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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이 있어야 대한민국 건축사가 산다

Korean architects can lead our society with the right of self-determination

푸념처럼 수도 없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낮다는 말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왜 건축에 대한 사회적 수준이 이리 낮은가!”라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시장에서 만나보면 많은 사람들이 건축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자재 빼먹는 시공업자를 연상한다. 부실시공과 자재 빼먹는… 사실 대부분 건축사들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건설, 시공 분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건축과 건설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건축을 하려면 설계를 해야 한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부지기수며, 처음 집을 지으려는 이들도 설계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여전하다. 이런 환경이니 설계를 주 업으로 하는 건축사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그 이유뿐일까?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건축사 단독의 자기결정권 같은 문제 말이다.
국가가 전문자격을 준 전문가 중 대표적인 분야가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건축사다. 그런데 유일하게 건축사는 비전공 아마추어인 공무원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뿐인가? 심의나 사용승인 과정에서 무수한 비자격 비전공자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다른 건축사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나의 건축이 완성된다. 즉,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진행할 수 없는 유아적 권리를 가진 국가 자격인 셈이다. 한마디로 당사자가 책임지고 완성할 수 없다. 자기결정권이 없다.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하고 책임질 수 없는 구조의 대한민국 건축사 제도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당신 말이 맞아?”라고 되묻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의심하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계속 이중 삼중의 법과 제도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부수적인 절차와 과정이 늘어나 점점 본말이 전도된, 한마디로 불필요한 것들이 늘어나 비용과 인적 자원의 소모를 늘려가는 상황이다. 이러니 건축사가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다.
건축사들의 자기 결정권은 건축 인허가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리를 더 강화하는 만큼 책임을 강력하게 지면 된다. 이미 안전사고 등으로 고의성 여부에 따라 사망사고가 나면 건축사는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법적으로 책임의 한도는 살벌하게 강화되어 있는데, 권리는 여전히 제한받고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의 크기에 따라 복잡성을 핑계로 건축사의 자기 결정권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백번 양보해서 범위를 축소하면 된다. 대체로 2,000∼3,000제곱미터 정도는 건축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인허가 대체, 신고로 해도 된다. 이미 해체부터 시작해서, 착공 및 공사 과정 내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들이 있으니 더 이상 옥상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건축사가 책임지고 자기결정권으로 인허가를 주도한다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위상이 올라간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구조로 인해 설계비도 자동으로 현실화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시간 단축 등으로 신뢰경제의 경제적 생산성을 온 국민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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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Make hay while the sun shines.

길쭉청년 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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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킥스탠드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Kickstand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건축과에 입학 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건축을 해오며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다. 건축사로서의 삶은 갈수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어려운 현실에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러나 건축 이외의 활동을 함으로써 다시 즐겁고 재미있게 건축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건축사사무소를 시작하며 마음먹은 행복한 건축을 하겠다는 초심을 지켜갈 수 있다.
자전거를 세울 때 땅에 넘어지지 않게 받치는 킥스탠드라는 파트가 있다. 건축사들에게는 지쳐 쓰러지지 않고 건축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 누구보다 킥스탠드가 꼭 필요하다. 오디오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책을 쓰거나,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목공작업을 통해 손수 만들어 사용하거나,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이미 취미활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는 건축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건축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킥스탠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른 분야 활동을 통해 자극을 받으며 발전하게 된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자극을 주는 킥스탠드는 음악활동이다.

청춘, 음악이 있는 곳에 나 있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2000년대 초 20대 시절 이야기이다. 대학생이 된 나의 하루는 학교가 있는 신촌이 아닌 홍대의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힙합이라는 음악의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고 수익을 낼 수 있는 큰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대 초 힙합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젊은 청춘들은 서브컬처, 스트릿 컬처에 매료되어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에 모여들었고, 무명의 래퍼들과 비보이, 힙합 DJ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지하연습실에서 실력을 쌓아 갔다. 당장 수입으로 연결되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지만 단지 그 문화와 행위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해했고 젊음의 시간을 기꺼이 바쳤다.
힙합 DJ 중 클럽에서 음악을 트는 믹싱 DJ가 아닌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이리저리 비비고 돌려 소리를 만들어내는 스크래치, 비트저글링 기술을 연마하는 배틀 DJ 씬은 유난히 작았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 테크닉을 배우기 위한 자료는 너무 부족했으며 외국 DMC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돌려보고 연습하며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그 시절 우리는 젊고 가난했지만 모두 힙합에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으며 거기다 너무 순수했다.
한국의 상황은 음악을 하기에 좋지 않았다. 세운상가를 뒤져 피치가 맞지 않는 테크닉스 1200mk2 턴테이블을 직접 고쳐가며 사용했고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아르바이트로 돈이 모이면 LP를 사기 위해 바로 일본으로 달려갔다.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는 힙합 DJ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천국이었다. 2000년대 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서만 레코드 문화가 마니아적으로 남아 있었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DJ들이 디깅하는 모습은 도쿄와 오사카 레코드숍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지도를 보며 레코드숍을 찾아다니고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로컬 레코드숍에 우리는 흥분하며 열광했다. 거의 대부분의 일본 레코드숍 직원들은 현직 DJ인 경우가 많아 새로운 음반을 추천받기 쉬웠고, 그들은 한국에서 찾아온 같은 문화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기꺼이 친절했다. 또한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본의 섬머소닉과 후지락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한 줌의 빛이었다. 한물간 해외 뮤지션들만 내한하는 한국과 달리 현재 전 세계 가장 핫한 뮤지션들의 공연은 섬머소닉과 후지록 페스티벌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대부분 지쳐갔다. 힙합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며 실망한 채 군대나 일터로 흩어졌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왔고 그렇게 평범한 어른이 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노트북은 필수가 되었으며 다뤄야 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시퀀싱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과 건축 프로그램은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상하게 건축이 더욱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환경이 변해갔다.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LP가 다시 유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한국에서는 서울레코드페어와 각종 DJ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아저씨가 되어 버렸지만 씬에는 청춘들이 새롭게 들어왔으며, 그들이 새 문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엠넷의 ‘쇼미더머니’ 방송 이후 마이너한 서브컬처 문화는 대중적 붐업을 받아 큰 자본이 들어오고 그 자본으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다. 10년 만에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만나게 된 옛 동료 DJ들이 있었고 우리는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다.

‘레드불 3style’ DJ 배틀대회

Aftermath, 행복의 건축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과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건물이 지어지는 땅과 건물을 짓기 위한 자본이 필수이며 건물을 설계하는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건축사가 실제 사무실을 운영해 나가며 시간을 할애해 페이퍼 아키텍처 작업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담되고 힘든 현실이다. 이런 현실의 아쉬움을 음악을 함으로써 만회할 수 있다. 건축보다 창작하는데 훨씬 적은 시간이 걸리면서도 준공된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다른 분야 창작활동을 하면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레드불 3style이라는 DJ 배틀 대회가 있다. 현재 전 세계 스트릿 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인 레드불에서 개최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기 전 가장 최근 대회인 2019년 한국 대표를 뽑던 날이 기억난다. 이제는 모두 아빠가 된 DJ 친구들과 오랜만에 클럽에서 같이 관람하며 자극을 받았다. 그 후 우리는 대회에 출전해 보자고 의기투합하였고 2주에 한 번 같이 모여 연습을 한다. 이런 활동은 건축을 하는 데 있어 상상력을 확장시켜주며 변화의 흐름을 일찍 알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와 장비의 디지털화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몇 년 뒤 건축에서도 매우 비슷하게 상황이 변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스마트 디지털화는 모든 분야에서 장르만 다를 뿐 동시대에 이뤄지고 있었고, 앞으로 건축환경이 어떻게 변해 갈지 상상이 가능했다.
또한 현재 주기적으로 성수동 사무실에서 LP(Vinyl), CD,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 형태의 Physical 음반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 ‘STILL Physical’을 개최하고 있다. 음악감상 모임은 건축분야 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극을 받고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막혔던 생각들은 말랑말랑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건축을 하는데 음악활동은 많은 도움이 된다.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되며 40대에 접어든 나의 킥스탠드가 된다.

 

글. 이중희 Lee, Junghee 투엠투건축사사무소

이중희 건축사 · 투엠투건축사사무소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첫발을 내디딘 뒤 2014년 투엠투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다. 준공 후 건축사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스트릿 컬쳐(street culture)에 관심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와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다. 2018년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 감독을 맡아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최근 성수동에서 LP(Vinyl), CD,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 형태의 Physical 음반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 ‘STILL Physical’을 개최하고 있다.
2middle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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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스케치, 결핍을 매만지는 손짓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02 Sketch, hand gestures to make up for lack

시작함에 있어, 결단코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면 도리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순이다. 의식적으로 채워지는 것은 욕심이 될 수 있는데, 채워지는 순간 부족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연의 순리다.

반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즐거운 일은 충만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의식할 수 없게 된다. 스케치는 공허한 시간을 채우는 꽉 찬 즐거움이다. 말로 하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고, 아무것도 없다 하고 넘기기에는 그 안에 함축되어 있을 설명이 궁금해진다. 스케치는 창작된 어떤 근거를 따져보기 전에 감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대개 다소 합리적인 이야기를 도출하고 싶어 하지만, 도출의 과정이 끝나기 전에 미소 짓게 하는 즐거움은 완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지점에서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기 발랄한 스케치 같은 작업 말이다.
새털 같은 생각의 흐름과 편안한 손의 노동이 어우러진 착한 창작활동이 스케치라고도 말하고 싶다. 가볍지만 생각의 뿌리를 간직하기에도 괜찮은, 계획의 씨앗을 만드는 작업이다. 개략적인 그림은 건축을 위한 선행 작업이며, 그리는 사람에게는 그 행위 자체로 학습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거듭해서 건축의 디테일을 그리다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선행학습이 잘 된 스케치는 그 자체로도 쓸만하지만 후속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애당초, 건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하는 질문은 최초의 생각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는 것과 유사한 질문일 수도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것들의 시작은 항상 망설임과 함께 어설프게 시작되기 쉽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제안은 뿌리가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창작활동은 대동소이하게도 생각의 바탕이 그럴싸하지 않으면 결과물도 기대하기 어렵다. 스케치는 그런 생각의 시작점과 생각을 부풀리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스케치는 공간의 시나리오를 미리 작업하는 것, 즉 시놉시스를 만드는 작업과 같다.
내면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아이디어를 끌어올리는 작업으로 생각의 원석을 다듬어 보석이 되기 전단계인 간단한 소묘 작업을 하게 된다. 태생적 가벼움을 전제에 둔 과정이니 마음 편히 각자의 개성대로 그림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른함을 표현할지, 모던하게 정리할지, 추상적으로 암호화된 특색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지 등 과정마다 변화하는 것들을 반영하기 용이하다. 융통성 있는 작업이니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때때로 무용한 작업이 될 수 있음을 알지만 이미 교과서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났으므로 마음이 홀가분해져 재미있는 요소에 먼저 접근할 수 있다.
아주 정직한 그림이라면 로봇이 그릴 만도 하겠지만, 스케치의 태생적 어휘가 자유분방함에서 생기는 것이니만큼 엉뚱함이나 재기 발랄함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재미를 로봇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유라는 것도 시간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식사하다가도 갑자기 생각난 것을 냅킨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개발새발 갈겨가며 그리는 금쪽같은 그 시간이 전부가 될 것이다.

<그림 1>

당연히, 암호화된 속기사의 글자처럼 스케치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암호화처럼 기록할 것이다. 암호화가 추상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남에게 알리는 그림이라면 다이어그램에 가깝다. 보다 더 간략한 표현으로 방향성이나 의도를 부여해 지켜보던 동료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그림 언어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를 다이어그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상 그림이지만 건축다이어그램에 자주 사용하는 방향성 있는 점선 표시는 의도된 애매한 영역을 지향한다.<그림 1, 2>

방법적으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이어그램도, 추상도 아닌 그 중간 단계를 좋아한다. 미술에서는 익숙한 대상을 병치시키며 낯설게 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는 기법을 통과하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서로 다른 종을 붙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드는 시도를 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사람과 물고기 꼬리를 붙이는 것으로 만들어낸 신성한 생명체인 ‘인어’가 그렇다. 물론 반대로 물고기의 머리와 사람의 몸뚱이를 붙여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그림 3>

<그림 3>

극단의 스케치로, 동물과 인간을 결합해 지옥을 나타냈던 <세속적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가 그린 그림은 상상 속의 요괴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상상력의 정점에 있는 스케치이다.

엉뚱한 영화 <바바렐라>에서 우주 악당 듀란듀란이 여자 주인공 바바렐라의 에너지를 망가트리려는 기계장치와의 조합은 꼭 만화 같다. 기계가 여주인공보다 먼저 망가졌으니 악당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람과 기계장치의 연결 또한 스케치스럽다. 거꾸로 스케치가 영화된 느낌이다. 상상력의 스케치가 만화화되고 영화화되면서 내면의 깊숙이 숨겨두었던 새로운 생각을 맛보는 느낌이다. 숨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스케치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주인공 바바렐라가 타고 다닐만한 우주선도 그려본다.<그림 4, 5> 상상력 증폭을 위해 기존 흥미로운 시나리오의 주제를 스케치로 실습하는 작업이다.

<그림 4>

<그림 5>

어찌 보면 건축도 그런 것이 아닌가? 무에서 유의 공간을 만들 때 이런저런 조합을 만들어 끼워 맞춰보고 자료들을 취합하며 생기는 우연의 형태로 만족스러운 때가 있는 것이다. 이성적인 부분 이외의 특정한 창의성은 깊숙한 그 어떤 곳에서 탄생되어야 하는 특별한 아이와도 같다. 그래서 스케치도 서로 다른 종의 연결을 시도함으로써 나의 일상 생각에서 유니크한 형태를 발굴해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특히 병치의 방식은 엉뚱한 조합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종종 시나리오를 동반한다. 단순한 병치를 통해 경계가 도드라지는 것보다 아름다운 여인의 상반신과 유연한 물고기의 꼬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두 요소가 지닌 곡선미를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맞아떨어지면 완성도는 더 높아진다. 물론 가상의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고 시작하는 편이 낫다.<그림 6, 7>

<그림 6>

<그림 7>

그래서 새로운 시작으로 가장 쉬운 것은 서로 다른 것의 창의적 시나리오가 바탕으로 조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방이란 단어가 예술계에서 종종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도, 조합이 너무 빤하거나 원본이 너무 많이 실체를 드러낼 때 주변에서 모방이라 난리 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스케치 작업이 모방을 벗어난 창작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케치로 자신의 것을 만드는 적절함을 쉽게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스케치는 태생적으로 미완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낮은 기대로 시작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다행인 셈이다. 그 어떤 것을 모방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단계란 말이다. 창작의 도움이 될 생각을 움직이게 할 기계장치와 같다. 그래서 자동기술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때가 더 많다.<그림 8> 그렇다면 스케치에 생명을 불어넣어 완성까지 이끄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것은 프랭크 게리가 이야기하는 열정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림 2, 8-9>

<그림 11>

열정이 있다면, 시작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끝은 볼만한 작품이 될 수 있다. 『나는 일러스트 레이터다』의 저자 밥장은 책에서 스케치에 대한 동기 부여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프로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소소하게 시작한 일상의 스케치 작업에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쌓여 작품으로서도 상업적으로도 인정받게 된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스케치가 생명력을 가지면 상대에게 감동과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연쇄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자가 그렸던 간단한 사각형과 원, 그리고 선들의 조합은 누구나 그릴 법한 그림임에도, 여전히 그들의 그림은 현대 미술과 건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소한 스케치라고 하더라도 사소하게 그 수명을 다 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을 전공한 정연석 작가는 입체적으로 그린 카툰 형식의 그림에서 스케일감이 도드라지는 시도를 통해 건축 스케치의 전문성을 배가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픽 아티스트 마티아스 아돌프손(Mattias Adolfsson)의 작업 역시 건축을 공부하며 친구들에게 보여줄 스케치북 낙서에서 시작했다. 흥미롭게 표현된 건축적 형태는 학습된 자료와 내면의 생각에 살을 붙여 만들어낸 결과물로, 좋은 작업물 좋은 과정을 통해 창작하는 작가로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
많은 건축인들이 스케치를 즐겨 하는 것은 생각 표면에 숨어 있던 아이디어를 캐내는 도구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글자의 시도가 가능했던 것도 스케치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그림 9> 원더우먼 영화와 물고기의 매치 또한 그러하다.<그림 10>

<그림 10>

<그림 12>

결론적으로,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은 좋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열정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부족함을 채우며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흥미로운 작업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충분히 새로운 시도의 초석이 될만하다.<그림 11> 소소한 스케치일지라도, 생각을 매만져주는 스케치는 창작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활동을 부추기는 도구가 될 것이다.<그림 12>

 

글. 김동희 Kim, Donghee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김동희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건축사사무소 KDDH 대표이자, 집톡 멤버다. 바바렐라하우스, 주향재, 홍천노일강 펜션, 무주펜션 다다, 인천 북카페하우스, 니나노카페하우스, 춘천로81카페 등의 다양한 주요작품이 있다. ‘부기우기 행성 탐험’, ‘욕망채집장치’ 등의 드로잉 및 설치 작품 전시를 통해 창조적인 공간 창출을 또 다른 은유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6년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대상(무주다다펜션), 2017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행촌공터 3호) 외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저서 <내가 살고 싶은 집 주향재>를 집필했다.
kddh@kdd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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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창작의 터전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03 A new stimulus for creativity and a place of creation

종합예술가인 건축사의 창의성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창작의 터전은 무엇일까? 개인이 가진 사고의 유연성, 비판성, 정보에 대한 수렴 및 응집력과 더불어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아도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공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창작의 기반이 된다. 창의력은 활동의 결과이다. 그러나 활동 과정에서 놀라운 독창성과 급진적 참신함이 나타나기도 하며,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충동에 의해 창조적 잠재력을 지닌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인지되기도 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축적되며, 예술·과학·기술적 분야, 스포츠 등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활동인 창의성의 주요 기준은 결과의 독창성이다. 창의성의 결과는 주어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종합 예술가적 활동이 요구되는 건축사의 역할과 역량은 이러한 창의적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창의적 결과의 산물은 환경의 영향으로 대다수가 잃어버린다고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의 꾸준한 자기계발과 더불어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정보에 오랫동안 열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지속적인 창의적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는다. 더 나아가 전통적 표현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다. 인상주의, 입체주의 미술로 분류되는 콜라주(collage) 기법은 종이, 타일, 헝겊, 사진 등 조각들을 붙여 모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가 최초로 시도하여 대중화된 미술 기법이다. 콜라주의 어원은 ‘풀칠하다’이지만, 현재 어원은 거의 퇴색되고 미술 기법을 지칭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피카소는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이라는 그림을 그려 자른 종이를 겹겹이 붙인 듯한 입체감을 평면에 표현하였다. 한 개인의 독창성이 미술사조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 대부분은 한 분야의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영역을 다양하게 표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국악과 클래식, 대중음악과 협업을 이루는 음악 장르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오랫동안 열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이뤄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예술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유로움의 ‘즉흥성’은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통해서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를 구축하며, 새로운 가치를 형성한다. 그 영향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다.

건축작업 또한 새로운 경험의 공간을 계획하고 새로운 재료의 조합과 형태를 상상하며 표현의 방법을 고민한다. 표현에 있어서 경계가 없다. 음악과 미술, 사진 등 여러 예술 분야와 더불어 정해진 영역 구분 없이 독창적이며 가치 있는 표현을 위한 고민을 한다. 이러한 건축작업과 더불어 모든 창작 작업은 내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의 자신을 정리하면서 시작된다. 무의식의 확장성은 창작 작업의 과정에서 독창성을 구성해가는 에너지원의 근간이다. 건축사들의 그림 작업이나 사진 작업은 그런 무의식의 흐름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면서 존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역시 그림 그리기를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가구뿐만 아니라 그림 작품활동도 활발하게 했던 르코르뷔지에의 아름다운 색감과 비율은 무의식 속의 천재적인 감각이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

제주 원도심 미래풍경 건축 상상전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무의식은 초현실주의에 기반을 둔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예술사조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고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무의식이 그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창작작업 과정에서 자신이 의식할 수 없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끌리게 된다. 내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함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내재된 감각을 지속적이고 변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의식적인 존재의 기억을 위한 건축사의 창작활동의 도구가 그림과 사진 작업이 아닐까?

건축설계 작업을 할 때면 끄적거리는 스케치로 시작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는 창작의 시발점을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과 같다. 전화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습관적으로 끄적거리는 낙서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건축사들의 대부분이 가진 공통된 습관이다. 끄적거림을 통한 생각의 정리가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건축사들은 평소 설계 작업에서 보여주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림을 통해서 창작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학부 시절 건축부지 현장조사 때에는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에서도 보급형 디지털카메라 제품이 들어오면서 필름 걱정 없이 답사를 다니거나 현장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건축설계를 하면서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공부를 위한 건축물 답사를 다니는 것이다. 여행을 겸한 현장 답사를 통해 많은 사진을 남겼다.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그 순간의 풍경과 감정들을 프레임에 담아 기록하고 저장해둔다. 순간의 느낌은 무의식 속의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프레임에 담긴다. 사진들이 쌓이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게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되고 파악하게 된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사물을 관찰하고 무엇을 보여줄지를 고민한다. 짧은 순간에 색감을 표현하고 구도를 생각한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 마음을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의도를 확실히 전달하고 보여줄 수 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감과 구도와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또한 무의식 속에서 축적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사진을 찍는 것이 정해진 대상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면, 건축작업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건축은 공간에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기술적 측면이 요구되는 분야이며,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창작물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축이라는 창작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그림 그리기나 사진 찍는 활동은 예술분야의 경계를 넘어 건축사의 창의적 활동과 독창성의 표현을 위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시간의 효율성을 의식하다 보니 학부 시절처럼 사진 찍기를 목적으로 하는 답사는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전의 무거운 DSLR 카메라는 아니지만, 요즘에는 휴대폰의 사진촬영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색감이나 셔터의 감성은 큰 카메라를 따라잡지 못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내 손에 있기에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사진 속에서 내 무의식의 자아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일상의 끄적거림, 사진 작업과 더불어 젊은 건축사 5인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래의 도시풍경을 상상해 보는 2020년 ‘제주 원도심 미래풍경 건축 상상전’ 과 2021년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 등 정기적인 전시 활동은 나의 건축관을 정립하고 창작의 연속 선상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극하며 내재된 감각을 변화하고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 활동 역시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와 함께 내가 상상하는 창작활동의 구체화를 위한 수단이 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기회를 만들고 찾아서 다양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고 병행한다면 건축 과정이 좀 더 재미있고 독창적이며 풍성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양현준 Yang, Hyunjun 건축사사무소 소헌

양현준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소헌

제주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로재’와 ‘김한진건축’에서 실무를 익히고, 2019년 건축사사무소 소헌을 설립하여 사물의 가장 원초적인 성질을 바탕으로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한 건축을 이루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함과 압도함보다는 주변에 공간이, 공간에는 사람이 녹아들기를 바라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고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jejusoh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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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건축과 사진 _ 건축사는 왜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건축담론

편집자 註

건축 + 창작을 돕는 자극 활동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동서양 간 ‘누구’의 창작품이냐 하는 실명 거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창의적 예술성 측면에서 동일한 DNA를 가졌다.

오늘날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 있으나, 오히려 장르는 세분화되어 구분하고 있다. 서구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그러하며, 장르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순수예술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가구나 조명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용품 회사들의 팸플릿을 보면 심심치 않게 Architect Line을 볼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카펫이나 가구, 알바 알토가 디자인 한 화병과 가구 등등….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뿐 아니라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단지 건물 설계하는 제작도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과물이다. 당연히 이런 건축을 발상하고 구현하는 건축사에겐 창작의 자극과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대한민국 건축사들이 다양한 예술활동을 취미나 프로급으로 병행한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조각으로 설치 미술로…. 최근에는 디지털 아트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과 그림 등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일까?

 

04 Architecture & Photography
Why should architects take pictures?

사진은 건축사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금은 디지털 사진의 시대다. 1990년대 후반에 코닥에서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했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사용상 어려움으로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대중적인 카메라가 출시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필자도 100만 화소 후지 콤팩트 카메라로 디지털카메라를 접한 걸로 기억한다.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구매하여 설계업무에 적용하던 시기였다. 이후 2001년에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여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

디지털카메라는 설계업무에 많은 도움을 준다. 현장조사를 할 때 현장 사진을 찍고 심의도서에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심의도서에 투시도를 현장사진과 합성하여 사전에 가상 시뮬레이션을 적용해 미리 세워질 설계 작품을 상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진은 건축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할지… 없다고 생각하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필름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고 인화와 현상과정을 거쳐 다시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저장해야 한다.

사진에 대하여 좀 더 얘기하자면 사진의 종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목적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지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순수사진-다큐멘터리 사진(자연/야생, 시사정치, 기록, 여행), 순수예술(예술사진, 스트리트 포토, 천체사진, 풍경사진)
· 상업사진-이벤트(결혼, 행사, 사진관), 광고(제품, 음식, 인물, 패션), 보도(전쟁/분쟁, 정치시사, 뉴스, 스포츠), 기타(의료/과학, 건축, 부동산, 파파라치)

위와 같이 사진의 종류를 알아보았지만, 우리 건축사가 주로 촬영하는 사진의 분류는 순수사진의 분류중 기록사진이며, 상업사진의 분류로 보면 기타(건축사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건축사인 필자에게 있어 사진은 훌륭한 도구이자 기록사진이며 건축물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건축사는 대다수 신축 또는 리모델링 공사를 전제로 설계업무를 진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기존 건축물의 경우 나름 사연을 가지고 태어난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버지가 직접 손수 공사를 하여 준공한 집인 건축물에서 건축주인 딸이 태어나고 현재까지 그 건축물에 살고 있는 경우, 신축보다는 현실에 맞게 기능과 구조를 변경하지만 아버지의 숨길을 느끼고 보존하기 위한 리모델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건축물은 1980년도에 병원으로 개업하면서 그 당시의 모습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건축물을 보면 그 당시의 건축적인 배경과 사회상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기존 건축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새롭게 신축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건축사는 리모델링의 경우 특별한 사연 등을 직접 접하면서 현대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업무를 한다. 하지만 기존 건축물이 사라지기 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훗날 건축사적으로 작은 기록을 남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우리는 해외여행이나 건축물 답사를 많이 간다. 여행을 다니면서 오래된 유럽 도시의 모습, 건축물 등을 촬영하여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해외 유명 건축사가 설계한 건축물을 답사하여 기록하기도 한다.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진으로 시대적인 사건의 정황과 배경을 알 수 있다. 전쟁 사진을 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재난 현장 사진을 보면 그 현장의 참상을 알 수 있으며,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진에서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기도 하고 우리의 추억을 기록하기도 한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면서, 초기에는 설계용역을 수주하고 공사가 완료되면 건축물의 전경 사진을 찍어 인화 후 액자로 만들어서 건축주에게 전달하여 좋은 호응을 얻은 기억이 있다. 또한 이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기록사진이 되며, 건축사에게 사진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카메라 센서 사이즈 가이드라인(좌), 이미지 센서와 사진 크기와의 관계(우) © 1. Spatial AI , 1.3 Computer Vision & Imaging , 카메라 기초

서울건축사답사사진동호회가 출범할 당시에는 회원 대다수가 DSLR 카메라를 사용하여 답사사진을 많이 찍었으나, 카메라가 무거운 관계로 점점 멀리하게 되고 이제는 휴대폰으로 답사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좋은 사진이란 도구에 관계없이 찍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본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정서가 배여 있고, 그 사진을 보는 사람도 정서적으로 감정이 이입되어 감동을 받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본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김중만 사진작가는 휴대폰으로 작품사진을 찍어서 전시회도 열었다. 박찬욱 영화감독은 얼마 전 아이폰으로 <일장춘몽>이라는 영화를 찍어 온라인으로 개봉한 적도 있다. 이렇듯 사진이나 영상을 휴대폰으로 찍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기본적인 카메라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여러 가지 특성이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카메라 센서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를 비교하자면 카메라 센서의 크기로 알 수 있다

위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아이폰XS, 갤럭시10에 들어간 센서 사이즈는 1/2.5〃인데 디지털 카메라 FULL FRAME과 비교해 보면 센서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필자가 굳이 센서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휴대폰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 모두 낮 시간대에 사진을 찍는다면 모두 잘 나온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밤 시간대일 경우에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이미지 센서의 크기가 다르게 때문에 휴대폰카메라의 경우 픽셀이 많이 깨지기 때문이다. 특히 망원으로 갈수록 픽셀이 더 깨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물론 사진의 기초가 되는 3대 요소인 구도, 노출, 초점은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 건축사와 사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사진이 건축사에게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굳이 중간에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에 대해 설명한 것은 건축사인 전문가에게 필수불가결한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는 원인을 나열한 것이다.

필자는 사진촬영 외에 영상도 작업하는데, 현재까지 3편의 건축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다큐를 제작하는 이유는 1970년대 이후 건축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물의 노후화가 진행되어 재건축하려는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낡고 오래되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체 후 재건축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재건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축사로서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시대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본다. 아니, 꼭 기록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의 건축물도 우리 시대의 한 역사이고, 기억해야 할 건축문화인 셈이다. 처음 영상을 제작한 대신맨숀의 경우 1973년에 완공된 공장, 시장, 아파트가 함께 있는 주상복합건물이다. 비록 건축사는 신원 미상이나,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스킵플로어 방식의 코어, 공중브릿지, 옥상 정원, Y자형 주거평면 등 지금에도 보기 어려운 디자인을 볼 수 있다.

대신맨숀(건축사 미상) 태양의집(김중업 작품)

이처럼 건축적인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은 철거되기 전에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런 건축물을 찾아서 발굴할 수 있는 최전방에는 건축사가 있다고 본다. 건축사는 건축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사로서 건축문화를 발전시키고 계승할 의무가 있다.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건축물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여 후배들에게 물려줄 기록이며,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 김창길 Kim, Changgil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김창길 건축사 ·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경기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90년도부터 ㈜창우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2001년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설계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집행위원장 및 서울시건축사회 회관건립TF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설계작으로는 폴라리온 스퀘어(경기도 건축문화상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번동 탑메디컬센터, 박순용 정형외과 사옥, 신일라이프건설 사옥, 성북동 한옥 리모델링 등의 작품이 있다.
yakob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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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_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숨겨진 소나무, ‘송은(松隱)’

Special talk
The hidden pine tree in the middle of Gangnam, ‘Songeun’

이은석 교수 · 기현철 NID 본부장 · 피에르 드 뫼롱
Lee, Eunseok · Ki, Hyunchul · Pierre de Meuron
경희대학교 ·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HdM

ST송은빌딩 © 정지현

6월 14일 화요일 오후에서 저녁 사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9층 김정철 홀에서는 서울과 스위스를 잇는 특별한 온라인 화상 대담이 열렸다. 한국에 세워진 HdM의 첫 건축물 ‘ST송은빌딩’을 주제로 서울에서는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 스위스에서는 HdM을 이끄는 듀오 중 한 명인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가 자리해 이번 프로젝트 준비 초기에 고려했던 맥락부터 건축물의 예술성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에서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를 기다리던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부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은 마침내 화면 속에 드 뫼롱 건축사가 나타나자 인사를 건넸다.

“잘 들리시나요?”

“예 잘 들립니다.”

서울의 늦은 오후와 바젤의 오전 10시가 만났다. 대담이 시작됐다. 대담은 이은석 교수가 질문을 하면 드 뫼롱 건축사가 대답하고, HdM의 한국 측 파트너였던 정림건축의 기현철 본부장이 필요할 때마다 첨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 ▲외형과 볼륨 ▲재료의 사용 ▲예술적 효용성에 대해 대담이 진행됐다. 대담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6월 14일 오후 정림건축 9층 김정철 홀에서는 ST 송은빌딩을 주제로 한국과 스위스를 화상으로 잇는 특별대담이 열렸다.

반세기 전에는 없던 입지 강남…
도심이라는 맥락에서 강력한 존재성 갖길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하 이)_ 먼저 이번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유럽의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중에는 미국과 홍콩에 지사를 두고 세계 전역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HdM도 그러한 사무소 중에 하나인데요. ‘ST송은빌딩’은 한국에 세워지는 HdM의 첫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건축사가 새로 접하는 지역의 건축물을 맡게 되면 그 지역의 특성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접근하는 HdM 만의 방식은 어떠했고, 어떤 인연으로 송은문화재단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이하 드 뫼롱)_ 우선 확실히 할 것이, ‘ST송은빌딩(이하 송은빌딩)’이 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아니고 첫 방문도 아닙니다. 다만 이전에 서울에서 계획 중이었던 프로젝트들이 실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송은빌딩은 우리가 대한민국 서울로 복귀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때, 설계 단계에서 그 작품에 대한 인식·이해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HdM에서 내부적으로 조사를 먼저 진행하는데 사이트에 대한 데이터나 기능적인 법과 관련된 부분, 또는 건축물로서 도시계획의 일환으로만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아우르는 마음, 심리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송은’에서는 정치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극동지역에서 미·중·일·러 등 거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중견국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관심을 갖고 바라봤는데요. 한국은 어떻게 보면 스위스와도 비슷한 입지를 가진 국가입니다.
경제 관련해서도 관심을 갖고 조사했는데, 한국은 많은 대기업들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매우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입니다. 송은빌딩이 위치한 강남지역은 5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개발되지도 않았던 지역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역학관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_ 건축물이 들어선 강남지역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는데….

드 뫼롱_ 그렇습니다. 서울과도 같은 극동아시아 대도시들을 살펴볼 때 건물 교체 주기가 빠른 지역이며, 건축물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송은빌딩처럼) 공적인 기능을 띄는 건물은 수명이 더 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상가들보다 지속가능성, 연속성이 가능하기에 수명이 더 길 수 있습니다.

_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서 ‘송은’의 기업 이미지 또는 맥락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드 뫼롱_ 건축주 측도, 우리 HdM도 이 건축물의 표현이 강력하길 원했습니다. 문화적 기능뿐 아니라 도심이라는 맥락 안에서 강한 존재성과 입지를 갖길 원했던 것이지요.
우선 도시적 맥락은 매우 일반화돼 있었습니다. 도산대로 주변 건축물은 대체적으로 기능적이고 유리와 철근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파리나 비엔나의 큰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균일성은 없었지요. 또 주변 건축물의 높이도 역사도 소재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송은빌딩이 들어설 입지는 도로 언덕의 가장 높은 위치였고, 빌딩의 높이와 관련된 법적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건축적인 표현이 강한 설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가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에게 ST송은빌딩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 기반
이번에도 파트너 정림건축 도움으로 많은 난관 극복

_ 한국 측 파트너 정림건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림건축이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드 뫼롱_ 정림건축은 건축주의 선택으로 저희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위스가 아닌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항상 그곳 파트너사와 협력합니다. 해당 지역의 조건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의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하 기)_ 정림건축의 역할은 기술적인 문제와 법규의 제한에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법규와 심의 인허가 절차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결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일조사선 제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적정 층고를 찾아야 했고, 천정 속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소방, 전기, 기계설비 검토를 기획 단계부터 정확히 진행했습니다. 구조에서는 삼각형의 형태가 만드는 경사진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경사진 기둥, 층고 확보를 위한 포스트텐션보, 지상 1층의 개방감을 위해 기둥을 최소화하는 방법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유리창을 설치하는 방법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저희 소속 디자이너가 HdM에 직접 파견돼 실시간으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드 뫼롱_ 설계에 들어가면서 우선 법적인 제한을 이해해야 했고, 되도록 빨리 건축물이 완성되길 바라는 건축주의 요구도 맞춰야 했습니다, 거기에 초기설계 볼륨이 현행법과 충돌해 현실적으로는 시행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기 본부장이 말씀하신 대로 현지 파트너사 정림건축의 도움이 이번 프로젝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물 형태의 유래에 대해 말하자면 각진 형태, 즉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규정된 각도입니다(prescribed profile). 이 프로젝트를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외부 볼륨의 최대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구조의 최소화, 실제 활용가능한 면적의 극대화 그리고 이 전체의 최적화입니다.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넓은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동시에 지하로 내려가는 램프의 천장이 됩니다. 기 본부장께서 언급하신 대로 제한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최대화·최적화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의 질문에 대답하는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가 도심 속 장소 특징 드러내
공적 성격 갖는 문화기관 설계에도 중요한 요소

_ 통상적으로 HdM 설계는 형태주의(Formalism)적 방식으로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직육면체형 볼륨 사용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첨두형 또는 고딕 형태의 날카롭고 뾰족한 삼각 형태를 선택했는데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남 건물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적인 전략이었는지요?

드 뫼롱_ 송은빌딩의 최종 형태는 좀 전에 언급한 최적화와 최대화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강제로 주어진 조건의 결과물입니다. 주어진 가상의 선을 통해 물리적인 형태가 만들어진 셈이지요.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변에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특징과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점과 강력한 표현을 통해 재현된 아이코닉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볼륨입니다.

_ 측면에서 보았을 때 뾰쪽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막혀 있는 솔리드 한 볼륨이며 최소한의 창문만 있습니다. 건축주의 요청이었는지 아니면 HdM 고유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주변의 건물들과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세 가지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아이코닉 한 상징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손으로 건물의 특징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야말로 도심 속 특정 장소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공적인 성격을 띤 문화 기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_ 이러한 건축사의 의도를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최적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사선제한이 있기 때문에 각층을 서비스하는 코어가 가장 높은 쪽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로 쪽이었습니다. 코어가 대로 쪽으로 있으면 창문을 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렇기에 매우 솔리드하고 가장 작은 창문을 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기능적인 해결 방법과 건축사의 의도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드 뫼롱_ 방금 설명한 기술적인 측면이 있고 또 기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건물 아래쪽에는 전시실이 있는데 자연광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창문이나 개구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또한 주변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은 전부 유리와 철근을 자재로 사용하고 반복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로 모습을 보면 같은 소재, 반복적인 기하학적 파사드의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주변 건물들의 유리, 철근과 대비해 미네랄 월의 외관을 선택했으며, 대로 쪽인 남쪽으로는 오프닝을 최소화시켰습니다. 건물의 가장 높은 쪽인 대로변에 건물에 필요하지만 활용가능한 공간이 아닌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이 위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ST송은빌딩 © 심기섭

여러 고려 끝에 노출콘크리트로 파사드 만들어
중요한 건 한국인들이 건축물을 실제 경험하며 만들어갈 이야기

_ 젊은 건축사들은 HdM의 파사드, 즉 외피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HdM만의 시도가 이뤄졌는지요?

드 뫼롱_ 사전에 다양한 자재를 고려했습니다. 나무, 강철, 금속, 유리 등도 고려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콘크리트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지지하는 구조가 건물 밖에 위치해 있는 셈입니다. 지지하는 구조가 노출되어 있고 그게 바로 콘크리트입니다. 단열재는 건물 안에 있습니다.
코어 파트가 외부에 있고 노출 콘크리트인데, 그렇다면 그 표면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노출 콘크리트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콘크리트를 부을 때 몰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몰드는 목재로 되어 있거나 금속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목재 몰드를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따뜻한 느낌을 주며 자연친화적입니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요소가 건축적 표현에 담겨있습니다.

_ 파사드 이미지의 이면에는 방금 말한 소나무와도 같이 어떤 상징적인 의도를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외벽의 노출콘크리트 파사드 이미지가 현대 건축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가치를 드러내기를 기대하는지, 또 어떤 심오한 상징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기대(to wish)라는 단어 선택이 매우 적절해요. 주장(to pretend)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축사는 이렇다 저렇다 또는 이렇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사회적인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회 또는 일부 집단이 건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건물, 한 건축물의 최고의 운명은 하나의 문화, 사회, 집단이 그 건물은 수용하는 것, 즉 아름답게 여기거나 관심을 갖는 것, 심미적으로 끌린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만의 문화 코드가 어떻게 이 건축물을 수용하고 인식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림건축에서 또 서울 주민들이, 한국 사람들이 이 건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만들어 갈 이야기가 더 중요합니다.

_ 송은문화재단의 뜻을 불어로 번역할 때 ‘pin caché(숨은 소나무)’라고 했는데 한자 은(隱)을 살펴보면 은둔자, ‘ermite’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을 숨어있는 소나무와 같이 후원한다는 것이 송은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HdM에게도 전달되었고, HdM은 이러한 송은의 철학을 아주 적절하게 송판무늬 거푸집을 사용해 송은문화재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을 디자인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드 뫼롱_ 건축은 연결을 돕습니다. 건축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또 건축이 교류를 도모하고 소통의 장을 연다고도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 생활하는 주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해주지요. 예술과 건축은 화합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도심 속 현실,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와도 연결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물리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정신세계와 연결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면, 매우 대단한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의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그리고 하나의 현실 속 또는 하나의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축물을 제안하거나 실현시킨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성공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있었을 때 송은빌딩의 파사드를 직접 만져보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특이해 보여서 이해하기 위해 만져본 것입니다. 또한 입구 현관(porch)이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느낌을 주고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 HdM과 정림건축의 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_ 한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역의 특성과 현대의 미술관이라는 시대성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이 미술관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는지요?

드 뫼롱_ 2021년 가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건물 오프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직접 보니 감동받았고, 건축물 자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개관 후 관람객들이 구경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물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건축물과 전시된 설치물들이 예술적인 생각과 사상 그리고 상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류와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문화를 넘어 사회적 교류의 장, 만남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서정필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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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현대적 기념성과 은둔의 상징

Architecture Criticism
A symbol of modern commemoration and hermitage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이하 HdM) 설계의 송은(SONGEUN)에서는 흔히 건축의 전근대적 관심사라 불릴 만한 건축의 ‘기념성’과 표면에서의 ‘상징’이라는 두 테마가 뚜렷이 나타난다. 여기서의 기념성은 도시 속에서 외향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송은문화재단의 이미지 전략으로써 고전적 건축 수법을 현대화한 것이며, 독특한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징의 기법은 현대 한국 사회와 관계하고 소통하려는 건축 프로그램의 내면적 의지를 표현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지정학적으로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라는 대국들의 틈새에 놓인 스위스의 산업도시 취리히와 바젤에서 성장한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 b.1950)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b.1950)은 유럽과 미국에서 풍미하던 포스트모던 건축의 시대인 1960~1970년대에 그들의 건축 철학을 형성하는 청년기를 보냈다. 알도 로시(Aldo Rossi, b. 1931)의 『도시의 건축(l’Architettura della Citta)』과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b. 1925)의 『건축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에서 주장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그들의 건축 개념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알도 로시는 서양 전통도시 속에서 계승된 유형학과 기념성의 가치를 건축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내고 있었고, 로버트 벤츄리와 같은 미국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근대 건축이 지닌 차가움과 추상적 High-Arts의 무료함에 반기를 들며, 오히려 건축에서의 상징과 유희(Symbol and Fun) 그리고 신체의 기억 등을 통해 지각되는 ‘장소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 건축적 트렌드 속에서, 진보적인 아키텍트 그룹 HdM은 모더니즘 건축에 대안을 제시하고 개선하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한계로부터도 벗어나 ‘순수한 재료의 인지’를 모색하는 현상학(現象學)과 ‘자연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관계의 복합성’ 그리고 숭고한 의고성(擬古性)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기념성(記念性)으로 오늘날의 건축 지경을 넓히고 있다.

 

<ST송은빌딩> 남동측 전경 © 심기섭

기념성의 현대적 복원
19세기 비엔나에서 장식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아돌프 로스(Adolf Loos, b.1870)의 철학과 20세기 초,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b. 1872)을 비롯한 몇몇 네덜란드인들이 주도한 최소주의, 데 스틸(De Stijl)의 추상성은 대다수의 건축사들이 플라토닉한 기본 형상에만 천착하도록 유도하였다. 초기 HdM의 작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현대건축이론가인 쟈크 뤼캉(Jacques Lucan, b. 1947)은 이들의 최근 작품에서 나타나는 강한 수직적 볼륨을 두고서 “새로운 의고주의(un nouvel archaïsme)”1, 즉 고풍스런 볼륨을 채택하려는 경향성이라고 평가한다. 초기 작업에서 한동안 유지했던 미니멀한 직육면체 상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예민하게 자신들이 도그마로 삼았던 초기의 작업 태도를 털어내고, 이제는 타문화권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업적 프로그램 홍보에 더없이 효과적인 도시 속의 기념적 작업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도쿄의 프라다 플래그십 빌딩(2000-2003)을 준공하면서 HdM이 “절대적으로 흥미 없는 도시적 맥락 속에서, 즉 제로에서 우리는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2라고 말한 것을 보면 존재감을 지니고 드러나는 기념적 작업으로 HdM이 상업성에 적응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새둥지’로 불리는 북경의 올림픽 주경기장(2002-2007)에서도 그러한 존재감이 강하게 확인되듯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제안한 그들의 건축이 대부분이 의고적이고 기념적이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하는 송은에서 HdM의 작업이 고딕 형상의 의고적인 기념성을 지향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HdM은 초기에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칭하며 상징주의를 회피하는 건축, 즉 “비재현적 건축(non representative)”을 추구하려 했고, 미니멀한 상자 구축을 지향하였는데도 그들 작업 속에 로버트 벤츄리의 상업적 전략인 “장식된 창고(decoration shed)”가 쉽게 환기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하지만 주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건축물의 존재감은 국제주의 양식의 한계인 익명성의 대안으로서 기념성이 제안되었고, 건축이 거대한 대지와 무미건조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강력한 지표처럼 인식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미니멀 아티스트 도날드 저드(Donald Judd, b. 1928)의 단순 명료한 오브제들이나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b. 1939) 또는 리차드 롱(Richard Long, b. 1945) 의 대지예술이 지향하는 위상학적(topologique)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HdM이 설계하고 그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한 ‘시그널 박스’는 도시 속의 황량한 대지인, 텅 빈 바젤 기차역 선로 위에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는 현대적 오브제이다.
이처럼, 현대도시 서울의 강남도 국제주의 양식의 직육면체 유리 상자들이 도열하고 있는 획일화된 도시이며, 이 무표정한 강남의 대로변에서 송은은 단순한 볼륨의 독특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다. 중세 고딕 성당에서 추구하던 기념성이 하늘에 닻을 거는 수직적 건축 행위를 통해서 낮은 곳의 인간과 높은 하늘을 관계 지으려던 경건한 종교성의 표현이었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기념성은 경제적이고도 실용적인 세속적 전략의 산물이다. 삼각형의 첨두 볼륨은 이 지역 사선제한의 법규적 한계를 풀어내어 최대의 용적을 끌어내려는 경제성에서 비롯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세 도시 속에서 드러난 고딕 성당과 유사한 의고성을 지니며 뚜렷한 실용적 기념성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정면 벽의 대칭성은 코어가 단면적으로 가장 높은 쪽에 위치해야 하는 기능적인 요청에 그대로 순응한 것이지만, 대부분 강남지역의 빌딩들이 각자 편한 대로의 입면을 표현하는 것에 반하여, 송은은 불투명(solid)하고 육중하게 도시에 박히고, 강한 대칭(symmetry)의 미학으로 정면을 구성하여 서울 강남이라는 현대도시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으로 드러난다.

 

내재된 자연의 상징과 소통하는 감각
헤르조그는 자신의 글 ‘자연의 숨겨진 기하학(The Hidden Geometry of Nature)’에서 자신들의 건축적 태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양한 역사적 형태와 혼종 문화가 조합하는 가벼운 절충의 복합성이 그들의 새 관심사라기보다는, 진지하게 “자연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체계가 지닌 복합성(Complexity)”3을 체감하고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송은의 외부 마감 작업에서, 액체화된 석재의 성질을 지닌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소나무란 재료의 특징을 촉촉한 표면에 눌러 전사하여 경화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하는 현상을 흔적으로 남겼다. 이처럼 “오브제는 스스로 언어를 제공한다. 그리고 오브제의 내재적 형성 재료들과 그것들의 구현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재료가 건축의 그대로의 지표(signifiant brut)로 부를 수 있게 정립되거나 재정립된다.”4 송은을 방문하는 누구나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으나, 송은(松隱), 마치 은둔하는 소나무와 같이, 무명 예술가 발굴 사업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려고 한 ‘송은문화재단’의 경영 철학을 HdM은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라는 한국의 지역 파트너 건축사를 통해서 잘 전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들의 작업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던 예술가들의 방식을 거부해 왔었다. 상징적 측면은 전혀 우리 작업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5라며, 비록 취리히 건축과 학생 시절 상징의 건축사 알도 로시가 그들에게 가르친 교육적 영향이 중요했었고, 그로부터 건축 보는 방법을 전수했음을 인정하더라도, 건축이 도시와 관계 맺는 부분에 대해서는 로시의 방식들을 거부했다. 이는 그들이 알도 로시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처럼, 건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은에서는 내재된 소나무의 이미지를 외향적인 건축물의 표피 위에 중의적인 상징의 언어로써 재정립하려 했다. 이것은 결국 동양에서 고상하게 여기며 계승해 오는 겸양과 은둔의 철학, 즉 송은문화재단의 사회환원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건축사들의 의도가 이 건축 작업의 소나무 결 이미지를 통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HdM은 모든 것을 추상화하고 비물질화하는 모더니즘의 이상적 추상화 표현 방식으로부터도 거리를 둘뿐 아니라, 풍토적인 컬러와 역사적 장소의 얄팍한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구상화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가벼운 재료 인식에서도 벗어나, 더 다채롭고도 깊이 있게 재료의 특성을 관찰하고 발굴하여 새롭게 그들의 건축에 부단히 적용하려 한다. 그들과 가까이 교류하는 건축사 아네트 기공(Annette Gigon, b. 1959)의 주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어휘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물들(choses)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사물, 재료, 실체들의 직시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관찰하고 만지고 비교하고 적응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 속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수법이다.”6 라며 자연과 더불어 따스한 자연 현상을 드러내는 참신한 재료를 찾아 지각하는 현상학적 건축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건축물은 물리적인 오브제이지만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또한 보이거나 아니 보이는 것이라도 주변과 부단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7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감각만이 어떤 감각보다도 우선하여 건축 예술의 영역 속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HdM은 송은의 독특한 소나무 거푸집 문양 외피를 제안하면서 시각적 감각을 넘어, 호기심을 동반한 촉각의 경험으로 심리적인 온기를 강화할 뿐 아니라, 오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건축이 사회적으로 주변 도시와 더욱 다양한 감각으로 접촉하게 한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송은 건축과 프로그램에 내재된 문화 예술 활동의 기능에도 부합하는 효과이다.

 

1.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88쪽
2. Willam J.R.Curtis, 「The nature of artifice, a conversation with Jacques Herzog」, “El Croquis” no 109-110. (Herzog & de Meuron, 1998-2002), 27쪽
3. Jacques Herzog, 「The Hidden Geometry of Nature」 (1988), in Wilfried Wang, “Herzog & de Meuron”, Zurich, 1992, 145쪽
4.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20쪽
5. Ibidem. 124쪽
6. Annette Gigon & Mike Guyer, 「The Grammar of Materials」, Mattias Bram과의 대화, “Daidalos”, 1995년 8월호, 「Magic of Materials II」, 53쪽
7. Eunseok Lee & Hyunchul Ki, “건축사” 2022년 7월호, 「A conversation with Pierre de Meuron」

 

글. 이은석 Lee, Eunseok 경희대학교 교수

이은석 경희대학교 교수

1987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1996년 파리 국립 제1대학 판테옹 소르본느를 졸업하고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국립 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프랑스 정부공인건축사(D.P.L.G.)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대표작 중 ‘손양원 기념관’은 2019년 Architecture MasterPrize(AMP)를 수상하였으며, ‘새문안교회’는 2020년 AMP, Architizer A+Award를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2021년 국립한국문학관 국제설계공모와 2022년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국제설계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한 바 있다.
komalee@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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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키움센터_논현다함께키움센터, 강남다함께키움센터(역삼), 도성다함께키움센터

논현다함께키움센터, 강남다함께키움센터(역삼), 도성다함께키움센터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방과 후나 방학 등의 돌봄 공백 발생기간에 돌봄이 필요한 만 6~12세 아동을 돌봐주는 서울시의 초등 돌봄시설입니다. 2018년 6월 성북구(장위1동)에 1호가 시범 개소된 후 초등돌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키움센터는 서울시와 관할구(지자체)가 협력해 운영·실시하며 접근성을 중시하는 일반형(80제곱미터 이상 소규모), 지역아동센터와 협업해 마을권역별 돌봄거점으로 운영하며 긴급·주말 돌봄기능을 강화한 융합형(210제곱미터 이상 중규모),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지역대표 특화 돌봄시설이자 문화·예술·체육과 부모교육 등을 강화한 거점형(1,000제곱미터 이상 대규모) 시설 세 가지로 나뉩니다.

올 3월 2일 서울시 우리동네키움센터는 총 200개소가 운영 중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키움센터 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학부모의 96%가 센터 이용에 만족하고 88.6%가 경제활동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연말까지 초등돌봄 수요를 고려해 지역별 우리동네키움센터를 균형있게 설치해 총 275개소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돌봄시설의 중요성이 차츰 높아지는 가운데, 월간 <건축사>가 건축사 작업으로 서울시에 개소 완료된 우리동네키움센터를 지면에 장기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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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_ 조국 부흥의 마을, 상동읍 구래리 중석마을

Disappearing village _ Ilgwang Mining Village,
The village of national revival, Jungseok Village in Gurae-ri, Sangdong-eup

강원 영월군 상동읍은 1970~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의 하나였던 중석(重石) 광산 중 가장 대규모 광산이 있는 곳이다. 특히 광산이 있었던 구래리는 광산의 규모가 가장 크다.
상동광산은 1916년 4월에 발견되고 1937년에 일본 고바야시광업 회사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국영기업인 대한중석으로 운영되면서 1970년대 전 세계 중석 시장의 8%를 차지하고 한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60%를 차지했다. 이곳을 통해 파생된 많은 가공산업은 대한민국 산업부흥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값싼 중국산 중석으로 수출이 급감하고 1992년 6월 채굴이 중단되면서 이곳도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1994년 2월 민영화 이후에도 인수기업인 거평그룹의 부도에 이어 몇 차례의 인수와 퇴출을 거쳐 결국 2000년 11월 지금의 금속가공 다국적 기업 IMC 그룹에 인수되었다. 1971년 인구가 총 2만 2,600명 정도로 번창하며 영화를 누렸던 이곳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광산의 재개가 이루어지지 않아 올해 5월 기준으로 인구가 1,005명으로 줄어들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인구가 감소한 작은 마을로 바뀌었다. 광산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곳곳에 폐가와 폐상가들이 버려져 있고, 고요한 적막 속에 1970, 80년대 모습으로 남아있다. 영월군이 이곳을 추억의 광산 역사거리로 조성하여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드는 시도를 했었고, IMC 그룹의 알몬티대한중석이 최근 새로운 채광 작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최소한의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광산의 재개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중흥은 기대할 수 없고, 마을을 떠날 수 없는 고령자들만 남아 마을은 쇠퇴로 인한 퇴로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학생 수 2,000명으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진행했던 구래초등학교도 지금은 7명의 학생을 5명의 선생님이 가르치고 있다. 학교 뒷산에 있는 꼴두바위가 있다. 조선시대에 송강 정철 선생이 훗날 이곳 첩첩 산골에 많은 사람이 살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광산 개발을 예언한 것이라고도 한다. 꼴두바위는 지금도 소원을 비는 바위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까치발 거리
이곳은 전성기를 누리던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인근에 극장은 물론 고급 요식업소들이 성업 중이던 말 그대로 영월지역 최고의 번화가였다. 지금은 거의 대다수가 폐상가가 되어 있고, 일부는 주택으로 바뀌어 상권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영월군의 관광 재생 사업으로 거리는 새롭게 채색되고 새로운 시설들이 조성되었지만, 거리의 모습은 마치 영화 세트장과 같다.

캐낸 광석 중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던 상동광업소의 선광장
채굴 중단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대한중석의 폐공장들은 인수업체인 이스라엘 IMC그룹 알몬티에서 채광을 재개하면서 다 철거되고, 거대한 축대와 잔여물만이 과거의 영광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이곳의 중석은 아직도 1억 300톤의 매장량이 있어 앞으로 200년간 채광이 가능한 양이고, 세계 평균의 2.5배에 달하는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다. 현재 텅스텐은 코발트·리튬·니켈·망간과 함께 5대 핵심 광물로 꼽힌다. 이런 전략적 광물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폐가로 남아있는 300여 채의 광산사택은 한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직장 대한중석의 사택이었지만, 지금은 오래전 희미한 영광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상동성당은 1959년 10월 21일 건립되어 광산지역의 노동자와 주민들의 삶을 이끄는 구심점 구실을 해 왔다. 채굴이 중단된 후 신도 수가 줄어들어 1993년에 공소로 격하되기도 했지만, 여전한 이 마을의 역사물로서 마을 공동체의 핵심이다. 2021년 1월 1일 화재로 상당한 부분이 소실되기 전까지 근현대 등록문화재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마을의 쇠퇴와 더불어 이곳의 역할도 끝난 것일까?

걱정 말아요 그대

– 전인권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