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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을 국가가 진다? 때로는 분담하는 것도 지혜

Does the state take all responsibility?
But sometimes sharing is wisdom

대한민국의 건축사 산업, 특히 설계 산업의 구조가 건강한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수많은 건축 관련 발주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내용이지만, 공공 직영의 경영적 성과는 운영의 비효율성은 물론이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공이 운영하는 순간, 다양성과 공정성 그리고 우열이 아닌 분배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공공이 운영하면서 민간처럼 속도와 효율을 강조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산간 오지의 국민도 국민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더라도 전기도 보내고,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성별을 흡수하고 균형 있게 운영해야 하는 것이 공공의 의무이며 사명이다.
공공의 운영이나 직발주는 민간에 비하면 업무 효율성이나 융통성이 없다. 문제는 공공 건축을 운영·발주하는 공기관이나 지자체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한다는 점이다. 세금이나 각종 부담금, 운영자금을 전적으로 공공이 운영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세금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런 고민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었고, 정부 재원이나 지자체 재원 등 세금으로 진행되는 건축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설계공모 대상 확대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하나의 성과다. 이전의 발주 공무원의 영향력으로 진행된 공공건축 설계와 달리 공개적인 설계공모로 선정된 공공건축의 질적 향상은 지난 몇 년간의 성과로 입증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공개적인 설계공모를 통한 설계선정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물론 심사에 대한 시각은 다르지만.
그런데 이 정도면 만족할 상황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계단 올라섰다면, 이제는 좀 더 세밀하고 깊이 있는 결과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방식도 대상도 확대하고, 보다 근본적인 출발점부터 재고해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세금을 무한정 사용하기보다는 효율적 운영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의 장점과 공공성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반드시 공공이 발주하고 운영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운영 심사를 통한 재정지원으로 운영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상당하다. 보건이나 치안 관련 시설의 경우는 공공의 운영이 필요한 반면 노인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등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완전히 민간에서 운영하는 것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준 공적 조직이 될 수 있는 협동조합이나 복지재단 같은 조직에 위임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물론 지속적인 운영감시와 감독을 통해 지원금 반환이나 회수, 또는 엄격한 징벌 등의 책임감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공공직발주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 절차뿐만 아니라 운영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당연히 공정한 제3자의 건축 설계 심사를 통한 건축사 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설계에 대한 행정 단축과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고, 심사 선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질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각종 공공적 성격을 가진 시설뿐 아니라 임대 주택을 포함한 공공 주거시설까지 확대해야 한다.
전문성과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공공직발주의 압박감으로부터 공무원들을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들은 일선에서 뛰는 실무자가 아니라, 행정 지원과 기획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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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닭실마을 청암정

Cheongamjeong in Bonghwa Daksil Village

중앙선이 준고속철도로 연결되면서 경상북도를 여행하기가 정말 편해졌다. 청량리-영주 간 기차 한 시간 사십분, 영주역에서 승용차로 삼십분, 석천계곡에 도착했다. 소나무로 가득 찬 숲 속에 맑은 물이 흐른다. 청암정이 있는 유곡리(酉谷里), 닭실마을에서 내오는 물이다. 계곡을 앞에 두고 석천정사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마을 입구였다고 한다. 개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십여 분을 걸으면 높지 않은 야산을 배경으로 한 닭실마을이 펼쳐진다. 마을의 왼편, 단풍나무와 회화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 청암정 지붕이 보인다. 2007년 지어진 박물관 마당을 거쳐 북측 문을 들어서면 단촐한 맛배지붕의 충재와 단청을 한 청암정이 보인다. 정자는 연못 가운데 거북모양의 바위에 아름다운 지붕을 펼치고 서있다. 마루에 앉았다. 500년전 조선 중기, 곧은 절개의 선비가 남긴, 공부하던 마루에서 단풍나무 너머 초록으로 펼쳐진 논을 바라본다. 남겨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글. 이관직 Lee, Kwanjick (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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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역할·직무 대중 인식 환기, 방향과 과제 “건축은 삶을 그리는 문화, 건축사 역할에 대해 일상의 쉬운 언어로 대중과 친근하게 소통해야”

Directions and tasks for arousing public awareness of roles · duties of architects
“Need to communicate with the public in a friendly way but simple everyday language about architecture―the culture of life, and the role of architects”


일시 2022년 7월 13일
장소 넥서스 플래그십 서울 갤러리

참석자
홍성용 건축사(월간 <건축사> 편집국장/ 건축사사무소 NCS lab)
김창균 건축사(주.유타 건축사사무소)
임형남 건축사(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홍만식 건축사(주.리슈 건축사사무소)
최연송 기자(KBS)


지난 7월 13일 넥서스 플래그십 서울 갤러리 옥상 라운지에서 월간 건축사지가 마련한 좌담회가 열렸다. 주제는 ‘대중매체를 이용한 건축사사무소 마케팅 전략’. 임형남 건축사, 김창균 건축사, 홍만식 건축사, 그리고 본지 편집국장인 홍성용 건축사와 최연송 KBS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 환기와 제고, 이를 위한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건축을 하는 것은 건축사뿐 아니라 건축주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건축이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 건축을 문화로 다루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건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지, 건축사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마케팅을 통해 이를 알리는 것 또한 건축사의 역할이자,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 패널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건축사가 조명되며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전문직업인으로서 건축사의 역할 ▲사람의 삶을 담는 건축 설계의 중요성과 필요성 ▲건축 과정에서 비롯되는 즐거움 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어긋난 시작과 건축사에 대한 대중 인식 제고 필요성
다양한 매체 노출로 점차 변화 중이나 시작 단계에 불과

홍성용_오늘은 크게 미디어에서 건축사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대중들이 보는 건축에 대한 시각에 건축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건축하는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은지와 더불어 사회에서 건축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다뤄보고 싶은데요. 관련한 내용을 모두 편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임형남_우리나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불행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더 착하거나 똑똑해서 건축사에 대한 인식을 갖고 대우를 해주는 것이 아니고요. 일본은 처음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회 직능들을 잘 구분하고, 역할분담이 세팅되는 과정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시기가 없었죠.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사회 시스템이 바뀔 때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 보니 건설사를 중심으로 한 물량 중심의 개발주도 방식이 건축계를 주도했고, 그때 전면에 나서 큰 활약을 한 것이 현대건설 같은 건설회사들이죠. 이외에 김수근, 김중업 같은 일부 엘리트 건축사들이 건축계를 주도했고요. 하지만 건축사들의 활약은 10%도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 90%의 물량을 건설회사가 주도하면서 건설=건축의 등식이 성립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지금은 조금씩 건축사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있는데, 아직 시작단계라 그런 문제를 현장에서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홍성용_말씀하신 내용을 언급하자면 다큐 두 개쯤은 나올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변하기 시작했을 때 출발점에서 우리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기에 나중에 용역을 하는 자로서의 건축사만 남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지금 그걸 회복하고 건축사로서의 지위를 찾으려니 굉장히 어려운거고요. 조금 빗나간 얘기일 수 있지만 유럽 대륙은 산업혁명으로 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건축하시는 분들이 공간과 관련한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빈민 주거 문제에 대해 왕족, 황태자부터 나서서 서민주거위원회 같은 클럽을 만들어 기부금을 받는 식으로 빈민 주거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영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당시 리더가 되는 아키텍트들의 참여가 있었고요. 그 과정에 건축하는 이들이 개입해서 어떻게 보면 유토피아적인 사고, 궁극적 미래에 대한 지향점을 고민했던… 일본도 나아가야 할 방향 같은 근본적 고민을 했던 시기에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그 고민을 놓치고 표피적으로 접근한 거고요. 6.25 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건축사들이 발언한 적이 없고, 의사결정에 개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러면서 수요와 공급에 포커스가 맞춰져 당장 주거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회사가 부각되며 자금 마련을 위한 선분양시스템이 도입되고, 그러다 보니 건축사는 도면을 그려서 납품하는, 어떻게 보면 조력자정도로 취급되기도 하고…. 김수근 선생이나 이희태 선생 같은 분들은 그들과 다른 시장을 본 거죠, 대중과는 먼. 초 엘리트그룹의 건축사들은 대중과 다르다는 생각에 괴리감이 커지고, 일반인들은 공급하시는 건축사분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건축과 건설이 동일선상에 놓이게 됐고요. 건축의 근본적 고민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데, 여전히 대중들은 모르는, 발주처와의 관계맺음에 가까워 보이고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홍만식_일상에서 일반적으로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생긴 지 약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의든 타의든 저희의 역할들이, 특히 90년대 초반 학번을 가지신 분들이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저희들은 이전 선배 학번의 엘리트 건축을 보고 자랐고, 그런 것을 닮아가다가 정작 사회에 나와 완전히 다른 현실에서 건축을 하게 된 거죠. 결국 자연스럽게 소규모건축에 관심을 돌리면서 일반인들과 접점이 많이 생기는 상황들이 발생했고요. 그 과정에서, 큰 미디어 매체와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SNS나 다른 다양한 매체와 관계를 맺으며 일반인들과의 접점도 굉장히 늘어났거든요. EBS 같은 채널에서도 건축이 노출되는데, 건축이라는 어려운 과제들의 접점을 쉽게 설명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건축사라는 직업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대중들이 받아들인 건축에 이면의 고민 흔적이나 디테일에 관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건축사가 무엇을 하는지 근본적으로 대중이 이해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희가 역할을 해온 게 분명한데, 권력이라는 속성 자체에서 건축사적인 면모나 영향이 보이는 단어가 없거든요. 정부에서 발표되는 것은 일부의 어떤 훌륭한 건물, 공공건축이나 대부분 수량에 관련돼 있고요. 아쉬운 점은 그 과정에 어쨌든 한 줄이라도 건축사의 역할이 들어간다면,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하면서 그렇게 일반인들에게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관리하기 힘든 부분들이니까요.

김창균_10년 전부터 건축이 여러 매체에 더불어 소개되면서 상황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과거 건축의 최고 미덕은 싸고 빠르게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었죠. 2011년에 나온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이 굉장히 화제가 되면서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알려졌고, 그런 식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점점 젊은 건축사들의 활동이 넓어지고 저변화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편으로 큰 틀에선 건축사의 역할이 미흡한 것 같고 아쉽지만 뿌리 부근에서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고, 많은 일반 대중들의 이해도 거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젠 그냥 부동산, 재테크로서가 아니라 건축이나 인테리어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고,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임형남 건축사님도 EBS 프로에 출연하면서 공을 세우셨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건축의 대가를 키울 것처럼 건축교육을 했지만, 정작 그런 퀄리티의 건물은 몇 없는 거잖아요. 서울시의 통계를 보니 2025년 정도면 강남에 재개발·재건축되지 않은 건물들의 노후도가 피크라고 합니다. 그럼 그걸 자력으로 독립 재건축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물량이 대기순번을 기다리고 있고, 건설사에서 다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기에 우리가 한편으로 홍보를 잘 하면서 앞으로의 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우리의 스타트가 늦은 건 당연하지만, 현재는 일본보다 물량이 훨씬 많다더라고요. 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마케팅 측면에서도 한 스텝 한 스텝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최연송 KBS 기자

임형남 건축사

# 대중이 건축사 역할 인지하는 경우 드물어…
이를 알려주는 것도 건축사 역할 중 하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윤리의식 등 갖춰야

홍성용_다양한 건축주를 만나면서 어떨 때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시나요?

홍만식_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건축주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건축사들에게 엄청난 디자인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냥 가진 금액 안에서 좋은 건축물을 요구하더라고요. 근데 한편으론 건축사에 대한 이해도가 명칭마저도 설계사에 그치고, 인허가 등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과 그걸 앞으로도 두고 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 매우 막막합니다.

임형남_가끔은 사무소에 와서 일을 맡긴다고 하는데, 설계비를 줘야 한다는 걸 모르더라고요. 종이 몇 장 주는데 종이 값을 그렇게 많이 받냐면서. 그럼 전 천 값이 얼만데 몇백만 원을 주고 옷을 사냐고 얘기하죠. 설계는 시공비에 포함된 줄 알고 종이 값으로만 쳐요. 건축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거든요. 우리 직업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그런 바탕에서 건축설계를 한다는 게 가장 웃긴 거예요. 희망적인 건 그래도 조금씩 건축사사무소를 찾아온다는 거죠. 설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거든요. 사실 건축은 문화로 다뤄야하는 분야에요. 우리나라에서는 건축이 공학으로 비춰지고 또 평당 얼마인가 하는 인식이 있는데, 외국에서는 문화로 인식하고 제일 많이 보는 게 건축물이에요. 오래된 유적이나 문화적·예술적 유물이죠. 그런 부분을 방어하지 못한 게 문제고, 또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설계해서 집을 지은 이들은 소수의 부자들이고, 나머지 90%인 동네의 많은 집들은 대부분 건설회사 주도로 지었다는 게 제일 큰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바뀌고 있고요. 얘기를 나누거나 설계하는 과정에서 이래서 설계를 해야 하는구나, 설계가 중요하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보통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단편적 지식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본 이미지 정도에 그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그걸 꿰어 주는 게 저희들이 할 역할이죠.

김창균_요샌 많은 분들이 그런 얘길 하세요. (미디어에서 건축에 대한)설명을 해주니까 그냥 단순한 방 세 개, 욕실 두 개가 아니라 집이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구나, 하는 이야기요. 건축주들도 즐거운 과정이고 왜 이제야 시도했을까 하는 얘기들을 하고요.

홍성용_방송에 조금씩 노출되면서 설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고 저런 직업이 있구나 하는 식으로 인식이 바뀐 것 같아요. 좀 다른 얘기지만, 주택은 개인의 기호가 다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커버하시나요?

임형남_저는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가성비가 굉장히 낮은 설계 방법이죠. 그 시간에 건물을 작업하면 좋겠지만, 건물에는 그 사람들의 인생이 들어가는 거거든요. 괴롭기도 하지만 즐거운 과정이죠. 그러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한데, 학교에서는 멋있는 결과물과 구조 등 건축의 모든 제반 요소들을 배울 수 있지만 만나서 대화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죠. 만나서 숨겨진 내면을 듣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그 사람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툴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홍만식_저도 건축주를 만나면서 사회성을 습득했는데요, 건축사들과 학생들마저도 관련 인식 자체가 부족해 보입니다. 지금 부동산이 저희 영역을 많이 침범하고 있는데, 부동산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우리가 부동산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리드했으면 훨씬 좋은 건물이 많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단계에서 나머지 관계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도록 건축사들이 먼저 개입해야 합니다. 이 부분도 마케팅 차원으로 선행되면 좋을 것 같고요.

홍성용_두 분이 말씀하신 내용은 건축사들이 각성해야할 부분이라 봅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 타인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홍만식 건축사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자산에 대한 흐름을 저희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리드할 수 있더라고요. 상업·민간건축에서 지가가 비싼 강남을 예로 들면, 지가의 10분의 1 정도를 설계에 투자해 20%를 벌면 돈이 더 되니 그쪽은 오히려 더 새로운 디자인을 원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죠. 근데 땅 값이 저렴하면 그만큼 지가 대비 설계비가 높아지니 어느 정도 선의 금액에서 설계를 할 수 있는지가 사람들의 관심사인 것 같아요. 그들 입장에선 전 재산이 투입되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건축사들의 디자인 꿈을 실현하는 데 큰 금액을 투자하긴 어려운 거죠. 경우에 따라 건축사들이 그런 고민도 해줘야 하고요.

임형남_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라 오래된 임상과 수련기간을 거쳐 의사가 되고, 윤리적 의식이 필수잖아요. 건축사도 5년제 학제에 건축사사무소에서 10년 정도 수련해 사무소를 내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건축물이나 집을 잘못 지으면 누군가에게 큰 손해를 주기도 하고, 안전이 달려있으니까. 건축사로서의 윤리의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본을 위해 최대의 수익을 내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동네에서 묵묵히 일하시거든요. 일본은 동네건축도 정말 좋죠. 우리도 동네의 이름 없는 건축사들도 훌륭한 건축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 그들에게 건축설계를 맡긴다는 건 당신(건축주)한테 큰 도움을 준다는 것, 그런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연송_제가 진행하는 것 중 창작자로서의 이름을 찾아드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건축물의 창조자, 창작자를 찾아보자는 취지의 기획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건설사가 아닌 건축사들이 있다는 것과 그 분들이 진정한 창작자라는 걸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의 마케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

홍성용 편집국장

# ‘일반’적 언어를 사용한 실용적 접근 필요
도심에서 만나는 건축물, 그 자체로 마케팅 요소 될 수 있어

홍성용_도심의 건축에서 건축사들과 대중들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임형남_저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수님과 부처님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길 해 줬죠. 일부 건축사들은 현학적 이야기를 하거나 어려운 개념을 말해야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쉽게 말하면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건축사는 건축사의 얘기를 하고,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거예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엘리트 의식인 거죠. 건축사와 대중이 유리되게 만드는 데는 이 언어의 문제도 있다고 봐요. 서로 대화가 안 되는 거죠. 사람들에게 알려진 분들은 드물게 일반인들의 언어를 쓰는 거죠. 우린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한다 생각해요. 왜 못 알아듣냐고 탓할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합니다. 입면도가 뭐고, 건축과 집은 무엇인지 설명해 줘야 해요.

최연송_건축사에겐 당연한 지식이 일반인들에겐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죠. 말씀하신 부분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끼고 있고요. 저희 프로그램 PD도 어느 게 입면도이고 평면도인지 몰라 거꾸로 쓰는 걸 봤습니다. 언급하신 엘리트 의식을 좀 내려놓고 실용적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창균_최근 젊은 건축사들은 완공한 건물마다 머릿돌로 누가 설계했는지를 다 표시하더라고요. 꼭 그것만이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런 만남도 괜찮다고 봐요. 저도 얼마 전 강원 태백에 3층짜리 건물을 완성했는데, 탄광촌 사시던 근처 어르신들과 주변 사람들 반응이 다 ‘왜 서울까지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서 그 큰돈을 쓰냐’는 식이었는데 지어놓고 나니 싹 바뀐 거죠. 서울은 미디어 노출도 잘되는 편이지만 지방은 좀만 더 가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식도 괜찮은 것 같고, 지역 쪽에 계신 건축사도 건축물을 알리기 위한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스타 롤 모델 앞세우기도 한 방안
건축사 삶 자체적 붐업하고 사회적 이슈 다뤄야

최연송_어떤 직업이 인정받으려면 롤 모델 같은 스타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건축계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김중업 선생님의 작품 리스트를 정리해 봤는데, 김중업박물관에 남은 책이랑 다 대조해보니까 대표작이 아닌 작품들은 연도도 다르고 명칭도 명확하지 않더라고요. 방명록, 비망록의 기록만으로는 확인하기 부족하고요. 그런 점이 너무 아쉬워서 영상 기록물인 브이로그를 이용하는 방법도 제안해 봅니다. 또 올해는 김중업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니 공장이 (김중업)박물관으로서 사회에서 재활용된 모범적 사례로, 더해 건축계 롤모델로서 붐업을 시키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홍성용_동의합니다.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브랜딩 돼서 전체가 인지되는 건 어려운데, 그중 한명을 픽업시켜주면 탁 트여서 뒤따라가는 효과들이 있잖아요. 저는 임형남 건축사님의 캐릭터가 강한 점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누가 봤을 때도 디자이너라는 캐릭터가 보이거든요.(웃음) 대중들은 그런 모습을 방송 매체(EBS 건축탐구 집)를 통해 접하는 거고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분들이 건축계에서 픽업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창균_EBS ‘직장탐구 팀’에서 건축사사무소 편이 방영됐을 때도, 다들 “변호사는 아는데 이런 직업세계(건축사)가 있는지 몰랐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아는 것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다르고, 무언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다루면서 그런 것들을 자체적으로 붐업해야 할 것 같아요.

홍만식_지속성도 중요합니다. 길게 보면 대중하고의 소통 방법도 더 다양해져야 하고, 사람들과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져야한다고 봐요. 예전부터 분명 얘기해 왔지만 지속되진 않았죠. 제도나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중과의 소통이 끊임없이 진행됐어야 하는데, 조금 나가다가 주춤주춤 끝나는 상황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실무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지금은 대중들이 저희가 알려주는 정보를 접한다기보다, 온라인을 잘 다루는 젊은 세대들이 주체적으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최연송_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건축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은 간단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이들 안 하시는 것 같고요. 직원들 중 감각이 있는 분들에게 업무를 경감시켜주고 짧은 형식의 브이로그를 올리게 하면 어떨까요? 건축사들이 사회적 도시나 건축적 문제 이슈에 나서지 않으시는 듯 한데 그런 접근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홍만식_건축사들이 사회적 이슈에 동참해서 그 안에 있어야 존재감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 시점을 잘 못 찾기도 하고,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창균 건축사

홍만식 건축사

# 일상으로 다가가는 홍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길
건축사 역할 객관화하는 마케팅 진행해야

홍성용_건축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 건축할 때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임형남_제가 건축을 시작한지 23년이 됐는데 많이 바뀌었죠. 예전엔 그냥 “이런 걸 그려주세요”하면서 찾아왔다면 지금은 예전과 달리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어떤 건축사의 무엇을 봤는데 이 사무소는 이걸 하기에 찾아왔다는 구체적인 니즈를 이야기하죠.

김창균_지금은 깊은 수준의 얘기가 통하는 건축주들이 많아진 것들이 긍정적입니다. 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많은 정보를 소화하고 오시는 분들이 꽤 많이 늘었고요. 개인 차원에서 유튜브에 정보를 알리는 건축사분도 있고, 일반인들이 그걸 습득해서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건축사에게 일을 맡기려고 하고요. 과거에 비해 확실히 바뀌었어요. 이제 건축주들도 마냥 이미지만 보고 찾아오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전엔 소개를 받고 오는 게 흔하고, 이미지만 보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죠. 세종시 같은 경우 근래 10년 동안 제법 많은 젊은 건축사들이 자리를 잘 잡고 있고, 인상적인 좋은 건물을 만들어내고 있죠. 지역에서부터 활성화돼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것 같아요.
저는 협회에 좀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 지금도 골목길 건축산책전 같은 전시가 있지만 이외에도 좀 더 지역별로 뽑고 순회하면서 전시하는 거예요. 협회에서 하는 게 아니라 시청이나 구청 같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로비 등에 건축이 골목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지나가며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직접 다가가는 홍보가 필요한 거죠. 후배 건축사들도 판에 계속 끌어들이고 그러는 게 결국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거거든요.

홍성용_맞아요. 우리 건축계에서는 디자인 변화나 성향 트렌드 등을 활발히 공유하지 않고 있는데, 영국의 아키그램 특별전에 건축이야기를 카툰으로 공개했을 때 엄청난 인파가 관람했다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대중들에게 씨앗은 있는데 우리 건축계가 그걸 피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우리 스스로 사람들을 좀 더 자극할만한 건축계 아이디어나 상황을 만드는 것도 대중들과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난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창균_과거에 비해 주택 허가 등을 위해서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알고 오시는 분들도 많다보니 적정한 대가를 받기 위한 홍보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건축사들이 하는 일을 나열해서 이런 건 이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고 디자인은 플러스 알파라는 그런 명확한 프로세스가 객관화될 수 있도록요. 그래야 찾아오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기준을 알 수 있고요.

홍만식_건축사사무소에서 하는 일들이 건축사법에도 기획부터 계획 등까지 있는데, 건축주들은 객관적으로 건축사가 어떤 성과물을 만드는지에 대해 불투명한 형상인거 같아요. 성과물을 보여주고, 그게 일반적으로 통용될 만큼 객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는 하나의 역할마저도 세분화돼 있는데,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세분화 된 부분에서 대가를 더 지불할 만한 역량을 못 보는 거죠. 정작 저희는 하고 있는데 드러나지 않는… 저희가 제야에서만이라도 목소리를 계속 내야 합니다. 지금은 젊은 분들도 글을 쓰면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많고요. 대중의 인식이 바뀌면 자본가들도 따라갈 테니, 사람들의 요구에 그냥 따라갈 건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역시 어떤 계기가 돼서 그러한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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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 요소 더한, 공간에 묻어나는 편안한 가구 디자인 추구_류윤하 · 이학준

Pursuing comfortable furniture design in the space, adding formative elements

류윤하 · 이학준 Ryu, Yoonha·Lee, Hakjun 스탠다드에이 실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접하거나 생각하는 완성된 건축물의 이미지는 단지 설계도면이 실재 구현된 모습에서 그치지 않는다. 완성된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꾸미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조명과 가구, 혹은 조형물이나 벽지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 역시 건축의 일부분으로, 건축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에 건축 관련 디자인 회사를 직접 찾아가는 자리를 마련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목재를 주요 소재로 한 생활가구를 주력으로 하는 스탠다드에이는 OEM 가구가 아닌 디자인부터 재료 선정과 가공(제작), 마감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오리지널 가구와 비스포크(맞춤) 가구를 취급하는 디자인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다. 제작자의 노력과 고민이 제품의 수명과 직결된다는 신념 아래 소재와 기능에 대한 그동안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정직함이 묻어나는 가구를 추구하는 이들. 현재는 파주에 제작소를, 서울 합정역 인근에 쇼룸을 두고 있으며 다양한 개인 또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난 7월 8일,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두 명의 실장을 만났다.

 

# 쇼룸과 제작소 동시 운영…
생활가구 주력으로 직접 디자인·제작한
오리지널 가구, 비스포크 제품 취급

홍성용_스탠다드에이는 어떤 곳인지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류윤하_스탠다드에이는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판매, 배송하는 가구 브랜드입니다. 이외에도 비스포크(고객의 개별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라고 해서, 원하는 디자인을 의뢰하시면 구조적으로 풀어 가구로 만들 수 있는 형태를 뽑아내 만들어드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인테리어하시는 분들이나 건축하시는 분들이 조금 규모가 있는 일들도 많이 의뢰해주셔서 여러 일들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성용_주로 어떤 가구를 다루시나요? 지금도 직접 가구를 제작하시는지요?

이학준_쇼룸과 제작소 두 곳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작소에서 만들어져 납품되는 형태의 생활가구를 주축으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식탁, 의자, 침대 등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가구 등이고, 이외에 상업공간 가구들도 같이 디자인·제작하고 있어요. 저희는 목재를 주로 사용하는데, 원목이 수분에 취약한 편이라 주방가구는 작업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덜 하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류윤하_지금도 저희가 직접 가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직접 생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퀄리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걸 중요시해서, 직원들끼리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스탠다드에이 류윤하 실장

스탠다드에이 이학준 실장

# 조그만 목공소에서 시작…20여 명이 함께하는 회사 규모로 발돋움
미래를 위한 고민, 편안한 가구에 조형적 요소 더한다

홍성용_사업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류윤하_10년 정도 됐습니다. 브랜드의 처음은 2011년 10월에 조그만 목공소로 친구들끼리 의기투합해 재미있게 가구를 만들어보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도 많잖아요. 그러다 점점 스케일이 커져 직원도 생기고 회사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지금은 디테일 등 공방에서 다루기 어려운, 회사에서 할 만한 디자인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홍성용_디자인을 다루는 곳으로서, 스탠다드에이의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류윤하_저희는 가구디자인을 오브제로서의 디자인과 가구가 공간에 묻어있는 공간 친화적 디자인,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여태껏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웠고요. 눈에 확 띄는 가구보다는 공간에 가구가 편안하게 오랫동안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디자인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스탠다드에이(STANDARD.a)로 지었고요. 원래는 편하게 보통의 디자인을 잘, 좋은 비례로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계속 그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브랜드가 좀 심심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부터 조금 오브제(조형)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려 노력하고, 그런 비전을 갖고 움직이고 있어요.

홍성용_커스터마이즈에 준하는 시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겠네요.

류윤하_네. 그런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물론 단품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도 많이 오시지만, 인테리어나 건축을 시작할 때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본인 취향이 있으신 분들이잖아요. 본인의 취향을 이미지나 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그걸 갖고 상상을 해보는 거죠. 이런 느낌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도면이나 이미지로 먼저 제안해드리고, 이후 수정을 해가면서 작업하고 있거든요. 물론 비용들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원하는 형태와 취향으로 나오는 거죠.

홍성용_보통 필요에 따라서 예산을 잡는 경우가 많지만 삼천에서 사천,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을 잡고 시작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가격대에 따른 패키지가 마련돼 있나요?

이학준_그런 패키지는 따로 없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침실공간에 신경 쓰시는 분들은 침실에서만 예산을 크게 쓰시는 분들도 있고, 거실공간을 중요시하면 침실은 그냥 기본적인 것만 갖추고 나머지는 다 거실에 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도 상담을 할 때 거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에게 필요한 가구는 없다고 설명을 드려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가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상황이 존재하니까요. 예전에는 패키지 같은 느낌의 가구를 찾는 분들이 많은 추세였다면, 요즘은 각자 취향에 따라 “이런 느낌을 위해서 어떻게 디자인하면 될까요?”라고 말씀하시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아요. 비용보다 취향을 앞세운 접근이 더 강하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홍성용_20년 전만 해도 가구는 검증되지 않은, 또는 브랜드가 아니면 당시에는 높은 가격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좀 시장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류윤하_그런 분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설득하는 과정도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아요.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건 사람들이 가구에 돈을 쓸 여력이 생겼다는 거죠. 예전엔 사람들이 10~20만 원짜리 의자가 비싸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50~60만 원짜리 의자도 집에 좋은 의자 하나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관심이 생기고 그것이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타이밍이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성용_국내에 비슷한 규모의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또 가구업체 쪽의 롤 모델이나 지향점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이학준_인원이 4~5명 정도 되는 공방 브랜드는 많지만 저희는 지금 직원도 스무 명 정도 되고 회사와 공방 중간의 규모에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에서 비슷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롤모델이라 하면…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들, 국내보다는 해외의, 이를테면 일본의 마루니 목공이라든가 유럽의 프리츠 한센, 프레데리시아 이런 브랜드들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합정역 인근의 스탠다드에이 쇼룸

# 클라이언트의 명확한 의사표현 중요
사전 협업 또는 체크…디테일한 가구 배치를 위한 필수 작업

홍성용_일반인들과 비교했을 때 건축사 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같이 일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과 편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학준_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일반 고객들보다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하기 편하고, 단순히 제작을 대행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프로젝트들을 보고 디자인스튜디오로 이해하시고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기에 큰 틀만 지정해주고 가구는 전적으로 맡기는 분들이 많으세요.

홍성용_주장이 특히 강한 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류윤하_네, 맞아요. 취향이 있으신 거니까요.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좋다고 하면 더 어렵거든요.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정확하게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해주시는 편이 편합니다. 보통은 믿고 맡겨주셔서 외곽 사이즈 정도를 알려주시고, 손잡이나 내부디테일은 저희가 마감하고 있습니다.

홍성용_건축과 가구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별한 가구를 디자인하시는 입장에서 건축이나 설계를 하는 건축사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학준_사람이 앉는 데 충분할 걸로 예상해서 넉넉한 사이즈를 잡는다든가 했던 것들이 오히려 커서 불편한 경우도 있는 반면, 지나다니는 통로기에 좁게 잡았다는 부분을 보면 의자 등을 놓거나 뭔가 하기에 어려운 애매한 사이즈가 많은데요. 몇 번의 필터링을 통해서 충분히 수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보니, 그런 것들을 설계단계에서 함께 의논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설계가 다 끝난 후에 구매만 하러 오시는 경우에는 사실 그런 것들을 맞추기 쉽지 않죠. 그냥 공간에 맞춰 사이즈만 변경해드리다 보면 아무래도 비례감도 좀 덜하고,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류윤하_저는 가구를 하는 사람과 건축을 하는 사람의 비례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스케일이 인간 전체를 바라보느냐, 혹은 부분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구를 하는 저희들은 센티미터나 미터 단위가 아닌 몇미리미터 단위의 디테일을 가지고 씨름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의 어떤 공간을 꾸미고 있다면, 그런 것들을 설계단계에서 가구를 의뢰하시거나, 가구를 계획하시는 단계에서부터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스탠다드에이 쇼룸 내부 모습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스탠다드에이는?
소재와 기능에 대한 경험으로 주의 깊은 선택을 통해 만족할 만한 품질을 이끌어 내는 것을 원칙으로 정직한 가구를 제안하며, 오리지널·비스포크 가구를 제작·유통하고 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길 10 0507-1409-0106 / standar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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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_ 망고, 탱고, 알로하네 부부와 고양이, 강아지가 함께 사는 집

Architecture Criticism _ Mango, Tango, Alohane
A house where a couple live together with cats and a dog

묘한 생김새를 가진 집
경사진 도로를 따라 펼쳐진 단독 주택들을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길의 끝자락에 오묘한 형태를 가진 집이 나타난다. 지붕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 주택들이 백색의 외단열 시스템이나 벽돌 마감인 것과는 다르게 은색의 골강판이 집의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부의 적삼목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집의 형태는 마치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산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고 하는데,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소박하지만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주 부부를 닮아있다.

둥근 배려가 만든 공간
묘각형 주택의 평면은 오각형이지만 모난 구석이 없다. 직각을 이루는 한쪽 모서리를 제외하고 오각형의 둔각 모서리를 내부에서 곡선으로 정리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내부에 들어왔을 때 처음 시선이 닿는 계단의 휘어진 벽면이 자연스럽게 2층의 라운드 처리된 보이드로까지 이어지며 계단을 이루는 벽 자체가 하나의 큰 미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선 벽뿐만 아니라 주방 중앙에 배치한 아일랜드 싱크도 벽처럼 휘어져 있어 유연함을 더한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묘각형 주택에는 최소의 필요 공간을 제외하고는 벽으로 구획된 공간이 없다. 실제로 문이 달린 방은 2층 하나뿐이고 나머지 기능은 층별로 구분되어 있다. 한정된 면적에 개방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나에게는 건축주와 건축사의 작은 배려가 깃든 것이라 느껴졌다. 집의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 이동하고 숨기도 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벽을 나누는 일을 피하고, 문이 필요한 곳의 아래쪽에는 펫 도어를 설치하여 닫혀 있지만 언제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묘각형주택> © 노경

햇살이 머물다 가는 집
자연스럽게 휘어지거나 꺾이면서 유연한 평면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본 묘각형 주택의 매스는 오히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2, 3층의 골강판 부분에는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을 1~2개만 두어 재료가 가진 요철과 위아래로 이어지는 선적인 느낌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채광이 유리한 방향에 창이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집의 기능이 층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이 집의 평면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배치로 보인다. 또한 위로 좁아진 사선형 볼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두꺼워진 벽이 깊이감을 만들며 북측의 안산의 풍광이 한눈에 담긴다.
묘각형 주택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으라면 1층의 간 살창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창을 열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오는 마당의 풍경이다. 해가 좋은 날 마당 앞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창문 너머의 햇살은 곡선의 벽을 타고 더욱 깊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마당의 풍경을 넓게 안아주는 듯하다.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데는 건축주 부부의 의기투합도 한몫 한다. 마당은 조경가인 아내의 실험대이자 캔버스로서 식물들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계절을 만끽하기도 한다. 또한 목공이 취미인 남편은 집안에 필요한 가구나 소품들을 직접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집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창작물보다 집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고양이의 모닝 루틴
하루 동안 묘각형 주택에 머물렀는데 고양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낯선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 둘째 탱고는 특히 더욱 그랬다. 첫째 망고는 경계하면서도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 평소의 본인으로 돌아가 테이블 위를 어슬렁거리거나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다음날이 되어 탱고의 재미있는 모닝 루틴을 보게 되었는데, 건축주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1층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어느새 탱고가 계단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있다. 그러고는 계단 옆에 있는 화분으로 이동해 풀을 뜯어먹는다. 탱고는 채식하는 고양이인가? 조용한 공간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새로운 가족과 공간 변화
건축은 사용자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이용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묘각형 주택에도(예측했거나 하지 못했던) 약간의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가족으로 잔망스러운 강아지 알로하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한곳에 머물며 숨거나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와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강아지가 만난 묘각형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궁금해진다. 고양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엄청 큰 이 캣타워가 너무 좋아요.’
내가 만난 건축주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듯하다. 그만큼 지금 공간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들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박지현 건축사가 얼마나 촘촘하게 건축주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설계를 진행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비유에스의 작품에는 늘 평범하지 않은 소박함이 담겨있다. 지금도 개인의, 다수를 위한 공간을 그리고 있을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 황희정 Hwang, Heejung 야무진 건축사사무소

황희정 건축사·야무진 건축사사무소

영남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환경설계를 공부했다. 건축사사무소 삼간일목을 거쳐 2019년 야무진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였다. 2020년에는 도시 전문 매거진 요즘도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건축과 도시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의 꿈담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thumd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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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키움센터_강일 융합형 키움센터, 고덕2동 우리동네키움센터

강일 융합형 키움센터, 고덕2동 우리동네키움센터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방과 후나 방학 등의 돌봄 공백 발생기간에 돌봄이 필요한 만 6~12세 아동을 돌봐주는 서울시의 초등 돌봄시설입니다. 2018년 6월 성북구(장위1동)에 1호가 시범 개소된 후 초등돌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키움센터는 서울시와 관할구(지자체)가 협력해 운영·실시하며 접근성을 중시하는 일반형(80제곱미터 이상 소규모), 지역아동센터와 협업해 마을권역별 돌봄거점으로 운영하며 긴급·주말 돌봄기능을 강화한 융합형(210제곱미터 이상 중규모),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지역대표 특화 돌봄시설이자 문화·예술·체육과 부모교육 등을 강화한 거점형(1,000제곱미터 이상 대규모) 시설 세 가지로 나뉩니다.

올 3월 2일 서울시 우리동네키움센터는 총 200개소가 운영 중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키움센터 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학부모의 96%가 센터 이용에 만족하고 88.6%가 경제활동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연말까지 초등돌봄 수요를 고려해 지역별 우리동네키움센터를 균형있게 설치해 총 275개소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돌봄시설의 중요성이 차츰 높아지는 가운데, 월간 <건축사>가 건축사 작업으로 서울시에 개소 완료된 우리동네키움센터를 지면에 장기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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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시간이 멈춘 마을, 서천군 판교면 판교마을

Disappearing village _ A village where time has stopped,
Pangyo Village in Pangyo-myeon, Seocheon-gun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마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으로 어느 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이 살았던 건물들만 남은 듯한 풍경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을 시간이 멈춘 마을, 타임캡슐 마을이라 부른다. 판교마을이라 부르는 현암리(玄岩里)는 서천군 판교면의 15개 리(里) 소재리로서 면사무소와 치안센터, 우체국, 농협 등 각 기관이 있으며 판교중학교와 오성초등학교가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서천군 동면에 속해있다가 1943년에 판교면에 편입되었고, 현암리의 지명 어원은 현재도 남아있는 ‘검은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현암리가 판교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된 것은 1930년 일제강점기에 식량 수탈과 징용 등을 위해 만든 장항선의 판교역이 들어서고 1932년 판교리에 있던 장터와 면사무소, 주재소 등 행정기관이 옮겨오면서였다. 전북과 충남의 상권이 이곳으로 집중되고 1970년대 제재·목공, 정미·양곡·양조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판교장(板橋場)의 규모가 충남의 3대 시장으로 커지고 충남에서 가장 큰 우시장(牛市場)이 생기면서 주변 지역 중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에 따른 대도시 집중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떠나고, 2008년 11월 27일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역사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4차선인 국도 4호선과 충남 서천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교통과 경제의 지리적 중요성을 잃고 경제가 급격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마을 또한 성장하던 때처럼 빠른 속도로 쇠퇴하였다. 마을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대지로 건축이 제한되면서 마치 1970~1980년대의 세월에서 멈춘 듯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조차 하나 없는 개발의 진전이 전혀 없는 곳, 마치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재 판교마을 인구는 200명이 안 되며 65세 이상 비율이 70%를 넘는다. 2021년 10월 13일에 구 판교역 주변으로 형성된 상권 지역 22,956제곱미터가 국가 등록문화재(제819호)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되어 문화 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해 왔지만, 이미 상실된 마을의 존재감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멈춤은 사라지는 시간을 내포하고 있고 개발과 파괴의 저항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라짐을 막기 위해 박제형 보존을 할 것인지 또는 새로운 변화의 지표로 삼아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숙제가 있다. 하지만 이미 상실된 마을의 존재 의미, 그리고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자연적 소멸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성장의 동력인 경제력이 상실되고 유입인구가 없는 마을은 더 이상 존재적 의미조차 상실한 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동일 정미소, 동일 주조장, 장미사진관, 오 방앗간(삼 화장 미소), 판교극장, 구 중대 본부, 일광상회 7개 건물 외에도 이곳에서는 애국지사 고석주 선생을 기념한 기념공원, 구 적십자, 의용소방대, 구 판교면 사무소, 전도관 등 30~70년대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구. 판교역
일제강점기인 1930년 11월 1일 식량 약탈과 전쟁물자 수송 징용 징병을 목적으로 개통한 장항선 역사로서, 옆 앞의 광장과 5분 거리에 오일장인 판교장이 있어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었다. 이곳은 지역민들의 만남의 장소로서 행정과 문화의 매개 장소로서 인근에 판교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으며, 판교마을의 번성기와 쇠퇴기를 만든 역사의 장소이다. 1930년대 주민 신봉균과 박동진 씨가 심은 역전 소나무는 역 광장 앞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과 전쟁과 산업화 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판교마을의 아픔과 번영과 쇠퇴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금은 그 당시 역사의 일부만 남기고 판교특화음식촌으로 새롭게 변모하여 서천9미를 맛보게 하고 있다.

판교장(板橋場)
판교역의 개통과 더불어 1932년 판교리 복판에 있었던 판교장이 이곳 현암리로 옮겨오면서 원근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물자를 사고파는 큰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곡물 의류 잡화 등을 판매하는 전통 오일장이었으며 주거래품목은 소와 세모시였는데 우시장은 광천, 논산과 더불어 충남의 3대 우시장으로, 세모 시장은 모시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저산팔읍(苧山八邑- 서천·비인·한산·홍산·임천·부여·공주·남포) 보부상들이 모시를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곳 우시장은 7~9월에 약 1,000여 마리 정도의 소가 묶여 있었고 하루에 수백 마리의 소가 거래되는 곳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을 정도였다. 우시장 주변은 소와 함께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회한과 기쁨 등으로 함께 한 정겨운 곳이었지만, 세월은 흐르고 현재는 그때의 모습을 담은 벽화만 남아있다.

옛 공회당(판교극장)
1960년대 지방 정부 홍보 및 집회시설로 사용할 공회당 건립을 추진하면서, 1961년 판교면이 우수 면으로 선정되어 지어졌다. 처음에는 지역민의 공공 행사를 위해 사용되다가 1967년부터 극장으로 활용되었다.
판교역과 판교장과 연관해서 197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는 영화 상영과 유명 코미디언 또는 가수들의 공연, 지역 콩쿠르 등 다양한 인근 지역 사람들의 문화 활동 공간으로 큰 역할을 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 보급에 따라 극장은 하향길을 걷게 되고 지금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그때의 추억을 아련하게 전하고 있다.

오 방앗간(삼화 정미소)
1930년대 문을 연 판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방앗간으로 주인의 성을 붙여 오 방앗간으로 불렸지만, 정식 이름은 삼화 정미소이다. 삼대에 걸쳐 운영했으며 상호의 삼화(三和)는 삼 형제가 의좋게 운영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담아 지은 것이라 한다. 절충식 목조구조체 독특한 외관과 함께 정미용 설비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로서 현재에도 기본적 건축형식의 원형과 내부 설비까지 작동 가능한 상태로 잘 보존되고 있다.

장미사진관
1932년에 판교면을 지배했던 일본인 부호 11명이 사용했던 곳이다. 남자 다섯, 여자 여섯이 동면 사람들 5,515명을 지배하며 농토와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 당시 일본 지주는 일본어로 일왕을 찬양하며 만세 삼창을 외쳐야 쌀을 빌려줬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의 여관으로 사용하다가 그 후 쌀가게와 사진관이 반반씩 사용하였고, 지금은 빈 건물로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마을의 유일한 2층 적산가옥으로 일제강점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일 주조장 / 동일 정미소
회백색 콘크리트 외벽에는 검은색의 세월의 때가 묻어 있다. 1932년에 지어진 주조장 건물로 이 지역 최고의 부호 박호성이 운영하던 술도가였다. 3대째 이어오다 2000년 12월 문을 닫았다. 1970년대 원활한 쌀 수급을 위해 바로 옆에 동일 정미소를 함께 운영했었다. 주조장 바로 앞 우시장과 오일장의 주막과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제공했던 곳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기서 번 돈으로 바로 옆에 판교중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판교의 현존하는 유일한 주조장으로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판교의 근대사적 상징적 산업시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촌닭집
1932년 행정기관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관공서 관련 업무인 행정문서를 작성해주는 대서방으로 사용되다 양품점·만화방·한의원·건강원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닭집으로 사용된 이 낡은 건물에는 마을 주민들의 삶이 겹겹이 붙은 채 시간이 정지된 건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건물의 뒤편에 마을의 상징인 현암 바위가 있고, 일자형 목구조로서 전면공간은 상가 용도로 후면 공간은 주택용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 오래된 간판의 글씨체들이 그 당시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서체 박물관 같은데, 이곳의 모습도 많은 글씨를 지니고 있다.

세월
– 곽재구​

사랑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세월은 가슴팍에 거친 언덕 하나를 새겨놓았다

사람들이 울면서 언덕을 올라올 때
등짐 위에 꽃 한 송이 꽂아놓았다

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을 모아 염전을 만들었다

소금들은 햇볕은 만나 반짝거렸다
소금은 소금 곁에서 제일 많이 빛났다

언덕을 다 오른 이가 울음을 그치고
손바닥 위 소금에 입맞추는 동안

세월은 언덕 뒤 초원에
무지개 하나를 걸어놓았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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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⑤ <내 아저씨(Mon Oncle)> 1958년 자끄 따띠 감독, 주연 (음악: 프랑스와 바르첼리니 & 알랑 로망/세트 디자인: 자끄 라그랑주/가구 및 집기 디자인: 앙리 슈미뜨)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 ⑤
Mon Oncle(My Uncle) (Film 1958 directed by Jacques Tati (1907~1982)
OST: Franck Barcellini (François Barcellini, 1920 ~ 2012) and Alain Romans (Roman Abram Szlezynger, 1905~1988)/Set design: Jacques Lagrange / Production design: Henri Schmitt (running time: 1h 57m)

<내 아저씨(Mon Oncle)> 포스터

<내 아저씨(My Uncle[Mon Oncle])>는 1958년에 발표된, 자끄 따띠가 만들고 주연을 한 프랑스판 코미디 영화다. 자끄 따띠, 장-피에르 졸라, 아드리안느 세르반티와 기타 주요 배우가 등장한다. <내 아저씨>는 이 연재물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문학작품에 바탕을 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만을 선정한 프랑스 영화로 택했다. 영화의 특징은 한 도시 속 두 도시 이야기로,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첨단 주택 ‘빌라 아흐뻴’을 구시가지의 오래된 중층 다세대주택과 함께 선보임으로써, 서로 이웃하는 구도심과 신흥 개발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아흐뻴 부부는 유유자적하는 윌로 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윌로 씨의 누이인 아흐뻴 부인은 그를 남편이 사장으로 있는 플라스틱 호스 공장 쁠라스탁(Plastac)에 자리를 마련해 삶에 적응하게 해 주려 하나 윌로 씨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계속해서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킨다. 결국 그 도시를 떠나게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2009년 성 꺄뜨르에 전시된 ‘빌라 아흐뻴’ 모형
© wikimedia.org _ Gaël Chardon

성 꺄뜨르 입구
© wikimedia.org

2009년 성 꺄뜨르에 전시된 ‘빌라 아흐뻴’ 모형 내 차고
© wikimedia.org _ Gaël Chardon

윌로 씨는 비현실적이지만 9살짜리 조카 제라르 아흐뻴에게는 꿈같은, 사랑받는 삼촌이다. 그는 오래된 옛 도심의 낡은 집에 살며 도보나 벨로솔렉스(VéloSoleX) 모터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니 누이 내외에게는 유유자적하는 것으로 비친다. 반면 아흐뻴 부부의 삶의 근간엔 눈에 띄는, 즉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선으로 자리한다. 일정대로 움직이는 삶, 틀에 박힌 남편과 아내의 역할, 많은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누리는 지위, 정원 중앙에 있는 조형 물고기 분수처럼 눈에 띄는 것들….

프랑스판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끄 따띠(1907~1982)의 영화에 앞서 참고로 그보다 앞 세대의 유럽 코미디 배우를 살펴보자. 주변 국가에서 활동하던 선대 영화인으로는 독일 바이에른의 카를 팔렌틴과 영국의 찰리 채플린을 빼놓을 수 없다. 카를 팔렌틴(Karl Valentin, 1882~1948)은 코미디, 광대이자 영화제작자이나 카바레티어(cabaret performer 만능 예능인)로 더 알려져 있다.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을 수상한 찰리 채플린(Sir Charles Spencer ‘Charlie’ Chaplin, 1889~1977)은 무성영화 시대에 크게 활약한 인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끄 따띠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코미디 필름 제작자로 아버지는 러시아인이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인이며 프랑스 이블린주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쳤다.

<내 아저씨>는 자끄 따띠가 총천연색으로 만든 첫 필름이자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무슈 윌로(Monsieur Hulot, 윌로 씨)는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게 보이나 순수한 사람이다. 그는 당대(전쟁 후) 프랑스인들의 현대화에 대한 열망과 팽배해 가는 소비 중심 문화와 소리 없는 투쟁을 한다. 윌로 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존의 마을과 이웃하는 개발된 신 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 <내 아저씨>는 그 해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상 외국어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을 뿐 아니라 단번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내 아저씨>에는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 격인 서로 이웃하는 구도심과 신흥 개발지라는 두 개의 대조적인 도시 풍경과 그 안에 있는 두 종류의 판이한 주택이 등장한다. 두 개의 대조적인 주택은 하나는 가상 마을인 파리 외곽에 전 자동 시스템(home automation)으로 된 만능 주택 ‘빌라 아흐뻴’인데, 화가 자끄 라그랑주(Jacques Lagrange, 1917~1995)의 디자인과 앙리 슈미뜨(Henri Schmitt)의 첨단 가구·집기디자인으로 당대를 반영한 아주 모던한 단층 고급 주택이다. 다른 하나는 윌로 씨가 꼭대기층(펜트하우스)에 사는 중층 다세대주택이다. 자끄 라그랑쥬는 1953년부터 1982년 자끄 따띠가 폐색전증(肺塞栓症:혈관을 타고 흐르는 색전[emboli]이 폐동맥을 막아서 생기는 질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영화 세트를 함께 만들었다.
‘빌라 아흐뻴’은 윌로 씨가 사는 옛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리의 가상 신 주거지에 위치한 초현대적인 기하학적 주택과 정원으로 조성된 집이다. 아흐뻴 부인은 중요한 방문자라고 여기면 조형물 물고기 입에서 물이 솟구치는 분수를 튼다. ‘빌라 아흐뻴’의 각 요소는 기능보다는 볼거리로 설계되어 거주자의 편안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거나 편안함이 아예 부재한다. 불편하게 놓인 디딤돌, 바로 앉기 어려운 의자들, 귀에 거슬릴 정도로 시끄러운 가전제품으로 가득 찬 주방에 이르기까지 ‘빌라 아흐뻴’은 모양(디자인)만을 추구하는 사회를 나타낸다. 마치 선물상자 같은 집 앞에 조성된 퍼즐 풀밭과 채색된 디딤돌이 있는 정원 그 자체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삶으로 조명된다. 건물 측면의 원형 창문은 때로는 눈동자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자동 개폐장치를 장착한 차고 문, 기능이 뒤죽박죽이며 소음이 유발되는 장치와 가전제품은 아이러니한 첨단을 보여준다.

시네마테크 프랑세 전시 포스터

© wikimedia.org _ Jean-Christophe BENOIST

영화 <내 아저씨> 캡처

당시 촬영 세트는 1956년 니스 빅토린느 스튜디오(Les studios Riviera/le studios de la Victorine)에 설치했다가 촬영이 끝나자 멸실했다고 한다. 그 후 2009년 자끄 따띠에게 헌정된 전시회 ‘자끄 따띠: 되 땅, 트로아 무브망(두 번, 3개의 악장)’이 시네마테크 프랑세(Cinémathèque française)에서 열렸을 때 소개되었고, 성 꺄뜨르에서 재현 전시되었다. 성 꺄뜨르(Cent Quatre, 104, LE CENTQUATRE-PARIS[http://www.104.fr])란 2008년 11월 개관한 파리의 공공복합문화공간인데, 시(市) 장례장(1870년 착공, 1874년 개관)이 있던 곳이다. 지번이 ‘파리 19구 뤼 듀베르비유 104번지’라서 이 문화공간을 104로 명명했다. 소장 예술로는 현대미술, 조각, 회화, 그래픽아트, 사진, 뉴 미디어 필름 건축 디자인이다. 상설전시로 알고 몇 년 전 파리 출장 당시 찾아갔더니 그때 전시 후 철거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그 후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이 ‘빌라 아흐뻴’이 재조명되었다.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제14회 국제 건축 전시회)를 되돌아보자. 주제는 ‘기본사항(The fundamentals)’이었고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 )가 총감독이었다. 여러 번의 건축 비엔날레가 동시대를 기념하는 데 집중했다면, 여기서는 ‘기본사항’이라는 주제로 역사를 살펴보고, 건축이 현재 상황에서 자신을 찾는 방식을 재구성하고 미래에 대해 추측했다. 이는 3개의 연동 전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① 주제관–‘건축 요소들(Elements of Architecture in the Central Pavilion)’, ② 아스날 관-‘몬디탈리아(Monditalia in the Arsenale)’, ③ 각 국가 전시관–‘현대성 흡수: 1914-2014(Absorbing Modernity: 1914-2014 in the National Pavilion)’로 구분되었다. 이 전시는 건축 분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했다.
프랑스의 아키텍트이자 건축역사학자인 장-루이 코언(Jean-Louis Cohen, 1949~ )의 프랑스 관 (Paris Pavilion)은 ‘현대성: 약속 또는 위협?(Modernity: promise or threat/menace?)’이 큰 주제였다. 이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각각 전시했는데 ‘빌라 아흐뻴’이 그 중 하나였다. ① 자끄 따띠와 빌라 아흐뻴: 욕망의 대상인가 터무니없는 기계인가?, ② 장 프루베(Jean Prouvé): 건설적인 상상인가 유토피아인가?, ③ 중량 프리훼브(Prefabrication) 패널: 척도의 경제성인가 단조로움인가?, ④ 그랑 앙상블: 치유의 헤테로토피아인가, 아니면 은둔의 장소인가?
장-루이 코언은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렘 콜하스의 제안대로 현대성을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성에 영감을 주어 다양한 기대, 약속,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협을 제공했다.”라고 했다. 이 특별 언급에 대한 인터뷰는 오로지 진보와 웰빙으로만 이루어진 현대성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본다.

영화 <내 아저씨> 캡처. 윌로 씨가 사는 중층 다세대주택

영화 <내 아저씨> 캡처

참고로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소주제를 간략히 살펴보자.
① 자끄 따띠와 빌라 아흐뻴: 욕망의 대상인가 터무니 없는 기계인가?
‘빌라 아흐뻴’에 초점을 맞춘 이 전시는 기계로 만든 삶의 약속과 때로는 어리석은 결과 사이의 긴장을 본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려 노력한다. 빌라 아흐뻴은 행복한 가정생활에 기여하기보다, 사용자를 조종하므로 마치 현대 단독 주택에 대한 프랑스인의 거부감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② 장 프루베: 건설적인 상상인가 유토피아인가?
작가가 오랫동안 실험한 경량 금속 정면의 일부 재현을 보여준다. 이 전시는 그가 생각한 가벼운 구조물의 전체 범위를 개발하지 못했던 설계 및 구성 요소에 영향을 미치지만, 스스로 터득한 아키텍트이자 엔지니어이며 금속 장인인 장 프루베(1901~1984)의 삶을 연구한다.
③ 중량 프리훼브 패널: 척도의 경제성인가 단조로움인가?
시테 드 라 뮤에뜨(La Cite de la Muett)8)와 유사한 르 아브르(Le Havre)9)재건을 위해 엔지니어 레이놀드 까뮤(Reynold Camus)가 디자인한 조립식 프리훼브 패널10)을 보여준다. 전후 프랑스는 많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국가에서 주도하는 프리훼브 조립 기술을 채택하여 값싼 고품질의 건물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르 코르뷔지에의 “산업을 이어받는 산업” 계획이 “매우 단조로운 풍경”을 낳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렴한 건설을 향한 유토피아적인 추진력을 형성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④ 그랑 앙상블: 치유의 헤테로토피아(다른 장소)인가, 아니면 은둔의 장소인가?
스페인 카탈루냐의 호세 루이 세르(José Luis Sert, 1902~1983)는 1942년 유진 보두앙(Eugène Beaudouin, 1898~1983)과 마르셀 로즈(Marcel Lods, 1891~1978)의 드랑시(Drancy)주택 계획을 전후 주택의 프로토 타입으로 설정했다. 이 비극적인 변화는 도시 외부와 도시에 반대하여 건설되고 현재 재조직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모호성을 반영한다.

윌로 씨는 오래된 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광장 옆에 있는 중층 주거건물 (다세대 주택)의 꼭대기 층에 산다. 구겨진 중절모, 헐렁한 코트, 우산, 파이프, 모든 게 윌로 씨의 캐릭터다. 그는 뒷모습으로 등장하고 엉성한 포즈로 서서 신문을 읽는데, 야채가게에서 포장지로 쓰려고 벽에 걸어둔 날짜 지난 신문이다. 윌로 씨가 층층이 미로처럼 꼬불꼬불 얽힌 통로를 지나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자기 방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는 장면은 전자동 주택이 불편한 것과는 다른, 적어도 불편이 편리라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 그런 불편함이다. 윌로 씨가 창문 유리의 반사를 이용해 아래층의 카나리아를 울게 하는 장면을 보면 집과 인간이 서로 활용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괄목할 만한 것은 배경음악이다. 프랑스와 바르첼리니의 이 중독성 강한 곡은 성 꺄뜨르 전시회를 배경화면으로 두고 음악에 일본가사를 입혀 일본에서는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 <보꾸 노 오지상(ぼくのおじさん, 2016)>도 있고 한국에서는 ‘나의 아저씨(2018)’라는 제목의 드라마도 있었다.

다음 호는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1910~1998)의 1957년 개봉 영화 <구모노수 죠-거미집城-(蜘蛛巢城 くものすじょう; The Throne of Blood)>를 다룬다.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수료(건축학 석사/건축학 박사)
· 건축학 박사논문(역사·이론 분야):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 독일 뮌헨대학교(LMU) 및 뮌헨공대(TUM) 수학(교환장학생)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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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아날로그의 추억

A stubby pencil, analog memories

호랑이 담배 피다 금연할 즈음, 연필을 깎아 도면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실습생 때부터 얼마간 모아온 몽당연필. 왜 그딴 걸 모았느냐구? 기인 같았던 선배 한 분께서 무조건 그러라고 해서다.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사무실에선 모든 드로잉을 할 때 샤프가 아니라 반드시 연필을 쓰게 했다. 점점 짧아지면 볼펜대에 끼워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쓰다가 검사받고 새 연필을 타 쓰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벌꿀 유리병에 몽당연필이 반쯤 채워졌을 무렵 그 선배는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취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네놈이 끝까지 설계밥을 먹을지 아닐지 내 알 바 아니나 혹여 연필 가루 계속 마시고 있다면 강산이 몇 번 변한 아주 먼 훗날, 저 몽당연필이 박물관에 갈 수도, 쓰레기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 건 너 하기에 달렸고, 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99.99퍼센트겠지만 말이야. 껄껄껄.”

이후에도 선배는 종종 취기가 달아오르면 무심한 듯 몇 마디를 툭툭 던져 주곤 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박봉에 청사진 심부름이나 다니는데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다른 길 알아보는 게 어때?” 대다수는 장난기 가득한 놀림이었지만, 간혹 진지한 눈빛으로 어리바리한 초년병의 갈피를 가다듬어 주기도 했다.
‘지금부터 틈만 나면 열심히 끄적거리는 버릇을 길러라. Graphic Thinking, 우리의 언어는 그림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화가의 그림과는 다르다. 그들의 그림은 그 자체가 완성된 작품이지만 우린 과정이다. 머릿속 생각,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그림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거라.’

이후 옮겨 간 두 번째 사무실, 설계실 벽면과 도면함에 가득한 투시도, 계획도면 스케치, 현란한 터치와 세련된 마카 컬러링, 그리고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디테일 스케치, 대체 누구의 작품인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당시 얼마 전까지 실장님으로 계셨다가 건축사가 되시어 내가 입사하기 바로 직전에 딴 살림을 차리신 분이었다. 온통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사무실 곳곳에 남아 있는 그분의 흔적들, 글과 그림, 음악을 비롯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예술적 조예, 그를 닮고 싶었다.

일전에 위의 에피소드를 잠깐 SNS에 올렸더니 멘토와도 같은 그 선배께서 얼마 전 책을 한 권 권해 주셨다. 노년의 한 건축사와 그를 존경하는 젊은 후배의 담담한 건축 이야기를 다룬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책이다. 그 속에 비슷한 몽당연필 에피소드가 있어 놀라셨다며….

언젠가는 지인 한 분께서 디지털 시대에 허름한 내 연필 스케치 몇 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외국인 건축주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남해 여자분과 결혼한 스페인 귀족 집안 출신의 젊은 이 양반은 아내의 고향에 부부의 한국 별장 겸 장모님을 위한 전원주택을 짓고자 했다. 몇 장의 스케치가 오고 가고 출국 전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설계비는 한 푼도 깎지 않았으며, 몇 가지 요구사항 외의 모든 것은 건축사에게 맡겨 주었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집이 다 지어지던 날 난생처음으로 눈이 파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와 선물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린 이후,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네 번째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당연히 기인과도 같은 그 선배의 예견은 정확했다. 0.01%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벌꿀 유리병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쓸려온 세월 속에서도 어느 한구석에 용케 숨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옛 생각도 나고 해서 병뚜껑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선반 한편에 올려 두었더니, 오가는 사람마다 유물 바라보듯 호기심을 뿜어낸다. 어느 날엔가 체대 교수 한 친구가 저걸 쏟아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가더니 며칠 후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훈련, 연습, 숙달, 뭐 이런 관련 수업 시간에 몽당연필 사진을 보여 주었단다. 내 친구 건축사인 한 인간이 진화해 가는 피땀 어린 산물이 어쩌고저쩌고…, 물론 지나친 과장과 거품을 덧칠해가며 뻥튀기를 했을 것이다.

박물관은 애초 글렀고 저런 용도라도 쓰였다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건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무엇 하나 내세울게 변변치 못한 물건들 가운데 가장 정감 어린 녀석이 될지도 모를 일, 그저 초라한 범부의 모습이 현실일망정 사실 저 몽당연필 속엔 설익어 투박했으나 푸르렀던 한 시절, 내 청춘의 땀과 추억이 녹아 있음은 분명하니까…….

 

글. 조형장 Cho, Hyungjang 건축사사무소 메종

조형장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메종

동아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양산시 공공건축가 및 부산광역시건축사회, 부산건축제 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해양디자인기술연구원 부원장 겸 전략기획본부장직 등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최근 주요 프로젝트로는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항만개발계획수립’, ‘신전항 어촌뉴딜선정 총괄계획수립’, ‘부산남항 일대 재창조 마스터플랜’, ‘홍티예술촌’, ‘해운대 파라드호텔’ 등이 있으며, 2020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jec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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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동희 Kim, Donghee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