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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 경제 생태계 Knowledge Worker

Knowledge based Economic Ecosystem
Knowledge Worker

약 3년 동안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1980년대 대학시절 투덜거렸던 건축계에 대한 비판의 바탕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놀랐고, 우리나라에서 건축의 자리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이 노동과 제조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 경제와 완전히 다른 산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은 본질적으로 노동과 제조 기반의 생산 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건축은 철저한 지식 기반의 경험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지식산업이다.
역사 속에서 건축은 사상이나 철학, 사유에서 출발해 형태적으로 구현한 시각적 결과물이다. 역사책을 넘기지 않더라도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현대건축 개척자들의 행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발상의 시작부터, 시공자들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구현을 요구하고 진행했던 것이다. 당연히 공사비에 관여하지도 않았으며, 결과물이 그들의 생각대로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요구했다.
경영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1)는 ‘미래의 랜드마크(The Landmarks of Tomorrow, 1957)’라는 책에서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적 활동을 하며 고도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 분야가 확장될 것을 예견했다. 또한 지식 기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컬어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하루 생산량 기준으로 성과물을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학습을 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성과 창의성을 더해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 낸다. 지식근로자의 경제적 활동은 생계를 위한 사고(Think for a living)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1957년에 발표한 지식근로자라는 단어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1990년대이고, 2000년에 들어서 성과관리나 지식경제 같은 개념과 함께 확산되었다. IT 벤처 기업들의 붐과도 맞물린다. 이런 이야기를 건축 잡지에서 하는 이유는, 건축사들이 전형적인 지식 기반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나 의사처럼 건축사를 전문가라고 이야기한다. 피터 드러커의 책에서도 변호사 등을 언급하며 지식근로자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사에 대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보상 과정은 변호사나 의사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에 있다. 흔히들 우리가 말하는 노임단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건축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의 지식근로자라는 개념을 인용하면 건축사는 전형적인 지식근로자다. 건축사는 일정기간 전문 교육을 받고, 실무과정을 거쳐서 국가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은 후 자기 이름으로 결과물을 책임지는 일을 한다. 근육을 쓰는 육체노동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생각·판단하면서 건축을 창조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보상기준이나 경제적 대가의 출발이 되는 건축사의 시간당 기준, 즉 노임단가는 우리나라 어떤 자료나 기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준이 없다 보니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를 준용해 대가산정을 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2021년은 건축이 지식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시장조사를 통한 통계 방식의 노임단가 기준 산정 방식이 아닌, 지식 기반 노임 기준 마련의 첫걸음이 되는 해 말이다. 당연히 건축사뿐만 아니라 건축사보 역시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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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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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

건축담론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1 The last 10 years & The next 10 years

2021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건축사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10년의 시작이다. 8년간의 대한건축사협회 임원 활동의 경험과 30년 건축사로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건축계 10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이라면 ‘연 2회 건축사 자격시험’과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제도’를 꼽을 것이다. 지금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책적 이슈지만 2021년에도 건축계를 뜨겁게 달굴 사안들이다.

이 두 이슈의 공통점은 건축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사안에 대해 건축계 내에서도 이해를 달리하는 다수의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슈만큼은 아니지만 올해의 경우 건축 환경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체 감리제도 도입과 건축물 관리법의 시행,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50억 이상 공사에 대한 설계자의 설계안전보건대장 작성, 건설안전특별법 발의 등인데, 이제 건축사는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산업안전 재해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또한, 동네건축 활성화를 위해 지금까지 입찰로 행해지던 소규모 공공발주 중에서 1억 이상의 설계비인 경우 설계공모가 의무화됐고, 설계의도 구현에 대한 대가기준이 제정되어 일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슈들은 건축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건축계의 이해 측면에서는 입장이 같다. 사실 건축계의 여러 문제들은 건축 생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들이며, 건축계의 이해를 달리하는 건축계 내부의 이슈와 건축계의 이해를 같이하는 건축계 외부로부터의 이슈로 구분되는 것 같다.

 

지난 10년간 건축계의 과제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지난 10년간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거리는 아마도 공영감리제일 것이다. 통념적으로 설계자가 감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때,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여 시장을 확대하고 건축사 상호 간에 윈윈을 하자는 취지에서 제도 개선이 추진됐다. 2012년부터 공론화되어 처음에는 협회 내부에서만 자치적으로 시행하다가 2016년 법제화 되었다. 사실 시작은 경쟁 심화로 설계수주가 어려운 건축사들이 많아지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취지였는데, 이것이 법제화까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건축계와는 관계없이 소규모 건축물의 부실공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정부 차원에서 감리 강화를 추진한 것이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감리분리의 대상은 종합건설업 면허 없이 건축주 직영이 가능한 660제곱미터 이하의 건축물이 대상이었다. 이는 건축주 직영 시공에서 부실시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개정 과정에서 감리분리의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여, 건축계에 치유되지 않는 큰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앓는 중이다. 그러나 허가권자 지정감리제가 시행되면서 감리대가가 요율대로 적용되며 정상화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무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도 남겼다. 그런데 이 법이 2017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에 따라 건축주 직영공사 범위가 200제곱미터로 축소되며, 공영감리제 대상이 대폭 줄어들며 실효성을 잃게 되었다. 당시 대한건축사협회 주도하에 새건축사협의회와 한국건축가협회가 TFT를 구성하여 함께 국토부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어렵게 현재의 허가권자 지정감리제 건축법 개정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개정 시 허가권자 지정감리 대상은 설계의도 구현을 의무화함으로써, 현장에서 배제된 설계자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건축계 단체 간 합의에 의해 처음으로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그 다음으로 영향력이 컸던 법 개정은 2017년 정동영 전 국회의원이 발의하여 개정된 건축사법(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에 의해 공공발주사업은 법정 대가기준을 의무적으로 준수하여 발주하게 되었다. 법 개정 후 초기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지금도 조달청 내부지침에 따라 5% 낙찰률을 미리 적용해 설계비를 공개하는 등 많은 개선의 문제가 있으나, 설계대가 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2018년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 의해 동네건축, 생활SOC사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건축방향과 정책이 나온 것이다. 이로 인해 소규모 공공건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설계비 1억 이상이면 설계공모로 의무적으로 발주하게 제도화되었고, 국가예산도 대규모 기간산업에서 소규모 공공건축으로 재편되며 공공 건축시장이 확대되었다. 특히 금년의 경우 코로나와 강력한 부동산 규제 등으로 민간 건축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은 반면, 공공부문 시장은 활기를 띠며 그나마 건축시장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국건위는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여러 법에 나뉘어져 있는 공공건축의 기획, 발주, 설계 등의 제 규정들을 하나로 묶어 일관된 운영이 가능하도록 공공건축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이 법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이렇게 좋은 취지로 추진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총괄 건축가, 공공 건축가라는 용어를 법률적 정의 없이 사용하고 있고, 직접 이해당사자인 건축사들이 ‘건축사의 유사명칭 사용금지’라는 건축사법 위반 소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소통 없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건축계의 아킬레스건이기는 하지만 건축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제는 ‘건축가’ 명칭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내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위의 세 가지가 지난 1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정리하고 보니, 모두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협회 의무가입을 추진하는 것도 빈사 상태의 건축 생태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고, 연 2회 건축사시험제를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 관철되려면 사회적 요구와 부합되어야 함과 동시에, 끝없는 노력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 관철되려면 사회적 요구와 부합되던지, 끝없는 노력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년간 추진했던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마침내 국회 발의가 이뤄지고 개정 건축사법에 대한 국토부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 국민의 안전이라는 명분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단체 간의 소통에 의한 합의로 사회적 명분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는 이제 약육강식이 당연시되는 미국식 야수 자본주의에서, 공정보다는 평등이 우선시 되고, 성장보다는 지속성을 강조하는 유럽식 사회적 자본주의로 재편되고 있다. 적자생존이 당연시되던 ‘올드노멀 시대’에서 생태적 순환과 삶이 중요시되는 ‘뉴노멀 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인식해 대정부 활동을 해야 한다. 문제가 산적해 있고 갈 길은 멀지만 인내심을 갖고 머리를 맞대 꾸준히 건축계와 함께 고민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준수한다면 건축계 앞으로의 10년은 더 밝은 미래가 보장되리라고 확신한다.

 

글. 박성준 Park, Sungjoon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

박성준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건축사

박성준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시설장교, (주)일건건축사사무소를 거쳐 1994년부터 지금까지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사, 대한건축사협회 이사를 거쳐 지금은 대한건축사협회 특임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건축사의 지역 참여와 주거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동네 건축인모임 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시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urispace7@naver.com
blog.naver.com/urispace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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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건축담론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2 Why an I doing this work?

새해는 신축(辛丑)년이다. 작년 경자년 말에 찾아보다 알게 됐는데, 눈에 쏙 들어왔다. 건축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 표기가 같으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에 기회가 적었던 신축(新築)이 올해는 많아지길 바란다.

매년 말이면 방송에서 그 해를 결산하며 기념할 만한 ‘10대 사건’을 나열하곤 한다. 필자도 덩달아 스스로의 한 해를 정리하며 10대 사건을 기록해 기념하곤 했는데, 2020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멈춰버린 일상에서 기념할 만한 사건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비단 필자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팬데믹뿐 아니라 국내의 혼란스러운 정치와 경제, 그로 인한 사회 문제까지 가중되는 속에서도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며 2021년을 맞았고, 또 한 살을 먹게 됐다. 빽빽하게 채워졌던 이전과는 달리 삶은 텅 빈 여백만 남았다. 아니 ‘여백’이 아니라 그냥 ‘공백’이었다. 이런 시기가 또 언제 있었는지 오십 중반의 시점에서 돌아보니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없길 바라지만 한 치 앞을 못 보는 범부가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그런 속에서도 코로나19 덕분에 얻은 소득이 있었는데, 여력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목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야 작은 공방에서 뭔가를 만들며 재능을 계발하게 됐다.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고, 아내와 함께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내면 깊은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이 모든 게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바쁘다는 핑계, 또는 실제 분주함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상황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위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k-방역이라 부르는 질병 관리 능력을 비롯해 그 이전의 k-pop, k-movie 등 k-culture가 널리 이름을 날리고, 스포츠에서도 축구의 손흥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발군의 능력자들이 나타나고 희망과 빛을 주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k-건축’도 세계인들의 입에 회자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수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사이먼 사이넥의 책이다. 당시 이 책을 손에 든 뒤 쉬지 않고 연속 2 회독을 했었다. 필자의 독서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고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영어 제목은 <Start with why>였다. 한 줄로 요약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0년부터 ‘조아저씨’와 ‘Archijoe(아키조)’란 닉네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창의교육의 범주에서 건축을 가르쳐 왔다. 더불어 방송과 온라인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관공서 등 오프라인에서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생활 속 건축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가끔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건축설계와 더불어 또 하나의 직업으로서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고, 호응을 얻으며 지금껏 달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강사들이 실직하거나 전업을 했으며, 필자 역시 앞으로 가르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11년간을 돌아볼 때 특별한 지원 없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소명감’이었다. 어차피 이리 사나 저리 사나 한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하늘이 내게 부여한 역할을 잘 수행하다 가면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선택한 일이었다.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

좋은 건축문화의 시작은 건축사의 역량이 아니라 건축주의 소양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건축사가 최선을 다해 멋진 계획을 할지라도 건축주가 수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건축주의 건축에 대한 이해와 소양은 그만큼 중요하다. 필자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축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집행 능력을 가진 중장년을 위해서도 병행해야 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차세대를 위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건축주가 많아지면 좋은 건축물도 많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축사에게 기회가 많아진다. 필자는 이 일을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일이든 기대 수익자가 먼저 일을 하고 투자를 한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그럼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의 수익자는 누구일까? 그 첫 번째 수익자는 국가다. 나라에 좋은 건축물이 많을수록 관광객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면은 물론 기타 부가적인 효과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특수한 때이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오히려 봇물 터지듯 해외 관광도 시작되리라 본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건축물들을 실제로 보고 거기 살았던 이들의 삶의 향기를 느끼며 스토리를 듣고 체험하기 위함이다. 건축은 사유재산이자 공공재산이기에 좋은 건축주를 키워내야 할 국가의 의무는 분명하다.

두 번째 수익자는 국민이다. 안전하고 편리한 건축물에 살게 되면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지고 수명도 길어진다. 행복한 일상의 공간에서 일의 효율도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건축에 대해 배우고 알수록 유익이 커진다. 좋은 건축주가 많아지게 되면 세 번째 수익자는 건축 관련 단체와 종사자들이다. 실질적인 사업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와 회원들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수익자는 필자다. 관련 교육이 많아지면 필자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지난 11년째 아직도 혼자 하고 있다. 사실 역부족이다. 그래도 소명이라 믿고 쉽지 않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라’가 안 하니 ‘나’라도 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 먼저 생각한 사람이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일에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 그리고 관련 단체들이 모두 힘써 좋은 건축주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시길 바란다.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낮은 데 있는 감은 다 따고 손이나 막대기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감은 잘 익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뿐인데, 그나마 몇 개 안 되면 다 떨어지고 난 뒤 아쉬울 뿐이다. 하늘에서 감이 지금보다 더 많이 떨어지게 하거나 딸 감이 많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감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감을 따기 위해 감 따는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감나무가 많아야 한다.

우리에게 감나무는 누구일까? 대한건축사협회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미래인재 육성’의 미래인재는 누굴 의미하는가? 후배 건축사를 배출하고 예비 건축사를 키우는 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진짜 감나무인 좋은 건축주를 육성하는 일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축문화 구현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우리의 미래 먹거리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오랜 꿈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건축문화 선진국이 되는 것이고, 필자는 그 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결국 좋은 소양을 가진 건축주가 많아져야 한다. 허황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한 세대 후 건축주가 될 시기에는 필자의 오랜 꿈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고 있다. 역사 속에서 한 세대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건축문화 선진국을 향한 작은 오솔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에 함께하는 이가 많아지면 길도 넓어지고 더 빠른 시일에 그날이 올 것이다.

2021년은 신축(辛丑)년이다. 독자 여러분 모두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생각하며 소처럼 꾸준하고 끈기 있게 목표를 신축(新築) 하시길 바란다. 현재뿐 아니라 후대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긴 안목으로 멋진 인생을 건축하며 튼튼하게 지탱해 줄 지정과 기초도 잘 놓으시길 권한다.

 

글. 조원용 Cho, Wonyong 다이아몬드 건축사사무소 · 아키조TV

조원용 다이아몬드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 아키조TV

책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의 저자이며, KBS2 TV특강, EBS특강,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KBS 여유만만 건축인문학 특강 등 다수의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안산대학교 건축설계과 겸임교수, 경원대학교 건축학과 외래교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다이아몬드 건축사사무소 대표, (주)창의체험 대표이사, (사)환경미술협회 환경건축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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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가벼운 이야기

건축담론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3 A simple story

00. (들어가며)
‘건축계의 과제, 비전,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원고 의뢰가 이제 개소한 지 3년 남짓한 애송이 건축사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아직 ‘건축계’의 판을 읽을 만큼의 식견이 내겐 없는데……. 고민 끝에, 애송이답게 눈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보기로 한다.

01. (나의 시작)
사실 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을 꿈꿔본 적은 없었다. 건축사는 나에게 건축 전공자로서 마무리 지어야 할 ‘유종의 미’였고, 새해 첫날 다짐하는 다이어트 같은 밀려있는 ‘숙제’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건축사사무소를 다니다가 큰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지고, 집장사를 꿈꾸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백수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정미소에 대한 건축적 제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왔다. 다른 이들에겐 철거해야 할 그저 그런 낡은 건물이었겠지만, 내 눈엔 녹슨 빨간 양철지붕마저 너무 사랑스러운, 감성 돋는 오브제였다. 욕심이 생겼다. 회사를 그만두기 바로 직전에 대구 삼성창조캠퍼스를 통해 리모델링을 ‘진하게’ 경험했었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군수님께 정미소에 대한 제안사항을 말씀드렸고, 흡족해하셨고, 내 인생에 최초로 ‘수주’라는 것을 해냈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나름 고액 연봉을 받고 있으나 설계공모로 지쳐있던 후배까지 꼬드겨서 내려오게 만들었고, 그렇게 둘은 2.5평 남짓한 선배 사무소 내 작은 회의실에 야심 차게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관공서 수의계약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일이라서 건축사가 필요했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로서는 선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건축사에 대한 절실함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다. 겨우 수의계약(금액은 짐작하시겠죠) 한 건으로 소속 건축사도 없이 스튜디오를 오픈하다니.

02. (어쩌다 재생)
오래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은 굉장히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무분별한 개발행위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재생과 리모델링은 나에겐 가치관과 부딪치지 않으며 건축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였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는 피해야 할 분야다. 리모델링 사업은 공사비가 적게 든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낮은 공사비가 책정된다. 공공건축 대가 기준이라는 것이, 공사비의 요율로 책정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설계비도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어쩌다 산정 근거에 의해 1.5배 적용을 해준다 해도 설계비가 드라마틱 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출발부터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재생사업이 그러하듯이 초반에 책정된 공사비는 증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예산 확보가 가능하면 다행이다. 아니, 다행인가? 공사비는 예산 확보로 늘려주면서, 낮은 공사비에 따라 책정된 설계비는 그대로다. 규모나 사업범위가 줄면서 설계비를 깎는 경우는 봤어도, 예산 확보로 공사비가 올라갔을 때, 설계비를 올려주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그냥 업무만 늘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예산 확보가 절대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맞춰서 해 달라 하면, 그 때부터 건축사사무소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애써 그려놓은 디자인 다 지워가며 그냥 그런 건물로 마무리 짓고 납품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리모델링은 현장의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납품 이후에도 설계변경이 계속 수반된다.

그래서 리모델링이나 재생 쪽 설계용역은 아무리 작은 건물도 1년 안에 손을 털기가 쉽지 않다. 사업 측면에서는 당연히 손실을 입는다. 왜 건축사들은 리모델링이나 재생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몰랐었다. 단지 ‘귀찮고 어려우니까’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튜디오로 일을 하던 첫해, 후배와 둘이서 1년 동안 리모델링 용역 2개를 진행했다. 열정적이었던 그 시기에 우리가 가져가는 돈 ‘따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업무범위도 아닌데, 인테리어, CI까지 만들어가며 ‘오버’를 했다. 주말도 없었고,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일했다. 사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인정받았고,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새 직원이 4명이나 되는 건축사사무소의 ‘경영인’으로서 이제는 ‘운영’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내 만족으로만 일을 할 순 없다. 그렇게 나 역시 점점 리모델링 사업을 기피하고 있다.

03. (갑자기 결론 ; 과제와 비전)
몇 해 전부터 도시재생이 뜨겁다. 그 재생사업 안에는 지표적으로 성과를 내기에 쉬운 하드웨어 사업으로 거점 시설들이 몇 개씩 들어간다. 보통은 신축으로 발주를 한다. 발주처의 의지가 있는 곳은(어쩌면 사업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재생사업에 의미를 더하며 낙후 건물 리모델링으로 발주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독 건으로 건축사에게 발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사업은 도시 쪽 엔지니어링 회사에 건축사사무소를 묶어서 정비 사업에 속한 형태로 발주되기도 한다. 그렇게 건축사가 주도해야 할 업무가 이쪽에서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형편없다. 그 건축사를 탓할 순 없다. 대가에 맞게 딱 그만큼의 업무를 한 것이니.
앞으로 리모델링·재생사업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정책적인 장려에 따라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 떠오르는 시장을 건축사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업무량에 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사비 요율과는 독립된 대가기준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렵다면, 발주처가 의지하는 조달청 공사비 정보광장 혹은 AURI에 리모델링·재생사업에 대한 공사비 사례를 별도의 카테고리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청 많은 건축사가 배출되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용역비로 일을 진행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발주처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나 역시 시작은 그랬다. 인맥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보여주기 위한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 했으니까.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정당한 업무대가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신진 건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건축사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으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힘들게 공부하는 건축학도들이 자신의 건축사사무소 개소를 꿈꾸는 날이 오면 좋겠다.

 

글. 이충미 Lee, Chungmi 진짜노리 건축사사무소

이충미 진짜노리건축사사무소·건축사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주)희림 종합건축사사무소, (주)삼우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2018년 진짜노리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담양 천변리정미소 리모델링, 담양 해동주조장 문화재생사업을 시작으로 인문학가옥(담양구관사) 리모델링, (구)담양읍교회 리모델링 등 재생프로젝트부터 담양호 관광단지 공공화장실, 담양 청소년문화의집,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신축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reallpl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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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우리나라의 대표적 거주유형에 대한 생각

건축담론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4 Thoughts on Korea’s representative types of residence

요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건축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코로나로 사업에 타격이 많으시죠?”이고, 다른 하나는 “인테리어 붐이던데 돈 많이 버시죠?”이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할 뿐 시공업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내디자인 또한 설계 및 감리는 하고 있다고 버튼 눌린 기계처럼 대답하고 나면 대화는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코로나로 집콕족 ‘집꾸미기’ 열풍…
주거 공간 관심이 ‘인테리어로’ 귀결돼

코로나 이후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스테이 엣 홈(stay at home)’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데, 코로나 덕을 본 회사 중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홈 디포(Home Depot)’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게 건축자재와 주택 개보수 관련 디아이와이 제품을 유통하는 회사로 올해 들어 시가총액이 315억 달러(약 37조 원) 늘었다고 한다. 오프라인 점포 영업을 하는 유통회사가 코로나19 시국에 이 정도 성장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재택근무, 자가격리로 주로 외부에서 보내는 일과시간 외 잠만 자는 공간이었던 거주공간에 대한 인식은 변하고 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마리에곤도’나 ‘신박한 정리’와 같은 쇼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제한된 생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흔히 30평대 아파트로 지칭되는 방 세 개짜리 주택은 ‘넓지 않은’이 아닌 ‘좁은’ 공간이 되었다. 거주자들의 “어떻게 하면 좁은 집에서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인테리어’로 귀결된 듯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주택유형별 거주 비율에서 아파트 거주 비율은 50%를 넘어섰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의 지역별 소득계층별 주택유형에 따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저소득층은 29.1%, 중소득층 56.2%, 고소득층 76.6%로 고소득자일수록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계속되는 집값 상승과 까다로워진 대출 여건들을 고려하였을 때 이 비율은 점차 양극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건축주들의 대다수가 고소득층인 것을 감안하면 아파트 인테리어는 건축사사무소와 무관하지 않다.

선호하는 공간의 면적과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용적률과 경제성의 논리로 최근 공급된 주택들은 절대적인 면적이 작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좁은 집을 아무리 가꿔도 넓은 집보다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하여 재택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답답함은 더욱 크게 느껴지게 되었고,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도 고소득자의 소득은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므로(통계청, 소득5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전국, 2인 이상>, 2020년) 넓은 면적의 아파트는 수요-공급의 원리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한 방으로 구획된 아파트의 형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에게 개방된 외부공간이 마스크 없이는 머무를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함에 따라 개인적으로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외부공간에 대한 기호가 생겨나고 있다. 뻥 뚫린 옥상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의자 하나라도 놓을 수 있는, 야외에 개방된 발코니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건축의 목표란…‘공간, 비어있는 사이,
생활하며 사용하는 곳을 디자인 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아파트는 공동주택 공모일 때나 건축사가 할 일이지, 다른 건 건축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건축과 실내디자인이 별개의 영역인가 아닌가를 따진다면 실내디자인이라는 분야는 건축이라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에 포함된 영역이고, 실내디자인만 한다고 하더라도 구조 변경 등의 이슈가 있으면 공인된 건축사의 확인이 필수이므로 건축사는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고를 키워서 아름답고 편리한 실내디자인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인테리어라고 통칭하는 실내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건물의 사업성은 다른 문제로 차치한다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 이롭다. 전 세계적 재난 위기로 얼어붙은 투자 심리와 각종 규제 및 법규로 새로운 건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제한된 땅과 제한된 재원이라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조각 같은 건축물을 새로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존 건축물 안의 공간에 대한 제안도 할 수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건축사사무소의 업태는 서비스로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기능 및 적법성의 접점을 찾아 최적의 안을 제안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그가 경험해 온 것들과 현재 영위하고 있는 것에 기반하여 형성되므로 건축사로서 건축주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공간, 비어있는 사이, 생활하며 사용하는 곳을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의 목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글. 강재원 Kang, Jaewon 곧 건축사사무소(주)

강재원 곧 건축사사무소(주)·건축사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7년 실무경험 뒤 ‘곧 건축사사무소(주)’를 개소했다. 기획과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실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까지가 건축의 전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과정이 즐겁게”를 표어로 삼고있다.
01@beforel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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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일천삼백리를 가다 Ⅳ

Traveling the 1,300-ri(525km) long
Nakdong River Ⅳ

국토의 신성한 곳, 태백산맥의 준령들이 모여있는 곳의 황지에서 발원하여 장장 일천삼백 리를 흘러 남해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3개의 도를 거치는 대장정을 이루어내는 강이다. 발원지 강원도의 험한 산지를 흐르며 계곡 상류의 거친 물결과 수정 같은 沼를 만들었고, 하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경상북도에 이르러서는 신성한 청량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며 휘돌아가다가 선비의 고장 영주, 안동 땅을 적시면서 수많은 아름다운 풍광을 형성하여 문화유산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이어서 상주 인근에서는 넓디넓은 들판을 적셔 인근 농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삶의 근거지를 제공하기도 하거니와, 근대사회 이후 눈부신 고도성장의 발판인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발전시켰으며, 대한민국 제3대 도시인 대구를 굽이치며 옛 가야의 발자취를 안고 있는 고령에 이어 낙동강의 하구에 이르는 민족의 젖줄기인 강이기도 하다. 이러한 낙동강이 품고 있는 진면목을 돌이켜 보면 앞에서 열거한 몇 가지 사례들보다 훨씬 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일일이 다 열거하려면 많은 지면에 걸쳐 설명이 장황할 수 있는 염려되는 마음에 간략히 줄이고자 한다. 이처럼 한반도를 흐르는 4대강 중에 가장 긴 낙동강의 참모습을 살피고자 일천삼백 리에 걸친 여행의 소회를 얘기한다면, 비단 낙동강뿐 아니라 우리의 국토를 가없이 흐르는 4대강은 그야말로 수천만 년에 걸쳐 흐르고 있는 우리의 금수강산을 더욱더 아름답게 조성해 나가리라 생각되며, 그 도도한 흐름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흐르는 아름답고 건강한 강이 되기를 우리 모두가 기원해 주길 빌면서 이글을 맺고자 한다.

강정 고령보의 디아크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 4대강 정비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우륵교라는 다리가 있지만 지역 갈등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Hani Rashid)가 설계한 디아크는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잘 표현해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문진 숲의 가을 화원읍의 사문진은 예로부터 관광명소로 유명했다. 현재 사문진교 인근 화원 유원지는 조선시대 사문진을 짐작케 한다. 1960년대만 해도 사문진은 배를 띄우고 노는 유원지로 각광을 받았다. 과거 십 수 년 전에는 은행나무 묘목장으로 이용되다가, 은행나무 숲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후엔 가을이면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유명세를 더해가고 있다.

달성습지
대구 달성군 화원읍 구가리 일대, 대구 달서구 파호동, 경북 고령군 다산면 일대에 걸쳐 있는 달성습지는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과 대명천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광활한 하천습지다. 낙동강 수계가 정비되기 전에는 장마 때마다 범람이 잦아 대명 유수지로 개발했다. 이후 주변 배수지와 함께 홍수 조절지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기념물이자 국제 보호 조류인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찾는 철새 도래지였다. 대구 서부의 성서공단 개발 등으로 지금은 보기 힘들게 됐다. 요즘은 황로, 왜가리를 비롯한 백로류 등 여름 철새와 고니, 홍머리오리, 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가 찾아든다. 달성 습지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를 비롯해 약 230종의 생물종과 멸종위기 동물 등이 서식하고 있다. 대도시 주변의 친환경 적습지로의 가치를 톡톡히 하며 주변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가을철이면 광활한 습지의 억새가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한다.

도동서원의 만추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다.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서원 전면의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는 450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늦가을이면 샛노란 단풍으로 전국의 관광객들과 여행가들의 발길을 이끈다.

달성보 야경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총연장 580미터, 높이는 9.5미터로 유량조절과 수력발전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뱃머리를 형상화한 외형은 마치 낙동강 하구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듯하다. 낙동강의 보들 중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밀양 삼랑진과 생림(삼랑진철교)
밀양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든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 하여 삼랑진이라 하였다. 또한 삼랑진 낙동강에는 국도58호 신·구 삼랑진교, 경전선 신·구 낙동철교, 대구부산고속도로 낙동대교 등 다섯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이들 다리를 중심으로 강의 좌우 안에는 생태환경적 공원들이 조성돼 있다.

낙동강 하굿둑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낙동강 하구의 마지막 방조제로, 낙동강이 남해와 접하는 기수 지역에 있다. 낙동강 하구는 썰물 때 바닷물이 상류 약 21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물금취수장까지 치고 올라가 부산 시민의 취수를 위협했고, 김해평야의 안정적 농업용수 취수에도 영향을 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을숙도 철새 도래지와 함께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우리 국토 맨 끝에서 낙동강 하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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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01 금속(金屬)

Term@Architecture 01
Metal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 포스터 © 토에이 애니메이션

‘코레이늄’이 언급된 방영안내 기사 © 경향신문 1979-08-07 기사, 사진은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마징가Z’

마징가 Z
마징가 Z, 국내에서는 1975년에 첫 방영을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주제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서, 당시 초등학생들은 입에 달고 다녔고, 운동회 때면 응원가로도 애창되었다. 노래의 가사에는 마징가 Z의 재료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무쇠팔 무쇠다리’, ‘무쇠로 만든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주제가 덕분에 필자는 ‘무쇠’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는 생각을 어린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

무쇠 / 주철
무쇠는 탄소 함량이 2% 이상인 철을 지칭하는 ‘주철’의 순우리말이다. 주철은 탄소 함유가 높아서 단단하지만, 연성이 약해 충격에 쉽게 깨진다. 게다가 주철은 녹인 쇳물을 형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주물’ 방식에 적합한 금속이다. 즉 주물로 만든 제품은 두껍고 무겁다. 로봇 제작에는 최악의 재료인 것이다. 일정한 형태를 반복해서 생산하는 소형의 피규어 로봇이면 적당하겠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공학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 내용에는 후지산에서만 발견되는 미지의 신원소 ‘재패니움(국내에서는 ‘코레이늄’으로 번역)’이라는 특수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애니메이션 내용과 주제가 내용이 다른 것이다. 너무 좋아했던 노래여서였을까? ‘무쇠’의 참뜻을 알고 나니 문학적 표현으로 넘기기 어려운 배신감이 들었다. 어린 시절 마징가 Z 주제가에서 느낀 이 불편한 기분을 건축설계를 하면서 다시 느끼게 해준 금속이 있었으니 바로 ‘리얼징크’였다.

 

19세기부터 형성된 파리의 징크 지붕

아연도금철판인 함석(galvanazed steel sheet) 표면

징크(Zinc) ; 아연
징크(Zinc)가 무엇인가? 징크(Zinc)는 아연을 말하는데, 원소기호 Zn, 원자번호 30인 금속으로 철, 알루미늄, 구리와 함께 매우 중요하고 널리 사용되는 금속이다. 아연은 공기 중에서 단단하고 얇은 산화피막(ZnO)을 형성하여 더 이상 산화하지 않는다. 즉 녹이 생기지 않는 금속이다. 건축 재료로서 아연(zinc)은 로마시대부터 지붕재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1811년 이후 얇고 넓은 판 형태 (rolled zinc)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모든 지붕을 아연(zinc)으로 하도록 규제하면서 오늘날 파리의 건물 90% 이상이 아연판 지붕인 풍경이 되었다. 1960년에는 소량의 티타늄을 아연에 합금하는 기술이 완성되었고, 1976년에는 생산공정에서 인공적으로 산화층을 형성(pre-weathering) 하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오늘날의 아연(zinc) 지붕재가 보급되었다. 건축 재료로서 징크라면 이런 제품을 사용할 때 징크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석
장점만 있어 보이는 징크도 단점이 있다. 철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저렴한 철을 바탕 재료로 하고, 가격이 비싼 아연을 얇게 도금하여 철이 산화(녹) 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철판에 아연도금을 한 것을 우리는 ‘함석’이라고 한다. 함석은 녹이 생기지 않지만, 필요한 모양으로 절단하면 문제가 생긴다. 절단면에 철이 노출되면서 이 부분부터 녹이 생기는 단점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과 산화(녹)에 어느 정도 저항성이 있는 함석이 널리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리얼징크
그런데 ‘리얼징크’는 전혀 다른 제품이다. 철판 위에 페인트를 칠한 제품인 ‘칼라강판’ 중에서 아연판의 산화층 표면 색상을 흉내 내어 아연판처럼 보이는 제품이다. 모조품에 ‘리얼징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색상과 무늬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칼라 강판은 강판의 장점과 함께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적용하여 폭넓은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도장 기술이 발전해서 그 표현력도 정교해졌고 내구성도 훌륭하다. 적절히 사용된다면 칼라강판도 분명 요긴한 건축 재료인 것이다.

칼라강판의 구성

‘리얼징크’라는 단어를 순수한 아연판을 지칭하거나 티타늄 등을 소량 첨가하여 아연의 성능을 개선한 아연판을 지칭하는데 사용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연도금한 철판을 지칭하는데 사용했다면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금박한 것을 순금 또는 진짜 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첨단 로봇 소재를 ‘무쇠’라고 작사한 것은 어린 나를 기망한 것이고, 아연(zinc)이 아닌데 ‘리얼징크’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파리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은 무지한 소비자와 동종 업계의 전문가를 기망한 것이다. 전자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후자는 범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게맛살’을 ‘게살’이라고 하면 소비자를 속인 것이 되므로, 형사상 책임이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징크 색깔의 칼라강판’을 ‘진짜징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게맛살’을 ‘진짜게살’이라고 이름 붙여 판매하는 것과 같다. ‘리얼징크’라는 제품명이나 용어는 윤리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바
‘리얼징크’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건축 현장이나 계획 과정에서 사용하는 말을 듣고 불편했던 용어는 ‘갈바’였다. 너무나 자주 사용하고 너무나 편하게 써서 ‘갈바’라고 표기된 도면도 많다. 그래서 ‘갈바’가 어떤 용어인지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계기는 중국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도면을 작성하면서였다. 표기를 영어 또는 한자로 표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갈바’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랐다. 적절한 표기법을 주변에 문의했으나 답변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 해결의 실마리는 현장에 있었다. “예전에는 ‘갈바’를 ‘함석’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현장 경험이 많으신 잡철 사장님이 귀띔해 주셨다. ‘함석’을 검색하니 ‘표면에 아연을 도금한 얇은 철판’이라는 해설이 있었고, 영어사전에는 ‘galvanized steel sheet’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galvanize는 ‘~에 아연 도금을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고, 함석의 영어 표현인 galvanized steel sheet를 줄여서 ‘갈바’로 불렀던 것이다.

 

열연강판

냉연강판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의 구성

‘SUS’가 세겨진 스테인리스강 밥그릇

구로철판
구로철판은 차분한 색상에 표면 무늬가 자연스러워 인테리어 소재로 널리 사용되는 철판이다. ‘갈바’처럼 ‘구로’라고 통용된다. ‘구로철판’이 무엇인지 재료를 보면 분별할 수 있더라도, ‘구로’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로’는 일본어로 검은색(くろ[黒])을 뜻한다. 쇳물을 가공해서 나온 평평한 모양의 철강반제품인 슬래브를 뜨거운 상태에서 롤러로 압축해 필요한 두께의 철판으로 가공한 것을 열연강판이라고 하는데, 이때 가열 과정에서 표면이 산화되어 열연강판이 검은색을 띠게 된다. 그래서 검은색 철판이란 의미로 일본어로 ‘구로철판’ 또는 ‘구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써스
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을 ‘써스’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느낀 난감함은 아직도 기억난다. 영어인 stainless steel을 줄여도 ‘써스’가 조합되지 않았고, 비슷한 발음의 일본어도 없었다. ‘써스’의 의미는 점심 식사로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단서를 찾았다. 밥그릇의 뚜껑을 열었는데, 뚜껑에 SUS-304 라고 음각이 되어 있었다. 고맙게도 밥그릇을 만든 금속 재료의 기호를 친절하게도 새겨둔 것이다. SUS는 JIS(일본 공업규격)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강 표기다. Steel Use Stainless의 약자로 SUS라고 표기한다. 아마도 국산 스테인리스강이 보급되기 전 일본산 스테인리스강을 많이 사용하면서 재료표기에 사용된 약자(SUS)를 그대로 읽어 ‘써스’라고 부른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Stainless Steel의 약자로 SST.를 사용한다. 그래서 건축사사무소마다 또는 도면 작성자마다 스테인리스강을 표기하는 약자가 다양하다. 신입사원들이 현장에 몇 번 다녀오면 입에서는 ‘써스’가 튀어나오고 도면에는 해외 서적에 표기된 SST가 표기되는 모습을 보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전문용어는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다. KS 기준에서는 스테인리스강을 STS.라고 정하고 있으니, 우리 도면에는 STS라고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표기가 적절하다면, KS 기준을 바꾼 뒤에 사용하는 것이 순서겠다.

 

신라 금관

고려시대 금속활자 © 국립중앙박물관

청동 수저 ©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스테인리스강 수저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은 오직 14개뿐이라고 한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것이 10개다. 단연 압도적인 비율이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이나 철로 배를 덮은 거북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 숟가락과 젓가락을 고대부터 지금까지 금속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유일무이하다. 현재에 이르러 우리의 선박과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금속을 다루는데 남다른 우수성이 있음을 숨길 수가 없겠다. 그래서 금속 관련 용어의 의미나 어원을 모르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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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 공간과 상징을 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Miyazaki Hayao’s works that embody metaphorical space and symbol

마녀 배달부 키키 포스터 © (주)스마일이엔티

붉은 돼지 포스터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포스터 © (주)이수C&E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마도 일본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의 만화 영화 감독이 아닐까. 어린 시절, 주인공의 이름이 전부 한국식 이름으로 바뀌어 있어 우리나라 만화 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만화들의 상당수가 그의 작품이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의 작품 중 <엄마 찾아 삼만리>라던가 <플란다스의 개>, <미래소년 코난> 등의 일부 장면은 50대 중반이 넘어서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실력은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만화 영화보다는 장편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을 본 듯한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등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는 암암리에 들어왔다가,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된 2000년대 이후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했다.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어른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동료이면서 청년시절 격렬한 현실 운동에 참여했던 다카하타 이사오와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른 만화영화를 선보였다. 과거 동경대의 격렬한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에는 이런 청년 시절의 사회적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전쟁의 공포와 인간성에 대한 비극을 처절하게 담은 <반딧불이의 묘>나 개발에 대한 환경 파괴를 직접적으로 다룬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은 현실의 문제를 은유적이면서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다카하타 이사오보다는 좀 더 우화적이고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강렬한 서정적 묘사에 가려진 사회적 메시지는, 만화를 자세히 분석하고 봐야만 읽어낼 수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 © (주)스마일이엔티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배경이 된 스웨덴 고틀란드 섬 해안의 휴양도시 비스뷔(Visby)

흥미로운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도시와 공간에 대한 해석이다. 만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로케이션 촬영과 묘사, 그리고 재해석으로 배경을 그리는 집요함이 보이는데, 평화와 인간애라는 주제 배합이 기가 막히다. 그의 만화에서 보이는 서정적 묘사는 낭만성을 자극하고 드러내는데, 이런 낭만적 표현들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편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낭만은 기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채워지고 있다.

특히 도시 풍경과 거리의 모습, 골목길은 유럽이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공간적 요소들이 다수 등장한다. 아기자기한 미로 같은 골목길은 의외성과 드라마틱한 관점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데, 만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사 영화 같은 정교한 묘사는 이런 몰입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금 의아한 부분은 그의 상당수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이 아닌 유럽의 특정 도시풍경들을 담아내는데, 이는 이국적 풍경에 대한 판타지를 강조하는 역할도 한다(기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국내를 대상으로 상업 만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19세기 서구 문물의 도입 이후 일본인들이 그리는 이상적 풍경으로 삼은 유럽의 고전 건축이 가득한 도시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상향은 공동체 중심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이다. 그는 유럽의 도시풍경을 이상적 사회주의의 도시 모습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특히 중세 도시의 개별화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공유되는 공적 공간의 특성은 그가 감동을 받은 도시 구성 요소다. 유럽의 중세 도시 구조를 보면, 중앙중심적이고 통치를 위해 계획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제한된 사적 공간에서 해결되지 않는 개방성을 갖춘 공간으로는 교회나 광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공간이 있다. 이런 도시 풍경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에 나타나는 요소들이다.

소녀에서 성인 마법사가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주인공인 키키가 해변가의 도시를 뛰어다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들이 나온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동화적 요소는 판타지로 충분한데, 키키가 하늘을 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상징과 추상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해변 마을의 이사 장면을 위해서 실제 장소를 찾아서 모델링하고 적용했다. 상상의 내용이 현존하는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그가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어떻게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하는지 알 수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배경이 된 해변 마을은 실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5)된 스웨덴의 도시 비스뷔(Visby)다. 비스뷔는 14~15세기 중세 시절 활성화된 스웨덴의 항구도시다. 그런 덕에 도시 곳곳에는 중세 고딕적인 건축 양식들이 즐비하고, 그런 건축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보존되고 있다. 중세는 마녀 등 주술적 상황이 실제화 하는 것으로 느껴지던 시대였고, 그런 중세 도시를 배경으로 마법 판타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황은 절묘한 구성이기도 하다. 더불어 영화 내용의 대부분은 창조적 야망에 대한 은유인 마법의 비행에 대한 열정을 재발견하려는 키키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키키의 생활상이 과거는 아니다. 현재의 어느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법이라는 유럽의 전통적 이야기 소재와 판타지, 기술 발전 및 현대적 상황들이 혼재된 것이다. 모호한 시간대는 오히려 이야기 몰입을 도와준다.

붉은 돼지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붉은 돼지>의 실제 배경 모델인 크로아티아 비스(Vis) 섬의 해안가 풍경

그런가 하면, 전쟁 관련 문제를 드러낸 <붉은 돼지>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극 중의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전쟁의 광기 아래서 다뤄지는 집단의 폭력성을 코믹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포르코 로소가 사는 가상의 도시 피우메는 실제 크로아티아의 비스 섬과 풍경 좋은 남쪽의 스티니바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가 몇천 명 정도에 불과한 비스 섬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중해의 작은 도시이기도 하다. 어업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롭고 작은 섬의 도시 풍경과 스티니바 해변가 풍경의 절벽과 해안선은 너무 흡사하다.

밀집된 중저층의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풍경에서 골목길의 흥겨움과 의외성, 오픈 카페의 낭만들이 묘사되고 있으며 이는 평화적 상황을 설명하는 일상 그 자체다. 주인공은 포르코 로소라 불리는 비행사이자 의인화된 돼지로, 그를 사랑하는 지나와 함께 한다. <붉은 돼지>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인 파시스트 정부와 비밀경찰, 노동자 등을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포르코의 활약은 배경 속에서 함께 하는데, 네오르네상스가 만개한 이탈리아 밀라노가 주 무대로 등장한다. 극 중 밀라노는 농업 중심에서 산업화로 진전하는 근대화 중심 도시로, 좀 더 밀도 있는 도시로 구성되었다. 규모는 커지고, 다양한 길들은 자동차가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차를 피해 다니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즉 비행을 하는 과정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당수 작품에 등장한다. <붉은 돼지>처럼 비행기를 몰거나,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빗자루에 올라타는 등의 행위를 통해 비행을 한다. 그의 대표적 TV만화 시리즈인 <미래소년 코난>에서의 비행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포르코 로소의 비행은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지만, 키키의 비행은 동화와 상상의 산물이다. 같은 행위지만, 상징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판타지는 사실 매우 비논리적인 동화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실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방식은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잠재 의식의 우물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뚜껑이 열리고 매우 다른 아이디어와 비전이 해방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감정의 표현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1)에서도 드러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 (주)이수C&E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에서는 마법이라는 행위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마법은 은유적 상상력을 담은 표현으로 묘사되며 물질적 영역 너머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사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전쟁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고민한 반전 주제를 담고 있다. 더불어 반전 이상의 더 많은 의미와 상징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욕망과 폭력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상처와 고통을 고민하고, 또 그 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의 능수능란함은 무겁고 어려운 이런 주제들을 연민과 낭만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1960년대 서구 각국과 일본을 휩쓴 사회적 파동과, 청년들이 현실 운동으로 저항하는 시절을 겪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감수성일 수도 있지만, 그런 비판은 사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긍정에서 출발한다. 희망과 긍정이 없다면 결코 낭만이 묘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은 작품 내내 이야기되는,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과 이에 대한 연민이 담겨서 표현되고 있다. 소녀와 노인을 오가는 변화는 각자가 겪게 되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이해하게끔 한다. 여성에 대한 관점과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묘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여성의 역할이기도 하다.

자연과 환경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무리의 대장 역할일 뿐 아니라 주도적인 영웅으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주도적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이 아닌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어린 자매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생활 모험이 등장하고 있고, <벼랑위의 포뇨>에서도 여성은 엄마로서 능동적이다.

어린 아이와 여성은 평화를 상징도 하고, 조화로움을 의미한다. 비록 전쟁 시절의 기억이 희미한 미야자키 하야오지만, 전후 고통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직접 겪었을 그를 짐작한다면 그가 왜 반전과 평화에 집착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집착은 오랜 시간 공존해온 도시의 연속성과 흔적에서 동기를 부여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그의 이상향으로 언급되었던 공동체 중심의 유토피아적 사회와, 개별화된 공간과 공적 공간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유럽의 사회주의 도시 모습 말이다. 예를 든 세 작품 외에 유럽의 골목길과 낡은 공간들을 배경으로 하거나, 일본의 시골이나 오밀조밀한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담은 여타의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견 아이들이 보는 영화 같지만, 어느 영화 못지않게 진지한 삶에 대한 관찰과 사색, 그리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사회에 대한 발언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관람 후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래서일까? 흥미롭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영화들이 학술적 대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반전, 평화, 선악의 묘사, 나이에 대한 고찰, 페미니즘, 전통과 민속, 숲과 나무 그리고 다양한 신화들이 분석되고 있다. 특히 공간과 도시, 건축을 통해 묘사되는 기억과 향수, 익숙함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철학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