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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n Architect?

What is an Architect?

우리나라에서 건축사는 어떻게 정의되고 있나? 건축사법은 명확하게 직업에 대한 정의를 제도적으로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유는 두 개의 명칭 때문이다. 건축사와 건축가. 의사나 변호사 등 어떤 직업도 두 개의 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건축사만이 사회적 별칭이 존재한다. 이는 직업 정체성과 관련이 된다.
특허청 발주의 건축 저작권을 언급하는 보고서에 ‘건축설계종사자’로 정의하지 않나, 고용노동부 직업편람에는 ‘건축설계사’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고 세무서를 찾아가면 세금코드가 없다. 어디 그뿐이랴? 각종 직업코드에 건축사는 전문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웃기는 상황이 뭔가? 영어 Architect는 아주 명확하다. 미국이나 영국령을 포함해 국제조직 UIA의 직업 정의는 명쾌하게 되어 있다. 정부로부터 자격증을 받아 건축설계를 하는 자를 말한다. 법적 자격증의 유무로 명확하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 일본과 우리다.
정리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어버린 일본의 예를 더 이상 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본 식민지였던 죄로 한국 건축의 모든 모순과 어정쩡함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각종 파트로 예전 코미디언 말처럼 “그까이꺼 대충~” 의미부여 하고 사업자 등록을 낸다. 집을 지으려는, 건물을 지으려는 일반인은 그래서 건설사업자를 찾아간다. 왜냐면 그들은 건축사던, 건축가던 모른다. 누가 그들을 탓하랴? 건설과 건축의 차이를 알라고? 그건 더더욱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역대 어떤 정부도 이런 부조리와 부작용의 현장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을 야기하는 실제적 내용을 보자. 바로 설계비를 비롯한 각종 업무에 대한 문제다.
건축을 건설의 하부단위와 구성으로 해석한다. 건설의 하부단위로 보기 때문에 각종 공공건축이 진행될 때, 가격의 협상이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디자인, 설계를 당선시켜도 예산의 증감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왜냐면 설계를 건설을 위한 부수적 작업이라 생각하고, 건물 관리는 낭비라고 생각하며, 적당한 시점이 되면 철거하고 새로 지을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건설의 관점이지 건축의 관점은 없다.
그런데 이런 왜곡된 시각을 유지하면 안 되는 상황들이 속속들이 오고 있다. 앞으로는 헐고 새로 짓는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있는 건물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경제 성장의 정체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하라고 한다. 한번 지을 때 잘 지으라는 이야기다. 단지 튼튼하고 안 무너지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건 기본이니까…
짐 콜린즈 라는 경영학자가 쓴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위대한 기업은 지속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수많은 사례와 방법을 제시하는데, 이제 우리나라 건물은 좋은 건물에서 위대한 건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건축은 누가 만드는가? 건축의 리더인 건축사다. 그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면? 후손을 위한 위대한 유산은 그들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에 전 세계가 놀라고, 비통해 했다. 인터넷 SNS에도 여기저기 등장했다. 노트르담은 전 세계인의 유산이며, 건축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 단지 오래된 것은 돼지우리도 있다. 르네상스 이후 건축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예술가 겸 과학자인 건축가가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법적 지위로 책임과 권한을 주어 건축사로 정의했다. 물론 영어로는 과거의 르네상스 건축가도 Architect이고, 법적 권한을 가진 현재의 건축사도 Architect 다. 이젠 정확하게 용어정리부터 하자.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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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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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1 건축사란 무엇인가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무한 경쟁으로 내몰면서 다수의 국민들이 서비스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직업적 특수성과 이익이 없다면 굳이 어려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직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전문직은 직업적 책임만 커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경제적 거래에서 거래의 평등성이 유지되려면 상응하는 가치 보상이 필수적인데도 말입니다.
유독 건축사는 이런 거래의 평등성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죠. 외세에 의해 강제로 변화를 당하다 보니 수동성과 피해의식이 내재화 되어 있고, 모순된 상태로 성장해서 뿌리가 뒤엉켜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지치기의 정리가 필요하고, 더 잘 자라게 하려면… 그런 이유에서 비교적 젊은 건축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김주원 건축사 겸 교수와 이중희 건축사 겸 영화감독에게 직업에 대한 글을 의뢰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김주원 교수 글들에 녹아 있는 건축사의 책임과 소명의식, 그리고 이중희 건축사의 글에 있는 건축사의 당당함과 전문성입니다. 두 분의 글에서도 읽혀지듯 건축사의 자질도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건축사 선발의 엄격함과 윤리 및 직업적 소명을 기준할 면접의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 담론이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부디 많은 공감대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01 건축사란 무엇인가
Meaning of Profession, Architect

필자는 2000년 여름 영국에서 건축실무를 시작, 영국건축사자격을 취득했고 2007년 초 귀국 후 현재는 설계교수, 한국건축사로 활동 중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다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건축사의 업역

우리나라 건축 매체를 접하다보면 건축사란 명칭의 의미 등을 다루는 글들을 일 년에도 수차례 읽게 된다. 이런 배경엔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건축사란 업역과 의미가 온전히 자리 잡지 않았다는 현실이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건축실무 과목을 가르칠 때엔 우리 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먼저 주지시킨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서구에 비해 상당히 늦었으며 건축사란 직업 및 관련제도 역시 상당히 근래 출발했음을 알린다 – 유구한 전통건축의 역사와는 달리. 이 후 아직 정착 중이므로 지금 아쉬운 점들은 많지만 진행 중인 노력으로 한국의 다른 분야가 그러했듯 금세 성숙할 것이라 말해준다. 학교 안에서 5년 여 동안 들은 세상소식 만으로도 졸업 시 건축설계를 외면하는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온 현실이기에 부디 단편적 상황보다는 보다 먼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길 권한다.

영국건축사시험은 대학에 개설된 파트타임 과정을 통해 통상 1년 정도 진행된다. 여러 시험, 인터뷰, 제출물 작성으로 구성된 과정의 첫 주제는 ‘건축사’란 전문직이다. 어쩌면 건축사로서 자신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만일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또는 인식이 불완전하다면 해당 전문직의 사회적 의미 역시 불완전해지기 쉽다.
오늘날 서구의 ‘건축가’란 직업은 르네상스 시기에 업역이 형성됐다고 한다. 이전까지 건축물의 조달은 시공자가 설계를 하는 design and build 방식과 유사했지만 르네상스에 이르러 시공직이 아닌 인문소양을 갖춘 예술가들이 건축주의 요청으로 건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시공자가 짓게 되었다. 때문에 이전 시기의 유명 건축물들은 시공이 주업이었던 길드출신 장인들이 설계, 시공한 것들이 주를 이룬 반면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예술가, 조각가, 공예가, 발명가 출신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는 건축설계가 단순히 시공업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의미 이상이 된다. 왜냐하면 시공업은 생산직, 2차 산업인 반면, 시공업자의 기술어휘를 잘 이해 못하는 일반인 건축주와 건축주의 인문학적 요구조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공업자 간 의사소통을 주업으로 삼는 건축설계는 전형적인 서비스업, 3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건축가의 서비스는 단순히 설계도서의 산출이 아닌 클라이언트의 만족에 목표를 둔다.

필자는 ’9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시 건축학과는 공과대학 소속이었다. 귀국 후 모교 교수로 채용되었을 때 건축학과는 건축대학 소속으로 바뀌어 있었고 ’07년 건축학교육인증원의 인증을 받은 5년제 과정이 되어 있었다. 교과목 구성은 4년제 건축학과의 연장선상인 듯 했지만 건축공학과와는 크게 달랐다. 더불어 학생수행평가항목엔 ‘건축적 사고’라는 전제가 있어 건축의 인문학적 측면을 이해하도록 요구했고 ‘설계’도 상황에 맞는 구두, 문서, 스케치, 도면, 모형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의사소통능력’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이렇듯 현재 우리 사회는 건축주의 요구조건을 보다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건축사를 기대하고 있다. 근래 지정감리제의 확대 이후 시공단계 설계의도구현의 보강책이 모색되는 상황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참조되는 영미권 및 서유럽국가들의 건축사들은 시공단계에 공사감리가 아닌 건축주를 위한 시공계약행정, Construction Contract Administration을 한다. 이는 공익보호를 염두에 둔 공사감리와 달리 설계도서 즉, 건축주의 요구조건/설계의도 구현에 주안점을 둔 업무이다. 반면 공익보호를 위한 공사감리는 건축공무원이 맡게 된다.

 

사회적 위상

클라이언트 즉, 일반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건축설계업종에 대한 인식은 곧 우리 직업의 사회적 위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한 직종에 대한 위상이 어느 정도 높아져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능력을 기대할 경우 전문자격 면허제도가 만들어진다. ‘건축사’는 이렇듯 우리 사회가 기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능력을 검증받은 전문가이다. 때문에 건축사란 명칭과 대관업무와 같은 일정 범위의 업역이 법적으로 보호받고 면허를 통해 시장경제에서 드물게 허용되는 독과점 권리를 부여받는다. 반면 ‘건축가’는 단순히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는 자를 의미하며 직업능력 수준이 불명료하기에 사회적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일 건축사 스스로 사회가 부여한 특권인 면허를 제도적으로 부당하게 활용한다면 법적 보호가 무의미해짐은 물론 건축설계직에 대한 사회적 위상 추락은 자명하다. 사회가 우리에게 애초 걸었던 기대감만큼 이를 저버린 실망감도 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속 소비자(건축주)의 권리는 날로 증대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건축사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오로지 ‘건축사’란 직함뿐 업역은 처음부터 개방되어 있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그 이상의 사회적 독과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건축허가, 설계 등의 모든 업무를 Architect 아닌 건축주, Architectural Designer/ Consultant들도 할 수 있다. 단지 스스로를 Architect라 부르지 못할 뿐. 이러한 배경으로, 유명하지만 건축사는 아닌 영국 건축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Thomas Heatherwick이다. 하지만 Heatherwick 조차 그 능력은 창의적 디자인에 그친다. 그의 디자인이 건축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엔 스튜디오 내 공인건축사들이 있으며 애초 영국건축사시험제도는 설계능력 아닌 프로젝트 및 사무소 운영능력을 검증한다. 즉, 소비자들이 공인건축사를 선택하고 Heatherwick 조차 내부적으로 건축사에 의존하는 이유는 설계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건설사업의 불확실성 및 리스크를 다룰 수 있는 운영능력과 판단력 때문이다. 영국건축사의 사회적 위상은 유럽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매우 높다. 이는 건축사의 법적 보호망이 한국보다 두터워서가 아닌, 그들의 직업능력 수준이 매우 높게 유지되며 공인자격 관련 제도 역시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건축사협회와 건축사등록원의 주업무이기도 하다.

 

전문직 단체의 역할

전문직 단체는 해당 직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양면의 역할을 해야 한다 – 내부적으로는 규제, 외부적으로는 홍보.

2012년 설립된 건축사등록원은 건축사보 실무수련, 건축사실무교육 및 건축사등록부를 관리한다. 이전에도 대한건축사협회가 등록부를 관리했지만 건축사등록원이 독립된 이유는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공적기능을 보다 명료히 하기 위함이다. 건축사등록원 홈페이지 상 ‘등록원소개’ 메뉴엔 ‘윤리선언서’가 한 항목으로 자리한다. 대부분의 건축사들이 상세히는 기억 못하는 윤리선언서가 왜 등록원소개의 한 부분인지 설립목적이나 인사말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등록원이 공기관의 성격으로 독립한 현재, 건축사윤리선언서는 선언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축사윤리선언서는 건축사 스스로 정한 직업행동강령, Code of Professional Conduct이며 건축사등록원은 이에 비추어 등록된 건축사들의 직업행태를 감시하고 이를 어긴 건축사의 제명, 벌금부과 등을 집행할 수 있는 행정기관인 것이다.

영국건축사의 건축법 교본, Architect’s Legal Handbook은 “직업행동강령 목적과 객관적 이행의 완결함은 그 직종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행동강령은 사회, 경제적 요인에 의한 환경 및 태도 변화에 맞추어 변한다”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행동강령은 건축사 스스로 만들지만 본인을 위함이 아닌 사회를 위함이고 강령이 잘 이행될수록 직업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진다고도 한다. 영국 건축사등록원, ARB는 건축사협회, RIBA에 비해 매우 작지만 강력한 행정기관으로서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건축사의 직업행태를 직업행태위원회, Professional Conduct Committee(PCC)를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 판정한다. PCC 발생 횟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며 2018년도에는 29회 열렸다. 각 PCC의 사건개요 및 판결내용은 전체 건축사들에게 공지되어 행동강령을 되새기게 한다.

건축사실무교육 역시 건축사들 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것이다. 2006년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 수립 후 건축실무계로도 이어진 우리 건축제도의 일련의 변화는 이전과 다른 수준의 사회적 위상을 지향하려는 건축설계직군의 자체적인 개선 의지로 볼 수 있다.

이렇듯 건축사등록원이 내부적 규제를 담당해야 한다면 건축사협회는 건축사란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홍보를 담당해야 한다. 때문에 건축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부족을 탓하기 전 우리 건축사협회의 현 기능을 되돌아봐야 한다. 당장 일반 건축주 입장에서 건축설계계약에 대한 안내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대부분 잡다한 기사나 계약문서들이 떠오르고 어쩌다 보이는 안내 글은 개인의 경험담 정도이다. 일반건축주를 위한 건축사협회의 공식안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영국에서 검색을 했다면 영국건축사협회의 “건축주를 위한 건축사 계약안내서, A Client’s Guide to Engaging an Architect”를 PDF형태로 쉽게 받아볼 수 있다. 이 안내서엔 건축사 관련법, 공인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인증 기준, 건축사 계약 기준, 건축사 업무단계, 건축사 업무 및 역할, 대가 산정 기준 및 방식 등이 쉽게 설명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왜 공인건축사와 계약해야하는지, 건축사란 직명이 어떤 의미인지, 표준계약서는 왜 사용하는지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05년 이전까지 이 안내서엔 주기적인 시장통계에 근거한 건축사 업무대가 그래프가 참조용으로 실려 있어 대다수의 건축사사무소, 건축주들에게 이용되었다. 만일 우리 건축사협회도 시장현실에 근거한 합리적 대가기준을 스스로 일반 건축주들에게 참조용으로 제시한다면 현재와 같이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공공발주 대가기준으로 건축사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영국건축사협회는 자체 출판사를 통해 건축사 실무와 관련된 각종 가이드와 서적을 무수히 출판하고 해마다 건축상후보 심사과정 및 시상식을 BBC를 통해 생중계12)한다. 덕분에 건축설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회적 가치인식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소결

1965년 설립된 대한건축사협회 내 건축사 등록부 및 실무능력 유지를 관리하는 건축사등록원이 성립된 것은 불과 2012년이다. 영국건축사협회는 1834년, 건축사등록원은 1931년 설립되어 우리보다 80년 이상 앞섰다. 아직까지 한국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이 충분히 높지 않고 관련 제도가 철저히 이행되지 않는 것은 성장곡선을 감안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스스로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리 사회는 항상 이런 자세로 성장했으며 결과적으로 단시간에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현재 국가건축정책위원회를 비롯, 대한건축사협회, 새건축사협의회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 중인 건축사 관련 제도 개선 노력들이 머지않아 보다 나은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과 제도적 환경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본다.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건축사 · 영국건축사

김주원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런던 에이에이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했고 영국, 한국에서 건축실무 후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설계전임교수 및 건축사사무소 알에이더블유 대표이다. 한국건축사, 영국건축사를 소지했으며 연구와 건축설계를 병행 중이다.
juwon.r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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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2 Architect is Dead!

건축담론

 

02 Architect is Dead!

최근 10년 사이 ‘젊은건축가’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위 건축업자들의 시장이라 여겨져 기존 선배 세대 건축가들이 굳이 진입하지 않았던, 일반주거지역에 지어지는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 근린생활시설 등 분야에 ‘젊은건축가’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부터다. 그러면 이런 젊은건축가들은 전부 건축사인가? 그렇지 않다. 건축시장에서 ‘젊은건축사’가 아닌 ‘젊은건축가’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는 아마도 건축사 자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의 수가 많은 것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건축사 중에서도 작품성 있는 건물을 주로 작업하는 분들, 일정 수준에 오른 분들을 특별히 건축가라 칭해 왔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건축사 자격증 없이 건축 혹은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켜 건축가라 부르는 상황이 되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Interior designer), 디벨로퍼(Develope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등 이제는 모두가 스스로 건축가라 거리낌 없이 부른다. ‘건축사’는 더 이상 힙(Hip)하지 못하고 편협한 이익집단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으며, 반대로 ‘건축가’라는 단어는 ‘건축사’보다 감각 있고 실력까지 갖춘 디자이너 이미지로 포장되었다. 많은 이들이 건축사 자격증 없이 건축가라는 명함으로 건축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건축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일반인들은 구별조차 힘든 ‘건축사’와 ‘건축가’ 용어 사용 또한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9년 현재, 건축사는 더 이상 사회에서 선도적으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아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건축은 더 이상 시대가 변화하며 요구하는 하이테크(Hightech)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축사의 위상은 점점 추락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와 2000년대 이후의 사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새로운 플랫폼인 유튜브(YouTube)의 등장으로 기존 방송국의 권위가 떨어졌듯이, 디지털의 발전으로 건축에 대한 진입장벽 또한 낮아졌다. 3D 프로그램을 통한 설계도면 데이터와 시공 노하우가 쉽게 공유되면서 오랜 시간 전문적 지식을 쌓지 않아도, 훌륭한 스승 밑에서 여러 해 수련 하지 않아도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다. 예전처럼 건축 전문지식과 어려운 기술로 쌓여있던 장벽은 더 이상 높지 않다. 이렇게 건축사는 안타깝게도 다른 분야 전문직 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그들의 영토를 내주게 되었다.

일반인들조차 이제 여러 경로로 많은 건축 지식을 얻고 누구나 쉽게 건축가가 되어 버린다. 아파트 인테리어라는 특수한 시장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축사에게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는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로 설계비를 물어보고 또 깎는다. 그리고 가성비를 운운하며 단순히 가격을 보고 건축사를 선택한다. 건축업자와 무면허 건축가, 건축사가 혼재된 이 시장에서 과연 건축사는 경쟁력이 있을까? 그래도 건축은 인문학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라며, 전문지식인 구조, 설비 분야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축 마스터라며 혼자 자위하고 있는 건축사들은 과연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는 걸까? 건축가가 무한 생성되고 있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이렇게 많은 건축사들이 과연 필요한 걸까? AI가 발달한 미래에도 과연 ‘건축사’는 없어지는 직종이 아닌 존재로 남아 있을까? 건축사 스스로 앞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전문가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례를 이야기해 보자. A건축가는 면허를 대여하여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에서는 막상 제대로 된 실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사무소를 시작했다. 물론 외국 건축사 면허 또한 없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일을 주로 하다 건축 인허가 업무가 필요할 시점에 이른다. 건축주의 요청도 있어 이제는 건축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다시 힘든 공부를 하기는 너무 싫다. 머리 아픈 고민이 생겼지만 학교 선배가 이미 자기가 하던 방식 정말 좋은 팁을 알려준다. 바로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현재 주부로 살며 살림하는 학교 여선배의 면허를 빌리는 것이다. 한 달에 300만원을 입금해주면 그 선배는 만족했다. 문체부에서 주최하는 ‘젊은건축가상’도 받고 싶어 웬만하면 만 45세 이하 선배로 물색했다. 이렇게 쉽게 편법적으로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가 되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B건축가는 현재 건축과 조교수이다. 박사학위를 받느라 나이는 어느새 30대 증후반이 되었지만 막상 실무 경험은 거의 없었다. 가끔 프리랜서로 선후배 일을 도와주고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며 여러 대학에 교수임용을 지원했다. 그래도 건축사 자격증의 필요함은 일찍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 열심히 시험 준비도 하였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공부에만 열중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여러 해 고생하던 중 다행히도 한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몇 년 동안 건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였지만 이제는 무려 교수님이기 때문에 건축사 자격증은 필요 없다. 건축사보다 더 전문가 대접을 해주는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이제 태세전환이다. 건축사는 단순히 인허가 업무를 하는 집단으로 폄하하며 건축사협회는 그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적폐세력이라고 비난한다. 자기를 스스로 고상한 교수이면서 건축가로 생각한다.

C건축가가 있다. A건축가가 알려준 방법 그대로 선배 면허를 빌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어느 순간 면허를 빌린 선배 건축사는 사무실 운영에 참여를 원하며 간섭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건축사 선배가 부담스럽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작년 건축사 시험에 합격한 후배를 소개받아 새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다. 건축사 후배 입장에서는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는 선배 회사의 공동대표가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C건축가는 처음부터 빨리 건축가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마침 부모 소유의 오래된 건물이 있어, 기존 건물을 헐고 신축을 하자고 부모님께 제안했다. 본인은 그 건물로 꿈에 그리던 건축가로 데뷔한다. 하지만 잡지에 소개 할 때는 폼 나지 않을 수 있으니, 부모를 졸라 부모 돈으로 새 건물을 지은 것은 비밀로 한다. 일부 층은 본인 사무실로 사용하며,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 만난 열정적이고 순진한 학생들을 데려와 인턴으로 활용한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노예같이 현상설계공모에 혹사시키며 소모품으로 써버린다. 건축 스토리를 적절히 왜곡하며 아름답게 포장하였더니, 어느새 근사한 건축가로 알려진다.

D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최근 명함을 건축가로 바꾼 후 단독주택 설계를 수주했다. 구청 앞 건축사사무소에서 300만원만 주면 알아서 서류도 꾸려주고 인허가 업무를 진행해준다. 본인은 큰 그림을 그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이고, 건축사사무소는 본인의 그림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실현 시켜주는 실무진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대기업 일을 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이야기이다. 국내 유명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조차 앞 다투어 건축사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의 설계 지시를 받으며 단순히 실시설계와 인허가 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다. 이런 대형 건축사사무소는 자존심도 없다. 그들에게 건축이란 단순히 돈을 벌고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한 수단인가? 여기에 더욱 이상한 상황까지 발생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또는 외국 유명 건축가가 기획하고 설계한 건물의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은 단지 국내 건축사 자격이 있다는 조건만으로 대형 건축사사무소에게 돌아간다. 이런 일이 매년 비일비재 발생하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건축사로서 자존심은 제쳐두더라도, 건축계에서 뻔히 원설계자가 누구인지 아는 상황인데도 염치없이 상을 받겠다고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청을 하는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축사의 현실은 이렇게 좋지 않다. 매년 여름이면 휴가도 가지 못하고, 굳이 어려운 건축사 시험을 몇 년씩 고생하며 취득하는 것은 바보 같아 보인다. 결과가 좋아 한 번에 모든 과목을 합격하여 건축사 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합격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건축사 자격이 생기더라도 유사 명칭 건축가로 같은 업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제대로 된 설계비조차 시장에서 자리 잡기 힘든 상황이다. 효용성 있는 실제적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앞으로 건축사 자격시험을 힘들게 준비할까? 사회에서 빠르고 쉽게 건축가 행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누가 묵묵히 힘든 길로 가려 할까? 전국 웬만한 대학에는 건축학과가 있다.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면 현실은 저임금 시간강사이다. 하지만 겸임교수란 포장된 말로 학생들 앞에서는 건축가인 척하면 되고,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대학에서 수업하는 실력 있는 건축가로 현혹시킬 수 있는데, 바보같이 무엇 하러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려고 애써야 하나? 이것이 지금 건축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공법으로 실무수련을 착실히 한 후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힘든 길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쉬운 길로 가려는 편법을 쓴다. 편법이 아니라 실제로는 불법이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게임에 모두 참여한다. 간혹 게임의 룰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하면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을 이상한 취급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예전부터 계속 그래왔었는데 왜 당신만 다르게 생각 하느냐며, 오히려 현재 건축사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란 여론을 조성하고 건축사는 이익에 눈 먼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버리고 선동한다. 강력한 제재가 없기에 그것이 당연해지는 현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정당당하게 정도를 걸으며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 건축계에는 바른 길을 보여주며 이끌어 주는 어른이 거의 없다. 그들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건축계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젊은 세대 건축사들부터 스스로 노력하고 엄격해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 젊은 세대부터라도 정정당당하게 건축을 해나간다면 조금씩 환경이 바뀌지 않을까?

건축사는 싼 가격으로 용역을 제공하고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분명 아니다. 건축사는 국가에서 공인한 건축 전문가이며, 국민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치 인정은 부족하다. 단순히 건축설계가 종이 값, 잉크 값만 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 건물이 지어지기 까지는 건축사의 아이디어와 전문지식, 공사과정에서 감리를 통한 노력 등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건축사는 시장에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설계비) 얼마예요? 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더욱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 건축사 자격증 획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꾸준히 공부하며 정진해야 한다. 건축사 위상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 일정 수준이 안 되고 실력이 도태되면 과감히 자격증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대한건축사협회는 형식적인 자격 갱신용 실무교육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내용으로 건축사교육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70~80년대 발급된 자격증으로 자기의 가치를 낮춰가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건축사는 절대 자신에게 관대해져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으로 제대로 된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떳떳해야 하고 건축사 업무에 대한 도덕적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대한건축사협회는 강력한 건축사 처벌권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우리는 건축사 한 가족이라는 봐주기식 행동은 그만둬야 한다. 명의를 대여하는 건축사의 자격은 박탈해야 할 것이며, 양심 없이 불법 건축물 인허가 업무를 하는 건축사는 협회에서 직접 형사고발해야 한다. 이러한 자정작업 없이는 앞으로 건축사 위상은 끝없이 추락할 것이다. 미래는 지금부터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신진건축사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싶어 하는 협회가 된다면, 당연히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실무 수련중인 후배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건축사가 될 것이다. 과연 협회 슬로건처럼 건축사는 우리의 삶을 디자인 하는가? 아니다 현재 건축사는 죽었다. Architect is Dead!

 

이중희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이중희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14년 투엠투건축사사무소(2m2 architects)를 설립하여 준공 후 건축가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street culture에 관심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 들과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다. 최근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의 감독을 맡아 다수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middle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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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논현 1021 공명(共鳴)의 건축

Architecture Criticism _ Nonhyun 1021 Architecture of resonance

건축물을 직접 사용하거나 길을 걷다 건물을 바라볼 때 내 몸에 꼭 맞는 듯한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내안의 무엇과 자연스럽게 공명(共鳴)하는 순간이 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건축물 자체의 완성도와 조형성이 뛰어나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거나, 도시 환경 및 주변 자연 풍경과 어울릴 때, 깨끗하고 사용하기 편하며 냉·난방이 잘되어 기능적인 만족이 높을 때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조금은 투박하고 간소한 공간구성이지만 시간의 켜가 묻어있고, 넉넉하고 따뜻하게 다가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인간적인 느낌일 때 역시 공명이 생긴다. 특히 이러한 느낌은 우리가 자주 머무르거나 지나치는 주택이나 사무실 등 크고 작은 도심 속 공간에서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설계를 하는 건축사마다 자신의 건축 어휘와 접근방식이 다르고 당연히 완성된 결과물로서 건축물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건축사들의 작품 설명이나 건축에 관한 글을 보면 하나같이 인간을 위한 건축과 공명을 외친다. 얼마 전 모 설계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의 심사를 하면서 설계설명서와 프레젠테이션에는 빠짐없이 인간을 위한 건축, 커뮤니티 공간, 세대 간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 등을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작업을 스스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을 유심히 보면 과연 그들이 차갑고 폼 잡는 건축이 아닌 따뜻하고 인간을 위한 진정성을 가진 건축인가는 의심이 든다. 각각의 안들이 제시하는 것들은 진정 인간을 위한 공명이 아니라, 대부분 당선을 위한 투시도를 통해 돋보이려고 하는 과도한 몸짓과 어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인간을 위한 건축이란 말 자체는 어떻게 접근해도 될 만큼 해석의 범위가 크고, 과연 무엇을 염두하고 하는 말인지 알기란 매우 애매하다. 모든 건축물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또 그것을 사용하거나, 매일 마주치기에 모든 건물은 인간을 위한 결과물이다. 학교는 수업하기에 편하고, 관공서는 업무를 보거나 민원인을 만나기에 편하고, 병원은 환자가 치료를 받거나 입원, 수술하기 좋도록 설계되었기에 각각의 상황에서 편리함을 고려했고 당연하게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녀가는 박물관이나 유명 쇼핑몰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수익을 남기는 것도 결국 인간을 위함이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다는 이러한 건축물에서 진심어린 따뜻함과 사람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진 김용관

논현 1021

최근 방문한 조성욱 건축사의 논현 1021은 그간 다수의 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교감은 물론이고 건축만이 줄 수 있는 공간감과 디테일의 섬세함까지 훌륭하게 보여준 그가 오랜만에 작업한 근린생활시설이기에 더욱 궁금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실 본 건물을 방문하기 전 도심지 일반주거지역내 임대를 위한 근린생활시설 전용 건축물이라고 하여 법에서 정한 테두리 안에서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과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임대 전용 건물은 빠듯한 예산에 최대면적 그리고 근린생활시설이라는 용도의 한계로 외부 형태와 창문의 디자인 정도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돌아 처음 마주한 느낌은 가파른 도로의 경사와 조금은 어수선한 동네 분위기로 설계하기 매우 어려운 부지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하지만 논현 1021은 예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리 주변 맥락을 배려하면서 차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주변보다 높은 옥탑층 포함 총 9개 층으로 구성되었지만 외부에서의 모습은 위화감 대신 내·외부 공간의 균형감과 절제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건축만의 조형미와 미학적 가치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이용자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여진다. 이는 조성욱 건축사가 설계 소묘에서 말한 근무하기 가장 좋은 환경의 건축물이라는 아이디어와 일치한다. 그의 말대로 최상의 근무조건을 가진 업무 공간이야말로 의뢰인인 건축주에게 최고의 임대 조건을 만들어 주면서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임에 틀림없다.
형태적으로 경사지와 정북방향 일조 사선 때문에 자칫 뻔해질 결과물은 지하1층 기단부 출입 공간의 열림 및 지상 4층 테라스의 관입으로 매스가 분절되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었다. 두 곳의 분절되며 열린 공간은 골목길에서 비교적 커다란 건물의 육중함을 지우고 오히려 경쾌한 느낌을 선사한다. 근린생활시설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땅에서는 가볍게 부유하면서 날아가지 않고 전체적으로는 정돈되어 보이도록 하는 좋은 대안이 되었다. 더불어 층마다 사이사이에 끼워진 옥외 테라스들은 도시로 확장된 공간감과 내·외부가 연결되어 쾌적하고 밝은 업무공간을 만든다. 사무실 내부와 각층 테라스에서 건축물을 통해 보이는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방금 걸어온 골목길 풍경은 분명 매력적인 도시 생활 혹은 업무 환경을 제공해 준다. 이를 통해 인공물인 건축물을 통해 도시 혹은 골목 풍경과 자연스럽게 공명을 느끼는 순간이다.
재료와 색채 사용에 있어서도 조성욱은 평소 주택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곳에서도 명쾌하게 해법을 내놓고 있다. 두 가지의 벽돌과 노출콘크리트, 금속, 유리, 그리고 바닥에 부분적으로 깔린 쇄석은 각자의 물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다른 재료들과 적절하게 섞이고 있다. 특히 기단부 매스의 벽돌 쌓기와 상부 매스의 비교적 거칠게 표현한 벽돌 내어 쌓기의 대비는 회색 컬러의 정연함과 안정감에 미묘한 변화를 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의외의 매력을 준다. 여기에 북측 코너부에서 시간대별로 반사, 투명, 불투명 등의 변화를 가지는 유리의 물성이 벽돌면과 만나는 장면은 논현 1021의 백미가 되고 있다. 도시를 내려다 보는 커다란 뷰를 가지기 위해 여러 가지 창문을 검토 했겠지만 최종 선택된 안은 내·외부 모든 면에 신선한 청량감을 준다. 더불어 중성적인 색채를 가진 벽돌의 사용은 새 건물임에도 오래된 주택가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더하고 주변에 어울리면서 녹아들도록 도와준다.

우리 주변에는 일상 속 여유를 가지고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골목길 작은 공간들이 돈을 주고 사용할 수 있는 편의점과 카페 말고는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특히나 관공서나 임대를 위한 업무 공간일수록 주변을 위한 배려나 여유 공간에 대한 할애는 더욱 힘들다. 원래 우리네 골목 공간들에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지만 어느 순간 팍팍해지고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시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배려와 여유를 찾기보다 대중이 호응하지 않는 거대 담론 위주로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는 싸구려 유행에 갇혀있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 조성욱의 논현 1021은 사람을 위한 울림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규모나 용도의 많은 작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말 오랜만에 주거지역 내 골목길에서 자기 멋을 제대로 부리면서도 주변을 최대한 배려하고, 오감을 자극하며 사람과 공명하는 따뜻한 느낌의 건축을 경험했다. 앞으로 진행될 그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글. 김창균 Kim, Changgyun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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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주도해 온 工業都市 蔚山

Ulsan, an industrial city that has led Korea’s economic growth and industrialization

우리나라 유수 기업들의 집산지인 울산은 70년대 산업화의 기치를 앞세워 중화학공업의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곳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 세계가 놀랄만한 엄청난 경제적 부강도 일궜지만, 그 이면에는 한때 ‘온산병’이라는 이타이이타이병이 발생해 원주민들이 내몰려 집단적 강제이주를 해야 했던 슬픔도 함께 겪었다.
지금의 울산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잘 정리된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태화강 양안으로 잘 정비된 도시공원을 거닐다 보면 예전에 산업화에만 집중하던 도시의 모습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생태적 환경도시로 탈바꿈한 면면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태화강을 중심으로 구 도심지에 마천루를 방불케 하는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도시환경과 생태환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 흔히 겪는 대도시의 시가지가 재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의 내몰림 현상이 타 도시에 비해 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린 시절에 와보았던 울산방어진, 장생포 시장에서 고래의 해체작업을 보고 무서워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번 호에는 울산 처처에 존재하는 멋있고 새로운 풍광 몇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화학공단의 야경
온산 화학공단은 70년대에 조성된 임해 중화학 공업단지로 조성된 국가산업단지다. 주종을 이루는 업종이 정유와 유류비축의 비중이 커서 야간에도 생산을 계속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연출되는 야경이 빛의 장관을 이룬다. 야간촬영 시 수은등 불빛의 차갑고 삭막함 가운데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보태면 공장 굴뚝에서 발생되는 수증기, 연기 등에서 장시간 동안 노출된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대왕암의 일출
대왕암 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대왕암이 있는 곳이다. 대왕암공원은 울산의 동쪽 끝 해안을 따라 여러 가지 바위들이 있으며 원래는 울기공원이라 불렸다가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변경됐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을 뜻한다. 신라왕조 때의 임금인 문무대왕이 경상북도 경주시 앞바다에 있는 왕릉에 안장되고 그의 왕비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의 바위 틈새에 나리꽃이 피면 대왕암의 일출광경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어 그 자체로도 장관을 이룬다.

태화강의 십리대숲
전국 12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울산의 대표 도심공원으로, 태화강과 태화강 양안에 형성된 4.3㎞의 십리대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생태환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태화강을 따라 조성된 태화강 대공원은 도심 속 휴식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푸른 대숲은 해질녘에 찾으면 붉은 노을과 초록색의 대나무 색깔과 앙상블을 이루어 한층 더 낭만적 광경이 펼쳐진다. 영남 3루로 불리는 태화루에서 바라보는 태화강 건너편의 풍경과 백로, 까마귀가 찾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향후 울산광역시는 百里대숲을 조성해 울산의 허파를 만들어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진하해수욕장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에 위치한 동해안의 한적한 해수욕장 중 하나이다.
매년 5월경이면 최정상급 세계윈드서핑 대회가 열려 수백 명의 국내외 선수들이 참여하여 열띤 경쟁을 펼친다. 경기가 열리는 시즌에 이곳을 가보면 세계 각국의 미남미녀 서퍼들이 보여주는 서핑기교도 볼거리이지만 신남의 열정, 오감의 역동들이 넘실대는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다.

강양항의 일출
겨울이 되면 많은 사진가들이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찾는 명소다. 멸치잡이 어선이 만선으로 아침 해무를 헤치며 갈매기 떼를 몰고 항구로 올 즈음, 떠오르는 아침 해 그리고 바다안개의 신비하고 몽환적 풍경이 일품인 곳이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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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 문화가 꽃피는 행리단길

Hengridan-gil where culture blossoms at every corner of the street

#행리단길 #수원핫플 #수원가볼만한곳 #수원데이트 #행궁동

요즘 문화의 중심에는 SNS가 있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행리단길 역시 SNS상에서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관련된 해시태그도 늘어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행리단길의 카페들이 이슈가 되면서 20∼30대층이 행리단길의 골목으로 몰려들게 되었고, 새로운 공방들과 사진관 등 개성있는 문화시설도 위치하게 되면서 행리단길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HISTORY

행리단길은 경리단길처럼 맛집과 예쁜 카페가 거리를 이루었다는 뜻에서 행리단길(행궁동+경리단길)이라고 불리게 됐다. 본래 이곳은 사람들이 그다지 몰리지 않았다. 행궁동 일원을 감싸고 있는 화성성곽 때문에 문화재 보호법이 적용되어 신축, 증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행궁이 있었던 곳이고, 풍수지리적으로 기가 세다는 이유로 역술관과 철학관만이 이 곳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6년, 화성행궁복원사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그 흐름은 바뀌었다. 2020년, 완전한 복원을 목표로 한 화성행궁복원사업은 수원 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도록 만들었고, 관광객을 수원 행궁동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2013년에 개최된 ‘생태교통수원 2013’도 지금의 행리단길을 조성하는데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수원시, UN 해비타트,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미래 도시를 선보이는 축제였다. 이를 개최하기 위해 수원시는 행궁동의 크고 작은 골목길들을 벽화와 꽃, 나무들로 재정비하였고, 차 없이 다니기에 최적화된 길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골목의 상가들도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지금의 행리단길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재 수원시는 ‘밤빛품은 성곽도시’, ‘수원야행’, ‘2018 찾아가는 경기관광박람회’, ‘수원화성문화제’ 등 수원과 행리단길을 홍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광객들의 유입과 준비된 인프라, 수원시의 노력과 함께 SNS 속 OO단길의 열풍에 힘입어 지금의 행리단길이 만들어지게 됐다.

 

FIELD SKETCH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과 신풍동 일원

특별한 표식이 있거나 인위적으로 조성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포털사이트의 지도, 다양한 블로그, 수원시 관광자료집, 경기도 관광안내 자료 등 각각에서 설명하는 행리단길의 범위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불분명한 주소로 인해 행리단길은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가까이에 있는 화성과 함께 단독주택, 점집, 벽화, 카페, 현대한옥, 공방, 사진관들이 골목마다 위치하고 있고 어울리기에는 조금 의아한 요소들이 어우러져있는 모습이 바로 행리단길의 매력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다양한 매력이 공존하는 행리단길. 학생기자들이 행리단길의 VISIT POINT 세 가지를 선정해봤다.

VISIT POINT 1. 행궁과 어우러지는 현대한옥

장안사랑채 내부

행궁아해꿈누리 전경

행리단길을 걷다 보면 심심찮게 한옥들을 만나볼 수 있다. 수원시가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문화 자산인 한옥의 보존 및 활용과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공공 한옥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한옥들은 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데,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보육지원시설인 ‘행궁아해꿈누리’는 관공서에 한옥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옥의 맥을 이어나가려는 수원시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제8회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장안사랑채’, 한옥에 대한 정보를 담아놓은 ‘한옥기술전시관’, 국내 식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전통식생활체험관’, 전통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화서사랑채’ 등 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한옥들이 행리단길 내에 위상있게 위치하고 있다. 한옥형 게스트하우스인 ‘노아재’와 ‘신풍재’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주로 한옥과 연이 있는 중장년층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나 요즘에는 20대 이용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VISIT POINT 2. 골목골목 숨어있는 공방과 카페들

행리단길에는 SNS에서 인기장소로 꼽히는 예쁜 카페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 수 있는 공방들이 위치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이 보이는데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하고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또한 행리단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바로 퓨전 한옥 카페들이 있다는 것인데 화성행궁과 어우러진 곳에서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은 곳에 외관과 창은 그대로 남겨두되 내부는 유니크한 조명과 가구들로 배치한 한옥 형태의 카페들이 있다. 특히 마당과 대청마루가 있는 형태의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는 복잡했던 일상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또한 화성행궁에서 팔달문까지의 거리를 행궁길이라고 한다. 이 곳은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공방들이 거리 양 옆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그 종류가 다양해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각각의 공방들은 솜씨를 드러내는 듯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자신들의 특색을 나타내는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행궁동 공방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같다.

골목길 내부카페

 

VISIT POINT 3. 골목을 물들이는 벽화들

벽화로 그려진 나혜석의 작품

행리단길을 걷다보면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바로 나혜석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골목이 있기 때문이다. 행리단길의 내부에는 나혜석이 태어난 그 생가 터가 위치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그곳을 가리키는 설명만이 남아있지만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나혜석作들을 벽화로 그려놓아 그녀의 흔적을 남겨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수원시에서 제공하는 관광자료집에 따르면 행리단길의 벽화들을 나혜석거리와 연계시켜 역사라는 테마의 한 부분으로 코스를 소개하고 있었다. 행리단길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도로정비가 이루어진 행궁길

 

SUGGEST

■ 행리단길의 지명

경리단길이 유행하면서 00리단길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장소가 증가하는 추세다. 행리단길 역시 ‘행궁동 + 00 리단길’로 합쳐진 이름이다. ‘행리단길’이라는 명칭이 경리단길을 연상시켜 홍보면에서는 긍정적 효과를 보았음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렇게 유행에 편승해 붙여진 이름에 대해 지적한다. 지역 역사성과 정체성에 관계없는 형식적인 명칭이기 때문이다. ‘행리단길’이라는 명칭이 초반 홍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행리단길만의 특성을 앞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행리단길은 경리단길의 아류에 그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지역 고유의 특성과 홍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수원시의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

 

■ 거리의 명확성

지금의 행리단길은 그 명칭을 들었을 때 상상되는 거리의 모습에는 미치지 못했다. 공방, 카페, 벽화 등이 있긴 했지만 OO단길이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아직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수원시 축제로 인한 관광객의 유입, 행리단길 내의 행사개최 등으로 지금보다 다양한 가게가 입점하여 상권이 더욱 발달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방문의 가치를 품고 있는 행리단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물 나혜석

나혜석은 1896년 4월 28일 경기도 수원 신풍면 신창리에서 나주 나씨 나기정의 딸로 태어났다. 증조부가 조선 왕조시대의 호조참판을 지냈고 아버지인 나기정은 용인과 시흥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이러한 집안배경은 후에 나혜석이 동경유학에 오르며 미술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조선 여성 최초의 도쿄미술 전문대학 입학’, ‘한국 최초의 여류소설가’, ‘한국최초의 여류서양화가’, ‘한국최초의 여성운동가’ 등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복잡했던 남자관계와 당시의 가부장적인 시대 흐름에 가족이나 친지들의 외면, 오빠의 경제적 지원 중단, 급진적 사상의 글에 대한 사회의 비난 등으로 점점 병들어 갔다.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8년 12월 한 병동에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난다.

CORNER MUSEUM

자화상

스페인항구

인천풍경

선죽교

강변

수원서호

이화원

 

글. 남두진(Nam, Doojin _ 대진대학교 휴먼건축학과), 허민(Heo, Min _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지(Kim, HyunJi _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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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할리우드 영화의 유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1960년대를 가득 채운 각색된 동화로 존웨인 주연의 서부영화가 있다. 그리고 거의 2000년까지 독일군과 싸우는 미군 이야기를 다루는 전쟁영화. 처음에는 전쟁영웅에서 점차 전쟁의 비인간성에 주목하게 되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월남전을 다루다가 2000년 즈음엔 중동전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몇 개의 신데렐라 류의 영화가 있고,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룬 듯한 인종차별에 대한 것들이 있다.
특히 미국 영화답게 흑인들의 차별 문제가 주로 영화 주제로 만들어 진다.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을 다룬 영화를 본 적은 거의 없다. 숨은 그림 찾기? 할리우드 영화의 다양한 장르를 구분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영화 제목을 보고 뭔가 미스터리한 것일까 생각했다. 숨은 그림이라는 제목은 영화를 보고 나서 대략 30분이 지나니 대충 알 것 같았다.
사회 구조를 계급으로 나누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공통인데, 지배자와 피지배구조는 유사 이래 변한 적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공간의 권력관계다.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공간은 모두 구분되어 있다.
공간은 엄격한 룰과 차이를 가진다. 과거에는 신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면 지금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는 자산으로 나누는 정도? 그러나 자산 외에도 공간을 구분하는 것들은 여전하다. 공간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의 위계가 공간으로 표현된다. 놀랍게도 건축하는 이들도 이를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구분되는 것들도 많으며, 이런 구분을 우리는 차별이라고 한다. 요즘 말로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에 따라 구분되며, 이 차이에는 주종이 존재한다. 차별은 인종, 문화, 종교, 외모 등등 많다. 그중 가장 선명한 것이 인종 차별이며,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다민족 국가들에서 이런 극복 노력, 갈등이 첨예하고 문제제기가 된다.
미국이 대표적인 국가로 흑백 인종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가장 선호되는 영화 주제다. 그리고 인종 구분, 즉 인종 차별은 단지 인식의 차이가 아니다. 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공간의 구분에서 시작되며, 도시처럼 외부공간부터 작은 단위 공간까지 나타난다. 이런 공간으로 구분되는 차별을 별로 겪어본 적이 없으니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이는 어느 세계나 존재한다. 때로는 필요하다. 권위가 있거나 기능으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다.
공간 차별은 권력 관계를 표상한다. 당장 버스의 앞좌석과 뒷좌석으로 구분되고, 도서관의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로 구분된다. 버스 정류장, 공중 화장실, 보행공간 등등 일상의 모든 공간들이 두 개로 나눠져 있다. 나눠진 공간들은 동등하지 않다. 가깝고 넓고 밝은 공간은 상대적으로 멀고 좁고 어두운 공간과 구분된다. 그리고 그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들은 더 좋은 공간을 사용한다. 영화는 이런 공간의 구분과 사용, 독점을 보여줌으로써 공간이 어떻게 일상의 차별과 위계, 그리고 권력관계를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영화 히든 피겨스(이 영화 제목 ‘숨겨진 그림’보다 원문 ‘Hidden Figures’를 발음하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에서 흑인 여성 엔지니어들은 백인이 주류로 있는 전문 공간에서 일하는 하위 계층이다. 당연히 이들의 공간은 그림자처럼 숨어 있고,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드러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는다. 왜냐면 숨어 있다는 것은 능력 유무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드러난다는 것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능력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차별의 명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능력을 반감하는 야비하고 치사한 술수는 아주 단순하다. 화장실 같은 필수 공간들을 멀찍이 떨어뜨려 두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화장실 이용 때마다 수백 미터를 이동하는데 업무 효율이 있을까? 일하다 말고 화장실 가는 길이 수백 미터라는 것은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연히 시간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 손실이 없는 기득권층에서 이들을 볼 때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배경과 이유를 이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일하다 말고 어디 가는 나태한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런 시각이 얼마나 많은가? 드러나지 않는 물리적 환경을 통해서 교묘하게 능력으로 연결해서 차별을 정당화 한다. 매우 교묘하고 비열하다. 공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실 새롭지 않다. 계급적 공간 구성의 정점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전 같은 극적 계급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극명하다. 하인들이나 시중들이 다니는 출입구부터 지하로 다니거나, 건물 뒷편으로 다닌다. 건물의 지하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서비스를 받는 계층이다. 반면에 지상층이나 중심 공간은 지배계층들의 공간이다. 궁궐이니까 당연하다고 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도 공간의 위계가 드러난다.
이런 이유로 업무 중 화장실을 찾아서 수백 미터를 달려나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화장실 사용에서 흑인이나 백인의 구분을 없애버리는 행동은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계급 구분을 없애버린 것이다. 더구나 화장실은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를 해소하는 공간이면서 벌거벗은 것 같은 내밀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백인 여자와 흑인 여자들이 같이 인간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똑같은 인간임을 느끼는 공간의 평등. 이를 통해서 차별로 인한 몰이해와 갈등이 완화되는 것이다. 이런 공간을 통해 계층 구분을 없애버린 것은 가장 강력한 상징 행위다.
세 명의 실존 인물을 내세운 영화는 힘이 있다. 가공이 아닌 실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의 차별을 없애자, 비로소 흑인이 아닌, 여성이 아닌 한 인간의 능력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력은 집단에 효율을 가져다 주었고, 성공을 이끌어 낸다.
영화는 인권이라는 용어가 단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임을 한 방에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수학은 여자의 학문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수학의 복잡함을 다루는 능력은 남자만의 영역이었다. 엔진을 다루는 공학의 세계는 기름때와 힘이 있는 남자의 영역이었지, 이쁘게 단장하는 여자의 영역이 아니었다. 첨단 컴퓨터의 도입을 활용하고 신기술에 열광하는 것은 남자의 세계였지 여자들과는 무관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재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되고, 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여자의 성공, 흑인 여자의 성공으로 차별에 대하는 흔한 인권 다루는 류의 영화로 보면 식상하다. 이 영화는 사람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재능에 대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공간은 매 순간 ‘여자’인 사람의 도전과 시도 앞에서 시험관문처럼 작용한다. 여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회의장, 여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중계실, 여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
영화의 말미를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보는 관객에게 스트레스를 안기지 않는다. 어쩌면 ‘여자’가 들어서면서 과감하게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고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은 숨막히는 공간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도전의 에너지가 가득 찬 공간이 된다. 우주선 중계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은 벽이 없는 광장으로 확장되고, 광장은 사회로 확장된다. 사실 ‘여자’를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라틴계 이민자로, 아시아 이민자로… 타 인종으로 적용해도 동일해진다.
영화 ‘히든 피켜스’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갈등과 힘의 역학관계를 동화 같은 이야기 풀이로 만들어낸 교훈적 영화다.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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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야구장의 조건

Requirements of the 21st century baseball field

올해 프로야구에서 새로운 점은 NC 다이노스가 신축 야구장에서 경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창원NC파크는 21세기에 한국에서 새로 지어진 야구장 중에서 가장 메이저리그 구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야구장은 미국의 경기장 전문 건축회사인 포풀루스(Populous)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990년대 이후 무려 19개 구단이 새로운 야구장을 건설했다. 이 새롭게 건설된 모든 야구장을 포풀러스가 디자인했다. 그러니 이 회사야말로 최고의 야구장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형 야구장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형’ 지향이다. 개방형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한때 유행했던 겸용 구장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메이저리그 구장은 1960~70년대에 한번 건설 붐이 일어났다. 이때 야구장들은 한결같이 미식축구도 할 수 있는 겸용 구장으로 디자인되었다. 미식축구는 보통 7만~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야구장은 3만~6만 명 정도가 적당하다. 이는 경기 수와 관련된 것이다. 매일 하는 야구는 한 시즌에 팀당 161경기를 하기 때문에 매번 7만~10만 명의 관중을 모집할 수 없다. 반면에 미식축구는 주말에만 하고 팀당 한 시즌에 16경기밖에 하지 않는다. 따라서 팬들에게 그 경기 한 번이 대단히 소중하기 때문에 매번 엄청나게 많은 관중이 몰린다. 그렇게 성격이 판이한 두 경기를 한 경기장에서 소화하려면 일단 관중 규모를 축구장에 맞춰 설계할 수밖에 없다.

야구는 그라운드가 축구장보다 크지만 대개의 플레이가 내야에서만 이루어진다. 내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야에 관중석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내야쪽의 관중들은 외야를 바라볼 때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탁 트인 시야를 갖게 된다. 하지만 겸용 구장에서는 그런 외야조차 거대한 관중석으로 차 있으므로 하늘도 도시의 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는 폐쇄형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야구 전용 구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점차적으로 이런 폐쇄형의 겸용 구장들이 철거되고 개방형의 전용 야구장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이름의 변화로 증명된다. 풀터 카운티 스타디움(애틀랜타), 스리 리버스 스타디움(피츠버그), 리버프론트 스타디움(신시내티)이 각각 선트러스트 파크, PNC 파크,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로 대체되었다. 파크(park), 필드(field), 야즈(yards) 등은 미국에서 전용 야구장을 뜻한다.

또 하나 큰 변화는 콘코스(concourse) 공간에서도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콘코스는 스탠드 뒤쪽의 복도 공간이다. 이곳에는 식음료 매장과 화장실, 어린이 놀이공간 등이 나열돼 있다. 과거의 야구장은 음식을 사러, 또는 용변을 보러 스탠드에서 빠져나오면 경기장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21세기형 야구장들은 이 콘코스 공간 역시 개방형으로 디자인한다. 이에 따라 음식을 사러 가거나 화장실에 가면서도 경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사진 1. 경기장 전문 건축회사 포풀루스의 창원NC파크 계획도

사진 2. 1960-70년대에 개장한 대표적인 겸용 구장인 피츠버그의 스리 리버스 스타디움. 외야가 폐쇄적이다

사진 3. 21세기에 신축된 피츠버그의 PNC 파크는 개방형 외야를 갖고 있어서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들어온다.

사진 4. 개방형 콘코스의 개념도. Credit: City of St. Paul

사진 5. 잠실야구장의 높은 담장은 관중 없이 경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TV 화면 캡처

사진 6. 창원NC파크는 한국 야구장 중 가장 낮은 펜스를 갖고 있다. TV 화면 캡처

21세기에 새로 지은 광주챔피언스필드와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이러한 메이저리그의 경향을 따랐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 포수 뒤쪽의 관중석 높이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포수 뒤쪽 관중석의 높이가 지상과 같은 레벨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관중이 그라운드를 더욱 가까이서 느끼고 선수들의 생생한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1층 관중석 레벨이 지상에서 시작되면 스탠드의 기울기가 완만해진다. 그렇게 되면 2층 스탠드의 기울기도 완만해진다. 잠실야구장처럼 오래된 국내 야구장의 2층 스탠드 각도는 굉장히 가파르다.

21세기에 지어진 광주와 대구의 두 신축 야구장은 그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 야구 경기를 TV에서 중계할 때 가장 많이 잡히는 장면은 타자와 포수, 그리고 투수가 대치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때 포수 뒷쪽 관중석이 보이는데, 관중 수가 많이 보일수록 경기가 흥미진진해 보인다. 하지만 잠실야구장이나 부산의 사직야구장을 보면 포수 뒤쪽 관중석 레벨이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돼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관중 없이 야구를 하고 있는 듯해서 침울하다. 경기의 즐거움은 경기 자체와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관중의 열광적인 반응이 함께 할 때 배가된다. 경기장과 관객의 경계에 있는 벽의 높이는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높은 벽은 권위주의를 연상시킨다. 포수 뒤쪽 좌석은 주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는데, 그들을 지상보다 더 높이 띄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단상과 같다. 운동회가 열리면 일반인들은 계단식 스탠드나 운동장 바닥에 앉아 있다. 반면에 그 높은 단상에는 햇빛을 막아주는 천막이 있고, 이른바 내외 귀빈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창원NC파크는 바로 이점에서 광주와 대구의 신축 구장에서 진화했다. 포수 뒷쪽 담장을 대폭 낮추어 지상 레벨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TV 화면에 더 많은 관객이 들어오고 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테이블석이다. 우리나라 야구장은 창원NC파크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야구장이 가장 관람하기 좋은 구역을 테이블석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그것이 구단의 수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낭비이기도 하다.

테이블석은 훨씬 비싼 좌석이다.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테이블석을 만든 구역은 좌석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낭비적인 테이블석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구역은 포수 뒷쪽과 내야처럼 관람하기 가장 좋은 곳이 아니라 외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야는 관람이 불편한 대신 테이블이라는 편안함을 주어 그 시야의 결함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야가 가장 좋은 구역을 테이블석으로 채우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 두 개의 이점을 주는 것이다. 야구장 디자인은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났는데, 좌석으로 인해 다시 권위주의가 돌아오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잠실야구장을 신축할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만은 테이블석의 위치를 효과적으로 배치하길 기대해본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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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Ours are precious!”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어설 줄을 모르고 앵콜을 외쳤다. 이미 한 곡 앵콜을 들었지만 아쉬움은 더 커졌다. 세 시간 가까이 휴식 시간도 없이 계속된 공연이었다. 의자도 불편하고 거미줄이 보이기도 하는 좁은 소극장, 그런데도 관객들은 불편한 좌석도,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가수가 다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빠른 리듬의 곡을 열창한 그는 숨을 몰아 쉬었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 가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눈에 보였다. 가수가 기타의 지판에 왼손을 얹었다. 관람객들은 숨죽이고 시선을 집중했다. 맑은 음성이 극장 가득 퍼졌다. 좀 전까지와는 다른 조용한 노래였다.

생각나는 사람 조용한 사람

그리운 사람 언제쯤일까

무엇을 하고 싶다

나지막이 얘기 하던 사람

오솔길 걸으며 산과 바다와

함께 살고 싶다던 사람

눈물이 마르기 전에 떠나간 사람

눈을 감고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읊조리듯 가수의 노래가 이어졌다. 마치 나에게만 속삭이는 것처럼 가사 한 줄 한 줄이 내 얘기처럼 느껴졌다.

나뭇잎 녹슬어지고 숱한 사연들

깊은 밤 고개를 들어 내게 올 때면

메마른 내 인생이 생각나

목이 없는 가로등처럼

외로운 침묵에 기대어 하루를 보낸다

세 곡을 메들리로 부른 앵콜이 끝나고 가수가 무대를 떠났다. 벅찬 감동이 가시지 않은 빈 무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극장을 빠져나왔다. 마음이 가득 찬 탓일까? 봄비에 젖은 어두운 거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그 날 나와 관객을 사로잡은 가수는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수철이다. 4월 초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에서였다.

4월 6일 학전블루 소극장 가수 김수철 공연 / 사진 _ 한겨레 신문

대학 1학년이던 1983년, 가수 김수철의 솔로 1집 앨범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다시는 사랑을 안 할테야’, ‘정녕 그대를…’ 등이 수록된 앨범의 재킷 이미지는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코트 깃을 올려 세운 그를 부감으로 찍은 모습이었다. 빗물이 땅에 고였는지 물에 그림자가 비쳐 보였는데 전체적으로 블랙 톤이었다. 석기 시대 만큼이나 아득한 80년대의 청춘들은 친구의 생일에 LP판이나 시집을 선물하는 일이 흔했다. 아마도 김수철의 팬이었던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내게도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앨범이 음악을 반대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김수철이 ‘나만의 은퇴 기념 음반’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라는 속사정은 최근에 그의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솔로 1집은 은퇴 음반이 되지 않았고, 우리 곁에는 아직 김수철과 그의 음악이 건재하다. 나는 그와 동시대를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은퇴 음반이 될 뻔한 솔로 1집 / 발매 1주일 만에 폐기처분 된 국악 1집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가수 김수철의 행보에 대해 창비 웹진에 이런 칼럼을 남겼다. ‘그는 ‘가요인 김수철’로부터 ‘국악인 김수철’로 변신했다. 즉 연예인으로부터 예술인으로의 변신이었지만, 그것이 생활의 어려움이 노정 되어 있는 길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그가 발표한 음반들 중 「서편제」의 영화 싸운드트랙을 제외하고는 ‘히트’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는 알아주는 사람 없는 일을 외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너무도 아이러닉하게도 김수철이 국악을 선택하면서 ‘한국적 록’의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계기를 잃어버렸다.’라고 김수철의 변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2002년의 일이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은 2009년 본인의 블로그에 김수철 3집 LP를 3천원이라는 헐값에 샀다면서 ‘오랜 고생을 끝내고, 몇 년 전에 다시 복귀한 걸 보기는 했지만, 밥이나 먹고 살까? 영 걱정스러운 아저씨이다.’라고 썼다. 물론 김수철 3집을 3장이나 가지고 있고 ‘이 판(김수철 3집)에 나온 소리들이 내 소리의 기준이 되었다.’면서 김수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쓴 글이다. **
두 사람은 인기 가수의 위치에 편안하게 머무르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김수철의 어려움을 걱정해서 저런 글을 쓴 것이라. 과연 김수철이 뭘 했기에 저렇게 여러 사람을 걱정 시키는 것일까?
그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연말 굵직한 가요대상을 전부 차지하고, 가왕 조용필을 위협할 정도의 인기를 얻은 정상급 대중 가수였다. 대중적으로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그는 인기와 상관 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어찌 보면 기인의 행보를 걷고 있다. 39년째 하고 있는 우리 국악의 현대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거문고 레슨을 시작으로 국악관현악단의 기본 악기와 우리 장단을 배우겠다고 작심했다. 피리, 대금, 가야금, 아쟁, 사물… 그걸 다 배우려면 30 ~ 40년은 걸리겠다 싶었지만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국악 선생을 찾아가 배우기를 계속했다. 그런 배움을 토대로 우리 소리를 현대화, 클래식화, 대중음악화 하고, 그밖에 뉴에이지 같은 새로운 장르화 하기 위해 39년 동안 작곡-연주-공부-작곡-연주-공부를 반복하고 있다. 기타를 국악에 응용한 ‘기타 산조’라는 것도 그가 곡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새로운 장르다.
그렇게 공부해서 음반을 냈다. 국악 음반만 25장을 냈는데 100만 장이 넘게 팔린 서편제 OST 하나 빼고는 다 망했다. 가요 음반으로 번 돈을 모두 다 투자하고도 모자라 빚도 졌다. 그런데도 계속했다. 하다 보니,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97 대전엑스포, 97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2 월드컵 개막식과 조추첨 행사 음악, G20 정상회의까지 7개 국제 행사 음악을 다 하게 됐다. 지금 김수철은 우리 음악을 서양 악기 연주곡으로 작곡하여 세계인이 듣고 공감하게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김수철이 국악을 현대화 하여 대중에게 알리려고 고군분투 하는 동안 40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 여전히 국악은 안 팔린다. 국악은 광고에 쓰이는 일도 아주 드물다. 1992년 박동진 명창이 흥부가의 한 대목을 불렀던 솔표 우황청심원 광고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국악을 소재로 한 다른 광고가 제작되는 유행을 만들지는 못했다. 2005년 LG그룹 광고에 2008년에는 이가탄 광고에 국악연주와 소리가 소재로 쓰였고, 2013년 KT의 광대역 LTE TVCM에 국악인 송소희가 나와 창으로 메시지를 전한 것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국악이 등장하는 광고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히트한 하나의 유행어를 사용해 만들어지는 광고 숫자보다도 적다.
솔표 우황청심원의 광고 모델은 지금은 작고한 박동진 명창이다. 그는 광고 속에서 〈흥보가〉 중 ‘놀보, 제비 몰러 나가는 대목’을 부른 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동진의 광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것은 내게 소중하지만 지루하고 고루한 것이었다.

조선무약_솔표 우황청심원_TVCM_1992_스토리보드

박동진) 제비 몰러 나간다.

제자들) 제비 몰러 나간다.

박동진) 제비 후리러 나간다.

제자들) 제비 후리러 나간다.

Na)       내일로 이어지는 변함 없는 우리의 가락처럼

             솔표 우황청심원의 약효도 내일로 이어집니다.

박동진) 잘 한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Na)       우리의 것 우리의 자랑

             솔표 우황청심원
조선무약_솔표 우황청심원_TVCM_1992_카피

사진 _ www.kimsoochul.co.kr

김수철은 천재다. 신시사이저와 하프시코드 등 서양의 소리와 중국 악기 ‘얼후’, 우리 전통악기 피리, 아쟁, 태평소, 아쟁, 대금 등의 소리를 조화시켜 작곡한 팔만대장경을 들으면 천재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자 기타를 메고 사물놀이패 한가운데 서서 꽹과리, 징, 장구, 북과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나온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우리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변했다. 김수철이 만든 우리 음악을 통해 비로소 ‘우리 것’은 나에게 ‘소중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나는 것, 재미있는 것, 즐기고 싶은 것이 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수철은 말했다. “국악은 왜 가요처럼 즐기지 못하나, 이런 숙제를 안고 실험을 하고 있고요. 우리 정신과 의식을 담아 현대화한 음악을 궁극적으로는 세계에도 알려야지, 여기까지가 제 목표예요.”
그는 학전 무대에서, 언젠가 100인조 국악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공연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관객의 한 사람으로 함께하는 것이 내게는 새로 생긴 꿈이 되었다.

조선무약_솔표 우황청심원_TVCM_1992_유튜브링크

 

https://www.changbi.com/archives/37677?cat=2638

[창비 웹진 / 2002. 4. 1.]

https://retired.tistory.com/289

[우석훈 임시연습장 / 2009. 10. 23.]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