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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4·3’! ‘Version 2.0’을 시작하라!

New ‘4·3’! Start ‘Version 2.0’!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입장에서 건축에 처음 입문했을 때 많은 학생들의 가슴을 채웠던 것은 해외 건축 잡지들이었다. 안도 다다오나 아이 엠 페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비단 80년대 학번뿐만 아니라 그 이전도 그랬던 것 같다. 아쉬운 점은 그런 부러움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건축계를 자세히 보면 많이 아쉽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렇다 할 건축적 이념이나 철학적 치열한 논쟁 없이 지나오던 시절이었다. 김중업과 김수근의 부여박물관 논쟁 같은 치열함이 더 이상 연장되지 못한 것이 우리 건축계에는 독이 된 듯하다. 아무튼 1980년대 이후 사회 정치적인 배경과 건축에 대한 갈증의 30, 40대가 나서서 욕받이로 뭔가 바꾸려 도전하고 도전했다. 서구의 68세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 안에서는 도전의 세대가 있었다. 건축계에 나타난 ‘4·3그룹’이 아마도 우리나라 건축계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존재한 그룹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많은 20대들은 이들 4·3그룹에 영향도 받고 약간의 기대와 꿈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그 당시 20대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됐다. 그리고 4·3그룹의 핵심 멤버들은 우리나라 건축계의 중심 원로들이 되어 건축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는 현역이기도 하다. 기대가 더 큰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해 보이지만, 토목과 건축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나름의 변화를 이끌어낸 세대들이기도 하다.
아무리 인생이 60부터이고,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청년층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모순과 부조리에 가장 저항력이 강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건축사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일어났던 수많은 유럽의 건축 운동은 20, 30대의 젊은이들이 주도해 왔다. 극단적인 이탈리아 미래파의 경우는 겨우 20세 갓 넘은 청년들이었고, 이들의 선언은 건축사라는 큰 시간의 틀에 끼어 들어갈 정도로 적극적이고 치열한 것이다. 가장 극적인 사회가 프랑스였고, 그들의 68세대는 사회전반의 변화를 이끌었고, 건축도 그 중심에 존재했다. 우리와 불편한 관계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생뚱맞게 건축 세대들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건축계의 변화와 새롭게 거듭남을 주도할 수 있는 계층이 바로 30, 40대라는 점 때문이다. 일본을 포함한 서구 건축계는 고전건축의 틀을 벗어나 지난 백년간 치열한 논쟁 속에서 변화되었고, 그 중심에는 청장년이 중심이 됐다. 그들의 주제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참여를 기반으로 치열한 철학적 논쟁과 다양한 개인적 이론들이 개발되고 토론되며 사회에 발언됐다. 대략 50, 60년이 뒤쳐져서 해방 이후 시작된 우리나라 현대 건축은 건축적 논쟁보다는 산업에 종속되어 구조적이고 생산 시스템 안에서 작동됐다. 몇 몇 개인들의 참여와 노력들이 있었지만, 김수근을 비롯한 이들 건축계 인사들은 사실 사회적으로는 철저한 비주류였다. 이런 맥락에서 ‘4·3그룹’의 탄생과 80, 90년대 노력들은 주목할 만하지만, 건축적 논쟁이나 개인적 이론들은 발아하지 못하고 개인화 되어버렸다.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어가면서 의식주의 관심 순서처럼 사회적 관심사들이 건축으로 가는 듯하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오늘날 건축사들에게 진지한 질문을 하는 것 같다.
“당신의 건축, 한국의 건축은 어떤 것이냐?”
그 중심에 서서 도전하고 발언해야 하는 세대들이 30, 40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더 넓혀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건축으로 유학가야 하는 변방국이 되어야 할지… 30, 40대가 더 발언하고, 발언하길…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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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읍성 영금문

Naju Eupseong Youngeumun Gate

나주 읍성에서 서성문인 영금문이 2011년에 복원되었다. 밖으로는 돌로 쌓은 옹성이 둘러있고 누각에는 영금문(暎錦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복원을 하면서 ‘나주목여지승람’의 기록을 따랐다고 한다. 동학전쟁 때 금성산 월정봉에서 나주를 공격하였던 농민군의 공격에 함락되지 않고 우두머리 전봉준과 영금문에서 협상했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모든 성문과 성루가 철거 되었다. 중층의 남고문(南顧門)과 달리 단층이고 규모가 작지만 비례도 좋고 거친돌로 쌓여 있는 성곽과 어울림이 좋아 아름답다. 성문 옆에는 맛집인 서문주점이 있다. 주점 평상에 나와 앉아 막걸리 한잔하며 성을 바라본다. 도시의 곳곳에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얽켜있다. 남아있는 건축물과 장소를 보면 지금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만들려는 노력과 아름답게 사는 것은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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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우리는 사실 다 알고 있다

건축담론

01 We all know

설계 과정에서 건물의 구석구석까지 가능한 모든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디자인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많은 건축사가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건축물의 뼈대와 공간구성은 물론, 조명기구 하나의 종류와 크기, 타일 한 장의 질감, 마루 한 장의 기준점 위치 등등 온갖 요소들이 조화롭게 모일 때 완성된 공간이 빚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주택 프로젝트에도 역시 마찬가지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갔다. 설계 단계에서 계획되고 결정된 사항들이 그대로 잘 들어맞아서 문제없이 시공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고, 비록 소규모 건축물 감리분리 대상에 해당하여 공식적인 감리 업무를 시행할 수는 없어도 시공 중 발생할 변수들과 실물을 보면서 생길 건축주의 변경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계획이었다.

많은 건축사가 겪는 일이겠지만, 단독주택의 경우 실내외 마감 공사 단계에 들어가면서 건축주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재료 등이 변경되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 전체적인 공간 컨셉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때로는 마음 아프게 그 이상의 범위가 되더라도, 실제 이 집의 삶을 누릴 주인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경 요구가 생길 때마다 우선은 각 재료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되었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시공되는지, 그 결과가 공간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에 반영될지를 우선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건축주의 의도가 그와 다르다면, 대체로 내 의견을 굽히고 받아들이는 방향을 취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설득 과정마저 포기하지는 않았고,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건축사사무소 개업 후 처음 겪는 일이 발생했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해서 원래의 디자인을 어필하는 내게 돌아온 것은, “그 재료를 사용해서 따로 이득을 얻고 있으니 그러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면 그 디자인을 자꾸 고집하고, 내가 그 디자인을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뉘앙스의 건축주 반응이었다. 건축주가 암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건축·건설업계의 관행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리베이트’ 문화 말이다. 자신과 계약한 건축사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건축주의 선입관에 의해, 몇 달에 걸쳐 애써 만든 디자인이 설득력을 잃어버렸고, 그 디자인은 나의 의지가 아닌 자재회사와의 뒷거래에 의한 것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우리 사무소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얼마나 퍼져있을지도 모를, 어쩌면 건축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오래되고 널리 퍼진 ‘리베이트’ 관행의 피해자가 되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관행의 문제점은 ‘리베이트’라는 단어의 원래 뜻과는 다르게 비용이 지불자에게 금액 일부가 되돌려지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 여기서는 건축사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관행을 만든 분들은 건축주에게는 좋은 품질의 결과물이 돌아간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상대방이 먼저 건넨 경우건, 건축사가 먼저 요구한 경우건 간에, 돈은 오고 갔고, 결국 건축주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재회사, 혹은 시공사를 통해서 건축사에게 ‘계약 외 비용’을 지출한 셈이 된다. 계약 ‘외’ 비용이니, 여기서는 ‘웃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을 듯하다.

건축사의 업무 대가가 하는 일의 양이나 책임 대비 정상적인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은 동의한다. 나도 겪었고, 겪고 있는 일이다. 처음 개업했던 30대 때에는 가장 헤쳐나오기 힘든 장벽이기도 했다. 어쨌건 이런 상황 때문에 이 ‘웃돈’이 정당히 받아야 하는 비용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동의한다. 단, 건축주에게 이 비용의 필요성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웃돈’이라는 용어가 아닌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 당당하게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공사를 통해서 돌아서 올 것이라면, 설계계약을 통해 받는 것이 당연히 훨씬 건전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결과적으로 ‘시공사 또는 자재 회사의 수주를 도운 것이기 때문에’, 혹은 ‘시공과정에서 문제해결 등 시공사에 도움이 되는 일 또한 많이 하게 되기 때문에’ 등등, 이 계약 외 비용에 대한 건축사들의 합리화 논리는 생각보다 많다.

그런 합리화 논리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수긍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관점들에서 동료 건축사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측면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 의료인들의 윤리적 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인류, 스승, 환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윤리, 명예에 대한 다짐이다. 우리 건축사들 또한 건축사법에 규정된 윤리선언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따라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 공공의 발전, 의뢰인, 동료 건축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무와 윤리에 대해 개인과 집단의 명예를 걸고 선언한다.

이 건축사 윤리선언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 조금 더 강조된 곳이 있는데, 바로 동료와 사무소 경영에 대한 윤리 부분이다.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동료 건축사의 수임 업무와 지식 재산을 존중’하며, ‘정당하게 사무소를 운영’할 것이 건축사법 시행규칙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웃돈 문화와 건축사 윤리선언이 부딪히는 지점들이 많고, 그중 상당수는 논의를 통한 제도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동료 건축사’와 관련된 부분은 다르다. 쉽거나 작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웃돈을 받는다면, 이를 통해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면, 이를 거꾸로 보면 본 설계의 계약비용은 적당한 수준이 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건축사 업무의 가치와 보상에 대해 건축주와 논의할 기회를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은 것으로, 이는 곧 정당한 계약을 하려 노력하는 동료 건축사에 대한 피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현상이 위에 서술한 것처럼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고, 건축주들도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는 건축사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의 문제가 되고, 동료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 ‘신진 건축사’. 표현은 달라도 일반적으로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건축가, 혹은 건축사들을 부르는 말들이다. 개업 후 만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젊은 건축가’라기보다는 ‘값싼 건축사’로 소비되기도 하며 40대 초반을 맞았다. 주변도 조금 돌아보고, 정당한 설계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나가야 할 시기에 맞이하게 된 상황이 신뢰와 명예가 실추된 건축사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무척이나 씁쓸하다.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법제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건축계의 문제점들을 건축사 스스로 바로잡으려는 시도라고 알고 있다. 그중에 ‘동료 건축사에 대한 윤리’와 건축사의 명예를 지켜나가려는 노력 또한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들,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 않은가?

 

글. 신현보 Shin, Hyunbo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서울특별시건축사회>

신현보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

한국(KIRA)과 네덜란드(BA) 등록건축사이며, 고려대학교와 네덜란드 TU Delft에서 수학하였다. 공간종합건축사무소와 기오헌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2013년 디자인밴드요앞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설립하여 5년여 간 활동한 후,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건축물의 기본적인 소명과 공공성에 대해 탐구해왔다. 현재 한남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SOBO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건축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ailoflu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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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좋은 건축

건축담론

02 Good architecture

좋은 건축

사무실 멤버들과 흔히 말하는 단어가 “좋은 건축”이다. 내가 좋은 건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나 보다. 어느 날 멤버 중 한 친구가 물었다. “소장님이 말하는 좋은 건축은 무엇입니까?” 선뜻 즉답하지 못했다. 나에게 좋은 건축의 의미는 무엇일까 돌이켜 보았다. 학생 때에는 디자인이 좋은 건물이 좋은 건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무를 시작할 때는 공간이나 디테일이 잘된 건물이 좋은 건축이었다.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의 노력들이 모여야만 잘 만들어진 건물이 나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오픈하면서는 사무실 멤버, 클라이언트, 시공사 나아가 그 건물을 이용하고 경험하고 이웃하는 모든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무게가 더해졌다. 지금 시점에서 좋은 건축의 의미는 나에게는 너무나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즉답을 못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답의 복잡함과 모호함 그리고 그걸 공간을 디자인 해야 하는 사람이 다 감당할 몫인가 하는 의문까지 더해져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좋은 건축인들이 좋은 건축의 의미를 쫓아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각자의 좋은 건축의미는 다르겠지만 그 무게만큼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직업적 가치

나는 직업으로서 건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다른 분이 우리 현장 감리를 보신 적이 있다. 3년여의 시간동안 2번 현장을 방문했다. 감리비에 비례해 본인이 생각하는 현장 방문횟수를 정한 건지 아니면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건축을 대하는 태도의 면에서는 자격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축사라는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좋은 건축인이 건축을 하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끝까지 좋은 건축을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싶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하는 직업의 기본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라는 이유만으로 건축을 대하기에는 내 마음속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올라온다. 건축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내가 건축에 대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내 스스로 느끼고 지키고 싶은 것들. 그것들이 행해진다면 건축인의 직업적 가치가 빛나지 않을까?

 

적절한 설계비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일을 하는 건축인에게 얼마의 설계비가 적절할까? 주택을 설계할 때에도 10여 차례 미팅과 여러 대안을 검토한다. 대지를 분석하고, 주변 관계를 고려해 메스를 앉히고, 쓰임에 맞게 공간을 디자인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와 설비를 정의하고, 가구를 선정하고, 기초도면과 거기에 각종 확대도, 상세도, 시방서를 더해 일을 마무리한다. 최소한의 일의 범위를 생각하더라도 적지 않은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장이 요구한다는 핑계로 덜 일 해주고 덜 받는 쪽으로 우리의 건축시장은 커져 있다. 좋은 건축이 많아지려면 제대로 일하는 건축인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적절한 설계비를 우리 모두가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설계비를 싸게 부르는 조급함이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또 우리의 후배들에게 좋은 건축을 하면 좋은 기회들이 온다는 희망을 우리의 안일함으로 뺏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변화

총괄건축가 제도와 공공건축가 제도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이다. 공공분야에서 좋은 건축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필요가 이와 같은 확산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행정조직과의 마찰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크다. 아니 우리가 그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롭게 시행된 설계공모방식은 과거의 은밀한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 설계공모에서 뽑힐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 본다. ‘영주시’나 ‘프로젝트 서울’에서 보여지는 결과물들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이런 제도가 더욱더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건축인들이 힘을 보태 좋은 건축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좋은 건물을 디자인하고 짓고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좋은 건축을 찾는다면 한국 건축계는 선순환 구조의 시장의 틀을 가지지 않을까?

 

미래의 건축

나는 여전히 한참 건축을 경험하고 있다. 좋은 건축의 정의 역시 미완성이고 진행형이다. 나라는 인간이 인생을 사는 건 실수투성이에 불완전하다. 하지만 좋은 건축을 하는 태도만큼은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냐고? 건축이 가치가 있냐고? 그 수많은 의문에 대한 대답은 사회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우리가 증명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트레싱지를 펼치고 의견을 나누는 사무실 멤버들을 보며 우리 건축의 미래가 어둡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건축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글. 이기철 Lee, Kichul (주)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이기철 (주)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이기철은 동아대학교 건축학과와 유씨 버클리(U.C.Berkeley) 환경디자인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의 프레데릭 슈왈츠 아키텍츠와 (Frederic Schwartz Architects)와 한국의 공간건축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2012년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Architect-K)를 개소 운영 중이다. 엑상프로방스의 장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폴 세잔처럼 건축계의 장인으로 세월 속에 익어가는 건축사로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kichul@architect-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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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설계기술혁신 어디까지 갈 것인가?

건축담론

03 How far will design technology innovation go?

세기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현재 40대 중반 이후의 건축사들은 손도면에서 CAD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세대이다. 필자가 대학 입학 당시 출시된 WIN95는 DOS 시대의 막을 내린 매우 획기적인 운영체제였고, 1980년대 DOS 시절부터 사용돼 왔던 원시적인 CAD도 이때부터 현재 시스템의 기반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WIN98로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되고,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무렵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초고속 인터넷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고, 각종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개인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PC 보급률은 엄청나게 올라가게 된다. 대학에서도 앞다투어 CAD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했으며, 건축사사무소의 상징이 되었던 그나마 남아있던 제도판도 하나둘씩 없어지고, 그 자리를 온전히 PC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불과 20여 년 전,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손도면 시절에는 사무소 유지 인원이 최소 3~4명 이상 되어야 했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도면을 그리는 절대 시간이라는 게 있기에 설계 기간도 그만큼 길었으며, 그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CAD가 보급되긴 했지만 기능의 제약 때문에 손도면과 병행하였고, 1998년 이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CAD가 온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인지 IMF 때문인지 안타깝게도 사무소 구조조정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규모가 적은 아틀리에는 2~3명으로 줄고, 1인 사무소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인원이 줄어든 만큼 여러 건축사가 한 공간을 쓰는 공유 사무소도 늘어났다. 현재 4~5명 규모의 건축사사무소는 제법 규모가 있는 셈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해 사무소의 구조와 풍경, 설계의 방식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90년대 말 CAD의 본격적 보급과 동시에 Photoshop, Illustrator와 같은 2D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등장해 결과물의 비주얼을 개선하였고, 한글, PowerPoint, Excel과 같은 문서 소프트웨어는 행정 시스템을 디지털화 시켰다. 또한 3D Max, Maya, Lightwave와 같은 3D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손으로 그리던 투시도는 점차 사라졌고, 그림자와 재질이 더해진 디지털 이미지로 실사와 같은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손으로 도면을 그렸다는 사실이 점차 잊혀질 무렵, 2007년 정부 주도로 세움터라는 건축행정시스템이 시범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이후로 전국에 빠르게 정착되었으며, 기존에 몇 번을 방문해야 하는 수고가 없어지고, 지역에 상관없이 디지털 파일로 도면을 검수하고 공인인증서가 인감도장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확장자 dwg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설계를 하는 데 있어 지역 제한이 사실상 사라졌다. 민간건물의 경우 서울에 있는 건축사가 제주도에 있는 현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사진이나 로드뷰를 통해 현장을 확인하고 인허가까지 진행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행정과 만나 이룬 성과이다. 변화가 오기까지 준비 기간은 길지만, 정작 필요한 변화의 시점이 오면 수용하는 속도는 순간이다.

 

2D에서 3D로…

설계의 기본 감성은 아날로그이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툴(tool)이 진보하고 있다. 초기엔 스케치의 보조수단으로서 3D가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3D로 건물을 설계하고 이해하는 시대에 와 있다. 요즘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설계하면서 3D 툴을 사용하지 않고 설계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렇다고 2D 자체가 사라지진 않으리라 본다. 3D는 소점에 의해 정보가 왜곡되지만, 2D는 똑바로 된 사각형, 원형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2D에서 3D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는 2D가 사라지는 게 아닌 3D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단계에서는 건물의 전체적 형태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고, 실시단계에서는 시공과정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것과 같은 효과로 2D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 평입단면도의 커넥션, 타 공정과의 간섭여부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존재한다. 이 선두주자에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있다. 앞으로의 설계 패러다임을 또 한 번 바꿀 굉장한 시스템이다. 객체기반 모델링이 가능한 Revit, ArchiCAD, Rhino3D 와 같은 소프트웨어로 3D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2D도면 추출이 가능하며, 국제표준파일인 ifc확장자로 내보낼 수 있다.

허나 아직까진 진정한 BIM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긴다. 대부분 3D 모델링하여 결과를 확인하고 2D도면을 추출하고 내역에 수량 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하지만 BIM의 가치는 단순히 설계를 3D로 진행하는 그 이상이며, 건축생태계 자체를 3D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다. 자재정보 3차원 DB가 구축되고, 해당 모델을 사용할 경우 시방과 단가데이터가 업데이트되어, 모델링이 완료되면 각종 분석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도면, 내역, 시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인허가단계 또한 3차원으로 검증하여 불필요한 검토시간을 줄이고, 시공과정에서도 시공자나 감리에게 BIM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 이 파일이 준공 후 건물관리자에게 전달되어 추후 유지보수 및 관리에 활용되게끔 제도화가 되어야 비로소 BIM 시스템이 완성된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지만, 행정에서 추진하면서 점차 인식이 바뀌고 있고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이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글. 이원규 Lee, Wonkyu 건축사사무소 이움건축<광주광역시건축사회>

이원규 건축사사무소 이움건축

전남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였으며, 동대학교에서 박사수료 과정을 마쳤다. 정림건축 비정형디자인연구팀에서 설계와 연구를 병행하였으며, 광주로 내려와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고 전남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디지털 건축 강의를 하고 있다.
광주·전남·전북 건축사회 신문 ‘건축문화사랑’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단독주택, 근생, 다세대, 업무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최근 도시재생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ium-arc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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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건축 티쿤올람

건축담론

04 Architecture Tikkun Olam

‘건축의 혁신’이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야 할지 막연했다. 이전에 좋은 글을 적으신 건축사님들의 담론을 보니 원만한 주제들은 이미 다 다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주제보다 다소 중복이 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근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란 묵은 조직이나 제도, 풍습, 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새롭게 하는 일이란 기존의 관행이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혁신의 아이콘으로 스티브 잡스를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아이디어를 중요시 한 그는 우리의 삶을 확실히 많이 바꾸었다.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을 이룬 많은 기업가와 노벨상을 받은 이의 약 22%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유대인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분야에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이루는지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원고 청탁을 받고 우연히 한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유대인에 관한 특집 방송을 다루는 것을 보게 됐다. 방송을 보고 나서 “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들의 교육과 환경이 만들어 낸 삶과 일상이 우리와 비교할 때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유대사상 중에서 티쿤올람이 바로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어로 티쿤은 “고친다”는 뜻이고 올람은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티쿤올람은 세상을 바꾼다라는 의미로 유대인들이 항상 지금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이, 조직, 직위와 관계없이 끊임없는 노력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 보다 안전함이나 보편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가치관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티쿤올람의 정신으로 건축분야의 무엇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규제 혁신-건축법 해석 개혁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대한민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을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 진행한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소위 대표 건축사를 선발하여 해외의 유명 건축사사무소에서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다수가 그 방법론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이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치닫고 있는 지금 왜 일본에서는 프리츠커상을 저렇게 많이 배출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받을 수가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나는 우리의 현실과 제도에서는 당연히 아니 앞으로도 제도 및 규제 개혁 없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 할 수 없다고 본다.
프리츠커상은 명실상부 건축계의 노벨상이다. 그런 만큼 건축과 관련하여 혁신을 이루는 공헌을 하여야 하고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창조해야 한다. 이토도요(프리츠커상 수상)는 일본 건축법으로 해석할 수 없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실험하고 증명해서 관청을 설득하고 건축허가를 득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건축사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창조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건축 허가를 득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본 건축법을 바탕으로 만든 우리의 건축법은 단 한 번도 대대적인 정비(물론 수차례 개정은 있었다.)가 없었다. 이러한 건축법으로 새로운 설계개념을 모두 정의 할 수는 없다. 하물며 건축법으로 정의 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들 이 해석을 놓고 건축사는 과연 허가를 득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허가권자와 법의 해석이 서로 다를 경우 흔히들 국토부에 질의 회신을 한다. 하지만 질의 회신의 결과는 명확하지 않고 항상 허가권자와 협의하고 허가권자가 최종판단 할 수 있도록 회신을 해준다. 당연히 허가권자와 의견이 달라서 질의를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아주 오래전에 건축법 해석과 관련하여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국토부에 직접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통화가 연결되어 상황을 설명하니 건축법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관련 내용을 문서로는 회신할 수 없다고 했다.
작년에 모 지역에서 지구단위계획지침을 보고 해석하고 반영해 설계를 했다. 우리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허가를 접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해석하였다고 하여 허가를 득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는 건축주분과 같이 시청의 담당자를 찾아가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구단위계획지침 상으로 문제가 없지만 문서상으로 회신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는 건축주에게 국토부 질의를 해보아도 허가권자가 판단하도록 문구가 첨부 되어서 답이 올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자고 했다.
우리의 사회와 제도에서는 개혁을 하기가 어렵다. 허가권자나 담당자에게 너무나 과중한 책임을 묻는다. 그러다 보니 허가권자는 모든 사항을 부정적으로 또는 없는 해석도 과대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의 규제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건축이 탄생 할 수 있겠는가?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정책인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건축법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바이다. 공무원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아닌 건축 관련 서비스 업무를 하도록 하게 하고, 건축법을 확인하는 건축센터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것이라 판단된다. 국토부의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으로 창의적인 설계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건축법 개선도 매우 훌륭한 변화이다. 이러하듯 규제와 관련한 새로운 혁신은 지금까지의 사고와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통제하고 규제하고 잘못된 것에 책임을 묻는데 집중했다고 하면 앞으로는 자유로운 창작과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위주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고제로 건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건축개념에 대한 건축법 해석이 불가할 경우나 건축법 해석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을 경우 질의 회신을 할 수 있는 오픈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통신이 발달한 만큼 컴퓨터 프로그램을 오픈 소스로 개발하는 것처럼 국토부나 대한건축사협회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개발 하고 이곳에 건축법 질의를 하면 다양한 건축사들이 해석과 관련한 의견을 올리고 최종적으로 대한건축사협회와 국토부가 조율하여 허가권자에게 명확하게 회신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석된 데이터가 쌓이고 오픈하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건축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대한민국 어디에서든지 일괄되게 적용될 것이다. 건축주는 지역에 따라 다른 해석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닌 형평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또 다른 많은 변화와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해 보지 않으면 영원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시작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건축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혁신이다. 좀 더 명확하고 단순하게 개혁하고 지금 이 시대의 건축과 공간에 맞게 변화를 가져간다면 진정 머지않은 미래에 이 땅에서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건축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글. 정웅식 Jung, Woongsik (주)온 건축사사무소<울산광역시건축사회>

정웅식 (주)온 건축사사무소

2007년 <多喜家>를 시작으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온 건축사사무소의 대표 건축사를 맡고 있으며 울산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대학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제5회 양산건축문화대전 장려상, 제8회 농촌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2015 울산 건축사상 주거부문 대상, 2015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5 김해 건축대상제 대상, 2015 경상남도 건축대상제 동상, 2016 울산 건축사상 주거부문 대상, 2016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 2016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우수상 및 장려상, 2016 울산 건축상 일반부문 장려상, 2017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최우수상, 2017년 울산 건축상 일반부분 최우수상, 2017년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우수상, 2017년 독일 Iconic awards Winner, 2018년 울산 건축상 일반부분 최우상등을 수상 했다. 대표작으로 <多喜家>, <Y-House>, <Tower-house>, <H-house>, <프로젝트 ‘용적률 게임’>, <Pentagon>, <旻輝庭>, <Cliff house>, <Dance building> 등이 있다.
jws@o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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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은 공간혁신…학교건축 전반에 전문가 도움받는 시스템 구축 목표” _ 권문성 교수

“Educational reform is spatial innovation… Aiming to build a system that receive professional help for the entire school architecture”

교육 당국이 건축사 등 건축전문가를 투입해 학교 공간혁신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3월 ‘학교 공간 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천편일률적인 초·중·고교 건물을 혁신적으로 뜯어고쳐,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감성적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 향후 5년간 총 3조5천억원을 투입해 최소 1250여개 학교를 혁신하겠다는 방침이다. ‘꿈을 담은 교실’사업 등 각 시도교육청 학교공간 재구조화사업 규모를 전국 단위로 넓혀 학교공간 변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그간 학교공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정책에 반영된 것.
“교육혁신은 공간혁신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육혁신을 위해 학교 공간혁신 사업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간의 투자는 많은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작년 한 해 동안 33개 학교가 서울시에서 35억원, 시교육청에서 66억원 등 총 101억원을 지원받아 변신을 시도했다. 딱딱하고 획일화된 기존 학교공간을 아이들 중심으로 바꿔 창의력과 감성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학교의 변신에 학부모와 아이들의 만족해하며 “학교가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현재 전국 각 시도교육청은 시·도단위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학교별 사업을 총괄할 총괄기획가 임명을 마쳤다. 대한건축사협회도 지난 6월 교육부와 MOU를 체결하고, ‘학교공간혁신 촉진자(퍼실리테이터)’ 교육을 전국 건축사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월간 건축사가 ‘서울교육공간자문관’으로 선임돼 ‘학교공간 혁신사업’ 변화 한 가운데에 있는 권문성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건축사)를 만났다.

 

권문성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_ 현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공간자문관’으로서 권문성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교육청 혁신사업의 성격과 방향,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 2019년 서울시교육청 ‘서울교육공간자문관’, 2011년 문화예술 명예교수, 2010년 제12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머셔너

Q 새롭게 서울시 교육청의 ‘학교 공간혁신 총괄기획가’로 선임되셨습니다. 서울시교육청 혁신사업의 성격과 2기 사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2016년 서울시교육청이 2년 임기의 서울교육공간 및 건축자문관으로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를 선임하면서 학교건축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맡는 2기의 역할은 이런 변화를 안착시키고 그 폭을 더 넓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맡는 서울시교육청 내 공식 직함은 ‘서울교육공간자문관’입니다. 건축전문가로서 교육시설 관련해 조언과 정책제안을 합니다. 실제로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체제도 만듭니다.
1기 때 김승회 교수께서 틀을 잘 잡아주셨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민간전문가 제도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저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가 각 지자체장(교육감)이 전문가의 의견과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교육감님을 만나 뵙고 인상적으로 들은 말 중 하나가 “교육혁신은 공간혁신이다”였습니다. 교육혁신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또 하나는 실무자들의 협조인데, 서울시교육청 실무자들은 전문가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충분한 협조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1기 때 제일 많이 알려진 사업이 ‘꿈담교실’입니다. 교실, 도서관, 교무실, 행정실 등의 공간이 각각 실력 있는 젊은 건축사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이뤄지며, 이것이 교육계에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또 예전에는 설계공모를 진행하지 않았던 규모의 프로젝트들도 공모 의무화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내년 공공건축물은 설계비 1억 이상이면 설계공모 방식이 우선 적용되지만, 이미 서울시교육청은 설계비 오천만원 이상이면 설계공모가 의무화돼 있습니다.
또 하나 작년 9월 공표된 ‘서울교육공간 플랜’도 1기 때 있었던 중요한 변화 중 하나입니다. 서울교육공간의 미래를 위한 실천전략, 비전, 전망 등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역할을 맡은 2기에선 여기에 본격적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들이 이뤄진다 보시면 됩니다. 스스로도 제 역할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걸 하기보다는 이미 마련된 것에 내실을 더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발주 방식 중 입찰이라는 제도를 교육시설에서까지 적용한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공간의 작고 단순한 작업조차도 그 디자인의 결과물로 어린 학생들이 경험을 통해 창의적인 꿈을 꾸고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이를 포기했던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일정 규모 이상(설계비 오천만원) 프로젝트는 설계공모 틀 속에서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 한다면, 그 이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주 작은 것까지 고민해서 디자인한 결과물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년부터는 가칭 ‘학교건축가’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학교건축이 발주되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각 학교마다 최고의 교육시설이 될 수 있는 비전을 갖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예산이 집행된다면 예산효율도 많이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교육청에서 추진 중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동문인 건축사 또는 학부형, 지역 연고가 있어 학교를 잘 아는 분들이 학교건축을 실제 발주하는 주체인 교장선생님, 행정책임자를 도와드리는 역할을 하는 제도입니다. 학교에 필요한 시설이 무엇인지, 시설개선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그 방법부터 조언하고, 실제로 소규모일 경우 수의계약을 통해 그 학교건축가가 역할을 맡을 수도 있을 겁니다. 수의계약부터 공모의무화 금액까지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MP로서 일을 하게 된다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시설 관련 발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현재 서울시 초, 중, 고교 공립·사립학교가 약 1700개 정도입니다. 그 많은 민간전문가분들을 한 번에 임명하는 게 굉장히 어렵기에 선임이 완료되는 시기는 지금부터 한 3∼5년 후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차근차근 진행되어 이를 실현, 정착시키는 게 제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1기 때 쌓은 기초에 살을 붙이고 내실을 더하고, 또 학교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신다는 점에서 학교건축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 생각됩니다. 서울시 마을건축가와도 연계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보여집니다. 서울시 1700개 학교에 다양한 건축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되면, “기존 학교 프로젝트는 도대체 누가 하고, 어떻게 선발이 되는 거냐”라는 시비도 없어질 것 같습니다.

특별히 공공건축, 교육에 대해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이런 역할을 하는 데 꼭 경험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업 후 열정과 소명의식은 있지만,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젊은 건축사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미래에 우리 건축을 이끌어 나갈 건축사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서울시 1700개 초·중·고 학교 70%가 지어진 지가 30년이 넘습니다. 30년 전 기준으로 지어져 지금 보면 다시 지어야 될 시설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를 어떤 기준으로 고쳐야 좋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시작하려 합니다. 1700개 학교 중 10개 정도를 대상으로 시범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소수이긴 합니다만, 사회적으로 아이들에게 이 정도 시설에서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이룬 경제적 여유를 미래 학생들이 공부할 곳에 투입하고, 배려하는 시도를 지금부터는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저도 학부모 입장에서 공감합니다. 요즘 하는 말들이 옛날 우리가 다니던 독서실은 마치 카페처럼 자유토론도 할 수 있고, 개별공부방, 음악도 듣는 다양한 공간이 생겨 환경이 좋아졌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왜 변하지 않나”라고 반문하지 않습니까. 요즘 아이들이 방과 후 학교에 남으려 하지 않아요. ‘꿈담교실’도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이뤄진 시도였고, 이 과정에서 건축사들이 노력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노력들이 계속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학교공간에서 이런 건 있어야 한다라는 키워드가 있을까요?

그간의 평가와 반응을 볼 때 꿈담교실 실험이 일단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실만 바꾼다고 해서 전체 학교가 다 좋아진 건 아닙니다. 부분을 바꾸는 노력을 가속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 성과를 통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학부모와 사회를 설득했다면, 이제는 학교 전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꿈담교실이 과다하게 확대되는 것은 꼭 바람직한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노력, 각 학교마다 미래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학교건축가’를 통해 시작하고, 그 다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정리된 학교부터 본격적으로 전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 다른 학교공간 개선의 가능성은 지역사회와의 공유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각 학교가 지역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고 대지면에서도 여유가 있어 활용가치가 높은 자산이기도 합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쓸 수 있는 강당 등을 하나하나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어 건축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수준 높고, 내용도 충실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의 교육시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준비가 우리 내부적으로는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모범 사례들을 보이고, 우리 사회 건축전문가들이 해낼 수 있는 역량을 잘 보여드리는 것이 근미래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합니다. 모든 건축전문가, 교육전문가들이 같은 꿈을 꾸면서 갈 수 있도록 제가 작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과거 학교가 지역사회에서의 나름의 역할을 잘 했던 것 같은데, 안전사고가 차츰 생기며 저희 동네만 하더라도 밤에는 학교출입이 통제됩니다.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큰 공간이 닫혀버리니 맥락이 끊기지 않습니까. 이제 지역사회 주민들과 같이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열린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생 수도 차츰 줄고, 빈 교실도 많아지는 등 이런 부분도 고민되실 텐데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고속철도를 타려면 검표대라는 게이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IT 기술과 관점의 전환으로 검표대 없이 고속철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지역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과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문제를 인식하고 풀려고 노력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Q 그런 인식과 주민들의 어떤 협의 또 그 안에서 소프트웨어가 변화하면 그 다음 이제 디자인에서 변화할 수 있는 바탕이 충분히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그렇죠. 디자인 하나만 갖고 바꿀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학교, 우리의 선진기술이 해결해 낼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학교공간에 대한 철학, 앞으로의 비전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막상 건축사가 교육청 일을 해보면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요구사항도 많고, 대가도 형편없습니다.(웃음) 대가는 적지만, 공공의 일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열정만 강요하는 현실인데요. 대안이 있을지요.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공의 일이니 적게 받아도 일은 다 해야 한다는 요구, 이른바 ‘재능기부식 열정페이’는 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하는 말입니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의 시작은 학교건축 공사비 기준입니다. 통계 상 공공건축물 유형별 공사비 중 학교가 제일 낮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어디서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가장 큰 비용을 들여 잘 만들어야 할 시설이 바로 교육시설인데, 우리 사회에서 이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왜 그렇게 수준 낮은 건물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발상의 전환이 변화를 위한 첫 과제일 겁니다. 공사비가 오르면 당연히 건축사의 업무대가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 다음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게 교육시설 관련 일을 하면서 왜 건축설계자를 존중하지 않느냐하는 겁니다. 왜 설계는 허가 후 담당공무원이 마음대로 바꾸느냐는 불만이죠.
그런데 담당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면 똑같은 시설이 10개 동시 추진되는데 재료를 통일시키면 경제적 구매도 가능하고 검증된 시스템으로 건물이 지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듣습니다. 각각 다른 재료를 써서 고생하고 검증되지 않은 도전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을 들어보면 완전히 틀린 것은 또 아닙니다.(웃음) 하지만 “학생들에게 똑같은 붕어빵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안 된다”, “앞으로 학교마다 디자인이 달라야 한다”라고 서울시교육감님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디자인만 다른 게 아니라 거기에 어울리는 재료와 공법 등 모든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건축사가 열악한 대가를 받으면서도 좋은 공간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관행을 중시하는 공무원들과의 충돌이 빚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보통 감리자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때 생깁니다. 설계자의 사후설계관리업무가 당연히 제도적으로 정착이 돼야 합니다. 교육청, 사회와 공감하며 같이 갈 수 있는 노력, 건축사에게 법적인 지위를 주고 합리적인 대가가 책정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들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은 모두가 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상황이 꼭 실현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예전 작은 프로젝트였습니다만, 서울시 찾동 프로젝트 경우 공사비가 굉장히 작았음에도 설계비는 이 만큼은 줘야 한다는 기준이 정해지니 일선 구청 예산 담당하는 분들도 쉽게 깎거나 뭐라 말을 못하더군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단 번에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금씩 개선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분들이 꿈담교실 사업을 통해서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행대로 하지 않고도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한 것입니다. 건축설계를, 디자인을 잘하는 분들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보았고 ‘그분들의 희생으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교육시설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인데, 이런 확신을 모든 교육시설에 적용될 수 있게만 한다면 앞으로 좀 더 기대할 만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Q 말씀대로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그것만 바로 선다면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 좋은 방향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기존 교육청 발주 대부분의 설계비 오천만원 이상이 식당, 체육관 정도였습니다. 간혹 지금도 신축이라 명명되는 학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면 아직 핑거타입이 대부분으로 교실이 나열돼 있곤 합니다. 만약 서울시교육청 정도 되면 공모전 지침서부터 완전히 자유제안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설계자 입장에선 자유제안이라는 게 더 힘들지 않습니까.(웃음) 지금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연구 중인데, ‘(가칭)서울시교육청 공공건축지원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어 올 연말쯤 연구결과물이 나오면 그런 지침도 체계적으로 바뀔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제가 재작년 서울시의 ‘모두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존 설계공모 당선된 분이 계셨고, 그 분이 내부까지 할 상황이 안 되니 각층 홀과 복도공간을 맡았는데요. 그때 든 생각이 먼 훗날 학교가 통째로 비게 되는 상황도 생길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수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서울시 1700개 학교 중 실제 운영을 하지 않는 곳도 생길 텐데요. 이 경우 서울시교육청 재산이 되는 건지, 아니면 민간재산으로 아파트 등이 세워지는 건지, 모두의 학교처럼 또 다른 학교가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사립학교는 학교 재산이니까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며 이전 학교는 고층건물이나 공동주택이 지어진 사례로 그 변화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공립학교 재산권은 서울시교육청이고 1100개 정도의 공립학교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사회와 함께 해 나가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학생들을 위해 그 공간을 써야 한다는 것, 그 다음 ▲학교시설이 우리 사회에서 제일 좋은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자산을 학교에서만 독점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와 같이 쓰는 만큼 투자하십시오’라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게 옳은 방향일 겁니다.
학부모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가 못 먹고 못 입어도 우리 애부터 먼저 해주려하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인데 환경은 전혀 반대가 돼버렸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학교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서울면동초등학교 ‘꿈을 담은 교실’(좌), 꿈담교실 현장을 방문한 유은혜 교육부장관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 사진=서울시교육청 블록그, 교육부

Q 서울시교육감님과 교수님도 “교육혁신은 공간혁신이다”라는 말에 크게 동의하시는데, 공간이란 말이 들어가 우리 건축사들도 뭔가를 할 수 있단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1기와 2기를 연결하시면서 앞으로 프로젝트를 담당할 실무건축사들 또는 건축사사무소 개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막 시작하는 신진건축사분들이 갖고 있는 학교에 대한 생각들이 뭐가 더 옳고, 어느 방향으로 꼭 가야 된다는 그림을 저는 그리고 싶진 않습니다. 자신이 믿는 소중한 건축을 끝까지 도전해 성취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더 좋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환경을 만들고,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듯 전혀 다른 모습들의 상상력이 각 학교에서 피어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당분간은 저를 비롯해 서울시교육청에서 노력하더라도 ‘충분한 보상’에 대한 부분은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씩 개선해갈 수밖에 없고, 단 번에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멀리 잡아도 5년 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가능한 짧은 시간에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될 거고, 5년 후, 10년 후 쯤에 우리가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만한 작업환경이 만들어지고, 보상을 받는다면 그건 아마도 그렇게 되기까지 조금 더 희생하신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건축사들이 힘을 합한다면 우리 미래 학생들은 지금과 전혀 다른 최고의 교육환경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대담 김창균 건축사(본지 편집위원) · 글 장영호 기자 · 사진 임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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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시선 01 세션맨이 아닌 프로듀서

Architectural perspective
Producer, not a sessionman

대중음악(POP)을 만드는 국내외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들의 곡을 만드는 방식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음악성 있는 작곡가 한 사람의 영감으로 메인 멜로디가 시작되고, 각 악기 세션(session)들이 더해져 음악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때 작곡가 개인의 음악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곡을 만드는데 여러 명의 프로듀서가 같이 참여한다. 멜로디 라인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A, 귀에 맴도는 Hook을 전담하는 B, 베이스 라인을 만들며 비트메이킹 하는 C, 여러 악기 소스를 첨가하여 소리를 채워주는 D 등 여러 명의 프로듀서들이 각 파트로 세분하게 나뉘어 음악을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사운드 엔지니어 역할에 머물렀던 이들 또한 좀 더 적극적으로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때 완성된 곡의 작곡가는 과연 누구일까? 서류상 누군가 대표로 표기 될 수 있지만, 단순히 한 명의 창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곡 작업에 참가한 모두가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 기획된 대중음악에서 이제 작곡가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더 이상 작곡가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의 프로듀서가 팀을 이뤄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아티스트 포지션을 갖는 원맨 밴드와 원맨 프로듀서는 당연히 예외이다.
이러한 음악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최근 건축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작은 규모의 주택이나 근생건물 등과 달리 대규모 프로젝트들, 각 나라별 이슈가 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들에서 완공된 건축물은 이제 더 이상의 스타 건축사 한 명의 작품이 아니다. 특정 누군가의 초기 아이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명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섞이고 통합된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 나가면서 건축물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물로 구현된다. 여기에는 비단 대표 건축사뿐 아니라 다수의 파트너 혹은 직원들의 노력이 들어간다. 대지분석과 사례조사를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는 A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디자인 감각을 더해 초기 계획안을 만드는 B팀, 타분야와 협업을 통한 실무적인 사항, 발주처의 요구사항, 기타 특기사항 등을 반영하여 좀 더 다듬어진 계획안으로 발전시키는 C팀, 인허가 과정에서의 변경사항, 각종 심의를 통해 전달된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최종 계획안을 만드는 D팀, 그리고 건축물이 지어지는 동안 현장여건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E팀 등 매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는 팀이 구성된다. 그들은 단순히 대표 건축사를 서포트 하는 세션맨이 아니다. 나눠진 각 파트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감각을 가지고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더 이상 건축에서 지리적 한계로 인한 경계가 없다. 이미 많은 해외 건축사들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기업 발주처의 요구로 반드시 외국 건축사사무소(이상 해외사로 표기)와 공동응모를 해야만 하는 지명설계공모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해외사가 계획설계한 국내 프로젝트의 경우 로컬 건축사사무소(이상 국내사로 표기)의 역할은 어떠할까? 단지 인허가 업무와 단순 실시설계 작업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발주처의 예산에 맞게 기본 설계개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디테일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현지 상황에 맞는 디자인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재료와 디테일의 경우 현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사가 전문가적 시각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해외사에 의견을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해외사와 협업하는 국내사의 경우 수동적으로 계획안에 대한 실무적 절차만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공사 편의성과 예산을 위한 단순 변경만 해주는 것이 아닌, 해외사가 생각하지 못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듀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더 이상 한명 혹은 한 회사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는 시대다.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파트너들과의 협업은 필수다. ‘누구의 작품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흐릿해질 것이다. 다양한 파트에 참여한 많은 프로듀서들이 완성된 건물을 보고 ‘저 건축물은 나의 작품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현재 대다수의 건축사들은 소위 ‘원맨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해외로 시장이 확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른 나라 원맨 프로듀서 또는 대형 건축사사무소와 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협업은 반드시 각 프로듀서들의 주체적인 역할이 전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프로젝트의 디자인 저작권을 특정 건축사 개인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 이제는 함께 작업한 파트너와 공유하게 될 것이다. 최근 많이 진행되는 해외사와 국내사의 협업 역시 마찬가지라 본다. 국내사가 해외사의 실무적인 일만 대행해주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당당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면 디자인 저작권 공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려면 반드시 국내사는 해외사의 세션맨이 아닌 공동 프로듀서임을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글. 이중희 Lee, Junghee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본지 편집위원<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중희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이중희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14년 투엠투건축사사무소(2m2 architects)를 설립하여 준공 후 건축사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street culture에 관심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 들과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다. 최근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의 감독을 맡아 다수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됐다.
2middle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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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시선 02 많이 사줘야 국내 브랜드가 명품이 됩니다

Architectural perspective
Buying a lot makes domestic brands a luxury

최근엔 과거에 비해 외제차를 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단독주택의 설계비를 건축주의 차량가격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과 진담을 섞어 말하곤 한다. 필자가 배금주의자이거나 차량만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의 디자인과 기술력, 안전성에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건축설계에도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뜻이다.

건축사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국내 건축사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해주며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글을 적는다. 중간에 좋아하는 해외 건축사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언급할 텐데 불필요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명품을 소유하겠다는 것

멋진 가방과 구두를 생산하는 기술자와 브랜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해외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자마자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브랜드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 쌓아온 명성과 검증된 제품의 품질, 그리고 대접받는 느낌의 고급스러운 매장 등이 이유일 수 있겠다. 국내에도 수많은 건축사가 있지만, 보다 유명한 해외 건축사의 디자인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건축주의 마음은 이러한 명품 소비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물건을 담는다는 가방으로서의 본질은 같지만 디자인과 품질의 차이를 위해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하듯, 같은 규모의 공간을 만들더라도 그 구성과 마감의 차이, 그리고 건축사의 이름에 설계비를 더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명품을 만드는 장인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이든 최고와 완벽을 추구하여, 드라마 유행어처럼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명품의 조건이 디자인도 훌륭해야 하지만 디자인이 구현되도록 잘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건축사의 설계만큼 시공자의 기술력과 건축을 대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해외 건축사에게 설계를 맡기는 건축주들은 도면에 표현된 건축사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해 낼 수 있는 시공자에게 시공을 맡기는 편인데, 국내 건축사들이 해외 건축사의 작품 못지않은 (혹은 더 뛰어난) 설계를 했지만 시공과정에서 아쉬움이 잔뜩 남는 건물로 전락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예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와 공공건축물 시공 발주방식의 제도적 문제도 있다. 이를 극복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우의 모든 수고는 건축사가 부담하는 듯하다.

 

그들은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작년에 신문기사를 접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 멋진 건축 작품들을 만들어 필자가 좋아하기도 했던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도산대로에 신축설계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말한 ‘도산대로에 좋은 건축이 없다.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추한 상업 빌딩들만 있어서, 일관성도 정체성도 찾을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이 좋다고 프리츠커상을 비롯한 여러 건축상들이 인정했다지만, 그리고 그들이 도산대로에 설계한 작품이 훌륭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건물은 대지라는 종이에 건축사와 건축주가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필자에게는 옳지 못한 발언과 태도였다고 느껴졌다. 건축은 진지한 비평을 통해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지, 힙합처럼 서로를 디스(disrespect)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고 생각되어 역시 팬이었던 장 누벨(Jean Nouvel)이 2006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설계공모에 제출한 안을 보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각한 고민을 했다. 몇 개의 공연장을 뒤덮는 동양화 같은 새로운 지형을 제시한 결과물이 2001년 일본 도쿄에 한시적으로 운영될 구겐하임 미술관(Temporary Guggenheim Museum)과 2005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콘서트홀 및 컨퍼런스 센터 설계공모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내용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반복해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 구현되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를 다시 제안해보자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렘 콜하스(Rem Koolhaas)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사용하는데 1996년 태국 방콕과 동시에 서울 도곡동에 유사한 형태의 거대한 빌딩들 조합을 제시한다. 1991년 일본 후쿠오카의 넥서스월드(NEXUS world)에서부터 구현하고 싶어 했던 블랙 콘크리트는 2004년 리움(Leeum)에 와서야 제대로 구현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관의 떠있는 쐐기형태는 공연장이나 강연장의 기본적인 단면과 유사해서 스페인 코르도바 의회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던 형태이다. 이렇게 과거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다시 사용되는 것은 무분별한 자기표절이라기 보다는 내공이 쌓이듯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쌓이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

가장 크게 문제를 느꼈던 경우는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HDC사옥 입면디자인인데, 도서출판 청람에서 발행한 ‘해체주의?’라는 책에서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HDC사옥의 입면 디자인은 1987년 베를린 시를 대상으로 도시를 분석하고 선을 추출하는 작업을 통해 발표한 ‘도시 외곽(City Edge)’이라는 결과물을 15년쯤 뒤에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가져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멋진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그게 무슨 문제이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입면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생각해보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서울을 표현한 새로운 그림이 아닌 예전에 했던 다른 도시의 그림이었다는 것을 건축주도 알고 있다면 엉뚱한 그림이 걸린 것이고, 모르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질투 대신 우리도 해외로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필자의 견해를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만, 해외 건축사들이 국내에 진출하는 것은 명품소비심리와 같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교육받았다. 우리와 다른 것들을 보고 자랐고 우리가 모르는 재료들을 사용해봤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큰데, 그것이 건축주의 눈에는 새롭고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 또한 제대로 설계하고 제대로 시공되는 환경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도면에 충실히 표현하고 이것이 구현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다른 예술분야와 비교할 때 참 평준화된 상태 같다. 피카소와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천배 혹은 만배에 가까운 작품가격 차이를 가지며, 해외의 유명한 거장 지휘자가 와서 이삼십 만원의 입장료를 받으며 공연할 때 지역 오케스트라가 무료로 공연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계적인 건축사와 지역에서 허가도면만 그려주는 건축사의 용역비용은 많아야 몇십 배 정도일 것이라 생각된다. 스타는 질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큰 스타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 한 켠에서 건축이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좋은 작품을 하는 국내 건축사도 많아질 수 있다.

많은 국내 건축사들은 “우리도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과 존경을 받으면 해외 건축사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해외 건축사들이 받는 비용은 국내 건축사들이 받는 비용보다 훨씬 많은 편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국내에서 그만큼 대우받고 일하며 해외 건축사가 설계하는 것만큼 멋진 작품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도 해외에 나가 활동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방법은 국제설계공모에 참여하여 당선되는 방법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해외에 꾸준히 소개되어 해외의 건축주로부터 의뢰를 받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해외에 건축을 하고자 하는 국내 건축주에게 의뢰를 받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 또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도와주세요

필자의 사무실로 가끔씩 해외의 학생들로부터 인턴십 문의가 오는데 수차례 거절하다가 한국말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수락한 적이 있다. 그 학생에게 우리 사무실을 어떻게 알고 지원했는지 물어보니 웹상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보드에 핀업하는 개념으로 작동하는 P사이트를 통해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진행된 것이다. 또한 매일 새로운 건축 작품을 소개해주는 A사이트에 작품이 게재된 경우 인턴십 문의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미디어는 우리에 대한 정보를 쉽게 해외에서도 꺼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낯간지러운 일을 만들기보다 국내의 훌륭한 작품들이 해외 건축 관련 미디어에 많이 소개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업무가 진행되는 것이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장기적으로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04년 프랑스 파리에는 곰의 가죽이라는 이름의 미술품 펀드가 있었다. (La Peau de l’ours, 곰을 죽이기 전에는 가죽을 팔지 말라는 우화에서 따온 이름이며, 투자 대상인 예술가의 작품만큼 예술가도 대우해주자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미술품 펀드는 당시 젊은 작가였던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등의 작품을 사들이며 10년간 전시하고 이를 통한 수익으로 새로운 미술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10년 만에 경매를 열어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중 일부를 작가에게 분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생계를 보장하는 동시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가치를 올리게 되므로 서로에게 유리한 방식이며, 이 펀드에 의해 피카소가 지금의 피카소가 될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미술 작품과 건축 작품은 다소 차이를 가진다. 건축 작품이 미술 작품만큼 쉽게 사고 팔 수 있지 않으며, 각각의 용도나 건축주에 맞춰 특별하게 만들어지므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경우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작품성에 근거해 가격이 책정되기보다 부동산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한 건축사의 작품을 인정해주고 지속적으로 설계를 맡기는 경우를 종종 볼 때면 과거의 미술품 펀드를 떠올리게 된다.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유명한 해외 브랜드만 계속해서 명품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좋은 디자인과 잘 만들어진 제품 브랜드를 찾아 많이 구입해주다 보면 그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해외 건축사의 국내 활동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보다, 건축사 스스로가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미디어를 통해 세계 속에 노출되도록 하며, 건축주는 이처럼 노력하는 건축사들에게 설계 기회를 부여해주고 인정해주다 보면 국내 건축사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정연 Bahk, Joungyeon Grid-A 건축사사무소<경기도건축사회>

박정연 그리드에이(Grid-A) 건축사사무소

글쓴이는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졸업 후, (주)해안 종합건축사사무소, (주)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고, 현재 Grid-A 건축사사무소 대표,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현재 용인시 공공건축가, 경기도 교육청 학교공간혁신촉진자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스케치와 건축답사기를 공유하고 있는 블로그 ‘집을 그리는 사람의 건축답사기’는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되기도 했다.
laqui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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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품 풍광 머금고 굽이굽이 뻗은 산길 물길, 충청도

Chungcheong-do, a winding mountain path and a water way with excellent scenery

서산 운여해변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에 서해안변에 위치하고 있는 운여 해변의 솔숲은 마치 동해 삼척 월천리의 솔숲을 연상케 한다.
일몰 시각이면 솔숲 뒤로 펼쳐지는 황혼녘의 붉은 하늘이 장관을 이루며 일몰 이후 곧 펼쳐지는 은하수의 향연과 사진가들의 별 궤적 사진 촬영으로 인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태안반도의 꽃지해변과 안면암 등이 최근 가장 핫한 사진 촬영지로 부각되고 있다.

명재고택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고택.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학자인 윤증(尹拯) 선생의 가옥이다.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불린다.
등과(登科)는 하지 않았지만, 학행이 뛰어나 내시교관(內侍敎官)·공조랑·지평 등에 제수됐으나 모두 사양했다. 이와 같이 윤증 고택은 선비의 집으로 조촐하며, 당시 부잣집이나 벼슬살이 한 사람들의 뻑적지근한 저택과는 달리 예의를 갖추고 염치 있게 내외의 살림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만 안채, 사랑채, 대문간 채와 사당을 지은 것이 특색이다. 간결한 건축물의 배치에서 윤증 선생의 삶의 가치관을 느낄 수 있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뒤뜰에 질서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는 수많은 장독에서 우아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공주 불장골 저수지의 만추
충남 공주 반포면 송곡리에 있는 작은 저수지다. 깊은 가을이면 알록달록한 단풍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다. 특히 저수지 건너편에 서있는 메타세콰이어의 붉은 단풍이 불장골 저수지의 가을 풍경에 중심을 잡아주듯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단풍의 반영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괴산 문광지의 황금빛 은행나무 축제
충북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괴산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저 그런 저수지다. 하지만 매년 10월 말이면 황금빛 은행나무의 행렬이 아름다운 문광지 수면에 아름답고 황홀한 황금색 반영을 연출해 전국의 낚시꾼과 사진작가들을 불러들이는 묘한 마력을 지닌 곳이다.
새벽 일찍 저수지 수면에서 피어나는 물안개 속에 고고하게 서 있는 고사목의 신비로움, 일출 후 서서히 걷어지는 안개 너머 점점 더 빛나는 황금빛의 은행나무 행렬, 그리고 하나둘 모이는 행락객의 행렬과 함께 어우러져지는 광경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처처에 존재하는 곳이었나’라며 놀랄 정도다. 이번 사진은 수상 방갈로에서 촬영했다.

도담삼봉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도담삼봉.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도담삼봉 주변에는 1998년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도담삼봉을 찾는 관광객이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특히 야간에 분수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물줄기는 한층 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서산안면암 일출
충남 서산 안면암은 암자가 유명하다기보다 밀물에 의해 탑이 부상하기도 하고 썰물 때에는 갯벌에 착지하기를 반복하는 특이한 해상 암자로 유명하다. 부상탑 그 자체의 미적인 요소는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부상과 착지를 반복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른 새벽 해가 뜨는 여명시각에 일출을 기다리는 많은 관광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해가 뜨기 전의 여명에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감탄과 탄식이 어우러진다. 시각에 따라 해가 탑신부에 머무르기도 하고 첨탑부위에 멈춰서면 서산 안면암 일출의 절정을 맛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