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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월간 건축사’ 대중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시작

2019 ‘KIRA Monthly’
Starting to make an effort to approach people

월간 건축사가 2019년 대대적 변화를 시도한다. 판형이 바뀌고 내용이 개선된다. 사실 건축계 유일의 잡지이지만, 대외적인 평가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광고와 몇몇 건축사들에게 게재 요청 시 들었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월간 건축사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계기였다. 이 지면을 통해 협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작품이 게재되지 못하더라고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12월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구 건축문화신문)에 월간 건축사지 게재 작품의 기준을 언급했다. 이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왜냐면 2019년의 월간 건축사는 대중에게 건축계를 대표하는 종이잡지로 나서기 때문이다. 영리 목적의 민간 건축 잡지들이 국내 건축사들을 외면한지 오래고, 몇몇의 작품 경향이 주목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국내 건축사들의 노력이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가 오히려 축소됐다. 안타까운 것은 2010년대 넘어서면서 발표되는 젊은 건축사들의 작품이 굉장히 뛰어나고 독특한데도 어느 건축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았고, 이들은 해외 블로그나 사이트로 발표 매체를 옮겼다. 국내의 어떤 매체도 이런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월간 건축사는 2019년부터 좀 더 과감하고, 주도할 수 있는 매체로 재탄생 할 것이다.

단! 제한이 있다. 그것은 법에서 정한 합법적 국내 건축사이며 협회원에게 제공하는 지면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돈을 받고 판매하는 매체가 아니라, 협회원의 회비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피, 땀, 눈물로 지원되는 회비로 제작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책임감이 있다.
이런 사정에 더해 월간 건축사는 세상과 소통의 창구가 되려고 한다. 21세기는 온라인 시대지만, 존재는 오프라인에서 명확해 진다. 온라인은 알려지지 않는 대상을 찾기엔 너무 힘들다. 월간 건축사는 2019년을 온라인 시작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온라인을 확대하려고 한다. 오프라인에서 제대로 안착된다면, 온라인의 월간 건축사는 훨씬 더 자유롭고 세상을 향해 문호가 개방될 것이다. 기대해봐도 좋다.

자! 이젠 건축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월간 건축사는 2018년 5월부터 건축 담론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섬세하고 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지면의 한계도 있고, 시간의 제약도 있다. 인적 구성의 힘겨움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사회와 우리 건축계 스스로 이슈를 이야기 해야 한다. 월간 건축사는 이 역할을 하기로 했다. 키워드 중심의 나열 단계이지만, 이 또한 소중한 기회다. 이미 여러 가지 키워드들을 건축계에 던져 놓았다. 앞으로 더 많은 건축계 이슈들과 키워드를 발언할 것이다. 당장 2019년 1월호에 ‘건축사와 사회적 공공역할’에 대한 주제로 글을 시작해서 2월호는 ‘한국 주거 정책의 건축적 한계와 문제점’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해외의 현업 건축사들에게 직접 원고를 받기도 하고, 학계의 이야기도 담아낼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담론의 키워드들을 사회에 알릴 예정이다. 메아리가 아직 크게 없지만, 언젠가 이런 노력들의 열매를 보리라 믿고 있다.

지난 8개월 편집장이 되어서 여러 가지 진행을 해보니, 협회원들의 노력과 임원진들의 애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달 신문과 월간지 마감에 쫓겨 주야로 일하는 담당자들의 희생을 보았다.

얼마나 어렵게 한권의 책과 신문이 나오는지 몰랐는데, 막상 내가 이일에 참여하고 보니, 그동안 잘 보지 않고, 읽지 않았던 태도에 반성하게 된다.이젠 여러분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담을 테니, 여러분들은 세상에 알리는 전도사가 되기를 부탁한다고…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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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年 辭

회원여러분,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무엇보다 회원 여러분 가정과 일터에 행복이 가득하고, 대한건축사협회도 큰 발전을 이루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회원 여러분!

저는 지난해 3월 취임한 이후 ‘오로지 회원’이라는 신념하에 회원과 협회는 물론이고, 협회와 국토교통부, 국회 그리고 언론계 및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축단체 등과 보다 더 적극적이고 원활한 소통을 통하여 건축사와 협회를 올바르게 알리는데 주력하여 왔습니다.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정책을 실행, 실천하였습니다. 오는 2월 15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감리 관련 건축법 개정을 완료한 것 외에도 많은 현안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다 해결하기에는 다소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숙제를 회원여러분들과 함께 하나씩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몇 가지 의미 있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먼저, 9월초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대통령 보고회에 건축계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 건축사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의견을 전달 한 것이나, 중국 도시설계대회에서 조선건축가동맹 위원장과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고 올해 개최되는 건축사대회에 초청하였던 일, 그리고 모처럼 건축계가 뜻을 모아 공공건축 설계공모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일, 무엇보다도 우리 협회가 주도하여 국회에서 대국민 건축대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 협회의 응집력과 실천역량, 그리고 건축사로서의 자질과 전문인의 소양을 알리고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의 권익보호와 업역확대 및 건축문화 창달을 위한 우리 건축사의 활동에도 분명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함께하여 주신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2019년, 새해에는 지난해 다져놓은 소통의 바탕 위에서, 하나씩 성과를 이루어내는 ‘실천의 해’, ‘결실의 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조직을 더욱 더 강화하고 실무적으로 변화시키겠습니다.
저와 집행부를 비롯해서 모든 임직원의 역량을 건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의 열악한 환경을 바꾸는데 집중하겠습니다.
생존권 보호와 업역 확대를 기반으로 불합리한 제도 개선 등을 통해 회원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첫째,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 강화를 완성하기 위한 ‘개업 건축사 협회 의무가입’을 추진하겠습니다.
둘째, 건축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무분별한 건축행위를 개선하는 ‘리모델링 건축허가제 도입’을 추진하겠습니다.
셋째, 동네 건축문화의 개선을 통해 한국 건축문화 향상을 위한 ‘소규모 건축물 건축사 현장관리제도 도입’을 추진하겠습니다.

저는 회원 여러분과 함께라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원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강조하는 협회의 본연의 모습으로 경쟁력 있는 협회를 만들겠습니다.

일념통천(一念通天)!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중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일을 이루게 한다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정진해 가겠습니다.

회원 여러분, 새해에는 더 좋은 작품과 더불어, 하시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기해년 새해 아침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석 정 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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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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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건축사의 공공건축 참여 가치와 의미 – 미국건축사의 실무사례를 중심으로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건축 담론은 너무 무겁지 않게,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건축계가 고민하고 있는, 또는 고민할 만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주 추상적 주제부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부분까지 다루려 합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논쟁의 소재도 담으려 합니다. 물론 한 두 편의 글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큰 힘을 발휘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생각의 기회를 한번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많은 건축사들이 보는 건축사지는 짧게라도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건축이 명작일 수 없지만, 철학이 바탕이 되는 작품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요청하시는 담론주제가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의 연락도 좋습니다.
저희 지면의 한계 상 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이 기회를 통해 확산시키고, 깊이를 다듬어 가시길 바랍니다.

건축에 대한 시선은 이중적입니다. 개인으로 보면 사유재산으로 영리추구 목적이 많지만, 도시에서 이웃과 공존해야 하는 것 때문에 건축은 공공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집안 장롱에 숨겨질 수 없는 건축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건축에는 각종 제한하는 법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건축사는 모든 가치와 일에 대한 접근을 위의 두 가지 방향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건축이 힘든 이유는 두 가지 생각을 형태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존재 자체가 공공성을 가지는 DNA가 있는 셈입니다. 건축은 더불어 창조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시각적 형태입니다. 이런 태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관적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이번호 담론 주제는 이런 측면에서 공공영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의 업역과 역할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방향은 매우 다양하고, 건축사 입장에서 언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공 발주의 책임을 맡고 있는 건축사의 글을 받아서 게재합니다.
더구나 미국 사례를 자세히 보면, 왜 그들에게서 좋은 공공 건축물이 탄생하는지 알게 됩니다.

 

건축사의 공공건축 참여 가치와 의미 – 미국건축사의 실무사례를 중심으로
The value and significance of participation of architects in public construction – Focused on practical business cases of American architects

필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설계하는 건축사가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건축설계업무를 관리하는 건축사다. 테네시주 내쉬빌에 있는 2개의 공항을 관리하고 운영하고 있는 Metropolitan Nashville Airport Authority(www.flynashville.com) 공항공사에서 Design Project Manager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건축사가 어떻게 전문성을 가지고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지 소개하겠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건축사는 프로젝트 생성단계부터 참여하게 된다. 기관의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가 승인이 되면 프로젝트의 범위 및 프로그램 그리고 예산을 정하는데 참여한다. 프로젝트의 예산까지 결정되면 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설계비 보다 건축사사무소의 역량을 중시하는
미국 공공기관

미국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전통적인 설계-입찰-공사(Design-Bid-Build)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보통 설계를 할 건축사사무소를 가장 먼저 선정하게 된다. 요즘은 프로젝트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디자인-빌드 (Design-Build) 방식도 점점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건설사 주도로 진행되는 과정에 설계가 부실해 지거나 가격위주로 설계가 진행되는 등 단점도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 디자인-빌드를 변형 보완한 Progressive Design-Build 라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은 디자인-빌드에서 설계 과정과 비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설계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설계과정이 좋아야만 결국 공사비도 관리가 가능하고 사용자가 사용하기 좋은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미국 공공 건축에서 주로 사용되는 설계-입찰-공사 방식을 위주로 설명하겠다.

미국 공공기관의 건축사사무소 선정방식은 Qualification base이다. 즉, 설계비를 기준으로 건축사사무소를 뽑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사무소의 역량을 평가하여 발주한 프로젝트에 맞는 건축사사무소를 뽑는 것이다. 발주한 프로젝트와 비슷한 프로젝트 경험이 있고 우수한 팀원을 가진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한다. 건축사사무소는 공공기관의 프로젝트 발주 문서(RFP, Request For Qualification)가 요구하는 대로 건축사사무소의 경험, 비슷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참여 건축사 이력서 및 엔지니어들의 이력서 등이 들어간 SOQ(Statement Of Qualification)를 제출한다. 예전에는 이 문서를 바인더로 만들어서 직접 제출했으나 요즘은 모두 전자 문서(PDF)로 온라인으로 제출하기 때문에 건축사사무소의 비용부담이 많이 줄었다. SOQ에는 설계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설계경기와 다른 점이다.

 

설계경기로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하기보다
실력과 이력으로 선정

일반적인 공공 프로젝트에 경우 설계경기로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설계경기를 위해서는 건축사사무소에 너무나도 많은 비용(인건비)이 들기 때문이다. 설계경기를 위해 설계팀이 일한 시간은 당선되지 않으면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나가는 월급과 설계경기를 위한 오버타임 보상은 회사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SOQ가 설계경기에 비해 모든 회사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유사 프로젝트 경험이 없는 건축사사무소나 규모가 작은 회사는 사실 SOQ을 통해 선정되기 힘들다. 반면에 설계경기는 눈에 띄는 디자인과 실력을 보여준다면 작은 신생 건축사사무소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에 소속된 선정 위원들은 제출된 SOQ를 바탕으로 건축사사무소를 평가한다. 선정위원들은 심사 들어가기 전 Conflict of Interest에 서명하고 들어간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선정위원들과 심사할 건축사사무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확인이며 서약이다.
선정위원들의 구성은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사용할 해당 부서에서 1명, 설계관리 부서 1명, 공사 관리 부서 1명 등 최소 3명으로 구성되며 프로젝트에 따라 심사위원이 늘기도 한다. 심사위원들에게 SOQ를 1~2주 먼저 보내 리뷰하게 한 후 회의를 통해 서로의 의견과 건축사사무소의 장•단점을 이야기한다. 그 후 각자의 평가표에 점수를 넣는다.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 여기서의 평가에 따라 바로 건축사사무소가 선정되기도 하고 만약 상위권의 점수 차이가 10% 미만일 경우 10% 미안에 속하는 건축사사무소와 인터뷰 후 최종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한다.

SOQ 중 프로젝트팀 구성을 보여주는 차트

설계비는 탄력적으로 건축사사무소 선정 시
고려되지 않아, 오로지 질적 평가중심

건축사사무소 선정과정에서 설계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설계비에 관한 내용은 RFP에서 묻지 않는다. 전적으로 건축사사무소의 역량을 보고 평가한다. 일단 건축사사무소가 위의 과정을 거쳐 정해지면 그 후 설계비 협의가 시작된다. 프로젝트 별로 이미 정해진 설계비 예산(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총 프로젝트 예산의 최대 10%)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 안에서 결정되며 만약 복잡하거나 어려운 프로젝트 경우 정해진 예산을 넘겨 설계비가 결정되기도 한다.
건축사사무소 선정 전 과정에 프로젝트 매니저인 건축사가 참여한다. 건축사로서 타 부서 심사위원들이 익숙하지 않은 기술적, 경험적 내용들을 검토하고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한다.
건축사사무소가 결정되면 설계비 협상이 시작된다. 일단 건축사사무소가 먼저 설계비를 제안하고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가 리뷰한다.(이 과정은 공공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 설계비가 미리 정해진 곳도 있다.) 설계 면적이 작은 프로젝트라도 오래된 건물 리노베이션 같은 경우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복잡한(High Complexity) 일이라는 것을 건축사는 알기 때문에 그 만큼의 적정한 설계비를 승인하려 한다. 이 같이 설계비 협상은 해당 프로젝트에 적정한 비용을 찾는 과정이다. 기관도 ‘갑’으로서 설계비를 무조건 깎으려고 하지도 않고 선정된 건축사사무소도 ‘을’이 라고 적정한 설계비를 포기하지 않는다. 설계비 협상이 잘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일단 선정된 건축사사무소를 해고하지 않고 협상을 지속하고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필자가 경험한 한 프로젝트는 별로 어렵지 않은(Low Complexity)의 설계인데 단지 건축면적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설계비를 올려달라는 건축사사무소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무조건 설계비를 깎는 것이 아니라 설계 예상시간 및 참여팀원의 시간당 인건비로 접근하여 설계비를 협상한다. 소위 ‘갑’의 지위로 무조건 압박을 가하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프로젝트 참여 인원은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알고 또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알기 때문에 가격을 무조건 깎으려고 하지도 않고 반대로 난이도가 낮은 일에 설계비를 많지 주지도 않는다. 최대한 적정한 설계비를 주도록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설계비가 정해지면 정식 설계 계약을 맺는다. 이 모든 과정에 역시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가 참여한다.

 

건축사사무소 선정 및 업무진행은
발주처의 건축사가 전적으로 주도해서 진행

건축사사무소가 정해지면 이젠 본격적으로 설계가 시작된다. 디자인 킥오프 미팅에 건축사사무소 프로젝트팀(건축사 및 엔지니어 포함)과 건축주측 관련부서 인원이 참여한다. 프로젝트팀과 관련부서 직원도 서로 알게 되는 기회이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설계과정은 보통의 경우 계획-기본-실시 설계(Schematic Design-Design Development-Construction Documents) 단계를 거쳐 진행되며 각 단계가 끝날 때 해당 부서원에게도 도면이 전해져 리뷰를 하게 한다. 여기서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면을 주고 검토를 부탁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가 내부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면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부서사람들과 이야기하여 찾아낸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건축사는 공공기관 내에서 외부 건축사와 내부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내부적으로는 기관의 기능을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건축사 역할을 하고 내부의 필요한 기능과 요구를 건축적으로 외부 건축사에서 그들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설계과정에서도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예를 들면 요즘같이 IT 분야가 중요해진 경우 IT 관련 결정을 설계 초기에 해야 한다. 과거에는 전화선, 데이타선 등 설계 막바지에 추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서버룸, 데이터룸, 케이블 설치 경로 그리고 프로젝터, 모니터, 화상 회의용 카메라 등을 설계 초기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IT 부서 및 사용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건축 프로젝트에 익숙하지 않는 IT 부서 사람들과 대화를 풀어가는 것도 프로젝트 매니저의 몫이다. 물론 프로젝트에 고용된 건축사사무소와 엔지니어와 함께 회의를 하지만 건축 비전문가인 내부 사용자들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외부 건축사 또한 기관의 일은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로 필요한 것이 빠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중간에 있는 연결고리인 프로젝트 매니저가 더블 체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건축사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으면 단점도 있다. 외부 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가 내부 건축사인 프로젝트 매니저를 너무 의존하여 본인들이 해야 할 사용자들과의 소통을 소홀이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외부 건축사사무소가 자기 일을 제대로 잘 하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자가 하고 있는 역할이다.

 

건설도 가격중심이 아닌 질적 평가로 선정

설계가 끝나면 공사 입찰(Bid)에 들어간다. 가격이 가장 낮은 회사에 주는 입찰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로 부실업체가 가격만 싸게 넣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공사인 경우 건설회사도 일단 Pre-Qualification을 거쳐서 통과된 회사만 입찰을 받는 경우도 있고 공사 가격과 Qualification을 함께 심사하는 프로포절을 받기도 한다. 이 경우 모든 건설회사에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유사 프로젝트 경험, 프로젝트가 문제없이 잘 마무리 되었는지, 회사 재정 건강성, 공사 사고 기록 등의 심사 점수와 공사가격 점수를 합산하여 건설회사를 선정한다. 이 모든 과정 역시 건축사가 참여하고 의견을 낸다.
입찰을 통해 공사업체가 정해지면 부서 내 공사팀으로 프로젝트가 옮겨진다. 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가 감리를 하는 것이 원칙(설계 계약서에 포함이 되어있다)이고, 디자인 프로젝트 매니저도 반드시 참여한다. 그 이유는 설계 과정에서 어떤 디테일이나 결정이 이루어 졌을 경우 그 과정을 잘 아는 사람이 프로젝트 건축사이고 디자인 프로젝트 매니저이기 때문이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발생하는 예상치 못했던 현장상황이나 설계 문제를 시공사와 협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감리의 한 부분이다. 공사 중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건축에 발생되는 문제 발생 시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고, 시공사가 건축사에게 설계 오류라고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서브미털 리뷰(Submittals review 설계도면에 지정된 제품 스펙을 공사전 승인 받는 것), 샵 드로잉 리뷰는 건축사가 반드시 승인 한 후 공사가 이루어 진다. 건축사가 공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공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또한 공사 중 발생하는 질문이나 확인은 Request For Information(RFI)를 통해 건축사가 대답한다. 요즘은 웹기반의 공사관리 소프트웨어(필자는 Procore를 쓴다. www.procore.com)을 쓰기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 공사 관련 문서와 공사 중 수정된 최신 도면도 모두 클라우드에 있어서 어디서든 PC 또는 핸드폰으로 언제나 볼 수 있다. 이런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건축사, 건설사, 프로젝트 매니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Procore (공사 관리 프로그램) 중 RFI

공사 중 진행 점검 회의는 보통 2주에 한번 한다. 건축사, 건설사가 함께 참여하고 공사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한다. 공사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공유된 문제점은 이미 알고 있고, 만나서 확인하고 문제점을 찾아가는 회의를 한다. 공사 중 회의는 공사 파트 프로젝트 매니저가 담당하고 건축사 프로젝트 매니저는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

격납고 프로젝트 공사 현장

 

공공기관 건축은 발주자로 건축사가 임명되고,
프로젝트 건축사를 측면에서 지원 또는 감독

지금까지 미국 공공 기관에서 건축사가 어떻게 건축 전문가로서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는지 설명했다. 위의 긴 글을 압축하자면 공공 건축 프로젝트는 건축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관리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타 부서의 비전문가에게도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이 가능하고 또한 외부의 건축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외부 건축사사무소의 입장에서도 건축사가 있으므로 커뮤니케이션도 그 만큼 쉽게 이루어 질 수 있고, 적정한 비용도 보상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좋은 품질의 설계가 나오고 결과적으로는 공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글. 주태진 TJ Ju Metropolitan Nashville Airport Authority•미국 건축사

주태진 _ 미국 건축사(USA, Architect)

현재 Metropolitan Nashville Airport Authority에서 Design Project Manager로 근무 중. Univeris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Master of Architecture 졸업. 시카고 Harley Ellis Devereaux 근무이후 본인의 건축사사무소인 part7. Architect LLC 운영하기도 했다.

taejin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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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부족한·불합리한·불비한 부분 고쳐나갈 것…제도를 어떻게 하면 혁신적으로 바꿀지 심도있게 논의중”_승효상 위원장,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Planning to correct irrational and insufficient points in the architecture world…
In-depth discussions are going on how the system can be changed in an innovative manner.”

“사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책임을 떠안는 것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작금 건축의 본질에 관해 꽤 진지하게 논하는 결정권자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직을 맡은 이상 그냥 시간만 보내진 않을 겁니다. 평소 생각한 건축계의 부족한, 불합리한, 불비한 부분을 임기 중 완전히 고치진 못한다 하더라도 시작은 해놓고 끝내려 합니다.”
작년 4월 취임한 승효상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국내 건축계 현안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에는 건축의 공공성·문화적 가치라는 단어들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그가 활동해 온 건축계 여러 운동·모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건축사(Architect)의 책무에 관해서는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던 그다. 2014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선임돼 서울시의 도시정책과 건축문화, 공공·공간조성 등 도시계획 전반에 대해 역할을 했다면, 이젠 국가 건축정책의 목표와 관계 부처간 건축정책의 심의·조정까지 그 역할범위가 커졌다.
필드의 건축사라면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게 사실이다. 실제 그의 취임 후 정부 내 국건위의 위상은 과거와 달라졌으며, 작년 9월 4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민생활 SOC현장 방문, 동네 건축현장을 가다’ 행사에 참석해 도서관, 체육관, 경로당 등 ‘생활 SOC 혁신의지’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정부세종신청사 설계공모 관련 논란에는 “국토부에 소관 설계공모 규정을 고쳐야 함을 권고했다. 고칠 거다! 안 고치면 안 되게 돼 있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재차 강조했다.
제5기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장으로 선임돼 지난해 4월부터 역할을 해온 승효상 건축사를 종로구 동숭동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승효상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 빈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수학 / 1974년 공간연구소 대표, 1989년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설립, 2002년 미국건축사협회(AIA) Honorary Fellowship 및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05년 베를린 AEDES 갤러리 초청건축전,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커미셔너,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2년 베니스비엔날레 초청작가, 2013년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위원장, 2014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 주요작품 ‘수졸당, 웰콤시티, 중국 베이징 장성 클럽하우스, 아부다비 문화지구 전시관, 봉하마을 묘역 소석원, 중국 하이난시 보아오 주택단지 등’

Q 그동안 건설과 토목 중심의 국가주도정책에서 건축과 건설이 혼합돼 얘기돼 왔습니다. 최근 건축계의 노력으로 건축기본법,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만들어지는 등 여러 노력들이 이어져 이른바 ‘건축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그럼에도 실무쪽에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공감한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가 만들어진 바탕도 그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축법과 다르게 건축이 건설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문화로서 가치를 부여해야 된다고 해서 만들어진 게 건축기본법이다. 이 법에 의해서 국건위가 설립됐으니 당연히 그 시각에 국건위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 일을 위해서 더 노력을 하고, 역할을 하고자 한다.

 

Q 미국의 건축자재 유통회사인 홈데포가 연매출이 100조입니다. 건자재회사가 이 정도면, 부수적인 연관 산업자체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국내는 건축 관련 개별시장이 많이 축소돼 있습니다. 이걸 제도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 건축시장이 일반 건설시장에서 토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넘어섰다. 인프라 토목시설은 그동안 충분히 많이 지어졌고, 과거 인프라가 부족한 시절에는 토목이 압도적이었지만 이미 우린 건축물량이 토목보다 훨씬 더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일반 건축시장이 확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관행이나 관습이 전 시대에 머물러 있고 여러 요인들이 바뀌지 않은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이미 건축은, 또 그 시장은 넓어져 있다.
시장의 대가가 제대로 뒤따르지 못하고, 제도적으로 불비해서 그런 것인데 국건위에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도를 어떻게 하면 혁신적으로 바꾸느냐 이 문제에 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고, 몇 가지 사항은 긍정적인 답변을 정부로부터 듣고 있다. 그래서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다 바꿀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바꿔나가는 시작은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이를 굉장히 큰 일중 하나로 삼고 있다.

 

Q 위원장님은 현업에서 실제 작품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필드에서 기대가 큰 게 사실입니다.

사실 이 책임을 떠안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국건위원장을 맡기 전에 서울시에서 다년간 공적인 업무로 헌신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손해를 보고 사무소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하는 수 없이 맡게 된 까닭 중 하나는 예전에 비해서 건축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각 부처 장관이나 국토교통부, 서울시, 그리고 건축단체장들 모두 건축의 본질에 관해서 꽤 진지하게 논의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서 “아! 이 시기에 내가 이 직을 부정하는 게 내 평소 주장해왔던 바와 얼마나 위배 되는가”에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고민 끝에 직을 맡게 됐다.
그래서 아마 많은 이들이 기대도 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맡은 이상 그냥 시간만 보내진 않을 거다. 평소 생각해왔던 부족한 부분, 불합리한 부분, 불비한 부분을 임기 중에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시작은 해놓고 끝내려고 한다.

 

Q 건축기본법도 제정된 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하고 계시는 국건위나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등 관련 법들이 좀 더 보완이 되고, 지속되려면 어떤 환경이나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하 건축서비스법) 중에서 ‘건축기획업무’를 규정하고 강화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전반적으로 건축서비스법을 개정할 시기가 됐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데, 이 사안도 국건위에서 현재 논의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현안 중 하나다. 건축서비스법을 살펴보니 다소 건축실무 현장에서 조금 멀어져 있는 듯 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 근간에 관해서 처음부터 다시 재조정해야 된다고 지적을 하고, 조정 중에 있다. 좀 더 현실에 맞는 법이 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Q 개인적으로 건축서비스법을 쭉 살펴보면,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다소 의아스러운 표현도 있습니다.

최근 여러 안전사고로 심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데, 사실 일선 건축사들의 일들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제도를 따져보면 건축선진국 제도와 비교해볼 때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여러 조항들, 제한들이 너무너무 많다. 건축허가제도 자체가 그렇다. 그래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고쳐야지 법 자구 하나를 갖고 논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건축허가제도 자체를 폐지해버려야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그것 때문에 생기는 여러 심의라든가 불필요한 단계가 너무나도 많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면 공무원들이 자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생긴 거다. 그런데 의사가 국가에서 면허(자격)를 한번 받으면 전문가로서 책임을 지고 수술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건축사는 면허(자격)을 한번 받고나서 설계할 때마다, 집을 지을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되나? 말이 안 되는 거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제도가 다르다. 허가담당 공무원이 있고, 이 공무원이 도서를 받아서 법규 위반사례만 있으면 그냥 허가해주는 게 관례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나는 본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건축서비스법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Q 세간 공무원들의 전문성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느 정도 국가 수준이 되면 전문성이 있는데 실제 필드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의 경우 법규 이해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법 문구만 갖고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부분들이 개선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에서 특별하게 시행되는 게 순환근무제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생긴 제도다. 2∼3년 있으면 딴 자리로 가니 전문성이 생길 도리가 없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는 전문분야를 민간에게 용역을 줘 해결한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600∼700억 정도가 외부용역비로 나간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내용으로 매번 용역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공무원 조직 내에 기획능력이 생길 여지가 없다. 전부 외부용역을 통해서만 일을 해버리게 된다.
그래서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맡으면서 기획능력을 배양하는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순환공무원제를 바꾸지 못 한다면 외부 전문가라도 끌어와 그 일만 담당하게 하는 게 옳다고 해서 서울시는 꽤 많이 바꾸고 있다. 사실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지금 여러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나 건축기본법에서 규정돼 있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지방건축정책위원회를 설치토록 권유하고 다닌다. 이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완비되면 그나마 방금 말한 공무원의 비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Q 평소부터 이번 ‘건축기획’ 개념 규정이 명문화된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진일보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로 대가를 산정하는 게 실시설계에는 맞는 것 같지만, 기획업무에는 사실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이기 때문에 다른 기준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독점·불법이라고 해서 폐지가 돼 있다. 그나마 우리는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에 의해 요율이 정해져 있으니 이거라도 제대로 받으면 된다. 민간도 적용하면 되는 데, 요는 그 문제가 건축사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해 대가를 낮춰 수락해 일을 하지 않나. 핵심은 그걸 못하겠다고 거부하면 되는 거다. 문제는 부당한 대가를 수락해 업무를 하겠다고 하는 건축사들에게 있지 나는 법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부당한 대가에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외부에 알려지면, 그런 의도를 갖는 사람들이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일 안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건축사 스스로 찾아야 한다.

 

Q 개인적으로 프리츠커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국내 건축의 인정을 위해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을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말씀해주신다면.

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격려하고 자극도 주고해서 좋은 거지만, 국건위를 맡은 후 상이 하도 남발이 돼서 건축계에 몇 개가 있나 살펴보니 1년에 1,100여 개의 상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구도 그 상을 받고 영예롭게 생각하지 못한다. 함부로 주고, 함부로 받는다. 그래서 이 상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해보니 없애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국건위에서 주는 상은 최소로 남기고 다 없앴다. 원인은 단체에서 요구한다 해서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상을 압도할 수 있는 상을 만들면 지금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을까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프리츠커상이야 개인이 노력해야 할 문제다. 프리츠커상을 거론 하기 앞서서 우리 사회가 건축을 문화로 여기고 건축사를 존중하면 상이란 것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우리 사회가 건축을 부동산으로 알고 있는 이런 형편에 건축이 일선에 서 있는 건축사들이 스스로 위상을 깍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만 받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Q 90년대 건축운동이 드물었는데 4·3그룹이란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쭉 일관되게 지켜 오신 인생관이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건축은 항상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가 없다. 개인이 돈을 내서 짓는다 하더라도 옆집 사람이 그 건축을 보고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공공재인 거다. 사용만 할 뿐이지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고 주장해 왔으니 건축이 가져야 되는 것은 공공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공공적 가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이때까지 여러 운동이나 모임에 참가하고 목소리를 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성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공공의 광장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투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다”고 했다. 공식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공공의 가치가 건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선돼야 된다고 본다. 그런 운동에 나가서 앞줄에 서고 한 까닭이 공공의 가치를 해치는 사람들과 싸워온 과정이라고 보면은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그 광장에 아직 있는 게 사실이다.

 

Q 그렇게 앞에 서면 여러 비난을 받지 않나요.

하도 많은 비난을 받아서 익숙해져 있고, 한 사람이라도 그 가치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난을 받을 가치도 있다. 이제는 후배들이 앞으로 나설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많은 후배들이 같이 동참하는 상황이라 앞으로를 낙관하고 있다.

 

Q 세계적 건축작가들을 보면 일관된 건축관을 쭉 유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시대에 따라서 그때 그때 기존의 생각을 어디션하거나 변화를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본인의 궤적을 보면 어떤 쪽에 속하시는지요?

나는 건축하는 사람을 두 가지 타입으로 구분한 적은 있다. 하나는 예술가적 건축사(Architect), 다른 하나는 지식인으로서의 건축사(Architect)다. 예술가적 건축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자기 스타일을 항상 유지하는 자다. 장소와 때를 다 불문하고, 조건 불문하고 건축을 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 같은 사람들일 거다. 또 하나는 항상 시대의 부름에 응하고 장소와 조건에 따라서 자기 것을 말하는 그게 지식인으로서의 건축사다.
나는 지식인적 건축사에 속하려고 한다. 다만, 이 한 가지는 있다. 어떻게 부를 때마다 자기 입장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입장이 분명해야 된다는 점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어떠한 가치를 갖고 조건에 응하겠는가에 대한 것인데, 자기 바탕·자기 기준·자기 철학이 있어야지 철학을 갖지 않고 응하면 그거는 잡스러운 게 될 뿐이다. 자기의 태도를 밝히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오래전에 난 어떠한 입장에서 건축을 하겠다고 밝혔고, 그 입장이 그때는 설익고 완전하지 못할 지라도 설익지 않기 위해서 또 완전하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해왔다고 볼 수 있다.

Q 자하 하디드 말씀하셨는데 동대문 DDP 경관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대도시들이 경관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아파트의 표준화된 평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2010년도에 특허청에서 자문을 했었는데, 그때 고민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건축도 특허가 되면 좋지 않을까, 아파트 평면도 특허가 되면 의도치 않게 자연스럽게 바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애플이 건축디자인을 갖고 특허를 받았습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국건위에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거나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떠신지요?

모르겠다. 건축을 특허? 물론 지금도 저작권이라고 하는 게 건축사에게 있으니 같은 도면을 갖고 참고해 활용하면 처벌할 수 있다. 특허를 내든 그렇지 않든 이는 법으로 보장돼 있는 거다. 그렇지만 어떤 건축을 모방했다고 해서 저작권법 위반이냐 이건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모방의 한도가 어디까지냐는 엄청 많은 해석이 붙을 수가 있다. 그래서 애플사옥을 모티브로 동그랗게 축소해서 건물을 만들면 특허에 위반될까? 좀 더 확대해서 만들면 위반될까? 나는 모르겠다. 나는 위반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사실 창조적인 작업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을 전부 동원해서 뭔가 잠재적인 것으로 내려앉아 있는 것을 뭔가 거기에서 유사한 이미지를 끄집어내 다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일 수도 있다. 그래서 거장들의 지나간 건축들을 공부하고 학습하는 까닭 아닌가. 공간은 똑같이 만들어놓고 외피만 바꾸면 이는 특허에 위반될까? 위반이 아닐까? 이런 문제가 수없이 만들어져서 이는 애플이 자기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아파트가 획일화가 된 까닭은 조금 다른 문제다. 이는 선분양 제도를 폐지하면 자연히 없어질 문제다. 지금은 공급자 위주로 돼 있어서 공급만 해도 팔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걸 수요자 위주로 바꾸면 수요자도 똑같은 아파트를 보고 사지는 않을 것 아닌가. 공급자가 수요자가 외면해버리는 것들을 만들지는 않을 거다.
중국은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건축사를 대동하고 만들어서 우리보다 선진적인 방법으로 변해 있고, 서양은 이미 선분양 제도는 쓸 수 없는 그런 사회다. 똑같은 것을 만들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제도만 바꾸면 된다.

 

Q 내년 월간 건축사 2월호 건축담론에 게재될 ‘단지형 아파트의 문제’ 관련 원고를 살펴보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우리나라에 독특하게 많이 발달돼 있다. 물론 서양에도 특권층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양에서 발달된 게이티드 커뮤니티와는 다르다. 옛날 우리 정부가 재원이 없을 때 많은 부분을 민간에게 맡겼다. 그러다보니 민간이 도로와 공공시설을 알아서 짓고 하니까 자기 재산보호를 위해 담을 치는 거다. 그때는 공공에서 돈이 없어서 못 만들었다 한다면, 지금은 공공이 돈이 있는데도 으레 아파트는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 게 문제다. 이제는 공공에서 다시 도로를 만들고 공공시설을 만들 때가 됐다라고 인식하면 되는 거다. 이거만 바뀌면 게이티드 커뮤니티 문제는 당연히 없어질 거다.

 

Q 최근 서울시가 잠실 5단지에 굉장한 인센티브를 줬는데, 그 사람들은 어드벤티지라고 생각안하고 권리라고 생각해 계속 이익을 주장합니다. 심지어 통과도로도 없애달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집이라는 게 살기 위한, 또는 자기 존재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재물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정부에서 그렇게 인식을 줬기 때문에 다시 교육을 통해 원래의 집에 관한 본질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에서 그 일을 지속해야 된다. 집을 부동산 가치로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게 되는 기존 정책을 계속 써서는 안 된다는 걸 국건위에서 정부에 부단히 이야기 하고 있다.

 

Q 최근 정부세종 신청사에서 보듯 설계공모 심사과정의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지금 국토부에 소관 설계공모 규정을 고쳐야 함을 권고했다. 고칠 거다. 안 고치면 안 되게 돼 있다. 바뀐 대로 공공에서 그렇게 차차 바꿔나갈 거다. 민간에서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관한 의식, 불로소득을 올리겠다고 하는 의식은 포기시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사회가 바꿔 나가야 된다. 건축사의 희망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공공에서 끝까지 의식을 갖고 고쳐나가야 한다. 주민들이 떼를 쓴다고 받아줘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정부가 자기들 정통성에 약점이 있으니까 자꾸 밀렸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주관·철학을 갖고 밀어붙여야 한다.

 

Q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건축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두 번째 대형 사무소는 문제가 없는데, 전체 80%가 넘는 아틀리에 설계사무소 특히 젊은 친구들이 어렵습니다. 용기를 줄 수 있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건축의 문제는 사실 근본적으로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나쁜 건축을 자기가 설계안하면 될 거 아닌가. 건축하는 사람이, 건축사가 설계하면 어떻게든 최종 결과물이 된다. 부당한 압력, 요구가 들어와도 안 그리면 되는 거다. 그걸 끊임없이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이 형편없다 그러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거다. 지금 2만4천명 가까이 건축사가 있다고 하는데 옛날 당나라 때의 문장가 유종언이 한 말 중 건축사에 관한 글이 있다. 그 당시에도 그는 건축사의 기능에 관해 쭉 설명하며 공공의 일을 하면 민간보다 돈을 절반만 받는다고 했다. 공공의 일을 하는데 누가 부당하게 간섭을 하면 그 자리를 뛰쳐나온다고 했다. 이미 당나라 때 이런 글이 나왔다. 그게 건축사가 취해야 될 태도라고 생각한다. 건축의 책무는 건축하는 사람 ‘건축사’에게 다 있는 거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이미 아틀리에형 사무소를 하겠다는 것은 돈 벌어서 행복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접은 사람이라고 본다. 건축설계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허황된 생각이다. 돈만으로 행복한 게 절대 아니다. 다른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거다. 젊을 때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나로선 즐겁게 굶을 수 있는 자신이 항상 있다. 그렇지만 그 끝에 얻는 기쁨, 지적 즐거움 내가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희열이 있으니까 그것에 만끽하면 된다. 괜히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를 하수인화 시키지 말고 자기 가치를 지켜 나간다면 끝내는 사람들이 알아서 가치 있는 일을 갖고 올 때가 있을 거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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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제따와나 선원 불공(不空;amogha)의 드라마트루기

Architectural criticism _ Jetavana temple
Dramaturgy of Amogha

공간이냐, 시간이냐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집을 지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엮어서 짰다. 원시 인류는 나무를 세워서 구조를 만들고 거기에 짐승의 가죽이나 식물의 줄기와 잎을 덮어 거주했다. 나중에 동아시아에서는 이 전형을 이어 나가 ‘시간을 세우고 공간을 덮는다’는 집의 철학을 확립했다. 가구식 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구축법이 바로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까는 일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시간을 세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벽을 두르는 일을 했다. 시간(宙)과 공간(宇)이 결합해 집을 만드는 일이다. 현대물리학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3차원공간과 시간의 차원을 더한 4차원 시공간이라고 규정하기 훨씬 전부터 동아시아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결합을 당연한 것으로 파악했다. 『천자문』의 첫 문장이 말해주듯이 “하늘과 땅은 가물하고 누렇고, 우주는 넓고 크다(天地玄黃 宇宙洪荒)” 그리고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는 아예, 하늘과 땅을, 공간과 시간을 얽어버린다.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말은 원래 ‘천구지장(天久地長)’이여야 문법적으로 맞는다. “하늘과 땅은 장구하다”는 뜻으로 天-久(오래다), 地-長(오래다), 같은 ‘오래다’는 뜻이지만 구(久)는 시간을 뜻하고 장(長)은 공간을 뜻한다. 그런데 <도덕경>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서로 얽어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시공간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동아시아의 목조 가구식 공법은 이러한 세계관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 조선집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대청마루의 단 아래서 올려다보는 천정의 서까래는 시간과 끝없는 하늘을, 공간과 드넓은 땅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집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기능에 따라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눈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을 시간에 따라 나누면서 공간의 기능이 변한다. 하나의 공간이 아침에는 식당으로, 밤에는 거실이 되었다가 어떤 시간에는 서재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침실이 된다. 공간과 기능이 일대일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과 기능이 관계를 맺고 푼다. 그래서 공간은 시간과 얽혀 계속 변한다. 조선집의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아파트에서도 지속된다.

가온의 드라마트루기

서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은 공간의 예술 일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세계관으로 보면 건축은 시간의 예술이다. 공간은 변하는 시간에 따라 같이 변화하므로 이렇다 할 대상으로 남아있게 되지 않는다. 계속 변하는 시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계속 변하는 공간의 이름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조선집은 서양의 집처럼 대상(object)이 될 수 없다.
가온건축이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관점과도 다르고, 서양의 그것과도 다르다. 그러나 분명 가온건축의 태도가 서양의 관점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가온건축은 시간을 철저하게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고, 공간을 확정적으로 생각하는 서양건축의 사고에서도 벗어나 있다.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해서 가온건축의 건축적 태도는 보다 정서적인 면에 치중해 있고, 서양건축의 사고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해서 가온건축의 물리적 형태는 확정적이지 않다. <금산주택>같은 경우는 <도산서당>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서 그 형태가 확정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배경을 지우고 보면 그 역시 확정적이지 않다. 확정적이지 않다는 말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요소가 주는 느낌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표현들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온건축의 작업들은 그런 조형적 표현들보다 문학적 표현들이 더 적합하다. 가온건축의 작업들은 그 자체보다 관계속에서 도드라진다. 아무리 복잡한 도심지나 전원주택 단지에 있어도 가온의 건축들은 고즈넉해 보인다.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 주변을 묵묵히 듣고 있다고 할까? 그 심심한 표정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비로소 속으로 웅얼거리고 있는 말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들어본다. 그러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겨 거기 정신을 쏟다보면, 그렇게 한참을 해찰이하다 보면 그 속엣말이 오히려 소음처럼 들리다가 거꾸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해찰이가 된 것처럼 그때에야 들리기 시작한다. 가온의 작업들에서는 그런 흔치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아니면, 그 집을 나와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말을 기억해 낸다. 아 이 말은 폐사지의 말이다. 그 지나간 시간을 새긴 홈들, 거기서 들려오는 오래 묵은 시간들.
그래서 가온건축의 형태언어들은 확정적이지 않다. 가온은 어느 장소의 시간들을 여기로 옮겨 와 심는다. 그게 그들의 건축이다. 그 시간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의 언어를 평생 가져가듯이 가온건축의 시간도 그렇다. 시간이 형태의 자리에 대신함으로써 그들의 건축은 조형언어로 대신할 수 없다. 가온의 건축은 드라마투루기(dramaturgy)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이 드라마트루기가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여지없이 물리적 형태가 조형언어를 갖게 되는 경우다. 사람들은 비로소 그 형태를 보고 말문을 트겠지만 내면의 고즈넉한 시간들은 텅 비게 된다.

제따와나의 시간

<금산주택>이 <도산서당>의 시간을 오마주했다면 <제따와나 선원>은 지금 남아있는 그대로의 인도 스라바스티(Shravasti)의 <기원정사> 터와 경주 <황룡사>터의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 스라바스티의 제따와나 터에 가면 수많은 벽돌들이 기단 부분만 남아 있는 채 정돈이 되어있다. 그 모습은 마치 원래 그랬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이 오롯이 서 있는 장면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남아있는 수많은 벽돌 한 장 한 장이, 시간이 자신에게 준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듯이 새롭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황룡사>터에는 벽돌은 없다. 남아있는 것은 좌대로 삼았던 커다란 돌덩이들과 화강암 주초들이다. <기원정사>와 <황룡사>는 같은 폐허이지만 <기원정사>는 잘 정돈된 벽돌의 폐허로 마치 원래 그렇게 계획되어진 풍요함이 있고, 황룡사는 고즈넉하다. 거기에는 막강한 시간이 느껴진다. ‘우주홍황(宇宙洪荒)’에서 荒은 한 포기의 풀도 남기지 않고 무자비하게 존재를 쓸어버리고 가는 시간(宙)의 속성을 가르킨다. <황룡사>에는, 시간이 휩쓸고 갔고, 그것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도, 당신도 그 시간의 폭풍속에 있다는 걸 계속 주지시킨다. 거기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말을 잃고 끝없는 상념에 사로잡혀 서 있을 뿐이다.

<제따와나 선원>의 40만장의 벽돌은 그렇게 고즈넉하게 서 있다.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는 <기원정사>를 재현했는데 구현 된 것은 <황룡사지>다. 선원은 세 가지 층위로 구분되고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첫 번 째 마당은 그 다음에 펼쳐질 마당들과 살짝 꺽여있다. 이 마당의 좌우에 배치된 벽돌군들은 너무 넓다 싶다가도 그 자리가 제자리인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만약 외부 바닥과 집의 벽의 재료가 이질재였다면 양상은 좀 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제따와나>는 벽돌의 숲을 이룬다. 온통 벽돌이라서 바닥과 벽과 건물이 위상기하학적으로 변환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입구에서부터 법당까지의 길도 그렇다. 그래서 <제따와나 선원>의 주인공은 그림자다. 오직 그림자만이 이질적이다. 해가 황도를 따라서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기호다. 더군다나 이 공간의 채와 채에 들어가는 방법은 가운데 마당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외곽으로 애둘러서 들어간다. 마당에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이뤄도 이 사뭇 다른 접근 방법은 가운데 마당을 불공(不空;amogha)한다. 불공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꽉 차있다는 말이다. 비어있음으로 꽉 찰 가능성이 더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헛깨비를 벗어 버릴 때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불가에서는 이를 흔히 고무풍선에 비유한다. 허공을 떠도는 고무풍선의 안은 사실 풍선의 바깥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풍선의 고무질 때문에 풍선의 바깥은 풍선의 안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깨버리고 풍선의 안과 바깥이 같다는 걸 알 때 그것을 불공(不空)이라고 한다. <제따와나 선원>은 이 한 마디를 위해 존재한다. 불공의 마당은 <황룡사>의 이야기를 <기원정사>의 벽돌로 세운 시간의 드라마다.

글. 함성호 Haam, Seongho 본지 편집위원

함성호 본지 편집위원

1990년 <문학과 사회>여름호에 시를 발표. 1991년 <공간>건축평론신인상.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반하는 건축>, <아무것도 하지않는 즐거움>을 썼다. 현재 건축실험집단 <EON>대표

haamx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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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프로젝트 : 공간의 경계와 틈

Art&Architecture Project

■ 전시장소 : 사비나미술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1로 93)
■ 참여작가 [예술분야] 김범수, 김승영, 박기진, 베른트 할프헤르, 양대원, 이길래, 진달래&박우혁, 황선태
[건축분야]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림, 남석우, 전혜원, 이충헌, 강은경
■ 주최·주관 : 사비나미술관
■ 협력 :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사비나미술관 설계를 진행하면서 미술관의 주인공은 건축물이 아닌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건축주인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의 흥미로운 제안이 있었다. 예술분야 작가들이 설계 및 시공단계에 같이 협업을 통해 건축과 예술이 조화로울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건축, 조각, 예술영역의 구분 없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작가들도 많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각각의 분야가 전문분야로 세분화됐다.
8명의 작가는 저마다의 작업방식으로 건축을 해석하거나 협업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건축과 미술의 사라진 경계를 경험하며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느끼고 미술에서 건축으로 확장된 작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게 된다.

 

글. 이충헌

 

 

1. 김범수, 서술을 넘어서 (Beyond Description)

나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역사와 배경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지된 상태에서 존재한다. 35mm, 16mm, 8mm 속 각각의 집약된 기억들은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새로운 미적 언어로 확장된다. 그 내용들은 나와의 교감을 통하여 재편집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나의 언어 안에 새로운 영역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숨겨진 감성을 찾으려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이 교차한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와 인간의 꿈, 욕망이 가득 담긴 영화 필름을 한 곳에 모아 재편집 한 뒤 빛이라는 생명을 불어 넣어 부활 시킨다. 조명을 사용하여 영화 필름의 화려함은 문의 형태와 조화를 이루며, 공간의 구조를 확장시킨다. 어둠 속에서 필름의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들의 은은한 빛은 절묘하게 세속과 경건함을 결합시켜 새로운 감성공간을 만든다.

Beyond Description, 영화필름, 아크릴, 조명, 120x210x10cm, 120x190x10cm(each), 2018

김범수

– 홍익대학교 조소과
– School of Visual Arts (New York), Fine Art., M.A
– 11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및 아트 페어, 비엔날레, 등의 아트 프로젝트 참여

– 작가의 “숨겨진 감정”을 찾는 과정을 다루며, 대중문화 내에서 고립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탐구한다.

 

 

말들의 풍경, 벽돌 위에 글씨, 가변크기, 2018

2. 김승영, 말의 풍경 (Scenery of Words)

미술관 벽에 많은 문장을 새겨 넣었다. 문장들은 그동안 생각해 왔던 예술가의 삶의 태도, 작업의 의미에 대한 것으로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문장들을 찾았다. 어찌 생각하면 새긴다는 말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으로 개성 있는 세계를 만드는 작가들의 말이나 생각을 짧은 문장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삶과 작품이 일치까지는 아니어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마무리 했다. 건물 뒤편 산책로에서 올라가는 계단 외벽에 설치된 작품 <말의 풍경>은 창작과 관련된 글귀들을 발췌해서 1층에서 3층 사이의 벽에 설치된다.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도록 하되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문장들이 벽에 새겨질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문장들이 퍼지는 느낌으로 배치하도록 했다. 벽에 새겨진 문장들은 때로는 무의미하게 벽을 장식하는 느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날 문득 새겨진 문장들을 보면서 어떤 질문이나 생각을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김승영

– 홍익대학교 조소과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조각과
– 김종영미술관(서울), 사비나미술관(서울), CEAAC(Strasbourg, France) 등 개인전 개최
–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Philadelphia, USA)등 출품
– 2001년 P.S.1 MoMA(New York, USA)와Nakatuse Village Hall(Oita, Japan) 등 Picnicon the Ocean Project 진행

– 자연재료와 함께 빛, 사운드, 사진 등의 다양한 매체를 혼합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3. 박기진, 통로 (A Path)

9개의 사각틀과 2개의 칸막이가 옥상 개방공간과 삼각형 천창을 둘러싼 공간에 설치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여정의 길을 만든다. 이 길을 거니는 관람자들은 걸을 때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문을 통과하고 막혀진 칸막이를 우회할 때 자연스럽게 생각을 유도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여행이나 체류의 문화적, 지리적, 인류학적 경험을 네러티브 스토리로 구성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생경한 환경에서 생활을 통해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상상력이 발휘된 네러티브 스토리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시각화하여 표현한다. 예컨대 남극이나 DMZ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 인물, 사건, 장치들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하지만 이번 작업은 개인적 작업방식을 벗어나 완전한 장소 특정적 작업을 구현했다. 생각의 범주안에서 공간과 건축을 토대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수차례의 현장답사와 수차례의 장소변경은 여러 가지 작품계획을 양산했으며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옥상의 특이한 구조의 공간이 낙점 됐다. 작품은 사비나미술관의 인사동과 안국동을 거친 은평 시대로의 이행처럼 시간의 진행, 경험과 가치의 변화에 중점을 뒀다. 즉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관통하는 통로를 구상하는 작업이었다. 과정에서 고려됐던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이런 맥락 속에서 구상됐다. 통로를 걸을 때 생기는 발자국 소리는 지난 자취를 되돌아보게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생각하게도 한다. 우리는 걸음의 리듬 속에서 다음 발자국을 상상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사건과 상황, 통과와 우회에서 우리가 인생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통로, 코르텐 스틸, 쇄석, 스텐레스 스틸, 가변크기, 2018

박기진

– JJ중정 갤러리, 퀸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 공간화랑등 개인전 개최
– 버몬트 스튜디오 센타, 인스티투토 사카타,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고양 레지던시 등 국내외 레지던스에서 작업

– 삶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의 장치, 상황, 풍경을 표현하는 설치 작업을 한다.

 

 

 

The Guardians,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UV 프린트, 철, 플라스틱, 60x30x250cm(each), 2018

4. 베른트 할프헤르 (Bernd Halbherr), The Guardians

주차장 입구에는 스테인리스 거울들이 달려 있는 두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그 기둥들은 마치 수호신의 눈처럼 관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 설치작품에서 관객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의 수호신(Guardians)은 자연이다. 오브제는 매우 흔하고 일상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만 이들 주변을 반영하고 있는 투명한 이미지들은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낸다. 각각의 기둥에는 두 개씩 스테인리스 거울이 달려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늘의 이미지를 담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 땅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각 이미지들이 가지고 있는 흰색 톤은 투명하게 만들어지는데, 이를 통해 여기에 투영되는 이미지는 그 이미지의 일부분이 되고 이로써 현실과 이미지가 혼재하게 된다.

베른트 할프헤르

– 독일, 울름 출신
– 사비나미술관, 세화미술관 등 10회 이상의 개인전 개최, 22여회의 각종 기획 및 그룹전 참가
– 중앙대학교 조각학과 교수 재직중

– 매일 보는 오브제 혹은 일상의 장면으로부터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생성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작업하고 있다.

 

 

5. 양대원, 문 밖의 인생 (A Life Outside of the Door)

궁극적으로 나의 작업 모티브는 ‘인간’에서 비롯되는데, 개인으로서의 인간 , 사회적으로서의 인간, 역사적으로서의 인간으로 확대 표현된다. 앞으로도 나는 좀 더 확장된 의미의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고, 그런 작품들을 통하여 잠재된 참된 인간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미술관 4층 문 근처에 설치될 작품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고단한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문 밖의 인생, 철판타공 위에 유성페인트, 가변설치, 2018

양대원

– 세종대학교 화학과
–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 사비나미술관, 금호미술관, 동산방갤러리 등 19회의 개인전 개최, 150여회 각종 기획 그룹전 참가
–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겸임교수 재직중

– 제3회 공산미술제에서 우수상
– 제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미술상

 

 

6. 이길래, 소나무2018-0 (Pinetree 2018-0)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친근한 자연의 얼굴이다. 특히 척박한 땅에서도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이자 상징적 인식의 자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나무의 강한 생명력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본 작품은 자연친화적 시각과 동양적 미의 극치를 조향성으로 보여준다. 작품 세부에서 동(銅)파이프 매체를 연결해 나가는 작업과정은 유기체와 같은 반복적 형태를 통해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한다. 또한 마치 동양화의 붓터치를 형상화하는 것처럼 표현의 질감을 나타낸다. 이는 동파이프 매체와 함께, 나무 표피의 중첩된 마티에르, 절묘한 형상의 만남은 기계적인 현대사회에서 마치 생명의 식수(植樹)를 대신하는 상징적인 의미 표현이다. 소나무는 세월과 풍화가 만들어준, 자연스럽게 왜곡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하늘을 향해 우뚯 솟아 있어 자연의 이상적 원형에 대한 온유적 표현이며 기념비적 인상이 강한 삼지형상을 통해 하늘과 땅을 이어줌으로써,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제의적이고 기원적인 염원을 반영한다.

소나무2018-0, 동파이프 산소용접, 가변크기, 2018

이길래

–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조소과 졸업
– 겸재정선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오페라갤러리 등에서 10회의 개인전 개최
– 1998년부터 꾸준한 그룹전과 단체전에 참여

– 제 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1990)
– 중앙비엔날레 특선(1995)

 

 

7. 진달래&박우혁, 초록의 구조 (The Structure of Green)

사각형 단위의 도시 계획은 빈틈이 없지만, 육각형 단위의 도시 계획은 광장을 만든다. 석영의 결정(結晶, crystal)인 수정은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는 빈 공간(정동, geode)이 있을 때 비로소 생성된다. 또, 세계의 모든 책으로 가득 찬 보르헤스의 도서관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hexagonal galleries)로 구성되어 있다. 진달래&박우혁의 주기적인 육각 결정 배열은 모든 것으로부터 열린 공간, 예술이 모이는 공간, 가능성과 새로움을 위해 비어 있는 공간, 지식과 예술을 탐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초록의 구조, 투명 비닐 시트, 가변크기, 2018

진달래 & 박우혁

– 예술공동체로 디자인, 설치, 영상, 출판 등 영역에서 활동
– 사물과 현상의 질서, 규칙, 규범, 관습, 패턴에 대한 의문을 다양한 태도로 기록하는 가상이며 실제의 플랫폼, 프로젝트 아카이브안녕을 전개

*진달래
– 홍익대학교 조소, 디자인
– 예술프로젝트 ‘아카이브안녕’의 기획자
– 스튜디오 ‘타입페이지’의 대표

*박우혁
– 홍익대학교, 바젤디자인학교 디자인
– 서울과기대 디자인학과 조교수
– 개인전 Crescendo: DOT, DOT, DOT, DOT,(2018), 구체적인 예(2016) 등 개최
– 단체전 예기치않은(2016), APMAP(2015) 등 전시 참여

 

 

8. 황선태, 빛이 드는 공간 (Space Where the Light Stays)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체와 객체, 안과 밖, 혹은 격리된 공간과 열린 공간 사물을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해석하게 된다. 모든 사물에 대한 해석을 철저히 자신을 중심에 놓고 해석하려는 버릇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사물을 해석하려 한다. 닫혀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해석하는 순간 열린 공간이 된다. 중심에서 벗어나 해방됐을 때 물리적 공간과 경계를 넘어서 안과 밖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습관적 관념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막힌 벽은 사라지고 빛과 어둠의 경계가 사라져서 모든 것들로 통하는 창문이 된다.

황선태

–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
– 독일 할레 미술대학 유리회화과
– 독일에서 여러 미술 스튜디오와 레지던시를 경험

–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로, 선과 빛을 유리와 함께 사용하여 작업 속에 공간과 시간을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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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건축하기

Being an architect in the province

15년 전 나는 서울 대학로에 있던 설계사무실을 퇴직하고 고향 근처의 시골로 이사를 했다.
분당으로 감리를 나갈 예정이어서 경기도 수지로 아이들과 함께 이사를 했는데, 감리 나갈 날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수지에서 대학로까지 출퇴근하게 됐다. 수지로부터 대학로까지 출퇴근하는 데에는 편도 2시간이 걸렸고, 긴 출퇴근시간도 그렇지만 야근이며 철야며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상황이었다. 초등학교 다닐때까지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겠다고 한 와이프와의 약속도 있었고 또 다른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시골행을 선택했다.

당시는 SNS가 막 확산돼가던 시기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다운시프트라는 주제가 유행하여 도시를 떠나 시골의 삶을 영위하며 생업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그때 난 인터넷만으로 시골에서 건축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영업을 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 사무실 임대료 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 시골집에서 사무실을 오픈했을 때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이 있어, 근근이 사무실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또 시골에 사는 동네분들과도 사귀어 시골 농가주택을 설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가주택 설계 몇 건 가지고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도시를 디자인하는 국제공모에서 상을 받아 도시와 관련된 일들이 생겼고 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오면서 생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었다. 물론 그것으로도 적절히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십 몇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무실을 닫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할 정도의 고비가 두세 번은 있었던 것 같다. 귀향 3년 후 나는 대전으로 사무실을 옮겨 시골에서의 재택근무를 마쳤다.

창밖에 올해의 첫눈이 내리고 있다.
10여 년전 시골서 재택근무할 때의 겨울이 떠오른다.

시골에 내려간 다음해 3월 폭설이 내려 근 10여 일을 집안에 묶여 있은 적이 있다. 당시 며칠은 불가피하게 그리고 그 다음 며칠은 자발적인 칩거로 집을 떠나지 않았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켓 단추보다도 큰 눈송이들…
허공을 덮은 눈에 의해 찾아온 쓸쓸해 보이는 어둠…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앞산을 오를 때 내가 새긴 깊은 눈발자욱..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고립감…
마치 쟈코메티의 조각과 맞닥뜨린 것과 같은 내 내면의 수축…

그 즈음 나에게 지역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섣부른 희망 그리고 찾아온 고립, 두려움.
그리고 나의 건축이란 그 두려움과 자연스레 이별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글. 최현규 Choi, Hyunkyu M.A.C.K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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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

Catedral de Toledo

톨레도 대성당 정면 파노라마

톨레도 대성당 내부의 모습

톨레도 대성당(스페인어 : Catedral de Santa María de Toledo)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길이 120미터, 너비 60미터, 88개의 기둥과 72개의 둥근 천장으로 지지되는 5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엘 그레코의 작품, 고야, 라파엘 등 화려한 종교 예술품이 전시돼 있어 마치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톨레도 대성당 내부의 모습

글. 박무귀 Park, Mookwi 건축사사무소 동림 대표, 사진작가 http://jjphoto.co.kr(진주성 포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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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불능의 선을 제거하라

Get rid of the uncontrollable line!

디자인의 예술적인 측면은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데 있다.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은 선과 형태, 색채, 질감 등에 대한 철저한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디자인의 완벽함은 인위적인 통제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예술은 지나친 통제가 오히려 창작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통제보다는 저절로 흥에 겨워 맡기는 것이 예술의 완벽에 이르는 길이다. 디자인과 예술의 그런 차이는 자율성의 차이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자율성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디자인은 그것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와 그것을 수용할 사용자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끊임없는 수정과 개선 작업을 요구 받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 과정 때문에 디자인은 통제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디자인은 모더니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이야말로 철저한 통제의 산물이랄 수 있다. 원,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하학의 기본 도형으로 모든 제품의 외관을 강박적으로 맞추려고 한다. 자유로운 곡선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이른바 순수한 형태, 기본 도형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 조각 같은 무정형의 자유로운 형태가 디자인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오늘날 디자인으로 가장 각광 받는 애플의 제품들을 보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한 형태는 철저한 통제 아래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완고한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1984년에 출시된 최초의 매킨토시는 본체와 모니터가 일체형으로서 선 하나가 줄었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스티브 잡스와 그가 아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그들은 모던 디자인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바우하우스가 최소한의 디자인을 추구한 것처럼 잡스와 아이브도 최소한의 디자인을 만들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맥 등의 디자인이다. 뭔가 요소를 줄이고 단순하게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순수한 형태, 완벽한 질서에 편입된 디자인을 좋아하는 그들의 눈을 괴롭히는 것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선이다.

대개 전원의 공급을 위해, 또 어떤 신호나 명령 따위의 전달을 위해 선이 사용된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선이 존재한다. 일단 책상 위를 보면 컴퓨터 주변에 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등은 모두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밖에 프린터, 스피커, 외장하드 같은 주변기기들이 더해지고, 랜선, 여기에 각종 유에스비 선들까지 추가돼 책상은 끊임없이 무질서가 증가하게 된다. 책상의 윗면이나 뒤, 또는 밑을 보면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보기 흉하다. 최근 생산되는 사무실용 책상은 이렇게 늘어나는 선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관건이 되고 있다.

애플의 데스크탑 아이맥은 블루투스 기술로 키보드와 마우스의 선을 없앴다. 이로써 책상 위의 무질서를 줄일 수 있었다.

잡스와 아이브는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무질서의 주범인 선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것은 선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데스크탑 컴퓨터의 경우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형으로 하면 일단 선 하나가 준다. 잡스가 기획하고 1984년에 출시된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처음부터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 뒤 잡스가 애플에서 퇴출된 뒤 모니터와 본체나 나누어진 제품들이 출시되었다. 그러다가 그가 돌아온 1997년, 다시 모니터와 본체가 결합된 아이맥이 출시되었고, 일체형 컴퓨터는 지금까지도 아이맥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선을 없애는 또 하나의 방법은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는 선을 없앴다. 이런 방향은 아이폰으로도 이어져 아이폰 7 모델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애버렸다. 이어폰 역시 선없이 블루투스로 들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 정도로 그들의 선에 대한 증오는 남다르다.

무선 이어폰. 무선 기기들은 보기가 좋아진 만큼 끊임없는 배터리 충전이나 교체를 요구 받는 대가를 치른다.

잡스나 아이브 같은 통제 강박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선을 싫어할까? 선의 속성이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선은 한 마디로 통제되지 않는, 다시 말해 질서로 편입되지 않는 아주 귀찮은 존재다. 결코 진압되지 않는 집 안의 저항세력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사물들은 내가 놓은 방식에 따라 고정된다. 예를 들어 책꽂이의 책은 내가 놓은 방식대로 배열된다. 책상 위의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만큼은 자기멋대로다. 내 마음대로 배열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선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마구 움직이는 것 같다. 누구나 주머니 속 이어폰 선들이 얽혀서 그것을 푸느라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의 속성은 통제를 벗어나 있는 자유로움이며 저항이다.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자유로움을 언제나 좌시하지 않았다. 말 안 듣고 질서는 깨뜨리는 자들을 구속하고 격리시키듯이 사물의 세계에서도 통제 불능의 선들은 제거의 대상이다. 무선 기술의 꾸준한 발전은 결국 이런 저항세력을 통제하려는 동기의 산물이다.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무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력조차 무선으로 보급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최소의 디자인, 완벽한 질서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가를 요구한다. 블루투스 기술은 선이 없는 대신 에너지가 든다. 끊임없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다. 며칠 지나면 배터리를 교체하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아주 귀찮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작동에 대해 전혀 접근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고장이 나거나 했을 때 완전히 속수무책의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기계란 물리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작동한다. 눈으로 그 작동원리를 볼 수 있는 기계와 달리 무선의 기술은 전혀 그 원리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선 없이 작동을 하는 세계는 신기하면서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선 없는 세상은 최첨단의 세계다. 기계가 첨단이 될수록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 결국 선의 통제를 통해 좀 더 우아하고 질서정연한 세상을 만드는 대신 우리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책상 위의 선이 늘어나자 이 선들을 깔끔하게 해주는 케이블 홀더 제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