞아 들뜬 심정이었고, 옛 선비의 고고한 삶이 부러웠던 탓이다.

건축이란 인간의 갈망을 구축하는 일. 나는 그 이미지를 쫓는 나비와 같은가? 그림자, 그리고 물. 너무나 모호하여 그저 백일몽 같았던 그것들은 늘 외면할 수 없는 향기가 되어 문을 빼꼼 열고 나를 유혹한다. 그럴 때마다 얼른 꿈속에서 깨어나 굵은 연필로 그것들의 이미지를 긁적거려 그려 보는 것이다.

 

글. 이종민 Lee, jongmin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의 대표이며, 현재 부산광역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광역시건축사회에서 발간하는 건축사신문 논설고문이자, 부산일보 집필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j71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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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림의 슬기

The wisdom of counting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가 인두를 이용해 저고리 동정을 다림질하신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인두를 숯불에 올려놓고 적당한 온도에 다다르면 동정을 다림질하셨다. 그때 인두가 너무 달궈지면 동정이 손상되므로 적정한 온도에 기준을 정하기 위해 어머니는 소리 내어 셈을 하시곤 했다. 이윽고 수차례 인두 다림질을 마치고 동정이 반듯하게 다려지면, 동정 달기 바느질을 하시고 어머니는 일을 마치셨다.

어머니 하시는 일을 도와드릴 나이가 안되었고 손도 서투르므로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 기억이 나는데, 중요한 사실은 정확한 시간을 기다려서 알맞은 온도를 이용하여 해당 일을 균등하게 적용시킨 후, 원하는 품질로 일을 마친다는 지혜를 배운 것이다. 그 헤아림의 슬기는 나의 인생에 많은 적용을 가져왔다.

나는 아침에 잠이 깨면 기지개를 켤 때 셈을 열 번 한다. 좌로 몸을 비틀어 셈을 균등하게 하고 우로 비틀어 동일하게 한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지난 하루에 맛있게 섭취한 영양분을 활용하고 난 후 버려야 할 것을 시간 3분 이내로 정해놓고 배출한 후, 몸을 씻는다. 그리고 양치질에 셈을 또 적용한다. 왼쪽 아랫니 안쪽에 칫솔질을 셈으로 20번 하고, 아랫니 상부 면을 동일한 셈으로 하며 우측을 또 그런 식으로 한다. 아랫니에 했던 방식으로 윗니를 양치하고 앞니 역시 동일하게 하고 난 후, 앞니 아랫니 앞면을 3등분 하여 동일한 셈으로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건치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어느 날에는 거울을 보다가 나의 이가 누렁니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양치질 시간과 나의 시간을 비교하여 보니,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나는 1분 미만, 어머니는 3분 30초…. 이를 너무 박박 닦으면 치아 면 상아질과 잇몸에 손상이 오므로 박박 닦지 않으시고 꾸준하게 양치질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나의 양치질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를 적용하여 5분 정도(혓바닥 닦기, 물 헹굼 포함)의 시간 동안 이를 닦고 나니, 나도 이젠 건치와 이전과 비교하여 하얀 이를 가지게 되었다.

설계 일을 하면서도 헤아림의 슬기를 적용한 경우가 있었다. 손으로 도면을 작도하던 시절에는 연필이나 샤프펜슬로 트레이싱지에 작도하게 되는데, 특별히 도면을 고급으로 작성하여 납품하거나, 수없이 많은 청사진 작업에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는 고급 품질의 도면을 만들어 내야 할 때에는 ‘로트링’이라는 특정 제품의 만년필 도구로 고급 비닐 트레이싱지(트레팔지)에 잉킹을 하여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그러다가 자칫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삼각자나 수평 작도용 아이 자가 닿으면 잉크가 번지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엔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린 후 돌돌이라는 전동 지우개를 이용하거나, 특별히 제작된 잉크 지우개를 이용하여 지워야 다음 일을 하게 되므로 무척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셈하며 기다리는 지혜는 아주 유용하게 적용되어 그림을 잉킹하고 난 후 속으로 셈을 하면서 마르기를 기다리면, 번지거나 지우는 일 없이 일정하고도 반듯하게 그림을 그려서 설계 업무를 마친 적이 있었다. 도면을 완성한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설계도를 한참 감상하면서, 어릴 적 눈과 귀로 배운 어머니의 ‘헤아림의 슬기’에 감탄하곤 했다.

일상생활에도 많은 부분을 적용하는 사례는 또 있다. 나는 건강관리 스포츠로 일주일에 1번 맑은 날씨를 골라 토, 일요일 중에 10킬로미터 마라톤을 하고 있다.
나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해보았다. 테니스, 족구, 야구, 축구, 골프 등. 그러나 위에 열거한 운동은 허리 축을 중심으로 몸을 비틀어서 하는 운동이므로 늙어서까지 지속적인 운동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척추 관절 전문가의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척추, 무릎, 발목에 무리가 오지 않은 운동인 10킬로미터 마라톤이 내 몸에 가장 적당하고 지속 가능한 것임을 자각한 후, 마라톤을 배우게 되었다. 마라톤 학습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졸고 ‘마라톤을 합시다(월간 건축사 VOL.638[2022.06월]호 수록)’를 참고하기로 하고 헤아림 적용 사례를 이어가 보자.

마라톤은 시작 전 그리고 뛴 후 몸풀기, 즉 스트레칭을 잘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좌우 대칭의 몸 근육을 효과적으로 스트레칭하는 일에도 셈은 적용된다. 각 부위 스트레칭을 열을 세면서 하고 골고루 실시하면 부상 없는 마라톤을 즐길 수 있다. 밀레니엄 시대 전인 1999년 마라톤을 배워 운동한 지 벌써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인생 말년까지, 다시 말해 한계 수명에 다다를 때까지 평생 하고픈 운동 욕심 중 하나가 주 1회 10킬로미터 마라톤이다. 원활한 유산소 운동에 신진대사 촉진, 그리고 뇌의 혈류량 증가로 언제나 싱싱한 아이디어 창출, 건전한 정신 함양, 맑은 마음가짐 유지 등이 마라톤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이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동창의 집들이를 갔다 캄캄한 밤에 계단을 내려오면서 연탄아궁이 맨홀에 빠져 왼쪽 어깨가 맨홀 턱에 걸치면서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그저 파스로 대신하며 큰 생각 없이 수십 년 방치했었다. 이후 왕년에 잘했던 턱걸이가 안 되었는데 근래 무리한 골프 연습과 쏘가리 루어 낚시를 자주 다니면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정형외과에 가서 MRI와 CT 촬영을 해보니 회전근개 근육 중 극상근이 찢어져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건강, 실손 보험이 잘 적용되는 시대니까 어깨 근육 리모델링을 위해 수술을 하고 재활운동을 했었는데, 재활운동은 회전근개 치료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 악물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셈의 진리를 활용하여 7개월을 재활하고 나니, 이젠 이전의 다친 근육보다 더 싱싱한 어깨 근육을 보유하여 골프, 쏘가리 루어 낚시, 방패연 날리기를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하고 있다. ‘말년에 수술하느니 그냥 쓰다가 가지 뭐’라는 마음가짐보다 전문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리모델링하고 재활치료하면서 몸의 뼈, 근육을 바로잡아 흐트러지지 않는 축을 유지하며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지혜를 여기에도 적용한 것이다.

인생 지혜 중 하나인 헤아림의 슬기를 어머니로부터 배운 후, 나는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고 싱싱한 몸과 근육 놀림 그리고 맑은 뇌와 건전한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설계도면을 그리고 건축을 하며, 쏘가리 낚시를 즐기고, 기타 반주를 이용한 노래를 만들어 흥겹게 부르면서 살고 있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문학작가·뮤지션

조정만(趙正滿)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성원고,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 선함재 건축을 설립, 강원 청암재,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동교 주상헌, 대방동 H빌딩 등을 설계했다. 2021년 이후에는 미단시티 G오피스텔, 옥천Y주택, 대청호 수연재, 마포 K오피스텔 등을 설계하고 있다. 2016년 봄에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2022년 여름에 취미를 주제로 ‘쏘가리’, ‘꽃과 빛망울의 하모니’ 창작곡을 디지털 음원으로 발표하였다. 현재 건축사, 문학작가,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고 저서로는 산문집 『요원의 들불처럼』이 있다.
imatec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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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아날로그의 추억

A stubby pencil, analog memories

호랑이 담배 피다 금연할 즈음, 연필을 깎아 도면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실습생 때부터 얼마간 모아온 몽당연필. 왜 그딴 걸 모았느냐구? 기인 같았던 선배 한 분께서 무조건 그러라고 해서다.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사무실에선 모든 드로잉을 할 때 샤프가 아니라 반드시 연필을 쓰게 했다. 점점 짧아지면 볼펜대에 끼워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쓰다가 검사받고 새 연필을 타 쓰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벌꿀 유리병에 몽당연필이 반쯤 채워졌을 무렵 그 선배는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취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네놈이 끝까지 설계밥을 먹을지 아닐지 내 알 바 아니나 혹여 연필 가루 계속 마시고 있다면 강산이 몇 번 변한 아주 먼 훗날, 저 몽당연필이 박물관에 갈 수도, 쓰레기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 건 너 하기에 달렸고, 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99.99퍼센트겠지만 말이야. 껄껄껄.”

이후에도 선배는 종종 취기가 달아오르면 무심한 듯 몇 마디를 툭툭 던져 주곤 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박봉에 청사진 심부름이나 다니는데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다른 길 알아보는 게 어때?” 대다수는 장난기 가득한 놀림이었지만, 간혹 진지한 눈빛으로 어리바리한 초년병의 갈피를 가다듬어 주기도 했다.
‘지금부터 틈만 나면 열심히 끄적거리는 버릇을 길러라. Graphic Thinking, 우리의 언어는 그림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화가의 그림과는 다르다. 그들의 그림은 그 자체가 완성된 작품이지만 우린 과정이다. 머릿속 생각,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그림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거라.’

이후 옮겨 간 두 번째 사무실, 설계실 벽면과 도면함에 가득한 투시도, 계획도면 스케치, 현란한 터치와 세련된 마카 컬러링,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디테일 스케치, 대체 누구의 작품인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당시 얼마 전까지 실장님으로 계셨다가 건축사가 되시어 내가 입사하기 바로 직전에 딴 살림을 차리신 분이었다. 온통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사무실 곳곳에 남아 있는 그분의 흔적들, 글과 그림, 음악을 비롯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예술적 조예, 그를 닮고 싶었다.

일전에 위의 에피소드를 잠깐 SNS에 올렸더니 멘토와도 같은 그 선배께서 얼마 전 책을 한 권 권해 주셨다. 노년의 한 건축사와 그를 존경하는 젊은 후배의 담담한 건축 이야기를 다룬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책이다. 그 속에 비슷한 몽당연필 에피소드가 있어 놀라셨다며….

언젠가는 지인 한 분께서 디지털 시대에 허름한 내 연필 스케치 몇 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외국인 건축주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남해 여자분과 결혼한 스페인 귀족 집안 출신의 젊은 이 양반은 아내의 고향에 부부의 한국 별장 겸 장모님을 위한 전원주택을 짓고자 했다. 몇 장의 스케치가 오고 가고 출국 전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설계비는 한 푼도 깎지 않았으며, 몇 가지 요구사항 외의 모든 것은 건축사에게 맡겨 주었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집이 다 지어지던 날 난생처음으로 눈이 파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와 선물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린 이후,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네 번째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당연히 기인과도 같은 그 선배의 예견은 정확했다. 0.01%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벌꿀 유리병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쓸려온 세월 속에서도 어느 한구석에 용케 숨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옛 생각도 나고 해서 병뚜껑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선반 한편에 올려 두었더니, 오가는 사람마다 유물 바라보듯 호기심을 뿜어낸다. 어느 날엔가 체대 교수 한 친구가 저걸 쏟아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가더니 며칠 후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훈련, 연습, 숙달, 뭐 이런 관련 수업 시간에 몽당연필 사진을 보여 주었단다. 내 친구 건축사인 한 인간이 진화해 가는 피땀 어린 산물이 어쩌고저쩌고…, 물론 지나친 과장과 거품을 덧칠해가며 뻥튀기를 했을 것이다.

박물관은 애초 글렀고 저런 용도라도 쓰였다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건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무엇 하나 내세울게 변변치 못한 물건들 가운데 가장 정감 어린 녀석이 될지도 모를 일, 그저 초라한 범부의 모습이 현실일망정 사실 저 몽당연필 속엔 설익어 투박했으나 푸르렀던 한 시절, 내 청춘의 땀과 추억이 녹아 있음은 분명하니까…….

 

글. 조형장 Cho, Hyungjang 건축사사무소 메종

조형장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메종

동아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양산시 공공건축가 및 부산광역시건축사회, 부산건축제 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해양디자인기술연구원 부원장 겸 전략기획본부장직 등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최근 주요 프로젝트로는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항만개발계획수립’, ‘신전항 어촌뉴딜선정 총괄계획수립’, ‘부산남항 일대 재창조 마스터플랜’, ‘홍티예술촌’, ‘해운대 파라드호텔’ 등이 있으며, 2020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jec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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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

Gimje Byeokgolje

서기 330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1700년 전의 사건을, 삼국사기는 이렇게 담담히 전하고 있다. 이른바 벽골제의 초축(初築)에 관한 얘기다.

二十一年 始開 碧骨池 岸長 一千八百步
(이십일년 시개 벽골지 안장 일천팔백보)

삼국사기 관련 기록

흘해왕 21년에 처음으로 벽골지(碧骨池)를 축조하였는데, 그 둑의 길이가 1,800보(步)였다고 한다. 1,800보(步)가 어느 정도인지는 단위 환산에 따라 다소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길이는 약 3.8킬로미터에 이른다. 무려 십 리(里) 길이다. 자동차 운행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3.8킬로미터의 거리는 눈 깜짝할 새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짧은 거리’이겠지만, 멀고 먼 저 옛날 그것도 초기 철기시대에 맨몸으로 땅을 파고 밟고, 또 흙과 돌을 이고 지고 하면서 저 거대한 제방(堤坊)을 축조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게 수두룩하다. ‘김제 벽골제’라고 하면, 다들 교과서에서 학습한 대로 ‘삼국시대 저수지’ 정도로 알고 있겠지만, 과연 그게 백제인들에 의해서 축조된 것인지, 아니면 그때까지 백제의 세력이 미치지 못했던 탓에 그 이전부터 서해안 남부지역에 군림했던 마한(馬韓)의 어느 부족국가가 축조한 구조물인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 우리는 일단 ‘농업용 저수지’로 알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방조제설’, ‘저수답설’, ‘다목적설’ 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그 논란도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일견 모두 다 맞는 말이다.

어쨌든 그 실체가 완전히 규명될 때까지, 1700년 전의 사실(史實)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게 애초에 제방을 쌓고 수로(水路)를 열 줄 알았던 삼국시대 우리 선조들의 지혜인 것처럼, 근현대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거쳐오면서 우리 선배들이 붉은 피를 뿌려가며 열어젖혔던 이른바 언로(言路)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김제평야의 한복판에서 아무 말 없이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는, 그 벽골제 앞에 나는 다시 또 발걸음을 멈췄다. 때로는 저 태평양의 외딴 이스터섬에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남겨진 ‘모아이 석상’을 대할 때처럼, 때로는 이 한반도의 남동쪽 대곡천의 거대한 암벽에 신석기인들이 정성껏 새겨놓은 ‘반구대 암각화’를 응시할 때처럼, 우리 문명의 시원을 열어젖힌 그 거대한 역사의 흔적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벼운 전율마저 느껴졌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지금 우리 건축사들이 건축주와 공무원에게 고비 때마다 시시각각 시달려가며, 밤새 일궈낸 노력의 산물이 이렇게 역사의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게 후세에 다시 또 의문투성이의 ‘모아이 석상(石像)’이 될지, 아니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남을지, 그것도 아니면 노트르담의 꼽추로 더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가 된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더 거듭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기원전 15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그린 어느 구석기인도 우리처럼 몇 번을 망설여가며 기본안을 구상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대곡천 반구대 암벽에 바다 위를 치솟아 오르는 고래를 새겨 넣던 그 신석기인의 손끝에도 온갖 피멍이 맺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에 참여한 설계자도 간밤에 미열로 고생하던 딸아이 걱정을 하며 서둘러 설계 작업을 마무리해놓고는, 점차 형체가 드러날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득히 먼 그 옛날에도 힘들고 고독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힘이 들고 고독하니, 하나둘 변하고 흩어지길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때가 되면 순서만 다를 뿐 모두 다 무대에서 내려와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지게 된다.

그 옛날 그때도, 간밤엔 소쩍새 소리가 밤새 그칠 줄 모르고 귓전을 울렸을 테고, 또 이른 아침이 되자 대문 밖 기와지붕 망와(望瓦)에 올라앉은 종달새는 꼬리를 촐싹대며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그 소쩍새와 종달새마저 모두 다 사라지고 난 지금, 마침내 그 거대하고 찬란한 구조물만 우리 앞에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벽골제의 전설 속 쌍룡(雙龍)

벽골제 수문 장생거

그런데 벽골제 전설 속에 까마득히 묻혀있던 청룡과 백룡이 다시 또 경천동지(驚天動地)하며 나타난 것인지, 한바탕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선거유세 차량이다. 목청조차 날카롭기 그지없다. 애써 민심을 구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휴대폰으로 속속 접수된 문자 메시지에서도 이제는 염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겨우 4년 더 먹고살자며 그리 애걸복걸한다.
아, 그런데 우리는 4년이 아니라, 한두 세기(世紀)를 뛰어넘어 저 먼 후대까지 길이 전승될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지 않던가? 저렇게 애써 남에게 구걸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내면으로만 침잠해가며 가시적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해 여태까지 숱하게 밤잠을 설친 게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지금 이 시대의 언어로 창출해서, 바로 이 지점 우리들의 생활상을 저 먼 후세에 전달해 주고자 그렇게 안간힘을 쓴 것이기도 하다.

엄중한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보면 사관(史官)이기도 하고, 형태를 빚어낸다는 측면에서 보면 조각가이기도 하며, 우리 실상을 하나의 프레임을 통해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소설가이기도 하다. 또 이 지구상 어느 한 지점의 좌표를 선정하여 인공구조물을 덧붙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조물주의 속성도 동시에 지닌 것 같다. 그러니 결코 간단하거나 만만한 일은 아니었던가 보다. 예로부터 집을 뜻하는 우(宇)와 주(宙)를 합쳐서 우주(宇宙)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그렇게 거창한 일이었다. 작디작은 집 하나에 우주를 통째로 담아내다니!

김제 벽골제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기디온(S. Giedion)의 저서 『공간, 시간, 그리고 건축(Space Time and Architecture)』을 떠올리게 되었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실체를 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건축사(建築士)라는 직업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내 다시 좁디좁은 사무실에 돌아와 캐드 자판을 연신 두드리고 ESC 키를 남발하고 있지만, 이 사소한 손짓 하나로 인해 암벽에 새기고 평지에 구축하고, 또 석상(石像)을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무실 구석을 혼자 지키고 있는 것조차 이제 외롭지 않게 되었다.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 건축사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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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합시다

Let’s run a marathon

무슨 일이든지 체험담을 얘기하는 것이 실감 나고 바로 적용이 가능하기에 경험 위주로 말씀드리지요. 본인은 원래 축구도 좋아하였지만 대학교 졸업 후 테니스에 상당히 심취하여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테니스 단식 게임을 해야 잠이 올 정도였습니다. 조기 축구회에도 가입하고자 하였으나 마눌님의 휴일 운동 금지령과 더불어 가족을 배려하고, 특히 주일에 주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조기 축구가 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테니스에 더 심취했지요. 그러나 이 운동은 짝이 있어야 가능한 운동이라, 파트너가 없으면 테니스장을 나가기가 두려웠었죠. 테니스를 같이 하시던 분들이 전근을 가시고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짝이 없어지고… 파트너가 없이 운동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동안, 근 1년을 운동을 멈췄더니 몸 여기저기서 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소화불량에 대장염이 오고 살이 찌면서, 뭐든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기에 병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기 시작하여 감기 몸살과 두통 그리고 늘어나는 체중. 뱃살로 아, 이러다가 당뇨라도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친형이 당뇨가 왔거든요. 형하고는 유전자가 워낙 비슷하여 전화로는 형과 제 목소리가 구분이 안갈 정도니, 당뇨는 예정된 수순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을 상당히 좋아하는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상주감리 현장에서 공사과장이었어요. 그 양반 하는 말이 “건축사님, 마라톤 시작하셔야겠는데요.” 반대로 저는 “나하고 테니스 합시다” 그랬죠. 했더니 그는 억지로 저를 끌고 마라톤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는 그러실 겁니다. 마라톤이 조깅과 별반 차이 없으니 뭐 가르쳐 주고 자시고 할 것 있나?
아닙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마라톤은 체계적이고 조심스럽게 배워야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제 집 근처 운동장을 하나 물색하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뛰는 데 지장이 없는 곳으로 말이죠. 그리고 조깅과 마라톤의 차이점을 하나 짚어가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별 준비 없이 그냥 간식 먹다가 대충 옷차림으로 운동장이나 도로에서 달리는 것이 조깅입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최소한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릴 수 있기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준비는 다름 아닌 공복에 뛰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음식물 섭취 후 3시간 이상은 지나서 위에 음식물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보통 마라톤을 할 때 이 점을 묵과하기에 뛰다가 복부 팽만감으로 인한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달리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점을 알면서도 사무실에서 우연히 간식을 먹고서 달리다가 중도에 한참 쉬고 다시 달린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복! 이 점을 중시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스트레칭에 관한 점입니다. 몬주익의 히어로 황영조 선수가 직접 가르쳐준 내용이므로 신빙성이 있습니다. 황영조 선수는 스트레칭의 기본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근육과 관절을 푸시기 바랍니다. 푼다고 하니 꼭 뭘(?) 퍼내는 것 같은데, 먼저 발가락과 발목 돌리기, 또 손가락 풀기, 손목 돌리기 등 심장에서 먼 곳에서부터 스트레칭 동작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잘 하면 몸에 땀이 납니다. 잘하는 것의 기본은 무엇이냐 하면, 카운트를 정확히 세면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저는 정확히 세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합니다.
“하나, 두울,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꼭 두 음절을 맞추며 말입니다.
서이 너이를 세다 보니 ‘사투리의 비애’ 라는 개그가 한 토막 생각나는군요. 예전에 장 일병이 군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하여 수송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차, 고참 상병이 볼트를 소리 내어 셀 일이 있으니 소리 내어 세라고 하여, 우리의 장 일병 용감하게 셈했습니다.

“하나, 두울, 서이, 너이”
“퍽 – ”

“얌-마, 누가 군대에서 사투리 쓰라고 했어, 다시 세-”

장 일병 눈물을 찔끔 머금고 다시 셌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야달”

다시 “퍽-” (긴 글이라 우스개소리 한 토막을 넣었습니다.)

그렇듯이 셈을 할 때보다 더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면 5분 이상 소요됩니다. 이제 스트레칭을 하셨으면 운동장에서 뛸 준비를 합니다. 가벼운 운동복과 조깅화를 신고서 말이죠. 조깅화는 가능한 쿠션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장을 달리기 전 심호흡하시고 과연 내가 이 운동장을 몇 바퀴 돌 것인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뜁니다. 뛸 때 처음 5분은 아무 생각 없이, 부담 없이 뛰시기 바랍니다. 달리다 보면 ‘이게 장난이 아닌데’ 할 때가 옵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목에 생침은 넘어오고 ‘근데, 내가 지금 몇 바퀴를 뛴 건 가?’ 하는 의구심과 싫증이 몰려옵니다. 그때 일단 멈추십시오. 거기까지가 오늘의 한계입니다. 분명히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하는 마라톤은 건강을 위함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10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 1주일에 1회 뛴다는 목표를 정합니다.

이제 운동장에서 한 번이라도 뛰신 분들은 운동장 몇 바퀴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대단한 벌칙은 아니더라도 여름 날 땡볕에서 지각 때문에, 또는 수업 시간에 졸다가, 또는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등등. 이제 벌로 뛰는 것하고 작심하고 뛰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동기부여가 다르거든요. 건강을 위해 달리는데 뭐가 모자라겠습니까? 우리 신체는 참으로 독특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그 예로, 어제 한 일이나 체험을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다시 그 부분을 실연하면 진보적으로 더 잘 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중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콘서트를 해야 하기에 어떤 곡을 연습했는데 그날따라 연습이 잘 안되어 ‘이상하다, 내 실력이 많이 줄고 있나?’고 생각했으나,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그 부분을 다시 연습하니 어제보다는 신기하게 잘 연주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높이뛰기의 세계기록 보유자가 매일 진보된 높이를 연습하기 위해 키 잘 크는 속성수를 마당에 심어 놓고 매일 뛰어넘기를 하여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는 등의 사례는 우리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 예를 보더라도 운동장 몇 바퀴를 뛰고 나서 다음번에 뛸 때에는 그보다 더 뛸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제는 5바퀴였으니 오늘은 몇 바퀴일까 생각하며 달려보면 분명 더 돌 수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희열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뛸 수는 없으니, 차근차근 시간 나는 대로 뛰어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에 6일 달리셨다면 하루는 필히, 반드시, 기필코 쉬셔야 합니다. 몸에 무리가 따르며 바퀴 수가 늘지도 않습니다. 운동량을 셈하는 데에도 이렇게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처음 스타트 점을 뛰실 때 ‘ZERO!’를 속으로 외칩니다. 그리고 한 바퀴가 되면 ‘하나!’, 두 바퀴째는 ‘TWO!’, 세 바퀴에서는 ‘셋!’, 네 바퀴에서는 ‘FOUR!’. 이렇듯 우리말과 영어를 홀짝으로 번갈아 가며 사용하시면 셈하는데 헷갈리지 않습니다. 에이 설마 잊어버리려고? 하신 분들. 달리다가 분명 기억이 잘 안 나면 이 글이 생각날 것입니다. 자, 그러면 몇 바퀴를 뛰어야 10킬로미터일까요? 잘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동네 운동장의 트랙은 200미터 트랙입니다. 클 경우 400미터이고요. 또 운동장 바깥을 돌 경우는 경우에 따라 다 다르겠지요. 그러나 거리를 셈하는 것도 통상적으로 키가 170센티미터인 경우 뜀박질 보폭은 75센티미터이므로 10보면 7.5미터, 100보면 75미터, 이런 식으로 계산해 보면 운동장 한 바퀴가 몇 미터 인지는 금방 셈이 됩니다. ‘뛰는 데, 힘든데 셈은 무슨?’ 그런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찬바람 씽씽 부는 한강변 둔치나 중랑천, 양재천, 홍제천 등 고수부지에 이정표가 있는 자전거 도로에서 달리셔도 무방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꼭 보온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랫도리는 보온용 팬티를 겹으로 입고 달리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특히 한강변이나 각종 천변에 자전거 도로와 인라인스케이트용 광장을 만든 것에서 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한강 둔치 자전거 도로와 이정표는 마라톤을 즐기는데 무엇보다도 좋은 시설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저녁노을이 지는 한강변에서 뛰고 있는 자신을 말이죠. 영상매체 CF 속의 주인공이 남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도로변 마라톤은 잘 하지 않습니다. 특히 서울 시내에서만큼은 도로변 마라톤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강변이나 양재천, 홍제천 등에서는 잘 합니다. 공기 때문이죠. 반면, 시골 지방도로에서는 곧장 합니다. 특히 주차할 곳을 물색하여 그곳에서 차로 5킬로미터를 가서 지점을 체크하고 돌아와서 주차하고, 옷을 갈아입고 뜁니다. 수주한 프로젝트 중에 충북 영동에 상가 빌딩이 있었는데, 건축주께서 설계는 물론 공사감리와 감독까지 맡아 달라고 하여 일주일에 1회 지방엘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나중에 유지관리까지 하여 3년 넘게 일한 적이 있었지요. 다행히 저는 그곳에서 일주일에 1회, 지방도로에서 마라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비단결처럼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바로 사이에 두고 돌아가는 충북영동의 지방도로는 한적한 만큼 공기도 좋고, 시야에 들어오는 기가 막힌 산천 초야의 풍광, 사시사철 바뀌는 풍광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달리는 마라톤의 쾌감…….
지난 올림픽 때 이봉주 선수가 금메달을 당연히 딸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TV를 시청 하던 중 모 감독이 해설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아, 마라톤에도 오르가즘이 있습니다” ……??

아니, 그 대목에서 네티즌들 난리 났었죠. 방송에 부적합하다느니, 상스럽다느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느니…… 그런데 마라톤을 하다 보면 고통이 극도에 달하는 시각 점이 옵니다. 즉, ‘사점’에 이르는 시각을 말하죠. 10킬로미터를 뛰게 되면 빠르면 10분 정도, 또는 사람에 따라 그 속도에 따라 약 30분 정도 후에 그 사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지점을 통과하게 되면 일종의 짜릿한 희열이 몰려오게 되는데, 그 감정을 우리의 감독 선생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네티즌 중 일부가 발끈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마라톤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어려운 것 아니거든요.

마라톤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아픈 데가 생깁니다. 당연지사 안 쓰던 근육과 관절을 쓰니 아픔이 몰려오는 게지요. 그럴 경우 분명한 처방이 있습니다. 거창하게 병원에 갈 일은 아닙니다. 우선 약국에 들르셔서 얇고 화끈한 찜질 파스를 삽니다. 가위를 이용하여 파스를 가로, 세로 각 1.5센티미터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릅니다. 어른 큰 손의 엄지손톱만 하지요. 그것을 아픈 부위에 야무지게 붙이고 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뛰는 가운데 소염, 진통 해소가 됩니다. 침을 맞는다고 생각하고 꼭 붙이고 뛰십시오.

축구를 열심히 하다보면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도 그렇고, 우리의 이영표 선수도 그렇고, 차두리 선수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부상입니닷!!” 의욕과 부딪힘의 쌍곡선에서 한 가닥 삐끗하여 생긴 부상, 그리고 여러 경로로 생긴 부상이 아주 복병인데, 부상으로 울고 지새는 가슴 시린 기억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벤치에서 구경만 할 때, 또는 아파서 수술대에서 이 악물며 참아야만 했던 그 시련들. 링거 병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부상의 악몽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아파해야 했습니까?
마라톤도 열심히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립니다. 먼저 부분 별로 부상이 옵니다. 좀 뛰면 발목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며, 허벅지 뒷근육이 당기고 심지어는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합니다. 힘들기는 힘든 운동입니다. 그렇듯이 부상은 마라톤이나 축구나 예외를 두지 않고 따라다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운동 마니아분들 중에 약이나 보약을 경시하는 경우를 종종, 이따금씩 보게 되는데요. 꼭 그렇게 영양보충에 대해 백안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땀을 흘리게 됩니다. 땀의 성분이야 마이크로 체로 걸러서 성분 분석을 하다 보니 뼈에 또는 몸에 좋은 영양분이 같이 빠져 나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더군요. 마그네슘, 칼슘, 고단백 등등 말이죠. 그래서 심한 운동을 하고 나서 또는 노동을 하고 나서 자주 한마디씩 하는 그 말.

“아, 오늘 육수 무지하게 뺐네….”

그 말이 맞죠. 육수가 엄청나게 빠지니 당연히 여러 군데 영양 부실이 오기에, 그 영양을 필히 보충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약사와 상담하시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메이커, 흔히 얘기하는 마데(made) 제품으로 고르셔서 필히 영양 보충을 하시기 바랍니다. 골다공증, 무릎관절 약해진 것, 근육이 잘 뭉쳐서 경기 중 누워서 하늘로 발 자주 올리시는 분, 얼굴에 윤기가 없는 분, 일을 하다 보면 눈 밑이 파르르 떨리시는 분 등등. 정말 필히 권장해 드리는 바입니다. 약장사를 오래 해서 미안합니다만, 아무리 지나쳐도 무리는 아니므로 필히 약국에 가셔서 영양제를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노안이 오신 분들을 위해 복합으로 안영양제까지 곁들여 나옵니다.

자, 이제 ‘마라톤을 합시다’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을 가장 큰 보배로 여기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실천을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실천을 하려면 외우십시오. 옛말을.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자, 마무리 하면서 마라톤을 하기 전 몇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하나, 공복에 뛰자. 정 배고프면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마시고 준비하자.
둘, 스트레칭을 하자. 심장에서 먼 곳부터 풀자.
셋, 스트레칭 후 뛸 장소에 도착해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초반(6분 정도)에는 천천히 뛰자.
넷, 뛰면서 가끔씩 팔 다리를 쭉쭉 펴주고, 숨이 가쁠 때면 입을 크게 벌려 뛰자. 호흡은 입과 코, 온몸으로 하자.
다섯, 뛰다가 힘들면 ‘난, 지금 청량음료 광고 CF를 찍는다’고 생각하자.
여섯, 다 뛰고 난 후에는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자. 이제는 역순으로 심장에서 가까운 곳부터.

참, 중요한 것 한 가지! 마라톤을 하다 보면 뇌세포가 질서정연하게 정리됨을 느낍니다. 업무에 어려운 점, 조직관리, 서류 정리 등 복잡한 머릿속이 컴퓨터 조각 모음을 하듯이 착착 정리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도 이제 이 마라톤의 이 황홀한 세계에 함께 한 번 빠져 봅시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문학작가·뮤지션

조정만(趙正滿)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성원고,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 선함재 건축을 설립, 강원 청암재,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동교 주상헌, 대방동 H빌딩 등을 설계했다. 2021년 이후에는 미단시티 G오피스텔, 옥천Y주택, 대청호 수연재, 마포 K오피스텔 등을 설계하고 있다. 2016년 봄에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2022년 여름에 취미를 주제로 ‘꽃과 빛망울의 하모니’와 ‘쏘가리’ 2곡ㅇ 디지털 음원으로 창작곡을 발표, 데뷔하였다. 현재 건축사, 문학작가,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문집 『요원의 들불처럼』이 있다.
imatect@mooyoung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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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주택에 대한 단상

A thought on commercial housing

상가주택은 지금의 투닷을 있게 해준 고마운 주제다.
우리에게 버티기의 생존이 아닌 주도적 생존 전략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상가주택에 대해 정리해보고, 더 발전된 생각을 쌓아가고자 한다.

 

상가주택의 한계

신도시나 도시개발구역의 점포(상가)주택지는 도시의 비좁은 골목의 빌라촌과는 여건이 다르다. 도시 빌라촌의 태생은 단독주택지이다. 단독주택의 크기에 적합한 토지와 도로의 크기를 갖고 있던 것이 점차 빌라촌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1가구를 위한 단독주택지에 다가구를 넣고 적층하다 보니 주거환경이 좋을 수 없다. 물론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적합한 다가구 형식을 고민해 적용했더라면 지금의 빌라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겠으나, 불행히도 그 고민은 시작도 되지 못하고 채워지기 급급했다.

반면, 지구단위로 계획된 점포주택지는 입지의 전제가 다르다. 태생부터 다가구와 점포를 가정해 지구단위에서 정한 가구의 수, 층수, 용적률을 감당할만한 필지의 크기와 도로의 너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어지고 채워진 점포주택 블록은 도시의 빌라촌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 이유를 도시이든 택지이든 건축주의 욕망이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그 욕망(수익 실현, 재산 가치의 증식)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추기는 누군가는 대표적으로 지역의 공인중개사 또는 시공업자다. 둘의 존재 이유는 다르지만, 그 둘은 나름의 공생관계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지역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토지 매매를 할 때, 공인중개사는 이런저런 건축에 관련한 조언을 한다. 집의 구성은 어떠해야 하고, 주차는 이렇고 상가는 저렇고. 그렇게 하면 임대는 걱정할 필요 없고, 저렴하게 설계와 시공을 해줄 수 있는 업체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축 컨설팅을 한다. 지역의 부동산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 건축주는 혹하게 되고, 많은 건축주들은 중개사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게 된다. 건축주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라 믿고. 정말 그럴까?

​공인중개사는 그들 일의 성격상 건축주가 좋은 집을 짓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래할 수 있는 매매, 또는 임대 상품의 구성이다. 택지에는 다양한 주거 상품군이 존재한다. 아파트부터 단독주택, 점포주택까지. 공인중개사의 입장에서는 상품군은 높은 가격대에서 낮은 가격대까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런 측면에서 점포주택의 임대주거 질이 굳이 좋을 필요가 없다. 임대가격이 높은 아파트의 하위 상품으로서 기능하면 될 뿐이다. 도시에서 흔히 보는 빌라의 수준이어야 거래하기 더 좋은 것이다.

그렇게, 아파트를 닮은 아파트의 아류가 되면 지역의 시세에 따라 임대가격이 정해진다. 정해진 임대가격은 건축주가 건축비에 쓸 수 있는 예산의 제한 요소로 작용한다. 임차인에게도 질 좋고 내 집 같은 거주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건축주의 선한 의지도 결국 제한된 예산으로 마음만 남을 공산이 크다.

자경채 _ 원주 혁신도시 © 박건주 사진작가

하얀집 _ 강서구 방화동 © 최진보 사진작가

바라봄 _ 영종도 © 박건주 사진작가

중정삼대 _ 영종도 © 박건주 사진작가

상가주택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가구와 임대가구가 공존하는 주택이라는 것

대개의 경우는 맨 위층에 주인세대가 자리한다. 옥상 정원이나 베란다를 가지고 방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널찍한 다락도 있다. 그에 비해 임대가구는 발코니 확장으로 임대 면적을 확보하느라 빨래를 널어두거나 바람을 쐴만한 변변한 외부공간도 없으며, 좁고 깊은 평면 형태로 환기나 채광에 불리한 거주환경을 가진다.

위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주택, 이것이 현재 상가주택의 모습이다. ​아파트의 단점으로 꼽는 똑같은 평면 형태, 그것이 적층되어 보이는 단조로운 입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상가주택처럼 외부에서 봤을 때 사는 이의 계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이가 월세를 사는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보는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상가주택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주거 형태라기보다는 상가와 다가구주택을 섞어 내놓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주거 형태다. 택지개발의 주체들이 지구단위 계획을 하며 단독주택지와 근린생활용지의 중간적 역할을 하는 점포주택지를 끼워 넣었더니 인기가 폭발했고, 그러면서 택지개발지구에는 당연하듯 점포주택지가 생기게 됐다.

도시에서 빌라를 짓던 건설업자가 자리를 옮겨 택지에서 똑같은 모습의 빌라에 상가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상가주택을 지어댔다. 상가와 주택이 공존할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기에 그 부작용은 곳곳에 나타났다. 상가가 주인인 양 길을 꽉 채우고 들어서 주택에 사는 이는 주차장을 통해 건물의 옆구리로 출입하거나 후미진 곳에서 드나들어야 했고, 상가가 활성화된 지역에서는 외지에서 온 차량으로 길 전체가 점령당해 유모차도 끌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상가와 주택이 균형과 통일에 대한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접합되다 보니 상가로서의 매력적인 가로 조성에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삭막해 보이는 빌라촌에 멋진 카페거리가 조성될 리 만무하다.

건축주와 임차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집짓기를 위해, 투닷에서는 그간 몇몇 상가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도한 전략이 있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검토되고 실천되었으며, 그 결과는 유의미하게 검증됐다.

​첫 번째. 아파트의 평면을 닮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변의 기존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은 피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평면을 따른다고 해도 입지의 여건과 거주 환경으로 인해 결국 아파트의 아류, 또는 하위 수준일 수밖에 없으며, 주변의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으로는 이른바 시세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단독주택을 닮으려 노력하거나, 주변에 없는 새로운 주거 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아파트와 경쟁할 수 있고, 시세에서 벗어나 임대수익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가주택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도, 임대수익을 높여야 한다. 건축주의 이타심에 기대어 집주인, 임차인 모두가 만족스러운 집짓기를 기대하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임대수익이 높아져야 건축비에 투입할 예산을 늘릴 수 있다.

두 번째. 아파트와 같은 동일한 거주환경이 아닌, 동등한 거주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앞에 언급한 대로 아파트는 그 획일성의 단점은 있으나, 적어도 외관상 위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상가주택은 작은 규모에도 최상층 주인세대, 그리고 그 하부 층에 위치한 임대세대와 같이 그 위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다.
계급이 드러나는 곳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은 불가피함이지 자발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린 건축주에게 다양한 방식의 동등함을 구현할 방법을 제안한다. 여러 방법 중 공통된 것은 건축주가 필요 이상으로 누리는 것들을 임차인과 나누는 것이다. 물론 그냥 나누어 주라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에서 언급한 임대수익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건축주의 욕망과 임차인의 욕망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세 번째. 상가주택은 상가와 주택이 공존한다. 그러므로 공존의 방식, 균형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건축주의 수익이 상가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해서 주택이 구석으로 밀려나서는 안 되며, 주택과 상가의 뚜렷한 시각적 분리, 어색한 만남으로 상가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서로 기능이 다르다 해서 주택과 점포가 별개의 모습으로 따로 또 같이 있기보다는 하나로 보이는 통일된 디자인이 유효할 수 있다.

 

글. 조병규 Cho, Byungkyu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조병규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 건축사

명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IMF의 도피처로 삼은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아내를 만났다. AI, 이안디자인 건축사사무소에서 13년 동안 근무하다 2014년부터는 후배인 모승민 건축사와 투닷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양수리에 두 대표 건축사의 집인 ‘모조’를 짓고, 직주근접의 삶을 실천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며 살고 있다. 한밭대학교에서 설계스튜디오 강사를 했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공동체주택 및 매입임대주택 심의를 하고 있다. 2021년에는 건축 에세이 <보통의 건축가>를 출간했으며, 간간이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todot@tod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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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Node

오늘 아침, 가구(架構) 조립을 앞둔 대들보와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에는 그 크고 웅장한 체격에 압도당했지만, 곧바로 뽀얀 목질(木質)에 선명히 박혀있는 옹이가 눈길에 밟혔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몸에 옹기종기 붙어 있었을 그 수많은 가지와 어찌 생이별했을까? 생살이 잘려나간 아픔은 또 어찌 견뎌냈을까?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침내 땅 위에 반듯하게 뉘어져 있는 이 순간까지 모든 옹이란 옹이의 얼굴에서, 저렇게 피눈물을 흘리듯 송진을 토해내고 있을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대들보가 갑자기 애처로워졌다.

흔히 곧고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에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지만, 보통 나무에는 수많은 옹이가 박히게 된다. 그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이제는 흉터조차 희미한 옹이가 있는가 하면, 마치 소라처럼 선명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옹이도 있고, 망치로 몇 번 툭툭 치면 저절로 빠져나가는 ‘죽은 옹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줄기와 일체가 된 검붉은 ‘산 옹이’도 많다.
하긴 해마다 수많은 가지를 허공으로 쭉쭉 내뻗으면서 수직 상승을 하는 생리 특성상, 나무의 몸에는 별의별 옹이가 다 박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 옹이가 가지를 지탱하는 기초부(基礎部)이자 또 다른 생명의 발원처(發源處)였던 셈이니, 어찌 보면 옹이는 나무가 건강하다는 생생한 증표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옹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낯설지가 않다. 얼핏 보면 해마다 새순을 밖으로 밀어내며 불끈 솟는 춘삼월(春三月)의 봄기운 같기도 하고, 또 잔뜩 응결된 분기점(分岐點)은 출산이 임박한 산모(産母)의 마지막 내지름 같기도 하다. 아니, 어느 땐 장백산에서 지리산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백두대간의 끄트머리 어느 한 혈처(穴處)에서 출렁거리듯 뻗어 내린 산맥처럼 웅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옹이마다 목질(木質)이 응축되고, 혈기(血氣)가 분기탱천해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그렇다고 옹이를 무작정 야무지고 단단하기만 한 녀석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어쩌면 한 번도 제 심중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채, 그래서 안으로 안으로만 뭉쳐져 지금껏 아물지 못한 상처 덩어리일 수도 있다.

어제도 아궁이에 불을 지핀답시고 장작을 패다가, 다시 또 옹이의 그 안타까운 속내를 되짚게 되었다. 나무토막이 쩍쩍 갈라지는 쾌음(快音) 속에 몰입된 나머지 옹이 근처를 냅다 도끼로 내려친 게 화근이었다. 그 육중하게 하강하던 도끼 머리가 시퍼런 날을 희번덕거리며 그만 뒤집혀 까지고 만 것이다.

아뿔싸! 비록 저렇게 나무토막 하나로 잘려 내팽개쳐졌을망정, 옹이마저 빠개질 수 없다는 그 외마디 절규를 외면해버린 탓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해원(解冤)의 시대라고 하는데, 사람의 마음에 패인 상처는 고사하고 장작에 돋아난 옹이조차 제대로 풀어낼 줄 몰랐다니……, 후회가 엄습해왔다.

다양한 옹이의 모습

옹이에서 쉬지 않고 솟아나는 송진(rosin) 역시 옹이의 아픔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한옥의 부재로 사용할 목재는 함수율을 맞추기 위해서 찌고, 말리고, 최첨단 고주파(高周波) 건조기로 지져대지만, 목부재들을 결구(結構)해놓고 보면 옹이에서는 여전히 송진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목재의 섬유방향 무늬결에 끌려 기둥이나 대들보의 표면을 무심코 어루만지다 보면, 어느 순간 손바닥에 송진이 쩍쩍 달라붙는 게 다반사다. 그때 그 촉감은, 마치 하루아침에 제 새끼를 잃고 젖몸살을 앓으며 처연하게 울부짖는 어미 소의 타액(涶液) 같기도 하고, 체내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좀처럼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 환우의 상처를 감싸 쥔 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르던 어린 시절, 손바닥에 묻어나던 감촉 같기도 했다.

이따금 한옥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헌사(獻辭)가 심심찮게 바쳐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Sisyphus)’가 받은 형벌처럼 온갖 하중을 다 이고 진 채, 다시 또 천년의 세월을 버텨야 하는 저 기둥과 대들보의 응어리부터 살피게 된다. 그러다가 여전히 씩씩거리듯 시뻘겋게 웅크리고 있는 옹이와 마주치게 되면, 그 헌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애달픔만 더해진다.

어쨌든 한옥 부재로 간택된 나무들의 팔자는 참으로 기구해 보인다. 미끈하게 쭉쭉 뻗어 오른 탓에 생장할 땐 온갖 시새움을 받았겠지만, 도편수(都編首)의 눈에 띄고 난 이후로는 저렇게 잘리고, 깎이고, 도려지다가 마침내 그것도 모자라 제 몸 구석구석이 찢어지는 아픔을 송두리째 겪게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게다가 자식처럼 제 몸에 붙어 있던 그 수많은 잔가지가 어느 한순간 무참하게 잘려나간 흔적으로, 그 밑동에 아로새겨진 옹이마저 저렇게 처연하게 제 몸에 걸머지고 있어야 하니, 타고난 운명치고는 참으로 가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누가 끌어내는 것인지도 모른 채 다들 세상 밖으로 나왔다가 어느새 손발에는 옹이가 박히고, 심중(心中)에는 화가 덩어리로 뭉쳐졌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날은 저물었다. 그게 우리 인생이다. 그래도 지금 여기에서 멈출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던가? 애당초 고단하지 않은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치목장(治木場)을 돌아 나오면서, 또다시 천년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대들보와 기둥의 처지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되었다.

그러한 세상 이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저마다 이 나라의 초석(楚石)이 되고, 동량(棟樑)이 되겠노라고 열변을 토하는 대선(大選) 후보들의 외침은 이제 처절하기까지 하다. 한옥에 쓰인다면 제 몸 여기저기가 잘리고, 깎이고, 바숴지는 그 험난한 단련을 거쳐서 비로소 지붕을 받드는 자리에 놓이는 것일 텐데도, 그 소임(所任)을 자청하느라 저리들 야단법석이니,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머지않아 여기저기에서 새싹이 다시 돋아나고, 봄비 내린 언덕에는 풀빛이 더 짙어지면서, 계절은 또 어김없이 변화와 순환을 거듭하며 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너 나 할 것 없이 잔뜩 움츠러들게 하고 매사에 머뭇거리게 하던 지난겨울은 너무 길고 매서웠다.
그래서 그런지 다가오는 올봄에는, 여전히 시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있는 옹이까지 제 몸에 똘똘 끌어안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의연하게 재삼 일깨워줄 수 있는, 그런 품 너른 동량(棟樑)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 건축사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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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울리는 무대포 ‘블랙민원인’

‘Black Consumer’, putting architects in trouble

기업에 ‘블랙컨슈머’가 있다면 행정기관엔 ‘블랙민원인’

2021년 12월 30일 오전 11시 즈음 사무실 앞에 사무실과 골목에 걸쳐놓은 차를 빼달라는 주차단속원의 전화를 받았다. 옆집 아저씨의 2021년 마지막 민원이었다. 단속원도 상당한 배려를 해주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며 “저 집 아저씨 때문에도 어쩔 수 없어요. 저희도 차가 없는 사진을 찍어가야 해서요” 라는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해주었다. 주차단속원이 단속 대상을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광경은 옆집 아저씨의 시도 때도 없는 민원으로 생겨났다.

나는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근린생활시설 사무실로 용도 변경하여 맨 위층에 얼마 전 입주하였다. 4미터 도로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30년이 넘은 다가구 주택들은 주변 집의 건축물 현황도가 모두 같았으며, 현황도와 건물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아 아마도 집장사가 어찌어찌 대강 지어서 팔았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모든 집들은 하나같이 불법으로 보일만한 쪼개기가 되어 있었고, 어떤 집은 옥탑 방이 어떤 집은 창고 등이 붙어있어 건폐율 60%인 동네에서 거의 모든 집의 건폐율이 80% 이상은 되어 보였다.

내가 구입한 집도 마찬가지였다. 비용과 행정 공사여건을 봤을 때 대수선을 할 상황이 아니라 판단되었으나 너무 낡은 설비와 창호, 안전을 위한 난간, 입주할 층의 약간의 인테리어 등과 더불어 건축사사무소가 입주할 건물에 불법은 안 된다는 생각에 전 주인이 해놓은 가구 쪼개기, 무단 증축을 철거하는 원상복구 과정을 거쳐 입주할 생각이었다.

처음 인사드린 동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친절해서 서울시에 아직 이런 인심이 살아있는 동네가 있을까 할 정도였다. 나머지 세입자들은 낮 시간에는 거의 만날 수도 없었다. 특별한 인허가가 필요한 공사가 아니었기에 별도의 신고 없이 진행이 가능했고, 일주일 정도는 원활히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부터 옆집 아저씨의 민원이 시작되었다.

발단은 본인 집 대문(대문 자체가 불법이다.) 재시공을 현장소장에게 요구했는데, 현 우리 공정에는 관련 공정이 없어 힘들다, 라는 대답이었다. 이날부터 나는 공사 내내 구청을 방문하는 옆집 아저씨 때문에 구청 내 모든 관련 부서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문제없는 부분까지 불법대수선을 운운해 확신 없는 구청을 대신하여 건축구조기술사의 의견을 첨부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련부서들은 현장정리나 소음, 안전에 큰 문제가 없는 현장 상황에 형식적인 사항만 알려주며 민원으로 나오게 된 불편한 상황에 양해를 구하였으나, 정작 건축현장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구청 건축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건축사님 민원 때문에 저희 일을 못하겠어요. 원하는 거 해주시고 빨리 마무리하시죠.”
라는 무책임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구청 건축과 담당과의 통화 내용은 악성민원의 해결방안을 찾고자 상담했던 주변 건축사의 진심 어린 충고와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구잡이 민원에 공무원은 인허가 빌미로 건축사에게 떠넘기기 일쑤

갑자기 그간 숱한 현장에서 만나온 민원에 대한 생각이 났다. 민원이 생기면 대부분의 구청은 감리자에게 공문을 보내 건축주와 시공자에게 전달하고 조치하게 한다. 비상주감리자로 현장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건물을 짓게 되면 주변에 폐를 끼치니 요구 좀 들어주시죠”, “민원 해결해서 구청에 알려주세요” 등의 말과 함께 공문을 전달하고는 했었다. 물론 현장의 잘못이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정말 어이없는 민원인 요구를 인허가를 빌미로 요청하는 관공서도 많았다. 북측 8미터 도로 건너편에 있는 집에서 요구한 차폐를 해결할 때까지는 사용승인을 내줄 수 없다던 ㄱㅂ구청, 지구단위계획에서 보행자도로를 지나 차량 출입을 하게 지정해 놓고서는 주변 민원 해결에 건설사가 협조를 안 하니 설계자가 나서달라고 말하던 ㅅㅈ구청, 옆 건물 지하 미장원 샴푸실에서 손님이 머리를 감을 때 우리 건물 내부가 보이니 창을 조정하라는 민원인과 원만한 합의를 하라는 ㄱㄴ구청, 상습민원인이 또 민원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수도 인입 승인을 한 달 넘게 안 해주는 ㅊㅇ구청 등등의 어처구니없는 사례에는 항상 관공서가 개입되어 있었다.

민선 구청장 시대에 적극적 민원인은 표와 연결되어 있어 각 구청은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악성 민원(본 건물의 신고를 받는 구청 민원실에서도 이미 유명한 분이었다.) 요구조차 일일이 듣고 행정절차를 거치고 있다. 과연 누가 피해자일까? 구청에서 떠드는 사람만 민원인일까? 어쩌면 상대방이 피해자일수 있다는 가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도 세금을 내는 민원인이니, 합법한 범위에서의 공사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구청에서 도와주는 것을 바라는 게 큰 사치일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되돌아가서, 옆집 아저씨의 민원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쉽다. 본인 집의 대문이 불법인 것을 알려주고, 그가 신고하는 집뿐 아니라 주변 건물을 같이 단속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마 당장 그만둘 것이다. (옆집 포함 주변 모든 건물의 불법을 2~3개 이상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형편이다.) 청소행정과에서 물청소까지 끝낸 현장을 찾아와 바닥에 떨어진 칼날 하나와 조그마한 휴지조각 하나를 지적하는 건 행정 낭비라고, 당신 때문에 매번 현장조사를 나올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건물에 CCTV를 달러 온 사람이 한발자국 옆으로 넘어갔다고 불법침입으로 경찰을 부르는 옆집아저씨에게, 잠시 발로 밟았다 떼는 건 불법 침입으로 신고될 수 없다고 법에 근거해 명확히 말해주며 나무란다면 다시는 민원을 넣지 못할 것이다. 아니, 모두에게 열린 구청장실 앞에 ‘부당한 민원으로 야기되는 행정의 마비 및 세금 낭비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 한마디가 블랙컨슈머를 예방하듯이 블랙민원인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글. 남기봉 Nam, Keebong 남기봉 건축사사무소

남기봉 남기봉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아이들의 엄마로, 동네의 이웃으로, 살고 있는 도시의 건축사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며 삶의 토대가 되는 건축물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담은 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건축물의 설계뿐 아니라 공간디자인, 환경디자인 등 공간을 구현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주택시리즈 LIFE_FACTORY, 양산ICD물류센터, 신안코아청년몰 인테리어설계, SH 행복주택, 미아동 15929 등이 있다. 2016 상반기 건축전시회 ‘建築共感:집을 위한 다른 생각’을 개최한 바 있으며, 2016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 2021대한민국공공건축상 최우수상(국토부장관표창)을 수상하였다.
life_facto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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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 사람의 모든 것

Full name, a person’s everything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은 나에게 소리친다.
눈 덮인 산길 걸어갈 때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삶에 ‘역사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자·한문 공부를 많이 강조하셨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응당 한자로 이름을 쓰도록 내 이름 석 자를 한자로 가르치셨다. 그 덕택에 어려서부터 나는 한자로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친구들 간에도 한자 이름을 알게 되었다. 죽마고우인 경원 친구의 가운데 이름이 서울 경(京) 자로 쓴다는 것과 길수 친구의 길할 길(吉), 시용 친구의 얼굴 용(容) 자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학년 초 어느 날 선생님이 호적초본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친구랑 같이 읍사무소에 가서 초본을 떼어 보니 내 이름 가운데 자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적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이름은 서울 경(京) 자로 분명히 잘 적혀 있었는데, 내 이름은 낯설게도 곧을 정(貞) 자로 적혀 있었다. 곧을 정(貞)과 바를 정(正), 개념상 별반 차이는 없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호적초본을 보여 드리니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다.

“아니? 뭐여! 내가 분명히 ‘바를 정(正)’ 자라고 담당 직원에게 잘 말해 주었건만…”
아버지는 그 이후 말을 아끼셨다.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떠올려 보니 아버지가 호적신고를 할 때에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담당 직원에게 말로 설명하신 것 같았다. 직원은 바를 정을 곧을 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호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누굴 탓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사회 분위기상 개명허가가 쉽게 나지 않는 시대였다. 개명을 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체념 비슷한 말로 “네가 나중에 크면 고치거라”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이름을 한자로 잘 적지 않았다. 아니, 굳이 한자를 쓸 일도 많지 않고 해서 그냥 ‘한글사랑’이라며 한글로 이름을 적어 왔다. 그러던 중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나라 이름을 중국으로 바꿔 부르면서 우리나라의 건설시장이 확대되었고, 내 전문인 건축설계 업무가 중국까지 확대되었다. 중국을 자주 다니면서 비행기 입출국 수속 서류에 한자로 이름을 적기 시작하다가 예전 이름에 관한 일들이 생각났고,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야흐로 내 이름을 바로잡아야 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본디 가운데 이름이 바를 정 자이므로 당연히 바르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귀국 후 법원에 개명허가를 신청했다. 사유를 적은 란에는 사실이 그랬으니까 아버지가 하신 말씀 내용을 솜씨 좋은 글씨로 예쁘게 잘 적어서 개명허가를 신청했다.

며칠 후 처리기간이 다 되어 집에 법원으로부터 문서가 와 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뜯어보니, 글쎄 떡하니 반말로 “개명허가를 기각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화가 나서 전화기를 들고 따져 물었다. 담당자는 “개명사유가 부적합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참을 고민해 보고 여기저기 자문해 본 후 ‘내가 너무 곧이곧대로 적었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고, 자괴감과 씁쓸함이 몇 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밤안개처럼 마음속으로 밀려왔다.

몇 년이 흐른 후 수도권 지역 동창회 모임을 이십여 년 만에 한다기에 그 모임에 나가서 친구들과 서로 명함을 주고받던 중, 초·중·고교 동창생인 친구가 이름을 개명하였다고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개명허가가 쉽지 않던데 어찌 이름을 그렇게 쉽게 바꾸었냐고 물으니, 집안에 손위 먼 사촌 중에 동일 이름이 있어서 그 사유로 개명허가를 적었고, 또 요즈음에는 쉽게 바꾸어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힘찬’이라는 이름이 정말 힘차 보이는데, 성이 안 씨여서 애들이 놀리고, 매사 신중하라는 뜻의 이름 ‘신중’이 좋긴 하지만 성이 임 씨여서 애들이 하도 놀려서 바꾸겠다고 하면 바꿔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사회 분위기가 개명허가를 신청하면 심사해서 어렵지 않게 바꿔 준다고 했다.

나는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름을 바로잡자. 이번에는 개명신청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다듬고 다듬어서 썼다. “본디, 저의 이름 중 가운데 자는 ‘바를 정’ 자였는데, 어찌 된 사유인지 ‘곧을 정’으로 호적에 올라갔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세상을 늘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를 정으로 저에게 지어 주셔서 그렇게 불리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호적에는 곧을 정으로 올라갔습니다. 인생 반을 살아오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아버님의 유훈인 ‘이름을 바르게 해라’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앞으로 인생 후반전에도 더욱 건설한국의 유능한 인물이 되도록 힘써 매진할 것이오니 이에 개명허가를 신청합니다”라고 정성을 다하여 작성했다.

결과는 바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나도 이름값을 하면서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또 한 번의 다짐과 성취다. 만일 두 번의 개명신청에도 또 기각되었다 하였을지라도 나는 개명을 하려는 생각을 접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념이란 것은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상관없이 바른 생각을 모은 결정체이고, 그 생각을 수정처럼 빛나도록 수없이 갈고닦고 포기하지 않아야 비로소 ‘이룸’에 이르는 것이니까.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문학작가·뮤지션

조정만(趙正滿)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성원고,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천일건축, 금호그룹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 선함재 건축을 설립, 강원 청암재,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동교 주상헌, 대방동 H빌딩 등을 설계했다. 2015년 이후 무영씨엠건축에서 미단시티 G오피스텔, 옥천Y주택, 대청호 수연재 등을 설계했다. 2016년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2021년 유튜브에 ‘꽃과 빛망울의 하모니’와 ‘쏘가리’를 창작곡으로 데뷔하였다. 현재 무영씨엠건축 건축사, 문학작가, 뮤지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imatect@mooyoung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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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Messenger

요즈음은 메시지(message) 전성시대인 것 같다. 더구나 성큼 다가온 정치의 계절을 맞아 유력 정치인들이 생산해 내는 메시지는 한층 더 요란해졌다. 한때는 파란 머플러를 휘날리며 “새빨간 거짓말”을 힘주어 외치던 이가 있었는가 하면, 또 빨간 넥타이로 남다른 ‘정열’을 강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빈 손바닥에 근대 이전의 유물인 ‘왕(王)’을 새겨놓고 주술처럼 펴 보이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속으라는 얘기인지, 웃으라는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보통 메신저(messenger)라고 한다. 군대에서는 이를 전령(傳令)이라고도 부른다. 고대의 전령은 우선 잘 뛰어야만 했다. 사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도,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를 격퇴한 그리스의 승전보를 고국에 전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린, 어느 한 전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메신저도 역사의 발전과 함께 진화를 거듭해왔다. 구릿빛 건각(健脚)을 자랑하는 인간의 두 다리로만 땀을 뻘뻘 흘리며 뛰다가, 이내 곧 말(馬)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땅 위에서 뛰고 달리는 것만으로 그친 게 아니었다. 하늘로도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메신저는 때로 전서구(傳書鳩)로 대체되기도 했고, 또 때로는 개(犬)와 파발마(擺撥馬)를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오랜 중세의 암흑을 털고, 사회 각 분야에서 획기적인 비약을 이뤄내던 근대산업사회 초기, 바야흐로 메신저에도 동력이 탑재되기 시작하였다. 그 덕분에 전보와 전화, 그리고 무전(무선전신)이 속속 우리 곁으로 날아들었다. 그 메신저가 최근에는 우리 주변의 인터넷까지 파고들었다. 이제는 굳이 뛰고 달리거나, 말과 개와 비둘기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메신저도 원시반본(原始反本)하는 것인가 보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 땅 위에서 뛰고 달리다가 마침내 하늘로 비상(飛翔)까지 했던 메신저가, 어느 날부턴가 다시 또 서로 뒤질세라 땅 위를 휙휙 내달리고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핸들 커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도로를 바람처럼 질주하고 있는 저 오토바이 퀵서비스가 그렇고, 또 로켓배송을 한다며 밤새 노동자를 속도 경쟁으로 내몰아야만 하는 택배 서비스가 그렇다. 모두 다, 저 먼 마라톤 평원에서 장장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와 결국 생명을 소진했다는 어느 한 전령의 후예들인지는 까마득하게 잊은 채 속도 경쟁에만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랑스러운 월계관도 없고, 전승(戰勝)의 소식을 하루빨리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모든 메시지는 그렇게 신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늦어도 좋은 소식, 반가운 소식, 희망의 메시지는 없을까?

아주 먼 옛날에도 메시지를 수령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고대 사회의 티를 벗지 못했던 삼한(三韓)에서는 그 신성불가침의 지역을 ‘소도(蘇塗)’라 지칭하고, 거기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고자 했다. 그 전달 매개체가 이른바 ‘솟대’였다. 저 먼 하늘로부터 부여받고 싶은 메시지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鳥)가 대신 전달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기다란 장대 끝에 새를 정성스레 새겨서 소도(蘇塗)에 드높이 꽂아놓은 것이다.
단지 솟대뿐만이 아니다. 하늘의 메시지에 대한 경외는 실로 대단했던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의 거주처였던 한옥의 지붕에서도, 그 흔적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기와지붕 여기저기에 용(龍)과 봉황과 독수리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솟대

망와

능사 대웅전 용마루의 치미 상세

보통 기와지붕에는 마치 용의 비늘과 같이 빛나는 암키와를 겹겹이 잇고 깔아서 지붕면을 만든 뒤, 그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용마루를 꾸미게 된다. 상상의 동물인 용(龍)도 높고 거룩한 존재로 인식되곤 했는데, 거기에 또 지엄한 왕의 묘호(廟號)에나 겨우 붙일 수 있는 ‘마루(宗)’라는 호칭까지 붙여놨으니, 이를 어찌 가벼이 볼 수 있으랴?

그렇게 용마루는 기와지붕에서도 아주 거룩한 존재였다.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과 소통할 수 있었기에, 남다른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또 그 용마루의 좌우 양 끝에는 보란 듯이 망와(望瓦)를 설치해 놓았다. 아니, 옛날에는 지금의 저 망와로는 성이 차지 않았었나 보다. 고대의 지붕 용마루에는 거의 다 치미(鴟尾)가 내려앉아 있었다.

치미는 봉황의 ‘치켜 뜬 꼬리’를 상징화한 것인데, 이는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시지의 수신처라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리고 있는 치미를 볼 수 있었고, 마침내 경주 황룡사지에서 직접 출토된 치미까지 보게 되었다.

이러한 치미도 세월의 파고(波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지, 고려시대 중기부터 점차 용의 머리를 상징하는 ‘용두(龍頭)’와 독수리의 머리를 본뜬 ‘취두(鷲頭)’로 바뀌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일반 민가로 내려오면 지금 우리가 기와지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망와의 형태로 바뀐 채,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망와가 그렇게 높은 족속(族屬)이었다는 전설은 일단 제쳐두고라도, 망와의 표정은 보면 볼수록 재미난다. 왕방울만 한 두 눈을 한껏 부라리고, 뭉툭한 코를 벌름거리며, 이빨까지 드러낸 도깨비가 이미 사라진 제 위엄을 지켜낸답시고 용쓰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무섭게 찡그렸으니 더 이상 근접하지 말라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백제 역사재현단지 정양문의 지붕 용마루 치미

어쨌든 머지않아 닥칠 세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찬바람 세찬 기와지붕 위에서 악귀를 물리친답시고 저렇게 사시사철 용트림을 하고 있는 저 망와가, 우리 조상들이 한옥 지붕에 창출해놓은 또 하나의 메신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게 흔히 일컬어지는 벽사(辟邪)의 메시지인지, 우리들의 고단한 일상에 던지는 해학(諧謔)의 메시지인지 그건 분명하지 않더라도,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서 요란하게 등장했다가 쉬이 사라지고 마는 ‘파란 머플러’나 ‘빨간 넥타이’, 그리고 ‘빈 손바닥’하고는 아예 근본부터 다른 존재였다.

수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 내려온 한결같은 메신저(messenger). 그것은 그 흔한 세 치 혀나 빈 손바닥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우리 한옥의 지붕에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 건축사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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