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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자격 혁신이 필요하다

Innovation is needed for architect qualifications

의무가입제가 복원됐다. 그동안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환경이 극복된 것이다.
이제 더 중요해진 것은 바로 ‘건축사’라는 본질이다. 건축사는 누구이며, 역할과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법령에 따르면, ‘건축사’란 국토교통부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工事監理) 등 제19조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건축을 기획·계획, 설계하는 싱크탱크 지식인이며, 국가가 이에 대한 자격·책임을 부여한 법적 전문가다.
이제 우리 ‘건축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의무가입이 시행되며 역할에 대한 문제가 생길 때 더 이상 누구를 탓할 핑계거리가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건축계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1970년대 초반 월간 <건축사> 기록을 보면 각종 결의대회와 자성의 문구들이 많다. “설계·감리 위법을 하지 말자! 현장을 가서 도면 확인을 하자! 설계비를 제대로 받자!”
낯설지 않은 구호들이다. 2022년, 이 구호가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이런 행위 주체인 ‘건축사’에게 원인이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변호사와 달리 자율적 징계가 아닌 관리대상으로 처우 받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행정부가 건축사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어쩌면 자격의 출발부터 재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건축사를 배출하는 교육과 시험제도를 살펴보고, 근본적인 DNA를 바꿔야 한다. 현재 시스템은 자율적 판단의 주체로 건축사를 바라보고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바꿔야 ‘자율적 징계, 인허가,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능과 기술 중심의 자격시험과 달리 건축사의 본질인 설계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자격시험 출제·합격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국토부가 주목하는 미국식 컴퓨터 시험은 포괄적 해석 능력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기능적 테스트다. 건축사는 전문가로서 학식과 소양을 갖추고, 실무역량 함양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컴퓨터 시험은 적절하지 않다. 컴퓨터로 보지 않을 뿐이지 그동안 치러진 우리나라의 건축사 자격시험도 개별적 업무능력 평가 중심이다. 그러나 시험 과목 편성·구성 비율이 잘못돼 있다.
이젠 바꿔야 한다. 인문적이고, 직업윤리를 최소한으로 검증해야 하는 자격시험에 반드시 ‘면접을 통한 본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업에 대한 기본 개념과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다면 평가를 해야 한다. 당연히 필기-설계를 통한 테스트는 그 전에 거쳐야 하며, 실무수련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실무적으로 건축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설계해결 능력 테스트가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실무적 접근에서 건축사보 관련 ‘건축사법’ 개정도 필요하다. 단순 건축사 보조자 역할이 아닌 ‘건축사 위임’을 전제로 한 학·경력 인정으로 역할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한국적 특성에 맞게 건축사 위임을 받아 감리나 유지관리, 리모델링 검증 또는 각종 건축 조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제는 공무원이 징계위를 소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국가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전문가로서의 ‘건축사’ 환경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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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Chungdong First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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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_역사적 선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Architecture Criticism
What historical precedents give us?

수도자의 공간, 즉 수도원은 외부와 격리된 은둔자의 공간이다. 세상과 떨어져 스스로 유폐된 공간이기에 주로 깊은 산이나 외딴 시골에 건립되곤 했으며, 내향적인 중정 공간을 형성하여 고립된 위요 공간을 이루었다. 또한 수도사가 거주하는 공간이기에 하나의 셀로서, 자족적인 검박한 생활의 장소이자 영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침묵이 강조되며 개인적인 수양과 규율이 강조되는 집단생활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수도원 공간은 르코르뷔지에 같은 근대건축 거장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으며,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는 데 활용되거나 집합 주거 모델이 되기도 했다. 특히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의뢰한 쿠튀리에 신부는 르코르뷔지에게 ‘르 토로네 수도원’을 방문하여 설계에 참조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방문한 르코르뷔지에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수도원 공간은 영적 공간, 공통 생활공간, 개인 생활공간, 중정, 회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본적인 수도원의 구성 방식은 사각형 중정과 중정을 둘러싸는 회랑, 회랑의 한쪽 편에 접한 성당, 다른 쪽에 접해 있는 공동생활 공간이 있으며, 그 위층에는 기도실, 침실 등이 자리 잡았다. 크게 보면 성당의 영적인 공간과 수도사의 생활공간이 중정을 공유하며 결합한 형태인데, 가장 핵심 공간은 이 두 공간을 구분 지으며 연결하는 공간인 네 변을 가진 정원과 정원을 둘러싸고 형성된 열주가 있는 회랑이다. 내향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이를 둘러싼 회랑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하늘을 마주하는 공간이며, 내부 통로 겸 신앙을 가다듬는 순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매일 여러 차례 의례와 생활을 위해서 지나다니는 이 공간은 건축적으로 보면 강렬한 태양이 내뿜는 빛과 열주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어떻게 조성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르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도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키는 창문을 통해 빛의 변주와 공간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유명한 비유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다소 장황하게 수도원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세빛자매원’이 여러모로 전통적인 수도원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종교적인 차이도 있고, 무엇보다 시대적인 차이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공간의 구성만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건축사가 힘을 빼고 간결하게 디자인한 것을 알 수 있다. 배치나 전체 평면을 보면, 직각 삼각형에 가까운 대지의 형상에 따라 북향에 해당하는 직각 부분은 건물이 둘러싸고 남향의 긴 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열린 형상으로 배치되었다. 달리 보면, 디귿(ㄷ)자 형상으로 대지 외곽을 둘러싸고 배치되고, 중앙 부분에 식당과 친교 공간 건물이 배치되어 중정을 형성하며 한쪽은 길게 뻗어져 나와 독립된 교회당을 이룬다. 이런 중정 공간은 내밀함을 만들어 주변 공간과는 독립된 위요 공간을 만드는데, 가운데 중정은 튼 미음(ㅁ)자 형태로 엄격한 공간은 아니나, 직사각형 수변공간과 야외데크로 이루어져 정적이며 고요한 공간을 이룬다. 중정은 네 단의 낮은 계단을 통해 살짝 들어 올려져 있어 주차장 공간과의 경계를 형성한다. 식당 및 친교 공간과 1층에 사무실 공간 등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침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침실과 복도의 배치는 침실의 향(向)을 우선 고려하여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복도는 중정을 향해 시작되어 건물의 바깥쪽 면을 따라 돌아 다시 중정을 면하여 이어진다. 두 면의 침실은 외부를 향하지만, 한 면은 중정을 향해 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긴 경사로는 복도의 연장으로, 연속되는 산책로를 형성한다. 침실은 독립된 원룸의 형식으로, 작지만 독립적인 거주가 가능하게 소박하지만 밝고 깨끗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세빛자매원> © 임준영

외관은 어찌 보면 작은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기숙사 건물 같기도 하다. 벽돌로 치장된 격자형의 균일한 사각형 유닛이 반복되며, 간결하되 익숙한 외관을 이루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삶이란 무릇 일상의 반복과 익숙함이 빚어내는 풍경 아닌가. 마치 이를 웅변하듯, ‘세빛자매원’은 힘을 빼고 간결하며 반복된 입면을 드러낸다.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가장 따뜻하게 맞이할 것도 반복의 일상이 주는 여유로움 아니겠는가. 낮게 자리 잡은 건물과 2층의 옥상이 각각의 마당과 같이 사용된다는 점도 돋보인다. 긴 동선 끝에 만나게 되는 옥상 마당은 과도하게 채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정에서 벌어지는 작은 행사를 2층의 옥상과 마당에서도 함께 즐기는 모습이 연상된다. 건물의 한쪽 끝단에는 교회당이 놓여 있다. 주차장에 붙은 작은 교회당은 재료와 형태 모두에서 다른 건물과 독립된 건물로 인지되며, 외부에서 접근성도 쉽다. 한눈에 건축사가 정성을 기울인 공간임을 알 수 있는데, 다른 건물이 벽돌로 이루어진 평지붕에 가까운 건물임에 비해, 경사가 급한 박공지붕에 목재로 마감한 외장은 생활공간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이곳이 성스럽고 특별한 공간임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벽돌과 이질적이지도 않다. 내부는 콘크리트 색감으로 소박하게 마감되었고,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각형의 창문이 여럿 어긋나며 배치된다.

건축사가 역사적 선례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형식의 건물이 비슷한 공간구성을 취하며 또한 변용되는 것을 보는 건 흥미롭다. 물론, 필자는 ‘세빛자매원’의 평면을 보며 수도원의 평면을 떠올렸지만, 이 건물은 수도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우선,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적 차이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은둔과 고행의 공간과 은퇴한 선교사들의 편안한 노후를 위한 생활관이라는 큰 차이도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수도원 공간에 대한 연상을 피할 수 없음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연관성이 미약하다는 점이 아쉽게 여겨진다. 우선 가장 중심적인 공간인 중정을 둘러싼 회랑이 복도로 변용되면서 건축적 즐거움이 손상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중정을 둘러싼 각각의 셀들과, 이를 회랑처럼 연결된 복도가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수도원과 유사하고, 벽돌로 감싼 기둥이 유닛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거대한 창호가 그 사이를 메우며 변용되고 있지만, 회랑이 주는 아늑함과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 공간의 율동감은 주지 못한다. 배치나 형태 역시 전형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대지의 형상에 따라 자연스레 중정을 형성하며 향을 고려한 각 실의 배치는 가히 교과서적인 해법이라 할 만하지만, 벽돌로 치장된 익숙한 외관과 더불어 익숙함은 쉽게 상투적인 것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문뜩 스치는 물음, 역사적 선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르코르뷔지에가 역사적 선례를 통해 길어 낸 것은 어떤 고정된 유형이나 형태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마도 선례를 통해 느꼈던 감동의 정체를 고민했을 것이며, 그것이 빛이라는 가장 오래된 건축의 요소가 지닌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 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성당’에 벽과 천장을 뚫고 무수히 꽂아 넣은 빛의 대포는 역사적 선례가 던지는 물음에 대한 르코르뷔지에만의 응답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답이 아니라, 건축함에서 응답을 기다리는 마르지 않는 질문의 샘은 아닐까.

 

글. 이경창 Lee, Kyoungchang 건축비평가·구와미로 건축사사무소 대표

이경창 건축사·구와미로건축사사무소

건축비평가이자 구와미로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다. 건축평론동우회 동인이며, 제5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했다. 건축이데올로기 비평과 건축의 정치성,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여러 증상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엔 지젝을 통한 라깡 읽기에 빠져 있다.
sesang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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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키움센터_강북구 4호점 우리동네키움센터, 강북구 5호점 우리동네키움센터

강북구 4호점 우리동네키움센터, 강북구 5호점 우리동네키움센터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방과 후나 방학 등의 돌봄 공백 발생기간에 돌봄이 필요한 만 6~12세 아동을 돌봐주는 서울시의 초등 돌봄시설입니다. 2018년 6월 성북구(장위1동)에 1호가 시범 개소된 후 초등돌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키움센터는 서울시와 관할구(지자체)가 협력해 운영·실시하며 접근성을 중시하는 일반형(80제곱미터 이상 소규모), 지역아동센터와 협업해 마을권역별 돌봄거점으로 운영하며 긴급·주말 돌봄기능을 강화한 융합형(210제곱미터 이상 중규모),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지역대표 특화 돌봄시설이자 문화·예술·체육과 부모교육 등을 강화한 거점형(1,000제곱미터 이상 대규모) 시설 세 가지로 나뉩니다.

올 3월 2일 서울시 우리동네키움센터는 총 200개소가 운영 중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키움센터 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학부모의 96%가 센터 이용에 만족하고 88.6%가 경제활동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연말까지 초등돌봄 수요를 고려해 지역별 우리동네키움센터를 균형있게 설치해 총 275개소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돌봄시설의 중요성이 차츰 높아지는 가운데, 월간 <건축사>가 건축사 작업으로 서울시에 개소 완료된 우리동네키움센터를 지면에 장기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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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1930년대 근대도시 아파트, 충정 아파트

Disappearing village
Chungjeong Apartment, a modern urban apartment in the 1930s

서대문 충정로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2020년 12월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화제의 작품 ‘스위트홈’의 촬영지인 녹색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250-5의 충정 아파트는 건축물대장이 발견되기 전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1937년 8월 29일 준공된 1930년대 근대도시 아파트이다. 건립자인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서 도요타아파트로 불렸다. 지상 1층 지상 4층으로 철근 콘크리트 조의 52세대 임대아파트였다. 그 당시에도 상하수도는 물론 수세식 화장실과 응접실, 거주민을 위한 식당, 중앙집중식 난방, 샤워실 등을 갖춘 최신 아파트였다. 1940년에 당시 아파트들이 호텔로 업종을 변경했듯 이곳도 호텔로 바뀌기도 했다. 해방 이후 귀국 동포들이 잠시 사용하다가, 한국전쟁 중에는 북한군 인민재판소가 설치되어 지하에서 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 후 미군 전용인 트레머호텔(Traymore Hotel)로 사용되었고, 여기에는 CIA의 합동고문단 본부가 함께 있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전쟁에서 여섯 명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김병조라는 인물이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이 호텔의 영업권을 불하받아 한 개층을 불법 증축하여 코리아관광호텔을 열었다. 하지만 다섯 달 후 허위사실로 밝혀져 구속되고, 코리아관광호텔은 1962년 11월 23일 자로 문을 닫고 그 후 정부의 공매를 거쳐 1967년 다시 주거용 아파트인 유림 아파트로 전환되어 입주자들에게 분양됐고 1975년 충전아파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기서 불법으로 증축된 5층 부분도 분양되면서, 5층 거주자들과의 갈등으로 1979년 도시계획도로 확장공사 당시 새 건물을 짓지 못하고 건물 전면의 7~8미터를 철거하면서 대지의 모양대로 비정형에 가까운 원형은 겨우 유지했다. 하지만, 도로에 접한 전면부는 아치형의 출입구와 전면계단 등이 잘려나가면서 전면의 디자인적인 요소가 사라져서 지금의 촌스러운 전면과 출입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세대수도 19가구가 사라졌다.
2008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재개발 대상이 되었으나, 원 거주민과 1979년 건물철거 때 공용구간 무단 점유 세대, 그리고 불법 증축의 5층에 거주하는 가구주 간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무산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아파트로 공인하여 문화재 지정도 추진했지만, 이미 E등급 안전진단 상태여서 지정이 무산되었다가 2022년 06월 15일 서울시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마포로 5구역 정비계획안이 수정이 가결되면서 철거가 결정되었다. 대신 같은 위치에 충정 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기로 결정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충정 아파트는 격정의 시대들을 거쳐오면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고 원래의 모습이 잘리어 나가고 변형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시대별 건축 자료들과 그 시대 거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경성아파트(줄행랑)
1930년대부터 경성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이전의 두 배인 40만 명대가 되었고, 1940년대에는 100만 명대가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주거 문제가 발생했다. 1930년대부터 조선에 소개되기 시작한 아파트는 주택의 형태를 갖춘 세놓는 장기 숙박임대업 형식으로 1~4층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아파트를 세놓는집이라 부르기도 하고, 내부가 복도형식으로 되어있어 줄행랑이라고도 불렸다. 1930년대 경성을 비롯한 각 도시에 있었던 아파트는 조선에 주재하는 직원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또는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에게 임대할 목적으로 모두가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고 운영되었다. 그 당시 이런 곳은 경성에만 70여 곳으로 추정되나 형태나 규모 등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어느 정도 자료를 확인할 수 있고 실제 존재하는 곳은 12곳 정도이며, 현존하는 곳은 7곳이 있다(참고 자료: 『경성의 아파트』, 박철수 외, 도서출판 집).

현존하는 경성아파트
1. 미쿠니 아파트 1930 남산동 1가 지상 3층 벽돌조 사원 숙소 6호
2. 취산 아파트 1936 회현동 2가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46호 (1967년 두 개 층 증축)
3. 도요타 아파트 1937 충정동 3가 지하 1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52호 (1962년 한 개 층 증축)
4. 황금 아파트 1937 을지로5가 지하 1층 지상 2층 벽돌조
5. 청운장 아파트 1938 회현1동 지하 1층 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6. 적선 하우스 1939 적선동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7. 국수장 아파트 1940 인현1동 지하 1층 지상 2층 목조
현존하는 7개의 아파트 중 미쿠니 아파트와 도요타 아파트, 황금 아파트, 국수장 아파트는 현재도 주거시설로 사용 중이고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 중으로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곳은 미쿠니 아파트 한 곳뿐이다(참고 자료: 『경성의 아파트』, 박철수 외, 도서출판 집).

중정(中庭)
1930년대 아파트는 모두가 복도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중복식도 많이 있었다.
충정 아파트는 독특하게 중정을 가진 복도식 아파트였다. 대지가 비정형 형태라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다. 하지만 1979년 도로 확장으로 건물 일부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자기 집 일부가 허물어져 전용면적이 줄어든 주민들이 공용공간인 복도와 계단실 중정을 점유했다. 다른 주민들의 반발로 일부는 철회됐지만 107제곱미터였던 중정의 면적이 2/3로 줄었다. 지금의 중정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그 당시의 아파트 자료들이 없어 최초의 중정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역동의 시대를 내다보았을 85년의 세월이 묻어있는 창문

철골 보 / 굴뚝
1962년 5층을 불법 증축하여 코리아나호텔을 만들 때 구조보강을 위해 설치한 철골 보와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던 중앙집중식 난방을 보여주는 굴뚝.

1979년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조합원 간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고문

추억(追憶)
– 정연복​
알록달록
기쁨과 슬픔의
집을 지으며 살아왔네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롱다롱 추억들이 쌓여
세월의 강을 건너는
돛단배 되네
눈물짓던 시절도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그리움으로 남는 것
사랑하던 사람은
가고 없어도
가슴속 깊은 곳
연분홍 사랑의 추억은 남아
고단한 한세월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
오!
추억의 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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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⑥ <구모노수 죠 -거미집城-(蜘蛛巢城 くものすじょう; lit. Spider Web’s Castle)> 1957년 구로자와 아끼라(黒澤明) 감독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 ⑥
The Throne of Blood(Film 1957 directed by Akira Kurosawa(1910~1998)

제작: 구로자와 아키라, 모토끼 소지로(本木荘二郎)/ 각본: 오구니 히데오(小国英雄), 하시모토 시노부(橋本忍), 기쿠시마 류우조(菊島隆三), 구로자와 아키라/ 원작: 세익스피어 <맥베스>/ 음악: 사토 마사루(佐藤勝)/ 미술: 무라키 요시로(村木与四郎)/ 촬영: 나까이 아사카즈 (中井朝一)/주연: 미푸네 도시로(三船敏郎, Mifune Toshirō, 1920 ~1997); 야마다 이스즈 (山田 五十鈴, Yamada Isuzu, 1917~2012); 시무라 다카시(志村 喬, Shimura Takashi, 1905~1982)
The Throne of Blood(Film 1957 directed by Akira Kurosawa(1910~1998)/ based on Macbeth by William Shakespeare(1564~1616)/ Starring: Toshiro Mifune, Isuzu Yamada, Takashi Shimura (running time: 110m)

<구모노슈 죠(거미집城[거미의성])> 포스터

올해 4월호부터 12편의 영화를 선정하여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로써 반이 되었다. 박사 학위과정 중이던 과거를 돌이켜 보니, 꽤 오래 전인데 거의 마지막 학기로 기억한다. 학위과정 중이던 대학은 캠퍼스가 서울 및 수원에 있는데 건축학부는 수원이고 인문학부는 서울에 있다. 명륜동 캠퍼스는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까 궁리하던 중, 교칙을 열심히 찾아서 고고학 등 인문캠퍼스 개설강좌를 몇 과목 수강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영문학과 박사과정에 개설된 영국 문학과 현대영화 담론 관련 과목이었다. 젊은 교수는 이 과목을 영국영화나 감상하는 과목으로 안일하게 여기고 신청한 줄로 오해하고는 학기 초부터 아예 “잘못 알고 신청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쉽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물론 사무실이 바빠서 학기말에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이 수업을 통해 얻은 게 많았다.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였고, 시대를 거듭하면서 지속되어온 수많은 해석과 연극이나 영화 등 여러 가지 버전을 함께 논하는 수업이었다. 대부분의 젊은 학생들은 비교적 후대에 만들어진 마이클 보그다노프(Michael Bogdanov 1938~2017, 당시는 생존해 있을 때다)의 현대적 재해석 등에 관심을 보였다. 내 경우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재해석한 ‘거미집의 성’을 일본 성곽건축에 초점을 맞춰서 중간발표를 했다. 그 이전에도 이 영화는 여러 번 보았지만 대부분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만든 영화의 구도 등을 중심으로 이해했을 뿐이었는데, 11세기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배경인 맥베스를 16세기의 일본의 전국시대1)로 치환했다는 것과 전통극 노우(能)2) 의 구성을 차용했다는데 관심을 갖고 다시 보았다. 2007년 당시 초안을 했던 내용이 2022년 8월호 한국건축역사학회 기고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마침 영화모임의 일정도 우연히 일치하게 되어 동떨어진 내용보다는 일관성 있는 게 나은 것 같아 줄거리나 서술 등 일부는 같은 문장을 활용한다. 이 글의 초안에는 촬영지에 대해서는 미처 서술하지 않았으나, 보충하자면 당시 후지산에 거대한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을 했고 날씨가 좋으면 산 아래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세트였다고 한다. 또 하나 주인공이 장렬하게 죽는 마지막 장면 촬영의 후일담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몸 옆에 꽂았는지에 대해 영화모임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촬영 전에 화살에 줄을 매달아 당기고 그것을 거꾸로 돌려서 화면을 구성하기로 각본에 되어있고 연습도 했는데, 감독이 그냥 촬영을 감행하는 바람에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그 덕에 주인공 배우의 놀라움이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 것 같다.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을 때 <시민 케인(1941)>을 만든 거장 오슨 웰스(1915~1985)가 이미 <맥베스(1948)> 제작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그 계획을 연기했다가 뒤늦게 1957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사진 1> 거미줄 숲. 영화 <구모노슈 조> 캡처(이하 동일)

<사진 2> 모노노케 요파

 

영화 줄거리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 ‘거미집 성’, 구모노수 죠(蜘蛛巢城)의 성주(城主) 즈츠키 쿠니하루(都築国春)는 북관(北の館)의 주인 후지마키(藤巻)의 모반으로 옹성을 결의한다. 그러던 중 와시즈 다케도키(鷲津武時)와 미키 요시아키(三木義明)의 활약으로 형세가 역전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 반란군을 제압하고 성주의 부름으로 성으로 귀환하던 무장(武將) 와시즈와 미키는 ‘거미집 성’ 근처 거미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우연히 숲 속의 모노노케(物の怪) 요파(妖婆)를 만나게 된다.<사진 1>, <사진 2> 모노노케는 와시즈가 곧 북관(北の館)의 주인이 될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쿠슈(國守: 옛날의 지방장관, 곧 城主)가 되지만 그 뒤를 잇는 것은 미키의 자손이라고 예언한다. 또한 미키는 제1요새(一の砦)의 대장이 된다고 예언한다. 성에 도착한 친구인 두 사람은 성주 즈츠키로부터 포상을 받고 모노노케가 예언한 직책에 임명된다. 그 후 와시즈는 북관을 방문한 즈츠키를 살해하고 성주가 된다. 다음으로는 자객을 보내 미키를 죽인다.<사진 3>, <사진 4> 모노노케의 예언에 사로잡힌 와시즈는 거미줄 숲이 공격하지 않는 한 성(城)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회임(懷妊)한 와시즈의 처 아사지는 사산(死産)을 하고 미치고, 발광하는 아사지에 놀라 허둥대는 시녀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달아났던 미키의 아들은 노리야수 장군과 세력을 규합해 거미집 성(구모노수 죠)을 공격한다. 그들은 군사력의 보호를 위해 숲의 나무를 잘라 위장하고 진격한다. 움직이는 숲에 놀란 병사들, 사방에서 날아드는 부하들의 화살세례. 이리저리 피하던 와시즈의 목을 뚫는 화살 하나. 온몸에 화살을 맞은 와시즈는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3)

<사진 3> 모노노케의 예언에 따라 와시즈는 고쿠슈가, 미키는 제1요새의 대장이 된다.

<사진 4> 북관의 내·외부 모습과, 와시즈와 그의 아내 아사지

<사진 5>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

 

영화의 구성
같은 화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같은 화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성문의 돌담(石垣), 성의 폐허(廢墟), 자욱한 안개(漂う霧). 안개가 걷히면서 기둥 하나가 클로즈업되며 기둥에 새겨진 ‘구모노수-죠 폐허(蜘蛛巢城址)’라는 글자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역사가 남긴 폐허를 통해 인간의 욕망의 끝은 무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사진 5>
같은 합창으로 시작하고 같은 합창으로 끝난다. 시작의 합창은 이야기(모노가타리, 物語; 전설)를 서술한다. -여기에는 일찍이 위풍당당한 성(城)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見よ妄執の城の址・魂魄未だ住むごとし・それ執心の修羅の道・昔も今もかわりなし」 ‘보아라 욕망에 사로잡혔던 성의 폐허를· 혼백만이 아직 떠도는 곳· 그 집요한 살육의 길·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코러스가 끝나면서 「여기 거미집성이 있었노라(Here Stood/Spider webs Castle)」는 자막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종결부의 합창은 영화 시작의 이야기를 되풀이함으로써 우의(寓意)를 강조한다.

영화는 시작에서 끝(終)까지 23개의 장(chapters)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3~5분 정도의 길이이고, 짧은 것은 1분 10초, 긴 장(障)은 약 10분 정도 된다. 노우(能)의 공연요소가 영화 전체에도 적용되고 각 장에서도 적용된다. 전체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죠(序), 하(破), 큐(急)의 템포로 구성한 듯하나 때로는 각 장에서도 느린 동작과 갑작스러운 반전이 있다. 영화 전체에서 뿐만 아니라 각 장에서도 시작과 끝 장면이 반복되기도 한다(예: 9장의 시작과 끝).

 

일본의 전통극 노우(能)4)와 <구모노수 죠>
구로자와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현하는데 미술, 분장 및 배우의 동작에서부터 음악까지 노우의 양식을 발상의 기점으로 했다고 한다.<사진 6>

영화에 사용된 노우의 요소로는
① 남성 합창: 영화 시작과 끝날 때의 합창으로, 구모노수 죠의 환상적인 무대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입구 및 출구의 역할을 한다. 노우가 끝날 때 대미를 장식하는 키리(切り)이다.
② 노우 장면: 슈라노우(修羅能)「타무라(田村)」_16장 연회장면에 삽입된 늙은 무장(老武將)의 춤사위와 우타이(謠)의 장면은 실제 노우이다.<사진 7>, <사진 8> 대부분의 슈라노우는 패전의 고통을 다루는 것이 많은데, 「타무라(田村)」는 가치슈라(勝修羅)라고 부른다. 귀신을 퇴치하는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축언의 맛이 짙어서 ‘슈라 축언(修羅の祝言)’ 또는 ‘군대 축언(軍隊の祝言)’이라고 부른다. 늙은 무장(老武將)의 춤과 우타이(謠)의 가사를 주목하면 감독의 연출효과를 볼 수 있다.
「역신을 섬긴 귀신도(逆臣につかえし鬼も)」라는 대목에서 와시즈 다케도키는 움칠한다. 앉아 있던 아사지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나서 와시즈는 극을 끝내라고 소리친다.
이 우타이(謠)의 내용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년)의 무장(武將)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758~811, [後시테])가 여행하는 승려(와키)앞에 나타나서 천수관음보살의 불력(佛力)의 덕으로 일찍이 자신이 스즈카 산(鈴鹿 山中)에서 귀신을 퇴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군(大君)을 배신한 역신(逆臣)과 그를 섬긴 귀신(鬼神)은 그래서 근절되었다(멸망했다)는 이야기인데, 와시즈 부부는 자신들이 한 행동이 있어서 이 우타이가 귀에 고통스러운 음악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렇듯 구로자와는 연회에 삽입된 우타이의 이야기까지도 영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끔 했다.

<사진 6> 노우(能) 무대의 구조

<사진 7> 슈라노우-타무라

<사진 8> 도끼벌 마감의 기둥

③ 노우 장면의 재현: 거미줄 숲에서 모노노케의 물레 잣는 장면도 실제 노우의 한 장면이다. 거미줄 숲의 초막(부끼야 葺き屋)은 노우 무대의 지붕(부끼야네 葺き屋根)의 같은 건축방법을 통해 노우 무대를 상징한다.
④ 노우의 분장(쇼조코 裝束)및 동작과 소품들: 아사지(浅茅)의 의복이나 얼굴의 화장 지극히 제한된 표정이나 동작은 노우에서 눈썹 위, 이마의 검은 칠과 검게 물들인 이는 노의 가면(能面)을 재현했다. 아사지가 빈 그릇에 손을 넣고 손의 핏자국을 씻는 장면도 노우의 실제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구로자와의 <구모노수 죠>
① <맥베스>는 5막(Acts) 29장(Scenes)(7+4+6+3+9[8])으로 구성되었고 <구모노수 죠>는 전체 23章(chapter)를 크게 셋으로 나누어 노우의 공연요소로 구성됐다. 극은 일본전통 연희에서 차용하여 세가지 공연요소(죠[序], 하[破], 큐[急])로 구성되었고 끝으로 시작하고(시작과 끝이 같다), 노우(能)의 마무리 요소인 코러스를 사용했다.
② <맥베스>는 권력이동의 시기에서 산출되었다. 우화적인 이분법 해체가 주안점이고 봉건주의에서 절대왕정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역사적·시대적 배경의 갈등이다. <구모노수 죠>는 맥베스의 배경인 11세기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16세기의 일본으로 옮긴(transpose) 것으로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전제군주에 대한 민중의 봉기로 마무리한다.
③ 초자연적인 세계의 표현으로는 <맥베스>에는 세 마녀(Three Witches-Weird Sisters)·헤카테(Hecate: Queen of Witchcraft)·유령(Three Apparitions)과 또 다른 마녀 셋(Three other witches)이 등장하고, <구모노수 죠>에는 모노노케와 사무라이의 환영(幻影) 셋이 나타난다.<사진 9>

<사진 9> 사무라이 셋의 환영을 통한 초자연적인 세계 표현

④ 맥베스 부인(Lady Macbeth)의 몽유병과 와시즈 부인 아사지(鷲津浅茅)의 정신착란(손 씻는 장면)
⑤ 맥베스의 죽음과 와시즈 다케도키(鷲津武時)의 죽음
⑥ <맥베스>의 주요 지명: 던칸의 궁(Duncan’s Royal Palace at Forres), 맥베스의 성(Macbeth’s Castle, Inverness), 맥더프의 성(Macduff’s castle, Fife),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궁(The Palace of King Edward, England) 맥베스의 성(Macbeth’s Castle at Dunsinane), 코더(Cawder), 글람스(Glamis), 버남 숲(Birnam Wood), 스콘(Scone; Scotland traditional coronation site)
<구모노수 죠>의 주요지명: 즈츠키 쿠니하루(都築国春)의 거미집성(蜘蛛巢城), 북관(北の館), 제1 요새(一の砦), 거미줄 숲(蜘蛛手の森)
⑦ <맥베스>의 대조적인 장면들(contrasting scene): 초자연적 세계와 전장터
<구모노수 죠>의 대조적인 장면들: 거미줄 숲이라는 자연과 성(城) 내부의 정제된 공간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에 만든 영화로 언제 보아도 탄탄한 구성을 읽을 수가 있다. 1990년 미국 체류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들을 MOMA에서 보았다. 그리고는 시상식에서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평생 공로상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받는 장면을 TV를 통해 본 것이 엊그제 같다.

다음 호는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1942~ )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을 다룬다.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수료(건축학 석사/건축학 박사)
· 건축학 박사논문(역사·이론 분야):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 독일 뮌헨대학교(LMU) 및 뮌헨공대(TUM) 수학(교환장학생)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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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물 그리고 문

Shadow, water and door

제월당 © 이종민

건축이란 그림자
건축사사무소에 첫발을 디딜 무렵이었다. 폴 루돌프가 설계한 예일대학 건축학부 건물의 매스와 루이스 칸 건축의 짙은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선명함이 무엇보다 먼저 다가오던 때다. 일종의 매너리즘이었다고나 할까? 도면에 실제의 깊이보다 과장되고 두터운 음영을 그려놓고서야 만족하곤 하였다. 내가 다루었던 밋밋한 상업용 건물에 깊이의 변화가 있다면 얼마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도면에 그려 넣은 현실과 다른 몽환적 그림자는 내가 처한 건축에 대한 카타르시스였으며, 꿈이고 환상이었을 테다.
이후로도 그림자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고나 할까? 내게 그림자는 늘 사물보다 우선 관찰 대상이었다. 사진에 빠져 있을 때도, 이미지란 어느 한 시점에 카메라의 조리개를 통과한 빛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주장하였다. 빛과 동체인 그림자가 유형의 실체를 만들고 빛은 그 속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그림자가 지배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또 흘렀나 보다. 사진, 건축, 그림에서의 내 관심은 여전히 그림자다. 특히 내 건축에 충분히 변주되지 못했던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내가 추구한 욕망이 빛의 일종이었다면 그림자는 내가 이룬 건축의 조각이었을까? 좀체 버리지 못하는 미련 속에 건축이란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인간의 본태(本態)이자 근원, 열망인 물
장 그르니에의 책 한 권을 끼고 제주로 떠난 길은 물을 보러 가는 여정이었다. 비행기 창밖은 경계가 없는 몽환적 풍경이었지만, 나는 분명 거대한 수면 위를 나르고 있을 터였다. 철학자는 ‘여행이란 일상적 생활 속에 졸고 있던 감정들을 일깨우는 활력소’라고 썼다.
사방이 물인 내 고향 부산에서 또 다른 물을 보러 간다는 묘한 상황에 나는 꽤 흥분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을 물의 동네에서 살았다. 육지의 끝은 어디에나 물이 있었고, 육지의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수십 분 내에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물을 건너기도 하였다. 건축을 배운 이후로는 타지마할이라는 보석을 띄운 무굴제국의 물과 펜실베이니아 어느 골짜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궁금했으며, 그때마다 여름의 소쇄원과 겨울의 안압지를 찾곤 하였다.
본태박물관의 물은 당돌하고 극적이었다. 지형의 변화를 자연스레 이어주는 데에 물만 한 것이 있었을까? 마치 경계를 버리고 번진 수채화의 한 폭처럼, 건축사는 딱딱한 물성의 콘크리트 사이에 물이라는 무형의 자유 물질을 끼워 넣음으로써 은폐된 기하학의 틈에 몽상을 끌어넣고 있다. 배경이 아닌 이 물은 스스로 형태가 되고 있다. 나는 본태(本態)란 말의 뜻에 물의 이미지를 겹쳐보았다. 아~ 물은 인간의 근원.
반면 방주교회에서의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짐작한 대로 그저 물로 누워있을 뿐이다. 스스로 형태를 만들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물의 희생적 속성. 무척 종교적이었다 할까? 어쩌면 건축의 본질 또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그런 대승적 존재감 말이다. 다시 말하여 그 속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기능 앞에 기꺼이 배경이 됨으로써 건축이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사물이 된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 그 인간과 합일된 존재로만 고양될 그런 숭고함 말이다.
물의 그러한 정적을 깨트린 것은 일순간의 바람이었다. 그 잔잔한 파문에 이 훌륭한 창조물은 생명으로 빛난다. 비로소 박제에서 깨어나는 건축, 무형의 것들이 만들어 내는 유형의 풍경. 아~ 물과 바람의 장단.
다시 장 그르니에를 읽는다. “이런 몽상은 그렇다고 하여 결코 씁쓸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물은 내게 특별하여, 물에 대한 열망은 내 건축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고, 때론 날개를 달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몽상한다. 끝내 물을 곁에 두리라. 오호라! 세상의 절반은 물. 그런 물은 인간의 본태였으며, 방주를 띄운 바다였고, 도시인들이 의지할 최후의 보루이며, 가난한 건축사에겐 하나의 열망이 되기도 한다.

 

문(門)다운 문
500년 전 양산보 선생께서 거소를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이름 짓고, 뒤뜰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뒷문으로 흘러드는 매화향을 맡으며 맑은 달을 바라보려던 마음이었다. 그날 나는 그곳에 앉아 조상의 거소를 지키다 돌아가신 양산보 선생의 후손 故 양재영 선생을 기리며, 제월당 마루에 앉아 뒤뜰에 나무를 심은 두 선비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매화나무가 멍울조차 맺지 못했는데, 마루에 앉은 내 마음이 애절하고 급했다. 조선의 화가 김명국이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를 그려 놓고 매화를 기다린 마음이 그러했겠지. 눈을 밟는 심정이 어찌 나와 달랐을까?
무등산 자락의 소쇄원은 늘 그리운 곳이다. 15년도 더 된 어느 여름, 그곳을 방문하고 탐방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소쇄원을 지키던 양재영 선생께서 읽고 연락을 주셨다. 소쇄원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2009년에 선생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어찌하여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지난 일들을 회고하게 된 것이다.
탐방객이 밟는다고 노란 복수초를 옮겨 심고 있던 선생의 동생께서 내 넋두리를 듣고 반가워했다. 지금은 자신이 소쇄원을 관리한다고 했다. 내가 매화가 곧 피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제월당 뒷문을 열고 “매화 향기가 이리로 들어 광풍각으로 흐르지요.”라고 말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멍울조차 맺지 못한 매화나무에서 모종의 향기가 내게로 확 달려든다. ‘아~ 이것은 꽃의 향기인가? 문의 향기인가? 아니면 사람의 향기인가?’ 나는 비로소 문다운 문을 만나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여전히 날이 차가웠던 어느 날, 나는 찍어온 사진 속의 문을 열고 매화 한 그루를 그려 넣었다. 어찌 선비의 마음에 빗댈까마는 흉내 내어 심매도(尋梅圖)라 이름 붙였다. 봄을 맞아 들뜬 심정이었고, 옛 선비의 고고한 삶이 부러웠던 탓이다.

건축이란 인간의 갈망을 구축하는 일. 나는 그 이미지를 쫓는 나비와 같은가? 그림자, 그리고 물. 너무나 모호하여 그저 백일몽 같았던 그것들은 늘 외면할 수 없는 향기가 되어 문을 빼꼼 열고 나를 유혹한다. 그럴 때마다 얼른 꿈속에서 깨어나 굵은 연필로 그것들의 이미지를 긁적거려 그려 보는 것이다.

 

글. 이종민 Lee, jongmin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의 대표이며, 현재 부산광역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광역시건축사회에서 발간하는 건축사신문 논설고문이자, 부산일보 집필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j71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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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코믹북 _ 우아한 속물

Architecture Comic Book _ Elegant snob

글. 김동희 건축사 Kim, Donghee 건축사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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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건축여행 ④ 소읍도시 형성과정과 예산발전 문제점 제시

A living and Brenthing Tourism for Architecture ④
Formotional Process of Modern town & Problems on Yesan County development

1. 고려와 조선시대 행정체계상 예산의 위치

고려시대의 치도는 한마디로 역로가 대표적인 육상교통통신시설이었다. 역로의 등급은 대로·중로·소로로 나누고 역정을 배치하였으며, 역은 6등급으로 구분하여 일과에서 5과로 정하고, 일과는 개경에서 서경(평양) 사이였으며 이과는 서경에서 의주 사이였다고 한다. 994~995년 경 역로와 역수를 간추려보면 평구도의 경우 30역, 금교도는 16역, 여교도 12역, 충청주도 34역 등으로 고려의 역제는 22역 역도로 구분되며, 총 525역이란 방대한 역로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 예산은 충청주도의 일부로서 수원, 해미, 예산, 부여, 문의를 연결하는 22역도 중에 하나의 역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길은 사람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도로의 기능을 갖추지 못했으며, 실례로 1178년(명종 8년) 3월에 중방이 소하기를 “길 곁에 옥택, 난원하여 비록 척수이라도 관로(시가지도로인지 지방도로인지 알 수 없음)를 침범한 곳이 있으면 모두 복구토록 명령하소서” 한 것을 보면 도로획지를 무질서하게 점유한 사례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예산의 경우, 충남주도(14번)의 일부였다는 점과 고려조에 상업로로서 역로가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예산이 상업적 거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 역관제도는 고려시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소지왕 9년(AD488)에 우역을 세우고 관로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미 7세기 이전부터 전국적인 교통 통신 체계가 수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왜란과 호란 이후 기능을 잃어가던 역은 19세기 말에 와서 통신, 교통의 일대혁신과 함께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였다. 1882년 우정사 개설, 1884년 우정국 개설, 1885년 전신시설개통 등의 통신방법과 1889년의 경인철도개통을 선두로 각 노선의 철도개통은 역의 고유기능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역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 고려와 조선후기 도시의 예산의 지정학적 위치 고려시대의 역관제도지도

역로[고려 1200년경]에 나타난 예산

(2) 고려와 조선후기 도시의 예산의 지정학적 위치 조선시대의 근대적 행정체계

현재 시직제(市職制), 읍면제(邑面制)의 뿌리는 갑오경장(甲午更張)과 함께 1898년 전국 팔도제(八倒制)를 폐지하고 23부(府)로 개편되면서 명칭을 군(郡)으로 동일하게 하고 조선시대를 통해 유지되어오던 부,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군, 현(縣)의 체계가 개편되었다. 이때 새로 지정된 23부 이외의 부, 목, 군, 현들은 모두 군으로 개칭되었다.

 

(3) 조선시대 지방행정단위와 그에 따른 등급

조선말 충청도는 홍주부와 공주부, 충주부 3개로 홍주부는 태안, 서산, 당진, 해미, 덕산,면천, 신창, 온양, 청양, 대흥, 정산, 부여, 입천, 한산, 홍주 등으로 공주부는 직산, 천안, 목천, 전의, 연기, 공주, 진정, 연산, 진산, 명동, 황간으로 이때 예산은 현에서 군으로 승계된다.
조선시대 지방도시는 수도서울을 제외하고는 군현의 소재지는 소읍으로 최소한 3,000명에서 5,000명의 집단취락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 참고로 ‘대전회통’에 기록된 부, 대도호부, 목, 군, 현의 소재는 다음과 같이 나눈다.

1896년에 23부제가 폐지되고 현재와 같은 13도제가 만들어지면서 이후에 예산군면으로 개칭해 이어지다가 1914년 일인들에 의해 군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때 변의 통폐합은 약 4리 호수 800을 최저기준으로 미달하는 ‘면’은 합병조정하였다.(내무부 앞의책39쪽)
1917년에 연중에 비교적 인구가 많고 상공업이 발달되어 도시적인 면모를 갖춘 곳을 ‘지정면’으로 지정하였으며 예산지방은 1930년 12월 총독부 제령 제 11호로 공포된 읍면제가 시행되면서 지정면이 ‘읍’으로 개칭되었다.

2. 조선후기 도시의 시가지 형태(충청도)

예산시가지 결정요인으로서 입지형태
예산과 같은 도시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이전에 선조들이 자리 잡은 고을(邑)과 마을(村)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시의 입지는 현재의 우리자신이 아닌 선조들이 선택한 결과이며 그 선택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공간이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대지가 자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입지란 인간의 의지와 사고가 반영되어 선택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예산은 내포지방에 속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전화를 입지 않고 평온무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람살기에 가장 적당하여 옛날부터 가거지 도는 복지라고 일컬어져 예부터 많은 부자와 여러 사대부가 이지방에 대를 이어 세거(世居)하였다.
실학자 이중환(1672-1756)이 저술한 택리지에 의하면 “내충천도측위상”이라는 문구가 있다.

(1) 조선시대의 지도(예산)

해동지도(1724~1776),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선후기지방지도(충청도편, 1872)

 

(2) 지도상에 나타난 치도사업의 발전

동국여지도(1700년대)에서 나타난 예산

 

(3) 지도상에 나타난 치도사업의 발전

도로 등급을 9등급으로 나누어 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어로(御路)와 한성부터 전국에 이르는 육대로(六大路), 팔도 각읍에서 사계(四界)에 이르는 거리, 그리고 사연로(四沿路), 대중소(大中小)의 역로(驛路), 파발로(擺撥路), 보발로(步撥路), 봉로(烽路), 해로(海路), 외국과의 해로, 조석(潮汐), 전국 장시의 개시일 등 각종 도로 즉 육로와 해로, 정기시장이 기록돼 있다.

 

3. 예산을 경유하는 도로

한성에서 충청수영, 460里
예산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역으로서 지역을 이동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 역로제도가 소극적으로 이용되고 상업활동이 비하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도로체계자체도 없었으며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임락 이후 도로체제를 정비하고 실학자들이 치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도로를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게 된다. 1700년대까지만 해도 예산은 덕산, 대흥보다도 낮은 현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1895년에 군으로 승격되고, 1896년에 군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는 예산군면으로 대흥과 덕산을 흡수하게 된다. 이는 예산지역이 위치적으로 중요하다는 면을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부터 대한제국말에 상업적 거점으로 큰 역할을 했으며, 전업상인들을 중심으로 상권(시장)이 형성되다보니 사람들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 도로망과 상업 네트워크

고려시대의 도로는 역로(역로, 역관) 가 대표적인 육상교통이자 통신방식이었다. 고려의 역제는 22역도로 구분되며, 총 525역이란 방대한 역로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예산의 경우도 충청주도를 연결하는 34개소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북으로는 개성, 서울, 수원 등을 연결하고 서로는 해미, 서산, 남으로는 부여, 전주 등을 연결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도로는 초기에는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형태였다. 임진왜란 이후 교통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다. 예산의 경우, 1710년에 윤두서(1668~1715)에 의해 제작된 동국여지도를 보면, 대흥, 예산, 당진을 통해서 내포지역에서 해안지역으로 수로나 도로를 통해 연결되고 있는 교통체계를 볼 수 있다.

 

(2) 도로망과 상업네트워크

대한제국 말, 장지연(1864~1920)에 의해서 발행된 대한신지지(지부지도, 1908)를 보면, 신 원(예산)은 동과 북으로는 한양과 평택을 연결하고 있으며, 서로는 태안, 당진과 홍성, 남으로는 청양, 전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로망이 개설된 것을 볼 수 있다.

대한신지지부(1908년)에 나타난 예산

역로(고려, 1200년경), 동국여지도(1700년대), 대한신지지부(1908년)

 

4. 시가지 결정 요인으로서 입지형태

조선시대에 마을의 입지는 풍수지리설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우주 또는 자연과 관계가 있는 생의 충족한 곳을 찾았으며, 넓은 의미로 볼 때 정주지를 선택하고, 정착하여 살아가기 위한 장소로 토지를 찾았다. 토지가 가지고 있는 기(氣)라는 것은 풍수지리의 본질이며, 기는 바람이 있는 곳을 찾아 마을을 형성한다고 보았다.1)
따라서, 예산의 경우, 조정간인 향천사뒷산(광덕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금오산이 주산이 되어 북쪽을 받치고 동서남북의 산이 위요내부를 에워싼 분지로 동쪽에 있는 향천사에서 흘러나오는 내수인 개천이 흘러 외곽을 흐르는 외수인 무한천에 합류하는 형태가 한양의 풍수와 흡사하다.2)

내포지방 지도, 내포지방(대동여지도)

 

5. 1910~30년대 도시공간의 변화

행정체계의 변화와 인구증가
예산은 1700년대까지만 해도 덕산, 대흥보다도 낮은 현의 위치에 있었으나 1895년에 군으로 승격, 1896년에 군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大正 3년)에 예산군면(禮山郡面), 덕산군면(德山郡面), 대흥군면(大興郡面) 등이 모두 예산군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업상인들 중심으로 상권(시장)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상인들 가운데는 서울과 인천의 객주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덕산과 대흥의 부호들이 예산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예산지역은 사방으로 8리요 면적은 35,121방리이며 1914년 인구는 81,458명 중에 일본인이 465명, 중국인이 220여 명이었다. 1920년에는 80,793명(14,835세대) 중에 일본인이 408명(124세대), 중국인이 213명(42세대)이었다.

(1) 행정체계의 변화

예산군면 대흥군면
덕산군면 총독부 1914년
지방행정 면 폐합에 관한
보고 1-35철
(충정도)

 

(2) 행정체계의 변화

예산면 폐합 이후 도면

예산지역은 사방으로 8리요 면적은 35,121방리이며 인구는 81,458명중에 일본인이 465인, 중국인이 220여 명이었다. 예산은 충남에서 물산매매가 성행하고, 경남철도가 통과해서 교통이 편리하였으며, 아산군 선장포와 홍성군 광천포가 국호가 되는 곡물역이 있었다. 따라서 일반산업은 호기를 띄고 발전되었으며, 외부상권의 침범이 적어 경제적으로 활약이 컸으며, 우리나라의 중심으로 되었다.
다음 도면들은 1914년 이전 예산군면, 덕산군면, 대흥군면 등의 경계영역을 보여주며, 통합된 이후의 영역은 지금의 영역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6. 시가지형성과 입지형성, 예산의 시대별 도시변화

경남철도는 1922년에는 천안에서 신례원까지 개통되며 점차적으로 1924~1925년에는 광천과 보령까지, 1931년에는 군산까지 완전개통된다. 예산은 철도개통이후 상대적으로 거주인구가 오히려 증가했다. 통계로부터 1920년에서 1935년까지 예산군의 인구는 약 2만8,000명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본인도 360명 정도 증가했다.
이것은 경남철도에서 당초 계획했던 철도역사위치가 구시가지와 많이 떨어져 있어 한인지식인과 지주들이 예산읍내와 최대한 가까운거리에 건설하도록 청원했고, 그로 인해서 구도시 상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한인들은 기성회(회장 성낙헌)를 조직하고 1만 평(약 33.057제곱미터)의 정거장 터를 경남철도회사 측에 기부하여 이를 성사시켰다.
예산역이 건설됨에 따라 인구증가와 산업발달로 새로운 시가지 계획이 이루어진다. 예산의 서쪽편 도로계획은 상권이 분리될 것을 염려한 시민들이 반대하였으나 성낙헌 씨의 기부로 구시가지와 가까운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여 예산역이 건설됨에 따라 이것은 시대조류이며, 주민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도로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시기에 공립농업학교의 이전과 보통학교의 신축과 급설전화의 개통 등이 예정되고 있어서 도로와 철도의 개설은 예산을 근대도시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국토지리정보원 http://www.ngii.go.kr

운송 및 통신수단의 변화가 근대도시로의 발전
<예산 시가지 변화과정(개항기에서 시대순으로 1970년대까지) _ 김득수 작성>

1925년도(대정14) 도시계획지도, 1967년도 도시계획지도, 1976년도 도시계획지도, 1986년도 도시계획지도

 

(1) 철도부설이전과 이후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비교
<예산군읍 지적>

1911년도 지적, 1950년도 지적

1920년대 지적상의 변화는 사설철도인 경남철도가 1922년 6월 예산까지 개통으로 예산 구시가지와 예산역과의 도로신설로 동서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이 형성되면서, 시가는 서쪽방향으로 서서히 확산되며 도시변화의 분기점이 되었다. 1922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이번에 발전에 기회로 삼아 공립농업학교 이전과 보통학교 신축, 급설전화개통,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도로의 신설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이는 철도부설과 신시가지 건설, 물류의 집산지(경제의 중심) 등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공공시설 즉, 학교, 전화국, 우체국, 은행 등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1927년 일제에 의해 시가지 구획정리가 된 것을 보면 도시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 필지증가와 구도심의 구획정리

1911년 일본인이 많이 살았었던 남서구역을 비교해보면, 먼저 1930년 지적도의 C와 같이 새롭게 도로가 건설되거나 기존 획지가 세장형 형태로 구획 정리가 되었다. 이러한 슈퍼블록은 1930년대 이후에 발생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 필지는 약 5×15미터에서 크게는 약 10×30미터 정도였다. A, B, C에서 보인 약 250×150미터 크기를 가진 큰블록(a1)은 호서은행과 본정통사거리 남쪽을 따라 다시 서쪽으로 양조장을 지나고, 북쪽으로는 제일(감리)교회를 지나 터미널과 만나고 있다. 이들 가로폭은 약 8~10미터였다. 특히 중심지인 본정통과 호서은행, 예산극장을 가로지르는 본정통 사거리를 중심으로 세장형 필지가 두드러지게 증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전통주거인 마찌야(町屋) 가옥으로, 도시공간이 재구성(재생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주거와 상업용도로 사용된 마찌야(町屋)는 옆집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창이 없으며, 좁은 전면폭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건축된 일본 주거건축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1911년, 1927년, 1930년대 지적비교 및 마찌야 상가주택

 

7. 예산 발전에 대한 논의들(1930년대)

(1) 주요 인사들의 미래에 대한 토의
1931년에 동아일보에 의해서 주최된 주요도시 순회좌담에서 9명의 예산 주요인사들의 예산 미래상에 대한 난상토론이 있었다. 이에 관련된 주요의제는 상공업발정책, 교육, 공희당, 차가임대, 전기, 수조, 풍기위생, 농촌진흥책, 시가정리(도시개량), 교통, 물가조절, 충남도청, 관청의 업무 및 정책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주요도시 순회좌담회를 요약해 보면, 예산의 상업은 10년 전보다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상업잘전과 예산의 발전을 위해서 예산의 신·구시가지 중간에 시장의 이전이나 상공회사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가지는 가로등이 없어 불편했고, 경남철도 개통 시 예산읍에 기관건물이 새로 신축되었으며, 시가지도 정리하였다. 당시, 모든 공공시설은 역을 중심으로 배치될 필요가 있으며, 역이 들어서면서 역전으로 옮기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읍과 역의 연장선에서 삼거리 남향에 외장을 세우고, 읍장을 그대로 두고, 한 달에 12장을 둘 것을 검토했으며, 예산에 하천정리 필요성과 특히 삼거리방면에 하천정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지적도 나왔다.

(2) 교통 문제
교통 문제는 역과 읍 사이 교량손상을 지적하고, 지역발전상 문제로 삼았다. 시급한 것으로 대흥통로에 정류소에서 베룩부리까지 직통도로를 계획하고, 역에서 사원내부를 경과하며, 당진군 합덕면 신리(삼거리)로 직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이에 대해 구양교를 신설하고, 이 도로는 삼거리와 연결하고자 했다.삼거리에서 합덕시장 지선으로 고덕면 대천으로 통하도록 하자는 것은 향후 도시의 미래를 내다본 신시가지의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수도 문제
수도 문제로 넓은 평야를 가진 예산에 예당수리조합설립과 조선총독부 방침으로 1931년대 몽리구역인 예산군, 당진군, 아산군 등 3개군의 광대한 평야를 농지정리 계획으로 댐공사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당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설계해 오던 중 지주와 당국간에 마찰이 있는 듯 하나, 총독부에 저항하기로 했다. 대회사인 토지개량주식회사는 기본 측량까지 끝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공사는 군사정권에 이르러 쌀증산대책으로 1960년대에 준공을 보게 된다.

 

(4) 교육 문제
이외에도 교육, 집회장소 문제를 거론했다. 교육 문제는 교육열이 높아서 보통학교에 입학지원자를 전부 수용할 수 없어 학급증설 필요성과 부녀자 교육도 거론했다. 유아교육을 맡은 신명 유치원 이외에 성공회의 유아교육신설에 기대를 하고 있으며, 학부형과 선생님 간의 유대와 친밀함이 참교육이라 생각하고, 학부모의 참여를 강조하였다.

 

(4) 공회당 문제
집회는 공회당이나 교회를 빌려 쓰기는 하지만, 100여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집회장소가 없어 건설할 필요가 있다며 군민의 불편함을 다루고 있다.

 

(5) 풍기위생 문제
하수도 공동변소, 공동정호 등 인근도시와의 위생 문제를 비교하면서, 위생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6) 전기 문제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 문제는 새로운 기계로 교체하고 요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요금감하동맹 등을 조직하여 철저히 촉구했다.

 

(7) 농촌진흥책
소농과 증농의 몰락을 염려하여 농촌진흥책으로 부업권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양돈, 양계 등 농민을 잘 지도하여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농민조합의 필요성과 농민보호를 강조했다.

 

(8) 물가조절 문제
예나 지금이나 중간상인, 중간매매가 성행했으며, 중간 마진을 피하는 방법으로 구매전매조합의 필요성을 느꼈다.

 

(9) 시가정리 하수도 문제 등
시가지에 가등이 없어 생기는 불편함과 당시에 역을 중심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 실책임을 자인하면서 역과 읍을 연장하는 방법, 하수도 문제, 하천정리가 제일 필요성을 강조한다. 비가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전, 답, 시가지는 바다가 되므로 삼거리 방면에 하천 정리를 건의하는 등 시가지 정리문제도 제시했다.

끝으로 도청 이전과 관청의 희망에 대해서는, 이전은 불필요하지만 도청의 이전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대전보다는 천안쪽이 적지이며 도당국이 군민에게 강제로 배포한 기계는 도당국의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밤늦게 까지 장시간을 토론하면서 밤 11시 40분에 폐회하였다.

 

8. 예산읍 승격 제이 (번영회 촉진운동 맹열)

「예산」 충남 예산은 경남선의 중앙에 재하고 거주 호수 2천4백호 인구 일만이천을 포용하는, 모든 행정·교통·위생문화와 산업통신의 충남 서부에 으뜸가는 상업용도일뿐 아니라 앞으로는 수만 정보의 예산 합덕의 양평야 쌀의 곡창을 연결한 지방의 중심 도시이며 본 군내에는 사방에 대소 광산이 발굴되어 활발한 발전의 도정을 밟아 나날이 약진상을 보이게 되어 수년 전부터 군면 당국은 물론 예산 번영회 역원급 지방유지 제씨는 차에 통감한바 있어 예산면을 읍으로 하루 바삐 승격시키는데 대하여 도당국에 진정운동을 거듭하는 한편 면에서는 기본 자료를 수집하여 도당국에 제출하였는데, 도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을 절실히 느꼈음인지 지난 7월 10일부터 6일간 예정으로 도관계관 3인을 현재 예산면에 출장 보내서, 기초조사를 진행 중인데 금번 조사 여하에 따라 금년 10월부터는 여러 해 동안 숙제로 내려오던 읍제 실시가 시행되리라고 시민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식산은행지점설치 문제에 관하여는 식산본점에서는 우금 경남연선에 지점을 두지 못하여 유감으로 생각하는 차에 소화 9년 이래 지방유지들과 예산번영회과 협력하여 식산본점은 물론, 본부 도당국을 여러차례 력방운동을 하여 각 관계 당국에 상당한 인식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산은행본점에서는 경남연선중 예산이 모든 산물의 집산지이요, 넓은 곡작평야에 농산자금대 부의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업의 중심이기 때문에 설치하기를 희망할 뿐만 아니라 지점의 설치 예정지에 편입되었다고 하며 금후 총독부 당국의 한시바삐 결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 가지 긴급문제로 지난 7월 12일 면사무소 계상 회의실에서 번영회를 개최하고 긴장하고 의의 있는 토의를 마치고 오후 7시에 무사 폐회하였다고 한다.
– 동아일보 1939년 7월 19일자 기사

 

9. 예산시장의 쇠퇴와 인구감소

1970년 전후로 해서 시장의 모습은 축소된 형태를 갖게 된다. 새마을 운동과 근대화과정 등 197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하는 공업화에 따라, 가로의 길에 점포가 늘어져 있던 패턴에서 자동차 증가, 가로폭 확장, 운송수단 발전으로 인해 물류집산지의 기능을 가진 중심도시보다는 각각의 도시들이 시장을 모두 설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예산외 다른 지역으로 물류 및 사람들이 이동하며 유입이 소멸되었다는게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70년 이후 정부가 농업위주의 정책보다 중화학공업 등의 육성에 치중함에 따라 농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되었고, 예산내의 시장들도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이 시점에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원인은 시장주변에 집중해있던 공공시설들이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사람들의 유입도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결론으로 내포지방 예산, 홍성 중간지점 충청남도 도청소재지 결정으로 인구 50만여 명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은 예산, 홍성, 삽교, 덕산으로의 인구 분산으로 인구증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
충청남도 발전사(1932년 3월25일 호남일보사간)
일제시대 소읍도시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김득수 석사학위 논문(2003년 8월)

 

글. 김득수 Kim, Deuksoo 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김득수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대표

영등포구지역건축사회 회장(3회 연속),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직무대행, 대한건축사협회 이사·감사 등을 역임하고, 대한건축사협회 50년사 발간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건축·민원조정 위원, 에너지관리공단 건축·도시·관광단지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예산읍 초대 명예읍장으로 위촉(1997.02.15.~2006.12.03.)된 바 있다. 서울특별시 시장 표창 5회와 대통령 표창(제200398호)을 받았으며, ‘일제시대 소읍도시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일제강점기 근대도시의 도시공간 변화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작성했다.
a010634595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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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국건축사협회 컨퍼런스 및 A’22 엑스포 참가보고

2022 AIA Conference and A’22 Expo Report

행사장 콘코스 전경

■ 참가개요

한국건축단체연합(FIKA)은 2022년 6월 22~25일(수~토) 개최된 2022년도 미국건축사협회(AIA)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 4박 6일 간의 일정에 참가하였다. 미국건축사협회(AIA: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주최하는 본 행사는 시카고맥콜믹 플레이스(McCormic Place)와 쉐라톤 그랜드 시카고 등에서 개최되었다.
협회에서는 석정훈 회장을 비롯하여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이건섭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도규태 국제위원,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그리고 조인숙 APEC등록건축사위원회 위원장 등 총 7인의 대표단이 참가하였고, 한국건축가협회(KIA)의 천의영 회장, 강인수 기획위원장이 함께 참가하였다.
우리 협회는 A’22 컨퍼런스 공식행사와 엑스포 관람, 해외단체장 포럼, KIRA-NCARB 회의를 통해 국제적인 현안에 대한 정보 및 AIA의 관점, 건축사 계속교육의 프로그램 및 운영, 나아가 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대표단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우리 협회가 지향하는 건축과 사회적 책임 등의 가치를 공유하였다.
AIA 컨퍼런스 메인 행사 외에도 강의와 건축투어를 포함한 400여 개의 계속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AIA Award와 명예회원 수여식, 추대회원 수여식을 통해 건축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건축사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공로를 격려하였는데, 2022년에는 두 명의 명예추대회원으로 일본의 키쉬 와로(Hon. FAIA)와 프랑스의 로랑 J. 듀퐁(Hon. FAIA)이 추대되었다.
대회 셋째 날 저녁에 진행된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 역시 무척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의 세계적인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사무실의 공간 환경을 보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의 설계사무소의 현장을 바라볼 수 있는 실질적인 견학이 되었다.

 

■ AIA A’22 Conference

미국 시카고에서 6월 22일부터 4일간 열린 본 대회는 미국 사회가 고민하는 ‘다양성의 포용과 공정’이라는 화두를 건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노력을 보여준 행사였다. 이전 1990년대의 AIA 컨벤션이 50~60대 백인 남성들의 독무대였다면, 이제 미국의 건축계는 여성, 흑인,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올해 행사의 특징은 둘째 날 진행된 패널대담에서 가장 잘 표출되었는데, 다양성(Diversity)과 공공안전(Public safety), 공정 (Equity)이라는 화두를 갖고 진행된 대담에서는 패널에 백인 남성을 배제하고, 3인의 초청 패널리스트부터 특이한 구성을 시도했다.
시카고의 성공한 여성건축사 지니 강(Jeanne Gang), 워싱턴 대학 건축대학장으로 건축계 공정의 화두를 선도하는 르네 챙(Renée Cheng/아시아계 여성교수) 그리고 불름버그 시장 재임 시 뉴욕시의 도시 디자인 정책 변화를 이끈 비샨 차크라바르티(Vishaan Chakrabarti/인도계 남성)가 등장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계에서 오스카상이 한국의 <기생충>과 <미나리>에 상을 주는 것 같은 변화가 건축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여성의 참여와 활약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데, 한국의 건축계와 큰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 중에 여성의 참여비율이 눈에 띈다.
시카고 현지에서 각국 대표단에게 확인해 보니, 대한건축사협회 여성회원 비율은 9.5%, AIA는 25%, 유럽의 건축단체 여성비율이 40%라고 한다. 앞으로 건축은 여성인력의 활약이 있어야만 살아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의 참여는 급증하고 있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문제(총기규제 실패로 인한 공공장소의 총기사건)에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제기되었는데,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총기가 무서워 사람들 안전을 지키자고 벙커 같은 건축을 해서는 안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적절한 조경, 오픈스페이스, 외부 무단침입을 방지할 적절한 사회적 거리 등을 통한 건축적인 접근방법과 강화된 총기규제 법안으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이며, 벙커 같은 건축으로 그 해결을 시도한다면 우리의 도시가 더욱 암울해질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행사 3일째에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연단에 등장해서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근 본인의 이름을 딴 대통령 기념관을 건축하고 있는 그는 이를 계기로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할 계기가 많았고, 건축사대회가 자기가 살고 있는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것을 알고 기꺼이 참가를 수락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법률가가 되기 전 건축을 공부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회고하며, 좋아하는 건축으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언급하면서 건축이 가지는 사회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이야기를 끌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 따르면 본인이 사회참여운동가로서 활동을 하던 시기부터 선의에서 비롯된 건축 프로젝트들이 도리어 사회적 격차와 불공정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해왔다고 하였다. 저소득계층을 위해 야심 차게 지어진 주택단지들도 도리어 낮은 에너지 효율과 부실한 단열성능으로 인해 추운 겨울에 저소득층을 더 어렵게 만들어 사회격차를 악화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냈고, 결국 이는 실거주주민에 대한 진지한 배려 없이 지어지는 건축은 반드시 그들을 더 소외시키는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미래에 있어 공정한 건축을 이루기 위해 건축사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덴 하트 회장의 부탁에 대해, 그는 자신의 정치인생에 있어 성공의 토대가 된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대화를 독점하는 것보다 듣고 있을 때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발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믿을 때에야 비로소 진심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자신의 경험이 건축사들에게도 적용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이 기념도서관을 건축할 때의 경험을 통해 귀하고 값비싼 건축재료라면 좋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이고 대중적인 자재를 가지고 더 포용적이고 품격 있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훌륭한 건축을 향한 건축사들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상황을 걱정하기도 했다(오바마는 바로 전날 낙태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보수화된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걱정스럽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행사장 전경

발표 커트사진(오바마)

대담을 진행하는 내내 오바마 대통령은 비록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넓은 식견으로 도시문제에 대하여도 명쾌한 견해를 밝혔다. 그가 제인 제이콥스나 로버트 모지스와 같은 도시디자인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지만, 전임 국가원수가 건축사대회에 연사로 참여해서 건축인들과 격의없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고 부러운 모습이었다.

A’22 website https://conferenceonarchitecture.com

 

■ AIA A’22 건축 엑스포

건축자재전시가 이루어지는 행사장 공간은 로비(Foyer zone)에서 행사장으로 대각선을 잇는 큰 가로를 두고 그 가로를 따라 주로 규모가 작은 참가업체 및 엔지니어링 업체를 배치하였고 전체를 시카고를 대표하는 가로 또는 공원의 이름을 따서 구역을 정했으며 이 구역을 각각 인테리어 자재, 우드, 메탈, 유틸리티, 소프트웨어 등의 특성에 따라 나누어 배치하였다. 세계적인 도시인만큼 Greek Town, Little Italy 등 각 구역을 대표하는 이름들이 인상깊었다.
전시장의 한가운데는 AIA 광장(AIA Plaza)이 설치되어 AIA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엿볼 수 있었으며 관람객들의 휴식을 위한 라운지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편안한 공간의 느낌과 소파, 카펫, 스툴 등이 설치되었다. 로비(Foyer) 공간에 위치한 AIA 스토어에는 이번 대회를 기념해서 제작된 많은 종류의 기념품과 잔문서적, 문구 등이 진열되었다.
전시장 맨 앞에는 대회를 홍보하는 미디어 아트월이 설치되어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대회홍보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전시물이라는 것을 알고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A’22 엑스포는 새로운 제품과 미래, 가장 최신의 기술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자리로서, 최고의 건축 제품 제조업체 약 500곳이 참가했다. 엑스포는 최신 하이테크 재료 및 솔루션에 대한 경험과 상담, 그리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며, 관람객은 이어지는 건축사 계속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지식과 교육이수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특히 A’22 앱의 새로운 기능을 통해 참가업체와의 일대일 미팅 예약과 상호간의 정보교류 서비스가 제공되고, 관람객이 선택한 재료를 무료로 포장하여 배송해주는 새로운 서비스인 Swatchbox가 도입되어 관람객이 일일이 샘플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행사장 전경

행사장 배치 다이어그램

 

■ 세미나 및 계속교육 참가 및 운영

대회 중 세미나는 약 400개 정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주제, 작품 및 경향 등에 대해 60~90분의 세미나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미나 또는 계속교육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서는 사전등록을 하고 대회장 내의 여러 강의공간이나 엑스포 내의 강의장에 세미나 시작 15분 전까지 도착하여 배지를 스캔하고 좌석을 확인해야 한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고 참가를 원하는 경우 세미나 시작 10분 전에 강의실 입구, 또는 투어 라운지로 오면 빈 자리가 있는 경우 선착순으로 참가할 수 있으며, 빈 자리가 없는 경우 미등록자는 입장할 수 없다.

엑스포 현장에서 제공되는 AIA 실무교육은 건축사 계속교육(CE)의 기능을 하며, 최고의 건축제품에 대한 지식을 얻는 단기과정으로, 100개 이상의 과정이 제공되었는데, 지속 가능성·벽 시스템·페인트 기술·코팅·목재 혁신 등을 포함한 주제로 구성되었다.

강의장 입구의 안내패널

 

■ AIA Plaza

엑스포 전시장 한 가운데에 설치되는 AIA Plaza(광장)는 많은 건축사들에게 자부심과 함께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장소로 기억된다. AIA Plaza에서는 매일 12시간 동안 라이브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메인 무대와 워크숍, 소모임, 타운 홀 미팅 등 다양한 성격의 아키텍츠 다이어로그 시리즈가 진행되는데 짧게 진행되는 강의가 관람객에게는 키노트 세션 이상으로 인기가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Deltek의 라이브 프로그래밍 협조를 받아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Plaza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작품전시이다. AIA Awards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로 상을 수여하는데, 그 중에도 올해의 가장 중요한 분야는 세계적인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지속가능한 건축(COTE Top Ten Awards)에 중점을 두었다.

AIA Awards의 분야는 아래와 같다.

– AIA Awards Small Projects
– AIA Awards Education Facilities Design
– AIA Awards Housing
– AIA Awards COTE Top Ten
– AIA Awards Regional & Urban Design
– AIA Awards Interior Architecture
– AIA Awards Architecture
– AIA Honors & Awards 2022: AIA Awards Gold Medal
– AIA Awards Architecture Firm

위 내용을 좀 더 설명하면 2022년 올해의 건축사사무소로는 최근 10년간 뛰어난 건축적 기량을 보여준 매스 디자인그룹(Mass Design Group)이 선정되었고, 올해의 최고 건축사상인 골드메달은 건축이론과 실무에 있어 지속적인 영향력을 나타낸 개인으로서 안젤라 부룩스와 로렌스 스칼파(Angela Brooks, Lawrence Scarpa, FAIA)가 수상하였다. 2022년 건축분야의 건축상은 예산, 규모, 스타일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열한 개의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이들은 놀랄 만큼 창의적인 건축디자인과 공간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설명한 COTE Top Ten 건축상은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는데 AIA는 매년 환경친화적 성능디자인에 특출한 성과를 보여준 열 개의 작품을 선정하고 있고, 작품의 내용을 보면 규모나 디자인보다는 작품에 담긴 지속가능성의 의미와 기술의 측면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AIA Awards 전시공간

또 하나 AIA Awards에서 눈에 띄는 것은 AIA Awards Small Projects이다. 상의 내용을 요약한 것을 보면 “작은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대형 프로젝트의 분위기를 이끈다”고 언급한다. 매년 주제가 제공되고 4개의 유형으로 평가하고 있다.

 

■ A’22, 건축사는 공공적 참여자

AIA Chicago Bridge Program
이번 AIA 엑스포에서 특기할 만한 몇가지의 내용을 추가로 언급한다면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AIA Chicago 부스이다. 대회가 열리는 도시가 시카고인만큼 주최 도시의 부스가 따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전시공간에 모여든 건축사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환담을 나누는 것이 눈길을 끌었는데 전시된 패널을 자세히 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성건축사와 신진건축사 간의 연대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멘토, 멘티 사진 · 전경

각각의 패널 사진은 멘토와 멘티로 기성건축사와 신진건축사 간의 연결을 제공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공식적인 명칭은 ‘AIA Chicago Bridge Program’이라고 한다. AIA Chicago는 시카고의 건축적 유산을 회원과 협력자, 그리고 사회와 함께 잘 지켜 나가기 위해 건축사의 전문성과 지식을 통하여 연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멘토십(mentorship) 프로그램을 13년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사무소를 시작하는 신진건축사들에게 최초 5년에서 10년까지의 기간 중 총 8개월 과정의 일대일 미팅을 통한 큐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들에게 리더십과 자긍심, 그리고 각자의 활동 궤적을 평가해보도록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카고의 건축이 열정적이며, 세대 간의 연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배움으로써 도시의 유산을 건강하게 유지해가는 근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AIA 해외단체장 포럼 /
International Presidents Forum

AIA 해외단체장 포럼은 지구환경과 세계적 공통과제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가져왔다. 올해도 영국, 캐나다를 비롯해 중앙아메리카, 남미,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 참가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다.
AIA 회장 Daniel S. Hart가 주최한 해외단체장 포럼에 석정훈 한국건축단체연합 대표회장은 아시아건축사협의회, 영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코스타리카, 파나마, 일본, 태국의 건축사협회장과 함께 초청되었다.
해외단체장 포럼의 주제는 기후위기(Climate change)라는 인류 공통의 위기에 어떻게 건축이 대응하고 변화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로서, 지구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 지구온도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이 시대에 건축사는 어떻게 이 위기의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단체장들에게 주어진 토론질문 중 첫 번째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각국이 당면한 가장 큰 이슈들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특히 아메리카 국가 단체의 회장들은 기후변화 및 탄소 발생원인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지적하고, 남-북 아메리카 간의 소득격차, 기술력의 격차로 인해 오히려 허리케인, 홍수 등의 광범위한 피해를 입는 곳은 저개발국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제기하였다.
선진국인 영국과 유럽의 협회장들의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장차 선진국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교한 기준에 의해 새로운 장벽이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겠다는 예측이 가능하고, 그럼에도 이 이슈는 세계 건축계의 주요 의제로서 우리의 삶의 행태를 지배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의 전경

좌측부터 이건섭 국제위원회 부위원장,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다니엘 하트(Daniel S.Hart) 미국건축사협회(AIA) 회장, 조인숙 국제위원회 자문위원(APEC 등록건축사위원회 위원장)

 

■ 미국건축사협회 추대회원 메달 수여

2022년 미국건축사협회 추대회원 메달 수여식은 6월 24일 오후 2시에 전설적인 시카고 오디토리엄에서 열렸다. 2022년에는 두 명의 명예추대회원 일본의 키쉬 와로(岸 和郎, 1950~), Hon. FAIA와 프랑스의 로랑 J. 듀퐁(Laurent J. Dupont, Hon. FAIA), Hon. FAIA 및 88명의 신입 추대회원에게 수여가 있었다.
추대회원(Fellow)은 AIA의 최고 영예 중 하나로 AIA 회원들의 탁월한 작업과 공헌을 인정하며 동료 심사위원단의 엄격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다. 명예 추대회원(AIA Honorary Fellowship) 프로그램은 국제적 수준에서 건축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업적과 공헌을 인정한 국제 건축사를 기린다.
추대회원 메달 수여식에 이어 이튿날인 6월 25일 저녁엔 이들을 축하하는 대규모 저녁 만찬이 쉐라톤 호텔의 연회장에서 600여 명이 참석하여 개최되었다.
전날 메달 수여를 받은 두 명의 명예 추대회원 및 신규 추대회원 88명을 한 명, 한 명 호명을 하며 어떤 분야로 추대되었는지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박수를 쳤다. 전 미국건축사협회 회원 중 3%이내에 해당되는 추대회원의 추천대상은 여섯 개 분야로 나눠지며 소속건축사회 (AIA Chapter)로부터 추천되고 앞서 언급한 심사위원회에서 엄선한다
추천 대상의 여섯 분야는 다음과 같다.

① 설계, 도시설계 또는 보존(Design, urban design, or preservation): 직업의 미학적, 과학적, 실용적인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실무관리, 기술실무(Practice Management, or Practice Technical Advancement): 실무기준의 발전을 통해 계획 및 건축,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③ 협회 또는 관련단체를 이끌어 감(Led the Institute, or a related organization): 건설산업과 건축이라는 직업을 조정하기 위해
④ 공공서비스, 정부, 산업 또는 조직(Public service, government, industry, or organization): 개선된 환경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보장하기 위해
⑤ 대체경력, 건설환경과 직접 관련이 없는 조직에서의 자원활동 또는 봉사(Alternative career, volunteer work with organizations not directly connected with the built environment, or service to society): 증가하는 공공 서비스의 직업을 만들기 위해
⑥ 교육, 연구, 저술(Education, Research, Literature): 건축 교육 및 실무수련의 표준을 발전시켜 계획 및 건축,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건축사등록원(NCARB) 관계자들과 김지한 교육위원회 자문위원, 김경만 등록위원회 위원장, 조인숙 국제위원회 자문위원, 오동희 국제위원회 위원장

 

■ NCARB 회의 (National Council of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

엑스포장 내 NCARB부스에서 NCARB와 우리측 교육원/등록원/국제위원회/APEC 등록건축사 위원회와 간담회를 갖고 상호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NCARB측에서는 베일리스 워드(Bayliss Ward)회장, 마이클 암스트롱(Michael J. Armstrong) CEO, NCARB 국제팀이 현재 NCARB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설명하였고, 우리측 교육원 등록원에서 질의한 ① 건축사 실무수련, 경력관리, 계속교육, ② 컴퓨터 기반의 건축사자격시험 등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해주었다. 미국의 52개 주 건축사 제도의 특수성과 시험관리체계의 확실성을 담보로 그들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우리와의 계속된 교류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의 등록시스템과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회의 장면

NCARB의 설명은 주마다 요구조건이 조금식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가 NAAB(National Architectural Accrediting Board)에서 인증한 미국내 24개 대학에서 제공하는 28개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6개 과목 96개 분류 총 3,740시간의 실무경험시간(Practice Management, Project Management, Programming & Analysis, Project Planning & Design, Project Development & Documentation, Construction & Evaluation) 후에 시험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해외 실무자는 담당 건축사가 AIA 멤버일 경우 100% 인정, 아닐 경우는 실무시간 50%만 인정된다. 그리고 건축사 시험은 실무경험의 6개 카테고리와 같은 6개 과목이고, 5년동안 6개 과목 모두 합격해야 자격증이 주어진다고 한다.
컴퓨터 기반의 시험은 1997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97년 ARE 3.0을 시작으로 현재 ARE 5.0으로 25년동안 개량된 형태의 시험이다. 시험 시간도 길고, 시험과목과 문장도 많아 건축의 전반의 전체적인 이해도가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항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드로잉에 대한영역은 3,740시간의 실무 시간에 습득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험에서는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출제한다.
한편 APEC 등록건축사 위원회(APEC 건축사 프로젝트 한국위원회, APEC Architect Project Monitoring Committee, Korea: 위원장 조인숙)는 2025년 APEC 정상회담 한국개최와 관련하여 2024-2025년에 예정된 미국과 2026-2027년에 예정된 한국이 이사국을 서로 맞바꾸어 맡아서 APEC 건축사 중앙이사회(APEC Architect Central Council Meeting)를 2025년에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협의를 했다(주기: 결과적으로는 다각적 검토 하에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맞바꾸는데 동의한다고 2022년 8월 16일자로 NCARB로부터 서신이 왔다).

 

■ 글을 마치며

이번 A’22 컨퍼런스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국제적 교류가 다시 재개되는 그 완충적인 상황에서 개최된 뜻깊은 대회였다. 3년여 간의 공백이 짧지 않지만, 다시 재개하는 국제교류의 현장에서는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각국의 건축사들과 단체들이 진행해 왔던 영상회의는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국제교류의 새로운 방식을 훈련하게 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던 것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국경이 열리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구촌에 있어서 세계의 관심은 온통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비롯하여 2015년 UN과 UIA가 주창하는 17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맞춰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 차원에서의 리더십과 개별이슈 차원에서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건축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이끌어 나가야 할 우리 협회로서는 이 세계적인 이슈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속가능한 목표를 향해 진전된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세부적인 실천과제들을 수립하고 이를 단계별로 성취해 나가며 그 성과를 국내의 여러 분야를 비롯해 국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우리 건축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글. 오동희·이건섭·도규태·조인숙 Oh, Donghee•Rhie, Gibson•Do, Kyutae•Cho, In-Souk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오동희 (주)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건축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에서 건축계획 및 설계를 전공하였으며, 1984년 간삼건축에 참여하여 현재 (주)간삼 대표이사 및 (주)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 및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장, FIKA 산하 한국 UIA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odh@gansam.com

 

 

 

이건섭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건축사

연세대학교 건축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삼성미술관,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 교환교수로 미국 Virginia Tech에서 건축역사 및 이론을 가르쳤다. 현재 삼우설계에 근무 중이며, 글로벌 프로젝트 다수를 담당해왔다. 저서로 포털사이트 Naver에서 오늘의 책으로 선정된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있다.
gibson.rhie@samoo.com

 

 

 

도규태 건축사·TOD 건축사사무소

경희대학교, 영국 AA school 과 Bartlett(UCL)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KPF·삼우설계에서 실무경험 뒤 2011년 TOD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국제위원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공법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축의 아름다운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며 ‘Timeless Design’을 모토로 건축에 임하고 있다.
dokyutae@naver.com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 독일 뮌헨대학교(LMU) 및 뮌헨공대(TUM) 수학(교환장학생)
· UIA WP Heritage & Cultural Identity 위원(International Co-director, 2014-2021)
choinsou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