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 제3의 승효상 건축사를 배출하라!

Produce a second or third architecture ‘Seung Hyo-sang’!

*승효상 건축사는 현업과 이론 및 정책 모두에 참여, 주도하는 유일하고 상징적인 인물이어서 본 글의 제목에 표현하였습니다.

한국 건축계를 위해서 우리는 현업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해야 한다. 동시에 이론과 정책 모두에 개입해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 건축계를 흔드는 중요한 정책과 방향은 항상 외부에 의해서 진행됐다. 정치인이나 행정가에 의해 주도된 수많은 정책들이 건축계의 방향을 결정짓곤 했다. 아쉽게도 건축계는 항상 뒷북이었다. 주도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 한 번도 정책적 이슈를 먼저 제안하고 발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의사 결정과 정책 진행 과정에 개입하지 못하고, 발표 이후 진행되는 것들만 수습하기에 바빴다. 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그 결과, 미시적이나마 현업에서 정책 개입의 틈이 생기고 있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이면에는 대중적 인지도와 정책적 영향력이 큰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 건축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수많은 작품으로 모험하고 도전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매번 새로운 시도로 변환됐다.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모두가 뒤에서 말할 때 그는 전면에 나서서 묵묵히 바람막이가 되었다. 치밀함도 갖췄고, 조직화에도 능하다. 이론과 현장, 정책을 아우르는 그의 노력에 후배 건축사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축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제2, 제3의 승효상이 이어져야 한다. 아쉽게도 다음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가능성이 보이는 후배 건축사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미진하지만 이들을 주목하고 우리가 성장시켜야 한다. 후원이 필요하다면 적극 지원해야 한다. 모두의 생각이 같지 않고 동의를 얻는 것도 힘들겠지만, 우선순위가 있으니 거시적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 건축계에는 이런 방향타가, 이런 건축사가 필요하다.
이런 절실함이, 본업으로 건축사 업무를 하는 현장에서 나와야 한다.
생존형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건축사 개인이 헌신해서 전면에 나서긴 쉽지 않다. 하지만 현업에서 이상적인 방향이나 이론적 방향성이 나와 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건축계의 위상과 입지가 선다.
이미 일본은 백 년 전부터 현업 건축사들이 모든 것을 주도해오고 있다. 특히 단게 겐조, 아라타 이소자키, 토요 이토를 잇는 현업 건축사들의 활약은 세계 건축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일본 건축의 현재를 만들어 냈다. 미국은 어떠한가? 필립 존슨, 루이스 칸, 리처드 마이어, 프랭크 게리 등 현업 건축사 모두가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건축이 살아 있으려면 현업 건축사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건축계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건축이 생존할 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승효상 건축사를 50대, 40대, 30대에서 찾아내 발굴해야 한다. 당연히 있다. 그들을 응원해야 우리 모두가 산다.

비전과 미래, 대안을 대시하는 선도적 건축사(Visionary Architect)를 후원하고 응원하자!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

진주 촉석루

Jinju Chokseokru (Pavilion)

진주 촉석루를 찾았다. 여행 온 단체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즐겁다. 루마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난간 너머로 진주 남강이 보인다. 강낭콩 꽃보다 푸르다는 역설된 강조가 생각난다. 이곳에 오면서 촉석문 앞에 있는 변영로의 논개 시비를 보았다. 남강의 물결은 푸르고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안고 뛰어내린 논개의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애국을 향한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고, 그 마음은 양귀비 꽃보다 더 붉다. 촉석루의 기둥 사이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를 바라본다. 나라를 위한 일념으로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김시민, 곽재우, 김천일, 최경회의 이름이 장소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

01 한국 출신 유럽 건축사의 눈으로 본 건축 법규와 제도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이번 호의 건축담론은 우리 건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분명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다른 나라와 출발이 다른 듯합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암묵적 합의나 공동의 인식이 없습니다. 감정의 언어 같은 ‘좋은’ 건축은 ‘경제적으로 값싸게 절약한 것’, ‘일말의 불편함이 없는 것’, ‘십년 동안 청소 안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 ‘백년 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것’, 통상 이런 건축을 ‘좋은’ 범주에 넣습니다. 하지만, 값싸게 짓는 것은 엉성하고,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며, 청소와 관리 없이는 십 년도 못 가는 걸 모릅니다. 그런 건 건축을 관리하고, 시공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슈빌(Nashville)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다 국제공항 감독관으로 이직한 미국 건축사의 설명이 중첩됩니다. “일단 그동안의 이력으로 검증되었으니, 후대에 남겨줄 만한 건축을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공사비 상승도 타당하다면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건축이 건축적으로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건축은 시각 예술에서 시작합니다. 시각에서 출발해 오감으로, 경험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대상입니다. 이런 건축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나라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건축사의 이야기, 그리고 유럽에서 많은 작품을 하고 있는 젊은 한국 출신 유럽건축사에게서 우리와 다른 건축 환경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을 ‘잘’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건축 환경도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하면서 2월호의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01 Architectural law and regul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Korean-born European Architect

역사를 바꾼 유럽의 대재앙과 건축법

1666년,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작은 빵집에서 시작한 불길은 런던시(City of London)의 대부분을 화마로 뒤덮고 약 10만 명의 이재민과 런던시의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약 90년이 지난 1755년 성인들을 기념하는 만성절, 포르투갈의 리스본은 대서양에서 시작된 리히터 8.5~9.0 규모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와 화재로 도시 2/3가 파괴됐다. 호화로웠던 도시는 한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고 대항해시대 당시에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거느렸던 포르투갈 왕국은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가이올라 건축기법과 모형 (Gaiola Pombalina)

런던에서는 17세기 최악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 이후로 발효한 런던의 재건법 (Rebuilding of London Act 1666)을 기초로 하여 생성된 건축 규제법(Building regulation)은 영국에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개정, 사용되고 있다.
1758년, 리스본에서는 도시계획법을 공포하여 트러스 구조의 가이올라(Gaiola, 포르투갈어로 새장을 뜻함) 공법과 목재 기둥 기초구조로 건물의 탄력성을 높였다. 지진을 대비해 의무화된 신공법으로 유럽에서 처음 본격적인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대지진을 바탕으로 지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져 지진학과 지진공학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A plan for rebuilding the City of London, after the great fire in 1666, but unhappily defeated by faction, Christopher Wren [Public domain]

당시 리스본의 신임 도시설계자 마누엘 다 마이아(Manuel Da Maia) 는 90년 전 런던의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구상했던 대칭과 조화를 기초로 해서 기하학적 구조의 도시를 설계했고 이는 도시계획 분야의 중요한 원칙이 되어 건축 자재들은 표준규격 아래 신속하게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대화재와 대지진이란 전대미문의 재앙을 극복하며 물리적 시스템과 재료의 속성에 대한 수학적 이해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이 두 대도시는 현대화와 과학적 방법을 재건의 일환으로 사용하였다. 이후로 근대적 재난관리•구호 시스템, 지진학, 재료학 연구가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방법들은 유럽 건축법과 도시계획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재앙이란 큰 일을 겪은 뒤에 유럽의 건축법과 제도는 더욱 견고해졌다.

오늘날 전 세계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이 아닌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다. 산불로 인한 시드니의 잿빛 하늘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온현상, 신이 아닌 우리 자신이 가져온 재앙일지도 모른다.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한국은 파리협정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인들은 탄소배출과 에너지를 절감하는 환경친화적인 자재와 건축으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부단히 시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친환경’ 이란 단어가 건축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적인 공법과 자재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위해 훼손된 환경 속에 건물을 짓는 순간부터 더는 ‘친’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

 

건축법은 현재진행형이다

건축과 토목기술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부실한 재난안전대책이나 규정, 안전불감증,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정부의 규제나 법규 등 모든 것이 양립할 때 생각지 못한 재앙이 닥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서로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 예로 3년 전 런던에서 발생한 그린펠타워(Grenfell Tower) 화재사건은 80명 이상의 많은 희생자를 불러왔다. 이 화재 사건은 350년 전 런던의 악몽을 되새기게 했다. 아직도 이 건물은 철거되지 않고 조사 중에 있으며 설계자, 감리자, 시공사, 불량자재회사는 물론 그 자재를 허가, 인증해준 정부 모두 거미줄처럼 엮여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았다. 희생자만 억울할 뿐 선진국이라 해도 ‘책임회피’측면에서는 사실 크게 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강한 예방 차원에서 영국 모든 공공주택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하고 사용된 인화성 자재를 철거했다.

건축법은 국가, 시대, 공간, 문화, 관습, 기후의 변화에 따라 지속해서 개정되고 적용돼 왔다. 하지만 정부의 뒷북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경주의 지진, 부산의 쓰나미처럼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닥치면 정부는 늘 그랬듯이 규정과 법규를 미온적으로 재정비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양간을 더욱 튼튼히 하여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만, 소 잃고도 외양간을 다시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의 건축 인허가

현재 런던과 리스본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런던과 리스본의 법규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을 꼽자면 기존건물의 건축적 미관 보존과 유지 아래에서 신축보다는 증축과 개축의 형태로 허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축은 보통 기존 건물의 보존 가치가 없거나 낙후된 경우에만 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보존구역이나 국가•지역의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거나 보존구역 내에 있는 건물들은 증축이나 개축이 다소 어렵다. 문화재청의 심사 구청 시청의 보존구역 담당관(Conservation Officer)의 심사가 따로 필요하다. 영국이나 유럽지역에는 이런 지역이 상당히 많다. 실내 내부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면 인테리어조차도 힘들고 창호 문 변경조차 허가를 받아야 한다.

런던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과 오래된 주택들이 많고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런던의 도심지역(London zone 1-2)에서는 기존 건물을 아래 지하로 증축하거나 파사드만 남긴 채 개축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하증축은 기존 건물의 외관을 변경하지 않으면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발을 통해 기존건물의 실내 면적과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시공비가 많이 들기에 지가가 높은 지역 또는 외관 보존지정지역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증축 형태이다. 그리고 증축된 지하 공간은 법규상 침실로 사용할 수 없기에 개인 수영장, 놀이방, 시네마 룸, 라운지, 바 등 개인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이용된다.

영국에도 건축 허가(Planning permission)와 신고(Prior approval for permitted development)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한국과 다른 점은 영국은 도시계획사(Town Planner, MRTPI)가 시•구청 도시개발부서에서 건축인허가를 담당한다. 감리는 개인감리회사나 시•구청에서 담당하는데 공인된 감리사(Building Inspector, MRICS)가 담당한다.
시•구청의 인허가 과정에서 처음부터 일체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청서식부터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 도시개발부서에 있느냐를 묻는다. 그리고 사용될 외관 자재, 공공 가로에서 수선, 개축, 증축 등의 외관변경을 볼 수 있는지 묻는다. 즉, 거리의 미관과 정체성을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도시개발에 있어 영국에서는 거리와 지역의 성격, 정체성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벽돌색, 창문 위치, 지붕 높이 등은 설계 시에 주변 건물을 상당히 고려해야 한다. 너무 개성적이면 주민 의견수렴 기간에 정말 많은 항의 레터를 받을 수 있고 증축 개축 등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면 허가를 못 받을 수 있다. 일정 수 이상의 항의 레터를 받으면 다시 구•시청에서 의견접수 회의를 개최한다. 그 후에 설계를 수정하거나 불허가 결정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거리의 성격과 주변 건물과의 관계, 주민의 프라이버시는 건축의 독창적 디자인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그리고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구•시청이 정해놓은 가이드라인과 규칙은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예로 들면 증축 너비 최대 3미터, 높이 3미터 이하. 신축 시에는 맞은편 이웃 창문과의 거리는 21미터 이상, 조망, 일광 등 이웃주민에게 일체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보존지역 내에서는 더욱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다. 기존건물의 양식(조지안, 빅토리안, 에드워디안 등)을 유지해야 하고 재료 창호도 우드프레임으로 유지해야 한다.

 

디자인보다 역사와 가치를 고려하는 영국 건축

디자인 강국인 영국에서 건물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사실 어렵다. 상당히 보수적이며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보수적인 주민들과 규제로 인해 획일적인 디자인이 많이 탄생하는 것이 단점이다. 속히 말해 묻혀가는 디자인이 허가 받기도 쉽다. 대신 제약이 없는 인테리어의 소품, 가구, 제품 등의 디자인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Pombaline Baixa, Lisbon, rebuilding plan after the 1755 earthquake. Eugénio dos Santos and Carlos Mardel [Public domain]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주변 이웃들과 분쟁을 피하고 각자의 사정으로 디자인보다는 현실적으로 빠른 허가를 선호한다. 그래서 더욱더 획일적인 디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개성 넘치는 디자인은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매체마다 매년 가장 못생긴 건물을 선정하는데 이로 인해 가끔 유명한 건축사가 선정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중 매년 빠지지 않는 건물이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의 워키토키 빌딩이다. 몇 년 전엔 유리창의 빛의 굴절로 길거리에 자동차도 태워 버렸다. 좋은 건축은 사용자나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매일 보는 이웃이나 시민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정부의 규제는 난개발을 막고 건축사는 절제, 균형, 역사적 가치, 환경 그리고 주변 지역사회와 조화로운 디자인을 통해 모두에게 만족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영국에서 지난 5년 동안 1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작은 규모의 회사라 설계, 인허가 시공 시•구청 담당관들과 미팅도 참여하고 클라이언트들과 소통하며 값진 경험을 몸소 배웠다. 유럽에서의 건축법규는 한국보다 제한적인 부분도 있고 관대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 그리고 문화와 관습의 형성과 생성배경이 상대적으로 다르기에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축인허가 과정 중 하나인 주민의견수렴 기간 동안 영국 정부가 누구 하나 피해를 받지 않게 주민 개개인의 의견을 듣고 허가를 내주는 것을 보며,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한 유럽의 건축법은 개성과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사회와 공공의 이익에 배치되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는 것을 느꼈다.

 

글. 최형순 Bischell  스웨덴 · 스위스 · 포르투갈 건축사

 

최형순 스웨덴 · 스위스 · 포르투갈 건축사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교(The Cass, School of Architecture, LMU)에서 건축 우등학사졸업 (B.A Hons, RIBA), 옥스포드 브룩스대학교(Oxford School of Architecture, Oxford Brookes University)에서 Sustainable Architecture과정을 세부 전공하였으며 건축석사학위(M.Arch, RIBA)를 받았다.
스웨덴, 스위스, 포르투갈 건축사협회에 건축사 등록, 현재는 런던과 리스본에서 개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yeongsoon.choi@gmail.com

,

02 건축회사(Architecture Firm)로서의 지속가능성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이번 호의 건축담론은 우리 건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분명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다른 나라와 출발이 다른 듯합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암묵적 합의나 공동의 인식이 없습니다. 감정의 언어 같은 ‘좋은’ 건축은 ‘경제적으로 값싸게 절약한 것’, ‘일말의 불편함이 없는 것’, ‘십년 동안 청소 안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 ‘백년 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것’, 통상 이런 건축을 ‘좋은’ 범주에 넣습니다. 하지만, 값싸게 짓는 것은 엉성하고,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며, 청소와 관리 없이는 십 년도 못 가는 걸 모릅니다. 그런 건 건축을 관리하고, 시공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슈빌(Nashville)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다 국제공항 감독관으로 이직한 미국 건축사의 설명이 중첩됩니다. “일단 그동안의 이력으로 검증되었으니, 후대에 남겨줄 만한 건축을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공사비 상승도 타당하다면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건축이 건축적으로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건축은 시각 예술에서 시작합니다. 시각에서 출발해 오감으로, 경험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대상입니다. 이런 건축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나라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건축사의 이야기, 그리고 유럽에서 많은 작품을 하고 있는 젊은 한국 출신 유럽건축사에게서 우리와 다른 건축 환경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을 ‘잘’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건축 환경도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하면서 2월호의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02 Sustainability as an Architecture Firm

미국 회사에 첫 출근을 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앞으로 일할 공간이었다. 개인 책상과 공간 크기는 그 전에 일했던 국내 대형사무소에서의 두 배는 되었고, 개인 제도판과 함께 데스크에는 최신 컴퓨터와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석재를 캐내고 생겨난 호숫가에 단독 건물을 사용했던 당시의 사무실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멋진 모델 마스터가 관리하는 모델샵은 오피스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평일 9시간, 금요일 4시간 근무 정책으로 한때 주말 부부였던 나의 상황에 맞춰 생활할 수 있게 해줬고, 일정 거리 이상 해외 출장의 경우 직급에 상관없이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을 이용하고 편안한 숙소에 묵도록 배려하여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점 등 사내 복지정책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다.

유럽, 중동, 중국을 비롯해 미국 내 여러 곳에 지사(Branch office)를 둔 회사는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운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때 미국의 건축사사무소 중 규모로 2위까지 올라섰으나 대규모 레이오프(Layoff)를 해야 했던 상황 이후 경영 방향을 정비하면서 안정화를 추구했다. 적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분리 운영되어 오던 모든 지사들을 하나의 회사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후 회사는 사람을 고용하고 유지하는데 더욱 신중을 기해왔고 필요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회사는 파트너십(Partnership)의 형태로 십 여 명의 파트너들은 본사와 지사에 분산되어 각각의 사무소들이 다양한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만들면서 회사의 기본적 철학을 공유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과 공간 이용의 유연성(Flexibility)

회사의 중요한 연중 행사 중 하나는 본사의 책임 파트너 세 명이 각 오피스를 순회하며 그 해의 실적과 디자인 성과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수치 위주로 보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각 지역 오피스의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각자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 공유하는 이익 부분과 각 오피스의 실적 부분을 적절한 비율로 계산하고 직급에 따른 풀(pool)에 따라 계산되는 그 해의 보너스를 예상해보고 다음 해의 목표에 대해 논의했다.

전체 직원이 모여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이슈(Issue)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회사 경영의 구체적인 부분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인 사실을 훑어보고 신입사원의 경우도 함께 참여해 질문이나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부분이 좋았다.

이런 공식 및 비공식 행사가 열리는 오픈스페이스(Open space)는 각 지역 오피스마다 모든 구성원이 모일 수 있는 넓이로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디자인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크고 작은 행사를 비롯해 업무 회의도 했고 생일파티를 포함 캐주얼 파티도 열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다목적 소통의 장소로서 사무실의 공용 공간이었다.

이 공간 외에 정렬되어 있는 각자의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은 프로젝트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사용되었다. 데스크탑이 노트북으로 바뀌면서 이동은 훨씬 수월해지고 프로젝트 팀 구성에 맞춰 그룹핑(Grouping)하여 움직였다. 물리적으로 고정된 공간이지만 유연하게 사용되어 나만의 책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책상이 나의 책상일 수 있었다. 직급이 높은 직원들과 회사의 오너(Owner)인 파트너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칸막이가 없어서 각 그룹 간에 시원하게 전체가 보이는 구조였다.

 

모델샵(Model Shop)의 역할

해리라고 모델샵 마스터(Model master)가 있다. 내가 들어간 순간부터 거기 있었고 떠나온 지금도 그는 건재하다. 위험한 장비들이 즐비한 샵을 관리하며 프리젠테이션 모형(Presentation model)을 멋들어지게 만들고 마무리해 주시는 분이다. 레이저커터(Laser cutter)나 3D프린터 등 예민한 기기는 안전 관리도 중요하고, 모델 마스터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모델샵 운영이 불가능하다. 본사와 지사에 몇 명의 마스터들이 있어 필요한 경우 해리와 서로 돕고 함께 일한다. 이곳에서는 레이저커터나 직쏘(Jigsaw) 등을 활용해 스터디모형 뿐만 아니라 스프레이까지 뿌려 디테일하게 표현한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모형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해리의 손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아름다웠다.

오피스에서 공용 공간과 함께 가장 중심이 되는 모델샵은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방문자들에게도 일종의 쇼케이스(Showcase) 역할을 하며, 우리 모두에게 회사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인식됐다. 회사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인스쿨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모형 자동차가 3D밀링머신(3D Milling machine)의 유리박스 안에서 형상화되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건축사사무소의 업무 공간에서도 샵에서 모형들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이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보여져 인상적인 쇼케이스의 역할을 하도록 할 수 있다.

 

협업(Collaboration)

콜라보 혹은 협업(Collaboration)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지 이제 제법 되었다. 내가 일했던 건축회사가 자랑하는 부분 중 하나가 많은 대형 설계사무소의 장점이기도 한 리소스(Resource)의 풍부함과 다양성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이 여러 분야에 경험을 쌓아온 건축, 조경, 인테리어, 도시 계획(Urban planning) 등의 전문가들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건축 포트폴리오와 프로세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본사와 지사들 각각의 규모와 전문 분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험이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마스터플랜 팀이 강하게 포진하고 있는 지사가 있었고 조경디자이너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사도 있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출장이나 파견 근무 형태로 움직이며 일했다. 병원 프로젝트의 경우 당시 내가 일하던 사무소에는 없었던 메디컬 플래너(Medical planner)가 있는 지사와 협업하였는데 나의 경우도 병원 설계공모에 참여하여 본사에 파견근무를 하며 병원 설계에서 전문성있는 플래너의 필요성에 대해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현지의 설계사무소 사람들과 일정기간 함께 일하며 현지 협력업체(Consultant)와 바로 회의하며 이슈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디자인 프로세스(Design process)

프로젝트가 정해지고 팀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디자인 회의(Design Charrette)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 시점엔 직급에 관계없이 주어진 제한시간 안에 자신의 컨셉(Concept)을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나 모형을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 이 과정에 참가한 사람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회사 전체 디자인 파트너들도 배운지 며칠 되지 않는 라이노(Rhinoceros)를 마우스도 없이 노트북 패드로 3D 작업을 하는가 하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어두운 오피스 구석에서 혼자 열선으로 스티로폼 모형을 만드는 모습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들에 대한 평가와 선정은 모두에게 공평한 한 표를 주어서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디자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녹아 있는 프로젝트를 더 이해하고 애정을 갖고 일하게 된다. 이는 한 사람의 디자인 리더가 회사전체 디자인 성향이나 파워를 이끌어가기보다 구성원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두 모아 다시 한번 전체 리뷰를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가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이 창조된다.

 

건축회사(Architecture Firm)로서의 지속가능성

첫 출근 이후 귀국을 위해 회사를 떠날 때까지 소소한 것부터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은 회사는 디자인 잘하는 건축회사로서 최적화된 시스템을 찾고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사무소(Corporate firm)이면서 전체적으로 디자인 품질(Design quality)을 올리고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회사 정책(Firm policy)을 개선하고 노력하는 것을 목격했다.

시대정신(Zeitgeist)을 반영하는 건축설계를 하는 회사를 운영한다는 일은 녹록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오랜 시간 품질이 높은 디자인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창조해내면서 건축주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이를 위해 스스로를 정의하고 그에 맞게 발전시키려는 꾸준한 행위가 회사를 단단하게 하고 구성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은 건축회사가 그때 그때 주어진 일만 빠르게 처리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기초를 단단히 하고 시대 변화에 대응하면서 자성하고 개선하며 거기에 맞는 건축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계기가 됐다. 지속가능한 건축회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글. 조소은 Cho, Soeun  인트리그(INTRIGUE) 대표 · 미국 건축사

조소은 인트리그(INTRIGUE) 대표 · 미국 건축사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건대학교에서 건축석사 학위 취득 후 ㈜희림 종합건축사사무소 및 NBBJ 에서 건축실무를 했다. 미국 및 아시아의 상업, 문화, 공공, 스포츠 시설 등의 마스터플랜과 건축 설계 프로젝트에서 Lead Designer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CJ E&M 사옥, Eton Shenyang 복합건물, Karamay Expo Center, Hangzhou Olympic Sports Center 등이 있다. 2013 년에 귀국하여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인트리그(Intrigue)’를 설립해 건축 및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

건축비평 _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 [온고지신 ; 시간을 이어가는 건축]

Architecture Criticism _ Incheon architect hall 2019
Wen Gu Zhi Xin ; Architecture that continues from the past

대학시절 교양국어를 들었다. 국어라지만 중국고전에서 발췌한 문장이 가득한 한문강독에 가까운 수준의 강의였다. 수강생 200여 명이 대형 강의실에서 듣는 강의라 주목받는 경우도 적어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다. 가끔 일어나는 당황스런 일은 한문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라고 지적받을 때이다. 수강을 준비하면서 모르는 한자를 찾아 읽었고, 지적받으면 직역에 가까운 수준으로 답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가 드니 그때 기계적으로 읊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온고지신’은 근대건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져서 한때 SNS에서 별명으로 쓰기도 했다. 이 문장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로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를 줄인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일제의 식민건축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옛것은 새것을 이루는 밑바탕이다. 옛것의 이치를 배우고 따져 새것을 창의 진보하는 일이다. 중국 한나라의 사상가 왕충은 논형 사단편에서 ‘오늘만 알고 옛일을 모르는 것을 맹고 즉 장님’이라 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통째로 강요된 것들인 동시에 오욕의 역사가 담긴 상징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철거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자발적 수용에 의해서건 강제로 이입된 것이던 간에 후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치적 지배관계에 의해 강요된 불균형 문화변용을 일방적 수용에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에는 물론 해방 후 우리의 문화로 창의해냈다. 자랑스런 역사건 치욕의 것이던 우리의 과거이다. 과거를 지우는 행위는 옛것의 이치를 따져 배워 새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방해한다. 식민지경영을 위해 지어진 근대건축물인 네거티브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탄화된 지붕트러스

낡은 건물에 쌓인 시간의 역사를 이어내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공사 전에는 알 수 없는 난제가 건물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얽혀있다. 철거하고 새로 설계하는 작업이 훨씬 쉽다. 결국 공사과정에서 지속적인 설계변경을 통해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박재형 건축사는 회관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선배건축사들과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단열성이 낮은 벽체와 창호보수에서 디테일이 엉키게 되고, 이는 입면의 완성도를 낮추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전통건축물에 기반을 둔 건축물의 기본치수는 과거 일본인의 신체에 맞춰져 있어 현대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하다. 그중에서도 낮은 천정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요원하다. 이 건물에서는 아쉽지만, 1층 천장은 멍에와 장선을 그대로 노출시킨 뒤 검은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2층 천정은 지붕트러스를 노출시켜 개방감을 키웠다. 2층 천정철거는 천정고를 높이는데 그치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 지붕트러스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탄화된 지붕트러스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건축요소이다.

1956년 당시 이케마쓰(池末) 상점

건물보수를 위해 철거 시 모습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으로 새로 태어난 건물은 1932년 중구 제물량로 203-1에 세워진 지상 2층 목조건축물로 배에서 쓰는 물건을 판매하던 이케마쓰(池末) 상점이다. 외관상 일본식 건축물임이 확연히 드러남에도 내력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인천광역시건축사회 회관으로 부활하면서 베일에 가려졌던 역사가 드러났다. 낡은 건축물 보수가 건축활동을 넘어 지역의 역사를 풍부하게 만든 사례이다. 이케마쓰는 이곳에 항동 가게를 대신할 건물을 새로 지어 해방까지 선구점, 질소 카바이트 판매점으로 썼다. 이후 1956년 무렵에는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쓰이다가 대한통운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바뀌었고(1963. 2), 대한통운 민영화(1968. 7)에 이어 1974년 민간에 불하된 뒤 수차례의 보수와 증축공사가 이뤄졌다.

인천 중구 개항장문화지구는 오래된 건축물을 문화향기 풍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인천 중구 개항장에는 19세기 말∼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외교인 사교장 ‘제물포구락부’,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 옛 일본제1은행·일본제18은행·일본59은행 인천지점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들불처럼 번지는 도시재생사업이 도시가 간직한 정체성을 살리고, 근대건축물 활용이 디자인적 수사(rhetoric)를 넘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특성과 더불어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켜를 읽어내는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인천개항장에는 선구점으로 세워진 건물 두 채가 현존한다. 하나는 이케마쓰 상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라타니(村谷) 선구점이다. 보수공사를 거쳐 재활용되는 두 건물은 의미와 가치에 있어 차이가 크다. 근대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법상의 차이가 만든 결과이다. 중구청이 매입해 전시관으로 사용하는 무라타니 선구점은 이케마쓰 상점과 달리 건축자산의 가치를 읽지 못했다. 근대건축물 훼손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 보수사례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천아트플랫폼 조성공사는 19세기부터 원형을 유지해 온 여러 채의 건축물을 멸실시키는 우를 범했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야경이 압권이다. 어두운 밤 밝게 빛나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칙칙한 공간으로 남아있던 이 일대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핵심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인천개항장을 밝히는 등대이다.

 

글. 손장원 Shon, Jangwon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인하대학교에서 학사,석사, 박사를 마쳤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신성대학교에서 근무하다 2004년 인천재능대학교로 와서 후학양성과 인천근대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인천근대건축(간향미디어랩, 2006)과 다수의 인천근대건축연구논문을 썼다. 최근에는 근대개항기 인천에서 이뤄진 우리나라의 건축활동에 집중하는 중이다.
shonjw@jeiu.ac.kr

,

꽃의 향연과 눈 축제의 고장, 비에이

Biei, a town of feast of flowers and snow festival

비에이는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설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설경뿐 아니라 여름에 펼쳐지는 꽃의 향연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필자는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비에이의 면면을 소개하고자 훗카이도 내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계절에 두 번 방문했다. 현재 한·일 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글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건축사분들께서 이곳 풍광의 아름다움과 현지인들의 일상에 깃들어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이 글을 기고한다.

여름 들녘에서의 스프링클러 축제(여름 들녘에서 뿜어지는 스프링클러)
후라노의 라벤더 향에 취한 채 비에이로 이동하던 중 창밖으로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 급히 차를 세웠다. 넓디넓은 논에서 스프링클러의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뿜어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노령국가다. 농촌 노동력 대부분이 노인이다 보니 등장한 방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여름 해질녘의 들판을 시원하게 적시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들판에도 나타날 풍경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홋카이도에서(비에이 들녘의 설경)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홋카이도에서(비에이 들녘의 여름)

후라노의 아로마 농장, 팜 도미타
한때 라벤더 산업이 쇠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1976년 국철(현, JR)에서 발행한 달력에 아로마 농장 팜 도미타의 사진들이 소개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후라노의 팜 도미타로 모여들면서 농장들은 다시 라벤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름철 들판에 라벤더 꽃이 만개한 모습은 마치 시루떡을 겹겹으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색채가 아름다운 구릉의 곡선과 앙상블을 이루며 천상의 경치를 자랑한다. 팜 도미타에서는 라벤더 추출액을 첨가한 에센셜 오일과 라벤더 비누 등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후라노의 라벤더 화원, 나카 후라노 라벤더 정원
JR역에서 차로 3분 정도 가면 나카 후라노의 라벤더 정원이 나타난다. 겨울 스포츠의 명소 호쿠세산 스키장이 여름에는 라벤더 정원으로 변신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에이의 밀밭과 감자밭 들녘
비에이는 사방 천지가 들판이지만 작물들이 싱싱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을 보면 토질이 상당히 비옥한 듯하다. 주로 밀과 감자가 재배되는 평범한 시골이다. 그러나 그 작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각적 감동은 남다르다. 일부러 깎아서 만든 지형도 아니건만 오밀조밀한 곡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의 행운이 아닌가 싶다. 그 주어진 행운을 잘 가꿔가는 그들의 자연친화적 생활방식에 찬사를 보낸다.

영화 ‘러브레터’가 생각나는 오타루 운하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북부 지역에 있는 소규모 항구도시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모 겡끼데스!”하고 영화 속 여주인공의 대사를 외쳐본다. 우리의 심금을 울린 바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매력적인 운하의 도시에 온 것이 실감난다. 오타루는 영화뿐 아니라 과거 운하 주변의 낡은 창고 건물들을 리노베이션해 오르골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동화 같은 비에이 농촌
비에이의 어느 이름 모를 농장 풍경이다. 소담스런 풍경이 마치 동화 속의 삽화 같다.

청록빛 호수, 아오이 이케
홋카이도의 명소인 청록빛 호수 아오이 이케는 에메랄드빛 잔잔한 물결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위를 잊게 만든다. 언제부터 호수가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물속에서 생명을 다한 고사목의 상태를 보면 상당한 세월이 지났으리라 짐작이 간다. 아쉽게도 겨울 경치는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 에메랄드 빛깔은 볼 수 없었다.

비에이 들녘의 설경
비에이 들녘의 설경은 여름의 풍성함은 간데없이 단조로운 경치가 감탄을 내뱉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이 설경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단순화시키는 재능’이 이런 풍경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

불멸의 건축 01 산 마르코 종탑

Immortal architecture 01
Campanile di San Marco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30,000,000명. 연간 베니스를 찾은 방문객이 2018년 기준 3,0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하루에 10만 명씩 찾아갔으니, 가장 많이 사랑받은 도시라 할 수 있겠다. 베니스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며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일 것이다. 이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을 비롯해서 베니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 98미터 높이로 솟은 베니스의 랜드마크, 산 마르코 종탑(Campanile di San Marco)이다.

산 마르코 종탑이 표현된 18세기 그림 ; Giovanni Antonio Canal (1738)

종탑의 몸체는 사각기둥 형태의 붉은 벽돌 구조로 되어 있고 상부는 아치로 마무리되었다. 아치 위는 경사가 급한 사각뿔 형태의 첨탑을 올리고 꼭대기에는 황금빛의 대천사 가브리엘 동상이 있다. 우아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 때문인지 이 종탑을 흉내 낸 유사 종탑도 많다. 베니스와 가까운 슬로베니아의 도시 피란(Piran)의 종탑(17세기)부터 시작해서 시애틀의 킹 스트리트 역 시계탑, 호주의 브리즈번 시청사 타워, 덴버의 다니엘스 앤 피셔 타워,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타워, 시애틀 타워, 캘리포니아주의 버클리 대학 타워, 뉴욕 월스트리트 14 타워, 펜실베이니아 존스타운의 성당 종탑 등 이 종탑의 영향을 받은 타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거나 똑같이 재현한 것까지 전 세계에 산재해 있다. 베니스와 이탈리아를 넘어서 인류의 건축역사에서 전형적인 종탑 유형인 셈이다. 이 정도면 베니스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명실상부 베니스의 상징 건물일 것이다.

좌> 산 마르코 종탑의 보수공사를 묘사한 펜화 ; Giovanni Antonio Canal (18세기)
우> 산 마르코 종탑의 도면 ; Quadri Moretti (1831)

그런데 참담한 비극이 1902년 7월 14일 오전 10시경 일어났다.

붕괴된 산 마르코 종탑 (1902)

산마르코 광장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400년간 우뚝 솟아 있던 종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베니스의 상징적이자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을 대표하는 종탑인 이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무너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굉음을 듣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모인 시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았던 종탑이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한 모습을 보고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화재로 쓰러지는 숭례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느꼈던 우리들의 그 상실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종탑의 안전점검을 매일 하고 있었고, 붕괴 당일 오전, 의심스러운 소리를 듣고 위험을 느낀 토목기술자와 담당 경찰관 그리고 경찰 부국장의 빠른 판단으로 붕괴 30분 전 광장의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진행한 안전점검으로 인명피해는 막은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산마르코 광장에 서 있는 종탑은 무엇인가?

우선 깨진 벽돌 잔해를 치우고,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재료를 골라냈다. 그리고 1903년 4월부터 1912년 4월까지 9년간의 복구공사를 통해, 지금의 종탑을 다시 세웠다. 겉모습은 고증을 통해 기존 모습을 재현했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보다 안정적인 종탑을 만들기 위해 구조 보강이 더해졌고, 무엇보다도 내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된 것이 큰 변화였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베니스를 방문한다면, 종탑에 오르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붕괴 전의 산마르코 종탑의 모습은 1831년 Quadri-Morett가 남긴 도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각형의 나선 계단으로 오르고 중심은 비워져 있다. 비워져 있던 중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벽체의 두께가 기존보다 얇아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100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종탑 중 하나면서 동시에 베니스의 상징인 이 아름다운 종탑은 물리적으로 100년이 조금 넘었다. 위치, 형태, 규모는 붕괴 전 종탑과 같지만, 구조와 내부 공간은 새롭게 계획된 건축물이다. 우리의 건축법에서는 재축(再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의 재축은 1912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1902년 붕괴된 종탑도 그 이전에 있던 종탑이 파손되어 재축한 것이었다.

산 마르코 종탑의 재축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시작은 9세기 초반에 세워진 타워였다. 아마 목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초기에는 급수를 위한 물탱크 또는 등대의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타워가 보수와 변형을 거쳐 12세기에 어느 정도 기능과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첫 번째 종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첫 종탑은 번개로 인한 화재 피해가 잦았다. 1388년 심하게 파손되었고, 1417년과 1489년에도 각각 화재로 큰 피해가 있었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도시 베니스에서 가장 높은 타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크고 작은 파손과 보수 과정을 거치면서 16세기 초반까지 유지되었다.

재축 공사 중인 산 마르코 종탑 1

재축 공사 중인 산 마르코 종탑 2

첫 타워가 1511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사들의 디자인이 반영된다. 이때 기본계획을 한 건축사는 Giorgio Spavento였고, 이어서 Batolomeo Bon이 계획을 보완하여 1514년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시기에 완성된 종탑을 두 번째 종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종탑의 모습은 르네상스 양식의 이 두 번째 종탑이다. 하지만 우아함과 아름다움으로도 번개를 피할 수는 없었다.

1548년, 1565년, 1658년, 1745년, 1761년, 1762년에 번개로 인한 화재가 있었고 화재가 심한 경우에는 벽돌이 깨지고 건물이 파손되면서 인명 피해도 있었다고 한다. 산마르코 종탑의 파손 정도와 보수공사의 모습은 Giovanni_Antonio가 남긴 펜화(18세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쪽 벽면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고, 보수를 위해 작업대를 매달아 공사 중인 산 마르코 종탑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776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피뢰침이 설치되었다. 아마도 이 그림에 그려진 공사를 마친 후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번개로 인한 화재는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피뢰침 설치 이전의 화재 때문에 벽돌과 구조가 약해져서 일까? 두 번째 타워는 1902년 아침에 그렇게 무너졌다.

재축을 신축과 구분하여 지칭하는 이유는 새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이전 건축물이 갖는 도시적 맥락과 건축적 의미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축은 신축보다 의미가 더 클 수도 있겠다.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이 다 하더라도 기능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수명이 계속된다면 그 건축물은 세워지고 또 세워질 것이다. 베니스 시민들이 산 마르코 종탑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세운 것처럼 말이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

창작 프로세스를 보여준 두 영화 ‘더 와이프’ &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

Two films showing the process of creation ‘The Wife’ &‘The Architect’

두 영화 모두 제목이 이상했다. 보통명사에 해당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라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하나는 작년 가을 비행기에서 보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 인터넷쇼핑몰 아마존에서 단지 제목 때문에 주문해서 본 영화다.
왜 ‘더 와이프’라는 제목에 끌렸을까? 하하. 난 남자니까 ‘남편(The husband)’이라는 영화를 봐야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래도 ‘더 와이프’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라 손이 갔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는 순전히 자료를 조사하다가 원제가 ‘The Architect(건축사)’라는 점 때문에 본 영화다.
이 두 영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미리 말하면, 우선 차이점은 최고와 최악이라는 점이다. 공통점은 제목을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이다. ‘월간 건축사’에서 이 영화들을 이야기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월간 건축사는 건축 설계를 주업으로 하는 특정 직업인의 잡지다 보니, 건축을 중심으로 모든 이슈들이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두 영화는 월간 건축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다. 보는 사람 마음이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들을 굳이 왜 여기 코너에 올렸을까. 그 이유는 원하는 것을 이뤄나가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성공의 욕망과 어리석음, 모순 등이 현실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많은 건축사들이 창업과 경영을 꾸리는 과정에서 선택하곤 하는 동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와이프’의 부부 관계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에서는 건축사와 건축사에게 일을 의뢰하는 고객 간의 관계를 통해 건축사에 대한 풍자를 느낄 수 있었다. 고상한척 하지만 실제로는 깊이가 없는 캐릭터를 볼 땐 낮이 뜨거웠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창작 프로세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더 와이프’는 여성을 차별하는 시대 속에서 한 여성이 느끼는 사회적 성취욕과 그 이면에 형성된 복잡한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표현한 이 여주인공은 아무나 연기하기는 힘든 역할인데, 뛰어난 연기자 글렌 글로스가 눈빛 하나로 갈등과 욕망, 서러움 등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놀라운 노년의 연기자 글렌 글로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손가락 하나, 걸음걸이 하나로도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하곤 한다. 그녀의 감동적인 연기 덕분에 촌스러운 영화 제목일 수도 있었던 ‘더 와이프’는 고상하고 지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됐다.

영화는 남편이 영광스러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현재의 장면에서 여주인공 조안의 기억을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과거는 현재 조안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의 이유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 조안은 뛰어난 자질과 탁월한 관찰력을 소유한 소설가 지망생이다. 동시에 현실에 부딪치기보다는 시대의 제약에 한발 물러서는 성격이었다. 조안은 자기안의 나약함과 소심함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때마침 그녀 앞에 나타난 영악한 소설가 조는 이를 이용한다.
현재 나이든 이들 부부는 마냥 아내와 남편처럼 보인다. 나를 포함한 많은 남편들은 매일 아침 아내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먹어야할 영양제며, 안경이며, 심지어 며칠 전에 입었던 옷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 역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자신이 인생에서 거둔 성공에는 아내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랐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든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이기적 존재야’라고 아내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하지만 사실 현재의 이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앙탈 또는 응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남편의 성공, 남편의 성취는 언뜻 가족을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영화 속 남편은 노벨상 수상자로 나설 때에도 은근히 아내를 의식한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아내에게 도움을 받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건축을 하는 부부들이 생각났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공감을 해줄 수 있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아내가 남편의 뒤에 서서 후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동업이나 마찬가지다. 동업 경험이 있는 자로서 ‘더 와이프’의 부부를 동업의 입장으로 보아서 그런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재능이 우수하지만 성격상 나서지 못하는 캐릭터와 욕심 많고 경쟁심이 강한 캐릭터는 동업하는 사이에서 대체로 볼 수 있는 흔한 조합이다. 문제는 나서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열정과 재능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잘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더 와이프’의 조안처럼 자신의 재능이 표현되면 일단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 성취가 나타났을 때에 벌어진다. 세상은 항상 두 개를 고루 인정하려 하지 않고 우선순위를 매기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뒤에서 서포트하는 동업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진리다.
남편의 바람기나 허세에도 불구하고 조안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노력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동업자나 동업하는 부부들이 겪는 갈등과 유사하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동업은 깨지게 되거나 서로 중첩되지 않는 역할들로 역할 재정립을 하게 된다.
건축은 창조의 영역인 동시에 개인적 표현의 욕망이 드러나는 일이다. 그것이 억제되고 인정받지 못할 때 생기는 갈등은 상당히 큰 편이다. 다행히 ‘더 와이프’의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낸 탁월한 팀워크를 가진 경우였다. 우리 건축계도 보면 이런 부부 건축사들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기업이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다. 반면 심각한 갈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다양한 경영의 관점과 이해가 적용돼야 가능한 일이다.

 

창작의 도덕성, 의뢰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더 와이프’가 부부간의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소설가라는 영역에서 설명했다면 창작자와 이를 소비하는 의뢰인 간 관계를 설명한 영화도 있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가 바로 그렇다. 사실 이 코너에 소개하기엔 어설픈 영화지만 영화가 그리는 건축사를 그냥 웃어넘길 순 없었다. 확대해서 해석을 하자면, 작품을 하는 건축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건축사에게 일을 의뢰하는 부류는 대개 세 가지가 있다. 평생 꿈이었던 주택이나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원해서, 수익을 내기 위한 영업용 건축이 필요해서, 그리고 공공을 위해서.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이 평생 소원이었던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조망이 매력적인 낡은 집을 구입했다가 그 집이 파괴되자 새로운 집을 짓기로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건축사를 찾았다. 그러나 건축사는 의뢰인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집을 지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공감을 했다. 코미디답게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외관으로 집을 뒤덮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내용이나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이 영화는 B급 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가 풍자하는 건축사의 모습이 사실적이라 마냥 웃고 넘길 수는 없었다. 순전히 건축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작품이 존중받지 못하고 훼손돼 이에 분노하는 경우를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본다. 이글을 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작품 하자고 의뢰인들에게 희생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해본다. 물론 나 자신은 항상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많은 건축사들의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건축이나 일반건축의 경우 의뢰인의 요구가 반드시 사용자의 요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간간이 건축사들로부터 듣는다. 이런 이유로 건축사들 중에는 자신의 요구가 곧 사용자의 요구라고 믿는 의뢰인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사실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문가다. 전문 건축사라면 공공건축이든 일반건축이든 사용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첨예한 갈등은 사적 건축, 특히 주택 부분에서 나타난다. 과연 건축사들은 의뢰인의 꿈의 건축을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있나?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이고, 다른 누군가는 아름다운 집 자체가 꿈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건축사와 의뢰인들은 동상이몽의 관계가 많다. 아무도 보지 않을 그저 그런 영화에 이토록 페이지를 할애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에서 바로 이런 직업적 고뇌와 갈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서로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두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보면서 각기 다른 영역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두 경험 모두를 기억하고 있는 입장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포스터들

Intriguing movie poster

<기생충> 포스터. 긴장감을 주는 모호한 포스터로서 배우의 스타성보다 연상을 통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식이다.

해외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는 영화 <기생충>은 포스터 디자인에서도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 포스터는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아마존을 비롯한 해외의 각종 영화 포스터 판매 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다. 한국의 영화 포스터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기생충>의 포스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 영화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서 <기생충>에 평점을 준 관객은 16만 명이 넘는다.(2020년 1월 집계) 봉준호 감독의 또다른 걸작으로 16년 전에 개봉된 <살인의 추억>의 11만 명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한국 최고 흥행 영화인 <극한직업>의 평점 참여 관객 수는 3천 명대에 불과하다. 이것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에게 알려졌는지 알 수 있다. 평점 또한 대단히 높아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한 단계 높은 26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런 유명세와 별도로 이 영화 포스터는 기존의 영화 포스터들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가장 보편적인 영화 포스터는 출연한 스타의 얼굴을 부각하는 것이다. 영화 예술은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도 많은 자본이 투여된다. 이런 조건이 영화의 모험을 위축시킨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만든다. 포스터도 마찬가지다. 가장 무난한 포스터는 당연히 흥행의 열쇠인 배우를 부각하는 것이다. 배우의 얼굴이 중심인 영화 포스터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외적인 포스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솔 바스가 디자인한 일련의 영화 포스터들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런 포스터는 말 그대로 예외적이며 극소수다. 대부분의 영화는 역시 스타의 얼굴을 띄운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 포스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같은 주요 캐릭터들을 크고 작게 구성했다. 주연 배우 얼굴 보여주기가 주요 전략이다.

<토이 스토리 4> 포스터. 애니메이션 역시 실사 영화와 똑같이 주요 캐릭터를 중심으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어벤져스: 앤드 게임>을 비롯해 10위 안에 드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캡틴 마블>, <알라딘>, <분노의 질주: 홉스&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출연 배우들의 얼굴 나열이 디자인의 키 포인트다. 심지어는 <토이 스토리 4>, <겨울왕국 2> 같은 애니메이션조차 주요 캐릭터의 얼굴 보여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앙에 주연 배우를 앉히고 양 옆으로 주인공 다음으로 비중 있는 인물들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런 포스터는 한 마디로 ‘구성(composition)’이 디자인의 핵심 기술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꾸밈에 매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을 중심으로 부수적인 인물이 양 옆에 배치되는 삼각형 구도가 흔해진다. 포스터에는 어떠한 이야기나 긴장감도 없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포스터. 전형적인 삼각형 구도.

<겨울왕국 2> 포스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과 똑같은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 1970년대에 흔하게 봤던 스타일이다. 일러스트레이션 묘사와 영화 주요 장면의 짜집기 편집, 아울러 중앙에 주연 배우의 얼굴 띄우기까지 딱 복고풍이다.

<로즈메리의 아기> 포스터. 주연 배우의 옆 얼굴과 실루엣으로 처리한 유모차가 신비로우면서도 공포 분위기를 자아낸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중 하나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포스터는 1970년대풍 포스터로 디자인했다. 주연 배우를 중심으로 주변에 영화의 주요 장면을 짜집기 편집하고, 그것을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형적인 1970년대식이다. 이 복고풍 포스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연 배우의 얼굴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2019년의 주요 흥행 영화 포스터는 이 40여 년 전 양식에서 진보한 게 거의 없다. 물론 기술적인 완성도만큼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측면에서는 천편일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빈곤함을 보여준다.

반면에 <기생충>의 포스터는 그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의 얼굴을 오히려 가려서 혼란을 야기시킨다. 이른바 ‘검열 막대기(censor bars)’로 배우의 눈을 가렸다. 이런 검열 막대기는 예전에 가십 기사를 다루는 주간 잡지에서 흔히 보았던 것이다. 그런 기사에서는 불륜이나 치정 살인 같은 흥미 위주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해당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을 활용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스터에 쓰인 검정색 검열 막대기는 바로 그런 기사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왼쪽에 여성의 맨 다리가 놓여 있어서 더욱 어떤 살인사건이나 폭행 현장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 포스터에는 단지 유명한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뭔가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어둠의 표적> 포스터. 깨진 안경이 뭔가 폭력적인 사건을 암시한다.

뛰어난 영화 포스터는 배우의 얼굴이나 주요 장면에 의지하지 않는다. 함축, 연상, 암시를 통해 영화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의 대가인 솔 바스는 주로 요약과 함축의 기술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포스터에는 일그러진 팔과 손이 나오는데, 이것은 빠른 손을 가진 주인공 도박사의 소중한 손이자 주사를 맞는 마약 중독자의 저주 받은 팔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주요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반면에 할리우드의 걸작 포스터 중 하나인 <로즈메리의 아기>(1968년작)이나 <어둠의 표적>(1971년작)은 연상과 암시를 통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두 영화 포스터에서 주연 배우의 얼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생충> 역시 여러 요소들을 활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연상의 효과’를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영화로는 정말 보기 드문 아주 신선한 포스터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

쓰레기도 족보가 있다

Waste also has genealogy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고 3 때도 밤 12시 넘어서 공부한다고 불 켜놓고 있으면 불 끄라고 호통을 치셨어.”
“정말? 왜?”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말도 안 돼. 대학 입시는 어쩌라고?”
“혼자만 공부하는 것처럼 유난 떨지 말라는 거지. 게다가 우리 누나, 형들이 다섯 명 다 대학 갔잖아.
나 하나 못 가도 그만이었을 거야. 당장 전기요금 고지서가 더 큰 문제지.”
“하긴 우리 엄마도 맨날 전기 코드 뽑아 놓으라고 성화였어. 지금도 그러시고.”
여섯 남매 중의 막내인 친구가 소환한 30여 년 전의 기억에 다른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어디 전기뿐이야? 우리 엄마는 전화 통화 조금만 길어지면 끊으라고 얼마나 야단을 했는데.”
“맞아 맞아! 걸려온 전화 받는데도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후후후.”
“우리 어릴 때는 대야에 물 받아서 세수하고 그 물에 발 씻고 그랬는데 말야.”
“설거지도 물 받아서 했어. 그래서 가사 시간에 설거지하는 순서를 배웠어. 시험에까지 나왔고.”
“큭큭 설거지 순서?”
“웃지 마. 그 땐 심각하게 외웠다니까. 숟가락 젓가락을 제일 먼저 씻는 거야. 입에 들어가는 거라서.”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수다를 뒤로 하고 엄마 집에 들렀다. 거실 바닥이 차다. 아니나 다를까, 보일러가 꺼져있다.
보일러를 켜고 TV를 리모컨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꼼짝도 안 한다. 전원 코드가 뽑혀 있다.
“엄마, 왜 맨날 보일러는 안 켜고, 코드는 뽑아 두는데? 그러다 감기 걸리면 병원비가 더 비싸요.”
“괜찮아, 안에 있으면 안 추워. 내가 아낄 게 뭐가 있냐, 그런 것 밖에 없어.”
소용없는 잔소리와 대답이 반복된다. 그런데 내 집에 오면 나의 역할이 엄마와 반대가 된다. 보일러 온도를 24도로 올려놓고 반 팔 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외출할 때도 컴퓨터와 두 대의 모니터를 켜놓고 나가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다. 추우면 옷을 입으라고, 나갈 때는 보일러와 컴퓨터도 좀 끄고 나가라고. 컴퓨터를 한 달 내내 켜 두어도 더 나오는 전기요금은 몇 천원이 안 된다는 이상한 계산을 앞세우며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한다. 물을 받아서 이 닦으라는 얘기는 아이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에 불과하다.
내가 어릴 때는 환경보호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요금을 아끼기 위해서 물자를 절약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아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우리가 흥청망청 쓰는 물과 전기와 도시가스, 겨우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종이컵, 다양한 1회용품들이 지구에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계속 못 들은 척해도 될까?
물고기와 갈매기, 거북이를 소재로 만들어진 그린피스 캐나다의 인쇄광고를 보면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얼음 잔 속의 플라스틱 빨대가 목에 박힌 동물들은 한 줄의 카피로 인간에게 호소한다.

 

우리의 바다에서 생명을 빼앗지 마십시오.

위의 그린피스 캐나다 광고처럼 환경 파괴의 현실을 혐오스러운 시각물을 통해 알리는 광고는 보기에 불편하다. 암에 걸린 폐의 사진을 보여주는 금연광고처럼 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알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혐오스럽지 않게 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발하는 광고는 없을까? 찾아보니 2015년 환경부가 만든 재활용 공익광고가 눈에 띈다. ‘쓰레기도 족보가 있다(I am your father)’라는 제목의 시리즈 영상 4편인데, 유머 광고의 진수를 보여주며 ‘2015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공익광고로는 최초로 영상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고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곤경에 처한 물건을 구조하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먼저 우유팩 편을 보자. 자동 청소기가 온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바닥에 두루말이 휴지가 풀린 채 떨어져 있다. 그대로 두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 때 우유팩이 몸을 날려 청소기와 두루마리 휴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막아 서서 위기에 빠진 휴지를 구한다. 빨대 편의 빨대는 풀장에 빠져 익사 위기에 처한 장난감 오리를 구조하고, 비닐봉투 편의 비닐은 옷이 흘러내려 벌거벗은 채 민망하게 서 있는 마네킹의 중요한 부위를 가려준다. 또 캔 편에서 알루미늄 캔은 갑자기 나타난 강아지가 자동차에 소변을 보는 것을 막으려고 기꺼이 제 몸에 오줌을 받는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도움을 받은 두루말이 휴지, 오리, 마네킹, 자동차는 제 몸을 희생하며 도와준 쓰레기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쓰레기들은 한결같이 ‘I am your father.’(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대답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가 자신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한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Who are you?
I am your father.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우유팩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빨대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비닐봉투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캔 편_2015_스토리보드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다양한 물건들이 탄생한다. 그 당연한 사실에서 쓰레기는 재활용품의 아버지라는 발상을 한 것이 재미있다. 자신의 몸에서 탄생한 재활용품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지켜주려는 쓰레기의 눈물겨운 부성애라니! 거기에 스타워즈의 대사까지 나오니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재활용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광고를 보기 전에는 나도 비닐을 재활용하면 마네킹의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그러니 1회용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철저하게 재활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새해 들어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에서 비닐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사용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실제로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1회용 비닐봉투 사용량이 84% 감소했다는 집계도 있다. 2018년 1월부터 환경부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1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이 전면 금지되자 1월부터 5월까지의 비닐 사용량이 파리바게뜨에서만 전년 대비 7587만4496장(83.7%)이나 감소했다고 한다.
쓰레기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쓰레기의 부모는 우리 인간들이다. 내가 낳은 쓰레기 자식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아 일일이 족보에 다 적을 수도 없다. 쓰레기는 아주 없앨 수 없으면 최소한 줄이고 재활용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부끄러운 나의 자식이고, 쓰레기와 내가 만든 족보는 후세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는 없어져야 할 족보다.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2015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