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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쟁,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협상력

Fairness, competition, and negotiation for survival

처절하게도, 건축사들이 내건 구호는 ‘생존’이다. 이번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의 구호였다.
처음 들었을 때, 굳이 그런 표현을 사용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으로는 온전히 공감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경제적 부분에서 본다면 나는 생존보다 건축이라는 일 자체에 더욱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그래서 생존이라는 단어가 확 와닿진 않았지만, 생각을 거듭하면서 ‘생존’은 건축을 하는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맞다, 현재 우리 ‘건축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벼랑 끝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가로부터 자격이 공인된 ‘건축사’는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오죽하면 일부 회원들의 명함에 “건축사는 국가로부터…”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을까? 건축사는 그냥 건축사인데 말이다. 의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의료인이라고 하거나, 변호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법률가라고 설명하지 않는데 유독 ‘건축사’를 이렇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폐와 관습,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점 등이 이유였을 수도 있고, 불법과 부정 등 좋지 않은 이면의 폐해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 이미지화되고 고착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면 된다.
그런 노력의 첫 번째는 공정함이다. ‘공정’은 건축계뿐만 아니라 2021년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적 화두다. 공정이란, 사전적 의미로 공평하고 이치에 맞는 올바름이다. 그렇다면 공평은 무엇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한다는 말이다. 이치에 맞는 올바름은 어떤 일을 마땅히 해야 할 당위적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건축은 ‘경쟁’ 속에서 이루어진다. 공정은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경쟁이라는 단어와 맞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납득하고 이해할 만한 경쟁이어야 하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는, 공정한 결과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선택되는 과정이 공정한 기준 아래서 ‘전문적 권위’로 판단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도 된다.
건축에서 공정은 결과가 아니라 바탕인 셈이다. 공정한 바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건축계의 첫 번째 과제이고, 건축계의 중심에 있는 건축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그리고 그 결실의 축복을 받을 핵심 집단이다. 문제는 건축사들이 매번, 수십 년째 이런 공정한 바탕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경쟁의 치열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묵인하고 침묵하는 ‘경쟁’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바탕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수십 년째 누적되면서 건축사는 오해에서 비롯된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오해의 바탕에는 억울한 부분도 많다. 실제 조달청이 주관하는 설계공모의 경우 비건축사가 심사위원의 100%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공정한 대상으로 지목된 건축사들에 대한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더 처절하고 치열하게 현실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건축사들의 앞에 놓인 게임을 공정한 바탕에서 잘 해내는 것이다. 바로 ‘설계공모’로 치러지는 각종 건축 경쟁 말이다.
최근 한 설계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성관 원로 건축사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참여작을 보며 완성까지의 고생과 노력을 높이 사고, 심사 과정에서 작품들 하나하나의 분석과 토론을 주도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들이 지칠 정도의 질문과 집요한 토론으로 이성관 건축사를 비롯한 모든 심사위원들의 판단이 조금씩 수정되었고, 당선작이 확정되었다. 참여한 모든 심사위원들은 박수로 심사를 마무리하며 좋은 작품이 당당하게 당선되었다고 자평했다.
이처럼 공정한 바탕에서 제대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들이 더 적극적인 발언,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은 생존을 고민하는 건축사의 최고 협상력이다. 그래야 더 이상 처절하게 생존권을 언급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품위와 도덕적인 사회적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다.
건축사는 그냥 건축사여야 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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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착란증 혹은 풍부한 도시미의 뉴욕

Delirium or the rich beauty of an urban city, New York

뉴욕을 걷는다. 빽빽이 솟은 고층 건물 사이로 햇살이 어렵게 비친다. 도시를 서쪽으로 가로질러 작은 언덕을 넘을 때면 멀리 뉴저지가 보이는 허드슨강이 쫙 펼쳐진다. 열린 시야와 푸른 물색에 감동을 받고 다시 한 블록 북으로 올라 동쪽으로 다시 도시를 걷는다. 복고클래식과 모던, 포스터모던과 네오모던이 상업주의, 도시 민주주의를 거쳐 절제된 개성의 도시 맨해튼을 걷는다.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에서 시작해서 뉴-욕(New-York)이 된 이 도시는 이제는 새롭지 않다. 돌연변이의 도시가 현대 도시의 전형이 되었다. 공공미술가인 비토 아콘치의 디자인의 건축 작업을 하던 시절에 출장을 가서 배터리 공원에서 소호를 거쳐 동서를 왔다 갔다 하며 센트럴 파크까지 걸었던 기억을 되살려본다. 빌딩들이 산을 대신하고 공원이 궁궐을 대신한다. 인공미와 기하학, 평면적 배치의 길들과 수직 빌딩이 조화된 풍경이 도시여행자의 시선을 즐겁게 한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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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건축(建築)과 사진(寫眞), 그리고 구도(構圖)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을 묘사하는 사진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장르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작가 중심적 사고관으로 건축을 대하는 경우다. 건축을 생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초점이나 수직, 수평이 중요하지 않다. 관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을 초상화처럼 바라보는 사진은 철저하게 건축적인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공간의 깊이와 빛의 대비, 건축에 대한 미묘함 등이 사진에서 읽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 영역이 탄생한다. 사진작가의 시각에서 묘사되고 해석된,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건축 사진이다. 이는 사진으로 건축을 탄생시키는 독립적 영역이다. 마치 초상화 사진으로 사진작가의 작품성과 작가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미개척 분야였고, 몇몇 작가의 헌신으로 조금씩 개화되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 영역으로 건축 사진이 확장되고, 인정받고 있다. 건축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건축이 존재한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는 단어처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상상과 스케치로 구현한 블레(Étienne-Louis Boullée)나 1960년대 펑크 건축을 등장시킨 아키그램(Archigram)처럼 실존하지 않는 상상과 사고의 건축도 존재한다. 건축 사진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존재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GA 현대건축 시리즈의 발행과 사진촬영을 주도한 유키오 후타가와(Yukio Futagawa)처럼, 생생한 건축공간의 묘사를 평생 시도한 거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체험되는 건축의 특성이 고정된 관점으로 묘사되기에 더욱 집요한 한 컷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간과 계절, 바람과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건축적 작품성과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건축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작가주의적 성향이 나눠지고, 해석이 달라지는 사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사진작가로 나선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해석되는, 사진으로 묘사되는 건축 작품을 모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01 Architecture, photographs, and composition

카메라를 다룰 줄 몰랐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를 갖고 놀던 기억이 난다. 가지고 놀던 카메라에 이상이 생기면서 아버지로부터 심한 나무람을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날 이후 아직까지도 카메라는 나의 소중한 친구로 내 주변에 함께 있으며, 이제는 생활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건축 창작을 하는 필자가 느끼는 사진의 역할과 여태껏 건축인으로 살아오면서 사진 활동이 나의 창작 활동에 끼친 영향을 돌아보고,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진 촬영 관련 상식을 조금이나마 전하고자 한다.

 

1. 기록물 보존 수단으로서의 사진

대학 시절 건축계획학의 리포트 제출을 위해 현장 조사 차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기록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 카메라를 이용한 것이다. 사진 촬영을 처음 대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카메라를 기록하는 도구로 여기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고,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의 기억은 어느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지지만, 사진으로 담은 기록은 아주 작은 부분의 디테일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데다가 촬영 장소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당 장소에서 느껴진 감정을 연장하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카메라는 인류에게는 굉장한 발명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후 오늘날과 같은 영상 디지털 시대를 열게 되는 시초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2. 레퍼런스(참조) 이미지를 위한 유용한 도구 ‘사진’

건축사들은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본인의 생각을 시각화한다. 급기야는 현장에서 자기 생각의 형태화를 통하여 건축공간과 형상의 완성을 이루어 간다. 현재까지 없었던 기발한 형태를 창조해 내는 천부적 창작 재능을 가진 건축사도 있을 테지만, 필자의 경우는 백지상태에서 기발한 구상의 결과를 얻기보다 일단 머릿속에 그려둔 비슷한 형(型)과 형태(形態)를 찾아 스케치 여행을 해본다. 스케치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또 다른 형태(자연, 인공구조물, 자연현상 등)에서 디자인의 모티브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날 때에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 카메라이다. 물론 카메라가 구상을 완성시켜주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윤곽을 획득했던 경험이 종종 있다. 그러나 모든 건축사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레퍼런스 이미지를 위한 건축사의 창작 도구로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감성을 기록하는 기능을 빌려 봄직하다.

 

3. 좋은 사진을 위한 구도 선정 방법

뭇사람들은 좋은 사진을 담기 위해 산, 들, 바다로 출사를 나간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구 셔터를 눌러댄다고 좋은 사진이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정말 아름답고 기가 막힌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화된 사진에서 현장의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누구든지 겪어 봤을 것이다. 우리의 눈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대부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카메라의 렌즈는 그 렌즈가 가진 화각 밖에 볼 수 없는 관계로 사람이 한눈에 볼 수 있는 광경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사진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장면이 만들어지려면 선이나 형태, 색채와 명암, 텍스처, 원근감, 방향성, 등등의 요소들이 어떠한 원리로 조합되는지가 중요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건축학도 시절에 건축의장(디자인) 강의시간에 한 번쯤은 들은 기억이 있으리라 추측한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요소들은 회화나 건축에서의 디자인의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을 디자인의 원리(통일, 강조, 조화, 대비, 리듬, 계조, 반복, 비례, 주조, 대립, 다양화, 착시현상 등)에 어떻게 적용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건축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역시 이러한 요소들이 내재된 피사체를 찾아 일부를 포착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화나 건축미학과 사진미학의 생성원리는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왕 찍는 사진을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중 좋은 사진의 한 요소는 좋은 구도에 있다.
기왕에 어떤 피사체를 잡기 위해 찍는 사진이라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생각 없이 촬영한 사진보다는 좀 더 나은 구도를 생각하며 촬영하여 또 다른 창작세계를 구축해 봄직하다.
몇 가지 사진 촬영에 유용한 구도를 소개한다. 나름 창작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우리 건축인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곡선 구도
일반적으로 S자형 구도와 Z자형 구도로 나뉜다. 곡선은 변화 있는 구도로 아름다운 유동성, 리듬, 자유 및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사선 구도, 대각선 구도
화면에 동적인 느낌을 주며 명랑하고 활동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효과적인 구도다. 사선은 불안정한 선으로 움직임을 느끼게 하며, 방향성, 긴장감, 동적감각을 의미한다.

 

삼각형 구도
삼각형의 형태로서, 안정감을 주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을 때 포착하는 구도. 삼각형으로 짜임새 있게 인물을 배치해 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화면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구도법으로 이용된다.


방사형 구도
중심에서 밖으로 또는 밖에서 중심으로 뻗치는 방사선의 형태로, 시선을 모으는 효과가 뛰어나며 안정된 화면구성에 유용한 구도이다.

 

평행선 구도
피사체를 화면에 수평으로 표현하며, 연속된 모양과 형태 등의 중첩 배치에 의한 세련미와 심리적 안정감이 유발되는 구도이다.

 

대칭형 구도
화면 2분할선(수평, 수직) 중심의 대칭형 구도로 대칭적인 형태에서 긴장감을 가지는 구도이다.

 

수직, 수평 구도
조형미의 강조에 주로 쓰이는 구도로 건축물의 사진이나 조형미를 포착하는 사진에 많이 이용되는 구도이다.

이상과 같은 사진에서의 여러 가지 구도는 커다란 의미에서 좋은 사진의 기본적인 조건일 뿐, 사실상 좋은 사진의 구도에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작자의 개인적 감성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거니와, 피사체가 무수히 많은 관계로 피사체가 담기는 구도 또한 천차만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도를 포착할 때 유의해야 할 중요한 점은, 보는 사람으로부터 시각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각적 디자인의 요소를 피사체가 담기는 화면 안에 균형적으로 안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꼭 표현되어야 하는 뚜렷한 메시지나 요소가 포함돼 있다면 그 사진은 좋은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메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막연한 보석 같은 피사체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리고 ‘나의 건축창작물은 타인들에게 어떠한 피사체로 보일 것인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나의 스케치 여행을 계속한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대구광역시건축사회>

김기성 예가 건축사사무소·건축사·사진작가

1995년 12월 예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재 대구에서 건축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사진 창작 활동을 겸하고 있으며, 2019·2020년 대한건축사협회 전국 사진동호회 회장을 지냈다. 대한민국사진대전 입선, 영천축제사진 공모전 금상, 안반데기 사진촬영대회 동상 등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며, 2015년부터 대구 남구문화원이 주최하는 구민 어르신 장수 사진 봉사활동과 오월 가족의 달 기념 가족사진 페스티벌 공모행사에 대구광역시건축사회 사진작가들과 함께 봉사활동 참여 중이다.
yega1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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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건축사진의 숨겨진 순간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을 묘사하는 사진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장르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작가 중심적 사고관으로 건축을 대하는 경우다. 건축을 생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초점이나 수직, 수평이 중요하지 않다. 관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을 초상화처럼 바라보는 사진은 철저하게 건축적인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공간의 깊이와 빛의 대비, 건축에 대한 미묘함 등이 사진에서 읽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 영역이 탄생한다. 사진작가의 시각에서 묘사되고 해석된,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건축 사진이다. 이는 사진으로 건축을 탄생시키는 독립적 영역이다. 마치 초상화 사진으로 사진작가의 작품성과 작가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미개척 분야였고, 몇몇 작가의 헌신으로 조금씩 개화되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 영역으로 건축 사진이 확장되고, 인정받고 있다. 건축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건축이 존재한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는 단어처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상상과 스케치로 구현한 블레(Étienne-Louis Boullée)나 1960년대 펑크 건축을 등장시킨 아키그램(Archigram)처럼 실존하지 않는 상상과 사고의 건축도 존재한다. 건축 사진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존재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GA 현대건축 시리즈의 발행과 사진촬영을 주도한 유키오 후타가와(Yukio Futagawa)처럼, 생생한 건축공간의 묘사를 평생 시도한 거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체험되는 건축의 특성이 고정된 관점으로 묘사되기에 더욱 집요한 한 컷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간과 계절, 바람과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건축적 작품성과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건축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작가주의적 성향이 나눠지고, 해석이 달라지는 사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사진작가로 나선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해석되는, 사진으로 묘사되는 건축 작품을 모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02 Hidden moment in architectural photographs 

디지털 사진의 시대로 바뀐 지 오래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릴 수 있다. 거추장스러운 삼각대 없이도 가볍게 실내공간을 촬영하고, 다양한 각도로 수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매체도 다양화되어 건축사들이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본인의 작업을 소개할 수도 있다. 사진은 이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찍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사진가들의 설자리가 줄어드는 듯했다.

2006년경부터 디지털 장비가 점차 좋아지면서 대형 뷰(view)카메라에 대형 필름을 고수하던 우리 건축사진가들도 대부분 디지털로 전환했다. 건축사진가들은 디지털에 적응하고, 필름 카메라 시절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 가며 디지털의 장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실제 촬영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은 거의 같다. 삼각대도 그대로다. 다만 작업을 마치고 현상소에 가지 않을 뿐, 모두 각자의 작업실에서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A형 사다리는 삼각대의 좋은 연장선이 된다.(국립익산박물관/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건축물을 멋진 사진의 대상으로만이 아닌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나고 건축의 본질이 빛날 수 있게 공간에 집중하는 건축사진가의 노력은 한결같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전문건축사진의 수요가 오히려 늘어나서, 서울·경기에 집중되던 과거와 달리 사진의뢰가 지역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에 이르기까지 점차 확대되고, 건축사진을 필요로 하는 수요층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건축사진
건축사진은 하나의 건물에서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건축물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건축사진을 업으로 하는 전문건축사진가는 주로 건축디자인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예술을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대개 건축사사무소, 건설회사, 건축자재회사 등 건축 관련 업체로부터 상업적인 의뢰를 받는다.

 

사진촬영에 앞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원하는 높이를 맞춘다.(안성스타필드/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우선, 처음으로 사진 작업을 함께 하는 경우 저작권 협의를 시작한다. 요즘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민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사전에 상세한 저작권 및 이용조건을 설명하고 확인한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시작점은 서로의 권리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삼각대는 낮이나 밤이나 정교한 프레이밍을 위한 건축사진의 필수.(기장문동리카페/가가건축사사무소)

셔터를 누르기에 앞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이다. 먼저 사진촬영 대상 건축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건축물의 개요와 도면 등 기본 자료를 받고, 설계 개념, 의도, 준공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듣거나 배치도, 평면도, 투시도 등을 보면서 설계 과정에서 상상했던 장면을 설명 듣고 촬영하게 될 뷰(view)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몇 달, 몇 년을 공들인 결과물을 잘 찍어달라는 한 마디로 의뢰하기보다는, 건축사진가와 파트너로서 공간을 공감하고 애정을 가져야 좋은 건축사진이 나올 수 있다.

다음으로 촬영 시기에 대해 협의한다. 건축물이 완성될 즈음, 설계 단계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현장이 일치하는지 비교한다. 현장의 여러 변수에 의해 이미지가 잘 부합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건축사의 의도된 공간이 본질적으로 변형, 훼손되기 전에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조건 준공 전 또는 준공 직후라든지 어떤 시기가 가장 좋다기보다는, 많은 변수를 고려할 수 있는 건축물의 통제 역량(건축물 출입, 창문 개폐, 야간 조명 점등, 주차차량 이동, 현장 정리 등)과 섭외(촬영 허가, 임대세대의 협조 등)에 관계된 요소들이 촬영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크레인을 이용한 고공촬영(50m 이하)은 드론이 할 수 없는 야경촬영이 가능하다.

최근 어느 지식산업센터 촬영의 경우 건축사는 건물 앞 조경의 녹음이 풍부한 사진을 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겨울에 심어진 나무들은 가지만 앙상했고, 온전히 자리 잡고 녹음이 풍부해지려면 2년은 걸릴 듯했다. 또한 대다수의 지식산업센터는 사용자가 들어오면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커튼월 내부의 현란한 시트광고라든지, 짐이 잔뜩 쌓여있기도 하고, 로비에는 각종 광고배너가 즐비하다. 이 또한 사용자의 모습으로 담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건물을 통제할 수 있는 준공 직후에 1차 촬영을 하고, 건축사가 원했던 조경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2년 후쯤 2차 촬영을 하기로 했다. 사용자를 통제하기 힘든 임대건물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새벽의 여명을 이용한 야경촬영. 다만, 박명시간 이전부터 모든 준비가 되어야 한다.(청도근생/피엘에스건축사사무소)

이미 사용이 시작된 백화점의 내부.(스타필드 하남/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촬영할 때 모델을 자주 등장시키는 편이다. 건축사이거나 직원이거나 집주인이 모델이 될 수도 있다.(경주숙박시설/리을도랑건축사사무소)

탄화 동판 1,549장의 시간에 따른 변화.(동네가게녹슨/온건축사사무소)

반대로 도심 대로변의 오피스 빌딩은 가로수에 가려져 있다. 풍성한 잎 덕분에 입면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의도한 입면에 가로수가 들어가야 한다면 모를까, 입면에 변동 사항이 없다면 늦가을까지 타이밍을 기다려 촬영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또 다르다. 이미 사용이 시작된 후에 촬영해야 상업시설의 느낌이 난다. 또 내·외부의 공간과 설치물도 대부분 정리되어 있다. 이런 경우 고객들이 적당히 있는 이른 오전 시간에 내부공간이 주로 촬영되고, 배치된 향(向)에 따라 내·외부를 오가며 야경까지 작업이 이루어진다.

주택의 경우도 상황은 제각각이다. 공간과 어울리는 가구가 세팅된 상황에서 클라이언트가 모델도 되어주는 촬영이 되면 좋겠지만(클라이언트에게 어떤 가구를 들여올지 건축사에게 사전 문의할 것을 부탁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입주 전에 촬영한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이 동원되어 가구를 옮겨가며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공동주택이 겨울에 준공되었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촬영 일정을 다음 해로 연기할 것을 제안한다. 일단 태양의 고도가 낮아 그림자 간섭이 심하고, 조경은 메말라 있으며, 연못 같은 수(水)공간에는 물이 없다. 다음 해 5월이나 되어야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조경도 푸르르며, 수공간에도 물이 담기기 시작한다. 삭막한 계절의 주거공간보다는 빛과 녹음이 어우러지는 주거공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공동주택 설계자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의도하여 건축물의 초기모습부터 변화된 모습을 담는 작업도 있다. 탄화 동판 1,500장이 외장에 붙여진 지역 구도심의 작은 근린생활시설인데, 두들긴 동판에 열을 가해 산화속도를 달리하여 시간에 따른 동판의 색변화를 드러내는 것이 건축사의 의도였다. 이 작업은 2년 전에 시작했지만, 외부전경 촬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몇 시에 건물을 찍으면 좋은가요?”, “언제 건물을 찍으면 좋은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건축물을 촬영하는 정해진 시간은 없다. 나의 시간에 맞추어 건축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일반 관광이나 답사처럼 정해진 경로나 여유시간에 맞춰 건축물에 도착하면 역광의 입면이나 빛이 없는 공간을 접할 수 있기에, 내 시간에 맞추기보다 건축물이 가진 환경에 맞는 시기와 순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공간은 시간이 적층되어 만들어진다고 본다. 설계의 시간, 시공의 시간, 땅의 시간, 빛의 시간… 수많은 순간이 층층이 쌓여 공간이 된다.
건축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건축사에게는 준공된 건축프로젝트의 정리 작업이 되고, 건축사진가에게는 건축의 숨겨진 순간을 담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

 

글. 윤준환 Yoon, Joonhwan 건축사진가

윤준환 건축사진가·Urban Record 대표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도시건축사진공모전(2001) 대상 수상, 한국건축사진가회 주최 워크숍(2001)을 거쳐 건축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부터 지역의 아틀리에까지 많은 건축사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광역시와 변화하는 도시와 건축을 기록하는 ‘부산도시기록(2009~2010)’, 미군기지였던 캠프하야리아 시민공원 조성과정(2011~2014)의 기록 작업을 했다. 또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청과 가우디 연구재단의 도움으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13개를 촬영, 부산국제건축문화제 특별전 ‘가우디와 바르셀로나를 걷다(2013)’, 예술의 전당 ‘안토니 가우디전(2015)’에서 전시한 바 있다. 현재 건축사진스튜디오 ‘Urban Record’의 대표이자 한국건축사진가회 회장으로, 월간 <SPACE> 전속 건축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ubrecord@gmail.com · www.instagram.com/yoon_jo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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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사진 그리고 건축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을 묘사하는 사진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장르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작가 중심적 사고관으로 건축을 대하는 경우다. 건축을 생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초점이나 수직, 수평이 중요하지 않다. 관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을 초상화처럼 바라보는 사진은 철저하게 건축적인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공간의 깊이와 빛의 대비, 건축에 대한 미묘함 등이 사진에서 읽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 영역이 탄생한다. 사진작가의 시각에서 묘사되고 해석된,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건축 사진이다. 이는 사진으로 건축을 탄생시키는 독립적 영역이다. 마치 초상화 사진으로 사진작가의 작품성과 작가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미개척 분야였고, 몇몇 작가의 헌신으로 조금씩 개화되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 영역으로 건축 사진이 확장되고, 인정받고 있다. 건축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건축이 존재한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는 단어처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상상과 스케치로 구현한 블레(Étienne-Louis Boullée)나 1960년대 펑크 건축을 등장시킨 아키그램(Archigram)처럼 실존하지 않는 상상과 사고의 건축도 존재한다. 건축 사진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존재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GA 현대건축 시리즈의 발행과 사진촬영을 주도한 유키오 후타가와(Yukio Futagawa)처럼, 생생한 건축공간의 묘사를 평생 시도한 거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체험되는 건축의 특성이 고정된 관점으로 묘사되기에 더욱 집요한 한 컷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간과 계절, 바람과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건축적 작품성과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건축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작가주의적 성향이 나눠지고, 해석이 달라지는 사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사진작가로 나선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해석되는, 사진으로 묘사되는 건축 작품을 모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03 Photographs and architecture

공식적인 사진의 역사는 1839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특허를 받은 루이 자끄망데 다게르(Luis Jacques Daguerre)가 ‘파리 성당의 큰 거리’를 찍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진의 발전은 모든 게 빠르게 변화했던 19~20세기의 도시와 그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다게레오 타입(다게르가 개발한 초창기 사진술)보다 10년 빨랐던 니엡스는 한 장의 헬리오그라피를 찍기 위해 8시간의 노출을 주어야 했고, 다게르의 다게레오 타입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는데 10여 분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1880년, 코닥사에서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코닥 걸’이 어깨에 멘 ‘브라우니’ 카메라가 등장하며 비로소 카메라의 휴대성이 높아졌다.

1990년대에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고, 현상과 인화의 과정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는 카메라가 휴대 전화와 결합돼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의 기록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결혼식과 같은 행사 때 기념사진을 찍는 일처럼 특별한 순간만을 담고 있지 않다. 앨범 속에 끼워 두었다가 생각이 나면 펼쳐보고 싶은 추억을 담은 한 장의 사진도 아니다. 사진은 일상을 기록하는, 없어서는 안 될 세계 공통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진을 찍는 방식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카메라의 셔터가 되었든, 스마트폰의 버튼이 되었든 사진을 찍는 이의 찰나의 결정으로 사진 한 장이 찍힌다는 것이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에는 카메라 뒤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담겨있다.

경복궁 강녕전, 2016

창덕궁 낙선재, 2016

부산북항 제5부두 싸이로, 2015

길지 않은 사진의 역사 속에 건축사진의 촬영 방식도 변해왔다. 2000년도 초만 해도 제대로 된 건축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형 카메라와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후에도 건축사진은 꽤 오랫동안 필름을 스캔받아 디지털로 변환하는 방식을 고수했었다. 그러나 뷰카메라의 대형 필름과 무브먼트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축물의 왜곡을 보정하는 일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지 센서도 세밀한 부분의 표현과 대형프린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건축사진을 촬영할 때도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다.

건축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촬영과 동시에 현상, 인화, 스캔 과정 없이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면 장비의 무게 때문에 삼각대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했고, 이동에 제약이 있어 활동적인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게다가 거꾸로 보이는 세상에서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휴대용 카메라로 구도를 잡고 촬영할 때와 달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은 대상을 보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건축사진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관찰과 기록성을 근간으로 하여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과 재료의 특성을 담아낸다. 카메라 장비의 속성이 디지털로 변하게 되면서, 기존의 건축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문법에서 자유로워졌다. 또한 기존의 인쇄매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건축사진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cityscape #04, 2004

disappear-영도다리와 하야리아부대, 2011

사진은 그 어떤 매체보다 현재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매체지만, 카메라라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완성된다는 이유로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은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었다. 사진에서 기록과 예술의 영역을 딱 잘라서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사진도 이런 논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40여 년에 걸쳐 파리와 그 주변을 1만 여장이 넘는 사진으로 남긴 으젠느 앗제(Eugene Atget) 덕분에 대규모의 도시 계획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파리 시가지 모습의 변화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진가 자신은 그 사진들이 “예술가들을 위한 자료(Documents pour Artistes)”이고, “내 사진은 단순한 도큐먼트이다”라고 말했다. 으젠느 앗제는 사진을 주제와 시기별로 나누고 일련번호를 매겨가며 분류하였지만,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자료사진으로 보지 않는다. 도큐먼트로의 사진이 예술사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파리를 단순히 기록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서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Anotherframe-화명동#01, 2008

건축사진도 ‘기록으로의 건축사진’과 ‘예술로서의 건축사진’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 사진은 현장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공간적·시간적 제약 때문에 건축물의 조형성을 느끼고,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매체이다. 그래서 건축사에게 건축사진은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건축사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6년 종합예술지 <공간>의 창간 이후 <건축문화>를 비롯한 건축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잡지에서 건축물을 소개하는 방법은 일정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빠질 수 없는 것은 전경사진이다. 내부와 외부, 원경과 근경, 건축 구조와 재료의 디테일을 찍은 한 장 한 장의 사진은 단편적일지라도 건축공간의 전체를 한눈에 그려볼 수 있다. 배치도와 입면도, 단면도와 같은 도면이나 건축사의 설계 개요가 사진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진은 도면에서 느낄 수 없는 공간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건축물이 주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건축사진에서 사진은 건축물의 기능과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중심이 되지만, 건축사진의 객관적 기록에는 사진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빠질 수 없다. 건축사진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시간의 흔적이 엮이고 엮여 사진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할 수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물이 처음 완공되어 아직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순간부터, 새 가구를 공간에 배치하고 시간이 지나 터를 잡기까지 그 공간의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낡아가는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맛을 더해가기도 하고,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건축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1990년 독일의 베허 부부의 산업용 건축사진을 시작으로 유형학적 사진들이 건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건축 공간이나 유사성을 가진 형태를 통해 그 시대의 보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가족이 살던 반지하나 옥탑방, 서로 다른 가족이 살고 있지만 천편일률적 양상을 보이는 아파트와 같은 주거 형태는 건축사진에서 각기 다른 공간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적 상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건축사진은 아카이브 사진의 형식을 같이한다. 낱장 사진의 모음이 아니라 각각의 사진들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건축물의 전체나 부분을 단순히 촬영하여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적 가치를 기록하고 모으는 작업이다. 도시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은 건축을 기록하는 일이자 시대와 문화를 기록하는 일이다.

건축사와 건축 사진가는, 건축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애쓰고 건축의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자리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건축사는 자신이 상상하는 건축적 공간을 사진에서 찾으려고 하고, 사진가는 건축사가 생각하는 곳보다 더 극적인 장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건축사진을 촬영하기 전에는 사람과 사람, 공간과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필요가 있다. 건축사와 사진가가 건축 공사 과정과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록에 대한 합일점을 찾기도 하고, 서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를 만나기도 하면서 건축과 사진이 만났으면 한다.

 

글. 이인미 Lee, Inmi 사진가

이인미 사진가·비온후 공동대표

대학에서는 건축을, 대학원에서는 영상학을 전공하였다. 사진으로 건축과 도시를 만나는 작업을 해왔다. 요즘은 기록으로서의 사진 아카이브와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골목길에서 작은 책방과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Another frame(2009, 심여화랑)’ 등 7번의 개인전과 ‘site-seeing(2018, 부산시립미술관)’, ‘집을 말하다(2011, 클레이아크건축도자미술관)’, ‘decentered(2009, 아르코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또 『기억하는 도시, 부산』, 『한국건축개념사전』,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등 다수의 출판에 참여한 바 있다.
www.beonwho.com · @beonwhoboo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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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삼덕(三德)

Disappearing village Samdeok

명칭 유래
삼덕(三德)마을은 천주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덕목인 믿음[信], 소망[望], 사랑[愛]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져 ‘신망애(信望愛)’라는 석 자로 요약된다.

 

형성 및 변천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위치한 삼덕마을은 1961년 2월 5일 국립용호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음성 한센인의 자립촌으로 조성되었다. 음성 한센인의 자립을 위해 용호동 본당(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이 자체 기금으로 당시 동래군 일광면 이천리 임야 약 1만 3884.30제곱미터(4,200평)를 구입하고, 추가로 부지 1,537.19제곱미터(465평)를 매입하여 택지를 조성하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건평 약 20제곱미터(6평) 규모의 주택 35동을 건립하고, 1962년 12월 26일 70가구 총 250명을 집단 이주시켰다. 1991년 10월 마을 입구에 삼덕아파트를 지으면서 주민들의 이주가 이루어져, 주민들의 흔적들은 무성한 풀과 잡목들 사이에 남아있다. 2014년 새로운 신도시 개발에 따라 4,300세대의 아파트 단지들이 주변에 들어섰고, 오랜 시간 동안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위안과 기쁨, 행복을 같이 나누어왔던 삼덕마을과 삼덕공소도 개발의 변화에 따라 올해 말에 1,543세대 아파트, 지상 29층 13개 동으로 사업 예정이다.

사람과 가축이 함께 사는 매우 열악한 환경, 한센병 마을이란 외부적 차별과 차가운 시선 등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살아왔던 주민들의 삶의 모습도 사라져 가는 마을에 묻히고 잊혀질 것이다.

 

글.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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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05 콘크리트

Term@Architecture 04
Concrete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콘크리트
19세기에 Portland Cement 개발과 철근콘크리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과 같은 콘크리트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명실상부하게 건축재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건축재료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마천루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감각으로 상상하기 힘든 속도와 규모의 개발이 이어지면서 콘크리트는 비인간적인 20세기를 상징하는 대상이 되었다. 흔히 ‘회색빛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표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도시와 건축의 어두운 모습을 전달한다.

1976년 반포아파트 © 국가기록원

필자가 태어난 1976년, 반포아파트 단지의 사진은 과연 그렇다. 콘크리트는 도시의 삭막함을 대표하는 재료로서 하나의 클리셰(cliche;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말)로 정착되었다. 그렇게 말 못 하는 콘크리트는 악역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콘크리트는 정말 나쁘고, 삭막하고 몹쓸 재료일까? 콘크리트의 어원을 찾아보면, ‘함께’, ‘같이’라는 의미의 ‘con-’과 ‘되게 하다’라는 의미의 ‘crescere’가 복합된 라틴어 ‘concre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함께 어울린다. 섞어서 만든다는 정도의 의미다. 콘크리트가 어쩌다 미운털이 박혔는지 안타깝다.

역암

 

역암

콘크리트의 역사
콘크리트는 자갈과 모래 그리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시멘트가 복합된 재료이다. 자연에서는 역암(礫巖, conglomerate)이 콘크리트와 유사하다. 퇴적층에 쌓인 자갈과 모래가 뒤섞여 굳은 암석을 역암(礫巖)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2mm 이상의 자갈인 역礫이 있고, 자갈 사이의 틈새가 모래 또는 진흙으로 메워져 구성된다.

판테온

자갈의 모양이 둥근 것은 원력암, 모난 것은 각력암이라고 한다. 역암礫巖을 관찰하면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와 모양이 흡사하다. 전라북도 진안군의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은 독특한 모습의 산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크고 작은 자갈이 모래와 함께 뒤섞인 채로 굳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인족이나 거대한 외계인이 콘크리트를 만들고 숲속에 버려 잔해 같다. 마이산은 진안 분지에 생성된 퇴적층의 자갈과 모래가 섞이고 굳어서 만들어진 천연 콘크리트 덩어리다.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콘크리트를 만들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서도 이미 콘크리트가 널리 사용되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로마의 판테온 신전은 고대의 콘크리트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직경 43m가 넘는 이 거대한 돔 건축물은 골재와 모래 그리고 회반죽을 버무려 만든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약 2000년 전의 건축물이다. 철근 콘크리트는 아니지만, 돔의 외부에 금속으로 step ring을 여러 개 설치하여 인장력을 보완하는 수준 높은 구조 디자인도 보여준다. 마이산과 판테온 신전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감상하면서 콘크리트는 왜 그렇게 미워할까? 콘크리트를 나쁘게 만든 사람과 잘못 사용한 사람에게 미움의 화살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신데렐라와 신더 콘크리트
판테온 신전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골재로 화산석을 사용했다. 벽과 돔의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던 판테온 신전의 자중을 줄이기 위해 무거운 골재가 아닌 가벼운 화산재와 화산석을 사용한 것이다. 현재의 재료명으로는 경량골재 콘크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도에서는 골재로 현무암을 사용한다. 현무암을 사용한 콘크리트는 무거워 보이지만, 들어보면 생각보다 가볍다. 비단 제주도의 건축물이 아니어도, 건축물에서 일정 두께로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누름 기능을 해야 하는 부분에는 경량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옛 건축도면에서 경량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하는 부분에 신더 콘크리트라고 표기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신더(cinder)는 석탄이나 나무가 연소하고 남은 찌꺼기, 즉 재를 의미한다. 신데렐라(cinderella)는 벽난로의 재를 치우는 일 때문에 여기저기 거뭇거뭇하게 재가 묻은 모습을 호칭으로 부르고, 동화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나 ‘숯검댕이’ 정도의 이름인 것이다. 신더(cinder) 콘크리트는 신데렐라가 뒤집어쓴 바로 그 재를 섞은 콘크리트다. 20세기 도시에는 도시 안팎으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가 많았다. 서울의 당인리 발전소도 그런 화력발전소다. 화력발전소에서는 발전을 하는 동안 꾸준히 재(cinder)가 나온다. 이 재(cinder)를 골재로 사용하면, 판테온에 사용했던 콘크리트나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처럼 무게가 가벼운 경량 콘크리트가 되는데, 바로 신더(cinder) 콘크리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량 콘크리트가 사용되어야 할 부분에 신더 콘크리트를 명기하는 경우가 있다면 사용을 지양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신더(cinder)를 구하기도 어렵고, 신더(cinder) 콘크리트를 만들지도 않는다. 신더 콘크리트 적용을 계획하고 표기하는 것은 눈이 오는 날 도로에 연탄재를 뿌려야 한다고 매뉴얼을 만드는 것과 같다.

제주도 현무암 콘크리트

신더 콘크리트

 

투명 콘크리트 vs 리트라콘(LiTraCon)
건축재료로서 유리에 관한 논문에 열중하던 2000년대 초반 ‘투명 콘크리트’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복합 재료인 콘크리트가 투명할 수 없는데, ‘투명’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 못마땅하고 속상했던 기억이다. 헝가리의 건축학도였던 Aron Losonzi는 학생 시절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졸업 후 유리섬유를 시멘트 모르타르와 복합한 블록 형태의 건축재료인 LiTraCon을 출시했다. 유리섬유를 통해 빛이 투과되고, 반대쪽의 사물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정도의 투시성이 확보된다. 어디에도 투명(transparency)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 언론은 ‘투명 콘크리트’라는 제목으로 도배를 했고, 리트라콘(LiTraCon)이라는 고유명사는 소개되지도 못했다. LiTraCon의 이름이 Light-Transmitting-Concrete의 줄임말임을 확인해 주었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건축계획이나 시공에 적용하기 위한 재료적 특성은 설명되지 않았고, 이미지만 소비되었다. 어쩌면 우리 건축계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리트라콘 © 準建築人手札網站(www.flickr.com/photos/eager/15144196843)

 

노출 콘크리트

철판 거푸집 콘크리트

나무널 거푸집 콘크리트

세로 줄무늬(fluted) 콘크리트

돌 무늬 콘크리트

콘크리트면을 그대로 내부 또는 외부의 마감으로 처리하는 경우 쉽게 노출 콘크리트라고 칭한다. 노출 콘크리트라는 용어로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각자 마음속으로 노출 콘크리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안도 다다오의 미끈한 콘크리트를 생각할 수도 있고,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나 라뚜렛 수도원의 거친 나무 무늬 콘크리트를 떠올릴 수도 있다. 폴 루돌프의 세로로 홈이 새겨진 콘크리트(fluted concrete)는 어떤가?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의 눈살 찌푸려지는 바위 무늬 콘크리트 옹벽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노출 콘크리트라는 같은 단어를 보고 모두 다른 모습의 콘크리트를 생각한다.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실험으로 다른 재료명에 「노출」을 붙여보자. 노출 철판, 노출 나무, 노출 유리. 모두 어색하다. 왜 어색할까? 모든 마감재는 시선에 노출된다. 그래서 노출이라는 설명이 무의미하고, 붙이면 어색하다. 입면도에 표기된 마감 재료들은 모두 노출되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입면도에 ‘콘크리트’라고만 표기하면, 외장재로 콘크리트를 사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거푸집을 사용하여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송판 무늬 콘크리트’라고 표기되었다면 이해가 잘 된다. 송판의 크기와 패턴이 함께 설명된다면 시공사의 입장에서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무늬인지 정하기 전이라면, 현장에서 타설하는 콘크리트인지, 공장에서 제작하는 프리케스트(pre-cast) 콘크리트인지를 구분해 주는 것이 좋겠다. 콘크리트는 고대의 건축부터 외장재로도 사용된 재료이니, 마감재로 의도하고 계획했다면 굳이 노출이라는 사족을 붙일 이유가 없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가 만들어지던 1970년대에도 콘크리트에 사용할 골재의 종류와 거푸집 형상 그리고 표면처리 방법을 제시했을 것이다. 단순히 노출 콘크리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안도 다다오의 작품 사진을 보여주는 태도는 지양해야겠다.

콘크리트를 나쁘고 해로운 재료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을 고치거나 투명 콘크리트와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널리 퍼진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세로 줄무늬 콘크리트)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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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워치 03 북한의 건축행정조직Ⅰ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3
North Korea’s architectural administration organizationⅠ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건축을 국가건설의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여 정권 초기 내각에 건축관련 부서를 설치하였으며, 1946년 시행한 보통강 개수공사를 초기 북한정권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건축(건설)관련 중앙행정부처가 3개에 이르고, 대규모 건설사업을 최우선 국가정책으로 추진하는 등 건축은 북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 계획경제에 의하여 추진되었던 북한의 건설사업이 시장영역으로 이전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개발을 위하여 북한의 건축행정시스템의 특성을 알아보고, 건축행정 협력방안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013년 건설부분일꾼 강습회(북한방송 캡처). 강습회에서 북한의 건설에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정하였으며, 북한의 최고위층이 대거 참석하였다.

1. 중앙행정조직

북한의 권력기관은 당과 국가기관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당이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국가기관은 선거로 선출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사법부의 지도자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1980년, 노동당 6차 당대회 이후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1992년 국방위원회를 만들고 1993년 국방위원장이 된 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당이 아닌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나, 명목상의 최고 권력기구는 노동당이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 후, 2016년에는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1980년 이후 36년 만에 당대회를 개최하여 권력을 당 중심체제로 바꾸었다.

노동당은 제1비서(김정은), 당대회, 당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 김정은), 정치국, 정무국, 검열위원회, 당중앙검사위원회, 전문부서(19개 부서), 도당대표회, 도당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의 정당조직은 정당내부의 문제를 처리하지만, 북한 노동당은 직접 행정부(내각)를 지도하며, 노동당 전문부서는 행정부처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남한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국제부는 국제외교무대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국가기관은 국무위원회(위원장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내각, 중앙재판소, 중앙검찰소, 도(직할시, 특별시)인민위원회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기관 중 실질적인 최고 권력기관은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설립한 국무위원회이나, 최고인민회의가 국무위원회 위원장, 위원, 총리, 중앙재판소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내각의 장, 중앙검찰소장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명목상으로는 최고인민회의가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의장은 2009년까지는 헌법상 국가원수였으며, 현재도 국가원수인 국무위원장 다음으로 국가 의전서열 2위이다.

북한내각은 총리(김덕훈)와 8명의 부총리 및 8개 위원회, 31개 성, 1원(국가과학원), 1은행(중앙은행), 2국(내각사무국, 중앙통계국) 등 43개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무력성,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그리고 국가체육지도위원회는 내각이 아닌 국무위원회에 소속된 기관이다.

북한의 건축사 중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실장이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내각 부총리인 동정호(전 건설건재공업상)가 건설 전문가 중 북한에서 가장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과 국가기관(政) 외의 외곽기구도 권력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외곽기구는 근로단체(김일성, 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등), 정당-대남(조선천도교청우당, 조선사화민주당 등), 대외(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사회(적십자사 등), 종교(그리스도교연맹, 불교도연맹) 및 학술체육단체(조선건축가동맹, 올림픽위원회)가 있다. 이 외곽단체는 대내적 국민결속 목적을 가진 단체와 국제교류를 고려하여 결성된 단체가 있다.

노동당에는 건축 및 건설관련 기구가 없으나, 2013년 뉴스를 통해 마원춘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이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장과 국방위원회 설계국장을 맡고 있으며,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에는 북한 최고의 건축전문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013.07.05).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의 정확한 업무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정은의 최측근인 마원춘이 국방위원회 해체 후 신설된 국무위원회의 설계국장을 맡고 있으며 2018년에는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에 올랐으므로, 마원춘이 실장을 역임한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은 국가의 건축정책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두산건축연구원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기관이기도 하다.

내각에서는 건설건재공업성, 건설감독성, 도시경영성 및 수도건설위원회가 건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서이며, 국가계획위원회, 국토환경보호성, 철도성, 육해운성 등도 건설과 관련이 있는 부서들이다.

국가계획위원회는 북한의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기관으로, 북한의 건설계획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자원(예산, 자재, 인력) 등을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1948년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건설업무를 총괄하는 건설성과 도시관리를 담당하는 도시경영성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성은 ①국토 이용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종합적 계획의 수립, 실시와 관리, 조정 ②도시계획, 건축, 조경 관리 및 도시 재개발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일부 사업은 국가계획위원회의 업무와 중복될 정도로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1998년 건설감독성이 설립되면서 폐지되었다(위키백과). 1957년에는 건설성의 건재분야를 건설건재공업성으로 분리하고, 건설성 산하에 국가건설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국가건설위원회는 건설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위원은 내각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하였다. 건설성과 국가건설위원회는 1998년 국가건설감독성이 설립되면서 대부분의 업무가 국가건설감독성에 이관되면서 해체되었다.

건설성 장관(상 혹은 부장) 중 남한에 알려진 사람은 박임태, 조철준(1982~ 1994년) 등이다. 박임태는 1967년부터 1982년까지 장기간 건설성 장관을 지냈으며, 1982년부터 1994년까지는 조철준이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조철준은 통일교육원장과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낸 탈북자 조명철(1994년 탈북)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탈북한 해인 1994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철준은 러시아에 유학을 가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국가계획위원회청사’와 ‘평양예술극장’ 등을 설계했다.

1958년 노동신문 보도 기사. 김응상은 김정희와 더불어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이다. 니혼대학교 출신인 김응상은 40대 초반에 국가건설위원장을 지냈다.

김정희에 대한 노동신문(2018년 6월) 보도 기사. 김정희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이다.

국가건설위원회의 역대 위원장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남일(1960~1966), 김응상(1977~1998) 등이다. 남일은 소련군 출신으로 북한에서 교육상, 외부상 등을 지냈고, 1960년~1966년까지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건설과 직접 관련은 없는, 전문 관료이다. 김응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니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김일성대학 교수, 조선건축가동맹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77년부터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국가건설위원회에서 퇴임한 날짜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90년 재선임 되었으므로 1998년 건설위원회가 폐지될 때까지 20여 년간 재임한 것으로 보이며, 2003년 사망하였다.

김응상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북한 건축사 김정희만큼 북한에서 인정받는 건축사이다. 북한에서 『주체건축역사의 갈피를 더듬어』라는 개인회고록을 출판하였고, 김일성 장의위원회 위원, 오진우 장의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2003년 사망 시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2013년 조선중앙통신은 김응상을 김정희와 더불어 주체건축의 건설영웅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연합뉴스 2013.12.16.).

국가건설감독성은 1998년 국가건축위원회와 건설성(건설부)의 일부 업무를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국가건설감독성은 배달준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장기간 맡았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 김석준이 후임을 맡은 후 2013년부터 현재(2020)까지 권성호가 맡고 있다. 배달준은 1936년생으로 체코의 브라티슬라바 대학(브라타슬라바:현재 슬로바카아공화국 수도)을 졸업하였으며, 평양도시계획설계사업소에서 근무하였다.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1998년 건설감독성의 초대 장관이 되었다. 2000년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조선건축가동맹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국가건설감독성은 국가건설위원회를 이어받은 조직이므로 북한 내각에서 건설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건설감독성산하에는 건설설계정보센터, 국가설계지도국, 건설기술지도위원회, 조선건축가동맹 등이 소속되어 있다.

건설건재공업성은 건설(건축, 토목)자재 산업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1957년 건설성에서 분리되어 건재공업성으로 출범하였다. 건설자재의 자체적 확보와 건설산업의 과학화가 업무의 목표이다. 1998년 건설성(건설부)이 폐지되면서 일부업무를 가져와 건설건재공업성이 되었다.

건설건재공업성 장관(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휘의 아버지인 최재하이다. 최재하는 수풍발전소를 재생하고 한국전쟁 후 평양시 주택공급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영화 <고압선(1975, 조선예술영화촬영소)>으로 북한주민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로 1956년부터 사망한 해인 1958년까지 건설건재상을 지냈다(일요신문. 2018.2.2. [추적] 평창올림픽 방남 가능성 높은 북한 체육계 수장 ‘최휘’는 누구? 북한 유명 건설 영웅 최재하의 장남…김정은 집권 초기 선전선동 큰 역할).

국가건설위원장을 장기간 맡았던 김응상은 1965년 건설건재공업상을 지내기도 하였다. 1998년부터는 2005년까지는 조윤희가 맡았다. 조윤희는 1994년 정무원(현 내각) 건설부장이 되었으며, 1998년 건설부(건설성)와 건재공업부가 통합되어 건설건재공업성으로 출범하면서 2005년 사망 시까지 장관을 지냈다. 2005년 조선중앙통신은 조윤회의 사망을 보도하기도 하였다(데일리NK, 2005.01.12).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2년간, 동정호가 건설건재공업상으로 재직하였으며, 2017년 부총리로 선출되었다.

건설건재공업성은 과학기술국, 품질량정국 등이 있으며, 건재총국과 건자재기업소 등(대안친선유리공장, 순천시멘트 연합기업소 등)의 산하기관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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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사교적 소비 공간인 카페에서 사랑에 빠지다

Amelie falls in love at a cafe, a social consumption space

<아멜리에> 포스터 © 콜럼비아트라이스타·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사교적 소비 공간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곳이다. 오래전 발간된 논문에서는 사교적 소비 공간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대표적으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다방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냥 일개 상업 공간일 뿐인 카페를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 등의 상업 공간에 갈 때는 명확한 구매 의사와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다. 이 과정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물건을 보고 판단해서 구매하는 행위가 끝나면 사람들은 그 공간에 더 머물지 않고 떠난다. 상점에 있는 점원과 이용자는 어떤 감정적 교류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것은 옷을 파는 곳이든, 참기름을 파는 곳이든, 생선을 파는 곳이든 마찬가지다.

리처드 로저스는 그의 책 『Cities for a small planet』에서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얀 겔 등의 다양한 이론을 언급하면서, 가로를 활성화시키고 도시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카페의 시발(始發)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업 공간은 구매 목적을 이루고 나면 더 이용하지 않지만, 사교적 목적으로 만나는 공간인 카페는 그 공간에 머무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이유로 카페는 특정 범위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독특한 집객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득이 올라가고 도시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잉여시간이 늘어나면서 카페 이용률은 더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이용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리처드 로저스는 이를 관찰해서 도시 공간의 카페를 하나의 건축적 요소로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관광지를 보면, 의외로 카페와 같은 소비공간이 부각되면서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확장되면 카페는 체험형 공간으로 커지고, 다시 상업공간인 쇼핑몰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천천히 살펴보면, 비상업적인 사회적 행동 패턴이 오히려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적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이 21세기에 벌어지는 것이다. 왜냐면 이제는 모든 상품들이 공급의 경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공간도 마찬가지고, 도시도 마찬가지다.

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는 행위조차도 눈여겨봐야 하고, 이를 그들의 상업적 목적과 연결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멈춰 서서 이야기하고, 안부를 묻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에 주목하는 이유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극히 비 상업적 행동이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들에게 주목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말하고 나니, 스타벅스 전 CEO 하워드 슐츠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워드 슐츠의 스타벅스 이야기를 보면, 그는 이탈리아 거리에서 단골손님들과 대화를 하며 그들에게 맞춤형 커피를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에 주목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증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커피를 애용하는 것이었다. 이웃과 소통하고, 친구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즐기며 수다를 떠는 사회적 관계 말이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라는 호칭에 필이 꽂힌 하워드 슐츠는 커피 친구를 만드는 이탈리아 카페 문화를 도입하기 위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스타벅스다.

오는 손님, 가는 손님 모두와 친구처럼 웃고 떠들며 그들의 취향대로 커피를 조제하는 정성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 그런 관계를 주도하는 바리스타를 카페 사업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물론 사업이 확장되고 속도와 수익이 중요해진 지금은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방문하는 손님과 사적 잡담을 나눌 시간은 없다.

관련해서 이번에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유쾌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Amelie Of Montmartre, 2001)>다. 성인 동화처럼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래픽적인 컬러와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심장이 약하다는 오해로 아멜리에의 생활은 어릴 때부터 제한된다. 그 반동으로 세상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집에서 멀리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경이 과민한 어머니에게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는 생활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그녀의 궁금증만 더더욱 커지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어쩔 수 없이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여러 가지 생각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다 화려한 스캔들의 주인공 영국 다이애나 비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그녀는 누군가를 돕기로 결심한다. 이런 각오는 아멜리에의 태도와 생활을 변화시켰다. 주변의 곤란함을 보고, 도와주기도 하면서 그녀는 점차 주변 사람들의 해결사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엉뚱 발랄한 아가씨 아멜리에는 그녀가 근무하는 카페에서 아티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카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력적인 장소다. 목적 없이 갈 수 있는, 그리고 짝사랑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멜리에>의 주인공인 그녀는 일하는 카페에서 아티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아이 엠 샘>의 주인공 샘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모습은 일종의 기업이미지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우리 주변의 어떤 장소가 이런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연히 공원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 1960년대 낭만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오히려 공포의 순간이다.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건다? 둘 중 하나다. 도를 믿으십니까 아니면 돈 달라는 이야기다. 결코 낭만적인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는 어느 정도 제한된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꾼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카페는 영화나 이야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카페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왜냐면 일종의 기호성 공간이기 때문이다. 골라 먹는 재미처럼, 골라서 가는 공간이 카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카페 문을 열고 분위기를 0.5초 안에 스캔한다. 만약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카페를 나간다.

그렇게 선택된 기호 공간인 카페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매개 공간의 기능을 한다. 특히 길거리에 있는 카페는 개성이 더 강하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거리의 카페는 관계를 형성하는 매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영화에서 거리의 카페는 낭만적 묘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훔쳐보거나, 거리를 구경하는 해프닝의 공간이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거리의 카페는 낭만 그 자체이다.

동아시아에 있는 우리에겐 이런 카페의 풍경은 판타지 같은 이미지였다. 특히 뉴요커 영화감독인 우디 알렌(Woody allen)은 상당수 영화에서 이러한 거리의 카페 풍경을 아침 공기처럼 묘사하곤 했다. 영화 <맨해튼(Manhattan, 1979)>에 등장한 엠파이어 디너는 덕분에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스트리트 카페는 아니지만, 또 다른 우디 엘렌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에서도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카페가 등장한다. 짙은 초콜릿색의 실내 카페는 낭만적인 프랑스 장식을 드러내면서 환상의 이미지로 주인공을 초대한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우리 역시 유쾌한 과거 시대로 빠져들어간다. 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것은 카페라는 공간이 갖는 기본적인 사교적 속성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만남의 목적에는 사랑도 빠질 수 없다. 더구나 영화의 주된 소재가 사랑이 아니던가?

미국 영화 <유브 갓 메일(1998)>에서 캐슬린 켈리 역의 맥 라이언이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는 카페다. 이른바 별다방 카페의 세계적 이야기가 시작되던 시점으로, 사람들은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 장담하곤 했다. 왜냐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카페가 살롱식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급스러운 라운지 개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다만 커피는 설탕과 우유,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를 고정 비율로 섞은 것을 팔았을 뿐이다.

<유브 갓 메일>에 등장한 스타벅스는 이른 아침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포장커피 (To-Go-Coffee)를 주문해 받아 들고나가는 풍경을 이색적으로 보여주었다. 덕분에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확산된 우리나라 스타벅스에서, 맥 라이언으로 빙의한 수많은 손님들은 스타벅스에서 주문하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카페의 판타지에 이제 기업 전략이 함께 붙은 셈이다.

스타벅스의 이런 이미지 전략은 상당히 많은 영화에서 활용되었다. 숀 펜(극 중 샘)이 지적 장애를 겪으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따뜻한 내용의 영화 <아이 엠 샘(I am Sam, 2001)>에서 스타벅스는 한술 더 떠 장애인을 고용하는 착한 기업 이미지까지 만들어 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샘은 스타벅스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입고, 하루 종일 스타벅스에서 일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컷 © (주)피터팬픽쳐스

아무튼, 많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카페에는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목적을 강화하기 위한 더 많은 전략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이런 카페들은 카페 자체에 방문하고 싶은 목적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간의 테마들을 하나씩 추가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이런 전략의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영상미가 디자인 작품 수준이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은 그렇게 도구화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수많은 이미지들을 더 많이 이야기할 정도다.

파스텔컬러의 매력적인 화면 연출은 마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시각적 풍성함을 연출해 관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보게 된다. 이런 시각적 전략을 민간 기업에서 그대로 차용해 성공한 사례는 정말 많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상업 카페에서 그대로 차용해서 그들의 매장 영업 전략으로 삼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지금 당장 경리단 길이나 시내의 카페들을 찾아가면 이런 이미지 차용이 정말 많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공간에서 느끼는 체험에서 영화를 연상하고, 공간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상업 공간의 기획과 디자인 과정에서 영화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고, 영화를 상업 공간의 테마로 삼아 연출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공공에서도 카페를 공간의 주요 시설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심지어 도서관조차도 방문객의 편익을 도모하는 단순한 목적의 카페 구성에서 점차 핵심 집객 공간으로 카페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개별 시설 내 카페뿐만 아니라 도시 정책, 도시 전략으로 카페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호주 멜버른 시내의 가로 카페(Street Cafe) 정책이다. 멜버른은 2000년부터 적극적인 도심 재생 정책 중 하나로 가로 카페를 구상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도심 가로의 번화한 정도를 계량화해서 개별 블록마다 금액을 책정하고 민간에 임대를 준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세부적인 구성 지침을 마련해서 가로 카페를 적극적으로 구성했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지금, 멜버른의 가로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도심을 재생하는 청년 공간 창조의 기폭제가 되었다. 단순한 도심재생이 아니라, 도시 활성화까지 이끌어낸 미끼 상품과 같은 공간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덕분에 단 몇 개의 가로 카페만이 있던 20년 전에 비해서 100배가 넘는 200여 개의 도심 가로 카페가 활성화 중이다.
우리도 가끔은 주변에 있는 가로 카페에 들러 낭만에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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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

‘Baeksa Village’, the last shantytown in Seoul

백사마을의 마지막 봄

코로나 여파가 2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또다시 봄을 맞았다.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꽃은 무심한 듯 피어났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도 봄이 왔다. 서울의 동북쪽 끝 불암산 자락에 있는 이곳은 노원구 중계동 산 104번지(현재는 중계로 2다길)라서 백사마을로 불리고 있다.

백사마을 위치도 © 네이버 지도

백사마을 전경 © 노원구

1967년 당시 개발을 이유로 정부에서 청계천 등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마련해 준 보금자리다. 8~20평 남짓한 허름한 집 1,200여 가구의 절반 이상이 현재 빈집(공가)으로 남아있다.

마을 입구에서 본 백사마을(건물에 ○ 표시는 공가로 비어 있는 집) 뒤로 불암산이 보인다.

언덕 위의 두 집, 내부는 빈 상태로 허물어져 있다.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재개발을 앞두고 내년에 착공 예정이라고 하니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백사마을의 마지막 봄이라 생각하니 지금껏 수없이 찾아와 보았던 모습과 달리 더 각별하고 애틋하게 보인다.
남녘에는 진즉부터 봄이 찾아와 매화꽃이 한창이라지만,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는 여행도 못가고 동네 주변만 맴돌다 집 가까운 불암산 가는 걸 낙으로 여기고 내려올 때 가끔씩 들러보던 백사마을.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고향 같은 곳이기에 봄이 가기 전에 다시 또 찾아가 보았다.

불암산 위에서 본 백사마을 전경

퇴락한 건물 뒤로 보이는 불암산

봄꽃 사이로 보이는 노후 건물

이제는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고요한데 빈집 가운데서 목련이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집들과 함께 사진으로 남기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파란 나무대문 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조반을 준비하고 계셨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퍼지는 밥 짓고 고등어 굽는 냄새가 요 며칠 잃었던 식욕을 자극한다.
이곳은 주로 연탄을 때느라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 앞에는 연탄재가 쌓여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서니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 앞에 연둣빛으로 물이 오른 수양버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 아래엔 샛노란 개나리가 무리 지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게딱지 같은 납작 지붕 너머로 고층아파트들이 딴 세상처럼 보이고 또 그 너머로 북한산이 보인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마을 입구 한편에 핀 벚꽃

다시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옹기종기 화분에 심어진 파와 부추가 파릇파릇하다. 얼마 후면 빈 화분에도 고추와 호박 모종이 심어질 것이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하얀 페인트칠이 반쯤 벗겨진 건물 벽에 누군가 노랗고 빨간 꽃들을 어설프게 그려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 모두가 얼마 후면 사라질 모습들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반세기 이상의 수많은 사연과 애환을 간직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터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터의 무늬가 없어진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를 백사마을의 봄이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가 보다.
개나리와 목련은 반쯤 지고, 마을 입구 한편엔 마지막으로 피어난 벚꽃이 화사한 빛을 발하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99년 만에 가장 먼저 벚꽃이 피었다는 올봄엔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먼저 핀 꽃은 벌써 지고 봄을 제대로 느낄 사이도 없이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백사마을 이야기

1967년 초기에는 그야말로 산비탈의 어설픈 판자촌이었다가, 10년 후인 1978년경에야 마을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때는 마을 초입에 시장통이 형성되고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하루에 몇 번 허허벌판 외길을 따라 들어오는 버스를 타려는 마을 사람들의 줄은 끝이 없었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확성기를 통해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방송이 울리자마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삽시간에 눈을 치우던 풍경들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 무렵 전기 공급도 시작되었지만 물 공급이 원활치 않아 공동 우물을 길어 사용하기도 했다. 교통은 불편했고 살림은 모두 옹색했지만 더할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자연 속에서 따뜻하고 끈끈한 공동체 생활이 이어졌다(노원구 소식지 2021년 3월호 중, 백사마을에서 43년을 살아온 곽영일 통장 인터뷰 일부 정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

주소로부터 명칭이 유래된 마을, 백사(104)마을 재개발구역의 사업시행계획이 오랜 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인가되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2년 만으로, 1967년 마을이 형성된 후로부터 54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백사마을은 앞으로 사업시행과 함께 개발과 보전을 통한 총 2,437세대(아파트 1,953세대, 다세대 임대주택 484세대) 규모의 상생형 주거 단지로 변신하게 되는데, 현재 75%의 주민이 이주를 완료한 상태이다.
사업시행 초기에 우리 노원구지역건축사회(회장 이종호)에서는 노원구의 건축문화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결의문(아파트 위주의 도시개발 반대, 저층·저밀도의 친환경적인 도시계획 추진 등 5개항)을 채택하여 서울시에 건의하고, 지역 신문에도 기고하는 등 공영개발사업에 따른 우려를 지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백사마을은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결합한 방식으로 재정비된다. 기존 골목길을 보존하고 아파트와 주택을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개발이다. 이런 기존 주거지 보존 방식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사업의 시초가 될 것이다.

 

60년 된 백사마을 2022년 착공

백사마을은 1967년 도심 개발로 청계천·창신동·영등포 등에서 강제 철거당한 주민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2009년 주택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사업성 문제, 건축 방식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돼왔다. 그러던 지난 3월 2일, 노원구는 중계본동 104번지 일대 백사마을(18만6965㎡) 재개발 예정지에 대한 사업시행계획을 인가했다고 밝혔다. 계획안에 따라 60여 년 된 노후 저층 주거지가 총 2,437가구 규모의 주거단지로 탈바꿈한다.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2년 만이다. 백사마을은 일반적인 재개발과 달리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어우러진 주거지 보존 방식이 적용된다. 아파트는 지하 5층~지상 최고 20층, 34개 동, 전용면적 59~190㎡, 1,953가구로 지어진다. 일반주택은 주거지 보전사업으로 지하 4층~지상 4층의 다세대주택 136개 동, 484가구가 들어선다. 전용면적은 30~85㎡ 미만이다. 9명의 건축사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다양한 층수의 아파트와 일반주택을 적절히 배치해 자연경관을 살리고, 골목길 등 기존 지형을 일부 보존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도록 했다고 노원구는 설명했다.

개발 이후의 조감도 © 노원구

지역 역사를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들어선다. 전시관에 각종 생활 물품과 자료, 행사·잔치·인물 등의 사진을 수집하고 전시해 예전 동네 모습과 마을 주민들의 삶의 기억을 보전할 계획이다. 2025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뒤 2022년 관리처분 계획 인가를 거쳐 착공 예정이다.

 

개발형 도시재생 성공 모델 되나

정비업계에선 백사마을 개발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백사마을은 2008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2011년 9월에는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돼 지역 원형을 최대한 살린 재개발 방식이 결정됐으나, 2016년 1월 사업시행자였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개발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17년 7월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공사업시행자로 나서면서다. 골목길 보존, 아파트와 주택이 결합된 개발 방식도 그때 결정됐다. 재개발이 도시재생을 접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정비 사업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글.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이종호 시원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연세대 공학대학원을 졸업(공학석사)했다. 현재 시원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풍수지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제1회 간향건축문학상 수상 및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특별자치시) 수필 공모전에서 당선(국무총리상)하였고, 노원문화정보센터 등의 현상설계에 당선된 바 있다.
leewoon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