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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형 한국 건축정책과 제도, 한국 공공건축의 격 낮춘다

Underdeveloped Korean architectural policies and systems lower the class of Korean public architecture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자하 하디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는 담당 공무원들에겐 끔찍한 프로젝트였다. 이들에게 동대문 DDP의 건축적 가치를 질문하면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문화와 기술적 성과인 건축가치를 지닌 건축으로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받은, 건물이 아닌 ‘건축’이다.
해외 유수의 문화적 가치지향성 행사나 주체들이 한국에서 행사장으로 선택하는 곳이 DDP다. 세계 패션의 선두주자인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브랜드에서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자신들의 전시나 행사를 하고픈 장소로 DDP를 선택한다. 이제는 논란의 여지없이 연간 방문객을 2,000만 명 이상 모으는 최고의 건축으로,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 건축이 왜 공무원들에게는 스트레스성 질병을 안겨줄 만큼의 과정을 겪었을까?
이쯤에서 잠시 다른 공공건축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공공건축 프로젝트 당선이 되어서 서울시 기술심사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공공건축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고 있다. 건축과 건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설계와 시공의 지향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후진적 사고로 만들어진 건축정책과 제도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바로 「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의 ‘[별표 8] 건설공사 등의 벌점관리기준(제87조 제5항 관련)’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건축설계와 건설시공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로 뭉뚱그려서 살벌한 벌점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건축은 매력적인 성과물, 즉 완성도 있는 미래의 문화재적 잠재성을 내포하는 건축이다. 이런 건축을 일개 건물로 추락시키는 역할을 이 벌점 관리 기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어이없는 기준이 바로 ‘공공건축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사에게 수량 및 공사비가 잘못됐다고 벌점을 주는 규정이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별표 8] 제5호 다목 5) 가) · 나) · 다) >

왜 잘못되었냐고? 완성도 높은 건축을 설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테일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 공사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설계공모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 대부분은 국내 건축공사비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눈으로 보이는 ‘건축적 가치’에 집중한다.
이 최악의 규정이 건축사들을 옥죄고 망나니의 칼날처럼 건축을 훼손해서 건축이 아닌 ‘건물’로 추락시킨다. 실무 공무원들에겐 굳이 완성도 높은 건축일 필요가 없다. 그냥 필요에 맞춘 건물이면 문제없다. 필요 없어지면 해체하고, 예산을 만들어서 다시 저렴하게 건물을 지으면 되기 때문이다. 당장 이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더구나 국내 건축사들에게 이 규정은 역차별의 정수다.
2006년에 예상 공사비가 1,593억 원이었던 DDP는 2011년 5,094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진행되었다. 자하 하디드는 벌점을 받지 않았고, DDP는 그의 대표작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무수히 반복된 감사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 건축직 공무원에게 ‘건축’을 요구할 수 있는가.

그들은 ‘건물’을 만들면 이런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런 사례를 보고서도 문제의식이 없는가?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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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왔습니다.”_문

I’m from the future_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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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옛 원형 보존하며 현대적 공간의 사용성 이뤄내다

Yooshinjae – House of thoughts and trust Achieved the usability of modern space while preserving the old prototype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한 529제곱미터 규모의 2층 사옥 ‘유신재’. 일제강점기 시절 건설된 벽돌(연와조)과 철근콘크리트조, 목조 트러스 지붕 구조의 이 낡은 건물은 준공(1926.06.23)된 지 90년이 훌쩍 넘었으며, 건물주인 ㈜유신이 역삼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후 30여 년간 문서보관소로 사용돼왔다. 그런 이 건물이 지난 4월부터 8월까지의 공사를 거쳐 유신건축(주.유신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의 사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근 100여 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리모델링 설계자는 유신건축의 김지덕 건축사(父)·김우영 건축사(子/ 영국왕립건축사) 父子다. 지난 9월 24일, 유신재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두 부자 건축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홍성용_어떻게 이 건물을 사옥으로 쓸 마음을 갖게 되셨나요?

김지덕_제가 한 50년 건축을 했는데, 하면서 매일 바쁘게만 생활하고 우리 건축사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못 봤어요. 그래서 ㈜유신의 전경수 회장님과 유정규 회장님께 이 건물을 창고로 쓰시지 말고 빌려주십사 청을 했습니다. 우리같이 건축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옛 건물도 현대에 맞게끔 자유롭게 설계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요. 지금은 건축적인 세미나가 있으면 이곳 2층 회의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에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필요한 건축적 일도 할 수 있도록 하고요. 그것이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 오래된 건물의 리모델링
   사회에 공헌하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자 건축사의 책임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업적

홍성용_유신재가 90년이 넘은 건축물이잖아요. 최근 들어 ‘재생건축’이라는 용어가 각광받으면서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트렌드화·소비화되고 있는데, 10년 새에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우영_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우선 경제적인 문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건비도 오르고… 건물을 짓는다는 게 보통 큰일이 아니잖아요. 기존의 건축물을 살려서 적합한 용도로 변화하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더 수월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건축물이 갖고 있는 내재된 특성을 잘 살리면 굳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공간의 퀄리티라고나 할까, 그 공간이 갖고 있던 장점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또 친환경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의 생애 주기 동안 발생하는 탄소량의 상당 부분이 시공단계에서 야기되는데, 리모델링은 내재된 걸(카본 등) 그대로 두는 행위잖아요. 그 자체가 미래적으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희가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당장에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인 것 같아요.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건축인으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하고요. 마지막으로는 당장 법규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 법이 너무 강화됐잖아요. 신축건물을 짓는다는 게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기에 지어진 건물을 보존하는 게 면적 개념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좌)김지덕 건축사 · (우)김우영 건축사

김지덕_건축은 사람의 생활에 가장 절박한 세 가지 필수항목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물은 시대 조류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해체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야만 하는 신축 건축물을 설계·건축하는 사례가 많이 목격됩니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들은 옛 건물을 해체하기보다 현대 사용 목적에 합당하게 고치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인 사항들을 보완해 현대적인 공간의 쓰임새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있어요. 옛 건물을 쓰임새 있게 다시 만드는 건축사들 중에 프랑스의 앤 라카톤(Anne Lacaton)과 장 필립 바살(Jean-Philippe Vassal)이 옛 건물을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건축공간으로 설계·개조해서 근본은 살리되 기능 위주의 새로운 합리적 공간을 창안해 올해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잖아요. 이전 건물을 철거 방식이 아닌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접근해 만들어내는 것은 경제적·친환경적·사회적 공간을 새롭게 적용해 사회에 공헌하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자 건축사의 책임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유신재’, 건축유산의 복원에 초점
   개인적 욕심 내려놓고 95년의 개조·변화 흔적 그대로 살렸다

홍성용_어떤 태도로 이 건물의 리모델링 설계에 임하셨는지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우영_이 건물(유신재)은 건물주(주.유신)가 역삼동으로 사옥을 이전하신 후에 거의 30년 가까이 문서보관소로만 사용한 건물입니다. 그 와중에 개발사업이나 부지 매각을 통한 이윤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으신 점이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 건물의 역사성이 그 분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설계에 착수했을 때 어떤 개인적 성향을 부여해서 건물을 새롭게 변신시키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내려놨고, 건물의 역사성이 퇴색되지 않도록 (건축 유산의)복원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부분도 많고 건물의 하자가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보수·복원해서 건물이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판단했습니다. 건축물이 내포하고 있는 존엄성을 회복하고 이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설계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고, 공사 과정에서도 과거의 건축적 언어, 시공법과 재료,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개조나 변화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거나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이 공간의 성격과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이자 이 건물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합니다. 건물 외벽에 문패를 제외한 옥외간판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홍성용_작업 진행 과정을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지덕_안이고 바깥이고 막 현대화시킨 것이 아니고, 본래의 내부 모습을 살려 역사적 맥락의 시각적 시인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불편함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처음 김우영 건축사에게 작업을 해보라고 했을 때 무척 좋아하는 거예요. 김 건축사가 영국에서 학교를 나와 공부를 해서 좀 전에 언급한 것 같은 Architect 스피릿을 알고 있으니까… 옛것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화해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 김 건축사가 고민을 많이 했죠. 비가 새던 기와는 철거 후 징크소재 지붕을 설치하고, 폭삭 무너져가던 지붕재도 다시 보강하고요. 트러스 위 지붕판재의 상부는 단열재로 보완해 단열 효과를 높였습니다. 목조 출입문과 창문은 알루미늄으로 교체 시공하고 냉난방, 통신, 소방시설 모두 새로운 요구 조건에 맞게 신설했습니다.
즉 평범한 기술로 건축사의 미적 개념을 적용해 신·구의 조화로운 감각을 살리되 원형은 보존하고 현대적 공간의 사용성을 이뤄낸 거죠.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환경적인 책임,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옛 감수성과 역사성을 느끼고 존중할 수 있도록 겸손한 접근방식을 취하여 오래됐지만 여전히 현대적인 건축물로 재탄생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우영 건축사

김우영_트러스 자체 상태는 굉장히 양호하다고 판단했는데, 그와 결부된 장선과 판재에 누수로 인한 피해가 있었기에 그 부분을 전면 보완했고요. 1층은 외벽 두께가 40센티미터가 넘는데 벽의 축열성능(Thermal Storage Capacity)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구조체를 뚫고 냉기 또는 온기가 오고 가는 데 있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까. 사실 처음 이 건물에 들어와 본 것이 여름이었는데, 좀 시원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벽쪽 단열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의 구조체 자체를 신뢰한 거죠. 지붕은 워낙 열기가 세니까… 저희가 업무공간으로 상주해야 하기에 지붕 단열재는 상당한 보강을 거쳤습니다. 다만 수도계량기에서 화장실 밑으로 들어오는 배관은 저희가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래서 미세하게 녹이 섞인 물이 나오기도 해요. 몇 십 년이 지난 배관이 묻혀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이제 저희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진행한 거죠. 정수기도 급수관과 직접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물통을 얹어 사용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이유가 그런 거거든요.
김지덕_해놓고 보니 굉장히 좋습니다. 화장실도 90년대 벽돌집처럼 벽돌을 툭툭 쑤셔 넣었는데, 전연 새로운 맛입니다. 옛것도 느낄 수 있고요. 모든 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비교적 거주기간이 긴 편인데, 지나가며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로테스크한 건물을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고쳐놨냐며 마당 한편에 꽃 화분을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홍성용_건물은 철골로 된 건가요?

김지덕_벽은 연와조고, 기둥과 보, 슬라브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하이브리드 건축물입니다. 앞쪽이 오리지널이고요, 저 뒤쪽 공간은 ㈜유신에서 쓸 때 한 번 증축을 한 공간인데 1970년대쯤 증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지덕 건축사

 

# 실측과정에 특히 공들여 건물 스터디…
   필요한 건 ‘공간’이지, 특정한 ‘용도’ 아냐
   오리지널 건물의 물성 덮는 행위 지양

홍성용_진행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우영_도면이 없어서 실측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시공사에 스케치와 구두로만 전달할 수 없다보니 실측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처음 이 공간에 왔을 때는 천정재도 있었고 굉장히 꽉 찬 공간이었는데, 2단계로 나눠 철거했습니다. 실측 후 1차로 실내부분 철거를 한 후에 막혀서 볼 수 없던 천정 같은 부분을 진행했고, 그 다음 2차 철거를 진행했어요. 그렇게 나눠서 진행하면서 건물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벌고, 정확한 스터디를 할 수 있게끔 한 거죠. 사실 이런 건물의 작업은 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장조사를 많이 했고, 그렇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힘들죠. 95년 된 건물의 안과 밖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서 뭔가 하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또 건물의 바닥을 자세히 보시면 평활도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가구배치를 할 때도 기존 저희가 알고 있는 가구 시스템을 놨을 때 적응이 안 되는 거죠. 저 쪽에 있는 테이블도 오른쪽 다리를 상당히 올려서 배치했거든요. 한 쪽이 8~9센티미터 정도 높으니 레벨을 맞추게 되면 거의 새로운 바닥을 갖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존의 오리지널 건물이 갖고 있던 재료의 성질을 덮어버리는 행위가 되는 거죠. 그 자체가 부담스러웠기에 그런 행위를 배제했습니다. 말씀드렸듯 처음부터 원칙이 복원·보존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떠오르면 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아! 이건 이런 관점에서 좋지 않겠다’ 하고요.

홍성용_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다르게 느꼈던 점이 있나요?

김우영_아주 오래된 건물을 건드리는 입장에서, 이런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외형적인 부분보단 일단 하자가 좀 없었으면… 하고 바랐고, 오랜 세월을 버틴 건물이라 저는 건물이 굉장히 튼튼할 줄 알았어요. 사실 이것저것 건드려보니 굉장히 여리고 섬세하더라고요.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버텨왔나 싶을 정도로, 지붕이 허물어져있는 모습 등을 봤을 때는 ‘아, (건물이)진짜 오래 버텼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과감한 접근보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이 건물을 나의 어떤 억지스러운 주장에 의해 변화를 시키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홍성용_불편하거나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안고 가겠다는 그런…….

김우영_그렇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90년 이상 된 건물을 쓰려 하면서 현대건물의 기준을 대입하는 태도는 무리가 있다고 보거든요. 설계자들은 용도를 기준으로 설계를 하잖아요. 그 용도에 맞춰서 모든 공간이 짜이고……. 그런데 공간이 용도에 국한되어 쓰인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환경 변화에 제약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죠. 코로나라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요. 최근 해외에서도 다들 얘기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코로나 시대에 어떤 설계를 할 것인가.’

홍성용_저 역시 건축법에서 정의하는 용도가 이렇게 디테일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너무 디테일하게 용도를 구분해버리니까 시대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지금만 봐도 당장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수용 불가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김우영_그렇죠. 용도에 갇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근본적으로 공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게 한 시대의 용도에 갇혀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요. 요즘 보면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고, 그 용도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공간도 많고요. 실질적으로 저희가 필요한 공간은 다변화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한 건 공간이지, 어떤 특정한 용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유신재 앞에 두 부자 건축사가 서 있다.

# 건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원 설계자의 의도 드러내

홍성용_외형적으로 보이는 입면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우영_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창호 타입을 결정하는 것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름 주어진 한계 내에 예쁜 패턴 등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던 게, 고민하다 보니 그게 의미 없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초에 있었던 스타일인 새시 윈도우(오르내리창), 거기에 준해서 새롭게 창호를 제작하는 게 낫겠다 결심하고 아주 쉽게 틀을 잡았죠. 대신 그전에 뭔가 해보려고 허비한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건물과 어울리느냐 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원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게 이 건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홍성용_작업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김지덕_작년 9월 말에 시작했습니다. 처음 답사는 지난 해 9월에 시작했고, 공사는 올 4월에 들어가서 5개월 만에 완료됐습니다. 120일이 소요됐으니 실제적으로 4개월이네요. 더 빨리 완료될 수 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지붕 때문에 오래 걸렸죠.

김우영_사실 시공사 측에서는 3개월을 예상했었어요.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면서 그 하자를 잡기 위해 파고 들어가면 다른 문제가 연관되고, 같이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러다 보니 한 달이 더 소요된 거죠.

# ‘건축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 같은 생각을 지닌 두 부자의 동업

홍성용_이야기를 좀 벗어나서, 두 분이 부자지간이면서 함께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서로의 관계는 어떠세요? 같이 작업하는 게 편하신가요?

김지덕_(서로)맘에 안 들어요(웃음). 김우영 건축사가 런던의 상당히 좋은 건축사사무소에 근무 중이었는데, 제가 런던에 세 번을 갔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지쳤고, 젊을 때처럼 활동하지 못하겠으니 인수를 해줬으면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해 보더니 도로 영국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김우영 건축사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김우영_장단점이 있는데, 아버지기도 하지만 대선배시니까. 지나가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요.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 아니니까. 성향은… 서로 다르다 보니까 좀 부딪치는 면들이 있죠(웃음). 근데 모든 게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사실 제게 그런 것들이 별로 큰 문제점으로 다가오진 않고요.

홍성용_사실은 조금 부럽습니다. 건축사들이 자조적으로 자식에게는 건축을 시키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많은데도,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우영 건축사님이)건축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했어요.

김우영_자연스럽게 건축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아버지와 생각이 좀 비슷한데요. 건축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근데 이제 우리나라에 와서 겪어보니까 가끔 고통으로 다가올 때도 있더라고요.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가 믿는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불필요한 과정들이 그것인데요. 특히 관 프로젝트 같은 경우 예를 들면 서류나 여러 가지 납품해야 하는 것들, 시의원에게 발표를 해야 하는 등의 조직체계 속 보여주기 식의 문화. 예산도 건축안을 보고 스터디를 통해 잡히는 게 아니고, 굉장히 빠른 스터디나 과거의 샘플을 통해 측정한 금액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것도 핸들링 할 수 없는 세계 내에서 쥐어짜서 만들어내는 과정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행위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쌓여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거죠.

홍성용_행위나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라 그 프로세스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의 태도가 문제인 것 같아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 자기가 발주자가 돼서 건축사들에게 자기의 요구사항을 전달한다는 거죠. 본인이 디자이너가 돼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우영_심적인 부분에서도 관 프로젝트와 민간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관 프로젝트는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어떻게 보면 저희는 철저한 서비스 업무를 하는 거죠. 주어진 기간 안에 원하는 스펙을 갖춘 도면을 만드는…그런데 그런 행위들이 건물의 생명력과는 상관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진행하면서 저희도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관심이 있는 부분을 들춰보고, 몰랐던 하자가 드러나면 일단 주변 공사를 중단시키고 좀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거죠. 민간 프로젝트에선 심적인 부담이 덜해 이런 자율성 있는 행위가 가능하니까요.

# ‘나’를 건축물에 맞추는 과정… 욕심을 내려놓는 법 배웠다

홍성용_만약 다음에 다시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김우영_그런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사실 설계라는 게 경험이 없으면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모든 건물은 똑같지 않으니까 각기 다른 도전, 챌린지를 주죠.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유사한 사례를 만나면 이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발전된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성용_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신 게 있나요?

김우영_개인적으로 디자인적 욕심이 많다면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오래된 건물 자체가 없잖아요. 이런 건물을 만났다는 자체로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인 성향을 좀 배제해도 충분히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굳이 어떤 스타일이나 특별한 개념에 빠져서 그 용도를 수용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행위보다, 대지를 좀 더 관찰하거나 관계성, 역사성에 중점을 둔 공간을 만드는 게 오히려 미래에 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좋은 발판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번 작업에서 그런 걸 배운 것 같아요. 저를 건축물에 맞추는… 때론 욕심을 부리는 것이 건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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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유신재 오래된 신선함

Architecture Criticism _ Yooshinjae The old freshness

지난 8월 28일 토요일, 갈월동 유신건축 신사옥을 방문하였다. 대한건축사협회의 국제적 활동을 함께한, 한양대학교 건축과 선배인 유신건축 김지덕 회장의 안내로 최근에 리노베이션을 완료한 건물에서 거의 충격적인 아름다움에 놀랐다.

9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지은 이 건축물은 콘크리트와 조적의 합성과 목조트러스 지붕 구조로 되어있다. 대지면적과 연면적이 약 529제곱미터(160여 평)로 비슷하고, 지하층 일부가 있는 2층 건물이다. 금년 초에 선배가 내게 했던 이공건축과 함께 이곳에서 일하자는 멋지고 고마운 제안에 근래에 이사한 나의 곤지암 주택에서 멀다는 사정으로 합류하지 않은 것이 유신건축을 위하여 얼마나 다행한 결과인지 설명드렸다. 만약 내가 이 건물에서 약 165∼198제곱미터(50∼60평)를 차지했다면 이 멋지고 여유 있는 분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고교시절부터 영국에서 유학하며 저명한 AA School을 거처 영국은 물론 귀국해서도 한국 건축사가 된 선배의 아들 김우영은 역시 훌륭한 디자이너였다. 그는 동년배인 내 큰아들 정철이가 말레이시아 Ken Yeang의 사무실에 근무할 때도 서로 만난 적이 있고, 내가 2000년 5월 AA스쿨에서 초청강의를 할 때 우연히 그 날 아들을 만나러 온 선배와 그를 처음 만난 인연이 있다. 이미 만 45세의 중견 건축사인 김우영의 디자인 능력을 직접 본 것은 이 유신건축 갈월동 사옥이 처음이다. 그의 디자인은 개념과 디테일이 명료하고 빼어났다. 역시 AA 출신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AA스쿨에서는 첨단의 개념적 디자인을 추구함도 맞지만 재료 작업실에 가보면 다양한 종류의 건축, 구조재료와 그 사용 디테일을 일상적으로 가르치고 있음을 우리나라 건축 교육에서는 잊고 있다. 건축공학과 4년 졸업을 하면 건축사시험도 볼 수 없고, 이른바 건축학과는 디자인 우선이라며 엔지니어링 교육을 거의 하지 않으니 나는 이것을 한국 건축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어느 유명 건축사가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이도 없지만 구조적 기술적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더구나 없을 것이다.

<유신재> 남동측 전경 © 이보영

<유신재> 2층 사무실 © 이보영

유신건축 신사옥은 우선 90여 년의 나이테를 지우지 않았다. 골격의 흔적과 본질의 깊이를 솔직하고 세련되게 되살리고 있으며 현세의 기술적 공법과 설비를 구축한 신선한 디자인이다. 나의 12년 추억이 담긴 옛 원서동 공간연구소에 몇 해 전에 가본 느낌과는 다르다. 공간건축 안팎의 벽돌과 거친 콘크리트의 높고 낮은 추억의 공간에서 나는 왜 실망했을까? 새로운 빌딩 주인인 예술가가 아마 그 거친 텍스처를 더 강조하려고 멀쩡한 바닥 재료를 다 긁어내고 거친 콘크리트로 바꾼 기억이 난다. 바닥은 오히려 비닐타일 아니면 매끈한 대리석으로 바꿔도 좋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이 유신 사옥에서 벽과 천장은 옛 모습의 기억을 애써 남겼으나 직접 접촉하는 바닥만큼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였다. 이것이 기능적 디자인이다. 옛 목구조 트러스를 멋지게 노출하고 단열과 첨단 설비 그리고 조명을 공존한 2층의 천장 디자인은 이 곳의 하이라이트가 분명하니 많은 독자들이 가보길 권한다.

김지덕 회장은 이 사옥이 유신건축을 넘어 건축계의 사랑방처럼 만남과 교류의 다목적 장소이길 바란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국제통이며 특히 미국식 설계에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김지덕 회장과, 전술했듯이 영국에서 디자인의 기초를 잘 습득한 아들 김우영 부자 건축사의 유신건축의 내일에 우리는 더욱 기대와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주)유신과 유신건축은 선대부터의 가족적 유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이 신사옥이 95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징크로 멋지게 마감한 지붕디테일을 보려면 난간이 없어 위험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보완을 바란다.

 

글. 류춘수 Ryu, Choonsoo (주)종합건축사사무소 異空 · 建築師(KIRA) · Hon.FAIA

류춘수 (주)종합건축사사무소 異空 대표 · 건축사

한양대학교 건축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서 12년 근무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88 Quaternario 국제 건축상, 서울 월드컵경기장으로 IOC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외에 영국 The Duke of Edinburgh Fellow, 미국 Hon. Fellow AIA, 체육훈장 및 문화훈장 수훈,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제작, 우송대학교 석좌교수 등의 이력을 갖고 있으며 유튜브 ‘류춘수 Space TV’를 운영하고 있다.
beyonds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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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대한민국 ‘도시재생사업 1호 마을’ 창신동 절벽마을 ①

Disappearing village
South Korea’s ‘No.1 Urban Regeneration Project Village’
Changsin-dong Cliff Village ①

채석장에서 1960년대 판자촌→1990년대 봉제공장→2000년대 봉제마을까지
절벽마을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1·2·3동에 위치하며 30만 6,667제곱미터, 2,800여 명의 소유주로 구성된 마을로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채석장으로 쓰던 바위 절벽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채석장의 흔적이 병풍처럼 보인다. 마을은 밀집되어 있는 불량 주택과 노후 주택,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주택촌’과 돌산 아래 비정형으로 막힌 골목을 따라 형성된 ‘돌밑 마을’로 구분된다. 이들 모두 급경사 지형에 적응하여 다양한 건축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큰 바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좁고 좌우 비례가 맞지 않는 집들도 많이 있다. 일제 강점기엔 이곳에 화강암을 채취하던 채석장이 있었다. 일본은 당시 이곳에서 캐어낸 화강암으로 한국은행, 서울역, 조선총독부 등을 지었으며 쉼 없이 돌을 캐면서 채석장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만들어졌다. 해방 후 채석장은 문을 닫았고, 한국전쟁 이후 채석장 인근에 토막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폐쇄된 채석장 자리에 눌러앉아 1960년대에 지금과 같은 주거지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소규모 형태로 형성된 수많은 봉제 공장촌이 생겨났다. 한국의류사업의 메카인 동대문 평화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1,000여 개의 공장들이 밀집한 ‘창신동 봉제거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장들이 모인 봉제 산업 집적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봉제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봉제 공장촌은 사라지고, 현재는 동대문 패션마켓을 위한 생산지로, 또 여전히 많은 소규모 개인 봉제마을로 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뉴타운 개발 대상 지정→2014년 도시재생 1호 지역 지정→2021년 도시재생구역 해제 요청과 소송
뉴타운 개발 열풍이 불던 2000년대, 2007년에 창신동도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뉴타운 지구는 해제되었다. 개발이 되면 살고 있는 주민 대다수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 걱정 때문이었다. 이에 대안으로 찾은 게 ‘도시재생사업’이었다. 그리고 2014년 도시재생 1호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창신동 도시재생에 투입된 예산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1,168억 3,300만 원에 달한다. 마을의 주택은 그대로 보존하되, 환경을 개선하고 거리를 가꾸는 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도로정비, 지정주차장, 주민교육시설, 공원, 놀이터, 도서관, 지역 공작소, 공동운영조합 등 다양한 재생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에 영화와 드라마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관, 전망대, 조망점, 역사관 거리박물관, 카페 등도 생겨났다. 하지만 주민들의 실제 생활 환경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창신동엔 좁고 가파른 골목에 허름한 주택들이 즐비하다. 가파른 계단과 급경사의 도로, 차가 지나가기도 어려운 골목길도 많고 빈집이나 폐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종로 한복판에 이런 데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정화조가 없어 공용 화장실을 쓰는 집들도 있다. 재생사업 이후에도 마을 모습이 30~40년 전 모습과 달라진 게 없었다. 노후주택 비율 72%… 슬럼화만 키웠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더 이상 재생사업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패한 도시재생사업을 이유로 창신동을 공공재개발에서 배제해 주민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2021년, 주민들은 공공재개발과 민간재개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재개발에 대한 의지와 참여가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와 도시재생구역 해제요청과 행정소송도 이어가고 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공기획’을 적용한 민간재개발 후보지 공모가 9월 말 시작되면서 주민 동의율 50%가 넘는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재생사업으로 덜어내는 데 한계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이 지역을 떠나가야 하는 현실을 걱정하는 재개발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창신동 주민의 상당수는 작은 지분 소유주이거나 혹은 주민의 70%가 세입자들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을 연장하느냐 아니면 재개발을 시작하느냐, 이곳 창신동은 또다시 갈등의 갈림길에 서 있다.
보존을 하든 재개발을 하든, 이 모든 것의 초점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맞추어져야 한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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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건축 10 단위

Term@Architecture 10
Unit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현장 작업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러저러해서 마당과 1층 바닥의 높이 차이를 10 전(錢) 정도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설계를 의뢰하고 싶다는 토지주에게 연락이 왔다. 2층 규모의 주택으로 연면적 150헤베 정도 나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짧은 대화 속에서 전(錢)이나 헤베와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일반인들뿐만이 아니라 건축사를 포함한 다수의 건축분야 전문가들도 쉽게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이지만 정작 정확한 뜻과 어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전(錢)’이나 ‘헤베’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전(錢)’은 센티미터(cm)를, ‘헤베’는 제곱미터(㎡)를 지칭한다고 이야기한다. 건축 전공자에게 이 용어들의 의미와 어원을 묻기도 하는데 출처나 어원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이런 용어를 왜 사용할까? 대부분의 은어나 속어들이 그렇듯이 일단의 무리에서 특정 용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못 알아들으면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錢)’과 ‘헤베’ 같은 용어를 왜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남들도 자주 사용하니 서로 의사소통하기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널리 통용되는 말이라고 해서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고, 건축사가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접하고 있는 전(錢)이라는 단위 용어를 살펴보자. 토목이나 건축 현장에서 1 전(錢)은 10cm를 지칭하지만, 전(錢)은 본래 화폐의 단위였다. 원 또는 환(圜)의 100분의 1을 뜻한다. 100 전(錢)이 1환(圜)인 셈이다. 화폐의 단위였던 전(錢)이 어쩌다가 길이의 단위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량법이 공포되어 미터법 사용이 강제된 시기가 1961년이었고, 긴급통화조치로 10환을 1원으로 하는 화폐단위 전환이 단행된 시기가 1962년이었던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단위의 혼란기인 1960년대 초기에 화폐의 단위에서 100분의 1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전(錢)이 100분의 1이라는 의미를 유지하며 길이 단위인 1m에 적용된 것은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아무튼 현재 전(錢)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1미터의 100분의 1인 1cm를 1 전(錢)이라고 말한다. 단위의 변환기를 경험한 비전문가라면 모르겠지만, 건축전공자나 건축사가 전(錢)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면 그를 전문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제국 융희3년(1909년) 1/2錢 동전

보조화폐로 발행된 50錢과 10錢(1962년)

그렇다면 현장뿐만 아니라 건축사사무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헤베’는 무엇일까? 우선 길이, 면적, 부피의 단위를 살펴보자. 길이 단위의 제곱은 면적이 되고, 세제곱은 부피가 된다. 그래서 미터법에서는 길이 단위로 미터(m)를 사용하고, 면적 단위로 제곱미터(㎡), 부피 단위로 세제곱미터(㎥)를 사용한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면적과 부피 단위의 한자 표기로 각각 평방(平方)과 입방(立方)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곱미터를 평방미터, 세제곱미터를 입방미터로도 사용한다. 외래어에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붙여서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미터(m)를 표기할 때 발음이 가장 비슷한 한자인 미(米)를 사용한다. 米는 쌀이라는 의미의 한자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길이 단위인 m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이유이다. 면적 단위인 제곱미터(㎡)에 집중해 보자. 우리는 ㎡를 제곱미터 또는 평방미터라고 부르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마찬가지로 평방미터(平方米)라고 한다. 이것을 줄여 평미(平米)라고도 한다.

일본의 면적 단위 종류와 표기

平米 헤베(へいべい), 立米 루베(りゅうべい) 일본어 발음 듣기

몇 년 전 중국의 실시설계도면에서 평미(平米)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평평한 쌀’이라고 이해하며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미(米)는 쌀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영어인 미터(meter)의 발음과 비슷한 미(米)를 미터(meter)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어 사전에서 평미(平米)를 검색하고 발음을 들어보면, ‘헤이베이’ 또는 ‘헤이베’로 들린다. 그랬다. ‘헤베(へいべい)’는 제곱미터 즉 평방미터를 줄여서 사용하는 평미(平米)의 일본식 발음이다. 첨부된 QR코드를 통해 평미(平米)의 일본식 발음을 귀로 들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중국에서도 일본과 같이 평미(平米)라고 표기하는데, ‘피엉미’ 또는 ‘평미’라고 발음한다. 그리고 세제곱미터 즉 입방미터(立方米)는 줄여서 입미(立米)라고 표기하는데, 중국에서는 ‘입미’ 그리고 일본에서는 ‘루이 베이’ 또는 ‘루이베’로 발음한다.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사용된 콘크리트 물량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루베(りゅうべい)’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헤베(へいべい)’, ‘루베(りゅうべい)’ 모두 사용을 지양해야 할 용어가 아닐까?

길이와 면적 단위는 일본식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서 문제라면, 조명기구의 단위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언제부턴가 조명기구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에 와트(W)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열등과 형광등을 주로 사용했던 시기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밝기를 나타낼 때 와트(W)를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되긴 했다. 백열등이 수명을 다하면, 같은 와트(W)의 백열등을 구입하면 되었고, 더 밝게 사용하고 싶다면 와트(W) 값이 보다 큰 것을 사용하면 되었다. 밝기 단위로 와트(W)를 사용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밝기와 와트(W) 수가 어느 정도 비례했기 때문이다. 대충 비슷하게 맞았던 이 공식이 소비전력(W)은 낮으면서도 더 밝은 전구가 등장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60W 백열전구와 20W 삼파장 전구 그리고 10W LED 전구의 밝기가 비슷한 상황이다. LED 전구의 밝기 정보를 ‘60W 백열전구 대체’ 또는 ‘20W 삼파장램프 대체’라고 표기하는 제품이 많다. 적정한 조도(럭스, lux)를 계획하려면 조명의 광량(루멘, lm)을 확인해야 필요한 밝기를 위한 조명 개수를 계획할 수 있는데 이런 부정확한 표기를 마주하면 난감하다. 해외 조명기기 업체들은 밝기를 국제표준에 맞춰 루멘(lm) 값으로 표기한다.

전구의 종류

전구 종류 별 소비전력(W)과 밝기(lm)

반면 국내 제품들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밝기에 해당하는 루멘(lm) 값을 표기하지 않는 제품이 보인다. 전문가 입장에서 제품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고 정확한 계획을 하기가 어렵다.

색을 표현하는 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피부색은 밝은 사람도 있고 어두운 사람도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지구의 태양 복사량 분포에 따라 피부의 멜라닌이 발달한 정도에 따라 피부색이 달라지는데,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흰색 피부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의 인권을 차별한다는 점에서 2002년 국가인권위는 기술표준원에 ‘살색’을 ‘살구색’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결국 인종차별적이고 부적절한 용어인 ‘살색’은 2005년 살구색으로 개정되었다. 이렇게 인권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명의 색깔 표현에도 문제가 많다.

다양한 피부색과 분포도

전구의 색온도(K)

‘전구색’은 무슨 색인가? 우리는 백열전구가 보여주는 빛의 색을 ‘백열전구색’이 아닌 ‘전구색’이라고 부른다. 백색 전구는 전구색과 비교해서 백색에 가깝다고 붙은 이름인데 심지어 백색도 아니다. 주광색은 낮의 태양광 색으로 빛의 삼원색이 모두 혼합된 온전한 백색의 전구를 의미한다. 혼돈은 이제부터다. 전구의 제품 설명에서 주광색은 밝은 흰색, 주백색은 은은한 흰색, 온백색은 밝은 주황색, 전구색은 따뜻한 주황색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문학적인 표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제품 설명에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부끄럽고 절망적이다. 빛의 색은 K(kelvin) 값으로 표기하는데, 2700K에서 6000K 범위의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학작품이 아니고서야 지정한 색을 정확히 전달하려면 적합한 단위와 정확한 수치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외국팀과 협력하거나 해외 프로젝트의 도면에 ‘은은한 흰색’이라고 표기할 수 없다. 전문가라면 조명을 지정하고 빛의 색을 이 캘빈(K) 값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에 표시된 영조척(營造尺)

조선시대 영조척(營造尺)과 다양한 척(尺)들

세종대왕은 쉬우면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훈민정음도 만드셨지만, 신생국가였던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단위 기준인 도량형도 통일시켰다고 한다. 세종조에 갖춘 이 단위의 기준 척도들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이 척도들은 황동으로 만들어진 사각 유척으로 제작되어 표준 척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쉽고 자유로운 문자도 필요하지만, 정확한 단위도 함께 있어야 했던 것이다. 건축분야에서 사용했던 기준으로는 목공척이라고도 불렸던 영조척(營造尺)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는 20세기 초반 모든 분야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전통적인 단위와 근대적인 단위가 혼용되었고, 잘못된 단위나 용어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1959년 국제 미터법 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법으로 계량법을 재정, 공포했다.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단위를 잇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단위는 옮고 그름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가 합의한 약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표준으로 합의된 길이 단위와 면적 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특히 건축사와 같은 전문가부터 정확한 의사소통과 정보 전달을 위해 표준 단위와 용어를 사용해야겠다.

어원과 출처도 모르면서 ‘전’이나 ‘헤베’, ‘루베’ 같은 용어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전문가 생색을 내는 일은 우리에게 무척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위만큼이라도 익숙지 않고 편하지 않더라도 적절한 단위를 사용하려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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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워치 08 건축물의 유지관리(도시경영)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8
Maintenance of buildings(City management)

1. 도시경영의 의미와 범위

남한과 비교하여 북한의 건축의 가장 독특한 점은 국가가 주택을 포함한 도시의 건물과 시설물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은 공공시설물(기반시설)만이 아니라 주택과 건물도 국가(혹은 지방정부 및 단체) 소유이므로, 국가에 유지관리의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반시설(도로, 철도, 주차장, 정수장, 폐수처리장, 댐, 발전소)와 공공건물은 국가 및 지방정부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나, 일반저으로 건물과 주택은 개인(법인)소유이며, 정부소유 시설물도(도로, 철도, 발전소, 댐 등)도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지 않고 공공기관이 관리하거나 민간업체 위탁하여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북한의 도시경영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평양 도시경영설계연구소. 지방인민위원회는 도시경영시설계획과 설계를 위하여 도시경영설계연구소를 운영한다. (노동신문 보도사진, 이하 동일)

건물과 시설물의 유지관리를 북한에서는 도시경영이라고 부른다. 남한에서도, 또 국제적으로도 사용되는 도시경영(municipal management, city management)이라는 용어는 ▲도시행정조직의 효율적인 운용방안 ▲도시행정에 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것 ▲주민생활의 편의향상을 위한 시설물의 운영 및 유지관리 방법 ▲도시행정의 정보화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북한에서는 시설물의 유지관리라는 단일한 의미로 사용되며, 법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북한의 도시경영법에는 북한의 ‘건물과 시설물은 인민이 땀흘려 마련한 귀중한 재부이므로 국가는 건물과 시설물의 보호관리사업을 개선하여 그 수명을 늘이고 효과있게 리용’하도록 하여야 하며(3조), 도시경영사업의 계획적 추진, 관리한계와 분담을 위하여 건물과 시설물을 제때에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4조)

김일성 종합대학 교육자 살림집 새집들이 행사. 새집들이 행사에서 입사증(입주허가증)을 나누어 준다.

국립과학연구원 잔디연구소.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도시미화를 위한 잔디밭 조성이 강조되었다. (사진=노동신문)

도시경영법을 보면 도시경영의 범위를 알 수 있다. 도시경영법에는 ①건물의 관리 ②상하수도, 난방시설 운영 ③도시도로, 하천관리 ④원림조성(가로수, 도시공원 및 조경) ⑤도시미화(청소, 폐기물처리, 건물의 도색, 간판관련 규정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경영법에는 살림집의 이용허가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도시경영법 외에도 평양시관리법, 살림집법 및 도시미화법도 도시경영관련 법규라고 볼 수 있다. 평양시관리법은 1998년에 제정되었으며, 평양시의 도시경영 외에 평양시의 영역(중심지역, 주변지역, 위성도시 등), 도시계획과 건설, 기관 및 주민의 등록 그리고 봉사(식량 및 연료의 공급) 등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살림집법은 2009년 제정되었으며 살림집의 건설, 등록, 배정 및 이용, 관리 등 살림집 건설과 이용관련 전반적인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살림집법에서 살림집의 보수를 대보수, 중보수, 소보수로 구분하고 대보수와 중보수는 국가(혹은 관리기관)가, 소보수는 공민(주민)이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소보수를 살림집 관리기관이 해주는 경우에는 공민(주민)이 보수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시경영법에서는 소보수를 위탁보수한 경우 건물의 소유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살림집법에서는 이용하는 공민이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 살림집의 규정은 북한사회의 시장경제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북한법규가 상충되는 규정을 가지고 있어 북한법이 체계화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도시경영법에 의하면 소보수 비용을 소유자가 부담하여야 하지만, 살림집법에 의하면 이용자가 부담하여야 한다. 살림집은 소유자와 이용자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법적용에 따라서 비용부담주체가 달라진다. 살립집법은 2014년 개정되었으며, 도시경영법은 2015년 개정되었으므로 살림집법의 내용을 반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북한법에서 상호 모순되는 법규가 발견된다.

도시미화법은 비교적 최근인 2012년 제정되었다. 도시미화법은 도시경영법의 도시미화에 대한 규정을 구체화, 세분화한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하는 경관조명(불장식), 조경(원림조성), 간판, 청소 등의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

 

2. 도시경영관련 행정조직

북한은 모든 건축물과 시설물이 국가, 기관 및 단체(협동농장 등) 소유이므로 건축물의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조직이 있다.

중앙정부(내각)에는 도시경영성을 두고 있다. 도시경영성은 북한의 초대내각 구성 시(1948년)에 만들어졌으며, 1982년에는 도시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시경영절(9월5일)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도시경영성의 조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내부에 농촌건물관리국, 산림관리국, 원림관리국 등이 있고, 도시경영과학연구소, 중앙난방연구소, 평양화초연구소 등의 연구소가 있으며, 중앙양묘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경영성은 도시경영과 관련된 정책, 지침 등의 수립과 지방인민위원회의 관리감독을 하고, 실제 업무는 주로 지방인민위원회 산하의 도시경영국과 도시경영사업소에서 하는 구조이다.

지방정부(인민위원회)에는 도시경영국(도시경영관리국)을 두고 있다. 도시경영국 산하에는 난방사업소, 상하수도사업소, 원림사업소, 조사경영사업소, 건물보수사업소 등이 있으며, 도시경영설계사업소(연구소)와 도시경영건설사업소가 별도로 있는 경우도 있다.

도시경영사업소의 주요 업무는 건물, 상하수도, 도로 등 시설물이 준공되면 검사 후 인수를 하고 유지관리를 하는 것이다. 살림집의 경우 준공 후 등록을 하고 주민에게 배당 후 유지관리를 한다. 유지관리는 시설물의 등록, 운영, 보수, 사용료의 징수 등을 포함한다.

북한의 초대 도시경영성 장관 이용. 이용은 헤이그 밀사였던 이준 열사의 장남으로 1910년부터 간도지역에서 무장독립투쟁을 하였으며, 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연해주지역 독립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도시경영장관, 사법장관, 무임소장관 등을 역임하였고 1954년 사망하였다. (사진=일제강점기 노동신문 보도사진)

은율군의 나무심기 행사. 도시경영성은 원림조성(조경)을 위하여 중앙양묘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묘장은 도시경영성 외에 국토환경성 내의 산림국, 각시도 인민위원회 및 군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3. 북한 도시경영의 특징 및 문제점

북한 도시경영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은 공공건물 외의 살림집, 공장(산업건물) 및 업무용 건물 등의 유지관리도 도시경영기관 및 해당 시설물을 관리하는 기관, 단체 등에서 한다는 것이다. 토지와 건물의 관리를 국가, 기관 및 단체가 책임지는 것은 북한은 토지와 건물의 사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토지와 건물은 국가, 기관 및 단체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은 영리 목적의 개인사업자나 기업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건물을 보수할 수 있는 조직은 지방행정기관에 소속된 건물수리사업소밖에 없기 때문에, 건물보수가 필요하면 건물수리사업소에 의뢰하여야 한다.

그러나 건물보수사업소는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수행하므로 공공건물 및 기반시설외 일반건물의 보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살림집 및 일반건물의 수리는 입주자 및 사용자가 자체적으로 하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건물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건물이용자가 수리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수리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건설수리사업소에서 무상으로 건물의 보수를 하였으나, 최근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법규에 건물의 소규모 보수를 도시경영기관에서 하였을 경우 공민(입주자, 사용자)이 대가를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 도시경영의 또 다른 특징은 건물 및 기반시설의 유지관리를 주민이 분담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폭우나 태풍 등에 의하여 파손된 비포장도로를 주민들을 동원하여 보수하는 모습이나, 주민들이 단체로 동네나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북한보도를 통하여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주민동원은 도시경영법, 살림집법, 도시미화법 등의 법에 의한 것이다.

도시경영부분에서는 거리와 마을을 장식하기 위하여 화초를 생산하고 심는다.

도시경영법에서 도로보수는‘기관, 기업소, 단체는 ㎡당 관리제의 원칙에 따라 분담된 구간의 도로를 책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34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미화법에서 도시미화를 구획정리, 건물과 시설물의 미화, 도시청소사업 등으로 정의하고(2조), 미화사업을 전군중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국가의 일관된 정책이며, 국가는 기관, 기업소, 단체에 담당관리구간을 정해주고 전체인민이 도시미화사업에 자각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고 규정(4조)하여, 도시미화사업에 주민의 참여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법에 따라 기관, 기업소, 단체에서는 분담구역의 도로보수, 거리의 청소, 눈치우기 등을 해당단체의 성원(직원)을 동원하여 하고 있다.

또한 도시경영법(46조), 살림집법(58조), 도시미화법(38조)에서는 거리와 마을을 아름답게 꾸리고, 거두기 위하여 도시미화월간과 도시미화의 날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도시미화월간은 4월과 10월이며,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을 도시미화의 날로 정하고 있다. 도시미화작업은 거리 및 마을의 청소만이 아니라 꽃밭정리, 어린이놀이터꾸리기, 물도랑치(우)기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살림집은 울타리설치, 조경(유실수 심기), 주변정리 및 청소등을 입주자가 하도록 하고 있다. 살림집과 관련 하여 특이한 규정은 살림집에 입주자가 문패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살림집의 매매, 임대 등 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색은 도시경영법에서는 도시경영기관, 기관, 단체 등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도색재료(페인트) 등을 해당기관에서 확보하여 주민에게 나누어주면, 주민들이 직접 도색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하천관리도 도시경영기관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민을 동원하여 정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의 건물유지관리관련 규정이 주로 구조적 안전을 강조하는 것에 비하여 북한도시경영제도는 건물이나 마을의 외관 및 미관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다. 북한의 도시경영관련 법규에서 구조적 안전 등에 대한 규정은 거의 찾을 수가 없으며, 건물의 도색, 주변 청소 및 정리정돈, 전기선 및 통신선 늘이기 제한, 간판(구호판, 표지판) 규제, 경관조명(불장식) 등의 규정을 강조하고 있다. 건물의 도색은 구역별로 정해진 색상을 도색하여야 하며, 울타리도 구역별로 같은 구조로 조성하여 통일된 경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은 도시경영을 주민생활을 보장하는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고 있으며,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시경영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해결이 가능한 부분인 원림관리(도시조경), 도시미화(청소 등)는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으나, 오랜 경제난으로 자재와 기술이 필요한 건물관리, 상하수도, 도로 및 하천관리, 난방 등의 유지관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양중구역 상하수도 관리소

평양선교구역 상하수도 관리소

건물은 대부분 사용자가 자체적으로 유지보수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불법증축도 증가하여 불법건축물이 도로를 막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도로는 포장률이 10%에 불과하고 폭도 좁으며, 개선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도는 관로가 노후화되고, 정수장의 시설이 낙후하고 약품도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천도 하수처리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인구가 많은 도시의 하천은 많이 오염되어 있다.

북한 도시경영의 어려움은 경제난을 해결이 되지 않는 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오래된 각종 상하수도 및 난방관로 등은 교체, 도로 등 인프라의 보완은 경제적 여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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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퓨쳐리스트 도시 브라질리아의 혁명가

The 20th Century city of future list, the revolutionist of Brasília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본다. 가끔 정신없이 몰입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이야기 구조가 있으면 그나마 보는데 감정이입이 되지만, 다큐멘터리는 좀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물론 시선을 끄는 강렬함이 있는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 시선을 강렬히 끄는 건축 다큐멘터리가 있어 그림을 구경하듯 1시간 30분을 몰입했다. 우리나라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A Machine To Live In>이다.

환상적이고 공상과학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도시 풍경을 가진 브라질리아를 이렇게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다큐는 공상과학영화처럼 내레이션을 하는 식으로 영상이 구성됐다. 감독이 가히 신난 듯하다. 브라질리아는 20세기 초반 경제적으로 잘나가던 브라질의 야심작인 신도시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토피아적 사고와 혁명적 진보주의자인 오스카 니마이어의 천재적 성과물인 도시다. 30대의 나이에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과감하게 시도한 브라질리아의 도시 풍경은 반백 년이 넘은 지금에 봐도 가히 혁명적인 모양을 보여준다.
흡사 공상과학영화 <가타카>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는 듯하다. 미니멀한 분위기와 묘한 기하학적 구성, 그리고 언밸런스한 아날로그적 재즈와 클래식한 음악을 배경으로 구성된 다큐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사실 이렇게 인공적인 조형미로 도시를 구성하고 만든다는 것도 놀랍다.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브라질리아 대성당(1970)

브라질리아 대성당의 내부 모습

오스카 니마이어 설계의 브라질리아 국회의사당(1960)

도시와 건축의 완결성은 계획하는 디자이너의 완벽한 의도도 구현되지 않는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디자인은 관상용이다. 도시의 역사를 보면 완벽하게 계획된 도시는 비인간적이고, 철저한 계급적 구성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파괴가 된다. 인간은 기계적 이성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탈과 감정, 적절한 오류와 부정확함도 필요한 인간적 균형추이다. 계산된 도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과 불공정의 대상이 되고, 필연적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동반된다. 수학적 도시였던 로마의 도시들이 중세시절 기형적으로 변형되고, 일그러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인간의 모순과 한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파시스트적인 아키텍트들은 도전하고, 실패한다.

20세기의 흔적들이 바로 그것이다.
브라질리아가 신도시로 성공했는지는 논란이 많고, 인도의 샹디갈(찬디가르)처럼 계획도시의 한계가 있다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로마 도시들이 중세로 넘어가면서 계획된 도시구조가 깨지고, 각종 바이러스나 침투한 기생충에 훼손된 신체 장기 같은 복잡하고 엉클어진 미로 도시처럼 이들 계획도시도 그렇다. 철저하게 거주자에 대해 계획을 했지만, 의도치 않은 도시 빈민층의 마을이 질서정연한 계획을 깨고 있다. 로마 시대 성 밖은 계획도시도 아니었고, 위생 인프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시아의 고대 도시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역사 속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도 계획도시가 많다. 1970년대 철저한 산업의 기능으로 구분된 산업도시에는 창원이나 울산 같은 계획도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부동산 가격 폭등의 문제로 인해 만들어진 일산과 분당 같은 신도시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가기관의 부동산 투자가 대박을 터트린 광교나 판교, 위례 같은 도시도 있다. 그런가 하면 철저한 관료들의 도시, 공무원 도시인 세종시도 있다. 모든 시설에 용도가 정해진 계획은 거칠다. 그런 거친 계획으로는 삶의 다양한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신도시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가? 아주 끔찍하다. 그런 끔찍함을 말하는 내가 까탈스럽고 유난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해가 진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를 걸어 보았는가?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둘러친 인도를 걸어보았는가?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게 신기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도에 박수를 칠 환경이다.

우리보다 더 빈부격차가 심하고, 갈등이 많고, 부패가 만연한 브라질은 이런 문제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한번 바라보자. 브라질리아는 비록 도시적 성공을 말하긴 어렵지만, 모험과 실험 그리고 철학을 바탕으로 시도된 도시다. 오스카 니마이어의 확신과 과감함으로 완성된 브라질리아지만, 중세도시처럼 의도하지 않은 도시의 변형과 보통 사람들의 개입으로 정교한 완벽함이 깨져있다.

그러면 우리의 신도시들은 어떨까? 세종, 송도, 위례, 판교, 분당, 일산…… 기계적 완성도가 있을지 몰라도 어색함이 존재한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억제된 곳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아마 브라질리아도 그런 듯하다. 다큐 중간에 주목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오토바이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행렬과 손가락 욕은 유머스럽기도 한 비꼼이다. 인공적 도시 풍경이 아닌 뒷골목의 자유로움과 엉클어짐, 불규칙한 모습들. 인간은 이성의 합리성과 변칙적 감정의 소유자다. 이런 인간의 본질을 단순화해서 하나의 성질로 정의를 내려버리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느긋한 틈이 있는 도시, 변화와 개인의 자유의지를 허용하는 도시들은 브라질리아보다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도시들은 지속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 느긋한 계획(?)이라고 할까, 아니면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100%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계획이라고 할까. 어쩌면 개인들이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허용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더 완벽한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브라질리아가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나라 신도시를 가보면 숨이 막히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잠실의 계획된 도시 풍경 안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신천 새마을 시장을 아는가? 도시계획가 어느 누구도, 계획한 시장이 아니다. 정교한 가로세로형 바둑판 도시에서 사람들의 삶의 의지로 기하학의 정교함을 덕지덕지 깨가면서 만들어졌다. 바로 이런 변칙성, 자유의지,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의 브라질리아는 계획만능주의자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중남미 최고의 공산주의자였던 오스카 니마이어의 환상이 아니었나 싶다. 계급이 평등하고, 계층 간 우열 없는 유토피아적 사고관이 만들어낸 그의 디자인이 실제로는 너무나 비인간적인 차가움을 전달해 주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건 낯설음이었고, 신기한 모습이다. 한발 더 나아가 기묘한 샤먼적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브라질리아라는 대상으로 다큐가 전개되지만, 공산주의자 오스카 니마이어의 유토피아적 관점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다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만국공통 목적으로 만들어진 에스페란토어의 사용과 독점적 소유가 아닌 공동체의 삶. 인간과 기계의 조화, 그리고 욕망의 배제와 헌신. 이성과 감성의 경계선과 자유로움의 표현. 그렇다고 이 도시, 오스카 니마이어의 이런 실험이 마냥 비난을 받을 건 아니다. 적어도 20세기 초반 브라질 정치권이 모험과 실험, 도전을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긍정적 가치도 분명 발견할 수 있다. 창조적 인간의 노력과 도전에 대한 가치다. 오스카 니마이어가 100년 넘는 삶 동안 도전해온 원천의 장소가 브라질리아다. 그의 탐구와 도전은 과감한 시각적 건축으로 살아남았다. 분명 인류의 유산으로서 가치는 인정할 만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던 것 같다. 좌우 대칭의 엄격한 구성과 여백을 만들어서 화면을 만드는 것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래픽이다. 그것만으로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 만족할 만하다. 사회학적 관점과 사회와 인간의 관계로 빚어지는 도시와 건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다소 비판적일 수밖에 없지만, 미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별 4개짜리 추천 다큐로 인정할 만하다. 아울러 황당한 외계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자극한 것도 있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기하학적 구성을 만들어낸 오스카 니마이어의 이런 작품들이 최근 우리나라 건축 작품이나 인테리어에 대 유행이라는 점이다. 그의 철학과 사상은 배제된 유니크한 기하학적 그래픽이 세련되게 느껴지게 한다. 마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수직 수평의 스케치가 유럽에 건너가서 그의 유기적 철학이 배제된 채로 데스틸의 미학적 동기로 작용한 것과 같다.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오늘의 이런 유행은 어쩌면 단시간 소비되는 상품의 도구로 소모되는 건축적 공급 시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참고 링크 https://g.co/kgs/XA3P6B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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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미국건축사협회(AIA) 콘퍼런스 ‘건물 효율화’ 참관기

AIA Conference on Architecture 2021
Report on ‘Building Efficiencies’

미국건축사협회의 대표적인 건축 행사인 AIA Conference on Architecture의 올해 행사는 앞선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네 가지 주제((Firm Resilience, Sustainable Practice, Community Engagement, Building Efficiencies)로 두 달에 걸쳐 4회로 나누어 개최하였다. 이러한 네 가지 주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각 분야의 충격과 폐쇄에서 회복하여 지속가능하고 또한 변화에 대응하는 가능성을 모색하여 새로운 기회로 발전시킨다는 맥락으로 전개하려 한 듯하다. 이번은 그중 마지막 순서로 현지시간 8월 19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건물 효율화(Building Efficiencies)’라는 주제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건물 효율화(Building Efficiencies)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저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요구에 따른 미래의 예측, 기술혁신 그리고 바람직한 진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총 21개의 세션으로 2개의 키노트(keynote), 13개의 세미나(seminar), 6개의 데모(demo)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그중 필립 번스타인(Phillip Bernstein. 예일 건축대학 부학장, 디자인 미래 위원회[Design Futures Council]의 선임 연구원) 이 주재하는 키노트 패널(Keynote Panel: A One-Hour Tour of the Future)과 세미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설적인 테니스 챔피언이자 기업가인 비너스 윌리엄스(Venus Williams)와의 대담인 키노트 이벤트(Keynote Event: The Need for Change)를 살펴보았다.

 

1시간 동안의 미래 여행
(A One-Hour Tour of the Future)

첫 번째 소개는 ‘1시간 동안의 미래 여행(A One-Hour Tour of the Future)’으로 필립 번스타인이 사회자로서 마크 챔버스(Mark Chambers. 백악관 환경 품질 위원회[The White House Council on Environmental Quality in Executive Office])와의 1:1대담, 그리고 연속된 주제로 1:3명의 패널로 진행하였다.
1:1대담에서 사회자는 일자리와 건축 환경, 특히 인프라 계획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넓은 건축 산업(Construction Industry)의 관점에서, 특히 건축사(가)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더 나아가 이러한 구축 환경의 작업 및 인프라에 대해 무엇을 할 계획인지 질문하였고 마크 챔버스는 현 정부의 기후 환경문제와 관련된 탄소저감정책과 그로 인한 건축에서의 가능성,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한 저탄소를 지향하는 건축·코드·표준·지침·파일럿 프로젝트의 국가적 주도로서의 추진, 이것을 활성화하기 위한 세금 인센티브 등, 그리고 그러한 인프라 구축에서의 건축 환경의 큐레이터로서의 건축사의 역할과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고임금의 일자리 창출의 청사진까지 토론하였다.

사진=AIA 콘퍼런스 홈페이지, 행사 자료 캡처(이하 동일)

이어 진행한 대담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인 티파니 호지(Tiffany Hosey. 설립자 겸 CEO-BuilDATAnalytics, Inc.), 리즈 해거티(Liz Haggerty. 사장-Oldcastle BuildingEnvelope),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 캐피털 프로젝트 디렉터-Brooklyn Academy of Music)와 함께 광범위한 건축 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친 각 분야의 협력의 필요성에 주목하며 실제로 일어나는 건축관행을 형성하는 외부의 힘, 건축사/제조업체/건축주/계약자 등 다양한 참여자간의 관계와 협력 등, 그리고 건축물의 가치형성과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아울러 공통적으로 데이터의 사용과 공유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였다. 계약전문가인 티파니는 계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이익을 증가할 수 있는 대책으로, 리즈는 공급망에서 더 많은 투명성을 가진 집단적 목소리로 혁신을 주도하는 방법으로, 조나단은 공통 정보에 대한 액세스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공유된 데이터의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익명성, 저작권, 창의성, 보편성 등)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과 딥러닝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광범위한 건축 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친 각 분야의 데이터 공유와 협력의 필요성에 주목한 이러한 일련의 대담들은 나아가 건축 환경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Focusing on Data-Driven Design Decisions)

이번 세미나는 질 르투어노(Gilles Letourneau. 제품 관리 수석 이사, AECO – Deltek)의 발표로 진행하였으며 앞선 건축 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친 각 분야의 데이터 공유와 협력의 필요성이라는 제안에 연장하여 도움이 될 듯 하여 준비해 보았다.
데이터를 적절하게 캡처, 평가, 배포, 해석하고 워크플로에 통합할 수 있는 방법, 나아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의 구축에 대해 질은 먼저 ‘데이터 기반 설계 결정(Data-driven decision-making: DDDM)’을 “팩트, 메트릭 및 데이터를 사용하여 전략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 중요한 설계 데이터의 범위를 고려하고, 데이터 수집이 발생할 수 있는 워크플로의 핵심 지점을 결정, 통찰력(insight) 있게 일관된 적용을 보장하기 위해 작업 흐름의 단계를 구현하는, 회사에서의 데이터 중심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수집하는 데이터는 주/시 규정(주요 생명 안전 코드, IBC 또는 NFPA101의 현지 채택, ASCE7 지진/풍하중 표 등), 주/시/지속가능성 규정(구조/테스트, 칼그린, 리드 v4.1등), 건물 유형(건물 유형 세부 사항, 역사적 건물 및 구역 제한), 공간 및 장비 요구 사항(매우 구체적인 공간 요구 사항, 지원 서비스 요구 사항, 물리적 공간 제한/인접), 건조물(assemblies) 및 구성 요소(위치 및 기후 요구 사항, 건설 및 비용, 재료 호환성), 제품군(건조물과 직접 관련된 제품군, 선호하는 제품군 유형, 소유자 지시 제품군), 특정 제품 유형(프로젝트별 제품 유형, 특정 유형 내 선호 제품, 소유자의 요구에 의해 선택되는 제품) 등으로 수집된다. 프로젝트 프로세스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프로젝트 시작단계(클라이언트 성향, 지속 가능성 목표, 계약상 고려사항), 빌딩 프로그래밍 및 초기 설계단계(공간 및 객실 기준, 건물 부지 제한, 커뮤니티 영향), 디자인 개발단계(건조물 고려 사항,재료 호환성, 경쟁 목록), 입찰단계(산업 동향, 교체 횟수, 가치공학), 건설행정단계(제품 리드 타임, 현장 테스트 조치, 현장설치 어려움 관련 문제)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시점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워크플로의 구현(데이터는 무엇을 말하는지, 프로젝트의 성공에 영향을 주는지, 과거 프로젝트를 위해 선택한 제품과 재료가 계속 적용되는지)과 데이터 추론(재료 사용의 산업 동향, 제품 특성 평가, 여러 영역에 걸친 제품 사용)이 가능해야 하고,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과 재료(신제품 사용 및 동향, 조립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의 변화, 대체 제품 제안)여야 한다. 그는 데이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제품 충돌 감지를 정의(호환되지 않는 어셈블리의 구성 요소, 정렬되지 않은 제품 유형 내의 제품 속성, 동일한 모회사의 여러 제품)하고, 충돌하는 경우(정확한 제품 데이터 부족, 현장 문제의 누락된 백로그, 사용 가능한 비교 도구 없음, 빠른 대체, BPM과의 통신 불량)와 데이터 분산(여러 연결이 끊긴 소스, 알 수 없는 나이 및 정확도, 세부 수준/특이성 수준의 불일치)에 대한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통해 제품 호환성(과거 경험을 기록하는 리소스 구축, 단일 소스 어셈블리 고려, 제품 전문가와 협업), 조립 대 제품 성능(어셈블리의 성능, 건물 성능, 제품/구성 요소 고려 사항, 현장 테스트)의 향상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데이터 스토리지 및 클라우드 보안에 대한 방법으로 정보 보안에 대한 국제 표준으로 ISO 27001(International Standard for Information Security), FedRAMP(Federal Risk and Authorization Management Program), SOC 3(Service Organization Control 3)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기반 설계 결정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신 기술 제품 정보를 통해 실시간 제품 트렌드로 업데이트된 현재의 정확한 데이터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앞선 미래학자로 인정받는 필립 번스타인이 진행한 ‘1시간 동안의 미래 여행’에서 인공지능과 딥러닝의 가능성을 제안하여 혁신적인 데이터 공유와 협력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다소 범용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생각도 있었으나, 훨씬 섬세하고 전문적인 방법론이었던 듯 하다. 실제 우리가 시간과 비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간과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건축과 새로운 기술
(Architecture & the New Technology)

2006년부터 2020년까지 AIA의 공식매거진인 <Architect>의 편집장을 역임한 네드 크레이머(Ned Cramer)의 사회로 보네이도 부동산의 부사장인 니콜 도소(Nocole Dosso)와 BIM 관련 회사인 앵귤러리스(Anguleris)의 사장 벤자민 글런츠(Benjamin Glunz), 그리고 소프트웨어 회사인 델텍 (Deltek)의 수석부사장인 워렌 린스코트(Warren Linscott)가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건축사의 직업을 변화시키는지와 건축사들이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첫 번째 질문인 건축실무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줄 최근의 경향에 대해서, 워렌 린스코트는 건축설계와 엔지니어링, 시공분야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디지털화와 업계에서 협업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적했고, 니콜 도소는 시공현장에서 사용되는 3D 프린팅을 지적했다. 벤자민 글런츠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소프트웨어 사이의 연결성(Connectivity)을 증대시키는 노력을 언급하였다.

두 번째로 논의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점이 건축업계에서 부족한 지에 대한 것이었다. 니콜 도소는 “레빗(Revit) 프로그램이 2001년부터 사용되었지만 최대한의 잠재력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3D 설계가 제도의 도구로만 사용되고 건축사가 만든 3D 모델이 버려지고 시공단계에서 새롭게 모델링이 되거나 기존의 샵드로잉 승인절차에 따라 2차원적으로만 진행되는 현실”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회사의 임원들에게 3D 소프트웨어에 대한 잠재력을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워렌 린스코트는 3D 소프트웨어의 초점이 건축이나 엔지니어링 실무 업무에만 집중되어 있고 비지니스적인 측면이나 건축업무 전반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과, IT 부서의 지원이 불가능한 소규모 사무실의 현실을 예로 들었다.

세 번째 질문(새로운 기술이 젊은 건축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벤자민 글런츠는 “설계사무소 신입사원들에게 단순 반복 작업을 많이 시켜서 업무과중으로 건축사사무소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면 젊은 건축사들이 설계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되고 이직률을 낮출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10년가량의 견습기간과 노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니콜 도소는 “학교 건축교육에서 설계도구와 기술 그리고 비지니스 측면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 질문인 새로운 기술의 파괴적인 잠재력의 혜택과 위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벤자민 글런츠는 “새로운 기술이 건축계 전반에 파괴적인 영향을 줄 것이고, 건축사들이 변화하려는 노력과 비지니스 모델을 바꾸면 그 효과가 증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관공서에 대한 로비를 증대시켜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워렌 린스코트는 “팬데믹 이전부터 설계업계의 인력부족 현상이 있었고 코로나19로 인해 심화되었는데, 새로운 기술인 자동화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니콜 도소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데,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개별 프로젝트에 적합한 기술을 찾아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대담이었고, 건축 실무환경은 한국과 많이 다른 미국 설계관련자들의 의견이지만, 한국에서도 새로운 기술(3D 설계, 자동화, 3D 프린팅)과 이를 적용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 설계 건축계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키노트 이벤트 : 비너스 윌리엄스(Venus Williams)의 변화의 필요성(The Need for Change)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과 그랜드 슬램 단식에서 7회의 우승을 차지한 비너스 윌리엄스는 동생인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일 뿐만 아니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인테리어 디자인회사인 V-Starr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번 AIA 키노트 이벤트는 비너스 윌리엄스와 진행자인 로만 마스(Roman Mars)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사업가로 성장하기 위한 지도를 받았던 그녀는 2002년에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주로 주거 분야의 인테리어를 설계했던 그녀의 회사는 2008년 경 미국주택가격의 폭락으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받았지만, 사업 분야를 호스피탈리티와 상업시설로 확장하여 오히려 위기를 극복하였다. 또한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회사의 다양화된 구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비너스 윌리엄스는 테니스와 인테리어 사업의 성공요인으로 그녀가 남의 지도를 받으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코치 같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며, 사업에 있어서 이 의지는 본인과 회사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비너스 윌리엄스는 여성의 평등권을 주장하였는데, 2000년 윔블던 테니스대회 후에 남녀 우승자의 상금이 다른 것을 발견하고 남녀 우승자의 동일 상금을 주장하였고, 결국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상금 차별이 폐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향후 비너스 윌리엄스는 남녀 차별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봉사활동을 지속하겠다고 한다.

 

주요 프로그램

Keynote Panel
A One-Hour Tour of the Future

Keynote Event
The Need for Change

Seminar
Making Sense of Sealants
Sound Control Toolbox for Architects
Heat Transfer Fundamentals & The Future of Outdoor Heating
Incorporating Continuous Insulation Into Today’s Complex Building Designs
Construction Labor & the Immigrant Community
Focusing on Data-Driven Design Decisions
Tall Timber Buildings Where Sustainability Meets Performance
Blockchain Technology
Supply Chain Ethics
Custom Repetitive Manufacturing (CRM)
Architecture & the New Technology
The State of Climate Action in the Building Sector How Architects Can Make a Difference
Architecture & the Circular Economy

Live Product Demo
Live From the Andersen Windows & Doors Product Showroom
The Sierra Pacific Story Windows, Doors, & Sustainable Solutions
3D Capture & Easy As-Builts With Canvas
Otis Gen3™ Elevator System: Meet Our Fully Connected Platform
Aeos-The Next Evolution of Structural Steel
The Future of Specifications-Deltek Specpoint

AIA Community Night
Blueprint for Better Film Festival Innovative Solutions

 

글. 신을식·심형섭 Shin, Eulshik · Sim, Hyungsup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

신을식 두오 건축사사무소·건축사

한양대학교와 University of Oklahoma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Duoo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3년도부터 현재까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설계스튜디오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현상수상 경력이 있으며 ‘적정한 건축’과 동일한 주제의 주택연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duooarc@empas.com

 

 

 

 

심형섭 미국 건축사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 그리고 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미국 뉴욕의 HHPA와 SOM에서 근무했으며, 국내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건축 실무와 해외건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hsim8412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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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면 전성시대

The good days of small screens

몇 달 전부터 넷플릭스에 가입해 영상을 보고 있다. 새로운 정보의 문이 열리면서 한동안은 넷플릭스에 푹 빠져 살았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 <옥자>도 봤고,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봤는데, 요즘에는 넷플릭스 앱을 먼저 실행할 때도 많다. 유튜브를 보든, 넷플릭스를 보든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나 TV로 보기보다는 조그마한 스마트폰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왜 답답하게 굳이 그 조그만 디스플레이로 보려고 하는 걸까? 아마도 접근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의 몸에 거의 24시간 붙어있는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TV를 켜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일이다. 상품 가격은 싸지만 멀리 있는 마트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가까운 편의점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마트폰의 장점은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이동 수단 안에서도, 심지어는 운동을 하거나 걸을 때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현대인은 커다란 화면보다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TV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사람들이 더 큰 화면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많은 시간을 조그만 화면에 집중하면서 보내고 있다. 화면 크기의 차이는 전달되는 정보의 차이를 만든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TV로 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압도적인 크기와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다. 큰 화면을 볼 때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 때 제작진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 장치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방을 하나 연출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가구는 물론 아주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의미를 고민한다. 그 장면이 불과 몇 초만 나오더라도 말이다. 요즘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수준이 높아져서 더욱 화면 구석구석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을 고려해 제작진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영화의 배경을 연출한다.

스마트폰 거치대는 자동차 같은 이동 수단은 물론 주방가구, 침대헤드 등에 붙여 놓음으로써 언제, 어디, 어떤 자세로든 스마트폰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롤랑 바르트의 책 <카메라 루시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흑인들은 영화를 보아도 마을의 넓은 광장의 한구석을 지나가는 작은 암탉만을 볼 뿐.” 이것은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한 것이다.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커다란 화면에서 관심을 가졌던 건 배우가 아니라 우연히 카메라에 포착된 배경 속의 닭이었다. 그마저도 한쪽 구석에 겨우 잡힌 작은 암탉이다. 그 암탉마저 없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무료했을까? 나는 요즘 유튜브의 한국고전영화 채널을 즐겨 보는데, 1950~1980년대 영화들을 볼 때 영화의 내용보다 과거 서울의 거리와 건물, 자동차와 간판을 보는 게 더 흥미로울 때가 많다.

루이스 하인의 <허약한 아이들>에서 작가는 아이들의 기형적 모습을 느끼도록 의도했지만, 롤랑 바르트는 이 사진에서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여자아이의 손가락을 감고 있는 붕대에 관심이 간다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유명한 사진 개념 ‘푼크툼(punctum)’을 설명하려고 암탉 이야기를 했다. 푼크툼은 사진을 찍은 이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관객이 읽어내는 경험을 말한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므로 푼크툼은 대개 사진의 주제 너머에 있다. 사진작가가 통제하지 못한 우연한 것, 하찮은 것이다. 한 가족이 인왕산 정상에 올라갔다. 아버지가 가족사진을 찍는데, 같은 시간 정상에 올라온 등반객들이 우연히 사진 배경에 찍힐 수밖에 없다. 배경에 나오는 모든 정보를 아버지가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면 사진 찍을 때는 몰랐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사진 속에 기계적으로 담기게 된다. 그 사진을 본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배경에서 자신의 관심을 끄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6년작 영화 <욕망(Blow up)>에서 주인공인 사진작가는 공원에서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어떤 연인을 찍는다. 스튜디오로 돌아와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연인과 함께 찍힌 공원 풀숲 속에서 그들을 겨누고 있는 총구를 발견한다. 우연히 찍힌 총구는 그를 자극한다.

특정한 이미지를 보는 관객의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사진작가 또는 영화감독이 아무리 관객의 마음을 이끌고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사진을 보든 영화를 보든 어떤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이렇듯 누군가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이 될 때 풍요로워진다. 그런 풍부한 경험은 정보의 질이 아닌 양에 달려 있다. 커다란 화면이 주는 이익이 바로 이것이다. 극장에서 볼 때보다 TV로 볼 때 영화 정보의 양은 줄어든다. TV로 볼 때보다 스마트폰으로 볼 때 정보의 양이 더욱 대폭 줄어든다. 어떤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먼저 보고 나중에 커다란 모니터로 다시 봤을 때 그 영화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영화 제작진이 공들여 준비한 다양한 정보들이 눈에 들어오기 힘들다. 작은 화면으로 본 영화는 시간적으로 편집된 영상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편집에 따라 수많은 영상과 음성 정보가 사라지듯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보는 것은 많은 정보를 잃어버린 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떤 흥미로운 관심거리를 발견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나는 ‘다이제스트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가 잘 팔렸다. 이 잡지는 제목 그대로 이 세상의 온갖 정보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미디어가 발전하자 문자와 이미지로 기록되는 정보가 넘쳐나게 되었다. 세계가 좁아져 사람들이 교양으로 쌓아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 이 잡지는 장편소설은 물론 흥미로운 기사도 요약해줌으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잡지의 인기에 대해 미국의 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독자들이 더 원하는 것은 이제 원본이 아니라 다이제스트 자체가 되었다. 형체가 아니라 형체의 그림자가 본질이 되고 있다.”

한때 전 세계에서 2천만 부 이상이 팔렸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것을 대체한 미디어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일 것이다. 유튜브는 다이제스트 정보의 천국이다. 각종 책과 영화 등을 요약해 주는 채널이 무수히 많다. 물론 이런 정보가 많아진 것도 정보의 풍요로움이라고 할 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정보의 풍요로움이 더욱더 정보의 축약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현대인은 알고 싶고, 알아야만 하는 정보가 그 어느 시대보다 넘쳐난다. 정보 과잉 시대여서 뭘 모른다고 하는 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요즘 뜨는 메타버스, 클라우드 같은 기술 관련 개념은 왠지 꼭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때 다이제스트 정보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게다가 축약 정보는 더 재미있고 효율적이다. 이런 시대에 <전쟁과 평화> 같은 장편소설을 누가 읽을 수 있을까? 이렇게 빠르고 재미있는 정보가 대세이다 보니 영화도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소설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를 축약해서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다이제스트 정보에서 중요한 건 가장 흥미로운 대목과 결과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세상에 대한 묘사 하나하나가 사실성을 갖도록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정성 들여 이야기를 구축한다. 그래야 그 이야기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고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상의 이야기와 이미지는 그것을 감상하는 동안만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되어야 재미도 있고 감동도 오는 것이다. 사실상 이야기의 큰 줄기나 결말보다, 주변과 과정에 대한 상세하고 치열한 묘사야말로 핵심 콘텐츠다. 그런 디테일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풍요로운 감상이다. 작은 화면 속 다이제스트 체험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정보 소비는 가난해진다. 정보 과잉과 미디어의 극단적 발전이 낳은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