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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건축의 가치가 액세서리가 된 대한민국 주거정책

Korea’s housing policy in which the value
of architecture for life has become accessories

부동산 가격은 최근 몇 년간 폭풍을 겪었다. 도시화와 인구증가, 그리고 경제성장이 맞물리면서 약 10~15년 주기로 폭등이 진행되었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통해 시작된 1960년대 중반, 1970년대 후반, 88올림픽 이후 현금 유동화와 급격한 경제성장. IMF이후 해제된 부동산 가격 자율화… 그리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부동산 가격의 주기적 폭등은 경제 뉴스에서의 소식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다. 부동산의 영향력과 상승하는 절대가격은 폭등 주기가 반복될수록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다.
최근 유튜브와 SNS의 발달은 정책에 요구하는 시장의 압력을 가시화하고, 또 자극하고 있다. 이는 다시 여론으로 작용하고, 선출직 정치가들은 이에 영향을 받아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겉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정책과 정치 모두 암묵적 영향을 받고 있다.
건축은 이런 세상의 흐름에 발언하거나 훈수를 둔 적 없고, 정책이 실행되면 묵묵히 수주나 하고 설계에 임했지 선제적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 사이 부동산의 본질적 가치와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되거나 무시되면서 가격 상승과 반비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변동의 중심이 되는 건축 유형은 당연히 주택인데, 주택이 가져야 하는 삶의 가치와 공동체 공간이 확보해야 하는 본질적 고민은 액세서리로 다뤄지고 있다. 도시 주거가 가져야 하는 도시에서의 의미와 미래지향성도 철저한 상품화 부가장치로 다뤄지는 형편이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다루는 주거의 경제적 매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즉 부동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올 때 건축의 구성과 도시주거의 핵심 본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주무부처 장관과 고위 관료, 학자들…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유튜버들. 우리 사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어느 누구도 우리 후손의 미래 환경이 될 도시 주거 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가격뿐이다. 정치권부터 시민들까지 모두 주택과 도시주거를 오로지 가격을 보장해 주는 수익상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대상의 접근조차도 일시적 고용과 경제 효과만 생각한다. 지속가능하고 경제적 유발 효과를 고려한 플랫폼 산업으로 보지 않고 단선적 관점으로 대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지속적으로 대안을 고민하고 개선해 보자고 십수 년 동안 발언하고 있지만, 그조차 의미 없이 소비되고 있지 않나 싶다.
보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국가를 계획하고 전략화해야 할지에 대한 장기적 접근이 보이지 않는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지금 당장 갈라보려는 욕심만 보인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물질 중심 사고관이 모두에게 뿌리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가관인 것은 바르셀로나의 도시 공동체에 대한 고민으로 나온 슈퍼블록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상품 가치를 극대화하는 상품전략화 요소일 뿐이다. 橘化爲枳(귤화위지)!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되는 꼴이다.
일만 세대 아파트 단지가 칭송받는 대한민국 주거정책과, 대중의 요구를 뒤쫓아가는 철학 없는 우리 사회가 씁쓸하다. 그리고 이런 물질 만능의 부조리가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관계의 비인간화 같은 사회학적 현상도 있지만, 각종 사고도 그 시그널 같다. 최근 광주의 아파트 붕괴사고도 그런 사이드 이펙트가 아닐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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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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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미래 구현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갖춰야_김경민 교수

A ‘new governance’ system must be established
to realize the future of the city

김경민 교수 Kim, Kyungmin 서울대 환경대학원

월간 <건축사>가 지난 2월 15일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도시계획)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김경민 교수는 UC버클리에서 정보통신 석사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보스턴 상업용 부동산 리서치회사 PPR(Property & Portfolio Research)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현재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전공 교수로 부동산 트렌드와 건축과 공간의 동인이 될 만한 요소들을 분석·발표하며 방송 출연, 도서 집필, 인터뷰 등을 통해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경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시의 장소성·역사성을 이어나가면서 도시의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 도시개발의 비전을 제시할 공공 디벨로퍼와 도시개발청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도시·건축의 변화를 위한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 또 단순히 설계뿐 아니라 인문·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금융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도시계획 플랜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경민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_ 하버대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 박사. 저서로는 <도시개발, 길을 잃다>, <리씽킹 서울: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2020 부동산 메가트렌드>, <부동산 트렌드 2022> 등이 있다.

# 부동산 가격이 미치는 영향, 인정할 부분 인정하되
도시의 장소성·역사성 보존하며 균형점 찾도록 노력해야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

홍성용_최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건축 이야기의 포커스가 전부 가격에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일반인들은 건축보다 부동산 측면으로 먼저 접근하다 보니 건축의 질은 항상 논의 밖인데요. 이런 측면에서 왜 건축이 부동산을 알아야 할까요.

김경민_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용도에 따른 건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건축을 기획·설계하는 사람들의 몫과 개발·운영하는 사람들의 몫이 따로 있습니다. 그 접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디벨로퍼(부동산 관련 개발사업자)와 건축사가 소통하며 맞춰가는 과정들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말씀하신 작금의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문제들은 우리가 인정할 부분은 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부동산 가격에는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이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폭등이 나왔을 때 지나치게 도시의 어떤 맥락을 무시하고 무언가를 하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도심의 재건축·재개발 용적률 500% 상향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파 헬리오시티도 우악스럽게 보이지만 용적률 300%가 안 되잖아요. 서울시 도심 안에 500%의 용적률은 다 부수자는 얘기인데,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서울의 모습도 아니기에 이 관점에서 부동산 가격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한계 안에서 어떤 식으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도시 안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좀 더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할까와 더불어 역사적인 도시로서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그 안에서 균형점을 찾는 노력들을 같이 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디벨로퍼들도 금융이라든지 개발에 의한 전략을 세워야 하고요, 건축을 하는 분들도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예쁜 건물을 넘어서서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같이 냈으면 좋겠어요.

 

# 향후 대규모 해체 바탕의 개발은 불가,
보존·개발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고민 급선무
주택·도시개발의 미래 비전 제시할 ‘공공 디벨로퍼’ 있어야

홍성용_아파트처럼 이천, 삼천에서 많게는 만 정도의 세대수가 들어간다는 것은 건물의 개념이라기보다 도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생활이라는, 도시의 라이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다 배제되고 단순히 주택·주거에 딸린 인프라 정도가 남은 것 같습니다. 도시 구조에서는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접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보면 도시에서 도로를 차단하고 울타리를 쳐서 여기는 우리 마을이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형태인데, 이게 도시 기능으로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현재는 부동산 가치 면에서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어 자생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김경민_아파트 생활편의시설이 이미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기에 애매한 문제 같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해체를 바탕으로 한 개발이 앞으로도 과연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도시재생을 통해 대안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반성할 부분은 반성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처럼 다 부수고 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과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과 같은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디벨로퍼나 건설사들이 그 방향으로 가려 하죠. 또 그쪽 입장에서도 대규모 경제규모로 가는 쪽을 선호할 거고요. 다양한 부분에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시 단위에서 기본적인 인프라를 과거처럼 다 제공하진 못하더라도 약간의 주차장이나 길을 개선해주거나 작은 규모지만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동네 레벨에서의 작은 규모를 듬성듬성 메워주는 식의 작은 단위 개발을 하고,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응용적 시스템이 뒷받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11년에 <도시개발, 길을 잃다>라는 책을 쓰면서 뉴욕의 배터리 파크 시티를 개발 성공사례로 들었는데요. 초기에는 매립지이기에 개발하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디자인 안이 반영되며 주변에 있는 골목길 등까지 장소성과 역사성이 이어지게 만들어놓고, 코어부터 단기적으로 개발해서 커뮤니티를 쌓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생각해요. 그러기 위한 전략은 시에서 해야 한다고 보고요. 조금 먼 얘기긴 하지만, 시 당국 밑에 재개발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개발청이란 공공이 직접 개발하는 게 아니라 계획을 알려주고, 민간은 여기만 먼저 언제까지 개발하라는 식으로 디렉션 해서 다음 단계를 진행하면 장소성이 쌓일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상암동 미디어시티도 MBC가 들어와 콘텐츠가 생기기 전까지는 저녁 9시 이후나 주말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당시에도 JTBC나 YTN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만약 서울시 산하에 상암동 미디어시티개발청이 있었다면 더 제대로 개발이 이뤄졌을 것 같습니다. 코어부터 개발하고, 그다음에 점점 주변을 개발하고…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고민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식이 아니라 한 번에 쭉, 지나치게 말해서 땅을 쪼개 팔고 알아서 들어오라고 하면서 잘 안 됐던 거죠. 따라서 저는 지금이라도 공공 측면에서의 공공 디벨로퍼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직접 아파트를 짓는 게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공공 디벨로퍼요.
법에서 도시와 관련된 비전을 제대로 만들어 지역 단위 개발을 할 때 비전을 제시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디벨로퍼들, 건축사들이 함께 도시설계를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성공적 개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은 거버넌스 체계가 없기 때문에 힘들지만요.

# 국내 공공민간 협동개발 사례 이미 존재
성공적 도시계획 위한 도시개발청 등의 혁신적 변화 시도할 때

홍성용_공감합니다. 공공에서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직접 개발을 주도하면 사실 성과가 날 수 없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공이 전략이나 비전을 제시하고, 관리감독 기능 정도를 수행하면서 나머지 큰 틀만 잡아주면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김경민_만약 리더십을 갖고 조금 혁신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벌써 40년도 더 된 낙원상가 아파트 같은 경우는 굉장히 성공적인 공공민간 협동개발입니다. 서울시에서 당시 시장을 다 밀어버리고, 길을 세워 상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지은 거잖아요. 그 옛날에.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여건입니다. 역으로 말씀드리면, 그때의 전통을 잘 이어왔다면 우리도 성공적인 도시계획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따라서 리더십의 문제와도 연관이 되어 있고요. 그렇기에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습니다만, 그러기 위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시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조직을 좀 개편해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고… 서울시 주택국, 도시계획국을 따로 떼어서 갖다 놓으면 그게 앞서 말씀드렸던 도시개발청(재개발청)이 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SH나 LH 같은 경우는 결국 공공 계통의 회사이고 영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지만, 말씀드린 재개발청은 회사가 아니라 ‘청’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비전이 따라가는 거죠. 일정부분의 영리는 하는 게 맞습니다만,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기에 단순히 숫자를 기준으로 계획한다거나 필지를 잘라 계산하는 식의 접근방법과 다르고요. 지금 공공 디벨로퍼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됐는데도 아직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거든요. 실질적으로 도시의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체계,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해 빨리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성용_말씀하신 공공 디벨로퍼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김경민_외국의 공공 디벨로퍼는 두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보스턴 재개발청(BRA)처럼 시 개발을 주관하는 데도 있고요, 아니면 자기들이 기획을 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공공개발청이 있습니다. 허드슨 야드도 그 개발청이 따로 있습니다. 개발청에서 개발에 대한 도시계획 권한, 미래에 대한 질의응답 등을 해요. 외국의 도시재개발청을 보면 다양한 힌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 사업이 망했잖아요. 그럼 서울시에서 그거라도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시도도 해보지 않고 우리와 맞지 않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니까. 실험적으로 용산재개발청을 만들어서 성공사례가 하나 나오면 충분히 인식이 될 것 같아요. 일전의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같은 공공민간 협동개발사례가 있기에, 우리도 못할 건 없거든요.

 

# 부동산 트렌드에 따른 도시 안 건축물의 다양성 부족
다양성 있는 도시 위한 새로운 정책 필요
‘용적률 거래제’ 도입 대안 될 수도…

홍성용_아파트 가격이 오르거나 붐이 있을 땐 사람들이 주택(집)을 안 짓고, 아파트 가격이 주춤하면 집을 짓는 등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30여 년간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부동산 가격과 주택 건축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경민_트렌드가 겹친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수요자(일반인)들은 기본적으로 투자했을 때 돈을 벌길 원하잖아요. 아파트는 자본만 투입하면 되지만, 주택은 땅을 사서 건축사들과 얘기하고, 시공하고, 집을 짓는 과정도 힘들고요. 또 서울 같은 도심이 아니라 외부에 주택을 건축한다고 했을 때 과연 주택가격이 아파트와 대비해 투자한 만큼 많이 오르느냐? 그게 아니기에 사람들은 순간순간 경제상황, 시장상황에 맞게 경제적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다만 아쉬운 건 다양성 측면에서 도시 안에서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서울은 대기 수요가 너무 많아서 아파트가 들어서면 부침이 있더라도 언젠가 부동산가격은 계속 오를 거예요. 인플레이션에 맞춰 오를 가능성이 높고요. 다른 단독주택이나 한옥 등의 주택들은 개발 압박을 받을 텐데, 그렇다면 부수고 짓는 게 맞지만 사실 도시다양성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서 다양성 있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실질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분들은 건물을 부수고 더 높이 지으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데, 그걸 못 하게 막았잖아요. 저는 개인들에게 ‘당신들은 한옥에 대한 역사적 자원을 당신이 아닌 다른 대중들에게 주니까 참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다고 느꼈던 건 일전에 서울시에서 한강 르네상스를 한다며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용적률을 줘버린 거예요. 토지의 가격이 상승하는 건데, 그렇다면 이쪽(북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참았는데, 다른 쪽엔 한강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용적률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우리도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용적률 거래제가 반드시 들어와야 합니다. 이게 있어야 도시 안에 있는 건물들이 남겨져요.
자기 용적률을 못 찾으면 팔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서 오래된 아파트의 용적률이 지금 250%라면 300%까진 봐줄게, 이렇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부자동네라면 그들이 용적률을 사 모아서 올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수동의 경우도, 우리가 언제까지 창고 주인들에게 성수동이 한국의 브루클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재건축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수면 500%의 용적률을 받을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들에게도 용적률 거래제를 허용해야 해요. 그래야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건물을 남길 거예요. 이 혜택이 사실은 모든 건축주를 100%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혜택이에요. 따라서 다양성 측면에서 우리가 현재의 모습을 남길 수 있는 도시계획적 정책이라든지 금융 정책이 좀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공공 거버넌스 기반으로 한 도시계획가&
도시 관련 인문·역사 이해 바탕으로 금융 전문성 갖춘 플랜 세워야

홍성용_금융이나 부동산 시장의 구조를 모르면 건축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응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이나 제도가 필요할까요?

김경민_우선 진정한 계획가를 양성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공공에서도 계획가는 계속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공공에서 플래닝에 대한 철학과 운영 인식을 갖고, 이 플래닝의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 사회가 더 복잡해진데 따라 플래닝도 단순히 도시설계에서 그림을 그리고 용적률을 그리는 식이 아니라, 도시와 관련된 인문학적 또는 역사적 백그라운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나아가서 금융과 같이 붙어야 한다고 봅니다. 금융 같은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괜찮은 플랜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사회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대응 모델,
법적 제약으로 인한 도약의 어려움…
도시·건축의 혁신적 변화 위한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 必

홍성용_교수님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사회주택인 셰어하우스도 사회적 측면에서 필요한,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건축 과정에 건폐·용적률, 대지안의 공지 등의 건축법과 세법 사이에 장애물이 있지는 않으셨나요? 또 최근 다주택 소유정책에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정책 오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김경민_제가 셰어하우스를 건축하게 된 것은 2010년대 초반에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며 청년들의 주거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고서인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가 셰어하우스가 돈이 부족해 적정 가격의 주거지를 찾는 학생들과, 돈을 벌고자 하는 건물주 양쪽이 원하는 것을 모두 맞출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축 셰어하우스는 거의 최초다 보니 여러 업체에서 보기 위해 방문했는데, 법과 관련해 미비한 사항이 많다 보니 다음 단계로 나가질 못하더라고요. 당시 강남구청에서 융통성 있게 해석하셔서 법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그걸 뚫는 과정도 힘들었고요.
저는 우리나라에 네거티브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해서는 안돼!’가 아니라 하지 않을 것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해도 된다고 해야 하는데, 현재는 딱 정해두고 ‘여기까지만 해’ 라는 식이 되니까 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홍성용_매우 동감합니다. 건축법도 안 되는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다 허용하면 창의적 발상이 나오고 새로운 도전도 가능한데, 요 정도만 가능하고 나머진 다 안 된다는 식이니까 거꾸로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를 없애고 시도조차 못 하게 되는 거죠.

김경민_네. 그렇기에 바뀌어야 합니다. 전 도시가 테크, 디지털과 관련된 플랫폼 도시로 바뀔 거라고 보거든요. 테크와 디지털이 얼마나 빠릅니까. 도시와 건축이 못 따라가게 되는 거죠. 그렇기에 지금 모든 걸 혁신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딱 정해주고, 그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큰 패널티를 주면 되거든요. 그리고 실제 그 선을 넘는 나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봐요.

 

# 도시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성찰, 공감대 형성 후
보존과 개발 등 방향성 갖춘 개발 추진해야

홍성용_즉각 투자해서 회수하는 단기적 이익도 있을 수 있지만, 도시의 공원 같은 길게 회수할 수 있는 장기적 이익도 있잖아요. 공원이 제공하는 산소라든가 공기청정기 역할, 정형화하기 어려운 여러 심리적인 기능까지요.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도 그렇고 모든 것에 즉각적인 순위 분석을 해서 경제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도시와 건축도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데요. 부동산이 분명 중요하긴 하지만, 한쪽의 시각으로 과도하게 쏠려있는 건 아닌가 합니다.

김경민_공감합니다. 우리가 도시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약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960년대에 뉴욕의 펜스테이션이 철거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건축사와 플래너들, 제인 제이콥스 같은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며 반향이 일으켜짐으로써 미국에서 이런 내셔널 히스토리 빌딩을 우리가 규제하고 보호해야겠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된 거거든요. 저는 아쉬운 게, 2008년 서울시 청사 일부를 철거했을 때 많은 건축사들이 잠잠했어요. 일제 강점기 건물이긴 합니다만, 도시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존했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 사회는 당장 그것에 대한 합의부터 되어있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서울 도시의 미래가 무엇이며, 우리가 간직할게 무엇인가 하는 공감대를 갖고, 그 다음부터는 어떤 식으로 개발할 것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부동산 가격이 올랐기에 도심에 재개발을 추진하는 건 너무 철학 없는, 정말 영혼 없는 전략이구요. 서울 도심에서 무엇을 보존하고, 균형적 개발을 같이 하겠다는 관점에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리는 우리만의 방향성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아요.

홍성용_개인적으로,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도시나 건축을 언급하는 칼럼니스트 등의 존재가 부재하고, 매스컴도 따라주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다 아는 문화적 관점, 그것도 역사가 있는 고궁이 사라진다거나 이정도가 됐을 때의 맹목적인 시각 외에는 다른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 황폐함 때문에 계속해서 도시나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이 길어야 20년짜리 부동산으로만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대학로의 건물도 하나도 원형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별로 없는 거죠. 그 부분이 매우 안타깝고, 현업 건축사, 건축교수들의 발언도 많지 않고 발언하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도 아쉽게 여겨집니다.

 

# 디벨로퍼-건축사 간 소통 중요
도시에 대한 역사·이해도 높여야

홍성용_마지막으로, 건축과나 도시건축과 쪽 학생들 또는 건축을 하는 분들을 위한 핵심 조언 부탁드립니다.

김경민_환경대학원에 건축학과 친구들이 꽤 많이 오는데, 대개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엄청 부지런해서 학부에서 엄청난 트레이닝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하고, 또 기술을 금방 학습합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 언어가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맨 처음 언급했듯, 디벨로퍼와 건축사가 소통하며 맞춰가는 과정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건축학에서 도시에 대한 역사나 이해를 강화하는 부분들에 대한 수업이나 교육이 좀 더 강화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업역 자체가,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건축비가 낮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더 심하고 맨먼스(man/month)가 더 투입되는 것 같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공부하거나 다른 걸 돌아볼 여력이 없다는 걸 느껴요. 빠르게 변하는 인더스트리(산업)를 꿰찰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하고, 그 교육을 하는 역할을 건축사협회라든지 학회 등 누군가 담당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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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tation to an Abstract and Romantic Corporeal Experience

I. 건축사 안민
건축사 안민은 중견 건축사인 동시에 신진 건축사이다. 그는 학부 졸업 후 대규모 설계회사에서 근무했다. 그 후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회사를 차려 독립하였고, 건축사를 취득한 후 홀로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이번 봉평의 ‘카페 트리고’가 처음이다.

II. 카페 트리고의 터
‘카페 트리고’는 막 조성되기 시작한 봉평 문화마을 운동의 하나로 들어섰다. 자연히 건축사 안민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재가 건물에 투영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새로이 건축될 카페 건물에 관한 논의 중, 건물주가 그 이름을 ‘카페 트리고(Cafe Trigo)’라고 붙일 것이며, 그 연원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라틴어권에서 메밀을 부르는 명칭이 trigo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삼각 형태 때문에 붙여진 것임을 언급함으로써, 건축사 안민은 주저 없이 삼각형 건물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대지는 이효석의 생가로부터 1.4킬로미터, 이효석 문학관으로부터는 약 600미터 떨어진 3개의 전답을 합하여 조성한, 완전히 새로운 곳이다. 이효석 생가로부터, 그리고 강을 가로지르는 남안교로부터의 진입은 너무 직접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애물 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없이 수월하다. 마을은 전답과 전형적인 농가 가옥 몇 채, 새로이 들어선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편 100여 미터 거리엔 남안동천이 흐르고, 멀리는 오대산, 방태산, 가리왕산, 태기산 등 해발 1,000미터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트리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적인 표적이 되기도 한다. 대지는 낮은 경사지 위에 위치하여 마을을 비롯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조건이 양호한 편이나, 가까운 곳은 건축적 장치로써 가리고 열어 강조하는 등의 연출이 바람직해 보인다.

III. 카페 트리고
건물주와 건축사 안민은 ‘카페 트리고’가 이효석 문화마을에 융해되어 하나가 되도록 조성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런 의도와 노력의 결과, ‘트리고’는 주변의 문화시설이나 주거지 등 대지와 그 주변이 지니고 있는 문화성과 역사성에 거르지 않고 잘 순응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적으로는 대비에 가까울 만큼 매우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리차드 마이어의 백색 주택이 나무가 무성한 숲을 배경으로 서 있다든지, 추상형태 속에 압축된 공간을 지닌 마리오 보타의 주거 건물이 루가노 호수와 숲에 완벽한 대조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예는, 형태적으로는 맥락을 벗어나나 자율성과 가소적 아름다움이 한층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고려해 볼 만한 예이다.

명확한 기하학의 형태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삼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 ‘트리고’의 실루엣은 주변 건물들의 유기적 형태에 도전적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게다가 붉은색에 가까운 벽돌 타일 마감은 완벽한 서양식 모더니즘의 어휘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개구부는 선형의 띠창이 주를 이루어 벽체가 조성하는 사각형의 평면성을 해치지 않고 있는데, 내부에서 볼 때 이 띠창들은 이론적으로는 내·외부를 향한 고도의 시각조절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트리고’가 면전에 직접 접하고 있는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아 부분적 연출만이 성공하고 있어 아쉬운 느낌이 든다. 정밀하게 조정되는 시야, 정제되고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창으로서의 연출, 그로 인한 빛과 색채 등의 감동은 이미 근현대 건축에서 익히 추구되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에서 느껴지는 기존 건조환경의 압박은 강력한 장애물이 되곤 하는데, ‘트리고’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아마도 건축과 조경과의 연계는 별로 고려되지 않은 듯하다. 공들여 디자인된 정원과 부속물, 디자인 어휘는 개성이 강하여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 귀한 창으로 보이는 외부 풍경에 어지러운 장면이 앞을 막아선다면 차단, 조절, 배제, 포함, 강조 등 경우별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장과 ‘트리고’ 사이의 식종은 나무의 키나 잎의 밀도, 거리 등을 적절히 고려하여 선택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외부에서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나무가 심히 건물을 가려 형태 지각에 손실을 안겨준다든지, 나무가 조성하는 빈 공간 등으로 오히려 전체적인 시각적, 환경적 효과가 감소할 것인지, 고양시킬지에 관한 건축사와의 상호 논의가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카페 트리고 © 구의진

삼면의 벽체는 거의 동일한 형태를 지니나 지붕선의 경사도, 각 파사드의 개구부 등으로써 각각 변별된다. 삼면이 모두 다르게 지각되는 시각적 변별성은 주로 기능성에 의해 정해진다. ‘트리고’의 입구는 외부로부터의 접근성, 그리고 주로 내부 공간의 배치에 의해 결정되었고, 주 파사드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개구부 면적이 많은 벽체의 이면에는 매장 고객이 앉아 즐기며 쉬도록 외부로의 조망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반면 개구부가 거의 없어 평평한 벽체 이면에는 주로 대화나 간단한 작업 등이 가능한 공간으로 테이블과 의자 등 가구가 제대로 세팅되어 있다.

입구를 지나 내부로 진입하면, 면적률로 보자면 개구부의 비율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천장고와 삼각형 천창, 밝은 색으로 마감된 벽체와 천장으로 인해 밝고 환하며 널찍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상당히 유쾌하며 우아하고 고급진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막힌 한 쪽 벽 등으로 적절한 폐쇄성도 감지된다. 그러나 대다수 방문객으로부터 큰 주목을 끄는 삼각형 천창은,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 더 큰 상상을 하게도 만든다. 만약 벽체 등을 막아 폐쇄성을 강화함으로써 천창이 유일의 광원이 되고 조석의 시간차에 따라 광선의 궤적과 광도가 특성이 되는 공간을 설정했다면 로마의 판테온이나 계몽주의 시대의 공상적 아키텍트 불레의 장제신전(Cénotaphe 葬祭神殿), 르 꼬르뷔지에의 빛의 연출에 견줄 수 있는 기본 발판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빛이 천창을 통해 외부로 역류, 발사되어 등대처럼 외부로 비추게 된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미 후자의 경우는 마련되어 있고 작용하고 있다. 단지 필자의 시각으로는 강렬한 공간의 연출, 공간성의 강조, 빛의 육화(肉化)에 관한 내·외부의 일치가 좀 아쉽다는 예를 들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건물주와 건축사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다. 어느 관계 중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는다면 중간에서의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부에 드러나는 삼각형의 형상은 단순 2차원적 기하학 형상이 아닌,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 아주 강한 3차원의 입체이다. ‘트리고’의 실루엣은 벽체들이 60도 예각의 만남으로써 조성되는, 칼날같이 단순 명쾌한 실루엣을 이루고 있으며, 예리하고 명확한 실루엣으로 인하여 입체적 가소성은 매우 강하게 감지된다. 아마도 건축사 안민이 선택한 평면은 이러한 미학이 전제된, 형태적 중요성을 중시한 시도로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순수한 기하학 형태,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안정된 구조의 상징인 삼각형 건물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아주 강렬한 시각적 오브제로 작용하고 있다. ‘트리고’는 삼각형 하나로 경계가 한정되고 압축된 단순공간으로 비치지만, 동선과 시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그와는 반대로 숨겨진 시나리오가 연속적으로 펼쳐져 드러나기도 한다. 입구, 주방, 방문자 공간, 계단, 옥상으로의 연속적 연계는 각 지점마다 독립적이고 고유한 공간성과 시·지각의 연출이 숨어있다. 공간의 연출은 시간성, 시·지각, 후각 등 감각과 연관되어 육체와 정신이 함께, 또는 동시에 작동한다. 낭만의 감성은 이지적 요소의 인도에 의해서도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민 건축사의 ‘트리고’는 매우 감각적이며 원시적 추상의 건물이다. 낭만과 즐거움이 기본이며, 현대 건축의 철학과 근본 미학 개념인 시원의 추상적 형태와 원초적인 신체적 감각의 만족, 지각과 지성의 만족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글. 김미상 Kim, misang 비평가

김미상 비평가

한양대학교 건축과에서 건축을 수학(학사·석사)하고, 벨기에의 루벵 카톨릭대학교(l’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에서 예술사학을 전공(석사, 박사)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 건축과 교수(서양 건축사, 건축이론) 및 단우 도시·건축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건축, 미술, 무용 분야의 이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misang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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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뱃사람과 노동자의 마을, 목포 다순구미 마을

Disappearing village
Dasungumi Village in Mokpo, a village of sailors and workers

마을은 유달산 아래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목포 바다를 바라보며 형성되어 있다. ‘구미’는 바닷물이 깊이 들어오는 오목한 지역이라는 뜻이고, ‘다순’은 따뜻하다는 뜻의 사투리이다. 해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양지바른 유달산 남쪽 비탈마을을 ‘다순구미’라 불렀다. 지금은 같은 뜻의 한자명인 온금동(溫錦洞)이란 행정구역 명칭이 붙어 있다. 1897년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개항한 목포는 경술국치로 일본인들에 의한 근대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바다 앞 평지인 시가지는 일본인의 거주지가 되었고, 조선인 주민들은 도시 북쪽과 서쪽 유달산 자락에 달동네를 꾸려야 했다. 이전에는 진도 조도와 완도 노화도, 신안 암태도에 살던 뱃사람의 마을이었으며 이후에도 뱃사람들이 주로 이주해와 많이 살았다.
1910년대 다순구미 일대 간석지를 매립하여 ‘째보선’으로 불린 어선 정박지로 조성하여 사용했으며, 1938년 세워진 조선내화 목포공장의 부지가 되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뱃사람과 공장 근로자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는 아직도 공장 건물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2016년부터 운행한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마을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과 북쪽에 유달산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지형으로, 여름의 시원한 남동풍과 겨울의 북서풍을 막아주는 따뜻한 언덕을 가진 최고의 주거지로서 서산온음지구 재개발 1지구에 포함되어 아파트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입구의 조선내화 공장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역사적 건물과 더불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활용할 계획이다.

조선내화 주식회사 목포공장은 용광로에 들어가는 내화벽돌을 생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말기(1938년)에 설립됐다. 조선내화는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에 제철 시멘트 유리공업에 필요한 내화제를 생산하여 세계적인 내화제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본사가 광양으로 이전하면서 목포공장은 폐쇄되었다. 1938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설비와 굴뚝, 가마, 산업화시대 공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7호로 지정받았으며, 총 29,200제곱미터 전체 부지를 역사적 유적 보전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개발사업이 2021년 12월 건축 허가를 받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다순구미 골목에는
유달산을 바라보며 형성된 좁고 비탈진 긴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 사이로 집들이 마치 바위 위에 붙어있는 조개류처럼 옹기종기 붙어있다. 물이 귀해 마을 밑에 있는 우물에서 머리에는 물동이, 등에는 물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던 골목길을 따라 힘들게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목포 바다가 아련히 마음속에 들어온다. 계단을 따라 집들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속에서, 일제강점기의 조선인과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난한 주민들의 삶의 애환, 그래도 복닥거리며 행복을 나누었을 가족들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시멘트 길바닥에 그어놓은 선들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밟으며 떠나고 들어오면서 흘렸을 눈물과 땀으로 새겨진 온금동 주민들의 삶의 나이테로 여겨진다.

골목길에서 바라보여지는 목포 바다는
뱃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했을까?
언덕길에서 바다를 보면 깃발을 먼저 보았을 것 같다. 배에 걸린 깃발을 보면 만선인지 사고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는데, 바다는 집에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을 긴장하게, 또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깊은 슬픔을 전하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그리스의 산토리니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보다 더 아름답다.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 공동시암은 1922년에 큰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을 때 정인호가 조성한 것이다. 가로 150×세로 135 센티미터의 크기로 우물 뒤편에는 2기의 비석이 있는데, 우물 조성에 기금을 낸 정인호의 공적을 기리는 ‘정인호시혜불망비’와 온금동 주민들에게 긍휼을 베푼 김영수를 기리는 ‘김영수시은불망비’이다.
이곳의 최대 문제는 식수 부족인데, 수질도 좋지 않았다. 이때 돈을 기부해 새 우물을 만들어주었으니, 대단한 기부였다.

조금새끼들도 지금은 거의 다 마을을 떠나고 없다.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갈 수 없는 조금(썰물)때와 흉어째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서 이때 많은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들을 온금동 사람들은 ‘조금새끼’라고 불렀다. 한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생업을 이어받아 바다로 나갔다가 거친 풍랑에 함께 바다에 묻히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의 남자들은 같은 날 생일과 제삿날이 많았다.

다순구미마을
– 박정구

목포 온금동에 가면
허리 굽은 계단들이 하늘을 향해 있다
뱃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살던 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라서
달도 가장 먼저 뜬다
눈먼
다순구미 마을이 아름아름하다
아비의 아비 자식의 자식으로 물려지는 뱃일처럼
가난한 마을에는 불빛도 흐리다

목포 은금동에 가면
하늘 계단들이 바다를 향해 있다
뱃사람들 하나둘 떠나는 마을
씀바귀 같은 사람들의 고향에 기다림은 길어도
봄이 오고 또 꽃은 피지만 바닷바람이 차다
온금지구 재정비촉진사업 흉흉한 소문
귀먼
다순구미 마을이 무너지고 있다
흐린 불빛마저 꺼져가고 있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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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주택에 대한 단상

A thought on commercial housing

상가주택은 지금의 투닷을 있게 해준 고마운 주제다.
우리에게 버티기의 생존이 아닌 주도적 생존 전략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상가주택에 대해 정리해보고, 더 발전된 생각을 쌓아가고자 한다.

 

상가주택의 한계

신도시나 도시개발구역의 점포(상가)주택지는 도시의 비좁은 골목의 빌라촌과는 여건이 다르다. 도시 빌라촌의 태생은 단독주택지이다. 단독주택의 크기에 적합한 토지와 도로의 크기를 갖고 있던 것이 점차 빌라촌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1가구를 위한 단독주택지에 다가구를 넣고 적층하다 보니 주거환경이 좋을 수 없다. 물론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적합한 다가구 형식을 고민해 적용했더라면 지금의 빌라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겠으나, 불행히도 그 고민은 시작도 되지 못하고 채워지기 급급했다.

반면, 지구단위로 계획된 점포주택지는 입지의 전제가 다르다. 태생부터 다가구와 점포를 가정해 지구단위에서 정한 가구의 수, 층수, 용적률을 감당할만한 필지의 크기와 도로의 너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어지고 채워진 점포주택 블록은 도시의 빌라촌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 이유를 도시이든 택지이든 건축주의 욕망이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그 욕망(수익 실현, 재산 가치의 증식)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추기는 누군가는 대표적으로 지역의 공인중개사 또는 시공업자다. 둘의 존재 이유는 다르지만, 그 둘은 나름의 공생관계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지역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토지 매매를 할 때, 공인중개사는 이런저런 건축에 관련한 조언을 한다. 집의 구성은 어떠해야 하고, 주차는 이렇고 상가는 저렇고. 그렇게 하면 임대는 걱정할 필요 없고, 저렴하게 설계와 시공을 해줄 수 있는 업체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축 컨설팅을 한다. 지역의 부동산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 건축주는 혹하게 되고, 많은 건축주들은 중개사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게 된다. 건축주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라 믿고. 정말 그럴까?

​공인중개사는 그들 일의 성격상 건축주가 좋은 집을 짓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래할 수 있는 매매, 또는 임대 상품의 구성이다. 택지에는 다양한 주거 상품군이 존재한다. 아파트부터 단독주택, 점포주택까지. 공인중개사의 입장에서는 상품군은 높은 가격대에서 낮은 가격대까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런 측면에서 점포주택의 임대주거 질이 굳이 좋을 필요가 없다. 임대가격이 높은 아파트의 하위 상품으로서 기능하면 될 뿐이다. 도시에서 흔히 보는 빌라의 수준이어야 거래하기 더 좋은 것이다.

그렇게, 아파트를 닮은 아파트의 아류가 되면 지역의 시세에 따라 임대가격이 정해진다. 정해진 임대가격은 건축주가 건축비에 쓸 수 있는 예산의 제한 요소로 작용한다. 임차인에게도 질 좋고 내 집 같은 거주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건축주의 선한 의지도 결국 제한된 예산으로 마음만 남을 공산이 크다.

자경채 _ 원주 혁신도시 © 박건주 사진작가

하얀집 _ 강서구 방화동 © 최진보 사진작가

바라봄 _ 영종도 © 박건주 사진작가

중정삼대 _ 영종도 © 박건주 사진작가

상가주택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가구와 임대가구가 공존하는 주택이라는 것

대개의 경우는 맨 위층에 주인세대가 자리한다. 옥상 정원이나 베란다를 가지고 방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널찍한 다락도 있다. 그에 비해 임대가구는 발코니 확장으로 임대 면적을 확보하느라 빨래를 널어두거나 바람을 쐴만한 변변한 외부공간도 없으며, 좁고 깊은 평면 형태로 환기나 채광에 불리한 거주환경을 가진다.

위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주택, 이것이 현재 상가주택의 모습이다. ​아파트의 단점으로 꼽는 똑같은 평면 형태, 그것이 적층되어 보이는 단조로운 입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상가주택처럼 외부에서 봤을 때 사는 이의 계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이가 월세를 사는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보는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상가주택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주거 형태라기보다는 상가와 다가구주택을 섞어 내놓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주거 형태다. 택지개발의 주체들이 지구단위 계획을 하며 단독주택지와 근린생활용지의 중간적 역할을 하는 점포주택지를 끼워 넣었더니 인기가 폭발했고, 그러면서 택지개발지구에는 당연하듯 점포주택지가 생기게 됐다.

도시에서 빌라를 짓던 건설업자가 자리를 옮겨 택지에서 똑같은 모습의 빌라에 상가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상가주택을 지어댔다. 상가와 주택이 공존할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기에 그 부작용은 곳곳에 나타났다. 상가가 주인인 양 길을 꽉 채우고 들어서 주택에 사는 이는 주차장을 통해 건물의 옆구리로 출입하거나 후미진 곳에서 드나들어야 했고, 상가가 활성화된 지역에서는 외지에서 온 차량으로 길 전체가 점령당해 유모차도 끌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상가와 주택이 균형과 통일에 대한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접합되다 보니 상가로서의 매력적인 가로 조성에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삭막해 보이는 빌라촌에 멋진 카페거리가 조성될 리 만무하다.

건축주와 임차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집짓기를 위해, 투닷에서는 그간 몇몇 상가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도한 전략이 있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검토되고 실천되었으며, 그 결과는 유의미하게 검증됐다.

​첫 번째. 아파트의 평면을 닮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변의 기존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은 피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평면을 따른다고 해도 입지의 여건과 거주 환경으로 인해 결국 아파트의 아류, 또는 하위 수준일 수밖에 없으며, 주변의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으로는 이른바 시세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단독주택을 닮으려 노력하거나, 주변에 없는 새로운 주거 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아파트와 경쟁할 수 있고, 시세에서 벗어나 임대수익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가주택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도, 임대수익을 높여야 한다. 건축주의 이타심에 기대어 집주인, 임차인 모두가 만족스러운 집짓기를 기대하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임대수익이 높아져야 건축비에 투입할 예산을 늘릴 수 있다.

두 번째. 아파트와 같은 동일한 거주환경이 아닌, 동등한 거주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앞에 언급한 대로 아파트는 그 획일성의 단점은 있으나, 적어도 외관상 위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상가주택은 작은 규모에도 최상층 주인세대, 그리고 그 하부 층에 위치한 임대세대와 같이 그 위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다.
계급이 드러나는 곳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은 불가피함이지 자발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린 건축주에게 다양한 방식의 동등함을 구현할 방법을 제안한다. 여러 방법 중 공통된 것은 건축주가 필요 이상으로 누리는 것들을 임차인과 나누는 것이다. 물론 그냥 나누어 주라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에서 언급한 임대수익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건축주의 욕망과 임차인의 욕망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세 번째. 상가주택은 상가와 주택이 공존한다. 그러므로 공존의 방식, 균형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건축주의 수익이 상가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해서 주택이 구석으로 밀려나서는 안 되며, 주택과 상가의 뚜렷한 시각적 분리, 어색한 만남으로 상가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서로 기능이 다르다 해서 주택과 점포가 별개의 모습으로 따로 또 같이 있기보다는 하나로 보이는 통일된 디자인이 유효할 수 있다.

 

글. 조병규 Cho, Byungkyu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조병규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 건축사

명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IMF의 도피처로 삼은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아내를 만났다. AI, 이안디자인 건축사사무소에서 13년 동안 근무하다 2014년부터는 후배인 모승민 건축사와 투닷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양수리에 두 대표 건축사의 집인 ‘모조’를 짓고, 직주근접의 삶을 실천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며 살고 있다. 한밭대학교에서 설계스튜디오 강사를 했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공동체주택 및 매입임대주택 심의를 하고 있다. 2021년에는 건축 에세이 <보통의 건축가>를 출간했으며, 간간이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todot@tod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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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실 글꼴의 통일성

The unity of stencil font

사람의 손글씨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못 쓴 글씨나 잘 쓴 글씨나 모두 글씨의 꼴이 균질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일성을 갖는다. 만약 한 사람의 글씨가 균질하지 않다면, 사건 현장에 남은 필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수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글씨체로 성격을 추론하는 그런 학문도 존재할 수 없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균질한 글씨를 쓴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사람이 글씨를 똑같은 모양으로 쓰는 것처럼 활자도 똑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된다. 영어로 A부터 Z까지, 한글로는 ㄱ부터 ㅎ까지 그 모양은 균질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므로 나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자에서 그 통일성의 지향성이 얼마나 강렬한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 글자는 스텐실 글자다. 스텐실은 영문의 가라몬드나 헬베티카, 또는 한글의 명조체나 궁서체처럼 활자화된 서체의 종류가 아니다. 스텐실은 글자를 만드는 데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는 데 활용한 기법이다. 스텐실은 그림이 표현될 종이나 벽 위에 구멍이 뚫린 마분지나 금속, 나무와 같은 중간 매개체를 올려놓고, 구멍 안에 붓이나 스프레이로 색을 채워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다. 그 구멍의 모양이 바로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 기술로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도 쓸 수 있음은 물론이다. 글씨는 그림보다 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 스텐실 기법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군대다. 스텐실 글씨는 손으로 쓴 글씨와는 달리 삐뚤빼뚤 하지 않게 곧고 바르게 쓸 수 있다. 즉 군대의 성격에 맞게 절도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종의 대량생산 방식이어서 똑같은 모양으로 복제하기 좋다. 스텐실의 그런 특성으로 인해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었다.<사진 1>

<사진 1> 2차 세계대전 중 군용 지프차에 스텐실 기법으로 글자를 새기는 군인들.

<사진 2> 스텐실 기법에 따라 알파벳 O자를 만들고자 구멍을 내면 안쪽의 원은 표현할 수가 없다.

스텐실 기법의 묘미는 폐쇄된 글자에서 나온다. 폐쇄된 글자란 영문의 A, B, D, O, P, Q, R처럼 폐쇄된 공간(타이포그래피에서 이 공간을 카운터[counter]라고 부른다)을 갖는 글자들이다. 한글에서는 ㅁ, ㅂ, ㅇ, ㅍ, ㅎ이다. 다른 글자를 만들 때는 그냥 모양대로 구멍을 파내면 된다. 하지만 O의 경우 구멍을 파내면, <사진 2>의 왼쪽의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른쪽의 결과가 나온다. 글자의 윤곽을 살려내려면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브릿지(bridges)와 아일랜드(islands)의 개념으로 구멍을 파내야 하는 것이다. 이 개념도를 보면 마치 글자의 윤곽은 강이고, 그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안의 카운터 공간은 섬처럼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브릿지와 아일랜드의 존재가 바로 스텐실 글자의 묘미이자 매력이다. 스텐실 글씨는 특정한 서체가 아니므로 반드시 이 브릿지가 보여야 스텐실 글씨로 인식된다. 그에 반해 브릿지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운터가 있는 문자들이다. 영문의 C나 E, 한글의 ㄱ이나 ㄴ은 카운터 공간이 없으므로 굳이 브릿지가 필요 없다. 영문이나 한글이나 카운터가 없는 문자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한글의 경우 모음은 폐쇄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브릿지가 필요한 경우는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3> 스텐실 기법에서 알파벳 O자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획의 중간에 브릿지를 만들면 된다.

<사진 4> 스텐실로 표현한 ‘사다리차’. 폐쇄형 글자가 없어 브릿지가 없다.

<사진 5> 스텐실로 표현한 ‘기계운반설치’ 속 폐쇄형 글자에 브릿지를 넣었다.

<사진6> 폐쇄형 글자이든 아니든 브릿지를 넣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살렸다.

몇 해 전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툴툴툴>이라는 전시에서 일반인들이 만든 스텐실 글씨들이 출품되었다. <사진 4>는 ‘사다리차’를 홍보하는 스텐실 글씨다. 이 글자에는 폐쇄된 문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브릿지도 없다. 이런 글씨는 스텐실 글씨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 5>는 ‘기계운반설치’라는 글자인데, 여기에서는 계, 운, 반 자에만 브릿지가 있다. 이것은 반쪽짜리 스텐실로 느껴진다. 마지막 <사진 6>의 ‘기업철강’이라는 글자에서는 모든 글자에 브릿지를 넣어줬다. 사실상 브릿지가 없어도 되는 ㄱ과 ㄹ에도 브릿지를 넣어준 것이다. 그랬더니 확실히 스텐실 글씨로 인식된다. 아쉬운 것은 ㅊ에도 브릿지를 넣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아마추어가 이것을 디자인했다면, 그에게 미적 감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릿지가 필요 없는 열린 문자에도 왜 브릿지를 넣었을까? 바로 균질성 때문이다. 모양의 균질성을 통해 통일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다. 미국에서 디자인된 초창기 스텐실 활자로는 미국활자주조소인 ATF가 1937년에 생산한 ‘스텐실’ 글꼴이 있다.<사진 7> 이 글꼴을 보면 A부터 Z까지 모든 글자에 일관되게 브릿지를 적용했다.

<사진7> 스텐실 글꼴, 디자인: 로버트 헌터 미들턴, 1937년.

건축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례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디자인한 루첼라이 궁이다.<사진 8> 이 궁의 파사드를 보면, 8개의 벽기둥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 벽에는 창문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창문 또한 아주 규칙적인 간격으로 7개가 있다. 전체적으로 이 건물의 파사드는 대단히 규칙적이고 통일되어 있다. 이 건물이 주는 미적 가치는 바로 이런 수학적인 규칙성과 통일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매끈한 유리 커튼월 빌딩의 멀리언 간격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루첼라이 궁에는 거짓이 있다. 1층에 있는 두 개 문 위의 창문은 사실 가짜다. 그 안쪽은 구멍이 뚫리지 않은 벽이지만, 디자인의 통일과 창문의 규칙적인 리듬을 살리고자 가짜로 창문 모양을 넣어준 것이다. 창문뿐만 아니라 규칙적 벽기둥 역시 진짜 기둥이 아니므로 그 안의 구조는 밖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기둥 위에 새겨진 엔타블러처, 즉 1층과 2층, 2층과 3층을 구분하는 가로의 장식 부분 역시 건물의 실제 구조와는 무관하게 디자인된 것이다. 알레르티에게는 건물의 실체와 기능보다 눈에 보이는 미적 효과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사진8> 팔라초 루첼라이, 디자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1446-1451년.

하지만 실체와는 무관해 보이는 미적 효과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 뇌과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들은 모두 대칭의 아름다움에 대해 각자의 분야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물리학자에 따르면 원은 각도를 아무리 조정해도 대칭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원은 가장 대칭적인 형태이므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원과 비슷하게 대칭적인 기하학의 형태는 정사각형이다. 하지만 정사각형은 90도, 180도, 270도, 그리고 360도로 회전했을 때만 대칭성이 유지된다. 그 외의 각도에서는 대칭이 깨지며 불안정해 보인다. 다른 도형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토록 완벽하게 대칭적인 원은 어떤 이익을 가질까? 원은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에너지를 가장 덜 쓰면서 움직일 수 있는 형태다. 말하자면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파악하는 데도 에너지를 덜 쓴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를 덜 쓰도록 프로그래밍되었으므로 원은 아름답게 판단되는 것이다. 생물학자에 따르면 모든 동물들, 특히 새와 인간은 대칭적인 배우자를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대칭이 그 배우자의 건강과 자질을 증명하는 지표로 쓰인다는 것이다.

<사진9> 스텐실 글자처럼 디자인한 빵집 간판.

이 대칭성이라는 것은 규칙성과 통일성, 균형의 다른 이름이다. 대칭이라는 것은 오른쪽과 왼쪽, 위쪽과 아래쪽이 똑같다는 뜻인데, 그것은 모든 것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텐실 글씨가 카운터가 있건 없건 모든 글자에 브릿지를 넣어주는 것, 그리고 알레르티가 벽에 구멍이 있건 없건, 건물 내부의 구조가 어떻든 간에 건물의 파사드에 시각적인 규칙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똑같이 대칭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의 발현인 셈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 빵집의 간판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사진 9> 빵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옆으로 넓게 퍼진 받침 ㅇ에 브릿지를 넣어 스텐실 글자처럼 보이게 했다. 그렇다면 쌍자음 ㅃ의 닫힌 공간에도 브릿지를 넣어주어야 통일성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간판은 스텐실을 채택한 것이 아니다. 이 글자를 보면 상당히 볼드해서 ㅂ의 속 공간의 면적이 아주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폭이 좁은 공간에 또다시 브릿지를 넣는 건 복잡성을 높일 뿐이다. 스텐실 글자를 만들 의도가 없었는데, 왜 ㅇ에는 브릿지를 넣어주었을까? 그것은 가운데 ㅂ자 속 공간의 얇은 흰색 배경의 수직적 연속으로 ㅇ에도 길을 터준 것이다. 또한 이 글자는 쌍ㅃ의 ㅂ과 ㅂ사이, 그리고 가운데 ㅂ과 ㅏ사이에 동일한 간격의 흰색 배경 공간이 있다. 이것과 동일한 성질을 받침에도 균질하게 넣어준 것이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빵이라는 글자의 위아래를 대칭적으로 만들어주고자, 다시 말해 규칙성과 통일성을 적용하고자 디자인한 것이다. 스텐실 글자를 만들고자 한 결과가 아니다. 사실 ㅇ에 넣은 흰색 길(브릿지)이 없어도 가독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대칭과 균형의 강박에 시달리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통일성을 지향하는 디자인은 그러한 프로그래밍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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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

Again, again!

아내는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동창회에 간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고 노래방에도 가서 유쾌하게 웃고 즐긴다. 그동안 남편은 혼자 골프 연습을 하고 서점에 가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고 전자레인지에 간단한 음식을 데워 먹는다. 반대로 남편이 밖에서 술을 마실 때 아내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한다. 화면은 남편과 아내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고 그 일상 위로 부부가 주고받는 대화가 이어진다.

아내)  다시 태어나도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남편)  에? 무슨 말이야?

아내)  그러니까 만약의 이야기.

남편)  음, 어렵네

아내)  어렵다니?

남편)  이런 종류의 질문에 무책임하게 대답할 수 없는 성격이라 말이야.

아내)  참 착실하시네요.

남편)  게다가 다음 생엔 강아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아내)  그건 그것대로 좋네.

남편)  지금도 어떤 의미론 너의 강아지니까 말야.

아내)  그런 말, 밖에선 하지 마.

남편)  자신은, 있을지도.

아내)  자신?

남편)  또다시 한 번 함께할 자신.

           그 다음은 모르겠네.

자막)  여기서, 함께.

다이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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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목소리는 잔잔한데 이야기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선뜻 그렇다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다음 생에는 강아지로 태어날 것 같다고 엉뚱한 말도 한다. 묻자마자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대답이다. 그렇게 말한 뒤에 남편은 지금도 본인은 어쩌면 아내의 강아지라고, 그래서 다시 한 번 함께 살 자신은 있다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지루함을 아는 이의 성숙함이 느껴지는 답변이다.
일본의 배우 릴리 프랭키와 후카츠 에리가 부부로 등장하는 이 광고는 일본 최대의 건설회사인 다이와하우스 공업주식회사가 만든 것이다. ‘여기서,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과장 없이 따뜻하게 연출한 시리즈 광고 중 한 편이다.
시리즈의 다른 편을 보자. 부부싸움 뒤 남편은 어째도 좋은 일로 싸웠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어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과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쉽게 고개 숙이는 남자가 아니라고 호기를 부리는 남편. 하지만 거래처에 찾아가서는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90도 굽히고 사정을 한다. 나이 먹어도 소중히 대해줘, 라는 아내와 대신 나보다 오래 살아 달라고 주문하는 남편의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남편)  또 어째도 좋을 일로 싸우고 말았다.

아내)  어째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야.

남편)  어라? 내가 나쁜가?

아내)  사과하면 용서해줄 수도 있지만…

남편)  나는 간단히 머리 조아리는 남자가 아니야.

아내)  자기 편할 때만 남자 핑계를 대지.

남편)  역시 억지인가?

아내)  젊었을 땐 좀 더… (젊을 때 사진을 보며)젊을 때부터 별 거 없었네.

아내)  나이 먹어도 소중히 대해 줘.

남편)  좋아.

아내)  차버릴지도 몰라.

남편)  대신 나보다 오래 살아.

자막)  여기서, 함께.

다이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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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나는 어쩌고 싶을까? 만약을 묻는 광고를 보고 재미 삼아 자문해 본다.
나는 다시,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우리 엄마 딸이 되어 재롱을 부리고 우등상장으로 엄마를 웃게 하고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엄마에게 ‘정신 차리고 오래 살아!’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호통칠 수 있을까? 다시 그럴 수 있을까? 때로는 내다 버리고 싶었던 애물단지 내 아이들을 다시 낳아 무조건 사랑하는 바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야근 다음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소풍에 가져갈 김밥을 싸고, 퇴근하면 옷도 안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슈퍼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다시, 아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인 줄도 모르고 가슴 설레고, 이별인 줄 몰라 자꾸 뒤돌아보는 서툰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열 번 헤어지고 스무 번 다시 만나고 그래도 헤어져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워하는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만약에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산다는 것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알고도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처음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서러움 한 번 없을 것처럼, 배신 한 번 당하지 않을 것처럼 해맑은 얼굴로 세상과 만나고 순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광고 속의 남편처럼 나도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니, 시침 뚝 떼고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구는 내 아이들의 말썽꾸러기 아들로 태어나 복수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착하게 살아야지, 미워하지 말아야지, 더 양보하고 더 배려해야지. 해서 지금 이 생에서는…, 그냥 내키는 대로 살기로 한다. 꽁하고 삐치고 실수하고 넘어지며 가끔 착하고 대부분은 옹졸하고 소심하게 얄밉게 이기적으로 살기로 한다. 변하겠다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일랑 개나 줘버리고 그냥 살던 대로 살기로 한다.
어차피 이번 생은, 이대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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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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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를 위한 휴일의 대체와 보상휴가제

Substitute holiday and compensatory leave system for business owners

사업장에서는 업무상 필요 등으로 휴일에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근로자에게 휴일근로 가산수당을 포함한 ‘임금’을 지급해야 함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과도한 휴일근로 발생 시 사업주에게 임금 부담을 발생시키는 바, 추가적인 휴일근로수당 지급 대신에 근로자에게 별도의 휴일을 부여하는 제도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사업장에서는 이러한 제도를 휴일대체, 대체휴일, 대체휴가 등 다양한 명칭으로 칭한다.
이를 구분하자면 ‘휴일의 (사전)대체’와 ‘보상휴가제’가 있다. 각 제도는 운영방법에 따라 ‘휴일의 가산 여부’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바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제도의 실질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제도의 원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면 목적에 부합하도록 운영 방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번 인사노무상식 시리즈에서는 휴일의 대체와 보상휴가제를 알아보고자 한다.

 

■ 휴일의 대체

1. 의의
휴일의 대체는 ‘특정한 휴일을 근로일로 하고 대신에 통상의 근로일을 휴일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법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는 아니지만 법원 및 고용노동부가 그 효력을 인정하고 있는 제도이다.

2. 효과
적법하게 휴일이 대체되면 당초의 휴일은 근로일이 되므로 해당 일에 근로를 하더라도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게 된다. (임금근로시간정책임-1815, 2006. 7. 21.)
만일 적법하게 휴일 대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휴일근로가산수당의 지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바 아래에서는 이의 요건을 알아보고자 한다.

3. 요건
휴일의 대체가 적법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로자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판례는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의 규정’이나 ‘근로자의 동의’ 중 선택적으로 한 가지만 충족하면 휴일 대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또한 ‘단체협약 등의 규정’이나 ‘근로자의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휴일 대체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대체할 휴일을 특정하여 근로자에게 고지하여야 한다. 사전 고지에 관하여 고용노동부는 휴일 대체 사실에 관하여 적어도 근로하기 ‘24시간 이전’에 해당 근로자에게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 (근기68207-806, 1994. 5. 16.)
이때 구두로도 가능하긴 하나 고지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근무표 작성 및 서명 등 서면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제도가 휴일의 대체, 휴일 대체 등 비슷한 표현을 사용할지라도 위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경우 적법한 휴일의 대체에 해당하지 않고 휴일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4. 실무상 이슈 – 관공서의 공휴일의 대체
2022년 1월 1일부터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우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을 유급으로 보장해야 한다.
해당 휴일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에 특정한 근로일로 대체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55조 제2항). 근로자대표에 관하여는 아래의 보상휴가제 요건에서 상세히 설명하겠다.

 

■ 보상휴가제

1. 의의
보상휴가제는 제57조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휴가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2. 효과
보상휴가제를 운영하는 경우, 휴일근로수당을 갈음하여 휴가를 부여하는 것으로 가산분의 휴일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8시간 이내의 근로의 경우 해당 근로시간의 1.5배 휴가를 부여해야 하며, 8시간을 초과한 근로에 대해서는 해당 근로시간의 2배를 가산한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휴일 8시간을 근로한 경우 12시간(8시간×1.5배)의 휴가를 부여해야 하며, 10시간을 근무한 경우 16시간(8시간×1.5배 + 2시간×2배)의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

3. 요건
보상휴가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요건으로 한다.
근로자대표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대표권을 위임받은 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가 된다(근로기준법 제24조 제3항).

과반수 노조가 없어 근로자대표를 선정하는 경우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하고, 근로자대표에게 주어지는 대표권 행사의 내용을 주지시킨 상태에서 근로자 과반수의 의사를 모으는 방식으로 선출해야 한다. 근로자 대표의 구체적인 선출 방법이나, 선출 인원에 제한은 없으며 근로자대표 선정과 관련한 문서는 비치 보존하여 향후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연근로제가이드, 고용노동부, 2018. 6. 26.)

 

글. 신항철 Shin, Hangcheoul 삼정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신항철 삼정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삼정노무법인의 대표 공인노무사이며, (주)에스제이파워 등 삼정HRM그룹의 총괄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건설 철근 콘크리트 협회 자문위원, 프랜차이즈협회 자문위원 및 중앙진폐재활협회 노동법률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20여 년간 공인노무사 업무를 해오면서 임금채권보장업무를 국내 최초로 수행하였고, 임금, 근로시간, 노사관계 및 산업안전 등 기업 현장에 필요한 수많은 컨설팅을 통해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shin@psj.kr / www.psj.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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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술저작권 해설

Easy explanation for art copyright

Ⅰ. 글의 첫머리에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판매한 그림이 대작이라는 시비가 있었고, 그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까지 나왔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법적 분쟁도 있었다.

화가가 그린 그림이나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 성당의 벽화 등에 대한 권리는 무엇일까? 화가가 그림에 대해 가지는 권리의 내용은 무엇이고, 돈을 주고 구입한 사람이 가지는 권리는 무엇일까?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전시회에 출품하여 전시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똑같이 모방하여 그린 다음 새로 그린 사람 이름으로 낙관을 찍어서 판매를 하면, 어떠한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다른 화가로 하여금 기본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나중에 그 그림에 약간의 손질을 한 다음, 마치 그 그림을 자신이 혼자 그린 것으로 말하면서 판매하는 행위는 형사처벌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림에 대한 권리는 몇 년 동안이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일까? 외국의 화가가 그린 그림은 한국에서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을까? 미술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민형사상의 제재를 받게 되는가?

미술작품에 관한 권리를 미술저작권이라고 한다. 미술저작권은 수많은 저작권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저작물을 대상으로 저작권을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며, 특별한 권리를 부여하고, 저작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 및 불법행위를 제재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 저작권법이다.

미술저작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저작권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 다음, 미술저작물의 개념 및 성립요건에 대해 분석하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미술저작물에 대해 인정되는 미술저작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판례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미술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의 유형과 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과 형사책임도 살펴본다.

 

Ⅱ. 미술저작물의 개념과 종류

미술저작물이란 무엇인가? 미술저작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미술저작물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개념이므로, 법에서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을 일정 기간 독점적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저작권법은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저작물, 미술저작물,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등을 보호한다.

저작물은 인간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창작성(originality)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저작권은 무형재산이기 때문에 물권에서 말하는 점유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어, 무체재산권 또는 지식재산권의 하나로 분류된다.

미술저작물(artistic works)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시각적 형상이나 색채 또는 이들의 조합에 의하여 미적으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미술저작물은 선, 색채, 명암을 사용하여, 평면적 또는 공간적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미술저작물은 ① 예술의 범위에 속하고, ② 창작성이 있고, ③ 대외적인 표현물임을 요한다.

저작권법 제4조는 ‘저작물의 예시 등’이라는 제목 아래, 각종 저작물을 예시하고 있다. 즉, ‘회화ㆍ서예ㆍ조각ㆍ판화ㆍ공예5)ㆍ응용미술저작물 그 밖의 미술저작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저작물과 건축저작물은 미술저작물과 구별하여 법에서 따로 규정하고 있다.

서예는 붓을 쥐는 힘, 붓을 움직이는 속도, 문자의 형태, 글자의 선이나 기운, 먹의 농담으로 글자에 비백(飛白)이 지는 상태, 전체적인 글자의 구성미, 여백 등에 의해 천태만화의 운필(運筆)이 되고, 여기에 무한한 표현가능성 및 창작성이 인정될 수 있으므로, 서예가 미술저작물에 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화는 작가의 상상에 의하여 가상적인 인물들이 전개해 가는 이야기를 문자와 그림으로 서술한 창작물이다. 스토리성이 있는 만화는 언어적 저작물과 회화적 저작물의 양쪽의 성질을 겸하는 것이다.

예술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은 ‘지적, 문화적 창작’을 내포하고 있으면 족하다. 창작성이란 ‘신규성(Novelt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작자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만든 의미의 ‘독창성(Originality)’을 의미한다. 미술저작물은 완성의 여부를 묻지 않는다. 밑그림, 데생도 미술저작물이 된다. 미술사조도 묻지 않고, 예술적 가치의 고저도 따지지 않는다. 미술저작물의 창작성에는 예술적 또는 미적 가치에 관한 판단은 요구되지 않는다.

미술저작물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는 재료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재료는 종이, 면포, 나무, 돌, 도자기, 금속 등 어떠한 것이든 무방하다. 미술저작물을 만드는 기법은 목판, 부조, 동판화, 에칭 등 어느 것이라도 좋다. 서예, 즉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회화로서의 언어 예술 작품이다.

 

Ⅲ. 미술저작물의 성립요건

미술저작물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법으로 인정된다. 지식재산이라 함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에 의하여 창출되거나 발견된 지식 정보 기술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 영업이나 물건의 표시, 생물의 품종이나 유전자원, 그밖에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지식재산기본법 제1조).

지적창작물이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으려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지적재산권의 성립요건은 지적 창조물이 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을 법에서 정해 놓은 것이다.

가치의 존재 여부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다. 지적재산권의 성립요건, 저작권의 창작성이나 특허권의 진보성 등은 개방형 개념 또는 불확정 개념이다.

저작권은 출원 심사 등의 과정이 없이 저작 즉시 권리가 발생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심사 없이 등록을 할 수 있으나 이는 다른 법률적인 효과만 수반할 뿐 권리발생 자체와는 무관하다. 미술저작물은 반드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예술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으로서 저작자 나름의 창조적 개성이 표현되어 있으면,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창작성 및 저작물성이 인정된다.

창작성은 어떤 작품이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하여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본 요건이다. 창작성이란 우선 그 작품이 기존의 다른 저작물을 베끼지 않았다는 것 또는 개인적인 정신활동의 결과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작성은 독자적인 것, 즉 ‘모방하지 않은 것에 초점이 있다. 창작성은 예술성과도 구별된다.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떠한 작품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창조라 함은 기존의 요소 또는 소재의 독창적인 편성에 의한 새로운 타입의 사물이 산출에서부터 완전 무에서의 세계 그 자체의 창출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 쓰이는 용어이다. 즉,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을 의미한다.

미술저작물의 성립요건으로서의 창작성에는 예술적 가치 또는 미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러한 미적 가치는 응용미술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기 위하여 요구되는 분리가능성의 요건, 즉 실용적 요소와 미적 요소의 분리가능성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 그 판단요소들 가운데 하나로서 고려될 수 있다.

저작권법에서는 갑이 A 저작물을 먼저 창작한 경우에 을이 A 저작물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B 저작물을 창작하였음을 증명한다면, 설령 A와 B가 사실상 동일한 저작물이더라도 을은 B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받아 제한 없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회화, 서예, 조각, 판화 등 순수미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미술저작물의 경우에는 그 예술적 가치의 고저를 불문하고 창작성이 부정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나 공예, 응용미술저작물이나 삽화, 표장 등 응용미술이나 산업미술의 경우 실용성, 제품의 속성 등으로 인해 표현 방법이 제한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독창성이 있는 경우 창작성을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캐릭터라 함은 만화, 텔레비전, 영화, 신문, 잡지, 소설, 연극 등 대중이 접하는 매체를 통하여 등장하는 인물, 동물, 물건의 특성, 성격, 생김새, 명칭, 도안, 특이한 동작,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작가나 배우가 부여한 특수한 성격을 묘사한 인물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상품이나 서비스, 영업에 수반하여 고객흡인력 또는 광고효과라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캐릭터의 경우 그 인물, 동물 등의 생김새, 동작 등의 시각적 표현에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으면 원저작물과 별개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이 될 수 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Ⅳ. 미술저작자와 미술저작권자

미술저작물에 대한 저작자와 저작권자는 개념을 달리 한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저작행위가 있고, 그 저작행위의 대상인 저작물이 최소한 창작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 저작권은 인간의 정신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창작물에 대하여 인정된다.

저작자(author)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로서 저작권을 원시취득한다. 저작권자(proprietor of copyright)는 창작된 저작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는 자로서 귀속주체이다. 저작자가 되기 위하여는 저작물에서 사상 또는 감정의 창작성 있는 표현에 기여하였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한 정신적 활동에 관여하여야 한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때로부터 저작권을 원시적으로 취득하므로 원시적 권리자가 된다. 미술저작재산권은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할 수 있으므로, 원시적 권리자로부터 양도 상속 등에 의해 저작재산권을 승계취득한 자가 승계적 권리자가 된다.

저작자가 저작물을 창작한 경우에는 저작자, 저작재산권자 및 저작인격권자는 일치한다. 저작자가 저작재산권을 이전하는 경우에는 귀속주체로서 저작자 및 저작인격권자는 저작재산권자와 달라진다.

미술저작물의 원작품은 그 자체가 유체물이지만, 동시에 무체물인 미술저작물을 체현한 것이다. 소유권은 유체물을 그 객체로 하는 권리이므로 미술저작물의 원작품에 대한 소유권은 그 유체물에 대한 배타적 지배 권능에 그친다. 무체물인 미술저작물 자체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능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원작품에 대한 소유권의 양도는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저작재산권의 양도를 수반하지 않는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어느 유명 연예인의 그림대작사건 공소사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갑은 화가인 을에게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하고, 을로부터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하였음에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사실상 을이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전시하여 판매하기로 마음먹고 위와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고 피해자들에게 그림을 판매하여 그 대금 상당의 돈을 편취하였다는 것이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2인 이상이 저작물의 작성에 관여한 경우 그중에서 창작적인 표현형식 자체에 기여한 자만이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고,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기여하지 아니한 자는 비록 저작물의 작성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 또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관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저작물의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저작물의 창작행위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 누가 저작자인지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을 저작자라고 할 때 그 창작행위는 ‘사실행위’이므로 누가 저작물을 창작하였는지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다.

이는 미술저작물의 작성에 관여한 복수의 사람이 공동저작자인지 또는 작가와 조수의 관계에 있는지 아니면 저작명의인과 대작화가의 관계에 있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술저작물을 창작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에서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외부에 나타났다고 볼 것인지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본래 이를 따지는 일은 비평과 담론으로 다루어야 할 미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법 판단은 그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여 저작권 문제가 정면으로 쟁점이 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저작재산권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존속한다. 무명 또는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이명이 표시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공표된 때부터 70년간 존속한다.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을 계산하는 경우에는 저작자가 사망하거나 저작물을 창작 또는 공표한 다음 해부터 기산한다.
무명저작물이란 저작자의 성명이 표시되지 않아 누구의 저작물인지 알 수 없는 저작물을 말한다. 이명저작물이란 필명, 아호, 약칭, 예명 등 실명을 대신하여 표시된 저작물을 말한다.

 

Ⅴ. 미술저작권과 소유권의 관계

미술저작물에 대한 미술저작권과 해당 미술품에 대한 소유권의 관계가 문제 된다. 소유권과 저작권은 별개의 개념으로 저작물의 소유자라고 하여 그 저작권까지 취득하는 것이 아니고, 저작물이 양도되었다고 하여 그에 대한 저작재산권까지 당연히 양도되는 것도 아니다.

미술저작물의 감상을 위해서는 원작품을 예술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원작품의 소유권이 중심적 기능을 하게 된다.

양도 등의 사유로 저작자와 유체물인 원작품의 소유자가 달라지는 경우에 양쪽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저작권자가 가지는 전시권을 비롯한 저작재산권과 원작품의 소유자가 가지는 소유권의 충돌, 개방된 장소에 항상 전시되어 있는 미술저작물의 복제 및 그 이용행위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 등 저작재산권과 공중의 이익 간의 조화, 초상화나 인물사진 저작물 등의 경우에 저작자와 위탁자 사이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조율하여야 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미술저작물의 원작품은 그 자체가 유체물이지만, 동시에 무체물인 미술저작물을 체현한 것이다. 소유권은 유체물을 그 객체로 하는 권리이므로, 미술저작물의 원작품에 대한 소유권은 그 유체물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 권능에 그치고, 무체물인 미술저작물 자체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능은 아니다. 원작품에 대한 소유권의 양도는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저작재산권의 양도를 수반하지 않는다.

 

Ⅵ. 응용미술저작물

응용미술저작물이란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로서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산업상 대량생산에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여 창작된 응용미술품은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

응용미술(applied art)은 순수미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실용물품에 응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을 의미한다. 응용미술 작품에는 ① 미술공예품, 장신구 등 실용품 자체인 것, ② 가구에 장식된 조각 등 실용품과 결합된 것, ③ 일용품의 금형 등 양산되는 실용품의 금형으로 사용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④ 염직도안 등 실용품의 무늬로 이용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있다.

응용미술작품은 그 미적인 요소가 그 실용적인 기능성과 물리적 또는 개념적으로 분리 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저작물로서 보호될 수 있다. 물리적 또는 개념적인 분리가능성(seperability)을 판단함에 있어 평면적인, 즉 2차원적인 회화나 도화는 직물, 벽지, 용기와 같은 실용품에 인쇄되거나 이용되어도 회화나 도화로서 인식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저작물성이 인정된다.

현행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미술저작물로서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독자성이란 미술저작물에 해당할 만한 미적 표현이 대량생산되는 실용품에 사용된 경우에 그 실용품의 기능적 측면과 물리적 또는 개념적으로 분리하여 인식될 수 있을 것, 즉 분리가능성을 의미한다.

응용미술저작물의 경우 기능적 저작물과 마찬가지로 구현하고자 하는 기능(아이디어)에 따라 또는 적용되는 제품에 따라 표현이 한정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 보호범위를 다소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서적의 표지·제호 디자인은 모두 이 사건 초판 4종 서적의 내용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서적 표지라는 실용적인 기능과 분리 인식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문자, 그림의 형태나 배열 등의 형식적 요소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미술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독자적인 실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 표지·제호 디자인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니다(대법원 2013. 4. 25. 선고 2012다41410 판결).

일명 ‘히딩크 넥타이’의 도안이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작권법 제2조 제11의2호에서 정한 응용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3도7572 판결).

Ⅶ. 2차적 저작물

2차적 저작물은 기존의 저작물을 토대로 하여 그것에 새로운 창작성이 가하여져 새로운 형태의 저작물이 작성된 경우, 그 새로운 저작물을 말한다.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2차적 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변형이란 미술저작물 등을 다른 형식에 의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변형은 그림을 조각으로, 조각을 그림으로, 성인용을 어린이용으로, 어린이용을 성인용으로, 소설을 만화로, 만화를 소설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2차적 저작물은 원저작물과는 별개의 저작물이므로, 어떤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이 양도되는 경우, 원저작물의 저작재산권에 관한 별도의 양도 의사표시가 없다면 원저작물이 2차적 저작물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이 2차적 저작물의 저작재산권 양도에 수반하여 당연히 함께 양도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4다5333 판결).

양수인이 취득한 2차적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에 그 2차적 저작물에 관한 2차적 저작물작성권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2차적 저작물작성권의 행사가 원저작물의 이용을 수반한다면 양수인은 원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그 원저작물에 관한 저작재산권을 함께 양수하거나 그 원저작물 이용에 관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

2차적 저작물로 보호받기 위하여는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고 이것에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가하여야 한다.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 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

패러디는 해학적인 비평 형식의 예술표현기법 또는 이러한 기법으로 작성된 저작물을 말한다. 문예작품이 한 형식으로 유명한 문예작품의 문체를 비틀거나 또는 음률을 답습하여 그 원작품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의 것으로 하여 원저작물을 재미있게 또는 풍자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패러디라고 한다.

패러디는 원자작물의 본질적인 특징이 감득될 수 있는 정도, 즉 원저작물의 창작적 표현이 사용되고 있어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될 경우에는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었다고 하더라도 2차적 저작물의 범위에 속한 경우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패러디의 경우는 지적재산권 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2차적 저작물작성권 침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Ⅷ. 미술저작인격권

미술저작권은 미술저작인격권과 미술저작재산권으로 구분된다.23) 미술저작인격권이라 함은 미술저작자가 자신의 미술저작물에 대하여 가지는 정신적 인격적 이익을 법률로써 보호 받는 권리이다.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며, 저작자의 관념적 인격적인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미술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자기의 저작물에 대하여 가지는 인격적 이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저작권법에서 규정하는 미술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 있다. 또한 저작자 사망 후 저작인격권, 저작물의 수정증감권, 명예권 등이 있다.

저작인격권(moral right)은 일신전속권으로서 그 주체의 인격에 전속하여 그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양도 이전 및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그 귀속주체가 사망함에 따라 소멸한다. 저작인격권은 타인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다만 그 본질을 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이를 대리하거나 위임할 수 있다.

저작자의 사망 후에 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저작자가 생존하였더라면 그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될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그 행위의 성질 및 정도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그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자는 자기의 저작물에 관하여 그 저작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므로 타인이 무단으로 자기의 저작물에 관한 저작자의 성명, 칭호를 변경하거나 은닉하는 것은 고의, 과실을 불문하고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된다.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자는 그의 명예와 감정에 손상을 입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치된다.

저작인격권이나 저작재산권을 이루는 개별적인 권리들은 저작인격권이나 저작재산권이라는 동일한 권리의 한 내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각 독립적인 권리로 파악하여야 하므로 위 각 권리에 기한 청구는 별개의 소송물이 된다.

갑이 국가의 의뢰로 ○○역사 내 벽면 및 기둥에 벽화를 제작·설치하였는데, 국가가 작품 설치일로부터 약 3년 만에 벽화를 철거하여 소각하였다. 국가가 벽화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철거를 결정하고 원형을 크게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한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위법한 행위이다(대법원 2015. 8. 27. 선고 2012다204587 판결).

공표권이란 자신의 저작물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권리이다.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아니할 것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저작자가 공표되지 아니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을 양도, 이용허락, 배타적 발행권의 설정 또는 출판권의 설정을 한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게 저작물의 공표를 동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저작자가 공표되지 아니한 미술저작물의 원본을 양도한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게 저작물의 원본의 전시방식에 의한 공표를 동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에 또는 저작물의 공표 매체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를 가진다.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저작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때에는 저작자가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한 바에 따라 이를 표시하여야 한다. 다만,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ㆍ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저작자는 법에서 정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변경에 대하여는 이의할 수 없다. 다만,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이란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무단히 변경, 절제, 기타 개변을 당하지 아니할 저작자의 권리로서 이는 원저작물 자체에 어떤 변경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권리라 할 것이므로, 원저작물에 변경을 가하는 것이 아니고 원저작물과 동일성의 범위를 벗어나 전혀 별개의 저작물을 창작하는 경우에는 비록 그 제호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원저작물에 대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서울민사지방법원 1991. 4. 26. 선고 90카98799 판결).

저작물에 대한 출판계약을 체결한 저작자가 저작물의 변경에 대하여 동의하였는지 여부 및 동의의 범위는 출판계약의 성질·체결 경위·내용, 계약 당사자들의 지위와 상호관계, 출판의 목적, 출판물의 이용실태, 저작물의 성격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지는데, 저작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한 범위 내에서 저작물을 변경한 경우에는 저작자의 위와 같은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대법원 2013. 4. 26. 선고 2010다79923 판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초상권은 인격권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초상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16280 판결).

 

Ⅸ. 미술저작재산권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이용형태에 따라 각종의 저작재산권을 저작권자에게 인정한다. 이러한 저작재산권(copyright)에는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배포권, 대여권, 전시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 등이 있다.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복제할 권리를 가진다. ‘복제’는 인쇄ㆍ사진촬영ㆍ복사ㆍ녹음ㆍ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회화나 조각을 사진촬영하는 것도 복제에 해당한다. 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스스로 복제할 수도 있고, 타인으로 하여금 복제를 하도록 허락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

저작자의 배포권이란 저작물을 원본이나 복제물의 형태로 공중을 대상으로 하여 유상이나 무상으로 양도 또는 대여하는 것을 말한다. 미술저작물을 인터넷을 통해 감상하도록 하는 경우는 전시가 아니라 전송으로 보아야 한다.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미술저작물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를 복제하여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저작권법 제35조 제2항). ① 건축물을 건축물로 복제하는 경우, ② 조각 또는 회화를 조각 또는 회화로 복제하는 경우, ③ 개방된 장소 등에 항시 전시하기 위하여 복제하는 경우, ④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는 경우

전시를 하는 자 또는 미술저작물등의 원본을 판매하고자 하는 자는 그 저작물의 해설이나 소개를 목적으로 하는 목록 형태의 책자에 이를 복제하여 배포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35조 제3항). 위탁에 의한 초상화 또는 이와 유사한 사진저작물의 경우에는 위탁자의 동의가 없는 때에는 이를 이용할 수 없다(저작권법 제35조 제4항).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원저작자의 이름으로 무단히 복제하면 복제권의 침해가 되는 것이고, 이 경우 저작물을 원형 그대로 복제하지 아니하고 다소의 수정증감이나 변경을 가하더라도 원저작물의 재제 또는 동일성이 인식되거나 감지되는 정도이면 복제로 보아야 한다.

 

Ⅹ. 미술저작물의 전시권

전시는 미술저작물의 원작품이나 그 복제물 등의 유형물을 일반인이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도록 진열하거나 게시하는 것을 말한다. ‘저작물을 이용’한다고 함은 같은 법에서 저작자의 권리로서 보호하는 복제, 전송, 전시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미술저작물의 원본의 소유자나 그의 동의를 얻은 자는 그 저작물을 원본에 의하여 전시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35조 제1항 본문). 다만, 가로ㆍ공원ㆍ건축물의 외벽 그 밖에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저작권법 제35조 제1항 단서).

저작자는 미술저작물 등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전시할 권리를 가진다. 전시권은 미술저작물의 공표 여부를 가리지 않고, 원본이든 복제물이든 인정된다. 원본 즉 원작품(original work)이란 저작자의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저작물이 화체되어 있는 유체물을 말하며, 그 복제물이 아닌 것을 말한다. 원본은 한 개일 경우가 많으나, 주형에 의하여 제작된 조각 작품이나 판화와 같이 저작자에 의하여 다수 제작되고, 저작자가 원본 인정의 의사를 나타내는 서명이나 한정 번호 등의 일정한 표시를 한 경우 그 저작물은 원본에 해당한다.

미술저작물은 일품제작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저작물은 그 표현이 화체된 유체물이 주된 거래의 대상이 되며, 그 유체물을 공중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전시’라는 이용형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시는 공중에게 저작물을 공개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서 공표의 한 형태를 말한다. 미술저작물을 전시한다는 것은 공중이 출입이 가능한 장소에 이들 저작물을 공개하는 것을 말하고, 가정과 같은 사적 공간에 미술저작물을 걸어두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집 거실에 미술저작물을 전시하는 경우에는 그 저작물의 저작자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저작권법 제11조 제3항 및 제19조는 ‘전시권’의 보호대상인 저작물을 ‘미술저작물·건축저작물 또는 사진저작물’에 한정하여 열거하고 있다. 미술저작물 등 외의 저작물은 전시의 방법으로는 그 저작재산권이 침해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도4468 판결).

그림에 대하여 위작인가, 진품인가 하는 시비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수근 화백이 그린, 유화 ‘빨래터’에 대한 시비는 한국미술품평가원이 진작 판정을 내림으로써 종식되었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그림은 위작 판정이 났다. 천경자의 ‘미인도’에 대한 진품 여부의 논쟁도 있었다.

미술품감정은 안목감정과 과학감정의 형식으로 나뉘고, 시가감정과 가치감정 등의 방식이 있다. 안목감정은 자료적인 근거가 미흡하고 과학감정의 경우 시료채취와 비교자료 분석 재료가 거의 없는 것이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지식재산 가치평가는 다양하고 전문적인 특수 자산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해당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이 관여가 필요하다.

미술품에 대한 가치평가를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전문기관에 의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Ⅺ. 미술저작권의 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미술저작권의 침해는 원저작물을 저작자의 동의 없이 복제, 배포, 전시 등을 하는 행위뿐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합의는 있었지만, 미술저작권자의 승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포함한다.

저작권법에서 인정되는 배타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저작자의 허락 없이 미공표의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저작자의 성명 또는 이명표시를 변경 삭제하거나,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호의 동일성을 변경하는 행위는 미술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행위는 저작인격권의 침해로 본다.

저작자의 허락 없이 미술저작물을 복제, 전시, 배포하는 경우에는 미술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저작권침해소송에서 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의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권리자는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침해자에 의한 이용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양자의 미술저작물 등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복제권이나 2차적 저작물작성권의 침해가 성립되기 위하여는 대비 대상이 되는 저작물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거관계는 기존의 저작물에 대한 접근가능성 및 대상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이 인정되면 추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8984 판결 등 참조).

미술저작권을 가지는 사람은 고의 또는 과실로 미술저작권을 침해하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정지를 청구할 수 있으며, 그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예방 또는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저작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물건을 그 사실을 알고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하는 행위는 저작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로 본다.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 보아야 하고, 표현형식이 아닌 사상이나 감정 그 자체에 독창성·신규성이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도291 판결).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새로운 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참조).

저작재산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저작인격권 및 실연자의 인격권을 제외한다)를 가진 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권리를 침해한 자에 대하여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를 침해한 자가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이익을 받은 때에는 그 이익의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추정한다.

저작재산권자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 권리를 침해한 자에게 그 침해행위로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상응하는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93조 제2항에 따라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상당하는 액’이라 함은 침해자가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받았더라면 그 대가로서 지급하였을 객관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말한다.

저작권자가 침해행위와 유사한 형태의 저작물 이용과 관련하여 저작물 이용계약을 맺고 이용료를 받은 사례가 있는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이용계약에서 정해진 이용료를 저작권자가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보아 이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있다.

이미지 모방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련하여 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선고하였다.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참조).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 행위의 경위, 기간, 횟수, 방법 및 그 결과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그 행위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원리에 의해 성립하는 거래사회에서 현저히 불공정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계를 넘은 것으로 평가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9. 4. 선고 2013가단165410 판결).

저작재산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또는 제124조제1항에 따른 침해행위로 보는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저작권법위반의 죄에 대한 공소는 고소가 있어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① 영리를 목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제136조제1항제1호, 제136조제2항제3호 및 제4호(제124조제1항제3호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처벌하지 못한다)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② 제136조제2항제2호 및 제3호의2부터 제3호의7까지, 제137조제1항제1호부터 제4호까지, 제6호 및 제7호와 제138조제5호의 경우.

설계지원 컴퓨터프로그램 무단 복제 판매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공소외 주식회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건축·구조분야의 설계지원 오토캐드용 3rd party 프로그램 ‘엘콘플랜’ 중에서 리습(LISP) 파일, 건축용 심볼 및 라이브러리 프로그램, 고딕선복체1·고딕선복체2·고딕단선체 등의 폰트파일을 복제하고, 그 외의 프로그램을 더해 응용, 개발한 설계지원 오토캐드용 3rd party 프로그램 ‘InerCAD’를 CD로 제작한 후 불상의 구매자들에게 개당 50만원을 받고, 합계 6,650만원 상당을 판매, 배포함으로써 프로그램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12. 30. 선고 2009고정1618 판결).

 

Ⅻ. 글을 맺으며

사회 문화적 창작은 보호를 통해서도 확대되지만, 참고(reference)와 모방(imitation)을 통해서도 활발해질 수 있다. 때문에 미술저작권의 문제도 이러한 저작자의 개별권의 보호와 사회 전체의 공익의 보호라는 두 이념과 가치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미술저작권과 관련해서는 미술작품의 복제 및 작품의 창작요소에 대한 보호와 작품의 발표 이후에 나타나는 다양한 창작자의 권리가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 현대사회에서는 디자인이나 사진, 응용미술 분야에서 미술저작권은 다른 지식재산권과 혼합되어 법적 분쟁의 소지가 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은 외국에 비해 영세한 편이고, 시장 및 유통구조에 있어서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 미술저작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나 개념 정립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번에 미술저작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다른 저작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료가 매우 적었다. 저작권법에 관한 해설서도 마찬가지다. 저작권 일반에 관한 설명만 하고 있을 뿐, 미술저작권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을 아주 빈약한 편이다. 대법원판례도 미술저작권에 대한 것은 많지 않다. 사실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미술저작물의 범위도 점차 넓혀질 것이고, 미술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많아질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에 대한 미술저작권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타인의 미술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글. 김주덕 Kim, Choodeok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

김주덕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대구지검 특별수사부, 대전지검 특별수사부장, 제천지청장,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장, 대검찰청 환경과장, 법무부 검찰국 검사,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8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cdla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