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식민시대의 그림자가 여전해… 호칭의 정의부터 출발해야

The shadow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still exist…
We should start with the defining of an appellation

하이야트 호텔 재단에서 후원하는 프리츠커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건축계에 국제적 권위가 있는 상이다. 이웃 일본은 벌써 6명이나 수상을 했고, 중국도 2012년 왕수(王澍)가 수상했다. 이들 중 몇몇 건축사들은 해외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 순수 국내파들인 경우도 많다. 영어를 못하는 건축사들이다. 그 밖에도 유럽이나 남아메리카 출신 건축사들도 다수가 수상했다.
이런 성과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국제화가 필요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건축계는 이상하게 자존감이 낮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에 대한 인정이 매우 박하다. 국제적 시각이나 시야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다. 중국 수상자인 왕수의 예만 들면 철저한 중국내 작업을 성과로 만들어 내고 인정받은 셈이다.
굳이 프리츠커상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지만, 건축계가 아닌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건축계에 대한 인정이 될 수도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건축계와 한국 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건축계가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일반인들은 여전히 건축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건축=건설’의 이미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야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지만, 대중들은 설계가 건설이 같은 분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을 지으려 생각하면 여전히 건설사를 먼저 찾아간다. 이런 인식의 고착은 어디서 시작할까? 더구나 설계를 하는 직업명칭인 건축사라는 용어조차 대중의 인식에 명확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 건축가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어도, 각종 언론이며 매체는 여전히 혼용된 용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런 용어의 뿌리는 일본 식민시대에서 연유한다. 일본 식민지 시절, 한국인은 건축사가 될 수 없었다. 건축사 업무인 설계는 건설 이전으로 일의 시작에 해당하는 업무다. 따라서 이런 시작을 식민지 국민에게 부여할 수 없었다. 이상이라는 일본 식민지 시절, 천재적 인물이 최고 성적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 영선과에 근무해서 보일러를 고치는 직업이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귀족 자제들의 건축 설계 참여로 인해 건축가라는 호칭으로 대체해서 일을 했다. 귀족이라는 계급적 발상으로 특권을 얻으면서 면허 없이 건축가라는 타이틀 활동을 한 것이다. 전후 일본은 이런 뿌리로 인해 건축사와 건축가 논쟁이 수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다가 지금은 암묵적 묵인 상태다. 다만 법적으로는 상당히 위축되어서 건축사가 점차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영향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아서 여전히 호칭 논쟁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영어권은 아주 단순 명쾌하다. 영어 Architect는 영국이나 미국 모두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면 사용 불가이며, 법적 제재 상황이다. 호칭이 왜 중요할까? 이는 건축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논문을 쓸 때나 책을 저술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용어의 정리다. 바로 이 용어의 정리가 미흡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상 사용되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건축가’라는 호칭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와서 건축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자격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호칭 하나에도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와 부조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호칭의 당당함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당한 호칭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남과 다른 것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발언할 때 우리 건축이 타인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 건축이 건설과 다른 영역임을 확인받아야 하는 중요함도 호칭에서 출발한다. 지식산업의 근간은 창조임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의 정량적 평가를 기준 하는 어색함도 출발이 이상해서 그렇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용어를 정리해가면서 우리 스스로 가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절실하다.
8월의 광복절은 우리 건축계에 이런 작지만 큰 이야기를 상기시켜 준다.

 

글. 홍성용 • 본지 편집국장

,

뢰머광장과 하우프트바헤광장

Römerberg Platz and Hauptwache Platz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은 마임강변에 자리잡은 구도심 광장이다. 옛 시청사인 뢰머(Römerberg)의 맞은편은 목구조의 건물들이 보인다. 하프팀버의 벽체가 구조와 장식이 조화된 이 건물들을 오스트차일레라고 부르는데, 15세기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15세기 쾰른의 비단상인들이 지었던 것으로 중세 독일 거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현재의 건물들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하우프트바헤를 둘러싸고 있는 광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다. 1730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인 하우프트바헤(Hauptwache)를 직역하면 ‘중앙 위병소’ 정도가 된다. 1905년부터 레스토랑으로 사용 중이다.

,

8월 01. 한국 건축의 사대주의와 국수주의 현상

건축담론

편집장 주

남북 평화의 시대로 접어드는 낙관적 미래가 시작되려 합니다. 지난 5월호부터 시작된 건축 담론은 이제 4회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첫 회는 지방자치 선거와 맞물려 제도권과 건축사의 이야기를 했고, 두 번째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모순된 건축환경을 언급했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의 지역별 건축적 의미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 언급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기회를 본 건축 담론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지면의 한계상 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이 기회를 통해 확산시키고, 깊이를 다듬어 가시길 바랍니다.

592호 주제는 ‘한국 건축의 사대주의와 국수주의’입니다.

8월은 우리가 식민시대를 벗어난 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자주권과 독립권을 행사한지 73년이 되어 갑니다. 건축은 다른 분야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60년대 부여박물관 논쟁부터 시작해서, 80년대 한국적 건축에 대한 논쟁까지 상당기간 토론되고 회자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학교, 현업은 치열한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러던 논쟁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체성은 확보되었을까요?
소비자에게 권한이 넘어간 소비자 중심의 시장 경제 사회에서 막연한 선진국에 대한 추종은 오히려 더 심해진 듯합니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해외 건축사들은 국내 건축사들보다 여러 가지 편의를 받고 있습니다. 계약 관계, 업무 진행, 디자인 결정 등… 실력이라는 것으로 보기에는 우리 스스로 성장한 이들도 많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불평등이 의아합니다. 물론 국수주의도 나쁘겠지요. 이런 이유로 건축계 내외에 분명히 존재하는 건축사나 건축주,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대주의적 현상과 이에 반발하는 국수주의적 갈등을 다뤄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 직시하고 정확한 정체성이 세워지길 기대합니다.

01 한국 건축의 사대주의와 국수주의 현상
Phenomena of Korean architecture, ‘flunkeyism’ and ‘nationalism’

한국 건축의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과연 존재하는가? 실제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명확하게 누군가가 주도하는 현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회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건축철학

다만, 누구하나 국수주의자로 건축을 주장하거나 사대주의자로 건축을 주장한 적이 없다.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이해의 첫 단계다.
사대주의(事大主義; 영어: flunkyism)는 자율적이지 못하고 자국보다 강한 국가, 세력에 복종하거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주의를 말한다. 사대주의는 20세기 초반에 국수주의자들이 크고 강한 국가에게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당시의 지배층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위키피디아> 재미있는 것이 국수주의자들이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수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극단적인 국가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타민족·타국가에 대하여 배타적·초월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적인 실례로 일본의 메이지[明治] 이후의 국수보존사상(國粹保存思想),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을 들 수 있다.<두산백과>두 가지 모두 비교해보면 상대적이다. 흑과 백처럼 상대가 있어야 강조되는 생각인 점이다. 그리고 문제는 둘 다 극단적 형태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 조금 희석하면 긍정적 단어가 된다. 사대주의를 부드럽게 다듬으면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의 장점을 본받자”라는 것이고 국수주의를 희석하면 “스스
로의 장점에 자부심을 갖자”가 된다.
즉, 전통건축의 맥이 끊어지고 현대 건축으로 급격하게 진입한 한국 건축은 어쩔 수 없이 이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함유한 채 진화되어 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낸 사상적 성과나 정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 일본 식민시대는 조선인은 건축의 정점인 설계를 차지할 수 없었다. 건축설계는 자체적인 경제적 성과가 낮은 대신에 머리에 해당되는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지배하는 식민지 국가에서 조선인에게 설계의 지위를 줄 수 없었다. 일본 식민시대에 조선인이 건축사가 된다는 것은 거의 드물었다. 손에 헤아릴 정도의 숫자로 판검사나 변호사 숫자보다 더 적었다. 해방이후 산업의 속도는 건축설계의 철학적 성장을 기다리지 못했고, 기능적 요건이라도 공급되기 원했다. 이는 성찰과 깊이를 담아내는 숙성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스스로의 건축철학을 만들지 못한 채 경제논리에 빨려 들어가는 종속적 상황이 되어 버렸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후 나타난 사회 현상에 건축도 매일반이어서 새로운 강대국이면서 동경의 대상인 서구 문화는 빈곤한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대중적으로 맹목적인 추종분위기를 만들었다. 극단적인 자학적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의 건축과 공예 등 전통적 산물이 부정적 대상이 되었다.
이 근저에는 식민주의 시대 일본에 의한 ‘열등교육’이 한몫했다. 서구 닮기의 끝판왕은 신을 신고 실내에 들어와 생활하는 주택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관습과 문화는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주택은 확장되지 못하고 바로 사라져갔다.
1960년대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데, 절대적 정치권력에 의해서 나타난 국수주의적 경향이다. 실제 대중적 인식은 서구에 대한 동경이었지만, 정치권력이 후원하고 지지한 것은 ‘한국적’이라는 테마였다. 많은 국가 건축은 전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 결과는 콘크리트 건물로 된 한옥 형태의 건축물들의 탄생이었다. 지금도 현충원 입구의 콘크리트 성형 건물은 한옥의 원형을 보여준다. 경복궁의 한 복판에 있는 민속박물관은 이런 국가적 테마에 철저하게 호응한 ‘전통양식’의 최고를 보여주었다.
흔히 농담처럼 성형외과 가서 눈썹은 누구처럼, 눈은 누구처럼, 코는 누구처럼 해서 조립하는 것처럼 경복궁 민속 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요소들을 집합해서 만든 건축이다. 그런데 이를 국수주의로 볼 수 있을까?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민속박물관 건축사가 우리 건축의 지나친 자긍심으로 했다기보다는 현상설계 요건에 따른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60년대 정치 권력자들은 왜 이런 건축을 요구했을까? 그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나서? 우리 민족의 문화가 우수하다고 확신해서?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일본의 1930∼40년대 건축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다. 1930∼40년대 일본은 서구와 경쟁하던 시점이었고, 개화기 이후 서구 문화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시기였다. 19세기 미국에 의해 강제 개방된 이후 이들은 탈아입국의 자세로 산업화에 매진했다. 메이지유신이라는 왕권 강화 시대는 사회적으로는 모든 것을 바꾸자라는 구호로 대중을 설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태도가 열등감을 조장할 수 있었다. 더욱이 식민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열등감있는 지배국가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식민지를 확보한 제국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극단적 자부심 강조는 국수주의적 현상을 이끌어 냈다. 더구나 3,40년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작된 서구와 전쟁을 해야 했다. 당연히 국가적 우수함에 눈을 돌렸고, 3,40년대 일본 건축은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 냈다. 건축적으로는 과도기적 현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실험이었다. 서구적 건축 원형과 일본의 전통 건축을 섞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1960년대 국가 권력에 의해 주도된 건축은 바로 일본의 3,40년대 국가 건축과 맥이 유사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상황과 맞물려 이들의 지배 논리중 하나는 산업화 시대 일본과 마찬가지로 ‘서구를 닮자’와 ‘우리도 우수하다’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강조해야 했다. 더구나 부족한 고도 산업 구조는 빠른 속도의 변화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진행된 성과를 보면 상당한 성공과 결과를 만들어 냈다. 건축 또한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동시에 진행된 결과였다. 문제는 이 맥락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된다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한 건축 논리

1980년대 우리 건축계에 한바탕 이슈가 된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단어였다. 모더니즘이 학문적으로나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철학 논쟁에 휩싸인 것이다. 1967년도 느닷없이 나타난 김수근 건축의 부여 박물관 왜색 논쟁은 아노미 상태의 한국 건축계에 일어난 최초의 학문적 현상이었다. 어쩌면 이후에도 없는 반가운 논쟁이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당시의 자료를 보면 재미있었다. 어떤 건축도 이보다 치열하게 우리사회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후도 이런 논쟁은 없었다. 다만 이 논쟁의 근저를 보면 서구건축철학에 기반하면서 국수주의적 시각을 가진 일본 사대주의에 대한 경계가 보인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점은 이런 건강한 학문적 논쟁이 더 진행되지 못한 점이다. 그리고 1980년대 우리스스로 정립하지 못한 모더니즘 상태였는데, 느닷없이 해외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해버렸다. 그리고 건축언론계를 장악했다. 우리에게 나타난 적이 없던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회 현상은 10년 뒤 1990년대에 비로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사회현상에 대해서 미리 논쟁한 거나 다름 없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미 산업화를 이룬 서구의 모더니즘에 대한 부작용과 대안에 따른 여러 가지 철학적 논쟁이었는데, 1990년대도 여전히 포디즘의 대량 생산과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국가에서 미리 이야기 한 셈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수입된 선진 철학 논쟁’은 건축계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이어서 수입된 건축 철학은 ‘해체주의’였고 이를 끝으로 철학적 논쟁이 건축계 주류언론에서 사라져 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20세기 초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케치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데스틸 운동처럼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의 시각적 건축 표현이 국내 건축에 반영된 점이다. 이또한 우리 스스로의 건축 철학 부재가 가져온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체로 후발 산업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19세기 개항이후 일본은 철저한 서구닮기를 시도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일본 제국호텔 건축과정이다. 19세기 산업화에 따라 국가적으로 호텔 건축이 시도되는데, 영입한 독일 건축사는 일본적 전통을 가미한 호텔 디자인을 선 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 권력자들이 요구한 것은 일본적 전통이 완전히 배제된 ‘멋지고 우수한’ 서구 건축이었다. 독일 건축사의 작품은 탈락되고, 철저하게 유럽 건축을 솜털까지 재현한 일본 건축사 와타나베 유즈루(渡辺譲)의 설계가 채택되고 지어졌다. 서구식 옷을 입고, 서구 건축에서 서구식 음식과 음악을 들으며 서구와 동등한 성장을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그들과 경쟁이 치열해 지자, 이번에는 자기 자신들의 우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스러운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선택된 호텔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의해서 재탄생된 ‘일본스러운 서구 현대 건축’으로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일본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곳곳에 찬미된 서양건축인 것이다.
1890년에 첫 번째 제국호텔은 1920년대 두 번째 제국호텔로 바뀌었는데, 30년 만에 바뀐 극적인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건축관을 통한 ‘국수주의와 사대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쉽게 바뀌는 태도는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철학적 바탕이 부족한 것을증명한다.
1980년에서 90년대 걸친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우리 건축계에서 체득하고 경험해서 나온 논쟁이 아니라, 해외에 대한 갈증과 열망에 의한 지적 유희적 경향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건축에 대한 치열한 공부가 전개되었다. 이는 건축계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에 걸친 논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한 시선이었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한국적’과 동시에 사용되면서 시각화를 시도했다. 고학력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민족’은 한때 운동권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잠재적으로 우리 문화와 자산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만든 저변 확대의 계기가 되었다.
문학이나 철학 등 타 장르에서 치열하게 확대되면서 논의되었던 주제였지만, 건축계에서는 오히려 90년대 이후 논의의 주제에서 점점 사라졌다.

부러운 일본 건축, 그리고 사라진 논쟁의 한국건축

이웃 일본의 존재는 현대화한 우리에게 까다로운 국가다. 특히 건축은 그렇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식민시대는 거의 100년을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알게 모르게 일본풍은 건축계도 잠식하고 지배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본의 과도기는 1950~60년대 앙팡테리블 같은 젊은 건축계 모험자들에 의해서 메타볼리즘이라는 아마추어 실험이 나타났다. 한번 새롭게 만들어진 스스로의 철학은 점점 새롭고 다양한 시선을 유지시키면서 일본만의 건축을 등장시켰다. 세월이 지나 현재의 일본 건축은 확실히 서구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안하면서도 가볍고, 엄격하지 않으면서 유니크한 형태를 등장시키면서 분화에 분화를 거듭한 건축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를 인정하고 구매하는 해외 열혈 소비자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당장 우리나라 대기업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도 켄코군마에게 의뢰한 건축 작품이다. 우리에게 친밀한 척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또 팔만 대장경을 운운하지만 가시적 결과는 21세기 일본 건축이다.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우리 스스로의 건축 철학적 성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새로운 트렌드에 몰입되어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서구 철학이나 과학적 사고가 주제어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장 경제의 용어인 ‘마케팅’이 은근히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철학적 바탕이 될 만한 메타볼리즘 같은 주제어 없이 달려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변화의 속도는 상당하다. 마치 1890년 서양식 건축이 30년 만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으로 트랜스폼이 된 것처럼 바뀌고 있다. 뷔페식당의 다양한 음식처럼 한국의 건축 소비자들은 골라먹는 건축 부페를 만끽하고 있다.
이젠 사대주의나 국수주의를 논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건축 소비자들이 골라 먹는 건축 부페의 저변에는 ‘지금 세계에서 유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선택할 뿐이다. 처절한 생존에 살아남아야 할 건축사들은 이를 열심히 공급하고 있다. 너무 슬픈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은 건축에서 우리 스스로에 대한 시각화 노력으로 하나씩 자라고 있는 것은 느껴진다. 그것이 조금 더 자라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는 월간 건축사의 작품 코너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보면 이런 싹들이 보인다. 이번 경기도는 가장 왕성한 대표주자 작품들이 올라와 있어 우리 건축계가 주목해서 보면 좋겠다. 해외에서 공부한 적이 없이 스스로 자란(自生한) 국내 건축사의 작품으로 독창적 표현이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싹들이 ‘국수주의나 사대주의’를 극복하는 ‘우리 건축’을 향한 자람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 본지 편집국장·건축사NCS LAB·서울시 공공건축가

,

8월 02. 세계화의 그늘과 정체성

건축담론

02 세계화의 그늘과 정체성
The other side of the globalization

세계화의 그늘과 국수주의

지난 5월 제주 국제공항에 예멘인들이 대거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1만여 명의 사상자, 27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한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로 왔다. 이들이 몰리면서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는데, 71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참여하여 최근 정부에서 공개적으로 답변에 나서기도 했다.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문화 마찰, 자국민의 안전 우려, 경제문제 등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낯선 타자에게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이다. 외적 대상이 있는 공포와 달리 불안은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 것인데(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의 대상이 있다면, 그건 현존재 자신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졌다가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불안의 근원이다.), 이를 바깥의 타자에게로 이전하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문화 마찰, 치안, 경제문제는 한국 내부의 문제임에도, 마치 난민 탓인 양 전이되고 오인된다. 이런 불안은 곧바로 혐오의 시선, 차별의 시선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또한, 한국은 바야흐로 국제화 사회에 본격 진입했다는 점에서 이런 국수주의적 흐름은 시대착오적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규모는 어느덧 200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다문화가정은 2010년 인구조사자료에 따르면 이미 38만여 가구에 달한다. 지금은 두 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는 곧 3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차이나타운이나 외국인 거리 등 이국 문화를 상품화하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진행중이다. 더 크게 보면,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문화주의가 널리 장려된다. 일견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정착을 돕는다는 이유로 타문화의 현존에 조건을 붙이거나, 동화를 은연중 강요하기도 하면서 진정한 다양성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국성을 고민하고, 민족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도리어 이방인들에게는 억지로 동화되어야 할 것으로 차이를 억압하게 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까? 물론, 지난날 전통에 대한 고취나 발굴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외래의 강력한 식민적 힘에 맞서는 지지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를 맞아 경제발전에 따른 이민의 유입과 한류의 수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수주의와 문화의 자긍심 고취를 넘어, 여러 문화들 간의 차이와 생성을 고민할 시점은 아닐까.

사대주의와 유행 추종

한편으로는, 관 주도로 신한옥이라는 복고적 움직임이 생겨났다. 관에서 주도하는 일들이 대개 그렇지만, 미리 계획된 목표와 틀 내에서, 전통건축계에 속한 사람들만 참여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건축사의 전통에 대한 해석과 창작성은 위축되고, 문화의 생성적 힘은 퇴행하게 되며, 과거 건축에 대한 복고적 재현이 주가 된다고 볼 때, 현대 생활과 역사적 경험이 담긴 삶의 새로운 모색이 아니라 골동품 애호적 복고취향의 향수만 자극할 우려도 크다.

다른 한편으로, 외래의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유행으로 받아들여 피상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한국 건축에서 오래된 일이자, 여전히 만연한 현상이다. DDP같은 국제지명공모전에서 한국 건축사는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았다는 논란도 있었다. 다수의 공모전에서 외국의 유명 건축사의 작품을 추종 또는 참조하거나 심지어 도용을 의심케 하는 사례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범람하는 이미지와 정보가 만들어내는 역효과 탓이 크다.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세계의 건축 흐름을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서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단편적으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철학자 이정우는 『개념-뿌리들』의 서문에서, 한국 사회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두드러진 담론적·문화적 현상을 “이미지의 범람과 개념의 연성화”로 꼽은 바 있다. 이정우에 따르면, 강렬하고 즉각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감성을 직접 자극해 쾌감을 주지만, 차분히 사유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힘은 개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설계구상단계부터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개념이 들어설 틈이 없다. 본질적인 것을 찾아 깊이 생각하며 매달리는 순수한 열정 대신, 당장 유행하는 이미지만을 좇아 헤맬 뿐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정체성 논란이 사라진 이유는 단지 유행이 지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을 살피고 사유할 힘이 없다면, 더 큰 힘을 가진 자를 따르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날 도리는 없다. 이런 점에서 국수주의와 사대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현실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바라보고 고민할 사유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국수주의는 현실을 외면하며 오래된 과거의 영광에 기대는 것이고, 사대주의는 현실을 주도적으로 고민할 힘이 없어 맹목적으로 외래의 힘에 기대는 태도다. 외래의 좋은 사조는 문제의 해답이나 출구가 아니라 입구일뿐이다. 과거의 좋은 선례 역시 현실의 문제를 반추할 뿐 곧바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전통논쟁에서 한국성 담론으로

전통 계승 논쟁은 196, 70년대 형태를 중심으로 하는 흐름과 80년대 이후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흐름을 대표하는 건축은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과 이희태의 <순교복자성당>을 꼽을 수 있고, 후자의 흐름을 대표하는 건축은 김수근의 <공간사옥>을 들 수 있다. 전자의 흐름은 최근 김효만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나 외면받아 온 것이 사실이고, 후자의 흐름은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우경국 등 이른바 4.3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이들은 서구의 과학정신이 이룩한 물질의 풍요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 전통건축에서 유추한, ‘비움’이나 ‘없음’, ‘빈자의 미학’을 찾아 나섰다. 주로 현대 모더니즘 건축을 수용하되, 한국 전통의 정신적 가치나 문화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었다. 서구의 기술문명에 대한 대안을 전통적 사고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서양은 물질문명, 동양은 정신문명이라는 식의 단순 이분법에 갇혀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형태와 공간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는
김효만의 최근 작품은 주목할 만 하다.

‘한국성’ 논의는 손쉽게 전통논쟁의 뒤를 이어받았다. 한국성에 대한 모색은 김성우의 「동서양의 세계관과 건축관」(『건축과환경』, 0001~0101)과 임석재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1999년), 최근 이상헌의 『한국 건축의 정체성』(미메시스, 2017년)에 이르기까지 주로 동, 서양 미학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건축이라는 학제 자체가 서양의 산물인 만큼, 한국 또는 동양에서는 유사한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탓에 이론화의 근본적 어려움이 있다. 서양의 현대적 이론체계에 비추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한국(또는 동양)의 이론을 구성해 내야하며, 자칫 오리엔탈리즘의 덫에 걸려드는 위험도 피해야 한다. 게다가, 비교연구는 쉬운 이해를 도모하게 하지만, 도식적으로 흘러 단순화될 수 있다. 아직까진 비교연구가 나열적인 사례 비교에 머물러 개념화로까지 진척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전통건축을 전통적인 동양사상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현대의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안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역시 완전히 현대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새롭게 구성해내든, 현대의 언어로 번안을 해내든 모두 지적 모험과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미학이나 한국미학의 성과와 함께 건축사의 창조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통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미완의 해석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전통 해석 속에 있는 번역불가능성, 해석불가능성이라는 구성적 결여야말로 새로운 해석과 창조가 가능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이자 지역적 특성인 한국성은 고유한 소재이자 독창적 작품 세계를 통해 늘 새롭게 개척되어야 할 보고와도 같다. 그 길에 정해진 방식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그 길이 쉽지 않았다면 최소한 우리에겐 앞으로의 오류를 검증해줄 역사적 경험이 쌓였다.

한국성 탐구는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성 모색의 이면에는 한국식 근대성 또는 대안적 근대성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은 근대성의 근본적 의미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자체란 것을 간과한다. 마치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가 문화의 다양성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단순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근대 포디즘 생산체제 아래서는 다원주의에 대한 요구가 대안으로 보였지만, 다품종소량생산 체계를 의미하는 포스트포디즘 시대에선 다원주의야말로 개별시장을 위한 맞춤 생산방식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속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대안적 모더니티 역시 불가능하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한국성에 대한 모색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극복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큰 함정은 한국성이라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로써 망각되는 것은 문화란 동일하다기보다는 애초부터 혼종적이며 이질적이라는 사실과 혼종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비판적 지역주의와 탈식민주의의 교훈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이지도 정적인 것도 아니다. 반대로, 정체성은 복수적이며 항상 변하고, 심지어 다중적이기까지 하다. 라캉이 거울 단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듯이, 인간의 자아가 형성되는 것은 거울상을 통해 인지된 타자의 이미지를 통해서이다. 아기는 타자의 이미지에 동일시되면서도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데, 거울상에 비친 자신의 온전한 모습과 아직 미숙한자기 신체 사이에서 어떤 불일치와 결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소외의 결과, 라캉이 ‘이상적자아’라고 부른 타자의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에 사로잡힌다. 문제는, 이런 갑옷과도 같은 견고한 자아의 틀을 깨고 나와야만 언어와 문화의 세계(상징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징계로 진입하고 난 후에도 주체는 여전히 내부에 결여를 간직한 불안정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성 논의나 정체성 모색은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타당하다. 케네스 프램턴이 주창한 비판적 지역주의와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초 케네스 프램턴이 주창한 ‘비판적 지역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미치고 있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램턴은 후기자본주의에 영합한 모더니즘 건축과 과거를 답습한 지역주의 건축 모두를 비판하며 장소성, 텍토닉,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촉각적인 것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의 기술과 재료를 수용하되, 복고적인 것으로의 퇴행을 경고한다. 이처럼, 현대 건축 언어와 기술적 성과를 수용하되,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비판적 지역주의를 제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지역주의가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난 주변적 실천에 대한 모색 속에 나왔다는 것이다. 주류를 추종하거나 과거의 권위에 기대는 것과는 무관하다. 주류의 흐름을 의문시하고 이에 대항하는 힘이야말로 문화가 존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한국성 논의도 형태와 추상적 개념 또는 공간을 넘
어 텍토닉과 장소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대표적 이론가인 호미 바바에 따르면, 어떤 문화도 다른 문화의 영향 바깥에 놓여 있는 순수한 존재일 수 없다. 애초 새로운 문화는 문화들 간의 경계선에서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고유한 문화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며, 현대에 살아가는 현재의 서구화된 문화와의 혼종화에서 문화의 생성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바는 문화차이를 중시하는데, 차이는 모든 문화의 고유한 일부라는 사실과 어떤 문화도 동질적이지 않고 이질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호미 바바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와 식민화와 불가피하게 연결되는 근대화를 다시 점검해볼 것을 요구한다. 자본주의화, 식민화, 근대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배는 유럽과 미국의 권력, 그리고 근대 진보의 거대 서사를 형성해낸 힘이다. 한국성 담론과 정체성의 모색이, 자본의 논리와 물질문명이 빚어내는 현대의 부작용을 극복할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나 상품으로의 전락을 피할 도리가 없다. 더구나 다문화주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와 나란히 진행되는 기획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를 단지 획일화하는 힘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사태를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경험을 겪은 우리는 이를 섬세하게 바라봐야 한다. 조선예술이 체계적으로 조사되고 기록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으며, 조선예술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설파한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무네요시였다. 그가 한국의 미를 존중하고 찬양했던 이면에는 조선의 역사가 핍박의 역사로 점철된 슬픔의 민족이며 그 애상이 선의 예술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본, 동정을 가장한 다분히 편파적이며 의뭉스러운 시선이 깔려 있었다. 최근 들어,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상이 일본 제국주의와 공모 관계에 있었고, 비극적인 식민의 현실을 예술로 가리거나,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혹독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식민화의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는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를 맞아 경제발전에 따른 이민의 유입과 한류의 수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겪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질적 문화들이 함께 공존을 모색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이를 새로운 문화의 생성으로 전환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가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하는 길을 막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의 오리엔탈리즘조차 조심히 살펴야 할 때가 왔다.

 

글. 이경창 Lee, Kyoungchang ┃ 건축비평가

,

파라메트릭 디자인ⅩⅪ

Parametric DesignⅩⅪ

지난 회까지 종이접기 시뮬레이션의 각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이번회에서는 실질적인 시뮬레이션을 위해 지금까지 정의해온 각 구성요소들을 정리하고 서로 연결하여 종이 접히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시각화 하기 위한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번회에서 살펴볼 내용은 아래 그림의 파란색 부분에 해당합니다 (Figure 1).

Figure 1

Applying Folding Rules

이제 Kangaroo의 component들을 사용하여 simulation을 진행하기 위한 자료의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Kangaroo에서 사용할 component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Spring : 접혀서는 안돼는 부분들을 평평하게 유지시켜주기 위해 simulation이 진행되는 동안 1) 각 사각형및 삼각형의 변의 길이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2) 사각형의 경우는 대각선의 길이도 동일하게 유지 되어야 합니다 (Figure 2). Spring component의 두 가지 parameter들만을 사용하게 되는데요, 첫번째 connection은 각 변과 대각선을 나타내는 선분들을, 그리고 두번째 rest length에는 각각의 선분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길이값을 연결해 주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길이를 따로 구할필요 없이 원래의 선분들을 연결하는 것 만으로도 이를 충족합니다. 두개의 spring은 각각 변의길이와 대각선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2. Hinge : 종이가 접히는 것을 simulate하기 위한 핵심적인 component입니다. 네개의 point input을 정해진 순서로 연결하고 rest angle을 추가해 줍니다. Strength는 spring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정하는 숫자로 반응이 얼마나 빠르게 평형상태에 도달할지를 결정해 줍니다(Figure 3).
3. Planarize : 평활도를 유지시켜주기 위한 추가적인 안전장치이며 접히지 말아야 할 면의 꼭지점들을 연결해 줍니다(Figure 4).

Figure 2

Figure 3

Figure 4

Assembling

이제 Kangaroo를 사용하여simulation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Grasshopper에서 정의된 모든 Kangaroo action들을 Kangaroo component의 Force objects에 연결하고 base geometry로부터 만들어진 각 면들을 대표하는 curve들을 geometry 에 연결합니다. 연속적인 animation을 생성하기 위해서 timer component를 Kangaroo component에 연결합니다. Simulation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button을 누르면
simulation 이 시작됩니다 (Figure 5).

Figure 5

Figure 6

Timer에서 설정한 시간의 간격을 기준으로 하나의 iteration이 실행이 되며 이의 반복을 통해 정해진 패턴에 의해 종이들이 접혀나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아래의 Figure 6 은 연속적인 동영상의 캡춰로써 평평한 정사각형 모듈로 구성된 각각의 patch들이 입력된 패턴 종류별로 접혀가면서 깊이를 가지는 연속된 면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글. 성우제 Sung, Woojae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www.woojsung.com, www.selective-amplification.net

,

태국의 더 나카 푸켓

The Naka Phuket, Thailand

DBALP – 두앙릿 분낙
Architect : DBALP(Duangrit Bunnag Architect Limited) _ Duangrit Bunnag

그림 1) 더 나카 푸켓의 전경. DBALP의 두앙릿 분낙이 설계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태국 푸켓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리조트 더 나카 푸켓-The Naka Phuket- 이다. 태국의 저명한 건축사인 DBALP의 두앙릿 분낙-Duangrit Bunnag- 의 작품이다. 그의 건축은 단순한 박스를 가지고 비율 조절을 하면서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오묘한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거나 안 밖을 드나드는 공간을 만들기로 꽤 유명하다.

그림 2) 더 나카 푸켓의 전경. 앞에는 바다를, 뒤로는 산을 끼고 있다.

대지 및 지형 형세

대부분의 휴양지 및 리조트가 그렇듯이 ‘더 나카 푸켓’은 앞에는 바다를, 뒤로는 산을 끼고 있다. 그 지형을 이용하여 단순한 박스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남쪽으로는 바다를 향하고 그 뷰를 모든 유닛들이 향하게 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서 남향 유닛, 남서향 유닛, 남동향 유닛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세 개의 향을 달리하는 분류는 유닛별 배치의 시작이자 ‘박스가 놓여지기 위한’ 바둑판(건축물이 올라설 대지)를 주변의 자연환경에 맞추다보니 나온 결과이다.

유닛의 설계

박스 하나는 하나의 방(유닛)을 의미하는데, 이는 현대건축이 추구해 열려진 평면-open plan- 을 가지고 침실, 거실, 옷장, 화장실 등이 있다. 전체 외벽은 모두 온통 유리로 둘러싸여져 있어, 바로 측면에 위치하고 있는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 과 앞쪽에 훤칠하게 나와 있는 침실에서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각각의 방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쓴 건축적 장치들은 다음과 같다.
유리 박스는 전체적으로 투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시야를 트이게 하면서 박스의 배치를 일렬로 길게 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형의 자연스러운 형세에 맞춰 지그재그로 어긋나도록 설계됐다. 비규칙적인 배치는 유리 박스의 시야를 서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지형 형세를 따라가면서 토목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초기 공사비 측면에서 이득을 보았을 것이고, 자연스러운 지형에 맞는 장소성을 형성한다는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리 박스의 측면은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해 콘크리트 벽체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마스터플랜-Masterplan- 의 뼈대를 잡는 큰 그리드의 구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 3)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지형에 맞춰서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됐다.

구조 및 토목

산을 깎아서 만드는 공사는 항상 초기 투자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막대한 토목 공사 비용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것이 건축주에게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의 초기 콘셉트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리조트는 한 산등성이를 깎아서 약 100개의 방이 있는 리조트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지형의 형세를 따라 지형을 최대한으로 보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스의 형상을 위한 골조-기둥 및 보- 는 기본적으로 철골조로써 모든 부재의 사이즈를 최소한으로 줄여 가벼워 보이도록 했다.

그림 4) 산등성이를 깎아서 전체의 리조트가 설계되었다.

그림 5) 6m가 넘는 캔틸레버 보는 100개 유닛에 촘촘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준다.

유리 박스들이 대지에 성냥박스처럼 쌓여진 느낌이 들도록 하는 가장 눈에 띄는 건축적 요소는 긴 캔틸레버-cantilever-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6m가 넘는 캔틸레버 형태는 100개 유닛이 촘촘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가지게 하며 매스가 마치 지형에 자연스럽게 올라선 듯한 느낌을 준다. 구조는 철골 기둥과 H빔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비이렌디일 트러스-vierendeel truss: 종재(縱材)와 현재(弦材)가 조인트로 고정되고, 대각
(對角)의 구재(材)가 없는 트러스- 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부재의 사이즈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하부 쪽의 콘크리트 타설 벽체에 일부 매립하면서 박스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 6) 지형에 자연스럽게 올라선 듯한 느낌을 준다.

내외부 마감 및 건축적 디테일

지붕의 엣지 빔-Edge Beam- 은 날렵한 형태를 유지하여 날렵해 보이기도 하며, 지붕의 인조잔디 마감쪽과 연결되는 부분은 일부가 나무로 마감됐다. 이외의 대부분 구조체들은 나무 재질로 마감해 전체적으로 박스의 직각 라인을 돋보이게 한다.

그림 7) 대부분 구조체들은 나무 재질로 마감되어 있다.

외부에서 건축물과 자연을 함께 체험하는 것도 중요했다. 지붕의 디테일을 처리할 때, 배수를 지붕 외부에서 선홈통을 통해서 빼는 것이 아니라 내부 쪽의 배수관을 통해 하부의 PIT층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구배를 안쪽으로 두었기 때문에, 외관에서 매스의 날카로운 디테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림 8) 지붕 배수를 내부로 처리하여 디테일을 살렸다.

그림 9) 벽체는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다.

유리박스 내부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디자인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벽은 검은 대리석, 바닥은 짙은 색의 티크목재-teak wood- , 천정은 흰색 석고보드로 일관되게 적용했다. 외장 재료에서도 인피니티 풀 앞 쪽의 바닥마감은 대리석, 인피니티 풀의 안쪽은 타일, 그리고 전체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벽체는 노출 콘크리트에 약간의 면보수가 되어있다.

그림 10) 더 나카 푸켓의 인피니티 풀

조경으로는 잔디, 야자수, 그리고 잎이 두꺼운 현지 식재 등을 이용했다. 앞쪽으로는 바다, 뒤쪽으로는 산이 마주하고 있어, 나무들의 색과 향기들로 자연을 만끽하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넓은 부지와 건축물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건축적 공간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산을 등에 업은 격자 모양의 투명한 유리박스들은 왠지 모르게, 서로 안의 대조성 안에서 자연을 안는 것 같다.

그림 11) 잔디, 야자수, 그리고 잎이 두꺼운 현지 식재로 조경을 이루고 있다.

 

글. 이지현 Lee, Jihyun
jihyun.lee815@gmail.com

,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 Sevilla, Spain

1 세비야 대성당의 전체모습 – 좌측으로 히랄다 탑이 유명한 풍향계와 함께 보인다. 2~5 세비야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내부 모습들

세비야(Seville)는 스페인의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예술, 문화, 금융의 중심 도시이며 세비야 주의 주도이다. 과달키비르 강이 흐르는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다음이다.

세비야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자 유럽의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도들이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은 성당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모스크였던 시절의 자취들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랄다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으로 세비야 대성당은 극도의 호화찬란함과 예술성으로 유명하다.

1401년 건축을 시작하여 1519년 완공한 세비야 대성당은 가장 규모가 큰 고딕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모스크를 파괴하고 후에 세운 세비야(Seville) 대성당(15~16세기)은 스페인 후기 고딕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각형의 플랜에 의한 안길이 140미터, 폭 90미터인 세계 최대의 고딕 성당 건축이다.

 

글. 박무귀 Park, Mookwi • KIRA • 건축사사무소 동림 대표, 사진작가(http://jjphoto.co.kr _ 진주성 포토갤러리)

,

이 여름, ‘시간을 달리는 남자’에게 배달시키고 싶은 것

During this summer, I want to deliver it to ‘the man who runs the time’

집을 나서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창 밖의 쨍한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은 111년 기상청 관측이래 최고로 뜨거운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을 열자 찜질방에 들어선 듯한 열기가 훅 끼친다. 양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보도블록에 전기장판을 깔아놓은 뒤 온도를 최고로 올려놓은 것 같다. 혹시 상상력이 더위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잠깐 지금이 한겨울이라고 생각해 봤다.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파고드는 한기를 막을 수 없어 잔뜩 웅크리고 걷는 나. 마른 잎 한 장 달려있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들. 얼어붙은 빙판길에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스러운 발걸음. 찌푸린 하늘에서 팔랑팔랑 떨어지는 눈송이… 그렇게 추운 겨울 날 도로가 오늘처럼 따뜻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빈약한 상상은 단 1분의 시원함도 가져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커다란 택배 트럭 두 대가 지나쳐 간다. 차에서 핫팩을 껴안은 것 같은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트럭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가서 멈추고 택배기사가 택배를 내린다. 내가 어제 주문한 물건을 싣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양산을 쓰고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 택배기사분들은 얼마나 더울까? 택배기사도 야외의 주차관리요원이나 불 옆에서 일하는 요리사, 소방관이나 산악구조대원 못지 않은 한여름의 극한 직업이 틀림없다.
지난 6월 전파를 탄 G마켓의 영상캠페인을 한 번 보자. 영상은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하는 택배기사를 따라가며 그의 일상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배달할 짐을 들고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며 뛰는 남자. 아슬아슬하게 길을 건너고, 온 몸을 가리는 큰 집을 세 개씩 쌓아서 들고 가는 남자.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 승강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에 2리터 들이 생수병 12개를 등에 지고 계단을 오르는 남자. 트럭 안에서 김밥을 먹으려다가 걸려오는 전화에 도로 내려놓는 남자. 매일같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는 택배기사가 영상 속에 있다.

G마켓_온라인 광고_스마일 도시락 캠페인_2018_스토리보드①

Na)    시간을 달리는 남자

         택배기사님은

         하루 평균 13시간 이상 일합니다.

         매일 300개의 택배를 전달하기 위해 98km를 이동하고

         200통의 전화를 받으며

         고객들을 만나죠.

         늘 시간에 쫓겨 하루 두 끼를

         단 15분만에 해결해야 하는 택배기사님.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따뜻한 고객의 한 마디 덕분입니다.

         이제 고객의 응원을 G마켓이 응원합니다.

         택배기사님 스마일 도시락 드세요.

         G마켓에 응원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응원메시지는 택배기사님의

         든든한 도시락이 됩니다.

         택배기사님 고맙습니다.

(G마켓_온라인 광고_스마일 도시락 캠페인_2018_카피)

택배기사의 분주하고 힘겨운 노동 뒤에 이어지는 영상은 택배를 받는 고객들이 보낸 감사의 메시지이다.

‘더운데 고생 많으세요. 늘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기사님.’

‘기사님, 저희 동네 오래오래 맡아 주세요.’

‘바쁘시더라도 식사는 거르지 마시길…’

이런 메시지들은 실제 택배를 받은 고객이 작성해서 온라인으로 보낸 것들이다. 무인 택배함에도 택배기사의 끼니를 걱정하고 감사를 전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메시지를 보고 고객이 보낸 쿠폰으로 도시락을 찾아 먹는 택배기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약 1분40초 길이로 제작된 이 영상은 G마켓이 최근 진행한 ‘스마일 도시락’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인터넷 광고다. 대행사인 제일기획의 소개에 따르면 ‘스마일 도시락’ 캠페인은 고객들이 특정 택배기사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온라인으로 작성해서 전송하는 고객 참여형 캠페인이다. G마켓은 고객이 보낸 메시지에 편의점 도시락 모바일 상품권을 더해 택배기사에게 선물한다. 이 영상은 유튜브 공개 1달만에 조회수 1,100만건을 넘기며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G마켓_온라인 광고_스마일 도시락 캠페인_2018_스토리보드②

G마켓은 2014년과 2015년에도 택배기사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광고 영상으로 만들어 홍보에 활용했다. 2014년에 진행된 ‘택배기사님, 택배왔어요.’이벤트는 추석 직전에 진행되었다. G마켓은 택배기사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해 전국의 몇 지역을 뽑아 택배를 발송했다. 그리고 그 택배가 도착하는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택배기사가 차에서 내려 배달하러 간 사이에, 택배트럭에 커다란 초록색 리본을 달아 두었다. 차량으로 돌아온 택배기사는 리본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데, 숨어 있던 이벤트 진행요원들이 깜짝 등장해 코믹한 응원 댄스를 선보이고 선물을 전달했다. 택배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쑥스러워 하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보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따스한 풍경이다.

G마켓_온라인 광고_택배기사님, 택배왔어요_2014_스토리보드

Na)    오늘도 쉴 틈 없이 계단을 뛰어오르고

         복잡한 골목을 누빕니다.

         하루 평균 200개가 넘는 상자들,

         그 상자에 담긴 마음을 전해주시느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택배기사님들의 마음은 바쁘기만 합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불어난 배송물량 때문에

         바쁘게 달리시는 그 분들께

         G마켓이 감사의 마음을 미리 전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디어를 짜고 회의를 하고 미리 선물도 준비하고

         우리가 준비한 장소로

         기사님들을 모시기 위한 택배도 미리 보냈습니다.

         드디어 추석 3주 전

         택배기사님, 택배 왔어요!

         고맙다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

         사실 우리가 드리고 싶었던 말입니다.

         택배기사님, 언제나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G마켓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막) 전국 4만 5천 명의 택배기사님이

         일년 동안 15억 개의 택배를 전해주십니다.

         우리의 따뜻한 한마디로

         택배기사님들께 힘을 드리는 건 어떨까요?

(G마켓_온라인 광고_택배기사님, 택배왔어요_2014_카피)

이 영상을 보기 전에는 택배를 가져다 주는 분들이 택배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명절이면 하루에도 수 백 개가 넘는 선물 상자를 나르는 분들이야말로 선물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광고 카피를 자세히 보면 2014년에 하루 200개이던 배송 물량이 4년 사이에 300개로 늘었다. 그러니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도 따라서 늘어났을 것이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하고, 밤 11시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편리한 택배서비스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은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내가 주문한 택배를 무인택배함에 두고 간다는 문자가 왔다. 택배기사의 휴대폰으로 보낸 문자이다. ‘고맙습니다.’라고 답을 보냈다.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대개는 무인함으로 택배를 받게 되니 마음뿐이다. 고마운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을까?
조금 전보다 온도가 한 칸 더 올라간 전기장판 길을 걸으며 다시 실현 불가능한 상상의 날개를 편다. 지금의 열기를 상자에 담아 내년 소한에 맞추어 택배로 보내는 거다. 한파경보가 발령되고 체감온도가 영하 17도인 어느 날 더위가 가득 들어있는 그 택배 상자를 풀어 그 온기로 겨울을 따뜻하게 덥히는 거다. 그리고 내년 한파가 오면 잊지 말고 얼음장 같은 추위를 택배상자에 담아 폭염의 8월로 보내야지. 내년 여름의 더위를 시원하게 식힐 수 있도록! 고객을 위해 하루 13시간이나 일하는 대한민국의 택배기사님들이라면 무엇이든 빠르고 안전하게 잘 배달해 줄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택배기사님들도 택배를 받는 우리도 모두 재난 수준의 무더위를 잘 견디고 건강하게 가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름이 지나가고 있고, 어디선가 찬바람이 틀림없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G마켓_온라인 광고_스마일 도시락 캠페인_2018_유튜브링크)

(G마켓_온라인 광고_택배기사님, 택배왔어요_2014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

수재민 주택

Shelter for the flood victims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수재민 주택’에서 살았다. 서울 변두리 은평구(당시에는 서대문구) 응암동 244-2번지가 우리 집 주소였다. 사실 이 집은 고모부의 소유였다. 고모부는 고맙게도 이 수재민 주택을 무상으로 우리에게 빌려주셨다. ’수재민 주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를 포함한 형제 5남매가 거기서 컸다.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사셔서 모두 여덟 식구였다.
집은 넓지 않았고 허름했으나 터는 꽤 넓었다. 한 100평? 남동향으로 자리잡은 블럭벽돌 건물의 정면에는 툇마루가 있었다. 어느날 새벽에 깨어 그 툇마루에 앉아 해가 뜨는 걸 바라봤다. 붉은 기운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데 공기는 시원했다.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 있는 펌프로 물을 끌어 올렸다. 펌프질을 하면 시원한 물이 하얀 포말을 깃털 장식처럼 달고 솟았다. 우리는 그 물을 먹고 살았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우물은 깊었다. 자주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물 저 안 쪽은 어쩐지 무서웠다. 여름이면 여러 가닥을 엮은 질긴 주황색 나일론 줄에 수박을 매달아 내렸다. 아버지는 수박을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가족이 마루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나면 우물에서 수박이 끌어올려졌다. 깊은 우물 속에서 냉각된 수박은 매우 시원했다. 수박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짭짤한 대구포를 한 조각씩 주셨다. 이걸 먹어야 배탈이 안 난다고 하셨다. 깜깜해지고 나면 우물가에서 물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을 깜깜할 때 그렇게 샤워를 했다.
우물 옆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는 항아리들이 살았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한 40 센티미터 되는 그 장독대 위에 사는 항아리들의 주인은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할머니는 장독대에서 맛이 드는 간장이며 고추장, 된장 등을 늘 세심하게 관리하셨다. 장독대는 우리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있었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세발자전거를 타지도 않고 선 채로 내달리며 끝도 없이 장독대를 돌았다. 어린 동생들은 엄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4남 1녀의 장남인 나는 아주 어려서 동생들이 어머니를 차지하는 걸 봤다. 여덟 식구가 늘 복작대던 그 수재민 주택에서 나는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어렸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마당을 지나 서쪽 구석으로 가면 뒷간이 있었다. 뒷간은 무시무시했다. 널빤지로 만든 발판을 딛고 힘을 줘야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뒷간에는 벌레들이 우글거렸고 이따금 내용물을 퍼내는 직업을 가진 분이 오셔서 인분을 거두어 갔다. 출렁거리는 인분 통에서 인분이 마당으로 튀기도 했다. 그 분은 매일 분주했다.
우리는 마당에서 구슬치기, 팽이치기, 술래잡기, 다방구 등 각종 놀이를 지칠 때까지 했다. 술래잡기 하다보면 집의 북벽과 담 사이의 뒷뜰에 숨기도 했다. 우리는 그곳을 ‘뒷곁’ 이라 불렀다. 잡초들이 자라는 그 곳은 어쩐지 은밀했다.
집안에서만 놀던 나는 어느 날 대문 밖으로 나가 보았다. 우리 동네는 전체가 수재민 주택 촌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거칠었다. 다양한 지방 사투리들이 존재했지만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내 친해졌다.
어느 날 밥을 먹는데 어른들이 이사를 가야한다고 했다. 집은 새로 날 아스팔트 길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이 집은 언덕길에 묻혀 있고 충암고등학교 앞에 작은 터만 남아 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수재민 주택’의 정확한 정의를 모른다.

 

글. 성기완 Sung, Kiwan • 시인

,

“국책연구소로서 성찰 깊이 더해 미래 건축도시정책, 새로운 10년 만들어가야죠”_박소현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

” Adding deep introspection as a national policy research institution, I would like to create a future architectural city policy and a new ten-year plan”

“건축도시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어떤 건축도시공간 서비스가 필요한지 성찰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시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시점 아닌가요?”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하는 연구, 일상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공간 환경 서비스 연구를 전개해 정책활용도와 전략의 현실성을 구체화시켜 나가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표정 속에서도 단호함이 묻어나온다. 지난 5월 취임한 박소현 제5대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을 7월 25일 세종시에서 만났다. 앞으로의 연구소 운영계획·방향에 대해 듣기 위한 취지였다. 2017년을 기해 개소 10년을 맞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이하 auri)는 다가올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auri는 건축서비스산업이 당면한 각종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가건축정책의 싱크탱크로(Think Tank)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auri가 맡은 역할을 소개하면서, 박소현 auri 소장은 앞으로 “분야별 연계와 다학제·신기술이기반이 된 연구와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박소현 소장 연세대 건축공학 학·석사, 미국 오리건대학교 역사보존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 박사 / 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 /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민속분과·세계문화유산분과 위원,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회 위원 등 역임

Q. 먼저 제5대 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장님께서는 취임사를 통해 “성찰의 깊이를더해 국가정책 어젠다를 발굴해 나가자”고 밝히신 바 있는데요. 소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소장에 취임해 매우 새롭고 감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소장이 되기까지,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대한 열망과 주변의 조언도 동기가 되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매우 원론적인 저의 궁금증이었다. 지난 10년간 우리 건축도시공간 분야의 대표 연구기관인 auri가 어떤 연구를 어떻게, 왜 해왔는지 성찰해 보고 향후 10년을 그려 보는 일에 관심이 갔다.
아시다시피 auri는 지난해 10주년 기념식을 했다. 그간 auri가 노력하여 건축도시 관련 국가 정책 연구의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건축도시 관련 법 제도를 개선하고 건축기본계획을 정비하는 등 살기 좋은 건축도시환경의 토대가 될 많은 일들을 수행했다. 개인이든 단체든 10년이 지나면 다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마련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 소장직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지만, 의미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압축성장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건축도시공간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탐구보다, 당대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개발 행위에 치중해왔다. 이제는 건축도시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어떤 건축도시공간 서비스가 필요한지 치열한 성찰을 통해 이를 국민들에게 다시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찰을 토대로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하는 연구, 일상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공간환경 서비스 연구를 전개하여 정책 활용도와 전략의 현실성을 구체화시켜 우리나라 건축정책연구 생태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울러 세계 연구기관과 지속적인 국제협력체계를 견고히 구축하여 우리 연구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에도 주력하고자 한다.

Q. 취임하신지 100일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소 운영 방향에 대해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건축도시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의 증가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 발생과 자연재해 등 여러 문제들이 눈앞에 있다. 우리 건축도시공간을 더욱 건강하고 안전하게 가꾸어 나가야 할 필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생활공간 현장을 지원하는 연구’라는 비전 아래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연구소를 운영해보고자 한다.
먼저 국책연구소로서 성찰의 깊이를 더해 미래 건축도시 정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건축도시정책 의제를 발굴하고, 중장기 연구로드맵을 수립해나가고자한다. 특히 미래의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건축서비스산업의 현실화에 힘쓰고자 한다.
모든 정책연구가 그렇겠지만, 특히 건축도시분야는 현장과 긴밀히 연계될 때 비로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된다. 따라서 보다 현장대응형 공간환경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장소의 현장 가치를 높이는 건축도시공간의 활성화 전략을 제시하고, 건축자산을 활용한 정책서비스를 더욱 확대하는 한편, 이러한 연구결과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연구성과의 대중 친화적 공유에도 중점을 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auri가 해왔던 분야별 정책연구는 더욱 심화해 나가되 신기술, 다학제, 융합에 기반을 둔 연구체계를 강화하는 일에도 힘쓸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연구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교류하는 것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auri의 구성원은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동력인만큼 연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연구 환경의 안정화와 연구의 수월성을 높일 수 있는 조직문화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Q. 건축서비스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간 auri에서 추진된 건축서비스산업과 관련된 연구성과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 6월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제정 이후, 그 잠재된 영향력이 이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 우리 연구소에서 발간한 「건축설계산업 동향 및 실태」(2017)에 따르면, 일반 건설업보다 전문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건축서비스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 고용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선진 사례로 제시된 유럽·호주·미국 등과 달리 국내 건축서비스산업은 건설업의 하위 개념으로 되는 경향으로 국내 경쟁력이 훨씬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auri에서는 2015년 건축서비스산업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2016년 제1차 건축서비스산업 진흥 기본계획 수립 지원을 도모했고, 2017년부터는 건축서비스산업 미래전망 대담회와 세미나를 개최해 건축서비스산업 생태계 변화·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축서비스산업 육성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건축서비스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과 제도 연구, 건축서비스 표준화 연구, 건축투자 활성화 지원 등의 연구와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노력의 결실이 국민 일상 생활공간의 질 향상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현장 지원 해법으로 지어지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우리 연구소는 건축서비스산업 다변화를 위한 정책지원 방안을 적극 마련하고, 건축서비스산업 관련 현 정책·제도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등 건축서비스산업에 대한 건축과 관련 산업분야의 공감대 확산을 위한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Q. 중장기적인 한국 건축서비스산업 발전에 조언해주신다면.

건축서비스산업은 국민의 안전한 생활과 복지환경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문화국가의 기틀 마련에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건축 관련 전문 지식과 기술제공 서비스를 통해 타 산업의 중간재로 활용되며 높은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 역시 큰 지식기반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2021년까지 선진국 수준의 건축설계산업 육성을 위한 과제를 도출’, ‘건축 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건축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건축서비스산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 등 현장 체감의 내용으로구체적 소통을 이루는 문제와 같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있겠지만, 주지하다시피 건축서비스 산업과 관련된 제도는 여러 부처와 소관과가 얽혀 있다. 건축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국민의 입장에서 개선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꾸준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도시재생에 대한 견해와 어떤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등 사회적 여건 변화와 이에 따른 빈집 등 도시쇠퇴 문제, 기술 발달에 의한 미래 공간구조의 재편, 지능정보기술를 필두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대두 등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건축·도시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현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과제인 도시재생의 추진에 있어서도 우리 연구소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치열한 고민과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도시의 브랜드를 만들고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통해 지역성(Locality)을 회복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사람과 일이 있는 지역 만들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역성을 대변하는 큰 자원의 하나는 바로 그 지역의 건축과 도시공간이다. 우리 연구소는 지역성 회복을 촉매제로 활용하여 장소만들기로 발전할 수 있는 활용 수단과 전략을 제시하는 도시재생에 주목해 왔다.
건축과 도시공간은 도시재생을 위한 그릇으로서 지역 주민과 전문가가 좋은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만드는 데 함께 하는 과정, 그 자체가 도시재생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작동되길 바란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을 우리가 진정으로 이루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Q. 현재 건축분야의 위기요인과 기회요인은 뭘까요.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건축물 관련 화재나 안전사고로 인해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특히 건축물이 대형화되고 복합화되면서 이에 따른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도 커 그 불안감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건축물의 안전 확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은 건축분야의 위기요인이자, 기회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동안 추진해 왔던 정책과 연구를 다시 한 번 성찰해보겠다. 우리 앞에 산재한 과제와 위기에 대해 다학제적이고 다원적인 지역공간서비스로 융합된 해법을 요구하고 있는 시기이자 이러한 해법의 모색이 구체화될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해외 연구소들의 융합연구사례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세계 곳곳에서 이미 민간-공공, 다학제, 다차원, 신기술 기반의 통섭적인 접근을 통해서 일상생활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지역서비스를 개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분야별 연계와 다학제·신기술이 기반이 된 연구와 사업의 추진을 통해 건축분야의 새로운 진흥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