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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의 분노

Tadao Ando’s Anger

2000년대 중반 안도 타다오를 취재했던 한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소 거칠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가 직원들을 교수와 기자 앞에 세우고, 출신 대학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일본 건축을 망치는 패거리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실례인 일본 문화에서 유학파나 도쿄대를 운운하며 흥분한 안도 타다오. 그리고 그는 비행기가 일본의 땅을 박차고 이륙하는 순간 “이래저래 답답한 일본의 줄 세우기 문화와 패거리 문화에서 해방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취재한 교수는 이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자칫 들어보면 안도 타다오가 일본을 싫어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 그는 가장 일본적인 건축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분노는 어떤 연유에서일까?
문득 오래전 책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안도 타다오는 1990년대 세계 무역 박람회의 일본관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일본 고위 관료가 안도 타다오의 출신을 묻고는 짜증을 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90년의 안도 타다오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 아키텍트(Starchitect)였다. 아르마니나 베네통 등 글로벌 기업들, 디자이너들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을 정도였고, 일본 정부도 안도 타다오를 국가 브랜드 홍보에 앞세울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도 타다오에 대한 고정 관념, 주류 사회의 질투가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결국 안도 타다오의 분노는 이런 편협함과 우월감을 가진 집단에 대한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흔히 이런 우월감은 소위 주류라는 조직에서 종종 나타난다. 어느 사회, 어느 분야,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는 1% 집단, 다시 말해 엘리트 집단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동전의 양면처럼, 조직 내 동질감을 키우고 사회를 지탱하고 끌고 간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는 반면, 지나칠 경우 끼리끼리 문화, 자신들만 최고라는 배타성으로 인해 조직 간에 벽을 만들고, 대중과의 괴리를 불러온다.
안도 타다오는 편견이 없는 엘리트로부터 주목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생적 일본 모더니스트로 유명한 토고 무라노나 일본 건축의 2세대 리더였던 단게 겐조라는 인물이 안도 타다오를 주목하고 주변을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안도 타다오는 가난한 집 쌍둥이로 태어나 학력은 고졸이 전부인 복서 출신이다. 오로지 타고난 감각과 노력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인생을 걸고 싶은 일인 ‘건축’에 매달렸다. 철저히 비주류였던 것이다. 그는 셀 수 없는 도전과 그로 인한 실패를 맛봤다. 그런 까닭에 연전연패라는 책을 썼을 정도다. 어느 순간 이런 비주류 노력파를 일본의 엘리트 리더들이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성공하기까지 겪었을 갖은 수모와 감정적 소모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 사회 역시 일본 못지않은 군집 사회고, 집단 사회로서 소위 학력이나 유학 등을 통한 엘리트 의식이 존재한다. 어쩌면 일본보다 견고한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을지 모르며, 필요 이상으로 권위적인 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학력 세탁이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기도 한다. 기득권 입장에선 보상심리로 우월감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들을 선민(選民)으로 여기며, 스스로의 흠결에는 너그러운 면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이며 비합리적인 행태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자. 세계 1등 기업들이 속출하고, IT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국이다. 우리말로 부른 노래가 세계 최대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정받고, 심지어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한다. 일본 만화의 그림자였던 대한민국 만화는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 분야는 세계적 작가들이 속출했다. 클래식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젠 우리 건축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진짜 엘리트’는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개인의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자신의 기준만 옳다는 믿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고, 균형을 잡아주는 이가 진짜 엘리트다.
일본의 토고 무라노나 단게 겐조, 그리고 치열함으로 무장한 안도 타다오를 보노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동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방향을 잡아 미래를 그려내는 ‘진짜 엘리트’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절감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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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한국 건축의 엘리트주의(Elitism)와 엘리트주의자(Elitist)

건축담론

편집자 註

엘리트라는 말이 오래전에 많이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사회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심지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영향력을 갖는 소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귀족주의에서 탄생된 개념이다.
엘리트주의자는 인식의 틀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스스로 존재감을 갖는다. 혁신가적 정신을 발휘해 사회 각 분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겸손이라는 덕목, 그리고 구성원들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 현시대상을 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스스로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착각, 오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인상도 받기 때문이다.
대중의 학습능력이 높아져 지식의 독점화가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인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보편적인 교육의 평균화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선택되는 개방적 민주주의 때문인 것 같다.
분명 우월적 엘리트주의에 의해서 공동체,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고, 갈라지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공동체에게는 너무나도 큰 해악이 된다. 차별주의적 속성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소수의 엘리트주의자들이 갖는 우월감·계급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 건축계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는 벌써 세 번째 직선제 선거를 치렀다. 온라인 투표제로 1만여 명의 회원들 중 86.01%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업 또는 등록 건축사 2/3가 가입해 있는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에서 86.01% 투표율, 이중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직선제 회장은 명실공히 국내 건축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원제나 국가가 지정하던 엘리트 중심의 소수 독점이 아닌 다수로부터의 득표를 통해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영향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대표성을 갖는다 할 것이다.
현대 한국 건축의 위상과 경제적 상황은 급변하는 사회와 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건축계가 소수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집단사고에 꽁꽁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민주화된 직선제 방식의 다수 중심 체제가 당대에 합리적이면서 나아갈 방향이 아닌지 새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진정한 엘리트로서가 아닌 엘리트 의식에만 사로잡혀 폐쇄적 형식주의자들로 우리 건축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르다’라는 그런 우월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하는, 사려 깊은 숙의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닐까?

 

01 Elitist and Elitism in Korean Architecture

한국 건축 엘리트주의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2019년에 황태주 교수가 기고한 ‘우리 건축의 엘리트주의와 엘리트를 생각한다’란 글을 발견하였다.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과 이를 통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건축 엘리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그는 두 가지 현상을 주목했다. 하나는 우리 시대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생활건축 설계물량의 축소에 따른 당장의 현실에 메어 있어서 큰 방향의 건축 정책이나 지향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위 건축계의 엘리트들은 서로 간의 의견과 관심이 상이해서 정치인이나 관료 등 비 건축 전문가들에게 건축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시험제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시험 응시자격’

한국 건축의 근간을 형성하는 건축사를 선발하는 시험제도를 보더라도 건축정책에 대한 건축사들의 무관심과 상이한 의견으로 현재 우리는 공감하지 못하는 시험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연 2회 실시되는 시험 횟수와 이로 인해 증가하는 합격자 수에 가려져 이미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들에게는 관심이 덜한 사항이겠지만, 현재의 시험제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건축사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먼저 건축사 예비시험에 합격한 상태에서 건축사 예비시험 응시자격 취득일 이후 5년 이상(인증 5년제 건축학과 졸업자는 4년 이상) 건축에 관한 실무경력이 있어야 하며, 2019년까지 예비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2026년까지 자격시험 응시 기회가 주어진다. 두 번째는 건축사 실무수련 신고 후 시험 전일까지 실무수련 완료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인증 5년제 건축학과 또는 건축학 대학원 이수자는 실무수련 3년 이상, 비 인증 5년제 건축학과 또는 건축학 대학원 이수자는 실무수련을 4년 이상 받아야 한다. 세 번째는 외국 건축사 면허나 자격을 취득한 경우 통틀어 5년 이상 건축에 관한 실무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건 중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학력에 따라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응시자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특정 학제 졸업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는 건축사 자격제도 시행은 해외나 타 분야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배타적인 규정으로 기존 제도 및 기성 건축사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나는 제도’라는 대한건축학회 4년제 건축교육위원회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28개 4년제 건축 관련 학과, 79개 4년제 건축공학과, 37개 전문대학교, 39개 전문고등학교 등에서 배출된 학생들은 건축사가 되기 위한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는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와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별된다”라고 엘리트를 정의하는 말처럼 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 엘리트만이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입학하는 순간에 누군가는 졸업 후 3년, 졸업 후 4년이 지나면 시험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험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학력에 따라 응시 기회 차별하는 지금의 ‘건축사 자격시험’은 공정한가

표트르 펠릭스 그지바치는 그의 저서 ‘뉴 엘리트’에서 “앞으로는 세계적 문제의 해결이 인류의 진보를 견인할 것이다. 당연히 그를 위한 배움이 필요해진다. 유명 대학 졸업이나 대기업 사원이라는 자격은 더욱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한 배움도 역시 급격하게 가치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존 올드 엘리트에게 중요했던 학력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트의 기준도 변하고 있는데, 2002년에 건축학과 5년제 개편과 2011년 건축사법 개정에 따른 지금의 건축사 시험제도가 공정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다.

2020년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자 수는 2,298명이다. 평균 합격자 수보다 많았던 2019년 1,090명과 비교해도 111%가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수치는 건축사 예비시험 합격자 수다. 2016년 771명에서 2017년 1,294명, 2018년 2,617명으로 계속 늘어났고, 2019년에는 2차례 시험을 통해 1차 2,502명, 2차 3,942명이 예비시험에 합격해 그 수가 증가했다. 4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건축사 예비시험 합격 인원은 2026년까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면 그 자격이 상실된다.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데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자격시험을 통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간절함이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높은 합격률로 이어지고 최근의 건축사 자격시험 부정이라는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격자 수가 늘어난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하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건축사 자격시험을 응시하려면 5년제 건축대학 중 인증받은 학교를 졸업하도록 시험제도가 변경되었다. 학력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무소 근속연수에 따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엘리트 건축사보만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법을 만들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가.

 

국가가 나서 건축사의 ‘역량 있고 없음을 구분’…제도의 공정성은 지켜지고 있나

더욱이 건축사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공공건축가, 마을건축가, 역량 있는 건축사 등 다양한 구분이 생겨나고 있다. 법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 건축사가 공공 건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건축가협회에서 건축가 정회원을 인증하기 위해 만든 기준에 ‘건축사’ 자격이 없으며, 건축 인허가에 대한 권한이 없는 가운데 건축사 위에 ‘공공건축가’와 ‘마을건축가’가 생겨났다. 역량 있는 건축사 또한 공모전에 참여하여 당선된 건축사에게 역량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하고 있다. 국가가 건축사 중의 엘리트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량이 부족한 건축사를 뽑고 또 역량이 있는 건축사를 구분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은 이와 같은 능력을 이미 검증하고 선발하는 것인데, 국가에서 선발한 건축사에게 지방자치단체의 공모전 결과에 따라 역량이 부여된다. 공모전 심사가 끝나고 나면 잡음이 생기기도 한다. 제도의 공정성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실제적으로 건축설계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공모전에 참여하는 건축사도 제한적일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숨은 능력자가 많은데 공공이라는 이유로 ‘역량 있는’이라는 엘리트 수식어가 붙는다. 얼핏 잘못 생각한다면 건축사 자격시험이 건축사의 역량이 아닌 건축 인허가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자격을 확인하는 것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시험이나 공모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어떠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은 필요하지만 너무 높다 보면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기준에 따라 인원을 선발하면 세상과 구분된 엘리트를 만들게 된다. 전체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문제 및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필요하다. 경쟁 ‘Competi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나가서 찾다’는 ‘peto’와 ‘함께’라는 의미의 접두어 ‘com’이 결합된 단어로 시핸 박사는 “경쟁은 서로를 더 확장해 주고, 서로를 더 북돋워준다. 경쟁에서는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결국 모두에게 돌아가는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 덕분에 모두가 승리자가 된다”고 말했다.

 

자격시험, 다양한 인재 선발이 가능토록 해야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사회는 트렌드에 따라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매년 발행되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와 같이 변화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조차 변화에 대응키 위해 일론 머스크의 민간 기업인 스페이스 X와 협력하여 발사 로켓 재사용이라는 기술을 개발하여 비용의 90%를 절감했다고 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대한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을 통해 국민을 위한 건축정책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건축사 자격시험 또한 억울함이 없도록 다양한 인재 선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설계 능력을 갖춘 건축사가 필요하다.

‘건축사’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며 전체 건축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생각은 오픈 플랫폼이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누구나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곳, 하나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곳, 우리의 정보를 타인이 공유할 수 있는 곳을 지향해야 한다.

 

글. 정창호 Chung, Changho (주)에코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정창호 (주)에코 건축사사무소·건축사

건축사 정창호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주)우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주)성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0년 (주)에코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으며, 신사동 빌딩으로 리모델링 협회 우수상, 남양주 및 한국도로공사 공공디자인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성동 아이사랑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현재 국토 안전 관리원에서 건축물관리법 강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캄보디아 문화교류센터, 유원지식산업센터, 신한디엠 리모델링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co30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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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

건축담론

편집자 註

엘리트라는 말이 오래전에 많이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사회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심지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영향력을 갖는 소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귀족주의에서 탄생된 개념이다.
엘리트주의자는 인식의 틀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스스로 존재감을 갖는다. 혁신가적 정신을 발휘해 사회 각 분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겸손이라는 덕목, 그리고 구성원들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 현시대상을 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스스로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착각, 오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인상도 받기 때문이다.
대중의 학습능력이 높아져 지식의 독점화가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인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보편적인 교육의 평균화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선택되는 개방적 민주주의 때문인 것 같다.
분명 우월적 엘리트주의에 의해서 공동체,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고, 갈라지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공동체에게는 너무나도 큰 해악이 된다. 차별주의적 속성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소수의 엘리트주의자들이 갖는 우월감·계급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 건축계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는 벌써 세 번째 직선제 선거를 치렀다. 온라인 투표제로 1만여 명의 회원들 중 86.01%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업 또는 등록 건축사 2/3가 가입해 있는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에서 86.01% 투표율, 이중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직선제 회장은 명실공히 국내 건축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원제나 국가가 지정하던 엘리트 중심의 소수 독점이 아닌 다수로부터의 득표를 통해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영향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대표성을 갖는다 할 것이다.
현대 한국 건축의 위상과 경제적 상황은 급변하는 사회와 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건축계가 소수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집단사고에 꽁꽁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민주화된 직선제 방식의 다수 중심 체제가 당대에 합리적이면서 나아갈 방향이 아닌지 새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진정한 엘리트로서가 아닌 엘리트 의식에만 사로잡혀 폐쇄적 형식주의자들로 우리 건축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르다’라는 그런 우월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하는, 사려 깊은 숙의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닐까?

 

02 Leadership in a New Era

의무가입 시대를 앞둔 건축사협회의 과제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제도의 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합의를 얻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제 의무가입 시대에 어떻게 협회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간 해온 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의무가입으로 회원 수만 늘려 놓고 과거와 같은 체계와 관성대로 협회를 이끌어 간다면 의무가입의 의미는 협회의 규모와 세를 키우기 위한 것으로 폄하되고 회원들의 불신과 방관만 얻게 될 것이다.

1995년도까지만 해도 7,900명이었던 건축사의 수는 점차 늘어 2019년에는 건축사 23,000명 시대를 맞았다. 늘어난 회원의 수만큼, 아니 사회변화의 폭을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더, 회원들의 가치관과 요구도 다양해졌을 것이다. 그런 다양하고 다층적인 요구와 개성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가 의무가입 시대를 앞둔 건축사협회의 향후 과제일 것이다.

 

과거의 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뉴노멀 시대 도래
필자가 건축에 입문한 1990년대는 엘리트가 사회 각 분야를 선도하는 시대였다. 전문가의 숫자가 적은 건축계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강했던 것 같다. 현대 건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기에 선진 교육을 받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학계와 건축문화 전반을 선도했고, 엘리트 건축사들의 디자인 철학이 마치 규범과 같이 받아들여졌다. 주요 건축단체들도 일부 학벌과 경력을 가진 그룹의 주도하에 운영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20년, 정치·경제·문화 등 어느 곳 할 것 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 전체를 선도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국민들의 교육, 지식수준의 상승과 평준화로 엘리트를 구분 짓는 경계가 희미해지기도 했지만,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관이 작동하기 어려운 다변화와 불확실의 시대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과거의 이상이 현재의 이상이 아니고 과거의 질서가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New normal(뉴노멀)’ 시대이다.

실제로 우리는 LTE급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에 소중했던 가치가 지금은 다르게 평가되고, 과거에 우상이 되었던 디자인이 지금은 퇴색해버린 예를 흔하게 경험했다. 현재는 수시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고 또 실시간으로 대중들이 비평과 평가를 하면서 집단지성이 새로운 기술과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시대이다.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들조차 향후에 나타날 상황을 판단하거나 예견하기가 쉽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개방적 태도와 유연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고 옳다고 믿었던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건축사들 중에 여전히 새로운 건축 작품을 선보이는 건축사들이 있다. 작품만 보아서는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과거의 작품과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21세기에도 건재함을 보여준다.

1963년부터 Galician Center of Contemporary Art, Santiago de Compostela 등 콘크리트와 석재를 사용한 모더니즘 건축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사 중의 한 사람인 Alvaro Sizar(알바루 시자)는 2020년에 곡선 형태의 검정색 메탈로 만든 Huamao Museum of Art Education을 선보였다. 1994년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전쟁기념관을 설계했던 이성관 건축사는 2017년에 전혀 다른 이미지와 공간을 갖는 여주박물관을 디자인했다.

이렇게 세기를 넘어 활발히 건축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관을 고집하지 않으며 가지고 있던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상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창조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창조적인 변화의 뒤에는 또 다른 비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특출한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세대와 교류하고 젊은 후배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속적 발전을 위한 유연함 갖춰야…
‘개방적 태도와 유연함’의 필요성은 설계와 개인의 성장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에 의해 주도되는 폐쇄적인 집단은 보수적이고 한정된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적이고 개방된 조직이 변화에 민감하고 범용될 수 있는 좋은 기준을 만들 수 있고, 유연한 태도와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우리 협회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겸비하고, 전체 건축사회원과 범건축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글. 이기향 Lee, Gihyang 건축사사무소 한 아키텍트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기향 건축사사무소 한 아키텍트·건축사·독일 건축사

대한건축사협회 미래전략단 위원 역임.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겸임교수.
gihy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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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빌딩 리노베이션, 과거 50년의 가치를 살려 미래 50년의 가치를 설계하다

3.1 Building Renovation, designing the value of the future 50 years by reawakening the value of the past 50 years

지난 2월 18일 오후 3.1빌딩 지하 1층 전면 선큰에 위치한 한 매장에서 ‘월간 건축사 삼일빌딩 리모델링 좌담회’가 열렸다. 김중업 건축사가 설계한 3.1빌딩은 1970년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31층 규모로 완공된 건축물로 철과 유리로 구성된 입면을 갖고 있다. 그런 3.1빌딩이 50년 만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거쳐 2020년 11월 23일 준공식을 가졌다. 외관 디자인은 김중업 건축사가 설계한 입면 방식과 커튼월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하고, 전면부를 개선해 정면성을 살린 2021년의 3.1빌딩은, 도시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지만 본연의 특징을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이하 원오원아키텍스)와 ㈜정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정림건축)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리모델링 과정의 이야기와 소회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좌담회 참석자들이 건축물 관련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시작

홍성용_3.1빌딩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전상우_그전에도 SK D&D(이하 SK디앤디, 3.1빌딩 매입사)와 김종성 선생님이 설계한 <서린빌딩> 리모델링 작업을 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3.1빌딩 프로젝트로 연결됐어요. 2017년도 말 즈음에 정림건축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다가, 이후 발주처를 통해 원오원아키텍스가 투입된 거죠.

최욱_SK디앤디 측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정림건축에서 먼저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같이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작업한 <1964빌딩>을 볼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렇게 시작됐어요. 발주처 측에서, <1964빌딩> 정도의 퀄리티를 원하지만 그 정도까진 못 가더라도 근사치로 그런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저층부 디자인부터 시작하게 됐고, 그러다 전체를 함께 보게 됐죠.

홍성용_사실 협력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함께 일하시는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나요?

김해진_저희 입장에서 봤을 때 충돌은 없었습니다. 초반에 근현대 건축자산인 3.1빌딩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 첫 번째 일단락이 있었는데, 그 가이드라인을 잘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잘 정리해 주셨고, 디자인적으로도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를 주셨어요. 저희는 그것을 풀어나간 거죠. 잘하시는 걸 잘 해주신 거고, 또 저희가 잘하는 부분은 잘 했기 때문에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홍성용_3.1빌딩은 김중업 선생님이 남긴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의미 부여를 크게 하지 않는 편이잖아요. 어째서 기존의 건물을 헐지 않고 리노베이션 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욱_먼저, 새롭게 지으면 이 용적률을 못 찾아요. 이곳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지역의 도시계획이 정립된 필지예요. 그리고 이 필지, 이 블록 자체가 고층건물이 영원히 못 들어오는 데라 그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어요. 용적률은 사업주 입장에서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또, SK디앤디에서는 김중업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어요. SK디앤디와 미국의 벤탈그린오크 두 회사가 발주처인데, 벤탈그린오크도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어요. 그래서 이 건축물을 잘 보존하면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충족할 수 있느냐가 제일 관건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진정성 있는 리노베이션을 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거죠.

좌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리모델링을 마친 3.1빌딩을 함께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작업과정에서 내진보강, 방화지구 등 이슈… 현실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홍성용_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소방이나 기타 설비 등의 측면에서 현행법과 충돌되는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 관련해서 이러한 것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든지, 이런 것은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은 없었나요?

김해진_이번 프로젝트가 전면적 리모델링이기는 합니다만, 크게 봤을 때 저희가 구조적으로 건드린 부분들은 선큰과 계단,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것과 지붕 층에 옥탑 구조물을 올리는 정도가 다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성능적인 부분들의 기준이 서울시에 어느 정도 마련돼 있습니다만, 인허가적으로도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가이드라인을 주긴 했습니다. 에너지 같은 경우도 현행법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그다음 구조안전에 대한 부분은 법적으로 구조안전진단을 통해 내진설계 보강을 하게 돼있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손을 댄 부분 외에도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구조 부분에 대한 보강은 다 했습니다. KBC2016에 나와 있는 구조기준을 만족하는 수준으로 현황조사를 다 했고, 그에 맞는 구조보강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층부의 기둥도 탄소섬유 보강이 돼있고, 그 기둥뿐만 아니라 31층에서부터 지하 2층까지 모든 기둥이 다 보강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약간 특이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지상 2층까지가 RC 구조로 돼있습니다. 일부 철근 콘크리트로 돼있고 그 위에는 전부 철골구조로 되어있는 상태고요, 거기에 덧대어 여러 곳에 RC 보강을 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내진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을 때 지어졌지만 설계를 담당하셨던 분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려를 하신 게 아닌가…….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내진보강을 할 때에도 크게 과하지 않게 공사비도 어느 정도 절감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법적으로는 내진보강에 대한 것이 가장 큰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전상우_방화지구에 대한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지역에 방화지구가 생긴 게 옛날 일제 강점기 목조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 불이 한 번 붙으면 다 퍼지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방화지구라는 점 때문에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전혀 쓸 일 없는 과도한 설비들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런 것들로 인해, 사실 입면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좀 더 나은, 무언가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방화지구 경계나 이런 부분들은 시대 상황에 맞게 좀 더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진_2017년도 말에 방화지구에 커튼월 구조를 할 수 없도록 관련 법령이 고시 됐습니다. 커튼월은 3.1빌딩의 상징적 특징인데, 기능적으로 유지·보존이 어려운 상태에서 법에서 어찌할 수 없게끔 방화지구 지정이 되어있어 당시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저희는 종로구 심의를 통해 어느 정도 풀어나갔던 부분입니다.

홍성용_지역지구라는 게 과거의 기준이고, 도시구조도 소위 콤팩트시티로 바뀌고 있어서 지역지구를 없애고 대신 용도 지정만 정확하게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그 입법이라든가 이런 움직임이 없어 건축계에서 그런 얘기들이 제시돼야 할 것 같아요. 지구단위계획이 그걸 대체하는 기능이라고 얘기하지만, 지구단위계획도 건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설계에서 주도하다 보니 디테일한 측면에서 놓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3.1빌딩의 정면성 회복… 기존 건축물의 현대적 해석 여지 남겨

홍성용_구조적·시스템적인 부분 외에, 계획적인 측면에서 1969년 당시와 현재 설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최욱_오피스 기능을 갖춘 이 건물의 가장 큰 약점이 층고가 높지 않다는 거죠. 그나마 최대한 얇은 액세스 플로어를 사용해 층고를 확보했고, 천장 같은 경우 설비 문제가 관련된 일부분을 빼고 상당 부분을 노출시켰습니다. 그다음 조명과 스프링클러를 일체화시키는 등 부족한 층고를 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현대적인 오피스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끔 저희가 좀 변형시킨 부분이 있어요. 제일 관건이 됐던 건 저층부인데, 예전에는 고가도로가 삼일빌딩을 지나고 있었잖아요.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원래 김중업 선생님이 만들고자 했던 3.1빌딩의 모습이 거꾸로 지금 드러나게 된 거예요. 정면성을 회복한 거죠. 그리고 이전에는 저층부에 큰 유리가 없었습니다. 기존 1층과 2층의 입면이 분리돼 있던 것을, 1층 입면의 유리 커튼월을 기둥 바깥으로 빼고 1, 2층 입면을 연결해 개방성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청계천으로부터 이 건물까지 연결되는, 소위 말해 그라운드 역할을 만들어냈어요.
지하는 원래 굉장히 깜깜했었어요. 그래서 빛을 넣어주기 위해 선큰을 구상했습니다. 사실상 저층부는 손을 많이 댔어요. 그리고 전면 파사드에서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1, 2층 부분의 조명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 2층 천장은 광천장을 사용해 밝고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했고요. 상층부랑 하층부를 구분시켜 이 건축물의 그라운드 풍경이 잘 드러나 보이게 했습니다. 이 건축물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기능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김중업 선생님의 설계가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나 합니다.

홍성용_저도 새로운 재해석은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3.1빌딩이 미스(미스 반 데어 로어)의 시그램 빌딩과 비교되는 식의 폄하가 많았죠. 작업하시면서 이건 미스의 아류작이 아닌 김중업 선생님의 해석이라는 시각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관련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최욱_김중업 선생님의 편을 들어서 얘기하자면, 예를 들어 핸드레일 같은 경우도 기본적인 타입이 있잖아요. 비슷한 핸드레일을 어디에나 쓰고 있는데, 그래서 오리지널을 카피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일로만 보는 것과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중업 선생님이 40대 중반에 이 건축물을 설계하셨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지진 때문에 2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거의 없었어요. 레퍼런스가 없어 미국에 가신 김중업 선생님이 시그램 빌딩을 보신 거죠. 상황상 3.1빌딩이 시그램 빌딩의 스타일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김중업 선생님이 미스의 스타일에 앞서 먼저 합리성을 보고 그를 이식해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건축물을 의뢰한 곳이 철강회사를 운영하던 삼미그룹이라 철이 주재료로 쓰이고, 거기에 미국의 합리적인 것을 가져오셨죠. 그래서 그 합리성에다가 우리가 새롭게 작업을 할 적에 조금 더 우리 식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재료로 많이 쓰이는 철, 유리, 돌은 땅에서 나오는 같은 재료에요, 그런데 이 같은 재료가 어떻게 만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너무 중요하잖아요. 기단부랑 유리커튼월, 금속기둥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건 굉장히 섬세한 문제여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 됐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미스의 건물과 다른 몇 가지 디테일에서 김중업 선생님이 다른 식으로 해석을 시도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한국적 해석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급하게 진행되면서 선생님 본인의 생각이 많이 반영이 안 됐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형식의 문제로 끌고 가면 조금 복잡해진다고 봐요.

2월 18일 오후 3.1빌딩 지하 1층 ‘와인콤마’에서 ‘월간 건축사 삼일빌딩 리모델링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 참석자들이 3.1빌딩을 함께 둘러보며 김해진 정림건축 설계본부 AP3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커튼월의 원형 유지와 재생을 위한 노력

홍성용_정림건축에서는 어떤 측면에서 프로젝트에 접근하셨나요?

김해진_저희는 접근 방식 자체가 작품의 디자인 측면보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건축물의 보존 측면에서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안에 있는 구조와 커튼월 외장을 어떻게 하면 가장 원안에 가깝게, 원안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기능을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습니다.
먼저 커튼월은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해체할 수 있는 부분을 거의 다 해체해 전수조사(구조검토, 현장조사) 했었어요. 구조검토 결과 구조적인 성능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들이 발견됐는데 처짐이 있다든가, 어느 정도 크랙이 가해진 것도 있고, 이미 유리가 틀어짐에 의해서 깨지고 탈락된 부분이 많이 발생했었죠. 하지만 유리를 안에서 교체할 수 있는 수직 H 형강이 매우 이상적이라 그 방식이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틸이라는 구조를 걷어내면 자재도 심플해지는데 굳이 스틸 구조를 사용하려 했던 건 최욱 대표님도 말씀하셨듯 철이 그때 당시에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였어요. 또 앞서 말했듯 안에서 뜯을 수 있어 관리가 유리하다는 점도 이유고요. 그래서 최대한 유지하는 방법으로 보완하려다 보니 디테일에 관한 것도 굉장히 많이 고민하게 됐죠. 바깥쪽으로 나와 있지만 커튼월의 구조재 역할도 하고, 외관을 형성하는 수직적인 패턴을 유지하는 역할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데다가 또 3.1빌딩의 상징과도 같은 이 개념 자체를 뒤집어 버리면 3.1빌딩이 아닌 거 같으니까… 최대한 기술적으로 풀어내고, 단열적인 부분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또 원래 지어진 건물에 당시 일본에서 만든 코르텐 스틸이 사용됐는데, 그대로 유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어요. 코르텐 스틸에 웨더코팅이라는 코팅재를 썼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코팅재가 다 날아가고 얼룩이 많이 진 상태가 됐던 거죠. 그래서 그걸 그대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에 대해 건축적으로 서로 공감하고, 공유를 했구요. 그러다 가능한 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그 이상 성능을 낼 수 있는 자재를 한 번 써보자, 해서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포스맥이라는 철강을 선택했고, 거기에 도장도 좀 더 지속성 있는, 하지만 원래 있는 스틸의 느낌은 살릴 수 있는 도장재를 파우더 코팅채로 해서 컨택한 거죠. 그런 부분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안인석_부연 설명을 드리면, 설계파트에서 요구하는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소재를 엄청 많이 찾았었어요. 일본에서 현재도 생산은 되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I형강을 컷팅해 써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건축에서는 큰 부분이잖아요. 또 당시 플랜지가 6밀리미터인 흑판은 생산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포스코에서 도와준 셈입니다. 도움을 받아 현재 웨브나 플랜지도 6밀리미터인 빌트업을 만든 거예요(포스맥125×60×6×6).
더해서 매트한 질감을 주는 파우더 코팅은 세계적으로도, 국내에서도 많이 쓰이면서 내구성이 어느 정도는 검증됐었어요. 거기에 발주처에서도 기존 건물이 50년을 견뎠으니, 우리도 이에 대한 도장의 내구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3.1빌딩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본사에서 직접 전담해 찾아가며 코팅재를 더 개발시켰어요. 매트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샘플 테스트를 현장에서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거죠. 국내 도장에 대한 내구성 개런티는 10년이 최대였는데, 협의 끝에 개런티를 15년으로 해서 지금의 마감을 한 케이스입니다.

 

# 기술력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김중업 선생님의 노력과 그로부터 50년 후에 다시 풀어내는 이야기

홍성용_문득 든 생각인데, 3.1빌딩의 나이가 50대가 됐잖아요. 혹 당시 김중업 선생님의 사무소에서 함께한 스텝이 현역에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해진_저희가 예전에 인터뷰 차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갔다가 선생님의 아드님을 만났는데, 설계 당시에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앞서 낮은 층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기준층 층고가 3.3미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거든요.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높이를 정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유를 감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무조건 31층에 맞춰야 하는, 반드시 31에 멈춰야 하는, 3.1이라는 숫자가 되어야만 하는 상징적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층수에 따른 층고가 3.3미터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층고가 낮아 그걸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신 게, 아까 보셨던 것처럼 공조실로부터 나오는 덕트를 보에 관통시켜, 3.3미터지만 2.3미터로 천장고를 확보하신 거죠. 기술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들이 들어가 있는 거죠.

최욱_비용 문제도 굉장히 컸을 거 같아요. 미스의 건물은 기둥이 거의 커튼월에 붙어 있어서 내부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건물은 표면에서 보면 기둥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건축물 공간의 로스가 심합니다. 아마 구조적이나 비용적인 문제들이 다 있었을 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김중업 선생님이 당시 기술력 등 제한적인 한계에서 나름대로 엄청나게 이 건축물을 그래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홍성용_어떻게 보면 업계의 50년 선배가 작업하신 건데, 후배로서 50년 만에 프로젝트에 임하며 느끼셨던 점이 있나요?

최욱_설계하는 사람들은 다들 같은 입장일 것 같은데, 기존 김중업 선생님의 과업들이 제대로 보존이 안 되어 있어요. 선생님의 생각을 좀 존중해서 건축물에 반영시켰으면 좋을 텐데, 일반 커튼월로 되어버리고 이런 경우가 꽤 있는데… 정림건축과 원오원아키텍스의 공통적인 소망은, 삼일빌딩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원래적인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김중업 선생님이 당초 의도했던 건물의 정면성을 되찾고, 도시에 남아있는 50년 전의 헤리티지를 지키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거든요.

김해진_그 부분에서는 정말 다들 충분히 공감하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다만 각자의 역할이 달랐던 거지, 그런 공감대가 굉장히 잘 형성됐기에 지금의 3.1빌딩이 완성된 거고, 그 부분에서는 저희 설계자뿐만 아니라 건축주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가치를 알고서 픽업에서 완성단계까지의 책임을 저희에게 다 맡기신 거거든요. 설계, 감리, 또 콘셉트에서 마감 작업까지. 전 과정에 모두 함께 동참해 주셔서 이만큼의 퀄리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고, 또 이걸 단순히 기록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나갔다 하는 내용들이 잘 남겨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가 김중업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없잖아요. 그 세대가 지났기에 주변 분들에게도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거든요. 50년이 지났지만, 이제부터라도 한 50년 후까지는 우리가 잘 기록을 해서 남은 세대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욱_이 건물의 또 다른 동참자는 일반 대중입니다. 3.1빌딩의 커튼월이 벗겨졌을 적에 SNS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변할까 하고. 근데 점점 이 건물이 완성이 되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응원하고… 그런 상황들도 되게 중요하죠.

홍성용_그렇죠. 63빌딩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3.1빌딩이 이 도시의 상징이었고, 63빌딩이 지어진 후에도 상징성 면에서 3.1빌딩을 못 따라갔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저도 사실 지나가면서 ‘또 망가지는 거 아냐?’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최욱_미스의 시그램 빌딩이 미국에 지어질 적에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기타를 들고 다니고 여자들은 예쁜 옷을 입고 다닐 때였지만, 3.1빌딩이 지어질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지게도 지고 다니던 상황이었기에 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전상우_ 2021년에 본 신의 한 수는 3.1 고가도로가 철거돼 땅의 가치가 배가된 부분인 것 같아요. 그 부분의 맥을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처음에 굉장히 잘 짚어주셨고, 그 부분이 저층부에 잘 표출되면서 3.1빌딩의 이미지가 크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가도로가 있고 주차장이 앞에 있던 환경과, 청계천과 연결을 시도한 지금의 환경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최욱_저는 1972년도에 아버지랑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3.1빌딩을 처음 봤는데, 건물이 무지 작게 보였어요. 일단 전면을 볼 수가 없었고요, 고가도로에서 차창을 통해 보면 3.1빌딩의 크기가 30%는 잘려 보여요. 그때는 저게 왜 높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정면성이 개방되고 나니 굉장히 높게 보이는 거죠. 지금 이 건물이 제대로 된 거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냥 단순한 빌딩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도시적 측면에서의 프로젝트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쉬운 타협은 없었다… 서로의 공감대 형성으로 이뤄낸 결과

홍성용_마무리하면서, 두 회사가 거의 2~3년 동안 프로젝트를 함께 하셨는데 소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최욱_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어느 쪽이나 이기적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타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기 주장을 내세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뭐랄까… 일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쉽게 타협하진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랬기 때문에 결과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림건축에서도 그런 부분을 수용해 줬고, 리드도 해줬고, 큰 틀에서 잘 정리해 주셨기 때문에 잘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떠올려보면 우리가 중간지점에서는 난관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잘 된 것 같고, 서로가 굉장히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쉽게 타협을 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보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상우_시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정림건축 혼자 진행하려다 원오원아키텍스와 같이 하게 됐는데, 사무소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함께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원오원이 들어오셔서 콘셉트를 주시고, 그 콘셉트의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건축을 할 수 있었고, 보시는 것과 같이 주변 환경뿐 아니라 최적의 건물이 잘 유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큽니다. 어떻게 보면 정림건축은 큰 근육을 쓰는 데고, 원오원은 작은 근육을 쓰는 덴데, 큰 근육과 작은 근육이 잘 조화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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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금수강산을 만들어 낸 한강Ⅱ

Han River, creating beautiful scenery Ⅱ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강원도·충청북도·경기도·서울특별시를 동서로 흘러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 본류의 길이는 514킬로미터로 우리나라에서 압록강·두만강·낙동강 다음의 네 번째이고, 유역 면적은 2만6,219제곱킬로미터로 압록강·두만강 다음이다.
한강은 본류가 둘로 나뉘어지는데, 북한강 수계와 남한강 수계로 구분한다. 강원도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남류하면서 금강천(金剛川)·수입천(水入川)·화천천(華川川)과 합류하고, 춘천에서 소양강(昭陽江)과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남서로 흘러 가평천(加平川)·홍천강(洪川江)·조종천(朝宗川)과 합친 다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대덕산(大德山)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남류하면서 평창강(平昌江)·주천강(酒川江)을 합하고 단양을 지나면서 북서로 흘러 달천(達川)·섬강(蟾江)·청미천(淸渼川)·흑천(黑川)과 합친 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류한 한강은 계속 북서 방향으로 흐르면서 왕숙천(王宿川)·중랑천(中浪川)·안양천(安養川) 등의 소지류를 합류하여 김포평야를 지난 뒤 서해로 들어간다.
무려 일천 삼백여 리를 흘러가며 대한민국의 북부지역의 역사, 경제, 국민의 젖줄이 되어 우리의 역사를 이루며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일구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강이기도 하다.

강천보
경기도 여주시 단현동과 강천면에 있는 남한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주로 한강의 수위를 조절하는 주목적 외에 소규모 전력생산, 주변의 농수 공급과 시민들의 건강증진, 여가생활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근에 한강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황포돛배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강천보와 잘 어우러진 문화관의 위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천년의 고찰 신륵사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한 사찰로서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신륵사를 강가에 둠으로써 홍수와 범람이 잦아 자연환경의 보호와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일환으로 절을 지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여본다. 대개의 사찰은 산지가람으로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불교 전래 초기에는 평지가람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신륵사 또한 평지가람 배치를 선택하여 민중들 사이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쪽으로 선택한 듯하다.

한강문화관

두물머리의 가을
양수리는 두 물줄기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순우리말이다.
양수리의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황포돛배,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모습은 자연의 운치를 더한다. 최근에는 양수리가 영화, 드라마, CF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과거 양수리 나루터는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던 강원도 정선과 단양,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했다. 그러나 1973년 팔당 댐이 생기면서 육로가 발달함에 따라 어로행위와 선박의 건조가 금지된 후 양수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지금은 과거에 활발히 강을 오가던 황포돛배 한 척이 먼 옛날의 추억에 잠긴 듯 외로이 정박하고 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춘천시·양구군·인제군에 걸쳐 있는 남한 최대의 인공호인 소양호는 소양강 처녀라는 대중가요에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기도 하며, 댐의 건설로 대규모의 전력생산뿐만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한강 하류권의 홍수조절 능력이 5억 톤이며, 농업·공업 및 생활용수 공급과 내수어족의 양식업 및 국민관광지로도 큰 몫을 하는 등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소양호의 풍경은 주경 야경도 아름답거니와 사절기 내내 소양호가 제공하는 아름다운 소재들로 인하여 국민들의 관광뿐만 아니라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소양강 야경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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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03 목재(木材)

Term@Architecture 03
Wood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되었던 건축재료를 꼽자면, 단연 목재일 것이다. 지금도 목재는 건축재료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현대에 와서는 물류의 발달로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활엽수종을 가공한 목재에서부터 캐나다, 북유럽, 그리고 러시아 지역의 침엽수종을 가공한 목재까지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목재를 건축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수입 목재나 새로운 방식의 목재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 땅의 우리 목재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어떤 목재를 최고의 건축재료로 사용했을까? 주요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를 시작할 때면 대목수가 재목으로 사용할 소나무를 찾고 벌목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소나무는 한국 건축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소나무는 최고의 건축 재료일까?

현대건축에서 사용되는 목재를 대상으로 생각해 보면, 소나무류의 침엽수는 형틀을 만들거나 장식벽의 뼈대를 만드는 각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버려지는 소모 재료로 쓰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경량 목구조에서 구조재로 사용하는 S.P.F.는 가문비나무(Spruce), 소나무(Pine), 전나무(Fir)를 수종 구분 없이 가공한 것이다. 수종 구분 없이 섞여서 S.P.F.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강도나 내구성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고, 습기에 강하지도 않다. 색이나 무늬가 아름다워 장식용으로 선호되는 것도 아니다. 단단하기와 내구성은 활엽수가 뛰어나고, 향이 좋은 것은 편백나무나 적삼목이 인기 있다. 소나무의 장점이 있다면 다른 종류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빠른 성장 속도 때문일까? 소나무는 경량 목구조 구조재 또는 합판으로 가공되어 널리 사용된다. 현대건축에서 소나무는 내구성이 약한 저가의 재료이다.

Spruce 가문비나무 ⓒ wikimedia.org

S.P.F. 경량 목재

소나무 숲

 

합판

목재 등급 표시 스탬프

현대건축이 아닌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소나무의 가치는 어떨까? 전통건축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건축물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그토록 기대고 싶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소나무가 아닌 느티나무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대웅전도 느티나무다.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2007)’ 논문을 살펴보면, 고려시대까지 우리 건축은 참나무와 느티나무 같은 활엽수를 주된 재료로 사용했다. 고려 후기부터 소나무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에 들어 80% 이상의 건축물이 소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를 전통건축의 핵심으로 보는 입장이 아니라면, 소나무가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재료라고 할 수는 없겠다. 시행착오를 거쳐 최고의 재료로서 소나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온돌의 보편화로 조선 후기에는 건축재료로 사용할 만한 재목이 남아나지 않았고, 생육 속도가 빠른 소나무가 그나마 쓸 수 있는 목재였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무량수전 기둥(느티나무)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느티나무

세한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고,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한창이다. 세한도의 소나무 이미지처럼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소나무를 관념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이 영향으로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할 정도로 소나무는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건축재료로서 소나무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과는 분리된 개념일 것이다. 소나무도 소나무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부분에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건축재료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존중받거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재료가 아닌 재료를 다룬 사람이 아닐까? 건축재료로서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소나무를 가지고, 그것도 충분한 길이와 굵기를 갖추지 못한 소나무를 가지고도 그렇게 높은 완성도의 건축물을 만들어낸 솜씨 좋은 조선 후기의 목수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세한도의 소나무 ⓒ 김정희(1844년) gongu.copyright.or.kr

나무를 건축재료로 사용한 것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목재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이해는 그로 인한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으로 드러난다. 마루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공간이자 장소다. 온돌과 마루를 결합하여 실내에서 신을 벗고 생활하는 공간 구성은 분명 우리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전통건축뿐만이 아니라 현대건축에서도 마루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마루에 관련된 용어가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오류 투성이다.

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건축재료의 종류를 살펴보면, 강화마루, 강마루, 온돌마루, 합판마루, 원목마루 정도가 있다. 유리를 표면 처리하여 강도를 높이면, 강화유리라고 한다. 강화마루는 마루의 표면 강도를 높여 긁힘과 오염에 강하다. 그런데 강화마루와 강마루의 표면 처리는 같은 방식이다. 강화마루와 강마루는 마루를 설치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이름으로는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단순 암기를 해야 구분할 수 있다.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전통건축에서 마루는 온돌이 없는 곳에 설치된다. 우리나라의 현대건축에서는 바닥난방 위에 마루를 설치하니 모두 온돌마루라고 할 수 있겠다. 합판마루는 합판을 주된 재료로 하고 표면에 무늬와 색이 좋은 나무를 붙인 것을 의미한다. 온돌마루, 합판마루, 원목마루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두께와 크기가 다른 정도다. 원목마루는 가장 이해되지 않는 명칭이다. 원목이라 하면, 나무를 벌목하고 제재한 것을 의미한다. 합판, 집성재, OSB, MDF처럼 나무를 재료로 2차 가공한 산업 제품과 구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건축의 대청마루는 원목마루라고 하면 적절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원목마루는 합판마루와 같은 방식으로 합판을 바탕으로 표면에 색깔과 무늬가 좋은 나무를 얇게 가공하여 붙인 것이다. 통상적으로 원목마루라고 칭하는 마루 제품은 합판마루와 비교하여 표면재의 두께가 1∼2mm 정도 두껍다. 표면재가 두꺼우면 비틀림이 더 크게 생기기 때문에 바탕이 되는 합판의 두께도 함께 두꺼워진다. 높은 제작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격이 높다. 원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재료의 특성과는 무관하고, ‘원목’이라는 단어가 갖는 고급 이미지만 가져다 붙인 잘못된 용어다. 누군가는 좋은 재료에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쉽게 사용했을 것이다. 적절하지 못한 용어의 사용이 범죄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전통적 원목마루

현대적 복합마루

복합마루의 종류와 구성

자작나무 숲

천마도(자작나무 껍질 위 채색) ⓒ 국립경주박물관

자작나무는 건축물 외부공간에서는 조경의 요소로서, 건축물 내부공간에서는 마감재료로 선호되는 나무다.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의 이미지는 북유럽의 감성으로 건축과 조경에서 많이 소비되었다. 준공 사진에서 자작나무가 빠지면 완성이 덜 된 것 같았고, 인테리어에서는 자작나무 합판 마감이 빠지면 감성이 없거나 실력 없는 디자이너로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에 북유럽산 자작나무 합판은 고급이고, 러시아산 자작나무 합판은 싸구려로 치부하는 인식도 더해진다. 이런 선입견은 적절할까?

자작나무 합판의 등급은 무늬에 따라 달라진다. 옹이 무늬가 없고 깨끗하면 가격이 높고, 옹이가 많이 있을수록 저렴해진다. 그 정도를 B – S – BB – CP로 구분한다. 합판은 면이 두면이기 때문에 양쪽의 옹이 무늬 정도를 병행 표시하는데 B/BB 또는 S/BB 와 같이 표기된다. 뒷면으로 사용하여 보이지 않게 되는 쪽은 옹이가 많이 보이는 BB 면으로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 대해서 옹이가 없는 B로 할 것인지 옹이가 약간만 있는 S 정도로 할 것인지를 고르면 된다. 북유럽산 자작나무 합판이라고 옹이가 없는 B이고 러시아산 자작나무 합판이라고 옹가 많은 S나 BB인 것은 아니다. 같은 등급이면, 나무의 산지나 생산기업의 노하우에 따라 품질과 가격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유럽 자작나무는 좋고, 러시아 자작나무는 나쁘다는 감성적 논리는 전문가가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닥터지바고’의 배경으로 나오는 설원의 자작나무 숲은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이다.

우리나라의 자작나무는 북유럽과 러시아의 자작나무와는 모양과 쓰임새가 조금 달랐다.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하여 자작나무라고 불린 이 나무의 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많이 사용되었다. 오래 지나도 잘 썩지 않아 관이나 생활용품을 제작하는데 널리 쓰였다. 또한 얇게 벗겨지는 껍질은 종이 대신 사용하였는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천마총의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건축재료로서 목재의 품질을 생산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등급으로 판단하는 태도도 필요하고,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우리의 자작나무 특성과 활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다.

자작나무와 소나무처럼 왜곡된 이미지로 알려지거나 마루 종류처럼 잘못된 용어가 널리 퍼진 경우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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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워치 01 Ⅰ 북한의 건축설계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1
1. Architectural Design in North Korea

연재를 시작하면서

2010년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인하여 개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대북사업 TF팀을 만들거나 정비하였다. TF팀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건설사는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 건설, GS건설, 롯데건설 등(북미정상회담, 건설사 잇따라 대북 TF 구성…통일건설포럼·세미나 등 러시/ E-대한경제, 2018-06-14)이었으며, 정림, 희림 등 대형건축사사무소도 북한사업관련 TF팀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건설업계는 오래 전부터 북한개발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남한의 SOC(사회간접자본)와 주택시장이 포화상태이고, 해외건설도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으므로, 남북관계 개선 시 SOC와 도시개발사업 등 수십조 원 이상의 시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을 미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상당수의 건축사사무소와 건설사가 북한에서의 설계 및 건설공사경험1)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건축업계의 많은 관심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북한건축현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이왕기)』, 『북한 도시 읽기(임동우 외)』, 『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이선)』, 『모델 시티 평양(크리스티아노 비앙키 외)』 등의 국내 출판물이 있으며, 『조선건축(조선건축가동맹 기관지)』, 『건축예술론(김정일)』, 『조선건축사(리화선)』, 『주체건축역사의 갈피를 더듬어(김응상)』 등의 북한 간행물을 구할 수 있으나, 전반적인 북한건축 현황을 알기는 어렵다. 북한건축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북한 방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료를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또 건축학계의 연구가 많지 않고, 그동안 남북건설협력사업 대부분이 북한의 법규와 제도와는 관계없이 시행되어 북한 건축시스템을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의 건축기술 수준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1980년대 릉라도 경기장(5.1경기장), 102층의 류경호텔을 북한이 자체적으로 건축한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건축구조분야에서 상당한 기술 수준을 갖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북한과 교류가 확대되면서 전시성 건축물, 물자부족, 속도전에 따른 부실공사와 건물붕괴, 청년돌격대의 강제동원 등 북한건축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건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2018년 9월, 중국 정주시에서 열린 ‘2018 국제 도시 설계컨퍼런스’에서 북한의 심영학 조선건축가동맹 위원장이 북한 건축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한지역에서의 건설과 개발사업이 본격화된다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규모로 진행될 것이고 추진형태도 다를 것이다. ODA(국제개발원조), 외자유치 등을 통하여 북한이 주도하거나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개발사업이 많아질 것이며,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개발사업 참여로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국제적 경쟁과 더불어 북한과의 공동개발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건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북한건축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구할 수 있는 자료와 경험을 기초로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하여 연재를 하기로 하였다. 내용은 ① 건축설계 ② 건축행정체계 ③ 법제도 ④ 건축교육과 자격제도 ⑤ 건축시공 ⑥ 건축재료 ⑦ 건축물의 유지관리로 구분하였으며,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분야는 2회로 나뉘어 수록된다.

 

북한의 건축설계(1)

1) 설계연구소
우리나라(남한)는 건축물 설계는 등록된 건축사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남한의 건축사사무소는 13,915개, 자격등록건축사는 16,030명이고, 배출된 건축사는 23,038명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적으로 남한에서는 한국종합기술공사(기공)에서 건축설계를 하였으나 1994년 민영화된 후 국가나 공공에서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LH 등 여러 공기업에 건축설계실이 있으나, 건축인허가를 받을 수 있는 건축사사무소가 아니며 주로 설계관리와 외주관리를 담당한다.
북한은 토지와 건물의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계획경제체제이며, 건물과 시설물을 국가에서 건설하고 관리한다. 건축설계도 남한과 같이 개인이나 법인이 운영하는 설계사무소(건축사사무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단체)에서 운영하는 설계연구소가 담당한다.
북한은 건축설계를 수행하는 기관을 주로 도시설계사업소라고 불렀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도시설계연구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도시설계연구소라는 명칭은 건축과 도시를 통합된 분야로 보는 북한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의 수도 평양의 모습.

평양에는 백두산건축연구원, 평양도시설계연구소, 평양도시계획설계연구소, 류경건설설계연구소 등 80여 개의 설계연구소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부 중앙행정부처 산하에도 설계연구소가 있다(철도성 산하 철도설계연구원 등).
지방에는 도 단위의 지방건설위원회 산하 설계사업소가 있으며, 규모가 큰 시·군의 인민위원회, 대규모 기업소 및 협동농장 등에도 설계연구소가 설치된 경우가 있다. 그리고 지방인민위원회 도시경영국(부) 산하에 시설물의 개보수를 위한 설계연구소가 있는 경우도 있다.
설계연구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축대학,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하여야 한다. 북한에는 건축대학이 평양건축대학(구 평양건설건재대학)과 함흥건설대학(2002년 설립)등 2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재학생도 많지 않아 지방의 설계연구소에는 평양건축대학 출신자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축설계기관은 백두산건축연구원이다. 1982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설립되었으며, 국가의 중요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는 기관으로 건축연구소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당창건기념탑,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 조선컴퓨터 센터, 김만유병원, 양각도국제호텔, 만수대예술극장, 인민대학습당, 창광원 등이 이곳에서 설계한 건축물이다.
백두산건축연구원은 1989년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연면적이 1만㎡(약3,000평)에 달하고 건축설계실, 연구원도서실, 건축물사진 및 건재를 진열한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인원은 전문설계사와 연구사, 보조설계사 및 조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총 200명 정도이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김일성상’계관인, 노력영웅, 인민설계가, 공훈설계가, 공훈과학자, 교수, 박사, 부교수, 학사 등 명예칭호와 학위학직을 소유하고 있다. 조직은 전문분야에 따라 실(室)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건재연구소 건축재료연구실(4실), 건축과학이론연구실(3실), 건축설계연구실(5실), 건축공학연구 공학실(4실), 건축정보센터실(4실) 외에 건물설계실, 구조물 설계실, 전기시설물 설계실, 력학설계실, 환경위생 설계실, 건재 설계실 등이 있다(데일리 NK. 2020.7.30.).
백두산건축연구원은 언론보도를 통하여 남한에도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으며, 류경정주영체육관, 개성 통행검사소, 금강산 옥류관, 평양과기대 등 남북건설협력사업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김정은의 건축가로 알려진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실장도 백두산 건축연구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도시설계연구소는 1947년 설립되었으며, 당초 이름은 도시설계사무소였다. 현재는 백두산건축연구원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평양도시설계연구소가 북한을 대표하는 설계사무소였다. 연구소에는 김일성종합대학설계실, 혁명사적설계실, 만수대설계실, 3건축 설계실(주택과 공공건물), 산업설계실, 전망설계연구실, 대외설계실, 설계심사실, 설계문헌실 등이 있으며, 인원은 400명 이상이고 노력영웅 9명과 인민설계가 3명, 공훈설계가 30여 명이 있다. 많은 평양도시설계연구소 소장들이 조선건축가동맹 위원장, 건설건재성, 국가건설감독성의 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연구소는 평양대극장, 옥류관, 평양학생소년궁전, 천리마거리, 평양체육관,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경기장, 인민대학습당, 개선문, 빙상관, 창광거리, 문수거리, 광복거리, 5월1일경기장(릉라도경기장) 등을 설계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는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과학기술전당, 평양중등학원을 비롯한 90여 개의 건축물을 설계하였다(SPN 서울평양뉴스).
평양도시계획설계연구소는 평양도시설계연구소에서 도시계획분야를 분리하여 설립한 도시계획전문 설계기관이다. 평양도시건축연구소에는 총계획설계실, 세부 계획설계실, 명시설계실, 토목설계실, 상하수도설계실, 열 및 전기 설계실 등이 있다.(북한정보포탈) 탈북 건축가인 장인숙 씨가 이 연구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평양의 건축자재생산업체를 지도·감독하는 기관인 평양건재총국 산하에 평양건재설계연구소가 있고, 군대 및 사회안전성(경찰)에도 설계연구소가 있다.

 

2) 건축설계의 절차(설계계약 및 설계공모)
북한은 계획경제 국가이므로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건설계획을 국가건설계획에 반영하여야 한다. 건물의 건축주는 국가, 단체(협동농장 등), 기업소 등이며, 우선 건설계획도면을 작성하여야 한다. 건설계획도면은 도시설계연구소의 도시계획담당부서에서 작성하며, 건설예정 토지에 대하여 토지관리기관의 토지이용승인을 받고, 지방인민위원회 건설위원회 등에서 건설명시를 받아야 한다. 건설명시란 건축물의 위치를 확정하는 북한법의 법정용어이며, 건설명시는 건설계획이 공적으로 승인되는 것이므로 남한의 건축허가, 사업승인과 유사한 절차로 볼 수 있다.
건설명시를 받은 후 본설계를 위한 설계계약을 하고 건축설계를 진행한다. 설계안은 건축주 기관에서 검토 및 합의 후 과학자, 기술자들로 이루어진 설계합평회의 의견을 받아 완성된다. 완성된 설계안은 심의 및 검토기관(중요건축물 국가설계총국, 일반건축물 지방건축위원회 등)에서 심의 및 승인을 받아 확정된다. 설계확정 후에는 자재수급 및 인력동원계획이 국가건설계획에 반영되면, 건설허가가 승인된다. 건설허가는 용어 때문에 남한의 건축허가와 유사한 절차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재와 인력동원에 대한 허가이다. 굳이 남한의 절차와 비교하면, 착공신고에 가까운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건축설계는 건축주기관과 설계기관이 계약하여 진행되지만, 국가에서 추진하는 중요대상 설계는 설계안을 공모하여 설계안을 선정한다. 설계공모는 설계기관 간의 경쟁을 통하여 설계원의 동기부여와 설계수준을 높이기 위해 중국, 베트남 등 체제전환 전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많이 시행하였던 제도이다. 설계공모에는 중앙 및 지방의 도시설계연구소만이 아니라, 평양건축종합대학, 전문학교, 지방 및 기업소의 설계조직도 참여가 가능하다고 한다.
건축설계사가 주인공인 북한 영화 <행복의 수레바퀴(2010년, 72분, 조선예술영화제작소)>를 보면 설계공모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2017년 준공된 려명거리의 일부 건축물은 평양종합건축대학 학생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실제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북한은 2012년 이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2012년 12.1조치)를 도입하면서 기업소의 자력갱생을 강조하였고, 주택, 상업시설들을 돈주가 건립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건축설계를 설계비를 받고 설계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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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사회,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다

Untact society, raises a fundamental question about existence

시작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세계를 뒤흔든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초고속 백신 개발로 1년 만에 세계 각국에서 백신 예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어서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나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 시작이다.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반가운 뉴스도 일부 연령대에서는 무용지물이란다.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다.
그야말로 세기말적 아노미(anomie)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21세기 들어선 지 20년 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혼란이 오다니…….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은 세계 각국의 기존 질서와 문화, 사회 체제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고 있다. 단순한 균열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의 사전 경고음처럼 빽빽거리고 있다.

단순한 전염병의 확산 이상이다. 고령층의 치사율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크게 판이 바뀌고 있다. 가속으로 달려가며 스스로 조금씩 대안을 찾아가던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과 이로 인한 반작용, 산업 발달과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 조금씩 대안을 만들어 가던 중이었다. 예를 들면 ‘공유’ 같은 개념으로 등장한 대안이었다. 그렇게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던 공유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자유로운 이동으로 비롯된, 말 그대로 우주적 유목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염병은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고립을 유도하고 있다. 물론 완전한 고립은 아니다. 21세기 IT 발달로 어느 정도 고립된 생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초고속 성장하는 기업도 있고, 주체 못 할 이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만 모두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동의 제한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경제적 실패 또는 손해를 안겨주었다. 대면을 통해 이뤄지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거래나 관계는 파괴되었다.

사회적 모순은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분명히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발달한 IT로 인해서 더 먼 곳의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하거나 화상으로 만남을 갖는다. 전에는 사람들이 광장같이 열린 공간에 모여서 의견을 나눴다면, 이제는 온라인 화면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분명 신체적 이동 거리나 활동 공간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적 이동 거리나 활동 공간은 인터넷을 타고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대면은 매우 공포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영화 <더 네트(The Net, 1995)>는 이런 비대면으로 인한 고립을 헐리우드 영화다운 상업적 공포로 꾸몄다. 영화를 보던 당시만 해도,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생활은 정신적으로 광장 공포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해는 하지만 몰입되지 않았다.
샌드라 블록이 분한 주인공 안젤라 베넷은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다.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나, 오로지 재택근무에 의존하고 있다. 업무적 특성상 굳이 사람들과 대면할 이유도 없는지라, 불안정한 대인관계는 그녀의 이런 고립 생활을 유지하게 했다. 대부분의 생활은 전화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외출 혹은 타인과의 접촉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는 일이 전부다. 그러던 중, 그녀는 회사 동료로 인해 의도치 않는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누군가의 의도로 의식불명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깨어난 다음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된다.

온라인과 전화가 대인 관계의 전부였던 그녀. 실제 그녀와 접촉한 이들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거의 없다. 더구나 그녀에 대한 모든 기록과 온라인 데이터들은 삭제되었거나 왜곡되었다. 모든 기록이 전산화되고 비대면으로 활동한 덕분에 왜곡된 정보는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해버렸다. 집도, 회사도 그녀의 기억과 달라 머물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완전히 리셋(Reset)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그녀의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업 영화인 덕분에 이런 설정은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능한 일일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다.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실이 25년이 지난 지금 피부로 와닿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선생님들과 화면으로 이야기하며 수업을 받고 있다. 비대면으로 어떻게 수업을 할지 궁금했던 체육시간이나 미술시간도 화면으로 상호 반응하도록 하여 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익숙해지고 있고, 심지어 종교 활동까지 비대면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 예배가 온라인 영상으로 실시간 중계되면서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일 년째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견을 보이지만, 이는 19세기 주요 운송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던 시대의 반응과 같다.

어쩌면 교회의 온라인 예배는 종교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의식을 좌우했던 거대한 공간에서 집단 속 일원이 되는 군중심리를, 온라인 예배를 통해 극복하게 된다. 비대면 예배에는 온전히 나에 대한 사색과 기도, 몰입만 있을 뿐이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나 불교, 심지어 이슬람교도 동일하다 본다.

영화 <그녀> 스틸컷 © (주)더쿱

그렇다면 온라인(비대면)을 통한 감정이입은 불가능할까? 이 역시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이 단계별로 기계와 인간적 친밀감을 높일지도 모른다. 영화 <그녀(her, 2013)>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몰입을 보여준다. 더 네트에서의 주인공이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였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대필 편지를 써주는 웹 기반 회사의 편지 대필 작가다. 흥미로운 점은 웹을 기반으로 하는 IT 기술을 통해 편지라는 아날로그 상품을 취급하는 회사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기업 설정이다. 아무튼,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혼자 놀기를 좋아하나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서툴지만 그 역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 더 나아가서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고 있다. 비혼? 싱글이 점차 늘어나는 시대를 설명하는, 그에 딱 어울리는 캐릭터지만 그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 만남을 힘들어하는지라 AI인 그녀와 교감하면서 점차 연애 감정을 키우게 된다.

이미 우리는 PC 통신을 다룬 <접속(1997)>이라는 영화를 통해 직접 만나지 않아도 감정적 사랑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이 상대방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다 점차 감정 이입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목소리까지 들려주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뭐가 다를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있지만, 온라인 대화에서 시작해 결혼까지 도달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활이 온라인을 통해 가능해진 2021년. 그렇다면 우리들의 공간은 어떻게 변화하고 구성될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비대면 업무의 증가와 이동 제한으로 집에 머물며 일과 생활을 병행하게 된다. 집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니, 홈 트레이닝이 가능한 운동실이 필요하다. 집에서 일을 하니 사무 공간도 필요하다. 배송으로 모든 물품을 주고받으니 현관의 기능이 복잡해진다. 수시로 손 씻기를 강조하니 위생 공간이 절대적이다. 하나씩 늘어나는 필요성에 따라 구성하다 보면 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큰 집을 어떻게 마련하고, 입주할 수 있을까? 굳이 출근하지 않는데도 비싼 값을 주고 도시 중심에 집을 마련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은 수많은 곳에서 발표, 언급되고 있다.

<그녀> 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AI인 사만다와 교감하며 연애감정을 키운다. © (주)더쿱

과연 내년, 내후년에는 어떻게 될까? 개발된 백신의 접종이 일상화되면 이전처럼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을 예견하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또다시 새로운 변종이 생길 거라고 단언하고 있다. 결국 이전의 생활, 이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양상에 우리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

과연 미래의 우리 생활 모습은 어떨까? 아마도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의 일상화보다는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stancing)’가 보편화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억제하긴 어렵다. 다만 온라인으로 대체될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말하는 ‘거리 두기’는 스킨십이나 직접 접촉이 아닌 비물리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을 뿐이지 온라인상으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사회다. 이미 수많은 회의와 모임을 다자간 화상 모임으로 일상화 하고 있다. Zoom, Google Duo 등 화상 모임이 가능한 다양한 앱들은 점점 더 섬세하게 발달하고 있다. 공간을 다루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봤을 땐 배경 화면을 바꾸는 기능이 가장 흥미롭다. 낮밤은 물론, 도시를 바꾸고 공간을 바꾸는 효과를 연출한다. 실제 화상 회의로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의 경우 배경 화면을 의도적으로 연출해서 본인의 실제 공간을 숨기기도 한다. 배경을 동남아의 멋진 휴양지로 바꿀 수도 있고, 화려한 거실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실제 머무는 공간의 중요성이 퇴색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가상 공간의 현실화인 셈이다.

이쯤에서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셉션>에서는 무의식, 즉 꿈을 언급하는데 이 꿈과 온라인의 차이가 뭘까? 이런 허상을 언급하다 보면 <12 몽키즈(1995)>와 <매트릭스(The Matrix, 1999)>도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다. 비록 장르는 판타지지만, 이런 영화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더 네트>에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결코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이 뇌의 뉴런(신경세포) 간 전자 접촉에 의한 퍼즐이라고 보면, 결국 <매트릭스>의 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트릭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매트릭스에서의 공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로, ‘현재의 나’를 인식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현재의 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배경이 되는 공간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 공간은 인식하는 주체인 ‘나’가 만지고, 보고,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험을 통해 기억 저편에 존재하던 공간이 만지고, 보고, 듣는 행위에 따라 기억 저편에서 나와 눈앞에 실재하는 것 같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촉감은 뇌를 통해 실제 무언가를 만지는 것처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이렇게 속이기 위해 <매트릭스>에서의 환경은 의도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비대면 사회에서의 고립된 개인, 또는 고립된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새삼 ‘존재’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지고 냄새 맡는 대상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광장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주 작은 나의 방에 있는 것일까?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여겼던 실재하는 공간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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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스타킹과 고전 건축 오더의 유사점

Similarities between Baseball Socks and Classical Architecture Orders

<사진 1> 세기 전형적인 야구 스타킹의 모습. 앞에서 보면 고리 스타킹이 아치 모양을 만들고 옆에서 보면 고리 줄이 보인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수인 샌디 코팩스의 사진을 보면 20세기 야구 유니폼에서 스타킹의 전형적인 표현 형식을 잘 볼 수 있다.<사진 1> 21세기에 들어서 야구 스타킹은 자취를 감추거나 아니면 단일한 색의 스타킹 하나만 신는 것이 대부분이다.<사진 2> 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반드시 두 개의 스타킹, 흰색의 스타킹 위에 색이 있는 고리 스타킹을 반드시 신었다.<사진 3> 왜 거추장스럽게 2개의 스타킹을 신었을까? 여기에는 분명한 기능적인 이유가 있다.

<사진 2> 21세기에 스타킹은 바지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반대로 단색 스타킹 하나만 신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19세기까지 야구에서 스타킹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팀 아이덴티티 역할을 했다. 최초의 프로야구 팀인 신시내티 베이스볼 클럽은 야구 유니폼에 최초로 스타킹을 도입했다. 품이 넉넉하고 밑단이 무릎 아래에서 끝나는 니커보커스 바지를 입고 붉은색 스타킹을 신은 것이다. 그 강렬한 시각이 눈에 띄었는지, 관객들은 이 팀에게 ‘레드 스타킹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나중에는 이 별명이 공식 이름이 되었다. 다른 팀들도 곧 신시내티의 유니폼을 모방해서 그것이 야구 유니폼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각 팀마다 자기 팀의 고유색을 스타킹에 적용했다.

<사진 3> 20세기에 들어서 야구 스타킹은 흰색의 위생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팀의 상징 컬러를 적용한 고리 스타킹을 신는 형식이 정착했다.

그런데 이 스타킹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염색 기술이 부족해서 염료가 천에 제대로 착색이 되지 않아 땀과 범벅이 되면서 피부에 흘러내린 것이다. 문제는 선수들이 슬라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스파이크가 정강이 부분을 찢는 부상을 입었을 때다. 상처에 염료의 독성 물질이 스며들어 부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따라 염색을 하지 않은 흰색 스타킹을 먼저 신고, 그다음에 팀을 상징하는 색깔이 있는 스타킹을 신은 것이다. 스타킹을 두 개나 신으니 운동화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스타킹은 발의 두께에 변화가 없는 고리 스타킹으로 신은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는 고리 모양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위생 스타킹은 그야말로 기능적인 이유로 신는 것이니 그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으로 갈수록 고리 스타킹의 그 고리 모양이 길어지기 시작해 밑에 신은 흰색의 위생 스타킹이 절반쯤 드러났다. 샌디 코팩스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 개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아치의 모양을 만들고, 그 밑에 흰색 스타킹이 보이는 것이 바로 야구 유니폼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 뒤로 고리는 더 가늘고 길어지기도 하고, 또 스타킹에 여러 색의 줄무늬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하는 등의 유행이 생기지만 위생 스타킹과 고리 스타킹의 결합이라는 기본 형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염료가 피부로 흘러 들어가는 기술적 낙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위생 스타킹을 신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두 개의 스타킹을 신는 이유는 한 마디로 문화적인 보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눈에 익숙해진 것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요구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친숙한 것은 그것의 쓸모를 넘어서 더 오래간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서양 고전 건축의 오더(oder)에서도 나타난다. 오더는 그리스와 로마 건축에서 기둥부터 그것이 떠받치는 엔타블러처(entablature)까지의 일정한 순서와 비례의 형식을 말한다.<사진 4> 기둥(column)은 맨 밑의 주초(base)가 주신(shaft)을 받치고 그 위에 주두(capital)로 마무리된다. 기둥이 떠받치는 엔타블러처는 처마도리(architrave), 장식대(frieze), 처마(cornice)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은 그리스 시대 목조 신전에서 유래했으며, 각각의 요소는 기능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 비롯한다. 즉 그것은 필연적이다.

<사진 4> 고대 그리스 신전을 지으면서 오더의 형식이 정착했다.

하지만 목조 신전이 석조로 지어지면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생긴다. 바로 들보다. 목조 신전에서 들보는 프리즈의 밖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석조 신전을 지을 때는 이것이 필요 없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한 것이었으므로 그 부분을 없애지 않고 마치 들보가 있는 것처럼 모양만 남겼다. 그것이 프리즈에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트리글리프(triglyph)다.<사진 5> 이처럼 최초의 기능적 요구는 사라졌지만, 친숙함 때문에 형식으로나마 유지하려는 경향을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라고 한다. 기능성이 없으므로 트리글리프는 장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목조 신전에서 연속되는 들보의 자리인 프리즈는 석조 신전에서 장식대로 변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5> 프리즈 부분에 세 개의 세로줄로 구성된 트리글리프가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스 신전에서 오더 전체는 기능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시대에 오면 오더 전체가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예를 들어 판테온 내부의 벽에는 오더가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사진 6> 오더의 일부인 기둥들이 마치 지붕을 받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판테온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돔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안전하게 받치고자 무려 6미터 두께의 벽을 세웠다. 그 두꺼운 벽을 살짝 파내서 기둥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기둥들은 지붕을 받치는 실질적인 구조가 아니다. 로마시대 사람들에게도 그리스 신전의 오더는 매우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그리하여 신전이 아닌 공공건물, 개선문, 심지어는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살벌한 콜로세움에까지 고루고루 적용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기능적인 요구가 아닌 형식적인 요구로서 디자인되었다. 로마시대의 건축은 아치 구조가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오더가 더욱 불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사진 6> 지오반니 파올로 파니니가 1692년에 완성한 그림 속 판테온의 내부. 벽을 파내 그리스 신전의 오더 형식을 집어넣었다.

<사진 7> 르네상스 건축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디자인한 팔라초 루첼라이. 이 건물은 세 개 층에 각각 다른 종류의 오더를 적용했다. 벽체가 건물의 실질적인 구조이므로 이러한 오더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연속된 오더의 수학적 비례와 질서의 아름다움이다.

오더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지배한 중세에 사라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했다. 르네상스의 오더는 로마시대보다 더욱 미적 형식으로 수용되었다. 사람들은 아마 그것이 최초로 가졌던 기능적인 요구를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을 배우고 적용하는 건축가들조차 모를 수도 있다. 르네상스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더의 각 요소가 갖는 조화로운 비례다. 구조나 재료와 별개로 작동하는 미적 형식은 초기 르네상스 건축을 정의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누누이 강조한 것이다.<사진 7> 오늘날 우리 삶의 환경에서 그처럼 최초의 기능은 사라진 채 형식만 남은 디자인은 무수히 많다. 쓸모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되면 그때부터 패션의 성질이 강해진다. 인간의 문화는 이러한 형식적인 패션으로 가득하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몰아내려고 했던, 기능과 무관한 형식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한 형식, 장식, 미적 요구란 사람들에게는 쓸모만큼이나 본질적인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