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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1930년대 근대도시 아파트, 충정 아파트

Disappearing village
Chungjeong Apartment, a modern urban apartment in the 1930s

서대문 충정로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2020년 12월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화제의 작품 ‘스위트홈’의 촬영지인 녹색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250-5의 충정 아파트는 건축물대장이 발견되기 전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1937년 8월 29일 준공된 1930년대 근대도시 아파트이다. 건립자인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서 도요타아파트로 불렸다. 지상 1층 지상 4층으로 철근 콘크리트 조의 52세대 임대아파트였다. 그 당시에도 상하수도는 물론 수세식 화장실과 응접실, 거주민을 위한 식당, 중앙집중식 난방, 샤워실 등을 갖춘 최신 아파트였다. 1940년에 당시 아파트들이 호텔로 업종을 변경했듯 이곳도 호텔로 바뀌기도 했다. 해방 이후 귀국 동포들이 잠시 사용하다가, 한국전쟁 중에는 북한군 인민재판소가 설치되어 지하에서 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 후 미군 전용인 트레머호텔(Traymore Hotel)로 사용되었고, 여기에는 CIA의 합동고문단 본부가 함께 있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전쟁에서 여섯 명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김병조라는 인물이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이 호텔의 영업권을 불하받아 한 개층을 불법 증축하여 코리아관광호텔을 열었다. 하지만 다섯 달 후 허위사실로 밝혀져 구속되고, 코리아관광호텔은 1962년 11월 23일 자로 문을 닫고 그 후 정부의 공매를 거쳐 1967년 다시 주거용 아파트인 유림 아파트로 전환되어 입주자들에게 분양됐고 1975년 충전아파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기서 불법으로 증축된 5층 부분도 분양되면서, 5층 거주자들과의 갈등으로 1979년 도시계획도로 확장공사 당시 새 건물을 짓지 못하고 건물 전면의 7~8미터를 철거하면서 대지의 모양대로 비정형에 가까운 원형은 겨우 유지했다. 하지만, 도로에 접한 전면부는 아치형의 출입구와 전면계단 등이 잘려나가면서 전면의 디자인적인 요소가 사라져서 지금의 촌스러운 전면과 출입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세대수도 19가구가 사라졌다.
2008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재개발 대상이 되었으나, 원 거주민과 1979년 건물철거 때 공용구간 무단 점유 세대, 그리고 불법 증축의 5층에 거주하는 가구주 간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무산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아파트로 공인하여 문화재 지정도 추진했지만, 이미 E등급 안전진단 상태여서 지정이 무산되었다가 2022년 06월 15일 서울시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마포로 5구역 정비계획안이 수정이 가결되면서 철거가 결정되었다. 대신 같은 위치에 충정 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기로 결정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충정 아파트는 격정의 시대들을 거쳐오면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고 원래의 모습이 잘리어 나가고 변형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시대별 건축 자료들과 그 시대 거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경성아파트(줄행랑)
1930년대부터 경성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이전의 두 배인 40만 명대가 되었고, 1940년대에는 100만 명대가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주거 문제가 발생했다. 1930년대부터 조선에 소개되기 시작한 아파트는 주택의 형태를 갖춘 세놓는 장기 숙박임대업 형식으로 1~4층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아파트를 세놓는집이라 부르기도 하고, 내부가 복도형식으로 되어있어 줄행랑이라고도 불렸다. 1930년대 경성을 비롯한 각 도시에 있었던 아파트는 조선에 주재하는 직원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또는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에게 임대할 목적으로 모두가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고 운영되었다. 그 당시 이런 곳은 경성에만 70여 곳으로 추정되나 형태나 규모 등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어느 정도 자료를 확인할 수 있고 실제 존재하는 곳은 12곳 정도이며, 현존하는 곳은 7곳이 있다(참고 자료: 『경성의 아파트』, 박철수 외, 도서출판 집).

현존하는 경성아파트
1. 미쿠니 아파트 1930 남산동 1가 지상 3층 벽돌조 사원 숙소 6호
2. 취산 아파트 1936 회현동 2가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46호 (1967년 두 개 층 증축)
3. 도요타 아파트 1937 충정동 3가 지하 1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52호 (1962년 한 개 층 증축)
4. 황금 아파트 1937 을지로5가 지하 1층 지상 2층 벽돌조
5. 청운장 아파트 1938 회현1동 지하 1층 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6. 적선 하우스 1939 적선동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7. 국수장 아파트 1940 인현1동 지하 1층 지상 2층 목조
현존하는 7개의 아파트 중 미쿠니 아파트와 도요타 아파트, 황금 아파트, 국수장 아파트는 현재도 주거시설로 사용 중이고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 중으로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곳은 미쿠니 아파트 한 곳뿐이다(참고 자료: 『경성의 아파트』, 박철수 외, 도서출판 집).

중정(中庭)
1930년대 아파트는 모두가 복도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중복식도 많이 있었다.
충정 아파트는 독특하게 중정을 가진 복도식 아파트였다. 대지가 비정형 형태라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다. 하지만 1979년 도로 확장으로 건물 일부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자기 집 일부가 허물어져 전용면적이 줄어든 주민들이 공용공간인 복도와 계단실 중정을 점유했다. 다른 주민들의 반발로 일부는 철회됐지만 107제곱미터였던 중정의 면적이 2/3로 줄었다. 지금의 중정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그 당시의 아파트 자료들이 없어 최초의 중정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역동의 시대를 내다보았을 85년의 세월이 묻어있는 창문

철골 보 / 굴뚝
1962년 5층을 불법 증축하여 코리아나호텔을 만들 때 구조보강을 위해 설치한 철골 보와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던 중앙집중식 난방을 보여주는 굴뚝.

1979년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조합원 간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고문

추억(追憶)
– 정연복​
알록달록
기쁨과 슬픔의
집을 지으며 살아왔네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롱다롱 추억들이 쌓여
세월의 강을 건너는
돛단배 되네
눈물짓던 시절도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그리움으로 남는 것
사랑하던 사람은
가고 없어도
가슴속 깊은 곳
연분홍 사랑의 추억은 남아
고단한 한세월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
오!
추억의 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