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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가 잘해야 한다

The institute should do well leading.

길지도 않은 2월에 참, 일도 많았습니다. 추위가 좀 가시는가 싶더니 미세먼지가 들어 앉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짧은 설날 연휴가 왔는가 싶더니 금세 가버렸습니다. 인사동에서 사온 질 좋은 화선지를 잘라, 입춘방을 커다랗게 써서 붙였습니다. “올 봄에는 대길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제발 무탈하게 넘어가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기름칠한 바닥 위로 쭈욱 미끄러져 나가듯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은 늘 비포장 자갈길 위에서 낮은 포복하듯 요동치며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며 진행됩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집을 한 채 지으려고 하면, 정다운 이웃들이 동네에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축복 대신 창의적이며 다양한 민원서를 선사합니다. 법에도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한없이 행정절차를 늦추는 관청 때문에, 시간이 이토록 큰 위협의 도구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아직 정착되지 않은 공영감리제와(대체 왜 사용승인은 설계자가 해야 하는 겁니까) 간혹 만나는 공무원보다 더 야박한 특별검사원 때문에 추운 날씨보다 더 오싹한 한기를 겪습니다. 건축에서 제일 즐거운 일은 그저 앉아서 트림하고 옵셋하며 도면을 그릴 때 뿐이라는 자조적인 한탄을 하기도 합니다.

아… 정말 건축사들에게 봄은 언제나 올까요? 그 와중에 즐거운 일이 잠시 있었죠. 얼마 전에 끝난 평창 동계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많은 사람들이 무척 걱정을 했었습니다. 어렵게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준비기간 동안 여러 가지 난맥상과 잡음을 보고 들으며 기대지수가 많이 떨어졌었죠. 사실 저는 스포츠를 아주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라서,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평창 올림픽의 개회식을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회식을 하는 날, 낮에 어떤 매체에서 개회식을 시청하고 의견을 주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거절하기 애매해서 텔레비전 앞에 노트북을 켜놓고 일이나 하면서 가끔씩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회식이 시작되자 그럴 틈이 없더군요. 기대 이상으로 연출이 훌륭했고 여러 가지 무대와 영상 등 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감동하는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저는 허공에 반구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나타날 때 손뼉을 치며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까지 했고, 시작부터 예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예감은 좋은 결과로 나타났죠. 굳게 문을 닫아걸고 툭하면 핵실험 카드를 들었다 놨다하며 으름장을 놓던 북한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 선수 손을 잡고 입장을 했습니다. 단일팀으로 경기했던 여자 아이스하키도 비록 승리는 못했지만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연출했고, 세계에 우리의 역량을 선보인 가운데 컬링이라는 아주 생소한 경기에 빠져들게 되었죠.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대목에서 흐뭇하게 웃으실 듯합니다. 경상북도 의성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실력을 연마한 젊은 여자 선수들이 보여준, 세계의 강호들에게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패기와 경기력에 우리 모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은메달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개인들이 노력하고 메달을 따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때, 한편으로는 선수들을 육성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며 큰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할 관련 협회가 제 역할을 못하다가 뒤늦게 성공에 편승하고 생색을 내는 어이없는 모습도 드러났습니다. 빙상 관련 협회만이 아닙니다. 많은 분야의 ‘협회’들이 파벌을 만들고 그 파벌이 해당 종목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그런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수한 개개인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아마 백과사전 두께의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습니다.

협회가 잘 해야 합니다. 건축사 개개인이 민원과 대관 업무 등에 시달리며 한 달 한 달을 힘들게 넘기며 어려운 여건에서 건축을 할 때, 협회가 커다란 보호막이 되고 어두운 항로를 비춰주는 불빛이 되어야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집행부의 행보에 큰 기대를 걸어봅니다.  곧 산수유 꽃망울이 터지며 봄이 올 겁니다.

글. 임형남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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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기억

Space and Memory

라다크 풍경

인간의 건축물이 없는, 가도 가도 산과 하늘과 벌판. 나무도 없이 우뚝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하늘을 찢은 것 같은 대비를 이루었다.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라다크의 높고 건조한 기후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햇살은 충분히 따가웠고 흙먼지와 건조한 날씨 탓에 콧속이 말랐다. 여행기간 동안 대여한 지프를 타고 산으로 난 위태한 길을 다녔다. 안내자이자 기사로 고용한 현지인 롭산의 차분한 운전 덕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듣던 대로 길 아래 낭떠러지에서 유골만 남은 사체처럼 앙상한 차량의 잔해를 발견하기도 했다.

시야에는 오로지 높이 솟은 빌딩뿐인 서울에서 산과 하늘이 무심하게 뻗어 있는 곳으로의 이동은 비현실감을 더욱 과장되게 부풀렸다. 그러나 그 스케일이라니. 건축에서 사용하는 스케일 자로 이 풍경을 그린다면 몇 분의 일로 축소를 해야 할까? 서울스카이가 흉물스럽게 서울 한가운데 우뚝 들어서는 중이었지만 완공 높이는 고작 555미터이다. 굳이 비교할 필요야 없겠지만 해발 3천 300미터에서 시작하는 이 여행길은 라다크 왕국의 수도인 레를 베이스캠프로 삼는다. 그 높이를 가늠하고도 남는 것은 희박한 산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탈고를 마친 원고와 새로 들어가야 하는 원고 사이에서 잠시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길은 아등바등 살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틱세 곰파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사고를 뒤집고 흔들고 섞는 힘이 있다. 즐거운 추억이나 끔찍한 사건들을 기억할 때 그 일을 경험한 장소와 공간 없이는 떠올릴 수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어떤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일은 항상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다. 몸은 낯선 곳을 탐색하고 비교하고 감각을 곤두세워 그곳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없음’으로 점철된 여정이 마음 한가운데를 관통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곳에 와서 건조한 공기 속에 살갗이 타고 콧속이 말라 찢어지는 이 기후를 견디고 있는 것일까, 하고 보면 저 높은 산맥에 켜켜이 쌓인 만년설이 있었다. 해발 5천 603미터에 달하는 카르둥라는 계절을 거스르는 길이었다. 8월의 한가운데서 높은 고도에 이르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길을 지나 도착한 ― 멀리 티벳과 연결된 소금호수 판공초는 바다를 뚝 떼 내 하늘로 올려버린 자연의 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런 웅혼함 속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헤미스곰파

여정의 사이사이 라다크인들의 생활과 전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찰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승려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차를 대접 받았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으며, 현지식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목조 건물의 단아함을 풍기는 오래된 사찰들은 라다크의 풍경들에 동화되어 어우러졌다.

결국 우리가 여행지에서 들르는 곳은 누군가의 경험들이 쌓인 ‘공간들’이다. 신을 품은 자연들이다. 그것은 오래된 건축물 또는 공간이 지닌 기억들 ―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콜로세움이나 파르테논 신전, 블루모스크와 앙코르 와트 사원 등을 보러 가는 것일 테지만, 반대로 어떤 광기는 민족이나 국가의 상징적인 건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집단이 가진 정체성과 기억을 모조리 무너트리기도 한다.

그런 흔적들을 통해 시대를 기억하고 반추도 해보는 것이겠지만 결국은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고의 전환일 것이다. 라다크에서 마주한 시원의 공간이 계속해서 떠나온 서울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듯, 낯선 공간은 누군가의 기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 신혜정 Shin, Hyejeong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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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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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 사토와 넨도 Part II

Oki Sato and Nendo Part II

사토 오키는 한 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저의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지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너무 진지한 대화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꺼려하는 인터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년의 디자인 전망을 얘기해야 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 디자인을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불편함을 느끼고는 합니다.”

– IDS13 International Guest of Honor에서 발췌

관련 인터뷰를 찾아보다 발견한 강연회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사토 오키의 내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라 이해를 했다. 최대한 스스로를 낮춤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공감시키는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라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혀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없는 사람에게, 전화로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컨셉을 들려줬을때, 그들에게 직감적으로 컨셉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성이죠.”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나는 다양한 클라이언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평소 그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디자인이 결코 무겁고 어려운 대상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혀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그가 찾는 작은 아이디어가 결코 무겁거나 진지한 대상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그의 생활 패턴을 눈여겨 보면, 단순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생각한다. 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집을 매일 찾아가고, 옷의 가짓수를 정해 바꿔가며 입는다. 삶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때도 있겠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아오는 변화들이 때로는 더 큰 즐거움이다. 자주 가는 국수집에 국물 맛이 달라졌거나, 자신이 늘 걸어다니던 거리에 새로운 상점이 들어선 것과 같은, 일상에서 오는 작은 변화가 그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인 것이다. 이 즐거움이 그의 작업 속으로 그대로 대입된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소소한 즐거움이 위트가 되어 디자인에 필수 요소가 된다. 결과적으로 클라이언트가 직감적으로 컨셉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colorful shadow 정면부 사진, Nendo ©Daici Ano
Colorful Shadow는 2015년 밀라노 엑스포 일본관에 전시됐다. “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이란 슬로건에 맞춰 경사진 테이블에 높이가 다른 24개의 검정의자가 설치됐다. 경사진 테이블과 높이가 다른 의자는 보는 이에게 원근감의 깊이를 유도한다. 테이블 위에는 일본의 전통 음식인 요칸(yokan, 일본식 검정콩 국수)을 먹는 그릇들이 놓여있다. 검정색에서 오는 시선 차이로 보는 이에게 착각을 유도한다.

하지만, 경영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디자인 철학은 쉽게 문제에 노출된다. 바로 수익과 관련된 부분이다. 디테일과 관련되어 진행되는 많은 디자인 작업들은 그만큼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와 교감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는 어디까지나 밑그림이고,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작은 부분에서 결정짓는 디테일이 결국 승부수가 된다.

colorful-shadows(sketch), Nendo(photo Daici Ano) ©Daici Ano

Theory in London(idea sketch), Nendo ©Daici Ano
뉴욕을 거점으로 전 세계에 매장을 갖고 있는 Theory, 기능 중심의 캐주얼 브랜드로 이미 세계 각 지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Nendo는 나라별 주요 매장에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도했다. Theory 브랜드가 가진 단순함과 기능성에 집중했다. 도시 공간에서 Theory 옷을 구매하려는 구매자가 매장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내부공간으로 들어와 하나의 흐름 안에서 매장을 돌아다닌다. 이때, 구매자가 하나의 단순한 동선 안에서 매장을 돌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하지만 이것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효율이 무너지며, 수익률이 악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번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새로움을 찾아내고자 비용과 수고를 들인다면, 디자인 회사는 수익구조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디자이너 수를 늘려 아이디어나 디자인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하지 않는 상황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흔히, 대형 건설사나 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하는 방식처럼 일종의 대량 생산 체제를 준비하는 디자인이라면, 고객에 요구를 무시한 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디자인이 된다. 즉, 이런 환경에서는 디자이너의 성장도 간단한 하나의 길이 된다. 광고, 그래픽, 공간디자인 등 대량 생산을 지향하는 디자인일수록 디자이너의 수가 많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회사가 많아지는 게 사실인 것이다.

colorful shadow 측면부 사진, Nendo ©Daici Ano

또 하나, ‘하청작업’의 많고 적음이 디자인 회사의 경영 사정을 흔들 수도 있다. 인맥을 활용해 CAD 도면 제작 같은 하청 업무를 맡아 처리하면서 회사의 기본적인 이윤을 확보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경우, 내부 투시도 제작이나 제도 업무 분야가 많이 있다. 대규모 건축사사무소에서는 파트 타이머나 계약직 사원이 그런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량이 갑자기 늘어난다거나 하면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진다. 외부의 소규모 디자인회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급 밸런스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 강한 수요 공급 관계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청 작업에 특화된 디자인 회사가 어느 날 돌연 ‘디자인의 질을 중시한 업무로 전환’을 생각한다 해도 본질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즉, 대량 생산 및 하도급 방식과 관계된 디자인 프로세스는 한번 발을 들이는 순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늪과 같은 것이다.

이에 사토 오키는 넨도가 가지는 혹은 디자인 회사가 가지는 가장 큰 차별요소는 아이디어라고 확신한다. ‘이 회사에서만 내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클라이언트가 1년을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준 높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디자이너 일수록 ‘디자인 수익 빈곤’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는 디자인계 최고의 성지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디자인 수익 빈곤자들의 병동과 같은 곳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극소수의 디자이너에게만 금전적인 보수가 허락되는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그런 가구 박람회는 결국 홍보를 위한 곳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박람회를 통해 얻어지는 많은 미디어의 노출 효과는 세계 각국의 클라이언트를 확보한다는 기대감을 가져다 준다. 결국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품질까지 확보한다. 회사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꾀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여 육성시키려고 하는 것이 사토 오키의 경영 철학인 것이다.

Theory in London 내부 모습, Nendo ©Daici Ano

넨도는 이 고민의 시작점에 서 있다. 디자인 업계가 가진 이런 딜레마를 직접 부딪혀 보려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시행착오가 앞에 있지만, 넨도는 단순히 디자인회사의 명칭은 아닌 것이다. 높은 품질의 디자인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하나의 사고방식, 또는 ‘플랫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플랫폼이고자 한다면, 다른 어떤 회사에서라도 응용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그 시스템을 개별 디자인회사에 맞춘 커스터마이즈 방식, 이식 방법 등을 끌어내기 위해서 앞으로도 몇년이 더 걸릴 것이라 사토오키는 생각한다.

글. 김성환  Kim, Sungwhan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디자인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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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매니지먼트

Park Management

일본은 2017년 도시공원법의 개정을 통해 ‘공모설치관리제도’, 이른바 Park-PFI 제도를 창설했다. 즉, 도시공원에 있어서 음식점, 매점 등의 공원시설(공모대상공원시설)의 설치 또는 관리를 실시하는 민간사업자를 공모형식으로 선정하는 제도로서, 사업자가 설치한 시설로부터 생겨나는 수익을 공원 정비에 재환원하는 조건으로 민간사업자는 인센티브를 적용받게 된다.

■ 민간활력을 활용한 Park-PFI 제도

이러한 제도적 변화에는 크게 3가지의 배경이 있다. 먼저, 1956년 도시공원법이 제정된 이래 물리적 정비가 실시되어 왔는데 2013년을 기점으로 도시공원 면적이 인구 1명당 10 제곱미터를 넘게 되었다. 기존에 정비된 공원들이 노후화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면서,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하고 사람들이 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 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인구감소에 따른 재정적 제약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비 비용과 유지관리비가 한계에 다다른 점. 마지막으로 행정의 관리개념만으로는 공원 활용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데 한계가 있고, 민간의 아이디어와 함께 공공자산이 아닌 민간자산을 활용한 시설의 정비 및 개선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Park-PFI 정비이미지(참고문헌 1 참조) © 송준환

Park-PFI는 공원 내 도로와 광장 등 공원시설의 정비를 일체적으로 실시하되, 민간사업자에게 일부 정비 및 운영를 위임하는 것으로 크게 3가지 특례가 적용된다. 먼저, 설치관리허가기간이 늘어난다. 2004년의 도시공원법의 개정에 따라 민간이 공원시설을 설치 또는 관리할 수 있는 ‘설치관리허가제도’가 창설됐는데, 당시의 유효기간 10년에서 20년으로 대폭 연장되었다. 이는 민간사업자의 투자금 환수에 대한 부담을 대폭 덜어줬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건폐율을 기존의 공원전체 면적의 2%에서 12%로 완화했다. 이를 통해 조금 더 큰 규모의 수익시설을 유치할 수 있게 되는 등 민간활력을 유도하기 위한 툴이 적용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점용물의 특례적 적용으로서, 인정(認定)공모설치계획에 근거한 경우에 한해서는 자전거 주차장, 간판, 광고탑 등 ‘이용증진시설’을 민간사업자가 설치가 가능하고 수익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그림1).

그림 2) 미국 뉴욕 브라이언트파크(Bryant Park) © 송준환

이를 통해 공원관리가 민간자금의 활용을 통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고, 민간활력 유도를 통해 전체적으로 공원의 서비스가 향상될 수 있으며, 민간사업자는 대폭 완화된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및 경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녹지자원에 적합한 광장과 수익시설의 일체적 디자인과 정비를 통해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질 높은 공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 공원 관리(Maintenance)에서 파크 매니지먼트(Park-Management)로

공원은 행정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간으로 개개인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성립되는 ‘공공성’을 추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본래는 모두가 쉽게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무엇이든 금지’해왔고, 이는 오히려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지역을 황폐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전락돼 버렸다.

미국 뉴욕에서는 최근 10여 년간 파크 매니지먼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공원 컨세션(Concession)을 추진하여 공원의 일부영업권을 민간에 위임하여 공원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대표적인 곳이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이다(그림2). 브라이언트 파크에서는 레스토랑이 설치되는 구역과 계절별로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하는 가설광장구역으로 구분하여 활용을 실시하고 있는데, 민간에게 영업권을 위임하고 있으며, 지역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조직과 연계하여 공원전체의 관리와 와이파이 환경조성 등, 세금이 아닌 민간재원을 통해 공원전체의 질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림 3) 텐시바공원 내에 위치하는 각종시설 © 송준환

일본에서도 유사한 컨세션 방식으로 오사카시 텐노지공원(天王寺公園)의 입구부분1)(약 25,000 제곱미터)의 공간 영업권을 2015년부터 20년간 민간사업자에게 위임했고,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킨테츠(近鉄)부동산은 약 7,000 제곱미터의 잔디광장과, 음식점,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외국인관광객을 위한 저렴한 유스호스텔까지 각종 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그림3). 이렇듯 3~5년 정도의 짧은 기간 세입자 또는 사업자 모집을 통해서는 다양한 시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도가 힘들었지만 20년이라는 장기계약체결을 통해 민간사업자들이 자유롭게 투자를 시도하고 환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공원이라는 공공공간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다만, 모두를 위한 공원이 일부의 민간사업자의 이윤창출을 위한 장소로 쓰이는 것이 바람직한가, 공공성에 위배되지 않는가라는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의 여지로 남아있다. 향후 관민협동의 관계 속에서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로 일부 민간단체에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기간의 제한이나 활용공간규모 제한 등의 협의를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판단된다.

그림 4)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참고문헌 4. p.45 인용 및 재작성) © 송준환

그리고 단순히 공원 내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활성화 또는 치안의 개선, 주변 고정자산세의 증감 등 지역 전체적인 평가를 통해 ‘지역 내의 공원으로서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어, 미나미이케부크로 공원2)의 경우, 공원의 유지관리비를 도쿄전력변전소와 지하철의 지하점용료와 함께 입점한 레스토랑 사업자의 건축물 사용료로 충당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공원 내의 이벤트 개최 시 활동비는 지역주민조직인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을 좋게 하는 회’의 활동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 활동자금은 공원 내 레스토랑 매상의 0.5%를 지역환원비의 형태로 본회에 기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그림4). 이것이 공원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행정의 보조금에 의존하여 실시하는 이벤트에 반해 기금의 활용제약이 줄어드는 등 다양한 이점도 존재한다.

글. 송준환  Song, Junhwan
야마구치 국립대학 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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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Nagasaki Atomic Bomb Museum

1. 낙하 중심 지점에서 250M 위치 표시 옥외 조형물 2. 외부 모습 3. 표지판 4. 평면 5. 제1전시실

처참하고 끔찍했던 원폭 피해를 그대로 전시하는 장소다. 제1전시실은 원폭 피해가 일어나기 전 나가사키의 모습과 원폭 낙하까지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원목 괘종시계는 11:02에 멈춰 있는데, 낙하 당시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어 섬뜩하다. 제2전시실은 원폭으로 인한 피해 참상을 보여준다. 원폭 피해를 입은 우라카미 성당 벽면을 재현한 모형을 비롯해 고열, 폭풍, 방사선 등으로 인한 피해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는 핵무기의 역사와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담은 전시물이 있다. 영상자료관도 있어 원폭의 자세한 낙하 과정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잔인하고 무섭지만 나가사키에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글. 박무귀 Park, Mookwi • KIRA ┃ 건축사사무소 동림 대표, 사진작가 ┃ http://jjphoto.co.kr(진주성 포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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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매는 책가방, 평소보다 하늘이 커 보였습니다”

“The new backpack to put on, the sky looked bigger than usual”

우리 둘째는 만 네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정확하게는 만 다섯 살에서 네 달 모자라는 56개월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날마다 소풍날처럼 햇살이 환하던 남반구에 살 때의 일이다. 그 나라의 초등학교는 0학년인 킨더가튼부터 6학년까지 7년제였고, 만 다섯 살이 되는 해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는 2월에 만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그 해 7월 이전에 다섯 살이 될 예정이면 입학이 가능했다. 많은 엄마들이 만 다섯 살이 지날 때까지 1년을 더 기다렸다가 학교에 보내는 선택을 하는데, 나는 둘째를 일찍 학교에 보냈다. 프리스쿨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프리스쿨은 하루 6시간 비용이 3만5천원 정도. 만약 1주일에 5일을 보낸다면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나는 무상교육인 초등학교 0학년이 실제로 유치원 과정인지라 일찍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2월 1일이 첫 등교일이었을 게다. 입학식은 따로 없었다. 차에서 내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에게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초록색 교복을 입은 100여 명쯤 되는 아이들이 반 별로 담임 선생님의 인솔 아래 교실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새내기들은 등교 첫 날부터 한 시간의 에누리도 없이 꼬박 6시간을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그 나라에서는 0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인 12학년까지 모든 학교의 수업시간이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로 똑같았다. 저학년이라고 짧게 수업하는 예외가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지켜 보았다.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앞섰다. 싸가지고 간 점심 도시락과 간식은 제대로 먹었을지, 화장실에는 잘 갔을지, 낮잠 시간도 없는 여섯 시간을 알아 듣지도 못하는 언어 속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아이가 학교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후 3시가 되기 전에 학교 운동장으로 다시 가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담임들이 반 아이들을 인솔해 나와서 데리러 온 부모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하교를 허락했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뒤돌아서 걸어오던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힘들었으니 엄마가 오라는 신호였다. 내가 달려가자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우리 아들 잘 지냈어? 많이 힘들었어?”

“엉엉… 못 걷겠어요.”

나는 아이를 들쳐 업었다. 등에 업힌 아이가 가뿐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벼운 아이를 품에서 뚝 떼어 낯선 학교에 혼자 종일 두었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일본의 한 광고 안에서 그 때의 내 아이와 똑 같은 표정을 한 꼬마를 발견했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주인공 소년

광고 영상 속에서 이 소년은 교복에 모자까지 쓰고 타박타박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발걸음에 따라 털렁털렁 흔들린다. 화면의 70퍼센트는 파란 하늘이다. 그 하늘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란 병아리 색깔 모자를 쓴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지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카메라. 아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원망스러운 표정이다. 입을 삐쭉거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건너편을 바라다 본다. 건너편에서는 엄마가 아이의 첫 등교 모습을 캠코더로 찍고 있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다. 훌쩍 자라 학교에 가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가기 싫어하는 모습에 마음 아프기도 한 표정이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스토리보드

서정적인 느낌의 BGM 위로 엄마의 목소리가 흐른다.

NA)     처음 매는 책가방,

           평소보다 하늘이 커 보였습니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카피 일부 )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엄마 마음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초등학교 입학식을 소재로 삼은 비슷한 광고가 있었다. 2003년 만들어진 푸르덴셜생명의 신문광고이다. 활짝 웃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의 얼굴 위로 엄마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보인다.

푸르덴셜생명_신문광고_2003_이미지

기억나니? 너의 입학식

아무 것도 모르는 너는 코를 훌쩍거리며

엄마 옷자락을 잡고 놓질 않았지.

올망졸망 서있는 아이들 속에 너를 떼어놓고 저 멀리 서있으려니

엄만 글쎄 눈물까지 나더라…

왜 그랬을까?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우리 딸, 멋진 숙녀로 자랄 때까지,

적어도 엄마 아빠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줘야 할 텐데…

(푸르덴셜생명_신문광고_2003_카피 일부)

어디 엄마뿐이랴. 아빠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같은 해 제작된 푸르덴셜생명의 TVCM은 그런 아빠의 마음을 광고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고 영상을 들여다 보자. 1973년 3월 입학기념이라고 적혀있는 흑백사진 속에는 이름표를 가슴에 단 아이가 엄마, 아빠 사이에 서있다. 사진 찍는 일이 자주 없던 시절이라 가족 모두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있다. 이름표 뒤에 매달린 흰 손수건, 70년대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이 지금의 눈으로 보면 촌스럽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그 액자 속의 아이가 아빠가 되어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가 된 소년은 액자 속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다. 30년 전에 쓰여진 그 편지 속에서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는 입학하는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자식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던 옛날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쓴 편지다. 그 편지를 읽는 아들의 표정에 감사와 감동이 어린다.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스토리보드

편지글)  걱정 마라 아들아!

           아빠보다 더 멋진 남자로 클 때까지

           아빠가 널 꼭 지켜줄게.

NA)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러브카드를 쓰세요

           푸르덴셜생명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카피)

전국 대부분의 초・중・고등 학교가 3월 2일 입학식을 했다. 특히 초등학교 신입생을 둔 부모라면 8칸 공책을 사고, 줄이 없는 연습장도 샀을 것이다. 가지런히 깎은 연필과 지우개로 필통을 채우고, 색연필과 36색 크레파스도 준비했을 게다. 가방을 싸고 실내화를 챙기고, 부모도 아이도 조금은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학식 날 아침을 맞이했겠다.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제가 속한 반을 찾아 가면서 아이는 자꾸 뒤돌아 보고, 엄마는 안쓰러움을 감추고 어서 가라 손짓을 하고… 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집보다 큰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입학식 날의 하늘은 더 넓어 보이고, 바람은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등교 첫 날 주저 앉아 울던 내 둘째는 4년 전 꽃샘바람 불던 날, 환하게 웃으면 대학 입학식에 참석했다. 재롱이 어여뻐 훌쩍 커버리는 게 아까웠던 아이가 어른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제 더 이상 뒤돌아 보지 않게 된 아이는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곳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아이를, 이제는 반대로 엄마인 내가 자꾸 뒤돌아 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엄마는 나이 들어, 자꾸 뒤돌아 보는 사람이 되었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유튜브링크)

http://www.ad.co.kr/ad/tv/show.cjsp?ukey=1347051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광고정보센터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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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중국, 중국사람, 중국건축, 중국의 건설산업

Prologue: China, Chinese People, Chinese Architecture, Chinese Construction Industry

우리는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 가까이 있는 나라이고 중국인들 속에서 같이 일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인들은 朋友(péngyou, 친구)라는 말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한다. 朋友의 의미를 처음엔 몰랐다. 한국인들은 아무나에게 친구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오늘 처음 만나 명함을 주고 받은 사이도 친구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중국인들과 일을 하면서 그러한 문화가 차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없음을 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자기가 원하는 것들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이들은 WeChat과 같은 커뮤니티를 사용해 서로 친구를 맺고 그 안에서 서로 연락을 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라는 의미도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투자란 투자자금을 받아 그 돈을 불려 투자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며, 이를 어길시에는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사기꾼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투자는 투자일 뿐이다. 대가성은 없다. 상대방의 가능성을 믿고 대가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땐 그것으로 끝이다. 책임전가는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많은 곳에 분산투자를 한다. 10군데 투자처 중, 1곳만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외 9곳은 실패해도 그만이다. 10군데 중 1곳이 대박나기를 바라며, 투자하는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중국엔 유명한 투자 기업이 있다. ‘TusStar(www.tusstar.com)’가 그것이다. 이 투자 그룹은 ‘칭화대(Tsinghua University, 淸華大學)’ 출신들이 만든 최대 투자 그룹이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투자금은 청년창업 및 신생산 산업등 중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림 1-1) TusStar 중국 사이트
그림 1-2) TusStar 글로벌 사이트

현재 중국은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중국내에서도 건설산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상해도 공사장 아닌 곳이 없을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림 2) 한인 타운에 최근에 건설된 대규모 쇼핑몰과 오피스텔(가로, 세로의 3블럭 규모)

한국과 달리 중국의 건축물은 대륙의 이미지답게 거대하게 지어지고 있다. 또한, 정원(물)을 끼고 지어지는 건물들이 많다. 노후화되고 사용하지 않는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곳도 많다.

그림 3) 1933 라오칭팡

맏긴다고 한다. 그것은 자국의 경제발전 및 자국민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이고, 시공 분야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 있다고 한다.

그림 4 사진의 건축물은 중국에 와봤다면 지나다니며 한번쯤은 봤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SOHO이다. 이 건축물은 중국의 여러 도시에 건축되어 있으며 디자인은 좀 다르지만, 건축물의 이미지는 비슷하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은 오피스와 저층부의 상업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자기 한 맛은 없다. 그냥 크다.

그림 4) 자하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중국의 SOHO

이 건축물은 오피스의 임대율을 높이기 위해 ‘자하 하디드’라는 유명한 건축사의 네미밍을 브랜드4)화 한것이다. 북경의 SOHO는 거대한 공룡의 알과 같다.

그림 5) 중국의 SOHO

처음 중국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을 어디서부터 알아야 하나 고민했었다.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건축을 전공하긴 했지만, 중국의 건축은 보는 것 말고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WeChat에서 많은 정보들이 공유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WeChat은 한국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커뮤니티로 중국의 많은 정보들이 이곳에서 공유된다. 건축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상, 자신의 프로필 등 자신을 최대한 포장해서 모멘트5)에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으니 쉽게 현혹되서도 안된다.

그림 6) WeChat의 모멘트

WeChat은 다양한 분야6)의 많은 정보를 쏟아 놓는다. 나 또한 이곳에서 건축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얻는다. 예를 들어, 위에 팔로우한 목록들 중 ‘建筑师的非建筑(건축사의 건축물)’을 보면 중국의 건축사들이 최근에 디자인한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나온다.

최근에 지어진 郡西云台(Mountain villa)는 얼마 전 WeChat의 ‘建筑师的非建筑(건축사의 건축물)’에 소개됐다. 郡西云台(Mountain villa)는 타운하우스의 형태로 산아래 위치한 고급빌라 단지이다.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컨셉으로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7). 이외에도 WeChat을 통해 중국 건축사가 설계한 독특한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7-1) 郡西云台(Mountain villa)
그림 7-2) 최근에 지어진 타운하우스

현재 중국의 건설산업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설계, 시공, BIM분야에 맞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 속에서 어울려 그들이 공유하는 방식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 뉴스기사에서 오바마 전 미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미국에 있는 중국인의 80%가 영어를 한다. 하지만 미국인 중에 중국어를 하는 사람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정보들이 중국으로 유출되지만, 우리는 그들의 정보를 제대로 가져 오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중국은 ‘baidu.com’과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단돈 1위엔에 쉽게 정보를 사고 판다. 그것이 고급정보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돈이 되는 것은 사고 판다. 그래서 많은 정보들이 저작권에 상관없이 오고 간다.

우리도 이제 중국을 알아야 한다. 장사꾼의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들은 변하고 있다. 많은 외국의 신기술과 신문물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즉, 취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되는 것은 돈이 될 때까지 참는다. 투자 방식이 그 큰 예이다. 일단, 누군가에게 혹은 기업에 투자를 했다면 그것이 더 큰 투자 가치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중국인들의 성격이 불같아 보여도 그들은 참을 줄도 안다. 특히 돈이 된다면, 그 돈이 내 것이 될 때까지 참고 인내한다.

또한, 모방도 잘한다. 사실 중국인들은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한류스타의 사진을 개인 광고에 사용한다던가, 건축물의 외관을 비슷하게 디자인한다던가, 심지어 ‘타오바오’9)와 같은 유명한 중국 쇼핑몰에 지인의 아이 사진이 올라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유는 단지 그 아이의 옷이 예쁘다는 이유로 옷을 비슷하게 디자인하여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조금은 어이없는 일이지만 중국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 그저 중국과의 무역으로 간혹 대박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중국과의 관계만 잘 이루어 진다면 쉽게 돈을 벌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중국인들과의 거래에서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자기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절대 다시 꺼내지 않는다. 장사의 달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면 결혼을 하고 중국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면 사업을 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사실이다. 대박의 꿈을 안고 창업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 생긴 가게들이 잠시 한국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만 사업을 접는 것도 쉽다. 그리고 사업체를 접을 때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아, 소규모 업체와의 거래는 피하는 것이 좋다.

건축 디자인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술이나 디자인이 함부로 도용되지 않도록 저작권의 문제나 서류 및 메일 등의 근거자료를 만들며 일해야 한다. 구두로 이야기하고 지킬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도 돈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위에 언급한 중국인들의 습성이나 중국사회의 습성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야 대응도 가능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외국에서 일해 본 중국인들의 경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잘 파악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예의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중국 사회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중국을 알고,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디자인을 우리의 생각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며, 중국 내에서 우리의 가치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주남  Lee, Junam ┃ BIMSea Technology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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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감정, 사회성의 연산,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의 진화

Computable Diversity, Emotion and Sociality, and an Evolution of Design Process

본 기고문은 뉴 미디어와 건축 디자인 실험 연재의 마지막 회로, 지난 두 회분의 연재에서 소개했던 최신 기술들이 디자인 프로세스와 건축실무 및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고찰한다. 또한, 개인의 다양성과 감정, 사회성 등이 디자인 실험의 범위에 포함될 경우, 이를 고려한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제언한다.

1. 뉴 미디어와 인간의 재현

건축설계의 수요자들은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사회문화적 다양한 변화에 따라 사용자들의 설계결과물에 관한 요구와 평가는 보다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본질적으로 건축설계는 사용자의 편의와 만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다양성과 개성을 건축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은 건축설계 업역의 신뢰도 및 전문성 확보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설계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Cranz, 2016). 이에 건축설계 교육과 실무에서도 사용자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행동을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과정과 방법은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건축물과 사용자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은 난해하다. 목업(mockup)을 통한 직접 실험을 제외하고 인간의 심리, 행동 기제와 관련한 대부분의 설계과정은 거주 후 평가와 같은 ‘사례 추론(extrapolation and reasoning)’을 통해 이뤄진다. 건축 디자인 실험과정에서 다루는 설계안이 유사한 전례가 없거나, 설계조건 등이 상이하여 추론이 어려울 경우에는 결국 막연한 추측과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2003년 로브 임리(Rob Imrie)는 영국소재 주요 교육기관과 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인체척도와 관련법규를 설계과정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경향과 설계를 마친 후 의뢰인과 의사교환을 위해 투시도에서만 사용자의 행동을 고려하는 경향 등을 지적했다. 국내외에 걸쳐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 개성, 다양성 등이 설계과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도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그림 1) 뉴 미디어를 통한 인간의 재현 : 먼저, 3D 스캐닝과 모델러를 통해 외형, 모션, 관절을 가진 ‘가상의 신체’를 제작한다. 이를 가상현실장비와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직접 조종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의 개성, 사회성 등을 연산해서 건축 환경에서 발생 가능한 행동을 자동으로 재현한다(홍승완,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2014).

지난 1, 2 회에 걸쳐 소개한 두 종류의 뉴 미디어인 인간행동 시뮬레이션과 가상현실 기반의 직접 경험 시뮬레이션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재현(represented humans)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재현은 각각 가상의 신체(virtual body)와 감정, 취향, 사회성 등의 심리적 기제의 연산(computable mind)을 통해 이뤄지고 사용자가 가상의 신체를 조종하여 설계안을 직접 평가하거나, 정해진 심리기제와 행동규범을 컴퓨터가 연산하여 가상의 신체를 조종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3D 스캐닝같은 장비를 통한 디지털화(digitalized)와 상호작용(interactivity), 네트워크(networked),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등 뉴 미디어의 특징을 기반으로, 설계안을 가시적으로 재현하는 단계에서 인간의 재현이 이뤄진다(그림 1). 따라서 기존의 방법과 도구에 비해 탐구 중인 설계요소와 사용자의 관계를 실험하기 유리하다. 뉴 미디어를 응용한 인간의 재현은 다양한 외형과 신체적 특징을 구현하고, 취향과 감정, 사회적인 경향 등을 연산범위에 포함하여 궁극적으로 건축 디자인 실험에 필요한 인간을 창조하는데 목적이 있다(Kalay, 2004). 현재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휴머노이드(humanoid) 역시 연산 가능한 인지체계 및 심리기제를 탑재하고, 인간의 신체반응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예이다. 본 회 연재에서는 뉴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인간의 응용이 어떻게 생산성 관점의 디자인 프로세스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고찰하며, 우선 가상의 신체 사용과 디자인 프로세스의 관계를 소개한다.

2. 가상의 몸 : 사용자 경험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

디자인 프로세스는 설계문제와 발생 가능한 대안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설계조건과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해결안을 찾아가는 일련의 체계이다(Rowe, 1987; Goldschmidt, 2014). 최근 디자인 프로세스의 체계와 모델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공통적으로 설계조건의 분석과 설계목적 설정, 설계안 창안, 창안된 설계안에 관한 평가의 순환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설계안 발전을 위해서는 문제 혹은 단서의 발견과 해결(problem-finding and solving)이 필수적이며, 이는 디자인 프로세스 중 분석과 평가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설계문제 발견과 문제풀이를 돕는 것이 디자인 컴퓨팅 분야의 초기목표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최근 급속하게 보급된 건설정보 모델링(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의 경우, 설계안의 모델링 과정 중 건축요소 간의 시공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으며 재료산출 및 에너지와 같은 정량적인 성능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시공 가능성과 성능에 관한 문제점(예를 들어, 배관과 벽체의 충돌)이 연산되고, 발견된 문제점은 재현을 통해 관찰이 가능하며 이후 설계자 혹은 연산모델의 전문성에 따라 문제를 해결한다. 결과적으로, 시공 가능성과 성능이 연산범위에 포함되면서 문제 발견과 해결의 초점과 탐구체계, 즉 디자인 프로세스는 이 항목들에 중점을 두게 된다.

그림 2) 한 학생이 가상의 신체의 반응과 자세를 통해 조형물의 편의성를 평가하고 있다(유백림, ‘디지털 미디어와 디자인 1’, 인하대학교, 2017).

마찬가지로, 2회 연재에서 다루었던 가상의 신체(virtual body, avatar)는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인체와 건축물의 물리적인 관계를 연산한다. 설계자는 가상환경을 경험할 신체의 물리적인 조건(키, 체형, 성별, 걸음걸이, 체력, 장애여부 등)을 잠재적인 사용자를 고려하여 설정하고, 3차원으로 재현된 설계안을 직접 경험하고, 문제와 설계단서를 발견한다. 신체와 건축물 간의 관계가 추정이나 상상이 아닌, 인지와 경험을 통해 실험되며 이를 위해 가상현실장비 혹은 인터페이스가 사용되기도 한다. 설계자는 인체와 건축요소 간의 연산을 통해 잠재적 사용자의 다양한 신체적 조건과 한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용자의 경험을 중점으로 문제 발견과 해법을 생각해낸다(Hong et al., 2017). 가상의 신체를 이용한 디자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문제 발견 및 풀이의 영역이 단순히 사용자의 신체조건과 건축물의 물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과 관련한 심리반응과 편의까지 포함하며, 분석과 평가의 심도(resolution)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가상의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손, 발, 머리, 척추와 물체의 표면 사이의 관계가 연산(inverse kinematics)되어, 건축물의 물리적인 형태에 따라 걸음걸이 및 자세가 반응한다. 이런 신체적 반응을 설계자가 직접 경험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사용 가능성 판단을 넘어, ‘안락하다’, ‘불안하다’, ‘편안하다’ 등의 사용자의 심리적 반응까지 분석과 평가할 수 있다(그림2).

그림 3) 한 학생이 BIM으로 모델링한 건물의 장애인 진입로를 휠체어를 탄 가상의 신체를 통해 체험하고 있다(황혜윤, ‘BIM설계와 시공’, 인하대학교, 2017)

둘째, 득과 실 비교(trade-offs)를 위한 분석 및 평가과정에서 사용자의 다양성과 감정이 중요한 항목으로 고려되고, 설계편의에 관한 책임을 체감할 수 있다. 설계자는 잠재적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을 선택하고, 그 신체적인 한계 내에서 설계안을 대리 경험한다. 따라서 기준화된 인체모형과 척도의 사용보다는 신체적인 다양성과 신체능력과 연관된 심리기제에 관한 문제 발견이 용이하며, 문제풀이 역시 사용자 경험에 초점이 맞춰진다. 예를 들어, BIM과 관련 법규만 사용하여 장애인 진입로를 설계했을 경우, 장애인 경사로의 물리적인 치수, 높이, 각도 등의 수치적인 항목을 중점으로 문제풀이가 이루어지지만 이 모델을 휠체어의 회전범위, 속도, 보행시야 등을 가상의 신체를 통해 경험하고, 비장애인들과 같은 진입로를 사용하는 경우에 심리적 위축감과 같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그림3). 이를 통해 사용자의 다양성이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고려될 수 있으며, 설계자는 의사결정에 관한 책임을 자각하고 설계안 창안에 신중할 수 있다. 이번 장에서는 가상의 신체와 사용자 경험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사용자의 사회심리기제가 연산될 경우에 디자인 프로세스가 가지는 특징을 소개한다.

3. 개성과 사회성 연산: 관계 실험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

1회 연재에서 다뤘던 ‘가상의 인간(virtual humans, virtual-users)’은 기호도와 개성, 사용자 간의 친밀도, 직업과 임무와 같은 사회성을 변수로 하여 건축물에서 발생 할 수 있는 행동을 연산하고 이를 가상의 신체를 통해 재현한다. 컴퓨터 연산을 통해 다량의 사용자 행동이 재현되며, 이러한 행동은 가상의 인간의 개별적인 기호도, 개성, 사회성에 따라 인접한 가상의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연산되고, 이 상호작용은 또 다른 가상의 인간들의 행동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Hong et al., 2016). 예를 들어 공연에 흥미도가 높은 사용자가 공연을 보기 위해 광장에 모일 경우, 이 상황으로 인해 또 다른 사용자는 광장의 형태와 규모에 따라 공연구간을 우회하거나 병목현상을 겪는다. 이러한 ‘바텀-업’ 형식의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에서는 개별 사용자의 심리, 사회적 속성이 건축물의 사용성을 분석하는 시작점이 되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림 4)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에서는 사용자의 속성과 건축물의 수치, 사용자 편의를 나타내는 지표 사이의 관계를 실험할 수 있다(김명수, ‘디지털 디자인 응용’, 인하대학교, 2016).

그림 5) 수변공원 설계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선호도와 목적을 가진 사용자를 분포하여, 다수의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설계안을 탐구했다(김환진, 김정은, 정수빈, ‘디지털 디자인 응용’, 인하대학교, 2017).

첫째, 사용자의 심리, 사회적 속성과 설계안의 수치적 변수 사이의 관계 실험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포함되며, 건축물의 사용 편의를 위하여 사용자와 설계안의 변수 사이에 최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증개축 설계 프로젝트에서 유지건물과 증축건물 사이에 거리와 복도의 곡률을 수치적 변수로 하고 사용자를 성인, 임산부, 아동으로 설정하고 보행속도와 폭, 사회적 교류의 선호도 등의 변수를 설정했다. 이 변수들과 사용자 편의를 나타내는 지표(보행거리, 병목현상, 사회적 상호작용 빈도) 간의 관계를 실험했고, 최적의 사용자 수와 증축건물의 위치와 형태, 복도의 곡률 등을 발견했다(그림4).

그림 6) 토끼가 서식하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의 너비, 경사도와 관람, 접근, 관리 등의 상이한 목적을 가진 사용자 그룹의 만족도 사이의 관계를 가상의 인간을 이용해 실험했다(이진, 최선형, 양혜린, ‘디지털 디자인 응용’, 인하대학교, 2017).

둘째, 서로 다른 개성과 사회성, 목적을 가진 사용자가 분포되므로, 설계안을 사용하는 방식이 상충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용자 그룹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설계안을 탐구하는 과정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정형의 수변공원을 설계하는 학생들은 성인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그룹으로 잠재적인 사용자를 설정하고, 사용자를 공원 사용 목적, 사용자 그룹 간의 사회적 행동, 공원에서 발생하는 행사에 관한 선호도를 다양하게 분포했다. 학생들은 사용자 그룹 사이의 건축물 사용이 상충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 그룹 간의 만족도 지표(예를 들어, 교가를 지나갈 수 있는 보행자 수, 수변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어린이 수, 불꽃놀이 같은 행사를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가장 높은 설계안을 제시했다(그림5). 또 다른 예에서 학생들은 소규모 동물들이 서식하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설계했는데, 사용자 그룹은 관람객과 관리자로 동물관람과 관리에 관한 목적과 선호도가 상충된다. 학생들은 다리의 크기 및 경사도와 탈출하는 동물의 수, 관람빈도, 보행거리 등의 관계를 분석하여, 관람, 접근, 관리의 다양한 용도가 동시에 만족되는 설계안을 발견했다(그림6).

4. 인간과 건축물 간의 상호관계 연산,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의 진화

3회 연재에 걸쳐 뉴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인간이 건축 디자인 실험에 응용된 사례와 관련 디자인 프로세스의 특징을 고찰했다. 건축 디자인 실험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체험하고, 행동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설계자는 정량적인 사용성 분석과 평가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현 시대에 요구되는 사용자의 다양성, 개성, 사회적인 교감을 적극적으로 건축 디자인 실험체계에 포함할 수 있다. 디자인 컴퓨팅 분야의 진전과 함께 디자인 프로세스의 모델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설정보 모델링(BIM)을 통해 건축구성요소 사이의 형태와 의미적 속성이 연산이 가능해졌고,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시공 가능성과 성능의 분석과 평가가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건축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는 경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용자 및 사회문제에 관한 설계자의 가치관과 창의성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고, 사용자의 다양화 추세에 적합한 보다 진보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진보 외에도, 인간심리 및 행동의 연산체계는 디자인 컴퓨팅 분야에 적합한 인공지능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가상의 인간은 실제 인간처럼 최적의 편의와 심리적 만족(rewards)를 얻기 위해, 신체적 지각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설계안의 사용성을 판단하며, 사용자 사이에 사회적 행동을 결정한다. 이러한 인공지능 모델은 ‘지원성’,  ‘장소성’, ‘공간의 사회적 의미’와 같이 건축설계분야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심리학적 현상들을 실험하는데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이외에도, 가상의 인간과 같은 기술은 인공적인 창의성 모델(artificial creativity)의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컴퓨터 연산을 통해 수많은 대안이 생성된 후, 사용자 심리 및 행동기제 연산을 통해 생성된 형태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독창적이며 동시에 가치 있는 대안을 시스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최근 건축설계분야와 심리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그리고 컴퓨터 공학 사이의 전문적인 융합이 심화되는 추세이고, 건축설계 교육과 연구, 실무와의 연계가 강조되고 있다. 이를 통해 진보된 건축 디자인 실험도구와 디자인 프로세스를 기대해도 좋은 시기이다. 이상으로 ‘뉴 미디어와 건축 디자인 실험’의 연재를 마치며, 흥미 있게 기고문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본 연재를 기획한 월간 건축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감사의 글

본 기고문은 인하대학교 건축학과에서 2015년부터 현재까지 개설된 ‘디지털디자인과 미디어 1, 2’, ‘디지털디자인응용’, ‘BIM설계와 시공’ 과목에 참여한 학생들의 프로젝트에 근거하고 있다. 본 과목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께 감사를 드리며, 본 과목의 개설과 운영을 지원해 주신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진, 대학원 조교진, 마인드 컴퓨팅 랩의 학부 연구생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본 기고문의 관점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의 명예교수이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건축대학의 학장이신 Yehuda E. Kalay 교수님, 미시간대 앤아버 건축대학의 Malcolm McCullough 교수님,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이광희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기고문은 2016년도 정부(미래창조과학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기초연구사업(No. 2016R1C1B2011274)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글. 홍승완  Hong, Seungwan ┃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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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건축미 개념의 역사적 전개 연구 (3)

A Study on Historical Development of Western Architectural Beauty Concept (3)
_ aner tetragonos(ανηρ τετραγωνος) and Arkadia

서양 건축미 개념의 역사적 전개 연구 (3)
 _ 아네르 테트라고노스와 아르카디아

1.정사각형 인체의 인간

(1) 대우주와 인체비례

‘사각형의 인간’[‘호모 콰드라투스’, (라)homo quadratus]/‘아네르 테트라고노스’, (희)aner tetragonos/ανηρ τετραγωνος] / [1.ανηρ-man 2.τετραγωνος-1.square] 또는 <정사각형 인체의 인간>이라고 하는 고대의 개념은 ‘인체가 사각형 또는 원 속에’(homo ad circulum and homo ad quarratum)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리스인들로부터 생겼다. 그리스의 고전기 동안 인간의 이상적인 신체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원과 사각형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대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건축에서의 표준율은 BC 5세기까지 그 형식을 정립했다. 특히 신전 건축에서 적용한 범위는 한 부분만이 아니라 건축물 전체에 걸쳐서 비례를 통한 시메트리아를 창조했다. 그리스인들의 기하학적 도형으로서의 미의 형식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삼각형, 사각형, 원 등이었다. 특히 완벽한 비례미를 갖춘 이등변 삼각형은 3:4:5라는 세변의 비례를 갖춘 것으로서 ‘피타고라스 삼각형’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을 진정으로 완벽한 아름다운 형식이라고 했다.

‘아네르 테트라고노스’는 기하학적 형태와 일치하는 인체비례의 개념으로서, “대우주(원과 네모꼴)의 유비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완결된 형식(Homo imitatur mundum in figura circulari 또는 De harmonia mundi totius)” [임범재, 『인체비례론(고대로부터 르네상스까지)』, 홍익대 출판부, 1980, p.56]이다. ‘사각형의 인간’(정사각형 인체의 인간)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Francesco di Giorgio Martini, 1439-1502)의 길다란 교회 설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국립장서관소장의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의 드로잉>에서는 인체와 동일한 비례를 가진 건축은 원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도형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이 드로잉은 훌륭한 건축물의 비례는 인체 비례와 일치해야 한다는 르네상스의 신념을 보여준다. 디 조르조는 이것을 트랜셉트(십자형 교회 좌우 날개부분)와 앱스(반원형 부분)가 있는 라틴식 십자가 평면도 위에 길게 늘어진 모양의 교회를 예로 보여준다.” (HA.Ⅲ, p.232)고 했다. 또한 같은 드로잉을 가지고 그는 “르네상스의 두 번째 본질적 이념도 예증한다. 훌륭한 건축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상, 특히 원과 사각형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코가 설계한 교회는 중앙 집중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의 원리를 지키고 있으며 도면 전체가 사각형이라는 규칙적인 형태로 분할되어 있다.” (HA.Ⅲ, p.232.)고 했다. 필라레테가 이야기한 ‘예술을 위한 척도를 인간이 제공한다’는 것과 같이 그는 ‘건축은 인체와 동일한 비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레오나르도의 인체비례도 <비트루비안 맨>에서 처럼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는 체격이 좋은 사람의 비례는 원이나 사각형,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과 상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체 계측적인 개념(HA.Ⅲ, p.229)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의 위대함과 본질은 무한한 변형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했던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는 “내가 너를 세계의 중심에 놓았으니, 그것은 네가 그 자리에서 네 주변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더욱 쉽게 보게 하기 위함이다.” (Toby Lester, 『다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 오숙은 역, 뿌리와 이파리, 2014, p.105)라고 했다. 신의 모습과 비슷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는 유비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피코는 인간이 ‘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위존재로의 위치까지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편에서 신을 닮는(Imago Dei / Imago Christi) 것을, 이데아를 파악하는 방법으로서, “그러므로 되도록 빨리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되도록 신을 닮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신을 닮은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 타인에게는 올바른 행실을 하게 되고 신 앞에서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Plato, Theaitetos, 176b)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건축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본 ‘사각형의 인간’이라고 하는 ‘아네르 테트라고노스’(ανηρ τετραγωνος)는 신의 형상(species)으로 도달하게 되는 정신적 소우주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서, 자유로운 신과 같은 피조물로서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의 완결된 인간 형식의 유비적 존재로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도판 39> 100작품-‘개념의 건축화’된 4 카테고리 스케치(우주, 내용과 형식, 미메시스, 별자리)
(출처 : 최동호, 『건축사』 誌, 2012, pp.60-63.)

(2)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인체와 <원형과 사각형>의 개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이르러서 기하학적 형태와 인체비례의 일치성으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또는 ‘인체비례도’(Canon of Proportions)라는 드로잉을 그렸다. 그는 비트루비우스의 유명한 『건축십서』 제3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는데, 즉 원의 중심에서 보면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고(배꼽을 기준으로 원을 돌리면), 동일한 인체의 위치에서 정사각형을 그리고 키의 길이와 두 팔의 너비가 같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보았다. 레오나르도는 이 소묘 작품을 비트루비우스의 [건축10서 제3서 제1장 제3절] (Vitruvius, De archit., Ⅲ 1, 3.) <신전 건축 과 인체에서의 심메트리에 관하여>편에서 ‘인체의 건축에 적용되는 비례의 규칙을 신전 건축에 사용해야 한다’는 대목을 읽고 그린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의 원과 사각형에 대한 의미(‘원과 정사각형 안에 꼭 맞게 사람을 놓을 수 있다’)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사람의 배꼽이 실제로는 정수리와 발 사이의 중간 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의 배꼽을 공통의 중심으로 하는 원과 정사각형을 그리는 대신, 프란체스코, 조르조 마르티니 디가 했던 것처럼 정사각형을 밑으로 내려버렸다. 정사각형을 내리자. 그는 배꼽이 원의 중심에 놓이고 생식기가 정사각형의 중심에 놓이는 인체를 그릴 수 있다” (Toby Lester, ibid., pp.230-231)는 것이다. 즉 비트루비우스가 갖고 있는 이상과 레오나르도의 해부학적인 실제,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고자 하는 인간을 드로잉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도형이 똑같은 인체 위에 놓여 짐으로써 근본적인 비트루비우스의 메시지, 즉 인간 형상이라는 것은 정사각형과 원으로 제시된 자연과의 조화 구현과, 정신적 소우주인 완결된 인간 형식의 유비적 존재의 메시지를 담아냈던 것이다.

2.아르카디아로서의 아름다운 건축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사인 팔라디오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인 빌라 로톤다는, 원과 정사각형의 기본개념을 가진다. 빌라 로톤다는 중심공간을 두면서 중앙에 홀을 위치시키고 양쪽으로 작은 방들을 대칭으로 두면서 우측과 좌측의 동일한 방의 배분으로서 사면이 동일한 입면을 구성하는 현관 로지아(주랑/콜로네이드)를 두었다. 당연히 르네상스 건축에서는 설계의 필수조건으로서 심메트리아를 채택했다. 이 대표적인 팔라디오의 빌라 건축을 비롯하여 르네상스의 주거 건축으로서의 빌라는 르네상스가 낳은 시대적인 전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팔라디오는 고대 빌라 건축을 연구하고 전원저택 속에 그의 이상을 담아놓은 업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팔라디오의 빌라건축을 통하여 어떻게 전원이라는 자연 환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르네상스 시대 빌라의 최고의 친환경적인 조건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 ergilius Maro, B.C. 70-19)의 ‘목가적 이상향’에 나타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내용을 보면, 베르길리우스 『목가집 』(Bucolica seu Eclogae)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는 다름 아닌 아르카디아의 이상을 생각한 부분이며, 삶의 목가적 의미를 추구했다. 베르길리우스는 “전원의 삶과 풍경에서 원초적 무구(無垢)를 바라보고, 인간의 온전한 희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영혼의 안식을 동경하던 시대사조를 반영하고 있다.”(성염, 『베르길리우스 <목가집>의 에피쿠로스적 주제』, 『서양고전학연구』8, 1994, pp.95-96) 이러한 아르카디아의 평화스런 개념은 르네상스의 빌라건축에서 나타난 후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인 관계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베르길리우스에게 있어서 『목가집』은 아름다운 노래를 평온한 목가의 전원생활 속에서 부르며, 에피쿠로스적인 자연 배경 속에서 아타락시아라는 흔들림 없는 경지에 다다른다. 또한 “대자연으로 하여금 인간의 사회적 운명에 까지 공감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혼연 일치된 경지(sympatheia)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ibid., pp.63-64)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는 다름 아닌 ‘평정의 쾌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쾌락이라는 의미는, “고통이 없는 것, 마음의 동요에서 해방되는 것(άταραξία) 및 마음의 평화와 평정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Hirschberger, Johannes, 『서양철학사(상, 하권)』, 강성위 역, 이문출판사, 1992, p.342)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집』에 나타난 자연의 문제에 대하여는, 에피쿠로스가 탐욕과 욕정으로 어둡게 된 인간들에게 자연이라는 이름이 내리고 있는 타이름이 있었는데, ‘적은 것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tois oligois archometha)는 가르침을 내렸고, 루크레티우스는 구체적으로 ‘신체적 본성은 적은 것만을 필요로 한다’(pauca videmus esse opus omnino)는 진실을 베르길리우스에게 깨우쳐 주었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 삶은 어디에서부터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인가? 베르길리우스는 아르카디아의 모티프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시세계를, 도덕적 고양의 자연주의라는 것에 입각하여 해석함으로써 그 시도를 하며, 자연이라고 하는 범형에 맞추어 본인의 시세계를 구축, 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피쿠로스 사상이 베르길리우스에게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구원의 메시지로 들렸는데, “세계는 우리가 놀라고 두려워할 신성들이나 운명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자와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이 가득할 따름이며, 따라서 유일하게 정신적인 인간 존재들은 자기와 동근원(同根源)을 가진 대자연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성염, 『베르길리우스 <목가집>의 에피쿠로스적 주제』, 『서양고전학연구』8, 1994, p.96)고 하면서 또한 “자연의 법칙에 동화하고 노래를 읊고 소박하게 사랑하는 삶이었다. 인간이 그러한 자세로 임할 때에 아름다운 자연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연과 땅의 무구함과 건강함을 건실하고 애정어린 자세로 접촉함으로써 건실한 삶의 양식을 가꾸어 나가도록 북돋아 준다.”(성염, ibid., p.96)고 밝혔다.

에피쿠로스적 쾌락으로서 아르카디아 세계의 행복을 그렸던 베르길리우스는 “우주에 대한 지식(깨달음) 대신에 그의 시에서는 우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자리 잡으며, 그의 첫 번 목가에서부터 스승이 찾던 참다운 쾌락을 원초적 자연에서 발견하고, 고통스러운 인간 정염에 대한 치유(therapia)로서 인간이 자연과 통교(通交)함이 하나의 이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을 표상화한 것이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낙원 같은 세계이다.”   (성염, op.cit., p.76)라고 밝히고 있다.

<도판38> 빌라 숩우르바나(villa suburbana)를 보여주는 석판부조(2세기경)
(출처: Ackerman, James S., The villa: form and ideology of country houses  Thames and Hudson, 1990, p.8)

임범재는 <미의 아르카디아>를 다음과 같이 보여 주었다. “미술사 부르크하르트는 라파엘 그림의 출처, 기교, 구도, 색채에 관한 전문적(직업적)인 지식을 찾기 보다는 인간성, 신의 인간성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러하듯이 그는 ‘폐허의 미’를 통해 지평선 너머 미의 아르카디아에 향수를 느꼈다. 유명 건물보다는 오히려 신전 기둥이 나뒹구는 쓸쓸한 폐허를, 신형 건물보다는 신전이나 망령의 유택을, 완벽한 것보다는 ‘미완성’(non finito)품을, 완벽하게 완성된 조각품 보다는 torso를, 윤기나는 그림보다는 프레스코를, 걸작품이라고 해서 박물관의 상좌 같은 자리를 차지해 만인의 이목을 끄는 명화보다는 그 밑그림들을 좋아했다.”(임범재, 『21세기 건축에 있어서의 기술과 예술: 폐허 사이 저 너머-비트루비우스, 알베르티, 부르크하르트』, 『건축』37(5), 1993. 10, p.23) 건축은 본질적 개념이 더욱 소중하다는 의미를 밝히고 있다.

르네상스 빌라문화(빌레지아투라, Villeggiatura)는 고대 로마를 통하여 르네상스 건축사들이 형성·발전시켰는데 장원(莊園)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부분과, 목가적 삶으로 회기하려는 황금시대로서의 베르길리우스 전원시의 영향으로 볼 수가 있다. 팔라디오의 빌라는 그 당시 이상향의 목가적 개념으로서 최고의 자연 환경과 전원생활의 문화인 ‘빌레지아투라’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축4서』(제2서, 15장)에서는 입지 조건에 대해서, “이 빌라(빌라 트리시노)가 놓인 부지(도판38참조)는 매우 아름답다. 탁 트인 평원 한복판에 위치한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언덕 정상부의 중심에 둥근 홀이 만들어 지고 그 주위를 여러 방들이 돌아가며 에워싼다.”고 밝히고 있다. 빌라 로톤다는 로지아를 통해서 바킬리오네(Bacchiglione) 강을 비롯하여 주변의 전망을 놓치지 않고 끌어들이는 자연환경의 완벽함과, 신전형태의 외관과 질서 잡힌 대칭 구도의 엄격함 속에서 평정의 쾌락을 창조하고 인간과 자연의 혼연일치의 경지를 가져다주는 이상적인 빌라 건축으로 ‘건축을 자연화’한 개념으로서의 건축미를 보여주었다.

3.아름다운 건축의 현대적 적용 가능성

미적 아르카디아로서, 건축미의 개념은 건축다운 모습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선한 건축의 모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건축의 본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내용은 자연 이념이라는 주체가 감성화 되어서 존재하였던 땅(자연)의 순수함을 소유했고, 그리고 자연 순환이라는 질서는 잘 잡혀서 알맞은 균형을 이루었다.

우현 고유섭은 『조선건축미술사 초고』 경관의 제목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를 언급하고, “무릇 살터를 잡는 데는 첫째, 자리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이기웅, 『조선건축미술사 초고(우현 고유섭 전집 6)』, 열화당, 2010, p.27)면서 배산임수를 꼽는다.

김수근은 네가티비즘 공간에 대해서 그 가변성과 유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플라톤의 코오라 공간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코오라 공간은 어머니, 자리, 장소, 기반 등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김수근은 건축 공간의 확장은 물론이고 축소도 가능한 네가티비즘적 공간을 자궁 공간(Womb Space)이라고 했다.

까를로스 푸엔떼스(Carlos Fuentes Macís, 1928-2012)는 건축이란, “그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연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응답한 형태, 즉 신에게 봉헌된 인간의 자연관이자 자신들이 이해한 우주를 표현한 방식이라고 했다.” 자연은 어떻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인간은 그 아르카디아적 미의 이상향을 향해 가면서 어떠한 반응을 보여주고 건축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일까?

한국 전통 주거공간에서 채와 마당이라는 상호 콘텍스트는 매우 뛰어나다. 채는 보통 주요 3채라고 할 때, 안채, 사랑채, 행랑채라는 의젓하고 당당한 공간을 형성하면서 물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피안의 세계까지도 나타내면서 각각의 요소마다 채와 공간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옥의 <채와 마당의 건축미학>을 통하여 몇 가지 특성을 가진 주제들을 현대적 건축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채와 마당은 하나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외부공간의 중요성 인식 2) 감성화로 이루어진 칸(間)의 건축미학으로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의 미학 3) 안마당의 열림으로 사이공간의 조절공간미학 이해 4) 合자연성으로 채와 빈 것(마당)과 자연의 합일 5) 뒷마당과 같은 카타르시스적 공간의 소중함 등이 있을 것이다. 즉 외향성, 감성화, 융통성, 자연성, 카타르시스 미학성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가 있다.

아네르 테트라고노스는 정사각형 인체의 인간으로서 원과 사각형 속에 들어간다는 개념으로서 도형의 문제 보다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상으로써 완결된 형식을 의미했다. 팔라디오는 천정이 뚫린 아트리움의 중정이라고 하는 안뜰을 설계하면서 마치 한옥의 안마당과 같은 건축 개념을 표현했는데, 이러한 작품은 중심형 공간 미학을 갖는 팔라디오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팔라디오는 빌라 건축 프로젝트인 로톤다를 통하여 ‘빌레지아투라’라는 이상을 구현했는데,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적 이상향 개념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 속에서 건축미의 아르카디아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상과 같이 역사적 전개 연구를 통하여 건축미 개념을 해석했고, 그 해석은 ‘아네르 테트라고노스’와 아르카디아라고 하는 아름다운 건축의 중심 개념으로 귀결됐다. 현대적 적용 가능성은 미학사 텍스트에 나타난 것처럼 비례미에서부터 디세뇨의 건축개념들이 (비)물질이 되어서 아름다운 건축의 모습이 되며, 한옥 <채와 마당의 건축미학>에서의 비물질적 이념 또한 건축미의 아타락시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론

본 논문은 지금까지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비츠의 주저인 『미학사』 Ⅰ.Ⅱ.Ⅲ.이 담고 있는 건축미 개념의 의미를 가능한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사상적 핵심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 새로운 해석은 ‘아네르 테트라고노스’와 아르카디아를 아름다운 건축의 참된 사상적 지향점으로서 나타났다.

‘건축미’개념은 고대미학의 고졸기의 두 번째 시기에서부터 시작했다. 본고는 현대건축까지 변하지 않고 요구되는 견고성, 실용성 그리고 미를 비트루비우스 정의인 건축술의 3목표 가운데에서, 특히 미의 부분을 미적 판단의 최고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건축의 아름다움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건축십서』에서는 건축미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즉 “건축미는 건축 작품의 외관이 즐거움을 주고 우아할 때 보장될 것이며 각 구성부분들의 비율은 심메트리아를 위해서 올바르게 측정되어진다.” 심메트리아와 에우리드미아라는 객관적 비례와 눈의 비례를 대립적 개념으로 대비시켰다.

BC 5세기 그리스 건축사들은 예술가들 중에서는 최초로 건축의 표준율의 형식을 정립하고 카논을 신전 건축 설계에 광범위하게 응용하고 논문으로도 기록했다. 즉 고전기 그리스 건축은 카논에 의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은 구성적 예술의 기본이었다. 신전 건축에 있어서 조각과 회화는 건축을 완성시키는 요소들이었다. 비례로 인하여 심메트리아는 힘의 지배 관계가 균형이 잡힌 안정된 모양이 되는데, 조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였다. 고졸기와 고전기 건축미는 비례미와 심메트리아의 조화미, 데코룸과 적도의 건축미가 파악됐다.

중세미학에서 고딕의 성당건축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높게 될 수 있어서 보다 날씬한 비례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빛의 미학에서 고딕의 빛은 신의 영광의 빛이라는 의미로서 정의 하였고, 빛과 색채를 결합하여 스테인드 글래스라는 고딕성당의 예술형식을 발전시켰다. 로마네스크건축은  단순한 수적·기하학적 규칙이라는 단순성에 의한 형식들을 채택했고, 벽의 육중함과 표면의 거칠음의 미학을 찾아내었다. 중세 건축미는 상징성의 미, 기하미, 빛의 미학에 기초했다.

르네상스의 콰트로첸토는 건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개념과는 다르게 변화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건축이 공간을 둘러싸는 것이지만 이제는 표면을 꾸미고 벽을 장식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기둥이 공간적인 요소였지만 르네상스의 건축사는 기둥을 벽의 한 요소로 만들었다.

16세기의 고전적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은 웅대함, 조화, 균형 등으로 말할 수 있으며 비례, 규칙성, 대칭성과 같은 원칙을 지키게 되었다. 즉 르네상스 시대는 직선적인 파사드와 직각의 결합이 지배하게 되는 엄격한 설계가 되살아나면서 둔각이나 예각의 설계가 금지되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균일한 배치’에서는 르네상스 건축의 건물 창문의 모양이 규칙적 배열로 되어야 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되었다. 르네상스 건축미는 비례미와 우아미, 콘키니타스, 디세뇨 개념이 중요한 건축미의 요소들이었다.

건축미학의 중심 개념으로서의 ‘아네르 테트라고노스’ 개념은 ‘원과 네모’라는 우주의 기하학적 원상속에서부터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도형으로서 유비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완결된 형식이다. 마크로비우스는 ‘세계는 크게 나타난 인간이고 인간은 작게 나타난 세계다’라고 쓴바 있고, 소우주와 대우주 간의 관계에 대하여 로마초는 인간의 신체를 소우주라고 불렀다. ‘사각형의 인간’(호모 콰드라투스)은 신의 형상으로 도달하게 되는 정신적 소우주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서, 자유로운 신과 같은 피조물로서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의 완결된 인간 형식의 유비적 존재로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팔라디오가 설계한 빌라 로톤다는 순수 기하학적 미의 이상적인 비례미의 원리를 보여주며 그 대칭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르네상스의 최정점의 건축으로서 정사각형이 갖는 우주의 상징성과 원형의 완결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빌라 건축은 그 당시 이상향의 목가적 개념으로서 최고의 자연 환경을 갖으면서 전원생활의 문화인 ‘빌레지아투라’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빌라 로톤다는 로지아를 통해서 주변의 전망을 놓치지 않고 끌어들이는 친자연환경의 순수함 속에서, 평정의 쾌락을 창조하고 인간과 자연의 혼연일치의 경지를 가져다주는 이상적인 빌라 건축으로 ‘건축을 자연화’한 건축미 개념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이 갖는 친화적인 관계성을 회복하고 적은 것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자연의 가르침인 원초적 무구(無垢)의 아르카디아의 이상적 건축에서 현대 건축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건축미 개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당은 생활 터전이며, 삶의 한 방법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왔다. 채와 마당은 함께 존재하며 한 쌍을 이룬다. 마당의 특성이 갖고 있는 외향성, 감성화, 융통성, 자연성, 카타르시스 미학성의 개념들은, 아름다운 건축의 현대적 적용에서 <채와 마당과 자연>과의 합일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 최동호  Choi, Dongho · KIRA ┃ 건축사사무소 마당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