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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공공’은 양날의 칼이다

In architecture, ‘public’ is a double-edged sword

공공사업은 다양한 가치를 지닌다. 사회적 취약점을 보완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행할 가치가 있으나 민간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선투자 사업에 공공재원을 투입하기도 한다. 건축 분야에서도 공공사업은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공건축의 사업 진행과 예산 집행 과정, 생산성이 비효율적일 경우다. 이는 비단 공공건축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 공공사업에서 예산 수립이나 재정 집행 등의 과정 또는 결과가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종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성과관리 시스템에서는 평가기준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전문가들은 평가기준을 마련해 이 시스템을 잘만 활용하면 기존의 문제를 보완하고 공공재정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피드백과 개선의 과정이 적용되고 발전되는 과정이 반복될 때 성과관리 시스템은 그 빛을 발한다. 이 과정에서 숫자는 여러 증거가 되는데, 이때 자료포락분석법(Data Envelopment Analysis, DEA)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투입 변수와 산출 변수로 비효율성을 분석하는 이 방법은 집행과정에서 노출되지 않은 간접비용 또는 기회비용(hidden cost)까지 파악할 수 있어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정량적 분석과 자료를 기초로 마련된 결정이 실제 건축 영역에 적용되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흥미롭게도 이들이 실제 건축 영역에 적용되면 정성적 가치들로 전환되면서 여러 충돌이 발생한다. 이는 유사 분야인 건설이나 토목에 적용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결괴다. 토목 영역에서는 정량적 자료들로 분석된 가치를 적용하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반면 건축에서의 가치는 그와는 다른 차원이라서 수치적 데이터들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예산 집행 과정에서 ‘건축의 완성도’를 양보하거나 작품성을 단순화시킨다면 오차를 줄이고 사업을 진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공공건축이 실천 단계에서 이런 가지치기를 당해 만들어지고 있다. ‘건축물이 지어졌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 과정이 세금을 절약하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건축물이 완성됐더라도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는다면 건설비용을 절약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책 당국이나 공공사업을 진행하는 발주자들은 심각하게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건축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무엇이 ‘좋은 공공건축’이며 어떻게 완성해야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공공건축’이 될지 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해야 한다.
분명 세금을 투입해서 집행하고 진행하는 공공사업은 민간보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분야다. 때로는 당장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거나 영원히 경제적 이익을 남길 수 없는 사업을 시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단지 저렴하게 건설하고 건축 비용을 절약한 대신 십 년도 못 가 허물게 된다면? 준공된 지 일 년도 안 돼서 여기저기 개보수를 하거나 뜯어 고쳐야 한다면? 심지어 운영 유지에 드는 과다한 비용 때문에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절약한 세금은 결국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같은 비용이면 공공건축보다 민간건축의 결과물이 훨씬 더 완성도 있고 매력적이다. 이미 그 사례를 우리는 수도 없이 확인했다. 그렇다면 ‘공공건축’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완성도 있는 멋진 공공건축을 만들거나, 아니면 효율적으로 정량적으로 계산한 예산을 민간에게 외주를 줘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후자 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시행 속도도 빠를 것이다.
비용 또한 당연히 공공 직 발주보다 절약될 것이고, 품질이나 내용 역시 훨씬 좋아질 것이다. 솔직히 결론을 말하면, 공공 직 발주는 줄이고, 국가 기밀급이 아니면 민간 외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야 품질과 가치지향성을 높이면서 보다 저렴하게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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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정겨움의 도시

Suncheon, the city of friendly people

순천은 도시이름이 정겹다. 도시풍경도 정겹다. 아는 분에게 역 뒤편에 숙소를 소개받았다. 주택을 개조한 깨끗한 집에서 하루를 잘 묶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깬 병을 꽂아 월담을 경고하는 옛스런 블럭 담장 앞에 텃밭이 있다. 주변에 성긴 잡초를 배경으로 작은 텃밭이 이쁘다. 지어질 때는 집장사들이 찍어내듯이 지었을텐데 주택 건물의 부분들이 섬세하게 살아있다. 아치를 튼 문, 뚤린 마름모 큰 것과 작은 것을 반복해서 문양으로 사용한 2층 테라스 난간, 문 위 인방 부분의 4개의 돌출 장식. 커다란 대야를 얹은 장독과 빨간색의 넝쿨 장미 꽃더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흘린듯 다듬은 골목 풍경에 여행자는 즐겁다. 순천만국가정원을 다녀왔다. 파라솔 밑의 벤치 앉아 호수정원을 본다. 건축가이면서 비평가로 알려진 찰즈 젠크스가 설계한 호수 안에 순천의 봉화산을 상징한다는 언덕이 보인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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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젊은 건축사의 ‘공공건축하기’

건축담론

매년 상당히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되어 소규모 리모델링 프로젝트부터 대규모 신축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공공건축이 실행된다. 뛰어난 계획안으로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기대가 큰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국민들에게 최종 선보이는 준공건물은 기대 이하였던 경우가 많다. 간혹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과가 유난히 좋았던 작품의 경우 건축사의 끊임없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왜 공공건축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예산임에도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 공공건축 용역에 수많은 인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부분들이 문제인가? 최근 들어 놀랄만한 결과물을 보여 주고 있는 중국의 공공건축을 보면 우리도 하루빨리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정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건축사들이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설계공모 당선 후 발주처에 의해 원안은 심하게 난도질당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자문과 심의만 존재한다고. 계획안에서 실시설계까지의 과정은 기존 설계를 더 구체적으로 다듬고 현실화시켜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의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도는 묵살된다. 기존 프로세스화 된 관공서 매뉴얼에 트집 잡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만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자문과 심의를 통해 기존 계획안보다 더 좋게 발전되기는커녕 이것저것 삭제되고 수정되어 예전보다 한참 못 미치게 다운그레이드 된다. 늘어나는 용역기간과 추가업무 요청, 건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발주부서의 무리한 요구 및 불합리한 인증 절차 등도 발생한다. 하물며 수의계약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일명 설계비 후려치기를 통한 저가 발주로 국가 스스로 공공건축물을 싸구려로 전락시킨다.

공공건축 분야는 오랜 시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 속에서도 많은 건축사들은 공공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건축사들 스스로 약자가 되지 않아야 하며 정확하고 일관되게 명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공공건축물은 눈 먼 돈으로 진행되는 주인 없는 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축계에서 자체적으로 나서 공공건축 전담 청을 설치하여 형식적 심의 및 자문은 폐지하고, 억지스러운 각종 인증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월간 건축사 10월호에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글. 이중희 투엠투건축사사무소·건축사

 

01 Young architect’s ‘public building’

사무소를 개소한 지 5년 차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여전히, 초기의 믿음을 지키며 일하고 있다. 그것은 건축설계를 통해 공공건축과 민간건축 두 영역의 특성과 장점을 선순환시키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고 스스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믿음이다.

개소 당시, 서울시 공공건축가에 발탁돼 다양한 소규모 공공건축설계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찾아가는 동사무소 리모델링, 도시건축센터 라운지 리모델링, 서계동 빌라집 리모델링 등이 그것이다. 교육청에서 기획하는 ‘꿈을 담은 교실’과 메이커스페이스 리모델링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설계공모를 통해 작년에 준공한 중학교 체육관 증축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구청로비 증축설계의 실시설계 납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외에도 당선작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수차례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지명 및 일반공모 형식으로 참여한 경험도 있다. 작은 규모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몇 차례 경험하면서 2020년 한국땅에서 ‘제대로 공공건축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매순간 느낀다. 현장의 어려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설계자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지켜내기 힘든 부분은, 제대로 된 설계비를 받는 것이다. 설계계약을 할 때, 발주처에서 설계비 산정근거를 공개하지 않거나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임의로 산정한 설계비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들어 건축설계에 요구되는 부가적인 업무가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그에 따른 추가 용역비를 산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혹은 전체 공사비에 대비해서 설계비가 산정되는 점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공사비를 적게 산정하고, 설계 계약 후 공사비를 증액하는 악의적인 경우도 경험해 보았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의 설계대가 산정근거는 기본설계비의 1.5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본설계가 필요 없다고 치부하고 기본설계비보다 더 적은 액수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형사무소가 아닌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경우엔 계약 상 많은 의무사항들에 대한 법적 검토가 쉽지 않고 대응방안의 프로토콜도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발주처와 갈등을 겪을 때, 건축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갈등을 중재하거나 해결방안을 조언해 줄 대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게 어찌어찌 계약을 하고 나면 공공건축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차례의 심의·자문·심사 프로세스가 남아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공공건축이다보니, 설계자와 발주처가 단독으로 사업의 취지와 진행을 폭주하지 못하도록 견제장치를 두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설계자로서 여러 차례 이런 자리에 참여해보니 고압적인 분위기라 취조당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설계자가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몰아붙이고, 질책하고, 훈계를 한다. 건축설계는 세부와 전체를 모두 생각하며 반응해야 하는 포괄적(holistic)이면서 조심스러운 작업이지만, 외부자들은 그 당시 문제되는 일부 사항만을 고려해 난폭하게 설계안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전문가인 설계자가 공모전이라는 절차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설계권을 위임받은 사실을 잊고, 마치 자신들의 단독주택을 설계하듯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의견을 반영하라는 발주처도 있었다. 견제를 위해 설정한 촘촘한 프로세스는 최악의 건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그것으로 최선의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발생되는 수많은 보고와 그에 따른 변경절차를 거치다보면 내실 있는 설계에 집중하기 어렵다. 행정업무를 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고 만다.

최근 들어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법적으로 설계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설계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는 그러한 설계자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믿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수차례의 설계 검토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자가 기술적인, 시공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받고 싶을 때는 슬프게도 공식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예를 들어, 주민센터를 처음으로 설계해보는 경우, 주민센터 공공건축의 지식과 노하우가 공유돼 있지 않은 탓에 설계자가 알음알음 스스로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국에 이미 수천 개의 주민센터가 지어졌음에도 말이다. 설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은 하자로 남거나 혹은 시공 중 설계변경을 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치루는 결과로 이어진다.

심의·자문·심사 등 외부 견제용 프로세스가 설계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설계자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경험을 공유하고 격려해주는 절차로 바뀐다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설계자로서 가장 좌절할 때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시공사를 만났을 때다. 소규모 공공건축에선 드문 경우는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가격입찰-형식적 공정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실질적 공정성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한다. 공공건축에 선정된 시공사는 민간공사의 시공사처럼 현 공사의 품질관리가 다음의 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쟁력이 확보되기 어렵다.

같은 맥락으로, 일정 공사비 이상의 공사에서 4천만 원 이상 공사물품을 사용하거나 가구 및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을 위해 조달청 등록 제품을 쓰도록 되어 있다. 조달청 등록 제품은 경쟁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보니,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또한 몹시 낙후된 조달청 구매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적정한 제품을 검색하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설계 상 꼭 필요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원하는 제품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설계자가 특정제품을 밀어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도서에 제품의 이름을 표기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작 가구는 공사비처럼 객관적인 금액을 정해놓기가 어려운 품목이고 만듦새에 따라 단가가 천차만별이지만 설계자는 좋은 가구제작자를 선정할 방법이 없다.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알 수 없으므로, 평균 혹은 최소의 제작비용을 산정해 내역을 제출할 뿐이다.

좋은 건물을 만들고 싶다는 설계자의 사명감 하나로 이러한 과정을 헤쳐 나가기에 그것들은 여러모로 버겁고 귀찮은 절차들이다. 그렇게 해서 도서를 납품하더라도 좋은 시공자, 제작자를 만나는 것은 그저 운에 맡겨야 할 뿐이다. 형식적인 공정성을 획득하고자 결과물의 퀄리티가 하락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혹은 열심히 잘 하는 업체에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시공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입찰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이나 PQ방식의 계약(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은 자칫 부정한 계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명예시스템(honor system)’이 작동하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나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현상은 현장에서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설계자와 발주처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시와 불신을 근간으로 하는 공공건축 시스템은 여전하고, 그것은 설계자가 능동적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건축사로서 맡은 일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건축의 퀄리티를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지나, 건축이 문화로 자리를 잡고 또 건축사가 우리 사회의 문화를 담당하는 전문가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는 그날을 위해.

 

글. 조윤희 Cho, Yoonhee 구보건축사사무소·건축사

조윤희 구보건축사사무소·건축사·미국 건축사

조윤희는 2015년부터 구보건축을 설립하여 건축설계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와 MIT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의 이로재와 미국 보스턴의 Howeler+Yoon Architecture에서 실무경험을 쌓아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시 만들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울대, 성균관대에서 설계스튜디오를 운영했으며, 2016년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yoonhee@gu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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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공공건축 설계공모제도의 현황과 과제

건축담론

매년 상당히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되어 소규모 리모델링 프로젝트부터 대규모 신축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공공건축이 실행된다. 뛰어난 계획안으로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기대가 큰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국민들에게 최종 선보이는 준공건물은 기대 이하였던 경우가 많다. 간혹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과가 유난히 좋았던 작품의 경우 건축사의 끊임없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왜 공공건축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예산임에도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 공공건축 용역에 수많은 인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부분들이 문제인가? 최근 들어 놀랄만한 결과물을 보여 주고 있는 중국의 공공건축을 보면 우리도 하루빨리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정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건축사들이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설계공모 당선 후 발주처에 의해 원안은 심하게 난도질당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자문과 심의만 존재한다고. 계획안에서 실시설계까지의 과정은 기존 설계를 더 구체적으로 다듬고 현실화시켜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의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도는 묵살된다. 기존 프로세스화 된 관공서 매뉴얼에 트집 잡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만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자문과 심의를 통해 기존 계획안보다 더 좋게 발전되기는커녕 이것저것 삭제되고 수정되어 예전보다 한참 못 미치게 다운그레이드 된다. 늘어나는 용역기간과 추가업무 요청, 건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발주부서의 무리한 요구 및 불합리한 인증 절차 등도 발생한다. 하물며 수의계약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일명 설계비 후려치기를 통한 저가 발주로 국가 스스로 공공건축물을 싸구려로 전락시킨다.

공공건축 분야는 오랜 시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 속에서도 많은 건축사들은 공공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건축사들 스스로 약자가 되지 않아야 하며 정확하고 일관되게 명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공공건축물은 눈 먼 돈으로 진행되는 주인 없는 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축계에서 자체적으로 나서 공공건축 전담 청을 설치하여 형식적 심의 및 자문은 폐지하고, 억지스러운 각종 인증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월간 건축사 10월호에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글. 이중희 투엠투건축사사무소·건축사

 

02 Current status and tasks of Public Building Design Competition System

들어가며

공공건축물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되어 지역의 자부심을 형성하는 정책자산으로 좋은 설계자 선정을 위해 설계 품질로 경쟁하는 설계공모 제도가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2019년부터 2020년 6월까지 1,205건의 공공건축 사업의 발주방식으로 보더라도 전체의 1,117건(92.6%)이 설계공모방식을 통해 발주가 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 이후 그간의 건축 설계발주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령」 시행(2020.1.16.)으로 설계공모 우선 적용 대상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사업규모에 따른 다양한 설계공모 방식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제도 도입 이후 6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설계발주 제도의 재평가와 보완방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2014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제정에 따라 도입된 설계발주 제도의 운영 현황을 진단하여 그간의 성과와 한계를 도출하고, 설계공모 의무 적용 대상 확대 등 새로이 도입되는 설계발주 제도를 고려한 설계발주 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 시행 이후의 설계공모 제도 현황을 분석하고 설계공모 방식의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운영현황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제도 개선방안을 제안한다.

현황 분석

설계공모제도의 현황에 대한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은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령」 제17조제5항에 근거하여 2014년 6월에 제정되었다. 이후 2017년 7월에 일부 개정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설계비 감액지급 관행을 개선하고 심사과정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등 보완이 필요한 사항을 개선하여 공정한 설계공모 질서를 확립, 신진건축사 제한공모 근거를 마련하여 창의적인 디자인을 유도하고 설계의 질을 높여 공공건축의 발전 및 공간문화 창조에 기여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2019년 4월에는 그간 제도 운영 과정에서 제기된 심사위원 선정, 심사과정 등 공모절차의 투명성 및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2015년도 1월부터 2019년도 6월까지 총 4,743건의 사업을 대상으로 설계공모 운영 실태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계공모의 종류는 일반설계공모가 전체 사업 건수의 58%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안공모의 경우는 14%를 차지하였다. 그 외에 입찰 및 기타 계약건수도 각각 25%,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설계공모 건수가 증가되고 있으며, 일반설계공모 건수 대비 제안공모 건수가 늘어나고 있고, 입찰 건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심사위원 명단 사전공개 여부의 경우는 전체 사업의 28% 수준에 그쳤으며, 나머지 사업은 설계공모 공고 시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추후에 공개하거나 미공개하고 있다.
공모 종류로 나누어 살펴보면 일반설계공모에서 심사위원을 공개하는 비율이 24%로 제안공모 43%보다 낮게 나타났으며 연도별 변화추이를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심사위원 명단 사전공개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설계공모 제출물의 경우 지침에 따라 설계공모 제출물을 설계도면과 설계설명서로 한정하거나 이를 합쳐서 하나의 적정수준에 제출물을 요구한 사업은 전체의 24%로 나타났으며 나머지 76%는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 사업규모로 나누어 살펴보면 5~10억 원 사이의 사업이 준수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2~5억 원 미만의 사업 및 10억 원 이상의 사업은 적정 제출물보다 과다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연도별 추이를 보면 점차적으로 준수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공모비 보상은 사업규모가 커질수록 낮은 비율로 책정하고 있으며 일반공모의 경우 평균 4천만 원(5%), 제안공모의 경우 평균 1천1백만 원(2%)정도로 나타났다. 제안공모 과제의 경우 제안공모 418건 중 제안공모의 취지에 부합하는 적절한 기술제안 과제를 요청한 사업은 전체 사업 중 78% 정도를 차지하였다. 나머지 22% 사업에서는 제안공모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도면을 요구하거나 또는 반대로 명확한 과제를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일정은 일반설계공모의 경우 공모일로부터 심사일까지 총 공모기간이 평균 78일이 나왔으며 제안공모의 경우 총 공모기간은 평균 40일이 나왔다.

설계공모 제도 개선 관련 관계자들의 주요 의견2)으로는 설계공모 우선적용대상의 적정 범위, 건축 기획 등 사전업무 참여 업체의 설계공모 참여 제한 여부, 심사위원 선정 및 구성 방식에 대한 개선, 심사위원 제척·회피·기피절차 보완, 단일안 응모 시 심사허용,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심사결과 및 심사과정 공개 강화 및 확대, 제출도서의 표현방식 등에 대한 개정 요구가 있었다. 사업수행능력 평가방식 관련 관계자 주요 의견으로는 설적 산정 시 최소 참여 기간 기준 적용, 유사 용역 실적 산정기준 개선, 참여 건축사(보)의 경력 및 실적 평가에 대한 찬반, 신용도 평가 기준 하향 조정, 발주기관마다 상이한 업무 중복도 평가 기준 일원화, 공동도급방식에 대한 산정기준 개선, 적정 수준의 제출물 요구 및 평가 문제 개선 등을 언급하였다.

 

제언 사항

위의 제도 현황분석 및 실태조사와 함께 관계자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설계공모방식에 대한 개선 방안 제언은 다음과 같다. 제안공모는 설계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도입된 본래의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리모델링 사업이나 주민이나 관계자등의 협의를 거쳐 계획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사업으로서 공모안의 디자인 우수성 보다는 설계자의 대응능력 또는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경우’로 한정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설계도면의 제출을 일체 금지하도록 하여 일반설계공모의 변형방식으로 오용하지 않도록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제안공모방식의 적용 대상이었던 소규모 사업은 간이공모라는 새로운 종류의 공모방식을 신설하여 발주기관 및 설계자의 부담을 경감하는 측면에서 제출물은 설계도면으로 한정하고 공모기간은 공모공고일로부터 작품 제출까지 30일 이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정한 참가자격을 사전에 부여하는 Long-List 방식 또는 Short-List 방식 도입을 통해 공모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공모 참여 비용을 낮추는 제한공모 및 지명공모 방식에 대한 추가고려도 가능하다.

글. 박석환 Park, Seokhwan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원

박석환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협동과정도시설계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희림건축사사무소 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건축연구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공공건축지원센터 설계발주담당 자문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미세먼지 민감군을 위한 공공건축물 시설계획기준 연구, 공공건축 설계용역 발주제도의 현황과 과제, 생활밀착형 공공건축물의 거버넌스 기반 이용자 참여디자인 및 제도 개선방안 연구 등이 있다.
shpark@au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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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좋은 공공건축을 위한 첫 번째 과제 : 건축설계공모전

건축담론

매년 상당히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되어 소규모 리모델링 프로젝트부터 대규모 신축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공공건축이 실행된다. 뛰어난 계획안으로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기대가 큰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국민들에게 최종 선보이는 준공건물은 기대 이하였던 경우가 많다. 간혹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과가 유난히 좋았던 작품의 경우 건축사의 끊임없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왜 공공건축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예산임에도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 공공건축 용역에 수많은 인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부분들이 문제인가? 최근 들어 놀랄만한 결과물을 보여 주고 있는 중국의 공공건축을 보면 우리도 하루빨리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정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건축사들이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설계공모 당선 후 발주처에 의해 원안은 심하게 난도질당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자문과 심의만 존재한다고. 계획안에서 실시설계까지의 과정은 기존 설계를 더 구체적으로 다듬고 현실화시켜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의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도는 묵살된다. 기존 프로세스화 된 관공서 매뉴얼에 트집 잡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만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자문과 심의를 통해 기존 계획안보다 더 좋게 발전되기는커녕 이것저것 삭제되고 수정되어 예전보다 한참 못 미치게 다운그레이드 된다. 늘어나는 용역기간과 추가업무 요청, 건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발주부서의 무리한 요구 및 불합리한 인증 절차 등도 발생한다. 하물며 수의계약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일명 설계비 후려치기를 통한 저가 발주로 국가 스스로 공공건축물을 싸구려로 전락시킨다.

공공건축 분야는 오랜 시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 속에서도 많은 건축사들은 공공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건축사들 스스로 약자가 되지 않아야 하며 정확하고 일관되게 명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공공건축물은 눈 먼 돈으로 진행되는 주인 없는 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축계에서 자체적으로 나서 공공건축 전담 청을 설치하여 형식적 심의 및 자문은 폐지하고, 억지스러운 각종 인증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월간 건축사 10월호에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글. 이중희 투엠투건축사사무소·건축사

 

03 The 1st task for good public building : Architectural design competition

2014 안데르센 박물관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Hans Christian Andersen HOUSE OF FAIRYTALES IDEAS COMPETITION) 설계공모 설명서.

요즘 부산에서 개최되는 건축설계공모전이 핫하다. 2019년 말부터 건설본부에서 주최하는 부산의 건축설계공모전이 크게 달라졌다. 심사위원의 선정, 심사과정(1차 예선, 2차 본심사), 설계자 발표, 심사위원 간 토론, 페이스북 생중계 등 여러 가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치른 9번째 공모전엔 27개 팀이 안을 제출했다. 서울에 비하면 적지만, 이전에 4~5개 제출되던 것에 비하면 확연히 늘어난 편이다. 그동안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공모전이 투명하게 진행된다고 하니, 너도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공정성이 확보된 현재, 앞으로 우리가 공모전에서 추구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설계 지침

2014년 안데르센 박물관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Hans Christian Andersen: HOUSE OF FAIRYTALES IDEAS COMPETITION)이 열렸다. 참여하진 않았지만 지침서를 받았을 때의 신선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존 박물관이 새로운 도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공모전이었다. 동화책처럼 구성된 공모 지침은 주변 건물, 교통 체계, 도심 속 입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정보부터 새로운 박물관이 갖게 될 위상 등을 담고 있었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잘 짜여진 지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첫 번째는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발주자, 사용자의 요구사항, 대지조건 등 여러 가지 정보를 균등하게 전달하기보다는 기획단계에서 여러 요구들을 수렴하고 판단해 일정 정도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설계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침이 좋은 것 같다. 제시된 비전을 전제로 새로운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을 더 좋게 해줄 수 있는 대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은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안을 모집하려면 우선 잘 짜여진 지침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개정으로 기획업무가 작년 12월부터 모든 공공건축에 의무화됐다. 이 과정에서 보다 더 좋은 안이 나올 수 있는 지침이나 기획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심사과정과 결과 공개

이제껏 많은 설계공모가 시행됐지만 당선작 이외의 작품이 공개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정보공개를 신청해도 담당 공무원이 난색을 표한다. 어떠한 안이 어떠한 면이 좋아서 당선됐는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일부 지역은 공모전 결과를 공개한다. 서울의 경우 프로젝트 서울(project.seoul.go.kr)을 운영 중이고, 부산은 건축설계공모 사이트(busan.go.kr/compe)에서 심사과정 및 당선작과 수상작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는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모든 공공기관이 공고하는 설계공모 관련 정보는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정보공개가 어느 범위까지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투명한 정보 공개로 더 나은 공공건축이 지어지길 바란다. 작품 공개로 인해 공모전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학생이나 공모전에 도전하려는 건축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작품을 이미지 한 컷으로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설계설명서가 모두 공개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기본도면 정도라도 함께 공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모두 공개된다면, 심사위원도 더 신중히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세움터엔 이미 건축허가 등 행정 처리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으니, 세움터에서 모든 설계공모의 접수부터 결과까지 공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안이 선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일단 좋은 안을 선정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할 과제인 듯하다. 지금까지의 글은 개인적인 의견이고 오로지 설계하는 입장에서만 작성된 글이라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건축설계공모에 참여하면 누구든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문제일 듯싶다. 기회가 된다면 필자도 기획부터 심사를 해볼 생각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조윤경 Cho, Younkyoung 짓다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조윤경 짓다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짓다 건축사사무소는 ‘짓다’ 라는 우리말의 의미를 되물으며 작업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고……. 시를 짓고 노래를 짓고 웃음을 짓는다. 짓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며, 산다는 것은 곧 짓는 것이다. 조윤경은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년 짓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 운영 중이다. 현재 부산광역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며, 주요 작업으로 2016 풍경구가, 2017 영해 푸른꿈지역아동센터, 2018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 교육동 현상설계공모(당선), 2019 영주 시민아파트 아이디어 콘테스트(당선) 2020 시랑리 숙박시설 등이 있다.
zitta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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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근대적 대립구조의 시선

Architecture Criticism
Conflicting Perspectives of Contemporary Dwelling

일광 유얼스에 관한 자료를 보다 사소한 사진 설명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일광 유얼스의 대지는 한 쪽은 바다, 다른 쪽은 배후지를 면하고 있는데, 배후지 도로 쪽 사진이 정면, 바닷가 쪽 사진이 배면으로 되어있다. 바닷가에 세워지는 건축이면 보통 바닷가 쪽이 파사드 아닌가 라고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배후지 쪽과 바닷가 쪽의 디자인 밀도가 사뭇 다르다.

오신욱 건축사는 대지를 주변으로부터 에워싼다. 반쪽집에서 시작되어 인터화이트, 마로인 빌딩 등에서 나타났던, 가로변에 세워지는 프레임이 일광 유얼스에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나머지 대지는 낮은 담으로 에워싸여 주변과 분리된다. 마로인 빌딩에서 나타나는, 외부 벽체와 거리를 두고 허공에 떠 있는 가벽은 그가 ‘들띄우기(spacing)2)’라는 용어로 즐겨 사용하는 건축언어인데, 대개 이 벽도 대지경계선 위에 떠있음으로써 도시와 대지를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일광 유얼스의 주진입은 대지를 에워싸고 있는 이 프레임을 지나 대지 형상과 틀어진 1층 외벽을 따라 이루어진다. 진입로는 대지 형상에 나란하게 세워진 ‘공간부스’와 만난 후 1층 유리창을 넘어 바다로 시선을 연장시킨다. 공간이 엇갈리고 겹쳐지면서 다양한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고 있는데, 오신욱 건축사가 공간의 수평적 변위에 의한 ‘들띄우기’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싶다.

바다 쪽은 월파를 막기 위한 낮은 담장 사이로 테라스를 지나 진입하게 되는데, 매장-테라스-바다로 연결되는 시선의 개방 외에는 다른 공간적 장치가 없다. 건축도 매스의 어긋남은 인지되지만 삼면을 유리로 처리해서 공간의 볼륨감도 평면적이다. 바다로 열려진 내부공간을 수평으로 구분하는 굵은 띠가 공중에 떠 있을 뿐이다.

도시에 지어진 오신욱 건축사의 다른 작품들처럼, 접근도로 쪽에서 보는 유얼스는 주변을 향해 ‘나는 다르다’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리를 두고 열림은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바다 쪽은 바다로 열리기 위한 유리와 스팬드럴이 있을 뿐, 그의 건축언어는 사라진다.
도시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려는 건축, 자연 앞에서 멈추려는 건축이 일광 유얼스의 ‘정면’과 ‘배면’이라면, 오신욱 건축사에게 도시와 자연은 어떤 존재일까.

일광 유얼스 옥상 © 윤준환

매스를 층별로 엇갈리게 적층함으로써 흰색 덩어리를 분절하여 조형적 인지성을 얻는 것은 오신욱 건축사의 작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건축언어다. 바닷가에 세워지는 상업공간인 유얼스에서, 이것은 바다로 향한 다양한 조망의 확보와 함께 아래층 옥상을 테라스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얼스는 가늘고 긴 매스 두 개가 굽어지고 엇갈리며 쌓이는데, 공간의 깊이감을 얻기 위하여 평면을 굽히고 레벨을 달리했지만 내부공간은 하나의 덩어리로 읽힌다. 삼면이 바다로 열려있어 바다로 확장되는 공간이 내부 공간을 압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부공간에는 바다로 향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쾌적한 건물 안에서 유리 너머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볼 뿐이고,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을 볼 때 느끼는, 우리가 가서 닿을 수 없는 경외와 숭고의 대상으로 바다는 인식된다. 바다는 저 너머 멀리 있다.

일광 유얼스에서 또 다른 자연으로의 열림은 옥상에서 이루어진다. 일광 유얼스에서 오신욱은 계단을 다른 공간과 띄우고 길게 늘임으로써 계단이 독립적인 오브제로서 다른 공간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게끔 하고자 하는데,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계단의 방향성이다.

일광 유얼스의 계단은 각 층의 공간을 감아 돌면서 옥상으로 상승한다. 레벨차가 있는 매장공간은 계단참처럼 계단의 상승하는 방향성을 연결한다. 그리고, 옥상에서 우리는 하늘을 만난다. 계단은 하늘을 만나게끔 우리를 이끄는 장치이다. 오신욱 건축사의 다른 작품인 O+A 빌딩처럼 길게 늘어진 계단의 목적지는 하늘이다.

그러고 보면, 오신욱 건축사가 즐겨 사용하는 건축언어인 수직적 ‘들띄우기’도 하늘로 향한다. 앞서 나온 마로인 빌딩의 가로변에 있는 가벽과 외벽 사이의 공간이 수직적 ‘들띄우기‘에 의한 공간인데, 이 가벽은 입면의 깊이감과 함께 도시로 향하는 시선의 차폐, 그리고 3층에서는 스크린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간에 주목해보면 두 벽 사이의 공간은 땅에서 하늘로 열려 있어 우리로 하여금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게 한다.
하늘을 본다는 것은, 근대적인 대립구조의 거주개념으로 보자면, 인간의 거주를 허락하는 신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일광 유얼스 실내 © 윤준환

오신욱 건축사에게 자연은 경외와 숭고의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이며 신성을 경험하게 하는 대상이라면, 일광 유얼스의 공간은 인간의 건축적 조작 없이 바다를 향해 온전히 열려야 하며, 계단은 옥상으로 상승해 가림막 없이 하늘을 만나야 하며, 도시에서 ‘들띄워진’ 공간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에게 건축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도시로부터 구분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지는 에워싸여 주변과 구분되며, 건축은 혼란한 도시에 대하여 순수한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자연이 온전히 열어야 하는 신성한 대상이라면 도시는 부분적인 풍경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다. 마로인 빌딩처럼 가벽으로 시선을 차단하든가 O+A 빌딩처럼 불규칙한 형태의 작은 창으로 시선을 파편화시킨다. 그의 건축이 유독 흰색으로 드러나는 것도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에 대하여 거리를 둔 채 존재하려는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그에게 자연과 도시는 근대적인 거주개념의 대립적 시선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오신욱 건축사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건축은 ‘실존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으며 궁극적으로 도시와 자연에 대한 관계를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사유로부터 그의 건축이 출발하는 것이라면, 근대적 대립구조를 넘어 우리의 도시를 ‘소중히 보살피며 구원하는’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안성호 Ahn, Sungho (주)시반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안성호 (주)시반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안성호 건축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한국근대주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Cardiff 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을 보냈으며, 월간 건축과 환경과 공간사 편집부를 거쳐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건축지 이상건축의 편집장을 지냈다. 일본 아타미시 한국정원, 관음포 이순신순국공원, 광명사 대웅전 등 전통양식건축과 거창 노인,여성,장애인 삶의 쉼터, 진해시 동부도서관, 성산패총 야철지보호각, 세브란스외과, 해양대학교 국제교류협력관, 화명수목원, 서귀포시 상효원 등을 설계하였다. 일본국토교통성 공원콘테스트 대상과 부산건축가회 신인건축가상, 그리고 몇 개의 완공건축물상을 받았다. 현재 (주)시반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있으며 동아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tcamail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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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칼럼 _ 학교 건축 혁신 학교는 그 마을에서 제일 좋은 건축이어야 한다

Special Column _ School Building Innovation
The school should be the best architecture in the town

‘학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어떤 연령에게는 그 이미지가 어둡고 추운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설레는 장소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헌법 31조에 따라서 교육은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이다. 이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주택과 같이 공급의 대상이었다. 빨리 많이 지어야 하는 건축이었고 이를 위해서 1960∼1980년까지의 표준설계도를 이용한 학교 건축이 이뤄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나라 학교 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질문하기도 한다.

뤽 베송 감독의 ‘루시’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 배우 최민식 씨가 열연했던 영화로 유명하다. 뇌의 용량을 100% 사용하게 된 루시(스칼릿 조핸슨)가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묻자 노먼 박사(모건 프리먼)는 “생명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높은 목표는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대사가 마음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후손을 위해서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우리 건축사들이 학교 설계를 하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을 다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설계, 좋은 공간이 건축사들의 사명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세계적으로 번영을 이룬 복지국가는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교육적 결과의 성공은 타 국가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어땠을까?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었을까? 개인이나 국가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하는데, 과거의 학교 건축은 양적 공급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질적인 성취가 필요한 때이다. 개념적으로 정리해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교육(teaching)을 하는 공간이 아닌 학생 스스로 학습(learning)하고 자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국가의 교육정책도 변하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공간혁신사업에 이어서 2020년 ‘그린 스마트 미래 학교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학교 공간을 바꿀 기회가 생겼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1단계 사업’에서는 2021년부터 5년간 총 18.5조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건물’ 중 2,835동을 미래학교로 조성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미래학교의 혁신적인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의 전략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학교
②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첨단 ICT 기반 스마트교실
③ 학생 중심의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혁신
④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생활SOC 학교시설복합화

정부는 지난 7월 17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의 열린 교실, 교과교실제 등의 학교 공간에 대한 혁신적인 정책들이 시간이 흘러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교훈 삼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외국의 학교 건축에 비하여 우리 학교와의 차이점은 공용면적 비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0%대에 머무르고 있는 공용면적을 50%까지 확대하여야 학교교육의 가변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과거 표준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격납고의 단위 면적 당 공사비보다 적은 초·중·고등학교 시설건축 예산도 대폭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학교 현장을 보면, 적은 공사비 탓에 창호, 바닥마감 등 우리 학생들이 직접 접하는 부분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복도, 홀, 홈베이스를 포함한 공용 공간에 냉난방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로 긴 여름과 긴 겨울이 반복되는 현실을 반영하여 아이들이 편하게 공용공간에서 서로의 지식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계과정에서는 공간혁신사업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용자 참여 설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기존의 촉진자(facilitator)의 양성과 함께 사용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건축교육을 통해서 건축의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초·중·고의 교육과정에도 미래시민의 역량에 건축적 소양교육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였던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그들이 성장하여 마을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과정에서도 지역의 건축사들이 자원봉사로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방법도 고민되면 좋을 듯하다.

또한 건축사의 대가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사용자 참여 디자인, 지역사회 공공공간을 학교에 설치하는 복합화 학교 등의 설계과정으로 설계기간은 더욱 길어지고 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설계원가의 인상은 당연한 것이고 이에 상응하는 예산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건축 설계과정에서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건축사의 감리과정이 포함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신설 학교에 2∼3개층을 관통하는 층고 높은 소위 상상계단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예산, 마감 상세 등의 문제로 초기 건축사의 의도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건축사의 설계의도 구현 과정을 거치면 이러한 감각적인 공간에 섬세한 마무리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논의한 미래 혁신학교를 만들겠다는 건축사들의 사명감과 창의성이다. 이것이 선행돼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신축, 개축 학교가 증가할 것이다. 우리 학교 건축을 혁신적으로 개조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 학교는 그 마을에서 제일 좋은 건축이어야 한다.

글. 김진욱 Kim, Jinwook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 Ph.D · 건축사

김진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Ph.D·건축사

고려대학교와 University of Utah를 졸업했다. 목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세종시 교육청 총괄기획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육시설, CPTED, 초고층, 리질리언스 건축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
jinwook@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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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건축 09 노트르담 대성당

Immortal architecture 09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좋아하거나 인상적이었던 유럽의 도시를 생각하면 어떤 도시가 떠오르는가? 물론 여러 도시가 생각날 것이고, 하나만 꼽으라면 쉽게 고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낭만, 예술, 연인 같은 단어를 제시하면 어떤가? 이제는 이 도시가 머릿속에 맴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프랑스의 파리(Paris)다. 역사와 문화의 층이 두터운 파리에는 다양한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들도 많다. 현재를 포함해서 모든 시대의 중요한 건축물들이 밀집된 건축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파리에서 유독 사랑받는 건축물이 있다. ‘우리의 귀부인(성모 마리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모든 도시에는 도로의 기준점인 도로원표(point zero)가 있는데, 파리의 도로원표는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있다. 그야말로 파리의 중심인 셈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시기에는 프랑스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복원되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 때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되면서 자유와 시민의 상징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황제 대관식을 이곳에서 진행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폭격에 스테인드글라스가 파손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떼어서 보관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와 파리 역사의 모든 장면에서 중요한 장소였으니 이 성당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너무나도 크겠다. 파리지엥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19년 4월 15일. 노트르담 성당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첨탑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 장면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트렸다. 첨탑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나의 숨도 멎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의(Notre)-귀부인(Dame)’은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는 당연한데, 새로운 노트르담이냐? 아니면 복원된 노트르담이냐?를 논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경험에서 당연히 옛 모습 그대로의 노트르담 복원을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노트르담”을 제안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궁금했다. 어떻게 “새로운 노트르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프랑스와 파리를 상징하는 문화재인데, 원형복원이 아닌 다른 방안을 제안할 수 있을까? 궁금함에 노트르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15세기 노트르담 대성당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비올레르 뒤크(Viollet-le-Du)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비올레르 뒤크의 플레슈(flèche) 모형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스테인드 글라스(장미창)

자신의 대관식에 도착한 나폴레옹(1804년)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13세기 플라잉 버틀러스(비올레르 뒤크의 실측도면)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복구공사가 시작된 노트르담 대성당(1847년)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복구공사를 마친 노트르담 대성당(1860년대) © Creative Commons(wikipedia.org)

1160년 파리의 성당이 ‘유럽 왕들의 본당’이 되자 ‘모리스 드 쉴리’ 파리 교구장은 새로운 대성당을 짓기 위해 노트르담 대성당 자리에 있던 기존 성당을 철거하도록 했다. 격식에 맞는 규모와 위엄을 갖는 대성당으로 재건축을 단행한 것이다. 1163년 국왕 루이 7세가 초석을 올리면서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얇은 벽이 점점 높아지면서 균열이 생기고 벽이 밖으로 밀리자 바깥벽 주변에 지지벽이 만들어졌다. 이 지지벽이 최초의 플라잉 버틀러스다. 1225년 서쪽 정면이 완성되고, 1250년 서쪽 두 개의 탐과 아름답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이 완성되었다. 180여 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치고, 1345년에 이르러 노트르담 대성당은 축성식을 할 수 있었다. 최초의 고딕 성당으로 시작해서 고딕 시기 내내 지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14세기 중반에 완성되었다. 그야말로 고딕 건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려한 고딕 건축의 최고봉인 대성당에도 시련이 있었다. 1548년, 프랑스 칼뱅주의 개신교도인 위그노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상들은 우상이었다. 우상숭배를 신성모독으로 여긴 위그노들은 대성당에 분노하고 성상과 성당의 외부를 파괴했다. 파괴된 대성당은 100년이 지나 태양왕 루이 14세에 이르러 개축될 수 있었고, 이 공사는 루이 15세 시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 아래에서 고딕 성당의 상징과도 같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제거되었고, 성당 아래 무덤들도 없어졌다. 그나마 북쪽과 남쪽의 장미창은 겨우 남았다. 개축이라고는 하지만, 본래 성당의 모습과 차이가 큰 신고전주의 풍의 모습이었다.

불타는 노트르담 대성당(2019년)

꺼지지 않을 것 같던 프랑스 왕의 태양 같은 힘도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끝이 난다. 혁명의 시기에 대성당의 많은 보물들이 강탈당하고, 구약성서의 유다 왕들의 조각들은 프랑스 왕으로 오인되어 머리가 잘려나갔다. 제대 위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된다. 성당은 말먹이나 음식물 창고로 사용되며 화려함과 권위를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오스망’으로 대표되는 파리의 도시계획가들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폐허나 다름없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철거하고 직선의 대로를 설치하는 계획을 고려했다.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을 애정 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을 발표하며 대성당의 전통을 일깨우고 관심을 고취시켰다. 이러한 노력은 노트르담 대성당 보호와 복원을 위한 기금 마련 운동으로 이어졌다.

빅토르 위고의 펜 끝에서 시작된 대성당 복원의 씨앗이 결실을 맺는다. ‘장 바티스트 앙투안 라쉬’와 ‘외젠 비올레르 뒤크’의 계획과 감독 아래 1845년 복원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에게 익숙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갖춰진다. 비올레르 뒤크가 디자인한 플레슈(flèche, 첨탑의 일종)가 건립되고, 빗물을 처리하는 기능을 하면서 사자, 용, 박쥐 등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한 키메라(chimères, 이무깃돌)들이 추가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유럽을 폐허로 만든 두 번의 세계대전은 노트르담 대성당에게 큰 위기였다. 독일군의 폭격은 큰 위협이었고, 너무나도 약하고 여린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하나 분리되어 안전하게 보관했다고 한다. 키메라들도 보호와 관리를 받았고 다행히 큰 피해를 비켜갈 수 있었다. 분리되었던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자리를 찾았다. ‘비올레르 뒤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렇게 위기를 넘겼다.

무너지는 비올레르 뒤크의 플레슈(flèche)

노트르담 대성당

고딕 시대를 상징했던 최초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태양왕 루이 14세 시기에 신고전주의 풍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가 19세기 비올레르 뒤크의 디자인으로 세 번의 재탄생을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 번이나 큰 변화를 겪으며 부활한 것은 파리의 변화, 넓게는 프랑스의 정치, 종교적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새롭게 태어난 것과 같다. 이런 역사를 이해하고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파리지엥과 프랑스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잃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1,000년에 가까운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 속에서 세 번의 재축은 모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도전하는 재탄생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숭례문의 복원 과정에서 전승되지 않은 전통을 이론과 추정으로 찾으려는 아이러니한 과정은 많은 논란과 의문을 남겼다. 박제되고 고착된 전통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전통일까? 2019년 화재 이후 쓰러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결국 복구될 것이다. 이전과 얼마나 똑같이 복원하느냐도 중요할 수 있지만, 어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재축될지 흥미롭고 기대된다. 단순 복원이 아닌 재탄생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멸의 건축으로 남기를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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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잉카 05 상상력과 호기심의 도시, 마추픽추를 걷다

Hello, Inca 05
Trekking in Machu Picchu, a city of imagination and curiosity

마추픽추 테라스와 그 오른편에 솟아 있는 와이나픽추

쿠스코 북동쪽 안데스의 고원과 열대우림이 교차하는 산등성이 위에 마추픽추가 남북으로 길게 앉아 있다. 남쪽에는 농경 테라스가, 북쪽에는 건물 유적이 직사각형 테라스 위에 겹겹으로 있으니, 마치 두 손을 꽃송이처럼 펼친 듯한 모습이다. 남쪽 테라스와 북쪽 도시 영역은 마치 칼로 자르듯이 해자와 성벽으로 단절돼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면 테라스와 도시 영역은 거대한 콘도르 형상이다.

해발 2,430m, 빌카밤바 산맥의 북쪽 우루밤바강이 굽이쳐 흐르는 협곡 위 산정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마추픽추. 잉카 제왕의 절대 권력이 조각한 하늘 신전이다. 에스파냐 타호강의 물줄기가 협곡을 깊게 가르는 산정에 위치한 고도 톨레도가 에스파냐의 심장이라면, 마추픽추는 안데스 산맥을 호령하던 잉카 제국의 심장이다.

 

마추픽추에 다가서기

잉카 정통 트레킹 코스를 따라 마추픽추에 다가서는 순간, 테라스 서쪽 언덕에 망루가 우뚝하다. 모든 여행자가 한 번은 꼭 찾는 이곳 망루에 올라 마추픽추 요새 전경을 오래 바라본다. 침묵의 시간 위로 가슴 떨리는 곳, 눈앞의 광경이 예측을 벗어나고, 상상력이 옷을 갈아입는 마추픽추다.

우루밤바강이 흐르는 신성한 계곡을 따라서 잉카인은 다양한 종교시설을 갖춘 주거단지를 세웠다. 그 중에서 마추픽추는 완벽한 기념비다. 잉카인에게 종교, 군대, 경작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삼각편대다. 로마제국이 이민족을 점령한 후 황금을 약탈했듯이 에스파냐 침략자 역시 황금을 찾기 위해 잉카 유적을 파괴했지만 다행히 마추픽추는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섬세하게 조각된 유적 앞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는 숨을 내쉰다. 그 유적이 현대 건축물보다 몇 배는 더 세련됐고, 그만큼 인간의 한계를 허물어버리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늘이 조각한 날카로운 산과 깎아지른 듯한 협곡에 기대어 기하학적으로 조형된 마추픽추는 자연과 인간의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구름과 빛과 안개와 그림자만이 잠시 머물다가는 봉우리에 인간이 조각한 마법의 성이라니, 더욱이나 깊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은 기적이다.

테라스 옆구리로 난 비탈길을 따라 마추픽추 게이트로 내려갔다. 마추픽추 입구의 절개지에 빙엄을 기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그는 밀림 속에서 잠자던 마추픽추를 깨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마추픽추에 다가선 최초의 서양인에 불과하다. 에베레스트 고봉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산악인은 없다. 에베레스트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알피니스트가 셰르파의 도움으로 정상에 설 수 있었듯이 빙엄은 잉카 농부의 도움으로 마추픽추를 찾을 수 있었다.

산과 협곡에 기대어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마추픽추

고지대 묘지와 경비병의 집

농경 테라스 남쪽 허리에 줄지어 있는 경비병의 집을 통과해 마추픽추 요새로 진입한다. 남쪽 절벽에 나란히 기대어 있는 경비병의 집 다섯 동은 테라스 구조물 중에서 가장 눈에 띈다. 남쪽 테라스의 끝선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은 마추픽추의 젖줄인 샘과 물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빙엄은 이곳을 요새를 지키는 이들이 기거하던 경비병의 집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식량 저장고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경비병의 집을 지나 테라스 상부에 자리한 망루에 올랐다. 마추픽추를 굽어보는 것은 몇 번을 보아도 속이 시원하다. 망루 뒤쪽 평평한 테라스에는 장례용 제단이라 불리는 자연석이 놓여 있다. 의식용 단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3단의 계단(하늘을 상징하는 콘도르, 대지를 상징하는 퓨마, 지하를 상징하는 뱀을 은유한다)이 남아 있다. 성직자와 귀족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사용했거나 혹은 다른 형식의 종교 의식이나 동물과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곳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곳에서 일련의 묘지가 발굴됐는데, 그래서 이곳 일대를 고지대 묘지라고 한다.

고지대 묘지

고지대 묘지 뒤로 남서쪽 테라스 가장 위쪽에 일련의 건축 구조물이 줄지어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서 긴 직선의 석축 벽이 서 있고 그 벽에 출입문 열 곳이 있다. 석축은 모두 같은 층에 있으며 눈썹처럼 테라스 상부의 산등성이에 박혀 있다. 바로 아래 경비병의 집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군사용 막사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산바람이 테라스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차단막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테라스의 석축이 낮 동안 태양의 열기에 데워진 공기가 차가운 밤을 견디게 해준다는 논리다. 잉카 고지대의 유적들은 밤마다 차가운 구름이 산봉우리의 허리까지 내려왔다가 아침 햇볕에 떠밀려 하늘로 수직 상승한다. 천을 짜는 섬유 생산 작업장이거나 농산품 작업장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답은 아니다.

열 개의 출입문이 있는 벽, 서남쪽 사면으로 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찔한 절벽에 걸린 도개교가 나온다. 잉카의 길은 항상 열려 있지만 마추픽추 요새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추픽추로 통하는 굴과 다리는 하나같이 유사시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 수단이었다. 마추픽추 남서쪽 절벽 허리에 잉카의 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사람이 건너뛸 수 없을 만큼의 낭떠러지 공간을 가로지르며 위태롭게 놓인 나무 발판, 도개교다. 양측 면에 수직으로 돌담을 쌓아올리고 양쪽 모서리를 한 단 낮게 쌓고 그 위에 걸쳐진 나무 발판에는 소통과 단절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진가는 단절에 있다. 마추픽추 도개교는 적의 통과를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양쪽 모서리 사이의 중간 부분을 길게 비워둔 것은 유사시 나무 발판을 제거해 적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낭떠러지 위에 위태롭게 놓인 도개교

마추픽추는 열대우림 지역에 거주하는 호전적인 이민족의 침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군사 요충지에 자리한다. 잉카의 지배자는 1년에 한 번씩 마추픽추에서 생활하며 이민족으로부터 쿠스코를 지키기 위해 국경 수비를 점검했다. 마추픽추의 테라스와 도시 영역 사이에 설치된 담장과 해자 역시 적의 침략으로부터 시간을 벌고, 전투 준비를 하기 위한 군사적인 장치였다.

 

허리에 걸린 달의 신전

와이나픽추는 케추아어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지각변동으로 절벽이 생기지 않았다면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를 넉넉하게 품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추픽추의 돌을 깨워 잉카의 전설을 듣고 싶은 사람은 와이나픽추에 먼저 오르는 것이 좋다. 해발 2,720m 고지의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에서 거의 수직으로 300m 위에 있다.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를 둘러싼 지역을 한눈에 굽어보며 우루밤바강 건너편 밀림 지대의 이민족을 살필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태양의 아들 파차쿠텍의 권위를 닮은 곳이 바로 와이나픽추다. 서쪽의 숲길을 돌아가면 길 아래쪽에 달의 신전으로 향하는 무시무시한 절벽길이 나온다.

마추픽추의 신성한 광장에 자리한 타원형 기단 역시 달의 신전이라 부르지만, 와이나픽추의 달의 신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와이나픽추에 있는 달의 신전은 부유하는 타원형 자연석만으로도 달의 신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곳 달의 신전에 인위적인 곡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지하 동굴의 지붕을 장식한 어눌한 곡면이 동굴의 천장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산비탈에 박혀 있는 거대한 둥근 바위를 발견한 잉카인은 그 바위의 생김새에 걸맞게 동굴 신전을 만들고 지상에는 부속실을 마련해 그들의 신을 불러들였다. 동굴 안에 잘 짜여진 블록이 돌 사이를 어눌하게 결속하며 천장의 곡선미를 완성한다. 내부 벽에 정교하게 장식된 사다리꼴 벽감조차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다운 곡선 천장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희생물을 공양한 것으로 보이는 제단 모양의 돌이 놓여있다. 출입문 크기의 사다리꼴 벽감은 이중 문설주처럼 벽을 장식하며 이곳이 특별한 공간으로 사용됐음을 짐작케 한다. 왼쪽에 난 벽에는 출입문 크기의 벽감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작은 벽감이 대칭으로 나 있다. 동굴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 벽은 자연스럽게 돌 블록으로 막았지만 자연석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았다. 거북의 등을 탄 듯 달의 신전 상부에는 다소 질이 떨어지는 돌벽이 쌓여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체감을 보여준다.

달의 신전

마추픽추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와이나픽추

달의 신전에서 오른쪽 산기슭으로 오르면 경사지에 일군의 돌집이 가지런히 서 있다. 와이나픽추를 지키는 군인의 거주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직사각형 돌 구조물에 사다리꼴 출입구와 창문이 숲속에 꿋꿋하게 남아 있다. 돌쌓기는 전체적으로 질이 좀 떨어지지만 이중 문설주로 마감된 사다리꼴 출입구는 다른 벽에 비해 마름돌쌓기로 정성을 들였다.

규칙적인 출입구와 벽감이 질서정연한 공간과 기능을 암시한다. 내부 벽에도 일련의 벽감이 줄 지어 있는데, 이것만 봐도 공간마다 저마다 다른 용도를 갖고 있다고 짐작 할 수 있다. 다양한 방이 서로 다른 층위의 테라스에 일사분란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달의 신전이 전략적인 길목이었음을 증명해준다.

 

와이나픽추 정상

와이나픽추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르는 모험이다. 가파른 비탈길이 지그재그로 허리를 꼬았다가 곧추서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아슬아슬 가파른 돌계단을 기어오르고 나니 드디어 화살표가 작은 테라스로 안내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서자 마추픽추가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천 길 낭떠러지 아래 누워 있다. 한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며 기어오른 데 대한 와이나픽추의 선물이다.

이곳이 정상인 줄 알았는데 왼쪽 언덕 위로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어느 순간 거대한 암석이 막아서더니 그 속으로 난 좁은 동굴이 그림자를 안고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조금 걸어가니 넉넉한 공간이 나타났지만 곧바로 경사진 좁은 굴이 미끄럼틀처럼 나타났다. 지친 몸을 구겨가며 좁은 굴속을 비집고 들어서자 거의 납작 엎드려 기어서 올라야 하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굴을 통과하고 나니 높은 테라스 벽체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좁은 통로가 계속된다. 석축 테라스를 끼고 계단을 오르니 작은 돌 틈 사이로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와이나픽추 정수리로 올라서는 숨골 같다. 몸을 비집고 겨우 빠져나오니 엉성한 나무 사다리가 깎아지른 듯한 암석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다. 천길 낭떠러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발아래 온 천하가 펼쳐진다. 그 순간 콘도르 형상의 마추픽추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추픽추는 투시도로 보는 곳이 아니라 조감도로 보는 것이다. 마추픽추는 와이나픽추의 정상에서 볼 때만이 콘도르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마추픽추는 콘도르 신의 모습으로 만든 천상의 도시다.

인티푼쿠에서 길게 원호를 그리며 흐르는 진입로는 콘도르의 입으로 빨려들어가고, 그 뒤로 이어지는 오른쪽 산비탈은 콘도르의 머리처럼 곧추서 있다. 그 아래 잉카 유적지가 콘도르의 날개처럼 펼쳐지고, 하부에는 콘도르의 발 모양이 살짝 삐져나와 있다.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유혹하던 바벨탑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잉카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와이나픽추 정상에는 자연석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 잉카인은 정상 조금 아래에 테라스를 만들고 망루를 세우고 계단으로 연결했다. 돌벽은 정상의 자연석을 잘라서 만들었을 것이다. 바늘 끝 같은 산꼭대기에서 어떻게 돌을 다듬고 옮겼을까? 사람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 험준한 산에 돌을 쌓아올리다 피로 얼룩졌을 잉카 석공이 어른거린다.

600년이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고 그대로인 와이나픽추. 잉카인이 쌓은 석벽 위로 안데스의 바람을 탄 햇살이 무심하게 내리꽂혔다. 돌조각에 눌러 붙은 검푸른 표피는 하늘의 입김에 닳고 닳은 흔적이다. 돌과 돌이 서로를 끌어안고 견뎠다. 세상엔 역사라는 보자기로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진실이 존재한다고 와이나픽추는 가만가만 얘기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에 층층이 쌓아올린 잉카의 돌집들. 층을 달리하며 규칙적인 출입구와 창문이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도 어김없이 있다. 어떻게 돌을 가공하고 쌓아올렸을까. 떨리는 가슴으로 절벽에 뚫린 작은 창에 다가선다. 액자에 담긴 안데스의 봉우리를 쳐다본다.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 건축가의 눈으로는 그 신성을 이해할 수 없다.

 

구름 위에 도시를 세운 까닭

와이나픽추를 뒤로하고 하산하는 길은 천국에서 인간계로의 환속이다. 와이나픽추를 오르기 전에 바라본 마추픽추가 돌의 요새였다면, 오르고 난 후엔 완벽한 콘도르 신전이다. 잉카의 콘도르가 마추픽추에 내려앉아 있다. 마추픽추가 어떤 목적으로 세워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주장이 있다. 그러나 건축가로서 마추픽추를 바라보고 있으면 밀림 지역의 이민족 동태를 살피는 요새, 또는 우루밤바강을 따라 늘려있는 경작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잉카의 돌은 말이 없다.

폭우와 지진 그리고 산사태 속에서도 마추픽추는 600년을 버텨냈다. 수천 개의 돌이 정확히 계산된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무려 20톤이 넘는 돌도 있다. 사람의 힘과 원시적인 도구만으로 육중한 돌을 깎아내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 것은 기적이다. 신예 왕인 파차쿠텍의 야망으로 지어진 도시, 위대한 아메리카인디언의 왕이 상상력으로 빚어낸 유물, 전쟁과 정복의 산물, 이것이 마추픽추의 진실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험한 곳을 선택해 건축물을 지을 사람은 없다. 와이나픽추도 그렇지만 마추픽추 역시 가파른 산이다. 도시를 세울 만한 평평한 공간도 거의 없고 작업 공간 역시 매우 협소하다. 그런데도 잉카인은 이렇게 힘든 곳에 왜 도시를 왜 세웠을까. 구름 위에 마추픽추를 건설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의 주장은 다양하지만 그 어느 것도 속 시원하게 비밀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파차쿠텍은 쿠스코 계곡의 작은 세력에 불과한 잉카부족을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북쪽의 콜롬비아와 남쪽의 칠레,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잉카 제국은 1,000만 명이 넘는 백성을 호령하던 남미의 로마제국이었다. 파차쿠텍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자신의 신적인 권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곳에 마추픽추를 지으라고 명령했을 것이라고 한 <잉카 제국의 마추픽추> 영상에 고개가 끄떡인다. 이 불가사의한 도전을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모험가의 위치에 있었다.

테라스 사면을 따라 수로와 샘이 연결돼 물이 끊임 없이 흐른다

마추픽추는 750명 이상의 주민을 수용할 만한 규모로 제국의 중심 쿠스코에서 80km 떨어진 높은 안데스의 절벽 위에 세워졌다. 이렇게 볼 때 왕실의 은둔처라기보다는 밀림의 호전적인 부족을 방어하는 요새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공을 들여 마추픽추를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신성이 깃든 잉카 산맥에 있다. 마추픽추 잉카 트레킹의 여정마다 주요 유적 건물들이 도열해 서있다. 이는 잉카인은 하늘과 자연을 신으로 모시며 숭배했음을 의미한다. 태양 신전과 신성한 광장 그리고 인티우아타나에 조각한 성스러운 세계의 축 ‘악시스 문디’는 잉카의 종교적 상징과 일치한다. 마추픽추는 하늘과 산, 강의 영적인 중심에 있다. 성스러운 산 위에는 남십자성이 빛나고 있는데, 신성한 광장의 경사진 판석이 정확하게 그 별을 향한다. 종교적 의미를 띤 자연 요소에 둘러싸인 마추픽추는 파차쿠텍만이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기적의 샘

산정 요새의 기본은 식수 확보다. 에스파냐의 알람브라 궁전 역시 초기에는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했다. 그 이후는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산을 뚫고 수로를 연결하여 요새까지 이끌고 왔다. 마추픽추 산정 역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할지라도 식수를 구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마추픽추 산정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450m 절벽아래 우루밤바강에서 물을 퍼오는 것이다.

잉카인은 어떻게 식수원을 마련했을까. 디스커버리에서 제작한 영상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2007>는 마추픽추 설계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남쪽 테라스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줄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마추픽추 산정에는 순간 최대 3,000mm 정도 쏟아지는 빗물을 저장하는 것도, 우물을 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를 건기인 겨울까지 보관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따라서 잉카인은 마추픽추와 가까운 곳에서 물길을 찾든지 아니면 수로를 연결해야만 했다. 해발 2,430m의 높고 험준한 고지대에서 가장 확실하게 물길을 구하는 방법은 로마제국처럼 설산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물을 수로를 설치해 끌어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요새를 짓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잉카인은 대체 어디서 물을 끌어왔을까. 오늘날 마추픽추에는 잉카 시대처럼 물길이 흐르고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가면 남쪽 테라스 끝에서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숲속 어딘가에 수원지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그재그 도로로 승합버스를 타고가면 길가에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에서는 숲속에 있는 물줄기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형학적으로 마추픽추 요새 부지는 자연 침하에 의해 생겨난 대지다.

북쪽으로 와이나픽추 봉우리 허리에 마추픽추 요새가 걸려있지만 남쪽 마추픽추 봉우리는 낙타 봉우리처럼 굴곡만 있을 뿐 지각변동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남쪽 테라스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겨난 틈에 수원지가 놓여있다. 신기한 것은 자연적으로 샘솟는 샘물이 아니라 마추픽추 봉우리에 뿌려지는 빗물이 지각 틈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처럼 연중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이다. 잉카인은 그 틈 앞에 낮은 벽을 세워 물웅덩이를 만들어 마침내 요새까지 끌어온 것이다.

이 물줄기를 적당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끌어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넘치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물줄기가 흘러 남쪽 테라스를 관통하고서 요새 중심의 의식센터까지 흘러온다. 그 거리는 750m나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테라스를 쌓을 때도 물길의 기울기를 적정선으로 유지하며 쌓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추픽추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그 물길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남쪽 테라스에 정성 들여 만든 물길이 해자를 건너 마추픽추 요새 안으로 안전하게 흘러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약 3도의 경사를 이루고서 물이 넘치지도 않고 바닥으로 누수 되는 것까지 고려하여 지속적으로 흘러 의식센터까지 이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요르단 페트라 유적지의 수로는 1m짜리 옹기 관으로 연결된 물길이 4도의 경사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과학자들이 4도의 경사가 실제 물이 수도관 속으로 흐르는데 제일 적합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냈다. 마추픽추는 수로는 관이 아니라 도랑으로 오픈되어 있기에 3도를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잉카의 기술자들이 실험으로 알아낸 것이다. 남쪽의 수원에서 거대한 테라스 경작지를 가로질러 요새까지, 750m에 이르는 수로는 첨단공학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신성한 물줄기가 해자 위로 가로질러 가장 먼저 도착하는 지점에 의식을 올리는 공간과 그 물을 지배하는 왕의 궁전이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 잉카인에게 물은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추픽추의 실질적인 배치 구조는 이 신성한 수로에 의해 결정됐다. 만약 물줄기가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면 지금의 왕궁과 신전 자리는 바뀌었을 것이다. 콘도르 형상의 마추픽추 배치도 틀어졌을 것이다.

왕궁으로 흘러들어 오는 물줄기

오늘날 왕의 궁전 영역 내에 위치한 샘물은 잉카 시대 이후 쉬지 않고 흘러내린다. 이 신성한 물이 처음 도달하는 목적지는 완벽히 계산된 곳이다. 신의 대리자인 파차쿠텍의 궁전과 의식센터로 제일 먼저 도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샘물은 잉카 왕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잉카 왕은 의식을 전행하기 3일 전부터 신성한 물로 목욕하고 경건하게 신을 영접할 준비를 했다. 목욕은 정신을 깨끗하게 씻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잉카인은 층층이 놓인 샘에서 신분에 따라 마실 물과 목욕물을 충당했다. 잉카인에게 식수는 세속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그 이상이었다. 샘에는 벽감을 만들고 배수구도 따로 설치했다. 평소에는 물을 받는 곳이지만 의식을 진행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는 목욕 공간이었다.

왕의 개인 목욕탕 아래로 열여섯 개의 독특한 급수대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따라서 마추픽추는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계된 고도의 기술 집약적인 산성 도시다. 벽을 타고 흐르는 물을 작은 틈으로 흘러내리게 해서 잉카 특유의 물병인 아리발로를 효율적으로 채우도록 만들었다. 대지와 물을 통제함으로써 파차쿠텍은 마침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었다.

 

글. 김희곤 Kim, Heegon 건축사

김희곤 건축사

마흔이 넘어 스페인으로 떠나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돌아보았다. 스페인 마드리드건축대학교에서 복원과 재생건축을 전공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명하며 성균관대학교,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건축대전 심사위원, FIKA 국제위원회 자문위원, 2017 UIA 서울 유치위원으로 활동했다. 건축은 미래로 열린 창이자 창조의 근원이라는 믿음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세계의 문화유적과 도시 답사를 계속하며 글쓰기와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스페인은 건축이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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