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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당신의 창작행위를 보호하라!

Architect!
Protect your creation!

건축사의 본업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의 역할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자의 역할이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형되어 왔다. 그 역사만큼 문화와 시간대에 따라 다른 건축을 만들었다.
물론 동양과 서양은 궤적이 다르다. 제사장과 왕의 신분으로 건축 디자인을 하고 진행한 서구와 달리 숨어있는 조력자로 동양은 건축이 진행됐다. 서양은 2천 년 전 유적을 누가 설계했는지 알고, 다른 한 쪽은 모른다. 이름 모를 장인의 솜씨인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이렇게 전혀 다른 과정을 가진 것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왜냐면 이런 역사적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가’ 했는지 중요한 서구사회는 특정한 개인의 타고난 재능에 기반한다. 반면에 ‘무엇’을 만드느냐가 중요한 동양사회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술자를 동반하면 되는 것이었다. 대개 그런 구상은 지식인이 겸할 수 있었다. 세세히 만드는 기술은 몰라도 큰 틀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기에 가능했다. 공급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용자가 겸하는 시대는 이런 방식이 문제되지 않는다.
김주원 교수가 글1)에서 밝혔듯이 누구나 재능 있는 사람이 했던 재능시대에서 법과 제도가 있는 산업 시대로 넘어오면서 ‘누가’ 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왜냐면 산업시대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분리되는 시장사회다. 시장 거래에는 분쟁과 갈등, 경제적 손실과 책임 그리고 잉여에 대한 이익 등이 발생되어 제도가 중요해진다. 때문에 법적 지위를 부여받은 ‘누구 = 건축사’가 등장한다. 아무나 하던 디자인이 특정한 제도권 안에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책임을 가리기 위함이다. 물론 책임의 무게만큼 권한도 부여됐다. 시대가 흐르면서 권한은 점점 집단에서 국가로 확장했다. 권한은 경제적 이익과 산업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서구에서도 크게 인식되지 않았던 ‘창조’가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누가’ 창조했느냐는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바로지식재산권이다.
혹자는 21세기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말처럼 매번 새로울 수는 없다. 한 번의 창조가 소중한 기회라는 것이고, 그 창조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해진다. AI가 통계와 분석으로 창조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현재 더더욱 인간의 창조는 중요한 권리로 보호받고 있다. 그런 지식재산권은 천부적 권리인 인격권을 가진다. 창조한 사람의 권리를 누구도 훼손하지 못한다. 창조의 천부적 인격권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 재산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는 특허로 명확한 창조권리를 보호해주고 있다. 이미 유럽 연합이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이 변화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특히 건축사는? 지식재산권의 침범으로 손해 보았다고 한다면 법적 과정을 거쳐 배상을 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핵심은 경제적 손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당신의 건축 아이디어를 누군가 훔쳐갔을 때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손실은 무엇인가? 진짜 핵심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보상받지 못하는 것에 굳이 흥분할 일이 없다. 보상받는 방법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건축사들이 안타깝게도… 현재의 지식재산권에는 건축이 없다. 그나마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으로 얻을 이익도 적다. 더 강력한 보호장치인 특허권에 건축은 아예 없다. 없는데 어떻게 보호 받으려는가?
건축사들은 창조의 권리를 보호 받고 싶은 것일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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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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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건축설계창작물과 특허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건축담론이라는 코너가 시작 된지 일년이 넘었습니다. 매호 테마를 선정하고 필자들을 섭외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월간 건축사에서 선도적인 주제들을 이야기 하는 것을 신선하게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장 건축사들의 현업에 적용되는 주제도 있지만, 조금 더 확장해서 언젠가는 이야기 하고 고민을 준비할 내용도 선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의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건축사의 창작 권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2011년 특허청에서 디자인 보호법이라는 관련 법안 개정 시 유일하게 건축 및 인테리어 / 부동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시급하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후 건축 관련 어떤 단체, 심지어 당시 국가건축정책위원회도 이와 관련해 개입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지만 특허청에서는 2012년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 재산권적 보호를 위한 방안’이라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당시 대한건축사협회 연구원에게도 자문을 구하며 건축사협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국발명진흥회에서 2014년 건설을 중심으로 한 ‘건축 설계’ 연구가 있었습니다.
많은 건축사분들이 건축 설계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리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지식 재산권은 크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신지식 재산권으로 구분되며, 이중 산업재산권과 신지식 재산권이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작권은 저작권과 저작 재산권으로 구분되는데, 저작권은 태생적으로 창작한 이에게 소유됩니다. 하지만 저작 재산권(Copyright)은 재산권적 의미로 영미법에서는 ‘창작’이라는 노동에 지불하는 ‘재산적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해서 정당한 ‘창작’에 대한 ‘권리보상’이 미흡합니다. 특히 건축의 경우는 더더욱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작권과 산업재산권 등의 구분에서 가장 큰 차이는 권리 침해에 대한 대응에 있습니다. 산업재산권은 특허 등이 해당되며 보다 명확하고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과정입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부동산까지도 산업재산권의 범주로 법제화 했습니다. 아시아는 아직 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만, 중국이나 일본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관련 법안이 미흡하고, 무엇보다 건축산업계의 인식 부족으로 관련 연구 등의 성과가 아직 미진합니다. 이에 월간 건축사에서는 산업재산권 또는 신지식재산권으로 건축 설계가 창작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한 준비를 촉구하기 위해 건축담론 주제로 삼았습니다.

관련 자료 _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적 보호를 위한 방안, 2012년, 특허청 · 건축과 지식재산, 2014년, 한국발명진흥회

 

01 Architectural Design Creation and Patent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다. 그릇은 청자나 백자와 같이 미려한 외관으로 주목 받기도 하지만, 식기나 물잔과 같이 무언가를 담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건축 역시 건축물의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기능적 요소의 개선을 통해 거주자의 쾌적성, 편리성, 안전성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위의 비유는 타 기술분야와 구분되는 건축만의 독특한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건축물의 미적, 기능적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건축설계창작물은 지식재산권으로 인정받고 보호가능하다. 지식재산권은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 얻어지는 정신적 창작물에 대해 인정되는 무형의 재산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축설계창작물의 미적 독창성은 저작권과 디자인권으로, 기능적 개선은 특허권으로 건축사의 지적재산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본인 건축물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보호받는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공간적인 요소의 결합과 배치를 통한 기능 개선과 관련된 아이디어의 보호에 대한 인식과 노력은 다소 아쉽다.

<표 1.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 보호 법령 현황>

저작권은 건축물 디자인의 창작성과 예술성을 보호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어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지 않는 한계가 있고, 디자인권은 그 보호대상을 동산성(動産性)을 가지는 물품으로 한정하고 있어 부동산인 건축물은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두 제도는 건축사의 지적 창작에 대한 노력을 모두 보호해 주지 못한다.

반면 특허권은 건축설계창작물이 포함하는 기능 개선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보호해주며, 그것의 신규성 및 진보성 등이 특허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건축사는 일정 기간(20년) 동안 배타적인 권리를 보유할 수 있다. 건축설계분야에 대한 신규성 및 진보성은 동선의 단축, 프라이버시의 보호, 조망권의 확보, 방재·피난의 효율성 증대 등 다양한 기술적 과제로 판단할 수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벽, 기둥, 지붕 등의 세부 구성 요소들을 결합하여 단순히 단위공간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그 단위공간을 결합하여 하나의 종합공간을 만들고, 더 나아가 수 개의 종합공간들을 결합하고 배치하여 하나의 건축물을 만든 경우까지도 모두 그 공간들의 배열·배치된 형태에 의한 특허권 보호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도 1. 등록특허공보 10-1119034호 아파트 건물의 베란다식 발코니 시공구조> 입면도 / 단면도

예를 들어, <도 1>의 아파트의 발코니 설계방법과 관련된 등록특허(등록특허공보 10-1119034호)를 살펴보면 1.5층 층고의 확장형 발코니를 입면상 엇갈리게 배치하고 확장형 발코니의 상부에는 다락으로 활용할 수 있는 0.5층 층고의 다락형 발코니를 배치하는 설계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계방법이 개별 세대로 인입되는 자연채광량을 증대시키고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적 효과가 인정되어 특허 등록 받은 바 있다.

특허청은 ’14년부터 대한건축사협회와 공동으로 건축설계창작물 특허보호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업 건축사들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건축설계분야 특허 심사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진보성 판단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건축설계 발명 관련 국내 출원사례 및 국내외 심·판결 사례를 분석하여 「건축설계발명 진보성 판단 가이드 사례집」을 발간한 바 있다. 또한 특허 심사 시 현업 건축사 등 외부 전문가와 함께 하는 공중심사 제도를 통해 심사관과 외부 전문가 사이의 진보성 판단 관련 인식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특허심사에 대한 신뢰성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특허가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건축설계분야에 확고히 자리 잡아 건축사들의 지적 창작물에 대한 노력과 성취를 인정받고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길 바란다. ‘특허가 건축사의 열정을 담는 그릇’이 되길 기대한다.

 

김현우
특허청 주거기반심사과 특허팀장
gusdnkim@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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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건축설계창작물과 지식재산권의 귀속 주체

건축담론

02 The Owner of Architectural Design Creation an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건축설계창작물이라는 용어는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건축설계 행위를 통해 창작되는 성과물 또는 부산물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건축물이라 지칭하는 것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건축설계창작물을 건축저작물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견해도 발견되긴 하나, 건축에 작용되는 지식재산권의 유형이 저작권뿐만 아니라 특허권, 디자인권 등이 포함된다는 점에 저작권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건축설계창작물과 관련하여 실무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저작권 문제에 해당하기는 한다.
창작행위가 수반되는 많은 영역과 같이 건축설계창작물 역시 지식재산권의 보호 대상이 된다. 그런데 건축 분야는 다른 유형의 창작물과 달리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이 누구의 것인지, 즉 권리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나타나는 분야이다. 이러한 문제는 통상 창작을 위해 자금을 투여하는 자와 실제 창작자가 달리 나타나는 경우에 쉽게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발주처의 의뢰를 받아 설계를 진행하고 이를 통한 시공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일반적인 건축 분야에서 창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가 주로 논의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라 볼 수 있다.

 

창작자 원칙과 권리 귀속 논란의 원인

법률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먼저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창작한 자(저작권법 제2조 2호)를 저작자라고 명시함으로써 창작자 원칙을 채택하고 이를 강행규정으로 둔다. 저작물을 창작한 자가 저작자이며, 저작자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갖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업무상저작물의 경우 창작자가 아닌 사용자를 저작자로 한다. 업무상저작물은 법인·단체·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저작물을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하면 실제 창작한 종업원이 아닌 사용자를 저작자로 본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에서 저작자를 인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창작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이다. 따라서 창작에 있어서의 기여가 단순히 조언, 아이디어 제시, 지원 등에 불과하다면 저작자로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기여는 아닌 것으로 본다.
특허법 역시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원칙(특허법 제33조 제1항)으로 명시하여 발명자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즉,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발명이 완성된 때에 발명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 특허법 역시 발명자 원칙의 보완으로 직무발명의 경우 일단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종업원에 의해 직무발명이 완성된 때 원시적으로 발명자인 종업원에게 귀속한다, 사용자 등은 예약승계 등을 통하여 직무발명에 대한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발명진흥법 제10조 제3항).
디자인보호법도 디자인을 창작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원칙(디자인보호법 제3조 제1항)으로 명시하여 창작자 원칙을 채택하고 있음은 동일하다. 앞서 저작권법 및 특허법과 같이 단순한 관리자, 보조자, 조언자, 후원자 등은 창작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직무디자인에 대한 부분은 특허법상 발명에 대한 부분과 동일하다.
건축설계창작물과 직접 연관된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법 체계는 명시적으로 실제 건축설계창작물을 창작한 자를 창작자로 인정하고 그 창작자에게 권리가 부여 혹은 권리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법률의 명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왜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 귀속과 관련한 논란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자금을 투입한 것에 대한 결과물의 귀속과 지식재산권의 귀속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격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거래의 대가 인식은 유체물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어떠한 재화를 구입 혹은 제작하기 위하여 지불한 비용에 대한 결과물은 전적으로 비용을 지불한 자에 귀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지식재산권은 유체물을 전제한 전통적 인식과 달리 물건에 대한 권리와 분리되어 다루어질 뿐 아니라, 대가로 지불한 비용의 대상이 지식재산권에 까지 미치는 것인지 불분명한 면도 있다. 결국 창작자의 지적 창출물을 제작에 부수되는 것으로 인식하는지 혹은 창작적 활동 자체가 창작 주체의 중요한 별도 결과물로 인식하는지에 따른 차이라 볼 수 있다.

 

공공발주계약에서의 지식재산권 귀속 주체 논의 사례

이와 유사한 논의로서 공공발주계약에서 계약목적물의 지식재산권 귀속 주체에 대한 논의는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공발주계약은 주로 기획재정부 예규인 용역계약일반조건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런데 계약목적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식재산권을 발주기관이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실제 창작자인 계약상대자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논란이 있었다. 이 논의에서는 국민의 세금을 이용하여 창출한 계약목적물, 특히 여기서 파생된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각 차이에 따라 견해 대립이 나타났다. 대상이 되는 지식재산권을 국민의 세금으로 인한 결과물에 부수한 것으로 인식하는 입장에서는 지식재산권을 계약상대자에 귀속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면, 계약목적물을 얻기 위해 계약상대자의 지적 자산을 이용한 것으로 인식하는 입장에서는 지식재산권의 계약상대자 귀속에 긍정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과거에는 발주기관이 모든 권리를 갖는 것으로 하였으나, 최근에는 예규의 개정을 통하여 계약목적물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발주기관과 계약상대자가 공동으로 소유(용역계약일반조건 제35조의2)함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지식재산권 중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에 대해서는 계약의 목적, 개발의 기여도, 기술개발 결과물의 활용 및 사업화를 고려하여 계약당사자간 협의를 통하여 귀속주체를 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었다. 공공발주계약 분야 역시 과거 유체물을 전제로 한 인식에서 벗어나 지식재산권의 특성을 고려한 권리 귀속 체계 운영이 노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도 지식재산권의 특성을 고려하여 지식재산권을 창작한 자에게 권리를 귀속하는 태도를 원칙으로 한다. 미국은 Bayh-Dole Act가 대표적인데, 이 법은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된 연구결과의 모든 산출물이 연방정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필요를 갖는 자가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기술을 창출한 자가 소속된 비영리기관 또는 중소기업에 지식재산권을 귀속하게 한다. 다만, 그 계약자가 미국 내에 소재 또는 사무소를 갖고 있지 아니하거나 또는 외국정부의 규제를 받는 경우, 권리유보결정권을 제한 또는 배제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 달성에 기여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권리유보결정권을 제한 또는 배제하는 것이 외국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정부가 권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위한 것이다. 한편, 연방조달규정(FAR)도 동일한 태도를 갖는다. 본 규정에 의하여 적법하게 이루어진 정부와의 계약에서 각 계약자는 대상 지식재산권을 정부에 공개한 후, 그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보유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은 산업기술력강화법의 규정이 대표적인데, 이 법은 국가가 위탁한 연구 개발의 성과와 관련한 지식재산권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 시 이를 창작한 자에게 귀속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 요건으로는 특정 연구 개발 등 성과를 얻은 경우에는 지체 없이 국가에 그 취지를 보고할 것을 수탁자 등이 약속할 것,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히 필요할 때 그 이유를 밝혀 요구할 경우에는 무상으로 해당 특허권 등을 실시할 권리를 국가에 허락할 것을 수탁자 등이 약속할 것, 해당 특허권 등의 활용이 상당기간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를 실시할 권리를 제3자에 허락할 것을 약속하는 등 지식재산권 이용에 대해 일정한 공익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유럽연합(EU)은 정부조달과 관련한 지침(EU Directive 2004/18/EC)에서 지식재산권의 귀속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각 회원국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개별국 규정의 예로 영국의 정부조달 서비스 담당기관인 CCS(Crown Commercial Service)의 계약모델 부속문서(Annex 1)는 제10조에서 지식재산권은 공급자(창작한 자)에 있다고 명시함을 확인할 수 있다.

 

시사점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건축설계창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현행법이 창작자 원칙을 강행규정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약관 포함) 등으로 이를 달리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저작권법 및 특허법 등의 법률상 강행규정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칙인 용역계약일반조건에 근거하여 지식재산권 귀속을 공유 혹은 당사자 간 협의할 것을 원칙으로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계약 등에서 법률상 강행규정에 반하는 사항을 정하는 경우 그 내용은 무효가 된다는 점, 행정규칙은 법률의 위임을 통하여 법률이 정한 한계 내에서 작용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계약목적물과 관련하여 그에 파생된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인식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어떠한 계약에 있어서 유체물로서의 재화와 그에 파생된 지식재산권을 구별하는 것은 현재 당연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구별은 당연히 계약 대금의 수준을 달리 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건축설계창작물의 제작 의뢰 시 구체적인 정함이 없이 파생되는 지식재산권이 바로 발주처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는 태도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셋째, 최근 많은 불공정 계약 등에 대해 소위 약자의 지위에 속하는 자의 계약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표준계약서가 많이 활용된다. 건축계약 역시 창작의 의사에 기초한 창작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건축주라 지칭되는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창작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적절하게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이다. 더군다나 지식재산권법의 규범을 모든 업계 구성원 혹은 관계된 시장 구성원에 적절히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적절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건축 의뢰를 위한 계약 시 이를 활용하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창작자 원칙의 실무적 확립 필요

건축물 자체에 대한 권리는 그 건축물 자체에만 효력을 미친다. 반면 건축물, 특히 건축설계창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이후 이루어지는 창작자의 창작활동 및 영업에 까지 효력을 미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지식재산권을 유체물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태도는 창작자의 활동을 제약하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게 한다. 물론 산업적 이익이 개인의 이익과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과 계약상 힘의 불균형이 건축설계창작물에 대한 창작자 권리 문제를 지금까지 유지시킨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문제는 현행법의 태도를 비롯해 국제적인 흐름, 그리고 인식의 변화 흐름 등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건축 산업 차원에서의 대응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라 본다.

 

김시열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부연구위원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지식재산권법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저작권위원회를 거쳐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부연구위원, 숭실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아울러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저작권위원회 및 법원의 감정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숭실대학교 지식재산권법연구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식재산권법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특히 저작권 침해에 있어서 실질적 유사성 판단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 유사도론」, 「저작권 교양강의」 등이 있다.
sykimla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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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어반테라스

Architecture Criticism _ Urban Terrace

도시건축의 생태계

동물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다. 최상위 포식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래쪽 먹이사슬에 있는 개체들을 먹이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다. 이는 전체 먹이사슬에 걸쳐 일어나는 순환체계이다. 자연의 법칙에서 상위 포식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적절한 범위 안에서 하위 개체들을 먹잇감으로 하고 있다. 즉, 생존과 개체 보존을 위한 범위를 넘지 않는다. 오로지 해당 개체의 무자비한 증식을 위한 탐욕적 차원에서 하위 개체들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래쪽 사슬로 내려갈수록 하위 개체들은 상위 개체의 먹잇감으로 희생되어도 무리의 생존을 이어 가기에 충분한 번식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탐욕이 아닌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상위 계층의 포식과 포식자에게 내어 주고도 개체의 지속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번식력과 생명력은 건전한 자연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우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의 생태계를 살펴보자. 우리 도시를 구성하는 최상위 포식자는 어떤 유형인가 살펴보면 이는 바로 ‘아파트’라는 개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도시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함과 동시에 해당 유형의 번식 능력은 아래쪽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유형(단독주택, 다가구주택, 근린생활 시설 등)을 먹잇감으로 삼으면서 도시건축 생태계 자체를 아파트라는 단일 개체의 절대적 우위의 환경으로 바꾸고 있다. 자연 속 유기체이든 도시 속 건축이든 간에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생태계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아님은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다양한 종이 함께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질서를 이루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이자 아름다운 도시사회임을 공감할 것이고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건축 생태계에 치명적 위험 개체로 나타난 아파트는 획일적인 계획에 의해, 대규모로 빠른 속도로 건설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도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환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하마터면 아름다운 도시 파리마저도 아파트라는 개체의 습격 속에서 엄청난 상처를 입을 뻔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파리의 건강한 도시건축 생태계가 ‘아파트’라는 단일 개체가 도시를 뒤엎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우리 도시는 어떠한가? 파리라는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도시건축의 생태계가 우리의 도시 속에 침투하여 빠르게 번식하면서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그리고 이러한 개체의 증식과 침투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홀로 버티기

한국의 도시 안에서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얼마 전까지 어깨를 맞대며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동네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낙후된 동네’로 나뉘기도 하며 때론 동네 전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하지만 때로는 그러함이 예상되는 환경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며 건축물을 설계하는 끈질긴 건축사들도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또는 신시가지와 같이 정형화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건축을 하는 것은 이 끈질긴 건축사 측면에서 본다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우리 도시의 구조 안에서 수십 년 축척 되어 온 건조환경들은 필요에 따라 비워지기도 하고 새로이 채워지기도 하며 성장해 왔다. 새로운 건축의 유형이 나타나 도시를 지배해 오는 속에서도 작은 도시건축의 생태계는 작동해 오고 있다. 도시 전체가 아니라 작은 블록들과 좁은 길로 연결된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이를 바라보는 합의와 전체를 구성하는 모아진 개념이 없다면 끈질긴 건축사에게 도시는 여전히 흥미진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분투할 것이다. 대지를 향해 다가오는 아파트의 위협을 온몸으로 느끼는 도시의 작은 생태계 속에서 새로이 들어설 건축물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즉, 맥락에 대한 문제는 다이나믹함을 넘어 가히 카오스적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가 위치한 대지는 대구의 주간선도로 바로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크기의 땅이다. 상업지역답게 수십 층의 주상복합 건물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고 대지 북쪽 인근의 대구MBC 사옥도 최상위 포식자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변의 컨텍스트가 읽히기는 고사하고 대지와 마주하고 있는 주변 건물들의 용도와 규모는 제각각이라 어디 하나 기댈 언덕이 없다. 초고층 아파트, 근린생활시설, 한 동짜리 빌라, 오래된 주택, 그리고 다가구 주택, 업무빌딩 등…. 얼마나 다양하고 북적대는 도시 맥락인가. 참으로 다이내믹하지 않은가.

사진 윤동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홀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하위 개체로서 다양한 변종들을 번식하기 위해 그래서 도시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그라운드 레벨에서 가로에 대응하는 근린생활 시설은 어쩌면 우리 도시건축 생태계 속 하위 개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굳건하게 이어져 온 최소한의 DNA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는 이와 별개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외부공간을 건물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다. 외부공간인 테라스는 스스로 호흡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근린생활시설 위 2층과 3층의 한 지붕 두 가구를 위한 주거의 기능 속에서 테라스는 꼭 필요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구의 분리와 이어짐을 교묘하게 만들고 있다. 한 가구는 2층의 2/3를 쓰면서 3개의 테라스를 소유하는 반면 나머지 한 가구는 상대적으로 작은 2층 면적과 1개의 테라스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자라는 테라스는 복층형 평면에서 이어지는 3층 공간과 함께 옥상의 가장 넓은 테라스를 가지게 된다. 두 가구가 출입하는 홀에서 시작된 테라스는 내부 공간 속에서 이어짐과 분리를 위해 놓이고 최종적으로 옥상의 넓은 테라스로 연결된다. 테라스는 이 건물의 호흡기관이다. 건물은 온통 백색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스스로 작은 생태계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마감 재료 역시 단순하다. 아연도 강판과 스타코로 구성되어 있다. 석재, 타일, 벽돌, 알루미늄 패널 등 기존의 다양한 재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이 동네에 슬쩍 접근해 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지만, 하위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단실을 둘러싼 알루미늄 루버는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그래서 이곳의 도시건축 생태계를 지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추가적인 선택일 수 있다.

고려해야 할 맥락이 모호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지를 바라보아야 하고 또 대지에서 주변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내가 스스로 서고 스스로 버티는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의 위협 속에서 좀 더 오래 버티는 방법은 오히려 단순하다. 건축디자인 작업이 단지 하나의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전체를 완성하기 위한 부분의 작업이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집단의 광기 속에서 전체 속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은 포기하고 홀로 버티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더디지만, 작은 건축물 하나로 인해 전체가 바뀌어 우리 도시건축 생태계의 건강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굳건하게 버티는 것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DNA가 되기를 믿는 것은 부질없는 꿈일까?

 

조극래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공부한 후 CAMP건축사사무소와 (주)POS-AC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미국 미시건 대학교(Univ. of Michigan)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Washington D.C의 EYP에서 학교건축과 예술공연장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여 일하다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학교에 근무한 이래로 꾸준하게 교육과 실무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도시재생사업 총괄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현장에서의 삶과 건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작은 건축의 변화가 마을의 변화 그리고 주민 생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joe@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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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포근함과 아름다운 한려수도가 있는 慶·尙·南·道

Gyeongsangnam-do where there is cosy warmth of hometown and Hallyeosudo

우포늪 일출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우포늪.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지다. 가장 규모가 큰 우포늪뿐만 아니라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을 모두 아우른다. 이 늪지대는 경남 창녕군의 유어·이방·대합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는데, 둘레는 7.5㎞에 전체면적은 2,314,060제곱미터에 이른다. 이곳에 늪지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때는 1억 4,0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공룡시대였던 중생기 백악기 당시에 해수면(海水面)이 급격히 상승하고 낙동강 유역의 지반이 내려앉으며 형성된 우포늪은 오늘날 람사르 협약에 의해 세계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됐다. 이른 봄날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어나면서 출어하는 어부의 삿대질과 떠오르는 아침해가 앙상블을 이룬다. 이런 몽환적인 장면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황매산의 철쭉 합천군에 위치하는 황매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다. 해마다 5월 중·하순 철쭉축제가 열리면 상춘객으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산정상이 북새통을 이룬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새벽의 운해, 낮의 花海, 석양의 노을, 그리고 야간의 별밤이 시간을 가리지않 는 아름다운 花海의 풍광이 그지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황매산 별궤적

오도산의 운해 오도산은 경남 합천군의 묘산면 산제리에 소재하는 1,133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산이다. 경남 인근의 무선통신을 원활하게 하는 통신 중계국이 산 정
상에 있어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62년 한반도 최후의 표법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산세와 수림이 깊었던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
각이 든다. 부근의 합천댐의 습한 공기가 상승기류를 만나면 아름다운 운해를 형성한다. 올망졸망한 산들의 정상을 넘어가는 雲川을 형성하는 광경은 우리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오도산 산그리메

산청 경호강의 레프팅 경남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인 경상남도 산청은 한여름에 작열하는 무더위를 피해 인근의 대도시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레프팅을 하며 더위를 식히는 곳이다. 한 낮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 가운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레프팅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산청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
서 사람들의 큰 함성과 환호의 아우성이 함께 퍼져 나간다. 약 3킬로미터에 이르러서는 레프팅 과정 중에 보트가 뒤집히기도 하고 낙차가 심한 계류에서 승선인원 모두가 물에 빠진 서로를 보면서 파안대소를 하는 등 한여름의 더위를 잊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악양뜰의 추경
晩秋의 악양 들판 황금빛을 담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악양뜰에 황금빛 가을이 가득하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위치한 이 곳 악양
들판의 한 가운데는 夫婦松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수호신처럼 서 있는 푸르른 빛깔의 소나무 두 그루가 금빛 들녘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夫婦松은 넓디 넓은 들판의 시각적인 지루함을 해소하여 독보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우리 근대사의 영욕과 애환을 그린 시대 배경이 되었던 소설의 현지를 배경으로 각자 주인공이 되어보는 추억을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인근에는 영·호남 교류의 대명사인 화개장터가 있다.

창원시 동읍의 메타세콰이어 길 모내기철이 되면 경남 창원시 동읍의 반영이 아름다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로 발길이 이어진다. 더없이 넓은 들판을 가로 지르
는 도로 양옆으로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가 호위 무사의 열병식을 하고 있는 듯한 경치가 경이롭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바닥의 수면에 비친 반영이 이중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낮의 열기를 한껏 쏟아 부은 태양이 힘을 잃고 메타세콰이어 나무 어깨 뒤로 넘어가 붉은 저녁노을을 연출한다. 하루해가 저물며 인근 주남 저수지에서 날아온 듯한 왜가리 한 마리가 밤을 지새울 둥지를 찾아 날아든다.

남해대교 야경
이 다리가 위치한 남해군의 경제는 주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소규모 공업에 불과했지만 그 좌우의 여수·광양지구, 삼천포지구 등에 대단위 임해공업단지가 설
치·가동됐고, 남해안 및 호남고속도로가 완공됨에 따라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다리의 건설은 부근 지역인 부산·여수·마산·남해·하동뿐만 아니라 동서, 영호남
지역 간 연결체제를 한층 원활하게 함으로써 지역 간의 교류 및 상호발전에 역할을 한다. 또한 이들 다리의 아름다움이 한려수도의 바다경치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든다. 해가 지면 아름다운 한려수도 푸른 바다의 빛깔이 사라진 후 매직 아워의 하늘이 연보랏빛으로 물든다. 남해대교, 창선대교, 삼천포 대교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리 위로 자동차들이 질주하면서 어두워진 남해바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아름다운 우리의 남·해·바·다 한·려·수·도…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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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를 생산하던 공장에서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 침체된 도시의 활성화

From a factory that produced goods to a space that produces culture
– Activation of a Stagnant City

1. 개요
오늘의 아키쌀롱 주제는 기계소리로 이루어진 백색 소음과 함께 빈티지스럽지만 그 어느 동네보다도 지금 이 시기가 추구하는 감성이 있는 곳, 성수동이다. 특히 오늘 소개할 곳은 서울숲을 끼고 있어 한적함이 특징인 성수동 1가와 다르게 삭막한 공장이 멋스럽게 재탄생 된 장소들의 집합지인 성수동 2가이다.
성수동은 전쟁의 상흔과 전후 복구의 피로감 속에 파묻힌 상태에서도 자본주의 시장의 성장이 이루어졌던 1960년대부터 공업단지로 조성돼 공장지대가 주를 이루었고, 이후 70년대부터 최근까지는 수제화 거리와 함께 인쇄소, 자동차 공업사 등이 위치했던 제조업 중심의 지역이었다. 공장밖에 없었던 성수동 일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숲에 고급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 2010년대 이후부터다. 성수동은 강남과의 교통이 편리하고,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는 임차료까지 저렴해 젊은 예술인들이 그들의 작업공간으로 선호하기 시작했다. 특히 폐공장을 활용한 갤러리, 카페, 복합문화시설 등에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작업장을 만들면서 문화지대의 대표적인 곳으로 뽑히는 홍대와는 다른 분위기의 문화구역으로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렇게 성수동의 주요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공간재생’이다. 특히 서울시와 성동구는 붉은 벽돌 마을을 성수동을 상징하는 새로운 브랜드 명소로 삼고, 오래된 건물을 지역의 건축 자산으로 보전하는 작업에 힘을 싣고 있다. 성수동의 공간들은 함부로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세련된 곳으로 탈바꿈하기보다, 지나온 과거와 오늘날의 가치가 공존하기를 택한다.
특히 더 중심적으로 파헤쳐 볼 곳은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를 새로운 용도에 맞게 되살려 성수동의 새로운 로컬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세 곳인 대림창고, 어니언, 성수연방이다.

 

대림창고 : 전시, 커피, 음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갤러리 겸 카페

산업화시대부터 공장들이 들어섰던 성수동은 점차 공장들의 기능이 상실되어 죽은 도시공간이 됐다. 대림창고도 그 맥락과 함께했다. 1970년대에 정미소로 지어 졌던 대림창고는 1990년부터 공장 부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었다. 최근 공장 지대였던 성수동 일대에 카페와 공방,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대림창고가 있다.
대림창고의 처음 이미지는 궁금증이다. 이곳은 ‘대림창고’ 간판보다는 붉은 벽돌벽 사이의 통 유리에 비춰지는 모습에 더 눈이 간다. 붉은 벽돌을 따라 걷다보면 대림창고 내부의 갤러리 공간이 비춰져 이곳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 궁금증에 이끌려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이색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이곳은 공장의 구조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공간을 구획하여 갤러리겸 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기존의 트러스 지붕을 그대로 노출시켜 구조미를 보여준다. 높은 층고로 인해 벽면뿐만 아니라 천장에도 다양한 예술작품을 전시해 눈길을 끌며, 바닥 또한 커다란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공장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여러 예술작품들과 식물들을 어우러지게 배치함으로 공간의 변화를 꾀하였다. 또한 획일화 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이 이곳을 더욱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다.

공장의 역할이 끝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죽은 공간에 예술작품들로 생기를 불어 넣은 대림창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을 접하고, 이색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생기 넘치는 공간이다.

 

onion : 과거 그리고 현재의 공간

소위 요즘 뜨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2인조 아티스트 그룹, Fabrikr(패브리커의 작품인 카페) ‘어니언’은 대림창고와 더불어 성수동의 대표적인 공간재생 사례라 할 수 있다. 한 건물이 가지는 역사성을 보여주듯 시간의 변화 또한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1970년대에 처음 지어져 50여 년의 시간 동안 식당, 가정집, 정비소 그리고 공장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공간의 흐름을 건물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녹슨 철문에 쓰여 있는 ‘신일금속’, 미처 바래지지 못한 페인트자국은 그 축적된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처음 카페에 들어서면 장방형의 중정 공간이 손님을 맞이한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다양한 화분과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중정은 더 생기를 띤 모습이다.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빛바랜 타일들과 갈라진 페인트들은 그 자체로 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통 화장실에서나 쓰일 법한 45사이즈의 타일들이 외부 마감으로 치장되었지만, 전혀 어색함 없이 공간에 잘 녹아들어 있다.

어니언은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마당을 사이에 끼고 있어 내부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옥상을 뚫고 우뚝 솟아있는 베이커리 건물 앞 브릿지를 통해 연결된다. 더불어 베이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는 옥상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친다. 냄새에 이끌려 올라간 옥상 라운지는 시끄럽지만 차분했다. 차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빌딩 숲 사이로 메아리 친다. 그러나 옥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성수동의 여타 다른 카페들이 그러하듯 어니언 역시 ‘날 것의 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옛 건물의 골격은 최대한 유지하되, 마감재를 뜯어내 그 안의 구조를 드러내었다. 내부에 가감 없이 드러난 콘크리트 구조와 창문 너머 중정으로부터 들어오는 초록빛 자연은 한데 어우러져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시켜 준다.
시간이 흐르며 건물의 역할은 다양하게 변했지만, 공간은 긴 시간동안 자리를 지켜내었다. 과거의 기억과 앞으로 기억될 어니언의 공간이 기대된다.

 

성수연방 : 음식, 전시, 상점들의 문화연방

성수연방은 과거 화학공장이던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곳이다. 기존 구조와 추가한 구조로 ‘ㄷ’자 모양의 공장에서 ‘11’자 형의 모양으로 바뀌었고 복도가 생기면서 공간에 다양한 동선을 만들어 낸다. 복도는 공간을 길게 지나가면서 연방의 상점들을 모두 구경을 하면서 지나가게 한다. 또한 기존 공장의 중앙에 있는 주차장은 파빌리온이 있는 체험형 전시공간으로 꾸며 문화공간의 역할을 한다.

연방의 중앙 공간에는 박공모양을 가진 파빌리온이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으로 사용되어 비어있던 공간에 체험형 파빌리온을 설치하여 방문객은 공간을 경험하고 즐기며 향유한다. 파빌리온은 외부에서는 단순한 매스로 되어있어 파빌리온의 존재감만을 방문객에게 인식시킨다. 외부와 다르게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화려한 장식들 사이에 휴식 공간이 있는데 이는 SNS에 업로드하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공간을 전부 즐기고 나면 양옆에 있는 상가들로 자연스럽게 유입된다.

유입되는 방문객은 열주를 따라 길게 늘어진 복도를 따라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연결되고 2층의 상가를 둘러보게 된다. 건너편의 상가를 보고 가기 위해서는 복도의 끝까지 걸어가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복도 끝까지 가는 동안 다른 곳에 눈이 팔려 연방을 둘러보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답사를 가서 한눈에 들어온 곳은 아크앤북 서점이다. 아크앤북은 기존 공장이었던 공간의 역사적 정체성을 가판대에 적용시켰다. 공장 기계들의 배치와 생김새와 비슷해 보이기 위해서 철판을 활용한 가구를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가판대의 한쪽은 책장으로 되어 책을 판매하고 있고 반대쪽은 넓게 책상처럼 되어있어 상품을 전시할 수 있다. 또한 책장 사이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책을 꺼내어 보거나 염장을 구경하다 지친 몸을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많은 도시재생 사업과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보면 공간의 재탄생과 문화의 접목이 대부분을 이룬다. 성수연방도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상가가 입점한 상업공간과 전시를 위한 문화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이러한 성수연방은 도시재생과 복합문화시설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2. 끝

성수동은 위에서 언급하였던 세 곳을 필두로 다른 많은 문화공간이 많다. 그 이유는 구청이나 시에서 많이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성동구청은 성수동의 늘어나는 예술인들의 추세를 반영해 성수동을 젊은이들의 문화예술 광장으로 발전시켜 가겠다는 계획이다. 덧붙여 ‘길’이 한 번 뜨면 전부 다 카페나 식당으로 바뀌기 때문에 ‘유흥업소총량제’ 등을 통해 적절히 규제해 서울숲, 뚝섬역부터 성수사거리까지의 구역을 넓은 문화예술 지구의 개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여러 동네가 00동, 00길로 뜨면서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상업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본래의 그 동네의 멋이 사라지고 다른 모습으로 변질해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성수동은 어떤 변화의 모습을 겪게 될 것인지 기대된다. 다만 바람은 오랜 시간 서울의 역사를 담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는 곳이기에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화롭게 새로운 것들과 어울려 문화예술 광장으로서의 성수동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다.

 

글. 김혜민(Kim, Hyemin _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임보미(Lim, Bomi _ 세종대학교 건축공학부 건축학전공), 윤해성(Youn, Haesung _경기대학교 건축학과), 윤기한(Youn, Kihan, 전남대학교 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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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상실의 ‘시대 우화’ <기생충>

<Parasite> The fable of the time when humanity is being lost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독특한 제목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SNS나 블로그, 그리고 신문에는 여기저기 영화감상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의 미장센도 만만치 않게 이야기 되었다. 아마 이런 글들을 전부 모아 놓고 읽어보면 흥미진진할 듯하다.
영화 ‘기생충’ 이야기다.
1999년 <영화 속 건축이야기>를 출판하고 얼마 안 돼 개봉한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나서 무릎을 쳤다. 우리도 공간을 잘 이해하는 영화감독이 탄생했구나!
그 뒤로 영화팬으로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공간을 능숙하게 배우처럼 이해하고 다루는 봉준호의 영화에 만족했다. 처음 제목을 듣고는 ‘제목 참 거시기 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제목은 그다지 유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을 받은 위력은 대단해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뉴스를 보고 바로 예매했다. 이렇듯 상을 받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대중에게 가장 확실하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상이라고 하니까 최근 논란이 된 정부의 프리츠커 운운이 떠오른다. 이와 관련된 생각을 쓰고 싶어 근질근질 하지만… 그러면 샛길로 샐 듯해서 멈춘다.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주 52시간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제작된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 영화의 내용과도 연관성이 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과 인간적 삶이다. 굳이 그의 이런 발언이 뉴스화가 된 것을 보면, 이 영화가 어떤 시선에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이런 발표처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다룬다. 언 듯 보면 계급투쟁 같은 느낌이 드는 좌파적 이미지가 있지만,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는 영화 속 대사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부자들은 착해. 구김이 없어.” 이 말은 어느 누구도 직접 가해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계급 갈등은 이분법적 구성으로 매우 쉽게 갈등을 단순화해서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런 형식은 갈등을 더 극대화 하고, 상호간의 증오감을 증폭시킬 뿐이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이런 갈등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런 갈등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 쉬워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고정화된 대립구도를 피했다. 가난한 약자는 선하고, 부유한 강자는 악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착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두 개의 양면은 극단적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들이다. 염치없고 도덕감 없는 약자 김기택 가족과 내밀한 계급의식과 감정에 충실한 박사장네 가족.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책임감은 있지만 무능력한 도피자 문광 부부. 교묘하게 입장을 뒤 섞은 덕분에 인터넷 여기저기 이 영화를 분석한 글들의 상당수는 계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분명 이 영화는 계급구조를 언급하고 있다. 공간이 특히 이를 잘 드러낸다.
동선의 길이를 가지고 은유하고, 공간의 장식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공간의 크기가 중요하다. 건축하는 사람이야 다들 알지만 모든 살아있는 동물들은 일정한 자기 영역을 확보해야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 올리버는 그런 이유 때문에 닭이나 돼지들의 최소 공간, 최적 공간을 확보하는 운동을 한다. 미국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치폴레(chipotle)는 움직이기 힘든 축사가 아닌 자연 방목으로 자란 소나 돼지고기만 사용한다.
동물도 일정 공간을 확보해야 스트레스가 없고, 스트레스 받지 않은 고기가 신선하다는 점이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이 영화는 두 개의 공간, 아니 세 개의 공간을 통해서 인간에게 공간의 크기가 갖는 자유로움을 설명하고 있다. 박사장의 집은 속된 말로 운동장 같이 널따랗고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다. 반면에 김기택의 집은 반지하로 공간만 구획되는 크기다. 문광의 남편은 자유로이 떠날 수 없는 지하의 감옥에 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의 크기는 개인의 권력 또는 자본력을 상징한다. 공간이 클수록 비용이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한다. 어느 날 돈 많이 번 부자가 성북동 주택으로 갔다가 후회하는 이유도 단순한 매매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자기 부담으로 해야 하는 것 때문이다. 푸른 정원의 집은 눈으로 이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돈이 지출된다는 의미다. 극단적으로 비교하면 고시원의 크기를 보면 한 사람 누울 자리정도밖에 안 된다. 감옥보다 작은 이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생활한다. 그것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건축화 한 것에 대해 건축하는 이들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아무튼 공간의 제약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주고 심리적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공간을 줄이기도 한다. 감옥이 그렇다.
나중에 김기택이 박사장을 살해하고 숨어사는 지하의 감옥은 영화를 이중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감정적으로 충동해서 자기를 조롱하고 지배하는 박사장을 죽이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의 감옥이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평에서 지상과 지하의 극적 공간 대비를 언급하고 있다. 새삼스러운 영화 미장센 기법이 아니다. 영화감독 ‘프리츠 랑’은 지하의 노동자와 지상의 자산계급을 <메트로폴리스(1927)>라는 무성 영화에서 보여주었고, 일본 SF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오츠카 데사무’ 역시 <메트로폴리스>라는 동명의 만화 영화에서 공간의 위상을 통해서 사회 계층을 보여주었다. 지배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지구라트의 타워에 살지만, 하층 계급은 지하 1레벨, 지하 2레벨 등으로 더 떨어지면서 나중에는 쓰레기 처리하는 하층계급을 제시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의 기업인은 구름 위처럼 높은 곳에 산다.
이 영화의 계급과 공간의 묘사를 보면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2001)>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남아 있는 나날(1993)>이 중첩됐다. <남아 있는 나날>을 보면 종속적 직업인 집사는 충성스럽게 자신의 고용주를 위하여 일을 한다. 그리고 그에겐 관리하는 저택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지만 이런 감정선은 <기생충>에서도 나타난다. 박사장의 집은 김기택이나 문광 모두에게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제한된 자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광의 남편이나 김기택 모두 박사장에게 미안해하고, 충성심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온다. 이들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은 존재들이다. 그건 태생적일 수도 있고, 살면서 실패한 경험들이 주눅들게 해서 후천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성공한 사업가의 파티와 출입구가 다른 하인들의 동선을 보여주는 <고스포드 파크>는 신흥부자들의 성취감과 우월감을 태생적 귀족이 아닌 이들에게서 보여준다. <기생충>에서도 박사장은 수시로 ‘선’과 ‘냄새’를 언급하며 교묘한 우월감과 계급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 이삼년 사이에 벌어진 사업의 성공으로 이뤄낸 결과이지 오래전부터 부자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박사장의 아내가 말하는 짧은 대사에서 “어느 날” 부자등급에 올라간 익숙하지 않은 교양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사실 그건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기택 또한 문광의 남편을 보고 그런 우월감을 표출한다. 남의 집 지하에서 아무도 몰래 숨겨진 공간에 살고 있는 문광의 남편보다 자신은 우월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떡할거야”라는 질타 아닌 질타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립된 자기 공간을 가진 박사장과 반지하지만 그래도 자기 가족의 공간을 가진 기택,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숨겨진 공간에 얹혀사는 문광 부부. 공간에 대한 크기의 은유만큼 소유관계의 은유도 드러내고 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미장센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유독 중첩된 영화는 리메이크된 <하녀(2010)>였다. 동일한 계급을 드러내는 영화지만, 영화 <하녀>는 싸구려 이미지의 부잣집 건물이 나온다. 건축적으로는 열등감과 테마파크식의 표현으로 드러난 저택이 <하녀>의 배경이었고, 저택의 부자는 말 그대로 몸의 지방층과 성적 욕망으로 점철된 사악한 이기주의자로 묘사 되었다. 반면에 <기생충>의 박사장 부부는 젊은 엘리트답게(?) 좀 더 지적이고 우아하게 집을 선택했다. 지적인 집의 선택은 건축가(사)의 강조에서 드러난다. 일반인들은 누가 설계했는지 관심이 없고, 단지 얼마짜리이며 몇 평이며,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여유 있게 많이 가진 자들은 그런 것들을 숨긴 채, 우아한 관심으로 표현한다. 마치 원래 가치 지향적이었던 사람들처럼… 그런데 이런 가치 지향은 박사장 부부의 내면이 아니었고, 타인의 강요와 시선이었다. 기우가 처음 박사장 집을 들어서는 순간 문광의 집 설명에서 드러난다. 문광이 집주인이 바뀌어도 마치 집의 매뉴얼을 아는 관리자가 필요한 것을 강조하는 셈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뭔가 복잡하고 내용이 많으면 힘들어하는 심리적 속성이 있고, 문광은 그것을 이용했던 셈이다. 이렇게 보니 이 영화에서 건축은 이야기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가상의 건축가(사) 남궁현자의 존재와 가치가 인정되지 않으면, 문광이라는 집사가 같이 살 이유도 없고 지하구조에 대한 이야기 전개도 불가능해진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미국 부자들이 집지을 때 가장 선호한다는 리차드 마이어가 떠올랐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백색으로 지어져 있고, 적당한 곡선으로 차가움을 극복한다. 대체로 푸른 잔디위의 하얀 집은 환상적이기도 하고, 명쾌하다. 하얀 집은 어떤 장식물도 어울리고, 특히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품의 배경으로는 제격이다. 음악이나 그림, 조각은 어느 날 갑자기 돈이 많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좋아하면 고문이 되는 것인데, 부자들의 세계로 가면 자의반 타의반 이런 예술품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그들과 대화가 되고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도 이런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 그림이 벽을 채우고, 초등생 아이 파티에 클래식을 연주하는 것도 그런 의미로 보인다. 인디언 좋아하는 아이가 성악을 좋아할 리 만무고…
이 영화의 마지막이 우울한 점은 그런 패배감을 그냥 인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왜냐면 주인공 기우의 희망은 어린애 같은 대사로 환타지로 나오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기로 했다.” 이 허망한 말은 뭘까?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전제 조건들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합법적으로, 구체적으로… 영화는 이런 모든 조건들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돈을 전혀 벌 수 없을”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겨울인 것도, 눈 덮인 산자락인 것도 빈털터리의 불안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이 영화 전체의 주제가 되는 ‘비인간성’의 사회 시스템일 수도 있다. 등장인물 누구도 냉열한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는 순간순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고 도구로 본다. 엄청난 성공 열매와 실패자에 대한 대응이 극단적인 현대사회가 사람들을 서로 서로 도구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적 한계를 너무 쉽고, 단순하고, 그리고 집중력 있게 묘사할 수 있는 탁월한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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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거실문화와 안마의자

Living Room Culture & Massage Chair in Korea

길거리를 지나다가 종종 마주치는 바디프랜드(bodyfriend) 매장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이처럼 독특한 의자가 있을까?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는 의자라고 부르기에는 외관이 좀 과잉된 물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의료용 안마의자라고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 찜질방 같은 곳에서 보았던 안마의자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이 의자의 성공을 이끌었는지 모른다.

바디프랜드의 디자인은 해외의 안마의자들과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스마트폰 같은 IT 기기뿐만 아니라 안마의자라는 분야에서도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에 한국의 의자 디자인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큰 격차가 있다. 가구 디자인은 한국의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다. 안마의자의 인기와 뛰어난 디자인은 한국의 독특한 의자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 ‘아벤타(Aventar)는 미국의 최고 안마의자 브랜드와 견주어도 디자인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가구 디자인, 그 중에서도 의자 디자인의 낙후는 디자이너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한국의 대중이 스마트폰이나 가방, 자동차에 대해 갖는 관심과 투자만큼이나 의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애정을 보인다면, 이 분야 또한 크게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실내 디자인 분야는 근대화 과정에서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주택문화가 바로 한국 가구 디자인, 특히 의자의 발전을 저해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진 2) 미국의 안마의자 브랜드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루라코(Luraco).

한국의 부동산 가치는 지나치게 높다. 평생 임대주택에서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유럽의 서민들과 달리 한국의 서민들은 주택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집을 사고 빌리는 데 과도한 돈을 쓰니 상대적으로 가구와 조명 같은 것에 쓸 여유가 없어진다. 혼수품 목록에는 가전제품이 늘 상위권이고, 가구 중에서는 장과 침대가 으뜸이다. 최근에 안마의자가 10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근데 안마의자는 가구로서의 의자라고 보기 힘들다.

사진 3) 역시 미국의 안마의자 브랜드인 오사키(Osaki)는 루라코와 달리 매끈한 표면을 자랑한다.

한국의 주거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이고,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포함하면 무려 75%에 이른다. 대량생산된 아파트는 한국의 거실문화를 획일화했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역시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한국의 거실은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응접실의 기능보다는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고 주말에 아버지가 낮잠을 자는 기능에 더 적합하게 꾸며진다. 한쪽 벽에는 긴 소파가 놓이고 맞은 편에는 TV가 놓이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 벗어난 거실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저택에서나 볼 수 있다.

사진 4)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 디자인.

사진 5)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LC1.

그러다 보니 다양한 용도의 의자가 발전할 수 없다. 의자 문화의 꽃은 라운지 체어(lounge chair)라고 할 수 있다. 게리트 리트벨트의 적청 의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 르 코르뷔지에의 LC1,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의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 찰스와 레이 임스의 LCW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의자들이 모두 라운지 체어다. 라운지 체어는 거실의 꽃이기 때문이다.

사진 6) 찰스와 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LCW.

반면에 한국에서는 이 라운지 체어가 인기가 없다. 소파가 있는 공간에는 라운지 체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소파는 기능적으로 푹신한 패딩(padding)을 요구한다. 패딩 위에 가죽이나 천을 씌운다. 반면에 라운지 체어는 대개 패딩 없이 금속이나 합판의 프레임 구조가 노출되는 형식이다. 원래 그런 의도로 디자인한 건 아니지만, 한국 가정에서 소파는 사람이 옆으로 누워 맞은 편에 있는 TV를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셈이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아버지는 졸다 깨다를 반복한다. 반면에 라운지 체어는 똑바로 누워서 TV를 보거나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도록 디자인되었다.

아무튼 한국 가정의 이런 획일적인 거실문화는 의자 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한다. 원래 의자란 다양한 디자인 품목들 중에서도 가장 다채로운 조형이 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건축사와 디자이너들이 의자를 통해 자신의 창의성을 자랑해온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가구로서의 의자가 아니라 바로 의료 기구에 가깝다는 안마의자를 통해 그 창의성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안마의자의 인기는 그것이 단지 가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의자란 원래 인테리어 스타일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바우하우스 스타일, 미니멀리즘, 북유럽 스타일,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바로크, 로코코, 예술공예운동, 아르데코 그 무수한 스타일은 의자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소파를 중심으로 한 한국 가정의 획일적인 실내에서는 의자를 결정할 때 스타일보다는 기능을 우선적으로 본다. 등받이와 발받침이 기계 장치를 통해 자동으로 조정할 수 있는 리클라이너(recliner) 의자가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마의자는 리클라이너 의자가 좀 더 첨단화된 것처럼 보인다.

안마의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물론 자동 기능에 있다. 이런 점에서 안마의자는 가구라기보다 전자제품이기도 하다. 안마의자의 자동 안마 기능은 왠지 진보적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디자인은 그것을 강조하게 되는데, 그것이 과잉 물성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그것은 매끈한 스포츠카를 닮기도 했고, 첨단 과학의 산물인 아이언맨도 닮았다. 이런 외관은 스타일보다 첨단 기능과 과시적 형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 틀림없다. 안마의자가 혼수품의 높은 순위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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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인생이란 뭘까?”

” Ultimately… What is life?”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세 명과 기모노를 입은 여자 한 명이 각각 우산을 쓰고 서 있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로 보이는 장소의 정원이다. 50대 말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네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 보인다. 분위기가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그냥 헤어지기가 허전해서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중 한 남자가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제 지위도, 영예도 필요 없다고, 돈도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지위도 있어 보이고 돈도 많아 보이는 인상이다. 평생 지위와 명예, 돈을 추구해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친구가 믿을 수 없다고, 그럼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사랑’이다. 귀밑머리 허연 남자가 돈은 조금만 있어도 되고 사랑만 필요하다고 얘기하니 웃음이 나온다. 산토리에서 만드는 캔커피 ‘보스 오토나노류우기’의 TVCM에 나오는 대화다.

남1)  난 이제 지위도 필요 없어.

        영예도 필요 없어.

        돈도 조금만 있으면 돼.

남2)  믿을 수 없군.

남3)  그럼 넌 이제 뭐가 필요한데?

남1)  사랑.

여)   앗하하하하!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_TVCM_2011_카피)

보스 오토나노류우기의 광고는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3편을 연속해서 보면 이들의 대화가 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고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깨닫게 된 통찰을, 네 사람의 목소리로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들려주고 있다.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_TVCM_2011_스토리보드

남3)  질투심

남2)  허영심

남1)  전하지 못한 마음

여)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

남1)  우리 어른들은

남2)  쓸데없는 것을

남3)  끌어안고 살고 있어.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②_TVCM_2011_카피)

남3)  결국… 인생이란 뭘까?

여)   옛날에 그런 얘기 자주 했었지요.

남1)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남2)  난 알고있어.

여)   응?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남자2를 돌아 본다.)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남2)  (재채기)에이취!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③_TVCM_2011_카피)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③_TVCM_2011_스토리보드

설탕과 지방이 없는 캔커피를 질투심이나 허영심, 돈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는 혹은 버려야 하는 중년 이후 노년의 특징과 결합시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광고는 성인병에 노출된 노년의 몸이 지방과 설탕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노년의 마음은 쓸데없는 욕심이나 겉치레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인이 다 된 나이에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솔직한 고백도 공감을 일으킨다. 보스에 붙은 브랜드명 ‘오토나노류우기(大人の流儀)’는 성인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일본어 사전을 보니 류우기(流儀)는 ‘그 사람의 독자적인 방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캔커피 이름 하나에도 인생의 철학을 담는 산토리라는 회사가 놀랍다. 겨우 15초짜리 광고 세 편에 그렇게 심오한 이야기를 그렇게 힘을 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담을 수 있는 카피라이터의 재치가 부럽다.
보스 광고 속에서 죽은 이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남은 친구들에게 이런 상념을 불러일으켰을까? 평생 탐욕스럽게 돈과 지위를 쫓았을까? 질투와 허영으로 인심을 잃었을까? 아니면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었을까? 생각은 ‘내가 죽으면 나의 지인들은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하는 데까지 뻗어나간다. 내가 참석할 수 없는 행사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 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의 죽음을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라도 미리 적어 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재미있게 살다가 미련없이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국밥 한 그릇 배불리 먹고 가라고. 죽으면 못 하니까, 살아있는 너희들은 서로 마주 앉아서 밥 한 번 더 먹으라고.
찾아보니 본인의 장례식에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틀어주는 내용의 TVCM도 있다. 전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는 2017년 죽은 이가 자신의 장례식에 쓸 음악을 미리 선곡해서 플레이리스트(Playlist)에 담아둔다는 내용으로 동영상 광고를 만들었다. 장례식에서 관을 든 사람들은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록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장례식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미국의 록 밴드 디앤씨이(DNCE)의 바디무브즈(Body Moves)라는 노래다. 광고 모델로 나선 DNCE의 멤버는 장례식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틀면 엉망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의외로 영결식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관을 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망자가 마련해 준 잔치판에 모여 슬프지만 평생 잊지 못할 파티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장례식이 꼭 조용하고 슬프란 법이 있나? 장례식에서 이런 재미있는 일도 가능하구나, 신선한 발견이다.

남)     알리맨*이 ‘내 장례식에서 이것들을 틀어줘.’라고 이름 지은

          플레이리스트(PLAYLIST)에 우리 노래 몇 개를 올려 놓았대.

          장례식에서 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장례식이 좀 엉망이 되지 않을까?

BGM) DNCE의 Body Moves

자막)  ‘내 장례식에서 이것들을 틀어줘.’

          그녀는 당신이 이 노래를 듣기 원했을 거예요.

          (스포티파이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찾고 팔로우하고

          그리고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어요.

(스포티파이_TVCM_2017_카피)

스포티파이_TVCM_2017_스토리보드

스포티파이 광고의 유튜브 링크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죽으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컬러풀한 색상의 옷을 입고 조문 오라고 하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외국인인데 BTS나 2NE1의 노래를 틀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내가 죽은 뒤 문상 온 사람들이 너무 무거운 마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유쾌하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야 한다. 돈은 조금이면 되고 영예나 지위, 지방과 설탕은 필요 없고, 단 하나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보스 TVCM의 충고를 따르면 가능할 것도 같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나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만들지 말자. 질투나 허영심에 이끌리지 말고, 나만의 방식대로 내 스타일의 삶을 사는 거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나 스포티파이 영상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남은 인생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나니 다가오는 더위도 나이 먹는 일도 두렵지 않게 느껴진다.

*알리맨 : 스포티파이 서비스에 가입한 아이디로 추정된다.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③_TVCM_2011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3ASwNgE7Zw

(스포티파이_ TVCM_2017_유튜브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