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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 시장의 비전을 잠식하는 것들

Things encroaching the vision of construction market of South Korea

어느 나라나 도시 건축의 대부분이 주거용 건축이다. 주거 건축의 형식에 따라 도시 경관이 결정될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 건축은 개인 자산이지만 동시에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의미로 조정되고 통제된다. 우리도 각종 건축 관련 법들로 사회적 공공성을 규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각종 건축 심의나 경관 규정 등이 그런 법률들이다. 물론 이런 법이나 규정들이 얼마만큼 효력과 가치를 확보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축소 또는 폐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있고, 문제의 출발점이 정책에 있다. 우리나라 주거 건축(아파트)에서는 OECD 국가들의 주거 건축들이 표현하는 건축적 지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도시 주거 건축을 주도하는 공공건축에서 건축적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애초 공공주거의 공급 비율이 형편없이 낮은 것이 문제다.

우선 우리나라는 공공주거 공급 비율이 OECD국가 중 하위군에 속한다. 2018년 기준으로 겨우 7.1%인데 이는 네덜란드(37.7%)의 1/5에 불과한 수치다. 약 17% 내외인 영국과 프랑스와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의 주거 건축은 공공주거 건축 정책보다 민간에 의한 의존도가 높다. 주거건축 정책은 철저히 민간시장에 의존한다. 미국이 시행하는 주택 바우처 등의 지원 제도도 전무하다. 소유의 개념으로 주거건축 시장을 계획하고, 이와 같은 정책을 산업화 전 과정에 운영해왔다.

특히 정부는 민간 건축 시장을 설계할 때 철저하게 대량 공급과 생산성 극대화 전략으로 접근했다. 수익을 극대화하길 바라는 것은 민간 건축의 특성인데, 정부 택지 개발은 이들의 적정 수익을 보존해주는 정책으로 진행됐다. 주거(아파트) 건축은 일반 상품으로 기획돼 시장에 제공됐다. 여타 일반 산업과 마찬가지로 주거 건축이 생산과
이익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 주거 건축의 왜곡을 가져 왔다. 생산성과 효율성, 수익성의 극단적인 추구는 입도선매 개념의 선분양 정책을 시작으로 건설사업자들에게 수십 년간 황금 노다지를 안겨줬고, 잘 팔리도록 암묵적인 투기를 유도했다. 소위 말해 부동산 불패시장 구조로 상품 라인을 구축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품화된 건축 유형은 엉뚱한 모델로 이어졌다. 바로 표준화와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무료로 공급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만들어낸 중저밀도 아파트였다. 바다를 건너 탱자가 된다는데, 철학적 출발이 다른 건축 형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시장자본주의 최고의 상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한국 주거건축 중에서 단지형 아파트 형식은 완전한 투기성 상품의 결정체다. 생산성을 위해 선택된 표준화는 화폐와 같은 빠른 환매 가치로 유통되고 있다. 기업의 경제적 수익을 위해 대량생산 시스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익추구가 극대화되면서 생산 구조는 더욱더 대형화됐고 미숙련 기술자를 사용할 수 있는 공정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생산된 상품의 시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어떤 다양한 정책이 나와도 한국 주거 건축, 특히 아파트는 여전히 주식처럼 등락을 반복하는 가격 구조를 가질 것이다. 가격을 중심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되다 보니 건축적 지향점은 후순위가 된다.

프랑스나 덴마크, 네덜란드 공공 주택의 건축적 지향점과 결과를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차가 난다. 공공 주거 건축의 건축적 표현과 구성은 국내 민간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공동주택보다 월등하다. 국내 주거 건축에서 기업의 경제적 수익을 위한 대량생산 시스템 결과로 건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건축 없이 생산된 건축 형식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삭막함, 인간을 경제적 도구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경관, 시장 참여자의 극단적 편중으로 인한 경제적 불균형, 이른바 장인이라 일컫는 기술자들의 소멸, 나아가 미래 한국의 문화 경제적 자원이 될 건축 유산의 피폐화까지…….

웃지 못 할 코미디의 백미는 이른바 확장형 발코니다. 물론 이런 설계가 들어오면 나라도 당연히 한다. 합법이니까…….

철저한 투기적 상품으로 바라보는 주거 건축 정책을 내놓으면서 투기하지 말라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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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라츠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다시 가고 싶은 곳, 일순위 도시이다. 구시가 전체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시와 주민의 노력으로 ‘그라츠 구도심 보존운동’을 통해 성과를 본 것이라고 한다. 도시 중심에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어강이 흐른다. 강 중간에, 공공예술가 비토아콘치가 디자인한 무린젤(문화의 다리)이 있고, 가까이 강 서측에 영국의 건축가 피터 쿡(Peter Cook)이 설계한 쿤스트하우스가 있다. 비정형 건축물과 미디어 파사드로 유명한 이 건축물의 별명은 ‘프렌들리 에일리언(friendly alien)’이라고 한다. 오래된 시계탑이 있는 슐로스베르크 (Schlossberg) 언덕에 올랐다. 아름다운 붉은색 지붕의 도시가 펼쳐지고 멍게를 닮은 쿤스트하우스가 눈에 띈다. 2003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것인데 건축 초기에는 주민의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명소가 되었다. 그라츠 기차역 부근 ‘다니엘그라츠 호텔’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며 수채화를 그린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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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발코니 및 테라스의 활성화에 대해

건축담론

해외 도시들의 풍경과 우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 발코니 하나 없는 밋밋한 외관의 아파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실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하나씩 불법 확장되면서 2005년부터 양성화되었고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아파트 발코니는 사라지게 되었다.
건설사들은 애초부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를 내놓았다. 같은 값이면 소비자나 공급자나 발코니를 확장하여 더 큰 실내면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도시의 경관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서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매연, 먼지 등으로 도심지의 외부공간이 쾌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식당이나 카페에 외부 테라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에서 실외로 연결되는 외부공간이 중요해졌다. 도심지의 사무실들도 발코니가 있는 곳이 더 선호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아직도 없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다음의 문제들을 낳고 있다. 첫째, 내부공간은 넓어졌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삶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둘째, 실사용 공간인 발코니 확장 부분이 전용면적에서 제외되어 면적 산정 기준에 혼란을 준다. 세 번째, 밋밋한 아파트 디자인은 세계 10위권 내의 대도시인 서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발코니 확장은 이제 실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코니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세 분의 의견을 구했다.

글. 조성욱 (주)조성욱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1 About the utilization of balcony and terrace

 

발코니를 잡아먹은 침대

중산층 아파트는 왜 방 세 개에 화장실 한 개일까? 70년대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옮기면서 한집에 부모/자식 2대만 사는 ‘핵가족’의 시대가 열렸다. 동시에 실행된 인구정책은 ‘둘 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갑작스레 집이 많이 필요하자 고층 주거인 아파트가 생겨났다. 아이는 두 명을 낳으니 두 자녀가 방 하나씩 쓰고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면 방이 3개가 필요했다. 매일 샤워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자리 잡으면서 화장실에 샤워시설이 설치되었다. 이렇게 방 3개 화장실 하나의 중산층 주거평면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지나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침에 두 명이 동시에 샤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화장실 2개가 기본형이 되었다.
예전에는 방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걷어서 장롱에 넣고 그 자리에 밥상을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같은 자리가 시간에 따라 잠자리로 쓰이다가 밥 먹는 자리가 되었다. 한 공간이 다용도로 쓰였다. 여권이 신장되면서 가사노동을 줄이는 쪽으로 문화가 발전했다. 세탁기가 상용화되었고 이부자리를 깔고 치우는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침대는 공간적으로 하루 8시간만 사용하지만 자리는 24시간 차지하는 장치다. 침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평당 2천만 원짜리 집에 산다면 침대 하나당 4천만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서양에서 침대를 사용한 이유는 난방시스템이 ‘온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돌난방을 하는 우리는 가장 따뜻한 곳이 방바닥이다. 추운 겨울에 이불을 깔고 방바닥에 가깝게 잠을 자야 한다. 온돌이 없는 서양의 경우에는 반대로 바닥은 춥고 위로 올라갈수록 따뜻하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닥에서 올라간 높은 침대를 써야 했다. 과거 침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서양의 침대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방이 좁아졌다. 거실에는 4인 가족이 모여서 TV를 볼 ‘소파’도 생겼다. 소파 역시 자리를 차지하는 가구다. 침대와 소파로 좁아진 집을 해결한 편법이 ‘발코니 확장법’이다. 이미 지어진 집을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으니 발코니를 실내공간으로 전용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발코니

국민 대부분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발코니는 확장해서 실내화시켰다. 이렇게 현대도시에서 마당이나 발코니 같은 ‘사적인 외부공간’이 사라졌다. 과거에 우리는 세수도 안하고 속옷 바람으로 마당에 나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적인 공간에 가야만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자연을 만나려면 옷을 차려입고 산에 가야한다. 도심 속에 가끔 있는 공원도 공적인 공간이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즌이 되면 그나마 나가기도 어려워져 집에서 넷플릭스를 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쉐 샤프티가 디자인한 ‘몬트리올 해비타트’_캐나다 몬트리올에 가면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를 기념해서 만든 ‘해비타트 67’이라는 아파트가 있다. 총 15가지의 유닛이 다양한 형태로 조합을 이루면서 158가구를 구축한다. 365개 모듈러들은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체이다. © Google Earth

자연의 변화가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 인간의 뇌는 변화를 느끼기 위해서 변화하는 미디어에 의존하게 된다. 감염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혼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도심 속에서 그럴 수 있는 공간은 발코니다. 기존의 발코니 형식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 기존의 발코니는 폭이 좁고 위층 발코니가 하늘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발코니가 되려면 가로 세로 비율이 중요하다. 실질적인 폭이 1.2미터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좁고 긴 지금의 발코니는 빨래를 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10제곱미터의 면적의 발코니라고 하더라도 폭 1미터에 가로 10미터보다는 2미터 폭에 5미터 길이의 발코니가 훨씬 쓰임새가 좋다. 새롭게 만드는 발코니의 폭은 최소 2.5미터가 되어서 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어야 한다.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이때 나무도 바닥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화분이 아니라, 바닥보다 아래로 내려간 토심이 확보된 발코니면 좋겠다. 서울로 7017이 실패한 이유는 나무가 있어도 그 나무를 심은 화분이 오히려 보행자의 행동을 방해해서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들어질 발코니는 위층의 발코니가 하늘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비도 맞을 수 있는 발코니였으면 좋겠다. 이런 발코니는 1967년도에 모쉐 샤프티가 디자인한 ‘몬트리올 해비타트’에 이미 현실화되었다. 우리나라는 50년이 흘러도 아직도 못하고 있다. 최근 밀라노에서는 나무가 심긴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도 지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발코니가 활성화되려면 개발업자의 이기심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가격 책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

 

정당한 가격책정이 사회정의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을 책정할 때 ‘면적’에 근거해서 계산한다. 그런데 사실 공간은 면적보다는 ‘체적’이 중요하다. 같은 면적이라도 높은 천정고의 공간에서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경험상 다 알고 있다. 항상 2.4미터의 낮은 천정고에서 생활하다 보니 우리는 높은 천정고의 공간을 찾아서 헤맨다. 천정높이가 높은 공장건물을 리모델링한 성수동의 카페가 인기 있는 이유다. 사무공간도 천정 마감재를 다 뜯어내는 추세이다.

고층 아파트를 녹색 나무로 뒤덮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른 ‘보스코 베르티칼레’. 각각 105미터, 78미터에 이르는 두 개의 아파트 동으로 이루어졌다. 700개의 나무와 90개 종류의 식물로 뒤덮인 점이 특징으로 이들 식물은 스모그와 도심의 소음을 차단하는 동시에 건물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숲 1헥타르에 맞먹는 공기 정화 효과를 낸다.
© Marco Sala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 의하면 2.4미터 보다는 3미터 천정고에서 창의력이 2배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듯 소비자는 높은 천정고를 원하는데 건설업자가 안 만드는 이유는 천정고를 높이면 높이제한 때문에 세대수가 줄어들게 되어서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의 아파트를 면적이 아닌 체적으로 가치측정을 한다면 높은 천정고, 복층형 공간, 경사천정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현재의 ‘2차원 평면적인’ 부동산 가격책정 방식이 공간의 다양성을 죽이고 있다.
부동산 가치책정 기준의 문제는 면적 중심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실내’면적 중심으로 측정된다는 점도 문제다. 5평짜리 테라스가 있는 30평짜리 아파트와 테라스 없는 35평짜리 아파트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테라스가 있는 30평짜리 아파트를 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늘을 볼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이 집에 큰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테라스가 있는 세대가 분양이 잘 된다는 사실은 분양업자들은 경험상 다 안다. 그만큼 사람들은 테라스나 마당 같은 외부공간을 원한다. 현대인들은 하늘을 보는 외부공간을 찾아서 루프탑 카페를 찾고 마당이 있는 익선동을 간다. 그런데 외부공간을 즐길 수 있는 발코니나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가 없는 이유는 돈 들여 만든 테라스에 정당한 가치 보상을 받기 쉽지 않아서이다. ‘발코니확장법’ 때문에 발코니는 모두 실내공간으로 흡수해서 실사용면적으로 계산된다. 그렇게 할 때 제한된 용적률에서 최대의 실내면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를 맞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발코니가 만들어지게 유도하려면 폭 2미터 이상에 하늘이 보이는 2개 층 이상 오픈된 발코니는 건폐율과 계산에서 빼주는 새로운 건폐율 계산법을 만들면 좋겠다. 이런 당근이 있으면 개발회사들은 경쟁하듯 다양한 형식의 외부공간이 있는 주거형식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바뀐 건물 입면은 현재의 삭막한 도시경관도 개선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새롭게 용적률을 상향조정하고 ‘발코니확장법’은 없애서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 실내면적을 늘리는 기형적 편법을 없애야 한다.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주택시장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으로 건설사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획일화되었다. 국민의 60% 정도가 다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에 산다. 건축공간의 다양성이 없다 보니 내 집의 가치측정은 가격밖에 없어졌다. 집의 모양을 똑같이 했더니 이제는 집의 가격도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건축은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 획일화된 주거양식은 사회적 갈등과 잠재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공간, 다양한 가치가 있는 주거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부동산 가치판단 기준이 면적에서 체적으로 바뀌고, 사적인 외부공간도 정확하게 건축물대장에 구분해서 명시하고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가격으로 드러난다. 건축공간의 실제 가치가 정당한 가격으로 책정되는 시스템이 곧 사회정의이다.

 

글. 유현준 Yoo, Hyunjoon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AIA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AIA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했다. 도시와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고 화두를 제시하는 집필 및 방송활동을 하고 있으며, 또한 중앙SUNDAY ‘도시와 건축’, 조선일보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공간이 만든 공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등이 있다.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다.
yoo@hyunjoony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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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한국만 쏙 빠진 ‘발코니 합창’

건축담론

해외 도시들의 풍경과 우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 발코니 하나 없는 밋밋한 외관의 아파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실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하나씩 불법 확장되면서 2005년부터 양성화되었고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아파트 발코니는 사라지게 되었다.
건설사들은 애초부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를 내놓았다. 같은 값이면 소비자나 공급자나 발코니를 확장하여 더 큰 실내면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도시의 경관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서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매연, 먼지 등으로 도심지의 외부공간이 쾌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식당이나 카페에 외부 테라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에서 실외로 연결되는 외부공간이 중요해졌다. 도심지의 사무실들도 발코니가 있는 곳이 더 선호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아직도 없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다음의 문제들을 낳고 있다. 첫째, 내부공간은 넓어졌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삶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둘째, 실사용 공간인 발코니 확장 부분이 전용면적에서 제외되어 면적 산정 기준에 혼란을 준다. 세 번째, 밋밋한 아파트 디자인은 세계 10위권 내의 대도시인 서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발코니 확장은 이제 실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코니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세 분의 의견을 구했다.

글. 조성욱 (주)조성욱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2 Balcony chorus missing in Korea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에 잊혔던 공간 하나가 주목받고 있다. 발코니다. 각국의 봉쇄 정책에 세계인은 이동의 자유를 잃었다. 그야말로 기약 없는 ‘집콕’ 시대다. 집 밖은 위험하고 안은 갑갑한 상황인데 어디선가 노래가 피어오른다. 이윽고 ‘떼창’이 된다. 집안인데 방 밖인 공간, 발코니에서 펼쳐지는 ‘발코니 합창’이다.
집 밖을 못 나가니 빨래를 널거나 화분을 두는 정도로 쓰던 발코니에서의 활동량이 증가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SNS시대, 발코니는 그야말로 힙한 공간이 됐다. 세계 각국의 발코니 합창이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동주택 발코니에서 시작된 팝송 ‘아브라치아미(Abbracciamiㆍ안아주세요)’가 발코니를 따라 동네 전체로 퍼진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EDM을 틀어놓고 춤 추기도, 각종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유명인사의 퍼포먼스여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갇혀 있더라도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연대의 공간으로 발코니가 부상했다. 무명씨들의, 평범한 이웃 간의 소통이 더 훈훈함을 안겼다. 힘들지만 괜찮다고, 떨어져 있지만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현장이었다.

코로나 록다운 후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연대의 공간으로 아파트 발코니가 부상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주민들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가 바꾼 아파트 평면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이 발코니 합창에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해외 팝스타들이 한국 공연을 오면 그것도 일본 공연을 앞두고 흔히 하루 정도 일정을 껴서 서울 공연을 왔을 때도 감명 깊어 하는 것이 있다. 한국 팬들의 ‘떼창’이다. 언어가 다른 극동 아시아의 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을 다해 함께 불러주는 모습에 팝스타들은 반해 앞다퉈 약속한다. 꼭 다시 오겠다(말뿐인 경우가 더 많지만)고. 그런 떼창 강국인 한국인데 발코니 합창은 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발코니가 없어서다. 가구 수로 보면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주택 유형 중 60%가 아파트다. 단독주택은 얼마 안 되고 다가구, 다세대 등이 주를 이룬다. 모두 아파트를 닮은 공간들이다. 방 밖인데 집 안인 외부 공간이 없는 집이 대다수다.
2005년 베란다 확장 합법화로 건설사들이 아예 확장용 평면을 내놓으면서 더 고착화 됐다. 흔히 아파트에서 베란다라고 부르는 공간의 법적 명칭은 발코니다. 건축물의 외벽으로부터 돌출된 구조물이다. 베란다는 아래층이 더 넓어 아래층 지붕 덕에 생기는 여유 공간을 일컫는다. 폭 1.5m 이내인 발코니는 확장이 합법화되어 있지만, 베란다 확장은 불법이다.
발코니 확장 시대에 아파트 평면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남향으로 밝고 환한 집을 선호했다. 30평대 아파트를 보면 현관문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거실과 안방을 두고 북쪽으로 작은 방 둘과 부엌을 두는 것이 전통적인 배치였다. 20평대로 가면 방 사이즈가 작아지고, 40평대로 가면 방이 남쪽에 하나 더 붙었다. 아주 넓은 평수가 아니고서야 아파트 내부에 복도를 두지 않았다. 복도는 그야말로 버리는 공간이자, 어둡다는 인식이 컸다.
이런 평면 배치 때문에 밖에서 발코니만 봐도 아파트 평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2베이, 즉 발코니 쪽 창이 2개면 20∼30평대, 3개면(3베이) 40평대 이상의 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코니 확장으로 평면 배치의 법칙은 깨졌다. 모든 방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20평대에서도 4베이가 가능하다. 즉 ‘방-거실-방-방’이 가능한 남쪽으로 쭉 나열되는 구조다. 실제 면적을 생각해 보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지만, 마법 부리듯 그렇게 짓는다.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면 더 극명하게 보인다. 발코니는 선만으로 존재한다. 방 안에 난데없이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선을 없애지 않고서는 공간이 성립되지 않는다. 방은 좀 과장해서 눕지 못하고, 서서 자야 하는 수준으로 작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주방의 싱크대도 이 하얀 선에 걸쳐져 있다. 만약 확장을 하지 않으면 싱크대를 놓을 수가 없다. 공간이 쭉 나열되니 그렇게 기피하던 복도는 당연히 집 내부에 생긴다. 그런데도 발코니 확장을 통해 얻는 공간이 커서 복도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는다. 20평대 아파트의 경우 5∼7평 가량이 발코니 확장을 통해 추가된다. 새 아파트의 경우 20평대가 30평대처럼 넓게 느껴지는 이유가, 실제로 넓어서다. 발코니를 확장한 면적까지 셈하면 요즘 20평대가 옛날 30평대다.
확장으로 얻어지는 공간을 서비스 공간으로 부른다. 이렇게 많은 공간을 고객에게 서비스로 준다 하니 싫어할 입주민은 없다. 마치 유통회사들이 ‘1+1’로, 붙여주는 하나가 공짜인 것처럼 홍보하듯, 건설사도 발코니 확장을 홍보하기 좋다. 하지만 발코니 확장비도 따로 있고, 애당초 바닥 면적을 넓히기 위해 건설비는 더 든다. 이는 분양가에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집이 상품화된 세계에서 발코니 확장은 모두가 행복한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 전, 언제부터 새시를 달았나

아파트 발코니는 엄밀히 대피공간이다. 고층 건물에서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바깥 공간에 면한 중간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발코니를 한국처럼 실내공간으로 확장해 쓸 수 없다. 재난 발생 시 피난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웃집과 발코니를 붙여 설치하게 하고, 일본에서는 발코니 바닥에 여닫이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유사시에 옆집 또는 아랫집으로 대피할 수 있게 하는 용도다.
해외의 경우 확장은커녕, 새시도 설치 못 하게 한다. 발코니 합창은 이렇게 외기와 맞닿아 있는 공간이었기에 울려 퍼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발코니 확장 합법화 전부터 새시를 달아서 내부 공간처럼 썼다. 언제부터였을까.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였던 마포 아파트(1962년 준공) 입주민도 새시를 달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마포 아파트 옛 사진을 보면 일부 세대는 비어 놓고, 일부 세대는 새시로 막아 써서 6층 아파트의 절반 가까이가 새시를 달았다”며 “엄밀히 공용공간이지만 스스로 확장하는 것에 누구도 말리지 못했고, 행정력이 쫓아가서 계도할 형편이 못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발코니가 밖이냐, 안이냐의 이슈는 반세기 전부터 논란이 됐다. 인구가 집중되는 대도시에서 한 평이라도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발코니를 내부 공간화 했다. 빨래와 장독대가 더 부추기기도 했다. 일상과 아파트 공간의 미스 매치로 일어난 일이다. 너도 나도 발코니에 빨래를 널었는데 나라님들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도시 미화를 위해 빨래가 보이지 않게 해라”는 지시에 발코니에 새시 마감을 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또 아파트 입주민들이 땅 속에 묻지 못한 장독을 발코니에 뒀는데 겨울이 되면 자꾸 얼어 터졌단다. 이를 막고자 발코니에 새시를 달아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실의 경우 바닥 난방이 아니라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다 보니 혹한에는 추웠다. 창호 기밀성도 당연히 떨어졌을 터다. 그래서 새시를 닫았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이렇게 모두 발코니에 새시를 달아 내부처럼 쓰니, 더는 불법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피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부각되지 못했다. 심지어 옆집과 맞닿은 발코니 벽은 유사시 부술 수 있게 경량 벽체를 뒀는데 거기다 수납공간을 짜 넣는다. 결국, 2005년 정부는 발코니 확장 합법화를 결정했다.

 

#외기 공간의 소중함, 집의 문법 또한 달라질 것

코로나 사태로 한국인들은 그야말로 바깥 공간을 그리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검색 키워드를 살펴보면 햇빛, 외출, 산책, 일상, 가족 등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집은 그야말로 모든 행위의 중심지가 된 터다. 장재영 신한카드 빅데이터 사업본부장은 “집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인테리어 관련 소비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대에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외기 공간에 면한 발코니는 어떻게 바뀔까.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상품은 바뀔 거고, 관련 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집의 내부는 좀 작아지더라도, 햇볕 쬐고 바람 쐴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여론이 무르익는 때가 된다면 발코니를 포함해 집의 셈법과 문법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글. 한은화 Han, Eunhwa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중앙일보 기자

‘우리 생활에 더 가깝고, 쉬운 건축’,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해 건축이 쉬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중앙일보 ‘한은화의 생활건축’ 칼럼을 비롯하여 생활 속, 쉽고 재밌는 건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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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실외 공간으로서의 발코니 구현을 위한 건축적 제안

건축담론

해외 도시들의 풍경과 우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 발코니 하나 없는 밋밋한 외관의 아파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실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하나씩 불법 확장되면서 2005년부터 양성화되었고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아파트 발코니는 사라지게 되었다.
건설사들은 애초부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를 내놓았다. 같은 값이면 소비자나 공급자나 발코니를 확장하여 더 큰 실내면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도시의 경관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서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매연, 먼지 등으로 도심지의 외부공간이 쾌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식당이나 카페에 외부 테라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에서 실외로 연결되는 외부공간이 중요해졌다. 도심지의 사무실들도 발코니가 있는 곳이 더 선호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아직도 없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다음의 문제들을 낳고 있다. 첫째, 내부공간은 넓어졌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삶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둘째, 실사용 공간인 발코니 확장 부분이 전용면적에서 제외되어 면적 산정 기준에 혼란을 준다. 세 번째, 밋밋한 아파트 디자인은 세계 10위권 내의 대도시인 서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발코니 확장은 이제 실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코니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세 분의 의견을 구했다.

글. 조성욱 (주)조성욱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3 Architectural Proposal for Balcony Installation in the post COVID era

후지모토 소우가 설계한 라브르 블랑(L`Arbre Blanc)은 ‘흰색 나무’라는 뜻이다. 주거와 사무, 문화 공간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본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발코니다. 나무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뻗은 것처럼, 넓고 다양한 발코니들이 돋보인다. 발코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야외 생활 및 거주민들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위해 계획되었으며, 일부 복층 아파트의 경우 외부 계단을 통해 발코니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 건축사 후지모토 소우가 설계한, 프랑스의 주상 복합 건물이 완공되어 화제에 올랐다. 이 건물은 최대 7.5m 길이의 캔틸레버에 이르는 7∼35㎡ 면적의 다양한 발코니가 건물 입면을 뒤덮어, 마치 잎사귀 가득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디자인되었다. 최근의 전 지구적인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둥그런 건물 입면을 가득 메운 개성 만점의 수많은 발코니들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국내에도 점차 외부 공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발코니를 가진 건물들이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역동적인 각양각색의 발코니들을 설계하고자 하여도 국내의 관련 법규들로 인해, 실제 구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발코니는 서양 건축에서 입면의 일부가 튀어나온, ‘(지붕 없는) 옥외 플랫폼’을 의미하였다. 이는 지상이 아닌 고층의 실내공간에서 외부의 자연을 접하는데 용이하였기에, 초기의 국내 아파트에서도 도입되었다. 그렇게 들어온 발코니 문화는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실내 확장의 교묘한 수단으로 변질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발코니 확장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들은 오랜 세월 ‘태생적으로 옥외공간’이었던 발코니를 ‘실내공간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관련된 법규 및 지침들 역시 ‘발코니의 옥외공간으로서의 성격’ vs ‘보편화 불법 확장의 현실’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먼저 건축법에 명시된 발코니의 정의를 보면, 외벽에 접하여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으로서 발코니의 취지가 드러나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실내 공간화가 가능한, 이중적인 성격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 옥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이처럼 실내로서 편입이 가능해지다 보니, 역설적으로 ‘발코니 관련 기준 해설’에서는 과도한 실내공간화로 인해 ‘발코니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를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도 발코니의 성격을 ‘실내화된 옥외공간이자, 실내·외 사이의 절충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2)

prefabricated balcony 1 © www.wahoodecks.com

면적 산출 방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축법상의 면적은 원칙적으로 벽과 기둥으로 둘러싸인 실내공간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발코니는 사전적 의미로서 외벽 바깥에 위치하는 옥외공간임에도, 언제든지 실내화하거나 지붕이 덮인 공간으로 기정사실화하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면적 산출 기준까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3)

한편으로는 이처럼 일반적으로 실내공간화에 대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염두한 발코니와 달리, 발코니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는 내용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건축물 심의기준’에는 외부 벽면 길이나 벽면 면적에 대비하여, 발코니 설치를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데, (실내공간화가 불가능한) ‘실외공간의 발코니 형태’를 설치할 경우, 규정 완화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4)

이처럼 지금까지의 발코니와 관련된 조항이나 지침들을 보면, 우리 시대 발코니가 처한 이중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내공간으로의 확장을 고려한 기존의 발코니와 달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실외공간으로서 활용도가 높은 발코니를 장기적으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발코니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옥외 성격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발코니 상부에 해당 층의 지붕(또는 지붕 역할을 하는 슬래브)이 있는 경우, 실내공간화가 용이해지므로 옥외 공간형 발코니 타입에는 지붕이 배제된 형태를 전제조건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실외공간’이므로, 건축법 상의 면적 및 관련 기준도 보다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필요하다면 2000년도 이전의 건축법에서처럼 발코니 외곽선으로부터 수직면의 면적 중 1/2이상이 난간벽이나 유리 새시 등으로 덮일 경우, 바닥면적에 산입하는 패널티 방안 등도 복합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5)

prefabricated balcony 2 © www.wahoodecks.com

prefabricated balcony 2 © www.wahoodecks.com

© innotechmfg.com

아울러 개방형 발코니보다는 돌출형 발코니를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개방형 발코니는 외벽의 길이와 발코니의 길이가 거의 동일하면서 얇고 긴 선 형태였으므로 실내공간화가 용이하였다. 이와는 달리, 점 형태의 돌출형 발코니는 필요한 구간에만 설치하여 일부의 실내 공간에서 외부 공간인 발코니로 나올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1년 중 장마나 혹한기를 비롯하여 실외 활동이 어려운 시기가 뚜렷이 존재하며, 난방 문화로 인해 실내외 온도차가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입면을 따라 설치되는 개방형 전면 발코니는 그만큼 개구부의 투명성이 요구되고 발코니로의 진출입을 위한 창호 설치가 다수 필요하기 때문에, 일부 구간만 설치되는 돌출형 발코니에 비해 열효율이나 실외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건물 전체의 열효율과 미관 등을 고려한다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개방형 발코니 보다는 필요 구간에만 설치되는 돌출형 발코니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좀 더 발전시킨다면, 신축 건물만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물에도 손쉽게 부착이 가능한 선 제작 방식(pre-fabricated)의 발코니 시스템 역시 개발이 가능할 수 있다. 기존 건물에도 쉽게 설치가 가능한 이러한 산업화된 방식은 발코니의 다양한 활용법을 개선할뿐 아니라, 유사시 대피가 어려웠던 오래된 건물들의 피난 용도 등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실내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실외공간’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실내·외 사이 전이 공간으로서의 발코니도 이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 발코니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실내 확장의 교묘한 수단으로서 타협점을 찾아왔다. 이제는 본연의 형태에 어울리는 옥외 공간이자, 돌출형 타입의 발코니로서 화려하게 귀환할 시간이다. 다양한 발코니들이 이 땅에도 많이 등장하여, 멋진 입면과 깊이 있는 공간감을 뽐내는 건물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글. 이양재 Yi, Yangjae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이양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다년간의 시공회사와 설계사무소 근무 후,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건축사로서 항상 디자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건축물 시장의 산업화와 신뢰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lavisita@studio-elephants.com

 

 

 

 

 1) 건축법 시행령 제2조 : ‘발코니’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서 전망이나 휴식 등의 목적으로 건축물 외벽에 접하여 부가적(附加的)으로 설치되는 공간을 말한다. 이 경우 주택에 설치되는 발코니로서 국토교통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발코니는 필요에 따라 거실·침실·창고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2) 발코니 관련 기준 해설(건축행정길라잡이中, 국토교통부, p55, 2013)
▶ 발코니로 볼 수 없는 경우
1. 내부와 내부, 외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경우
2. 발코니를 원래 기능대로 사용하였을 경우 또는 확장된 상태를 원상복구하였을 경우에 정상적 주거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3. 외벽에 접하여 부가적으로 설치되지 않고 발코니의 외기와 접하는 부분을 내력벽으로 하여 실내공간화되거나, 설치기준외의 내용으로 외관을 과도하게 변경하여 기존 발코니 외관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

 

3)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 :
3. 바닥면적 : 건축물의 각 층 또는 그 일부로서 벽, 기둥,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구획의 중심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수평투영면적으로 한다.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각 목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
나. 건축물의 노대등의 바닥은 난간 등의 설치 여부에 관계없이 노대등의 면적(외벽의 중심선으로부터 노대등의 끝부분까지의 면적을 말한다)에서 노대등이 접한 가장 긴 외벽에 접한 길이에 1.5미터를 곱한 값을 뺀 면적을 바닥면적에 산입한다.

 

4) 서울특별시 건축물 심의기준 제23조 :
② 제1항에 따라 공동주택의 각 세대별 각 외부 벽면 길이 또는 발코니가 설치되는 벽면의 전체 면적의 30%는 발코니 설치를 지양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로서 발코니의 본기능을 충실히 디자인에 반영하였다고 위원회가 인정하는 때에는 별표6에 따라 세대별 각 외부 벽면길이 대비 발코니 삭제 비율을 차등하여 적용할 수 있다.
1. 주요 입면에 돌출형 또는 확장이 불가능한 개방형 또는 돌출개방형 발코니를 세대별로 설치한 경우. 단, 개방형의 경우에는 안전 등을 고려하여 지상3층 이상 20층 이하에서만 적용한다.

 

5)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 (1999.03.12.) :
나. 단독주택 및 공동주택이 아닌 건축물의 노대 기타 이와 유사한 부분(이하 이 조에서 “노대등”이라 한다)의 바닥은 이를 둘러싼 난간벽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의 면적(공간으로 되어 있는 부분의 면적을 제외한다)이 바닥의 외곽선으로부터 그 지붕 기타 이와 유사한 것에 이르는 수직면(옥내면을 제외한다)의 면적의 2분의 1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바닥면적에 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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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靜中動의 몸짓

Architecture Criticism
Gestures by the Movement in Serenity

평택시 외곽, 끝없이 이어질 듯한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곳. 그 경계에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한 모습의 상가주택이 놓여 있다. 거대한 아파트만 보면서 달려오다 느낀 묵직한 위압감을 누그러뜨려 주려는 듯, 부드러운 수평의 띠를 두른 건물이다.
J상가주택이 위치한 평택의 지형은 지명의 뜻 그대로 땅 전체가 나지막한 구릉이나 평탄한 지대로 형성된 평야이다. 이 중 J상가주택은 그나마 옛 평택의 잔상이 남아 있는 곳에 아파트와 평야의 경계를 가르며 자리 잡고 있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점령군과 마주하며 외롭게 대치하고 있는 건축물……. 작지만 당당하다.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처럼.

 

평택, 기억의 발견
설계자인 오근석, 문호 건축사 중 오근석 건축사는 이곳 평택이 고향이다.
건축주도 오근석 건축사와 고향 친구이다. 건축사와 건축주 모두 논밭이 펼쳐진 고향, 평택이라는 장소에 대한 공통적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무의식 속 기억이 작품 속에 비춰진다. 평택시 대추리의 석양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노을’이라는 동요를 들어보면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라는 구절이 있다. 땅을 마주한 건축사도 푸른 들판의 저녁연기, 끝없이 뻗어있는 평야를 달리던 옛 추억을 그려냈다. 작품 속 수평선은 그의 고향인 평택에서의 기억, 그 넓은 평야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을 발견하는 것인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무의식 속 기억을 발견하는 것이다. 건축은 이성적인 의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성적인 무의식이 건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개인적인 감성이 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감성이 녹아든 건축, 이는 예술이 된다.

 

정중동의 자태
이 작품의 특징은 형태에 있다. 형태는 설계자의 주장이다. 효과적인 주장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근거가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면 그건 단지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일 수 있다. 삶을 담아야 하는 기능에만 충실하다 보면,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

승무

그러나 형태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주장을 펼치는데 더욱더 한계가 없어지고 있다.
이 건축물에서 건축사는 본인의 주장의 옳음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은 듯하다. 획일적인 아파트에 지친 감성이 새롭게 일깨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외관에서 풍기는 감성은 인접한 정적이며 위압적인 아파트들과는 대조적으로 독자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건축물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무기물의 고체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유기물의 액체인 듯하다. 직각의 모서리는 둥글게 말아져 있으며 수평적인 선이 사선으로 흐르면서 중첩된다. 흡사 정중동의 자태로 피어오르는 새벽안개 같다.

“얇은 사(紗)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건물과 마주하며 학창시절 나를 흔들었던 이 시가 떠올랐다. 승무는 정중동의 정수가 가장 잘 표현된 민속무용으로 언어적인 표현 못지않게 몸짓 언어와 같은 비언어적인 기호도 의사소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건물을 바라보며 두 건축사가 주민들과 몸짓으로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작은 움직임으로 J상가주택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흐름의 건축
좀 더 외관을 둘러본다. 곡선들이 기존의 풍경 속으로 자유자재로 가볍게 흘러 다닌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파고가 점차 높아지며 부서지는 순간, 파도는 눈부신 흰색이다. 무거운 아파트 군상들과 대조적인 가벼운 흐름이다.

베를린 카라얀 거리에 있는 필하모닉을 설계한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의 쉬민케 하우스(Schminke House 1930∼1933)가 연상된다. 규칙적이며 자유로운 곡선의 사용은 ‘건축에도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연의 형상과 조응하는 디자인이다.
불규칙한 시골길, 해안선, 구릉지, 생명체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곡선을 차용한 유기적인 디자인에는 자연미가 담겨 있다. 선의 표현에 중점을 둔 건축사는 명확한 선의 통제 아래 빛과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선에 따라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갈리며 빛과 어둠의 덩어리가 같이 흘러간다. 계단은 공간 내에서 역동성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부의 계단도 외관의 흐름을 연장하며 그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 나선형으로 계단을 디자인했다. 계단의 시각적 종착점은 천창이다. 하늘을 향한 갈망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담기는 느낌이다. 오르내리며 다음 공간을 기대하게 하는 전이 공간으로 이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부여하고 있다.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 의한 역동성까지 담았다.

 

부유하는 흰색
건물의 주조색은 흰색이다. 회색 일변도의 아파트와 대조되며 그리고 인근 녹색의 논밭과도 대비되는 흰색이다. 왜 건축사는 흰색을 건물의 주조 색으로 사용했을까?

Schminke House

 

흰색의 건축하면 미국 건축사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떠오른다. 마이어는 흰색이 자연을 수용하는 한편, 자연과의 대비를 통해 조화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색이라고 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더글라스 하우스(douglas house)를 보면 숲속에 둘러싸인 하얀 건물이 숲의 녹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흰색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배타적인 색인 듯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주변환경을 포용하는 색으로 느껴진다.
이 건물의 흰색도 대지 주변의 초록색 논밭을 돋보이게 하면서 아파트와 주변의 무심한 건축물을 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건물의 흰색이 가벼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순응의 색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부유하는 흰색……. 안개가 흐르는 듯 바람결이 느껴진다.

 

유보된 완성

douglas house

모든 건축물은 완성을 뒤로 유보한 미완성이다. 우리는 흔히 사용승인을 받으면 건물이 완성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용승인은 이제 사용할 수 있다는 면허이지 진정한 완성은 아니다. J상가주택은 이제 갓 태어났다. 아직은 새것이라 생경함까지 느껴진다.
사람들이 때를 묻히고, 건물 스스로 나이를 먹어가고 사람들의 기억이 덧씌워지면서 건물은 완성되어 갈 것이다. 시간이 덧입혀질수록 은근한 매력이 발산될 것이다. 이 건물의 강한 아우라와 이미지는 이곳에 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고 그 기억은 하나의 특별한 장소를 만들 것이다.

 

글. 조민석 Cho, Minsuk 단아건축사사무소 대표 · 건축사

조민석 단아건축사사무소 대표 · 건축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단아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시건축상 및 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시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서울시 서초구 건축위원회 위원, 홍익대학교 겸임교수이다. 저서로 ‘실내건축재료’와 ‘건축재료학’이 있다.

cms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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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 공간디자인 혁신사업 ‘학교, 고운 꿈을 담다’Ⅱ

Seoul Education Spatial Design Innovation Project
‘School, Having a Beautiful Dream’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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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인들이 사랑한 세계 자연 유산, 황산 풍경구

Mountain Huangshan feng jing qu, the world natural heritage that was loved by Chinese literary people

황산은 중국 오악(동악태산, 서악화산, 남악형산, 북악황산, 중악숭산) 중에서 중국 문인들 사랑을 독차지했던 곳이자 가장 으뜸으로 정평이 났다. 중국인들은 황산을 가장 사랑하는 산이자 평생에 꼭 한 번은 올라야 할 산으로 꼽는다. ‘오악을 보면 다른 산들이 눈에 안 들어오고, 황산을 보면 오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특히 중국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에게 창강, 만리장성, 그리고 황산은 민족의 뿌리이자 자존심이다. 문명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전설의 인물 황제(黄帝)가 이 산에서 수행을 한 후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황산이란 명칭도 그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황산은 이백을 비롯한 중국 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고 지금도 중국의 풍경화와 시에 자주 등장한다. 연화봉(1,864m), 광명정(1,864m), 천도봉(1,810m)을 중심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77개의 봉우리가 첩첩이 둘러싼 풍경이 압권이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기이한 봉우리, 단단한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 파도처럼 몰려오는 운해가 황산의 자랑이다. 1990년에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됐다.
황산은 시간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변모하는 탓에 진풍경들이 많다. 지면 관계 상 독자들에게 더 많은 경치를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배운정의 새벽상고대

비래석

비래석에서 본 황산석양

서해대협곡(광명전)

서해대협곡

서해대협곡의 운해

시신봉

황산시가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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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건축 07 아야 소피아 박물관

Immortal architecture 07
Ayasofya Museum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제국에 변화가 생겼다. 306년 그리스도인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제국의 서방 정제로 추대된 것이다. 정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향했고 경쟁자들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렇게 로마제국의 서방에서 최고 실력자임을 확인한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정제인 리키니우스와 밀라노에서 만나 상호 간의 동맹을 유지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이 여기서 발표된다. 하지만 이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다. 324년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와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는 로마의 패권을 두고 일대 결전을 벌인다.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가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맞아 육지와 바다에서 모두 승리하자 로마제국을 양분하고 있던 힘의 균형이 깨졌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등극한다.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잔인하게 정적들을 제거해 나간 정치적인 사건들 때문에 기독교적 측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제위 기간 동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펼친 적극적인 기독교 진흥책으로 기독교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 것은 분명하다.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을 대대적으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로마와 같이 원로원과 공공건물을 세우고 새로운 로마 New Roma라고 불렀다. 비잔티움은 그의 사후에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명명되었다. 현재 터키의 도시 이스탄불의 옛 이름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고 황제가 된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는 360년 아버지의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정교회 대성당을 건설한다. 몇 번의 재축과 증축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1700년 간 자리를 지켜온 이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지금의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고, 종교와 인종, 국적을 떠나서 세계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이 대성당이 바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의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다. 지금은 터키어로 아야 소피아(Ayasofya)라고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로 부르기도 한다.

오스만 제국 이전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 www.quora.com

14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메흐메드 2세 © hagiasophiaturkey.com

첨탑(미나렛)이 그려진 옛 그림 © ommons.wikimedia.org

첨탑(미나렛)이 표현된 오스만 제국 시절의 아야 소피아(Ayasofya) © en.wikipedia.org

1차 세계대전 후 아야 소피아(Ayasofya)를 찾은 휘트모어(whittemore) © hagiasophiaturkey.com

회칠을 벗기며 모자이크를 복원 중인 휘트모어(whittemore) © archibibscdf.hypotheses.org

첫 번째 아야 소피아는 360년 동방정교회 대성당으로 건립되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모습과 규모는 알 수 없고, 목조 지붕을 갖춘 건축물로 추정할 뿐이다. 이 첫 번째 대성당은 불운하게도 50년을 못 넘긴다. 404년 총대주교를 추방하는 과정의 충돌로 인한 화재로 소실된 것이다. 10년 만인 415년(테오도시우스 2세) 다시 정교회 대성당으로 재축된다. 두 번째 대성당은 첫 번째 대성당보다 오래 자리를 지켰지만,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532년 반란 중 발생한 큰 화재로 소실되고 만다. 세 번째 대성당은 불과 5년 만에 재축이 완료된다. 세 번째 대성당을 재축한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는 이 세 번째 대성당에 정치와 종교, 모든 면에서 최고의 위상을 부여했다. 종교적으로는 정교회의 제일 격식을 갖추게 했고, 정치적으로는 황제를 상징하는 성당으로 동로마 제국 최고의 건축물로 재축한 것이다. 건축가 안테미우스(anthemius)와 수학자 이시도르(isidore)가 성당 축조에 참여했다. 이 세 번째 대성당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야 소피아(Ayasofya)와 가장 가깝다. 1500년 전인 537년의 일이다.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

황금 모자이크 부분

세 번째 대성당이 완성된 6세기 모습은 성모 마리아, 예수, 기독교의 성자들 그리고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이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었다고 한다. 황금처럼 빛나는 모자이크는 비잔틴 문화의 결정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8∼9세기 성상파괴 운동(iconoclasm) 때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1202년∼1204년 이슬람교의 본거지인 이집트를 공격하기 위해 구성된 4차 십자군은 이집트가 아닌 동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고 약탈한다. 십자군은 비잔틴의 보물과 대성당의 황금 모자이크도 약탈해서 베네치아로 가져갔다. 정교회 대성당은 십자군의 침략으로 1204년부터 1261년까지 약 60년간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된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기 전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한다. 1453년 이전 대성당의 모습은 몇몇 그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네 개의 첨탑(미나렛)이 없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지만,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로 불렸던 15세기 이전의 본래 모습은 첨탑이 없었다.

1453년 동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은 대성당을 크게 변경한다. 외관상으로는 네 개의 미나렛(첨탑)을 증축한다. 겉모습이 달라졌고 지금의 모습과 비슷해졌다. 내부는 총대주교 자택으로 이어지는 연결로를 철거하고,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마흐라브를 추가했다.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때보다는 큰 변화였다. 이름도 고대 그리스어 표기인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에서 터키어인 아야 소피아(ayasofya)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이슬람의 예배공간인 모스크(mosque)로 사용되었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성당이 모스크로 개조되어 사용되면서 수천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예배공간이 증축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도 성당에서 모스크로 바꾸어 사용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비잔틴의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나 장식들은 회칠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17세기 아야 소피아를 방문한 여행자의 기록에서 예수 이미지에 대한 묘사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모스크로 사용되면서 회칠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십자군의 훼손과 약탈과는 달랐던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겠다.

1차 세계대전 후 1923년 오스만 제정이 무너지고 지금의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국가들은 대성당의 반환과 모스크에서 성당으로 종교적 복원을 해야 한다고 터키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성당이 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선 것은 미국인 토마스 휘트모어(Thomas Whittemore)였다. 그는 미국 비잔틴 연구소(Byzantine Institute of America)를 이끌고 있었는데,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자 이스탄불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회칠로 덮여 있던 모자이크 벽화를 복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복구되며 드러난 모자이크 벽화를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1934년 터키 공화국은 이 대성당을 인류 모두의 공동 유산으로서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이슬람 모스크에서 아야 소피아 박물관(Ayasofya Musesi)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가 모두 금지되었다. 천오백 년을 견뎌온 세 번째 대성당은 정교회 대성당에서 로마 가톨릭 대성당으로 잠시 사용되었다가 정교회 대성당으로 복구되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이제 모두에게 열려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동서와 종교를 떠나 모든 세계인에게 고마운 일이다.

아야 소피아(Ayasofya)의 화려한 돔 내부

아야 소피아(Ayasofya) 모습

아야 소피아(Ayasofya) 박물관 내부

최근 아야 소피아는 다시 정치와 종교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2020년 7월 10일 터키 최고 행정법원이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정한 1934년의 터키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하는 결정을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 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아야 소피아를 종교시설인 모스크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이 모자이크에 회칠했던 것처럼 터키 정부가 모자이크에 회칠을 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겠지만,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의 결절점으로서 86년간 박물관이었던 아야 소피아가 종교시설인 모스크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걱정과 우려가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1700년 전 정치적 혼란 속에 두 번의 재축을 거쳐 부활한 아야 소피아. 국가와 종교가 바뀌는 혼란의 역사 속에 성당에서 모스크로 바뀌며 1500년을 이어온 세 번째 아야 소피아는 다시 정치와 종교의 태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부디 이번 시련도 잘 이겨내고 불멸의 건축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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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잉카 03 상상력과 호기심의 도시, 마추픽추를 걷다

Hello, Inca 03
Trekking in Machu Picchu, a city of imagination and curiosity

잉카 제국의 날개, 피삭

성스러운 계곡 투어의 시작점인 피삭은 쿠스코에서 동북쪽으로 32km정도 떨어진 우루밤바강에 자리한 마을이다. 잉카 제국의 식량 창고 영역인 성스러운 계곡은 우루밤바강을 품고서 북으로는 베로니카산(5,680m)과 사우라시라이산(5,818m)을 등지고 남으로는 모라이, 마라스, 친체로 곡창 지대를 두르고 있다.

오늘날 피삭 마을은 에스파냐 정복 군대가 통제하기 쉽게 들판 한가운데 새로 조성한 곳이다. 잉카 제국의 심장이 쿠스코라면 날개는 우루밤바강을 따라 펼쳐진 거대한 농경지다. 잉카인은 마추픽추를 휘감고 돌아가는 우루밤바강을 은하계의 거울이라 믿으며 하늘의 강이라고 불렀다. 이 강을 따라서 잉카인이 다양한 종교적 시설을 세운 이유는 이곳 일대가 제국을 먹여 살리는 곡창 지대였기 때문이다. 해발 3,000m에 이르는 고산 지대에서 성스러운 계곡만큼 기름진 평야는 없었다.

성스러운 계곡은 강변의 평평한 옥토뿐 아니라 강 연안의 산비탈까지 석축을 쌓아올려 계단식 경작지를 개척했다. 테라스 가장 아래쪽에 큰 돌을 놓고 그 위로 작은 돌을 쌓아올린 후 그 속에 자갈, 모래, 마지막으로 흙을 채워 농경지를 만들었다. 빗물이 계단식 테라스 토양 속으로 잘 스며들어 농사짓기에 편리했다.

계단식 테라스는 척박한 산악 지대에서 효율적인 경작지로 활용됐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고 쿠스코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새의 배설물인 구아노를 가져다 흙과 혼합해 퇴비로 사용했다. 청정 지역을 유지하기 위해 가축이 들어오는 것조차 막았고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경작했다. 철이 아닌 나무를 깎아 만든 쟁기의 일종인 농기구를 사용해 땅을 파고 씨앗을 뿌렸다. 오늘날에도 산간 마을의 인디오는 발판부터 손잡이 모양까지 수천 년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은 기구로 농사를 짓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람의 손으로 친환경 작물을 재배하기에는 계단식 경작지가 안성맞춤이다.

피삭 유적지에 있는 인티우아타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 윗부분 산등성이에 기대있는 형태의 피삭 유적지는 크게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테라스가 거대한 소쿠리처럼 박혀 있는 상부 유적지다. 계곡을 따라 오목한 계단식 테라스 위쪽으로 난 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면 가파른 언덕 위로 망루처럼 솟은 유적지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조악한 마름돌쌓기로 쌓아올린, 그 자체로 신전의 모습이다. 가파른 계단을 20분 정도 올라가자 계단식 테라스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피삭 유적지의 장관은 하부 계단식 유적지의 정상에 있다. 상부 계단식 테라스 위로 난 서남쪽 절벽 길을 따라 작은 동굴을 지나치자 한눈에 들어온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 슬아슬한 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자 인티우아타나(태양을 잇는 기둥)로 불리는 태양 신전이 나타난다. 쿠스코 코리칸차의 정교한 돌쌓기 만큼이나 정밀한 잉카 신전 유적지가 산등성이에 누워 있다.

붉은 화강석이 기하학적 배치로 놓인 신전은 남북 방향으로 축을 유지하고 있다. 기하학적 평면의 중앙에 자연석을 둘러싼 인티우아타나의 돌기둥은 허물어져 본래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나머지 벽체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각각의 공간을 장방형으로 나누었다. 마추픽추 피라미드 상부에 있는 인티우아타나처럼 이곳의 인티우아타나도 태양의 절기를 측정하는 천문관측소로 추 정된다.

잉카인이 중요한 농경지마다 천문관측소를 하나씩 설치해 절기와 때를 정확하게 확인했다는 증거다. 정교하게 마름질한 돌로 빈틈없이 쌓아올린 인티우아타나. 정교한 돌 블록이 마치 공장에서 마감한 듯 보인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각각의 공간을 에워싼 벽체는 모두 사다리 꼴로 반듯하고, 출입구 너머로 벽면의 사다리꼴 벽감은 자로 잰 듯 정교하다. 높은 언덕 위에다 치밀하고 정교한 돌쌓기를 했다는 것은 이곳이 잉카 시대에 신성한 도시였다고 말해주는 증거다.

피삭의 인티우아타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모습.

쿠스코는 지상의 신 퓨마의 형상으로, 피삭은 콘도르의 형상으로, 오얀타이탐보는 야마의 형상으로, 그리고 마추픽추도 콘도르의 형상으로 지었다고 한다. 피삭 유적지를 작은 마추픽추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인티우아타나 유적 때문이다.

마추픽추의 인티우아타나처럼 피아노 크기 만한 지주석 위의 돌기둥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위용만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상부 테라스 정상에 있는 망루 유적지를 콘도르의 머리라고 볼 때 하부 테라스 경작지 상부에 있는 인티우아타나는 콘도르의 가슴에 해당한다.

 

애틋한 전설이 숨어 있는 오얀타이탐보

수많은 잉카의 전설을 품고 있는 오얀타이탐보.

피삭 유적지를 벗어난 버스는 성스러운 계곡을 따라 덜컹거리는데 창 밖은 절경이다. 잉카 시대에 신성한 강으로 불리던 우루밤바강이 오랜 세월에 걸쳐 거대한 협곡에 옥토를 실어 날라 넓은 평야를 선물했다. 신성한 계곡이 구불구불 넓은 평야 지대를 길게 안고 나타난다.

또 한참을 덜컹거리고 나서야 마주보고 있는 가파른 두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오얀타이탐보가 나타났다. 오얀타이탐보는 1536년 망코 잉카(1515~1545)가 이끄는 잉카 저항군이 쿠스코를 공격한 후 이곳으로 이동해온 피사로의 에스파냐 정복 군대를 크게 무찌른 곳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잉카의 곡창 지대인 성스러운 계곡을 지키는 요충지로서 쿠스코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쿠스코에서 매우 중요한 군사 도시인 오얀타이탐보까지는 곧장 도로가 연결됐기 때문에 지배층이 많이 살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쿠스코에서 오얀타이탐보로 버스나 자동차로 이동해 유적지를 돌아본 다음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향한다. 3박 4일의 정통 잉카 트레킹도 여기서 장비를 마련하고 출발한다.

오얀타이탐보는 잉카 시대부터 쿠스코와 마추픽추와 피삭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탐보는 잉카 시대의 역찰을 가리킨다. 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와 칠레 북부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잉카 제국의 주요 길목을 지키던 곳에는 어김없이 탐보가 있었다. 그곳에서 낮에는 소라로 만든 푸투투와 거울로, 밤에는 봉화를 이용해 통신했다.

오얀타이탐보 상부 유적으로 가는 입구.

이곳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하나 있다. 오얀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 오얀타이는 역찰을 지키던 성주였다. 인티라이미 기간에 오얀타이는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두 사람은 왕족끼리만 결혼해야 하는 잉카 법에 따라 결혼할 수 없었다. 공주는 쿠스코의 감옥으로 보내지고 귀족 신분이던 오얀타이는 지금의 오얀타이탐보로 피신했으나 쿠스코에서 달려온 군사에게 곧바로 체포됐다. 하지만 이들의 애틋한 사연을 들은 잉카 왕은 두 사람을 사면해 신방을 차려주었다고 한다.

오얀타이탐보는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열린 작은 계곡을 마주 보며 동서로 솟아오른 산줄기 사이에 잉카의 유적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돌출한 산줄기에 층층이 걸린 테라스 사이로 신전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날아오를 듯 놓여 있다. 절벽 위 성벽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군데군데 있는데, 그것을 ‘니초’라고 한다. 에스파냐 정복 군대가 이 성벽을 허물고 그 기초 위에 중세식 건물을 지은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리한 오얀타이탐보는 잉카 시대의 성곽 도시로, 거대한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안덴’이라는 계단식 밭이 층층이 건설돼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 건설한 열일곱 개의 계단식 경작지를 따라 오르면 그 정상에 거대한 돌로 만든 태양 신전이 신성한 계곡을 굽어보고 있다. 잉카 시대 마을을 관통하는 석조 관개 시설과 뉴스타(태양의 처녀라는 뜻)의 목욕탕에는 여전히 맑은 물줄기가 흐른다. 방어용 요새와 계단식 경작지 그리고 비상식량을 저장했던 창고가 남아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은 테라스 상부에 자리한 태양 신전이다.

오얀타이탐보 테라스 상부에 솟아 있는 태양 신전.

테라스 상부에는 여섯 개의 태양 신전 벽이 기념비처럼 꼿꼿하게 서 있다. 거석 여섯 개가 15도 경사로 기울어져 있고 돌과 돌 사이를 요철 모양으로 가는 돌을 깎아 붙여 거대한 수직 돌과 돌 사이를 띠처럼 기워 놓은 흔적이 있다. 돌 하나의 무게만 40톤에 이르는데 모두 6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이곳 정상까지 옮겨온 것이다.

어떻게 그 큰 돌을 이곳까지 끌어왔을까. 말과 소도 없고 바퀴도 없던 시절에 통나무 사다리를 이중으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육중한 바위를 얹은 뒤 수많은 사람이 줄을 당기고 지렛대로 밀어서 운반했을 것이다.

최근 쿠스코의 한 축제 때 이러한 방법을 재현해보았는데, 하루에 옮길 수 있는 거리가 겨우 몇 m에 불과했다. 거석에는 큰 돌을 옮길 때 끈을 매던 돌출 부분이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에스파냐 군대가 이곳에 쳐들어왔을 때조차 오얀타이탐보에서는 신전 공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유적지 정상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더미는 공사가 갑자기 멈추어진 사연을 숨기고 있다.

 

과학적 실험 정신이 새겨진 모라이

모라이, 마라스, 친체로는 성스러운 계곡의 우루밤바강을 북쪽에 모자처럼 눌러 쓰고 남서쪽 황무지 벌판에 줄지어 서 있다. 쿠스코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모라이 유적지는 마라스 에서 서쪽으로 9km 정도 떨어진 넓은 언덕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다.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 동심원 테라스가 층층이 박혀 있다.

테라스의 중앙에서 신비한 기운이 몰아치는 모라이.

붉은 들판을 가로지르자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처럼 절벽 아래 작물 시험 경작지가 기하학적 모양의 분화구처럼 누워 있다. 잉카 제국을 유지하는 첫 번째 요소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 이며, 그 다음이 종교적으로 통합하고 군사적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모라이 유적지는 잉카 시대의 종묘개량연구소라고 할 수 있다. 동심원 모양의 계단식 테라스가 마치 우주선 기지처럼 기하학적 모습으로 있다. 해발 3,000m 고원 지대의 척박한 땅에서 잉카의 신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는 곳이다. 제국의 건설은 물리적 영토 확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민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제국의 생존 조건이었다. 황량한 고원 지대에서 최대한 많은 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로마의 원형극장을 닮은 계단식 경작지는 크게 네 영역으로 나뉘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쪽 입구에 있다. 거대한 표주박 모양의 12층의 계단식 경작지 안에 마치 분화구가 놓여 있는 것 같다. 우주인이 칼로 태양을 담을 그릇을 정밀하게 조각해놓은 모습이랄까.

잉카인들은 둥근 원형의 중심과 가장자리의 온도 차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태양의 눈을 닮은 모라이 유적지에는 과학적 비밀이 숨어 있다. 원래부터 분지인 곳에 계단식 테라스를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우기에 빗물이 모이면 남은 물은 흘려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배수로는 어떻게 마련했을까. 인위적인 배수 시스템은 없었다. 그 대신 원형 구조물의 지하에 천연 동굴이 있다.

잉카인은 모라이 종묘개량연구소에서 대지의 고도와 방향에 따라 태양 빛이 상호 작용하는 모든 원리를 실험했다. 태양을 닮은 둥근 형태는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햇빛을 받는 조건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안데스의 모든 장소와 대지의 조건을 원형 테라스 안에 옮겨놓은 것이다. 거대한 동심원의 분화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잉카의 정신 세계와 닿아 있다. 동심원 테라스의 높 은 곳과 낮은 곳의 온도 차이는 15도 정도라고 한다. 대지나 해수의 온도가 1도만 높아도 생태계는 엄청나게 변한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동심원 테라스 속에 하늘의 이치에 따라 땅의 조건에 맞는 농경법을 개발한 잉카인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잉카인은 씨앗을 적당한 테라스에 맞추어 심고, 차차 위쪽으로 옮겨가며 추위와 같은 다양한 조건에 적응시켜 품종을 개량했다. 지금도 페루의 감자가 3,000종이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테라스는 빗물을 흡수하고 내뿜으며 전체 대지를 고루 적시고 남은 물은 지하의 천연 동굴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됐다. 각 층은 대략 사람 키 정도의 높이인데, 5도 정도 기울어지게 석벽을 쌓아 마감했다.

테라스 석벽에 사선으로 돌출된 계단

각 테라스를 이동할 때는 석벽에 사선으로 설치된 돌출 계단을 이용한다. 사람이 내려가고 올라오는 모습이 거대한 장치 속에서 유영하듯 몽환적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동심원이 반복돼 심리적인 안정감과 동시에 태양신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동심원 속으로 들어갈수록 신성한 공간으로 진입하는 긴장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러한 긴장과 부드러움은 신전에서 느끼는 일종의 경외감과 닿아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가장 아래쪽 원의 중심 공간으로 시선이 모아지며 그곳에서 직감적으로 태양의 기운을 느낀다. 실제로 잉카인은 거대한 동심원의 중심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믿었다. 해마다 8월 1일이면 이곳에서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감사를 드리는 농경 의식인 와타칼랴 축제가 열린다. 잉카의 전통에 따라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8월에 파차마마에게 각종 제물을 바치며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다.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는 4단의 돌출 계단은 현대 건축사가 즐겨 쓰는 노출 콘크리트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 계단보다 천 배는 더 운치있고 아름답다.

 

잉카 문명과 그리스도가 만난 친체로

친체로는 마라스의 동남쪽 우루밤바강 남쪽 언덕에 위치한다. 쿠스코에서는 28km 정도 떨어져 있다. 잉카 시대의 식량 창고이자 거점 도시로서 신전이 있었던 친체로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 펼쳐진 거대한 농경 테라스 남쪽 언덕에 우뚝 자리한다.

잉카의 신전 대신에 우뚝 서 있는 친체로 성당

잘 정비된 잉카의 옛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서자 세 개의 하얀 아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위로 붉은 오지기와지붕을 쓴 친체로 성당이 앉아 있다. 직사각형 광장의 입구를 따라 원주민이 형형색색의 잉카 전통 수제 품을 팔고 있다. 일요일에는 성당에서 케추아어로 미사가 진행되고 미사가 끝난 뒤에는 광장에서 원주민 시장이 크게 열린다.

이곳 성당은 쿠스코의 주요 건물과 마찬가지로 잉카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세운 것이다. 성당 내부는 잉카 원주민이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검푸른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박공 아래 아치 속에 자리한 재단과 그 벽에 그려진 이미지는 모두 지진의 신이라 불리는 검은 피부를 가진 예수나 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미지 속 인물은 모두 잉카 원주민의 형상이다.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성당 밖에 세워진 돌 십자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세워진 장식 없는 십자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잉카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십자가 상 아래 네 겹의 돌 기단은 잉카인이 대지의 어머니 신으로 섬기는 파차마마의 상징이며, 십자가 한가운데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조각과 그림은 그리스도교와 태양신이 융합된 싱크리티즘의 흔적이다. 잉카인은 그들의 문화 위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마치 잉카의 석벽 위에 그리스도교의 성소를 지었듯이.

 

글. 김희곤 Kim, Heegon 건축사

김희곤 건축사

마흔이 넘어 스페인으로 떠나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돌아보았다. 스페인 마드리드건축대학교에서 복원과 재생건축을 전공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명하며 성균관대학교,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건축대전 심사위원, FIKA 국제위원회 자문위원, 2017 UIA 서울 유치위원으로 활동했다. 건축은 미래로 열린 창이자 창조의 근원이라는 믿음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세계의 문화유적과 도시 답사를 계속하며 글쓰기와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스페인은 건축이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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