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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네 종족들

Gulliver’s Travels, Four Races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로 알고 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이 책을 출판했다. 풍자의 신랄함은 출판사가 몰래 수정할 정도였다.
스위프트가 바라본 18세기 영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였고, 비판의 대상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본인이 소속된 사회 전체를 유머와 냉소적 비유로 날카롭게 풍자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의 우화에 나오는 가공의 나라들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아이들의 동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아둔한 사람들은 흔히들 숨겨진 은유와 위장된 본질, 핵심을 모른 채 이 이야기를 인용하곤 한다. 그것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우리 사회에 대한 언론의 중계를 보면서 걸리버의 세계가 떠올랐다. 걸리버의 나라를 보면 딱히 18세기 영국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순된 존재와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인국과 소인국만 알지만, 그의 책에서는 상상의 나라를 네 곳이나 방문한다.
첫 번째로 방문한 소인국 ‘릴리퍼트’에 사는 이들의 평균 키는 약 15센티미터다. 이들은 순진하고 겁이 많지만, 명분 없는 것에 집착하고 은근히 욕망 덩어리들이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국민들의 키가 약 30미터에 이르는 거인국 ‘브로브딩낙’이다. 이곳에서 걸리버는 인격체가 아닌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돈벌이 대상이 된다.
세 번째로 도착한 나라는 하늘을 나는 ‘라퓨타’라는 세상이다. 이곳은 발달한 과학으로 지상을 통치하는 왕족의 세계다. 무용한 지식으로 남성우월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폭력적으로 지상을 통치하고 다스린다. 스위프트의 풍자 백미는 라퓨타라는 명칭에 있다. 지적 허영으로 가득하며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허상과 명분을 내세우는 고등생명체가 사는 나라 이름이, 스페인어로는 ‘창녀’를 지칭한다. 당시 영국 계급의 정점에 있던 귀족과 왕족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네 번째로 배가 난파되어 도착한 곳은 인간을 지배하는 말들의 세계다. 후이늠으로 불리는 말들은 인간을 야후라고 부르며 짐승처럼 다루고 있었다.
외향은 말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이자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전쟁이 없는 이상적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후이늠의 세계를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세상으로 그린 걸리버는 하필이면 왜 그 대상을 인간이 아닌 말의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또 어째서 인간을 가축처럼 욕망과 욕구의 존재로 묘사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문득 우리 건축계가 중첩되는 건 왜일까? 엘리트라는 허영과 지적 오만함에 위선적으로 떠들어대며 나선 이들도 있고, 우물 안이 좋다고 바깥은 모른다는 우물 안 개구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돈에 대한 욕망과 생존이라는 핑계로 법과 규칙을 무시하는 위반자들도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묵묵히 법과 규칙 아래에서 조용히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순진한 건축사들이 가장 많다.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법과 규칙을 준수하면서 책임을 부담하는 대다수 건축사를 위해야 한다. 비록 관료들이, 정치인들이, 건축사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칼자루를 휘둘러도 참고 설득해야 한다. 어쩌랴, 그들의 공부가 부족함을 탓하기엔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힘이 너무 센 사람들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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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코스타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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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건축사의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축담론

편집자 註

2000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임의가입으로 전환됐다. 단일 협회로서 해당 전문자격사의 공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0년 중반부터 대한변리사회, 감정평가사회 등 대부분 자격단체들이 의무가입으로 전환했지만, 대한건축사협회는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임의가입으로 남아 있다. 임의가입제 하의 지난 21년은 타 분야와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건축사의 위상과 업 발전 면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지난 6월 28일 협회가 어렵게 마련한 의무가입 실현의 기회가 국회 법사위 제동으로 유보됐다.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여러 건축개혁 작업이 추진될 수 있었지만, 그 동력이 약화될까 우려된다.
이번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발언들도 논란이다. 특히 건축사, 협회 공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발언은 건축사 역할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그릇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건축물의 설계, 공사감리,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시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 등과 같은 건축사의 업무는 당연히 공공성을 띠며, 약 1만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협회도 관련 법령에 따라 여러 행정기관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내에서도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건축사로선 실로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공사현장에서 불법 자격(면허) 대여가 횡행하고, 부조리한 감리 행위 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대처방안이 무엇인지 생각이 있다면 5분만 고민해도 되는 일들이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말라가는 잎사귀를 문제시하는 정책 마인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의 임의가입 상태에서 협회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음에도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황당한 상황을 이번 법사위 질의응답에서 목격한 셈이다.
이번 의무가입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건축담론을 통해 건축사의 현실은 어떠하며, 의무가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01 Who is the compulsory architect membership of the Korea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s(KIRA) for?

“건축사들의 건축사협회 가입을 의무화시키는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건축사나 건축인들의 솔직한 생각은 어떨까….

이 주제와는 약간 다르지만 이 주제의 답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필자의 옛 경험을 나누며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경험 1) 오랜 고객이었던 건축주가 오랜만에 친구분을 모시고 찾아왔다. 안부를 나눈 뒤에 소개를 받았는데 이 분이 작은 건물을 짓겠다며 좋은 건축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기에 필자를 찾아왔다며 이야기를 나눠 보란다. 5층 건물을 짓고 싶다며 대지 위치를 알려주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계획안을 고민하였다. 약속된 일주일 후, 고민 끝에 만들어진 계획안을 보여주었더니 너무 마음에 든다며 설계비를 묻는다. 당시 필자가 받던 설계비를 이야기하니 집에 가서 아내와 상의하고 오겠다던 사람이 오지 않는다. 궁금해서 소개해 주셨던 분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주었던 설계비와 같은데도 설계비가 약간 비싸다며 고민 중이란다. 그러고 나서 잊고 지냈는데, 4∼5개월 정도 경과 후 우연히 그 대지 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고민했던 그 건물의 형태와 창 모습마저 같은 건물의 골조가 완성되어 있었다. 필자가 고민 끝에 계획했던 도면의 모습 그대로 다른 건축사에 의해 복사되어 허가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약 27~28년 전의 그 사건 이후로 설계 계약을 하기 전에 기획서 이외에 설계도면은 건축주에게 주지 않는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필자의 계획안을 가지고 가서 설계비를 더 깎았을 건축주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도면을 베끼다시피 하여 허가를 받은 그 건축사의 잘못인가?

경험 2)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식품회사 사장님에게서 김치공장을 만든다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도와드리지요, 하며 만났는데 말이 공장이지 198제곱미터 짜리 경량골조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198제곱미터 정도의 창고 스타일 경량 철골조 건물 1동의 건축이었고, 대지의 위치가 서울 외곽의 경기도 지역이며 특별히 설계에 큰 기술이나 정성이 필요한 내용이 아니므로 해당 시청 부근의 건축사사무소에 설계와 감리를 부탁하면 공정에 지장을 받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조언을 드렸다. 설계도면은 필자가 체크해 드리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허가신청 전에 허가도면이 다 되었다고 하여 건축사사무소에 도면을 검토하러 갔는데, 허가신청 도면은 총 4장이었다. 첫 장에 개요서, 안내도, 배치도가 들어가 있고, 둘째 장에 건축평면도 입면 2면과 단면도가, 셋째 장에 철골 구조도면과 지붕도면, 넷째 장에 전기 및 설비도면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초 간단 허가도면이었다. 도면을 살펴보니 첫째 장만 새로 그린 것이고, 나머지 세 장은 어디든지 사용 가능한 공통 도면이었다. 그런 도면에 무슨 검토를 하나 싶어서 건축주에게 나오자고 하며 설계비를 물어보았더니, 20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감리비까지 포함하여 800만 원을 주었단다. 나중에 들었는데 감리 건축사는 현장에서 한 번도 못 봤다고 한다. 준공은 났다고 하는데, 결국 새로운 도면 1장과 어느 현장이나 사용 가능한 공통 도면 3장에 800만 원의 가격이라는 것을 되짚으며 이야기한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경험 3) 얼마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대학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자기 매제가 서울 인근 도시에 작은 건물을 짓겠다며 건축사를 소개해 달라기에 내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며 작은 건물인데도 설계할 거냐고 되묻는다. “무슨 소리냐”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건축주를 만났다. 건축주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데 1층부터 5층까지 건물의 용도와 면적까지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해 온 사람처럼 건축주 요구 사항을 준비해 왔는데, 이미 그 지역의 건축사사무소 안을 여러 개 받아 본 눈치다. 건설비를 물어보면서 설계비를 같이 물어본다. 친구 입장도 있어서 동네에서 받는 가격대로 받겠다며 서울의 지역에서 받는 일반적인 최소 수준을 이야기하며 헤어졌는데 도면을 볼 수 있느냐 하기에 계약 전에는 도면 작업을 안 한다며 기획서를 만들어 보내 드리겠다, 하고 10페이지짜리 기획서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연락하겠다더니 몇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였는데, 자기가 알아 본 건축사사무소보다 1,500만 원이나 비싼데도 불구하고 신뢰감 때문에 나에게 왔으니 잘 설계해 달란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맙소사! 연면적 825제곱미터 짜리 5층 건물 설계·감리비를 친구 입장을 고려하여 최저 수준 가격으로 제안했건만 그런 가격보다 1,500만 원이나 싸게 한다면….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덤핑도 이런 덤핑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가격으로 만들어진 설계도에 건축사의 고민이 포함되는 것인지, 공정마다의 감리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건축사협회의 건축사 의무가입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축사법은 국가·국민을 위한 바탕 아래 건축사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
국가, 국민, 그리고 건축사 모두를 위한 것

어떤 이는 대한건축사협회를 위한 법이라 하고, 어떤 이는 건축사를 위한 법이라 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법은 국회에서 만들며 정부의 의견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는데 “건축사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법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특히 그 건축사들의 모임인 대한건축사협회를 위하여 법을 만들어 줄까?”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그 대답은 “절대 불가”이다. 국회를 통과하여 대통령이 공포한 법률은 우리 국민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붙는다. 건축사법이라는 특정 전문인들에 대한 법률일 경우에는 그 법률을 통하여 전문인들에 대한 업무의 범위, 방법, 의무 등에 대한 규정을 정하며, 국가 차원에서 업무와 관련된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확보하며 나아가 국가의 건축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따라서 건축사법은 국가의 건축산업과 국민을 위한다는 바탕 아래 건축사들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함으로써 건축사들의 창조력과 업무 활성화를 뒷받침하여 세계 건축문화의 선두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초석과 같은 규정임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건축사 의무가입에 관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에 의해 공포된다면 역설적으로 이 법은 바로 국가와 국민과 건축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국회와 정부가 공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나라가 자유시장경제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필자의 경험 1)의 경우와 같이 다른 이의 설계 계획안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싼값의 설계비를 원하는 잘못된 국민 의식은 바뀌어야 하고, 동료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타 건축사가 고민한 계획안을 그대로 받아 허가 도서를 꾸민 건축사의 윤리의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경험 2)와 같은 일명 허가방의 설계 처리 방법들은 그야말로 건축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행태이다. 즉, 건축사의 기본업무인 설계와 공사감리의 본질을 흔들 수 있고, 설계가 가지고 있는 창조와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국민들이 잘못 인식할 수 있다. 부실한 도면이 만드는 부실공사는 국민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 경험 3)의 경우와 같은 극단의 덤핑 추구는 결국 고객인 국민과 건축사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는 대표적인 행태이다. 이렇게 덤핑을 하는 건축사사무소들의 대표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설계도면의 부실이다. 도면의 부실은 공사 부실로 나타나며 건축주와 공사자의 건축분쟁을 유발한다. 공공성을 가진 건축물의 부실은 건축주 본인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다. 두 번째는 다른 이유의 비용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의, 허가 과정에서 별도의 부정적인 비용이 더 필요하다며 요구하는 경우와 사소한 설계변경의 경우 과다한 금액을 요구하여 불편함을 초래한다. 결국 건축주는 정상적인 비용을 거의 지급하면서 불편한 심정으로 건축사사무소를 바라보게 된다. 이는 전체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건축사에 대한 신뢰 대신 불신을 조장하는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협회 의무가입과 대한건축사협회의 비전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는 모든 건축사들이 의무적으로 건축사협회에 가입하게 되면 필자의 경험과 같은 위의 세 부류의 건축사들도 모두 건축사협회 회원이 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건축사협회인 대한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 법률이 공포되는 순간부터 협회의 정체성이 변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행되던 회원의 친목과 권익 보호라는 협회의 목적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포함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국가와 국민들의 감시와 지적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서 제시된 잘못된 회원들의 행동과 잘못된 국민들의 건축의식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협회의 임원들과 회원들, 직원들도 변화되는 협회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며, 정관과 규정 및 직업윤리 개념도 새로운 틀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4차 산업 세상에서 30∼40년 전의 구시대적인 협회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며 건축사협회를 생각할 때 정상적인 정책과 행동들로서 흐뭇함과 미소를 느끼게 하는, 국민과 건축사 모두를 위한, 그런 대한건축사협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전영철 Jeon, Youngcheol (사)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

전영철 (사)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

열린모임참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이며, 국토교통부 건축민원전문위원장과 건축분쟁전문위원장을 역임했다. 현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위원, 중앙지방검찰청 전문수사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건축법실무해설집’과 ‘내 건물을 지으려면’이 있고 작품으로는 성내동 성당, 육군훈련소 성당, 정자꽃뫼 성당, 삼중건설 사옥, 조세통람사 사옥, 취영가 등이 있다.
cham-ar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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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의무가입

건축담론

편집자 註

2000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임의가입으로 전환됐다. 단일 협회로서 해당 전문자격사의 공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0년 중반부터 대한변리사회, 감정평가사회 등 대부분 자격단체들이 의무가입으로 전환했지만, 대한건축사협회는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임의가입으로 남아 있다. 임의가입제 하의 지난 21년은 타 분야와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건축사의 위상과 업 발전 면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지난 6월 28일 협회가 어렵게 마련한 의무가입 실현의 기회가 국회 법사위 제동으로 유보됐다.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여러 건축개혁 작업이 추진될 수 있었지만, 그 동력이 약화될까 우려된다.
이번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발언들도 논란이다. 특히 건축사, 협회 공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발언은 건축사 역할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그릇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건축물의 설계, 공사감리,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시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 등과 같은 건축사의 업무는 당연히 공공성을 띠며, 약 1만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협회도 관련 법령에 따라 여러 행정기관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내에서도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건축사로선 실로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공사현장에서 불법 자격(면허) 대여가 횡행하고, 부조리한 감리 행위 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대처방안이 무엇인지 생각이 있다면 5분만 고민해도 되는 일들이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말라가는 잎사귀를 문제시하는 정책 마인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의 임의가입 상태에서 협회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음에도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황당한 상황을 이번 법사위 질의응답에서 목격한 셈이다.
이번 의무가입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건축담론을 통해 건축사의 현실은 어떠하며, 의무가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02 Social Roles & Compulsory Membership of Architects

존 러스킨의 생명의 경제학
“한 법관이 갖추고 있는 학식과 혜안이 아니라, 재판석에 앉은 이상 어떤 대가가 따라오더라도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신념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 뇌물 받은 대가로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 뒤, 그에 대한 그럴듯한 변론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의 명석한 두뇌와 해박한 지식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이상, 그의 값비싼 지성으로도 우리의 존경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의 일생에서 굵직한 판결 사례마다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정의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대중의 암묵적인 확신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대중의 존경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존 러스킨의 생명의 경제학에 나오는 글이다.
법관은 공정한 판결을 내릴 때 존경을 받게 되며, 공정한 판결이야말로 법관의 존재 이유가 된다. 군인은 적군의 목숨을 빼앗을 때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칭송받아야 하며, 이것이 군인의 존재 이유이다. 의사는 돈을 잘 벌기보다는 의술로써 사람을 살릴 때 숭고해진다.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건축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전문직이며, 국가는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독점적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건축사는 건축법령에 따라 안전, 기능 및 미관에 지장이 없도록 설계도서를 작성하고, 그 설계도서에 의도한 내용을 건축주에게 해설할 의무가 있다. 또한, 건축물의 시공과정이 설계도서에 충실하였는지의 여부를 확인, 감독하는 등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건축물 고유의 사회성, 공공성을 근간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건축물의 공공성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전문가 관리 방안, ARI건축연구원, 5P, 2018년)

이처럼 건축사는 국가 전문자격사로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위해 건축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며,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은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건축사가 숭고해질 수 있는 것이다.

 

건축사의 현실
전문가이자 독점적 권한을 가진 건축사는 과연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부실한 설계로 안전을 위협하는 건축사, 공무원과 결탁해 불법 건물을 양산하는 건축사, 무료 기획업무로 업무를 수주하고 시공사 뒷돈을 받는 건축사, 현장에 안 나오는 감리자, 자격을 대여하는 건축사, 페이퍼 컴퍼니 건축사 등 윤리의식의 부족으로 빚어지는 건축사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건설업 면허대여 또는 저가로 덤핑 계약하고 공사비 증액 및 유치권 행사를 노리는 시공사와 함께 건축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어진 독점적 권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윤리의식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사고, 참사가 일어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건축법령은 강화되고 관련 심의는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다. 건축사의 책임은 무한으로 늘어나고 권한은 갈수록 줄게 된다. 그래도 건축 단체들은 뭉치지 못한다. 건축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해도 국토교통부에서는 건축 단체 간의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기도 하고, 때론 일방적인 법령 개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건축사의 사회적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서는 규제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공무원이 임의 규제를 해도 낙인찍히고 힘없는 건축사는 오늘도 어디에선가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뿐이다. 주어진 독점적 권한도 희미해지고 무의미해진다. 자승자박이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전문가 단체인 의사,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감정평가사, 공인노무사, 공인회계사는 단체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다. 의무가입을 통해 전문성 및 직업윤리 제고, 제도 개선, 복지증진 등 공익적 기능과 함께 자율적 규제 강화를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전문가 단체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건축사 단체는 2000년 이후 임의가입으로 변경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임의가입 이후로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만 뭉치지 못하며, 자율성은 높아졌지만 윤리의식이 낮아져 부조리가 늘었다. 그렇기에 국내의 다른 전문가 단체처럼 의무가입을 통해 자율 규제 강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깨고 나오면 닭이 되고, 깨뜨려지면 계란 프라이가 된다고 했다. 스스로 깨고 나오지 못하면 깨뜨려진다. 의무가입을 통해 건축사 스스로 자율 규제를 강화하고 윤리의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건축사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건축 단체의 의무가입은 비정상적인 건축계의 현실을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의무가입을 위한 소통
현재 건축계는 다양한 목소리를 위해 나뉘어 있다기보다는 각 단체별 이권을 위해서 흩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후배로 만나면 같은 의견을 나누고, 단체로 만나면 다른 목소리를 낸다. 건축 단체의 의무가입을 위해서는 우선, 자주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각 단체별로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가지고 정례적으로 만나는 가운데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도 좋고 일반 시민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각 단체의 이해관계는 내려두고 상생하는 방법을 의논해야 한다. 건축사의 먹거리보다는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심해야 한다. 왜 나뉘었는지 보다 어떻게 뭉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건축사가 아니면 안 된다 보다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협회가 무엇을 했느냐 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선배들을 탓하기보다 후배들에게 건강한 건축계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한목소리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각 단체가 통합되고 한목소리로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자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전문가로서의 삶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박성기 Park, Seonggi (주)세이브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박성기 (주)세이브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전북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건축공부를 했다. 공간건축을 거쳐 2013년부터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소규모 공공건축과 민간건축을 주로 수행하면서 완성도 있는 건축을 위해 인테리어와 시공을 겸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와 마을건축가, 청신호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건축사의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croq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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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이전과 이후

건축담론

편집자 註

2000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임의가입으로 전환됐다. 단일 협회로서 해당 전문자격사의 공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0년 중반부터 대한변리사회, 감정평가사회 등 대부분 자격단체들이 의무가입으로 전환했지만, 대한건축사협회는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임의가입으로 남아 있다. 임의가입제 하의 지난 21년은 타 분야와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건축사의 위상과 업 발전 면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지난 6월 28일 협회가 어렵게 마련한 의무가입 실현의 기회가 국회 법사위 제동으로 유보됐다.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여러 건축개혁 작업이 추진될 수 있었지만, 그 동력이 약화될까 우려된다.
이번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발언들도 논란이다. 특히 건축사, 협회 공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발언은 건축사 역할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그릇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건축물의 설계, 공사감리,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시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 등과 같은 건축사의 업무는 당연히 공공성을 띠며, 약 1만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협회도 관련 법령에 따라 여러 행정기관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내에서도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건축사로선 실로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공사현장에서 불법 자격(면허) 대여가 횡행하고, 부조리한 감리 행위 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대처방안이 무엇인지 생각이 있다면 5분만 고민해도 되는 일들이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말라가는 잎사귀를 문제시하는 정책 마인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의 임의가입 상태에서 협회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음에도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황당한 상황을 이번 법사위 질의응답에서 목격한 셈이다.
이번 의무가입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건축담론을 통해 건축사의 현실은 어떠하며, 의무가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03 Before and after the mandatory entry of Korea Institute Registered Architects

들어가며 : 의무가입의 의미와 가치
필자는 2007년부터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에 재직 중이며, 건축 관련 법·제도·정책분야의 연구 활동과 협회의 업무수행 경험을 토대로 건축사의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갖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향후 협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963년 건축사법 제정 당시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건축사는 의무적으로 건축사협회의 회원이 되도록 규정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관련 조항이 삭제되어 협회 의무가입이 폐지되었고 임의가입으로 변경되었다. 임의가입으로 변경된 이후, 전체 건축사의 업무현황 파악이나 체계적인 건축사 자격관리가 점차 어려워졌다. 이는 설계·감리업무 부실, 불법자격대여, 덤핑수주 등 불공정거래행위 증가, 각종 사건사고 발생 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축물의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지난해 10월 건축사의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을 골자로 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본 법안의 취지는 건축물 안전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등 건축사의 업무 경쟁력 제고가 요구됨에 따라,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을 통해 건축사에게 필요한 역량과 윤리의식을 함양해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공익성이 우선되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타 전문자격사의 경우에는 협회 의무가입으로 관리되고 있다. 건축사와 함께 의무가입을 폐지했던 변리사, 공인노무사, 감정평가사도 협회의 공익적 기능과 자율적 규제를 확보하기 위해 의무가입으로 환원된 상태이다. 현 건축시장은 지나친 자율경쟁과 공적기능 약화로 인해 공공연하게 불공정거래가 이루어지는 등의 문제로 건축생태계의 정상화가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건축사의 협회 의무가입을 통해 건축사 전문직 단체로서 대한건축사협회가 건축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그리고 윤리의식 강화 등 공적기능과 자정작용을 강화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협회는 정부 정책에 대해 건축계의 엇갈린 의견이 아니라 합의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공신력을 확보하고, 건축 관련 법·제도·정책 제안을 위한 다양한 의견수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대한민국 건축계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갈 전문직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한 첫 발걸음을 떼는 시발점이 바로 건축사의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무가입 전 : 의무가입을 위한 협회의 노력
지난 몇 년간 협회는 환골탈태의 각오로 헌 옷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옷을 짓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시도건축사회 회의, 전문가 간담회, 유관단체 및 정부 간 협의 등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를 토대로 협회는 의무가입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첫째, 입회절차를 간소화하고 효율화하였다. 협회에 입회하면 시도건축사회에 자동 소속되도록 정관을 개정하였고, 지역건축사회 가입을 자율화하였다. 둘째, 회비제도를 개선하였다. 입회비를 인하하였으며 협회에만 회비를 납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도 및 지역건축사회의 입회비 부과 절차와 징수 절차를 개선하였다. 셋째, 협회와 지역건축사회 간 소통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정관 및 협회의 지시사항에 대한 준수 의무를 강화하고 과도한 지역 회비를 개선하였으며,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제정하였다. 넷째, 회원윤리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강화하였다. 건축사윤리원을 설치하고 지역윤리위원회, 중앙윤리위원회, 건축사윤리위원회를 거치도록 하였다. 건축사윤리원의 과반은 건축사외 외부전문가로 구성하고, 징계요청의 객관성을 판단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의무가입 후 : 협회의 미래 비전과 목표 설정 그리고 추진전략 수립
그동안 협회는 의무가입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의무가입 이후 협회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건축사의 공익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의 비윤리적 행위가 발생하고 불공정거래행위를 한 건축사에 대한 징계가 어려워지면서 건축시장 질서는 점차 붕괴되고 있다. 과잉경쟁과 열악한 업무환경, 건축인력의 일탈 등 건축계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 건축사의 자정활동과 건강한 건축생태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여러 단체로 나눠진 건축계는 화합하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수렴과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통일된 목소리의 부재로 건축계의 입지와 업역은 날로 축소되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난제가 겹치면서 건축계의 하나 된 목소리가 더욱 간절하다. 건축과 건축사에 대한 국민 인식은 저조하며 소통은 부재하고, 건축 관련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한 국민피해로 건축사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에게 고품질의 건축서비스를 제공해 건축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저히 낮은 건축사의 업무대가의 개선이 시급하다.

업무에 대한 적정대가를 받지 못하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고품질의 건축서비스는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건축서비스산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복지, 건축인력 유출, 건축서비스의 품질저하, 또 다시 낮은 업무대가로 이어지는 악순환만이 지속될 뿐이다. 현재 ‘건축사보수 및 업무기준 폐지’로 민간에서는 대가기준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건축사 업무대가를 정상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발주처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국토교통부가 정한 건축설계대가 요율을 지키지 않거나 추가업무 또는 각종 비용을 건축사에게 전가하는 등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건축설계 및 공사감리 등 총괄조정자로서 건축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건축사 스스로의 자정노력도 절실하다. 적정 업무대가를 받고 수주하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살을 깎아먹는 저가수주 및 과당경쟁 등 비윤리적 불공정거래행위를 그만두고, ‘설계비, 감리비 등 제값 받기’를 고집해야 한다. 이는 곧 건축사의 전문가적 자긍심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건축사의 의무가입 후속 실행계획은 국민, 건축계, 건축사협회 및 회원측면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 강화와 책임, 건강한 건축생태계 조성, 건축문화의 발전과 협회의 효율적 운영 등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협회는 ‘협회 의무가입 관련 실행계획에 대한 연구’를 발주하였고, 그 연구결과를 토대로 미래 비전과 목표, 추진전략, 실행계획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미래 비전은 국민에게 안전하고 품질 높은 건축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하였는데, 첫째, 국민측면에서 건축사의 공적역할을 강화하고 국민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다. 둘째, 건축계측면에서 건축시장을 정상화하고 건축계의 발전을 위한 인재양성과 정책 발굴을 위한 의견수렴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 회원을 위한 자정활동을 강화하고 회원의 업무지원 및 복지, 그리고 협회 운영을 혁신하는 것이다. 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추진전략은 다음과 같다. 국민을 위한 추진전략으로는 건축소비자보호원 운영을 통한 대국민 봉사기구 설립, 건축전문방송 및 홈페이지 구축 운영, 국민건축아카데미 운영, 사회공헌지원단 운영 등이 있다. 건축계를 위한 추진전략으로는 건축시장의 정상화, 정부와 건축계 합동 협의체 구축, 저작권보호센터 운영, 건축통계은행 설립, 건축계 연합 신문 및 대변인 제도 마련 등이 있다. 건축사협회 및 회원을 위한 추진전략으로는 회원연금제도 도입, 공정거래지원센터 운영, 회원윤리모니터링센터 상시 운영, 회원업무지원센터 운영, 회원연수원 설립 등이 있다.

협회는 건축사의 협회 의무가입에 대비한 중장기 운영전략을 세우고 대대적인 조직개편 작업을 위해 ‘대한건축사협회 조직진단 및 조직효율화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하였다. 본 연구용역을 통해 4차 산업혁명 등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각종 추진사업의 타당성과 그에 대한 중장기 성장 구축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한 의무가입에 대비한 효율적 조직체계 구성과 인력운영, 본 협회와 시도건축사회 간 합리적 시스템도 마련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협회 건축연구원에서는 건축시장 정상화와 건축사 업무개선을 위해 ‘건축설계업무 대가기준 개선 연구’, ‘건축사자격시험 개선연구’, ‘공정거래 모니터링센터 운영방안 연구’, ‘건축저작권 보호센터 구축 및 운영방안 연구’, ‘건축사 자격(면허) 대여 유형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에 있다. 본 연구결과는 의무가입 후속 실행계획과 관련하여 협회가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결
척박한 건축생태계를 복원(재생)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 건축사의 뜻과 의지를 담아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물러설 곳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건축사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건축사의 협회 의무가입에 대해 당초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업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일부 단체는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논쟁하였고 상호 의견을 조율하며 협의하였다. 결국 정부 및 단체 간 최종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현재 국회 심사 중에 있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금씩 양보하고, 더디 가더라도 끝까지 소통하며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통합과 도약, 상생과 협력, 소통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갈 건축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건축사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건축사의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법안 통과를 기대한다. 그리고 건축사의 상상력을 창의적 건축물로 실현할 수 있는 건강한 건축생태계를 만들어갈 대한건축사협회와 건축사의 더 멋진 미래를 상상해 본다.

 

글. 김홍수 Kim, Hongsu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 연구위원

김홍수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 연구위원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역사이론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7년부터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에 재직하며, 연구원의 운영을 총괄하면서 건축 관련 법·제도·정책분야의 협회 내부연구를 비롯하여 국가 R&D 과제 수행 등 다양한 연구 수행을 통해 건축서비스산업의 진흥과 건축사의 업무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idealhu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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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라티스 빌딩 2 in 1

Architecture Criticism
Two in One

이상(理想)은 무엇일까?
현존하지 않는 새로움을 향한 창의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다양한 가치들을 통해 최적화되어 존재하는 완결성인가?
아이디어(Idea)를 사무실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데아키텍츠는 사무실 소개에 건축적 이상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개념에 머무르는 아이디어가 아닌 구축 가능한 방법을 연구하며 디자인을 통해 삶의 풍경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데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IDÉEAA _ Idée Architects Associates)

 

그들의 건축적 이상은 거대담론으로 이루어진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천적이고 구축 가능한, 삶의 풍경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귀결된다. 그들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작가주의적 스타일리즘이나 유형화된 접근 대신, 프로젝트마다 가지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 소소한 가치들을 솜씨 좋은 요리사처럼 담백하게 펼쳐놓는다. 노출된 콘크리트 구조체 표피가 인상적인 라티스(Lattice) 빌딩이 단순히 야수주의(Brutalism)적 형태의 관점에서 읽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티스 빌딩은 광주 동구 동명동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로 1, 2층에는 카페와 서점, 그리고 3층에는 건축주의 단독주택이 자리한다. 동명동은 광주시가 폐 철로를 공원화하고 빈 땅과 폐가들을 사들여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젊은 층의 유동 인구가 늘어가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 지역이다. 장방향의 프로젝트 부지는 고밀도 주택가에 주로 일방향 통행이 이루어지는 좁은 길에 면하고, 준용해볼 만한 도시적 콘텍스트는 미약한 상황이다. 이에 라티스 빌딩의 첫인상은 솔직하게 드러낸 구조의 직교체계 덕분에 주변 환경에 질서와 신선함을 환기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건축물은 요새(Fortress)와 같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밀도와 스케일을 고려한 수직적 건축 장치로 대응하여 답답하거나 폐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듈화된 구조체 프레임은 정갈한 이미지의 배경이 되고, 수직성을 강조한 오프닝과 의장적 펀칭 메탈 패널의 변주로 가로풍경을 이끌어낸다. 상징과 형태가 아닌 본질과 날것에 대한 솔직함이 주변을 정화하고 정돈(Order)한다.

요새를 구축한 골격은 내부공간으로 들어서면서 느슨한 밀도의 기둥으로 구성된 회랑(Cloister)으로 변신하며 비밀정원으로 안내한다. 주목할 부분은 공간을 삽입하는 방식에서 장방향의 협소한 볼륨을 분절하는 전략 대신 건축적 레이어를 의도적으로 같은 장방향으로 계획하여 부드럽게 공간을 필터링하고 집합화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공간과 계단, 회랑, 테라스 그리고 안마당을 고집스럽게 일방향으로 배치함으로써 선형화(Linear)되고 연계된 공간들은 쪼개지지 않고 하나의 힘 있는 공간감을 창출해낸다. 종착역인 안마당은 평면적 접근이 아닌 2층과 1층을 관통하고 지하 선큰과 더불어 3개 층의 볼륨을 담아낸다. 정주 가능한 외부계단은 순환 동선의 연결고리이자 2층 회랑과의 관계에서 사용자의 실질적인 활기를 이끌어낸다. 비밀스러운 안마당이기도 하지만 부지 주변이 가지지 못한 활력 넘치는 새로운 다층화된 가로길이다. 실제로 건축물에 면한 동명로 14번길의 폭과도 유사하다. 건축사가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뚝심 있게 보인다. 규모 있는 안마당 계획을 위해 매스는 대지 경계에 맞닿는 폐쇄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전면을 열어두는 공공성에 양보하지 않고 내부의 안마당에 집중한다. 노출된 직교 구조체 표현이 큰 개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 모서리에 잘려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안마당의 규모를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라티스 빌딩> 마당 및 발코니 전경 © IDEEAA

3층의 단독주택은 1, 2층과 달리 마당을 분절요소로 삽입하며 공간을 분할하고 주거 기능을 담아낸다. 3층으로 갈수록 서서히 닫힌 입면을 구성하여 사적 영역임을 나타내고, 하늘로 열린 주거의 마당은 건축주에게 정적공간을 제공한다. 테라스는 지상의 안마당을 향해 열려 공용공간이 여전히 건축주의 소유임을 인지하게 하는 듯 보인다.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의 충돌은 단일화된 건축에서 느슨하게 조우하는 전략을 취한다. 주거의 내부마감만이 백색도장을 적용하여 다름을 구분 두고 있다.

라티스 빌딩이 보여주는 구축방식과 구조시스템의 노출, 가로풍경과 주변에 대한 질서(Order)의 제안은 솔직함을 넘어 야심찬 문법(Structure)의 적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창조된 공간들은 닫힘과 열림,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이라는 이분법적 문법을 탈피하고 총체로 인식된다. 건물은 외향적이면서도 내향성을 지향하고, 대립적 개념들은 상대성을 부각하기보다는 전이를 통해 동시성을 가진다. 재료는 대립적 상황을 잊어버리게 동일하거나 최소한으로 적용하고, 디테일은 단순화시켜 통일감을 이끌어낸다. 건축주가 적절한 폐쇄성을 유지하는 사적인 건축물을 요구하면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도시 속 건축이 소통과 열림이라는 주변에 대한 배려와 관계된 압박을 내재화하면서 슬기롭게 피해가고 있다.

이 빌딩은 대중들에게 동명동 핫플레이스 ‘ST_R_UK_T’라는 이름의 카페로 알려져 있다. 건물명 라티스의 ‘격자’란 의미와 연동하여 Structure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Structure는 건축에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언어학에서는 문법 또는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름처럼 건물은 주변의 풍경 속에 하나의 체계로 존재하고 있으며, 서로 대립하고 있는 공간들은 변형된 이름 ‘ST_R_UK_T’처럼 문법을 탈피하고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의미로 남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다. 과거 이데아키텍츠의 건축은 합리성을 담보로 정교함과 바름을 추구한다고 느꼈다. 이제는 그곳에 담대함을 덧붙이려는 욕심이 느껴진다. 앞으로 보여줄 그들의 소박한 야심들을 기대해본다.

 

글. 송성욱 Song, Sungwook 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송성욱 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2004년 도미하여 미시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 SOM에서 경력을 쌓은 뒤 LEED AP와 미국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0년 귀국하여 (주)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며, 현재 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 1801K Project, Denver Union Station, 서울대학교 체육문화교육연구동, 넥슨 강남사옥 등이 있으며 여주박물관 여마관으로 2017 경기도 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swsong@s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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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_ 대전 철도관사마을

Disappearing village
Railway official residence village in Daejeon

도시는 시간과 함께 흔적을 남기며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 시작과 성장 그리고 쇠퇴와 소멸
도시 속에 남겨진 역사적 존재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
이 모든 과제를 다양한 모습으로 접근하여 진행 중인 마을.
– 재개발 그리고 보존과 재생에 관한 갈등
이는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소제동 철도관사마을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 철도관사마을(대전시 동구 소제동 일원)에는 총 1,312세대 2,052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총면적은 360,000제곱미터이다. 100년 전의 도시구조와 그 당시의 옛 마을과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이 지역은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철도관사촌 일부는 재개발될 예정이고, 일부는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되었다. 이렇게 해제된 구역은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며 주거지가 상업화되고 있다. 시에서는 역사공원 조성과 관사 이전 등 보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발을 원하는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관사 _ 철도로 시작된 대전의 근대역사는 대전역의 활성화와 더불어 전통적 마을들이 사라지고 도시화되며 발전했다. 특히 일본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 철도 종사자들을 위한 관사를 건립하기 위해 1927년에 매립한 소제호 매립터에 1935년까지 100여 호 이상의 관사를 지어 일본인 철도관사마을로 자리 잡았다. 해방 후에는 철도청 직원들에게 인계되어 철도관사마을로서 명맥을 유지했으며, 아직도 그 당시 마을 모습과 일본식 관사 가옥들이 40여 동 정도 남아있다.

골목
소제동은 주변의 개발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옛 가옥 그리고 오래된 미로와 같은 골목 그 속의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철도관사촌이 근대문화적 마을로 알려지고, 2003년부터 대전역 역세권개발사업 등으로 세입자들이 쫓겨나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골목은 그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우물터 골목을 돌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마주친
우물터는 갈등과 소통의
숨통과도 같은 곳이었다.

문화재생사업 그리고 상업적 공간
2010년 철도관사촌의 문화적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문화적 마을로서의 새로운 자리매김이 시도됐다. 관사를 활용한 문화체험과 전시공간, 그리고 카페와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상업적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여행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도시재생의 실험실과도 같은 이곳의 변화가 주목된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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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07 벽돌

Term@Architecture 07
Brick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벽돌은 특정한 건축계획과 무관하게 범용의 재료로 생산된 최초의 건축 재료일 것이다. 물론 특별한 계획과 특별한 요소에 사용할 목적으로 주문 생산되는 벽돌도 있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벽돌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 정해지지 않은 채로 대량 생산된다. 어느 정도 잠재적 수요가 확보되어야 생산이 가능하고, 잠재적 수요는 도시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예부터 벽돌 공장은 도시 주변에 위치했었다.

어린 시설 벽돌건축을 처음 접한 동화책이 있었다. 바로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다. 그때는 몰랐지만, 건축을 전공하고 우리의 전통건축이 대부분 나무와 흙 그리고 지푸라기를 사용한 것을 보면서 이 동화책이 불편해졌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각자의 집을 짓는 동화 속 배경은 비도시지역이다. 벽돌로 집을 지었던 셋째는 멀리 떨어진 도시지역에서 벽돌을 구입하고 운반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산업화와 글로벌 경제 기준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탄소 배출량과 친환경성을 중요시하는 21세기의 기준에서는 첫째와 둘째의 건축재료 선택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벽돌이 나쁜 재료는 아니다. 건축 밀도가 높은 도시지역에서는 벽돌만 한 재료가 없었다. 유럽의 여러 도시와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오랜 기간 벽돌이 유용한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릉이나 전탑에서도 볼 수 있지만, 수원화성 축조에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집옥재 같은 궁이나 주요 관공서 건축물에 적용되면서 민간 건축에서도 벽돌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벽돌이 건축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었고, 널리 사용하게 된 것도 오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벽돌에 관한 용어는 유난히 부족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이 많다.

영국식쌓기 / 종로구 화동 서울교육박물관

플레미쉬 쌓기 / 종로구 경복궁 집옥재

미국식 쌓기 /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쌓기 방법에 대한 용어부터 살펴보자. 영식, 불식, 미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쌓기 방식은 벽돌을 이용한 벽체가 힘을 받는 내력벽 구조일 때 쌓기 방식이다. 지금은 구조 벽 역할을 하지 않는 치장 쌓기로 마감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겉모습이 같다고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까? 그렇지만 모두가 치장 쌓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겉모습에 따라 ‘OO 식 쌓기’라고 칭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다. 문제는 불식 쌓기 또는 프랑스식 쌓기라는 용어의 적합성이다. 우리가 불식 쌓기 또는 프랑스식 쌓기라고 부르는 이 용어의 영문표기는 flemish bond다. flemish는 프랑스가 아니고, 영국과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플레미쉬 flemish 지역을 지칭한다. 지금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 남부지역에 해당한다. 예부터 지대가 낮아 ‘홍수가 잦은 땅’이란 의미인 Flanders라고 불렸다. Flanders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등장하는 ‘플랜더스의 개’ 이야기의 바로 그 플랜더스(Flanders)다. 어떤 과정으로 플랜더스 지역의 flemish bond가 프랑스식 쌓기라고 우리에게 소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나 발해의 건축양식을 중국식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플레미쉬 쌓기를 프랑스식 쌓기라고 잘못 지칭하는 것은 바로 잡히길 바란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모르타르가 있다. 시멘트, 모래, 물을 배합한 것을 mortar라고 하는데, 우리는 몰탈, 모르터, 모르타르 등으로 부르고 표기했었다. 교육부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은 그대로 한글 표기하는데, mortar는 이 원칙에 따라 ‘모르타르’라고 부르고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벽돌을 쌓을 때 사용되는 모르타르는 두 종류가 있다. 아래 벽돌과 윗 벽돌을 붙여주는 쌓기 모르타르가 있고, 입면에서 벽돌과 벽돌 사이를 채워주는 줄눈 모르타르가 있다. 쌓기 모르타르는 벽돌과 벽돌을 견고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줄눈 모르타르는 벽돌과 벽돌 사이로 빗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과 시각적으로 외관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쌓기 모르타르를 다룰 때는 대부분의 조적공들이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줄눈 모르타르를 다룰 때는 조적공마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플레미쉬 쌓기

줄눈 흙손

줄눈 디테일 / 종로구 화동 서울교육박물관

줄눈 종류

영어권에서는 줄눈을 joint라고 통칭하는데, 줄눈 모르타르를 시공하는 도구를 brick jointer라고 한다. 이 brick jointer의 단면 형상에 줄눈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brick jointer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조적공이 직접 jointer를 제작해서 자신만의 줄눈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본어에서는 이 도구를 고데(こて)라고 부른다. 여성분들이 머리를 다듬을 때 사용하는 ‘고데기’와 같은 이름이다. 고데(こて)는 ‘누르다’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다리미나 인두, 미용기구, 모르타르를 다루는 흙손을 모두 고데(こて)라고 칭한다. 우리의 건축용어로는 ‘줄눈흙손’ 정도가 가능하겠지만, 이 도구를 칭하는 명칭이 따로 없다. 철물점에서 “고데 주세요”라고 하면, 줄눈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brick jointer 즉 줄눈흙손을 챙겨준다.

우리 건축용어에 마땅히 brick jointer나 줄눈흙손을 지칭하는 명칭이 없다 보니, 다양한 줄눈의 디테일도 없는 것 같다. 방대한 건축용어를 일러스트와 함께 집대성한 Francis D.K. Ching의 책에서는 7종류의 줄눈을 소개한다. 국내에서도 장기인 선생의 ‘한국 건축 대계-석조’에서 무려 15가지의 줄눈을 소개하고 있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숙련도가 높은 중국의 조적공들이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이 중요한 건축물을 시공하러 대거 들어왔다고 한다. 이때 영향을 받은 국내 줄눈 기술은 196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남아있었지만, 그 후의 벽돌 쌓기에서는 가장 무난한 평줄 눈만 보인다. 용어의 부재가 기술의 부재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줄눈 표현을 위해 필요한 도구의 존재를 모르니 그 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메지(目地, めじ)’는 줄눈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메지라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일본식 표기나 용어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우리 용어가 있지만, 굳이 영어식 표기를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널리 통용되는 외래어를 무조건 순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하지만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줄눈’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메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접하면 안타깝고 속상하다. ‘메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분들의 상당수는 일본식 용어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의미나 표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화성성역의궤의 동장대도와 영롱장

화성 동장대의 영롱장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벽돌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벽돌 쌓기 명칭으로 아름다운 이름을 전해준 것이 있다. 바로 ‘영롱 쌓기’다. ‘영롱(玲瓏)’은 한자어로 옥구슬처럼 광채가 찬란한 모습이나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벽돌이나 기와를 띄엄띄엄 쌓아 장식으로 문양을 만든 담을 ‘영롱장’이라고 한다. 띄어있는 부분으로 햇볕이 들어오면 반짝이는 모습에서 영롱(玲瓏)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이 용어는 구전이 아닌 기록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장대의 모습과 사용한 재료 그리고 담을 쌓은 구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기와를 쌓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장식 담을 ‘영롱장’이라고 표기했다. 현대건축에서 공극을 만들며 쌓는 벽돌 쌓기를 ‘영롱 쌓기’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널리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용어가 하나 더 있다. ‘어금’은 본래 작은 조개들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인데, 어금니처럼 위아래가 잘 맞아 견고하게 맞물리는 것에도 사용된다. 쌓기 용어로는 ‘어금 쌓기’라는 표현을 장기인 선생의 ‘한국 건축 대계-석조’에서 볼 수 있었다. 통줄 눈은 수직 줄눈이 통으로 이어지는 줄눈을 칭하고 이와 구분되는 막힌 줄눈은 벽돌을 겹쳐 쌓아서 수직 줄눈이 위아래로 연속되지 않는 것을 칭한다. 이 중에서 수직 줄눈이 위-아래 벽돌의 중앙에 위치한 것을 ‘바른 쌓기’라고 하고, 양쪽의 간격을 다르게 쌓는 것을 ‘어금 쌓기’라고 했다. 지금의 우리들보다 막힌 줄눈의 종류를 세분하여 각각을 용어로 구분한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경복궁 옆 서촌에서 이 ‘어금 쌓기’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금 쌓기는 벽돌의 마구리 방향과 길이 차이로 인해 모서리 부분에서 단초가 만들어진다. 표준 크기의 벽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데, 최근 길이 방향이 길어진 형태의 벽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어금 쌓기가 만들어지기는 모습을 여러 현장에서 목격했다. 외래어를 비롯해서 잘못된 용어 사용이 많은 현실이기에 ‘어금 쌓기’처럼 사라져 가는 용어가 발굴되어 적절하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료와 구법 그리고 구축하는 도구가 다양해지면, 그만큼 건축적 표현도 다양해질 것이다. 재료의 명칭과 건축 용어가 적절하고 바르게 사용된다면 분명 우리 건축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식 쌓기나 메지처럼 잘못 사용되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현대의 영롱쌓기 / 더웨스트빌리지
사진 박영채 · 제공 황두진

어금 쌓기 / 종로구 통의동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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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워치 05 북한의 건설 관련 법규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5
North Korea’s laws and regulations in regard to construction

1. 들어가는 말

건축은 공공복리, 안전 등과 관련이 있으므로 모든 나라에서 법에 의한 규제를 받는다. 또한 개인소유 토지에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건축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건축은 법에 의한 사유재산권을 제한받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건축법규는 건축밀도(건폐율, 용적율), 건축선, 높이, 구조, 환기, 채광 및 소방 등 건축 전반에 대하여 규정하고 기준을 따르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건축인허가 관련 법규가 800여 개에 이른다.
북한은 노동당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고, 노동당 규약 등이 법률에 우선하므로 법치국가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건축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일찍부터 마련하여 적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헌법 제정과 개정사항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의 법률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건축관련 규정의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 1990년 이후부터 국제정세 변화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하여 여러 법규를 제정하고 일부 법규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하였으며, 북한의 건축관련 대표적인 법규인「도시경영법」은 1992년에,「건설법」은 1993년에 제정되었다. 도시경영법과 건설법의 제정은 사회변화를 반영하여 제한적이지만 법치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법률 체제는 헌법, 법률, 시행규정, 시행세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의 법률을 남한의 법률체계와 비교하면, 법률은 법, 시행규정은 대통령령(시행령), 시행세칙은 부령(시행규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법률은 인터넷으로 전문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개되어 있으나, 규정, 시행세칙 등은 외국인 투자관련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만수대 의사당(북한방송 캡처)

 

2. 건설, 도시계획 및 부동산 법규

북한의 대표적인 건축관련 법규는 건설법이다. 남한의 건축법은 건축물의 건설에 대한 법규이지만, 건설법은 건축물만이 아니라 항만, 도로, 댐 등 모든 시설물의 건설방법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 남한의 건축법 2조에는 “건축물이란 토지에 정착(定着)하는 공작물 중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것과 이에 딸린 시설물, 지하나 고가(高架)의 공작물에 설치하는 사무소ㆍ공연장ㆍ점포ㆍ차고ㆍ창고,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건설법은 북한이 계획경제국가이므로 국가가 국가건설총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설물 건설 시에는 국가건설계획에 반영하여야 하며, 국가 혹은 단체소유인 토지이용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물과 건축물의 설계, 건설 및 준공절차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도시경영법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으로 건물의 보수, 관리, 살림집의 배정, 상하수도, 난방, 도로, 하천, 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의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 시설물 보수 및 유지관리 관련 법규가 별도로 있는 것은 모든 토지와 건물이 국가 혹은 단체의 소유이므로 공공이 시설물 유지관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물의 보수 및 유지관리는 해당 기관(도시경영사업소 등)이 하지만, 경미한 경우에는 시설물 이용하는 단체, 기업소, 주민 등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규정은 건물의 외벽도색, 도로의 보수 등을 위하여 기업소의 직원과 주민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북한의 국토 및 도시계획은 토지법(1977년 제정)과 건설법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었으나, 2000년대 초반 별도로 국토계획법(2002년)과 도시계획법(2003) 등 국토 및 도시관련법을 제정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후 2001년 1월 중국 상해를 방문하여 천지가 개벽하였다는 발언을 하였고, 건축전문가인 마원춘에게 중국을 배워오라고 지시하여 마원춘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후 제정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도시관련 법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경제특구 개발을 통하여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경제특구는 싱가포르의 영향을 받아 사전계획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므로,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도시계획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국토계획법, 도시계획법을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이용계획법, 도시계획법은 건설법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어느 법이 어떤 상황에서 적용되는 지는 명확하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시관련법에는 남한의 도시계획법(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토지이용을 위한 용도, 지역, 지구와 같은 규정은 없으나, 토지를 주민생활토지, 농업토지, 산업토지, 산림토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국토건설총계획, 도(직할시)국토건설총계획, 시(구역), 군국토건설총계획 등으로 계획의 위계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 인하여 체계적인 국토개발이나 도시개발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2009년에는 살림집법, 부동산관리법 등이 제정되었다. 이들 법규는 19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 이후 불법적인 주택 및 토지의 거래를 제한하고 이용 및 관리를 체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규는 토지의 허가를 받아 이용하도록 한 측면에서는 경제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동안 당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토지의 불법적인 이용에 대한 규제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하여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한 임금 및 가격현실화, 공장운영의 부분적 자율화, 시장양성화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확대로 정부 통제력의 약화와 빈부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2005년부터 배급제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였고, 2007년에는 50세 미만 여성에게만 장마당 장사를 허용하는 정부의 통제력 확대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물가상승, 장마당을 통한 거래확대는 계속되었으므로, 계획경재의 복원과 정부의 통제력강화를 위하여 2009년 12월 화폐개혁을 시행하였다. 이 조치는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에 따라 후계자에게 권력이양을 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3개월 만에 주민들의 반발, 물가의 급등, 북한화폐의 신뢰성 하락과 외화(위안화, 달러) 사용 확대 등을 불러오며 3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에 화폐개혁을 추진하였던 박남기 국가경제계획위원회 위원장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살림집법과 부동산관리법은 이러한 시장경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2009년 발표되었다. 토지를 허가 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제정 당시에는 시장경제제한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화폐개혁의 실패를 인정하고 2010년 3월부터 시장을 인정하는 정책을 취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을 반영하여 2011년에는 토지의 자율적인 이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살림집법과 부동산관리법을 개정하였다.
살림집법은 살림집 건설의 절차, 준공검사, 살림집의 배정, 교환, 동거 등에 대한 규정이 있다. 그리고 살림집의 사용료 납부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어 살림집의 무상공급, 무상사용에 대한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살림집법에서는 살림집에 대한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나, 살림집이용허가증을 받으면 입주할 수 있고 교환에 대한 규정도 있으므로 살림집관리기관과 결탁하여 살림집을 거래하고 있으며, 북한당국은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림집법과 비슷한 시기에 제정된 부동산관리법에는 토지이용 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부동산의 가격을 정하고, 사용자가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동산법은 불법적인 토지임대, 거래를 제한하는 목적도 있지만, 토지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하여 토지 이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에서 장마당의 매대를 대상으로 받고 있는 사용료도 부동산관리법의 부동산사용료의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살림집 이용허가증. 살림집이 준공되면 입주 시에 인민위원장 등이 참석해 입주를 축하하는 ‘입사모임’을 한다.(북한방송 캡처)

살림집 이용허가증 배포 모습. 입사모임에서 입주에 대한 축사를 하고 살림집 이용허가증을 배포한다. 도시에서는 강당 등에서 진행하지만, 농촌 등 강당이 없는 곳은 야외에서 진행한다.(북한방송 캡처)

가장 최근에 제정된 건설관련 법규는 도시미화법(2012)과 건설감독법(2014)이다.
도시미화법은 도시경영법의 도시미화관련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이며, 김정은위원장 집권 후 건축 및 도시개발 시 강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도시미화법에서는 도시의 조경(법규에는 원림조성), 경관조명(법규에는 불장식), 옥외광고물(법규에는 간판, 구호판, 표시판), 전기선 등의 처리(신규 전기선, 통신선 등을 설치하는 경우 지하로 설치하도록 규정), 건물외벽색의 변경, 그리고 마을청소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미화는‘전군중적 도시미화사업원칙’을 규정하여 도시미화에 주민들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법규에 의한 경관조명, 조경, 간판정비 등은 평양에서는 실제로 시행되고 있다.
건설감독법은 설계의 심의와 승인, 건설공사의 감독, 준공검사 및 위법건설물에 대한 처리 등을 규정한 법으로 건설법에 있는 관련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규이다. 법에서 말하는 감독의 역할은 남한의 감리와 유사하다.
2014년 건설감독법을 제정한 것은 북한의 건축물 붕괴 등 부실공사 증가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2014년 5월 북한은 이례적으로 아파트붕괴사고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5월 18일, 5월 13일 평양직할시 평천구역에서 23층 미완공 고층 아파트가 붕괴되어 수백 명 이상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살림집 시공을 되는대로 하고 감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2014년 이전에도 여러 건의 건물붕괴사고가 있었으며, 백두산 청년영웅발전소(수력발전소)도 부실공사 의혹이 있었다. 이러한 부실공사는 김정은 집권 후 대규모 건설사업의 추진과 속도전의 영향이었다.
남한이 1990년대 중반 발생한 성수대교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건설공사 품질관리와 감리제도를 강화하고, 무리한 공기단축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과 유사하게 북한도 건설감독강화를 위하여 건설감독법을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한에서 시설물 대규모 재난 후 무리한 공기단축관행이 상당히 개선된 것에 반하여 북한은 여전히 속도전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실공사 문제는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3. 외국인 투자관련 법규

북한은 외국인 투자 시 적용되는 건축, 개발, 토지이용 및 부동산에 대하여 외국인 투자관련 법규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1992년 나선경제자유무역를 지정하고, 자유무역지대법, 외국인투자법, 토지임대법 등 외국인투자관련 법규 50여 개를 연이어 제정하였다. 이 법규들에서는 북한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토지의 임대(이용권)방법, 재산권 보장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토지사용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중국 경제특구개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에는 나선경제무역지대(나선경제특구)의 건설을 위하여‘나선경제무역지대 청부건설규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 규정에서 외국의 건설회사도 나선경제특구에서 시공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북한허가기관의 건설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 당시에는 건축물 건설 시 북한의 건축법규와 기준에 따라 건축설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핵문제, 김일성주석의 사망 등으로 나선경제특구는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북한법전

2002년 하반기에는 신의주특별행정구법(2002.9), 금강산관광지구법(2002.11), 개성공업지구법(2002.12)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에 제정된 경제특구관련 법규의 토지, 부동산, 건축관련 내용은 1990년대의 나선경제무역지대법 등 외국인투자관련 법규와는 차이가 있었다. 1993년 제정된 자유경제무역지대법과 1998년 제정된 나선경제무역지대법에서 개발과 건축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신의주특별행정구기본법, 금강산관광지구법 및 개성공업지구법에서는 투자자가 개발·건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토지임대와 건물소유 등에 대하여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그리고 금강산과 개성공업지구법에서는 북한허가기관이 아니라 관리위원회에서 건축허가를 하도록 규정하여 북한의 법규와 관계없이 건축이 가능하였다.
2010년 이후 북한은 나선경제지대법 개정(2011),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2011) 및 경제개발구법(2014)등을 제정하여 경제특구를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법에서 개발업자가 주도적으로 개발 및 건축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비해, 2010년 이후 경제특구관련 법에서는 개발과 건축에 북한의 참여범위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건축(건설)기준은 북한법이 아닌 별도의 기준을 적용을 허용하고 있다.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법 55조(건설기준과 기술규범)조항에서 경제지대의 건설설계와 시공에서 선진적인 다른 나라의 설계기준, 시공기술기준 및 기술규범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다른 법규에서도 건설허가는 관리위원회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중국과 공동개발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개발구법에는 북한기관이 토지이용권을 출자하여 외국기업과 합영이나 합자회사를 설립하여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향후 남북관계개선으로 남북경제협력이 본격화하는 경우, 이러한 사례를 참조하여 경제특구개발 시에는 남북이 협의를 통하여 건설기준과 절차를 정하고 적용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건설 관련 법제도를 개선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개발에 북한이 참여하여 개발이익을 공유하면, 개발의 위험성도 분산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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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최덕주 ‘결구와 수직의 풍경’ 展

‘Landscape Woven, Connected’ Exhibition
by Seung, Hyosang and Choi, Deokjoo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6월 29일∼7월 18일 개최
약 45점 가구와 조각보, 근현대 회화 구성…예술의 본질 공유

승효상 건축사와 최덕주 조각보 작가의 2인전 ‘결구(結構)와 수직(手織)의 풍경’ 전시가 6월 29일(화)부터 7월 18일(일)까지 3주간 서울옥션 강남센터 6층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승효상 건축사(前국건위원장,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는 “7년 전 전시했던 ‘수도원을 위한 가구’에 더하여, ‘결구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제 건축 속에 들어가는 조촐한 가구에 최덕주 조각보 작가의 작품으로 이룬 ‘수직의 풍경’을 덧댄 이중전시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전시회 명이 ‘결구와 수직의 풍경’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가구와 조각보는 수사와 장식을 멀리한다. 특히 가구는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결구를 이루는 부재들 사이의 투쟁이 있으며 이는 가구들이 때로는 긴장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승효상 건축사는 ‘스스로 추방된 이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제를 달았다. 조각보는 염색부터 직조까지 문자 그대로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으로, 한 땀 한 땀이라는 글귀가 갖는 진지함과 색조의 얇은 천 속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함과 집요함이 담겨있다.
서울옥션 측은 “약 45점의 가구와 조각보, 근현대 회화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보다 다양한 예술의 본질을 공유하고자 한다”면서 “가구와 조각보를 함께 전시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결구와 수직은 최첨단 기술도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삶이라는 같은 결을 가지며, 이 둘의 모임은 하나보다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결구와 수직의 풍경이 관람객들을 위로하며 쉬게 해주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육혜민 기자

전시관 내부 전경

전시관 내부 전경

반투명한 감청색 조각보 너머에 배치된 수납장과 우탁, 수도사 의자 1

문구통과 문구반, 검은 고촉등이 놓인 탁자 뒤편으로 성서장이 자리하고 있다.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를 위한 쉼터, 묵대. 승효상 건축사는 전시에 ‘스스로 추방된 이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제를 달았다.

수도사 의자 2

전시관 내부 모습, 최덕주 작가의 조각보와 승효상 건축사가 만든 서랍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