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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향기처럼 아주 멋진 건축사 시장을 꿈꾸며

Dreaming of a wonderful architecture market like the fragrance of May

 

5월이 어느새 정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정치… 참 이미지가 이쁘지 않은 단어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를 한다는 말은 조직 내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정치를 한다는 말은 중상모략을 하고, 뒤에서 연을 대고 실력보다는 다른 것으로 승진하는 이미지입니다.
왠지 정치의 반대말이 실력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치는 제도를 만드는 분야입니다. 제도는 합의를 통해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적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건축은 이런 제도의 기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제도는 때로 전문가적 시선과 다른 대중의 시선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빙자치제가 해방이후 제헌국회에서 만들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사망했었습니다. 그런 것이 부활한 것은 지난 1995년입니다. 이제 겨우 20살이 조금 넘은 제도입니다. 미성숙한 단계고, 앞으로도 여러 문제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선거로 당선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제도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듯 합니다.
건축사협회도 직선제를 통해 협회장을 선출해 보니 협회회원들을 위해 개선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지방자치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방자치제에 대한 불만이나 문제점은 단체장들의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건축사협회 같은 경우는 일정 수준 이상의 회원들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이라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의 지방자치제 후보들을 보면 말 그대로 다양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수많은 전문가들을 인재풀로 해서 공약을 만들고 선거에 나섭니다.
전문가 집단이 이들의 선거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에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는 우리의 생활과 매우 밀접하고, 대부분의 공약을 보면 건축입니다. 따라서 우리 협회회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건축사들이 직접 후보로 나서서 선거전에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도시나 지역의 단체장으로 어떤 전문가보다 건축사가 가장 현실적 감각과 뛰어난 창의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후보가 아니라면 공약을 만드는 것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 경쟁에서 지역경쟁으로, 도시 경쟁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도시 경쟁력은 도시 환경에서 출발하고, 도시 환경은 건축을 자원으로 구성됩니다. 건축은 바로 우리 건축사들의 몫인 것입니다. 건축사들이 적극 참여해야 좋은 건축들이 만들어지고, 좋은 도시 환경이 만들어 집니다. 그것은 바로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져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이미 건축사 출신으로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과가 어떤 후보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외역시 이런 사례는 무척 많습니다. 바르셀로나가 그렇고, 한때 국내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브라질 쿠리치바가 그렇습니다. 모두 건축사들의 강력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어떤 직업보다 건축사들의 성과는 단지 건축주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혜택을 봅니다. 좋은 건축과 좋은 건축으로 구성된 도시는 불특정 다수인 도시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도가 만들어지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좋은 건축 환경, 제도와 정치를 잘 만들어야 우리 건축사도 좋지만, 우리나라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번 지방자치선거에 건축사들이 주체가 되어 적극 참여해야할 이유입니다.

글. 홍성용 •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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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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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1. 지방자치제의 중심에는 건축이 있어야

건축 담론

편집국장 주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매달 다양한 건축계 필진들을 모시고, 우리 건축계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논하려고 합니다. 우리 환경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뿐만 아니라 초개인화 되는 개인 경제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세계 유래가 없이 전개되고, 도시재생이라는 이슈가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의 국가 정책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건축계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선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월간 건축사는 국내 유일의 건축사 발행지로 책임감을 가지고, 건축담론 코너를 시작하려 합니다. 지면특성상 매월 각기 다른 주제로 약 1~2편의 글이 실릴 예정입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의미는 강하게 나아가겠습니다.

589호 첫 주제는 “건축사에게 지방자치선거란? 그리고 법과 제도란?”입니다.

건축사는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건축법과 소통하는 전문가입니다. 건축은 소유관계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런 만큼 섬세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6월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선거가 있습니다. 지방자치선거는 각 지역의 단체장을 뽑는 것으로 정파를 떠나 생활경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섬세한 리더를 찾아내야 합니다. 건축은 항상 이들의 주요 공약과 실천 대상입니다. 건축사는 당연히 이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건축사들은 이들의 브레인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엉뚱한 세계 제일의 세금 낭비들이 속속 만들어 졌습니다. 적어도 건축사는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런 만큼 건축사의 풍부한 상상력과 실천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국민 생활에도 보다 풍요로운 환경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01 지방자치제의 중심에는 건축이 있어야
There must be architecture in the center of a local self-governing system

지방자치제의 핵심은 건축에 기반한 도시 전략

지방자치제는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에 대해 독립적인 행정과 정책을 기반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자치제는 단체장과 의회를 선거를 통해 구성하며, 어느 정도 자립적 법률과 행정을 하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다.

행정법원론(홍정선 저, 박영사, 2001년 45-46쪽)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기능이 서로 상이한 여러 종류의 고권 – 지역고권, 조직고권, 인적고권, 재정고권, 자치입법권, 계획고권, 행정고권, 협력고권, 문화고권 등이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중 계획고권은 지역적인 계획 임무를 권한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책임으로 수행하는 권리와 지방자치단체와 관련이 있는 상위계획과정에 참여하는 권능을 칭하고 있다.

계획고권은 상위구조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긴장과 협력의 대상이기도 하며, 범위나 규모에 따라서 상호협력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도시계획이나 건축은 주요한 계획고권의 범위에 속한 업무이다.

경우에 따라서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 자립적으로 지역적인 계획을 수립할 능력이 없다고 판정하는 경우 법률적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이 과정이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간의 간극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자치제의 근간은 자립적 판단과 정책을 통해서 지역적 성과와 효율성,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도시 지역을 기반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자립적 판단과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지역 개발이라는 용어는 행위적으로 건축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건축은 도시계획에 의해서 진행된다. 특히 도시계획과 건축은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경우에 따라서 일체의 행위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 계획이전에 전략적으로 도시를 어떻게 구성하고, 미래 변화에 대응할 정책 방향이다.

국가 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위는 주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 그런 이유로 국내외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선거제를 통해서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는데, 대부분의 선거 공약은 지역개발에 관한 것이다. 지역개발의 핵심은 다시 도시 개발과 이를 완성하는 건축이다.

사회의 변화, 그리고 도시 전략

오늘날 사회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특징만 하더라도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성장, 고령 인구의 증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전통 가족 형태 붕괴, IT 정보화 사회를 뛰어 넘는 새로운 4차산업 혁명사회, 급속한 도시화, 고도소비 경험 사회, 과잉학력사회와 노동력 부족, 다문화 증가로 인한 도시 공간 분절… 과거에 볼 수 없던 현상들과 이슈들이 거의 매일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 영향을 준다.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요소들은 도시 구조에 영향을 주고, 건축에 영향을 준다.

더구나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많은 시민들은 공간에 대해서 수준 높은 질적 서비스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정량적 데이터와 학습을 기반으로 도시전략을 전개했다면 앞으로는 정성적 데이터와 예측을 적용한 도시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 도시 전략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누가 세우는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실질적 역사가 길지 않다. 비록 1948년 식민지시대를 청산하고 독립정부가 운영되면서 제헌 헌법 내에 지방자치 규정을 만들고, 1949년 지방자치법을 제정했으나, 한국전쟁이후 거의 사문화 되었다. 특히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지방의회의 해산을 기점으로 명목적으로 운영되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재개되기 시작했다. 1994년 관련 법령제정을 기점으로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시작했다. 이로써 본격적인 지방자치제를 시행하였으나, 다양한 시행착오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지속적으로 보완 개정되고 있다.

지방자치제의 확산과 내용에 대해 이 글에서는 깊이 있게 언급하기엔 방향이 달라, 이 정도 선에서 언급한다. 다만,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면서, 정당과 단체장들이 내세우는 다양한 정책들의 상당수는 실생활과 관련된 것들로 건축은 첨예한 이해의 중심에 있다.

각 지역들의 독립적 행정과 운영은 자연스럽게 지역 간 경쟁이 나타나며, 경쟁은 시민들의 만족도나 정주성 등을 요구하게 된다.

건축,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성과

1995년 이후 선출된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서면서 지방자치단체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행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공덕비를 세우는 지방 관리처럼 눈에 띄는 홍보성 성과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제일 넓은, 최고,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등의 타이틀을 목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성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단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지역건축 정책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빌바오 이펙트(Bilbao Effect)역시 이런 지방자치단체의 성과 주의 경향에서 시작한 것이다. 빌바오 이펙트로 언급되는 빌바오시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략은 흔한 성공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한 경우가 더 많다. 이웃 일본의 탄광도시 유바리시의 충격적인 도시 부도 역시 잘못된 성과주의에서 출발했다. 엉뚱하게도 테마파크라는 시설을 유치하면서 유바리시의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 되었다. 그뿐인가? 미국의 대표적 산업 붕괴도시 디트로이트 역시 잘못된 판단으로 거대 건축을 통해 도시를 부흥하려 했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에 가면 거대한 아치(Grand arch)가 도시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지만, 아쉽게도 도시발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왜 그럴까?

도시에서 건축이 하나의 생명력을 가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반여건들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도시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며, 시민들의 요구와 트랜드(Trend)를 선제적으로 읽어서 제공하는 것이어야 성공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다. 실패한 것들만큼 성공한 사례 역시 부지기수로 많다. 지방자치제의 성과는 이런 사업들에 대한 독자적 판단과 추진, 진행이 가능할 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스페인 국경의 오래된 도시 빌바오의 부활을 이끌어낸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의 힘으로 도시를 세계무대 위로 끌어 올린 경우다. 프랭크 게리를 통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외진 도시 한 복판에 세우는 값비싼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부터 완성되어 대규모 오픈 행사를 가질 때까지 세계적 주목은 멈추지 않았고, 거의 가지 않던 빌바오시는 관광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다. 등대처럼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만들었고, 이는 매력적인 신호가 되었다. 명소(Attraction)전략은 실제 강력한 집객 기능을 하게 되었고, 구겐하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기능들은 콘텐츠로 (Contents) 풍부한 경험의 요소가 되어 도시 경쟁력을 이끌었다.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이라면 전국의 순번을 기다려야 하고, 정부재원으로 진행되므로 여러 기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는 기초단체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시간과 의사결정에 빠른 효과를 보여준다. 특히 건축은 다른 어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중에서도 독립적인 결정이 가능한 분야다. 이렇듯 건축의 힘을 일찌감치 이해한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건축사보다 더욱 더 적극적인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기도 한다.

일본 구마모토는(구마모토는 우리나라 강원도 같은 행정지역) 지역의 구체적 정책으로 아트폴리스(Artpolis) 정책을 통해 구마모토내에 진행되는 상당한 건축 프로젝트들을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것들로 진행했다. 대형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 집회 시설뿐만 아니라, 지역의 초등학교 체육관, 시골 마을의 지역농산품 매장, 산중턱 고속도로 전망대 같은 수많은 지역 건축 사업에 적극 활용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선발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선거제도를 통해서 진행한다. 이런 방식에서 때로 전문적 식견이나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가 없는 장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바로 이런 경우인데, 미국 디트로이트에 거대 스포츠 시설을 짓는다던가, 일본 유바리시처럼 난데 없는 테마파크를 건설하는데 비용을 다 써버려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여서 섬세하고 정확한 분석 없이 눈에 보이는 성과주의로 진행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건축전문가가 이 과정에 필요한 이유며, 제도적 개입이 요구되기도 한다. 개인의 능력에 의한 건축사 중용이 아닌, 전체를 전문적 관점과 경험/지식으로 통제 조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행정조직으로 들어가는 건축사이다.

Public Architect는 단지 자문이 아니라 기본 구상과 전략에 개입해야 한다.

제3자로 자문과 조언을 하는 것은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있어서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정작 실현하는 결과에 반영도가 높지 않으면 성공확률이 극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복잡한 게임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보스턴 도시 계획국(Boston Planning and Development Agency)의 경우 준 공무원 수준의 신분으로 도시 계획 전반을 직접 설계 참여를 하면서 지역 건축사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성과를 이루어 낸다. 단지 용역으로 납품 받고 검토하는 것 이상으로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이다. 유사한 조직들과 절차는 프랑스의 공무원 신분 건축사들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전문가인 건축사가 공무원 신분으로 각종 인허가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건축설계 가이드라인이나 코디네이터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정책들은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성향과 해당 지자체 조례 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공공건축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민간에 비해서 자본과 수익성을 따지는 경제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혁신적인 건축을 성과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또는 지역의 비전과 미래를 드러내는 상징적 건축이 가능하다. 그동안 진행된 공공건축은 대체로 리더에 의해 수직적 지시(Top down)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앞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방식은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기 힘들어서 성과가 미진하거나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점이 건축사라는 전문가가 개입해야 하는 점이다. 의사결정 말미에 제공된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건축사로 만족하면 올바른 성과가 될 수 없다.

공공건축은 정부나 지자체 등이 진행하는 대부분의 건축으로 국내 건축시장을 민간과 공공으로 구분할 때 그 규모가 상당하다. 2016년 자료를 보면 국내 등록된 전체 건축물이 총 7,054,733동이고 그중 공공건축물은 199,861동이다. 약 2.83%로 미미해 보일 수도 있지만, 면적으로 조사하면 5.6%에 육박한다. 민간의 건축물은 규모면에서 아주 작은 경우도 포함되고, 아파트 같은 대규모 주거단지들이 있기 때문에 공공건축의 5.6%는 결코 작은 비율이 아니다. 이 통계에는 공기업의 건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건축은 특정 지역과 장소를 시각화 하고, 불특정 다수의 이용 대상이므로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의 여러 가지 내용과 의미를 볼 때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건축 정책과 계획은 초기 단계부터 건축사들이 적극 개입해야 할 근거이다.

보다 거시적 시각의 건축사들이 전략과 계획에 참여해야 한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가 의미하는 것들 – 건축으로 만들어낸 경제적 성과

80년대 후반 시도되어 상당한 성과를 냈었던 사례인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뒤늦게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례는 2007년 출판한 스페이스 마케팅에서도 언급이 되었고, 수많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이글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의 공공건축 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의 건축까지도 통합적이고 전략적 선택으로 진행하도록 정책방향을 정한 점이다. 국내에도 서울과 경북 영주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런 제도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건축사들이 수용하고 건축사협회가 지자체와 호흡을 맞춰 진행할 이유이기도 하다.

구마모토아트폴리스의 사례들 중 지역경제에 영향을 끼친 프로젝트들도 상당하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라는 정책은 브랜드 전략으로 되었다. 그리고 지역 건축사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각지의 다양한 계층의 건축사들 참여로 소위 말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청화문악관(Seiwa Bunrakukan)이라는 일본 전통인형극을 하는 극장은 전형적 일본의 시골마을에 건축되었다. 아트폴리스 일환으로 건립되었는데, 겨우 인구 4천명의 농촌마을이다. 일본건축사 이시이 가츠히로(石井和紘)가 일본의 전통건축을 재해석한 200객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은 연간 수 만명의 관람객을 외부로부터 모은다. 공연시즌이 되면 인근 마을 넘어서 숙박하게 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혹자는 행사에 집중하지만, 이시이 가츠히로의 작품 역시 만만치 않게 화제를 끌어모으면서 관람객의 방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미국의 와인산지로 유명한 나파밸리나 다양한 사례에서 관광이 되었건, 지역 거주자를 늘렸건 지자체들의 건축을 통한 성과를 읽을 수 있다.
실패의 사례를 보면 섬세한 전략이 미비되고, 발상이 새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과정때문에 건축사의 관점과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건축사, 지방자치제에서 역할은 무엇인가?

지방자치제의 핵심 성과가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전략이라면, 건축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좋은 점은 직접 경영에 뛰어드는 것이다. 직접 선거 당사자가 되어서 지방자치제의 꽃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안된다면 좋은 건축을 기획하고, 구상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어설픈 것이 아니라 진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방자치제도에 적극 참여해야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
강 건너 불구경할 것이 아니라, 건축사들은 적극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왜냐하면 지방자치제도에서 건축사는 최적의,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 본지 편집국장 · 건축사NCS lab · 서울시 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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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2. 정책과 제도, 건축사업무환경, 그리고 석정훈 회장의 협회

건축담론

02 정책과 제도, 건축사업무환경, 그리고 석정훈 회장의 협회
Policy and System, Architect’s working conditions and KIRA with the president Mr. Seok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선거가 국민들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선거를 통해 바뀌어 질 정책과 제도가 국민들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각 지자체 출마자들은 공약이란 형태로 자신이 당선될 경우 펼쳐질 정책과 제도를 홍보할 것이며, 공약은 필요에 따라 현행의 법과 제도가 큰 폭으로 변경될 것을 전제하기도 한다. 기존의 관행과 질서에 대해 변경 폭이 큰 공약은 그 자체로 임팩트가 커서 유권자의 변화에 대한 공감과 선택여부에 따라 출마자의 당락을 좌우하는 절대적 요소가 되곤 한다. 당연히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 출마자들은 유권자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만한 공약을 앞 다투어 제시할 것이며, 공약에 대한 공감과 그에 따른 지지의 크기는 공약의 실현가능성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유권자들이 공약의 제안자가 최소한, 공약의 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변경 등 공약실현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란 선의를 믿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은 출마자가 이루려는 더 나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시선 또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 시각에 대한 공감여부에 따라 유권자들은 표를 행사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출마자들의 건축 관련 공약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각 지역 출마자들의 공약에 인간의 삶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삶의 질을 높일 건축적 공약이 포함되어 있을까? 그들의 공약에 건축 관련 공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과연 그들의 눈에 지금의 건축 환경은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환경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들은 그들 지역구 주민의 더 나은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우연히 건축적 가치에 안목이 있는 출마자가 있어 더 나은 건축 환경을 위한 공약이 나온다면 유권자들이 그 공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표를 줄 수 있을까? 왜 유권자들은 그들이 매일 매일 생활의 근거가 되는 건축 환경의 개선공약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고 있을까?

5년 전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모토로 한 영국 런던의 친환경 중심의 에코빌드전시회를 방문하였을 때, 행사장의 중간 중간에 있던 토론장과 발표장에서 “우리는 어떤 정당을 지지해야 할까?”하는 주제로 많은 곳에서 토론과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나서 영국의 건축사들이 단지 전문적 지식인의 영역과 굴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정치세력에게 전문가들의 시선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법들을 제시하고 그것의 실제적 적용을 위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느낀 경험이 있다. 사실 영국 런던은 에코빌드전시회를 방문하기 5~6년 전까지는 출장 또는 여행으로 여러 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마다 성장이 정체된 선진국 대도시의 무기력한 거리활력만이 느껴지던, 수년 만에 방문했던 같은 그곳에서, 식당과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만 하고, 곳곳에 공사현장이 벌어져 마치 한창 최고의 발전시기를 누리는 활기찬 개발도상국의 중심 도시에 서있는 것 같이 갑자기 변해버린 그 이상한 광경이, 충격적 경험과 대비가 되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한 이슈가 세상의 큰 이슈중 하나로 부각될 즈음에, 어떤 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판단한 영국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앞선 선제적 정책과 대응으로(예를 들면 모든 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등급을 매기고, 저효율 에너지건물에 대해서는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과태료를 부담시키며, 초기에 고효율 건물로 개축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강제적 법규를 시행하는 등) 세계적 이슈를 선점하며 그 분야에 대한 세계적 강자로 자리 매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성공적 변화의 동력의 중심엔 건축사를 포함한 건축전문가들의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설명과 설득의 노력이 있었고, 다소 힘든 과정을 겪더라도 결국 국가와 국민의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줄만큼 충분히 국민에게 설득하고 홍보하여 정책의 제도화를 이뤄낸 쾌거였다. 그로인한 직접적 효과로 건축경기가 활성화되고, 타 산업과의 관련도가 높은 건축경기의 속성상 국가경제의 전반이 활성화 되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맺게 되었다. 물론 입법과정에서 부담증가에 대한 시민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전문가 집단의 열정과 노력이 영국을 쇠퇴해가는 무기력한 국가에서 변화의 선봉에 서서 웅비를 다시 꿈꿔볼 수 있는 활기찬 국가로 변화시켰다.

우리 건축사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건축사 업무 환경이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IMF이래로 지속적으로 나빠져 지금은 버티기가 힘들만큼 최악의 상태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건축사의 업무환경을 최악의 상태로 추락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은 스스로 전문가의 중요한 의무와 역할을 방치하고 내팽개친 우리 건축사와 건축사협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5년전 영국을 방문했던 이래로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만약에, 얼마 전 시민 대토론 때에야 등장했던 원자력 전문가들이 일찍부터 대한민국 원전 시스템에 대한 안전성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유망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국민과 정치집단에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신뢰를 줬어도 대한민국에서 원전의 점차적 완전폐쇄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었을까? 나는 시민 대토론 방송에서야 처음으로 원전을 반대했던 수많은 국제적 환경운동가들이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전을 받아들이며 지지자로 전향한 사례들을 그때 처음 접해 보았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폐쇄가 정책적으로 결정된 이후에야 그들의 전문지식으로 확신하게 된 원자력의 안전성과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이 갖는 의미와 가치, 에너지 수단으로서의 대체할 수 없는 유용성 등을 설명하려 했으나 상황은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겪이 됐다. 그나마 마지막의 노력덕분에 그들의 우리나라 원전부문의 국제 경쟁력에 대한 호소는 먹혀 수출 길 까지는 막히지 않았으나, 원전이 안전을 이유로 폐쇄되는 국가에서 적게는 수조원에서 유지관리까지 수백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는 원전수출을 장려한다는 정책은 그야말로 코미디같은 정책이다. 곧 없어질 자동차회사의 자동차를 구입할 소비자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원전을 완전 폐쇄할 예정의 국가로부터 최소 수십년간 운영해야할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없다고 확신한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정책이 실행되도록 방치한 책임은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있다. 수년 내에 밥줄이 끊길 원자력 전문가집단은 결국 그들의 전문가로서의 책임방기로 인해 그들과 원자력종사자, 그리고 원자력으로 꿈을 펼쳐보겠다며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학생들의 운명과 더불어 원전산업을 통한 대한민국의 웅비의 기회마저도 나락으로 빠뜨린 대역죄를 범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는 이제까지의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의 변화의 물결을 목도하고 있다.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늘어난 자연재해와 기후와 환경의 변화, 인구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문제의 변화, 빈부격차의 심화, 잦아진 국가 간 교류와 인구이동에 의한 변화, 엄청난 속도의 기술과 과학의 발달 및 그로인한 경제시스템의 변화, 기타 등등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도 모자랄 만큼의 변화들이 지금의 세상에서 전 지구적 차원으로 그 속도와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힘센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놈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변화의 시기에 사회에서의 전문가의 역할은 자기분야와 관련된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변화에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 국민과 정책입안자에 알리고 힘을 모아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당시, 우리나라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개조하고 힘을 키운 일본에 의해 참탈 당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렸던 치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불과 수십년 동안 일어난 세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의 차이는 세계적 경제·군사 대국의 위상을 가진 국가와 노예국가라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었고, 그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한 우리가 선조들의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나는 석정훈 회장님을 5년전 영국에 다녀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학연, 지연을 포함한 어떠한 인연도 없었던 분이었으나, 몇 번의 만남의 과정에서 석정훈 회장님의 건축사 업무환경, 협회의 역할 등을 포함한 건축계 전반환경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과 그 변화를 이뤄내야 할 우리시대 건축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한 회장님의 인식과 신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석회장님이 서울 회장 출마하실 때부터 도와드리며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동지적 관계를 맺어왔다. 석회장님을 도와드리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개최 1년전 쯤 만해도 반드시 실패할 것만 같았던 UIA세계건축사대회를, 개인적으로는 매우 큰 리스크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위원장을 맡으시며 성공시킨 것이었다. 개최 1년전 쯤의 상황은 정말 암울하였다. 사협회, 가협회, 학회의 3단체의 공동주최로 유치된 UIA대회의 준비과정은 유치당시의 초심에서 벗어나 각자의 부담은 적게 지고 명분은 크게 얻으려는 각 단체의 이기적 모습들로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었으며, 건축사협회의 내부적 상황도 UIA행사가 마치 남의 행사인양 건축사들의 관심은 저조하고, 본협은 성공에 대한 노력보다 실패할 때를 대비한 면피방법을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UIA준비과정에 깊게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데, 석정훈 회장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서지 않으셨다면, 대회는 결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없었다. 불신이 심화된 타 단체와의 설득과 소통노력, 불안해하는 서울시와 국토부와의 지속적 업무협력과 지원요청, 그리고 우리 건축사의 관심과 참여를 늘리기 위해 입술까지 터져가며 그 많은 지방건축사회의 모임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심과 참여의 지원을 호소하고 다니셨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히 박혀있다. UIA행사를 건축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공을 이뤄내면서, 우리 건축사들은 대한민국 건축계의 가장 믿을만한 주도세력으로서 인정받는 무형의 큰 자산을 얻어내었다. 밥그릇타령만하는 이익집단으로서가 아닌 전문가집단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주도해서 만들고 싶은 건축사 업무환경 조성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건축사 업무환경 조성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정당한 업무대가는 국민과 정책입안자와 정책당국자 모두가 건축사 업무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건축사 업무에 대한 대가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일거리도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건축 환경만으로는 결코 지금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수용할 수 없음을 국가와 국민이 깨닫고 변화를 효과적으로 수용할 새로운 건축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때서야 충분한 일거리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석정훈 회장의 대한건축사 협회는 위기와 변화와 기회를 직시할 것이다. 우리 건축사들 모두의 힘을 모아,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변화의 흐름과 방향을 직시하여 그 속에 담긴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 석정훈 회장의 대한건축사협회는 원자력전문가들의 실수를 결코 우리분야에서 일어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선도적으로 만들고 국민과 정부를 설득할 기회와 도구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쟁관계, 혹은 적대적 관계였던 단체를 포함, 건축 관련 단체의 힘을 모두 모아 건축을 경제, 사회, 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며 국민과 정책 입안자들의 신뢰를 반드시 얻어낼 것이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건축사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순리로 받아들여지게 할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반드시 바뀔 것이다. 바로 앞에 벌어진 위기에만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주도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이끌어 갈수 없다는 사명감을 갖고 건설의 시대를 이제는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건축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시대의 건축사가 우리였던 것이 그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고 칭송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글. 박원근  Park, Wongeun ┃ 대한건축사협회 미래전략단장 · 서초건축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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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만 지방중소도시의 상점가 재생 _ 미야자키(宮崎) 니치난시(日南市) 아부라츠(油津)상점가

Shopping-Street Regeneration in Local Small City _ ABUTATSU Shopping-Street in Nichinan City, Miyazaki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함께 상점주의 고령화, 교외지역에 늘어나는 대형쇼핑몰 등 전국적으로 재래시장 상점가의 쇠퇴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본 또한 예외는 아니다. 미야자키(宮崎)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니치난(日南市)시1)가 자그마한 지방 중소도시 중심시가지 상점가의 활기를 되찾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2016년에 일본 경제산업성(経済産業省)의 「빛나는 상점가 30선(はばたく商店街30選)」에 선정된 아부라츠(油津) 상점가는 약 250m L자 형태의 작은 상점가로서, 4년 전만하더라도 문 닫은 상점이 늘어서 있어 아무도 찾지 않던 곳이었다. 실제로 2013년 당시 빈 점포율이 26%에 다다르며 영업 중인 점포수가 28점포로 1965년 당시 80점포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든 쇠퇴한 상점가였다. 하지만 2018년 4월에는 29개의 새로운 점포가 출점했고, 일반적으로 어르신들만 찾는 상점가에서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변화됐다. 어떻게 4년 만에 이러한 상점가 재생이 실현됐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그림 1) 다세대교류 몰 중앙 중정 및 내외부 전경 © 송준환

■ 외지(よそ者)에서 온 2명의 민간전문가와 주식회사 아부라츠응원단(㈱油津応援団)

먼저, 니치난시에서 2012년도부터 시작한 중심 시가지 활성화 사업에 근거해 테넌트 믹스 및 서포트 매니저 고용을 위해 전국에 모집 공고를 냈다. 4년 임기로, ①상점가 내 20점포의 신규점포 유치, ②임기 중에 니치난시에 거주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출장비, 사무실 운영비 등의 사업비가 포함돼있긴 했으나 월 90만엔(약 900만원)이라는 좀처럼 행정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고용임금로 모집이 시행됐다. 그 결과, 333명의 응모자 중 키토 료타(木藤亮太)씨가 최종 선정됐다. 그는 후쿠오카(福岡)시의 마치즈쿠리 컨설팅회사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여러 제안서와 보고서를 작성해 왔으나, 정작 지역이 개선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의문에서 출발해 직접 거주하면서 사업을 실현에 옮길 수 있다는 이유로 위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마케팅 전문관으로 타지카 토모키(田鹿倫基)씨가 고용되었다. 타지카씨는 경제학을 전공한 후 도쿄 및 중국 상하이 등에서 IT회사에 근무했다. 이벤트 등의 단발적 사업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경제 및 시장원리에 근거한 상점가 재생을 시도하고자 니치난시에 들어오게 된다.

그림 2) ABURATSU GARDEN 전경 © 송준환

키토씨와 타지카씨는 외지인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역재생을 시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서 주식회사 아부라츠 응원단을 2013년에 만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방도시에서 마치즈쿠리회사를 발족하는데 행정이 출자를 하는 것에 반에, 이 응원단은 100% 시민출자로 1인당 약 30만엔 정도로 50명 정도가 출자하여 자본금 1천600만엔으로 시작했다. 회사의 상무로는 키토씨가 부임하여 각종 사업을 이끌었다. 이 회사는 첫 사업으로 시작한 ①아부라츠 카페(ABURATSU COFFEE)의 운영, 빈 점포를 빌려 리노베이션하여 새로운 사업자에게 알선하는 ②세입자 믹스사업, ③시찰 등의 대응을 실시하게 된다.

그림 3) 빈 점포에 들어선 IT계 기업전경(위)과 유치원겸 보육원 전경(아래) © 송준환

■ 사업 경위

첫 사업은 2014년 4월에 오픈한 아부라츠 카페의 재생이다. 아부라츠 카페는 15년 전에 문을 닫은 찻집으로, 지역 주민들의 추억이 남겨져 있는 곳이라는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생하기로 했다. 이때 예전과는 조금 다른 시애틀 풍의 카페로 실현시켰고, 예상 밖의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대부분이 실패한다고 생각했던 카페가 성공을 거두고, 상점가에 젊은이들이 늘어나게 됐다. 다만, 기존의 고령층의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문제점이 대두되어 두부 및 야채 등 저칼로리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바로 옆 부지에 유치했고, 이에 이 2개 점포가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또한, 상점가 중심부에 위치한 20년 전 문을 닫은 대형 슈퍼를 두고 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를 통해 대형 슈퍼의 중간부분을 중정으로 개방하고, 규모는 축소하면서 양쪽으로 교류 및 회의장(油津Yotten)과 음식점(あぶらつ食堂)을 배치하여 상점가 변으로 오픈했다. 반대편 빈 부지에는 6개의 콘테이너로 이루어진 지역창업자들을 위한 숍(ABURATSU GARDEN)을 설치했다. 이 전체를 경제생산성의 1억엔 보조금을 바탕으로 실시해 다세대교류 몰이란 명칭으로 2015년 11월에 오픈하게 된다. 이로써,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이곳이 프로야구팀인 히로시마 커프(広島東洋カープ)의 전지훈련장소로도 알려진 곳인데, 야구시합 등이 있는 날이면 퍼블릭 뷰잉 등을 이곳 교류장에서 실시하는 등 닫혀있던 대형 슈퍼가 가로변으로 오픈된 각종 교류의 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 지방중소도시의 IT계 기업 유치

보는 바와 같이 처음 2개의 점포와 대형 슈퍼의 재생 등 실질적 시장원리에 의한 공급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지방소도시의 경우 이에 맞는 적절한 수요를 늘리지 않으면 결국 지속가능한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에 공급에 맞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상점가 내의 기업유치를 시도하게 된다.

지방 중소도시는 IT계 중소/벤처기업에게 최적화된 지역이다. 가장 큰 이점은 젊은이들의 채용이다. 예를 들어, 도쿄 등 대도심부에서 직원채용을 하게 되면, 구글・네이버 등 유명 IT계 회사와 경쟁해야 하므로 좀처럼 높은 급료로 고용을 하지 않는 이상 2~3년 후 전직(轉職)을 해버리는 문제가 존재한다. 오히려 지방에 본사를 두고 도쿄 등 대도심부로 가기 전에 지방에서 채용을 하면 전직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고, 인터넷 환경 등이 잘 구비되어 있으면 굳이 대도심부에 본사를 둘 필요가 없는 IT계 기업의 근무특성이 지방도시로의 본사 이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한편, 아부라츠 등의 지방도시의 직종별 구인특성을 살펴보면, 공장 등 제조업계 직원 공급수는 높으나 수요는 적은 반면, IT계의 사무직의 공급은 적고 수요가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견지한 타지카씨는 예전 IT계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알선을 주도했고, 2016년 4월 「PORT주식회사」의 오픈을 시작으로, 현재 13개의 IT계 기업이 상점가 내 빈 건물 및 점포를 활용해 오픈했다.

이러한 IT계 기업에서 일하는 70%가 20~30대 여성으로, 자녀를 키우는 세대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한 유치원 겸 보육원을 상점가 내에 유치하는 등 젊은 세대가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점수를 살펴보면, 1점포/2014년, 4점포/2015년, 14점포/2016년으로, 2016년부터는 수익성이 있다는 시장원리에 의해 각종 점포들이 자연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지방 중소도시의 상점가 재생에 있어서 큰 성공 사례로 알려지게 됐으나, 예전의 활기 있는 상점가를 기억하는 노년층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활성화가 덜 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인구 감소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람이 늘어나는 활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경제흐름이 건강한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 아부라츠의 인구 감소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특히 젊은 층의 인구유출이 줄고 유지되고 있는 것 또한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IT계 기업들의 인건비 수준이 높고 이에 지역 내의 쉽게 전직을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주변 다른 기업들 또한 급여 수준을 올리는 등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 나가려는 움직임 또한 보이고 있다.

즉, 전체 인구규모는 줄어들지 몰라도 젊은 층이 유지되도록 탄탄한 인구피라미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전에 크고 활기 있는 도시로는 어렵더라도 지속가능한 지방도시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부라츠 상점가의 재생은 ①외부민간 전문가 2명이 깃발을 들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행정의 유연함, ②행정의 관여가 전혀 없는 지역 시민 주체의 주신회사의 설립을 통한 자금의 유연한 흐름 구조의 구축, ③지방중소도시에 최적화된 기업의 유치가 현재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글. 송준환  Song, Junhwan
야마구치 국립대학 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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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카사밀라_안토니 가우디

Casa Milà, Barcelona, Spain

_ Antoni Gaudí

바르셀로나 신도시계획 당시 페드로 밀라가 의뢰해 1910년 완성된 카사밀라(Casa Milà)는 당대 최고의 건축사 Antoni Gaudí 가 설계한 고급 맨션이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고향의 자연을 생각하며 곡선을 사랑한 건축을 설계했던 가우디가 남긴 대표적 건축물이다.

카사밀라는 독특한 건물 외관으로도 유명하지만 카사밀라의 백미는 건물 옥상이다. 중간은 텅 비어있는 중정형 구조로 되어있으며, 하늘로 솟아오른 굴뚝과 환기탑들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가우디의 정성과 열정이 스며들어있는 옥상의 조각들은 톱니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몬세라트산을 닮았다고도 한다.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글. 박무귀 Park, Mookwi • KIRA
건축사사무소 동림 대표, 사진작가
http://jjphoto.co.kr(진주성 포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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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최고의 계약입니다”

“Time is the best contract”

5월 1일 현재 남한과 북한의 시간은 30분의 차이가 있다. 남한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인 동경시를 사용한다. 북한은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 15일부터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간을 정한 평양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이 오후 12시라면 평양은 아직 오전 11시 30분이다. 남북한의 표준시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며칠 전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보고 알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 대기실에도 서울시간과 평양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2개가 걸려있었고, 이를 본 김정은 위원장이 “가슴이 아팠다”며 표준시간을 남측에 맞추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협정세계시(UTC)보다 9시간 빠른 대한민국의 표준시는 일본 표준시와 같은 시간대이다. 사실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이 표준시를 처음 시행할 때는 한반도의 중앙을 지나는 동경 127.5도 (UTC+08:30)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하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인 1912년 1월 1일 조선총독부가 동경 135도(UTC+09:00) 기준인 일본 표준시에 맞춰 우리나라의 표준시를 변경하였다. 독립 후 1954년 3월 이승만 정부가 동경 127.5도 기준으로 되돌렸다가 1961년 8월 10일 박정희 군사정부가 동경 135도 기준으로 다시 변경하여 오늘까지 쓰고 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표준시의 정통성은 어쩌면 평양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북한이 선뜻 표준시를 남한에 맞추어 바꾸겠다고 하니 숨겨진 속셈이 무엇이든 통 큰 양보요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의 집에 걸린 시계 / 사진출처 : 연합뉴스

표준시 통일을 전하는 뉴스와 평화의 집에 걸린 벽시계 사진을 보고 ‘시간은 사랑’이라는 슬로건으로 2012년 제작된 홍콩의 티투스(Solvil et Titus) 시계 광고가 생각났다. 광고에는 ‘결혼계약등록원’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결혼만 있고 이혼은 없는 세상에서 일을 한다. 대신 사람들은 결혼할 때 결혼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기간이 다 되면 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에는 없는 제도이지만 광고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계약결혼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분이나 이어지는 영상의 초반에는 결혼계약을 등록하러 온 커플들이 등장한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들이다.

그 중에는 나이든 아름다운 부인과 헌신적인 남편이 있다. 이 노부부는 함께 오래 살았고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데도 매 번 1년 단위로만 계약을 연장한다. 왜 10년, 20년 계약하지 않는 것일까? 부인이 치매에 걸려 시간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매 년 청혼을 하고 결혼계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에게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을 선물하는 것이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①

광고 속의 결혼계약등록원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계약기간을 가지고 다투고 또 작은 일로 결혼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불화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의구심 때문에 그는 여자 친구와의 결혼계약을 망설인다. 여자 친구는 결혼하자고 결혼계약서를 내미는데 나중에 이야기 하자며 대답을 미루고 출근하고 만다.  그런데 바로 그 날, 1년씩만 계약하던 노부부가 결혼계약서의 기간을 쓰는 칸에 100년을 써 넣고 사인을 한다. 결혼계약등록원이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 부인의 상태가 악화되어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선 고를 들었는데 다음 생에도 부인과 함께 하고 싶어서 100년을 계약한다는 것이 남편의 대답이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②

시한부를 선고 받았지만 100년을 더 함께 하기로 계약하고 봄볕을 받으며 행복해 하는 노부부를 보며 우리의 주인공은 여자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여자친구에게 달려간다. 함께 있겠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 그러나 남자가 도착하는 순간, 그의 미지근한 반응에 상처 받았던 여자 친구는 짐을 꾸려 택시를 타고 막 떠나고 있다. 택시는 떠나고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지만 택시를 따라잡지 못한다. 실망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자. 걷다가 뒤돌아 보니 택시를 돌려서 되돌아온 여자 친구가 서있다. 그리고 감동의 포옹에 이어지는 카피 한 줄.

“시간이 최고의 계약입니다.”

시간은 힘이 세다. 꼭 긴 시간만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찰나에 가까운 1초의 시간 동안에도 우주를 움직일만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30여 년 전 일본의 세이코 시계는 그 1초라는 짧은 시간의 힘을 광고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③

처음 뵙겠습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평생의 설렘을 느낄 수도 있다.

감사합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사람의 상냥함을 알 수도 있다.

힘 내!

이 1초의 말 때문에 용기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축하합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행복이 넘칠 수도 있다.

미안해요.

이 1초의 말 때문에 사람의 약한 면을 볼 수도 있다.

안녕…

이 1초의 말이 평생의 이별이 될 때도 있다.

1초에 기뻐하고 1초에 운다.

일생 동안 열심히, 1초.

(일본 세이코_TVCM_1985/2008_카피)

이 광고는 1984년에 제작 된 라디오 CM을 TV광고로 만든 것이다. 1초에 대해 말하는 카피에 맞추어 교실, 도서관, 미술실 등 학교 안의 다양한 장소가 정지화면으로 보여진다. 이 광고는 1985년 연말 ‘가는 해 오는 해’에서 단 한 번만 방송되었다고 한다.

일본 세이코_TVCM_1985_스토리보드

1985년 연말에 단 한 번 방송되었던 세이코 시계의 광고는 2008년 다시 리메이크 되었다. 광고 카피를 결혼식 연설이나 학교 수업에 쓰고 싶다는 문의가 종종 와서 동일한 카피에 완전히 새로운 영상, 음악, 나레이션을 얹어 현대의 CM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세이코는 밝히고 있다. 이 두 번째 CM도 2008 년 6 월 10 일 시(詩)의 기념일에 단 한 번 방송되었다고 한다.

일본 세이코_TVCM_2008_스토리보드

한동안 나는 일과 가사, 육아까지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유한한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어떤 비싼 물건보다 시간을 내게 내어주는 사람이 귀하게 여겨진다. 기꺼이 북한의 시간을 남한에 맞추어 내어준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서 티투스 시계가 이야기한 ‘시간은 최고의 계약’이고 ‘시간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그래도 흐뭇한 뉴스임에는 틀림없다.

불행했던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멈추고 65년이 흘렀다. 지난 65년 동안 남과 북은 불신을 키웠고 이해나 배려보다는 오해와 분노를 상대방에게 퍼부었다. 그 많은 상처가 한 순간에 다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오고 가는 그 1초의 시간은 우리에게 평화와 희망의 설렘과 감동을 주기에 결코 짧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3년 뒤 버스를 대절하여 금강산 비로봉 능선을 종주하는 산행을 하자고 공지를 띄웠다. 이 농담 같은 계획에 하루 만에 60여 명이 가겠다고 신청을 했다. 금강산에서 그치지 말고 기차 타고 평양을 지나 베를린까지 가자는 말이 기분 좋게 오고 간다. 옥류관 냉면 대신 시내에서라도 냉면을 먹자고 단체 문자방이 소란하다. 역사책에 기록될 시간을 살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서울을 떠나 평양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는 꿈 같은 일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어린 시절 소풍처럼 그 날이 기다려진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란다.

주) 이 글을 마친 며칠 후인 5월 5일 0시를 기해 북한이 한국보다 30분 느렸던 자체 표준시 ‘평양시간’을 30분 앞당기면서 남북한의 표준시가 다시 같아졌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유튜브링크)

http://https://www.youtube.com/watch?v=yFejf6D97m8

(일본 세이코_TVCM_1985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2&v=OJjgepzOUSA

(일본 세이코_TVCM_2008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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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준다’

‘The sea receives all the water on earth’

바다는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든 시야 가득 들어오는 바다를 볼 수 있었고, 눈을 감아도 마음을 다 차지해 버린 그 사람처럼 바다는 쉽사리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친밀하게 내밀하게 이 거대한 물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한 사람의 일생 내내 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바다는 그에게 숙명이자 운명이며 그는 바다의 후예인 것이다. 그는 얼마나 오랜 세월 무작정 바다에 다가가기를 염원했으며 적극적으로 상기하였던가. 바다는 마당의 개만큼 곁에 있었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 바다는 곧잘 파도소리를 실어다 동침하게 해줬다. 십 분만 걸어가면 방파제나 백사장에 닿을 수 있었고, 지치지 않는 파도의 리듬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현실인 파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주 바닷가로 갔으며 사심과 욕심 없이 그곳을 배회했다. 그 시절엔 그게 그의 일상이었고 그게 그의 일 중의 일이었다. 바다는 그의 동무, 그의 절친, 생성과 상상력의 베이스캠프, 서정과 격정의 야전 사령부였다. 타지에서 생활하시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는 대체로 그리워하지 않았으며, 그는 혈육보다 바다와 사귀는데 더 열심이었으며, 바다와 사랑했으며, 바다는 봐도 봐도 싫증나지 않는 텔레비전이었다.

소문은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장공비의 시체에는 문어가 들러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한동안 문어를 먹지 않았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갔던 배가 난파했을 때,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에는 학년을 달리해 여러 학생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생일은 달랐어도 기일이 한날인 날이 벌어진 것이다. 맘에 두고 있던 여학생의 이름을 백사장 위에 쓰자마자 파도가 달려 나와 순식간에 지워버리던 바다. 어느 날의 바다는 두께를 알 수 없는 구름을 덮어쓰고 묵중하게 다가왔고, 어느 날의 겨울바다는 더 이상 파랄 수 없을 만치 시퍼렇게 파래서 이 세상에 저것보다 더 파랄 수 있는 공간은 없다며 그의 눈이 감동했고, 그 눈의 감동을 받아서 그의 심장이 감격했다. 잘 손질되어 있는 물결과 평등의 대해원, 해일을 장착하고 있는 잔잔한 수면과 무한을 선사하는 수평선, 파도에 밀리는 파도와 파도를 밀고 가는 파도가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그 바다에서 그는 지친 삶을 늘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으며 최초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다. 지상의 물은 가지 말라고 해도 바다로 갔으며 오지 말라고 해도 하염없이 파도가 되어 해변을 향해 나아갔다. 비바람이 세찼던 여름 폭풍우의 밤이 지나고 서광이 하늘바다를 열고 아침의 거센 파도 위를 비추기라도 할 때면, 창세기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왜 이 세상의 바닷가는 거의 언제나 창세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여전히 해 뜨는 새해의 바닷가를 찾아가는 것에 그리도 열광하는 걸까. 우리는,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태양계에 살고 있다고 인식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감각은,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지구계에 속해 있다. 해가 뜨고 진다고 말하지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인간은 태양계가 아닌 지구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학의 시초에는 동해가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체로 사람보다 자연과 더 친밀했다.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자주 말을 걸어왔다고 그는 느꼈고, 그 역시 바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바다를 떠나 있을 때조차 바다가 그의 생활 속으로 흐르고 있다고 상상했다. 바다는 그에게 이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언어로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일깨웠다. 나만의 바다가 어디 있고, 나만의 하늘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는 그 바다를 ‘나의 바다’라 이름 붙였으며, 바다는 어딜 가나 한 바다이거늘 ‘여기는 바다가 많은 곳’이라 노래 불렀다. 바다 위에는 언제나 바다보다 넓은, 바다보다 깊은 또 하나의 하늘바다가 바다를 온통 덮고 있었다. 그가 무한이란 말의 육체성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볼 때였으며 수평선 위의 하늘을 올려다 볼 때였다. 그의 피는 바다와 내통했고, 그의 피부는 해풍과 긴밀했으며, 그의 눈동자는 거대한 물의 수평을 받아들여 평정심을 되찾곤 했다. 어떤 원초적인 공간은 일생을 따라다닌다. 시간 없는 공간이 인간에게 가능할까. 인간에게 공간은 살았던,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야 할 그리고 죽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언제나 공간은 시공간이 함께 한다.

그는 그 바다에서 무한을 배웠다.

바다는 자신이 그렇게 시퍼런 줄 몰랐고 하늘은 자신이 그렇게 새파란 줄 몰랐다.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줬다. 그러고도 넘치지 않았고 지나치지 않았다. 하늘은 모든 굴곡을 다 받아줬다. 그러고도 모나지 않았고 일그러지지 않았다. 하늘은 바다를 덮고 지상을 다 덮었다. 그러고도 짓누르지 않았고 무겁지 않았다. 바다는 자신이 그렇게 깊은 줄 몰랐고 하늘은 자신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하늘바다는 깊고도 넓고도 높았다.

글. 박용하  Park, Yongha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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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예술공원으로 보는 지역건축에 대해서 _ 최승원 건축사

About the local architecture seen from Anyang Art Park _ Architect Choi, Seungwon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공예술사업으로 손꼽힌다. 낙후된 유원지와 중소 도시 도심에 예술조형물로 활력을 불어넣고, 우수한 국내외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도시의 격을 높여 시민의 자산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의 도시게릴라 프로젝트나 광주 비엔날레의 도심 조형물 설치 작업인 ‘폴리 프로젝트’가 벤츠마킹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APAP는 2005년 만안구 안양유원지를 정비해 예술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시작돼 2007년에는 이를 도시공원화 작업으로 확대하며 평촌 일대에 공공조형물이 조성됐다. 2010년에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특히 안양예술공원 안에 있는 안양 파빌리온(구 알바로 시자 홀)은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사 알바로 시자(1992년 프리츠커상 수상)가 설계한 작품이다.(그는 이 작품에 이어 파주출판단지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만든다.)

당연히 안양시 차원에서 추진된 공공예술사업에는 건축사 등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최승원 건축사는 “지방건축발전에 기회가 오면 건축사가 적극 자문하여야 지방다운 건축이 살아나고 꽃피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APAP 초창기부터 참여해 역할을 해온 최승원 건축사에게 안양예술공원으로 보는 지역건축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최승원 건축사 앙가주망(央加周望)건축사사무소 대표 /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환경대학원 졸업 / 국립중앙박물관평의원,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 운영위원장

Q 안양 유원지가 안양 예술공원으로 2003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건축에 ‘건축사’가 있듯이 마을이나 도시역사에도 뿌리가 있다. 1987년 여름 나를 포함한 김성국, 정청자, 김원 등은 북구 스칸디나비아 3국 건축답사 중 핀란드 알바알토박물관, 알바알토스튜디오, 오슬로 바겔란 조각공원을 보고 많은 건축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핀란드 지폐에 알바알토의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워했다. 또한 무명작가 작품이지만 관광객이 매년 50만 명이 방문한다는 암반교회인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를 가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설계에 감명을 받았다. 이어서 나상기 교수의 정보에 따라 임진우 등과 1990년 6월에는 미국 인디아나주 콜럼버스시를 답사하고 한국에서도 이 같은 도시를 꿈꾸게 됐다. 내 경우 1998년 아카시아상(Arcasia)을 수상해 신문에 소개된 바 있다. 이때 안양시가 건축에 관심을 갖고 나를 도시건설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후 위원장으로 활동을 했다.

한국건축 100년 특별기획전(1999년 가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성대히 전시되며 건축에 관심이 높아지고, 전시 중 원로들은 한국에 건축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그때 내가 이를 맡아 진행하게 됐다.

안양시가 자문위원회(2000년 초) 의견을 받아 건축박물관을 계획해보겠다고 나서게 되고 동안구 중앙공원 지하주차장이 많이 비어있어 한쪽으로 건축박물관을 설치하고자 예산까지 세워 준비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초 늦봄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지움, 이후)라는 책(신영옥구입)을 당시 신중대 안양시장에게 전달하니, 우연인지 하루 전날에도 교통전문가로부터 같은 책을 추천받았다며 관심이 고조됐다. 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IMF위기로 모든 국민들이 온통 어려움 속에 내몰리게 됨으로 지자체들이 활로를 찾게 됐다. 저예산 작은 건축으로 유명한 부라질 꾸리찌바시의 매력이 돋보였던 시기다.

안양예술공원 내 ‘김중업박물관’

Anyang Art City 21
2002년 시작된 ‘안양아트시티 21’은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 체계적인 도시발전을 위해 추진됐다. 각종 건축물과 공작물의 외관 형태 등에 예술성을 가미하여 자연환경과 도시미관을 조화롭게 함으로써 수준 높은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 국내외적으로 경제성 있는 도시를 가꾸어 나가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안양시는 2003년 2월 교수, 시의원, 공무원으로 구성된 답사팀을 구성해 미국 인디아나주 콜럼버스시를 다녀왔다.

안양시는 2001년 초여름 브라질정책연수단을 꾸리찌바시와 안양시와 자매 도시인 소로카바시에 보내게 된다. 소로카바시 첫인상은 검소하고 조용히 빛을 내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특히 시청의 인공호수와 조용한 안뜰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또한 램프접근로, 공중정원, 옥탑회의실 시청주변에 있는 공연장 등이 매우 일품이었고, 방직공장을 재활용한 슈퍼마켓 화장품공장을 재활용한 한국기업이 운영하는 실내풋살장도 좋은 건축이었다. 귀국 후 폐석산공원, 폐품전시장, 야외풋살장 등을 안양시에 설치했다. 처음에는 경기도가 예술도시프로젝트를 하도록 유도하고 여의치 않으면 안양시가 직접 해보자고 회의 중 건의했다.

Q 요즘 도시 재생이 정책적 화두로 회자된다. 도시재생에는 여러 가지 개념과 대상, 프로그램이 있는데 안양 예술공원은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시도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공원 미래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때 화두가 대두되어 진행한 것인지 궁금하다.

77년 대홍수로 안양유원지와 주변상가가 많이 파괴됐다. 일대가 GB(그린벨트)구역내라 손을 못 대고 있다가 97년 12월 삼성천 주거환경개선사업 개선계획 및 실시설계가 나왔다.

이후 박충흠 교수 진행으로 작은 조각공원이 준비됐는데, 나는 안양시에 예술대학이 없어 의왕시의 계원예술대학과 협력하자고 건의했다. 안양시장이 학장에게 전화하니, 이영철 교수를 추천했다. 이영철 교수는 토탈미술관 실무경험이 있었다.

이영철교수가 안양유원지를 답사하고 유원지 전체를 예술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하여 받아들여지고, 제1회 APAP(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감독에 이영철 교수가 임명됐다. 이때 주거환경개선사업+예술공원이 추진됐고, ‘안양예술공원’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졌다.

Q 건축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어, 비엔날레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축은 어떻게 참여 하고, 비중이 어떻게 됐나.

사실 아트시티정책의 중심이 건축이다. 시에서 선정한 이영철 감독이 국제 건축정보에 밝았다. 세계적인 건축사들을 섭외했는데, 기존 조광희교수가 추진한 공중화장실설계를 백지화하고, 이 장소에 알바로 시자가 다시 설계를 해 안양파빌리온이 탄생했다. 이후 비중은 건축이 예산의 다수를 차지해서 예술공원이지만 건축이미지가 크다. 비토아퀀치 디자인료 삼천만원, 전망대설계비-MVRDV 천만원에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비토아퀸치 조형물 예산이 많이 초과돼 추진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Q 안양예술공원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특히 알바로 시자 같은 세계적 건축사의 작품들도 건축되었는데, 이런 프로그램진행을 주관하는 기구나 조직이 있는지.

안양시는 행정지원을 위해 문화예술과를 만들고, 문화예술에 조예가 있고, 창간호를 수집하는 안정웅 과장을 과천시에서 스카우트 했다. 그를 과장, 국장, 구청장, 시설관리공단이사장을 하게 하며 전체적인 맥을 잇게 했다. 예술도시 조성을 위한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 APAP(Anyang Public Art Project) 의 지속적 추진을 하기 위해 2002 AAC21 건축자문단을 구성, 같은 해 9월 26일 안양아트시티 기획단이 출범했다. 2003년 건축문화상Festival을 시작했다. 알바르 시자는 마을전체디자인을 각 호당 천만 원에 디자인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지역건축사들 반대로 하지 못했다. 현재는 (재)안양문화예술재단 공공예술부에서 관리, 준비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넘게 논의되던 유유산업 안양공장 부지를 매입하게 되는데, 이후 신중대 안양시장은 “최승원 건축사가 박물관노래를 부르고 다녀서 만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웃음) 시작한지 16년 만에 김중업건축박물관이 개관됐다. 민관이 노력한 결과다.

Q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의 쿠마모토 아트폴리스의 축소판 같은 사업으로 보다 세계적 이슈로 국내의 젊은 건축사들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이야기들은 없었는지.

2005년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시작으로 2016년에 이르기까지 총 5회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시행해 왔다. 특히 APAP에서 눈여겨 볼 점은 비단, 국내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저명한 예술가와 환경-도시학자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 프로젝트라고도 한다.

김중업건축박물관에 1~2층 총 495제곱미터 규모의 기획전시실을 준비하여 김중업 작고 30주년기념전을 하고 있다. 대관도 하고, 지방건축전도 유치예정이다. 작은 갤러리도 프로젝트 윤활유로서 젊은 건축사에게 지원코자 한다. 준비성을 높이고, 착실한 진행을 위해 최근 2022년 김중업탄생 100주년 준비위원장을 선임했다.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1평 타워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안양 파빌리온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안양파빌리온 안에 설치된 도서관 겸 기록보관소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벤치

안양예술공원 내 건축 및 예술작품_전망대

Q 김중업 선생 등 한국 건축계의 초기 거장들의 시대이후 건축설계분야는 산업의 시대로 이동했다. 더불어 작품의 건축과 일반 건축으로 양분 되서 이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모든 건축은 나름대로 모두가 건축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공장이 오늘날 도시 재생의 훌륭한 바탕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현재 우리가 설계하는 모든 건축은 100년 뒤에 재조명을 받을 것 같다. 안양의 건축 상황과 안양예술공원에서 전개되는 건축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달라.

2100년 “안양에는 보물, 지방문화재, 국보가 수 백개가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는 것을 상상해보라. 후손들이 안양이라는 예술도시, 그리고 안양엔 문화역사 자산이 넘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 것에 개인적으로 뿌듯함을 느낀다. 일련의 노력들이 이를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안양은 개인적으로도 나고 자란 고향이다.

또 김중업建築士夫는 건축 모두가 작품 이라고 강조하셨다. 막집 막사발 막국수도 멋과 맛을 내던 민족의 기질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집 빈자의 집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은 건물을 갈고 닦아 아름다운 자산으로 만들고 있다. 지역건축사가 마음을 비워야 모든 일이 진행이 잘된다. 건축사는 선비士로 자문해야하는 절제(節制)된 태도가 기본이다.

Q 안양예술공원의 향후 계획과 안양지역일대의 건축 현황은.

공원상단지역의 대지나 건축을 시가 구입하여 예술공원의 정체성을 살릴 예정이다. 작년에 업자가 주택을 지으려고 한 대지를 정체성을 위해 이필운 현 안양시장과 시의원들이 노력하여 예술공원 상단에 큰 대지를 구입하여 활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통 큰 결정이었다. 또한 석수동 167연대 이전부지에 4만8천여제곱미터를 매입해 체육공원조성 및 영화박물관 유치를 하고 있다.

안양은 주변에 삼성산, 수리산 등 많은 산이 있고 도보로 20~30분 안에 갈수 있기에 산의 미래가 산에 있다고 본다. 안양시는 수도권 서남부의 중심도시로 시흥군청 소재지였다. 연구소, 공장, 창고 등 근현대건축이 있기에 이를 재활용하고 새로운 조영을 추가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건축예술정책이 역기능이 있지만 명학역 동편 공업지역에는 연구소 등 작품성 있고 건강하고 좋은 건축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아트시티 시책이 설계, 감리, 시공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뉴욕건축사협회(AIANY) 주최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1년 디자인 어워드’에서 건축부문 수상작 에롯-텍(Lot-Ek)이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10) 작품 중 하나다. 또 동안구 부림동 학의천 변 학운공원에 설치된 ‘오픈 스쿨’이 선정돼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수년전 국토교통부로부터 통 크게 구입한 구 수의과학검역원 대지가 56,309제곱미터 27개동, 연면적 28,612제곱미터로 구입가는 1,292여 억원이라는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들어갔다. 대지 내에는 백년 넘은 능수버들과 벚나무, 무궁화길이 있는 정원, 그리고 근현대건축(이광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 있다. 건축계에서 건축이 계속 생성되고 멸실되고 있는데, 건축자산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건축미술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관은 보존하여 도립건축미술관에 임대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기획해봤다. 북측 잔여부지는 근 미래를 위해 공지로 50%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고목(古木)있는 근현대건축도시’ 보존이 안양지역 마을가꾸기에 필수다. 고목정원이 있는 구안양시청(루이스칸 제자 나상기 설계) 보존도 이에 해당한다. 박달동 전술핵무기 久창고도 관광지 개발이 필요하다.

Q 끝으로 지역건축의 정체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체성은 자체적인 고민도 필요하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지역의 건축적 정체성 해석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모두가 서울을 모델로 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안양지역의 건축적 정체성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경기도는 위성도시, 베드타운화로 응집역이 약하고, 문화적으로 차별이 있다. 안양은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석유공사 등이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고 사실 아파트만 남았다. 안양시가 2003년부터 한때 안양천 정리 정화(淨化), 공공예술프로젝트, 아트시티, 공공디자인, 간판정리를 진행하며 전국의 리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불법과 타협치 않던 시장이 중도하차하여 한동안 어려움이 있었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안양이 다시 건축예술의 메카로 비상하기를 꿈 꾸고 있다. 앞으로 옥외간판에 지방세를 부가해서 크기와 개수를 줄여 나가야 건축과 거리가 정비된다. 고목(古木)이 같이 있는 중소건축인 단독주택, 다세대, 다가구, 근린생활시설 등 건강한 건물, 좋은 건축이 필요하다. 안양지역 근현대민가를 연구하여 정체성을 찾고 있다. 부족해도 산수(山水)와 조화로운 내 것을 찾아 나가야하고, 양보다 질을 살리고, 지방 모든 문화가 서울로 모인다는 생각도 필요하다. 건축사는 주로 전업 작가로 일하지만, 지방건축발전에 기회가 오면 적극 자문하여야 지방다운 건축이 살아나고 꽃피울 수 있다.

김중업 30주기 특별전 5월 4일 안양시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린 ‘김중업, 르코리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전시회를 찾은 한 시민이 전시안내글을 읽고 있다.

한국 현대건축의 대가 ‘김중업 건축사’ 30주기 특별전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과 현대건축사 족적 한눈에

‘김중업, 르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전시회가 3월 31일부터 6월 17일까지 안양시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별전은 김중업 건축사가 참여한 르코르뷔지에 작품 10점과 관련된 원본 도면 123점과 스케치를 전시한다. 김중업은 1950년대 초 프랑스 파리 르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3년 2개월간 모더니즘 건축의 현장을 경험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기반을 닦았다.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김중업 건축사의 타계 30주기를 기념해 열리는 특별전을 살펴본다.

김중업의 건축은 빛의 리듬을 노래하고, 전통의 마음으로 현재를 채우며, 자연의 노래로 인간과 속삭인다.

김중업이 실제 사용한 노트의 그림과 글씨

김중업은 1952년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니스로 향한다.

50년대 초 김중업이 작업했던 프랑스파리의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일부를 재현한 전시장. 스크린은 파리 아틀리에에서 르코르뷔지에와 작업실 후학들이 모여 찍은 사진. 건축사 김중업은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해 강의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1952년 유네스코 주최로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해 세계적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다. 당시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던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에서는 롱샹 성당, 라투레트 수도원,ㅜ자울 주택 등 현대건축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프랑스 대사관 현상설계에 당선된 김중업은 “건물의 조형과 배치가 한국의 정서와 프랑스의 우아한 품위를 잘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5년 드골 대통령에게 프랑스 국가공로훈장과 공훈기사인 슈발리에(Chevalier) 칭호를 받는다.

최승원 건축사의 주요 건축 작품

최승원 건축사는 건축작품 외에도 사진, 회화, 조각 등 건축적 감각을 다양한 작업으로 연결시키며, 우리 건축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작을 소개한다.

헤이리 한향림 옹기박물관 _ Onggi museum

한향림 옹기박물관은 언덕 위에 작은 뮤지엄으로, 수평적이며 모던한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외부는 대형 전시장으로 보이게 끔 디자인되었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다양한 평면을 이용한 공간들이 나타난다. ㅅ자의 후면에 완만하게 자리잡은 지붕경사는 시작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사지붕은 내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최승원 건축사는 건축작품 외에도 사진, 회화, 조각 등 건축적 감각을 다양한 작업으로 연결시키며, 우리 건축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작을 소개한다.

건축주 | 한향림, 이정호 / 대지면적 | 934㎡ / 건축면적 | 230㎡ / 연면적 | 413㎡ / 건폐율 | 25% / 용적률 | 44% / 구조 | 철골조 + 철근콘카리트조 / 외부마감재 | 티타늄, 적삼목

티센크루프 엘레베이터 _ TyssenKrupp Elevator

공장+갤러리
천안입구 왼편 벌에 자리 잡은 엘레베이터 공장이다. 고속도로변에 위치해 있기때문에 눈에 띄는 건축물로 설계하고자 했다. 공장이 문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던한 디자인을 이용해 건축물의 예술성을 높인다. 공간 디자인을 이용해 공장의 제조 분위기를 향상시키기도 했다. (1998년 Arcasia 상수상)

대지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신두리 산1번지 외 13필지 대/ 지면적 | 59,936㎡ / 건축면적 | 22.343㎡ / 연면적 | 28.694㎡ / 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 준공 |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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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용도로 리모델링된 중국의 건축물들

Chinese buildings remodeled for other purposes

중국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화시켜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건축물 외관에 치중하기보다는 골조만 두고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Figure 1. 상해당대예술박물관주변에 리모델링하고 있는 건축물

여기에 소개할 3개의 건축물 또한 오래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중국 내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상해당대예술박물관: Power Station Of Art

Figure 2.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

개요
위치 : 중국 상하이(上海市黄浦区花园港路200号)
건축주 : Shanghai Expo Land Co., Ltd2)
설계 : TJAD _ Original Design Studio3)
대지면적 : 19,103㎡
건축연면적 : 41,00㎡ (층고 : 27m / 전시공간 : 15,000㎡ / 굴뚝 높이 :165 m)
설계 기간 : 2011. 03 – 2012. 03
리모델링 시기 : 2012. 10. 1(미술관으로 개관)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은 상하이에서 유명한 현대미술관 중의 하나다. 이 미술관은 중국에서 현대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국립 미술관으로 상하이 비엔날레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중국 내•외의 유명한 화가나 건축사의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이 건물은 오래된 전기발전 공장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Figure 3.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 홈페이지

미술관의 토대가 되는 공장 건물은 1877년에 건립된 전기 발전 공장으로 지어져 1897년 중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전기를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1955년까지 공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과 같은 외관과 굴뚝의 모습은 1985년에 지어졌다.

Figure 4. 전기 발전 공장의 옛 모습

Figure 5.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의 좌•우측

이 미술관의 랜드마크는 뒤편에 있는 오래된 굴뚝이다. 높이는 165 미터이며, 굴뚝에는 온도계가 설치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굴뚝 우측으로 옥외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다.

Figure 6.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의 옥상

Figure 7.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의 배면

Figure 8.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 1, 2, 3층 평면도

Figure 9. 상해당대예술박물관(PSA) 5, 7층 평면도

이 박물관은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현대 미술을 배우고 감상하는 배움의 장소로 활용되며, 박물관에 찾는 이들에게 열린 무대를 제공한다. 삶과 예술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예술과 문화 사이의 협력과 지식 창출을 장려하고자 리모델링 되었다.

Figure 10. 1층 내부의 메인 홀과 전시관

Figure 11. 5층에서 내려다 본 2층 전시관

Figure 12. 5층 아트샵과 엘리베이터 홀

Figure 13. 5층 복도 및 천정

2. 효서관(Xiaosong Library)

Figure 14. 효서관

개요
위치 : 항주 양주촌문화예술센터
건축주 : China Vanke Co., Ltd
설계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면적 : 4,499㎡
완공 : 2011. 03(2018. 03. 24, 도서관으로 개관)

효서관은 도서관이자 항주의 양주촌 문화예술센터내에 위치해 새로운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중국의 음악가이자, 알리바바 뮤직 그룹의 공동창업자인 ‘가오 샤오쑹(Gao Xiaosong, 高晓松)’이 건물을 매입하여 새로이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도서관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사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로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도서관으로 재탄생됐다.

Figure 15. 효서관 사이트

Figure 16. 안도 다다오의 양주촌문화예술센터 스케치

Figure 17. 안도 다다오의 양주촌문화예술센터의 투시도 (옛모습)

Figure 18. 도서관(효서관)으로 리모델링하는 현장 사진

가오 샤오쑹은 이전에도 북경지역에 백만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Zashuguan Library, 雜書館)13) 을 개관한 적이 있다. 이번 도서관은 두번째 개관한 것으로 현재 5만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샤오쑹은 이러한 도서관을 중국의 각 도시에 개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Figure 19. 도서관(효서관)의 외부(현재의 모습)

설계를 맡은 다다오는 사각형태의 건축물의 3곳에만 사각 기둥을 만들고 실내의 채광을 위한 천창과 건축물과 맞닿아 있는 수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효서관의 내부는 많은 책들을 보관하게 위해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책꽂이를 천정에 닿도록 높게 디자인했다.

Figure 20. 도서관(효서관)의 책장 디자인

Figure 21. 도서관(효서관)의 내부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현재의 모습)

3. 193 라오칭팡(19叁III老场坊)

Figure 22. 1933 라오칭팡

개요
위치 : 중국 상하이(虹口区溧阳路611号)
설계 : 발포스(Balfours)
면적 : 3만 1,700㎡
층수 : 5층
구조 : 철근콘트리트조
완공 : 2006. 08 (전시 문화 공간 및 창업공간으로 개관)

‘1933 라오칭팡’은 1933년에 소, 돼지를 도축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이 도축장은 당시 영국의 건축사 발포스(Balfours)가 설계를 맡았으며, 영국에서 들여온 콘크리트를 사용해 지어졌다. 이 건축물의 벽 두께는 50㎝의 이중 벽체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벽체의 가운데에 공간을 두어 상하이의 여름 날씨에도 낮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Figure 23. 1933 라오칭팡의 옛모습

Figure 24. 1933 라오칭팡의 현재의 모습

이 도축장은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과 중국의 풍수 학설인 ‘천원지17)’라는 전통적 이념을 공유하여 디자인된 것으로, 무량루 구조 설계, 8각형의 우산 기둥, 사다리, 소 등의 키워드가 이용됐다. 특히, 이 건축물을 지탱하고 있는 8각형의 우산 기둥은 300개에 이르며, 도축장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Figure 25. 건축물 내부의 8각형 우산 기둥

Figure 26. 슬라브 경사로 이루어진 가축 이동 동선

건축물 곳곳에 가축의 이동 동선과 사람의 이동 동선을 구분하기 위한 작은 계단실이 있는데, 이는 가축들의 이동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고를 막기 위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 건축물은 1933년 당시, 색다른 시각으로 디자인된 사례로 꼽힌다. 파격적인 외관을 갖춘 건축물인 만큼 건축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당시 이러한 거대한 규모의 도축장은 세계 곳곳에 만들어 지기도 하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곳은 이곳 상하이 뿐이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건축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Figure 27. 사람들의 동선을 위한 계단실

Figure 28. 젊은이들을 위한 창업 공간

글. 이주남  Lee, Junam ┃ BIMSea Technology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