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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 건축사, 거시적 건축사

Micro Architects, Macro Architects

건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건축사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시각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니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도 전부 그럴 것이라고 확언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건축계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편집국장으로 지낸 2년 동안 내가 오래전부터 느꼈던 또는 개선되지 않은 문제들을 사설, 정책 제안 기사, 영화 이야기 등을 통해 누차 발언해왔다. 다른 건축사들도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다. 그중에는 흥미롭고 긍정적인 글들도 많았지만 모순된 내용도 상당했다. 개인적인 상황을 시스템으로 혼동하는 내용 또한 많았다.
그중 하나가 건축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그 전제는 건축사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인데, 현실에서는 건축사뿐만 아니라 건축사를 키워내는 학계, 건축사 산업과 관련된 집단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대한건축사협회와 몇몇 인사들만 열심히 말할 뿐이고,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크진 않다. 건축사의 수와 정치적 권익 향상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의무가입 역시 마찬가지다. 의무가입의 기본 목표와 가치는 ‘건축사의 윤리 강화’를 통해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을 확립하는 데 있다. 시장 질서 교란을 예방하고 안전 관리가 강화되는 여러 상황들은 이러한 윤리 강화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가입을 권력 게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익을 취할지 갈등하고 고민하는 현상도 심심찮게 관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사 설계업 허용을 추진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획 또한 놀랍다. 건설과 건축을 동일 산업으로 바라보고 상호 간의 차이를 무시한 채 독점과 규제로만 이해하고 있다. 의사의 진료 행위가 독점일까? 판사의 판결 행위가 독점일까? 독점이 아니라 전문가 본연의 업무다. 건설과 건축의 규제 칸막이를 운운하는 사고의 기저엔 건축사 업무가 전문가 영역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단 뜻이다.
그렇다면 굳이 5년제의 건축대학을 만들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국가건축정책위원회라는 조직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왜 만든 걸까? ‘설계의도 구현’이나 ‘감리 강화’ 같은 법·제도가 존재한단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 법·제도들은 건설과 건축이 다름을 증명하는 동시에 각자 독립적 역할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이들은 건축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정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건축사보와 건축사들의 태도다. 건설사 설계업 허용 이야기가 나오니 고용과 경제적 보장을 근거로 삼아 긍정적 태도를 보인다.
지면관계 상 관련 논의를 계속 이어가진 않겠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강조하고 싶다. 그런 뒤에 함께 소리치고, 함께 연대하자. 우리 건축사들의 권리와 권익은 다른 누군가가 보장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해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결실은 우리에겐 권리와 영역이, 건축대학을 다니는 미래의 건축사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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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시설계와 건축사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언제부터인가 건축사의 업역에서 도시 계획, 도시 설계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업사회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도시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도전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건축사들이다. 산업구조가 팽창하고 제조업 중심의 사회가 기능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는 새로운 도시 구조가 필요했다. 이른바 조닝 개념이 나오고, 기능을 중심으로 분화되었다. 제조업의 분업화처럼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이 분리된 것이다. ‘아홉 시에서 다섯 시까지’라는 1일 8시간 근로시간의 획일적 적용은 매우 생산적이고 효율적이었다. 규모 또한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레 도시 설계와 건축 또한 분리되었다.
문제는 산업구조가 본격화되면서 도시 문제도 함께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앨빈 토플러가 지적한 제3의 물결을 넘어서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한 상황에서, 더는 시간의 구분만으로 도시구조의 생산성을 올리기 힘들어졌다. 인권과 생활권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고, 개별적 시간 운용과 상호 간의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조닝의 거친 구성을 넘어서서 디테일이 필요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첨단에는 판교 디지털 밸리가 있다. 판교 디지털 밸리는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연 80조원에 이르는 직주근접 목표의 도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도시지만 그럼에도 도시의 구조는 제조업의 기능이 분화된 탓에 주말이면 공동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질적인 보행 네트워크는 전혀 구성되어 있지 않고, 자전거 이용률 또한 저조하다. 결코 21세기의 도시구조가 아니다. 건축적 섬세함이 도시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에는 건축적 섬세함이 반영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 계획과 구성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과천을 비롯한 여러 신도시들을 그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실제 이런 계획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쾌적한 도시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01 Urban Design and Architects

“지구단위계획? 재개발이나 대형 개발사업을 할 때, 용적률이나 높이를 정하는 것 아니야? 조경면적을 늘이면 용적률 완화도 좀 받고…….”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구단위계획이 도입된 2000년 즈음에 재개발(재건축)의 광풍이 불어서인지, 지구단위계획은 대형 개발사업을 하기 이전에 수립해야 하는 절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건축사가 경험하는 도시설계(urban design)의 실체가 아닐까?

누군가가 도시설계(urban design)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도시계획(urban planning)과 건축(architecture)의 경계에서 하드웨어와 휴먼웨어,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잘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설계의 결과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까지 건축사들은 도시설계 언저리에서 일해 왔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지자체와 함께 공공지침을 만드는 높이계획, 도시경관계획, 건축물가이드라인, 지구단위계획도 사무실의 중요한 일감이었고,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컨텐츠계획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배우고 경험하면서 도시설계의 실체에 여전히 접근하는 중이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공공건축가, 도시설계학회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요구되었던 도시건축을 통합적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이 입체도시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으로 3기 신도시 계획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입체도시 마스터플랜은 택지조성이나 도시개발사업에서 입체적 토지이용계획과 3차원적인 건축계획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인 미래모습을 설정하고, 또 거주자들 간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도시건축 전략을 마련하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신도시를 계획할 때 건축사는 도시계획에서 기반시설계획과 토지이용계획이 확정되면 그 위에 건축시뮬레이션으로 높이계획, 경관계획, 특화지침 등을 수립하는 부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별계획구역 마스터플랜을 통해서 입체적인 지침이 만들어져도, 확정된 토지이용계획의 개별필지 위에서 공개공지, 건축물의 형태와 외관·재료 등을 컨트롤하여 독특한 도시분위기를 만들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건축사가 토지이용계획을 도시계획가처럼 계획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축사의 시선으로 자족용지와 주거용지의 관계, 공원과 필지의 관계, 역세권과 공원의 관계, 상업시설과 차량, 보행이 뒤섞여 움직이기 힘든 현재 도시의 문제를 입체적 공간으로 다뤄 토지이용계획 단계에 함께 시선을 보태면 매력적인 도시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특히, 매력적인 도시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건물, 도로, 하수도 같은 하드웨어인프라보다는 소프트인프라다. 소프트인프라는 산업생태계를 바탕으로 모인 새로운 도시구성원들이 그들의 지적에너지를 생활 속에서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매개프로그램과 매개환경이다.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이용자의 니즈를 공간적으로 해결해내는 건축사는 이런 매개 프로그램과 매개 환경을 만드는 일에 능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경험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재생이 필요한 도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흩어지며, 빈 집, 빈 상점가로 지역이 황폐해지는 과정에 놓여 있다.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통영폐조선소 마스터플랜, 영도 경제기반형 도시재생계획 등 산업쇠퇴지역의 산업생태계전략을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수립하는 경험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있는 도시를 위한 중요한 과제가 창의적 도시 분위기에 있음을 알았다. 창의적인 도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관 산업들이 산업생태계로 클러스터링하고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서로 자극받고 수렴, 발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제3의 공간이 곳곳에 배치된 곳에서 창의적인 도시 분위기도 생겨날 것이다.

보행중심의 수변생활경관 창출

3기 신도시의 경우, 도시 자족성 기능과 S-BRT라는 신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계획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3기 신도시 중 인천계양지구 공모를 참여하게 된 이유는 김해공항과 인접한 에코델타시티의 특별계획구역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경험이 있었고, 김포공항과 인접한 계양지구의 비행고도로 인한 높이규제, 공항경제권이 갖는 잠재력에 대해 고민한 것을 좀 더 구체화 시켜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공모진행 과정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가까운 미래도시는 어떠해야 하나? 여기에 살아갈 사람들은 누구인가?’였다. 미래의 도시는 4인 가구 시스템이 유효하지 않고, 그렇다면 초등학교 중심의 근린주구론도 유효하지 않다. 역세권도 중요하지만, 공원권, 여가문화권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살아갈 도시가 필요하다. 인도어에서의 편안함과 아웃도어에서의 개방감이 공존하는 도시, 걷기를 비롯해 퍼스널 모빌리티, 대중교통, 자동차 등 모든 이동시스템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업가로는 자동차와 사람이 뒤엉켜 작게 파편화되어 있는데, 과연 미래의 상업공간도 이렇게 혼잡해야만 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보행중심의 지역사회가 만들어지는 400미터×400미터의 새로운 대지(HYPER TERRA : 입체적으로 특화된 인공의 대지)를 만들었다. 하이퍼테라는 어린아이도 특별한 관심 없이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면서 대형 광장이자, 시민들이 살고 놀고 일하며 교류하고 소통하는 중심공간이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것이 변해가는 불확실성 위에 놓여 있다. 과거의 변화와 개혁은 연속선에서 일어나고 있어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4차 산업혁명은 불연속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인천계양지구가 공항경제권이라는 글로벌교통의 거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전 세계와 전국의 문화·정보가 머물고 교차하고 공존하는 ‘두뇌중심지(지식정보서비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극단의 시대에 균형점을 잡을 수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 이미지가 필요했다. 57.86미터라는 높이규제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랜드마크는 곡선형의 S-BRT라인으로, 건축물의 축을 틀면서 만들었다.
도시설계는 행정과 전문가의 용어가 아니다. 지역맞춤형의 공간구축을 위한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약속이기에 시민이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제도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풍경은 우리가 합의하고 만들어 낸 약속의 결과물이다. 그 풍경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규칙을 만들고, 실천하고, 좋다거나 싫다거나 이야기해야 한다. 도시개발에서 공간관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3기 신도시의 도시설계(입체도시 마스터플랜)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간관리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LH의 입체도시 마스터플랜과 같이 공공이 발주하거나 공모하는 도시설계업무에 대해서 건축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참가자격에 대한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건축사들도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경험한다면 우리도 사람 중심의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 한영숙 Han, Youngsuk (주)싸이트플래닝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한영숙 건축사 · (주)싸이트플래닝 건축사사무소

멋진 도시에 살고 싶은 대한민국 건축사로 경성대학교에서 건축공학, 디자인학,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2006년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이후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도시설계, 도시재생, 스마트도시 등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행복한 동네살이를 위한 33가지 이야기(국토연구원)’, ‘감천문화마을, 풍경이 된 공동체’, ‘보수동의 공간과 시간’ 등이 있다. 부산광역시 공공건축가, 공원위원회 위원, 해양수산부 중앙항만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uhan@siteplan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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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부산항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소묘

건축담론

편집국장 註

언제부터인가 건축사의 업역에서 도시 계획, 도시 설계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업사회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도시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도전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건축사들이다. 산업구조가 팽창하고 제조업 중심의 사회가 기능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는 새로운 도시 구조가 필요했다. 이른바 조닝 개념이 나오고, 기능을 중심으로 분화되었다. 제조업의 분업화처럼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이 분리된 것이다. ‘아홉 시에서 다섯 시까지’라는 1일 8시간 근로시간의 획일적 적용은 매우 생산적이고 효율적이었다. 규모 또한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레 도시 설계와 건축 또한 분리되었다.
문제는 산업구조가 본격화되면서 도시 문제도 함께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앨빈 토플러가 지적한 제3의 물결을 넘어서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한 상황에서, 더는 시간의 구분만으로 도시구조의 생산성을 올리기 힘들어졌다. 인권과 생활권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고, 개별적 시간 운용과 상호 간의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조닝의 거친 구성을 넘어서서 디테일이 필요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첨단에는 판교 디지털 밸리가 있다. 판교 디지털 밸리는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연 80조원에 이르는 직주근접 목표의 도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도시지만 그럼에도 도시의 구조는 제조업의 기능이 분화된 탓에 주말이면 공동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질적인 보행 네트워크는 전혀 구성되어 있지 않고, 자전거 이용률 또한 저조하다. 결코 21세기의 도시구조가 아니다. 건축적 섬세함이 도시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에는 건축적 섬세함이 반영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 계획과 구성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과천을 비롯한 여러 신도시들을 그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실제 이런 계획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쾌적한 도시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02 Busan North Port Phase 2 Master Plan Drawing

최근 ‘도시건축 입체화 계획’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설계공모가 여럿 선보이고 있다. 사실 도시나 건축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 환경을 구축하는 업역인데, ‘굳이 ‘입체화’라는 표현을 덧붙이는 이유는 뭘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도시가 생성되어 온 과정과 무엇보다 그 결과물에 대한 성찰의 반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은 전체 3단계로 계획되어, 현재 시행 중인 1단계 사업이 2022년 완성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2단계 사업지는 부산역을 기점으로 길게 펼쳐진 조차장과 부산진역 CY, 자성대 부두 및 영도 봉래 물양장과 창고군 영역으로, 2019년 ‘부산항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아이디어 국제공모’를 통해 발주되었다. 국제공모 당선자(상지 컨소시엄)의 자격으로 당선 이후 약 6개월에 거쳐 다섯 차례의 추진협의회 보고 및 토론, 그리고 추진협의회에서 도시 및 건축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와 열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마스터플랜 당선작을 발전시키며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다.

만족감. 그것은 자만이 아닌, 과정의 충실함과 이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열정에서 비롯된 뿌듯함일 것이다.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 추진협의회, 건일엔지니어링, 그리고 상지컨소시엄에 함께한 한국도시설계학회, 앙코르 건축사사무소, 그리고 일본의 니켄 세케이까지 수십 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산의 100년 후 미래를 그려가며 보낸 6개월의 시간은 그러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과 열정을 다하여 토론하고 고심했던 매 순간들은 축제와도 같았다.

100년 후 미래를 그렸던 도시를, 아무리 열정을 다했다 한들 6개월의 시간에 ‘완성된 그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일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판을 만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 시간과 결과물에 만족할 수 있었다.

“땅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모르고 볼 때는 낯선 남의 땅이지만, 그 역사적 의미를 알고 보면 내 나라의 땅, 우리의 땅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을 위해 보낸 6개월의 시간이, 그리고 그보다 더 앞서 국제공모를 준비하며 안을 만들었던 1개월의 시간이 그야말로 턱없이 부족하다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유홍준 님의 글을 빌어 설명할 수 있다. 저 지점이 언제나 출발 지점이었다. 컨테이너와 곡물 저장창고, 크레인 등으로 가득한 항만에 도시를 만들겠다 한다. ‘이 도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자니 그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했고, 어떤 시간과 과정들을 겪으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건축사는 낯선 자의 눈으로 주어진 대지와 마주한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현재의 일면만을 보고 계획하고 디자인 할 수 있을까? 건축을 하며 지금까지 접했던 모든 프로젝트는 궁금한 것들, 모르는 것들, 알아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을 채우는 작업이 모든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부산항 북항 2단계에서 마주한 땅은, 도시를 그리는 일의 범위가 확장되었을 뿐,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궤를 같이했다.

앞으로 부산의 국제해양관광과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될 부산항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조감도

15세기 초반에 시작된 부산항의 관문 역할은 1876년 개항 이후 태평양과 유라시아의 연결점으로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산항은 매우 특별한 역사성, 장소성, 기능성을 보유한 곳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50∼60년대 국가 재건기에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2000년대에 들어 부산항에 대해 역할의 변화가 요구된 까닭은 최첨단 부산 신항이 건설되면서 물류가 대형화되고 물동량 이전에 따른 기능이 쇠퇴하는 등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부산항’은 단순 지명을 넘어 지난 143년간 부산의 역사, 근대화와 산업화의 관문으로 기억되어 온 장소이다. 따라서 부산의 역사와 항구로서의 기억을 연속시켜 그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절된 도시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여 도시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모두를 위해 개방된 도시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하며,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해양수도로서의 부산, 그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주목한 것은 ‘부산다움’을 살리는 것, 즉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 존중, 계승하겠다는 의지였다.

“건축은 땅에 기록을 남기는 일인데, 가끔 보면 어떤 이들은 땅에 낙서를 하고 있어.”
작년 초, 상지건축 창립자이신 김동회 명예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지난 6개월간 진행했던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작업의 가치는 원도심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땅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을 그 무엇 하나 가볍게 대하지 않고 보전함으로써 지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데 있다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도시건축 입체화 계획’은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도시를 한층 충실히 계획하기 위한 좋은 방법론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번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작업과 최근 발주되는 신도시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의 운영방식을 간단히 비교해보면 아직 보완해야 할 몇 가지 제도적 한계가 느껴진다.

가장 시급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스터플랜 공모 이후 당선자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지속성이다. 공모를 위한 작업으로 주어진 1∼2개월 만에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도시의 골격을 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며, 당선자(건축사 및 도시계획가)는 엔지니어 및 행정처, 그리고 지역의 기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수렴하며 당선작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흔히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정 계획가 및 소수집단의 독선과 편향된 시각으로 ‘도시’가 만들어져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항 2단계 마스터플랜 작업을 위한 지난 6개월은 북항통합개발추진단과 추진협의회의 헌신적이고 노련한 운영과 진행이 돋보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실현가능성을 고려하였으나 무엇보다도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둔 마스터플랜 안이 마련되었고, 이후 사업자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여러 실무적인 검토를 진행함에 있어, 이번에 마련된 마스터플랜은 최종 완성될 도시의 미래상을 위한 충실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지컨소시엄은 당선자의 권한으로 주어진 일단의 과업은 완수했으나, 한편으로 이후 작업에 대한 더 이상의 참여 권한은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설계공모 당선작이 기본 및 실시설계를 거치면서 최초 이미지와는 크게 다른 건물로 준공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과 비슷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초 참여한 건축사(도시계획가)가 끝까지 참여하고 완주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제도적 보완이 아쉬울 따름이다.

목표가 정해지고 이를 위해 새로운 시도가 뒤따른다면, 무엇보다 이러한 실험적 방법론의 성공을 위한 충분한 사업일정 및 예산확보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애석하게도 현실에서는 유난히 간과되는 부분이다. 흔히 말하는 기획단계의 계획과정이 얼마나 적은 예산으로 부실하게 이루어지는지 건축설계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민간개발의 경우, 대가조차 없는 검토 요청이 건축사사무소마다 적잖이 쌓여 있으며, 공공건축의 경우에도 예산확보를 위한 기획단계에서의 ‘검토’는 대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예산이 운영되는 현실이다. 역량을 갖춘 전문가를 제대로 투입하고 운영하기 위해 투입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고려해서 예산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최초 기획자가 각 단계를 이어주며 사업목표의 성공적 실현을 위한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글. 윤택용 Yoon, Taekyong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디자인전략부문 부문장

윤택용 (주)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디자인전략부문 부문장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본부 본부장,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 설계사업본부 본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부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수행프로젝트로는 시흥 미래형 첨단자동차 클러스터(V-City) 조성사업, 울산시립도서관, 부산통합청사, 행복도시컨벤션센터, 세종시 국무총리공관 등이 있다.
arch.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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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은 필수, 그러나 이 산업의 중심은 건축사…누구도 주인만큼 노력해주지 않아” _ 강부성 교수

“Collaboration is essential, but the center of this industry is architects…
No one tries as hard as the owner.”

지지부진한 인허가 과정, 부족한 업무대가와 그로 인한 저하되는 건축 퀄리티……. 많은 건축사들이 현장과는 다른 건축 법제도와 행정서비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부성 교수는 실제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건축 법제도 및 행정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올해 실시한 제39대 대한건축학회장 선거에서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제39대 대한건축학회장에 당선된 강부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과 교수(’20. 4. 24 학회장 취임)를 만나 현재 건축계가 당면한 법제도의 해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건축 산업계와 도시풍경 좌우하는 법제도
합리성 결여된 인허가 과정…민간 대행업체도 한 방법
연구 통해 법제도 개선의 ‘구체적 근거’ 마련 필요
설계비 인상하고 설계 성능 오픈해야…건축사등록제로 이력 확인도

Q 32퍼센트라는 높은 득표율로 대한건축학회장에 당선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약에 공감했다는 뜻 아닐까요. 핵심 공약이 건축 법제도 개선입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법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제도가 건축 산업계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납니다. 예전에 이집트를 여행했을 때 어느 동네를 가도 공사 중이라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두 집도 아니었고, 사람도 살고 있었죠. 알고 보니 공사 중인 집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건축 법제도를 갖췄느냐에 따라서 도시 풍경이 좌우됩니다. 건축 법제도가 조금만 잘못 돼도 도시환경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건축 산업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에는 법제도와 행정시스템이 있다고 봅니다.

Q 건축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공무원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지적도 합니다.

건축 관련 법이 수십 년 간 다섯 배 정도 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절차가 복잡해졌단 뜻이죠. 이러니 안전성에 대한 검토가 쉽지 않은 게 당연합니다. 공약을 내기 전에 건축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습니다. 그 결과 인허가 병목이 심각했습니다. 지금의 행정은 공무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인데, 그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몰려드는 인허가 요청건을 일시에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빨리 못하다보니 위원회가 생긴 건데 위원회에서는 다른 소리를 하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기회비용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건축개발 최고위과정을 듣는 사업가들로부터 기간 내에 허가가 안 나서 사업이 망가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사업의 경우, 땅값만 10조 이상인 곳을 사놓고는 인허가를 기다리느라 시공이 몇 년 늦어진 적도 있습니다. 인허가 과정이 오래 걸릴 테니 건축 관련 단체와 함께 국민 공감대를 얻는 등 방법을 찾자고 건축관계자에게 제안했지만, 비밀을 유지하며 진행해야 했던 사업이라 그렇게 하진 못했습니다. 결국 비용으로 따지면 인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어마어마한 손실을 봤습니다. 이는 건축주나 공무원이 아니라 낙후된 시스템 탓입니다. 우리나라 행정에는 공정성은 있지만, 서비스 개념이 없어요. 인허가행정의 시간예측이 안 돼서, 행정서비스의 신뢰성이 없지요. 시간 예측에 대한 신뢰성이 빵점입니다.

 

제39대 대한건축학회장으로 당선된 강부성 교수. 4월 14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실에서 월간 건축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려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학사와 동대학원 석박사를 마쳤다. 한국셉테드학회 회장,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 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학회에서는 초고층·도시건축위원장, 학회제도위원장, AAL 위원장, 건축문화정책분과위원장, 건축산업발전진흥위원장, 건축봉사단장, 건축정책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옛 대한주택공사 수석책임연구원과 중소기업청 국립품질기술원 산업표준심위원 등을 거쳐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 공과대학 건축학부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올해 제39대 대한건축학회장에 당선됐다.Q 다른 나라에서는 인허가를 어떻게 진행하나요?

일본은 인허가를 대행해주는 곳이 따로 많이 있습니다. 동경도에만 일본건축센터를 비롯해서 민간업체들이 36개가 있습니다. 보통은 정부에서 법규나 안전이 괜찮은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법에서 정해진 것 이상의 것을 할 경우에만 허가를 받으면 됩니다. 일본은 1999년에 건축 행정업무의 일부를 민간업체에 넘겨줬습니다. 특정 자격을 갖춘 회사, 예를 들면 어느 정도의 건축 인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인력이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연간 할 수 있는 총 면적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고려해서 회사를 지정합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일이 줄어들고, 건축주 입장에선 인허가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셈이죠. 비용이 더 든다는 우려가 있는데, 반대로 아파트를 설계하는 어떤 분은 인허가가 빨리 처리된다면 1억이 들어도 맡기겠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같은 경우엔 설계를 여러 번 해야 하고 시행사로부터는 빨리 해달라는 요구를 듣는 상황이기에, 시간이 곧 돈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우리나라 행정엔 없습니다. 정부에서 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어도 인허가를 빨리 처리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인허가 대행업체와 정부 중에서 건축주가 원하는 쪽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Q 법제도 개선을 위해 학회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엔 무엇이 있을까요. 앞으로 건축센터의 계획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건축사들이 인허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법정 처리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법정 처리기간 내에 일이 완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허가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 조사·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건축계에 건축기금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 기금으로 건축문화를 활발하게 진행시키는 데 사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건축 산업이 선진화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일반인들이 좋은 건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자판기 커피를 맛있게 먹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찾고 그 맛을 구별해내지 않나요. 아메리카노의 향과 건강적인 측면과 같은 정보들을 몰랐다면 아직도 자판기 커피를 먹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건축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선 좋은 건축들을 자주 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좋은 건축을 위한 정책이 갖춰져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건축을 억제하는 시스템이죠. 빨리, 많이, 싸게. 그 시스템은 너무 없이 살았던 시절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해줬지만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건축 법제도 개선과 함께, 건축계가 나서서 건축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Q 국민들이 좋은 건축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을까요.

‘건축학 개론’ 같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좋은 건축물을 많이 지어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생활SOC를 강조하는 정부사업들이 발표되자 업계에서는 공공건축가들이 하나씩 좋은 건축을 짓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까지는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실현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설계공모에서 당선돼도 평당 얼마짜리라는 타이트한 예산 기준이 있어 원래의 설계를 예산에 맞게 잘라내는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결국 두 번 설계를 하는 셈이 됐고, 원래의 설계의도는 변형되기 일쑤였죠. 현재 법제도는 건축이나 설계가 아니라 관의 편리성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구축돼 있습니다. 목표 또한 30만 호, 올해 몇 평짜리 준공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그 안에 퀄리티는 없어요. 건축의 질이 높아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엔 설계가 나온 뒤 예산을 받아 공사를 합니다. 다행이라면 요새 ‘구해줘 홈즈’나 ‘건축탐구 집’ 같은 프로그램들이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학회 뿐 아니라 건축계 모두 좋은 건축을 국민들에게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식주가 기본인데, 그동안 주에 대한 주목도가 가장 낮았던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과거에는 건축 물량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제는 건축의 질에 대해서, 즉 좋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좋은 건축을 위한 법제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데, 하나는 공공에서 발주하는 설계비를 높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마 선진국 대비 40퍼센트 내외가 아닐까 싶은데, 일정 부분을 더 높이면 건축도면의 품질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민간 설계비 역시 비슷한 이유로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파트의 경우, 건설회사에서 건축사에게 간단하게 도면을 작성해달라고 요구하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하지 않나요. 그게 다 싸게 지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제대로 설계되고 지어진 집인가? 국민들은 잘 모릅니다. 결국 물이 새고 단열이 안 되고 곰팡이가 슬고 결로가 차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도 세면대에 문제가 생겼는데 관리실에 전화하니 원래 그런 거란 말을 하더군요. (웃음) 속았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 입장에서 그걸 가지고 싸우기는 힘듭니다. 성능을 감출 수 있는 이 시스템, 다 오픈해야 합니다. 또 정부나 건설사도 설계비에 제 값을 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건축사등록제를 마련해 건축사들의 이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가로 설계를 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설계뿐만 아니라 재료, 기능 등 모든 인력이 균형 있게 양성돼야
건축사사무소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현장 경험 제공할 것
AI, 수백 개 설계 가능해 건축교육에 활용하면 좋을 듯

Q 또 다른 공약으로 건축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현재 건축교육계도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특정 분야의 인력 양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건축이란 분야가 넓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머지 분야의 인력 양성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예를 들어 역사 쪽은 지금 대학에서 담당 교수를 뽑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몇몇 분야에서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년제, 삼 년제 등의 건축학과들 또한 폐과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야들이 정말 필요가 없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건축 산업계에는 재료, 기능, 설계 등 여러 분야의 인력들이 고루 필요합니다. 산업계의 인력 수요와 긴밀하게 맞춰져있지 않은 것이 문제지. 건축교육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계획 중입니다.

Q 현장에서는 건축학과 학생과 현장 실무자 간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 건축사사무소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능력이 다릅니다. 설계 때 실시를 외주에 맡기는 사무소에선 설계만 할 줄 알아도 괜찮겠지만, 디테일을 다 챙겨야 하는 회사에서는 그런 직원에게 그림만 그릴 줄 안다고, 기본이 안 돼 있다고 평가합니다. 건축사사무소로 학생들이 현장 실습을 나가면 다양한 현장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줘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현업에서 필요한 일들을 가르쳐주고 회사가 학생들을 스카웃해가는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는데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앞서 시대가 변했다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4차 산업기술,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사회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고, 그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습니다. 건축계와 건축교육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는 곳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된 건축을 미리 볼 수 있고 일조 영향이 유리한지도 판단합니다. 퀄리티 검증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이들을 잘 사용하게끔 하는 건축교육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통의 설계로는 안을 몇 개 못 만들지만 AI를 이용하면 몇 백 개까지 만들어 테스트해볼 수 있으니 교육에 활용하기 좋을 것입니다. 코로나를 생각해보면, 지금 부동산에서는 상가 가격이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쇼핑, 강의 등 많은 것들을 온라인으로 하는 추세인데 코로나가 이에 더 영향을 줬습니다. 앞으로 상가 수요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또 병원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지금의 병원은 감염 전파가 쉬운 설계로 돼 있습니다. 때문에 한 명의 환자가 오면 전 병동을 폐쇄하게 됩니다. 병원 설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건축사사무소 또한 코로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건축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사와 학자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 길을 택했습니다. 건축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인생에서 기쁜 일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롯데월드타워 시공 때 안전점검 TF 팀장으로 3년을 참여했는데, 롯데월드타워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건축사는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어려운 건축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회도 지속적으로 건축사분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Q 지금까지 건축의 법제도, 교육에서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현 시점이 건축계나 도시의 발전에서 중요한 때라고 느껴집니다. 어느 한 단체의 역할이라기보다 정부, 학계, 협회 등 관련 단체들 간 협업이 필수인 것 같습니다.

법제도를 개선하자고 의견을 내기만 해도 이권 단체라는 틀을 씌울 때가 많습니다. 법제도 개선에 대해 말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대한건축학회에서는 연구·개발을 통해 그 근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경찰 지구대 공간의 설계 기준을 잡아준 적이 있습니다. 법적인 기준에서 보면 문제가 없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적용하면 실제로는 공간 활용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분석한 데이터로 설계기준을 잡고 발주를 했더니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근무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건축계 역시 설계를 여러 번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품질 저하 문제 등 다양한 케이스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근거를 마련하면 보다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건축센터를 통해서는 품질과 성능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합니다.
아울러 대한건축학회,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 건설사, 정부, 지역사회의 협조랄까,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과 같이 공공건축사업에 잘 협력해주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건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우죠. 우리 도시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 라는 생각이 있는 곳들이 발전을 합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도시 환경이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산업의 중심은 건축사입니다. 누구도 주인만큼 노력해주지 않아요. 건축사 그리고 대한건축사협회는 자기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한건축학회도 적극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대담 박정연 건축사·본지 편집위원, 글 이유리 기자,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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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젊은 아이디어로 ‘신수동 골목’에 생기를… ‘풍경을 바꾼’ sista house

Architecture Criticism _ Refreshing ‘Sinsu-dong Alley’ with a young idea…
Sista House ‘that has changed the landscape’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어느 동네든 뒷골목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했다. 붉은 벽돌로 된 2층짜리 단독주택들이 가로의 풍경을 결정하는 동네도 있었고, 원주민이 떠나고 소위 집장사 주택들이 들어선 동네는 회색 화강석으로 마감된 다가구, 다중주택들이 동네의 분위기를 결정하기도 했다. 동네 기능공들이 만드는 주택, 싸고 빠르게 짓는 주택이 골목을 형성하던 시대였다. 건축행위가 이루어졌으니 건축전문가의 프로세스를 거쳤겠지만, 그들은 명망 있는 건축사와는 다른 전문가였다. 그 시절 뒷골목에서는 건축사의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거치는 건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10년을 전후로 젊은 건축사들은 다양한 소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해 동네의 풍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존 동네에 새로이 생긴 건축들은 처음엔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새 동네에 스며들었고, 또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했다. 젊은 건축사들이 더 나은 동네, 더 쾌적한 건축을 위해 그들만의 생각과 철학을 도시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sista house는 이 연속의 행위에 한 점을 찍은 건축이다. sista house가 들어선 신수동 일대는 몇 년 전까지 재개발 예정 지역이었을 만큼 상대적으로 낙후된 주거생활권이었다. 주변으로는 10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던 공덕동, 상수동이 있는 동네기도 하다. 주변은 개발되었지만 신수동 재개발 사업은 물거품이 되었고, 자연스레 소규모 개발업자들의 무계획적인 집장사 벌이가 활성화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행위의 연속에도 sista house가 있었다.
이상적인 조건이라면 건축사의 업무는 책상에서 끝난다. 건축사가 계획을 하고 도면을 그리고 이후 시공사는 도면대로 시공하면 된다. 그러나 sista house에서 2M2 Architects 소속 이중희 건축사의 작업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시작됐다.
sista house는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계단실을 전면에 배치하고 커튼월과 벽돌을 영롱쌓기로 마감했다. 내부의 쾌적함과 외부의 입체감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다. 또한 창호 플래싱(flashing)이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얇게 처리했다. 이로써 건물은 하나의 마감재로 돋보이게 됐다. 단순한 디자인 혹은 사소한 디테일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건축사는 분명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계획과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실제 2M2 Architects가 제작한 디테일한 도면에는 설계 단계부터 현장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젊은 건축사들이 담당하는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예산이 넉넉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예산이 빠듯하다는 건 건축 과정에서 크고 작은 난관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건축사의 선택은 두 가지다. 예산에 맞게 안전하고 값싼 설계를 할 것인가, 좋은 건축을 위해 정해진 예산 안에서 도전적인 설계를 할 것인가. 이중희 건축사는 후자를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겠지만 해법은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은 현장에 있다.
sista house 프로젝트에서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디테일 도면을 그려 보완하고 시공자들과 끊임없이 논의한 끝에 원하는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축사의 업무가 책상에서 끝났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점들로 인해 기존에 낙후된 골목과 다를 바 없는 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중희 건축사의 작업은 현장에서도 이어졌고, 그 결과 건축사의 계획은 골목길 작은 프로젝트에도 온전히 반영되었다. 그렇게 골목의 풍경이 변했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는 건축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수련을 쌓은 뒤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법적으로 건축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도면을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것이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한 자료들이 필요하다. 이는 시방서일수도, 디테일 도면일수도 있다. 건축사들의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건축사의 최종 결과물은 시방서나 도면이 아니라 건물이다. 따라서 그 수많은 고민들은 책상에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책상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젊은 건축사들은 더 이상 책상에서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는다. 고민한 디테일이 현장에서 사소한 문제로라도 나타났을 경우에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원인이 허술한 공정관리가 될 수도 있고, 완벽하지 못한 견적검토가 될 수도 있고, 시공자의 부족한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특히 골목의 작은 프로젝트일수록 현장에서의 시간이 빛을 발한다. 그 시간들이 쌓여 골목이 변화되고 더 쾌적한 도시가 만들어진다.
예산과 설계비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작은 골목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대가들에게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건축사들의 세심한 설계가 가장 필요한 곳이 낙후된 골목이다. 골목은 도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골목의 주거환경이 나아져야 도시 전체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골목의 주거환경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도시 전체 주거의 하한선을 올리는 셈이다. 도시 뒷골목은 ‘집장사’들이, 예산이 넉넉한 프로젝트는 대가들이 설계하는 상황은 ‘양극화’다. 건축은 ‘양극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로 가야 한다. 쾌적한 집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골목의 소규모 프로젝트에도 질 좋은 설계를 반영해서 도시주거의 하한선을 높이는 것, 이것은 골목을 변화시킬 힘과 열정이 있는 젊은 건축사들의 몫이다.
참고로 현재 동네 규모의 소규모 건축물 시공 시에는 공사감리자를 허가권자가 지정하게 돼 있다. 이 경우 건축주는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되도록 해당 건축물의 설계자를 건축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이른바 ‘설계의도 구현’이다.
골목의 주거환경을 발전시키는 작업은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쾌적한 주거를 위해 마련된 기준이 건축제도라면, 설계를 맡은 건축사의 역할이 현장에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의도 구현’이 공공건축물만이 아닌 민간건축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에 적용되고, 업무계약서 및 정당한 대가지급을 위한 기준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

 

글. 이주형 Lee, Joohyoung (주)에이알에이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이주형 건축사 · (주)에이알에이 건축사사무소

ARA는 Augmented Reality Architects의 약어다. 건축으로 ‘현실’을 더 좋게 만든다는 뜻이다. 각자의 현실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문화’로서의 건축을 지향한다. 예쁜 옷과 맛집이 일상적이듯 좋은 건축 또한 일상적일 수 있다는 생각. 자기만의 공간을 디자인 하는 건 현실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문화여야 한다는 생각. ARA의 건축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arajoohyo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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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과 지역경제를 위한 생활(동네)건축 활성화

Architectural perspective
Revitalizing life(neighborhood) architecture for daily life and local economy

교토시민에게 잃어버린 수변공간을 돌려주고 활성화한 소규모 상업시설 TIMES(안도다다오)
출처=안다다다오아키텍츠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 사회에서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안도 다다오에게 주어진 일들은 대부분 소규모 건축물이었다. 소규모 주택과 상가건물은 당시 일본의 엘리트 건축사들이 ‘건축으로 쳐주지 않던’ 분야였다. 주택과 소규모 상업 건축물을 주로 의뢰 받았던 안도 다다오는 실제 도시를 바꾸는 힘은 일상 속 작은 건물들에 있음을 알고 작업마다 온 힘을 다했고, ‘스미요시 나가야’나 ‘고시노 주택’ ‘TIMES’와 같은 건물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건물들은 지금의 안도를 세계적인 반열로 올려주었다.

우리나라의 소규모 건축물들은 어떤 모습일까? 건축사에게 외면 받던 일본의 당시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체 건축물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소규모 건축물의 많은 수가 최소한의 설계로 지어졌다. 신도시의 상업지역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근린상가들은 용적을 가득 채우고 겉만 장식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단독,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은 건축물의 성능개선이나 안전 확보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지어져 왔다. 우리 건축사들도 포트폴리오와 사무실 운영에 도움이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더 관심을 보여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사람들이 만나고,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곳, 그래서 그 어떤 대규모 공공시설보다 더 중요한 곳이 우리 일상 속 작은 공간들이다.

최근 중요하지만 간과되어온 소규모 건축시장에 변화가 보인다. 길을 걷다 보면 디자인이 뛰어난 소규모 상가 건물, 다세대 주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집이 ‘사는 곳’ 에서 ‘사는 것’으로 변해버린 주거문화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기성 시가지 내 협소주택 등의 소규모 주택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생활과 밀접한 소규모 공공시설을 지역밀착형 생활SOC(사회간접자본)으로 명명하며 정책적인 활성화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을에 흐르는 풍성한 시간과 공간, 다양성의 켜를 구현한 지역밀착형 공공도서관(최재원 건축사)
© 황규백

사람은 많은 시간을 동네에서 보내고 동네에서 자라난다. 생활건축, 지역밀착형 생활SOC에 투자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지역에 대한 투자이다. 결과적으로 생활건축의 활성화와 질적 향상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건축시장은 우리 경제활동의 근거지가 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철저한 내수시장 중심 산업인 건축으로 인해 파생되는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가시화되며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내 일자리창출과 주민의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생활건축에 대한 지원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의 주택지금융지원기구는 주택의 신축과 개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를 대출해주고, 1∼2%의 저금리에 40년까지의 장기상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도시재생 뉴딜지역 내 주거지에 지원되는 집수리 사업 금융 지원의 확대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또한 같은 일반주거지역임에도 종세분화, 지구단위계획, 문화재 등 각종 심의와 같은 규제가 덧씌워져 활성화가 어려운 지역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해진다면 생활건축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건축사들도 사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처럼 소명의식을 갖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 묵묵히 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이 보이지 않는 힘든 상황이지만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글. 백현아 Baek, Hyeona 건축사사무소 이화 · 건축사

백현아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이화

백현아 건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거쳐 2017년 건축사사무소 이화를 개소했다. 인천광역시 공공건축가이며 인천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마을과 사람을 위한 작은 단위 도시재생과 소규모 건축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arc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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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미학이 존재하는 몽골, 그 광활함

Mongolia where empty aesthetics exists, its vastness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장장 3,000km를 지난 여정을 통해 느낀 몽골은 광활한 대지, 그야말로 가도 가도 끝없는 텅 빈 공허함의 극치였다. 대평원의 공허함으로 가득한 생소한 여행이면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꽉 찬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탐험이었다.
우리 일행이 탐방하였던 시기는 몽골의 국가적 행사인 나담 축제 마지막 무렵이었다. 몽골사람들이 들뜬 기분 탓에 우리 일행의 차량을 들이 받는 사고가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사실 차량 한 대를 폐차시킬 정도로 아찔한 사고기는 했다. 하지만 일행들이 한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어려움을 겪어낸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탐사에 함께 한 박해원, 신철균, 이태수, 전우재 건축사님들께 감사를 전하며, 이 글 또한 함께하여 주신 건축사님들과 같이 함을 밝히는 바이다.

고비 사막의 풍경
몽골과 중국 국경 사이에 있는 동서 1500km, 남북 800km, 면적 129만 5천km²에 이르는 암석 사막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사막이다. ‘고비’는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고비 사막의 강우량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중앙부는 연간 25∼50mm 정도다. 다만 이는 일 년 동안 조금씩 내린 게 아니라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린 수치다. 그래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추위는 느껴도 눈이란 게 뭔지는 아예 모른다고 한다. 고비 사막 한 가운데에서 만난 낙타 무리를 보면서, 먼 옛날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오고가는 대상들의 광경이 그러했으리라 상상을 해본다.

초원의 한 가운데서 만난 뇌우와 무지개
고비 사막을 뒤로하고 우브르 항가이로 향하는 일정을 위해 우리는 이름 모를 초원을 한없이 달렸다. 그러던 중 멀리 지평선 가까이에서 뇌우가 형성되는 광경이 보여 급히 차를 세우고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몽골은 역시 기대한 바와 같이 텅 빈 평원만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1시간가량의 뇌우가 끝난 뒤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성되는 광경이 연출됐다. 몽골 현지 사람의 말로는 우리 눈에 보이는 뇌우의 중심까지의 거리는 대략 10km정도라고 한다. 평원의 넓이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초원의 한 가운데서 만난 뇌우와 무지개
고비 사막을 뒤로하고 우브르 항가이로 향하는 일정을 위해 우리는 이름 모를 초원을 한없이 달렸다. 그러던 중 멀리 지평선 가까이에서 뇌우가 형성되는 광경이 보여 급히 차를 세우고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몽골은 역시 기대한 바와 같이 텅 빈 평원만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1시간가량의 뇌우가 끝난 뒤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성되는 광경이 연출됐다. 몽골 현지 사람의 말로는 우리 눈에 보이는 뇌우의 중심까지의 거리는 대략 10km정도라고 한다. 평원의 넓이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양쟈끄의 일몰
고비 사막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자끄란 곳은 ‘불타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몽골의 손꼽히는 관광지다. 이곳이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붉은 바위산 덕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바위산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높은 바위 덩어리지만, 몽골에서는 이처럼 높은 산은 드물기에 유명하다고 한다. 필자가 이 붉은 돌덩어리 산을 열심히 촬영하는 가운데 한 대의 차량이 대평원의 석양을 배경으로 서쪽 평원에 멈춰 선다. 마치 미니어처 자동차처럼 앙증스러운데 그 가운데에도 서쪽 하늘의 석양은 천하일품이었다. 텅 빈 대평원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의 허함 속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색상으로 피어난 하늘이 주는 황홀감이라니. 몽골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몽골사람들의 일상
몽골인의 일상은 우리가 방송에서 접하던 그대로였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 초원 한 가운데에서 외딴 게르를 발견하고 들러보았다. 척박한 환경임에도 그들은 강인하게 생활을 영위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축을 키우며 먹거리를 생산하고, 먼 옛날 우리네처럼 2세들을 키우고 있었다. 불편하거나 불행함이 없는 표정으로 그들은 이방인을 경계하지 않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헤진 옷을 입고도 즐겁게 염소우리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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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건축 04 광화문(光化門)

Immortal architecture 04
Gwanghwa-mun

경복궁전도 : 세종 때 재축된 두 번째 광화문의 모습(임진왜란 이전 모습)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서울의 상징물은 무엇일까? 생각나는 것은 많은데, 쉽게 한 가지를 정하기 어렵다. 워낙 다양해서 그 ‘다양성’이 ‘서울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에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권역별로 서로 다른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서울을 20여 개 전철 노선과 BRT로 수도권 도시들을 촘촘하게 이어진 2,000만 인구의 서울 광역생활권으로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서울의 상징물을 하나만 꼽자면 무엇일까? 높은 건물로는 N서울타워나 63 빌딩 그리고 롯데월드타워 정도가 떠오른다. 문화적 상징물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손꼽히면 좋겠지만,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동상이 있는 강남역 그리고 홍대나 이태원 같은 역동적인 상업거리가 떠오른다. 자연물로는 북한산이나 남산 그리고 한강도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후보다. 역사적으로는 숭례문을 포함한 한양도성도 유력하다. 후보가 넘쳐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겠다.

개인적인 의견은 객관성에 한계가 있으니 통계자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한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전국의 주요 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의 최근 자료를 살펴보면, 경복궁의 연간 방문객(입장객) 수가 450만 명 정도로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았던 곳이다. 이 중에는 외국인도 100만 명이나 포함되어 있으니, 내외국인 모두 즐겨 찾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전국 순위도 확인이 가능한데,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약 600만 명/년) 다음으로 경복궁이 전국 2위의 입장객을 유지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고, 서울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경복궁은 서울의 역사와 600년 정도 함께했다. 조선시기부터 육조거리로 정치적 상징성이 컸던 경복궁의 전면 공간은 대한민국 국가 상징가로의 시작으로 서울의 도시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월드컵 거리응원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고 중요한 사건들의 무대였다. 연간 150여 개 크고 작은 행사까지 꾸준히 열리는 곳이니 객관적으로도 경복궁과 국가상징가로인 세종대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공간임을 부정하기 어렵겠다. 이런 의미 있는 장소에서 600여 년간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건축물이 있다. 때론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수차례 재축된 경복궁의 정문, 바로 광화문이다.

콘크리트로 복원공사 중인 네 번째 광화문(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네 번째 광화문 준공식(1968년)

1천 년의 수명이 언급된 현장소장 인터뷰 기사(1968년)

철거(2006년)된 네 번째 광화문의 부재(서울역사박물관)

지금의 광화문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입장객이 찾는 경복궁의 정문이기도 하고, 국가상징가로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화려하게 단장하고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시작하면서 광화문을 잃었다. 광복 후 5년 만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남과 북 양측이 점령과 수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서울은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광화문도 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그만 폭격에 불탄 것이다. 기단부의 석재는 남았지만 검게 그을렸고, 목조였던 부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시작과 함께 광화문을 잃는다. 광화문이 재축된 것은 약 20년 뒤인 1968년이다. 정치적으로 상징적인 전통 건축물을 복원함으로써 정통성과 사회 발전을 홍보할 수 있었고, 철근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하여 산업화된 국가 이미지도 부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목구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재현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큰 반대 없이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당시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목조건축을 철근콘크리트로 재현하거나 재축하는 경향이 있었으니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기본적으로 철근콘크리트는 거푸집에 타설 하는 재료로 목구조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래서 목조건축물을 철근콘크리트로 재현하려면 콘크리트 타설이 가능하도록 거푸집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오사카성도 철근콘크리트조로 만들어졌는데, 목구조의 섬세함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이 문제 때문에 섬세함과 거푸집 제작의 어려움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광화문은 달랐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지만 만져보기 전에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표현이 뛰어났다. 차이는 거푸집을 만들어낸 목수들의 섬세한 솜씨에서 생겼을 것이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도 목수의 손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1천 년도 까딱없게 만들었다’는 당시 현장소장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 눈에 띈다. 그런데 1천 년을 장담하던 철근콘크리트의 내구성에도 이 광화문은 40년을 못 넘기고 철거되고 만다. 위치와 방향이 잘못된 기존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본래의 위치에 본래의 방향으로 하는 복원계획을 문화재청이 수립한 것이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2006년에 철거되었고, 절단된 부재 중 일부를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겼다. 지금도 박물관 마당에서 단청이 칠해진 철거 당시 모습 그대로의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의 부재를 볼 수 있다. 다시 봐도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목수의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철거 이후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복원 설계를 했고, 전통 목구조 방식으로 재축되어 2010년에 완성되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광화문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이 광화문은 이제 10년이 지났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축(1867년) 된 세 번째 광화문

이전(1927년) 되기 직전의 세 번째 광화문

이전(1927년) 된 세 번째 광화문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세 번째 광화문(1951년)

콘크리트로 복원되기 직전 세 번째 광화문(1967년)

대한민국 시기에 전쟁과 복원 그리고 철거와 재축까지 다사다난했던 광화문은 조선의 건축물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광화문은 어땠을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당시 고려의 남경이 있던 양주지역에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성과 궁을 짓도록 한다. 태조는 이 일을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환관이었던 김사행에게 맡겼다. 김사행은 원나라(몽골)에 환관으로 보내졌다가 그 곳에서 건축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고려 말에 돌아온 인물인데, 지금과 비교하자면 유학을 다녀온 것과 비슷할 것이다. 김사행은 왕명으로 단기간에 한양도성과 경복궁을 완성했지만, 곧 하자가 생겼다. 짧은 공사기간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가 보다. 불과 몇십 년 뒤 세종대에 이르러 경복궁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은 대대적인 보수를 지시했고, 그때까지 마땅히 이름이 없었던 건물들의 이름을 지어 올리라고 집현전에 명한다. 광화문을 비롯해 영추문, 신무문, 건춘문 등이 이때 지어진 이름이고 현판도 이때 걸렸다. 경복궁 홈페이지에는 세종 13년에 광화문을 다시 고쳐지었다고 설명하고 있고, 문종실록에는 세종대에 광화문이 기울어 기초공사를 다시 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부동침하가 발생해서 건물을 고쳐지었다면, 아마도 전면 해체한 뒤 기초를 다시 보강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종대의 보수는 신축한 지 40년도 안 되었던 광화문을 전면 해체 후 지반보강을 한 개축공사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조선시대에도 광화문은 전쟁을 피하지 못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불타서 소실되고 광화문과 경복궁은 오래도록 복원되지 못했다. 300여 년간 폐허로 남아있던 광화문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고종을 조선의 26대 왕으로 만든 흥선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과 함께 새로 지어진다. 1867년 일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빛바랜 흑백사진 속 경복궁은 이때 만들어진 세 번째 광화문이다. 지금의 광화문도 이 광화문을 복원 시점으로 삼았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복원 노력이나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도 1910년 경술국치를 막지 못했다. 조선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한 일제는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고, 완공과 함께 광화문을 해체한다. 없어질 운명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경복궁 동측 건춘문 위쪽으로 지금의 국립 민속박물관 입구가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일제에 의해 이전되어 초라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광화문은 광복 후 주권을 되찾았지만 본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한국전쟁의 폭격을 맞게 된다.

전통 목구조 방식으로 본래 위치와 방향으로 복원(2010년)된 다섯 번째 광화문

광화문은 최소한 네 번 다시 지어졌다. 조선시대에도 두 번의 재축 기록이 확인되고, 일제강점기 한 번의 이전이 있었다. 그 후 대한민국 시기에 또 다른 두 번의 재축이 있었다. 광화문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양의 중심 건물이자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상징적 건축물이 되었다. 두 번은 전쟁으로 불타고, 복원의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어렵게 어렵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힘든 역사를 우리와 함께한 광화문이 역경을 딛고 부활한 것처럼 앞으로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울의 상징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서울과 함께하는 광화문의 불멸을 기대해 본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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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 집중화된 도시 문제를 드러낸 영화 ‘컨테이젼’

The move ‘Contagion’, revealing the problems of a super-connected society and a centralized city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주인공 데이빗 에임스(탐 크루즈 주연)가 차를 타고 뉴욕 한복판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번화한 뉴욕 한복판이 속된 말로 개미 한 마리 등장하지 않는 빈 도시 풍경으로 연출됐는데, 사람들은 초현실적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맨해튼 타임 스퀘어. 뉴욕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사람들로 가득한 맨해튼 중심 한복판의 타임스퀘어 이미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의 중심 메신저 배경으로 나오는 이곳에 사람들이 사라진 모습을 상상하긴 누구도 힘들었다. 아마 대낮에 빈 도시 풍경이 되는 일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맨해튼 한복판 도심에 아무도 없는 초현실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상상이나 했는가? 파리 샹젤리제나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가능한가? 그야말로 놀랍다. 컴퓨터 그래픽도 아니고, 어떤 속임수도 아니다. 정말 사람들이 사라졌다. 중국에서 시작해 아시아를 지나 유럽, 미국을 관통하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퍼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전염력이 강력한 바이러스는 전 세계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쓰러지고 거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 얼마나 초현실적 상황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망자 수치에 관한 세계 소식들이다. 과연 이런 뉴스들이 사질인지 실감나지 않을 정도며, 마치 전쟁의 순간처럼 사망자와 환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세계 영화 시장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할리우드 덕에 우리는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몇 가지 정도 떠올리곤 한다. 대표적 장소 중 하나인 맨해튼, 그중에서도 타임스퀘어는 현대 문명의 상징이며 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로 등장하는 시각적 장치물이다. 그곳은 항상 분주하게 활동하는 세계인의 중심 공간이다. 설상 맨해튼의 뉴욕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담긴 세계 각지 도시의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등장하는 서울 테헤란로 풍경이나 일본 영화의 신주쿠 장면 모두 동일 선상의 이미지다.
인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문명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는 점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그래서 여러 영화들은 사람들로 분주한 공간과 인간의 소멸을 대비해 극적인 연출을 한다. 기후 변화의 공포를 다룬 ‘투모로우’에서도 대도시의 중심 공간과 사람들이 사라진 현상을 대비해 보여준다.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인디펜던스 데이’ 역시 외계인들은 가장 번화한 곳을 공격한다. 바이러스 등 질병에 의해 혼란이 발생한 상황도 번화한 대도시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특히 ‘컨테이젼’은 놀라울 정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진 최근 상황과 유사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21세기에, 초연결사회인 세계가 바이러스 하나로 초토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들 간의 욕망과 갈등, 본성이 드러난다. 바이러스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과거에도 전염병이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초연결된 밀집사회에서의 전염은 더 빠르고 확산 폭도 넓다. 전염의 물리적 영역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국경을 넘나든다.

자료=워너브라더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런 공포심과 우려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한두 달 간격으로 인접 국가로 넘어오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단 몇 개월도 안 걸렸다. 엄청난 전염 속도와 전염률은 가히 세계적인 마비를 가져왔다. 이에 가장 강력한 대응책은 물리적 이동을 멈추는 것이었다. 항공기가 멈추면서 국경을 넘는 이동이 대폭 줄었다. 국가적 분업화와 이동의 제한은 충격적인 현상이다. 분업과 효율을 강조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기준이 파괴되는 장면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효율과 글로벌 분업은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이 사건은 패러다임을 바꿨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는 일상과 삶을 파괴했고, 도시 집중화로 이동 중이던 도시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컨테이젼’은 태평양 너머에서 활동하는 21세기 사람들의 생활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역시 별다른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는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대응, 조직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재난 영화들은 다양하다. 사건 사고가 이야기의 주요 동기다. ‘타이타닉’이나 ‘타워링’의 경우는 자본가들의 이익 추구라는 욕망을 강조한다. 거대한 사고의 공간은 타이타닉이나 건물 하나로 제한된다. 이익 추구의 욕망은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성공하면 개인의 성취와 사회적 이익을 공유하게 된다. 반면 실패할 경우에는 엄청난 재난과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이익 추구로 인한 재난은 타이타닉이나 타워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생물학적 이익 추구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다양한 영화의 단골 메뉴다. 재난 범위는 훨씬 크고, 인간 종 멸망의 두려움으로까지 연결된다. 치매 예방이라는 선의로 접근한 생물학 연구가 영장류의 두뇌 발달을 가져와 인간과 대립하게 되는 ‘혹성탈출’은 그나마 불가능해보여서 재미있게 느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가짜 뉴스든 합리적 의심이든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바이러스라는 소문도 무시할 수 없다. 에이즈 치료약 개발이 인류에게 더 필요한 의약품 개발보다 거액이 들어가는 이유는 이윤 창출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 선상에서 본다면 인공 바이러스 개발이라는 목적 자체도 자본주의 세상의 이익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동식물에 존재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되었을 수도 있다.
‘컨테이젼’의 아무도 없는 빈 도시가 된 코로나 사태와 중첩된 이유는 그것이 공상과 상상의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료=워너브라더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 이후 시대의 첫 번째 키워드는 접촉 빈도수의 축소다. 두 번째는 통합 네트워크 또는 집합이라는 개념의 변화인데, 이 통합 네트워크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코로나 전이 과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염성이 빠르다. ‘컨테이젼’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국제적 분업화로 기능화된 현대 산업 구조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전달하는 루트가 된 것이다. 국제적 분업화가 왜 이루어졌는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해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국경을 건너면 인건비가 낮아지고 각종 세금 등의 조건이 달라져서 생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이제 국경을 건너는 분업화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건축엔 어떤 영향을 줄까? 그리고 도시에는?
이런 전염병 사태에서 기능적 분화와 선택적 집중으로 거대화된 도시는 철저히 고립되지만 독자적 생존은 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차를 타고 대형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해야 하는 도시 구조에서 이동 제한과 물리적 차단은 위협적인 상황이다. 집밖으로 나오는 일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된다. 결국 도시의 순환 체계를 작은 클러스터로 분할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도시 구조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할 필요성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 이동 반경을 축소해서 생활할 수 있는 생존 시스템이 부상했다. 그것은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생활 방식이다. 바로 이점이 모순점이다. 네트워크의 긴밀함 때문에 과거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치명적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에 대항하는 것이 ‘차단’인데, 실제 생활에서는 네트워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생물학적 전염병이 온라인까지 강타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도시는 완전히 마비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아날로그적 생활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작은 클러스터, 즉 동네 농원과 동네 커뮤니티 등 아날로그적 부활이 예상된다.
집중의 효율성과 이동의 자유로움 안에 이제는 공포도 포함되어 있는 셈이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네트워크가 이뤄져야 한다. 도시 구조, 건축도 마찬가지다. 통합이 효율적이란 장점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오염으로부터 동시에 궤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거대하게 단순화된 주거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집중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가 증명해주었다. ‘컨테이젼’의 상황은 전염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건축사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해 무엇을 고민하고 제안할 것인가. 거대한 숙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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