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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지구…표준화된 건축법. 이젠 지역별로 전문화해야 할 시점이다

Region·District…Standardized Building Act.
Now is the time to specialize by region.

건축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분야다. 법과 제도, 관습과 문화적 바탕, 창의적 자의식의 발로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 속성 때문에 사람마다 건축을 보는 시선과 각자의 주장이 다르다.
나는 항상 건축을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것’으로 비유한다. 만지는 부위에 따라 대상이 달리 판단되는데 넓은 귀는 새의 날개 같고, 커다란 상아는 뿔 달린 사슴 같고, 기다란 코는 뱀 같고, 넓은 뱃가죽은 돼지처럼 느껴진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기술로 보면 공학의 첨단이고, 완성된 규모를 보면 건설 시공의 성과다. 실험적인 재료나 외모는 첨단 재료공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결과물들은 제도와 법 안에서 만들어진다.
건축법의 바탕을 보면, 관계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다.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일조권 제한이 있고, 이웃한 대지 소유자와의 관계 때문에 적당히 간격이 떨어져야 한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 보행로나 도로 때문에 건물은 밀려나야 한다. 이리저리 봐도, 건축과 관련한 대부분의 법은 도시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불이 나서 피난할 곳이 없자 피난 탈출구와 발코니 등과 관련한 법이 등장했다. 1970년대 초반, 남대문 앞에 있던 도쿄호텔에 불이 나서 피난한 사람들이 돌음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하자 피난계단은 계단참을 두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법 이전에 건축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건축사는 의뢰인의 다양한 요구에 반응하며 건축물의 형태를 다듬고 만든다. 그리고 본인의 감성과 논리를 혼합해 법과 기술, 대화와 타협, 협상을 통해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요구 조건들을 채워나가며 퍼즐 하듯 창작하는 건축은 완전한 주문 제작(Order Made)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산업의 도구와 생산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건축이 많아졌고, 건축이 준주문제작 방식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수적인 부분들이 부각되고 사회적 이슈화되고 있다. 또 시공 시의 사고나 화재, 사회적 트렌드 등이 건축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법이 만들어진다.
이는 잘못된 흐름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뭘까?
우리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비용의 낭비가 커진다는 말이다. 안전과 환경, 이웃과의 관계는 분명히 중요하다. 건축은 이런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문제는 백 원짜리를 만들기 위해 천 원을 쓰는 어리석은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고도화되고 다양해지는데, 모든 상황에 단순한 표준을 요구하는 법과 제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늘고 있다. 각종 심의, 각종 법과 절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안전과 환경, 각종 민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이런 방법밖에 없을까? 지역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배경이 있는데, 전국을 똑같이 만드는 현재의 건축 관련 제도와 법은 과연 유용한가?
우리는 이미 이를 보완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으로 개별적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 특별건축구역이라는 제도도 있다. 입체적으로 지역별 건축 가이드라인의 제도화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살펴보면 건축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다.
건축사는 전문가이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적어도 도시지역의 지역, 지구를 없애자. 과연 2021년에 전용주거지역,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 등의 지역 구분이 타당한가? 사회적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는 20세기 족쇄다. 없애야 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법과 각종 도시와 관련된 건축법 규정도 최소화하고, 대신 모든 지역을 세분화해서 지역별 지구단위계획의 건축적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보자. 이를 ‘입체적 지구단위계획 지침’으로 해서 우리나라 전 지역의 지형과 문화적 배경에 어울리는 건축과 도시를 만들도록 하자. 그리고 이를 건축사가 주도해야 한다.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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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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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몇 개의 고쳐 쓰기 작업

건축담론

편집자 註

재생건축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지극히 지엽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도시재생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학문과 연구의 용어이며, 우리 도시가 고민해야 할 정의다.
우리는 그동안 지극히 제한적인 도시재생의 단면만을 언급해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시의 혁신을 다룰 도시재생에 관해 언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현재는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는 도시재생 전략 중 하나인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는’ 재활용 건축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려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전략화해야 한다. 인문학적 시각이 강한 사람들은 전략이나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는 ‘정책’으로 수립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련된 정의가 있다.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고 하는데,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빈곤 탈출, 기아 극복, 건강 확보, 성적 평등성, 맑은 물, 재생에너지, 좋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혁신과 기반,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등 총 17개의 어젠다로 이뤄져 있다.
내용을 보면 한정된 자원의 재활용이 다뤄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도시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지속된다는 것은 시간의 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연속된 시간의 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성장시키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연속적 환경은 결국 도시와 건축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흔적이 된다.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명제가 있긴 하지만, 재생건축은 이런 시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Several remodeling works

앞 세대의 존재 흔적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들의 단초를 끄집어낼 수 있는 안목, 긍정의 힘이다. 장소가 생겨나고 존재해왔던 그 이야기를 공감하고 기억하는 것, 진정성이다. 기억들이 기록들로 각화(刻畵)된 계획 대지. 그것을 우리는 사이트(SITE)라 말한다. 내재한 수많은 시어(詩語)들을 찾아내고 읽어내어 재조합한다.
이성적 구축 논리를 감성으로 서사한다.

고쳐 쓴다는 것, 바꿔 쓰고 덧대 쓰는 것.
기억을 공유한다는 뜻, 본래의 쓰임새를 애정한다는 뜻이다.
날선 각들은 시간 속에 무뎌지고 윤색된 표면들은 풍우에 순화된다.
시간은, 우리가 만든 모든 인공들을 자연으로 동화시킨다.

오래된 것은 왠지 낯설다. 그래서 새롭다.
보편화된 시대 일상. 치장은 지워지고 감출 허세도 없다. 관용으로 포용된다.

쌓아서 지을 수 있는 높이들의 집들과 전차가 다닐 수 있는 삶의 스피드.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들과 집들이 나를 기억하는 도시.
내가 꿈꾸는 도시.

재생건축,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편한 어감. 생각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사회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형식과 의미를 규정하려 강박하고 있는 듯하다. 고쳐 쓴다는 표현이 편할 수밖에 없는 소이연이다. 상황과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작업 대상들. 모두들 각자의 인격을 가진 장소로서 의인화 된다. 점유방식, 사용방식, 시대마다 가진 고유의 구축정신이 있다. 때론 그 낯섦을 주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행운이다. 기회들을 통해 마주한 나름의 생각들을 작업 경험을 통해 나열해 본다.

 

잠사박물관 1988

잠사박물관

도로보다 낮은 기존 공장부지는 철길에서 강변으로 흐르는 땅들의 높이와 관계를 수용하고 영역들을 매개한다. 80년대 말에 가동을 멈춘 우리 산업시대의 마지막 잠사공장. 아신역에서 부터 남한강변까지 하나의 영역으로 만들어 준다. 땅들은 높아지고, 주변 맥락을 조절할 새로운 바닥판들이 결합된다. 지붕이 소거되면서 외부공간이 내부공간이 되고 내부공간이 외부공간이 된다. 벽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전도되는 역공간이 형성된다. 새로운 질서는 기존의 질서를 밟아가면서, 인식의 옷들을 뒤집어 입는다. 기억을 읽어 내는 것, 바라보는 눈의 애정에 의한 것, 장소는 시간을 담아두게 되고 시간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벽으로부터, 벽들로부터, 벽들의 사이에서, 벽들의 안과 밖에서, 벽 속의 우물로부터 60년대의 복고적 향수를 길어 올린다. 시간 속에서 중첩되며 이루어져 왔던 기존의 배치 질서를 새로운 질서의 구축 재료로 용융시킨다.

 

강변연가 1999

강변연가

집들은 나무보다 빨리 자라고 도시는 숲보다 빨리 커진다. 기억할 과거를 잃어 가는 땅,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를 찾기 힘든 땅, 우리가 정주할 풍경의 무게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강토가 기품을 잃어버렸다.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것들을 찾기 힘들다.
팔당댐은 이제 양평읍이라는 소도시가 끌어안아야 할 숙명이 되어 버렸다. 먹는 물, 보는 물, 그리고 넘치는 물. 갈등의 모든 것이 팔당댐을 원인으로 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달리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넘치는 물로 인한 강변의 제방은 강변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닫아 버렸다. 관계를 끊어 버렸다. 시가지보다 높아진 제방은 그보다 더 높은 철길과 평행하다. 도시는 그 사이에 끼워져 몸부림을 치고 있다. 철길은 철길대로 일정하게 달려야 할 높이가 있고, 제방은 나름대로 근거를 가져야 할 일정 높이를 거부하진 못하였을 것이다. 도시보다 높은 두 개의 수평 레벨 사이에서 땅들은 자기 모습과 레벨을 가지기 위해서 혼돈하고 있다. 관계를 회복하고, 끊어진 길들을 강으로 다시 연결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이 도시가 부를 강변연가이다.

 

선정릉 2006

선정릉

경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인식은 경계선이라고 하는 선형성일 것이다. 주변에서 늘 보는 철망이나 담장이 그것이다. 여기서 영역을 자기중심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경계는 중심에서 가장 멀리 방치되어지는 marginal한 주변 요소로 전락된다. 스스로 자폐 된다.
역사 공간으로서의 선정릉, 도심공원으로서의 선정릉은 우리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듯이, 소극적 방어 형태의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지형이 다르고 주변 상황이 다르다. 도시 감성의 내면적 복합성을 다양하게 엮어내야 하는 절실한 요구를 표정 없이 묵살한 채 철망으로 태연하다. 안도 우습고 바깥도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존재를 비하하고 있다.
경계 구조는 시공간적 단절 영역이 아니라 반응하며 생장하는 유기적 영역이다. 역사 공간과 도시 영역이 상호 자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미 死 공간화된 영역들, 그 불합리한 틈새의 불연속면을 주목한다. 장소의 변형과 창조를 통해 역사 공간으로서, 도심공원으로서의 선정릉이 가진 잠재력을 친숙한 몇 가지의 상상력으로 건축화 시켜본다. 영역화 시켜본다.

 

경기고 옹벽주변 2010

경기고 옹벽주변

도시계획에 의해 형성되는 인공대지의 불연속면을 단지 어색하거나 불합리한 구조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생산적인 도구로 인식한다. 도심의 끊어진 길들, 관계 회복을 통한 가로공원을 조성한다. 옹벽 내부를 공간화하여 흙덩어리를 공간으로 치환한다. 틈을 공간화하여 장소를 회복한다.
옹벽으로 단절된 보행로와 차도가 아랫길을 통하여 가로 친화적 높이를 가지면서 내부 공간은 프로그램화되고 인도를 가진 도시 가로 구조로 전환된다. 통학로와 보행로가 결합이 되어 가로 광장이 되고 그 하부에 내부 공간이 형성된다. 은행나무 길, 학교 가는 길, 도시적 감성으로 복원된다. 기존의 지형 질서에 순응되면서 지형 위에 표출된 동선 궤적의 선형적 결합. 대상 부지의 형상을 구축한다. 극단적 긴장감으로 선형성의 미학을 내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2018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1층 외벽들을 한 켜 물러 세우며 외부 회랑으로 전환시킨다. 기존의 시설 군들을 하나로 통합한다. 외벽은 바깥 켜의 외피로 남는다. 안 켜는 외벽이 자유로워지기 위한 켜이자 수장 영역을 형성하기 위한 구조로 강화시킨다. 안 켜는 점점 단단해지고 바깥 켜는 점점 가벼워진다. 도시의 기억과 역사의 함축, 외피는 또 다른 세월을 담아내며 풍화되어 간다. 담장 밖으로 소통하지 못하였던 낯섦, 익숙지 않은 새로움이다. 낯설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다. 시대가 가진 고유의 구축정신, 기둥으로 표현되는 엄정한 구조열 공간이 가진 한계가 다른 장소가 가질 수 없는 강건함이다. 보존을 얼마만큼 하는가. 무엇을 보존하는가. 이에 대한 선택이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쓸 만큼 쓰고 자연스럽게 남겨지는 과정, 그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공간적 기능이 창의적으로 해석되고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디자인 과정의 최종 성과물이다. 표피에 대한 문제는 더욱 아니다. 새롭게 바꾼다거나, 반대로 고집스럽게 남기려는 시도 또한 형태에 대한 집착과 다름 아니다. 보존한다는 것.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2017

문화비축기지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이 시대와 사건을 연결한다. 40년, 그리 길지도 않다. 이끼가 돋아있고 오동나무 거목이 뚫고 나와 공생하는 콘크리트 구조물. 녹슬어가는 탱크와 주변 시설물. 높은 옹벽과 좁은 통로, 깊은 틈새와 구덩이. 구조물의 중량감과 그 물성들의 거칠음. 시간은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들을 자연으로 동화시킨다. 사연이 있었기에 수긍이 가고, 감춰져 있던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니 뜻밖이다. 구덩이 속에 용도 폐기된 채 산화되어가던 기름 탱크가 문화시설로, 저장 기능에서 생성 기능으로, 단순 구조물이 복합 건축물로 전환되는 과정. 감동은 예측 못할 반전과 격한 공감의 동반을 필수요건으로 한다.
장소가 만들어지던 그 시대 그 상황을 재현해낸다. 문화비축기지 구축과정은 발굴 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묻혀있던 구축 과정의 발굴을 통해 새로이 들어서야 할 계획의 방향이 정당화된다. 찾아냄이 시작이며 나타나게 함이 종결이다. 문화비축기지 구축 과정은 석유비축기지 구축 과정의 역순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글. 허서구 Huh, Seogoo 허서구 건축사사무소

허서구 허서구 건축사사무소·건축사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the Berlage institute에서 수학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학부교수, 원도시건축의 대표를 역임하였고 현재 허서구 건축사무소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한솔집,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문화비축기지 등의 작품이 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등을 수상하였다.
seogoo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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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과거 드러내고 현재 덧붙이고, 옛 건물에 새 숨을

건축담론

편집자 註

재생건축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지극히 지엽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도시재생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학문과 연구의 용어이며, 우리 도시가 고민해야 할 정의다.
우리는 그동안 지극히 제한적인 도시재생의 단면만을 언급해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시의 혁신을 다룰 도시재생에 관해 언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현재는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는 도시재생 전략 중 하나인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는’ 재활용 건축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려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전략화해야 한다. 인문학적 시각이 강한 사람들은 전략이나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는 ‘정책’으로 수립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련된 정의가 있다.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고 하는데,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빈곤 탈출, 기아 극복, 건강 확보, 성적 평등성, 맑은 물, 재생에너지, 좋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혁신과 기반,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등 총 17개의 어젠다로 이뤄져 있다.
내용을 보면 한정된 자원의 재활용이 다뤄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도시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지속된다는 것은 시간의 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연속된 시간의 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성장시키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연속적 환경은 결국 도시와 건축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흔적이 된다.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명제가 있긴 하지만, 재생건축은 이런 시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Reveal the past, add the present, and infuse new life into the old building

우리 주변의 도시는 활력이 넘친다. 구(원)도심이든 신도심이든 각각의 방식으로 활력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신도심에는 부동산의 논리에 맞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나를 알리고자 하는 광고판의 번쩍거림. 도시는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 구(원)도심 또한 십수 년 전부터 신도심에 빼앗겨버린 화려한 번영을 되찾기 위해 ‘재건축’,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원도심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오랜만의 귀향길에 바뀌어버린 도시에 놀라곤 한다. 도시는 이렇듯 시간이 흐르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도시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건축법은 도시를 가로의 폭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스케일을 정하곤 하였다. 물론 관련 법령이 조금씩 달라짐은 있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이곳 도시에서의 삶은 그 어떤 것보다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그 부동산의 가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는 도시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와 인간적인 모습이 없음을 탓한다. 도시가 토해내는 쓰레기와 공해, 주차난 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런 물리적인 환경을 갖고 있는 도시지만 우리는 도시를 사랑한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가끔은 인간적이지 못해 싫다가도 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도시가 주는 불편함 그 이상의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집에 대한 역사와 기억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근대건축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근대건축물 뿐만 아니라 60, 70년대에 양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건축물의 현장답사나 조사, 실측이라도 할 경우에는 보물놀이라도 하듯 재미있었다.

몇 년 전에 멈춘 듯한 오래된 달력에 새겨진 동그라미는 어떤 날이었을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런 건축물과 소품들을 볼 때마다 집에 대한 역사와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맘이 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광주의 양림동 같은 경우도 그런 이유였다.

졸업논문에 광주 최초의 선교지역이었던 100여 년 전의 근대건축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그 밖의 건축물들이 유실되고 사라지는 시점을 기억하고 싶었다.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도시와 마을에 대한 과거를 찾고 싶었다.

2007년부터이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계획도 없었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법이었는지도 몰랐다. 양림동의 100여 년 전의 선교사 사택과 등록문화재부터 60, 70년대 근대건축물 20여 채를 실측하고 조사하면서 이곳에 대한 애틋함은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한 개, 두 개 정리하다 보니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했던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도 몇 개의 건축물들이 없어지기 전에 그렇게 도면화로 정리되어 기록을 남겨두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사라진 건축물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로부터 광주의 양림동은 젊은 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뉴트로 감성의 골목길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늘어난 빈집과 빈집에서 나온 생활용품들. 이 모든 것이 근대화와 함께 했을 텐데, 쓰레기로 치부됨이 안타까운 지역주민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폐품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프로그램과 외부 사람들의 입출입이 잦았고 어느덧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 또한 2013년부터는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면서 가족 프로그램으로 지역의 도시와 마을, 건축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곳 양림동 일대도 그중의 하나였다. (2016년부터는 지역의 건축사, 교수들과 건축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 이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는 데 재건축, 재개발이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역주민이 이곳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선교사 사택의 철거를 막고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였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의 근본적인 취지는 정주환경을 확대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껏 구도심의 활성화로 인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떠나게 된 사례들이 많았다.

원도심은 택지개발지구와는 달리 필지 하나하나가 참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땅에 담장이며, 필요에 의해 살면서 만들어진 각각의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다. 이런 공간들도 보면 내 것에 대한 강한 애착에서 나온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 당연함으로 인해 담장의 높이나 경계등 그리고 자투리 공간의 다양한 활용 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한동안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땅콩주택이나 공유오피스, 건축법에서도 규정되어 있는 건축협정이라는 법령이 아직까지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시에 물리적인 편안함보다 인간적인 삶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故 신영복 선생님이 강연 중 이런 얘기를 하셨다. “윗집에 개구진 아이가 쿵쿵거리며 뛰어다니기에 뭐라 하고 싶은 맘이었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땜에 참고 또 참고…….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그 개구진 아이를 발견하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제법 친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니, 그렇게 아이와 관계를 맺고 나니 위층에서 뛰는 소리가 예전처럼 밉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라고.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변경 후 골목길 조성)

도시재생은 관계를 맺는 것, 약간의 불편함 속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과거(외부 전경)

변경 후(내부 전경)

담장 허물고, 포켓공간 만들고, 그곳에서 새롭게 이야깃거리 만드는 쉴 곳 생기니 사람들 찾아와

도시재생 또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관계를 맺는 것. 약간의 불편함 속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러면 민원이 사라진다.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도 그러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필지 각각의 담장을 허물고 포켓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새롭게 소통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게 공간을 확보한 것 밖에 없다. 지역주민들이 얘기했던 요소요소를 찾으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제 아파트값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집값이 비싸다고 하고 집값이 안정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어불성설이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집 사람을 보고 놀라며 집이, 도시가 개인적이니 이기적이니 대화가 없다고들 한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은 이제는 낯선 풍경도 아니다.

택지개발지구가 생기면 구도심에서의 인구가 신도심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에 따라 구도심은 활력을 잃고 쇠퇴해 가는 것이 이치인 것 같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래 도시는 그런 것이다. 쇠퇴해가고 슬럼화 되어가는 도시의 극복을 위해 재개발을 통해 다시 사람들이 유입되고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다만 구도심의 마을에 새로 쌓는 성이 아닌 역사와 흔적과 기록을 갖게 하는 재생건축이 되었으면 한다. 과거를 드러내고 현재를 덧붙이고, 그래서 옛 건축물에 숨을 불어 넣을 수 있었으면 한다. 수년 전부터 건축사의 업역들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른 점검, 해체감리 그 밖에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의 건축사의 역할이 그것이다. 하지만 많은 건축사들이 이러한 업무를 주저하고 있다. 물론 예상외로 많은 공사비가 들어가고 그렇다고 대가는 적으면서 오랜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기에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타 업체들이 딱 대가만큼의 일만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 따라 보이는 성과는 미미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필자는 건축사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를 했으면 한다. 일단 시작해서 한 건 두 건 시작해서 열정과 사명감이 묻어있는 도시재생 과제가 해결된다면 분명 이곳에도 밝은 전망이 있으리라.

도시재생!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 박종호 Park, Jongho 유민 건축사사무소 <전라남도건축사회>

박종호 유민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조선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주에서 실무를 익히고 2008년부터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전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양림동건축투어 해설사 및 꿈다락토요문화학교 튜터, ‘건축문화사랑’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 광역치매센터, 곡성치매안심센터, 장흥성당 등이 있다.
k102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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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텔로프 캐니언

Antelope Canyon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서부 5대 캐니언 중 하나로서, 사암 고원의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길이 8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협곡이다. 그 모양이 다채롭고 신기한 형상이 많으며, 특히 빛과 어우러진 사암에 남겨진 물의 흐름 잔상이 매우 다채롭다.
사진작가들은 이곳을 ‘눈과 마음, 영혼에 축복을 내리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빛과 색깔, 형태가 어우러져 시시각각 변화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위쪽은 진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빛나지만 아래쪽으로 갈수록 빛이 약해지면서 어두운 푸른색과 보라색으로 변한다. 빛과 색의 대조와 협곡의 벽에 비춰지는 빛의 효과는 영혼의 깊은 내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글.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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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04 유리

Term@Architecture 04
Glass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신라의 유리병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
ⓒ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고분 중에 가장 큰 황남대총에서는 남분과 북분을 합쳐 6만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6만여 점 유물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갖겠지만,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유리병이다. 유리는 4000여 년 전쯤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식사를 준비하던 중 소다 덩어리가 녹아 모래와 섞이면서 유리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그의 저서 [박물지]에 적고 있다. 지중해와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유리는 매우 귀해 보물처럼 사용되었는데, 7,000킬로미터 떨어진 아시아의 동쪽 끝 신라의 무덤에서 유리잔이 나온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백제의 고분에서도 유리잔이 발견되었으니 당시 동북아시아의 삼국은 로마나 서아시아와 활발한 교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는 유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지중해 연안의 유리창과 동아시아의 종이창

roman glass
ⓒ Amgueddfa Cymru (웨일스 국립 박물관)

황남대총의 유리병이 만들어진 지중해 연안에서는 유리로 병이나 잔을 만들면서 창유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로마시대 도시 유적에 발견된 창유리의 크기는 A4 종이 한 장 정도 크기였다. 로마시대 건물을 복원하면서 로마시대 창유리 제작 방법을 연구하고 재현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을 적신 평평한 돌 위에 액체 상태의 유리를 붓는다. 빈대떡처럼 펼쳐진 액체 상태의 유리가 굳기 시작하면 쇠 집게로 잡아당겨 적당히 네모난 모양으로 만든다. 크기와 모양, 두께도 가지가지였고, 평활도와 투명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유럽과 서아시아의 건물들은 낮에도 실내가 어두웠다. 여기에 한 줄기 빛이라도 들일 수 있는 창이었고, 유리는 매우 고가였으니 손바닥만 해도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유리는 로만글라스(roman-glass)라고 하는데, 로마 유적지에서 다수 출토되고 있다. 한편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없는 종이로 창을 만들어 채광을 했다. 나무로 창살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붙였다. 가볍고 평평하며 크고 넓은 창이다. 수백 년 전까지 동양에서 만든 종이창의 채광 성능이 유리창보다 좋았고, 더 밝은 실내 환경을 만들어 줬다.

 

crown glass와 cylinder glass 그리고 cast glass, plate glass

crown glass
ⓒ villumwindowcollection.com

cylinder glass
ⓒ thecraftsmanblog.com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다 크고 평활도가 향상된 창유리 제작방법이 등장한다. 중세에는 우산 돌리듯 굳지 않은 유리를 돌려 원형의 유리판을 만들고 끝을 잘라내어 사각형의 평평한 유리를 만들었다. crown glass라고 하는 이 창유리는 중앙에 황소의 눈과 같은 문양이 남게 되는데, 이런 특징으로 황소 눈 유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럽의 옛 건물에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유리를 불고 흔들어 크게 늘리면서 관(실린더) 형태로 가공하는 cylinder glass가 있다. 가공된 대형 유리관(실린더)의 한쪽을 자르고 펼쳐서 사각형의 평평한 유리판을 만든다.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던 효과적인 방법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책상 같은 크고 넓은 틀(cast)에 유리를 부어 일정한 크기의 얇고 평평한 유리를 만든 뒤 다수의 노동력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냈다. cast glass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유리는 점점 커졌고 실내는 그만큼 밝아졌다. 산업혁명은 모든 것을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유리도 그랬다. 완전히 굳지 않은 유리를 두 개의 롤러 사이를 통화시켜 뽑아내는 rolled glass 생산기술이 19세기에 완성된다. 이런 방법으로 유리가 가래떡처럼 계속 나오니, 이제는 건물 전체를 유리로 마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베니스 두칼레궁
crown glass

유리 마천루 스케치
ⓒ Markus Hawlik (Bauhaus-Archiv Berlin)

cast glass나 rolled glass 외에도 여러 회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용 유리를 대량 생산했다. 이런 건축용 판유리가 보편화되면서 모두 plate glass라고 통칭하게 된다. plate glass의 등장으로 20세기 건축은 큰 변화를 갖게 된다. 1921년과 1922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보여준 두 개의 유리 마천루 계획안은 건물 전체가 유리로 씌워진 고층 빌딩이었다. 이후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29년 barcelona pavilion, 1951년 farnsworth house와 lake shore drive apartmetns, 1956년 crown hall에서 판유리(plate glass)의 현대적 사용 방법을 보여줬고, 유리는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재료가 된다.

 

창유리의 혁명 float glass

수작업 창유리 제작 과정

대량생산 창유리 제작 과정

그렇지만, 판유리(plate glass)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평활도다. 1958년 이전까지 plate glass는 약간은 울퉁불퉁했고, 유리를 통해 바라보면 형상이나 비친 모습이 울렁거렸다. 투명했지만, 시각적으로 불편했다. 이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한 것은 영국의 필킹턴(pilkington) 형제였다. 집안의 유리공장을 이어받은 필킹턴 형제는 1953년∼1957년 사이에 용융된 주석 위에 녹은 유리를 띄워 평활도가 높고, 두께가 일정한 float glass를 개발한다. 액체 상태의 주석과 액체 상태의 유리는 비중이 달라 섞이지 않는다. 온도가 내려가면 유리가 먼저 굳기 시작한다.

seagram building(1958)

3.1빌딩(1970)

따뜻한 우유가 식으면 표면에 지방이 먼저 얇게 굳는 것과 같은 원리다. 주석 위에 뜬 유리판은 표면이 매끄럽고 평활도가 높으며 두께도 일정했다. 순수하고 완전한 평평한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유리는 기존에 판유리(plate glass)라고 불려 왔던 유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이었기 때문에 판유리(plate glass)와 구분하여 float glass라고 한다. float glass는 최초로 건물에 사용된 곳은 어디일까? 뉴욕의 seagram 빌딩은 1958년 완성되었는데, 설계와 공사를 했던 기간이 필킹턴 형제가 float glass를 개발한 시기와 겹친다. 미스도 필킹턴 형제도 서로 필요한 관계였다고 추측해보면서 최초의 float glass가 적용된 건물은 seagram 빌딩이 아녔을까, 생각해 본다. 우연이라도 연도가 딱 맞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나라의 판유리

성북동 최순우 가옥의 판유리(plate glass)

평활도가 좋은 float glass

불과 43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float glass가 생산되지 않았다.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의 창유리를 보면, 투명하지만, 울렁거린다. float glass가 아니라 plate glass다. 한글라스의 전신인 한국유리공업이 1977년 필킹톤 사의 float 공법을 도입하고, 1978년 float glass 공장이 준공된다. 그런데 우리는 float glass를 판유리(plate glass)와 구분하지 않고 통칭해서 판유리라고 불렀다. 결국 지금도 float glass를 지칭하는 우리 용어가 없다. 일반인은 float glass를 판유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영문 표현이 아니면, 두 종류의 유리를 구분할 우리 용어가 없는 것이다. 세분화된 전문용어가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근대건축물은 복원 과정에서 본래 사용되었던 울렁거리는 plate glass를 제거하면 매끈한 float glass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 구분하는 용어가 없으면 구분하지 못하고 적절한 재료를 적절한 용처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종 B종 복층유리
복층유리는 두 장 이상의 유리 사이에 공기층을 두고 복합하여 만든 창유리다. 단열성능이 좋아 복층유리가 보편화되면서 KS기호로 복합 구성을 구분하였다. 이 기호만 확인하면 어떤 구성의 복층유리인지 알 수 있다. 2012년 이전에는 1종, 2종, 3종으로 구분했다. 2012년 이후에는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1종과 2종을 A종으로 통합하고, low-e 코팅된 3-1종과 3-2종을 묶어 B종으로 통합했다. 그런데, 복층유리는 2중 유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3중 유리도 있다. 이제 3중 복합 유리도 보편화되었지만, 아직 2중과 3중을 구분하는 KS 기호가 없다. low-e 코팅을 안 했으면 A종이고, low-e 코팅을 했으면 B종이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가까이에 있는 창유리에서 복층유리 기호를 찾아보자. low-e 코팅 유무는 A종 또는 B종의 표기로 확인할 수 있지만, 2중 유리인지 3중 유리인지는 경험으로 추측해볼 따름이다. 객관적 기호가 없는 것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적절한 재료를 적용하는 것만큼 적용된 재료의 종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용어와 기호가 필요하다.

우리는 plate glass와 float glass를 구분하지 않고 판유리라고 통칭하고 있고, low-e 코팅 유무만 구분하여 A종, B종으로 표기할 뿐 3중 유리를 구분하여 표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번 통용된 용어를 적절하게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복층유리 기호 분류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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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워치 02 Ⅱ 북한의 건축설계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2
Ⅱ Architectural Design in North Korea

북한의 건축설계(2)

3. 설계연구소의 조직
국내의 건축사사무소 대부분은 건축설계 외에 구조, 토목, 전기, 기계, 조경 및 내역서 작성은 외주를 주어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측량 및 지질조사 등을 직접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북한의 도시설계연구소는 건축설계만이 아니라, 건축설계와 관련된 업무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이다. 건축설계 외에, 구조, 토목, 기계, 전기설계, 내역서 작성 그리고 측량과 지질조사부서도 설계연구소 내에 있다.
북한의 설계연구소는 대체로 ①건축설계실, ②표준설계실, ③혁명사적설계실, ④시설설계실, ⑤지질실, ⑥도시계획설계실, ⑦측량실, ⑧심사실, ⑨제작실 ⑩기요실(문헌정보실), ⑪경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탈북자 면담).
건축설계실은 건축설계를 하는 부서이며, 한 개의 도시설계연구소는 몇 개의 건축설계실을 가지고 있다. 각 설계실에는 건축, 구조, 전기, 난방(설비), 원예(조경), 예산담당(적산, 원가산정) 등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배치되어 있어 한 부서에서 설계가 완결되는 조직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실은 20~30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표준설계실은 중앙에서 작성한 학교, 탁아소, 아파트, 농촌주택 등의 표준설계를 부지 등 여건에 맞게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설계를 하는 부서이다. 예를 들면 지역마다 다른 동결심도를 고려하여 기초의 깊이를 변경하거나, 부지의 형태에 따라 평면 일부를 변경하는 등의 설계를 한다.
남한도 과거에는 도시주택, 학교, 보건소, 파출소, 공장 등의 표준설계제도를 운영하였다. 표준설계도는 필요한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별도의 설계비가 들지 않으며, 건축신고만으로 건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나 지형, 거주자의 특성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건물 조형이 획일적인 문제점이 있어 199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촌표준주택설계, 산림청의 목조주택표준설계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혁명사적설계실은 김일성주석이나 김정일위원장을 기념하는 혁명사적관, 연구소, 구술탑, 기념비, 표식비, 유래비 등의 설계, 현지지도집의 보수와 유지관리, 동상이 건립되는 경우 주변의 환경계획(조경, 조명, 보도 등의 설계) 등을 한다.
시설실은 주로 토목설계(도로, 교량, 철도, 석축 등)를 담당하는 부서이며, 지질실은 부지의 토질, 지내력 등의 조사, 설계(기초, 지정), 시험 등을 하는 부서로 직원이 직접 현장에 가서 현지조사, 관입시험 등을 수행한다. 측량실은 건축물(시설물)의 설계를 위하여 부지의 위치, 높낮이, 구획 등을 측량하는 부서이다.
도시계획실은 북한의 도시계획법에서 규정한 지역의 도시계획(마을계획 등)을 작성하는 부서이다. 또 다른 업무는 건설명시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건설명시는 건축물이 지어지는 위치의 좌표를 확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건축설계 전 건설명시를 먼저 받아야 한다. 건설명시신청을 위해서는 개략의 배치 및 건축계획이 필요하며, 이 계획도면을 작성하는 업무를 도시계획실에서 담당한다.
심사실은 각 부서에서 작성한 모든 설계도면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부서로 경험이 많은 설계원들로 구성되며, 각 설계실의 실장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제작실은 청사진 제작, 설계도면 책자 제작 등을 하는 부서로 설계원이 아닌 일반직원으로 구성된다. 기요실(문헌정보실, 기록보관실)은 설계도서 등 기록물을 보관하는 부서로 주로 설계원이 아닌 일반직원으로 구성되는데, 주로 당원 등 성분이 좋은 성원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경리실은 설계연구원의 인사, 회계 등 각종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류경건설설계연구소, 평양건재설계연구소 등의 구성원 수는 수십 명 단위이지만, 대부분의 설계연구소는 300명 이상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북한의 설계연구소는 지배인이 책임자이며, 기사장은 기술업무를 총괄한다. 기사장 아래 부서(실)의 장이 있고, 실장 아래 조장과 설계원이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설계연구소에도 북한의 기업소와 공장의 운영방식인 대안의 사업체계가 적용되어, 당비서가 설계연구소 운영의 최종 권한과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지배인과 기사장은 대부분 설계원 출신이며, 당비서는 설계원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안의 사업체계란 1961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남포시 대안구역에 있는 대안전기공장을 방문하여 지시한 공업부문 관리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현지지도 이전 대안전기공장은 공장 지배인이 관리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은, 지배인 유일관리제는 공장운영의 효율성에만 관심이 있고 국가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기관이기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요소가 남아있다고 지적하며, 공장관리의 최종 권한과 책임을 공장 당위원회로 넘겼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1962년 이후 북한 공업관리체계로 정식화되어 모든 공장기업소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안의 사업체계는 비전문적인 당 조직의 중앙집권적 통제가 강화하면서 공장 지배인의 권한과 역할이 축소되어 자율성과 창의성이 없이 수동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효율성도 떨어지고 관료주의가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1984년 제정된 합영법에 따라 재일교포가 투자하여 설립한 합영회사운영에 어려움을 야기한 주요 요인이었다. 재일교포 기업가들이 1984년 북한에 합영회사 설립을 시작하여, 한때 그 수가 120여 개에 달하기도 하였으나, 1993년 20여 개로 줄어들었다. 일본에서 사쿠라그룹을 운영하던 대표적 조총련 사업가인 전진식은, 북한이 합영기업에도 대안의 사업체계를 강요하여 공장의 실권을 당위원회가 장악하였고, 이에 따라 계약이행이라는 비즈니스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였다(『와다 하루키의 북한 현대사(와다 하루키)』, 207, 225P). 대우의 남포공단사업도 대안의 사업체계 때문에 작업지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북한경제와 협동하자(이찬우)』.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기업의 부분적인 독립채산제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대안의 사업체계가 과거와 같이 적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설계도면의 작성 및 검토절차는 설계원이 설계도면을 작성하면 조장과 실장이 검토하고, 심사실에서 심사 후 기사장과 지배인이 최종 확인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심사실에는 경험이 많고 실력이 있는 각 분야의 설계원이 배치된다.

최근 북한에서도 설계의 정보화와 전산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영화 <행복의 수레바퀴>를 보면 7년간 휴직하였던 설계원이 복귀하면서 컴퓨터로 도면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제작년도가 2010년이므로,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설계에 컴퓨터가 도입된 것은 2003년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행복의 수레바퀴> 유튜브 캡쳐 화면

2015년부터의 북한의 5.21 건축축전 보도를 보면 전시 중 중요한 부분이 건축설계의 전산화 분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평양건축종합대학에 대한 텔레비전의 영상보도를 보아도 도면작성은 모두 컴퓨터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18년 이후의 보도에서는 3차원 설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BIM설계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건축축전 작품집 표지

4. 남북건축설계 협력
그동안 북한에 건설되는 건축물의 건축설계에 많은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다. 지오디자인(대표 박운종)의 KEDO 경수로 마스터플랜과 부대시설설계가 북한지역에 시행된 최초의 설계로 추정된다. 지오디자인은 개성공단 LH개성지사 건물도 설계하였다. 단국대학교 김정신 교수는 KEDO의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현대종합설계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후 금강산의 많은 시설과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도 설계하였다. 남북철도도로연결사업에는 혜원까치가 참여하여 북한지역 역사 6개소의 설계를 하였다. 그 외에 정림건축(평양과학기술대학교), 아키플랜(개성공업지구의 개발 총계획), 희림(개성공업지구종합지원센터), 삼우(개성공업지구 아파트형공장) 등의 대규모 사무소에서도 북한지역 설계를 하였다. 개성공단의 공장설계 등에 국내의 80여 개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으며, 평양의 병원 등 인도적 지원사업 관련 건축물 설계에도 여러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여러 해 동안 북한의 건축가동맹과 협력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2018년 대한건축사협회 석정훈 회장과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 심영학 위원장이 중국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남북이 협력하여 설계한 건축물은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백두산건축연구원-현대종합설계), 개성공단 통행검사소(백두산건축연구원-아키플랜), 금강산 옥류관(백두산건축연구원-한터인) 등이 있었으나, 이 프로젝트들은 백두산건축연구원이 계획설계를 하고 남한의 건축사사무소는 실시설계를 하였으므로 단순히 역할을 나누어 설계를 하는 초보적인 협력형태였다.
향후 남북관계 개선 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건축프로젝트가 추진될 것이므로 북한과 본격적인 건축설계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설계협력은 현지 특수성의 반영, 비용절감, 북한설계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건축설계 수준과 시스템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용어, 도면 작성방법, 건축기준, 업무방법 및 사고방식도 상이하므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단순한 분야의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건축시공도면(Shop Drawing), 구조설계의 도면화, 전기, 기계설비 도면 작성, 수량산출(적산) 등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외주를 주었던 분야, 작업에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BIM 설계 등이 우선 협력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북한의 설계수준이 향상되면 건축설계, 구조계산, 전기 및 기계설비 설계 등으로 분야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며, 건축모형과 3D 모델링도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여 추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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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집, Nomad Vs Diaspora

House on Wheels, Nomad Vs Diaspora

기독교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십계(1962)>를 보면 수많은 유대인이 고대 이집트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이들은 고향을 뒤로 하고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와 수많은 인구를 형성하면서 각종 노역에 동원된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가 된 단어로, 원래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은 고대 이스라엘민족이 바빌로니아나 로마제국에 의해 해외로 흩어진 현상을 언급하면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느 문화, 어느 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존재했던 현상이다. 강한 정복욕과 지배력을 가진 민족이 존재했고, 그런 왕조들이 있었다. 이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점령지를 운영하기 위한 전략을 폈다. 새로 만들기보다는 점령지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정복한 지역의 노동력이나 자원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로마는 한 술 더 떠서 전쟁에 동원될 군인도 이런 식으로 흡수했다. 점령지 사람이라도, 로마 군인으로 복무하면 그 다음 세대나 가족에게도 로마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로마의 이런 확장과 흡수 전략은 역사 속의 여러 나라에서 펼쳤던 정책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 대부분은 사회 시스템의 기반을 작동하는 노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 지적자산이나 시스템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식계급의 활용도 있었다.

징기스칸의 원나라 같은 경우도 이러한 대표적 국가였다. 끝없는 침략과 정복을 통해 인구를 늘리고, 영토를 늘렸다.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다양한 인적 자원을 재분배 했고, 활용했다. 당장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를 침공한 몽고는 수많은 사람들을 데려가 노동착취에 활용했고, 일부 지배계층은 그들의 부족한 관료조직에 흡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점령지 사람들의 유랑 같은 이주 생활이 만들어졌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은 서구 역사 내내 떠돌아다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성경 신명기에 나온다는 것을 보면 그들의 역사가 어떨지 알 수 있다.

유대인에게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이런 디아스포라 현상은 거의 전 문화권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이주해온 자들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다수의 주류 문화권에 형성된 이질적인 소수 문화적 공동체 집단의 모습으로 가시화된다. 서구 역사 내내 따로국밥처럼 존재한 유대인들의 게토(ghetto)가 대표적이다. 다만 조금 혼돈스러운 것은 디아스포라와 피난 난민·해외이주민들에 대한 정의인데, 학술 자료나 연구들을 보면 서로 구분하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 디아스포라의 정의를 위한 조건을 언급하는데, 대략 내용을 보면 △원래의 본원지에서 두 개 이상의 지역이나 해외로 흩어짐 △집합적인 기억과 신화의 보유 △현 거주지와 다른 정서와 문화적 이질감 또는 소외감 △돌아가야 할 고향에 대한 희망 △본원지 유지와 복구에 대한 기대 △본원지와의 유대관계를 통한 공동체 의식과 단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피난 난민이나 해외 문화에 흡수되는 해외 이주민은 별개로 보여진다.

영화 <차이나타운>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차이나타운>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흡수되지 않은 디아스포라 문화들은 도시나 장소에서 시각적으로 확연히 분리되기도 한다. 냄새나 소리뿐만 아니라 언어와 생활 양식, 무엇보다 공간적인 구분이 명확하다. 거리의 색이나 건축 양식이 특히 그렇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차이나타운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이런 공간들은 다양한 영화에서 등장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부정적 의미의 <차이나타운(2015)>은 이국적이고 흥분되는 공간이 아닌 공포스러운 갱스터의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의 도시 공간은 매우 일상적인 우리네 도시 풍경이다. 전형적 성장 도시에서 일군 소자본가들의 경제적 건축물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때로는 벽돌로 때로는 타일로 마감된 말 그대로 서민 동네를 형상화 하고 있는 건물들이다. 특정 시기에 구할 수 있는 외장재로 가장 경제적인 비용으로 지어진 통상의 건물들은 그 자체로는 문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철저한 경제적 논리로 지어진 일상적 건물군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렇게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 경제성으로 지어진 수익건축이 태반이다. 이런 무성격의 도시 풍경은 사실 어떤 디테일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백지와도 같다.

영화의 전체적인 어두운 이야기 구조와 맞물려, 중국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가로는 우리에게 부정적 시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들 또한 잠시 머물 공간이기 때문에 동화될 의지가 전혀 없다. 잠시간 머물려 하는 무의식은 정착을 위한 동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바로 그것이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날 지라도 결코 동화되지 않는 고유의 정서적·문화적 고립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불편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다양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차이나타운이 시각적으로 분리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시각적 분리는 때때로 집단 거주지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역할을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다른 나라들의 식민지로 점령되어 강제로 끌려갔다기보다도 어찌 보면 근현대의 개념인 이민자처럼 떠나 다른 나라에 그들의 생활권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역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 않고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이식하고 있다. 그들의 정착지는 새로운 생태적 고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굳이 중국이 아니어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이 고향의 역할을 한다. 일본 요코하마의 경우도, 미국 맨해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이 럭 클럽(1993)>은 몇 대에 걸쳐 미국인으로 동화된 중국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전히 중국어를 사용하고, 읽을 수 있지만 그들은 미국 문화에 정서적으로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본토의 중국인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중국으로 여겨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을 찾는다. 조이 럭 클럽의 미국태생 중국인들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고향이다. 그들에겐 이 공간이 어찌 보면 디아스포라의 분점이라고나 할까?

거리의 상점 쇼윈도에 어떤 물건들이 진열되고, 어떤 색과 빛으로 연출되느냐에 따라 거리의 문화적 풍경은 확 달라진다. 가로의 정체성은 의외의 덧씌워짐으로 이질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시각화된 간판들과 문자들이다. 하얀색 바탕의 붉은 한자어나 유행이 한물간 네온사인들로 채워진 거리는 분명 우리 도시의 한 장소일 뿐인데, 매우 낯설다. 소품처럼 구성된 상점들의 진열과 상품들, 그리고 디테일로 구분되지 않는 냄새와 연기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이질적인 중국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나며, 적어도 영화에서는 강력한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는 민족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 서구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경우다. 이탈리아 특유의 악센트와 음식 문화는 같은 유럽 출신과 명확히 분리된 공간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맨해튼 인근의 이탈리아 거주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탈리아 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그들 고유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시리즈로 나온 <대부(1972)>의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출신을 그대로 시각화한 공간에서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탈리아식 인테리어를 하고, 이탈리아식 장식을 한 주택에서 거주한다. 이탈리아 음식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이탈리아 출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떠나온 이탈리아의 남부, 시칠리아를 찾아간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 도시와 건축에서 문화적 정서와 공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들은 결국 시각화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거리를 공간으로 만드는 여러 요소 중 간판이나 벽면의 사인 등으로 시각화되는 문자는 공간을 특정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문자는 문화의 다름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읽게 만드는 요소다. 그리고 가로의 건축 입면을 구성하는 장식적 요소들도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창문의 디테일, 구성, 출입문의 구성과 재료, 입면의 장식적 요소들은 특정 문화권을 시각화한다.

이런 장치들은 LA의 코리아타운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나타운만큼 시각적 지역성을 드러내진 않지만, 거리의 입면 요소로 작동하는 한글 표기야말로 사람들에게 공간과 장소적 경계를 손쉽게 느끼게 해준다. <깊고 푸른 밤(1985)>의 두 주인공이 떠도는 공간이 실제 미국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돌아갈 한국에 대한 그리움의 공간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주)

<미나리> 스틸컷 © 판씨네마(주)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지 않을 이국에서의 정착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민이라고 하는 행위는 돌아가지 않을 타향살이를 선택하는 개념이다. 적어도 <미나리(2020)>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한국인 가족은 디아스포라적으로 보기보다는 유목적 삶, 유목적 정착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왜냐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보유는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을 떠나진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영화에서 나온 ‘바퀴 달린 집’이라는 표현이다.

영화 속에서 이민 계기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이민자들의 시작이 그렇듯 휴전으로 잠시 전쟁을 멈춘 국가에서 삶의 불안정함을 느끼고 시도된 이민행렬들이다. 일종의 선택인 셈인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교포 2~3세로 불리면서 현지화하고 있다. 이들 교포 2세 또는 3세, 더 나아가서 4세 등으로 내려갈수록, 문화적 동질감을 가진 하나의 민족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점차 미국의 수많은 인종 퍼즐 중 하나로 동화된다. 즉,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이들은 아시안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나라에서 벗어나기를 시작한다. 한국계 미국인이면서 동시에 아시안 아메리칸(Asian American)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당연히 미국인이 될 것이다.

인종적 식별이 확연한 외모로 완전한 미국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고 상대적으로 인종의 비율이 균등해지면 의미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 <미나리>에서는 아직 그런 심리적 갈등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꼬마 데이빗의 발언을 통해 문화적 단절 또는 거리감을 예측할 수 있다. 집은 바닥에 정착되어 있는 것을 기초 상식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미나리>의 바퀴 달린 집은 낯설고 어색하다.

이런 형식의 집들이 다른 국가에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주거공간인 게르의 현대 버전같이 보인다. 거대한 텐트이면서 동시에 유목민의 주거공간인 게르는 어느 장소에서나 쉽게 만들고 해체할 수 있다. 장소의 고유성이나 정착성은 의미가 없고, 언제 어디든지 해체와 조립이 가능해야 한다. 그것은 유목민의 삶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는 버젓이 이런 이동식 주거가 가능한 집들의 군락이 존재한다. 미국의 공인중개사 사이트를 찾아가면 이런 집을 소개하고 중개하는 코너가 상당히 많다. 이른바 조립식 또는 이동식 주택이 공식적인 주거 유형으로 매매되고, 중개도 되고 있다.
이런 주택들은 당연히 일반 주택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권리가 복잡한 경우도 많다. 다만, 미국에서 이런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는 것은 그만큼 생계가 불안정한,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동안 그랬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이라는 도시의 경우 최근 모바일 주택이 5~6억을 넘는 경우도 많다.

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주거공간인 게르(ger)의 모습

영화처럼 바퀴 달린 집이 멀쩡히 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언제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동식 주택은 캠핑카처럼 제한적인 공간에서 방이나 거실 등이 분할되고 나눠지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풍요롭진 않다. 1950~1960년대 새로운 건축에 대한 다양한 발상과 제안이 넘치던 시절 이런 이동식 주택은 공장에서 제조·생산될 수 있는 재화로 제안되기도 했다. 공장 생산을 통해 안정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되었고, 주거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해법의 하나로 보았다. 하지만 이런 이동식, 또는 조립식 주택은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품질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에 맞춘 단독주택이 많은 미국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선호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미나리>의 바퀴 달린 집은 유목적 삶의 거처로, 때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소를 위한 주택으로 등장한다. 그런 만큼 적응력 또한 중요하다. 영화 제목처럼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같이 어디서든 정착의 노력과 노고를 마다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바퀴 달린 집은 잠시나마 그들을 위로하는 위안의 공간으로 제공된다. 과연 21세기에 이런 바퀴 달린 집만 그럴까?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분석한 것처럼 경제적 이유로 노동 이동의 유목적 삶을 향한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경제적 자유도와 성취를 위한 유목적 삶을 영위하는 부르주아 기업가 또는 활동가들이 있다. 유목적 삶의 이주 노동자들은 이동식 주택이나 컨테이너 주택, 때로는 비닐하우스에 머물며 디아스포라적 회귀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처럼 이주 장소를 그들의 고향 또는 고국으로 삼아 프랑스인인 중동 민족이나 독일인인 터키혈통이 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에 유목적 삶을 영위하는 부루주아 기업가 또는 활동가들에게 바퀴 달린 집은 고급 호텔이다. 또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결정 자유도가 있는 공유주택에 거주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와 경제 구조에서는 같은 유목적 삶이 아니고, 같은 디아스포라적 환경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 배경으로 건축의 유동성, 공유적 시각의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는 시대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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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장식

Nude & Decoration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전시가 국제갤러리에서 개최되어 가 보았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알게 된 건 1990년대 초반인데, 당시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거나 전시되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남성 누드, 게이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같은 당시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플소프가 이런 주제의 사진을 발표한 시기는 1970~1980년대로 그의 전시는 미국에서도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메이플소프 자신도 그것을 분명히 의식했을 것이다. 그런 의식은 분명히 표현에 영향을 준다. 내가 이번 전시에서 본 것은 바로 그런 면이다. 그는 남들이 보기 역겨워 할지도 모르는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전전긍긍한다.

<사진 1> 켄 무디와 로버트 셔먼 _ 로버트 메이플소프, 1984년.
©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사진 2> 로버트 메이플소프 전시회의 전시장. 구성주의적인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 화가들이 여성 누드를 그릴 때도 고민했던 문제다. 사람이 옷을 벗은 상태는 분명히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중에 옷을 벗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 무례하고 외설스러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모두가 옷을 벗은 상태인 목욕탕, 또는 옷을 입지 않는 원시 부족들 사이에서는 옷을 벗었다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옷을 차려입은 곳에서 혼자 벗는다면, 그것은 사건이 된다. 옷을 벗은 몸을 그린다는 것 역시 무례하고 외설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옷을 입은 상태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 그림을 볼 것이고, 그것은 분명 당혹스럽고 상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을 벗은 몸을 묘사할 때는 철저하게 어떤 형식을 부여해야 한다. 영국의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는 저서 <누드의 미술사>에서 누드(nude)와 네이키드(naked)를 구분한다. 네이키드란 무방비 상태의 알몸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반면에 누드는 “균형 잡힌 건강하고 자신만만한 육체, 즉 재구성된 육체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포르노그래피를 외설이라고 표현한다. 한자 외설(猥褻)은 ‘옷을 더럽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교사회에서 옷이란 예의 기준이 된다. 옷을 더럽혔다는 건 무례하고 상스럽다는 뜻이다. 네이키드는 외설이지만 누드는 외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드는 어떤 의미에서 옷을 벗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드는 예술을 이해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서 전시를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본다는 것이 허용된 알몸이다. 그러려면 몸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아니라 이상적으로 다듬어진 몸이어야 한다. 포즈도 우아해야 하고,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털 같은 것도 제거되어야 한다.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존 버거는 “누드가 복장의 한 형식”이라고까지 말했다. 말장난 같지만 이 말은 설득력이 있다. 누드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지 않는다. 관조하는 것이다. 감상할 만한 몸은 아름답게 다듬어져야 하고 디자인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사물처럼 다루어진다. 한 마디로 누드는 장식된 것이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남성 누드에서도 그러한 구성과 디자인을 느낄 수 있다.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성 누드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이상적인 몸은 그가 많이 찍었던 꽃이나 식물 사진과 비교된다. 그가 촬영한 꽃과 식물이 철저한 구성의 통제 아래 있는 것처럼, 그의 남성 누드 역시 우연한 모습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에 따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체의 일부만을 잘라내서 보여주는 사진은 신체의 움직임과 각도, 트리밍이 아주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좌우 대칭의 구성을 즐겨 사용한다든지, 얼굴과 몸의 옆 모습을 많이 찍는 것도 대단히 구성적이다. 그가 주로 스튜디오, 또는 실내에서 촬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계산과 통제를 넘어선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또 하나 남성 알몸이 포르노그래피로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비결은 사람들의 눈을 천이나 피부의 질감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흑인 남성을 훨씬 많이 찍은 이유도 그러한 질감 표현이 더욱 잘 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메이플소프의 기술력도 누드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그는 빛을 받지 않은 어두운 면의 계조를 살리는 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사도마조히즘의 복장은 대개 검정색 가죽인데, 그런 옷의 질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알몸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그것을 즐겨 본다는 행위에 대해서는 음탕함이나 관음증이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따라서 알몸을 묘사하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특별한 형식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건축과 제품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다. 19세기에 철골로 건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 모습은 마치 옷을 벗은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런던 박람회를 위한 전시장인 수정궁은 뼈대를 이루는 골조가 훤히 드러나 보였고, 파리 박람회 때 세워진 에펠탑은 아예 뼈대만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모파상과 에밀 졸라 같은 파리의 지식인들은 에펠탑을 추한 괴물이라고 저주했다. 그때까지 유럽인들에게 건물은 돌, 나무, 유리 등으로 마감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에펠탑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피부가 없는 해골인 셈이다.

<사진 3> 홈 인슈어런스 빌딩, 윌리엄 르 배런 제니, 1885년

<사진 4> 라이터 빌딩, 윌리엄 르 배런 제니, 1891년

19세기 말 시카고에서 마천루 양식이 탄생할 때 건축가들은 사람들의 이러한 보수적인 시각을 우려했다. 마천루는 에펠탑처럼 철을 뼈대로 세운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고층 빌딩도 일종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이란 따뜻하고 아늑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다. 그러다 보니 마천루 건물은 그 기본 구조와는 관계없이 기존의 역사주의 건물의 외양을 흉내내게 된다. 시카고 학파의 개척자 윌리엄 르 배런 제니가 디자인한 초기 마천루인 홈 인슈어런스 빌딩은 마치 돌로 쌓아 올린 것처럼 철골에 돌의 외피를 입히고, 입구를 아치 형태로 꾸몄다. 사람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저층부는 르네상스 시대 팔라초에 적용된 루스티카 같은 석조 마감 기법을 쓰고, 기둥 위에는 코니스와 주두 같은 고전 건축의 오더를 적용했다. 이것들은 사실상 건물의 구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므로 장식이나 마찬가지다.

<사진 5> 시그램 빌딩, 미스 반 데어 로에, 1958년

전화기, 라디오, TV 같은 새로운 발명품들 역시 처음에는 대부분 가구를 흉내낸다. 그런 외관이 기술적이고 기계적이며, 따라서 딱딱한 사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런 사물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기술 문명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마천루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윌리엄 르 배런 제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전 건축의 장식을 걷어내 순수한 형태의 디자인을 했다. 비록 돌 마감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단순한 디자인으로 내부의 골조가 건축 외피의 표현 수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부의 구조가 노출되었고, 이는 건축공학의 기술적 성취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모던 건축가들이 유리 커튼월로 더욱 직설적으로 기술공학적 질서를 표현한다.

<사진 6> 1954년에 생산된 RCA CT-100 TV는 가구처럼 디자인되었다.

마찬가지로 남성 누드의 표현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메이플소프의 이번 전시 중 2층 전시장의 쇼케이스 속 작품들은 남성 누드의 관능성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섬뜩한 느낌을 줄 정도인데, 동성연애자였던 메이플소프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에서 회화든 사진이든 알몸의 표현은 오히려 누드에서 네이키드로 가는 듯하다. 아카데미즘적인 장식 행위를 일종의 거짓 꾸밈이라고 보는 것이다. 알몸의 표현은 이렇듯 방어적인 태도에서 솔직한 것으로 나아간다. ‘일상 속의 알몸이 왜 예술이 될 수 없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기된 것들, 거북해하는 것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관용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그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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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너도 올해의 나도 참 수고했어, 우리!”

“Good job, last year! This year, too! We both did!”

출퇴근길 지하철에 타면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안경을 벗는다. 유니폼처럼 마스크를 맞춰 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성숙하고 착한 공동체 의식을 지녔구나, 감탄이 들기도 한다. 작년 초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설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와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벚꽃잎 흩날리는 4월까지 이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마스크를 벗고 살던 시절이 어땠는지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관에도 미술관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저녁 모임도 주말 나들이도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경사나 애사에도 달려가 손잡고 축하와 위로를 나누는 대신 계좌이체만 하고 마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연말이 될 때까지는 아마 마스크를 벗기 어려울 거라는데, 이렇게 1년이 또 지나면 세상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작년 12월 제작된 삼성카드의 애니메이션 영상은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변화한 생활을 신입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2019년의 신입사원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 구두를 신고 출근한다. 어색하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툴게 업무를 하고 저녁엔 선배들과 얼굴을 맞대고 회식을 한다. 반면 2020년의 신입사원은 재택근무를 주로 한다. 모니터 화면으로 인사를 하고 화면을 통해서 야단을 맞기도 한다. 아래는 잠옷 바지를 입고 화면에 보이는 웃옷만 정장을 입기도 한다. 회식도 각자 집의 책상 앞에서 언택트로 한다.

일구)   안녕? 작년의 너.

            2019년 오늘 드디어 첫 출근!

자막)   #첫출근룩 #아싸 #기대반설렘반 #회사얼짱되겠어

            #어쩜좋아 #반하겠어 #첫구두 #첫발걸음 #부탁해

이공)   안녕? 올해의 나.

            2020년 오늘 집으로 첫 출근!

자막)   #첫입사날아침 #맑은날 #기대가득 #첫다이어리 #첫펜

            #필수템 #재택야근중 #밤새지마라 #열일중

일구)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일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출근은 낯설고 어색해…

            모든 게 처음이야.

            회식도 업무의 연장.

이공)   휴…

            네, 네 알겠습니다.

            재택으로 몸은 편해도 역시 낯설고 어색해…

            혼이 나는 것도 낯설어.

            언택트 회식은 재택의 연장.

영상은 긴 하루의 일을 끝낸 주인공들이 각자의 방에서 ‘참 수고했어, 우리!’라는 위로의 말로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다. 이야기하듯 나직하게 읊조리는 가사는 새삼 우리 모두 이만큼이나 힘들구나,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 실감하게 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친 사회 초년생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리즈 영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공)   작년의 너도 올해의 나도 참 수고했어, 우리!

함께)   잘하고 있어 너, 나. 수고했어 오늘도.

BGM가사)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삼성카드_19와 20사이/직장생활 편_바이럴 영상_2020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다. 하나를 끝내기 전에 다른 하나가 생겨난다. 대부분은 모니터 앞에 앉아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빈칸을 메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일은 쌓이는데 눈은 자꾸 목록 아닌 창밖을 쳐다보고, 마음은 어디 먼 데를 그리워한다. 아니 그리운 곳은 어느 먼 곳이 아니라 다정한 포옹이다, 따뜻한 악수다. 웃는지 우는지 찡그리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마스크 없는 맨얼굴이고 뜨거운 숨결이다.
아무리 그리워도 지금은 만날 수 없다. 그저 꾸역꾸역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낯설고 힘이 든다. 나이 탓이기도 하고 코비드19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카드의 사회 초년생들처럼 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붉은 술 한 잔을 따른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참 수고했어’라고 내 어깨를 내가 토닥이며 건배를 건넨다. 하루가 조용히 저문다.

 

삼성카드_19와 20사이/직장생활 편_바이럴 영상_2020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