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사의 제안! 우리 도시를 건축으로 바꿔라!

Architect’s suggestion!
Change our city through architecture!

건축사는 왜 ‘사’를 사용 할까? 일본어 한자인 ‘사(士)’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선비’라는 단어다. 선비는 학자이면서 지식인이다. 일본은 동시에 무사였다. 우리나라는 학자이면서 정책가였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대만이나 중국은 ‘스승’을 지칭하는 한자 ‘사(師)’를 사용한다. 스승은 선각자이면서 지식의 리더다. 굳이 이런 한자 풀이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건축‘사’의 역할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들어서다.
그렇다면 다른 한편에서 언급하는 건축‘가’는 어떤 의미인가? 흔히들 영어 Master를 지칭하는 거장, 즉 대가를 말하지만 우리는 교묘하게 달리 쓰고 있다. 일본 덕분에 우리는 ‘가’를 쉽게 갖다 붙이고 있다. 그냥 건축하는 사람들이 가져다 쓰는 말이 되어 버렸다. 주방가구 하는 이들도, 종이접기 하는 이들도 뭔가 있어 보이는 ‘가’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아무나 가져다 써도 무방한 용어다.
정말 일본어 한자인 ‘가’를 아무나 가져가 사용해도 되는 말일까? 항상 그렇듯 우리는 이상하게 해외 사례로 설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납득을 못하니 ‘가’의 원산지 일본건축가협회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본건축가협회 정관의 정회원 자격을 보면 당혹감이 든다. 왜냐면 정회원 자격 조건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정 기간 설계 및 감리 업무를 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그렇다! 이웃 일본도 건축사만이 ‘건축가’ 정회원이 되는 것이다. 건축사가 아닌 경우는 자격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울 뿐 아니라 기존 일본건축가협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해진다. 각설하고 건축사의 자질과 자격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건축사들은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하고, 자기들이 설계한 건물의 준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창의적 활동을 하는 지식 창조자들을 무시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문득 든다.
건축사들은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발언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다른 나라를 보면 건축사들이 건축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의견을 내고 있음을 알게된다.
일본의 무라노 도고는 ‘일본 특유의 현대성’을 주장하며 근대 일본의 모더니즘을 스스로 개척했다. 약관 20대의 영국 청년들은 1960년대 새로운 미래와 산업사회 도시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겁 없이 발표해서 ‘아키그램’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르꼬르뷔지에는 사회적 변화의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 발언으로 항상 사회중심에 서 있었다. 100살이 넘어 활동했던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 역시 사회에 대한 참여를 넘어 적극적 발언으로 전면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정치, 사회, 인문 등 발언의 폭과 시각을 넓게 가졌고, 사회는 건축하는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 이들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고, 모두가 모델로 삼아야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파시스트 히틀러의 건축을 주도한 슈페어는 전범자 역할이었고, 잠실 롯데 월드의 설계한 기쇼 구로가와는 일본의 민족주의적 우파로 말년에 도쿄 지사까지 도전했다.
우리 건축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전쟁 이후 전개된 현대 건축이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런 사회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한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건축사의 사회적 발언이 일반인들 사이에 회자된 적이 있었던가?
이런 고심 끝에 이번 건축사신문과 월간지를 통해 부동산으로만 인식되는 도시 주택에 대한 방향을 제안해 본다. 중요한 사회적 발언이 아닐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

에든버러 성

Edinburgh Castle

애든버러성을 올려다 본다. 중세의 건축물들을 가지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도시이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창밖의 풍경은 문명 시대와 기후 자연이 교차되는 연대기를 보여준다. 현대 도시의 빌딩 군을 빠져나오고 나면 왼쪽으로는 구릉지가 펼쳐지고 푸른 숲과 초원이 반복된다. 한참을 지나면 넓게 펼쳐진 바다가 나타난다. 붉은 벽돌에 경사진 지붕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바다 마을 풍경을 지난다. 애든버러 근처에서는 붉은 벽돌의 건물보다 짙은 색의 돌들을 쌓아 만든 견고한 건물이 주를 이룬다. 스코틀랜드 도시의 건물들은 오랜 역사 속에 추운 기후와 전쟁의 기운이 스며있다.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중세 성의 도시는 이제 축제의 도시가 되었다. 애든버러의 여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애든버러 프린지 예술공연 축제가 열린다. 여전히 의연한 절벽 위 고성과 검고 두터운 돌로된 건물들은 바쁜 여행객을 마법의 전설과 겨울나라 동화 의 동심으로 이끈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

8월 01 단지형 아파트를 해체하라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건축담론을 월간 건축사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건축사가 항상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소외되고 말단에 위치해서 수동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건축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정책들의 시작 과정에서 건축사들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건축사들이 진정 사회의 지성인이자 리더로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과 공감이 이루어져야 건축사들의 권익과 권리, 책임도 함께 확보될 수 있다. 단지 일을 수주하고 용역하는 것이라면 종합적 사유의 직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의사가 단지 메스를 들고 살을 꼬메고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과 같다. 기술자와 차이는 철학과 치열한 사유가 있느냐하는 것이다.
건축사는 기술자를 뛰어 넘어 보다 큰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직업이다.

이번 호에는 그동안 건축의 바탕이 되는 건축정책, 그중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 한다. 어느 나라나 건축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중에서 주택은 절대적이다. 뉴욕하면 떠오르는 맨하탄의 고층 건물 상당수가 주택이고, 파리의 경관을 만들어내는 이미지 역시 주택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만큼 주택은 건축과 도시의 핵심이다.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의 공동 주택 정책에서 건축은 소외되어 있었다. 그동안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심이 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공동주택이 현금화가 가능한 증권의 기능까지 존재한다. 변동성 강한 증권같은 공동주택은 수많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부담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부동산 문제를 건축적 해법으로 다가선 적이 없었다. 정말 건축은 부동산 문제, 주택 문제에 소외된 그냥 시공의 과정일 뿐일까?
건축으로 우리나라 공동주택, 부동산에 대한 고민이나 해법을 생각해 볼 때도 되었다. 그 첫 번째는 토지 개발 과정부터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공동주택의 방향성이나 내용에서 문제를 찾아볼 필요도 있다.
이에 두 분의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경제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택지 개발의 문제점과 우리나라 공동주택 설계 경험이 많은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에게 의뢰한 글이다. 이제라도 건축에서 다양한 해법과 제안을 사회에 더 많이 개진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2019년 8월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도 도시 공동주택에 대한 제안을 같이 진행한다.

 

01 Deconstruct the Apartment Complex

1. 아파트 : ‘총자본’이자 ‘상징자본’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는 단지를 통과하는 차량에게 2,000원씩 징수하다 구청의 행정명령을 받고 잠정 중단하고 있다. 중지 이유는 단지 내 유료 통행에 필요한 사전 협의가 없었기 때문인데 아파트 측은 절차를 밟아 곧 강행 하겠다 한다. 이 단지는 돈암동 전체의 6분의 1에 달할 만큼 크고 유치원과 스포츠센터가 있으며 초·중·고를 끼고 있어 주변 주민의 통행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임에도 길을 막으려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고매동 ‘우림홀인원아파트’도 100미터도 안 되는 구간에서 3,000원을 받고 있으며 부산시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도 단지 통과 차량에게 요금을 징수하고자 통제 시스템을 준비 중에 있다. 2017년 8월 개정된 공동주택 관리법에 의해 아파트 주차장을 유료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 차량에 요금을 받는 것에 법적 하자는 없다.
아이들 학원 데려다 주기 위해 늘 가던 길이고, 지름길이기 때문에 바쁜 출근 시간에 항상 가던 길이 어느 날 차단기로 막혔다면 이웃주민들의 원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특히 기존 시가지 조직과 옛길을 모두 와해시킨 후 들어서는 재개발 아파트의 경우에는 주변 기성 시가지 주민과의 갈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강남은 도로체계가 갖추어진 채 시가화 되었기에 통과 차량에 의한 갈등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반면 여기서는 한술 더 떠 보행을 막는다. 강남의 몇몇 아파트들은 철문으로 막아 놓아 출입 카드 없는 외부인은 단지를 가로질러 갈 수 없다.

아파트 단지들의 이른바 성안도시(gated community)로의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차량 대수가 늘고 범죄에 대한 염려가 증가해서가 아니다. 이 자폐증세는 ‘아파트의 물신화(物神化)’와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 시대 한국에서 아파트는 그냥 ‘주거’가 아니다. 아파트는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나의 ’전 재산’인 동시에 부르디외가 말한 바 ‘상징자본’이다. 그렇기에 이제 아파트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물질이기를 넘어 자체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초월적 위상을 가지게 된다.
평소 선하고 양식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동네에 임대단지가 들어서는 것에는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일산에 많이 사는 공무원조차도 집값 안정이라는 사회적 의제보다는 3기 신도시가 내 집값을 토막 낼 것을 염려한다. 아파트가 내 총재산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택 공급방식이 ‘국민주택’, 즉 개별 가구 저축에 의한 자가 보유 위주 정책이었던 것에서 연원한다.
또한 아파트는 ‘경제자본’인 동시에 사회적 인정을 얻게 하는 ‘상징자본’이다. 아파트 광고를 당대 “가장 잘살 것 같은” 톱 여배우들이 전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지도층과 유명인이 많이 사는 강남 아파트가 불패일 수밖에 없는 이유, 메이저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 아파트 단지 게이트와 지붕에 그렇게 ‘뽕’을 넣는 이유는 다 같다. 한마디로 우리네 아파트는 ‘실용품’을 넘어서 ‘과시용품’이 된 것이다.

 

2. 단지형 아파트 : 불가역적인 폐쇄성

이러한 맥락에서 앞에 언급한 단지 내 통행료 징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지 내 도로의 혼잡, 방범, 쓰레기 등의 실용적 이유는 분명 아니다. 단지 도로가 통과 차량의 부하를 감당 못할 정도가 아닐 터이며 모퉁이마다 있을 CCTV가 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아파트 주민들은 인근의 비 아파트 주민과 ‘구별’되고 싶은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사회학자 톨스타인 베블렌은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을 통해 ‘과시적 소비’를 일삼는 유한계급을 비판한다. 백 달러 지폐로 시거를 말아 피우거나 강아지 미용사를 고용하는 등, 이들에게는 소비가 낭비적, 비실용적일수록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높이는 것이 된다.
결국 차단장치를 통해 이웃의 차량을 막으려는 것이나 철문으로 보행 통과를 거르려는 행위는 낭비와 비실용성을 통해 차별성을 얻겠다는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봄이 옳다. 주변이 누리지 못하는 녹지와 한적함이 가져 오는 ‘공간 낭비’와 길 나누어 쓰기 같은 ‘실용정신’을 배제함을 통해 스스로의 ‘위신’과 ‘집값’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읽어야 한다.
대형회사들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에 ‘캐슬’, ‘스테이트’ 등의 시대착오적인 단어가 들어가는 것 또한 베블렌이 언급했던 19세기 ‘도둑남작’들의 주거취향을 환기시킨다. 몰락한 유럽 귀족이 후예와 결혼해 작위를 얻은 미국의 신흥부자들은 저택 또한 유럽의 고전풍을 흉내 내어 지음으로써 자신들이 졸부임을 은폐하고자 했다. 어찌 되었건 한국의 아파트는 사용가치 이상의 가치를 머금은 상품이 되었으며 이 경향은 불가역적이라는 측면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우리의 아파트가 이토록 도시와 이웃과 단절된 ‘섬’이 된 것은 지난 개발 시대의 업보다. 급격한 도시 팽창과 경제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증가는 양질의 주거를 요구하게 되었던바 당시 우리나라 상황으로서는 ‘단지(團地)형’ 아파트가 유일한 방책이었다. 단지형 아파트는 단지 내에 도로, 녹지, 주차장, 어린이 놀이터, 주민시설 등을 모두 가진다. 공공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주거 인프라 비용을 입주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반면 많은 서구 국가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공공 인프라를 먼저 준비한 후 도시 주택을 지었다. 따라서 블록을 꽉 채운 연도(沿道)형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왕족, 귀족의 사유지가 도시 공원이 되었고 공공이 학교, 공공시설을 기존 도시 조직 안에 심었으며 도로, 상하수도 등의 인프라 또한 공공재원으로 확보 되었다. 이렇게 하여 구획된 블록에는 온전히 주거만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블록형 아파트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단지형 아파트는 도시 가로와는 펜스와 녹지로 단절되어있고 주변 지역과는 사회적으로 분리된다. 길이 펜스와 붙어 있으니 아파트의 외연이 상가 등으로 사용되는 연도형 아파트와는 달리 이곳은 도시의 경계가 되어 가로 활성화는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대규모 재개발 아파트인 경우 자기 단지가 옛 동네를 없애고 들어선 것이라는 사실은 다만 역사일 뿐, 인프라 비용까지를 지불한 아파트 소유자들로서는 당연히 이를 보상받으려 할 터, 이웃 아이들이 단지 내 농구장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주민들의 출입을 막으려는 것은 그 보상심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이 모든 사회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단지형 아파트는 공공으로서는 인프라에 대한 지출이 없어 좋고 건설사에게는 표준화 시공이라 고마우며 환금성 때문에 소비자 또한 환영이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정합성에 의해 아파트는 바로 단지형 아파트를 의미하게 되었고 우리 사회의 유일한 주거대안이 되었다.

 

3. 강남 아파트 : ‘디스토피아’ 혹은 ‘헤테로토피아’

아파트 중에서도 강남의 아파트는 ‘상징자본’으로서의 가격이 가장 많이 붙어있는 곳이다. 강남 땅값은 고급 도시생활 인프라에 더해 좋은 교육, 명망가의 이웃이 되는 기회같은 비 물리적 요소까지를 머금고 있다. 그러니 대체재가 없다. 따라서 강남 집값에 관한한 규제론, 공급론 모두 답이 아니다.
공급론자들 주장은 원액에 물 타자는 거다. 그러나 희소하지 않은 강남을 반길 리 없으니 강남 아파트들은 가격을 계속 올려 진입장벽을 칠 것이다. 반면 규제로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사려는 이들이다. 팔 사람에게 규제는 곧 비용이니 가격에 반영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지하가 암반인 맨하탄의 대부분 아파트는 주차장이 없다. 갑부라도 옐로우 캡 애용자여야 하는 이유다. 볕 안드는 침실 한두 개 아파트가 수십억이다. 그럼에도 뉴요커들은 맨하탄을 소망한다. 걸으면서 도시의 마법(Magic of City)을 누리고자 함이다. 강남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런던, 베를린, 홍콩, 도쿄 이 시대 메트로폴리스의 공통 현상이다. 지금의 헤테로토피아로 남든 고밀개발로 디스토피아가 되던 강남이 결정할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강남+아파트’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역대 정부의 도시개발/주택 공급정책이었다. 강남은 60년대 말 급격한 서울 인구유입으로 세워졌다. 초기에는 공무원을 강제로 이주시켰고 국가, 공공 기관에게 토지를 강매했다. 한강변 아파트들은 준설한 강모래를 대가로 지어진 것이고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저명, 고위 인사에게 반값으로 분양했다. 강북 명문 학교도 모두 내려 보냈으니 8학군도 이때 탄생한 것이다. 가난하지만 배운 이들이 모여 산 곳이 학원가 대치동이다. 요컨대 강남의 생부는 국가다.

아파트의 본격 건설은 경제발전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기 시작한 70년대 초부터다. 이 때 국민소득은 300달러 수준이었다. 이제 3만 달러의 시대에 강남이라는 도시환경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강남을 구박할 일이 아니라 국가는 그동안 비용도 아꼈으면서 왜 ‘강남’이 하나뿐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일이다.
1100조에 달하는 시중 부동자금과 연소득 1억 이상인 서울의 75만 가구가 강남 개발 압력의 원천이다. 개발압력은 수압과 같아 바늘구멍이라도 바로 큰 구멍으로 만든다. 실금에서 시작된 물길이 커져 거대한 댐이 붕괴에 이르게 되는 세굴(洗掘)의 이치다. 현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둑을 높이 쌓고 구멍을 촘촘히 메우자는 방식이지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압력을 낮추는 방법 말고는 없다.
이 시대 모든 메트로폴리스가 그렇듯이 서울도 수직 확장은 숙명이다. 홍콩 섬 주거지역의 용적률은 1000%, 상업지역은 1500%다. 2024년 완성될 맨하탄의 허드슨 야드 지구는 무려 3300%다. 그 결과 2014년 이후 뉴욕 집값은 연 3%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반면 근대 이전의 도시구획 때문에 용적률 상향이 힘들고 규제까지 엄한 런던의 집값은 1997년 대비 366.2%, 2009년 이후에만 92.5%가 뛰었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강남의 아파트 값이 맨해튼보다 싼 이유는 한반도 리스크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억제에는 한계가 있다. 감당 못할 때가 오기 직전인 지금이 오히려 용적률 1000%대의 강남과 서울의 미래주거와 건축, 도시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다.

 

4. 미래의 아파트 : 경계의 공공성

강남의 몇 십 억대 아파트와 이른바 ‘지옥고’는 실은 ‘도시 접근성’에 대한 욕망이라는 같은 뿌리에 근거한 두 가지 표현이다. 가장 우수한 도시성을 제공하는 강남에 거주하겠다는 것이나 도시의 매력을 향유하기 위해 저급주거에라도 살겠다는 것은 같은 얘기다. 그리고 이 경향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 기록유산이기도 한 SF영화 ‘메트로폴리스(1927, 프리츠 랑)’에는 21세기 지금의 맨하탄이 묵시론적으로 그려져 있다. 앞으로 십 수 년 안에 ‘블레이드러너(1993)’, ‘제5원소(1997)’에서 표현되었던 모습, 캡슐 안에서 살고 공중을 나는 무인택시를 타는 도시생활은 그대로 현실로 바뀔 것이다.
초연결 사회, 고도 모빌리티 기반 사회는 고전적인 도시 공간 구조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일상생활은 주거공간을 벗어나 도시로 외부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주거와 비주거 사이의 경계가 극히 모호해 질 것이다. 모빌리티 거점 기반 주변은 극도로 고밀화될 것이고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바 ‘비공간’이 나타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고밀 공간은 ‘단지형’아파트를 전 시대의 호사스러운 유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도시가로에 면하지 않고서는 주거생활이 가능하지 않게 될뿐더러 단지 내 녹지나 주차장이 비싼 것 혹은 필요 없는 것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주상복합건물들이 고급 단지형 아파트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그 전조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필연적인 변화를 담을 수 있는 도시 계획·관리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적 영역인 도시와 사적 영역인 건축의 접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이는 가로를 중심으로 공·사적 영역이 혼합됨에 따라 양 측에 더욱 큰 효용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도시 내 소필지들은 가로형 아파트로 재편하는 동시에 단지는 해체하여 중규모 블록형 아파트들로 바뀔 필요가 있다.
단지가 곧 위신자본이라고 생각하는 소유자들의 저항은 적절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통해 제어 가능하도록 해야 하며 공공은 공공시설의 적극적 이식 등을 통해 단지 도로가 아닌 가로 부 전체에 대한 개입을 해야 한다. ‘공공성’은 공공시설 내부가 아니라 모든 영역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문제는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도전이다. 100년 전 우리 같은 상황이 유럽을 지배했다. 산업혁명은 농민을 도시로 소환하였으되 그들의 주거에 대해서는 몰라라했다. “한방에 8명과 돼지까지 살았으며 근친상간이 다반사였다.”라고 한다.(내일의 도시, 피터 홀) 3,4차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고 소득으로 지대(地代) 쫓기를 포기한 이 시대 청년들의 처지가 이보다 낫다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노동자의 힘과 ‘근대건축’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치열한 계급투쟁을 통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등은 20%대 이상의 공공임대주택을 얻어냈다. 우리 또한 주거의 소유에서 주거의 공유 혹은 점유로의 전환은 이 방법 이외에는 없다. 동시에 혁명적인 도시·건축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를 기술적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이 대안의 마련은 이 시대 *건축가들의 몫이기도 하다.

 

글. 함인선 Hahm, Insun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특임교수 ·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함인선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특임교수,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 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 등 역임
청년건축인 협의회 및 새건축사협의회 회장 역임
(주)건원건축, (주)선진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역임
‘오송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 등 다수의 도시설계
‘송도 연세대 중앙도서관’ 등 다수의 건축 작품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등 7권의 저서
his@hanyang.ac.kr

,

8월 02 공영택지개발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과제 “도시에 집을 지으려면 땅이 필요하다”

건축담론

02 The achievements, limitations, and challenges of Public Residential Land Development
“We need the land to build a house in cities”

집을 지으려면 땅이 있어야 한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시장에서 땅은 그 용도에 따라 생산요소로서 토지, 재산으로서 토지, 소비재로서 토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땅은 경작물을 생산하거나 공장을 지을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 받을 목적으로 쓸 수도 있으며, 경치 좋은 국립공원에 찾아가면 땅에 있는 산림이나 호수로부터 발생하는 자연환경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토지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구 증가 자체가 토지에 대한 수요를 직접적으로 증가시키기 보다는 인구가 증가하여 옷, 음식, 주택이나 건물 등 토지를 이용함으로써 생산되는 재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토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즉, 토지에 대한 수요는 토지가 생산하는 재화에 대한 수요로부터 파생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토지와 같이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를 파생수요(derived demand)라고 말한다.

 

땅, 주택, 그리고 도시

정부는 지난 해 9월 「주택시장 안정방안 대책」에서 주택공급대책으로 “수도권에 입지가 좋은 곳에 양질의 공공택지 30만 호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른바 3기 신도시다.
한국은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먹고 살면서 거주하기 위해 집 지을 땅(택지)이 필요했다. 1970년대까지 택지개발은 개발자본 축적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민간부문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토지소유주가 택지 개발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개발 사업이 완료된 후 필지 정리를 통해 토지소유권을 재분배 받았다. 이러한 개발방식을 환지방식이라고 하는데, 공공부문에서 개발을 위한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자본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이후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택지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소규모 개발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정부는 1980년대부터 도시 부근에 대규모로 단기간에 택지를 공급할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경제성장시대에 도시지역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공공부문이 택지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었다. 또한 주어진 여건에 맞도록 택지를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는데 계획적이고 체계적 단지와 시가지 조성을 위한 「도시개발법」, 저소득층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을 향상시키고 무주택자의 주택마련을 위한 「공공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의 공영택지개발사업은 주로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공공부문이 시행한 택지개발사업을 말한다.

 

개발시대 공영택지개발사업의 실적

경제성장과 도시인구의 급증에 따라 개발시대에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바탕으로 공공부문이 주도한 개발사업의 실적을 살펴보자.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른 택지개발사업으로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총 765,797건의 사업지구를 지정하여 총 면적 977.4㎢, 연평균 29.6㎢의 택지가 공급되었다. 택지개발사업의 주된 시행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이며, 사업지역은 택지에 대한 수요가 많은 수도권이 주를 이룬다.
「도시개발법」에 따른 도시개발사업으로 2012년 말까지 총 332 사업지구, 총 면적 121.0㎢가 지정되었고, 이 중 89개 사업지구의 18.2㎢가 완료되었다. 도시개발은 공공시행자(163지구)와 민간시행자(169지구)가 비슷한 비율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른 도시재개발사업으로 1973년부터 2012년까지 총 면적 74.5㎢(1,187지구), 연평균 1.9㎢가 실행되었다. 2008년 25만호 건설을 위해 사상 최대로 231개의 구역을 지정하였으며, 2012년 25개 구역에 1,986,481㎡ 면적에서 사업이 시행되었다.
한편 공영택지개발사업은 빠른 시일에 대규모 도시용지를 공급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기 신도시의 택지가 공급되기 전인 2013년까지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증가한 대지의 38.2%가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시대 공영택지개발사업의 성과

공영택지개발사업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시지역의 주택난 해소와 국민 주거안정 기반 마련(대량개발), 효율적 개발이익환수(전면매수방식), 기반시설 확충 등 국민 주거환경 개선(개발이익의 재투자), 적가(適價)의 택지공급(가격통제), 규모의 경제실현(중앙정부 공급)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주택난 해소와 국민 주거안정 기반 마련 : 대량개발의 성과
개발시대 도시화에 따른 인구 집중과 주택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주택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도시 주변에 대규모 택지를 단기적으로 공급하는 성과를 보였다. 주택 수 증가와 이에 따른 주택난을 해소하였으며, 인구 1천 명당 주택 수를 보면 2000년 248.7호에서 2005년 330.4호, 2010년 363.8호로 증가하고 있다.

(2) 효율적 개발이익 환수 : 전면매수방식의 성과
공공부문이 사업을 주도하는 공영개발방식은 택지개발사업에 따른 개발이익을 공공부문으로 흡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상갈등문제를 원만하게 해소할 수 있다면 전면매수방식은 개발 사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조성한 택지로 일반인이나 주택건설업체 등 실수요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3) 기반시설확충 등 국민 주거환경 개선 : 개발이익의 재투자 성과
개발에 따른 이익을 공공이 환수하여 기반시설 등에 투자함으로써 간선교통망 시설 등을 확충하거나 낙후된 지역의 개발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도로 등 기반시설을 완비한 계획적 신시가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도시개발을 체계화하여 환경친화적이고 쾌적한 택지조성을 통해 저밀도의 쾌적한 도시환경 계획 등으로 국민생활의 질 향상에 기여하였다.

(4) 적가(適價)의 택지공급 : 가격통제의 성과
공영개발에 따른 택지공급가격체계는 크게 무상공급, 조성원가 이하 공급, 감정가격 공급, 경쟁가격 공급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무상공급과 조성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손실 부분은 감정가격이나 경쟁가격의 이익으로 충당하는 구조이다. 또한 개발 사업에서 공공시설 설치를 위해 발생하는 비용은 사회적으로 수익을 향유하는 자가 해당 설치비용을 분담한다. 가격통제로 저렴한 택지가 다량 공급되면서 개발시대 주택보급에 크게 기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더불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등을 공급할 수 있는 재원을 용이하게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공급가격통제에 따른 토지공급으로 일정 부분 부동산시장의 안정화와 개발이익의 사회적 환수장치로서 역할도 수행하였다. 택지가격의 통제로 무주택 저소득층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한 소형 분양주택용지와 임대주택용지를 조성원가의 60~100% 수준으로 공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택지를 개발, 공급한다는 정책목표를 상당 수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성과는 공영택지개발사업이 교차보조(cross subsidy)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이다.

(5) 규모의 경제 실현: 중앙정부에 의한 공급의 성과
개발시대의 택지공급시스템에서 민간사업자는 자본과 인력 등의 부족으로 대규모 택지개발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 즉 중앙정부에 의한 공급은 교차보조에 따른 지속적 택지개발사업, 전면매수방식에 따른 수용권 문제, 가격통제에 따른 관리가격체제 등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개발시대 공영택지개발사업의 한계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개발시대 공영택지 개발 사업은 공급주체, 공급계획, 개발방식의 측면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먼저 공급주체 측면에서 중앙중심의 택지개발 추진, 공공사업자의 택지개발 재원 부족, 택지개발사업과 도시개발사업의 차별성 약화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공급계획 측면에서 수요와 연계되지 않은 중장기 택지수급계획, 도시기본계획 승인과 협의 업무 처리, 부적정한 택지개발사업 지표 적용, 택지개발사업 수요 예측의 부적정성 등이 한계점으로 나타났다. 셋째, 개발방식 측면으로 전면수용방식은 단위면적당 보상단가를 지속적으로 상승시켜 개발사업의 추진을 어렵게 하였으며, 주민참여 등 미래지향적 계획기법과 상충된다. 반면 환지방식은 절차상의 복잡성 등으로 계획의 장기화와 개발이익이 토지소유자에 전유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즉 개발시대에 이루어진 택지공급체계는 공급자 중심의 대량개발방식(도시 연담화, 적지(敵地)공급 미흡), 전면매수방식(초기사업비 부담, 수요의 불확실성), 가격통제(공시지가 현실화로 인한 조성원가 상승으로 개발이익 감소), 중앙정부에 의한 하향식 공급(수요 적시 반영 미흡, 지방정부 기능 제약)이 그 한계로 지적된다.

 

개발시대를 넘어선 포스트 개발시대의 환경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구와 가구 구조, 경제 상황, 사회문화 환경 등이 변화하면서 택지와 관련한 개발여건도 변화하였다. 개발시대 이후 택지개발사업 여건 변화를 살펴본다.
먼저 인구와 가구 구조의 변화이다. 인구와 가구 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 증가속도는 둔화되고 있으며, 특히 1~2인 가구와 고령가구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주택보급률 역시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경제구조는 경제성장률 둔화에 따른 저성장 지속과 국민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주택에 대한 수요의 고급화, 다양화,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기존 거주주택 처분 및 도시외곽 이주로 인한 도심 주택 잔류, 소득 불균등 심화 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문화적 구조는 도시의 외연적 확산 한계와 경제 및 인구증가율 둔화 등으로 도시화율은 정체되고, 도심선호의 증가로 주거지 재생사업 확대와 다양한 주택형태 요구 및 안전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개발여건의 변화에 따라 이전의 공급자 중심의 대량개발, 중앙정부에 의한 하향식 공급, 전면매수방식, 가격통제 등 기존 공영택지개발방식에 따른 대규모 택지공급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작동될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택지공급체계는 인구와 가구 구조, 경제 상황,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따라 대량 공급에서 적지(適地) 개발로,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 주도로, 단기 공급에서 계획적 공급으로, 전면수용방식에서 다양한 개발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개발환경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주목하여 기존 개발시대의 택지공급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로 ‘포스트 개발시대’라는 개념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개발시대의 공영택지개발사업의 방향

공공부문이 주도한 공영택지개발사업은 짧은 기간에 대규모로 도시용지를 공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인구와 가구 구조의 변화, 경제 및 사회문화적 여건 변화로 택지공급체계가 대량공급에서 적지(敵地) 개발로,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 주도로, 단기 공급 중심에서 계획적 공급으로, 전면수용방식에서 다양한 개발방식으로 변환될 것이다.
개발환경의 변화에 주목하여 개발시대의 택지공급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포스트 개발시대’에 부합하는 택지공급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재정립, 계획중심의 택지개발 추진, 공급방식의 다양성 제고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행 공급자 중심의 대량개발, 가격통제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택지개발사업과 도시계획 간의 연계성과 정합성을 확보해야 하며, 다양한 협력적 개발방식의 도입, 지방정부의 역할 강화 방안 모색 등 신개발과 관련한 제도 운영에 있어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글. 이형찬 Lee, Hyungchan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

이형찬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건국대학교 부동산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the 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Visiting Researcher로 있었다. 국토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건설경제, 도시경제, 토지정책, 부동산산업, 부동산소비자 보호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토지정책연구센터장을 지냈다. 요즘은 택지개발, 개발이익과 계획이익의 공유, 부동산 분배구조, 공시가격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규제심사위원회, 한국감정원 부동산네트워크인증심의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지금은 LH공사 경영투자심사위원회, 기획재정부 기금부담금운영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hchanlee@krihs.re.kr

,

‘문화관광·푸른공원 도시’로 원주시 천지개벽… 3박자 갖춘 명품도시로

Wonju’s cataclysmic change into ‘Culture and Tourism · Green Park City’…
As a luxury city with three elements

원창묵 시장 Won, Changmuk 강원도 원주시 시장

강원도 원주시 도시 일대가 관광을 테마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작년 1월 개통한 ‘소금산 출렁다리’는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186만6654명을 기록했다. 지난 5월 4일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매봉산 자락에 조성된 국내 최초 ‘산악자전거(MTB) 복합 파크’가 개장해 주말마다 전국에서 모여든 동호인들로 붐빈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놓인 간현관광지 일대의 테마 관광지 조성사업도 오는 2021년까지 완료된다.
강원도 원주시는 원래 1군수지원사령부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군사도시였다. 오랜 기간 군사보호시설로 묶여 도시 확장이 가로막혀 도시활력이 떨어졌다. 그러다 원창묵 원주시장이 2010년 부임하면서 원주시는 본격적인 변화를 맞는다.
원창묵 원주시장은 취임 시작과 함께 친수도시, 도시공원화 도시, 관광도시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도시를 디자인해 왔다고 말한다. 올해 7월 1일 그는 남은 3년 시정방향에 대한 브리핑에서 수도권 경제도시와 문화관광 제일 도시, 푸른 공원도시 조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주시는 시민이 걸어서 5분 이내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도시공원화를 목표로 합니다. 도시공원 면적 1인당 2.24제곱미터에서 현재 5.4제곱미터까지 끌어올렸고, 임기가 끝나는 3년 후에는 10제곱미터에 이를 겁니다. 또 최근 기공식을 마친 원주천댐은 갈수기에 담수한 물을 원주천으로 보내 안정적인 물 공급을 가능케 하는 댐 본연의 기능과 함께 주변에 조성되는 관광단지와 더불어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강원 원주시는 지방에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인구 증가세를 보이는 대표적인 ‘성장도시’다. 원창묵 시장은 원주가 성장하는 도시로서 새로운 디자인이나 도시를 완전히 개조해 변화시킬 여지가 많다고 전한다. 최근 원창묵 시장은 원주시의 각종 현안 사안과 생활SOC사업 및 도시재생사업 등 공공사업을 총괄 자문·조정하는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를 선임했다.

원창묵 원주시장 _ 원창묵 원주시장이 시장실 영상모니터에 비친 강원감영 사진 앞에서 원주시 미래 발전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창묵 원주시장은 1995년 원주시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2년 6월까지 시의원을 지냈다. 2010년 6월 민주당 원주시장에 당선됐고, 작년 6월 치러진 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원주는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 등 세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국도가 3개, 원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바뀌는 큰 그림을 갖고 시책을 펼치고 있는데, ▲ 원주시가 조성해 운영하고 있는 132개의 크고 작은 공원 ▲ 원주천댐 사업과 연계된 호수공원 ▲ 치악산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조성하고 있는 140km규모의 ‘치악산둘레길’ 조성사업 ▲ 곤돌라·인공폭포·유리다리 등을 포함하는 간현관광지 개발사업이 나중 완성되면 아마 다들 놀라 까무러치실 겁니다.”
월간 건축사가 문화관광·푸른공원 도시 구현을 목표로 도시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원창묵 원주시장(건축사)을 만나 원주시의 도시 변화와 경쟁력, 그리고 남은 3년 원주시정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도시 경쟁력을 연구하다 보면 도시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주시는 사실상 수도권이나 서울에서 보면 굉장히 먼 지역으로 알고 있지만, 광주원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현재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앞으로 수도권 전철 연장사업이 2024년 준공되면 약 50분까지 시간이 단축됩니다.
원주시의 정체성이라 하면, 치악산국립공원이 도심에 접해있다는 것입니다. 삼국·통일신라시대 북원경,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으로서 현재의 강원도청격인 강원감영이 500년 동안 원주에 있었고, 법천사지라든지 거돈사지 같은 불교문화에서 가장 대표할만한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원주는 조선시대 강원도의 대표도시였습니다. 강원도 이름부터가 강릉과 원주에서 따왔으니까요. 6·25전쟁 이후 여러 군부대가 자리하며 도시확장이 가로막혔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수도권 경제도시 ▲문화관광 제일 도시 ▲푸른 공원도시 조성을 목표로 각종 시책을 추진한 끝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실제 10년 만에 찾는 사람들은 변화된 원주시의 모습을 보고 많이들 놀라곤 합니다.

 

Q 도시 정체성은 도시 풍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물론 비가시적 캐릭터들, 예를 들면 ‘자유로움?’ 이런 것도 있지만, 시각적인 차이점이 더 큽니다. 우리 도시들은 이런 도시경관의 차이가 선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주시의 도시적 경관 특징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지요?

원주시는 1995년 기존 원주시와 원주군을 합쳐 통합 원주시로 출범했습니다. 예부터 현재 도청에 해당하는 강원감영이 설치될 정도로 강원도 경제·교육·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리적으로는 한반도 가장 중심부에 있으며, 교통요지로도 발달해 철도 중앙선이 시의 중심부를, 영동고속도로는 시의 서북부를 통과합니다. 지리적 특성으로는 오래전부터 제1야전군사령부 등이 주둔하며 군사도시로 인식돼 왔습니다. 2005년 혁신도시, 기업도시에 선정되며 의료기기산업과 함께 관광산업 발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시경관은 그 도시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와 기술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텍스트입니다.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시경관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주체이면서 도시경관 일부를 구성하는 객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원주시가 추진해온 산업특화, 지역 관광산업 육성이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들어 도시경관을 만들고 있다 생각합니다.
사실 원주는 도시특성상 물이 부족합니다. 이를 위해서 원주시가 요청해 안정적 물 공급과 홍수예방을 위한 원주천댐 건설을 추진하며, 최근 7월 3일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원주천댐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에 자리를 잡는데, 규모는 높이 49미터, 길이 210미터, 저수용량 180만㎥에 이릅니다. 댐 주변을 친환경 관광단지로 조성해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걸어서 5분 이내 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 푸른 공원과 생활주변 구석구석 세심히 시민을 배려하는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보도경계석 높이를 도로와 같게 낮추어 장애인 통행을 돕는다든지 짜투리 땅을 활용한 쌈지공원이 대표적입니다. 또 역사자원과 문화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제반 정책도 펼치고 있습니다.

 

Q 도시 경관은 주택이 특히 좌우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는 매우 엄격하게 도시 경관을 관리하죠. 독일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으로 90%가 파괴된 도시경관을 재건하면서 성모교회를 모티브로 관리했습니다. 그 결과 60년이 지난 지금 드레스덴만의 도시 모습으로 사랑받으며, 관광산업이 주수입원입니다. 원주시만의 도시경관 조성 관련 정책 등이 궁금합니다.

원주시는 2016년부터 원주시 경관조례를 제정해 올해 1월 개정된 경관법을 적용합니다. 경관조례는 가로, 광장, 공원, 수변공원 등 공공공간과 공공건축, 광고물 등 각종 분야별 경관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회기반시설 등을 경관심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어 경관지구, 도시재생활성화지역, 관광특구 등 대형프로젝트 사업과 생활밀착형SOC사업도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원주시는 2019년 국토교통부의 총괄·공공건축가 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민간전문가를 통해 공공건축의 품격을 높이고 지자체 건축·도시·경관 행정의 전문성을 향상시킨다는 취지입니다. 총괄·공공건축가가 역할을 하며 도심 내 공원을 비롯한 복합문화행정센터, 다목적공연장 등 시에서 추진하는 공공건축물과 교통시설 다양한 분야에 원주시만의 색을 입히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경관이 탄생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민선5기부터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한 걸어서 5분 이내의 푸른 공원은 시민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휴식공간일 뿐 아니라 도심경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원주시는 현재 근린공원 32개, 어린이공원 66개, 소공원 14개, 수변공원 11개, 체육공원 3개, 문화공원 1개가 위치해 있습니다.

원주시 공원 현황
▹ 근린공원 32개소 1483천㎡, 어린이 공원 66개소 154천㎡
▹ 소공원 14개소 17천㎡, 수변공원 11개소 102천㎡
▹ 체육공원 3개소 74천㎡, 문화공원 1개소 30천㎡

강원 원주시 소금산 출렁다리. 개통 1년 만에 186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아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출렁다리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간현관광지로 유입되며 지역경제 활성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원주시청

 

조선시대 강원도청의 역할을 했던 강원감영. 1830년 편찬된 관동지 강원감영도를 보면 과거 건물은 41동에 달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선화당과 포정루, 내삼문, 중삼문 등 4동만 남았다. 선화당은 관찰사의 집무실로 조선시대 감영가운데 선화당 건물이 남아있는 곳은 원주가 유일하다. 이런 강원감영은 무려 23년에 걸친 복원사업을 통해 작년 11월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작년 6월부터는 야간 경관 개선사업을 통해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관람이 가능해졌다. 강원감영 복원사업은 원주시의 문화재 정책이 함축된 것으로 오랜 기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조선시대 팔도 감영 중 처음 복원된 사례다. 사진=원주시청

Q 이미 90년대부터 도시의 작은 기능들, 즉 집 앞 산책로, 작은 동네 카페, 걸어가는 일터 등이 도시경쟁의 새로운 전략 요소로 등장했습니다.
맨하탄의 퍼켓 파크나 멜버른의 오픈 카페, 싱가포르의 식민지주택 블록 등 입니다. 원주시 내 이러한 작은 도시 기능(우리 정부는 일부 공공 기능을 생활SOC라고 하더군요)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생활SOC는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자녀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고, 일하고 쉬는 등 일생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입니다. 보육·의료·복지·교통·문화·체육시설, 공원 등 일생생활에서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모든 시설을 말합니다. 산단재생, 근로 및 생활환경 개선 등 일상생활에서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는 시설까지 포괄할 수 있는 열려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주시 생활SOC사업으로는 ▶태장동행정문화복합센터(문화플랫폼) ▶원주기업도시 복합체육센터(체육 플랫폼) ▶원주 도시재생 복합커뮤니티센터(복합 플랫폼) ▶원주혁신도시 복합체육센터 외 9개 사업이 있습니다.
크게는 도심을 위주로 중앙·단구·단계 민간 공원조성과 같이 남산공원, 조각공원, 행구수변공원 확충, 중앙선 폐선 9km를 활용한 치악산 바람길 숲 조성 등으로 도시에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나가는 사업도 생활형 SOC사업입니다. 이 모든 사업에 총괄·공공건축가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강원감영 사진=원주시청

Q 마지막으로 건축사라는 전문가 출신의 시장으로 앞으로의 포부나 방향을 부탁드립니다.

건축사이기도 하지만 도시설계 도시공학 전공한 전문가 시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물이 없어서 삭막한 원주시를 물로 채워나가고 걸어서 5분 이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행구수변공원과 학성공원에 친수공간을 만들었고, 원주천 상류에 댐을 만들어 홍수예방도 되지만 갈수기에는 물을 흘려보내서 원주천에 항상 맑은 물이 흘러가는 원주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지뜰 호수공원, 도시하천인 단계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등 친수공간들을 많이 확보해서 물이 있는 원주시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다 성과로 나와서 금년부터 다 착공에 들어갑니다. 또 하나는 도시 곳곳에 걸어서 5분 이내에 도시공원 설계가 진행돼 지금은 시민들도 “원주시가 아름다워지고 갈 곳이 많아졌다. 공원도시다워졌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현재 모든 현안사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임기가 마무리 될 때 전국 제일의 품격 있고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계획했던 화훼관광단지 264만제곱미터(80만평)와 글로벌테마파크 3천3백만제곱미터(1,000만평)를 마무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공원 속의 도시, 어디에서나 걷고 쉴 수 있는 건강도시 원주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 글 장영호 기자 · 사진 임경호 기자

,

건축비평 _ 청담동 비원 땅의 결대로 지은 건축

Architecture Criticism
Architecture built based on the land’s texture

서울 강남의 도시 구조는 평평하지 않고 굴곡이 많은 땅을 무지막지하게 두부모판 만들듯이 그리드로 반듯 반듯하게 잘라놔서 온전하게 집을 앉히기 정말 어렵다. 무신경하고 성의 없는 도시계획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다 보니 지적도상으로는 네모반듯한 땅이지만 그 땅이 가지고 있는 3차원적인 형상은 네 귀퉁이의 높이가 완전히 다른, 계획하기 정말 까다로운 땅을 만나기 일쑤이다.
더군다나 인접한 필지들이 많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 걸리는 문제가 많다. 그리드로 도시계획을 하듯 일반해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부터 건축은 시작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주 큰 나라이다. 수평 투영 면적은 남북한 합쳐 22만 평방킬로미터로 그렇게 넓은 면적이 아니라지만, 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노년기 지형이므로 주름이 많다. 그 주름을 쫙 펴서 표면적을 계산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입체적인 체적을 가진 땅이다.
주름이 많으니 사연도 많다. 또한 오래된 연륜 만큼이나 우리의 땅은 단순하지 않다. 서울을 비롯해서 우리의 도시들은 굴곡 큰 지형에 도시를 만들고 마을을 조성하였고 그 안에 집들을 앉혔다. 조선 초에 수립된 한양의 도시계획을 보더라도, 정연한 그리드를 따르지 않고 땅의 결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방법을 따랐다. 교토나 베이징 등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의 수도와는 큰 차이가 난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우리 도시와 마을에 담긴 그런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측정하는 도구가 다른 것이고 재보는 자의 눈금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재 봐도 딱 떨어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그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자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땅을 잴 수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당최 이해가 안 간다며 땅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 아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들어와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의 척도와 사고가 우리의 땅에는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우리의 땅에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로 땅을 측정하고 건물을 지어야 한다.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다. 건축사는 사람과 땅이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땅에 업을 짓는 직업이다. 자유롭고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는 땅에 무거운 건물을 올려놓고 복잡한 인간사를 담기 때문이다.
예전에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매를 조련하여 짐승을 잡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사냥에 관한 내용이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기본적인 기술을 가르치며 여러 날 훈련을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전수하는 것은 현란한 기법이나 고도의 수법 등의 핵심기술이 아니라 매사냥의 정신이다. “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된다”고 스승은 이야기한다. 창공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아야하는 매의 자유를 빼앗고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기에, 궁극적으로는… 매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진정한 매사냥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취해야 하는 건축의 자세 혹은 정신 또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아무리 기계가 좋아져도 한두 시간의 비에 마을이 쓸려가고 커다란 건물이 엄청난 재해를 입는다. 자연은 강하다. 건축은 그 자연을 극복하는 엄청난 용기와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주먹이 날아 들어온다.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를 21세기에 아직도 하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사실 건축이라는 것에 정답이 없고 사람의 삶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고 모두 각자 자기의 건축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잴 수 있는 눈금을 가진 자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땅에 들어가 느껴보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청담동 ‘비원’이 앉아있는 땅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예전에 한강을 면한 언덕이었는지 큰 고개의 내리막에 있다. 지금은 무척 많은 집들과 상가가 들어서 그 땅의 속성이 마치 오랫동안 거친 일을 하고 살았던 사람의 손가락 지문처럼 다 지워져있다. 다만 급한 경사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장비를 앞세우고 들어가 땅을 메우거나 파내고 평평하게 앉힌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일이다.

사진 진효숙

유타건축의 김창균 건축사는 그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네 변의 고도가 다른 땅이며 중심을 놓을 위치가 애매한 땅, 그리고 시시각각 주변의 환경이 변하는 땅에 근린생활시설이 들어갈 저층부와 주택이 들어갈 상층부의 건물을 놓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건물을 보기 위해 청담동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벽돌의 덩어리가 정연하게 쌓여있는 건물을 밖에서 한참 봤다.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며 두 개의 도로는 각자 아래로 경사진 도로였다. 대지의 효용이 극대화 되어야 하는 지가가 높은 땅인지라 계속 땅에서 건물들이 더 큰 면적으로 새롭게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풍경이고 지형이고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는 아주 난처한 땅이다. 외관으로 볼 때는 짐짓 무덤덤하게 도시의 풍경에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경우 대지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을지, 내부가 궁금했다. 그 흐름을 내부에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건물의 용도상 그런 해결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의 모서리에 길게 뻗어있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오르며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다. 김창균 건축사의 선택과 공간의 구성은 아주 적절했다. 마치 아귀가 잘 맞는 사개맞춤처럼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땅에 붙여놓았다. 경사에 맞게 중간 중간 판을 뿌려놓고 다양한 길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길이 연결되는 지점에 어김없이 바깥이 반쯤 보이고 하늘이 뚫려있는 정원이 나타난다. 외부를 향해 창이 있는 임대층과, 외부로는 창이 없고 하늘을 향해 열어놓은 비밀 정원으로 부르는 테라스 공간이 삽입된 크지 않은 주택이 수직으로 붙어있다.
주재료인 연한색의 고벽돌로 쌓은 여러 개의 덩어리가 엇갈려 물려있고 그 사이로 계단이 끼어든다. 도로에서 각층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한 군데의 코어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여러 개의 계단이 있다. 그리고 각 층에 작지 않은 크기의 테라스 공간이 있으며 그 테라스는 주변의 여러 경관을 취한다. 마치 예전의 전통건축에서 각자의 안대(案帶)를 가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놓는 것과 유사하다. 이로써 각 층은 일률적인 수직 적층이 아닌 각자 다른 면을 향해 열리게 된다. 그런 의도는 각자 다른 창을 가진 입면에서도 나타난다. 전면으로 나타난 창은 높이가 다른 수평으로 긴 창이고, 후면에는 수직으로 길게 찢어놓은 창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건물의 외피는 벽돌 영롱쌓기와 통줄눈쌓기,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치장쌓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변화가 심한 건물의 덩어리 구성과는 대조적으로 최대한 표현을 억제한 입면은, 약간은 무덤덤하며 커다란 바위처럼 견고해 보인다.
투명과 반투명이 교차되며 건물은 그 무게감을 덜고, 경사와 정원이 반복되며 대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무겁지만 무겁지 않고 외부의 경사가 내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된, 땅의 결을 살린 건축이 완성되었다.

 

글. 임형남 Lim, Hyoungnam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1998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순한국어)로 가운데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공존하는 집을 만들고자 한다. 금산주택, 루치아의 뜰, 신진말 빌딩, 존경과 행복의 집, 언포게터블, 미장아빔 등을 설계했다. 적십자 시리어스 리퀘스트, 유니세프 관련 청소년 시설, 북촌길·계동길 탐방로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했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풍경화첩』등 11권의 저서를 냈다.
studio_gaon@naver.com

,

대자연이 빚은 ‘仙境’, 江原道

Gangwondo ‘Seongyeong(Land of Faery)’ made by Mother Nature,

상동이끼 계곡
상동이끼 계곡의 여름. 계절은 어느덧 한해의 중반을 넘기고 盛夏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시원함을 찾아 전국의 여러 곳을 물색한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에 위치한 하계 휴가의 명소 칠랑이 계곡은 한 여름에도 일평균 온도가 섭씨 25도를 넘지 않는 곳이다.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고 또한 험준하지도 않은 산길을 따라 약 5분에서 10분 정도를 산보하듯 걷다보면 울창한 삼림사이로 아담한 계류가 흐르면서 태고의 신비함을 간직한 이끼들이 즐비하다. 일상적으로 보는 풍광이 아니어서 전국의 사진가를 불러 모으는 계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명세를 치른 탓에 군데군데 바위의 이끼 옷이 벗겨 진 것을 보면 안타깝다. 다음 탐방객을 위해 바위에 낀 이끼들을 밟지 않고 먼발치에서 즐기는 배려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삼척이끼 계곡
강원도 삼척시 육백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이끼폭포. 첩첩산중 육백산 능선을 돌아 두리봉과 삿갓봉 줄기사이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도계 무건리 이끼폭포가 있다. 마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감을 주는 이 폭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깊고 우거진 숲속에 숨어 그 비경이 감춰져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여름철에는 바위마다 짙게 뒤덮은 초록의 신비로운 이끼와, 이끼 틈 사이 사이로 올올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나올 법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세찬 물소리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일품이다.

청정고도! 귀네미마을
경사가 심한 밭고랑에서 한여름의 땡볕 아래 푸른 배추들이 열심히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제 몸집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동에 위치하고 있는 귀네미마을은 안반데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랭지 배추의 생산지다. 구름도 쉬어가는 해발 1000미터 이상 고도의 산간 마을이기도 하다.
이 곳 배추는 매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수확되어 맛있는 김치로 변신하여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한다. 또한 배추밭을 에워싸고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 단지가 자리하고 있어서 발전기의 바람개비가 한여름의 파란 하늘 배경이 되어 청정에너지를 쉴 틈 없이 생산한다. 이처럼 싱싱한 배추와 그린에너지를 쉴 새 없이 생산하고 있는 그 곳. 淸淨의 원산지 귀네미마을의 산자락에 서늘한 바람 한 줌이 스쳐 지나간다.

시크릿가든의 추경
인제군 남면 갑둔리 산122-3에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는 군사작전 보호구역 안에 전국의 사진가들을 불러 모으는 풍경이 비밀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군사작전 구역이라 민간인들은 출입이 제한된 관계로 자연경관이 자연스럽게 잘 보전되어 있다. 가끔 노루나 고라니가 출현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풍광이 연출되어 ‘신비스러운 경치 덕에 명명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대관령목장(설경)

대관령목장(여름)

안반데기 배추수확 축제
안반데기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랭지 채소의 주요산지이다. 해발 1100미터 고산지대로,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이 있어 안반데기라고 불린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경사가 워낙 심한 곳이라서 기계영농이 불가능하므로 농부의 손과 발품으로 수확이 이뤄진다. 배추밭 골골이 농부들의 고된 삶과 애환이 스며있으며, 또 골골이 농부들의 삶, 희망, 그리고 환희도 같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임원항 元旦
元旦! 새해의 첫 번째 아침을 뜻하는 단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한 해의 처음 하늘이 열림을 의미하는 ‘원단의 해돋이축제’는 새해 첫 일출에 상당한 의미를 두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의 정서를 잘 반영하는 행사다.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수많은 인파들의 함성이 붉게 물든 동해 바다를 쩡쩡하게 울린다. 동시에 불꽃축제로 임원항의 새해 아침의 장관이 연출된다. 임원항은 강원도의 중부에 위치하는 항구로 해마다 겨울철에는 동해의 깊은 물속에서 대게가 잡힌다. 전국의 대게 마니아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새해 아침을 맞이하는 인파 속 한바탕 해돋이축제 행사 후에 먹는 대게 맛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다.

한반도지형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다만 바다를 강이 대신하여 흐르고 동쪽이 높은 절벽에 나무가 울창하여 태백산맥을 연상하게 한다.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로 이루어져 전라도의 평야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나라의 지형과 유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북쪽으로는 백두산, 남쪽으로 포항의 호미곶과도 같은 산과 곶이 오묘하게 자리하는 등 거의 완벽하게 우리나라 지형을 닮았다. 때문에 한반도지형이라 불려진다. 이곳의 행정명칭도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한반도로 555로 명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지질학적 특성인 사행천 생성과정 중 생긴 지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 이렇게 굽이치는 지형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 인간 生의 왜소함을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

개항일보 _ 역사를 품은 도시 인천, 근대화거리를 뉴트로의 관점으로 보다

Gaehang Ilbo _ Looking at the modern street in Incheon, a city with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New-tro

들어가기 전에

인천은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경제자유구역발전의 중심지로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과거 개항을 통해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고 현재는 산업화를 거쳐 우리나라 중심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도심 내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알려지고 있는 거리가 있다. 인천 중구청 앞쪽에 위치한 ‘인천 근대화거리’가 바로 그 곳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일본식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며, 개항 당시 거리와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건물 안쪽까지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중구와 지역 주민들이 낙후된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건물 외벽의 경관을 일본풍으로 바꾸게 됐다. 실제 개항 초기 인천에 세워진 주택들은 점포가 함께 딸린 목조주택으로 마찌야(일본 전통 도시 주택)와 나가야(일본식 연립주택)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국적인 분위기로 인해 인근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발길이 닿게 됐다.

요즘 SNS 인증샷 성지로 떠오르는 곳들을 보면, 과거로부터 온 듯한 간판들과 인테리어들이 종종 보인다. 이렇듯 중·장년 세대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여겨지는 ‘뉴트로’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뉴트로’란 새로운(New) + 레트로(Retro)의 합성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문화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과거의 것을 재현하기보다는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뉴트로의 핵심이다.

특히 인천 원도심이 뉴트로 스타일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인천은 서양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개항 도시로 100여 년 전에 지어진 항만, 우리나라 최초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 등 조계지 문화가 원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중구의 개항장 문화지구는 1883년 개항 당시 인천항의 근대 역사가 있어 거리 전체가 문화이자 역사이다. 한국 최초 근대식 호텔인 ‘대불호텔’, 외국인 사교 활동을 목적으로 한 ‘제물포 구락부’, 90년대 유행했던 오락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빽투더레트로’가 바로 그곳들이다. 특별한 빈티지의 뉴트로한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인천 근대화 거리를 떠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식인들의 숨은 명소, 제물포 구락부

인천 차이나타운 옆에 위치한 자유공원을 오르다보면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 있다. 바로 제물포 구락부이다. 제물포 구락부는 러시아 출신의 건축사 ‘사바찐’이 설계해 1901년에 완공된 2층 규모의 건물이다. 건물의 원래 명칭은 ‘제물포 클럽’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조계제도를 폐지함에 따라 클럽이 일본식으로 구락부라 불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곳은 본래 외국인 공사들의 원활한 교류를 위한 장소였지만 조계가 철폐된 이후 일본 재향군인회관, 부인회관, 미군사교클럽으로 사용됐고 1953년 이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세계 여러 국가들과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역사, 문화, 예술을 공부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곳으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첫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우리나라에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은 “한국에 복음을 전파한 미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가 묵었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 “가배라는 이름의 매혹적인 음료인 커피가 최초로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문화의 발신처” 등 개항 당시의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는 호텔이다. 개항 당시 인천항을 통해서 많은 외국인들의 출입이 빈번해지고 그러한 외국인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없었던 제물포에서 붉은 벽돌의 3층짜리 서양식 건물인 대불호텔이 신축됐다. 주변의 다른 숙박시설보다 객실료는 비쌌지만 편안한 시설과 서비스로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1900년 인천과 경성을 잇는 철도가 개통이 되면서 더 이상 숙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당시의 화교인들에게 인수됐다.
현재는 2011년에 신축공사 도중 옛터가 발견되었고 대불호텔 터 활용 사업으로 2018년 3월 완공되어서 시민들에게 박물관으로 개방됐다. 박물관의 구성은 1층에는 대불호텔의 변천사 및 역사기록, 2층에는 당시의 객실을 재현한 전시실, 3층에는 연회장을 재현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백 투 더 1980, 빽투더레트로

빽투더레트로는 게임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할 전자오락실이다. 오락실에는 추억의 게임인 갤러그, 슈퍼마리오, 철권 등의 오락과 오래된 영화 포스터, LP판 등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어 7080세대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마침 이곳을 운영하는 차민용 사장님이 계셔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다.

INTERVIEW _ 빽투더레트로 차민용 사장

Q. 빽투더레트로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A. 인천의 사라지는 근현대사 문화를 보존하고 싶어서 이 곳을 운영하게 됐다.

Q. 이 곳은 특히 추억 속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강하다. 어떠한 점이 다른 곳과 차이를 만드는지.
A. 보통 카페나 호프집은 옛 향수의 분위기를 내는 곳이 많은데, 흉내만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수집가이자 운영자로서 문화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이곳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A. 우리 가게의 오락기는 대부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제품들이다. 아무래도 수리할 때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최근에는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종종 험하게 다루는 분들이 계신다. 이 공간은 단순히 오락공간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문화를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끝으로

앞에서 언급하였던 곳뿐만 아니라 이곳 인천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는 1883년 개항했던 인천항의 근대 역사가 잠들어 있어 거리 전체가 문화·역사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현재 다양한 문화재와 근대 건축물은 물론 아기자기한 카페도 많아 인증샷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인천시에서는 매년 가을 이곳에서 ‘개항장 문화재 야행’을 열고 대불호텔, 제물포 구락부 등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을 야간까지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그 곳에서 공연, 근대의상체험 등의 특별한 행사를 열기도 한다.
옛것에 새로운 문화를 입혀 새롭게 즐긴다는 뜻을 가진 뉴트로처럼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건축물의 흔적에 새로운 문화를 입혀서 개항장 일대가 단순히 스쳐가는 관광지가 아닌 인천의 보물창고로서 새로운 문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남두진(Nam, Doojin _ 대진대학교 휴먼건축학과), 허민(Heo, Min _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지(Kim, HyunJi _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영화를 오래 보다 보면 과거의 영화들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구조나 영화 장면에서 데자뷔를 느끼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영화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고, 관객들의 경험치도 그만큼 증가했기 때문이다.
극장을 가야지 볼 수 있었던 영화를 이제는 손안에서 보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통신 기술의 발달은 꿈으로 여겨졌던 이미지들을 현실화 해준다.
그래서 가끔 과거에 상상하던 오늘에 서 있는 입장에서 ‘그렇다면 예전엔 오늘을 어떻게 그렸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자료들을 보게 된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바로 그런 영화이고, 그들의 상상력과 현재의 싱크로율에 놀랄 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혼돈의 시대는 다른 시각에서는 아이디어의 시대였다. 아이디어는 각 분야에서 탄생했고, 도전적 시도들이 다양했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시작된 기간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그들의 시선은 먼 외계를 향했다. 우주를 향한 시선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의문과 호기심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60년대의 상상력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혁신적이고, 무한한 추상성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전개됐다. 더불어 수많은 상상력은 다양한 형태와 개념을 통해서 표현됐다. 발달된 기계와 전자의 세계는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예술적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미술, 음악, 조각, 건축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됐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스타건축사가 된 오스트리아의 쿠프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나 영국의 아키그램(Archigram) 운동 등이 이런 60년대 흐름을 타고 등장한 실험적 작가들이다. 20대 초반 청춘들의 비현실적 도전들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다듬어지고 세련되게 건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모험은 고스란히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사진 filmandfurniture.com

1960년대 말은 아폴로 우주선이 발사된 시점이기도 하고, 냉전의 최고조에 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반전과 히피문화가 등장했으며, 많은 국가에서는 사회적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급진적인 학생운동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등장했던 시기다. 또한 문화에 있어서도 흐름의 변화를 대중이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예술의 경계가 조롱받고 허물어지는 극단적인 탈 권위의 경계기간이기도 했다.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충돌이 있었던 변화의 시간이었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서사적 SF 영화를 발표한다. 다소 철학적인 제목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아주 느릿한 화면으로 대자연과 인류의 탄생을 암시하는 화면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내면적 폭력성과 야만성을 은유하면서 시작되는 영화의 화면구성과 색의 조합은 뛰어난 회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지는 영화는 시간이 흘러 2001년의 어느 날이다. 조지오웰의 <1984>처럼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01년의 상황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맞지 않는다. 영화에서 말하는 2001년은 상징적인 미래의 시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영화 속 미래의 시점에서 본 우리의 생활에서 지구를 벗어난 여행은 일상화 되어 있다. 일리아드의 오디세이처럼 우주를 항해하는 광활한 이동이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이 영화에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시각적 형태들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이 해석하는 미래는 통합된 디자인과 드러나지 않은 첨단 기계를 보여주었다. 기계보다는 전자적인 이미지이고, 인공지능으로 구축된 미래는 매우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통상 미래를 떠올리는 두 가지 디자인 문법, 기계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의 상반된 구성 사이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았다. 적절한 기계적 구성과 유기적 통합성으로 영화의 배경을 구축했다.
이 영화에서 유독 배경으로 등장한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제한된 공간에서 가지는 인간의 내면 갈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연기는 갈등으로 폭발적이지도 않고, 섬세한 감정적 변화를 표현했다. 덕분에 이 영화는 무척 졸립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유독 건축계에서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배경의 공간들이 오늘날 현실로 재탄생하고, 다수의 영화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프리츠 랑이 영화 <메트로 폴리스>에서 이분법적 세계와 첨단 대도시의 모습을 창조해 내었던 것처럼,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어낸 기준은 이후 엄청나게 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다.

사진 filmandfurniture.com

프리츠 랑(Fritz Lang)이 기계시대에서 미래를 그려내었다면, 스탠리 큐브릭은 전자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AI)의 미래를 만들어 내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아날로그적인 화면 속 장치들이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장치들을 첨단의 전자장치로 생각했던 것 같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의 디자인들은 기계적이고, 섬세한 디테일이 풍부한 구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감추어진, 간결함을 중심으로 디자인 되었다. 이러한 단순성은 20세기의 시작부터 시작된 모더니즘의 영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식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등장했던 시기, 즉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직설적인 과거의 장식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기계의 고전적 장식적 형태를 드러내었다. 이 점에서 마치 라디에이터나 터빈 같은 기계적 구성을 마치 반복적이고 화려한 디테일의 장식으로 치환했던, <배트맨>, <블레이드 런너>와는 아주 대조적인 시각적 구성이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영화 중심으로 나오는 우주선의 공간을 살펴보면, 60년대를 풍미했던 사이키델릭한 기하학의 구성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디자인은 피에르 가르뎅이나 파코라반 등의 <스페이스 룩>이라 지칭한 유니크하고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패션도 볼 수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나오는 올리비에 모그의 붉은색 소파들 같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들은 모티브로 디자인 되었다. 덴마크 출신으로 60년대 플라스틱 가구 등을 발표한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의 다양한 디자인들을 보면, 60년대의 모험을 알 수가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60년대에 꿈꾸던 다양한 디자인 문화 트렌드를 집약해서 보여준 영화 같다. 언급한 공간, 패션, 가구나 소품디자인, 조명 구성 등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영화 속 공간, 건축들이 또 다른 주연처럼 다뤄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덜 친절한 상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화면의 구성이나, 색의 구성, 난색과 한색의 의미적 조합 등이 그것이다. 시각적 코드는 매우 일관되며, 투명한 소재에서 발광하는 형태의 디지털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거나, 주제로 삼은 많은 디자인 작품들에서 유리 같은 투사재료에 대한 조명의 구성을 떠올린다면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빛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고전적 거주공간의 바닥에서 비추어지는 형광빛은 부유의 이미지를 주며, 무중력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도형의 구성, 사각형과 원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영화 전체의 시각적 흐름은 이 영화가 얼마나 디자인과 의미의 간극에서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또한 부드럽지만 다양하게 적용되는 색,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리듬감 있게 전개됐다.

사진 www.syfy.com

설명도 불친절하고, 숨어있는 그림 찾아 해석해야 하는 것 같은 영화라 따분하고 지루하긴 하다. 실제 영화 상영시간도 길다. 완벽주의자인 스탠리 큐브릭이 말하고자 한 내용은 엄청난 서사를 한편의 압축된 영상으로 처리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을 담고 있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종교와 과학을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인류의 진화와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집단성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기독교적 코드들도 뒤섞여 있다.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는 문장과 동시에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연상되는 검은 비석은 영화의 전환마다 등장한다. 십계명은 기독교의 중요한 윤리 지침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정의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검은 비석은 충분히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시의 본능적 인간성은 과학 문명이 바뀌고 첨단의 기술 세계가 되었을 때, 인간 닮은 컴퓨터 AI에게서 폭력성을 만나게 된다. 결국 신이 된 인간은 자신의 창조물을 스스로 파괴하고, 죽어간다. 이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노화로 늙어 죽어가는 주인공과 다시 등장하는 탄생의 과정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자들에게 생각의 시작을 알려준 인간의 존재, 도덕, 윤리, 탄생과 죽음… 이 엄청난 주제들을 2시간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보여주고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는 내용과 시각적 표현 모두 우리에게 생각의 계기를 주었고, 인간에게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리고 이런 철학적 이야기 주제들을 다양한 영화 속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그 장치들은 디자인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

애국이 과잉 구축된 국가대표 유니폼

National team uniform with excessive patriotism

요즘처럼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는 때도 없었던 거 같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빨갱이를 몰아내자며 태극기를 연신 흔들어대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이들 애국 노인들이 태극기가 커다랗게 새겨진 모자를 쓰고 태극기가 새겨진 백팩을 등에 매고 거기에 작은 태극기를 꽂거나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애국과 멸공을 외치는 단체 중에는 아예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조차 있다. 기업들은 애국 마케팅을 하며 광고에 태극기를 삽입하고 있다.

사진 1)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2)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의 전쟁 프로파간다 포스터. 진주만 공격으로 훼손된 자존심을 찢어진 성조기로 표현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다. 혐한 시위는 이번 한일갈등과 관계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혐한 시위에는 반드시 일장기와 욱일승천기가 등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국의 무역전쟁은 물리적인 충돌이 없을 뿐이지 감정의 격앙 상태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무역전쟁은 과거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전쟁에서는 역시 심리전이 중요하다. 과거 1, 2차 세계대전 때 각 참전국들은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상대국에 대한 증오심을 극대화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다양한 선전 포스터를 활용했다. 이때에도 국기는 가장 중요한 그래픽 모티프가 된다. 이런 선전 포스터에서 자국의 국기는 하늘 높이 휘날리고, 적국의 국기는 불태우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기 마련이다. 국기는 상징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상징으로서 국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기는 스포츠 대회 기간이다. 올림픽을 비롯한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니폼의 가슴에 달린 국기는 선수들에게 자긍심의 상징이 된다. 때로는 그 자긍심 고취의 과욕을 보기도 한다. 이번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 유니폼이 그것이다. 보통은 왼쪽 가슴 부분에 작게 태극기가 들어간다. 수영복에는 국기를 넣지 않고 모자에 넣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의 유니폼에는 태극기가 어떤 변형을 거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바탕이 되는 검정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체가 검정색이었던 유니폼에 갑자기 누군가의 지시로 태극기를 두른 것 같다. 배경과 태극기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태극기는 겉돌고 있다.

사진 3) 여자 수구 대표팀 유니폼. 태극기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사진 4)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사진 5) 아르헨티나 국기

유니폼 전체를 국기 모티프로 디자인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유명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은 자국 국기를 표현한 것이다. 세로의 두꺼운 하늘색 스트라이프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유럽 국가의 국기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그래픽 모티프인 띠 패턴, 또는 십자 패턴은 그 자체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도 아주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된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프랑스, 스웨덴 같은 나라의 유니폼도 국기를 표현한 것이다. 물론 약간의 변형을 거친다. 그 변형은 원래 국기가 가지고 있던 띠의 굵기를 선으로 바꾸는 식이다. 아무리 단순한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좀 과하다고 여긴 것이다. 세련됨이란 ‘환원주의’를 따른다. 다시 말해 복잡한 것을 절제하여 압축할 때 세련미를 얻을 수 있다.

반면에 태극기는 중앙에 태극 문양이 있고, 네 구석에 4괘의 문양이 덧붙여졌다. 그에 따라 다소 복잡한 모양이 되었다. 태극과 쾌는 서로 잘 어울리는 문양이라고 볼 수 없다. 그냥 전혀 다른 기운을 갖고 있는 독립된 모양이 하나의 화면 안에 배치되었다. 이에 따라 태극기는 복잡해졌고, 또한 추상성이 약화되었다. 추상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처럼 좀 세밀해지고 복잡해져서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국기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삼색 문양이나 십자 문양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추상적인 면과 띠의 구성이어서 색상만 이상하게 쓰지 않는 이상 잘 어우러진다. 이런 국기는 유니폼으로 그대로 가져와도 세련됨이 약화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미국의 성조기 역시 복잡한 모양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유니폼에 적용하면 이상해진다. 따라서 미국 국가대표 유니폼에 성조기를 적용하려면 별과 스트라이프를 독립된 그래픽 요소로 보고 다시 재구성을 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 정체성도 금방 드러내고 세련미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 그래도 삼색기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유니폼만큼 세련되지는 못하다. 그만큼 복잡한 국기의 디자인이 갖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 6) 미국 사이클링 대표팀 유니폼은 국기의 패턴을 최대한 이용하되 그 요소들을 독립시켜 변형했다.

나는 국기 디자인의 우열을 가리고자 함이 아니다. 국기는 그냥 익숙해져서 그것을 좋아하거나 어떤 역사적인 기억이 부여되면서 싫어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 디자인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물성에 적용하려 할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국기를 대표팀 유니폼이나 의류, 또 어떤 상품에 적용할 때는 아주 신중하고 치밀하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촌스러워지기 딱 좋다. 나는 성조기를 이용한 미국의 기념품에서 그런 촌스러움을 많이 발견한다. 기념품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환원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대표적인 장이다. 관광객에게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심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념품들은 대개 억지스럽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그렇게 대상을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 이는 지방에 가면 각 지방단체별로 자기 지역의 특산품을 표현한 거대한 조형물에서 엿볼 수 있다. 이번 여자 수구 대표팀의 유니폼 디자인도 이러한 발상과 다르지 않다. 은근하게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국가에 대한 애정을 과잉 구축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애국인가? 태극기를 휘날리는 그 행위 자체는 상징적인 것이다. 겉으로는 태극기를 휘날리고 실제로는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애국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징적 행위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그것으로 애국을 증명하려는 태도가 득세하면, 이렇듯 주변에서 태극기의 홍수를 보게 된다. 그것을 넘어 과잉 유니폼까지 낳게 되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