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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대학원을 살리고, 5년제 인증과 실무수련 비율을 연계해야 한다

We need to establish 4+2 graduate school and connect 5-year certification with practical training rate

건축대학이 독립되고, 1년 등록금을 더 내는 5년제 학부과정이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5년제 건축대학 인증제 도입 당시의 기사를 보면, 글로벌 경제에서 건축사의 전문성 인증을 위한 교육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건축사 자격의 국제적 상호 인정을 위한 학교 시스템의 교육 강화 차원에서 4년이었던 학부제도가 1년 더 연장됐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 시험제도 역시 연동(예비시험 폐지)되었다.
5년제 인증제도는 건축사 예비시험 폐지와 연관이 있다. 실무수련의 기간도 마찬가지다. 약 18년의 시차를 두고 2020년부터 건축사 예비시험이 폐지되었고, 예비시험 합격자는 2026년까지 건축사(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2026년 이후 건축사시험 응시 자격은 5년제 인증 건축대학을 졸업한 자에게만 부여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20여 년 전 예측과 달리 전혀 다른 양상과 결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상당수 대학에서 석사 입학자가 점차 줄어들면서 대학의 연구기능이 약화되었다. 물론 교수들의 임용 비율이 높아져서 교수 개개인의 연구 실적과 압박으로 대체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계속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어떤 학문보다 산업계와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하는 건축 관련 학문의 특성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5년제 인증이 과연 건축계에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수년 전부터 대학에서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고, 현장에서는 인력 구조 시스템의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 20년간 대학과 학생 수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제로 늘어난 교육과정을 통해서 실무수련을 해야 하는 예비건축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 않다. 통상 5년제 졸업생의 실무수련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대다수 학생들은 실무수련을 포기하고 있다.
노동 조건의 변화와 법적 근로 환경 강제 개선이 명문화된 현재, 적어도 건축사사무소의 근로 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급여 조건이나 기타 업무환경 역시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5년제 건축대학의 실무수련 비율이 좀처럼 상승하고 있지 않다. 책임과 업무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음에도 전문 인력의 수급 구조가 완전히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건축인들이 비교하는 의료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국민을 일대일로 상대하는 의료계의 경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의과대학 정원은 3,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의과대학은 학년별 유급률이 1~10% 선으로 졸업이 쉽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친 의사시험 합격률은 90%를 상회하고, 전문의 합격률은 95% 선이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언급한 이유는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달리 건축계는 대학과 산업계의 연계 프로그램과 계획이 전무하며, 의료계의 정원제한과 유급 등의 시스템을 논외로 한 채 의사 합격비율만 언급하며 건축계와 비교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더구나 의료계는 간호사와 의사라는 이원화된 업무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조원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제한된 대상을 상대하는 건축사를 의사와 비교하면, 건축계는 업무구조의 이원화와 5년제 인증과 실무수련 비율의 연계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5년제 인증 대학 축소와 4+2년제 대학 확대를 연동시킬 필요도 있다.
지금이라도 건축사 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개혁과 개선이 필요하다. 더 늦으면 지난 20년간 다듬어온 제도가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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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 꽃이 좋다.”

I love the flowers that are back.

길쭉청년 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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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적 공정성·익명성만으론 그저 그런 보통 건축물만…공공건축 품격 구현 힘들어”_함인선

“Only with nominal fairness · anonymity,
just ordinary buildings but not enough to realize the dignity of public architecture”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Hahm, Insun 건축사

월간 <건축사>가 지난 3월 21일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의무가입 시대를 맞아 건축사 윤리 확립을 위한 윤리강령 제정, 신뢰 기반의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 도입 및 건축 인허가 제도에 대한 평소 생각을 전했다. 또 건축계가 의무가입 건축사법 시행과 새 정부 출범 등 변화의 시기를 겪는 상황에서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으며,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대해선 명목적 공정성에 집착하기보다 심사위원 재량을 강화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확실히 묻는 ‘신뢰 기반 심사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현행 건축심의 관련 건축물의 성능과 디자인에 관련된 사항은 건축사 재량에 맡기고 공공성에 대한 것을 심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함인선 총괄건축가의 저서로는 ‘구조의 구조’,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등이 있다.

 

# 의무가입 건축사법 통과, 새 정부 출범 등 변화 시기
좋은 건축 위해서는 건축사 사회적 신뢰 제고 필요
건축사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윤리의식 갖춰야

홍성용_지난 1월 의무가입 건축사법이 통과된 데다 5월에는 새 정부도 출범해 올해 하반기 건축계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중요한 시기 건축계에 주로 논의되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함께 대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나눌 주제는 ▲건축사 윤리강령과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 공정성 ▲지구단위계획 문제점 개선 방향 ▲건축사 책임에 의한 인·허가제도 도입에 대해서입니다.

함인선_세 가지 문제 모두 현 시기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서로 맥이 닿아있는 문제입니다. 또 건축사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홍성용_먼저 새 건축사 윤리강령부터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함인선_우리 건축사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윤리 의식을 갖추는 것이 이번 의무가입 법제화 취지를 이루는 시작점입니다.

바뀐 건축사법은 건축사 업무 수행을 위한 자격 등록 시 ‘건축사 윤리선언’을 하도록 규정하며, 건축사협회가 회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직업윤리에 관한 ‘윤리규정’을 국토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제정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 윤리선언, 윤리규정에 대응하여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건축사협회 자체의 ‘윤리강령’입니다. 강령 조문과 더불어 조항마다 구체적으로 세칙을 마련하고 이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한 각종 장치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의무가입제가 도입된 것은 그만큼 건축물의 안전과 성능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건축사 자체적인 규율을 통해 이루어내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 규정과 협회의 강령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건축사들 스스로 “좋은 건축과 건축사들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함인선 건축사(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_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특임교수. 저서로는 <구조의 구조>,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건축은 반역이다> 등이 있다.

# 건축 설계공모, 명목적 공정성에만 집착…정작 본래 취지 못 살려
심사위원 재량에 맡기고 책임 묻는 ‘신뢰 기반 방식’ 도입 필요

홍성용_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에 관한 이야기도 계속해서 회자됩니다.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가 경쟁을 통해 우수한 건축물을 선정하는 선진적 제도임에도 공공건축의 품격을 실현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함인선_동의합니다. 실제 설계공모를 거친 공공건축물이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동아일보가 건축 전문 월간 ‘SPACE’와 함께 건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지어진 현대건축물 가운데 최고와 최악의 건축물을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잘 지은 건축물 10곳 중에 포함된 공공건축물은 하나인 반면 최악의 건축물 10곳 중 8곳이 공공건축물이었습니다.

‘명목적 공정성’과 익명성에 집착해 온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이 주최하는 설계공모이다 보니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모두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함 보다는 무난함, 실험적이기보다는 경제적, 효율적인 것들이 뽑힙니다. 더 나아가 뽑히기 위해 알아서 무난하게 만드는 경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그저 그런 공공건축물들이겠지요.

심사위원 명단을 사전 공개하는 제도에 이어 작년에는 심사위원을 모집 후 추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영위원회에서 추천을 통해 구성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위원 선정부터 결과 발표까지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절차를 만들어 놓아도 한계는 존재합니다.

종전까지는 사전 접촉이 가져올 폐해를 고려해 심사위원을 공개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로비가 없었나요? 현실은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건축사사무소가 맨 먼저 명단을 입수하게 돼 규모가 작은 사무소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 명단을 언제 공개하느냐가 아니라 심사를 맡은 위원들이 어떤 원칙으로 심사에 임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명단이 미리 공개되든 나중에 공개되든 위원들이 심사에서 사적인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자신의 건축철학에 따라 평가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독일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어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임승차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불시에 사복 검표원이 표 검사를 했을 때 무임승차한 것이 발각되면 60유로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이같이 믿되 신뢰를 저버리면 가혹한 대가가 따르는 방식을 ‘신용기반형’이라 합니다.

같은 원리로 저는 모든 것을 다 공개하고 권위·역량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해 그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주는 대신, 심사 결과에 책임지게 하는 신뢰 기반형 심사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프랑스의 콩쿠르 상처럼 종신심사위원제도 좋습니다. 자신의 평생 명예가 달려 있고, 만약 잘못된 심사를 한다면 독일 지하철에서 무임승차하다 걸린 것처럼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들이 모두 무너지는 데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심사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심사라는 말이 어불성설입니다. 정량평가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사를 맡은 이들이 자신의 건축 소신에 따라 주관적으로 평가를 하되 그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지게 하는 것이 품격 있는 공공건축물 구현이라는 공공건축 설계공모 본연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한을 주고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여러 절차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편익 차원에서도 더 낫습니다.

덧붙여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됐든 건축공간연구원이 됐든 전문기관이 주도해서 (가칭)공공건축심사센터를 만들어서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를 전담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건축물 성능과 디자인, 건축사 재량에 맡기고
건축심의는 건축물의 공공성 관련에 한정해야

홍성용_신뢰 기반 방식으로서의 개선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건축사 책임 하의 건축 인허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이 주제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건축 관련 법령에 저촉되는 지 여부를 판단하느라 허가 과정도 너무 오래 걸리고 행정력 낭비도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함인선_건축허가 패러다임은 영미법과 대륙법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영미법에서는 시시콜콜한 네거티브 규제가 없지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의 건축 허가란 그 지역 주민 등 당사자들과 정책담당자 문화재 관리 담당자 등이 모여서 논의한 후에 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의가 되면 그 자체가 ‘허가’입니다. 재량주의라고 하지요. 이에 반해 대륙법 계통인 우리나라는 법 기속주의를 택합니다. 그렇다 보니 법에 모든 것을 다 넣어야 합니다. 법이 두꺼워지고 그마저도 다 담아내지 못하니 건축심의까지 해야 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사실 심의를 통해 건축을 제한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건축은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고 심의는 어디까지니 자문, 권고입니다. 개성적인 건축물이 많이 나오려면 법에 모든 것을 규정하는 현재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법체계를 영미법식으로 전면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요.

이의 대안이 건축물의 성능과 디자인에 관련한 사항과 건축물의 공공성에 대한 사항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건축물의 성능에 대한 것은 건축사의 재량으로 인정하고 건축물의 공공성에 관련된 것은 심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현재 시시콜콜한 건축법령을 적용하느라 허가 기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허가제를, 건축사가 해당 도서를 작성하고 이를 당국에 등록하고 확인 받는 도서확인제로 변경하고 재료를 잘못 써서 화재가 났다든지 하면 건축사가 책임지게 하면 됩니다.

정리하면 건축물의 미관 혹은 성능은 건축사들의 자율적인 능력에 따라 책임지게 하고 도시건축 전체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공공영역에서의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건축물 설계 과정의 결함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건축사들이 사법적, 금전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하는 프로세스가 마련돼야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건축사윤리위원회를 통해 건축사 자격 박탈이나 정지 조치를 취하고, 공제조합이나 직능보험 등을 통해 건축사업계 차원에서 금전적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절차가 확립돼야 합니다.

홍성용_의사나 변호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에 비해 건축사가 갖는 사회적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문자격사로서의 건축사 위상을 확실히 세워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요?

함인선_건축사는 의사, 변호사와 함께 예부터 활약한 3대 고전적 전문자격사(proffession)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건축사로서 자격을 어떻게 보호·보전할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변호사가 자신의 업역을 어떻게 지키는지 파악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와 변호사의 경우, 의료행위와 변호행위가 무엇인지 확실히 규정돼 있으며 다른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거나 변호행위를 하면 처벌받게 됩니다. 그런데 건축설계의 경우 건축설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건축설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건축사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건축설계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듭니다. 이 경계를 제대로 세우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 기존 지구단위계획, 지역 특성 못 담고 천편일률적
지역 따라 제한 많을 수 있어, 문제는 사전 합의가 없다는 것
사회적 합의 거쳐 지역 맥락과 미래 담은 계획 나와야

홍성용_다음으로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볼까 합니다. 지구단위계획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기존 지구단위계획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건축사가 설계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제한규정만 만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함인선_맞습니다. 지구단위계획의 경직성이 큰 문제입니다. 지역에 따라 제한사항이 많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로나 인사동 등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그 맥락에 따라 여러 제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단위 계획은 차등적인 규제라기보다는 일률규제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에는 너무 느슨하고 어는 곳에서는 과잉 규제가 됩니다.

지구단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주민들의 합의 과정은 요식적으로 넘어가고 관과 전문가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역사적 배경과 전통적 가치에 따라서 이러한 방향에 따라 지구단위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민들에 의한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은 대개 요식적이고 다른 지역의 계획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사례가 많습니다. 선진국들의 경우는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지역 별로 필요할 경우 자세하게 여러 사항을 규정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건축사들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포괄적 규정을 만듭니다. 어떤 곳에는 형태 기반 규정(Form Base Code)이라고 해서 건폐율과 용적률은 물론 건축물의 형태, 블록 내 오픈스페이스까지 정해 놓기도 하지요.

생각해 보면 지구단위계획 작성에는 실제 그 지역에 건축물을 설계할 건축사들이 중심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 건축법에 ‘도시설계(지구단위계획)’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고 이 사항이 건축법에 규정되자 당시 건축사들이 왜 이 사항을 건축법에 규정하느냐고 반대 목소리를 냈거든요.

돌아보면 안타까운데, 당시에는 많은 건축사들이 도시설계와 도시계획이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구단위계획을 토목 전공자들이 규모에 따른 정량적 기준에 따라 계획을 짜게 됐고, 엄밀히 말해 토지이용계획이 약간 발전한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곳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고 현재와 미래에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며 그 역할을 잘 담당하기 위한 건축물 설계는 어떠해야 한다는 고민 없이 세워진 지구단위계획이 많습니다.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함께 합의한 계획에 따라 그에 걸맞은 건축을 하고, 만약 사정에 따라 계획에 예외나 수정이 필요할 경우가 생기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추가 협의를 거치면 시간 낭비도 없고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서정필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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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계약’이 만든 책의 도시 여정 담은 영화 4월 21일 개봉 “좋은 공간이 가진 힘과 가치 알리고 싶어”_김종신·정다운 감독

The movie featuring a city journey of the book published by ‘Great Contract’ will be released on April 21
“We want to show the power and value of a good space”

김종신·정다운 감독 Kim, Jongshin·Jung, Dawoon 기린그림 영화사 공동대표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감독: 김종신·정다운, 출연: 이기웅·승효상·김언호·민현식·이건복·김영준·이은, 기획/제작: 기린그림, 배급/투자: (주)영화사 진진, 개봉: 2022년 4월 21일.

세계 유일 책을 위한 도시이자 생태·예술이 어우러진 파주출판도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도시·건축 다큐멘터리가 4월 21일 개봉한다.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예술공헌상을 수상한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얘기다.
이 다큐를 만든 기린그림의 김종신·정다운 감독은 앞서 <한국 현대건축의 오늘(2016)>, <한국 현대건축의 오늘: 집(2017)>과 <이타미 준의 바다(2019)>를 통해 건축과 삶, 예술혼을 영상으로 복원해 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개봉까지 꼬박 8년이 걸린 작품이다.
경기 파주시 문발동 소재 국가문화산업단지인 파주출판도시는 민주화 이전 출판이 탄압받던 시절부터 출판인들이 꿈꾸던 책을 위한 도시다. 출판사들과 더불어 새로운 철학과 가치를 담은 이상적 공간, 즉 새로운 도시를 그리던 건축사들이 ‘위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실현됐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파주의 늪지는 특색 있는 건축물과 만나 심학산과 한강의 탁월한 낙조 경관을 자랑하며 세계에서 유일한, 책을 위한 생태도시가 됐다. 편집·인쇄·유통 출판 관련 인프라를 집약한 도시는 이후 영화제작사를 비롯한 영상 관련 업체들과 IT 업체들이 입주하며 종합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한다. 2019년 파주출판도시 기획 30주년을 기념해 도시의 발자취를 담기 위해 시작된 영화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큰 축에서 진행되며 찬란한 도시의 여정을 그린다. 그러면서 건축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김종신 · 정다운 감독_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감독은 건축 영상 전문 영화사 ‘기린그림’을 설립, 건축 다큐멘터리, 건축 전시영상, 건축 아카이브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축영화 제작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제1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건축문화공헌상을 받기도 했다.

# 세상 어디에도 없던, 책을 위한 생태도시를 꿈꾼 ‘위대한 계약’
민간인들이 주도해 만든 파주출판도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홍성용_먼저 간략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다운_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는 파주출판도시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처음 시작부터 출판인들과 아키텍트그룹이 어떻게 뜻을 같이 하고 어떤 가치를 향해서 이 도시를 만들어냈는지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 파주출판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무엇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까지 파주출판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홍성용_감독님들께서 혹 건축이나 도시에 대해 따로 공부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종신_따로 건축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고 둘 다 영화 전공입니다. 저희 부부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시나리오가 있는 극영화 현장에서 만났는데, 영국에 같이 공부하러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다운 감독은 캠브리지대학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영상을 접목시킨 ‘건축과 영상’이라는 영화 속 건축을 분석하거나 공간을 어떻게 영상으로 담을지 연구하고 심지어는 가상의, 게임 공간 등을 공부하기도 하는 그런 코스에서 석사과정을 했고요. 저는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영화연출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거죠.

홍성용_이 영화를 찍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3자의 시각에서 파주출판도시가 어떻게 보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종신_영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권유해서 뭔지도 모르고 파주로 가서 만난 분들이 출판 쪽의 이기웅 열화당 대표님과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님입니다. 2008년도에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있었는데, 한국관 주제가 파주출판도시였고 관련된 국내외 많은 건축인 분들의 인터뷰 촬영을 하게 된 거죠. 그 기록과정을 통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다운_그러던 차에, 2018년에 명필름의 이은 대표님, 그러니까 파주출판문화정보사업단지 사업협동조합(파주출판도시조합) 이사장님께서 곧 파주출판도시가 기획된 지 30주년(2019)이 되니 기념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주셨어요.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도 만들어 봤으니, 그런 작업을 하는 줄 알고 연락을 주신 거죠.

김종신_어떻게 보면 국가산업단지들이 있는 상황에서 출판인과 건축인들이 모여서, 그러니까 민간인들이 직접 주도해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꾼 거죠. 파주출판도시가 생기기 전엔 꽤 이름 있는 출판사여도 공간이 협소하고 허름했던 때니까요. 난개발이 이뤄지던 시대라 과정이 더 고통스러웠죠. 그런 상황에서도 출판인들과 건축인들이 만나서 이 도시를 꿈꿨고, 그게 실제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저희에겐 너무 놀랍더라구요. 또 그냥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 40여 년 전 군부독재 시절 존재하지 않았던 출판의 자유
‘책을 위한 공간’을 위한 상상, 1998년 현실이 되다!
도시와 건축, 출판, 한국 현대사를 고루 담아낸 다큐멘터리

홍성용_도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노력에 영화의 포커스(초점)가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도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신_처음부터 저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한국의 현대사와 맞물려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출판인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이른바 금서를 만들면 구속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러던 출판인들의 꿈이 건축사들과의 위대한 계약을 통해 1998년에 현실로 이뤄졌고요. 한국 현대사와도 맞물려 보이는 그런 부분을 좀 전달하고 싶었어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이런 특별한 도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노력과 결국 어떤 도시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속 균형을 맞추려 했습니다.

홍성용_제작은 자체적으로 하신 건가요?

김종신_저희가 ‘기린그림’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는 기린그림과 파주출판도시조합 공동제작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100분짜리 홍보영상을 만들 이유는 없기에 시작부터 조합 측에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들어가야 하고 그런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은 대표님께서 흔쾌히 오케이 하셨죠.

 

# 세계 어디에도 없던 책을 위한 도시 프로젝트!
책과 사람을 위한 약속, 위험한 계약이라고도 불렸던 ‘위대한 계약’…
도시의 탄생부터 지켜오고 꿈꿨던 가치에 초점 둬 제작

홍성용_어떤 비판적 시각이 담겼는지, 두 분께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신_돌이켜보면 건물 하나하나, 도시 자체는 굉장히 조화롭다고 평가받지만 출판인들이 원했던 공간은 아닐 수 있었던 거예요. 출판인들은 건축인분들께 모든 것을 맡긴 거죠. 그래서 제목이 ‘위대한 계약’이에요. 위험한 계약이라고도 불렸던……. 서로를 믿고 진행했던 거죠. 그 과정에서 출판인들이 원했던 공간구조 같은 부분에서 실제로 효율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거죠. 이 부분에 대한 출판사 측 불만이 영화에 담겼지만 크게 비판적으로 다룬 건 아닙니다. 파주출판도시 1단계 건축코디네이터를 역임하신 민현식 건축사님께서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공간으로도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홍성용_당시는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사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화국도 1960~1970년대에 어마어마한 기계가 공간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캐비닛 하나 만큼의 공간으로 그 기능이 커버돼서 나머지 공간은 필요가 없거든요. 출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출판인들이 1990년대에 원했던 세팅을 딱 해놨으면 지금 혹은 앞으로도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다운_맞아요. 그리고 분명히 한계라는 게 있어요. 사실 파주출판도시가 밖에서 비판받을 포인트도 명확히 있고요. 그 베이스로 들어가면, 산업단지에서 출발하기에 갖는 어쩔 수 없는 제한조건이 있었던 거죠. 맨 처음 들어갔을 때 도로 계획이 다 나와 있어서 구획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국가에서 지정해 준 그런 세팅이 일단 있고요. 그 다음에 산업단지가 갖는 제한지점 중에 도시로 가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살면 안 된다는 조건. 공장이어야지 사람이 살면 안 된다는, 도시개념하고 가장 정반대에 있는 경직된 조건이요.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데….
또 역사부터 미래까지 다루고 있기에 사실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우리가 어떤 포인트에 집중해야 할까 하는 선택의 순간이 사실 있었고요. 그렇다면 비판적인 측면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여러 어려운 지점이 있으니 우리는 그들이 이 가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전체적으로 한 도시에서 조화로운 공동성에 가치를 갖고 자신들이 세운 그 가치 안에서 건축 쪽으로든 혹은 전반적인 도시에 대한 개념으로든 어떤 식으로 그들이 뭉쳐서 노력했는지에 대한, 열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명확한 비판보다는 파주출판도시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파주는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미래세대를 위해 더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1980~1990년 난개발시대에 생태도시로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개인적 이익이 더 돌아오지 않더라도, 유수지를 메워서 땅값을 낮추기보다는 이 샛강을 살리자는 그 신념을 힘들게 초지일관 지킨 점들이요.

 

# 버려진 늪지와 같던 도시…사람과 자연,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진
종합문화예술도시이자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문화허브로 자리매김

홍성용_저는 에코라는 테마가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아 저렴한 땅이었기에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산업단지(산단)가 되면 정부 지원도 있고요. 헤이리나 파주의 경우는 우아하고 은밀한 자본주의 비즈니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종신_맞습니다. 전엔 버려진 늪지 같은 곳이었죠. 현재는 우리나라의 도시, 공간 같은 굉장히 여러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복합적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주거를 포함해 24시간 사람이 돌아다니고 그 곳에서 숨 쉬고 해야 도시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또 소위 배드타운이라 부르는, 외곽지역에 아파트만 쭉 있는 그런 곳을 과연 좋은 도시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보면 파주출판도시가 그래도 어떤 조화로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신도시의 상가건물에서 쪼르륵 붙어 있는 놀라운 간판의 향연들… 그 정신없음에 익숙해졌다가 파주에 가면 15미터 고도 제한으로 건축물 사이즈가 통일돼 있어서 담이 없고 하늘도 탁 트여 있는데다가, 땅을 조금씩 양보해서 골목길을 낸 모습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정다운_바글바글한 도심 안에서 역동적으로 사업이 움직이는 것도 많지만, 책을 만드는 분들이 어느 공간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책을 위해 생각을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또 다른 개념으로 이런 공간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아티스트(예술가) 그룹들도 파주에 많이 입주를 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섬처럼 자기들만의 도시 같은 느낌이 강해서 아쉽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파주가 더 알려지고 확장되는데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홍성용_도시를 의인화해보면 너무 모범생 같은, 재미없는 느낌 아닌가요?

정다운_어떻게 보면 아직은 딱 거기까지만 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죠. 모범생이 있으면 조금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도 있고, 그런 다양성이 있어야지 더 도시다울 텐데, 그런 여러 가지 캐릭터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2단계에서는 조금 다른, 영상이나 IT 회사들을 유치하고자 많이 노력했던 것 같고, 그렇게 확장됐어요.

홍성용_홍대 앞에 출판사만 400여 개 정도가 있는 것 같은데, 홍대나 합정역에서도 30여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잖아요. 영화에서 이런 내용도 다뤄지고 있나요?

김종신_네, 그렇습니다. 좀 전에 언급됐던 예술가그룹과 연관된 이야기인데요. 홍대에서 합정, 망원으로 밀려난 예술가그룹이 이제는 파주로 꽤 많이들 들어가 계시고, 그게 앞으로의 3단계, 파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룬 부분입니다. 어떤 분들은 파주의 밤을 밝히고 있는 건 예술가그룹들밖에 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대형 설치 작업 같은 걸 하시는 분들이 합정동이나 망원동 골목에 큰 바위라든가 목재 같은 걸 옮기기 위해 트럭으로 대는 과정이 그자체로 너무 힘들었는데, 파주로 오니까 너무 좋다고들 하십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컷 © 영화사 진진

홍성용_그렇다면 10년 뒤의 내용을 또 찍으셔야겠네요(웃음). 그런 향후 프로젝트 계획도 있으세요?

정다운_저희도 그게 궁금해요. 그런 과정이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는지 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저희가 처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접했던 그 시기에는 전혀 없었던 움직임이었으니까요. 그때는 파주출판도시의 2단계도 진행이 안됐고, 예술가그룹도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으니까. 아티스트들이 갖는 역동적 움직임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결과론적일 수도 있지만, 결국 통일시대를 우리가 준비하자는, 문화전진기지가 되자는 그런 계획이 초반부터 있었어요.

김종신_만약 그렇게 된다면 파주는 서울시청에서부터 30킬로미터, 개성에서부터 30킬로미터인 거예요. 처음에 저희가 다큐를 찍으러 갔을 때는 도로 표지판에 문산으로 적혀있었는데 어느 순간 개성이라고 표시돼 있고. 남북관계가 한참 좋아졌을 때는 평양까지 몇 킬로미터라고 도로 표지판에 적혀있으니 저 혼자 가슴이 벅차고 흥분되더라고요.

<이타미 준의 바다(2019)>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0)> 포스터 © 영화사 진진

# 미장센으로서의 공간성에서 시작해
건축·공간, 나아가 삶의 가치에 관심

홍성용_처음 영화계에서 작업을 했을 때의 시각과 중간에 건축·도시 쪽으로 방향을 트신 때, 또 지금 성과를 내고 계신 때까지 세 단계로 구분해서 진행하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정다운_처음 영화를 시작한 초기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 했죠. 극영화에 관심이 있고, 극영화에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까 하는 부분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극영화를 만들면서 미장센으로 공간성이 워낙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미장센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간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초기 단계에 영국에서 ‘건축과 영상’을 공부한 거였는데, 그걸 처음엔 극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저희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남편(김종신 감독)의 고향인 제주도에 갔을 때인데, 마침 이타미 준의 수풍석박물관이 완성된 시기였어요. 아버님께서 “너희가 꼭 가서 봐야 할 공간이 있다”면서 보여주셨던 그 공간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거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공간이라는 것, 특히 저희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제주도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저희에겐 큰 감동이었거든요. 그 공간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 이타미 준이 당연히 일본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가 나중에 보니 재일 한국인이셨다는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이것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그런 개인적인 감동의 발로에서 시작됐죠.
이후 도시 이야기로 확장이 되면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확장된 공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라도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고요. 이야기와 영상이라는 것이 전달력이란 부분에서 힘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건축사들과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도시를 왜 만들려 했는지 같은 그 당시의 상황들이 이야기로 잘 전달되면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어떻게 보면 정말 중요한 우리 삶의 가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고 있는 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그런 단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김종신_좋은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건축·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또 생각해 보니까 편한 말로 의식주라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옷이라든가 식사 등에 대한 콘텐츠는 굉장히 많은데, 공간에 대한 콘텐츠들은 특히 많지 않은 거예요.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도 그렇고 지금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주거 문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관심을 가졌던 게 공공건축입니다. 공원, 도서관 같은 누구나 쉽게 갈수 있는 공간들이 좋아지면 공간이 전체적으로 좋아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최근 젊은 분들이 좁은 집에 살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좋은 커피숍을 가거나, 좋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잖아요. 예전에는 없는 이런 모습들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좌측부터 출판도시 건축코디네이터 승효상·민현식 건축사, 지식산업사 김경희 대표·이기웅 이사장, 건축코디네이터 플로리안 베이겔과 필립 크리스토, 한길사 김언호 대표. © 영화사 진진

# 더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대한 이야기 점진적 확대

홍성용_요즘은 다큐도 극영화처럼 만들잖아요. 앞으로도 인문학적인 주제를 테마로 계속 다루실 것 같은데, 목표가 어떻게 되시는지, 또 기회가 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으신지요?

정다운_저희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어요. 시작이 한 건축사의 건축작품들과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 다음은 도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그리고 지금은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과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가 생태나 조경, 환경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요. 그런 식으로 계속 주제를 확장하고 있어요. 공공건축에 대한 것, 종교건축, 학교, 저희가 아이들을 키우기 때문에 학교 공간의 중요성 등… 미래세대를 위해 좀 더 좋은 공간은 무엇일까 하는 저희 나름의 고민을 계속 이야기로 담으려 생각하고 있어요.

김종신_저희가 하는 작업들이 좋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족합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도 그 일환입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 많이들 하잖아요. 개개인도 그렇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주거 문제라든지… 모든 게 다 힘든 이런 때에 파주출판도시의 발자취를 통해 일전에 뜻을 합쳐서 뭔가 더 좋을 것을 함께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던 얘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습니다. 2020년 서울건축영화제의 일환으로 저희 둘과 김병윤 교수님(대전대 건축학과)이 함께 참석해 진행했던 한 시간 가량의 대담이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데요. 인터뷰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대한 계약은 그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공간에 담긴 가치와 색다른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영화이니 많은 분들이 흥미를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유튜브 채널_‘SIAFF2020 대담: 위대한 계약, 그리고 건축과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y4PkoMKN2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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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정암빌딩_성수

Architecture Criticism
Seong-su Jeong-Am Building

광나루로는 화양사거리를 기점으로 중랑천과 평행한 방향으로 각도가 바뀐다. 도로를 따라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면 좌측에 하얀색 건물을 지난다. 박스형 매스의 건물이지만 가벼움이 느껴지는 표피에 뒤돌아보게 만든다. 건축사의 ‘경쾌하다’는 표현은 정암빌딩_성수의 외관과 전체 공간 구조를 이해하는 데 적절하다. 가까이 가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하얀색 금속판넬로 만들어진 루버가 커튼월 유리면과 적절한 거리를 두어, 유리면에 루버의 그림자, 반사된 빛, 투사된 내부 공간의 복합적인 시각적 효과를 드러냄을 볼 수 있다. 한 면으로 인식되는 유리 커튼월은 루버로 인해 공간의 깊이감과 다공성(porosity)을 갖게 된다.

루버의 수직·수평 간격은, 수직 루버로 매스의 육중한 효과를 의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비교된다. 영국건축사인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유리 파사드 건물에 무게감을 주기 위해 루버를 썼다 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SPACE 609호’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루버가 촘촘한 간격으로 반복되어 마치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면, 정암빌딩_성수의 루버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차의 속도에서는 매스가 인지되지만, 천천히 걷는 보행자에게는 루버 사이사이를 통한 내·외부 시각적 교통이 자유롭다. 육중한 매스감보다는 리듬이 인지되며, 보는 각도와 보는 자의 이동 속도, 아침, 저녁의 빛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작가가 의도한 경쾌함은 이러한 하얀색 매스의 인지와, 루버 사이로 그 내·외부의 드러남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버 간격의 또 다른 이유는 부지의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부지는 광나루로 건너 중랑천을 지척에 마주하고 있다. 건물의 주된 향이 북향으로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강에 합류하기 직전 제법 넓어진 중랑천과 성동구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인 송정동 뚝방길, 한양대학교 캠퍼스, 멀리는 답십리까지 보인다.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여 마치 반도와 같은 성수동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적정한 루버 두께와 이들의 간격은 건축이 바라보기 위한 경관뿐 아니라 바라보는 경관을 위한 프레임 역할을 한다. 수직루버는 층을 단위로 한 수평루버에 종속되는데, 이는 루버의 길이를 경제적인 단위로 나눔과 동시에 지면과 도로에서 시작된 수평리듬을 수직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루버로 인한 층의 인지는 건물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커튼월의 유리 분절과 루버 간격은 엇갈리게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보이되, 시공의 합리성과 경제성을 갖는다. 외부에 부착된 루버가 갖는 주된 기능인 친환경 기능, 에너지 절약 기능 또한 잃지 않는다. 북향이지만 사무공간에서는 냉방부하가 난방부하보다 월등하게 요구되는 점을 감안할 때, 루버로 인한 그림자 효과는 여름철 냉방부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암빌딩 동측면 야경 © 박건주

정암빌딩_성수는 매스와 공간조직의 분절 또한 경쾌하다. 광나루로에 면한 임대공간과 후면 공용공간은 매스로 분절되고, 외피 재료 또한 투명한 유리와 육중한 느낌의 석재 마감으로 구분되었다. 내부에서 8.4미터 폭을 갖는 장방형의 임대공간과 4.6미터 폭의 편심 코어형은 작가가 의도한 루이스 칸의 ‘서비스 공간’과 ‘서비스를 받는 공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명확한 개념이지만, 약 485.95제곱미터(147평)의 크지 않은 건축면적에 용적률과 임대면적 최대화, 기계식 주차장, 각종 설비 공간 등의 요구 조건에서는 쉽지 않은 퍼즐게임이었음이 짐작된다. 기준층에서 시작된 명확한 공간 관계는 1층과 최상층을 제외하고 반복된다. 최상층 사무실은 중랑천 너머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여유 있게 바라보는 높이에 위치한다. 경관에 걸맞게 주변으로 옥상정원과 데크가 세심하게 만들어졌다. 추후 옥상카페나 스카이라운지로 되어 건물 사용자나 공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community space)으로 변모된다면, 글을 쓰면서 처음 가졌던 아쉬움이 경감될 것 같다.

공공공간의 개념은 특수한 조건이 아니다. 현재 정암빌딩_성수 입면에서 보이는 몇 개의 작은 발코니는 일상에서 잠시 떠나 중랑천의 반사된 빛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공유는 공간의 소유가 아닌 ‘접근이 공유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상업적인 목적을 갖는 민간 프로젝트에 공공성을 기대하는 것에 한계가 있지만, 그 해답을 최근 공유문화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셜벤처,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 공유도서관, 성동구 책마루, 공익 공간 언더스탠드 에비뉴(Understand Avenue) 등으로 공유문화의 성지에 성수동이 빠지지 않는다. 자동차정비, 인쇄소, 가죽, 제화 공장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기계소리가 가득했던 성수동은 이미 새로운 문화 공급자 역할로 재생되었다. 젊은 지식층의 유입은 성수동을 매력적으로 변모시킨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 홍대와 가로수길에서 경험한 극도의 상업화 우려도 존재한다. 건축 하나하나가 모여 마을과 도시를 이루는 과정이라면, 정암빌딩_성수의 섬세한 파사드와 경쾌한 내·외부 경관의 건축적 가치가 성수동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질문을 해본다. 앞서 언급한 루버패턴과 발코니로 인한 파사드의 다공성(porosity)이 시각적인 효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건축의 도시사회적 역할로 확장되어 주변과의 관계, 길과의 관계가 다공성을 갖고 열려 소통, 공유, 공존하는 건축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글. 김현준 Kim, Hyunjun 강원대학교 교수 · 영국건축사 ARB

김현준 교수·영국건축사 ARB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런던 AA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대림산업(주), SOM London, Tony Meadows Associates, Gensler, 경영위치에서 실무를 하였다. 현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이다. 공유와 공동체 공간을 위상학(topology)으로 접근하는 실험에 관심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은혜공동체협동조합주택(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성동책마루(대한민국공공건축상)’, ‘판교 P하우스(경기도건축문화상)’ 등이 있다.
hyunjunkim@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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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6·25전쟁 피난민의 마을, 주문진 꼬댕이 마을

Disappearing village
Jumunjin Kkodaengi Village, a village of refugees from the Korean War

꼬댕이는 꼭대기의 강원도 방언이자 주문진 등대마을의 별칭으로 이전에는 그렇게 불렸다.
주문진항 배후 언덕배기에 6·25전쟁의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서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 1·5·7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65,724제곱미터, 약 577명의 주민과 326호의 주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 워낙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다 보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출입구까지의 통로도 미로같이 좁고 복잡하게 엉켜있다. 이로 인한 주민의 열악한 삶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아직도 남아있다.
빈집들. 낡은 건물, 고령화, 낙후된 기반 시설, 2미터 미만의 좁은 도로로 인하여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화재 및 위생 등의 안전 위험에 장시간 노출되어 방치되어 있었으나 2015년 3월부터 2018년까지 주문진 등대지구 ‘새뜰마을’ 재생 사업이 진행되어 주택개량 및 안전난간 설치, 생활 인프라 개선 그리고 마을 휴먼케어 사업 등이 추진되었다. 이 사업은 올해까지 지속될 예정이지만 모든 마을 재생 사업이 그렇듯 여전히 공가는 늘어나고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재생 사업의 결과물들은 방치되고 있다.
주문진항과 대조적으로 더 이상 변화할 수 없는 새뜰마을은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공가들이 마을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동해를 내려다보는 천혜의 위치적 환경은 이미 많은 재개발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또 다른 변화된 마을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피난민의 마을도 사라질 것이다.

주문진 성황당(城隍堂)
마을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동해안 최대 규모의 성황당을 만나게 된다. 광해군 6년 1613년에 강릉 부사 정경세가 ‘진이(眞伊)’라는 여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고, 그 후에는 어촌에 안녕과 풍어가 깃들었다는 유례가 있다. 그 후 191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1954년에 개축하였다.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제는 음력 3월 9일과 9월 9일 자정에 해마다 두 번 지내고, 풍어와 안전 조업을 염원하는 풍어제는 3년에 한 번씩 음력 9월 9일에 지낸다. 제사에서 펼쳐지는 16거리 별신굿은 중요무형문화재 82호의 가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당화 벽화
낙후지역 재생 사업에 ‘프로젝트’ 형태로 조성되는 벽화는 소외된 주민들의 삶을 위로하고 낡은 마을 분위기를 전환하며 재생을 통한 마을의 이미지를 재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언덕길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의 다양한 벽화와 많은 골목길 담장과 벽체들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당화는 마을의 상징화로 마을 꼬댕이 공원에서 5월에서 7월까지 만발한 해당화를 볼 수 있는데, 가파른 골목길 끝에서 만나는 해당화 벽화는 잠시 쉬어가는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전신주 의자
꼬댕이 마을의 산비탈 골목길은 가파르고 폭이 좁아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미로 같은 길이다. 길이 너무나 좁아 옆으로 걸어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도 많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경사진 좁은 길을 걷다 잠시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돌아보면 낡고 낮은 지붕 집들 앞에 주문진항과 동해가 펼쳐진다. 정말 멋진 전경이다. 이 전경들을 바라보며 자기 삶을 위로하고 이겨냈을 것 같다.
올라가다 힘들면 잠시 앉아서 쉬도록 전신주에 설치해 놓은 의자에서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늘 골목
– 장철문

꽃그늘에 서서
하늘에 건너간 꽃가지
그늘에 서서
아득히 하늘길 다녀왔느니,
처음인 듯
이 세상 한번은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

​ 조붓한 골목 돌아
한길 나서서 돌아보느니,
차창에 옛집 스치듯
그 지붕 너머 하늘 스치듯
어느새 어스름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에 와서
그런 골목 몇채 걸어나왔느니,
이 세상에 내가 지은 집이란
그 골목 끝에 걸어둔 하늘 몇채인 것이었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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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① <장군의 수염> 1968년 이성구 감독 (원작: 1966년 이어령/ 각색: 김승옥)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 ①
<General’s Mustache> 1968 directed by Lee Seong-gu (1928~) /
Screen text by Kim Seung-ok (1941~)/ a 1966 novel by Lee O-young (1934~2022)

개괄

30여 년 전인 1990년부터 사무실에서 설계 외에 다양한 문화활동을 곁들여 왔다. 건축작품 전시회를 한다든가 세미나도 열고 서울 답사를 하는 등. 그 후 설계 일이 주춤할 때마다 드문드문 지속해 온 일은 ‘서울을 걷는다’와 ‘영화 보기’다. 그 중 영화 보기는 주로 ‘영화로 남은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했다. 종합촬영소가 활성화되기 전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리 또는 괄목할 만한 건축물이나 건물 내부에서 촬영을 했다. 무심코 보던 흑백영화에서 없어진 건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영화모임의 계기가 되었고, 상당히 많은 1950~1960년대 영화를 통해 이미 기록에서 사라진 건물들의 모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오래전 강의자료로도 활용한 대표적인 영화들은 <젊은 그들(1955, 신상옥)>, <서울의 휴일(1956, 이만희)>, <서울의 지붕 밑(1961, 이형표)> 등이다. 창덕궁 연경당에서 시작해 경복궁 경회루에서 마치는 영화 <젊은 그들(1931, 김동인 원작)>에서는 지금은 바뀐 향원정 일대의 취향교와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내부의 실내공간까지 볼 수 있고, 서울의 휴일에서는 청계천 복개 전 제 자리에 있던 수표교, 화재로 소실된 프랑스에서 설계해 온 벽수산장(도면이 남아있다), 반도호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옥 강의에 자주 사용하는 <서울의 지붕 밑>에서는 하천 복개로 사라진 현 통의동 근방의 대상한옥(帶狀韓屋: 띠 모양 한옥군) 주거지의 신구 문명이 마주하는 한 골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60년 전의 한옥을 볼 수 있다.
2021년 말에는 서울시립대 박물관 요청으로 ‘영화로 남은 60년 전 서울’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통해 1950~1960년대에 만든 걸작 중 6개의 영화를 다루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강의를 촬영하고 유튜브 편집을 한 것이 시립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 :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시민 강좌] 영화로 남은 60년 전 서울)

2022년엔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10여 개 선정해서 내 외국인이 함께 하는 월례모임을 통해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묘사되었는가를 매달 한 편씩 살펴본다. 무슨 거창한 목표나 목적은 없지만 유쾌한 시간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장군의 수염

당대 영향력 있는 분으로 살다가 얼마 전 가신 이어령(李御寧 1934. 1. 15~2022. 2. 26) 선생님도 기릴 겸 <장군의 수염(1968)>으로 시작한다.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장군(將軍)의 수염>은 1966년 잡지 『세대』에 발표된 이어령의 같은 제목 소설을 김승옥(1941~ )1)이 각색하고 이성구 감독(1928~ )이 만들어 1968년 개봉한 영화다. 어둡고 난해해서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파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삽입한 점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서울대학교 건축과 출신이자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 <홍길동(1967)> 감독 신동헌 화백(1927~2017, 만화가 신동우의 형)이다.

전직 사진기자 김철훈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에 민완 형사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그가 살아있을 때 접촉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는 중, 그와 한때 동서생활을 했던 댄서 출신 나신혜를 만난다. 대화 중 철훈이 ‘고해(告解)놀이’나 ‘추장놀이’ 등을 비롯한 비현실적인 망령된 고집에 사로잡힌 사나이였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고 아마도 그가 자살을 택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일단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 줄거리다.

<장군의 수염> 포스터 © Yang Haenam Collection

소설 속 ‘기우는 뗏목과 바다’로 묘사된 벽에 걸린 그림은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캔버스의 유화 716 x 491 cm, 낭만주의 역사화)>이 원본이다.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3~1824)가 당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1819년에 제작한 그림으로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미 파리를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2층 셋방에서 전직 사진기자인 한 남자 ‘철훈’의 연탄가스 중독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김철훈이 세 든 집과 그 동네 및 나신혜가 근무하는 M빌딩 등은 1960년대의 서울을 잘 보여준다.
“철훈은 신혜와의 동서생활(同棲生活)을 ‘표류’라고 했고 2층 셋방을 ‘캐빈(선실)’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끝없이 표류해 가는 거라고 그는 신혜에게 말했다.”
“그들은 ‘선창(서쪽 창)’에 기대어 노을이 지는 것이라든가 오물이 떠 있는 그 지저분한 바다 (市街)를 굽어보는 것으로 얼마는 만족했다.”
“연탄재, 달걀 껍데기, 말라비틀어진 쥐의 시체, 쓰레기들-좁고, 질고, 어두운 골목길을 몇 개나 지나왔다. 사그라져 가는 판자 울타리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또 한 번 커브가 꺾였다.”
“김철훈이 세 든 집은 그 골목이 끝나는 막다른 지점에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살던 철도 관사였던가 보다. 낡은 2층 목조건물들의 나가야(長屋)인데, 여러 세대마다 제가끔 울타리와 대문을 해 닫을 수 있게 뜯어고친 것이라 그 구조가 복잡해 보였다.”
“육조 방(다다미를 뜯어낸 마루방) 이었지만 가구가 없는 탓인지 허전하도록 공간은 넓었다. 연탄난로는 불이 꺼진 채였다. 책상이 놓인 벽 위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제리코의 그림인가? 조난당한 사람이 기우는 뗏목 위에서 먼 바다를 향해 외치고 있다.”
“서쪽으로 넓은 창 하나가 뚫려 있는데, 해가 질 무렵에나 겨우 햇볕이 들어올 것 같았다. 흡사 동굴과도 같은 방이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목조건물의 일종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거의 사라져 보기 어려운 나가야(長屋)는 일본에서는 서민 거주지역인 시타마치(下町)의 좁은 골목에 죽 늘어선 목조주택이다. 한 건물 안에 여러 집이 벽을 공유하는 형태로 구성된 집합주택으로 각각의 주택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직접 밖으로 이어지는 현관이나 어프로치를 갖고 있는, 일본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도시주택의 대표적인 형태의 하나다. 한국에는 철도를 놓으면서 상당수의 관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다. (참고: “일제하 서울의 대단위 철도관사단지의 조성과 소멸” -서울과 역사 2017, vol., no.97, pp. 215-256 (42 pages)/이영남, 정재정)

<장군의 수염> 캡처 © 한국영상자료원

일본 다다미(畳, たたみ) 기본 방 크기는 보통 6조(畳)인데 다다미 한 장의 표준은 1.8미터× 0.9미터다. 그러나 도쿄처럼 인구가 밀집된 곳은 1.76미터×0.88미터를 1조로 계산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다미 6조 방이란 3.6미터×2.7미터로, 조선시대 한옥으로 보면 9자(尺)×12자(尺)로 그리 작지 않다. 1970년대 주택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국민주택 규모로도 안방(3.6미터×3.6미터) 다음으로 큰 방이다.

한편 M빌딩의 5층 사무실은 머리를 부딪힐 것 같은 나직한 계단 통로를 올라가야 하는데 나신혜가 근무하는 대지기업사다.
“M빌딩은 종로의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구식 콘크리트의 어두운 건물이었다. 대낮인데도 불이 켜져 있다. 한쪽 눈이 먼 늙은 수위가 손을 내 흔들면서 청소부와 무엇인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있었지만, 30년대 형의 고물이었다. 그나마 ‘정전운휴(停電運休)’라는 푯말을 붙여 놓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승강기는 일제기에 일본인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1854~1919)’가 조선은행 본점(1912, 현재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설치한 화폐운반용 유압식 승강기와 요리 운반용 리프트로 알려져 있다(기고문에는 1910년으로 되어 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1914년 지금의 ‘웨스틴 조선 서울’인 철도호텔에 처음 설치됐다. 1941년 서울 화신백화점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1940년대 한국 내 승강기는 약 150대에 달했다고 한다. (출처: 한국건설신문. 승강기산업 100주년 특집기획/김덕수 기자 2010.07.09)

이 외에도 김철훈이 어린 시절 지주의 아들로 살았던 한옥이나 나신혜 아버지인 나목사의 교회, 사반나 호텔,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 등이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다.

또한 1960년대에 이미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들이 종로에 즐비했다는 것과 구식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묘사에서 콘크리트가 상당히 오래 전부터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1938년 건립된 반도호텔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하 1층 지상 8층에 연면적 18,300제곱미터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출처: 김상식, 정성훈, “건축분야에서의 철근콘크리트 기술의 발전”, 콘크리트학회지 제21권 3호 2009. 5 pp. 54-60)

한편 영화에서 괄목할 만한 장면은 애니메이션의 삽입이다. 서울대학교 건축과 출신인 신동헌 화백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 바로 직전해인 1967년 아우인 만화가 신동우 (1936~1994)의 1200회 연재만화 ‘풍운아 홍길동’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으로 만들었다. 1968년 <장군의 수염>에는 영화 일부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했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이다. 지금 보아도 상당히 다이나믹하고 유쾌한 장면이다.

 

후기-소설과 영화에 빠져버린 건축사

학생 시절, 주인공이 건축 설계하는 사람인 어떤 소설에 영향을 받아 건축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적성검사에서 ‘공간지각력(Spatial Perception)’이 월등히 높은 학생의 1순위 권장 전공이 건축이어서 멋모르고 전공분야로 택한 것이 1971년이니, 건축을 가슴에 들여놓은 지 50년이 넘었다. 풍전등화 같은 사무실을 끌어안고 틈날 때마다 딴짓을 하나 사실 모든 일은 다 건축설계와 연관된다. 공부도 많이 오래 했다. 대학을 마치고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한지 20년이 되던 해 시작한 늦깎이 석사과정은 일과 병행하다 보니 젊은 학생들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 간신히 학위를 마쳤다. 연이어 박사과정에 입학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학업을 중단했을 것이라는 주위의 확신을 뒤엎고 재입학 포함 18년 만에 학위를 받고 공자 위패 앞에서 ‘흥, 평신, 흥, 평신’을 했다. 학사도 5년 반(당시는 4년제였다), 석사도 4년 걸렸으니 유치원과 초·중·고를 포함하면 재학기간이 무려 40년이 넘는다. 지금까지 삶의 60%는 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 어떤 해는 1년에 100회 이상의 프랑스 영화를 봤다. 심지어 영화를 더 잘 알아듣기 위해 불어까지 배웠다. 미국 뉴욕 체류 시 MOMA 또는 57번가나 첼시의 영화관에 더 오래 앉아 있었고, 교환장학생 자격으로 독일 뮌헨 체류 시엔 시립 필름뮤지엄 영화관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서울시 정책세미나 발표 요청에 대응하여 아예 로마2대학 단기 ‘보존’과정을 수료했다. 이에 오래된 도시를 이해하려고 이태리 흑백 영화 보기를 시작하면서 로마에서 촬영했거나 로마가 주인공인 영화를 50여 편 이상 본 후 ‘미래를 여는 과거: 로마 – 창의문화도시와 역사보존 (2008)’의 발표 자료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내 것으로 돌아오니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당시 한국영화의 가치를 더욱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원전인 소설과 접목을 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십수 년이다.

다음 호는 강신재(1924~2001)의 <젊은 느티나무(1960)>를 이성구 감독의 1968년 필름으로 다룬다.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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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와 건축주

Architect and client

설계를 의뢰하러 건축사를 찾는 건축주의 접근 루트 및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이참에 필자가 경험한 기준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먼저 접근 루트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특징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본인이 맘에 드는 건축물을 보고 설계한 건축사를 찾는 경우가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맥을 쌓는 것도 좋지만 건축사 본연의 실력을 높여 좋은 건축물을 많이 남겨 놓는 것이 양질의 수주를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불변의 진리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건축주의 유형을 아래 표처럼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처럼 건축사들은 매번 다른 유형의 건축주들을 만난다. 그에 맞게 적절히 잘 대응하는 것도 건축사가 갖추어야 할 소양이자 능력일 것이다. 건축사와 건축주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글. 조한묵 Cho, Hanmook 건축사사무소 YEHA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건축사

한남대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건축사사무소 YEHA를 운영하고 있다. 땅과 사람과 건축과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는 것에 사고의 초점을 두고 작업해 오고 있다.
blog.daum.net/yehaus
cho-52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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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축학회의 ‘건축’ 2022년 3월호 ‘향리정기(鄕里亭記): 백 년 전 지은 어느 마을 정자 이야기’를 읽고

After reading ‘A construction record of a pavilion in a village; One hundred years ago.’
in the March 2022 issue of ‘Architecture’, the monthly magazine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근래 정체성에 관련한 글들을 자주 보게 된다. 건축설계가 본업인 우리 건축사들에게 건축의 정체성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건축사지 2022년 1월 호에서 ‘건축의 보존, 장소와 도시의 정체성… 더 나아가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제목 하에 밀레니엄 힐튼 서울호텔이 헐린다는 소문을 듣고 홍성용 편집국장님이 쓴 글을 보았다. 국제적 명성이 있는 김종성 선생께서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든 건축물인 그런 명작이 새로운 사업을 위해 헐린다고 하니 아쉬움과 함께 상실감을 기록한 글이다. “계절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듯이 경제 환경에 따라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라고 표현한 다른 글이 떠오르며 매우 안타깝고 아쉽고 씁쓸하다.

최근에는 대한건축학회지 2022년 3월 호에 게재된 ‘향리정기(鄕里亭記): 백 년 전 지은 어느 마을 정자 이야기’를 읽었다. 이 글은 조선 말기 어느 마을에 정자를 지은 분에 대한 고마움의 글이 새겨져 있는 미판(楣板)의 기문(記文)과 한시(漢詩)를 선영구조기술사건축사사무소 최선규 건축사가 해석하여 소개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집을 짓거나 고치거나 건물의 이름인 재호(齋號)를 지으면 이에 대한 글도 함께 지어 남기셨다고 한다. 영건(營建)에 관한 글은 건기(建記)와 함께 터 닦기를 알리는 개기문(開基文), 구재(鳩財)를 위한 권선문(勸善文) 그리고 상량문(上梁文)과 공사 마무리 때 제문인 고유문(告由文) 등이 있다. 그리고 건물과 주위의 풍광을 읊은 등림시(登臨詩)도 많이 볼 수 있다. 건기나 상량문 등의 글은 판에 새기어 문지방(門楣)에 걸어(楣板)두거나 목판에 새기어 문집(文集)으로 남겨서 후대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문집이나 미판에서 영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접할 수 있고 창건 과정과 수리내역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여기 향리정기를 보면 작은 정자 하나에도 이를 만든 분을 기리고자 미판에 기문과 시를 새겨 남기신 것이다. 최선규 건축사는 이 기문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짓고 시조(時調)를 덧붙여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널리 알리고, 정자가 지어진 장소도 찾으려 하고 있다.

선인들께서 쓰시던 한문으로 된 이런 글들은 읽기에도 너무나 번거로운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형식으로 어떻게 건기문(建記文)을 쓸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자료로 이 향리정기와 함께 지난해(2021) 10월 호 건축사지에 실렸던 최선규 건축사의 유신재를 소개하는 글을 들을 수 있겠다. 이 글은 기문(惟信齋記)과 시로 구성되어 있다. 관심이 있으신 독자께서는 글과 함께 뒷부분에 있는 두 편의 시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이와 같은 글이 현대 건기문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쓴 글들을 보면 건축에 대한 선인들의 인문적인 기록을 어떻게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 끝자락 한문 세대의 역할로서 선인들의 영건 관련 시문의 전통을 이어 전하려는 듯하다. 오늘날 주위에서 올바른 정신과 진정한 선비(士)나 스승(師)의 자세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는 “문집이나 미판에 남기신 기문들을 모아 정리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소개하려 한다”고 하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생각과 노력에 대한 좋은 결실을 기대해 본다.

요즘 우리 건축사들은 많은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을 하고 있으나, 건축사지에 기고한 작품들을 보면 재호(齋號)가 없는 것이 많고 기문(記文)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설계한 건물의 기문을 만들어 건물에 속한 다양한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하고, 시나 시조도 덧붙여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더욱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 글을 쓴다.

 

글. 김지덕 Kim, Chitok (주)유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김지덕 건축사·(주)유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회장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전북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엔지니어링건축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1978년 유신건축을 설립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단지 내 케냐,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및 Government Service Center, 인천국제공항 1단계 기본계획(Bechtel+주.유신 협업), 대전 월드컵경기장(2002 문화관광부 장관상),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광양항 국제컨테이너터미널 및 업무지원시설, 진천 국가대표 종합훈련원 등이 있다. 아시아건축사협의회(ARCASIA) 공식대표(1984-1999), ARCASIA 포럼 제10회 서울대회의장, ARCASIA 건축교육위원회 한국대표(1995-1998) 등을 역임했다.
kimchitok@yooshin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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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장악한 세상

A world dominated by the media

현대인은 자신이 얼마나 미디어에 장악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다. 현대인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미디어에 접속하고 잠이 들기 바로 전까지 그 접속 상태가 지속된다. 그리하여 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현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로마 원로원의 위원들이 검투사 경기가 열린다는 홍보 전단지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종이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장면은 결코 연출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사극 영화들은 그러한 고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무시해도 된다고 영화 제작자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중세까지 종이가 극도로 귀한 물건이라는 걸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중세까지도 종이가 대단히 귀했다.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는 10세기가 되어서야 북아프리카를 통해 스페인 지역에 겨우 도착했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발명한 시기가 15세기 중반인데, 이때서야 비로소 전 유럽에 종이가 퍼진 상태였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양피지를 사용해 기록을 하고 책을 만들었다. 양피지는 염소, 양, 송아지 같은 살아 있는 가축을 죽여 그 가죽으로 만든 종이다.<사진 1> 중세 유럽에서 가축은 대단히 귀해서 우유, 털, 노동력을 착취한 뒤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을 때 비로소 도축했다. 요즘처럼 전적으로 식용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그런 자원을 기록을 위해 도살한다는 건 상당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다. 그런 종이를 검투사 경기의 홍보용 전단지로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이를 홍보용 전단지로 쓴 것은 인쇄술이 발명된 뒤인 16세기부터다. 그마저도 양피지가 아니라 식물로 만드는 종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1> 양피지를 만드는 모습. 양, 염소, 송아지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는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다.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알렉산더 대왕이 어린 시절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는 대목을 듣고 나는 또 한 번 미디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인이 이런 말을 들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위대한 군사 전략가이면서 동시에 지적 호기심도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알렉산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머리맡에 두고 즐겨 봤다고 한다. 만약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아들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머리맡에 두고 즐겨 봤다면 그 아이는 정말 지적 호기심이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책 보기를 방해하는 매력적인 미디어들이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의 유혹을 물리치고 책을 본다는 건 정말 책에 대한 도를 넘는 집착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알렉산더는 어땠을까? 그의 주변에는 어떠한 미디어도 없다. 미디어가 없다는 건 즐길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칼싸움이나 씨름 같은 몸을 써서 하는 놀이는 언제든지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 정보로 구성된 콘텐츠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것이다. 그나마 책이 있으면 좋겠는데, 양피지로 만든 책은 엄청난 고가인데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책은 잘 만들지 않았다.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도 90% 이상의 민중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소리꾼의 목소리로 들었지 결코 책으로 보지 않았다. 떠돌이 소리꾼이 동네에 나타나 한번 들려주고 떠나면, 그 재미난 이야기를 언제 또 들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심지어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저자인 호메로스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없고,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며 입으로 노래했던 것이다. 그런 시대에 왕의 아들이라는 금수저로 태어난 알렉산더는 그 귀한 책을 소유하는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미디어가 없이 무료한 날을 보내는 고대인들에게 책은 기가 막히게 재밌는 사물이었다. 독서를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 아들이 만약 고대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면,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책에 중독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알렉산더가 책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이렇게 번역해서 들어야 한다. 그는 손쉽게 책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짐으로써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하게 자랄 수 있었다.

아무튼 유럽의 심각한 책 부족 현상은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가동활자와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해결되었다.<사진 2> 책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짐으로써 그전에는 책으로 옮기지 않고 단지 구전되던 시와 소설 같은 대중문학이 본격적으로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유럽의 역사를 뒤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음성으로 들었다. 문자를 아는 지식인들조차 그랬다는 것이다. 책이 대량생산되자 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쇄술 발명 전까지 유럽 도서관의 책을 다 모아도 5만 권이 안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쇄술 발명 뒤 50년의 기간 동안 유럽에서는 무려 900백만 권 이상의 책이 발행되었다. 그렇게 되면 문자를 아는 지식인들의 정보 유통 방식이 혁명적으로 바뀐다. 목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사진 2>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 1450-1456년.

귀로 듣는 소리 미디어는 시각에 호소하는 문자 미디어보다 훨씬 감정적이다. 공간을 가득 채워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다. 배우는 같은 단어를 수 십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현대인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문자로 읽을 때 좀처럼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호메로스가 노래하듯이 이야기해 주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듣는 고대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울렁임은 현대인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귀로 듣는 이야기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마음으로 들어온다. 반면에 문자로 읽는 이야기는 가슴과 마음이 아니라 머리, 즉 이성에 호소하므로 좀처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같은 고대의 서사시는 기본적으로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현대인이 그것을 문자로 읽는 것은 마치 영상을 보지 않고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것처럼 메마른 것이다. 이것이 청각에 호소하는 예술인 음악이 시각에 호소하는 예술인 미술을 감정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이유다. 회화는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사전 지식과 이성을 필요로 하지만, 노래는 사전 지식 따위 필요 없이 순식간에 사람을 사로잡는다. 문자 메시지의 세계에서 이모티콘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시각, 즉 이성에 호소하는 문자가 메마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소설가가 묘사력이 뛰어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문자밖에 없는데, 문자는 기본적으로 논리적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소설가는 가능한 한 독자가 머릿속에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력을 곁들여 독자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려는 것이다. 미디어가 덜 발달한 20세기 중후반기까지만 해도 이런 소설은 힘을 가졌다. 하지만 영상 미디어에 완전히 장악 당한 21세기의 젊은 세대들은 소설의 치밀한 묘사를 읽어낼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음성 미디어의 또 다른 특징은 즉흥적이라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이야기꾼들은 처음에 정한 대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바꾸기도 하고, 흥분한 관객이 끼어들어 이야기가 즉흥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음성 미디어는 동시적이기 때문이다. 음성 미디어는 화자와 청자가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대에 있어야 소통된다. 또 음성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는 논리적으로 정확하지 않아도 대체로 그 맥락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가라고 하더라도 연설을 시키면 논리가 흐트러지고 비문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청자는 소리가 갖는 풍부한 정보(소리의 높낮이와 장단, 감정)로 인해 쉽게 설득된다. 반면에 문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독자는 당장 비문과 오탈자를 들춰내며 저자의 논리를 지적할 것이고, 그 문장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사람들은 음성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문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소통이 이루어지는 환경도 중요하다. 화자와 함께 하는 청자와 달리 문자를 읽는 사람은 혼자 고립된 채 읽는다. 동시성이 없으므로 다른 관객의 반응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더욱 논리적으로 문장을 독해하려고 한다. 한번 쓰인 문자는 결코 즉흥적으로 바뀔 수도 없다. 탁월한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시각에만 호소하는 문자 미디어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각 기능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표음 알파벳은 문자 내에서 청각이나 촉각, 미각 같은 다른 감각들의 역할을 빼앗는다.” 따라서 문자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대단히 차갑고 논리적으로 사고의 체계가 변화한다. 이것이 구텐베르크가 인쇄 혁명을 일으킨 뒤 유럽인에게서 일어난 변화다. 책은 순차적으로 봐야 하며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집착하도록 만든다. 문자 미디어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분석과 분류에 더 능통하여 끊임없이 개념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고체계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다. 동양에서도 책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대량 인쇄술이 없었던 관계로 19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문자 미디어가 아닌 음성 미디어의 세계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문자를 기반으로 한 책이라는 미디어의 특징은 움직이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벽이 미디어로서 유력하게 이용되었다. 벽은 이동할 수 없고 소유하기도 쉽지 않다. 그에 반해 책은 이동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소유할 수 있다.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는 “인간 감각 기관의 연장”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미디어는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결국 벽을 벗어나 종이로, 그리고 책으로 확장을 했고, 20세기에 들어와 책보다 훨씬 가볍고 빠르게 이동하는 전파 미디어인 전화기, 라디오, TV로 확장되었다. 21세기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신호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미디어 전성시대를 낳았다. 손아귀에 잡히는 미디어를 누구나 소유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두루마리 책의 수백만, 아니 수천만 배 이상의 정보를 언제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이렇게 완벽하게 미디어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고대, 아니 20세기 전반기의 사람과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온라인 미디어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태어나서 TV 정도가 가장 친숙한 미디어로 알았던 50대 이상 사람과도 별개의 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언제나 사람의 사고체계를 바꾸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사람의 사고뿐만 아니라 디자인조차 통제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디자인은 급격하게 변화해왔다. 이 부분은 다음 호에 이야기해볼까 한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