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obbish Architect

Snobbish Architect

고령의 베테랑 배우 윤여정 씨가 각종 국제 영화제 수상으로 화제다. 그녀의 재치 있는 인터뷰는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얼마 전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유머러스한 발언으로 고약한 단어 하나가 회자되었다.
위선적이고 거만한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Snobbish’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교양 있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고 호박씨 까는 위선과 속물을 일컫는다. 그녀는 영국 아카데미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런 단어를 대놓고 사용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감정적 반응이 달라진다. 윤여정 배우의 노련함은 듣는 이들이 뜨끔할 만한 말을 쓰면서도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한 그녀의 유쾌한 인터뷰는 새삼 우리 건축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녀가 언급한 Snobbish England people 대신에 Snobbish Architect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어떤 분야나 그렇겠지만 우리 건축계는 참 독특한 곳이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봤을 때 경제성, 생산성이 상당히 낮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는다. 학력도 낮지 않다. 오히려 학력 인플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석·박사 학위자가 정말 많다. 유학도 많이 간다. 전 세계 유명 건축 대학에는 한국인이 없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한국인이 없는 건축대학은 정말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많은 건축계 인사들이 사석에서 만나는 모임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뒷말도 많고.
그거야 누군들 안 그러랴? 서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해당 소재가 수많은 풍자 소설과 영화에 그렇게 많이 다뤄지는 것이다. 문득 월간 건축사 ‘영화 속 건축 이야기’ 코너에서 한 번 다뤘던 영화 <아키텍트(The Architect)>가 떠오른다. 이 영화 속 건축사는 전형적 가식과 위선,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일부러 찾은 듯한 고상하고 어려운 단어들을 구사하면서 클라이언트에게 환상과 낭만을 강요한다. 자신의 꿈을 클라이언트를 통해 성취하려는 욕망 그 자체인 이기적 인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인물을 금방 만날 수 있다. 알고 있는 한 젊은 건축사가 자신이 일했던 직전 회사 대표 건축사를 언급하면서 ‘도련님 건축사(가)’라는 표현을 썼는데, 뉘앙스가 딱 Snobbish Architect였다.
하지만 이런 위선은 생각에 따라서 쉽게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인정에 대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자신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건 비단 건축사(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고령의 베테랑 배우 윤여정 씨는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에 연이어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수상식장에서의 발언과 이후의 발언에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모두 솔직하게 드러냈다. 열심히 일한 엄마가 받은 보상이라는 말, 먹고살기 위해서 연기를 했다는 그녀의 솔직함은 75세 노배우의 팬덤(fandom)을 구축하는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나는 요즘 생존형 건축사라는 말이 너무 좋다. 껍데기로 꾸미지 말자. 모두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르 코르뷔지에가 될 필요가 없다. 옆 사람이 김중업이 되든, 김수근이 되든 축하해 주고 응원하자. 질투하지 말자. 그저 스스로 건축하는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자. 그런 건축사가 되자.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

비 내리는 거리에서

On a rainy street

,

01 소규모 건축사사무소 창업 12개 스텝

건축담론

편집자 註

이번 건축담론의 주제는 경영 윤리와 관련된 것이다. 의외로 건축계 사람들은 경영이라는 말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일이 비즈니스의 영업과 전략에 해당된다는 것도 인지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화가처럼 개인의 창작 욕망에 끌려서 작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건축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창작을 바탕으로 기술자로서 책임도 가지고, 경영자로서 윤리 의식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업을 통한 이윤창출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건축사는 창작 예술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계약하는 조직관리인이자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축대학에서는 창작 예술인으로서, 기술장인으로서 건축학도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창업하지 않고,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어서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창업해서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용한다면,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비즈니스적인 사고는 절대적이다.
비즈니스적인 사고의 핵심은 ‘개인이 아닌,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의 태도와 자세’다. 건축사사무소 개설은 말 그대로 건축사로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는 사업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업역 특성상 도제 방식의 건축사사무소 운영도 존재하지만, 계약사회인 현대는 계약에 의한 행동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비즈니스 사고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금전적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것 이상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경영학을 창조한 피터 드러커는 경영 윤리와 철학을 강조했다. 데일 카네기는 기업 내·외의 인간관계론을 설파했다. 경영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영이다. 철학적 바탕 아래에서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차대조표를 위해서 마케팅도 알아야 하고, 경쟁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필립 코틀러가 마케팅에 평생을 집중하고, 마이클 포터가 경쟁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것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순간 건축사는 비즈니스 기업인의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담론이 건축사 또는 예비 건축사들(건축대학생, 건축사보)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

02 비즈니스가 윤리적이어야 할까?

건축담론

편집자 註

이번 건축담론의 주제는 경영 윤리와 관련된 것이다. 의외로 건축계 사람들은 경영이라는 말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일이 비즈니스의 영업과 전략에 해당된다는 것도 인지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화가처럼 개인의 창작 욕망에 끌려서 작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건축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창작을 바탕으로 기술자로서 책임도 가지고, 경영자로서 윤리 의식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업을 통한 이윤창출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건축사는 창작 예술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계약하는 조직관리인이자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축대학에서는 창작 예술인으로서, 기술장인으로서 건축학도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창업하지 않고,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어서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창업해서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용한다면,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비즈니스적인 사고는 절대적이다.
비즈니스적인 사고의 핵심은 ‘개인이 아닌,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의 태도와 자세’다. 건축사사무소 개설은 말 그대로 건축사로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는 사업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업역 특성상 도제 방식의 건축사사무소 운영도 존재하지만, 계약사회인 현대는 계약에 의한 행동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비즈니스 사고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금전적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것 이상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경영학을 창조한 피터 드러커는 경영 윤리와 철학을 강조했다. 데일 카네기는 기업 내·외의 인간관계론을 설파했다. 경영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영이다. 철학적 바탕 아래에서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차대조표를 위해서 마케팅도 알아야 하고, 경쟁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필립 코틀러가 마케팅에 평생을 집중하고, 마이클 포터가 경쟁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것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순간 건축사는 비즈니스 기업인의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담론이 건축사 또는 예비 건축사들(건축대학생, 건축사보)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

 

02 Should business be ethical?

목표와 수단의 차이
경영학부 학생이나 MBA 과정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가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을 해본 경험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삶의 목표가 대부분 물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목표는 노동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수 십 억 혹은 수 백 억 정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페라리 같은 고가의 자동차도 가끔씩 등장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려운 경영학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런 목표를 가진 이유에 대해 너무나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이런 목표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목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큰 목표로 꼽은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다. 돈을 집에 쌓아놓고 있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돈은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 즉, 돈을 벌었다고 해도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면, 정작 돈을 벌고 난 후에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페라리 역시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자신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거나, 빠른 속도를 체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페라리를 원한 학생에게 속도를 즐기는지 물어봤더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페라리는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우위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은 목적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이런 목적을 가지면 불행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한국 최고 부자였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전 세계 부자 순위로는 70∼80위 정도에 그쳤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수단을 중시하는 방식의 사고는 경영학에도 팽배해있다. 경영학 원론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 혹은 ‘주주이익 극대화’라고 아직도 가르치고 있다. 옛날 사고방식인데 수단과 목적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익이란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불행해질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
돈 같은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적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면 인생도 달라지고 기업도 달라진다. 대체로 목적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타인, 혹은 사회에 대한 기여와 연결된다.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기업인 노보 노르디스크는 당뇨병을 세상에서 없앤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목표는 노보 노르디스크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킨다. 당뇨병이 없어지면 회사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망하게 된다. 이 회사 CEO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의 인터뷰에서 “당뇨병이 없어져 회사가 망하면 우린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면 되죠”라고 말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조직도 희생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회사의 재무적 성과는 어떨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노력해온 노보 노르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 관련한 혁신을 주도했다. 결국 이 회사 CEO는 HBR이 재임 기간의 재무적 성과를 위주로 평가한 글로벌 100대 CEO 랭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윤리가 경영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노보 노르디스크의 사례는 과연 일반화가 가능할까. 폭력과 비행으로 얼룩진 경영 관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주주이익을 장기적으로 창출한 동인도회사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계에서 윤리가 기업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오랜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다. 윤리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어서 기업 성과와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관시켜서도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선한 기업이 더 큰 성과를 낸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도 많다. 기업이 성과를 잘 내기 때문에 잉여 자원이 생겼고, 덕분에 기부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착한 기업이 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윤리는 성과 창출의 ‘원인’이 아닌 ‘결과’로 봐야 한다.

 

환경 변화와 윤리의 중요성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경영환경이 변화하면서 윤리의 중요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비윤리적인 기업도 동인도회사처럼 높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는 윤리 없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이윤 창출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군부 쿠데타로 집권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이 불가능한 것처럼, 비윤리적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 건 거의 기적의 확률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네트워크다. 세상의 사람과 사물이 모두 연결된 상황에서 비윤리적 관행이나 행동은 언젠가 드러난다. 기업 조직의 가장 깊숙한 비밀 영역인 오너의 행동이 지나치게 비윤리적일 경우, 블라인드 같은 앱을 통해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들도 금방 알 수 있는 시대다.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 윤리의식이 부족한 조직은 폭탄을 안고 생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해서만 윤리가 필요한 건 아니다. 윤리의식은 가장 큰 혁신의 원천이다. BTS를 만든 방시혁 대표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고객인 10∼20대 청춘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윤리적 목적을 가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BTS는 목적 자체가 달랐다. 세상에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 아이돌은 많지만, BTS는 청춘들에게 진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은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는 30∼40대의 유명 작사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지만, BTS는 청춘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기에 BTS 멤버들에게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도록 했다. 실제 10대∼20대로 구성된 BTS 멤버가 청춘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BTS 멤버들이 청춘을 대변하는 가사를 쓴 것은 아니었다. 가식적이거나 남들 앞에서 자신을 쿨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가사들이 많았다. 방시혁 대표는 “진심을 담지 않은 가사들은 모두 ‘빠꾸’ 시켰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춘들이 진짜로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불안, 불만 등을 담은 가사가 나왔다. 그리고 이런 가사는 전 세계 청춘들에게 위로와 공감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BTS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리액션 영상에 오열하는 전 세계 청춘들이 많이 목격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의식에서 나온 전략 덕분이다. 윤리는 가장 큰 혁신의 원천이다.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
건축계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건축사 승효상 대표는 필자가 제작에 참여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사유재산이어도 내 집이 이웃집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절제해야 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주가 자기 돈으로 집을 짓더라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요구를 할 때 건축사가 과감하게 반대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건축주가 건축사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해당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사례를 통해 그의 철학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실제 한 건축주는 풍수지리적 이유를 들며 길 가까이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요구를 들어주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특히 옆집에 위압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승효상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건축주는 내 땅에 내 돈으로 집을 짓는데 왜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느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건축주는 몇 년 후 더 큰 프로젝트를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건축주는 자꾸 승효상 대표의 주장을 떠올렸고 결국 그의 생각이 더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앞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선도한다. 앞선 생각의 가장 큰 조건은 윤리다. 윤리성이 부재하면 화려한 구호나 수사,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된 미래 전략도 결국 진실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글. 김남국 Kim, Namkuk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영 전문지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글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BTS Insight 잘함과 진심> <지금 당장 경영전략 공부하라>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namkuk@gmail.com

,

03 슬기로운 건축사 생활_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는 리더의 역할

건축담론

편집자 註

이번 건축담론의 주제는 경영 윤리와 관련된 것이다. 의외로 건축계 사람들은 경영이라는 말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일이 비즈니스의 영업과 전략에 해당된다는 것도 인지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화가처럼 개인의 창작 욕망에 끌려서 작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건축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창작을 바탕으로 기술자로서 책임도 가지고, 경영자로서 윤리 의식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업을 통한 이윤창출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건축사는 창작 예술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계약하는 조직관리인이자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축대학에서는 창작 예술인으로서, 기술장인으로서 건축학도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창업하지 않고,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어서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창업해서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용한다면,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비즈니스적인 사고는 절대적이다.
비즈니스적인 사고의 핵심은 ‘개인이 아닌,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의 태도와 자세’다. 건축사사무소 개설은 말 그대로 건축사로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는 사업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업역 특성상 도제 방식의 건축사사무소 운영도 존재하지만, 계약사회인 현대는 계약에 의한 행동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비즈니스 사고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금전적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것 이상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경영학을 창조한 피터 드러커는 경영 윤리와 철학을 강조했다. 데일 카네기는 기업 내·외의 인간관계론을 설파했다. 경영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영이다. 철학적 바탕 아래에서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차대조표를 위해서 마케팅도 알아야 하고, 경쟁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필립 코틀러가 마케팅에 평생을 집중하고, 마이클 포터가 경쟁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것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순간 건축사는 비즈니스 기업인의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담론이 건축사 또는 예비 건축사들(건축대학생, 건축사보)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

 

03 Wise architect life
The role of a leader in managing an architect office

고백하건대 나는 뛰어난 리더가 아니다. 오히려 리더로서 드러내기 부끄러울 지경이었음을 고백한다. 사무실 개업 초기에는 ‘라떼는 말야, 야근과 철야는 당연했어~’ 식의 훈계로 직원들의 열정을 강요했고, 결과물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일 중심적 사고’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바람에 직원들과 트러블이 잦았다. 나름 잘해준다고 복지를 고려했는데, 돌이켜보니 내 방식의 복지였다. 직원들이 신명 나게 일하며 만족도가 높은 즐거운 직장 문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직원 스스로 하도록 맡겨야 할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원 한 명의 마음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부터 조직과 전략, 비전에 대해 틈나는 대로 읽으며 조직에 적용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결국 깨닫게 된 사실은 ‘윗사람(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브레네 브라운’의 저서 『리더의 용기』는 내 모습 그대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꽤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을 중심으로 건축사로서 팀이나 사무소를 운영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리더십에 관한 지혜를 나누고자 한다.

리더의 정의
먼저 리더는 당연히 팔로워가 있는 자리이다. 브레네 브라운은 ‘리더는 지위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나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잠재력에 기회를 주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건축사의 업무적 특성상 클라이언트 미팅부터 설계, 견적, 행정업무, 현장 감리 등 다양한 업무를 감당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직원에게보다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효율적인 업무 성과를 내고, 더 많은 자유시간을 확보하여 미래에 대한 계획과 업역을 넓히기 위해선 끊임없이 직원들의 역량을 키워내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대담한 리더의 4가지 능력
이 책의 핵심은 ‘대담한 리더의 4가지 능력’이다. ①취약성을 인정한다. ②가치관에 따라 살아간다. ③대담하게 신뢰한다. ④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취약성을 인정한다’ 하며 살아왔다.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에, 직원들은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을 알아서 했다. 또한, 개인적인 성향상 프로젝트나 작은 결정사항조차 직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물론 결정은 그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통합적으로 결정하였다. 자연적으로 사무실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갔고, 서로에 대해 취향부터 사생활까지도 알게 되어 누군가 어려운 상황일 때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조직 구성원들도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취약성을 극복해나가는 조직이 되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현재 할 말 다 하면서 9년째 함께하는 직원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능력은 ‘가치관대로 살기’이다. 취약함만 보인다면 리더에 대한 신뢰를 쌓기는 어려울 것이다. 리더가 올바른 것을 선택하고, 쉬운 방법이 아니라도 올바른 결정이 언젠가는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내하며 성실하게 보여준다면 직원들은 리더를 따른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건축계에 관행과 같은 불법적인 것들이 너무나 만연한 모습을 보고서 도저히 건축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실력을 키우면 좋은 기회가 많다고 얘기했기에, 공정한 건축계를 만들기 위해 우선 나부터 룰을 지키자 생각했다. 심사위원일 때 간혹 계획안을 보여주겠다고 연락이 오면 오시지 말라고 하고, 선수로 참여할 때는 아는 심사위원이 있어도 참여한다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야근할 때는 야근수당을 꼭 챙겼다. 준공검사 때 특검에게 봉투를 준 적도 없다. 주차 몇 센티로 꼬투리 잡으면 일일이 다 대응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인데, 아직도 유혹이 되는 관행들이지만, 공정한 건축계를 만들고 싶다는 기준 하나로 지켰다. 각 프로젝트마다 좋은 결과물을 내려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임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사하게도 나에겐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신뢰’를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게 견디면서 가치관에 따라 살았더니 시간이 준 선물은 스스로의 당당함과 타인이 주는 신뢰였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클라이언트에게 신뢰가 되어 다시 좋은 프로젝트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대담하게 신뢰한다’는 영역은 성장하는 사무소를 위해선 더욱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임을 깨달았다. 최대한 직원들이 스스로 하도록 결정권을 더 많이 넘겨줘야 내 능력으로 한계 지어지는 사무소가 되지 않고 직원들의 무한한 능력까지 더해져서 성장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레네 브라운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능력’을 꼽았다. 버티기로 지내왔는데 무수히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서야 했기에, 이제는 좀 더 단단한 회복탄력성의 힘을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는 정답을 가진 척하지 않고, 대화와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한다.

 

최악의 리더십
의외로 지금 내가 안주하려고 하는 모습이 최악의 리더십임을 깨닫게 되어 정신이 번쩍 드는 항목들이었다. ①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 작은 비전은 달성 가능성은 높지만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해서 팀원들로 하여금 안주하지 않게 해야 회사도 직원도 성장한다. ②현실에 당면한 문제를 처리하는데 급급한 것.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방향을 제시한다.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훈련은 현재의 문제를 쉽고 간단하게 바라볼 수 있다. ③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 변화에 잘 대응하는 리더는 혁신을 주도한다.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기르자. 좋은 조직은 구성원들이 긴장하는 조직이다. ④소통하지 않는 것. 소통하지 않고 자율이라는 것에 맡기지 않아야 한다. 진정한 리더는 오버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며, 알아들을 때까지 끝없이 소통해야 한다. ⑤타고난 리더는 타고났다고 체념하는 것. 리더는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깨닫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수정하는 과정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8년 동안 빈집으로 있던 건물을 구입 후 직원들과 함께 직접 만든 일터 사옥. 온 디자인 건축사사무소 ©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진정한 리더의 단 한가지 조건 – 헌신
마무리하며, 『리더의 조건』에서 ‘존 맥스웰’은 진정한 리더의 단 한 가지 조건을 ‘헌신’이라 하였다. ‘헌신’은 ‘꿈’만 꾸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며,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이라 했다. 그러하기에 ‘헌신’은 노동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헌신하지 않는 리더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결론은 단순한 진리 ‘성실’이다. 단순히 성실하게 묵묵히 걸어가고 계시는 많은 건축사님, 어깨 가벼이 취약함을 인정하면서 믿음대로 옳은 일을 선택하면서 묵묵히 걸어간다면 어느새 그 걸음을 쫓아오는 팔로워가 있으니 그대 발걸음 더욱 든든히 굳세기를.

 

글. 박현진 Park, Hyunjin (주)온디자인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박현진 (주)온디자인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주)온디자인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이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중랑구 마을건축가, 광주시 공공건축가이고 한국교통대학교 및 홍익대학교에서 14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 프랑스 쎈떼띠엔느 비엔날레에서 초청 전시를 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저서 『건축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을 공동 집필하였다.
hjpark@onadp.co.kr

,

건축비평_주제의 삶 – 이로재김효만의 건축

Architecture Criticism
Stellafiore -The Life of a Theme. The Architecture of IROJEKHM

스텔라피오레?
화헌, 그리고 최근 경독재- 이들 건축물의 이름은 지금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이들이 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여기더라도 그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주변의 현장 건축과는 다르게 다들 초연한 자태였다. 이들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환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스텔라피오레’는 새롭게 기대하지 못한 방식의 충격을 한층 더했다. 19채의 단지를 위한 별과 꽃의 주제어, 주제의 직유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 외관, 그리고 다양한 색채. 세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진 주거와 건축물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들,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들, 그 뒤에서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또, 주말이면 찾아와 이곳저곳을 보살피는 시공사 주인 내외. 반면 선입관, 아니 편견을 갖도록 하는 공식 사진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깊이 자연 속으로 파고든 색조, 그리고 공간들. 이 모두가 머물 곳은 어디일지….

김효만 건축사를 두 번 보았다. 2015년 겨울과 2020년 겨울. 그와 나눈 대화의 중심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개념어들이 있었다. 전통과 현대, 도시와 자연, 율동감, 시간적 장치, 공간 등…. 그리고 나중에는 “건축의 표피에 자연을 피복화하기, 건축 속에서 자연 만지기” 등의 수사가 사용된, 그가 직접 지은 문장도 읽을 수 있었다. 비평가들과의 집담회에서 랜드마크 개념(아키피오레, 화이트보트, 포토피아 처럼)을 말할 때는 조형에 대한 의지도 분명했다.

그런데 ‘수사’와 ‘의지’가 건축사를 만든다면, 아마도 건축은 건축이론가들이 대신했을 것이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피터 아이젠만 건축사의 경우를 보면 이 아이러니가 보인다. 그는 건축물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이론가로, 이론에 문제가 생기면 건축사로 자신을 포장한다. 뫼비우스 띠 건축물(Reinhardt Haus)이나 이중시대정신(Double Zeitgeist) 등을 둘러싼 그의 입장이 그렇다. 이는 단지 그럴듯할 뿐이다. 이들이 책임져야 할 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그 노력은 허무해진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길까? 건축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애정이 되는지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스텔라피오레 © Sergio Pirrone

김효만의 건축을 자세히 보았다. 그의 창작과 과정은 가까이에서, 그리고 이들의 의미의 층위와 이 의미가 머물 영역은 먼 시점에서 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건축에서 ‘시간’을 보았고, ‘공간’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공간의 진실은 시간으로(Die Wahrheit des Raumes wird die Zeit)”있게 된다는 어느 철학자(헤겔, 엔치클로페디아)의 테제가, 어렴풋한 하나의 상으로 그려질 정도였다. 이 테제를 붙잡고 오랫동안 씨름했을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은 시간을 초월했기에 시간을 애써 볼 이유가 없고, 시간을 보이도록 시도했던 한스 샤룬(Hans Scharoun)의 건축은 오히려 공간을 전면에 드러내고 말았다. 19세기와 20세기, 수많은 문헌이 시간과 공간, 인간의 주제를 수많은 언사로 다루었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복잡하여 명료한 성격을 띠지는 않는 듯하다. 그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은 시간, 공간은 공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50년 후(1830년)에 헤겔은 이를 염두에 두고, 표상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공간을 먼저, 그러고 나서 ‘또한’ 시간을 ‘소유’한다고 했으니… 우리의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건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철학자(이들 사이에서 쇼펜하우어는 또 다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5. 건축론)도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헤겔은 이어서 “바로 이 ‘또한’을 가지고 철학은 서로 다툰다”고 했다.

그런데 학문의 진보는 이 ‘또한’이 어떤 구조인지 적어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리 영역의 ‘시공간’, 회화와 건축예술에서의 시간, 음악에서의 공간 등. 쇼펜하우어는 “건축이 얼어있는 음악이라니, 시답지 않은 허튼소리다”라고 이 비유를 부정했지만, 어느덧 이 표제어는 셸링부터 괴테를 거쳐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지적 자산이 되었다.

스텔라피오레 © Sergio Pirrone

우리의 자산? 김효만의 건축이 다루고 있을 자산?
그렇다. 그의 화헌이 그랬고, 스텔라피오레도 그렇다. 스킵플로어 구성, 실내의 중심에 위치한 계단의 2박 구성, 입면의 3박 형식들. 근대 건축사들이 기하학의 질서라는 명분으로 고집해왔던 사면 구성이 아닌, 오히려 이를 넘어 중세 석공 장인들이 비밀스럽게 사용했던 삼각도법 식의 입면 구성. 천공된 바닥의 계단들, 육신의 중압을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시야의 유혹. 가까이 또 멀리, 그리고 높은 곳을 알리는 시상들, 움직임을 멈춰도 가두는 것이 아니라 감싸는 영역들. 이리저리 둘러보아야 알 것만 같은 불편의 구조가 아니라, 우리의 내적·심적 구조를 대변하는 요소들, 곧 벽면과 빛. 이들이 우리를 마주한다.

스텔라피오레 © 김영철

그의 건축은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보장하는가? 어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눈을 가리게 하고 내부의 여러 곳을 안내할 때 마치 자신이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훌륭한 건축이라고 했다(괴테, 건축론, 1795).
나와 스텔라피오레에 동행했던 이도 세 번째 유형을 보는 과정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한 수 더 떠서 주제넘게 우리의 음악 형식인 ‘산조’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도입, 혹은 엇모리부터 중모리, 휘몰이의 장단까지 나의 육신뿐만 아니라 감정들, 그리고 내 생각도 자연스레 펼쳐졌다. 마치 가야금산조 명인 함동정월과 그의 고수 김명환의 연주를 건축에서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이미 음악학 연구자를 통해 우리의 산조와 서양의 소나타가 동서의 지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생겨난 같은 형식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왜 음악과 건축이 함께 해야 하는가? 구조라는 이름의 형식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공간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시간 개념도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또한’의 의미와 가치를 ‘음악의 건축’이, 그리고 ‘건축의 음악’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건축에서는 공간의 성격상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어서인지 공간을 허와 무 등으로 번역해서 이 주제를 다투어 왔다. 그런데 나는 공간의 근본을 마당이나, 혹은 흔히 보는 것처럼 기능으로 정의하는 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공간은 한정된 것도, 형식의 결과를 위한 이름도 아니기 때문이며, 정의될 수도 없고, 정의되더라도 지속적이지 않은, 조건이며 선험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건축은 지금까지 많이 회자하던 ‘한국성’의 건축 주제를 답보 상태에서 비약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다. 김효만 건축의 가치가 그렇고, 그의 건축을 둘러싼 논의가 그렇다. 김효만의 건축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던 곳에서, 이 주제는 한쪽에서는 정신적 성분(빈자, 허 등의 개념을 생각한다)으로 내용을 구성하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재료의 진정성, 형태의 모방, 기능 개념의 전승, 혹은 기술의 주체로 한정된 작용인 등을 논구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채워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대부분 동의하기 어려운 분산의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김효만의 건축 세계를 더 논구하고, 그 세계를 더욱 펼쳐내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김효만 건축사는 가야금 명인 함동정월과 같다. 함동정월은 ‘가락이 힘차고, 구성미가 뛰어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를 다시 태어나게 했던 장본인이었고, 천하의 명고수 일산(一山) 김명환이 그와 함께 했다. 그런데 김효만의 고수 역할은 누가 하는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사실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스텔라피오레를 보았기에 상상을 떠올릴 수 있다.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면 설명은 충분할 것 같다.

스텔라피오레 © Sergio Pirrone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글. 김영철 Kim, Youngcheol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김영철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현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양교육부 조교수.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베를린 공과대학교 건축학과 건축이론연구소에서 예술학 체계와 건축론을 새로 정초한 아우구스트 슈마르조를 연구하였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지적 성장과 건축론을 다룬 노이마이어의 『꾸밈 없는 언어』와 베를라헤의 저서 『강연과 논문』을 번역했다. 2012년부터 ‘토요건축강독’을 진행하였고, 2021년에 강독 참여자들과 『건축의 이론과 실천(1993-2009)』을 번역하였다.
fran_young@hanmail.net

,

사라지는 마을 돌산마을

Disappearing village
Dolsan Village

가난이 머물다 간 흔적은 마음을 멍들게 할 때도 있지만
한참을 오다가 뒤돌아보면
전이되어버린 좁쌀 같은 생의 암 덩어리를 향한 치유의 손길
빈 신작로 길 위를 구르는 바람 소리에 가만가만 물어보면
가난처럼 귀한 유산도 없단다

-이충재 詩, ‘가난 유산’ 中

 

전체 5만 5,000제곱미터 산기슭에 300여 채의 무허가 촌락,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인 문현동 돌산마을(부산시 남구 돌산1길 16)이 6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은 황경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황령마을이라 불렸고, 돌들로 형성된 절벽 중간에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돌산마을이라 불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된 공동묘지 터에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주거지로 90여 기의 무덤과 함께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죽은 자와 산자의 동거촌이 1970년대 도시빈민들의 피난처로 이어지면서 마을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기존의 산비탈에서 더 높고 험한 지금의 고개 정상까지 확장되었다. 마을 전체가 무허가 건물이어서 전기와 수도 등의 기반시설 역시 갖춰지지 않아 오랫동안 시설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날마다 철거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며 삶을 살아온 주민들의 공동체였다.
2020년 6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재개발 사업으로 지상 28층 총 1,072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될 이곳, 전쟁과 산업화의 그림자인 피난민과 도시빈민들의 삶의 역사도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고 주민 대다수는 또 다른 피난처로 이동해야 하는 가난의 이주가 반복되는 것이다.

고단한 삶을 승화시키며 벼랑에 떨어진 자들의 삶을 지켜주었던 피난처.
시간을 거슬러 이들이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소통 그리고 삶의 희망 – 벽화
2008년 부산시 벽화사업을 통하여 40여 점의 다양한 벽화로 탈바꿈한 마을이 세상의 이목을 받아 많은 유명세를 치르면서, 고립된 삶을 살던 주민들이 마을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소통의 삶을 부여받는 심리적 변화를 겪는 계기가 되었다.

무덤 속 마을의 삶의 애착 – 숙명과 공생
기반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주변의 무덤들로 인한 무서움과 고립, 그리고 삶의 의지.
이 두 조건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공생해야 했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

용어@건축 06 플라스틱

Term@Architecture 06
Plastic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지금에 와서 플라스틱 없는 건축물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플라스틱이 탄생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당구공의 재료인 코끼리의 이빨, 즉 상아를 대체할 재료를 찾으려던 노력이 오늘날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19세기의 플라스틱은 천연원료로 가공되었으나, 1907년 벨기에 태생의 미국인 레오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해 천연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합성수지를 발명한 것이 플라스틱의 시작이었다. 1922년 플라스틱이 수천 개의 분자 사슬, 즉 고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Hermann Staudinger)에 의해 밝혀지면서 플라스틱은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상아(코끼리 이빨)

상아로 만든 당구공

플라스틱은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원료의 의미라기보다는 가공성을 뜻한다. 플라스틱의 재료적 이름은 합성수지(合成樹脂)다. 수지(樹脂)는 나무의 진액이나 호박처럼 나무의 진액이 굳은 것을 말한다. 소나무의 진인 송진이 대표적인 천연수지이다. 영문으로는 레진(resin)이다. 치과에서 치아 모양을 성형하는 재료인 레진(resin)도 같은 레진(resin)이다.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형태를 가공하고 굳혀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재료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틱은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합성한 재료로 만든 수지(樹脂), 즉 레진(resin)이므로 합성수지라고 한다.

천연수지인 호박

건축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어떤 것이 있을까?

PVC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PVC는 폴리염화비닐(Polyvinyl Chloride)의 약자인데, 플라스틱 종류 중에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종류이다. 건축물에서는 배수관으로 PVC 파이프를 사용하고, 창틀도 PVC 창틀을 사용하는 예가 많다. 부식되지 않고, 열을 전달하지 않으며 가격까지 저렴하니 빠르게 확산 적용되어 지금은 대체할 재료가 없을 정도다. PVC는 막(membrane) 형태로 제작되어 막구조물이나 공기를 넣은 건축물(pneumatic architecture)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fuji pavilion은 대표적인 PVC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여의도에 설치된 ‘중소기업 협동조합중앙회 여의도 종합전시장’을 들 수 있다. 독특한 외관 때문에 굼벵이관이라는 별명이 붙었었고, 인상적인 랜드마크였다. 지금의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자리다. 뮌헨 월드컵 경기장이나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사용된 pneumatic structure에서는 PVC보다 향상된 ETFE(Ethylene tetrafluoroetylene)가 사용되며, PVC를 대체하였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막(membrace) 구조물이 PVC로 제작된다. 막구조물을 보고 무조건 ETFE 구조라고 아는 체하는 불상사는 없어야겠다.

PVC 파이프

PVC ; 오사카, fuji pavilion 1970
ⓒ kouji OOTA (flickr.com)

ETFE ; 뮌헨 월드컵경기장 2002
ⓒ Diego Delso (en.wikipedia.org)

PVC 창틀

PVC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여의도종합전시장 1996
ⓒ kbiznews.co.kr

ETFE ; 베이지, water cube 2008
ⓒ Diego Delso (en.wikipedia.org)

아크릴(acrylic)은 아크릴산(acrylic acid) 또는 아크릴수지를 일컫는 보통명사다. 주로 판형태로 가공하여 사용되는데, 1930년부터 사용화된 역사가 오래된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투명성이 높아 유리를 대신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항공기와 잠수함에 널리 사용되었다. 아크릴을 사용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1972년에 완성된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일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귄터 베니쉬와 플라이 오토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아크릴(PLEXIGLASⓇ) 판과 케이블로 구성된 투명한 지붕으로 무려 74,000㎡를 덮었다. 1972년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바닷속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아쿠아리움의 투명한 창은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어항은 유리로 만들 수 있지만, 아쿠아리움의 창은 유리로 만들지 않는다. 창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아쿠아리움은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아크릴이 사용된다. 아쿠아리움에 간다면 당신과 바다 사이에는 두꺼운 아크릴이 있는 셈이다.

아크릴 ;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의 아크릴 지붕 1972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는 1953년 독일 바이엘 사가 처음 개발한 플라스틱이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방패로 사용할 정도로 내충격성이 높은데, 유리의 250배 정도라고 한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이름이나 용어가 잘못 사용되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방탄 플라스틱’은 내충격성을 과장한 표현이다. ‘깨지지 않는 아크릴’이라는 표현은 잘 깨지는 아크릴을 대체해서 판매하려는 목적이 왜곡된 것이다.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재료명을 모르고, ‘렉산’이나 ‘단파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사용인 것이다. ‘렉산(Lexan™)’은 미국의 GE Plastic에서 폴리카보네이트 제품에 붙인 일종의 제품명이다. ‘단파론(danpalon®)’은 이스라엘의 Danpal 사가 생산하는 복층구조의 폴리카보네이트 패널 제품이고, 비복층 폴리카보네이트 제품군은 ‘단팔(danpal®)’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재료명은 폴리카보네이트이고, 회사에 따라 제품명으로 각각 ‘렉산(lexan™)’이나 ‘단파론(danpalon®)’ 등이 있는 것이다. 제품명을 재료명처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겠다.

아크릴 ; 아쿠아리움 창으로 사용될 두꺼운 아크릴 ⓒ fr.zunhaiacrylic.com

플라스틱의 다양성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웠을까?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었을까? 스티로폴이나 스티로폼은 오래도록 잘못 사용되고 혼란만 일으킨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BASF 사는 1951년 폴리스티렌(polyStyrene)을 발포시켜 작은 알갱이(bead)로 만들고, 이 알갱이를 다시 압축해서 큰 덩어리로 제작하여 비드(bead) 법 단열재를 생산했다. ‘스티로폴(Styropor®)’은 BASF 사가 국제적으로 등록한 제품명이다. ‘스티로폼(Styroform™)’은 미국 회사인 DuPont 사의 비드(bead)법 단열재 제품명이다. 비드(bead)는 구슬이나 염주를 뜻하는데,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의 구슬이 바로 bead다. 구슬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비즈공예의 비즈(beads)와 비드법 단열재의 비드(bead)가 같은 단어인 점이 흥미롭다. 비드법 단열재와 구분되는 압출법 단열재인 ‘아이소핑크’나 ‘골드폼’ 등도 발포폴리스티렌(Expanded PolyStyrene)을 재료로 한다. 비드법 단열재와 재료는 같다. 비드 형태로 가공하는 중간 과정 없이 전체를 압출해서 생산하므로 제작방법이 다르다.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전문가라면 정확한 용어로 구분해야겠다.

복층 폴리카보네이트

EPS 발포 폴리스틸렌(비드법 단열재)

아크릴계 인조석

인조대리석은 스티로폼보다 더 심각하다. 주방에서 싱크대 상판으로 주로 사용하는 인조대리석은 창턱이나 욕실의 문턱 등 물을 사용하거나 물이 묻을 수 있는 곳에 많이 적용하는 재료다. 대리석 무늬를 닮은 것도 있지만, 화강암이나 사암과 같은 다른 석재의 무늬를 더 닮은 것 같은데, 왜 인조대리석이라고 부를까? 인조대리석은 대리석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을 인조대리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대리석 조각을 몰탈과 섞고 굳힌 뒤 갈아낸 테라죠를 인조대리석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된다. 대리석이나 화강석 같은 석재의 무늬를 모방한 재료는 타일이나 필름, 페인트 등 다양하다. 우리가 인조대리석이라고 부르는 주방 상판의 성분을 살펴보면 여러 색깔의 아크릴 조각을 혼합하여 다양한 석재 무늬를 모방했다. 재료는 아크릴 계열의 플라스틱이다. 그러니 석재를 모방한 타일 등의 재료와 구분하여 ‘아크릴계 인조석’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인조대리석’이라고 지칭하는 것보다 적절하겠다. 국내에서는 엘지(LG)가 하이막스(Hi-Macs)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하이막스(Hi-Macs) 홈페이지의 제품 설명에는 아크릴 계열이라는 설명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듀폰(Dupon)은 코리안(Corian)이라는 제품명을 사용한다. 가격이 높은 Corian을 고급 재료라며 특별하고 새로운 재료처럼 설명하는 상황을 종종 접한다. 크기가 크거나, 유선형의 독특한 형태로 제작하려면 가공과정에서 난이도가 높으니 가격이 높을 수 있으나, 재료는 주방에서 싱크대 상판으로 널리 사용하는 아크릴 계열 합성고분자 화합물, 즉 플라스틱이다.

실크벽지에서는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실크(silk)를 찾을 수 없다. 합지벽지가 바탕 종이 위에 무늬가 인쇄된 종이를 붙인 것이라면, 우리가 흔히 실크벽지라고 지칭하는 벽지는 바탕 종이 위에 PVC로 질감과 무늬층을 만든 벽지다. 바탕이 되는 백상지의 전면에 벽지 무늬를 인쇄한다. 그리고 졸(sol)상태로 만든 폴리염화비닐(PVC)을 도포하고, 입체무늬를 프레스(press)로 눌러서 마무리 한다. 벽지를 취급하는 업체에 물어봐도 폴리염화비닐 벽지를 언제부터 실크벽지로 부르게 되었는지 답해주지 못했다. 그저 실크처럼 부드럽고 매끈해서 실크벽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는 추측성 답변 뿐이었다. 아연 도금된 철판에 페인트를 칠한 ‘리얼징크’는 그래도 아연 성분이 약간이라도 있는데, 실크벽지에는 실크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왜 폴리염화비닐 벽지를 실크벽지라고 부르고 있는지 궁금하고, 앞으로 바로 잡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티로폼이나 렉산처럼 제품명이 재료명으로 잘못 사용되거나 인조대리석이나 실크벽지처럼 잘못된 표현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

북한건축 워치 04 북한의 건축행정조직Ⅱ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4
North Korea’s architectural administration organizationⅡ

도시경영성은 도시의 건물과 시설들을 관리·유지·보존하는 사업을 담당하는 행정조직이다. 북한에서 도시시설물을 유지·관리하는 중앙행정조직이 있는 것은 토지와 건물이 모두 국가재산이므로 관리도 국가에서 하기 때문이다.

도시경영의 주 업무는 북한의 「도시경영법」에 규정되어 있다. 도시경영법 1조에 ‘도시경영은 도시와 농촌의 건물과 시설물을 보호·관리하고 도시와 마을을 전망성 있게 꾸려나가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도시경영의 내용으로 ▲건물의 관리 ▲상하수도 및 난방의 운영 ▲도시도로 및 하천의 정리 ▲원림조성(가로수관리, 공원녹지관리) ▲도시미화 등을 규정하고 있다. 건물관리에는 건물보수, 건물의 분류 및 등록, 살림집 및 공공시설의 이용허가 등이 포함되며, 도시미화는 주변에 대한 청소, 건물외벽의 도장 등 미관의 유지를 의미한다.

도시경영성은 1948년 북한의 내각이 만들어지면서 설립되었으며, 1998년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도시경영 및 국토환경보호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03년에 도시경영성과 국토환경보호성으로 분리되었다. 최근의 도시경영성 장관은 최종건(1998~2008년), 황학원(2008~2013년), 강영수(2013년~현재) 등이다. 최종건은 소련 공산대학 유학경험이 있는 건설기술자 출신이고, 황학원은 조선건축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설계가 출신이다.

수도건설위원회(2020년 현재 위원장 조석호)는 2002년 4월 29일 창설되었다. 초대 위원장은 신일남으로, 부총리로 겸직 발령했다. 수도건설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평양시 도시정비 사업을 총괄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한 조치로 평양시 산하의 수도건설연합총국 등 관련 기관들을 통폐합하여 설립하였다(연합. 2002.4.30.).

수도건설위원회 청사(북한방송 캡쳐)

2000년대 초반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경제회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시기였다. 1998년 헌법을 개정하고, 남한과 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였으며, 2000년에는 개성공업지구개발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7.1경제개혁조치를 시행하여 가격과 임금을 인상하고, 시장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수도건설위원회 설립은 이러한 경제복구의 일환으로 평양에 3만 호의 살림집 건설, 도로, 상하수도 등 정비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경제난으로 국가전체의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대외개방에 대비하여 우선 평양을 차별적으로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2021년 3월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 착공식. 착공식에는 김정은 위원장, 조용원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비서, 김덕훈 내각총리, 리일환·오수용 중앙위 비서 등이 참석했다(북한방송 캡처).

초대 수도건설위원장인 신일남은 1970년대 초 평양지하철을 설계·지휘한 건설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민보안성(현 사회안전성) 부상과 조선인민경비대 산하 도로총국(8총국) 국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북한에는 토목시공을 담당하는 조직인 7총국(토목총국)과 8총국(도로총국)이 사회안전성(구 인민보안성) 산하에 있었다. 사회안전성은 남한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부처이지만, 군과 인사교류가 가능하므로 반관, 반군형태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7·8총국은 인민군에 이관되어 공병군단과 도로건설군단이 되었다.

그 외에 건축관련 조직으로 국가설계총국과 조선건축가동맹이 있다.

국가설계총국(2019년 현재 총국장 조종문)은 국가건설감독성에 속한 기관으로 북한의 중요대상 건축물의 설계를 심의하고 감독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최근 원산, 삼지연 등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건설공사의 설계를 심의하고, 건설현장을 점검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조선건축가동맹은 해방 후 북조선건축가동맹으로 출발하였으나, 1954년 조선건축가동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맹은 건축사들의 경험 교환, 건축지식의 보급과 건축사들이 조선로동당 노선과 정책에 따라 활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선건축가동맹의 기능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동맹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 ②동맹원들의 건축적 시야를 넓혀주고 자질을 높여주기 위한 학술발표회, 합평회, 토론회, 강습회, 견학, 창작경험발표회, 전시회 등의 개최 ③전국적 범위에서 설계현상모집사업을 계획적으로 조직하며, 국제 건축축전에 우수한 작품을 출품하도록 하여 동맹원들의 창작적 의욕 고취 ④건축창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사업과 동맹원들을 건축창작에 적극 조직·동원하는 사업 ⑤동맹원들이 동맹규약을 자각적으로 지키며 동맹에서 주는 분공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독려 ⑥ 국제건축가동맹을 비롯한 다른 나라 건축가동맹과 건축교류사업 등이다.

중앙에 동맹중앙위원회, 도(직할시)에 도(직할시)동맹위원회 그리고 기관, 기업소들에 기관, 기업소동맹위원회 초급단체들로 이루어져있으며, 건축사들과 건설기술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1955년 7월에 국제건축사연맹(UIA, Union Internationale des Architectes)에 가입하였다. 2011년 현재 조선건축가동맹의 구성은 위원장 배달준과 김하종, 림근복, 박길우, 최명준, 황학원, 배동일 등 6명의 부위원장, 그리고 서기장 1명과 중앙위원 1명, 함경북도위원회 위원장 1명이 속해 있다. 그리고 대회와 총회, 동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상무위원회가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년 기준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심영학이다. 한국의 건축사협회는 2018년 중국에서 북한의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심영학과 만나 남북건축교류관련 협의를 하기도 하였다.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내에 알려진 북한건축사 김정희, 1990년대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응상도 역임하였다.

북한영화 <한건축사에 대한 이야기>. 한건축사에 대한 이야기는 북한건축사 김정희에 대한 영화로 2부로 되어 있다.

조선건축가동맹은 2000년부터 5.21건축축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5월 21일은 대동강 개수공사를 시작한 날로 북한에서는 건설절로 기념하고 있다. 건축축전에는 각 지역의 설계연구소, 대학, 건설기업소, 건재기업소, 장비기업소에서 참가하며, 건축계획안, 건축자재, 건설장비 건설전산화 분야를 전시한다. 건축계획안이 중심이지만, 최근에는 건축 건축전산화와 건축자재분야가 강조되고 있다. 건축계획안은 건축모형이나 영상자료는 없으며, 주로 판넬을 전시하고 건축자재와 장비는 실제 제품을 전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축축전은 많은 일반인이 관람하며, 2014년부터는 텔레비전에서 특집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건축축전과 더불어 2005년부터는 건축미학토론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건축축전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개하는 것에 비하여 토론회는 건축관련 기관이 참여하여 그간의 성과와 향후 사업방향을 논의한다. 건축미학토론회에는 조선건축가동맹, 평양건축종합대학, 백두산건축연구원, 평양도시설계연구원, 국가과학원 건축공학분소, 국가건설감독성 등이 참석한다.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는 1987년부터 <조선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다. 처음에는 계간지(연 4회) 형태로 발간하였으며, 2016년부터 격월간지(연 6회)로 발간하고 있다. 2017년 3월에 100호를 발행하였다. 조선건축은 최근 건립된 건축물에 대한 소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 외에 계획이론, 기술동향 등에 대한 기사도 싣고 있다.

북한의 건축관련 연구소로는 국가과학원 산하에 건축공학분원(구 건설건재분원)이 있다. 국가과학원은 1952년 ‘과학원’이라는 명칭으로 창립되었다. 창립 시 사회과학, 자연과학기술, 농학의학 등의 3개 부분위원회와 물리수학, 화학, 농학, 의학, 경제법학, 조선어 및 조선문학, 물질문화사, 역사학 등의 8개 연구소로 출발하였다. 1956년 농학연구소와 의학연구소가 분리되어 각각 농업과학원과 의학과학원이 되었고, 1964년에는 사회과학 부문이 사회과학원으로 분리되었다. 1982년 정무원(현 내각)의 행정부처로 승격되었고, 이후 1994년 국가과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정무원에 속한 부속 연구기관을 통합·흡수하면서 기구를 확대하였다. 1998년 내각 조직 개편 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통합하면서 다시 과학원이 되었고, 2005년 다시 국가과학원으로 변경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과학원(科學院)).

국가과학원에는 11개의 분원이 소속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잔디분원이 있다는 것이다. 잔디분원은 평양과 대도시가 황량하므로 유럽처럼 잔디밭을 조성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로 대규모 연구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건축공학분원(건설건재분원)은 1958년에 당시 국가건설위원회 산하 연구소들을 통합해 설립하였고, 이후 국가과학원 산하 전문분원이 되었다. 건설 관련 과학기술 연구와 대기념비적 건축물 완공에 주력하고 있으며, 산하 연구소 외에 시험건설사업소, 중간시험공장, 박사원, 재교육강습소 등이 있다(북한의 과학기술 현황 분석을 통한 협력이슈 발굴 연구 31p,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2015년 3월). 건축공학분원 산하에는 건축공학연구소를 비롯하여 건설기계연구소, 건설재료연구소, 무기건재연구소, 유기건재연구소, 도로공학연구소 등 총 6개의 연구소가 있다. 건축공학연구소는 건축계획이나 건축물리 및 건설구조 분야에서 제기되는 이론실천적 문제들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과학원 산하 공학연구실 건축연구실이 모체이다. 건설기계연구소는 건축의 기계화 및 자동화, 강화 콘크리트의 대규모 제조 및 현대화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무기건재연구소는 건축에 이용되는 다양한 무기재료를 연구하는 곳으로 주요 성과로는 알곡 짚(볏짚)을 이용한 보온재 개발과 시멘트 초고강도화 원리 및 방법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기건재연구소는 다양한 장식재용 건축재, 수지제 건축재 생산공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건설건재분원은 2010년대 이후 건축공학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건축축전과 건축미학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다.

 

2. 지방행정조직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중앙집권적인 통치구조로 되어 있으나, 남한의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조직이 있다. 이러한 지방조직은 북한의 건국 초기부터 운영되어왔다.

지방에는 남한의 지방의회에 해당하는 지방인민회의가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지방인민위원회가 있다. 지방인민위원회는 집행기관의 역할만이 아니라, 지방의회가 휴회 중에는 의결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지방인민회의의 대의원은 선거로 선출하며, 지방인민위원회의 위원장 등은 인민의회에서 선출한다.

그리고 북한은 당중심의 국가이므로 지방에 노동당위원회(도당위원회, 시군당위원회 등)가 있으며, 당위원회에는 책임비서가 있다. 지방인민위원장은 형식적으로 인민회의에서 선출하지만, 실제로는 당위원회의 영향력이 더 크며, 지방행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방인민위원회에는 여러 부서가 있으며, 건설관련 부서는 도시경영부와 건설운수부 등이 있다, 부서의 명칭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경영부는 도시의 시설관리와 주택과 시설의 배정을 담당하며,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경영부에는 난방사업소, 원림사업소, 도시경영설계사업소 등이 여러 사업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경영부의 시설보수작업은 자체인력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자재 등을 주민에게 나누어주어 사업소나 가구별로 보수하도록 한다고 한다.

건설운수사업소는 건축물, 소규모 도로 등 시설물 등을 건설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건설작업 시에는 직장돌격대, 협동농장 돌격대 등을 결성하여 건설사업을 추진한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

,

경쟁 도시의 성장과 그늘… ‘소년시절의 너’

Growth and shadow of a competing city… ‘You in your boyhood’

영화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영화특별시SMC

소위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IPTV) 덕분에, 지나간 영화를 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이달의 숙제를 하기 위해 영화 사냥을 했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영화에 시선이 꽂히면서 2시간이 넘도록 지루할 틈 없이 집중해서 보았다.
영화의 주제는 오래전 일본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간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청소년 왕따 문제다. 어쩌면 이는 전 세계적 문제일 수도 있다. 지금의 50대 이상은 사실 크게 느끼지 못했던(그렇다고 없었던 건 아니지만) 따돌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조명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풍경은 그다지 세련되거나 정리된 공간이 아닌 우중충하고 한눈에 봐도 뭔가 불안함이 가득한 공간이다. <소년시절의 너(少年的你, 2019)>라는 제목과 다르게 영화 속 배경은 낡고 지저분하고 황폐화 되어 있는 슬럼가다. 제목만 보면 조금 노스탤지어 적이고 낭만적인 어감 아닌가? 그러한 제목과 영화 속 공간의 불균형은, 나의 시선을 끄는 시작점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서인지, 거칠면서도 강렬하고 적나라한 화면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왕따 학원물의 전형같이 보였다. 왕따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바로 자기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청소년기에 겪는 스트레스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차별과 압축된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청소년기의 배신감과 분노 등… 더구나 본인의 노력과 무관한 태생적 환경으로 인한 차이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한 케이블 TV의 교양프로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면 아이는 태생적인 악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전부 성장기의 문제였다.
자신이 처한 태생적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유일한 탈출구인 ‘좋은 학교’ 진학은 이런 아이들에겐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배움이 단지 학문과 소양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사회 경제적 성장 도구로 활용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일종의 경제적 성공을 위한 라이선스인 것처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학업에 뛰어들고, 그렇게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충분히 긍정적이고, 나쁜 방법은 아니다. 다만 물질 중심, 금전 중심 사회에서 아이들의 상처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뼈에 새겨진다.

이런 암시는 영화 속 대사에서도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면 얼마를 벌 수 있냐는 샤오베이의 질문은, 대학을 다니지 못하는 뒷골목 인생의 좌절을 어린 청소년의 발언을 통해 확인하게 한다.
이런 일은 비단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닌 듯하다.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학력과 얼추 비례해 경제적 보상이 피드백 되는 현실에서, 기성 사회의 성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그 라이선스를 취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궤도에 올라타 있다. 매년 우리나라 국무위원급 청문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녀들의 학교 문제다. 특목고니 자사고니, 이중국적이니 하는 대부분의 사안들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사회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녀들을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게 하려는 데서 출발한다.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로 인해 비롯된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상황을 비판하는 각종 영화나 소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들이 수십 년째 등장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뻔한 고전적 레퍼토리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현상은 눈으로 확인되는 실체라기보다는 머릿속의 상황이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영화특별시SMC

그래서 <소년시절의 너>에서 나오는 대비되는 도시 풍경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이야기 속에 스며든다. 화려하고 깔끔한 고층건물이 즐비한 신흥 성장 국가 중국의 대도시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흘러가는 고가도로 아래의 판잣집 풍경은 중국의 고성장과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풍경은 대부분 산업국가의 초기 상황에서 등장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우리나라 1960~1970년대 청계천 일대의 풍경이 그렇고, 홍콩의 1980년대 구룡반도(주룽반도) 풍경이 그렇다. 좀 더 과거로 시간을 돌리면 20세기 초반 뉴욕 맨해튼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1959년도 영화 <그림자(Shadow)>는 도시에서의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고 있다. 매력적인 도시의 예술성과 동시에 처절함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삶이란 것이 항상 처절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처절함을 코믹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의 또 다른 욕망과 섞어서…… 허영과 착각도 가끔 필요한 만큼 <티파니에서 아침 (Breakfast at Tiffany’s, 1961)>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코미디 영화 속 삶 역시 녹록지 않다. 부유한 여성 사업가에 의지하는 한량인 남자와 부유한 남자 사업가에게 한몫 챙기려는 하류 인생인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적한 시골에서의 삶보다 훨씬 치열하고 처절하다. 성공한 이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보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욕망도 그만큼 강하다. 사회에서 성공 욕망은 더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나타난다.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에서부터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교도소라 말해도 무방할 철망 처진 복도는 낭만과 거리가 먼 사육장 같다. 아마도 자살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책상을 가득 메운 교과서와 책상들의 규칙성은 도시의 축소판이자, 정글 같은 경쟁의 현실을 그대로 시각화한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 시기의 학교 역시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예쁘고 부유하지만 삐뚤어진 웨이라이는 가난하면서 공부를 지독히 하는 주인공 첸니엔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모욕을 주고, 망신을 주고, 공개적으로 위협한다. 청소년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치명적이다. 웨이라이의 부유한 부모가 당당하게 학교와 사회에 발언할 때, 보호받아야 할 첸니엔은 이미 학교에서 차별과 차이, 그리고 부조리를 느낀다. 어찌 보면 불공평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삶이 편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장면과 이야기를 보는 관객은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려야 한다.

아무도 없는 문 닫힌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길과 화려한 도시 풍경 뒷골목의 계단 등, 영화 속 미장센들은 이야기와 맞물려 불안감과 어두움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에서 다뤄지는 청소년 시기의 학교에서는, 정글 같은 생존경쟁과 미성숙함의 잔인함이 어우러져 경쟁의 스트레스를 서로에게 풀어낸다.

나는 가끔 엉뚱하게도 이런 처절함을 여행길에 만나는 도시 풍경에서 느끼기도 한다. 도시 풍경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경관은 마치 그 사회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느낌이다. 동남아 어떤 도시에서 한참 보행로를 걷다가, 갑자기 보행로가 사라지고 엉겁결에 호텔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엉뚱한 공간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호텔 사업가의 힘으로 보행로를 없애고 행인들을 그곳으로 스며들게 만들었음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낮은 주택들이 즐비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불쑥 솟아 오른 고층건물은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는 결과물이다. 이런 도시 경관은 누군가 게임의 룰을 어기고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풍경일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력적인 도시 경관을 다시 관찰해보면 그 사회의 합의와 논리에 순응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균형은 어느 한쪽의 강력한 자본이나 권력으로도 깰 수 없었기에 유지된 것이다. 흔히들 유럽 도시 경관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역사를 보면 모순과 혼란, 갈등 속에서 조금씩 균형을 잡아가면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정하는 프랑스의 도시 파리를 보자. 파리의 도시 풍경은 완벽한 이야기 속에 탄생하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고 온갖 모순이 가득 차 있던 상황에서, 그런 파리를 치유적 개념으로 개선한 것이 아니라 엘리트 의식과 권위로 밀어붙여 정리했다. 당시 수많은 상처와 피를 부르며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에 파리의 도시 경관이 유지되고 지속된 과정을 보면, 반칙을 억누르고 공공적 가치에 대한 합의와 타협을 거친 산물임을 알 수 있다. 피를 부르는 한 번의 독선적 과정이 있었지만, 그 바탕 위에 다듬어진 것은 수많은 모델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만들어지기 전 당시 파리 정치가들의 결정이 온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런던의 경우다. 오스만의 강력한 파리 시가지 정리를 부러워한 영국에서 런던도 이렇게 정리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수의 자본가와 시민들이 소유한 런던을 정비하기엔 설득도 힘들고, 파리의 오스만 시장처럼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런던은 파리의 무모하고 일방적인 정책보다 타협을 선택했다.

분명 런던이 파리보다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리의 성과를 연구하고 적용해서 조금씩 개선된 모습을 구성했다. 전체적인 아름다움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부분적인 개선을 시도한 것이다. 여전히 개선하고 고쳐나가야 할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도시가 모델로 더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런던의 타협과 이해를 바탕으로 파리처럼 되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갈등은 존재한다.

영화 <유브 갓 메일> 스틸컷 © 워너 브라더스

런던이 배경은 아니지만,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은 이런 논쟁과 갈등의 도시에 대한 이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로맨스 영화다. 혼란스러운 도시 풍경도 다 같은 배경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중국의 도시는 강력한 개발 권력의 주도로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개발이익에 순응하는 이들의 묵인이 동반된다. 마치 과거의 파리 도시개조 시절 같다. 국가 중심적 일당 지배 체제의 중국에서 소수의 개인들이 개입하거나 발언할 여지가 사실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적당히 개발의 에스컬레이션을 타서 선점한 경제적 지위를 확보한 영화 속 악역인 웨이라이의 우월감이 왠지 중국의 도시 풍경에 녹아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합리적 의문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주인공 첸니엔이나 아예 희망을 포기한 샤오베이의 존재처럼 성장궤도에 올라타지 못한 실패한 삶들은 어느 도시,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나 존재했다. 물론 그들의 실패가 온전히 사회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이런 실패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서구에도 이런 아픈 시절과 그림자는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역시 황금기라고 하지만,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실패의 굴레에서 도시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사는 삶인 셈이다. 결코 해피엔딩이라 볼 수 없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두 주인공이나, <그림자>의 등장인물처럼 도시의 엑스트라 1·2 같은 인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게 상처가 있거나 약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야생에 상처를 가진 채 노출된 것과 같다. 이런 적나라함은 1956년 다큐멘터리 <술집에서(On the Bowery)>에서 특별한 스토리 없이 관찰로 보여주고 있다. 성인판 <소년시절의 너>와 같은 영화 <부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 1989)>에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동정심이 일기도 한다.

서로 가장 가깝게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밝고 화려함만 보이는 듯하지만, 그 안에 뒤처진 루저 같은 인생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나름의 방법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사회에 대한 좌절감과 공포감, 무력감보다는 희망과 긍정을 제시하고 만들어주는 세상이 필요하다.

문득 이를 위해 우리 도시에서 건축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사실 건축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안에도 이미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다만 욕망이, 야망이 이를 덮고 보지 않으려 하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욕망이 정치적, 개인적 주기로 화두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 고민해 볼 주제다. 특히 건축사들은 비판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려다가 문득 2020년 건축영화제에 다뤄진 다큐가 떠올랐다. 다큐에서 다뤄진 홈리스를 위한 주택, 그리고 그 주택을 주도하는 미국의 자선 단체 Skid Row housing trust가 발주한 건축들이다. 놀랍게도 홈리스 주택들인데, 미국 AIA 건축상을 수상한 최고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참여 건축사의 고민이 그대로 보인다.
그냥 의무적으로, 생색내기로 짓는 것이 아니다. 자~알 건축하는 것을 홈리스 공동주택으로 만든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