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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건축의 공정성

The economic value of an authority, and the fairness of an architecture

건축사의 업역은 모호한 부분이 많다. 건축사가 공학적 엔지니어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의적 산물을 다루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적성 검사에서 문과적 기질과 이과적 기질이 5:5로 나온 사람이 하기에 딱 좋은 직업이다. 이런 경계적 특징이 장점이면서 사실 논란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과적 특성은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값이 나오는 것이다. 감정이나 주관적 개입보다는 수치와 데이터 등의 명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엔지니어적, 즉 이과적 특성이다. 건축은 이런 이과적 결과가 나오는 산물이다. 그런데, 수치와 데이터의 산물로 만들어진 건축의 전 과정은 매우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요인들에 좌우된다. 그것이 바로 미적 관점이고, 기능에 대한 해석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건축은 항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공정을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공공건축 설계공모는 논란과 불법의 단골 메뉴이며, 비리의 온상으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과연 방법은 없는 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립과정은 이런 경계적 특징이 논란이 되고, 결과가 만들어지면서 극적인 반전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적 건축 유산으로 빛을 발하고, 그 가치를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요른 웃존의 설계안이 당선되고,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호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다. 증액된 공사비는 정치적 논란의 핵심이 됐고, 선발 과정의 공정성 시비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다. 1957년 국제설계공모에 제출된 요른 웃존의 계획안은 매우 단순한 도식에 가까운 형태였다. 223개의 참가작 중 218번째 참여해 마감 시간을 놓친 계획안으로 유명하다. 당시 운송 형편을 고려해서 마감날짜 훨씬 전에 배송한 증거를 제출해 위반사항이 아님을 입증했다고 한다. 아주 자세한 세부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세계적 명성이 있던 심사위원 에로 사리넨의 강력한 당선 주장과 맞물려 제출 시간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38세의 젊은 건축사 요른 웃존의 디자인은 모험적이고 과감해 호주에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건설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고, 급기야 호주 정부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건축이었다. 이런 정치적 논쟁에서 요른 웃존은 자의반 타의반 1966년 프로젝트를 떠나게 되고, 호주 정부가 지정한 호주 건축사들이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건설공학의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고, 미학적 측면에서 에로 사리넨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결국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상징이 되었고, 과거 최초 설계자이며 디자인 창조자인 요른 웃존에게 호주 정부가 사과하게 된다. 그때가 1999년 즈음이다. 이후 호주 정부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증축 및 개축 등의 후속 디자인 일체를 요른 웃존에게 요청한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시각으로 보았을 때 논란이 될 만한 공정성 시비의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마감기한이 논란이 되는 제출물에 대한 에로 사리넨의 선택과 주장. 요른 웃존이 초기 참여하고 이후 배제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페라 하우스 건축사로 유일하게 인정받는 요른 웃존. 정부의 건축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배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마냥 부럽다는 시각보다는 이런 과정이 충분히 논란이 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정받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전문가의 권위와 전문가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라는 단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권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받는 전문성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인정받는 권위는 정량적으로 불가능한 결과를 오히려 속도감 있고, 효율적으로 나타나게 한다. 에로 사리넨의 선택을 정량적으로 객관화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고, 그러는 것은 실제 불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보면 우리 건축계, 나아가 우리 사회가 상실해버린 ‘권위’의 가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전문집단에 대한 인정으로 확보된 ‘권위’의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경제성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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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거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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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아야 할 때

건축담론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01 Time to take a course buried in the fog

최근 한 부동산 전문가와 대화를 했다. 향후 5∼10년 사이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묻자 “정말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 주거시설 등 여러 영역에서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실제 어떤 방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변할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유명 대학 인근에 있는 주거 시설처럼 절대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 공간도 코로나와 온라인 수업 진행 등으로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섣부른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게 건축사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숙명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짙은 안개가 낀 상황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상황과 유사하다. 본고에서는 경영학계에서 발전되어온 여러 방법론 가운데 미래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론 3가지를 소개한다.

 

① 폐기학습

새로운 지식을 그릇에 채우는 활동이 학습(learning)이라면 그릇에 담긴 지식을 비워내는 게 바로 언러닝(unlearning), 즉 폐기학습이다. 상황이 급변할 때에는 학습보다 폐기학습이 더 중요하다.

벌과 파리의 실험이 폐기학습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평소 벌은 파리의 지능을 압도한다.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벌이다. 놀라운 협업 체계와 효율적인 프로세스로 생존과 번식을 이어간다. 반면 파리는 지능 측면에서 벌에 미치지 못한다. 벌과 파리를 동시에 유리병에 가둬놓고 유리병의 입구를 빛이 보이는 쪽으로 향하게 하면, 파리보다는 벌이 먼저 병에서 탈출한다. 벌이 빛이 보이는 쪽에 출구가 있다는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병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면, 벌보다 파리가 더 빨리 탈출한다. 벌은 빛이 보이는 쪽이 출구라는 기존 지식에 의존해 계속 빛이 있는 방향으로 돌진하지만, 파리는 별생각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운 좋게 병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언러닝은 기존 지식과 솔루션이 잘 통하지 않는 급격한 환경 변화 상황에서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기반의 거대 유통업체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 수많은 공급업체와의 네트워크, 탁월한 인재와 거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온라인 시장에서는 거대 오프라인 기반의 업체보다 신생 스타트업이 주도한 오픈 마켓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프라인과 완전히 다른, 온라인의 특징에 부합하는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거나 시도하지 못하면서 많은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기존 방식의 비즈니스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라인 사이트 개설 정도의 점진적 혁신에 머물렀다. 반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오픈마켓은 누구나 온라인 내에 상점을 개설할 수 있게 하면서 거래의 안전성을 강화했고 로켓배송이나 샛별배송 같은 혁신적 배송 정책을 실행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담으려면 폐기학습이 선행해야 한다.

 

② 시나리오 플래닝

미군에서 나온 방법론이 기업으로 전파돼 경영 방법론으로 발전한 게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강대국들이 핵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핵 전쟁을 억제하거나, 핵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전무한 상황에서 미군은 고민에 빠졌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개발한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전통적인 접근법은 특정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예측을 포기한다. 대신, 몇 가지 중요한 변화 동인을 찾아내고, 이 동인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해서 최소 2개 이상의 시나리오를 작성해본다. 그리고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선정해 우리 조직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이후 건축 공간의 변화와 관련한 시나리오를 작성해본다면, 백신 조기 개발 여부와 온라인 기반 활동의 확산 여부에 따라 총 4가지의 시나리오를 작성해볼 수 있다. 즉, △전염병의 조기 종식과 오프라인 활동 회복 △전염병 조기 종식과 온라인 중심 활동 △전염병 지속 상황에서 오프라인 활동 회복 △전염병 지속 상황 속에서 온라인 중심 활동 지속 등 4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전략을 모색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보고 대책을 마련해보면 불확실한 미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실제 미군으로부터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전수받은 로열더치셸은 전담 부서를 만들고 다양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오일 쇼크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 오히려 위기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이뤄냈다. 이후 많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토대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③ 애자일 경영

민첩함을 뜻하는 ‘애자일(agile)’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비롯됐다. 보통 치밀한 기획을 한 뒤 역할을 나눠 체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뒤 테스트를 거쳐 시장에 출시하는 게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다. 하지만 애써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자 일군의 엔지니어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제품 개발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뒤 고객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신속하게 개발해 고객에게 들고 가 반응을 살피며 고객의 피드백을 근거로 추가 개발 계획을 진행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이런 접근이 확산되면서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게 애자일 기법이다. 예를 들어 신제품 세탁기를 개발한다고 하면, 기업 내의 개발팀이 회의와 토론을 거쳐 개발 방향을 정하고 6개월, 혹은 1년에 걸쳐 비밀리에 제품 개발을 완료한 뒤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성대하게 제품 런칭쇼를 하는 게 기존 방식이다. 하지만 애자일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세탁할 때마다 세재와 섬유유연제를 넣는 게 불편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인공지능으로 세탁물량에 맞게 세제 등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기능을 고객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웠다면, 해당 기능만 갖춘 시제품(prototype)을 일주일만에 뚝딱 만들어서 고객들을 만나 반응을 살펴본다. 만약 긍정적 반응을 하는 고객이 많으면 계속 추가 개발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설을 세우는 게 애자일의 핵심이다.

애자일 조직을 만들려면 실무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빠르게 검증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상부의 승인을 얻게 하면 신속한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자일은 가설을 수정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역량이 커지고 성공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 기존 가설이 잘 먹히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신속하게 시장에서 빠르게 실패하고 유연하게 방향을 수정하도록 하는 게 애자일의 핵심이다.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라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여러 방법론을 혼합해서 활용해야 한다. 기존 가정이나 지식에 의존하기보다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가능성 높은 하나의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여러 시나리오를 작성해 대비하고, 현장에서 가설 수립과 발 빠른 수정을 해나가는 체제를 갖춘다면 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글. 김남국 Kim, Namkuk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영 전문지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글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BTS Insight 잘함과 진심> <지금 당장 경영전략 공부하라>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namk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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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건축사사무소의 조직

건축담론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New organization of an architectural firm in the COVID-19 era

건축사사무소가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설계비를 많이 받거나 운영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설계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비교적 오랜 시간을 통해 명성과 전문성이 축적 되어야 하지만, 고정비나 인건비와 같은 비용의 절감은 효율적 조직구성과 업무방식, 그리고 기술의 활용 등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방법이다. 특히 현재 건축실무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람들 간의 직접 대면과 소통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복잡한 설계업무를 해야 하는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반강제적으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비대면 협업과 재택근무를 경험한 주변의 기업인들은 예상보다 업무진행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것과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과 기여도가 예전보다 명확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원격협업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화상회의와 파일관리 기능을 기본으로 업종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기술과 서비스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나, 지금까지 얼굴을 마주보고 일해 온 습관과 원격업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보편적 협업방식으로 활용을 못했을 뿐이다.

최근 주로 제조업 분야 사업모델에 적용되고 있는 Co-creation과 Open community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원격협업조직은 물리적 거리로부터 참여 구성원을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최소의 비용과 시간, 유연한 시장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드론 제작사인 3D robotics는 DIY Open Community에 기반을 두고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 소비자와 개인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드론 제작 기술을 모두 공개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제품에 다시 반영하는 제품개발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품 개발에 활용될 뿐 아니라, 전 세계로 제품을 홍보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또 하나의 주목할 기업은 미국의 Local Motors이다. 로컬모터스는 2007에 설립된 조립자동차를 생산하는 kit car 제작사이다. 일반적인 자동차 업체가 신차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백에서 수천 명의 디자이너와 연구개발자들이 최소 2∼3년 이상의 기간을 연구해야 하고, 수천 억 원의 개발비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로컬모터스는 20여 명의 직원이 일반 자동차제작사의 1/100의 개발비와 6개월의 짧은 시간에 신차를 개발했다. 이는 로컬모터스의 온라인 open-source community 플랫폼을 통해 Co-creation에 의해서 디자인부터 기술개발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자동차 디자이너, 엔지니어, 소비자와의 참여와 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외부의 누구든지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개발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자동차 개발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을 제공한다. 기술과 디자인 발전을 위해 모든 데이터가 대중에게 공개되며, 부품 공급자 또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재고도 최소화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로컬모터스는 키트카 제작이 아닌 온라인 Co-creation에 기반을 둔 자율주행 소형 전기버스 제작사로 변신했는데, 이는 시장의 변화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최소의 조직 구성을 기반으로 한 가벼운 몸집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다.

건축분야에서도 1996년 창립부터 Remote-collaboration을 통한 Co-creation을 사업모델로 하여 빠른 기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런던에서 본사를 둔 Urban Future Organization (UFO)이 있다. UFO는 건축, 도시설계,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원격협업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 14여 개 국에 거주하며 비대면으로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런던 본사는 최소의 인원으로 회사를 관리하고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른 지역에 위치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전문분야에 따라 유연하게 참여하게 되며, 지역 간의 시차에 따라 24시간 업무가 진행된다. 이러한 협업방식으로 업무효율은 극대화되고 회사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최소화 될 수 있다.

미국 스마트업 기업 로컬모터스가 개발한 ‘올리(Olli)’라는 이름의 자율주행차. 스마트폰앱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는 승객수요에 따라 셔틀이 오간다.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 플랫폼을 내장해 탑승객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로컬모터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토대로 3D프린팅 작업을 거쳐 개인 맞춤형 전기차를 만들어준다. © Local Motors 웹사이트

이러한 Co-creation과 Open community 방식은 기존의 디자인 협업에 비해 단점과 한계도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로, 회사의 문화와 조직에 대한 귀속감이 약화될 수 있다. 회사마다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귀속감은 조직을 구성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비대면 협업이 지속될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회사와 조직에 대한 개념부터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 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조직 구성원 간의 효율적 협업을 위한 참여의 원칙과 규칙(Architecture of Participation)이 필요하다. 둘째, 무엇보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각 개인의 역할과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프로젝트의 비전과 목표, 참여자 개인의 업무 일정, 질적·양적 범위가 명확히 인식되어야 한다. 셋째, 설계업무에 적합한 디지털 협업 플랫폼이 필요하다. 하나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복잡한 설계업무를 모두 해결하기는 어렵다. 특히 건축설계는 창의적 협업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적 협업 플랫폼뿐 아니라, 도면이나 스케치를 실시간으로 수정·보완할 수 있는 협동설계 기능, 파일관리, 온라인회의, 프로젝트 관리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복합적 온라인 플랫폼의 활용전략이 필요하다. 현 시대에 대응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고, 발전하는 기술을 활용하여 Co-creation과 Open community 플랫폼을 통해 시간과 비용의 절감, 시장범위의 확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건축설계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송규만 Song, Kyuman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 건축학 박사

송규만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 건축학 박사

하버드대학교 석·박사, 펜실베니아 대학교 석사, 홍익대학교 학사를 졸업하고 미국 Fuji-Xerox Palo Alto Laboratory, General Dynamics 디자인연구원을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제품 디자인, UI & 정보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제품디자인으로 독일 Red Dot Award, 독일 IF Design Award, 일본 Good Design Award등을 수상했다. 현재 2020년 서울 건축문화제 총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qstructu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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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빌드업, 그리고 워라밸

건축담론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03 Build-up of a small scale architectural firm, and the work and life balance

프롤로그 – 어떤 시작

이번에 사무소 운영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많은 고민이 들었다. 대단한 사무소를 운영해온 것도 아니고 딱히 모범이 된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나 난감했다. 지난 시간들을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냥 담담하게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공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돌이켜 보면 특히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참 무모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렇게 시작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아는 것도 적고 의욕도 넘치고(지금도 의욕이 늘 넘치기는 하지만…….) 그랬겠지만, 어찌 되었거나 2010년 여름, 북촌에서 사무소를 조그맣게 시작하게 된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 서촌이었고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디 다른 동네로 가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약간은 익숙한 북촌에 마침 작은 공간(월세가 매우 저렴한)을 구하게 됐다. 당연히 돈도 많지는 않았고 직원도 없고 와이프와 나 이렇게 단 둘이서 시작한 사무소인지라 주위에서 걱정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이 있어서 오픈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동안은 일이 전혀 없었다.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문제는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별로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주어진 다소 한가한 시간들이 좋았고 간만에 주어진 느슨한 시공간이 오히려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들도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이런 저런 하고 싶었던 작업들도 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우연하게 첫 프로젝트 의뢰를 받았고 첫 직원도 생기게 되면서 사무소 자체도 조금씩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무소 운영과 관련된 많은 고민들과 의문들 역시 생겨나게 되었다.

 

소규모 사무소 빌드업과 구성

소규모 사무소는 어떻게 빌드해야 할까?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의 실제는 다르고 심지어 세금 문제 같은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는데 막상 하려니까 사업자를 등록하는 것에서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분기마다 세금이 있는 등 많은 종류의 세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만약에 명망 있는 CEO나 CFO를 영입 할 수 있다면 모든 게 일거에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전혀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일단 간단하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사무소 운영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첫 번째 영역은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이었고 두 번째 영역은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이라고 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첫 번째로 생각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란 먼저 물리적인 것에 해당하는 ▲사무소의 내부 공간 환경-작은 공간일수록 가구 배치의 레이아웃, 조명 이런 것이 중요하다- ▲워크스테이션을 포함한 컴퓨팅 네트워크의 구성-서버의 구축이라든지 거창한 시스템이 필요하진 않다, 지금은 NAS 등의 상당히 경제적으로 네트워크 서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전화 및 사무용 기기의 확보-팩스는 지금도 가끔 쓰기는 하지만 처음에 망설여지는 항목이기는 하다, 복합기는 리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복지항목에 해당하는 커피머신, 정수기 등의 비품구매-커피나 차는 거의 매일 마시는 거라 외부에서 사먹는 거보다는 초기에 조금 투자를 하고 내부에서 내려 마시는 것이 원두도 골라 마실 수 있고 이점이 많다-는 초기에 자금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집행하면 좋다.
비물리적인 항목으로는, 작업 환경 구축에 있어서 중요한 사무소의 ▲작업 매뉴얼을 만드는 것을 들 수가 있다. 이건 한 번에 끝나지는 않고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발전하게 되는데 컴퓨터 작업의 폴더 체계에서부터 어떻게 일을 시작하고 끝맺음을 할 건지에 대한 방식과 프로세스 정리까지 소규모 사무소일수록 오히려 이런 시스템의 구축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각각의 사무소들이 지향하는 방식과 목표치, 가치가 다를 수 있으므로 거기에 적합한 체계를 만들고 다듬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변화하는 외부상황 및 한계조건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다.

두 번째가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인데, 주로 경영적으로 필요한 사무소 운영의 전반사항을 포함하여 ▲계약 및 계약의 유지-건축주, 직원, 협력사, 협업자 등등- ▲세무 및 회계-사무소는 매출건수보다 매입으로 불리는 나가는 돈의 항목이 훨씬 많아서 관리가 되지 않으면 난감하다, 세금문제 역시 혼자 해결하기에는 버거우므로 전문 세무사나 회계사와 협업하는 것을 권장한다- ▲고정비용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체계-매달 나가는 비용에 대한 이야기로 임대료, 관리비, 각종 대금들이다, 당연하겠지만 고정비용은 줄일수록 좋다- ▲프로젝트 대비 맨파워의 관리-소규모 사무소에서 무슨 맨파워 관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직원이 없을 때도 그렇고 있을 때도 그렇고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만큼의 인력과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지 모르면 프로젝트를 얼마에 수주하고 어느 기간에 해야 하고 이런 모든 계상이 어려워지므로 매우 중요한 관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어서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워라밸 등의 건강한 작업환경과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복지를 위한 관리-휴가 등의 리프레쉬를 위한 체계, 잘 쉬어야 잘 일할 수 있다!-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사무소 빌드업과 세팅을 점진적으로 해나가기 시작했고 이것 역시 지금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이다. 꼭 어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적합한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속가능한 일 환경의 구축

소규모 사무소에서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속가능한 환경의 구축이 가능한가? 여기서 얘기하는 지속가능한 일 환경이란 우리가 번아웃되지 않으면서 워라밸을 지켜가면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오래 오래 계속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만들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여러 가지 제약 사항들이 너무 많기에 또한 그런 것들이 너무 복합적으로 연결된 문제라서 해결하기 힘든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하기에 우선 사무소 구성원들 간에 어떤 합의와 공감대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며 당장 모든 것이 해결되기 어렵더라도 이런 합의와 공감대를 토대로 계속 노력해나가야 한다.
특히 소규모 사무소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핵심 인력들이다. 소중한 동료들이고 매일 협업하고 역량을 서로 키워나가야 하는 관계 속에 있다. 건축물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하면서 왜 정작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오래 일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지 서로 반성해 보고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직능적인 관점에서 우리 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로서의 비전

그렇다면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는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그 방향성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많은 소규모 사무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거기에 어떤 가능성이 존재 하지 않을까? 중규모 이상의 사무소로 성장하지 않는 한 소규모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은 어떤 면에서는 한정적이다. 인력적인 확장성이 매우 제한적이므로 다른 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함께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 업역을 확대해 나가고 미래 가치를 공유하면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한계를 일정부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 신호섭 Shin, Hosoub 건축사사무소 신 · 건축사 · 프랑스 건축사

신호섭 (주)건축사사무소 신 · 건축사 · 프랑스 건축사

신호섭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나와 프랑스 마른 라 발레 건축학교에서 프랑스국가공인 건축사(DPLG)를 받고 한국에서 건축사(KIRA) 자격을 취득했다. 프랑스 파리와 한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실무를 쌓았고 2010년 건축사사무소신 SHIN architects를 설립하여 흥미로운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근작으로 창2동 청소년누리터 위드, 네오플 제주도 신사옥 네오마루, 도토리소풍 제주원 어린이집 등이 있다.
info@shinarchite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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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담론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04 Managing a small scale architectural firm

건축사의 이상과 현실

‘건축사’, 아직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이에게는 꿈만 같은 단어이다. 건축학도 시절부터 건축사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를 할 때까지, 필자에게 건축사라는 단어는 인생의 목표였고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단어였다. 하지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지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지나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건축사로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던 현실적인 삶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필자가 투쟁적인 삶을 살았다는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평가이지만,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변의 동료 건축사들이 사무소 경영의 애로 사항들을 빈번하게 토로하는 것을 보면 꼭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운영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와 다양한 개선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건축사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건축계에서 어느 정도 인식이 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인 듯하다. 필자는 당면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프로젝트 수주와 건축사의 대가

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필자에게 도움을 얻고자 찾아오는 후배 건축사들에게 필자는 늘 작은 일거리라도 확보한 후에 개소하기를 권한다. 새로운 희망에 열정으로 똘똘 뭉친 후배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선험자로서 후배들이 현실의 벽에서 덜 힘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실제로 주변의 인맥과 배경이 있지 않은 한 프로젝트의 수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개소 후 처음 접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는 지인을 통해 연결된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이었고 필자의 가족들이 거주할 주택을 설계함으로써 처음으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온라인이나 필자가 했었던 작업을 보고 의뢰해 오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3년 이상의 시간을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새로 오픈하는 건축사의 경우,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최소 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의 시간은 꽤 힘든 시간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지금의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에 따른 설계비와 감리비가 우리가 쏟는 노력에 대비한 최소금액이라 생각하여 클라이언트들에게 그에 근거한 설계 견적서를 작성하여 주는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계약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리뷰를 해보면 우리가 제시한 설계비가 비싸다는 이유가 부지기수이다. 모든 건축사들의 사정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민간시장에서의 설계의 금전적 가치는 필자의 생각보다도 많이 낮은 것 같다.

 

건축시장의 공정성

필자는 세 건의 설계공모에 당선하여 용역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데 한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의 결정되지 않은 사업 계획으로 인해 당선 후, 일방적으로 사업변경이 일어났고 그로 인한 설계변경에 대한 대가는 합당하게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면서 완수한 경험이 있다. 또한 다른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에서 계획 설계에 대한 용역을 배제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라는 명목으로 80%의 대가로 용역비를 산정하여 설계공모를 발주하였고, 이를 모르고 당선한 필자가 계약 전, 설계비 변경 요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여 진행한 경우도 있다. 혹자는 필자가 그러한 부조리에는 강력 대응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 또한 협회나 국토교통부,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방면으로 문의하고 노력하였지만 크게 도움의 손길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명 남짓한 작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이러한 부조리에 강경하게 법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직원들의 생계와 필자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즘 설계공모에 신진 건축사들이 열정과 실력만을 가지고 도전하는 데, 실제로는 그것만으로는 당선하기는 쉽지 않다”라는 어느 선배 건축사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한 대형 건축사사무소에 다니는 동기를 통해서 설계공모 심사위원을 사전에 접촉하는 행위가 ‘영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듣기도 하였다. 필자 또한 여러 건의 설계공모에 도전해 오면서 불공정한 심사방식과 처사, 그리고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뒤 이야기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어왔기에 이러한 말들에 크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공정한 행위로 당선되는 이들로 인해 공정하게 참가하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것이 되고, ‘로비’라는 단어가 ‘영업’이라는 단어로 미화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가슴 한 구석에서 화가 나는 부분은 바로 필자가 이러한 불공정성에 체념하게 되고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건축계 곳곳에서 공정성을 찾아가려는 움직임을 보게 되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만연한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잃어버린 설계공모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더욱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건축시장의 현실에서 정당한 도전과 노력으로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고 싶어 할까?

건축사의 워라밸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동료 건축사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 중에는 직원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있다. 각 사무소의 특징과 대표자의 개인적인 성향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전반적인 건축 산업의 문제가 배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늘어나는 설계업무의 양에 비해서 낮은 설계비이다. 갈수록 건축사의 책임과 처리해야 할 업무는 늘어나고 있지만 설계비는 제자리다. 두 번째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지자체마다 상이한 행정 기준과 절차이다. 이러한 부분은 통일된 법 제도와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덧붙이기식 법규는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행정업무 또한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는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기피하는 현상이다. 임금에 비해서 업무의 강도가 강한 편인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사람들이 기피하는 반면에, 그나마 직원 복지가 좋은 대형 건축사사무소를 선호하는 추세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설계비를 지금보다 높게 받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1명이 할 수 있던 일이 1.5명이 필요한 일이 된 만큼 설계비를 1.5배 올려 받으면 될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 냉정한 시장에서는 수주가 어려워진다. 워라밸이 중요한 삶의 가치가 된 요즘,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며 나름대로 실천 중이지만 벌어들이는 수익 대비 업무량을 생각하면 쉽지만은 않다. 결국 직원들은 퇴근시키고 혼자 일을 처리하며 야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정작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의 워라밸은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살아남으려면..

앞서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경영에 있어서의 여러 문제들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해소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건축교육과 건축사 자격시험, 건축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수준과 그에 따른 대가, 건축계에 몸담고 있는 많은 건축인들의 건전하고 공정한 경쟁의식,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러 협회와 단체로 나누어진 건축계의 현실, 책임에만 치중되어 복잡하고 상호 충돌하는 법제들만 양산하는 행정 시스템의 부조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개선되어야 향상될 수 있는 건축사의 대가와 삶의 질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자료(2016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11,276개의 개설된 건축사사무소 중 73%(8,320개)가 종사자 수 1~4명인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라 한다. 종사자가 5~9명인 사무소까지 합치면 10인 미만의 건축사사무소는 91%에 육박한다. 바야흐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시대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개선해 나가야 하는 복합적인 일이지만, 조금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정량적인 문제들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동료 건축사들이 그들이 들이는 노력에 합당한 대가와 삶의 질로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조금이나마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 정효빈 Jung, Hyobin HB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정효빈 HB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정효빈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주)SDPartners건축사사무소 등 국내의 여러 건축사사무소에서 다년간 실무를 쌓았다. 대한민국 건축사(KIRA)이며, 2013년 HB건축을 개소하여 건축의 여러 속성간의 관계 맺음에 주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UIA International Competition Asia 1st Prize, 경기도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경상북도 공공건축가, 서울시 마을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꿈담건축가, SH공사 청신호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hbastud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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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건축’을 말하다 “조금 더 좋은 것, 조금 더 잘 하고 싶다”_이성관 건축사

Speak ‘the architecture of the possibility’
“Something better, want to do better”

이성관 건축사 Lee, Sungkwan (주)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2017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 부문 대상. ‘여주박물관 여마관’을 검색하면 나오면 수상기록이다. 검은 유리로 구성된 반듯한 건물과 남서쪽 모서리가 잘려나간 삼각면이 단정하면서 인상적이다. 검은 유리면은 하늘을, 삼각면은 남한강을 비추는 건물이 자연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진다. 설계의 백미는 건물 안에 있다. 돌로 쌓은 층 위에 건물을 두고 건물 안 전면에 통유리를 설치해 남한강 상류와 파란 하늘이 바로 앞에 있는 듯 경이롭게 다가온다. 이곳을 설계한 이성관 건축사가 이곳을 설계한 나이는 68세였다. 현재는 72세, 현역이다. 지난 10월 8일 여주박물관 1층에서 이성관 건축사를 만났다.

 

Q 여주박물관 여마관을 실제로 보니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다르네요. 안으로 들어오니 또 다르고요.

외부에서 큐브(검은 건물)만 추상적으로 인지되도록 의도했습니다. 빌딩을 의미하는 기둥을 소거하고 건물 아래에 돌로 쌓은 층을 설치했습니다. 1층에서 보이는 벽면엔 통유리를 설치하고 앵글을 배제해 수면이 건너오는 듯한 효과를 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강이 남한강입니다. 마치 이곳이 남한강과 돌을 따라 이어진 듯 보이죠? 이곳이 박물관이긴 하지만 1층엔 문화나 역사같이 무겁고 박물관적인 부분들을 덜어냈습니다. 근처 아울렛에 갔다가 부담 없이 이곳에 들러 1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주 자연을 감상했으면 했어요. 전시실은 2층에 있습니다.

 

Q 이곳을 설계했던 당시엔 60대셨죠? 다른 나라를 보면 106세 건축사도 있고요, 안도 다다오도 80세가 넘었어요. 어느 90대 건축사는 설계공모에서 30대랑 붙었다고 합니다. 요새 컨디션은 어떠세요?

몸은 어떠할지 몰라도 의지나 이런 것은 예나 다름없습니다. 작업할 때마다 ‘이번엔 작품이 어떻게 나올까’하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매 작품에 최선을 다 합니다. 워낙 이런 작업을 반복하며 살아와 관성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동대학원 졸업 후 10년간 직장생활…
36살에 오른 유학길

1948년 부산 출신인 이성관 건축사는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 건축대학원을 전공한 뒤 만 10년간 정림건축 등에서 굵직한 설계 프로젝트들에 참여하여 실무를 경험했다.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NY HOK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다년간 근무하다 6년 후 귀국했다.

 

Q 어린 시절, 설계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생 때 다른 과목에 비해 설계를 좋아했어요.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건축은 어릴 때부터 묘한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친구들이 제가 어떤 건축물을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했다’라고 했대요. 어릴 때부터 뭔가 느낌이 있었던 듯싶어요. 어릴 땐 그림 그리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살던 부산, 경남 지역에서 그림으로 1, 2등을 해 조회시간에 단상에 자주 올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Q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성적 맞춰서 건축과를 선택했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도 대학 첫 해에 ‘이거 하고 싶어서 왔다’라는 것이 분명치 않았습니다. 특히나 우리 땐 그런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요새는 오히려 음악이니 게임이니 자녀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려고 하는 부모도 있지 않나요?

 

Q 현재 건축과 학생들이 취업할 때 설계를 선택하는 비율이 20∼30퍼센트도 안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요. 그때도 상황이 비슷했나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우리가 졸업한 해가 1972년도였습니다. 그 당시도 35명 중 7명이 훗날 설계를 지원했고 나머지는 건설회사로 대부분 갔었지요. 졸업 직후 저 포함 2명이 설계사무실을 다녔고 다른 한 친구는 설계사무실을 다니다 6개월 만에 그만두었지요. 월급 한번 못 받았고……. 그래도 그 친구는 설계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 당시도 월급이 건설회사의 삼분의 일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이라 부르지 않고 교통비라 불렀지요. 그 당시 건축설계를 하려는 이들은 건축에 대한 신앙심 비슷한 미련함을 가졌었지요.
지금은 눈에 확실히 보이거나, 혹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강하지요. 지금의 세태다운 깔끔함이 있지요. 그 넘어 건너편은 볼 수 없지만…….

 

Q 삼십대 중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그 전까지 직장생활도 오래하셨는데, 가정도 꾸린 입장에서 그런 결정을 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해외 잡지를 보게 되면 번번이 ‘왜 우리는 저런 멋진 건물을 갖지 못하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저런 건물이 지어지는 현장에서 건축을 배우면 가능할 거란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애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장 유학을 가려 했지만 학부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학점을 만회하려고 대학원까지 갔으나 이번에는 학부성적만 반영한다고 하여 당분간 유학은 포기하고 국내서 일만 열심히 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후배들이 유학 준비하면서 한 친구가 선배님은 왜 유학을 안 가세요, 라며 뜬금없이 묻기에 얼버무리며 못 간다 하니 선배님 경력이면 포트폴리오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여 바로 미 문화원으로 가 유학 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7개월 만에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지요. 그때가 제 나이 36살이었고, 집사람, 아이 둘, 이렇게 총 4인이 장도에 올랐어요. 1년 학비와 생활비만 지니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Q 미국에서 본 건축은 한국과 어떤 점이 달랐나요?

80년대 초, 국내에서는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고 객관적인 설계방법론이 유행(?) 하던 때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초중반이라 볼 수 있던 때였지요. 그 당시에는 좋은 건축이란 좋은 방법론을 통해 얻어진다는 가설(마치 중세 시대의 연금술처럼)에서, 건축설계 과정에서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중요 덕목으로 생각하면서 접근하곤 했지요. 감성이나 주관보다는 이성이나 객관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던 시기였어요.
가령 고려해야 할 10개의 항목이 있다면, 각각 독립적인 레이어 (layer)를 포개어 투과시키면 그 총합이 원하는 바의 다이어그램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설명을 할 때도. 이렇게 하겠다가 아니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투로 설명을 하게 되곤 했지요. 저는 유행하는 사조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건축에 있어서의 본질적 물음이 제겐 있었습니다. 그 궁금증은 스튜디오에서 두 달 지나면서 풀렸었지요.
그 당시는 한국과 미국 간 여러 면에서 격차가 많았던 시절이어서 뉴욕에서의 일상적 생활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얻어지는 게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여러 공연들과 가로들, 그리고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탄! 마음만 열면 모든 게 학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그 이후 올림픽 전후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보고요. 컬럼비아에서의 경험도 좋았습니다. 강사들도 1년에 한 학기 한 과목만 하게 되니 강의 내용이 참 알차고 충실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비가 비싸니 그런 게 가능한 셈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비교하게 되었지요. 교육의 밀도나 질을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등록금 얼마의 인상으로 우리에게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43살, 첫 사무소를 오픈하다

이성관 건축사는 1982년부터 1988년까지 6년여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42살에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정림건축에서 1년을 일한 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신세를 졌다’고 한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했다. 이후 그는 용산 전쟁기념관을 시작으로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 숭실대 조만식기념관+웨스트민스터홀 등 신선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건축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Q 건축사들의 목표는 보통 ‘사무소 개소’입니다. 하지만 개소 후에 사무소를 어떻게 운영한다는 매니지먼트에 대한 생각은 잘 안 하는데요. 사무소를 개소한 후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일상에서는 비효율적인 인간형이니 저의 경험이나 생각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반면교사 자격으로 말하고 싶네요.
개소을 한다 안 한다, 하는 것은 저의 입장에서는 취하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목표가 될 수 없었지요. 건축사 자격증은 1979년도쯤인가 취득한 것으로 기억됩니다.(#1579) 그리곤 1989년도 개소하였지요. 미래를 계획하고 차근차근 하나씩 실천으로 옮겨가는 그런 멋있는 부류는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저를 채근하는 것은 스스로 모자란 점이 보이고 그 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저를 여태껏 이끌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설계만 잘하게 된다면 개소를 하든, 조직 속에 들어가든 개소 효과(자율권, 저작권, 재정자립권 등)는 여전히 가질 수 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온실에서 길거리로 스스로 선택해 나온 입장이니, 어려움은 당연히 있었겠으나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운영상의 수지 문제는 단순히 생각하면, 받은 설계비보다 일을 더해주게 되면 마이너스가 된다는 단순한 산법으로 운영해온 셈입니다. 돈은 메울 수 있어도 한번 지어지면 영원할 거라는 착각으로, 두 가치가 충돌할 때는 더 큰 데서 벌어 작은 것 메꾼다는 식으로 해 온 셈이지요. 그리하여 가랑비에 비 젖으면서 지금에 이릅니다.

 

Q 건축도 트렌드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이나 생각도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나요?

건축의 트렌드를 따라간다는 말에는 왠지 반발심이 먼저 생기네요. 차라리 트렌드 속에 놓여있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변하고 있는 건축보다는 변하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건축 초년에 접한 약간의 모더니즘 학습에서 시작하여 한때의 객관적 방법론의 경향, 포스트모더니즘, 신합리주의, 해체주의 등의 세계적 조류의 격랑을 거치면서 지금에 와 있지요.
제가 그 와중, 견지해온 것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윤리적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건물 내부의 사정이 건물 외부에 어떤 식으로건 입면에 반영되어야 한다 혹은 드러나야 한다는 일종의 윤리적 규정이 한동안 지배했었다고 봅니다.
균질한 외벽이라도 그 내부에 기둥이 지나는 부위는 그 힘으로 인해 외부엔 달리 표현되어져야 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동서양 막론하고 과거 전통 건물들은 하나같이 외관에 중력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추상화된 외피 대신 클래식한 문법으로 표현된 외피는 무게감이 더해진다고 봅니다.
가령 전쟁기념관에서 설정되었던 여러 개념들 중 하나인, 도심 속에서의 이미지는 소나무와 물 건너 저편 그린 위에 펼쳐있는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였습니다.
얇은 석판재로서 무게감을 얻기 위해서는 힘의 전달을 주제로 하는 클래식한 어법이 보다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던 겁니다. 그 당시의 포스트모던과는 아무 연고가 없었던 거지요.

Q 그러던 것에서?

건축을 갓 배운 시점에서 지금까지 50년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의 건축잡지를 보면 그 변화를 절감하게 됩니다. 잡지의 편집 수준이나 그래픽에서부터 게재된 건물들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지금과는 차이가 많지요. 계산자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미자에서 BTS로…….
본인이 의식하든 말든 상관없이 달라져 있게 되지요. 모든 면에서 말입니다. 저의 건축도 그 과정에서 꽤나 달라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까지로, 한정된 건축 윤리관에서 더 자유롭고 열린 생각으로까지 옮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런 과정이겠지요.

 

함께하는 것이 플러스…“그렇게 하려무나”

이성관 건축사는 아들만 둘인데 모두 이성관 건축사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각각 뉴욕과 한국에서 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Q 부자가 함께 일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아빠하고 함께 일 못 하겠대요. (웃음) 이십여 년의 차이가 나니 갭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건축이란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플러스예요.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야 더 느끼고 더 깨우치게 됩니다. 자신을 순수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면 자기 일에 속박되는 것이지만 내 것을 하는 게 건축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남의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 배타적으로 되니까요. 좋은 건물을 만든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러면 많은 부분들이 들어옵니다. 지나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저 하고 싶다는 것들에 내가 ‘그렇게 하려무나’ 하지 않고 꼭 토를 달고 고치려 했던 것, 경우에 따라서는 독려하고 인정해 주었더라면 서로 더 좋았을 텐데, 그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 현실과 꿈의 균형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건축과를 나왔어도 각자 자기에 맞는 갈 길이 다양하게 열려있습니다. 건축설계를 택한 사람에게 한한다면, 졸업 직후의 사무소 선택의 방향은, 이 시기는 향후 5년에서 10년간은 여전히 자기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기라 봅니다. 이때는 사회로부터의 보상은 좀 뒤로 미루고 어디 가야 자기가 잘 배우면서 클 수 있는 곳인가를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기간을 잘 지내게 되면 그때는 어디를 가더라도 더 나은 처우를 받게 되고, 독립하더라도 좋은 성과를 얻게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초반의 선택과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미 현업으로 나온 건축사들에는, 우리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거기에는 어려움이 당연히 수반됩니다. 우리 모두는 독립하기 전 떠난 그 사무실에서는 너무 귀하고 소중했던 존재였을 겁니다. 건축사로서의 삶은 본시 고단하기 마련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우리 모두 슬기롭게 이겨냅시다.
참고로, 건축주들은 자기 프로젝트를 위해 몸 던져 일해 주는 건축사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Q 새로운 감각이나 자극을 주는 일들이 무엇인가요?

저는 단조롭고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도 늘 새로움을 경험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질문도 많습니다. 이런 버릇과 기질은 어떤 면에서는 비생산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제가 그나마 지금껏 버텨온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발바닥의 힘보다는 엉덩이의 무게로 살아온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습니다.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저에게 적잖은 영감을 주고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자의 입장에서도 의미 있지만, 만드는 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봅니다. 기회가 얼마나 더 주어질지는 몰라도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작업은 ‘힘이 좀 덜 드는 작업’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그게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일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어떤 어려움들도 훗날이면 이 시절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했던 한 때로 그리워하겠지요. 그래서 지금의 이 시간을 늘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 글 이유리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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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이성관의 건축이 지향하는 것

Architecture Criticism
What Lee Sung Kwan’s architecture aims for

이성관의 건축은 논리를 동원한 분석을 통해 읽어내기보다는, 오감의 감수성으로 느끼는 건축이다. 그의 건축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은 이성관이 사용하는 시각적 언어들이 우리 가까이 있는 것들, 일상적인 것들, 우리가 주목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다듬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또한 이성관은 자신의 건축을 ‘어떤 개념’이나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거나 더구나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프리젠테이션이나 강연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구태여 설명이 요구되면, 그는 ‘말’을 앞세우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미지’로 대체한다. 예를 들어 〈지상 43m의 가상家像〉을 말하면서, 르네 마그리뜨(René Magritte, 1898∼1967)의 〈피레네 성 Le chateau des Pyrenees〉(1959)과 체코의 사진가 얀 샤우덱(Jan Saudek, 1935∼)의 〈너는 요새가 되고, 나는 그 튼튼한 벽안에서 안전하리라 Ty budeš tvrz a já v bezpečí v tvých mocných zdech〉(1978)를 보여주며 듣는 이들의 직관에 맡길 따름이다. 그래서 이성관의 건축은 편안하다.

이런 품성 때문인지, ‘건축가 이성관’은 그저 솜씨 좋은 장인(匠人)으로, 디테일에 뛰어나고, 그저 ‘보기 좋은’ 건축을 무리 없이 만드는 건축가이며, ‘독선적’이기보다는 ‘타협과 절충’(대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에 능한 건축가로 여긴다.
한 때, 건축을 있게 하는 배후의 ‘개념’이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풍조가 휩쓸던 시절, 몇몇 말하기 좋아하는 이론가들 중에는, 그의 건축에 말로 표현되는 선언이나 명확하게 제시되
는 ‘개념’이 없다는 이유로, “디테일에 몰두하다가, 건축의 본질을 잃어버린 건축가”로 폄하되기도 했다. 즉 이성관의 건축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연속성이 설명되지 않은 채, 필연적인 결과가 아닌, 임의로 선택한 화려하고 현란한 모습[figure]들이 정교한 디테일로 연결시켜 구성되어 있어서, 그것은 소위 마치 시각적 언어들이 잘 정제된 제작물composition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물결에 편승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길을 굳굳하게 걷는다. 이러한 그의 모습으로 인해, 그의 태도는 인간의 삶과 문화, 특히 건축에 선험적으로 보장된 유의미한 일관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과 최상의 결단이 있을 뿐, 해명의 통일적 원리를 무규칙적 다양성 속의 세계를 서술할 뿐이다. 이성관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바라보고 주의하기를 다시 배우는 일이며, 자기의 의식을 조종하고, 하나하나의 이미지에 특권적 기회를 주는 일인 듯, 매 작업은 그 프로젝트 자체에만 진력할 뿐, 그의 작품들에 일관하는 ‘어떤 것’을 구태여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보여주는 듯하지만, 방문자로 하여금 감추어둔 ‘보석’을 ‘발견’하게 한다. 아무에게나 보이진 않지만, 그 건축을 애정을 가지고 살피는 눈에만 보이는, 마치 호사를 애호하던 렘브란트(Rembrant van Rijn, 1606∼1669)가 현란한 ‘장식’ 뒤에 ‘무엇’을 숨겨놓듯이.
“〈독서하는 램브란트의 어머니〉에서 주름들은 세밀하게 표현되었고, 눈가의 잔주름, 살갗의 주름, 무사마귀까지 그려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화폭의 내부로 연장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신체로부터 나오는 온기를 공급받지 않는다. … 그러나 그녀의 주름을 치워내면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울 매력적인 젊은 여인을 찾아내게 된다.”(장 주네 「렘브란트」 윤정임 옮김/열화당 p 14-16)

그래서 그의 건축의 참 모습은, 물론 모든 건축이 그러하지만, 현장에 있다.
2017년 8월 건축가협회상 심사를 위해, 이성관의 여주박물관을 탐방했다. 예측한 대로 이 박물관 역시 대부분 이성관의 건축이 가지고 있는 잘 절제된 현란함에 우선 감탄했다. 그러나 그 현란함을 벗겨낸 다음, 더욱 현란한 이성관의 보석을 발견하는 큰 기쁨이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수상작으로 강력하게 추천했고, 전원 일치의 동의를 얻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썼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중앙 홀·수변라운지에서 시작해서 거울 못과 남한강을 지나, 강 건너 마암(馬岩)의 풍경에 종착되는 일련의 서사적 풍경이다. 이 하나의 풍경이 서사적이기 위해서, 무리한 듯 보이는 캔틸레버 구조를 도입하여 무주공간을 우선 만들었고, 중앙 홀은 3개 층의 높은 공간이어야 했고, 거울 못의 레벨은 라운지에서의 앉은 눈높이여야 했으며, 거울 못의 끝단은 물로 감추어져서 남한강의 물과 이어진 듯 착시현상을 유발시켰고, 마암이 서사의 종착점이기 위해 그 시선을 강제하도록 세미한 공간적 조정이 필요했다.”

여기 ‘여주박물관’에서 ‘보석’을 만드는 방법은 ‘풍경의 편집’이다. 대지에서 보이는 수많은 풍경들 중에서 이성관이 주목하고 선택한 풍경은 ‘남한강의 수면’과 강 건너 ‘마암(馬岩)’이다. 그것들이 품고 있는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이것들이 아마 ‘여주박물관’의 어떤 전시물보다 중요한 전시물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과 하나의 서사를 이룰 건축적 장치들, 즉 라운지 공간, 거울 못을 만들고 그 것들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치수를 조정하고, 디테일을 입혀서 하나의 특별한 풍경의 서사구조로 엮어낸다.

여기의 ‘서사적 풍경’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성관의 독특한 시선과 선택 그리고 숙련된 손이어야만 한다. 건축가란 전적으로 무심한 풍경을 서사구조에 담아내기 위해 그것을 변형시키고 구부러뜨리고, 풍경의 일부를 도려내기위해 건축적 장치를 고안한다. 이러한 특유의 ‘손’을 통해 일상적이었고 무심했던 풍경이 공간들과 장치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새로운 문맥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대상들이 건축으로 이행하여 편집되는 조용하고 확실한, 건축의 좁은 길이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자연의 물리적, 인문적 조건이 건축을 만들기도 하지만, 역으로 건축을 통해서 세계, 자연에 대한 지각이 새롭게 규정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자연과 건축은 하나로 합일되어 또 다른 하나의 자연이 된다. 건축이 자연의 한 요소로 변용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읽은 이성관 건축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이런 뜻으로 이성관 건축은 논리에 앞선다.

*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연속성’이란 먼저 숙고하고, 전형(典型 model)을 만든 다음, 거기에 따라 假說을 세우고, 이론적 구상을 한 다음 실천으로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연속성을 강조하는 건축을 우리는 ‘이론화 작업으로서의 설계’라 부르기도 한다.

 

Lee Sung Kwan’s architecture is an architecture that feels with the sensitivity of the five senses rather than reading it through analytic logic. The reason his architecture is not so complicated to understand is that his visual languages are those that are intimate to us, ordinary things, and refined things that are inadvertently overlooked without paying attention. Just take and accept it as it is. Furthermore, he does not try to persuade or even preach his architecture with a certain concept or logic. If an explanation is needed in an unavoidable situation, such as a lecture, he does not put a word in front of him, but replaces it with an’image’ that can be easily seen and contacted around us. For example, whilst speaking of 〈virtual imaginary 43m above the ground〉, he presents 〈Le chateau des Pyrenees〉 (1959) by René Magritte (1898-1967) and Jan Saudek (1935-), a Czech photographer. 〈You will be a fortress, and I will be safe within that sturdy wall Ty budeš tvrz a já v bezpečí v tvých mocných zdech〉 (1978) and leaves it to their intuition. Therefore, his architecture has comfort.

Perhaps because of this personality, Architect. Lee Sung Kwan is simply a skillful craftsman, excellent in detail and an architect who makes decent looking architecture without any difficulties. Rather than being self-righteous, he regards him as an architect who is good at compromising (usually used ain a negative sense). At one time, when the trend was swept away when the concept behind architecture was regarded as the supreme value, some of the theorists disparaged him with the reason that his architecture had no clear manifesto or presented concepts and those referred him as an architect who lost the essence of architecture while immersed in detail. Namely, Lee Sung Kwan’s architecture is composed by connecting with elaborate details, not but with randomly selected splendid and glamorous figures without explaining the continuity between theory and practice. Perhaps, for this reason, it looks like a composition such as well-arranged visual languages.

But he does not go along with the atmosphere, he unshakably walks on his path. Because of his appearance, his attitude does not seem to admit that there is a meaningful consistency guaranteed a priori in human life and culture, especially architecture. Every moment there is the best choice and the best decision, it merely describes the unifying principle of clarification and a world in irregular diversity. ‘Thinking’ for Lee Seung Kwan, like as it is an assignment of learning to look and pay attention again, manipulating his consciousness, and giving each and every image a privileged opportunity, each work focuses on the project itself and he does not try to make ‘something’ consistent with his works.

However, it just seems to show, but it makes visitors “discover” hidden gem. It is not visible to anyone, but only visible to the eyes looking at the architecture with affection, as if Rembrant van Rijn (1606-1669), who loved the luxury, hid ‘what’ behind the flashy ‘decoration’.
“In <Reading Rembrandt’s Mother>, wrinkles were expressed in detail, and fine lines around the eyes, wrinkles on the skin, and even warts were drawn. However, they do not extend into the interior of the canvas and are not supplied with the warmth from the living body. … However, once her wrinkles are removed, we will find an attractive young woman who is still beautiful.” (June Jang, translated by Jeong-Im Yoon, Rembrandt/Yeohwadang p. 14-16)

So, the true appearance of his architecture is on the site.
In August 2017, I visited his Yeoju Museum for a member of critics of the Architects Association Award. As predicted, the museum was well represented of his architecture. However, after peeling off the splendor, there was great joy in discovering even more dazzling gem of him. I strongly recommended it as a winner without hesitation, and he was decided as a winner with the consent of all of them. And I wrote.

“What stands out most is a series of narrative landscape sequences starting from the central hall and waterside lounge, passing through the Pond and Namhan River, and ending with the scenery of Ma-ahm across the river. In order for this single landscape to be narrative, a cantilever structure that seems unreasonable was introduced to create a ownerless space first, and the central hall had to be a high space on three floors, and the level of the pond had to be the level of the sitting eye in the lounge. The end of the pond was concealed with water causing an optical illusion as if it was connected to the water between Namhan River, and a small spatial adjustment was needed to enforce Ma-ahm’s enduring gaze to be the end of the narrative.”

Here, the way to make ‘gem’ in ‘Yeoju Museum’ is ‘editing scenery’. Among the numerous landscapes seen from the site, the landscapes Lee Sung Kwan paid attention to and selected were “the surface of the Namhan River” and “Ma-ahm” across the river. It is a story that they carry. These are probably more important exhibits than any of the exhibits in Yeoju Museum. Therefore, it creates architectural language that will form a narrative with it, namely, a lounge space, a mirror nail, and elaborately and precisely adjusts the dimensions and details, and weaves them into a narrative structure of a special landscape.

In order to create the ‘narrative landscape’ here, it is necessary to have Lee Sung Kwan’s unique gaze, choice, and skillful hands. In order to contain an indifferent landscape to the narrative structure, architects bend, transform and even cut out a part of the landscape. It is a quiet and sure narrow path of architecture that objects transit to architecture and are edited.

Although the physical and human conditions of nature that have already been established make architecture, conversely, the perception of the world and nature may be newly defined through architecture. And that nature and architecture are united into one and become another nature. The transformation of architecture into an element of nature, this was the goal of his architecture, which I understood. In this sense, his architecture is logical.

* ’Continuity between theory and practice’ refers to a series of processes that first consider, create a model, then establish a hypothesis according to it, then devise a theoretical concept, and then turn it into practice. Architecture emphasising this continuity is sometimes referred to as ‘design as a theoretical work’.

 

글. 민현식 Min, Hyunsik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대표 · 건축사

이성관 건축사
사무소 (주)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_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래로1길 10 레쥬벨 B2층
Tel. 02-595-5100 · Fax. 02-595-5106 · 홈페이지 www.hanularch.com

이성관은 부산생으로 부산고 졸업 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후 도미, 컬럼비아 건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HOK에서 수석디자이너로 다년간 근무, 귀국 후 1989년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을 설립하였다. 그해 ‘용산 전쟁기념관’ 설계공모에 당선, 이후 국내 수많은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2008년, 2009년, 2010년 한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3년 연속 수상하였다.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2014년 건축의 날 대통령상 수상하였다. 2017년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 대한민국 건축사대회 조직위원장을, 현 2020년은 대전광역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되었다.

대표작품으로는 용산전쟁기념관, 데이콤강남사옥, 거여3단지아파트, 수입777, 반포577, 숭실대 조만식기념관, 엘타워, 탄허기념박물관, 여초서예관, 여주박물관, 서울대 유회진학술기념관 등이 있다.

 

Lee Sung Kwan was born in Busan. He has graduated his both Bachelor’s and Master’s degree of Architecture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started his first practice in Junglim Architects. He then further studied his Master’s degree in Columbia University and joined H.O.K P.C in New York as Senior Architect for years. Back in Korea in 1989, he established his own firm Hanul Architects & Engineers Inc., when he was elected to design the “Yongsan War Memorial” as well. He won numerous awards ever since and particularly from 2008 to 2010, he received Presidential Prize at the Korea Architecture Award consecutively as well.

He was nominated to be the vice president of Korea Institute of Architects in 2019, awarded the Presidential Prize on Annual Architecture Fest 2014, chosen as the Architect of the Year in 2017, Chairman of the Korea Institute of Architects Organizing Committee in 2019, and currently entitled to be the first head architect in the state of Daejeon Metropolitan City.

His notable buildings include Yongsan War Memorial, Suip 777, Banpo 577, JoMansik Memorial in Soongsil University, El-Tower, Tanheo Memorial Museum, Yeocho Calligraphy Museum, Yeoju History Museum, Academic Information Centre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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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일천삼백리를 가다Ⅱ

낙동강
일천삼백리를 가다Ⅱ

강원도 함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일천삼백리 남부지방의 산하를 적시며 국토 남부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4대강(한강, 영산강, 낙동강, 금강) 중 가장 긴 강으로 길이가 무려 521.5킬로미터에 달한다. 황지연못으로부터 샘솟은 강물은 여러 고을을 지나 수많은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적 사연들을 품으며 수천 년을 흐르고 있다. 남해의 다대포에 이르러 주변 지류와 합류하면 우리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생활용수, 공업용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민족의 젖줄기인 셈이다. 이번 호에서는 낙동강이 연출하는 수려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해야 할 강임을 확인하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일천삼백리 여정이 긴 탓에 여러 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한반도 지사의 유일한 보고지, 구문소
구몬소엔 약 5억~4억4천만 년 전 시기인 전기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의 막골층(석회암)과 직운산층(셰일)이 드러나 있다. 막골층은 건열, 물결흔, 스트로마톨라이트, 새눈구조 등의 퇴적구조가 잘 발달돼 있다. 직운산층에선 삼엽충류, 완족류, 두족류 등 다양한 화석이 산출된다.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의 지사(20~5억년)를 관찰할 수 있는 지질학의 보고지이다

백두대간협곡열차의 기착지, 분천역
200여 명이 사는 산골 마을인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엔 분천역이 백두대간협곡열차의 기착지인 분천역을 통해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온다. 이 협곡열차는 분천역과 철암역을 오가며 운행되고 있다. 협곡열차에선 우리 산하의 대표 산곡풍경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원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철암역 탄광박물관

기암괴석이 장관이구나
청량산은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을 자랑하는 한국 대표 명산이다. 1982년부터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보존되고 있다. 치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어 계곡물이 청정하다. 태백에서 시작된 물은 청량산을 휘돌아 낙동강을 향해 도도하게 흘러간다.

닭실마을 청암정
청암정은 권벌이 닭실마을에 종가를 지으며 조성한 정자로, 1526년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졌다. 주변에 못을 판 후 냇물을 끌어들여 물을 채워놓고, 장대석으로 좁고 긴 돌다리를 축조해 청암정에 다다르도록 했다.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면서 주춧돌과 기둥 길이를 조정해 지었다. 때문에 주추 높이가 각각 다르다. 자연을 활용해 정자를 세운 옛사람들의 지혜와 탁월한 조경기법을 엿볼 수 있다.

시원한 물에서 더위를 잊는 봉화 내성천 은어축제
매년 8월 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이면 봉화지역 내성천에선 은어축제가 열린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이 축제에 참여해 시원한 물에서 은어를 잡으며 즐겁게 더위를 잊는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온라인 축제로 대신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원, 영주 소수서원
영주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백운동서원이 그 시초다. 1542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안향 선생의 고향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에 학사를 건립해 사원의 체제를 갖췄다. 2019년 ‘Seowon, Korea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섬처럼 떠 있는 영주무섬마을
문수면 수도리 영주무섬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가(古家)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내성천이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흐르고 있고, 그 가운데 마을은 섬처럼 떠 있다. 30년 전만 해도 마을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이 다리를 통해 뭍으로 일하러 갔다. 장마가 지면 불어난 물에 다리가 휩쓸려 떠내려가기 일쑤였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다시 다리를 놓았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다. 1979년 현대적 교량이 설치되면서 철거됐었으나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켰다.

태극무늬 모래사장 마을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들어서 있는 마을이 회룡포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풍경이 기이하다. 인접한 향석리에 있는 장안사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면 이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비룡산 능선엔 1998년에 건립된 회룡대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정면을 보면 물도리 모양으로 굽어진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으로 둘러싸인 땅 모양이 항아리처럼 생겼다.

학문과 집필을 위한 조선시대 정자
조선시대 정자는 보통 관직에서 은퇴한 사류의 노후를 위해 지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세와 탐욕이 만연한 세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은일하고자 하는 은둔자에 의해 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초간정은 이들과는 다르게 학문과 집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 오롯이 묵향으로 가득 찬 정자가 바로 초간정이다. ‘초간’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읊은 시 저주서간(滁州西澗)의 ‘홀로 물가에 자라는 우거진 풀 사랑하노니(獨憐幽草澗邊生)’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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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건축 10 브라질 국립박물관

Immortal architecture 10
National Museum of Brazil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축물은 브라질의 130여 년 역사보다 오래되었다. 현재 공화국인 ‘브라질’의 전신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왕정국가 ‘브라질 제국’이다. ‘브라질 제국’ 이전의 브라질 지역은 ‘포르투갈 제국’ 식민지의 일부였다.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축물의 역사는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 전쟁(1803년-1815년)으로 유럽에 있던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다. 유럽 본토를 상실한 포르투갈 황제 ‘주앙 6세(john VI)’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는데, 왕가의 거처(Royal residence)가 필요했다. 이렇게 Paco de Sao Cristovao(Palace of Saint Christopher)는 왕의 거처로서 1803년 착공해 5년 뒤 1808년 완공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본토를 회복하자, 주앙 6세는 1821년 ‘리스본’으로 귀환하며 이 궁전과 브라질 지역을 아들 ‘페드루 1세(Pedro I)’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듬해인 1822년, 페드루 1세(Pedro I)는 포르투갈에 독립을 선언하며 스스로 브라질 황제에 오른다.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이었지만, 포르투갈의 왕자가 세운 국가였다.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아버지 ‘주앙 6세’가 죽자, ‘페드루 1세’는 한때 브라질 황제이면서 동시에 포르투갈 왕을 겸하기도 했다. 결국 ‘포르투갈’과 ‘브라질 제국’은 18세기 말까지 같은 왕족의 또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페드루 1세가 세습받은 것은 궁전만이 아니었다. ‘주앙 6세’가 1818년 ‘리우 데 자네이로’에 왕립 박물관을 설립하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았었다. 이 박물관과 박물관이 소장한 ‘포르투갈’ 왕가의 유물들이 ‘브라질 제국’의 왕립 박물관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페드루 1세’는 유럽의 저명한 학자들을 박물관장으로 임명하고, 희귀하고 중요한 유물들을 지속적으로 모았다. 1889년 ‘브라질 제국’의 황제가 물러나고, 브라질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황제의 ‘왕립 박물관’은 지금의 ‘브라질 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제국이 식민지에서 수집한 유물이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남게 된 배경이다.

브라질 국립박물관은 자연사와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의미 있는 유물을 200만 점 이상 소장하고 있어 규모나 문화적 중요성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특히, 고고학, 고대 이집트, 지중해 문화를 비롯해서 브라질 지역을 포함한 아메리카의 인류학과 자연사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다. 소장한 유물의 양도 많지만, 브라질 국립 박물관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희귀 유물도 많다. 대중적으로 축구와 삼바축제로 더 익숙한 브라질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축구와 삼바보다도 브라질 국립 박물관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2018년 10월 1층 오디토리엄 냉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시 중이던 유물들과 함께 불타버렸다. 세계 최대 박물관의 유물들과 함께 건물도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조금씩 재축이 진행되고 있는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물의 역사를 살펴보자.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1817) © Jean-Baptiste Debret(wikipedia.org)

타워가 증축된 모습(1831) © Jean-Baptiste Debret(wikipedia.org)

1835년-1840년 경의 모습 © Karl Robert, Baron of Planitz(wikipedia.org)

증축 기간의 모습(1858) © Victor Frond, Eugène Cicéri(wikipedia.org)

증축이 완성된 모습(1862) © Augusto Stahl(wikipedia.org)

브라질 제국 말기의 모습(19c 후반) © Arquivo Nacional do Brasil(wikipedia.org)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모습(1905) © JB de Lacerda(wikipedia.org)

화재 전의 모습

화재 전의 모습

이 건축물은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항이 아름답게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으로 지어진 당시(1808년)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1817년)을 살펴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단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층의 창이 크고 화려한 것을 보니, 왕족들은 2층에서 주로 생활했을 것이다. 왕족들은 넓고 우아한 계단을 이용해 넓은 마당에서 2층으로 바로 오르거나, 계단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며 위엄을 뽐냈을 것이다. 언덕 위의 이 저택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리우 데 자네이루’ 항구의 모습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1층은 창이 작거나 없다. 기능적인 출입구로 효율적인 동선을 확보했다. 2층의 왕족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대시설이 1층에 있었을 것이다. 리스본의 화려한 궁전을 떠나 멀리 브라질까지 왔을 당시의 왕족들의 생활을 상상해본다.

2018년 화재 당시 모습

1822년 페드루 1세의 황제 등극과 독립선언으로 브라질 제국이 수립되자, 식민지에 위치한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은 이때 황제의 저택(Imperial residence)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황제의 위상에 맞는 상징적인 모습이 필요해졌다. 포르투갈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거나 화려한 생활을 위한 건축도 필요했겠지만, 제국의 황제로서 유럽의 황제와 같은 위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1822년부터 1826년에는 포르투갈의 Manuel da Costa이 계획하고 이어서 프랑스인 Pedro Jose Pezerat에 의해 1826년부터 1831년까지 계획과 공사가 이어졌다.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된 증축공사로 새로운 황제를 위한 신고전주의 양식(Neo-classic)의 파사드가 강조된다.

화재 전의 모습

한쪽에만 있던 타워의 반대쪽에 새로 타워를 세워 대칭성을 강조한 두 개의 타워를 갖춘 것이다. 이후에도 2층이었던 전면은 3층으로 1개 층을 증축한다. 좌우를 대칭시켜 상징성을 강조하고, 3층 건물로 크기를 키워 황제의 위용에 걸맞은 건축적 웅장함을 더했다. 이렇게 황제를 위한 건축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후에도 브라질의 예술가와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초청되었고, 그들의 손길이 닿은 섬세한 내부 장식과 천장 그림으로 여러 방들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렇게 브라질에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높은 건축물은 1862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1889년 황제가 물러나고 브라질은 왕정국가에서 공화국으로 출범한다. 건국 초기에 브라질 공화국의 헌법 재정단이 이 건물을 임시 사용했지만, 1892년 황제의 박물관을 브라질 국립박물관으로 전환하면서,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황제는 사라졌지만, 유물은 남았다. 대표적인 소장 유물은 ‘루지아’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인류의 화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무려 1만 2천 년 전 여성의 두개골을 복원한 것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에 떨어진 것도 있다. 1784년 발견된 대형 운석으로 무게가 자그마치 5.36톤에 달한다. 이런 진귀한 유물을 2천만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데, 1938년에는 브라질 국가유적(Brazilian National heritage)으로 지정되면서, 건축물까지 국가 문화재가 되었다. 건축물과 건축물 내부의 유물들까지 모든 것이 브라질의 보물이자 세계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곳이었다.

이곳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2년 전인 2018년 9월 2일이다. 1층 오디토리엄의 냉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한 불꽃은 삽시간에 박물관 전체로 번졌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화재 진압을 위해 많은 소방관들이 노력했지만 박물관의 전소를 막지 못했다. 박물관의 내부와 전시 중이던 유물을 모두 태우고, 모든 지붕이 내려앉은 뒤에야 불길이 잡혔다. 석재로 만들어진 외벽은 새까맣게 타버린 내부와 멀쩡한 외부가 대조적이었다. 각종 유물 2천만 점과 동물 표본 650만 점, 식물 표본 50만 점 정도가 있었는데, 일부만 안전하게 옮겨지고, 90% 정도의 대다수 유물은 소실되고 말았다.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자랑하던 희귀 유물들은 이제 사진과 세밀화로 그려진 기록물로만 남았다.

브라질이라는 국가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이 건축물과 박물관은 이렇게 치유하기 힘든 사고를 겼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치유와 복구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비단 기부금으로만 복원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브라질 국민과 기업의 기부금액이 외국의 기부금액에 못 미친다는 소식도 있고, 브라질 국립박물관 복원에는 기부하지 않고,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한 기금으로는 수백억 원을 기부한 브라질의 억만장자 이야기가 전해지자 브라질 여론이 좋지 못했다는 뉴스도 있다. 애초에 화재 사건도 부족한 운영재원에 원인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니 중요성에 비해 인기가 낮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어려움이 전해져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식민지 시절과 왕정시기를 거쳐 공화국으로 거듭난 브라질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충분한 재원과 복원 노력으로 완성도 있는 재축이 되기를 기대하고 다음 시대에서도 브라질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불멸하기를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