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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건축사의 위대한 승리를 기원하며

Wishing for a great victory for a local architect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후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그런 만큼 항상 중앙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건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오늘날만큼 건축에 있어서는 중앙중심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를 보면 벼슬을 한 양반들의 집이 전부 서울(한양)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조시대의 유명한 권력자 류성룡은 안동지방에 집을 두고, 관직에 있을 때만 한양에 있었습니다. 퇴계 이황 역시 한양에 살지 않았습니다. 역사 속에 나오는 수많은 관료들은 관직을 그만두면 자신의 고향에서 살았고, 후손들 역시 그랬습니다. 이런 이유로 비록 우리나라가 아주 큰 나라는 아니지만 지역적으로 조금씩 다른 건축 양식과 형식을 남겨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지방의 색채가 있던 건축적 지방성이 존재했던 겁니다. 이런 구분이 희박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해방이후 급속한 산업화 시대였습니다. 해방이후 우리는 격동의 시간을 보내면서, 중앙중심으로 모든 것이 전환되었습니다. 정치도, 권력도, 산업도, 그리고 건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고도 산업화의 집적성과 맞물려 더 강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건축 또한 마찬가지여서, 서울에 새로 지어진 건물은 소문을 타고 지방에 재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때로는 무단 복제가 되기도 하고, 건축주가 복사해서 지방 여기저기에 짓기도 합니다. 아파트는 부동산의 가치와 선망의 대상으로 등극하면서 도시 뿐만 아니라 시골 마을 언저리에서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축은 없습니다. 건물만 있을 뿐입니다. 건축에 대한 고민도 없습니다. 건설산업의 대상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서울이랑 똑같은 곳을 왜 가냐고.. 아마도 그래서 제주나 전라남도 같은 서울과 다른 곳들을 여행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해외여행을 떠나죠. 건축과 여행은 상관 없을 것 같지만, 건축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여행의 선택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입니다.
세계적 일본인 건축사 안도 다다오, 스위스 건축사 마리오 보타, 포르투칼 건축사 알바로 시자 등 이들의 특징은 뭘까요? 이들은 자신의 거주지 지역을 중심으로 건축적 해석을 하고, 자신들의 작품에 표현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리차드 앤 바우어 건축사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특징을 건축적으로 표현해서 수 많은 상과 공공 도서관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각각의 장소마다 명확하고 선명한 지방성을 드러냅니다.
저희 건축사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국의 각 지방들을 중심으로 매호 특집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건축 매체들은 서울 중심의 몇몇 그룹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지방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작품이 소개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들이 전국적 지명도가 있고, 상업적 인지도가 있지 않지만 저희 건축사지는 이런 숨은 건축사들을 발굴해야 하는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매번 작품수가 부족해서, 어렵게 섭외하고 찾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 대학도 많고, 규모도 커서 가장 많은 건축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전국에 수 많은 건축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아쉽다는 점은 좋긴 하지만 특정 지방의 특성에 대한 고민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라는 미국 건축사가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라는 마을에 설계한 도서관은 그 지역의 수도원을 모티브로 해서 당시 AIA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디자인 언어와 지방적 특성을 녹여낸 수작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고민의 산출물인 건축작품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우수한 지방 건축사들의 탄생을 기원해 봅니다.

글. 홍성용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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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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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한국 현대건축에서 지방성

건축담론

편집장 주
2018년 5월호부터 건축 담론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세달 째 걸음마 단계로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을 기대합니다. 월간 건축사지가 이런 담론을 시작한 것은, 건축이 성찰의 결과물이고 창조의 산물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삶의 시장 경쟁에서 치열하게 앞으로 나가시는 건축사들에게 잠시나마 출발을 재조정하고 한국 건축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앞으로도 월간 건축사는 책임감과 소명을 가지고 지속적인 담론의 주제를 찾아 갈 것입니다.

591호 주제는 ‘한국 건축의 지방성’입니다.
한국이 물리적으로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과 식생의 군집이 달라져서 섬세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동이 부자연스러웠던 근대 이전은 이런 물리적 단절이 건축적 차이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우리 스스로 주도하지 못한 역사로 인해 선진국이나 중앙에 대한 맹목적 동경이 존재했습니다. 그 결과 산업화된 건축과 도시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도 경제적 수익을 극대화하는 건축이 판박이처럼 있어 지역에 대한 구분을 의미 없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사투리와 풍습의 차이처럼 분명히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번 호는 그런 미세한 각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또는 그런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01 한국 현대건축에서 지방성
The locality defines Korean modern architecture

골짜기가 가르고, 강이 자르며, 지방이 생겼다. 시간이 묵혀 만든 전통은 한 가지 꽃만 피는 꽃밭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다 통하는 길인데, 줄곧 이 길을 가다 보면 지방이 나오는가? 여기에서 뜨는 해가 지는 저쪽에서의 해와 다른가. 바람이 섞이는 언덕이 있고 물이 섞이는 때가 있다. 불확실하고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 건축은 그렇게 별자리같은 지리地理에 있다.
물론 지방성이 한국성에 희석되고, 한국성이 세계성에 물 타는 것은 우리들의 사실이다. 아마 지속적으로 인성은 교반되고, 지문은 문들어지고, 너무 잦은 문화교차가 근친상간에 이를 즈음, 지방성은 우리 어휘에서 고문古文으로 취급될지 모른다.
한동안 지방성인지 지역성이던지 한국성을 찾던 적이 있다. 이는 너무 거칠고 매크로한 시각이었다. 한반도는 그렇게 협착하지 않고, 한국은 그렇게 간단한 질량이 아니다. 더 정교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더 나누어 보아야 한다. 결국 지방성의 총화가 한국성이겠지만, 먼저 개별적인 가치를 찾고, 다시 이것을 직조하여 볼 일이다.

지역성과 지방성
이번 원고 청탁에 ‘지역성’ 보다는 ‘지방성’을 강조해 달라는 당부가 붙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니, 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양면성으로 있는 것 같다.
아마 지방성은 사회를 강조하고, 지역성은 문화에 기울어진 편견인가 싶다. 지方성은 모난 것이고 지域성은 넓이에 얹힌다. 로칼과 글로벌의 양가성兩價性으로 ‘글로컬’도 발명했다. 지방성 locality와 지역성 ragionalism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지방성은 보다 정치적이다. 봉건사회였다면, 중심과 변방, 위와 아래의 관계로도 보았다. 변방으로 ‘귀양’을 갔고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고도 했다. 현대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로 맞서는 이해에서 종속적이지야 않겠지만 지배력은 작동한다. 지방색이라는 고유성은 텃세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성의 이해에서 진짜 문제는 역장力場의 지독한 편재이다. 주변에서 주류로 운동하는 노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변두리가 남는다.
문화의 위상지리적 이해에서, 지방성은 통합하려는 힘과 본래 분자를 유지하려는 의지 사이의 관계이다. 곧 문화 교차로서 잡종강세인가 아니면 폐색으로 근친 교접인가 선택이다. 문화는 섞어야 진화한다는 엄연한 원리 앞에서 지방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간단하다. 지방성이 생존하여야 교차도 생긴다. 모두 희석되고 난 다음, 자꾸 교반攪拌하여 잡탕이 되고 만 다음, 다시 말해 종의 의미가 사라진 다음에 진화는 멈춘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음식의 차이를 즐기고, 여전히 사투리方語의 매력을 안다. 동해 바람과 지리산 공기의 내음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남해의 남방성이 서해에는 없다.

지방은 한국과 또 달라야 한다
옥수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옥수수가 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관념과 감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방의 정신과 삶 속에 남겨 놓은, 현현顯現의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현재적 동시대성으로서 전통을 포함한다.
어떤 작가가 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해도, 지방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어떤 국제적인 작가라도 지키고 섭생하여야 할 윤리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상당한 만큼 지방성은 건축사(architect) 만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많은 건축사(architect)가 땅을 강조하고 장소를 역설하지만, 그것은 지역적 ‘사실’이어야 한다. 중국에서 극단적인 예(류자아군劉家琨, 류예유안鹿野苑 石刻 博物館, 청두成都, 2002)를 보았다. 어떤 지방에서 건축을 하려면 그 지역의 재료와 인력을 써야 한다. 인력은 그 지방의 기술을 뜻한다. 결국 척박하고 미숙한대로 그 건축의 수단을 통해 건축은 지방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고급-저급의 관계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단히 다른 작품을 만든 성과이다.
한국성의 모색이 너무 매크로하거나 거친 생각이라면, 지방으로 가서 볼 일이다. 그리고 지방체의 교집합으로 한국이라는 모체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 A ∩ 지역 B ≑ 한국체 집합

지방성, 그 몸과 혼
요즈음 한국의 현대적 지방성을 채집하러 다니고 있다. 자본주의가 모두를 희석해 버리고, 국제 바람이 지역성을 휘발해 버렸을지 모르지만,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 현대 건축에서 지역성을 찾아 나선다니까, 대체로 주변의 반응은 “잘해 보셔”이다. 잘 되면 좋겠다는 뜻 보다도, 뭘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소모하느냐는 뜻으로 안다.
그래도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심증이 짙은 제주도에 가서 『제주체』(도서출판 디, 2014)를 썼다. 제주도에서 그럴듯한 지지를 얻었다고 지레 생각하니, 이를 전국적 지방성으로 확대해볼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요행수이기에 보편적 가치인양 말 할 수 없다.
우선 남한을 서울체, 경기체, 중원체, 관동체, 경상체, 남도체, 제주체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기와 중원을 구분할 수 있는가. 관동과 경북은 반도의 척추를 따라 같이 흐르지 않을까. 오히려 남도라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남해안으로 볼 수도 있다.
다음 지방성을 물상으로 말하기 위해, 지방적 키워드를 떠올려 보았다. 물론 이 연역演繹이 완전하지 않다면, 다시 귀납歸納으로 피드백할 것이다.

제주체 우리나라 기후 지리에서 가장 농숙한 지방성을 가지고 있다. 바람과 빛은 건축의 시스템을 만들고 화산석 질료는 곧 물상이다.
– 제주의 통증, 귀양의 땅 / 척박한 토착 수단 / 자연을 만나는 법 / 전통의 공간, 옴팡 / 바람을 직조織造함 / 검은 물질
경상체 신라의 선입감인지 모르지만, 부단한 문화 교차 속에 장려하기를 좋아한다. 건축의 몸짓이 동적이고 운율이 크다.
– 바람과 물, 유동체 / 바다 빛 청조靑調 / 피난 수도의 기억 / 영남 매너리즘
남도체 한반도에서도 유난히 남향 바다는 건축의 화색을 다르게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변방의 지정학적 이해를 감내해 왔다.
– 남쪽의 빛, 녹조綠調 / 남도의 기억, 수탈의 장소 / 붉은 땅, 문학적 메타포 / 마당 깊은, 감도는 공간 / 투박한 원형질 / 남종화의 정서
관동체 산악 건축 Alpine Architecture처럼 드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백두대간을 따라 동해의 바람은 유난히 거세지만 청명하다.
– 산의 땅, 설악의 풍광 / 백두대간, 땅의 지시 / 암회색 / 동해의 바람, 투명체 / 군사지리, 긴장과 외완
중원체 한동안 백제가 그러했듯이 중성적 매개에 익숙하다. 온화하지만 단호하고, 편안하지만 단아한 미학이다.
– 백제의 잔흔, 원융圓融 / 중성체 / 중원 모노크롬, 연한 흰색 / 서해의 줄기, 석양의 건축 / 평원에 눕다
경기체 한반도가 서양화하는 전선前線으로서 문화교차의 첫 번째 겹을 이루어 왔다. 서울에 가깝지만 그 주변으로서 전이질이다.
– 경기의 한강 / 서울의 테두리 / 근대의 기억 / 문예의 알레고리 / 소소小素한 예술 / 신도시 건축
서울체 옛 서울과 새 서울이 북악과 남산과 한강에 엮여 있다. 수도의 문화는 새로움에 대해 적극적일 수 있다. 자본이 모이고 개발이 욕망을 그린다.
– 수선首善의 나이 / 궁궐의 잔상, 북촌, 서촌 / 도시문화 장소 / 한강 / 자본의 풍경, 도시 건축, 밀도의 교책巧策 / 하이테크, 몸의 아나토미 / 문화교차, 외래의 선단先端 / 낮선 것에 대한 자유로움 / 기념적 장소 / 착한 건축

물론 이 주제들이 그 지방에서만 항상성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수의 주제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자기의 지방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축은 더 많다.

Pinx 포도호텔 / 제주도 / 2001 / 이타미준 / 해안 초가 마을의 서정

항상성, 보편성, 그 모순적 소질

‘어떤 고유한 속성이란 우선 차이에서 이루어진다.’
지방성은 지키려 하여서 유지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자로부터 배워간다는 모순에 있다. 차이가 고유성인데, 그것을 현대의 교차 환경에서는 혼자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비록 사소하더라도 다양성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방성은 다양성의 필연적인 소양이다. ‘부산다운 건축’과 같이 내부에서 차이를 찾으려는 노력도 있지만, 그것은 타자의 학습을 통해 체화한다는 모순에 있다.
문화의 소질에서 항상성은 줄곧 그러하기에 성립되지만. 경색될 때가 문제이다. 보편성으로 지방성은 두루 그러한 성질이지만 이미 고정태가 되고나면 버려야 한다.
제도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지역 건축사 local architect의 병업倂業이다. 설계자의 명목이 애매해지며, 실재의 협동적 프로세스가 작동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한 그릇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 같다.
어느 경우에는 설계경기에서 지역의 건축사(architect)로 참여를 제한하기도 한다. 지방의 건축 사회에 가면 ‘지방을 알지도 못하는 외래 건축사가 설치고 다닌다’고 불평이다. 대단한 쇄방鎖防이다. 어떤 지방만이 가지고 있는 난해한 윤리가 따로 있나? 지방 관리의 텃세는 본 적이 있다. 지방만의 어려운 테크놀로지가 따로 있나? 오히려 지방의 낙후한 건축술을 자주 본다. 보호하기 보다는 먼저 문화 강장剛腸을 생각해야 한다.

착한 지방성, 못된 지방성
문화 차이가 우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옳고 그름의 다름도 아니다. 차이는 다른 또 하나의 ‘것’이다. 제일 나쁜 일이 ‘중국의 베니스’니 ‘일본의 알프스’니 하는 비유이다. 아시아는 아직도 유럽의 지방적 콤플렉스를 서슴지 않는다.
지방성에 대한 못된 이해의 하나는 ‘지방=촌스러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간혹 그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가면 가로등에 봉황이 앉고 연꽃이 핀다. 지방성에서 거칠고 대충하는 것을 자연주의라고 착각하거나, 향토주의로 포장하거나, 낡은 것의 재현으로 보는 착시 등을 경계한다. 지방성은 더 세련되어야 하며 품위 있는 건축술을 필요로 한다.
착한 지방성도 있다. 2007년부터 시행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은 기획자의 문화적 노고를 보상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 공무원의 기획력을 고무하는 제도이다. [서울시 건축상] 등 각 지방자치 단체마다 건축상 제도가 있다. 지방 건축상이 부추기는 지방성은, 지독한 편재의 문화 지리를 보정하기 때문에 눈여겨본다. 아마 최종적으로는 ‘서울의 지방성’을 말할 수 있을 때 이 모색은 선善이 될 것이다.

글. 박길룡 Park, Gilyong ┃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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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한국 건축의 지방성

건축담론

02 한국 건축의 지방성
The locality of Korean architecture

지역과 지방
동경시내로부터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무사시노(武蔵野) 시의 키치죠지(吉祥寺)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다. 이곳은 대도시의 고층빌딩이나 대규모 상업시설이 없지만, 방문해보면 전혀 지방(시골의 한적한 동네) 같지 않는 지역이다. 일본의 수도가 아닌 교토의 이치죠지(一乗寺)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의 지방이며, 교토에서도 한적한 교외이다. 하지만 이 동네는 몇 가지 이유로 국제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으며 낙후된 지방과는 달리 도시이면서도 번잡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일본의 수도가 아닌 오사카와 교토 지방은 동경의 수도권에 비해 하위의 어감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서울과 경기 수도권은 점점 확장되어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부산이나 대구 등의 지방 도시는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지방의 단어 이면에는 비주류의 관점이 깔려있다. 그래서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도시들은 규모나 경제적 측면에서 부족한 후진과 비주류의 어감을 가진 지방으로 고착화 되어간다. 그 결과 지방은 기회나 가치가 부족하여 먹고살기 힘든 곳이 되고, 사람들은 더욱 더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난다. 이러한 현상으로 지방 도시들에는 점점 비어가는 건물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실정은 지방도시를 더욱 경쟁력 없는 곳으로 만들고, 먹고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이 1982년에 발표한 [깨진 유리창]에서 유래했다. 동네에서 어느 집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다른 유리창도 깨져나간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관리가 되지 않은 건물이라 생각하고는 더 함부로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방건축과 지방도시도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더 경쟁력이 약화되고, 점차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역보다는 하위의 어감을 가지고 있는 지방이라는 용어는 이미 수준과 가치를 낮게 간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지방이라는 용어가 정치와 경제적 관점으로 고착화 되어있고, 건축 역시 정치나 경제와 관계가 밀접하여, 지방 건축이라 불리우는 것에는 불쾌하지만 가치나 디자인에 있어 수준이 떨어지는 후진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떤 건축을 지방 건축이라 할 수 있는가? 그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오랜 관행으로 쉬쉬하던 설계공모전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부산에서 진행된 공모전의 심사 후 채점표가 공개되면서, 심사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시작되었다. 계획분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의 채점표에서 당선업체는 모두 10점 만점을 기록한다. 특히 공모전 제출 후 사전 설명하기, 평소에 심사위원들과의 친분관리를 돈독히 해온 결과로 주장하는 비판들이 많다. 전국 공모전에 비해, 지방발주의 공모전에서 종종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단편적으로 지방 건축계의 촌스럽고 유치한 관행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심사위원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부 교수들이 자신들에게 평소에 잘하고, 사전에 찾아와서 예의를 갖추는 건축사의 작품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공공건축가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분위기에서 부산에서는 왜 총괄건축가를 부산의 건축사로 선정하지 못하는가? 실제 수도권의 유명한 건축사에게 의사를 타진하고, 그 건축사가 수락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총괄건축가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렇듯이 유독 지방에서는 공무원이나, 대학의 교수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을 실력 없는 것으로 무시하거나, 지역에 등록한 건축사를 사회적 위치와 소양이 부족한 단순 업자로 생각하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는 중앙 바라기에 젖어있는 지방 학계나, 공무원, 발주처의 나쁜 풍토 때문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공모전의 몰표 결과, 그리고 무조건적 서울의 유명건축사 또는 상위권 대학의 교수를 추종하는 분위기 또한 이런 지방폄하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메가트렌드와 지방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세계 화두가 되고 있다. 이처럼 건축에서도 특정한 메가트렌드 현상은 오래전부터 한국건축계를 이끌고 있었다. 건축의 디자인 유형, 재료의 사용, 색상, 프로그램, 개발방향 등의 성공 트렌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작하여 각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메가트렌드가 된다. 부산 인근 양산의 물금신도시에서 서울 건축사의 작품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파주에서 부산 건축사의 작품을 쉽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특정 메가트렌드를 가지고 싶어하는 요구가 지방에서도 있는데, 지방에서는 그 트렌드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시의 홍대거리, 서촌,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은 이미 핫플레이스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기에 연남동, 망원동, 해방촌, 익선동, 중림동, 봉천동 등도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재생 바람이 한국의 메가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이 트렌드대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리고 지방의 공공건축물이나, 대형 건축물에서도 메가트렌드를 추종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수도권의 메이저 설계업체의 작업이거나 대기업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과 건축물, 해외 유명 설계자의 모셔오기 행정이 많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메가트렌드를 쫓은 결과가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못함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지방만의 정서, 행태, 예산,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행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균형있는 발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지방과 수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건축과 도시 역시 그러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방이 한국 건축의 메가트렌드를 거스르긴 힘들다. 그렇다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지방이 겪게 될 후폭풍은 너무 크므로, 충격을 어떻게 중화시키고 최소화 할지 고민해야 할 단계이다. 지방이 수도권의 건축계와 똑같은 설계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기 힘들며, 건축시공비나 사업성이 같을 수도 없다. 그리고 공간적 기능과 프로그램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지방의 모든 도시들에서 수도권과 같은 성장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수도권과 지방의 대등한 발전주장이 지방의 모든 곳이 수도권과 균등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비약이 되어서도 안 된다. 건축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단순히 지방에 인구와 산업을 균등하게 배치해서 지방의 건축이 수도권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과 인프라, 건축사의 숫자. 인력, 그리고 수요와 공급원의 균형은 힘들다. 하지만 현대 한국건축의 작은 희망은 문화, 주거, 예술, 4차 산업 분야에서 경계가 없어지고, 지방만의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경제적 패러다임에 가까워서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명명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지방성은 용어적으로 특정 지방에만 있는 공통적인 속성이나 기질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도권에 비해 하위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한국건축에서 지방성의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사용되어져 온 지방의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방성’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정립하여 그 가치가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현대건축의 담론에서 사용되는 ‘지역성’은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지방건축이라는 단어는 선험적으로 부족함과, 촌스러움,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 뒤처지는 어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역성’은 건축에 있어 중요한 장소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표현임에 반하여 ‘지방’은 장소보다는 수도권에서의 멀리 떨어진 위치나, 거리감으로 인식되고, 경제적이거나 규모적으로 가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런 ‘지방’의 단어가 이제는 그 관습적 어감을 극복하여 ‘지방성’이라는 건축에서 소중한 담론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 건축이 가진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발전시키면서 수도권에서도 인정하게 되는, 긍정적 특성과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방성의 건축이 가능한가?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인데, 이에 비해 로테르담은 20세기 초부터 예술과 문화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도시의 공간구조나 경관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보수적인 기풍이 강하게 표상되고 있는 암스테르담과는 매우 색다른 도시의 표상을 보여 왔다. 새로운 시대사조와 예술정신을 도시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암스테르담과는 다른 색다른 구조의 도시를 구축하였다. ‘항만지구의 재개발’과 ‘중앙역부근의 고층오피스개발’ 그리고 OMA가 참여한 ‘문화중심지 구상계획’ 등을 통해서 지방성을 극복하여, 오히려 네덜란드의 수도보다 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존 수도권의 형식과 트렌드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화되는 수도권이 가지고 있지 않는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사례이다.
‘지방성’의 올바른 의미는 지방의 논리가 중앙의 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지방의 효율이 중앙의 비효율을 극복하며, 지방의 다양성이 중앙의 획일성을 수정하게 되는 역할을 내포하여야 한다. 건축에 있어서 지방성은 중앙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풍이나, 흐름 그리고 건축의 형태나 공간, 배치에서 차별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지역적인 특성이 힘을 발휘하고, 중앙과 차별화되는 건축과 도시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단초가 되는 속성이 지방성이다. 그렇다면 한국 건축에는 지방성이 있는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이제는 담론의 중심에 두어야하는 문제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지방성의 건축이 규정될 수 있는가?
지역단위의 환경개선과 개발을 통한 경쟁력의 강화는 지방성을 구축하는 요체이며 건축과 도시의 문화적 관점에서 지방성을 만들어가는 동인이 된다. 또한 지방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 중심적인 공간 단위의 사고와 지역고유의 개발방식과 수법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단위의 고유한 건축에 의한 공간 문화를 키워가는 일, 기반시설의 확충과 정비를 통해 타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일 등이 지방성의 건축을 위해 필요하다. 지방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패러다임이 중앙도시나 수도권과는 다른 각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상의하달식 개발개념의 비판 없는 수용의식이나 이에 기초한 관습의 무분별한 반복수행, 군림하는 듯한 분위기의 조직시스템 같은 행태는 사라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권의 트렌드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지방에 적정한 해법을 찾아내는 ‘비판적’ 관점이 필요하다.
건축에서 지방성은 대도시인 수도권이 가질 수 없는 비장의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수도권과 차별화된 지방만의 특색을 무기로 개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건축에서 지방성의 핵심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건축의 지방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본력을 극복하기 위해 복합자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방만의 부족한 자금에 국제적, 수도권 중심적 펀드나 지방들 간의 연합된 자본이 투입 가능하도록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건축의 프로그램 역시 지방성을 담아내야 하고, 그 지방성의 고유한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지역들의 지방성들이 네트워킹 되어 완결성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에서도 국제적 도시의 브랜드를 필요에 따라 편집구성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도해야 한다. 즉, 새로운 건축, 새로운 기능, 새로운 건축영역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는 건축유형, 개발방식, 문화수용방식 등에서도 새로움과 동시에 지방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한국건축의 지방성
한국의 건축에서 지방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냉철한 관점에서 지방건축만의 특성과 독특한 문화, 건축공간에 대한 성격, 지역만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적정한 프로그램의 연구가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도 수도권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건축과 관련된 서비스 기회들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축의 담론과 문화적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방건축의 체질이 개선되어 수도권과 차별화 되거나 그 이상의 기회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방의 도시와 건축은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방 건축사들의 자발적 움직임과 지방성을 찾기 위한 담론적 실천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실천은 한국 건축의 지방성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방건축계는 움직이고 있다. 나름 발버둥 친다. 스스로 지방임을 인정하고 체질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건전한 지방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소한 알을 깨고 태동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왜 나타나고 있을까? 최근 2016년(알레한드로 아라베나), 2017년(스페인 RCR), 2018년(발크뤼시나 도쉬) 프리츠커상의 수상자와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지역만의 고민과 지방성의 가치를 잘 담아내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상 경향을 통해 한국 지방의 건축사들은 용기를 내고 있다. 수도권의 먹거리 부족과 지나친 경쟁을 피해서 돌아온 지역출신 건축사들, 그리고 지역에서 성장한 건축사들이 문화적이고 담론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기회가 생기고 있다. 막연히 메가트렌드를 쫒아가던 수요를 잡을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어 건축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뉴욕에서 건축사로 살아가려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스타건축사들과 경쟁해야하지만 한국의 지방에서는 건축사들 간의 경쟁이 약하므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지방은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또한 지방의 건축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가로 건축물의 총액 가치가 낮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많은 건축의 기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건축계의 해묵은 헤게모니적 움직임에 의한 파벌이나 경쟁도 적어서 나름 순수하다. 다만 아직은 개인 건축사들의 각개전투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하나의 트렌드나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좀 더 많은 건축사들의 노력과 실천을 통해 수도권과 대등한 협업과 교류를 이끌어내고, 그 결과물이 지방성을 드러내도록 건축문화가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 건축사들의 연합운동이 일어나고 담론적이며 문화적인 건축연대가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풍토가 정착되면, 점차 가치 있는 지방성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한국 건축에서 올바른 지방성 구축을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규모나 가치를 적정하게 축소하여 지방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건축사들도 그 지방성의 장점으로 무장하여, 중앙이나 수도권에 비해 차별화된 건축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방이 수도권의 영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한국건축의 지방성은 지역 건축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기는 국경 없는 사회 시스템에서 지방단위의 새로운 건축을 발전시킨다. 또한 사회적 자산으로서 지방성을 띤 구체화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서 지방성을 국제성으로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메가트렌드의 세계성을 비판과 수용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지방성’으로 농축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오신욱 Oh, Sinwook ┃ 라움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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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지에의 바이센호프지들룽

Le Corbusier´s ‘Weißenhofsiedlung’

1907년 12명의 미술가와 산업종사자들이 모여 독일 공작 연맹(Deutscher Werkbund)을 건립했다. 미술가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공동작업을 통해 독일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의 질적 향상 및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했다. 독일 공작 연맹이 가지고 있는 모토가 있었는데, 이 모토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적인 그들의 목적을 세웠다.

“소파부터 도시까지..(vom Sofakissen bis Städtebau)”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대도시에서 주거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주택은 지나치게 가격이 상승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건축과 미술 또한 사회 분위기에 따라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상황이 정상화되고, 경제 특히 건설경기가 되살아났다. 수 많은 도시들에서 다양한 주거 건축이 진행됐으며, 전쟁을 통해 훼손된 주거를 재해석하는 움직임 또한 강하게 일어났다.

Le Corbusier 옥상정원

이후, 1925년 독일 공작 연맹(Deutscher Werkbund)에서는 다시 한번 주거 환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표준이 될 수 있는 주거를 만들고, 이에 대한 토론을 자주하여 모두가 공유했다. 그 중심에 21개의 다양한 주거 프로토타입을 독일 남부도시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진행한 바이센호프 지들룽 프로젝트(Weißenhofsiedlung)가 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에 가장 큰 목표였다.

이 주거지역은 독일 공작 연맹의 주도로 이루어진 전시 ‘주거(Die Wohnung)’에 포함된 계획중에 하나였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Daimler Mercedes-Benz)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슈투트가르트안에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주거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했다. 21주의 짧은 시간동안 63세대 21채의 건축물을 지어내는 계획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의 형태가 단순히 양적인 증가가 아닌 질적인 면에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할 수 있는 성숙한 성장을 기대했다.

독일 공작 연맹이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슈투트가르트 시청의 건축 허가 승인을 받고 난 뒤, 건축사 미스 반 데 로에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담당자로 지목됐다. 당시 미스 반 데 로에는 당시 시대의 흐름과 다른, 철골과 유리로 고층 건물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했다. 전체 그림을 그리고 난 뒤, 1925년부터 독일 공작 연맹에서 다양한 건축사의 추천을 받는다. ‘대도시 시민을 위한 주거’의 주제에 맞는 아이디어로 설계를 보여주는 기회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중 대표적인 작가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였다. 그가 설계한 집은 현재 세계 문화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하나의 정형화 된 집을 설계했으며 다양한 삶의 기본이 될 수 있는 주거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 기능을 중요시 하지만, 화려한 장식을 최대한 자제하여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설계 다섯가지 원칙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파사드, 연속적인 수평창’이 가장 잘 보여지는 대표작이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주거의 형태가 기능에 충실하고 담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실내에서는 간소화된 요소가 더욱 잘 보인다. 가구 자체는 굉장히 절제되고 공간의 비율과 함께 어울려 과하지 않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미닫이 문과 이동식 가구는 이에 맞춰 시간대별 공간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당시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는 이러한 미학적 관점이 급진적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대량 생산체제가 가장 큰 화두였던 만큼, 그의 생각은 한 세기를 지배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그가 초반에는 사실 선택되지 않았다. 르 꼬르뷔지에가 스위스 출생이었던 만큼, 정치적인 이유로 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세와 더불어 독일과 스위스와 관계는 좋지 않았다. 이에, 독일 공작 연맹은 선정된 건축사나 미술가를 독일인 위주로 결정해 한다는 주장을 했다. 정세를 배경으로 독일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꾸준히 독일스러움이 프로젝트에서 묻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미스 반 데 로에는 독일 공작 연맹의 주장과 달리 그가 가진 역량을 높게 샀을 뿐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독일을 넘어서 세계에서 주목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당시 르 꼬르뷔지에가 주장했던 다섯 가지 원칙이 프로젝트의 흥행 요소 중에 하나였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하학적인 형태 구성, 새로운 재료 즉 콘크리트와 철재 사용은 새로운 화두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프로젝트 관련된 공사가 마무리되고 다음해인 1928년 한 장의 사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다. 한 젊은 숙녀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스포츠카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출시한 8/38 PS-Roadster, 최고 속도는 시속 75킬로미터. 3년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진 자동차로 F1에서 메르세데스 벤츠가 기타 자동차 제조사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차량이다. 이 차량은 르 꼬르뷔지에의 혁신적인 생각만큼, 메르세데스 벤츠가 차량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작점이었다. 당시 기록으로 전 세계 약 7,000대의 차량이 판매됐다는 점을 보면 그 수준을 미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물 앞에서 작업된 이 사진은 벤츠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의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물과 차량이 동시에 담겨 있어 인상적이다.

현재 건물의 모습

글. 김성환 Kim, Sungwhan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디자인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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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반을 통한 교통거점 재생 _ 신주쿠(新宿)역 버스터미널

Transportation Center Renewal Project using Artificial Ground _ Busta Shinjuku

2016년에 도교 신주쿠(新宿)역 남쪽출구 주변이 크게 변했다. 2001년부터 버스터미널 신주쿠(Shinjuku Busta) 계획이 추진돼, JR철로 상부에 인공지반을 건설하고 고속버스 터미널과 택시 승차장, 상업 및 문화시설, 보육시설 등의 도시기능을 압축하여, 교통거점으로 재생하되, 녹지가 풍부한 광장 및 관광안내소를 정비하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가장 특색있는 기능 중의 하나인 고속버스터미널은 국제공항이 위치한 하네다 및 나리타 공항과의 연결은 물론, 39개의 도도부현의 300여 도시와 연결하는 고속버스가 시종착역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선로상부에 지금까지 이렇게 큰 대규모의 인공지반의 개발프로젝트는 전례가 없는 사례로서 약1.8ha의 전체부지 내에 1.4ha가 지상 2층 높이 인공지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4층 높이의 저층부와 7층 높이의 중층부가 인공지반 상에 세워져 있고, 초고층건축물은 인공지반에 인접한 JR부지에 건설되어 있다. 저층 및 중층부에는 버스터미널과 택시 승하차장, 문화시설이 집적되어 있고, 초고층건축물인 JR신주쿠 미라이나타워(JR新宿ミライナタワー)에는 오피스와 상업시설 그리고 이벤트 홀과 도심 역사시설의 주요 수요 중의 하나인 보육시설과 각종 클리닉을 도입하고 있다.

그림 1) 신주쿠 버스터미널 외관 전경 및 보행광장 / © 송준환

인공지반의 계획경위

JR철로를 상부 연결하는 코슈가도(甲州街道)의 국토 20호인 과선교(跨線橋)는 1925년에 건설되어 약 80년 이상 경과하여, 내진성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신주쿠역은 승하객수 1일 약 350만 명으로 일본 내 최대 승하객수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신주쿠역 남쪽출구는 1일 약 45만 명, 다리 상부의 보행자만 1일 약14만 명에 달한다. 또한 과선교는 도교도청과 관저를 연결하는 주요한 간선도로이며, 1일 약6만대의 차량이 이동하는 교통량이 있는 곳으로 수도권 직하형 지진재해 발생 시의 주요 이동 동선으로서의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었다.
이에 과선교를 새롭게 재정비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장으로 선로위의 인공지반이 최초 계획됐다. 다리의 재정비를 위해서는 선로 상의 작업장이 필요했지만, 이를 철거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영구시설로서 활용하기 위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국토교통성에서 버스터미널 신주쿠(新宿バスタ)를 계획/구상했고, 이에 신주쿠역의 혼잡을 완화시키고자 JR동일본이 협력하여 새로운 남쪽 개찰구의 설치를 결정하게 된다. 한편, 입지적 포텐셜을 살리기 위한 사업을 고려한 결과, JR 신주쿠 미라아나타워(JR新宿ミライナタワー)의 초고층 건축물을 함께 건설하게 된다.
인공지반의 상부를 민간사업자가 사용하는 고속버스의 승하차장으로 정비를 하게 된 큰 배경에는 국가차원에서 추진하고자하는 관광대국으로서의 목표가 존재했다. 신주쿠는 일본 도쿄를 관광하게 되면 한번쯤은 가보는 곳으로 수도권을 대표하는 교통결점 요충지이지만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버스 승하차장이 역 주변에 19곳에 분산되어 있어, 철도역까지 이동만 도보 평균 10분 이상으로 이용자의 환승측면에서 매우 불편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쿄국도사무소(東京国道事務所)에서는 JR동일본과 사업연계를 통해 선로 상부를 활용한 종합적 교통거점 정비 사업을 실시하게 된다.

출처 : 참고문헌#4 참조·재작성

 

그림 2) 보행광장 및 중증부 옥상 녹지공간 야간전경 / © 송준환

입체도로제도를 통한 선로상부의 활용

JR 동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선로 상부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입체도로제도(1989년 창설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버스와 택시시설은 건축기준법에 있어서 도로상의 건축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주차장 등의 시설로서 정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도로 사업으로 진행하기 위해 국가의 시설이 되는 부분을 입체적인 도로 구역으로서 지정함으로서 국토교통성의 사업으로서 진행될 수 있었다. 토지구역권리에 있어서, 토지는 국가시설이 배치되는 부분을 구분지상권으로 설정하고, 건축물에 관해서는 도로일체건축물(道路一体建築物)에 관한 협정을 통해서 국가와 JR동일본간의 권리관계를 정리했다.
도쿄도 내에서는 철도역 구역 내에 대규모(기준상 연면적 10,000㎡ 초과)의 건축물을 건축할 시, 도쿄도 도시계획국에서 정한 「철도역 구역 등 개발계획에 관한 지도기준(鉄道駅構内等開発計画に関する指導基準)」에 따르도록 되어 있어, 본 프로젝트 또한 도교도 심의위원회의 심의검토를 통과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도로관리자로서 교통 혼잡 등 교통인프라에 관한 문제해결할 수 있었으며,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JR동일본의 입장에서는 도로시책에 협조하면서 선로 상부공간에 사용하지 못한 용적률을 옆 부지인 JR미라이나 타워에 집적/계획함으로서, 선로상부 용적율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민협력을 통해 본 프로젝트가 실현됐다.

 

파사드 디자인과 녹지으로 연결되는 오픈스페이스

완공된 과선교에서 바라본 인공지반상부의 신주쿠 역사는 전체를 유리로 하되, 예전 에도시대(江戸時代)의 신주쿠에 존재했던 숙박촌(슈쿠바마치, 宿場町)의 이미지를 살려 세로격자형 틀을 살렸다. 또한, 많은 차량이 이동하는 만큼 수평방향 선을 강조한 컨셉으로 파사드 디자인을 실시했다(그림 1). 과선교의 반대쪽에 위치하는 인공지반의 1층 레벨은 사람들의 이동이 많으면서 사잔 테라스와 연결되는 거대한 오픈 스페이스로서, 보행광장의 약 2,000㎡ 정도를 리빙룸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계획했다(그림 2). 전체적인 시설의 녹지(녹화율 전체 면적에 25% 충족)로 계획하여 도심 속의 하나의 작은 공원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층부 보행광장의 녹지는 상부의 버스터미널과 중충부의 옥상정원으로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보행공간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오픈한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터미널 이용자의 입장에서 큰 편리함이 제공되고 있다.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예약시스템의 발달로 대기시간이 줄어 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빨리 와서 대기하는 이용자가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과 이용자 집중에 따른 혼잡, 그리고 과선교에 각종 차량동선이 집중되는 것 등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

그림 3) 관광안내소와 버스터미널 내부전경 (상부) 및 3층 택시-4층 버스 승하차장 전경(하부) / © 송준환

본 사례는 토지비용이 높은 대도시 도심부에 있으며, 주변에 분산되어 있던 버스터미널 및 교통기능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소 기능을 기존 선로의 상부에 입체적으로 계획해서 토지의 유효활용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에게 편의공간을, 그리고 주변 상업시설과 철도역 이용자에게는 넓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다양한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심부 교통거점의 역할과 방향 그리고 실현하기 위한 재생 수법적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판단된다.

글. 송준환 Song, Junhwan
야마구치 국립대학 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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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Basílica de la Sagrada Família, Barcelona, Spain

탄생의 파사드 전면 부분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됐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부 모습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됐다.

가우디 생전에 완성된 동쪽의 ‘탄생의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가우디 사망 이후 성당의 건축을 맡은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에 의해 1976년 완성된 서쪽 ‘수난의 파사드’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을 그리고 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완성되면 성당의 메인 파사드가 될 남쪽의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부터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 4개씩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

성당 내부 모습

성당 내부는 나무의 모습으로 성당을 짓겠다고 한 가우디의 자연 예찬 철학이 그대로 담긴 내부의 기둥과 천장은 야자수, 삼나무 등 일곱 종의 나무를 형상화했다. 자연의 형상을 응용, 하중을 골고루 분산시켜 성당을 지탱토록 한 것이야말로 가우디 건축 스타일의 원형이다. 각 기둥들은 설계 당시부터 색을 달리하여 성당 내부의 조화를 맞추었는데 중앙 제단의 그리스도 상 좌우에 있는 자주색 기둥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네 명의 사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각의 기둥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사자, 천사, 황소,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는 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자연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분위기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그대로 벽면에 반영되도록 대부분 흰색 바탕을 지닌 성당 내부는 해가 뜨는 동쪽에는 비교적 차가운 느낌의 파란색 계열을 배치하고 서쪽에는 따뜻한 느낌의 붉은색 계통의 색을 배열하여 조화를 이루게 한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이너 Joan Vila Grau의 감각이 돋보인다.

글. 박무귀 Park, Mookwi • KIRA
건축사사무소 동림 대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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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짧아요, 꿈을 미루지 말고 현재의 삶을 살아요!”

“Summer is short, do not postpone your dreams, live your present life!”

여름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여름과 겨울이 다가오면 겁부터 덜컥 난다.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우려나, 올 겨울은 또 얼마나 혹독하게 추우려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는 것 같아서 한 계절 넘기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여름의 전기요금과 겨울의 난방요금도 두 계절이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실제로 하루의 기온을 기준으로 헤아리는 여름과 겨울일수(日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니 두 계절이 유독 힘든 이유가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내게도 분명 여름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여름방학이 있는 달콤한 달력이 내 것이던 학생 때나 휴가를 여름에만 써야 했던 입사 초년병 시절이 그랬다. 길고 지루한 기말고사가 시작되면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차가운 나무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석유 냄새 풀풀 풍기는 신문을 읽던 여름.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앞마당에서 따 온 상추와 풋고추로 차린 늦은 아침을 먹던 여름. 온전히 내가 가고 싶은 휴가지를 골라 내 한 몸만 챙겨 떠나던 단출한 여름. 파도 소리를 반주 삼아 밤 늦도록 노래 부르던 여름… 그 때는 여름이 지금보다 짧았고, 뜨거워도 좋았다.
지금도 지구 다른 쪽에는 여름이 짧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나라 사람들은 여름이 오면 흥분한다고 한다. 아마도 겨울이 길었기 때문에 태양의 계절이 더 즐거울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는 여름을 맞아 흥분한 사람 중 한 명이 만들었을 것 같은 러시아의 인쇄광고다. 『아비오네로』(Avionero)라는 항공권 예약 사이트의 광고인데 파리의 에펠탑이 다 보이지 않고 잘려서 보인다. 아름다운 바닷가의 모습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아주 조금 밖에 안 보인다. 여름이 3개월이나 된다고 휴가 계획을 미루고 있다가는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여름을 보낼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비주얼에 담겨 있다. 항공편 예약을 서두르라는 얘기다. 단 두 줄의 간결한 카피가 여름 휴가를 느긋하게 계획하려는 마음에 조급함의 불을 당긴다.

여름은 아주 짧아요.

놓치지 마세요!

아비오네로_프로모션_인쇄광고_2018_카피

그림만 봐도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광고도 있다. 2017년 인도네시아에서 런칭된 『어드벤처 해먹』의 ‘달로 가는 티켓’(Ticket To The Moon) 캠페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캠페인은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나무 사이에 해먹을 매달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습관에 착안하여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사용했다. 해변의 달, 협곡의 달, 사막의 달, 대초원의 달 모두 4편으로 만들어졌는데 착시효과 때문에 아름다운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해먹처럼 보인다. 어드벤처 해먹에 누우면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카피 한 줄도 없이 사진 한 장만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국민 1,105명을 대상으로 올해 하계휴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며칠 전 보도로 접했다. 응답자의 55.2%가 여름휴가를 계획 중이며 이들 가운데 82.6%가 국내 여행을 생각한다고 응답했단다. 국내 여행 목적지 1순위는 32.1%의 강원도가 차지했다. 이어 경남(12.7%), 경북(10.4%), 전남(9.9%), 경기(9.3%)가 순서대로 이어졌다.
휴가 기간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집중됐다. 특히 7월 말에서 8월 초 가장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7월 28일에 떠난다는 대답이 20.3%로 가장 많았다. 전국의 거의 모든 학원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잠깐 방학을 하니 이 기간에 휴가가 몰리는 것이다. 멀지 않아 해운대 해변을 가득 메운 파라솔 행렬과 강원도행 고속도로에 가득 찬 휴가 차량들이 뉴스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휴가가 있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름 휴가기간 동안 여행 등 특별한 계획이 없는 이들도 거의 절반에 달했다. 그들이 휴가 계획을 정하지 않은 이유는 ▲여가시간 및 마음의 여유 부족(76.1%) ▲건강상의 이유(15.3%) ▲여행비용 부족(12.1%) ▲돌봐야 할 가족(5.2%)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휴가를 포기하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은 되는 셈이다. 이 결과를 보고 2002년 온에어 된 후 지금도 인용되고 있는 현대카드 TVCM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떠올랐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림하고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1년의 반을 달려온 사람들이 잠시라도 그 ‘열심’을 떠나 게으른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6월 북유럽 에스토니아의 『노르디카』(Nordica)라는 항공사가 마이무 칼라(Maimu Kala)라는 95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홍보 영상을 만들어 선보였다. 그녀는 아흔 다섯 해를 사는 동안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세상의 다른 쪽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하는 어린 마이무에게 그녀의 엄마는 ‘여기도 보고 들을 것이 충분해. 일하러 가자!’고 말하곤 했다. 그 후 평생을 고향에 살고 있는 마이무는 이제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는 할머니가 되었다. 마이무는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감자를 심고 화단을 가꾸는 변화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평생 고향에만 갇혀 있는 현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른 세상이 궁금하고 막 여섯 달이 된 손자도 보고 싶은데 불편한 다리로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질 기회가 왔다.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이무를 위해 한 손녀가 코펜하겐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하고 그녀의 여행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놀라며 기뻐하는 마이무!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같이 가자고 하니 집은 누가 돌보냐고 손사래 치며 못 간다고 벌떡 일어서 나가버린다. 그러나 마이무는 지구 끝까지라도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꿈을 미루지 않겠다고 아흔 다섯 살이 되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남편은 마이무를 차에 태우고 공항으로 향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판을 달려가는 자동차 위로 자막이 뜬다.

당신의 꿈을 미루지 마세요.

현재의 당신 삶을 사세요.

노르디카 항공_기업PR_홍보 영상_2018_카피(부분)

며칠 전, 여고 동창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강릉엘 다녀왔다. 고등학교 2학년 설악산 수학여행 이후 거의 40여 년 만에 함께한 강원도 나들이었다. 강릉 역에 마중 나온 후배의 차에 타는 순간 나훈아의 공(空)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들 나들이를 환영하는 웰컴 송으로 심혈을 기울여 선곡했다는 후배의 설명이었다. 난데없는 트로트 세례에 우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곧 웃음을 그치고 무릎을 치며 가사에 공감했다. 나훈아는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그렇다. 굳이 노르디카 항공의 광고를 보지 않더라도, 나훈아 노래의 가사를 듣지 못했더라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나는 기적 같은 우연으로 지구라는 작은 별에 잠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이 궁금하면 미루지 말고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나는 날마다 무럭무럭 늙고 있다는 것을!
여름은 짧다. 망설이지 말고 여름 속으로 성큼 한 걸음 내디뎌야겠다. 비행기 티켓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에 해먹을 걸고 한없이 게으르게 구름을 보고 나무를 보고 새와 바람 소리를 들어야겠다. 가버린 지난 날에 대한 미련은 거두고, 오지 않은 미래일랑 미래에 맡기고! 바로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노르디카_홍보 영상_2018_비메오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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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과 동굴벽화

Sarangbang and Cave painting

곰방대 쩐 내와 땀 냄새가 진동하고 천장에는 쥐오줌 얼룩이 번져가는 방. 윗목에 볏가마가 쌓여있고 시절에 따라 수확한 곡식이 먼저 들어와 며칠씩 묵어가는 곳, 행랑채 대문에 딸린 방이기도 하고 광이기도 하던 곳, 문이 집 안과 집 밖으로도 나 있어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곧바로 외부로 이어지는 방. 마음먹기에 따라 방주인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쩍 뒤로 빠져도 되는 그런 자유로운 방, 집안으로 난 문을 열면 앞마당이고 바로 안채인데 나는 열일곱 살 되던 해까지 안방에서 5인 남녀 가족공동체 일원으로 온갖 불편한 진실들을 다 끌어안고 뒹굴다가 사랑방으로 독립했다. 방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이면 밖의 온도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그게 무슨 방일까마는, 나는 그곳에서 최초의 단독자인 나와 조우했다. 열일곱 살, 몸은 튼튼하다 못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내면은 검은 털이 돋기 시작한 험한 짐승처럼 어둑했다. 힘이 넘쳐 그르치는 일들이 많았으나 아버지는 그 힘을 들판으로 돌려 내 힘이 초록으로 번져가게 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사랑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 속에선 어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들끓었는데, 그 넘치는 문자를 나는 노트와 벽과 방바닥에 수없이 덧대어 휘갈겨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깥문으로 드는 창호햇살에 지난밤의 문자들이 드러났지만 나는 그것을 곱씹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나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것은 마치 오랜 훗날 몇 세기 이후에 언어체계가 다른 문학이라는 발견자에 의해 발굴 되어야하는 상징처럼 난해했다.
가끔 빗방울이 파초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처마에 잇대어 달아낸 함석 차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다 말고 일어나 맛나게 받아먹었다. 한밤중 바깥문을 열고 벽에 기대 앉아 바라보는 사각형의 문틀에 사선으로 꽉 차서 내리는 비의 각도는 서러웠다. 나는 그때 비를 피해 동굴에 호젓하게 앉아 토기를 빚다 말고 동굴 밖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넋 놓고 내다보는 선사시대 사람 같은 심정이었을까, 문득 밀려오는 어떤 막막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에 무심코 물고기 뼈로 그어 내린 무늬, 그냥 주룩주룩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바람에 스치며 기우는 비의 각도, 어쩌면 사람이 그린 최초의 감정선, 나는 지금도 빗살무늬토기의 빗살문양을 서러움으로 읽는다. 나는 그때 그렇게 누렇게 바랜 꽃무늬 벽지 위에 그 서러운 빗살무늬를 수없이 새겨 넣었다. 마치 선사시대 사람이 최초로 남긴 동굴벽화처럼.
나만의 공간인 사랑방은 갈수록 은밀했다. 집 안으로 난 문은 늘 닫힌 채 문고리가 걸려있었다. 내 몸은 일찍이 어릴 때부터 노동으로 만들어져서 친구들보다 훨씬 먼저 아이의 비릿한 동정을 지나 설익은 어른의 입구에 다다랐고 늘 치기 어린 기운이 넘쳐 늘 미열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더 정확하게는 그 미열이 몸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마음에서 발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늘 집 안보다 집 밖을 동경했다. 밖의 작은 기척에도 창호지 뚫린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다.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이웃동네 사람, 뜰 앞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뭔가 오래 망설이는 생쥐를 먹이로 길들여 같이 놀기도 하고 더러 오갈 데 없는 거지 일가족들을 위해 뜰 앞에 짚단을 깔아주는 날도 있었다. 그들이 밤새 속삭이는 소리는 칼바람 부는 벼랑 끝에 내몰린 짐승처럼 비장했으나 새벽녘이면 체념처럼 나직해졌다. 얼어 죽지는 않을까, 멀리 병점역에서 낮게 깔려 들려오는 기적소리가 그들의 한숨소리를 싣고 남녘을 향해 달리는 밤이었다.
나의 문학은 일찍이 문자를 모를 때부터 어린 내 가슴을 향해 밀려오는 어떤 뜨거움 같은 것이었다. 그 뒤죽박죽의 감정을 최초로 벽화의 형태로 새긴 곳, 일찍이 나를 키운 건 산과 들과 냇물도 있었거니와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한 어린 노동과 돌아가신 누님이 남긴 몇 권의 난해한 시집과 치기와 그리고 그런 것들을 품고 혼자 들어앉은 사랑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안의 음습한 욕망의 습지를 걷다가 문득 개활지를 만나 뛰기도 하고 다시 문득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광활한 시공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하였다.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면 생쥐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색연필을 갉아 먹던 방, 한밤에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리던 방, 분기탱천한 몸을 어쩌지 못해 얼른 몸을 다 써버리고 싶었던 방, 나중에는 그런 몸조차 어디 내다버리고 싶었던, 그 방에서 늘 밖을 동경하고 먼 곳을 동경하던 나는 비로소 스무 살 되던 해에 집을 떠나 내 안의 그 먼 곳에 안착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의 문학은 문자 이전의 동굴 벽에 그린 그림처럼 사랑방 벽에 수없이 덧쓴 의미 이전의 기호에 대한 발견이자 재구성이다.

글. 이덕규 Lee, Deokkyu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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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총괄건축가_김인철 건축사

The road to Sejong City, leads to the solution through architecture

세종시가 가야할 길…건축에서 답을 찾다

1990년대 ‘4·3그룹’은 한국 건축을 주도해온 소장파 그룹이다. 개발 열풍에 ‘건축’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토양이 빈약한 시대, 이들은 ‘메시지가 있는 건축’을 내세우며 건축계 담론을 주도했다. 4·3그룹에서 김인철 건축사는 전통에 바탕을 둔 공간철학인 ‘없음’을 화두로 작업해왔다. 이는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말을 ‘형태는 공간을 따른다’로 바꾸어 우리건축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는 건축평론가들 사이에서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고, 집요하며 진정성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머물러있지 않고 지속적인 실험·탐구로 변화하며, 건축을 다루는 손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올 4월 행복도시의 건축을 집행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총괄건축가에 선임됐다. 최근 그의 사무소로 찾아가 근황과 총괄건축가로서 원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김인철 건축사 (주)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대표 /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국민대학교 건축과 석사 졸업 /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주요작품_바우지움(2015), 어반하이브(2008), 웅진씽크빅(2007), 김옥길 기념관(1998) 등

Q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열정적으로 해오신 것에 존경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억으로는 지금 허물어진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건물이 초기 대표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 기억이겠지만, 당시의 건축풍토나 작업 시 기억에 남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돌이켜보면 삼성동 한국전력본사는 내 청춘을 바친 프로젝트다. 그 외에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세종문화회관, 을지로 호텔 롯데를 들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스텝으로 참여했지만 을지로 호텔 롯데는 스물일곱에 시작해 서른 즈음에 끝냈는데, 연면적 108,900제곱미터(3만 3천평)에 객실이 천개가 되는 호텔의 설계총책을 맡은 흔치 않은 기회였다. 프로젝트를 끝낸 후 어떤 일이 와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호텔프로젝트 진행 중에 잠시 팀을 만들어 한전본사 공모전을 준비했는데 당선되었다. 처음엔 규모가 39,600제곱미터(1만2000평)이었지만 나중에 79,200제곱미터(2만4000평)까지 늘어났다. 그 과정에 한전 CEO가 네 번이나 바뀌었고 그 때 마다 설계가 변경됐다. 78년 설계경기로 시작된 한전은 83년에야 설계(86년 준공)가 끝났다. 당시 나는 사무소에서 먹고 자며 거의 살다시피 했다. 한전의 요구는 매우 까다롭고 디테일했다. 이를 신경 쓰다 급성간염까지 걸려 몇 달 치료받고 겨우 살아났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을 쏟았던 프로젝트라 잊지 못한다. 건축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헐리는 것을 보는 마음이 정말 씁쓸했다.

 

Q 저 역시 작업하는 건축사로서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들수록 건축주들이 불편해 함을 느낍니다. 해외는 7,80대 노장 건축사들이 여전히 많은 활동과 실험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는 거의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드물게 선생님께서는 청년처럼 매번 새로움을 도전하고 있는데,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현역이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신기하게 보는 것 같다.(웃음) 나는 건물주와 나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이야기하는 쪽이다. 그러다보면 상대방도 나이에 대해 인식을 하지 않는다. 어른에게 대들 듯이 요구하는 사람,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이렇게 해주면 안돼요?”라고 부탁하는 사람,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자기 색깔이 있어 좋다.”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건물주와 만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건축을 전공하게 된 것이 숙명 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 어쩌다 건축을 하게 된 우연이었지만 다행히도 건축이 재미있으니 지금도 나이를 잊고 현역으로 있을 수 있나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하듯 재미있으니까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하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잘하게 되었고, 잘 한다 입소문이 나니 의뢰가 들어온다. 얼마 전 용강동 골목길 삼각형 66제곱미터(20평) 땅에 설계를 부탁하러 온 30대 후반 부부가 있었다. 어떻게 왔느냐 물었더니 대학 다닐 때 김옥길 기념관에서 차를 마시면서 “언젠가 집을 짓게 되면 이 건물을 지은 이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찾아왔다고 했다. 간혹 설계한 것이 신문, 방송, 잡지에 나가면 그것이 또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Q 4·3그룹시절부터 건축 작업뿐만 아니라 건축 직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사회에 발언하셨습니다. 당시 젊은 3,40이셨고 지금은 원로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열정의 토로를 하시던 건축 환경과 오늘날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시는지? 혹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4·3그룹은 1992년 4월 3일에 처음 모였고 멤버 모두가 30대와 40대였다. 당시의 선배들은 건축을 전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행세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작업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건축에 형태는 없다”며 “없음”을 꺼냈다.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없다는 것은 형태를 의도해서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형태인 껍질은 공간에 따라오는 결과물이니 겉이 아닌 속을 갖고 따지자했다. 내 건축, 나아가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 그 때였다면 지금은 백가쟁명의 시대다. 화려한 경력의 후배들이 활동하고 있고 다양한 작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그것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함은 아직 소수의 특별한 것이어서 다수의 일반성에 함몰되거나 특수한 경우가 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비관하지 않는다. 미미하더라도 사회의 곳곳에서 건축을 다르게 인식하려는 기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Q 저는 1991년 처음 작은 건축사사무소에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잘 모르던 초년병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현장을 가면 시공사들이 경청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시공사들이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종종 무시하는 태도들을 보이고, 갈등이 상당히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설계와 시공이 갈등관계가 아니라 문제를 같이 풀어가는 협력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시공사들이 어떻게 해결하는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경험하신 시공자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중앙대에서 학생들과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주로 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그것을 실제로 구현시키려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마다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면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생각을 조리 있게 잘 설명해야 상대방이 잘하려는 마음을 갖는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이른바 스피치 훈련이다. 설득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한전 프로젝트 때부터다. CEO가 바뀔 때마다 설계내용을 반복해 설명했고 또 별스런 요구조건들을 조정하는 과정을 수 없이 거듭했다. 건축의 실무는 건물주, 공무원, 시공사 대표, 현장소장, 각 공종별 담당업체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그 일은 대화의 톤을 최소 다섯 가지 정도 구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건물주와 이야기할 때는 그쪽의 수준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공무원이면 공무원, 목수면 목수의 용어로 이야기해야 소통이 된다. 다시 말해 상대의 언어로 상대의 코드에 맞추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로서 권위와 위상에 맞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설계의 의도대로 완성시키면 상대방도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반하이브의 현장소장은 도면을 보고 처음에는 난감해하며 거부감을 보였다. 아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설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모습이 드러내어 세간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잡지와 신문에 소개되면서 부터는 90도로 인사하게 되었다. 존경받지 못할 짓을 하면서 존경받으려하는 것은 그야말로 갑질에 해당한다. 특히 기술자들은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데 그들을 무시하기보다 그 자존심에 호소하면 대부분 호응하게 된다.

 

Q 이번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 총괄 건축가로 활동하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2009년 저술한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에서 건축사들의 지역 코디네이터나 지역 건축사 컨트롤 시스템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지역별 총괄 건축가 제도에 대해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행복청 처음 건설 단계부터 총괄 건축가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제도가 생긴 것에 대해 환영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총괄건축가의 역할과 의미를 부탁드립니다.

행복청은 공공건축가 50명 정도를 운영한다. 나는 총괄건축가로 위촉돼 공공건축의 기획에서부터 집행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행복청에서 총괄건축가를 필요로 하게 된 원인은 10년 동안 만들어진 결과가 다른 신도시들과 비교해 새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방법론이 문제였다. 새로운 도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생산하는 총체적 시스템이 구태의연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관행적인 기획과 발주의 제도가 비판 없이 운영되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시도보다 합리와 안정을 우선하는 시행이 빚은 결과이다.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발주 측의 경직성이 만든 진입장벽으로 창의성은 경원의 대상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대형사무소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현대건축은 이제 60년의 연륜을 그리고 있다. 경제규모도 세계 10위 이내에 든다. 건설기술 역시 세계의 초고층을 우리가 다 짓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왜 명품건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공공건축은 국민 세금으로 만든다. 그 일에 복무하는 담당자들은 건축과 도시의 어디를 보고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왜 반복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총괄건축가로서 처음 한 일은 설계경기지침서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었다. 설계경기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실시와 기본설계 이전 단계인 계획설계이므로 구조, 설비, 전기, 토목 등 필요치 않은 항목을 지우기로 했다. 창의성을 요구하면서도 시시콜콜 적시하는 설계지침도 모두 걷어냈다. 어떤 의도인지 밝히는 설계 설명서와 도판이면 충분할 것이다. 응모자의 시간과 비용의 부담을 줄여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안이 가능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심사자의 구성 역시 프로젝트의 성격에 부합되도록 선정하고 사전공개로 지향점을 상호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사의 방법도 개선해 가능한 한 설계자의 설명을 직접 듣고 질의응답을 통해 판단하려고 한다. 그리되면 응모자는 사전접촉 등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주와 응모자와 심사자 사이의 상호 신뢰이다. 공정성으로 투명성을 가릴 것이 아니라 불신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있다. 살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우선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Q 세종시를 보면 동탄 신도시나 광교 신도시처럼 초고층 아파트로 도시 경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속도와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택지개발 방식으로 이렇게 높은 건물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비판적입니다만, 앞으로도 이런 고층 아파트들로 도시를 구성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건축법에 건폐율과 용적률이 있다. 주거지역과 상업지역별로 평면적인 밀도와 입체적인 밀도, 즉 도시의 밀도를 조정하는데 필요한 제한이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의 경우 용적률 하나만 적용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건폐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아파트의 다양성을 만들 수 있다. 저층형이든 테라스형이든 여러 가지 안이 나올 것이다. 건폐율 조항 때문에 불가능한 인공대지-데크는 특히 평지가 아닌 경사지의 경우에 굉장한 효용을 갖는다. 일조와 조망 그리고 인동거리도 모두 설계에 맡겨야 한다. 팔리지 않을 아파트를 설계하거나 시행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최소의 규정이다. 지금의 계몽주의적인 규제로는 현재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의 민도는 건축을 부동산으로만 본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의 원리에 맡겨도 되는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분양제도도 후분양으로 바꿔야 하고, 국민들의 건축에 관한 질과 양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층 공동주택의 건축사적 출발점은 사회적 주택 개념이었습니다. 이런 개념이 우리나라 와서 자본적 기업의 잉여산출물로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기업들의 시각에서 보면 반복적 패턴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가 우선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획일화된 도시 경관, 저는 이를 유니폼 건축이라고 합니다만 이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아파트가 획일적인 모양으로 탑이거나 판이거나 반복되는 것은 대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진다. 공동체의 형식만 있고 내용이 부재한 현상은 주거문제에 관한 국가의 정책에서부터 민간의 기대수요에 까지 걸쳐있는 거대한 스펙트럼이 만든 결과이다. 그것의 산출에 한 몫을 하고 있는 우리도 책임을 넘길 수 없다. 답답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매듭 끊기와 같은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LH도 당연히 총괄건축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원로들이 맡아야할 역할이라 생각한다.

 

Q 특히 공공부분의 건축물, 도서관이나 관공서 뿐만 아니라 공원내 화장실이나 지하도 출입구 등 수많은 공공시설들이 있습니다. 이런 공공부분의 건축물들은 민간 영역에 비해서 조금 더 자유롭고 이상적인 실현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행복청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디자인 도시로 유명한 미국의 컬럼버스 시처럼 세종시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가 되기를 희망하는데요. 향후 세종시 공공건축가들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시는지?

세종시는 2030년 완공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60∼70개 프로젝트가 더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설계경기를 공모할 때 프로젝트 기획업무에 공무원과 함께 공공건축가를 투입할 계획이다. 또 설계경기의 심사만 하고 이후는 책임지지 않는 일회성 심사위원회가 아니라 설계경기 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시설계의 과정에 관여하고 가능하면 감리와 사용승인까지 따라가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진행이 보장되고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지 않고도 건축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Q 아직 세종시는 태동기 도시로 정부는 이제라도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나 중소 규모 건축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부분이 특히 공공건축가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민간 영역에서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향후 세종시 공공건축 또는 중소규모 건축의 방향을 어떻게 지도할지 궁금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이 해야 하는 일은 민간에게 좋은 건축의 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건축은 민간에서도 그렇게 지어보려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공공이 좋은 건축을 세우면 주변 건물들에게 진화의 촉매작용을 하게 된다. 건축을 생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에서 행정,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가 하나의 트랙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각자의 역할, 분야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게끔 해야 된다.
건축이 당연히 인문학이어야 되는 이유는 의사, 변호사, 작가, 정치가 등 건물주를 상대할 때 인문학적 지식이 없으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설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모색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학교부터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또 일반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 초, 중, 고 교과서에 건축이 문화라는 것을 강조해 교육해야 한다. 건축문화는 혼자 만들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Q 장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많은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 연배까지 작업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해주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설계사무소 개업하는 후배들이 인사 오면 “오천만원 받아야 하는 설계비를 삼천만원만 받게 되었을 때 삼천만원 어치만 설계하면 안 된다. 그럼 망한다.”라고 충고한다. 완벽한 설계가 나가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것이고 결국 하자의 책임을 따지게 되었을 때 “설계비가 적어서 그랬다”라고 변명하면 끝이다. 어떻게 계약을 했건 얼마의 설계비를 받았건 일단 맡았으면 이 일이 다음 일을 만든다 생각하고 3년만 고생하라고 한다. 또 50대에 들기 까지 자신의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는다. 설계는 남의 부탁을 받아 해결해주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김인철 건축사가 6월 5일 서울 이건하우스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서 특별강의를 하고 있다.

김인철 건축사 신간 ‘오래된 모더니즘-열림’출판 기념 전시회
“건축은 자연과 도시, 더 큰 공간 향해 열려야 완성된다.

김인철 건축사의 신간 ‘오래된 모더니즘–열림’ 출판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6월 5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마포구 이건하우스에서 열렸다. 전시 첫날에는 김인철 건축사의 건축관과 건축 인생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는 특별강의도 마련됐다. 이날 김인철 건축사는 “글은 설계 과정에서 빠질 수 없다. 설계 틈틈이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 놓았더니 책이 되더라”며 “책을 통해 이 땅의 전통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했다. ‘오래된 모더니즘-열림’이란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모더니즘이 우리 전통이 갖는 패러다임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모더니즘-열림’은 ‘틀’, ‘풍토’, ‘열림’, ‘오래된 모더니즘’이라는 4개 테마에서 김인철 건축사의 작품을 담고 있다. 김 건축사는 저서에서 “우리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가치를 현재의 것으로 가져와야 하며, 이를 위해 건축 사상과 이론으로 벌이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하는 가치 그 자체로 건축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래된 모더니즘’이라 생각하는 우리 고전의 ‘열림’을 제시하며 “건축은 자연과 도시라는 더 큰 공간을 향해 열려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글·사진 김혜민>

출판 기념 전시회에는 김인철 건축사가 그동안 진행한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전시됐다.

 

김인철 건축사의 작품과 通하기

바우지움 _ bauzium

땅과 공간을 주제로 하는 작업은 여러 장르가 있지만 그 중에서 건축은 더욱 땅에 밀착된 결과를 만든다. 캄보디아의 경험이 그랬고 네팔의 과정이 다르지 않았다. 풍토의 조건이 그 땅의 건축을 결정한다는 평범한 사실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반도의 척추를 이루는 태백산맥 너머는 동과서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울산바위를 넘어온 높새바람과 동해를 건너온 해풍은 울창한 송림을 사방으로 헤집는다.

채소를 경작하던 1,500여 평의 밭에 미술관을 일구는 작업은 우선 바람으로 시작된다. 히말라야의 바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곳 역시 바람은 일상을 지배한다. 각 50평씩 세 동으로 구성된 건물을 담으로 이은 것은 나뉜 150평의 공간을 하나로 묶는 장치이고 또 그 사이에 바람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다. 바람은 맞서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편한 자연의 하나다.

‘바우지움’은 조각가인 주인의 컬렉션이 상설 전시되는 ‘근현대조각관’과 자신의 작품전시와 작업실을 겸하는 ‘김명숙조형관’ 그리고 특별전시와 큐레이터의 공간이 마련된 ‘별관’으로 이어진다. 10%의 건축으로 땅을 채우기 위해 펼친 공간은 모두 울산바위를 향한다. 비록 서향이지만 공간의 질서를 결정하는 항목에서 그것을 능가하는 조건은 따로 없다.

땅을 셋으로 나누고 물과 돌과 풀로 마당을 만들어 10년 넘게 가꾸어온 주인의 거주공간과 이어지게 한다. 결국 넷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울타리-담은 공간을 일으키는 주제가 된다. 길이와 높이가 다른 담을 여럿 세우고 겹치고 꺾이는 곳에 지붕을 얹어 집을 꾸민다. 담의 어딘가에 지붕이 있을 뿐 건물의 형태는 따로 없다. 조형을 담을 공간에서 건축은 나서지 않는다.

매끈한 담이 아니라 허름한 담을 만든다. 거푸집에 돌을 깨어 넣고 콘크리트를 부으면 서로 얽혀 굳는다. 계획된 의도보다 물성과 경우의 수가 빚어낸 우연의 결과는 결국 필연으로 간다. 조각으로 나타나는 조형이 다듬어진 필연의 결과라면 건축은 그 반대의 과정을 시도한다. 내용에 봉사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런 명분이 아니어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허름한 담 안에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기 위해 쇠로 만든 틀을 걸친다. 담은 그저 담이지 벽이 아니다. 다만 겹쳐 보일 뿐이다. 방수와 단열을 갖춘 지붕과 벽은 자립해 벽에 기대고 있거나 떨어져 있다. 걸어야하는 그림과 달리 조각은 바닥에 노이는 것이니 벽은 자유다. 사이를 두어 빛을 들이고 창이 되어 안과 밖을 잇는 풍경을 만든다. 창에 비치는 수면에는 소나무와 울산바위가 바람과 함께 내려와 담긴다.

땅이름 원암리元巖里는 말 그대로 바위를 깔고 앉아있다. 울산바위가 솟아오를 때 굴러 내렸을 누런 돌들이 야외 전시장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대관령 터널 공사장에서 걷어온 쇄석과 원암리의 돌덩이가 어울려 ‘돌의 정원’을 만들고 그래서 바위로 지은 미술관의 이름 ‘바우지움’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바람이 담의 돌 틈에 흙을 싣고 풀씨를 심어 초록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건축이 되려고 한다.

위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미술관) / 대지면적 4,452.00㎡ / 건축면적 553.40㎡ /
연면적 498.92㎡ / 건폐율 12.43% / 용적률 11.21% / 규모 지상1층 / 구조 경량철골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조면콘크리트, T24 투명로이복층유리, T0.7 ZM징크 /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지정색 유성무광페인트 /
설계기간 2013. 09 ~ 2014. 03 / 시공기간 2014. 04 ~ 2015. 06

평면도

 

자투리움 _ Jaturium

대지위치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 493-3 / 용도 단독주택 및 문화및집회시설(전시장) / 대지면적 73㎡(가각전제 적용 후 67.88㎡) / 건축면적 40.67㎡ / 연면적 116.63㎡ / 건폐율 59.91% / 용적률 171.82% / 규모 지상 4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ZINC패널, T24 low-e 복층유리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 위 도장 / 설계기간 2014. 10 ~ 2015. 06 / 시공기간 2015. 06 ~ 2015. 10 / 사진작가 전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