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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건축사’, 정말 고난의 환경을 가졌다

‘Architect’ in Korea, having a really difficult environment

건축은 창작일까? 편집일까? 생뚱맞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본다. 규모가 아주 작은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건축사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민간 프로젝트든 공공 프로젝트든 척박한 건축 환경 내에서 매년 건축상을 수상하는 완성도 높은 건축 작품들을 보면 이를 만들어내는 건축사들이 경이롭다. 우리 월간 건축사에 게재되는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신년 벽두부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고, 경제 순환 구조의 고장으로 생계 절벽에 매달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리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사들 역시 절벽에 서 있는 위기의 존재는 맞다. 대형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풍요로운 건축사건 나홀로 건축사건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수시로 존재한다. 당연히 극복해야 할 것이다.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환경이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다. 개인의 범위야 뭐라 할 수 없지만, 환경에서 야기된 문제들은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그런 모순이 차고 넘친다. 건축 작품을 건축사의 설계의도대로 온전히 구현해내는 과정을 굳이 표현하고 제도로 만든 용어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다. 건축 제도에서 가장 황당한 두 가지 표현이 ‘역량 있는 건축사’와 ‘설계의도 구현’이다. 취지도 알겠고, 의미도 알겠다. 하지만 얼마나 건축사의 창작 성과물인 건축이 원래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았으면 이런 용어가 나왔을까 싶다.
사실 건축사의 자질 문제는 별개다. 건축이 건축사의 설계 의도대로 지어지지 않은 이유는 많다. 시공자가 공사비를 아끼려고, 본인의 실수를 덮으려고 원작 설계를 훼손하는 일이야 하도 많아서 지적하기도 민망하다. 건축 의뢰인들이 공사 중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마음 따라, 취향 따라 바뀌는 일도 정말 많다. “내 돈으로 내 건물 짓는데, 왜 건축사가 왈가왈부해”라는 갑질 마인드도 일상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갑질 마인드가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 건축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선출직이던 임명직이던 의사결정권자들은 국민의 세금 절약 운운으로 핑계 대며 원작을 훼손한다.
어디 그뿐이랴? 공무원의 면피 절차인 각종 심의에 참여하는 꿈 많은 위원의 경우 그야말로 설계를 난도질한다. 경직된 건축 가이드라인은 지구단위계획 지침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무조건”을 외치며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강제로 입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마디로 책임 있게 주도하는 건축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총괄건축가’나 ‘공공건축가’라는 직제까지 만들었는데 광고업자, 시각디자이너, 인테리어, 도시계획가 등 비전문가들이 민간 전문가라는 자격으로 자리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에서 건축사의 건축이 완성될까? 그런 제도가 없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나오는 건축적 성과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사석에서 만나는 발주자들은 한국 건축사들을 폄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말 이런 환경을 어떻게 깨뜨리고 나가야 하나? 패배주의 유령은 시장에 있는 몇몇 건축사들의 냉소적 선동을 자극한다. 도대체 앞이 안 보인다… 코로나19가 걷힌들 이런 환경들이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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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마다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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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건축물 설계의도 구현의 필요성과 방향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건축사의 핵심 업무는 설계를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품질이든 디자인이든 모두 해당한다. 법적으로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건축사들의 원작이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적 보완책이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건축계는 척박하다. 광교 갤러리아를 설계한 네델란드 OMA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부다비 루브르박물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사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건설사들이 시공을 위한 대부분 도면을 이들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승인을 받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 설계의 의도를 임의로 바꾸거나 훼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사고가 달라서 그 나라에 맞는 방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사의 원작 설계는 그대로 표현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완벽한 설계도면이 가능한가? 건축사가 시공사의 영역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시공 도면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 시공을 위한 도면은 건설사가 작성하는 것이 맞다. 그들의 노하우는 시공 용이성과 경제성을 반영해서 개발하고 그렇게 시공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전제가 디자인을 바꾸거나 건축사의 설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시공 현장은 쉬운 길을 간다. 디자인을 임의로 바꾸거나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제도들이 나오고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제도라 아직 경제적 대가 등의 기준이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건축 담론 주제로 설계의도 구현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시공사 선정 및 선택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시공사가 제대로 선택돼야 건축사의 설계 의도가 명확히 구현되기 때문이다.

 

01 Need and plan to implement building design intention

건축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 중 하나는 길을 가다가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내가 설계한 건축물이 도심 속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다 큰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그러나 현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그 자식이 남의 손에 키워진 것과 같은 경우에는 그 뿌듯함과 보람이 식어짐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내가 고민하며 결정했던 디자인의 일부 모습이나 재료의 색상이나 텍스처가 변경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필자는 항상 설계는 자식을 낳는 것으로, 공사감리는 자식을 키우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제도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설계자가 공사감리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국내 전체 허가 연면적의 20% 전후를 차지하는 공동주택과 35%를 전후하는 공공건축물의 경우를 비롯하여 건축법으로 시행되는 대부분의 주택과 책임감리를 해야 하는 일부 다중이용시설물의 경우에는 설계자가 감리할 수 없도록 아예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공사감리 업무에서 지금보다 적극적인 점검의식의 필요성이 건축사들에게 인식되고 있으며, 체계적인 점검내용들이 구체적으로 확보되었으며, 공사현장의 부실을 억제하며, 제값도 못 받고 책임만 지고 있는 공사감리의 불리한 현실을 타파하고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감리는 설계의 연장’이라는 건축의 기본적인 요소를 없애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22조(설계의도 구현) 제1항에 명시한 설계자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지금은 우선적으로 설계비 1억 원 이상의 공공건축물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민간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물을 설계한 설계자가 현장에 가서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설계한 것과 같이 시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건축 재료의 원가절감 및 품절 등의 이유로 인한 재료의 변경여부와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불가피하게 변경이 필요한 디자인 일부 변경 등에 대하여 설계자가 관여할 수 있도록 의무화시킨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공공건축물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든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설계자로 하여금 설계의도 구현 업무를 통하여 현장업무에 관여하게 하는 것은, 아기를 낳은 엄마에게 키울 권한을 주지는 않았지만,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를 자주 만나 부모의 사랑과 가치관을 전할 수 있는 면담권을 주는 절실한 경우와 다를 바 없다.

건축물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크게 나누어 다섯 가지 정도의 업무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설계도면의 설명이다. 도면으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해설해 주고, 같은 부분에 대한 상세도가 달리 적용되었거나 설계자의 실수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일이다.
두 번째는 설계변경에 대한 적정성 검토 및 협의이다. 마감 재료의 변경이나 색상의 변경 및 확정은 물론이고 평면, 입면, 단면의 변경된 디자인을 검토해 주고 협의해 주는 업무이다.
세 번째는 현장방문을 통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공사장 점검을 하는 업무이다. 현장의 회의에 참석하여 전반적인 공사내용에 대하여 설계자의 의견과 설계의도를 설명하고 설계의도 구현 업무와 관련되어 협의된 내용들에 대하여 현장에서 실행된 내용들을 확인·검토하는 작업이다.
네 번째는 연면적 5,000제곱미터 이상의 중·대규모 현장에서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시공도면(shop drawing)에 대한 검토 및 승인작업과 시공도면 작업이 의무화되지 않는 소규모 현장에서의 시공을 위한 도면 보완작업이다. 지금까지 시공도면은 대부분 감리자의 승인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감리자는 제출된 시공도면으로 인하여 공사의 품질과 공사 후에 하자발생 여부에 대하여 점검하고 검토할 뿐이다. 시공을 위한 상세도가 디자인에 영향을 주거나 설계의도에 맞게 적용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위하여 부분적인 디자인 변경여부까지 검토해 줄 수 있는 업무는 설계자만이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설계의도 구현이 적용되어 완성된 건축물의 관리를 위한 준비작업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22조(설계의도 구현) 제2항에 따르면 “건축물 등의 설계자는 설계의도가 구현될 수 있도록 건축주·시공자·감리자 등에게 설계의 취지 및 건축물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지만 필자는 설계자가 유지관리를 위한 업무를 제안할 수 있다가 아닌 필수 업무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설계의도대로 공사를 완료하여 품격있는 건축물을 건축주에게 인도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건축물이 설계된 내용대로 유지되고 관리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제시되는 이 업무들은 법률상 설계의도 구현 업무의 법위에 포함되지 않아 당장 업무대가에 포함시키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적인 업무가 바로 준공도면의 승인작업이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준공도면의 작성은 건축물을 시공한 건설사가 하고 있다. 설계변경으로 허가 처리된 내용은 이미 도면작업이 이루어져 있지만 설계변경 허가가 필요하지 않은 사소한 변경들은 현장소장만이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관리법이 2020년 5월 1일부터 시행된다. 건축물의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정기점검 여부와 관계없이 준공도면에 대한 검토와 승인작업은 건축주를 위하여 필수적이다. 또한 준공도면은 설계자의 저작권이 있는 도면에 대하여 건설사에서 일부 수정작업을 하였으므로 설계자의 승인을 받는 것은 설계자의 당연한 권리로 판단된다. 아울러 건축물의 수선 및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건축물에 사용된 마감용 건축 재료에 대한 리스트와 전기, 소방, 냉난방설비, 통신 및 보안용 CCTV 등의 각종설비와 기구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비롯한 건축물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서가 필요하다. 몇 만 원짜리 전자제품에도 사용설명서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 건축물의 안내서 작성업무는 당연한 필수조건으로 판단된다. 또한 건축물관리법, 환경법, 주차장법, 엘리베이터관리법령 등에 따라 의무적으로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한 내용에 대한 안내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건축물의 유지관리를 위한 준비작업들은 건축주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설계자 입장에서는 작업내용들이 무척 복잡해 보이기는 해도 한두 번 작업하고 나면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어 건축사사무소마다 기본 틀을 가지고 운영되므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계의도 구현을 의한 업무대가는 실비정액가산방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며 필자는 한국건축정책학회에서 그 연구를 책임지고 진행 중이다. 우리가 연구하기 이전에 이미 2곳에서 선행된 연구결과가 있는데,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는 그 대가를 설계비의 8%로,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는 설계비의 29∼43%의 큰 차이가 나는 두 가지로 제안되어 있다. 그러나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할 경우 소규모와 대규모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의 규모에 똑같이 일률적인 비율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현재 국토교통부의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에 적용되고 있는 비상주 감리비의 수준이 설계비의 25%정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건축물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만이 아닌 민간건축을 포함한 모든 규모의 건축물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고 건축주와 시공자가 설계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살아나서 건축사를 꿈꾸는 후배들이 그 꿈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기대해 본다.

 

글. 전영철 Jeon, Youngcheol 열린모임 참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전영철 열린모임 참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 5년제와 서울과학기술대 및 한양대산업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함.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위원장, 법제이사, 상근이사를 거치며 건축사법 전면개정을 비롯하여 건축기본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의 제정에 기여함. 저서로는 ‘건축법실무해설집’과 ‘내 건물을 지으려면’이 있고 국토교통부의 중앙건축위원으로 건축민원전문위원장과 건축분쟁전문위원장을 역임함. 작품으로는 성내동 성당, 육군훈련소 성당, 정자꽃뫼 성당, 삼중건설 사옥, 조세통람사 사옥, 취영가 등이 있음.
cham-ar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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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파이를 키우자 : 건축사 본연의 역할 회복, 설계의도 구현의 필요성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건축사의 핵심 업무는 설계를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품질이든 디자인이든 모두 해당한다. 법적으로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건축사들의 원작이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적 보완책이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건축계는 척박하다. 광교 갤러리아를 설계한 네델란드 OMA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부다비 루브르박물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사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건설사들이 시공을 위한 대부분 도면을 이들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승인을 받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 설계의 의도를 임의로 바꾸거나 훼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사고가 달라서 그 나라에 맞는 방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사의 원작 설계는 그대로 표현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완벽한 설계도면이 가능한가? 건축사가 시공사의 영역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시공 도면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 시공을 위한 도면은 건설사가 작성하는 것이 맞다. 그들의 노하우는 시공 용이성과 경제성을 반영해서 개발하고 그렇게 시공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전제가 디자인을 바꾸거나 건축사의 설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시공 현장은 쉬운 길을 간다. 디자인을 임의로 바꾸거나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제도들이 나오고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제도라 아직 경제적 대가 등의 기준이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건축 담론 주제로 설계의도 구현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시공사 선정 및 선택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시공사가 제대로 선택돼야 건축사의 설계 의도가 명확히 구현되기 때문이다.

 

02 Let’s expand the capacity : the need to restore the original role of architect and to implement design intention

재작년 말 무렵,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단어는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건축사들에게도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경우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표현일지 모른다. ‘설계의도 구현’업무는 건축설계자가 현장에서 수행하는 공사단계 업무로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시공자가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후설계관리 업무’, ‘디자인 감리’ 등과 유사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설계의도라는 말은 건축사가 ‘건축주’와 ‘공공’을 위해 제안한 최종적으로 확정된 설계안이 담고 있는 의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건축물은 시공단계에서 ‘건축주’와 ‘공공’을 위해 그 의도를 구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후설계관리 업무’ 및 ‘디자인 감리’ 등 공사단계의 설계자 참여를 위해 제시된 업무들은 각각 다른 여러 법령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지만 그 어느 하나도 실제로 실행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제22조 설계의도 구현)에서 ‘설계의도 구현’에 대한 업무를 제시하며 이를 수행가능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이후 이를 제도화 하고자 하는 과정이 진행 중에 있다. 해당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범위 및 업무대가 확립 등 해결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산더미 같이 있지만, 설계자의 시공단계 참여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건축환경 구축을 위한 의미있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건축사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건축사의 업무를 설계로 국한시키지 않고,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 업역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재정립하기 위해, 국내의 현황에서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업무이다. 국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현재 국내의 여건에서 설계의도 구현이 왜 필요한지를 소개하면서, 많은 건축사들과 함께 해당 업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싶다.

국내의 경우, 그동안 건축사의 공사단계 업무를 ‘감리’라는 일본에서 수입된 용어로만 국한하여 사용해 왔던 까닭에, 제도적으로 ‘감리’업무를 설계자가 못하게 되는 순간, 설계자가 공사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선진국 중에 설계자의 공사단계 참여를 법과 제도로서 막고 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1)을 중심으로 한 국외의 사례를 보면,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항상 ‘설계업무’와 ‘공사단계업무’를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고, 건축사의 공사단계 참여는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 보장받는다. (그림 1-1 참고) 이때,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의 공사단계 업무가 바로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업무이다.

[그림 1-2] 국외 사례의 건축사의 단계별 기본업무,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공공건축 실태조사 연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 2019

즉, 국내에서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보통 설계업무로 국한하여 정의하는 경향이 있고, 설계 이후 공사단계의 모든 업무는 감리라는 명칭으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국외의 사례에서는,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설계뿐 아니라 공사준비단계업무와 이후에 공사단계업무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에 대한 대가 또한 국내에서는 통칭 ‘설계비’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 국외에서는 건축사의 ‘기본업무’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유럽-미주-아시아를 대상으로 국외의 5개 국가(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들의 경우를 정리해보면, 각 국가별로 [그림 1-2]의 표와 같이 건축사의 기본업무가 다양한 단계로 각국의 실정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국가별 제도적·단계적 업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공통으로 정의하고 있는 업무를 정리해보면, 설계자의 ‘기본업무’는 항상 ‘설계업무’와 ‘공사단계 업무’를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때, 공사단계의 업무는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 설계자가 수행하는 업무를 기본업무로 하고 있다. ([그림 1-2] 참고)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업무로서, 공사단계에서 비전문가인 건축주(그리고 공공)를 대변하여, 설계자는 건축전문가로서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시공자에 의해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대로 시공되도록 현장을 방문하고 검사를 하고 시공상황을 파악한다. 이때, 설계자는 공사단계 참여를 통해서 건축물들이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에 따라 공간환경을 갖추고, 형태-규모-재료-시공수준 등을 포괄하여 디자인의 품격을 갖추며 시공되는지를 검토 및 확인한다. 또한 공사현장이라는 얘기치 못한 조건과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특성으로 인해 현장에서 발생하게 되는 다양한 변경사항에 대해서도 설계자로서 대응하여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한다. 즉, 도시의 일부이자, 건축주의 소중한 자산인 건축물이 그에 걸맞는 격을 갖추며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대로 지어지기 위해 필수적인 전문가의 업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외사례에서는 공사과정의 건축사 역할을 설계자에게만 맡기는가 의문이 들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업무이외의 업무, 즉, 해당 건축물이 건축물로 ‘기능함’에 있어 문제는 없는지, 구조체와 계단의 치수·폭·층고·건축물의 면적 등에 있어서 구조적으로는 안전한지, 법적으로 위반한 사항은 없는지 등, 건축물이 법적 기준과 공공의 안전에 부합하여 시공되는 지를 검사하는 역할(감리)은 많은 경우 공공에서 주도하여 수행한다.

즉, 공공의 안전과 법적 요건의 준수를 위해 국외에서는 공공에서 시공단계의 감리(Inspection)2)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때 해당 감리 업무의 수행은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공기관에서 직접 수행하기도 하지만(공공기관의 담당자가 건축사로서 전문가인 경우), 공공기관에서 위탁받은 설계자 혹은 제3자인 건축사가 수행하기도 한다. 즉, 감리업무는 건축사의 기본업무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와 같이, 건축과 공사에 있어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업역의 범위와 역할을 정립해 온 국외사례를 보면, 국내처럼 설계자의 공사단계 참여를 막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계자는 설계만으로 업무를 종료하지 않고, 이후에 공사준비단계에서도 건축주가 설계도서에 부합하여 시공을 잘할 수 있는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공사단계에서는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서 시공자가 설계도서에 부합하여 시공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림 1-2의 각국 공사단계 업무 참고) 건축물이 설계되어서 완공될 때까지의 포괄적인 업무가 모두 건축사의 기본업무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사 업무의 대가산정에 있어서도 국내에서처럼 ‘설계비’가 얼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설계만이 건축사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건축사의 ‘기본업무에 대한 대가’가 존재하고, 각 단계별로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업무를 수행할지를 건축주와 협의를 통해서 대가를 산정할 수 있다. 설계자의 기본역할에 더하여 건축물이 법적 요건과 공공의 안전을 지키며 공사가 이루어지는 지를 확인하고 검사하기 위해 공공 혹은 공공이 지정한 감리자가 공사단계에서 감리업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건축물이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면서도 우수한 디자인 결과물로서 사회의 물리적 환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이 확립해온 건축사의 업무에 대한 기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세계 어느 곳에도 유래 없이 설계자가 공사단계에서 법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제3자에 의한 감리로 공사가 더 잘 실행되고 있는가? 공사단계에 수행해야 하는 건축사의 역할로서 감리가 전부인가? 전문가로서 건축사들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설계자가 설계의도 구현의 업무를 공사단계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축사의 기본업무를 재확립하고, 건축사의 역할을 본연에 맞게 재정립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설계자가 설계의도 구현업무를 함으로써, 감리자는 공공의 안전과 법적 요건을 확실히 점검하여 건축물이 공익에 부합되도록 하는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설계자는 건축물이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우수한 공간환경을 갖추며 시공되어 공익에 부합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 혜택은 안전하면서도 훌륭한 물리적 환경을 누리게 될 건축주와 공공에게 돌아갈 것이다.

글을 마치며, 국내에서 설계의도가 더욱 필요한 이유를 몇 가지 더 언급하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던져 보면서, 설계의도 구현업무가 질문이 던지는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국내의 공사여건에는 꼭 필요한 업무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고 싶다.

· 국내에서 상세시공도서를 제대로 갖추고 공사를 하는 시공사가 얼마나 되는가?
· 상세시공도서가 부재한 영역의 공사는 어떻게 결정되고 수행되는가?
· 상세시공도서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시공자가 제시한 공사비와 내역이 실제로 지어질 건축물에 대해 충분히 반영하고 있을까?
· 건축물의 공사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과는 환경적 시간적 여건이 확연히 다르다. 초기에 제시한 재료-장비-인건비 등이 이후 진행되면서 변경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열악한 현장 여건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며 설계단계 혹은 초기 시공단계에서는 미리 예측이 불가능한 다양한 변수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것이 현장중심의 건축공사의 기본 속성이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변경사항들에 대해 설계자 없이 적절한 대응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설계의도 구현업무는 제한된 크기의 파이를 더 작게 쪼개어 나누는 것이 아니다. 설계의도 구현업무의 확립을 통해서, 건축사의 업무대가 또한, ‘설계비’가 아닌, 건축사의 ‘기본업무 대가’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건축사들이 설계의도 구현에 해당하는 업무를 업무로서 인정받지 못하며 대가없이 무상으로 수행해왔다. 이를 확립하고 사회에 알리는 것이 전문직업인으로서 건축사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서, 건축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본 업무에 부합하는 충분한 크기의 파이를 가지고 건축사가 일할 수 있도록, 업역을 재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글. 남정민 Nam, jungmin 고려대학교 조교수 · AIA

남정민
고려대학교 조교수 / AIA / 서울시 공공건축가 / OA-Lab 건축연구소(www.OA-Lab.com)

남정민은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OA-Lab건축연구소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학교의 디자인 연구와 실무를 통한 현실적용 간의 상호 연계를 통해서,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디자인이 일상 속에서 삶의 경험을 담고, 사회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설계석사(M.Arch I) 학위를 받았다. 이후 KVA, OMA, Safdie Architects 등 다양한 사무소에서 인턴과 실무경험을 수행한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졸업논문상 파이널리스트 및 추천장을 받으며 졸업하였고, 2009 AIA미국건축사협회(MA주 챕터)의 주택공모전 대상, 2015 AIA미국건축사협회(국제 챕터) 건축부분 대상, 2018 젊은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 등 다수의 수상을 했다.
nammin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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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삶 ‘보석 박힌 암석’으로 표현한 ‘가치’_문지영 인테리어팀장

Architecture and Life
‘Value’ expressed as ‘jewel-studded rock’

건축주 한화갤러리아 측 담당자 문지영 인테리어팀 팀장

광교중앙역을 걷다보면 암석을 닮은 거대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밤에 보면 울퉁불퉁한 유리창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지난 3월 2일 문을 연 한화갤러리아 광교점(이하, 갤러리아 광교)은 네덜란드 OMA, (주)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설계를 기반으로 지어진, 건축면적 7만 제곱미터, 지하 7층, 지상 12층 규모의 백화점이다.
갤러리아 광교는 개점 전부터 맘 카페를 비롯한 지역주민들과 유통업계에서 이슈가 됐다. 시공 전에 공개된 투시도를 두고 건축 디자인에 대해 찬반 여론도 활발했다. 건축이 공개된 후에는 보는 이들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 장소를 배경에 두고 자기 자신을 찍는 것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건축이 꽉 담긴 사진을 찍는다. 압도적인 규모도 규모지만 아마 ‘특별한 디자인’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마케팅 아닌 ‘가치’에 초점 맞추니 ‘건축’이 달라졌다.

국내에서는 백화점을 짓는다고 하면 대개 창이 없는 박스 공간 디자인으로 설계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업공간이라 마케팅 요소를 우선시하다보면 ‘건축’이나 ‘디자인’은 아무래도 순위가 밀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갤러리아 광교의 건축적 의미는 특별하다. 건축주(주.한화갤러리아) 측은 그들이 고객들에 제공하고 싶었던 것을 한 단어로 ‘가치’라 말한다.
“과거 백화점들은 비싼 물건을 어떻게 전시해서 잘 파느냐가 목표였습니다. 외부와 다른 내부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빛과 시간이 단절된 창 없는 건축 구조를 취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습니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백화점과 같은 오프라인 유통채널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온라인이 줄 수 없는,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화, 예술, 취향 등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타 오프라인이 따라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저희의 미래 전략입니다.”

한화갤러리아 광교점 전경

(주)한화갤러리아 측 담당자 문지영 인테리어팀장의 설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갤러리아 광교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액티비티 체험 공간’을 목표로 기획됐다. 이러한 의도는 기존에 답습해오던 설계, 건축 재료, 건축 과정을 비롯해 완성된 건축물까지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그 이면에는 도시개발 장기플랜 프로젝트가 있었다. 5년 전 정부는 광교에 도시개발을 진행하는 과정 중 하나로 지역 액티비티 시설 설계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위해 개발 사업자를 공모했다. 백화점, 주상복합, 호텔 세 분야 중에서 백화점 사업주체로는 (주)한화갤러리아가 당선됐다. 정부와 (주)한화갤러리아 측은 해당 부지가 산과 호수를 아우르는 중심지임을 고려해 ‘자연과 도시의 만남’을 주제로 건축의 콘셉트를 정했다. OMA에서는 이를 보석이 반짝이는 광산의 단면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무수한 경우의 수를 다 계산했다”

초기 설계도를 그대로 구현하기 위한 작업은 그야말로 무수한 고민과 소통, 협의의 과정이었다. 지층과 암석을 연출하기 위해 건축에 소요된 화강석은 약 12만 5천장. 하나하나 넘버링을 해서 위치에 맞게 붙였다. 화강석 종류도 한두 개가 아니라 무려 열두 개였다. “화강석 종류가 많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고 문지영 팀장은 농담처럼 말한다. 실제로 국내 기후와 시공 작업, 유지 관리에 맞는 석종을 선택해야 했기에 따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보석처럼 보이는 것은 건물 외벽을 따라 전 층을 연결하는 돌출형 유리 통로 ‘루프 커튼월’인데, 이는 1,654개의 각기 다른 비정형 삼각형 유리를 짜 맞춰서 시공한 것이다.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이 매장 내부로 쏟아지고, 내부에서는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밤에는 이 부분에서 빛이 난다. 경관 조명은 의견이 엇갈렸지만 결국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실내의 자연스런 빛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업계를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들이 단기적 수익만 고려했더라면 결코 적용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1F Central space(forest of light) © 홍성준

CA를 수행한 (주)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오지승 설계팀 수석은 그 간의 고충을 “무수한 경우의 수를 다 계산했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루프 커튼월 시공 전에 비나 눈, 낙하물이 있으면 어떻게 변형될지, 청소는 어떻게 하고 유지는 어떻게 할지, 열선을 심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했습니다.”
오 수석은 해외 디자이너와 소통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충돌이 엄청났다”고 전했다. “국내는 고객 중심의 상업건물이 설계자의 나라에서는 작품이자 크리에이티브입니다. 때문에 필연적인 기능성을 요구하는 건축주와 작가 간에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양측은 자주 홍콩에서 만났다. 그리고 치열하게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직접 건물을 보면 이들의 고충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외부, 내부 모두 디테일을 풀기 어려운 디자인으로 설계돼 있다. 설계·디자인이 모두 다른 다섯 개 백화점을 운영하는 건축주 측에서 이를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었을 터.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해외 건축사와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문지영 팀장은 다시 ‘가치’를 끄집어냈다.
“새로운 가치,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다보니 그들과의 협업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외장재는 한정돼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창의성이 갈리거든요. 그들과 작업을 할 때마다 ‘그림 한 장을 건축화시키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코로나19 변수 발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아 광교는 4년 간 건축주, 설계 및 감리자, 시공사, 설계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실이다. 개관 후에는 유리창을 통해 전 층으로 빛이 들어오는 첫 번째 백화점이란 타이틀도 얻었다. 안타깝게도,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맞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발밑부터 천장까지 유리로 된 공간에서 광교 도심과 호수공원을 조망하는가 하면, 루프에 설치된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느라 들떠 보인다.
갤러리아 광교 측은 앞으로 단기적인 목표보다는 프리미엄 가치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장기적 전략으로 백화점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액티비티 체험을 제공하는 백화점이자 지역과 주민의 교차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겠습니다.”
“건축이나 내부 인테리어 등에 있어서 그 동안 많은 해외 기업들과 작업을 해왔습니다. 물론 신진 디자이너들과도 여러 번 작업했습니다. 웨스트점의 경우, 내부 인테리어를 캐나다의 신진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했었죠. 건축이 기술과 창작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내 건축사들과도 대형 프로젝트들을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글 이유리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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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과 고요한 불탑의 나라 ‘미얀마’

‘Myanmar’, a country with beautiful smiles and tranquil pagodas

과거 버어마로 불리기도 했던 미얀마. 인도차이나 반도 서쪽에 위치한 약 오천오백만 명이 살고 있는 독실한 불교국가다.
주요 도시로는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과 제2의 도시 만달레이가 있다. 불교국가답게 불탑이 전 국토에 산재하고 있으며, 바간, 인례호수 등에서는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고 밝고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인레 호수의 아름다운 서정
인레 호수는 샨 주(Shan State)의 유명 관광지이자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얀마 관광지다. 해발 875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22킬로미터, 동서로 11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 산정 호수다. 우기에는 남북의 길이가 최대 33킬로미터까지 약 1.5배 정도 늘어난다. 샨 주는 고원 산악 지대라 여름철에도 비교적 선선하다. 이곳을 여행할 때는 반드시 점퍼나 긴팔 옷을 챙겨야 한다. 인레 호수는 다양한 사람들이 생활의 근거를 삼고 있는 곳이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그들의 삶에는 다양한 풍경이 존재한다. 인레 호수 연안에 부를 과시하는 것 같은 호화스런 수상 호텔 리조트가 있는가하면, 조각배 뒷켠에서 한쪽 다리로 노를 저으며 고기를 잡는 태고의 모습까지……. 물위에 떠 있는 듯한 수상가옥에서 문밖을 나서면 물밖에 안 보인다. 그 물에서 모든 것을 얻으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불평 없이 항상 소박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걱정거리 없는 행복한 그들의 얼굴이 부럽다.

불탑 위로 떠오른 여명 그리고 일출
전날 강행한 촬영 일정 탓에 고단하지만 민예공 파고다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 일찍 힘든 몸을 일으켜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듯 바간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하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함을 잘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을 나선다. 사물의 분간이 쉽지 않은 새벽임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부산하다. 민예공 파고다에 도착하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미얀마에서는 불상을 모신 사원에 출입할 때 신발을 신는 것이 금지돼 있다. 높이 60여 미터의 탑을 등산하듯이 맨발로 올라가다보면 발 아래 어마어마하게 산재되어 있는 파고다들이 여명의 안개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곧이어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면 마치 육상 출발 신호인 양 기구들이 떠오르면서 바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석양이 깔린 우 뻬인 다리
마하 간다용 수도원에서 나오면 머지않은 곳에 커다란 따웅타만(Taungthaman) 호수가 있다. 이 호수에는 높이 3미터, 폭 2미터, 길이 1,209미터에 달하는 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 뻬인 다리다. 156년 전(1849~1851) 우 뻬인이라는 사람이 마하 간다용 수도원과 호수 건너편 지역으로 탁발 공양을 다니는 스님들을 위해 보시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1,086개의 티크 우드가 사용돼 우기에는 다리 난간 가까이까지 물이 차지만 건기에는 물이 빠지면서 가장자리 다리목이 앙상하게 드러난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석양이 깔린 다리는 유명한 광경이라서 세계 굴지의 방송사들이 앞 다퉈 다큐멘터리 촬영에 열을 올린다.

순금 사원, 쉐다곤 파고다
양곤에 소재한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 시민들뿐만 아니라 미얀마 국민 모두에게 상징적인 사원이다. 외벽이 순금으로 장식된 것으로 유명하다. 정상부 또한 다이아몬드, 루비 등 수많은 보석들로 장식돼 있다. 미얀마는 흔히 황금의 땅으로 불린다. 높이 솟은 황금색 파고다 때문이다. 양곤 시내 어디서나 쉐다곤 파고다를 볼 수 있다. 쉐(Shwe)는 미얀마어로 황금을 의미이고, 다곤(dagon)은 언덕이다. 쉐다곤은 즉 ‘황금 언덕’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60미터 높이의 언덕에 지어진 99.36미터에 이르는 거대 사원이다. 미얀마는 우기에 4,00밀리미터 가량 많은 비가 내린다. 때문에 침수를 피할 목적으로 높은 언덕을 만든 후 그 위에 사원과 파고다를 건설하고 부처의 불발(머리카락) 사리탑을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쉐다곤 파고다를 중심으로 빙 돌아가면 작은 탑과 사원, 불상들이 있는데, 이들을 보면 불교 건축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천불 천탑의 바간
수도 양곤에서 선박으로 12시간가량 이라와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불(千佛) 천탑(千塔)의 도시 바간에 도착한다. 양바간은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140킬로미터 떨어진 미얀마 중부 건조 지대 이라와디 강 동안에 위치해 있다. 바간의 유적 대부분은 바간이 최초의 버마족 제국의 수도였던 1000년대에서 120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바간은 874년 핀비야 왕에 의해 비로소 수도가 됐다. 그러나 왕의 치세 때마다 수도를 바꾸는 버마족의 전통 탓에 바간은 아나우라타 왕 치세 전까지 버려져 있었다. 1057년 아나우라타 왕은 몬족의 수도 타톤을 정복한 후 팔리 문자를 들여왔고, 바간을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불교 승려와 장인들을 이용했다. 미얀마 승려의 도움을 받아 상좌부 불교를 들여왔고 스리랑카와의 관계를 정립했다. 바간은 12세기, 13세기에 세계적인 불교 연구의 중심지가 됐다. 인도, 스리랑카, 타이, 크메르 등에서 많은 승려와 학생들이 찾아왔다. 한편 왕국은 몽골의 쿠빌라이칸에게 공물을 바치길 거부했고 결국 1287년 몽골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 몽골족에 약탈당한 후 버마 왕은 바간을 버렸다. 도시는 정치적 중심으로부터 쇠퇴했다. 그러나 불교 연구의 장소로서는 계속해서 번영했다.

목에 황동링을 착용한 채 살아가는 여인들
인구 5,510만 명의 나라답게 미얀마에는 135개의 다양한 종족 집단들이 거주한다. 버마족이 70퍼센트로 다수를 이루지만 샨족(Shan) 9퍼센트, 카렌족(Karen) 7퍼센트를 비롯해 몬족, 중국인, 인도인, 파오족 등 각기 다른 소수 민족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해발 875미터의 고산 호수 마을 인레 주변에도 여러 소수 민족들이 호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이 중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인따족은 70퍼센트가 인레 호수에 수상마을을 건설하거나 고기잡이와 수경재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실상 인레 호수의 주인이다. 관광객이 늘어난 최근에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차츰 늘고 있다.
인따족 외에도 인레 호수에서 볼 수 있는 소수 민족이 더러 있다.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면서 자치권 투쟁을 벌였던 카렌족의 일부 여자들인 버다웅족이 그러한데, 목에 황동링을 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다웅족 여인들은 주로 직조를 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목이 긴 여인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그네들만의 미의 척도로 평생 목에 황동링을 착용한 채 살아가야하는 모습이 족쇄처럼 보여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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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건축 03 젠느 대사원

Immortal architecture 03
Great mosque of djenne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이 건축물의 배치는 한 변의 길이가 55m 정도인 마름모 형태를 하고 있다. 가로 50m × 세로 25m 크기의 국제 규격 수영장이 두 개나 들어가는 규모다. 외벽 높이는 10m 정도로 3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고, 정면에 있는 타워의 높이는 어림잡아 20m 정도 된다. 현대건축에서도 이 정도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런데 800년 전에 흙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면 어떤가?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구상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인 이 건물은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젠느(Djenne)」에 있는 젠느 대사원(great mosque of djenne)이다.

젠느 대사원

「젠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인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다. 사막의 경계라고는 하지만, 사바나 기후의 영향으로 우기에는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젠느 대사원 전면 타워

폐허가 된 젠느 대사원 (1893) 사진=amisdumali.com

재축된 젠느 대사원 (1911) 사진=en.wikipedia.org

건축물을 짓기 전에 급격히 불어나는 강의 수위를 대비하는 계획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로 75m × 세로 75m 정도의 크기로 높이 2m 정도의 기단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단 위에 가로 55m × 세로 55m 높이 20m 규모의 대사원이 세워졌다. 사원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도시의 중심가로가 지나간다. 도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정치, 종교적 의미가 클 뿐만이 아니라 경제와 교통의 거점공간으로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축물이다.

젠느 대사원의 이런 규모와 상징성도 주목되지만, 독특한 외관도 눈에 띈다. 우리는 공장에서 생산된 산업화 재료로 만든 건축물에 익숙하다. 그래서 건축물이라고 하면 반듯반듯하고 각진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외관을 하고 있는 젠느 대사원은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젠느」가 위치한 서아프리카의 Sahel 및 Sudanian 목초지 지역에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전통건축의 모습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이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고 환경에 더 적합한 건축일 것이다. 이 지역 건축양식(Sudano-Sahelian architecture)을 잘 보여주는 젠느 대사원은 800년 이상의 긴 역사와 약 3,000㎡ 정도의 큰 규모까지 갖추고 있어 대표성을 띠는 건축물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역사성이 지역대표성을 인정받아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지금은 말리제국의 전성기였던 중세의 영광스러운 모습도 되찾고 인류문화의 중요한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항상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던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젠느 대사원은 버려진 폐허였다. 1893년의 엽서에서 지금처럼 재축되기 전에 폐허였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흙벽과 타워는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조금씩 보이는 목재와 기단의 흔적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지경이었다. 도대체 젠느 대사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젠느」에 정착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였고 9세기경에는 이미 도심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인 셈이다. 중세에는 이 지역에서 융성한 말리제국(mali empire)의 중심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지정학적으로 동·서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서 교역 거점으로 매우 중요했고, 교육과 문화교류에서도 중심 도시였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이었는지 1230년경, 말리제국은 제국의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젠느 대사원을 건설한다. 이후 17세기 중반까지 450년간 말리제국은 서아프리카의 맹주로서 대제국으로 성장했고, 「젠느」는 말리제국의 정치, 종교, 경제 중심지로 크게 번성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런 「젠느」의 중심에는 언제나 젠느 대사원이 그 영광을 상징하며 서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말리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젠느」는 다른 세력에게 점령되고 만다. 새로운 통치자는 종교가 같은 이슬람 세력이었지만, 기존 사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젠느 대사원을 포함한 기존 사원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새로운 사원이 건설되었다. 젠느 대사원은 버려졌고 이렇게 방치되자 곧 폐허가 되었다. 1810년대의 일이다. 그 후 프랑스의 탐험가 René Caillié 가 젠느 대사원이 버려지고 10년 뒤 「젠느」에 도착한다. 그는 젠느 대사원을 두 개의 거대한 타워가 있는 매우 큰 규모의 사원이라고 묘사하고, 버려진 수천 개의 제비둥지와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유럽에 전했다. 영광스러운 젠느 대사원은 10년 만에 냄새나는 흙더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FRENCH WEST AFRICA가 발행한 우표 (1947)

젠느 대사원을 본 딴 「Missiri Mosque」 (1931, 프랑스) 사진=en.wikipedia.org

19세기.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던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1880년부터 말리를 식민지에 편입했고, 1893년에는 프랑스 군대가 「젠느」를 점령한다. 「젠느」에 입성한 프랑스는 폐허가 된 젠느 대사원을 1907년에 재축했다. 버려진 지 100년 만의 부활이다. 재축을 마치자, 프랑스는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젠느 대사원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다. 1931년 열린 프랑스 엑스포에서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젠느 대사원을 소개했다. 또한 1947년 french west africa에서 발간한 우표에 젠느 대사원을 담았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목적은 따로 있었겠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젠느 대사원이 서아프리카 건축의 상징인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1931년 엑스포는 제국주의 프랑스로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세계 곳곳에 있는 식민지 지역의 대표 건축물들의 복제 건물을 프랑스에 만들어서 전시하며 제국의 영광을 크게 홍보했다. 이때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엑스포에 복제되어 전시된 건물이 젠느 대사원이었다. 이 복제 건물은 이슬람교 사원으로서 종교적 기능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Missiri Mosque라는 종교적 이름으로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젠느 대사원의 재료인 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고, 붉은색 시멘트로 반죽한 콘크리트로 건설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Missiri Mosque는 복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1987년 프랑스 문화유적(French historic monuments)으로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젠느 대사원과 비교하면 문화재로서 가치는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복제 건축물도 문화재로 등록된 특이한 경우다.

또 다른 젠느 대사원의 복제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있다. 서귀포시 중문 관광단지에 2005년 개관한 ‘아프리카박물관 제주‘는 젠느 대사원의 겉모습을 모방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건물의 장식과 외부는 황갈색 페인트를 섞은 뿜칠로 마감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복제 건물 Missiri Mosque와는 달리 내부 공간은 원본과 유사성이 전혀 없고, 장식적인 겉모습만 흉내 냈다. 젠느 대사원의 의미보다는 시각적인 호기심을 끌기 위해 낯선 문화의 이질적이고 특이한 외형만 차용한 것이 아쉽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복제된 두 건물이 내구성이 강한 현대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흙으로 만들어진 젠느 대사원은 비만 오면 벽면이 씻겨나가고, 심하면 종종 무너지기도 한다. 2m 높이의 기단이 우기에 불어난 물로부터 대사원을 지켜주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정면 세 개의 타워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심각한 사고도 있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타워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붕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붕괴가 아니더라도 우기가 지나면 지속적으로 보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보수하고 필요하면 지속적으로 재축을 한다.

매년 보수를 할 때면, 도시의 모든 남녀노소가 대사원의 보수에 참여한다. 노인들은 건초를 자르고, 여자들을 물을 기른다. 농부는 가축을 이용해 흙을 밟아 반죽하고, 아이들은 반죽된 흙을 고사리 손으로 들고 뛴다. 젊은이들은 대사원의 벽을 기어올라 아이들이 가지고 온 흙 반죽을 고루 펴 바른다. 얼굴과 손에는 모두 흙이 묻었지만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활기가 넘친다. 시민들은 모두 각자의 집을 매년 보수해왔던 준비된 건설 전문가인 셈이다. 이 과정은 며칠간 지속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참여하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젠느」를 찾아간다. 이렇게 젠느 대사원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어쩌면 반복되는 재축의 운명을 타고난 건물인 것 같다.

젠느 대사원을 본 딴 「아프리카박물관 제주」 (2005, 대한민국)

타워가 붕괴된 젠느 대사원 (2009) 사진=en.wikipedia.org

해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수와 재축의 축제 사진=archnet.org

흙으로 만들어져서 매년 보수와 재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 가능하고 영구적인 건축물로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건물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800년간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젠느 대사원은 오늘도 재축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천년의 도시 「젠느」와 「젠느」의 시민들이 있는 한 젠느 대사원은 불멸의 건축으로 남을 것이다

※ 국내 건축법은 재축과 개축을 구분한다. 천재지변 등 외부요인으로 건축물이 소실된 경우는 재축이고, glass cube처럼 건축물 소유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경우는 개축이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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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의 영화 ‘괴물’과 ‘에이리언3’

Human movement flow’s films
‘The Host’ &’Alien 3′

오스카상의 백미인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을 받은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 덕분에 이전 영화들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항상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 사회적 소수와 약자에 대한 관찰이 있다. 이런 시선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다. 그들은 굳이 동전의 이면 같은 부분을 드러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봉준호의 영화에는 무척 복잡한 관점이 섞여 있다. 복잡한 가운데, 상징이 있고 은유가 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곳곳에 유머가 있다는 점이다. 유머는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유머가 빠진 복잡함과 상징으로 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는 피터그리너웨이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사실 무척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머리 아픈 부분도 많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상징의 코드를 찾아내야하는 수수께끼 같은 현학적 표현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학성과 상상의 반대편에 있는, 적나라함을 드러내는 영화도 있다.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로, 사회성을 이야기하자면 이탈리아 대가 비토리오 데 시카가 최고로 보인다. 50~60년도 훨씬 이전의 영화감독이지만, 지금도 그의 영화는 인간적 감동을 진하게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썩소의 대명사 쿠엔틴 타란티노, 인간성과 폭력성을 깊이 있게 다루는 마틴 스코세이지 두 사람도 대표적이다. 물론 임권택과 박찬욱을 비롯한 우리 영화감독들도 좋다.
그런데, 봉준호는 이런 영화적 장르를 비빔밥 만들듯이 섞어 놓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그의 영화가 쉽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비빔밥에 익숙하다 보니까……. 기생충에도 짜파구리가 나오듯이…….
이왕에 이슈의 중심에 있는 봉준호에게 숟가락을 얻는 셈이니 그의 이전 영화를 언급해본다. 건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지면이기에, 그의 영화 중 건축적 공간을 가장 잘 다룬 ‘괴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괴물’의 사회적 시선이나 의미는 다른 비평가들의 글에서 여러 번 읽었을 터이니, 공간에 대한 그의 해석과 시선을 중점으로 써보려 한다.
대개 영화에서는 건축, 즉 공간은 여러 방식으로 설정돼 드러난다. 직설적으로 예쁘장한 양식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유의 상징으로 건축을 다루기도 한다. 대체로 봉준호의 영화는 후자에 가깝다. 직설적인 설명보다는 암시 또는 심리적 반응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이용한다. 그에게서 직접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분석하자면 당연히 그런 효과가 있다고 본다. 모든 공간의 장면들이 좌우 대칭으로 안정적이기보다는 중심이 이동하는 동적 화면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카메라 앵글은 아주 묘한 감정적 객관성을 느끼게 해 준다. 카메라의 수평적인 이동은 피사체가 있는 공간감을 오히려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영화 ‘괴물’에서 한강 다리 밑이나 하수로를 이동할 때 수평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화면이 공간 안으로 따라 들어갈 때보다 훨씬 객관적 입장에서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자료=(주)쇼박스

‘괴물’에 등장하는 공간은 색으로도 해석된다. 어둠과 빛의 대비가 선명하지 않고 흐린 날의 색감이 공간을 차지한다. 흐린 날의 색감이란 선명하지 않으며, 감정적인 우울함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대체로 그의 영화들에서 색과 빛은 명랑한 이미지보다는 채색되고 빛바랜 듯한, 한 계단 아래로 내려앉은 모양새다.
‘괴물’의 공간 역시 등장부터 강렬한 암시를 주면서 이해하기 쉽다. 감정 이입도 마찬가지로 잘 된다. 서울 사람에게 한강은 묵시적으로 두 가지 접근법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관상용인 거대한 물길이다. 다가설 수 없는 거대한 물길이 넘나드는 한강은 값비싼 조망권을 소유한 집들이 독점하는 곳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강을 만나는 일상적 경험은 한강 다리로 바라보는 경우가 고작이다. 한강과 함께 한강 주변에 있는 고급 주거지들도 부러운 듯이 보게 된다.
다른 하나는 토끼굴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기어들어 가듯이 고급 주거지를 지나서 도착하는 강변도로와 올림픽 도로 건너에 있는 고수부지다. 모래사장이 넘실대는 한강변 해수욕장은 이미 5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서울 사람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한강은 80년대부터 개발된 고수부지의 한강변이다. 이 한강변 고수부지를 이용하는 때는 대부분 여가시간이다. 달리기를 (고상하게 조깅을) 한다던가, 치킨을 배달받아 먹으면서 한강을 구경한다던가, 한여름 더위를 피해 나들이를 가는 정도다. 이 정도도 대단한 서울 시민들의 놀이터 역할이긴 하다. 인정!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뒷모습?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고층건물의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 풍경과 한강 가까이에 개발된 자연 고수부지는 한마디로 매력적인 그림이다. 그런데, 매일 사람들이 잉여시간을 즐기기 위해 찾는 그곳에, 우리가 모르는 거대하게 구성된 또 다른 서식지가 있다는 설정은 흥미진진하다.
그렇게 만나는 한강변 고수부지는 어려운 곳이 아니다. 재미난 것은 우리가 한강 고수부지를 지나면서 무의식으로 만나는 수많은 한강 다리가 만들어내는 하부 공간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건축적으로도 매력적인 거대한 공간들이 아무 쓸모없이 버려져 있는데, 봉준호는 이 거대한 공간들을 보면서 온갖 상상을 다 한 듯하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두워 쉽게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 한 것 같은데, 영화 ‘괴물’은 바로 이 공간에 주목한다. 일상의 한강과 그 일상의 한강에 숨어 있는 어마어마한 비밀에.
그리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면 복선이 깔린 그 배경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알게 된다. 일상적으로 노출된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처럼, 괴물은 그렇게 일상의 무관심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자료=(주)쇼박스

주인공 가족은 설정부터 서민으로 구성된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다. 사실은 평범함보다 조금 더 무능력한 가족들이다. 국가 대표 양궁선수와 4년제 대학 출신도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는 밀린 자들이다. 이런 인물 캐릭터는 봉준호 영화 속에서는 아이콘 같은 구성이라 차치하고, 영화를 보면 이들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다. 그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이번에 상을 받아 화제가 된 ‘기생충’역시 마찬가지다. 카메라 동선도 이런 뛰어다니는 인물들의 동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관찰자 시점에서 크게 바라보고, 직접 달리는 주체가 돼 뒷모습이나 앞모습을 담아 냈다.
‘뛴다’라는 것은 선형적인 이동을 말하면서도 어떤 목표점을 향해 이동하는 동선이기도 하다. 뜀박질을 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풍부하지 못하고 양옆의 모습들을 흘려버린다. 달리는 행위는 통상 하나의 행위로 이뤄지며, 다른 행동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뛰고, 뛰고, 뛰는 영화가 대부분인 봉준호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대표적인 행위다.
그런데 유달리 ‘괴물’은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해서 선의 동적 동선을 자주 표현한다. 이 영화의 동선 구성은 공간적 리듬감을 보여준다. 한강변에서 괴물에 쫓기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거대한 트레일러 사이로 지나가도록 만든다. 양 옆 트레일러 사이는 제한된 복도 공간이 되고, 인물은 달리 선택할 길이 없어 앞이나 뒤로 갈 수밖에 없다. 힘겹게 사이 공간을 빠져 나오면 이번에는 사방이 무방비로 노출된 고수부지가 나온다. 괴물이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는 동선 역시 다양한 공간의 크기 변화로 인해 마치 음악을 듣는 듯 공간의 운율을 보는 것만 같다.
화면 가득히 가득 채운 공간은 다양한 리듬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카메라의 수평적 이동과 공간의 깊이감을 보여줬다가, 다시 원근법의 중심에서 화면을 전개해 공간적 깊이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공간 자체로 멈췄다가 다시 이동하는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몰입하면서 괴물을 관조하다가 괴물을 쫒는, 그러한 심리적 감정에 이입되게 된다.
동선에 리듬감을 부여함으로써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연출은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SF 스릴러 영화 ‘에이리언3’에서도 볼 수 있다. ‘에이리언3’의 배경은 오로지 복도로만 돼있어서 긴장감의 강도가 훨씬 크지만 동선의 리듬감을 활용한 측면만큼은 ‘괴물’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괴물’이 만들어낸 동선의 리듬감은 규칙성 속에 변수들을 삽입해서 훨씬 풍성하다는 것이다. ‘괴물’이 마치 바로크 음악 사이에 록큰롤이 섞여 있는 거라면 ‘에이리언3’는 미니멀 음악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압박감 같은 느낌이다.
‘에이리언3’은 식민지 해양 우주선에 발생한 화재로 감옥 행성에 착륙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괴물’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괴물이 탄생했다면, 에이리언 이면에는 기업이 외계 생명체를 군사용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몰래 지구로 가져간다는 설정이 숨어 있다. 영화 ‘에이리언3’에서 주인공 리플 리에 대한 설정은 미스터리다. 완벽한 인간인지 아니면 사이보그인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모호하게 전개된다. 철학적 대상으로 설정된 것 같기도 한데, 사이보그는 기업에 의한 일종의 테스터(Tester)로 만들어진 제품이기도 하다. 다만 리플 리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인간과 사이보그 그 중간쯤으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영화를 비평하는 글이 아니라 건축적 코드를 읽고 설명하는 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영화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이야기하진 않겠다.
‘에이리언3’에서 공간적으로 주목할 것은 선택지가 없는 미로를 따라가는 장면들이다. 선형의 동선 공간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크게 다가오면서 에이리언과 등장인물들의 추격신이 본격적으로 연출된다. 공간은 튜브로 구성될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도 크고 작은 열린 공간들이 등장한다. ‘에이리언3’의 흥미로운 지점은 선형 공간에서는 아무런 갈등도 없고, 긴장의 순간은 있지만 쉽게 결정하고 이동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자료=20세기 폭스

오히려 여러 선택지가 있는 홀이나 광장에서는 혼란스럽고, 선택의 순간을 강요받는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까? 그렇지 않음을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마치 운율의 숨표 부분처럼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은 열린 공간에서 드러난다. 공간 하나로 심리적인 다양함을 연출한 감독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거의 십 수 년이 흘러 ‘괴물’을 다시 보는 내내 ‘에이리언3’가 중첩된 것은 이런 배경적 공간이 닮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결과로 만들어진 괴물에 도리어 쫓기게 되는 이야기 구조 역시 두 영화를 비교하며 닮은꼴을 찾게 만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이나 불순한 의도로 채집해온 에이리언이나 모두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이며 공포다. 하지만 이들 존재는 인간이 동기가 된 것들이다. 자승자박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영화에서 건축적 배경과 이야기 구조, 그리고 공간을 찾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걸려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3월, 코로나19라는 느닷없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2020년이다. 두 영화로 인해 여러 생각들이 스쳐간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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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터 애니메이션, 게임까지…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가상세계’ 속 건축

From movies to animation and games…
Architecture in a ‘Virtual World’ shining in various colors

영화와 애니메이션 속 건축은 현실 표현이자 창의적 가공 통한 결정적 모티브 역할
설계 시 사용되는 3D모델링 게임제작서 사용, 건축전공자와 게임디자이너의 협업 ‘시너지 기대’

건축은 우리 실제 삶 가운데 존재하지만, 영화·게임 등의 가상세계 속 세상에서도 배경이 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드러냅니다. 가상세계 속이지만 그럼에도 익숙함에 지나칠 수 있었던 건축물을 학생기자의 눈에서 해석해 보려 합니다. 영화와 게임, 애니메이션의 공간 속에서 어떤 건축이 존재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 속 건축
‘시월애’에서의 갯벌 속 주택 ‘일 마레’…시간과 공간을 규명하기에 애매한 공간
‘푸른소금’ 속 유리마감재, 보이면서도 막혀있는 공간 표현

영화는 사전적 의미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해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이다. 한편으로 건축과 가장 비슷한 문화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이유는 ‘Sequence’라는 영어 단어 의미 때문이다. Sequence는 건축에서 ‘공간이 보여주는 연속적인 장면’으로, 영화에서는 ‘연속성 있는 하나의 주제정경으로 연결되는 장면’이라 불린다. 이처럼 비슷한 두 가지 문화지만 서로 특이한 점이 존재하고, 특히 영화에 건축이 없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영화에서는 수많은 건물들이 나온다. 또 영화는 모형이나 컴퓨터그래픽, 세트장, 가건물, 실제건물 등을 이용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영화 세상 속 건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속을 꾸미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감독과 작가, 배우와 다양한 직원들이 공존해 영화를 제작한다. 그 중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이너’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보겠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영화의 전체적인 외양과 시각을 책임진다.
이현승 감독의 영화 <시월애>의 주제는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다. 감독은 원하는 공간을 찾기 위해 직접 프로덕션에 참여했지만, 감독이 원하는 공간은 존재 하지 않아 직접 설계와 시공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인천 강화군 석모도 갯벌에 주택 ‘일 마레’를 건축하게 된다. 이와 관련 한 평론가는 갯벌을 ‘시간과 공간을 규명하기에 상당히 애매한 공간’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현승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푸른소금>에서는 주인공 윤두현(송강호)이 은신처로 여의도의 36층짜리 오피스텔 ‘S-Trenue’를 선택한다. 여의도라는 공간이 지닌 특성, 바로 여의도가 도심 속의 섬이라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도시성을 지니고 있고, 누구라도 숨어들 수 있는 익명성 또한 갖고 있다. 물론 고층타워도 많다. 하지만 관객들이 보면 어디에 있는 건물인지 바로 인지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유리로 마감된 건물을 구상하게 된 거다. 유리는 공간을 나눌 수 있지만 시각적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보이면서도 막혀있는 공간을 표현한 것이다. 이현승 감독은 이 같은 영화 공간을 위한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영화 <푸른소금>에서 여의도라는 장소는 도시성, 익명성, 위장성을 갖고 있으면서, 독특한 외관의 ‘S-Trenue’는 이 감독의 의도대로 랜드마크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는 영화 속뿐만이 아닌 현실에서 또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건축 비전문가이지만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감독의 장소성과 건축물에 대한 해석이 건축사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6년 민병호 교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장소를 ‘삶의 정서와 주요 일상행동과 존재의 가치와 생활의 의미가 농축된 공간’으로 정의했다. 이를 달리 나타내면 [장소 = (시공간, 자원)+(동기, 우선행동)+(의미, 상징)]으로 표현이 가능하고, 이 개념을 <시월애> 갯벌의 ‘시공을 초월한 정서’와 ‘비현실의 상징’, 그리고 <푸른소금>에서의 ‘익명성의 의미’ 등과 비교해보았을 때 ‘장소’에 대한 개념은 상호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이라는 분야는 인간사회 모든 것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전자의 경우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제 또는 그래픽 건물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사용용도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중 자료=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자료=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건축
로보트 태권V, 갈라지는 국회의사당 돔은 일상 속 새로운 상상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채로운 건축물…시·공간적 배경과 철학적 의미 담아

지금 우리의 현실 속 건축물부터 상상 속의 건축물까지, 이 모든 것에 있어 표현하고자 하는 그대로를 펼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 또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짱구는 못말려’를 통해 일본의 일상 주거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로보트 태권V’를 통해 국회의사당 돔이 갈라지며 나타나는 영웅을 통해 일상 속의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그 나라의 일상부터 일상 속 변형,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까지. 애니메이션 속에 나타나는 건축 상상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실제 자연속의 색감을 이용해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다채로운 건축물과 배경을 만날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는 일본의 양식과 섞인 중세적 요소들이 나타나 새로운 시공간들과 놀랍도록 디테일한 현실 속 요소들이 더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거장’이나 ‘예술’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내·외면에 대한 고찰과 주변에 대한 성숙한 관찰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작업방식이다. 지브리의 작업방식은 그들의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다. 2013년 11월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을 통해 소개된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내면으로 바라본 세계, 그 시선에서 마음이 동하는 것에 대한 기억은 오래 지속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쉽게 잊혀집니다”고 밝히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기억 속 풍경들을 잘라내 그림을 그리면, 스스로 어디선가 본 기억의 세계가 그림 속에 펼쳐집니다”라고 말했다. 손쉽고, 그래서 널리 사용되는 3D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뒤로 하고, 손수 그림을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의 방식을 고수한 이유를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작품 스토리에 관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대한 고민 뒤에 그의 기억 속, 우리의 일상 속 세세한 실제 디테일들이 더해진 것들은 수작업을 통해 여러 개의 선으로 나타난다. 올곧은 선이 아닌 울렁이는 선이 그려질 지라도, 그 선은 결국 역동감으로 표현된다. 혼자서는 절대 진행할 수 없는 작업과정들은 스튜디오 모두가 함께 완성해내게 되고, 그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틀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순도 높은 작품 하나하나는 결국 그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나타내기도, 또 그들의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임 속 건축
건축에서 활용되는 3D 모델링, 게임 속 수준 높은 배경 등 공간구현
게임런처의 건축 활용 토대로 건축사들의 게임 개발 참여 기대

게임 속에서 배경은 맵구조(Map Architecture)와 레벨 설계(Level Design)에 따라 게임의 세계관이 설정되고 난이도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배경 디자인이 게임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배경에는 자연적인 요소와 인공적인 요소가 있는데 건물은 둘 중 인공적인 요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속의 건물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게임에서 실존하는 건물과 유사하게 생긴 경우도 있고, 게임의 시대적·국가적 배경에 따라 설정의 배경이 된 곳의 건물 양식이나 문화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획단계에서의 설정을 바탕으로 아예 새로운 건축물을 디자인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3D 게임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캐릭터뿐만 아니라 건물과 자연배경과 같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도 입체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컴퓨터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건축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3D 모델링의 활용이 게임의 배경 디자인에 적극 활용되고, 이를 통해 게임 속 건물의 퀄리티를 더욱 상승 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은 기획, 원화(컨셉아트), 그래픽, 프로그래밍, 테스팅(QA)의 제작 과정을 거쳐 출시가 되고, 이후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중 건축사의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과정은 원화 단계와 그래픽 단계다. 게임의 원화 즉, 컨셉 아트는 크게 캐릭터와 배경으로 구분된다. 게임의 배경은 게임의 장르와 기획한 시나리오의 시대적, 기후적, 지형적 배경 설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게임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게임이 대부분 3D 게임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게임에 등장하는 건물의 외부적인 요소 외에도 건물의 내부까지도 구체적으로 설계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원화 단계에서부터 건물의 내부 도면까지도 상세하게 구상되는 경우가 많고 게임의 전체적인 시대관과 세계관에 따라 시대별, 나라별 건축물의 자료를 참고해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게임 디자이너와 건축 전공자의 협업이 이루어졌을 때 더욱 완성도 있고 구체적인 원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원화의 다음 단계인 그래픽 단계는 원화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3D로 구현하는 단계다. 이 단계 역시 캐릭터와 배경으로 크게 나뉘게 되고, 자세한 과정은 3D 모델링, 모델에 색과 조명 등의 텍스쳐를 입히는 맵핑, 게임상에 모델을 배치하는 월드빌딩으로 나뉜다.
특히 게임과 건축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유사하기 때문에 건축분야에서 사용하는 툴을 게임분야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일례로 게임 엔진에 중점을 두고 있던 유니티 엔진은 점차 3D 애니메이션과 건축, TA(Technical Art)영역까지 사용가능 범위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게임런처들이 건축에 활용되는 현실을 바꿔 생각하면 건축사들의 게임 개발 과정에서 활발한 참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시티 컨셉아트

오버워치 부산맵

GTA 속 그리니치 천문대

배틀그라운드 배경

 

인터뷰
“기존의 건축을 이해해야 새로운 건축을 만들 수 있다”
송영민 마인크래프트 건축팀 ‘곰건친’ 유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게임 등 가상세계 속의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2011년 정식 발매된 MOJANG AB의 샌드박스 형식의 비디오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의 건축팀 ‘곰건친’의 송영민 유저의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깊게 가상 세계 속 건축에 대해 들여다보려 한다. 마인크래프트는 모든 것이 네모난 블록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생존과 건축을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게임으로 유명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온라인에서 ‘자베 (자이언트베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송영민입니다. 가천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중인 학생이면서, 마인크래프트 건축팀이자 아트팀인 곰건친(Project.G)팀을 창설해 7년째 40여명의 우수하고 열정적인 팀원들과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 고흐의 세 작품을 3차원으로 재구성한 ‘프로젝트 고흐’라는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1백만 명이 넘는 분들께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곰건친팀 외에 개인적으로 건축, 디자인,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재단법인 여시재 주관 미래도시설계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지인들과 함께 만든 ‘Between Two Worlds’ 라는 독립영화에서 제작총괄과 예술 감독, 기획, 조감독, 캐스팅 등을 담당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8개의 노미네이션과 9개의 타이틀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Q.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건축을 시작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건축과 콘텐츠 제작에 흥미를 붙인 덕에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는데, 당시 도화지에 2D로만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어서 3D를 통해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하며 다양한 도시와 건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양식과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고, 마인크래프트는 이를 표현하는 데 최고의 툴이 되었습니다.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에 관심이 생기며 건축과 관련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건물과 도시는 시대와 공간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기에 세계사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대입 진로를 결정할 때 건축과를 가고 싶은 생각도 많았지만, 앞으로의 건축에서 보다 예술적인 가치를 그려내고 싶어서 시각디자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설계분야에서는 문외한이기도 하고요. 제게 건축은 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과 어우러짐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르라 생각합니다.

 

Q. 개인적으로 작품활동을 하셔도 가능하셨을 텐데, ‘곰건친’ 팀을 창설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저 혼자 하지 못하는 스케일이 큰 규모의 작품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한 3D 아트의 아카데미를 열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팀은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과 그 어우러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는 ‘타임랩스’ 영상을 찍습니다. GBF Studio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는 건축 타임랩스 영상들은 최소 3개월에서 1년의 시간동안 30명의 인원과 협업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프로젝트들입니다. 이 영상 하나에는 건축과 디자인, 촬영, 편집, 음악, 서버관리, 프로그래밍적인 부분 등 굉장히 다양한 기술들과 역할이 필요합니다. 영화적 역할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만약에 팀이 없었다면 전 절대로 이런 큰 규모의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팀을 운영하며 크게 느꼈던 것은 어떤 일을 같이 함에 있어 사람들은 그룹 안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생각해요. 그 배움을 통해 개개인이 성장하는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원들은 대부분 순수하게 작품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교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배우는 것이 참 많았고요.

 

Q. 팀 내에서 각자의 역할은?
팀 안에는 다양한 부서가 존재합니다. ▲건축이나 디자인 등의 아트 ▲촬영을 하는 프로덕션 부서 ▲게임 내에서 여러 사람을 수용하고 타임랩스에 최적화된 서버를 관리하는 프로그래밍 기술 부서 ▲새로운 인력을 뽑고, 팀 내의 구성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인사부서 ▲팀의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마케팅 부서 등에 속한 40명의 팀원들이 협업하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떠나서 중세시대

지구를 떠나서 고대시대

 

Q.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이 있다면?
건축물에 서사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건축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더해 입체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죠. 제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면서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 두 개가 있습니다. 둘 다 1년 이상의 작업시간을 소요해 만들어졌는데요, 하나는 ‘지구를 떠나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흐 프로젝트’입니다. 지구를 떠나서는 지구의 환경 문제로 인류가 새로운 행성에서 정착해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문명이 이뤄지는 과정이 한 공간 안에서 드러나는데요, 건축 양식이 바뀌어 가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고흐 프로젝트는 고흐의 명화를 저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고흐 작품의 추상적인 표현과 느낌을 3D 조형적으로 살린 영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유튜브 110만 조회수를 달성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 작품이기도 하답니다.

자베르트 의사당 2014

 

Q. 마인크래프트 속 건물을 기획 하실 때 어디서 영감을 얻게 되나요?
주로 영화와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고, 거기에 현 시대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더해져 작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정말 재밌는 소재가 많이 나오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지구를 떠나서’도 외계행성에서의 정착이라는 소재는 크리스토프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외에도 스탠리 큐브릭,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의 예술의 재창조에 대한 철학에서도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본 인상적인 건축물과 분위기 등을 마인크래프트로 저만의 느낌과 전하고 싶은 스토리에 맞춰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행으로 인한 작품 중 대표적인 사례로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얻은 우리 팀의 첫 작품 ‘노스트라담 대성당’과 제 개인 작품 ‘자베르트 대성당’ 등이 있습니다.

자베르트 대성당 2013

노스트라담 대성당 2013

 

Q. 실재하는 건물을 보고 설계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 중 더 어려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실제로 있는 건물을 참고 삼아 설계하는 것이 쉽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영감을 얻은 건축물의 요소와 양식을 저만의 방식으로 나타내곤 하는데, 아마 제가 그 건축물을 접하지 못했거나 양식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작업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룰을 알아야 룰을 깬다’라는 말에 동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존 건축을 이해해야 새로운 건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창조가 아니라 진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건축물은 역사와 인류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인크래프트 사진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발표한 미래도시 자료

Q. 마인크래프트 건축의 발전 가능성과 세계적인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마인크래프트 건축 작품들은 이미 글로벌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입니다. 제가 아는 동료 건축사 분들도 건축물들을 포럼이나, 플래닛 마인크래프트 같은 해외 마인크래프트 사이트에 올려서 큰 인기를 얻거나, 마인크래프트 공식 사이트에 소개되거나 인터뷰 하는 등 국내 작품이 해외에서 많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깨고 전 세계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작품을 알릴수록 대한민국 마인크래프트 건축의 위치는 점점 더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Q. 고흐를 좋아하시죠? 고흐에 대한 설명과 ‘별이 빛나는 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등 이런 인상주의적, 유화적 작품을 표현하시는 방법이나 구현하실 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화가가 한정된 장소에서 화지와 붓으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 듯, 우리 마인크래프트 건축 유저들은 방안에 컴퓨터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작품을 만듭니다. ‘작은 공간에서 큰 것을 만든다’ 라는 역설적인 주제를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작은 공간’과 ‘방’에서 제가 떠오른 작품은 ‘고흐의 방’이었습니다.
또한 앞서 소개해 주신대로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특유의 추상 표현과 색감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 분위기를 무척 사랑합니다. 선이 뭉치는 기법과 긁어내는 듯한 붓터치를 표현하기 위해 마인크래프트로 작은 곡선을 만들고 그 곡선을 상하 좌우 앞뒤로 쌓아가며 고흐의 붓터치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구상적인 건물이나 조형물들은 심플하고 규칙적이게 표현해서 추상표현과 유화적인 느낌이 더 살아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마인크래프트에서 처음 시도해본 것이기 때문에 저와 팀원들의 연구와 노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Q. 이번에 은퇴작을 발표했습니다. 계획한 페이퍼 플랜이 있는데 못한 작품이 있을까요?
제가 사실 고흐 프로젝트와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었는데요. ‘외계 문명’이라는 작품입니다. 외계에서는 중력과 건물의 쓰임새, 디자인과 짓는 방식 등이 전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계인의 마을을 여태까지 본 적 없으면서도 매력적이게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전쟁의 위험성’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서 스토리가 있는 건축 영상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고흐 프로젝트가 팀원들과의 회의에 선택되어 고흐 프로젝트를 만들게 되면서 페이퍼 플랜으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군 전역 후에 기회가 생긴다면 이 외계 문명이라는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마인크래프트 건축 설계 중 실제로 설계를 요청한 경우가 있거나, 작품과 같은 현실설계를 동경한 경우가 있다면?
제가 2018년도에 진행한 미래도시 공모전 작품 중에 기린의 모양을 한 빌딩을 디자인 했었는데요. 교수님과 건축 전공을 하는 지인들이 유독 그 건물에 투영된 아이디어와 디자인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도 이게 실제로 만들어지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Q. 건축사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건축사란 공학과 예술을 겸비한 정말 멋진 직업인 것 같습니다. 평소 우리나라의 스카이라인이 경제논리에 의해 회색 아파트화 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앞으로 시대가 변한 만큼 건축사분들에 의해 도시가 새롭게 바뀌어가길 바랍니다.
온라인 작품은 어찌 보면 달나라 토끼 같은 꿈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인크래프트에는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건축 작품들이 정말 많습니다. 중력을 초월하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상상력을 지닌 건물들입니다. 한 번쯤 유튜브나 구글, 네이버 검색을 통해 작품을 감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 강수빈(Kang, Subin _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김진완(Kim, Jinwan _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박세홍(Park, Sehong _ 강원대학교 건축공학과), 지하늘(Ji, Haneul _ 가톨릭관동대학교-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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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된 정보

Shaped information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 또는 그래프 같은 인포그래픽이다. 이 인포그래픽은 구구절절한 여러 말 필요 없이 간략한 그림으로 확산이 많이 된 지역, 그리고 확산의 양적 크기를 한 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정보 전달 기술이다. 인포그래픽은 대단히 현대적인 그림 언어 체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역사는 매우 길어서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를 연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데카르트가 가로 세로의 선으로 좌표를 만들면서 인포그래픽이 탄생했다.

세계 인구 증가 그래프, 디자인: 데이터로본우리세계(OurWorldInData)

수평선의 x축과 수직선의 y축을 가로지르게 한 이 좌표는 정보를 대단히 입체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한 범주의 정보 변화를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데이터로본우리세계(OurWorldInData)가 만든, 1750년부터 2100년 사이의 인구 변화를 표현한 그래프를 보자. 1800년대까지만 해도 전세계 인구는 10억 명이 되지 않았다. 20세기 진입했을 때까지도 16억 명 정도다. 20세기부터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인구 폭발 현상이 일어나 100년 만에 60억 명에 이른다. 이때 그 양의 변화는 가파른 곡선으로 표현된다. 또한 인구증가율도 함께 보여주는데, 1960-70년대에 정점을 이룬 뒤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구증가율이 떨어지면서 2060년대부터 인구 증가 곡선(실제가 아닌 예상)은 완만해지고 있다.

아라비아 숫자로 그 변화를 읽는 것보다 이처럼 시각적인 선의 형태로 변화를 볼 때 정보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리적인 사물처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숫자는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추상적인 기호인 반면, 그래프는 형태를 갖춤으로써 기호라기보다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인포그래프도 기호이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어떤 지역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빠르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효과로 인해 인포그래픽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잡하고 추상적인 정보를 마치 그 대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메리카 지도, 디자인: 디에고 구티에레즈, 1562년

남아메리카 지도 부분의 확대 이미지

2월 27일자 COVID 19 확진자 현황, 디자인: 스타티스타(statista)

3월 16일자 COVID 19 확진자 현황, 디자인: 스타티스타(statista)

COVID 19 확진자 현황, 디자인: 존스홉킨스대학

세상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인포그래픽의 몇 가지 특성에 따른다. 첫 번째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추상적인 정보에 형태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환원주의다. 즉 현실을 모두 다 담은 것이 아니라 축약해서, 편집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보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압축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지도는 1대1 지도라는 말이 있다. 그런 지도는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다. 다시 말해 정보는 가려서 선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정보를 만든 이의 의도가 들어간다.

1562년, 스페인의 지도 제작자인 디에고 구티에레즈가 그린 남아메리카 지도를 보자. 이 지도를 확대해보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원주민들의 식인 행위가 일부 있었지만, 그것은 유럽인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이 지도를 본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은 곧 식인종이라는 등식을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시킬 것이다. 그것은 지도 제작자의 의도일 뿐이다. 인포그래픽은 이처럼 정보를 편집함으로써 어떤 목적에 부응한다.

세 번째는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정보란 맥락 속에 있을 때, 서로 비교할 대상이 있을 때 그 성질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의 감염 확진자 수가 1천 명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숫자가 많은가? 적은가? 그것은 다른 나라 확진자 수와 비교했을 때 비로소 그 양의 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이때 주로 세계 지도와 색채를 이용하게 된다. 스타티스타(statista)가 디자인한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지도를 보자. 이 지도에서 색채는 양을 표현한다. 1백50명에서 1천 명 사이의 확진자 국가는 주황색으로 표현된다. 1만 명 이상이면 가장 짙은 색이 된다. 이렇게 색상으로 그 수의 성질을 가늠할 수 있다. 2월 27일 집계(그림 4)에서는 중국을 제외하면 전세계가 전반적으로 엷은 색이지만, 3월 16일 집계(그림 5)에서는 더 많은 지역이 짙게 변했다. 이로써 확산 속도나 확산 지역의 확대와 같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보가 연관되지 않으면 막연하다. 인포그래픽은 독립된 정보들을 연결시켜 관계를 보여주고, 정보에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포그래픽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와 관계 없이 이 지도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형성된다. 왜냐하면 색채와 국가가 연결됨으로써 그 국가에 어떤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짙은 색은 주목도를 높인다. 이 지도를 보면 누구나 중국에 집중하게 된다. 이 지도에서 확진자 수가 많다는 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지도는 특정 국가에 대한 원망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 마치 특정 신문이 ‘코로나19 바이러스’라고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한 폐렴’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반면에 존스홉킨스대학이 만든 인포그래픽은 국가를 표시하긴 하지만 국가별로 별도의 색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확진자가 많은 지역을 붉은색 원의 크기로 표현했다. 이런 인포그래픽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덜 생길 것이다. 또한 바이러스 유행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인포그래픽은 그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과 슬픔,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포그래픽은 추상적인 정보에 형태를 부여해 조직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조직화는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