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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과 형태에 부여된 뜻

Meaning expressed in fonts and shapes

<사진 1> 납활자의 모양. 맨 위는 얼굴(face), 중간은 몸(body), 맨 밑은 발(foot)이라고 부른다.

최근 국정원의 원훈석이 간첩 글씨체로 쓰여서 교체해야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글꼴을 디자인한 사람은 신영복이다. 신영복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20년 만에 가석방되었다. 그러니 신영복은 간첩이라는 것이고, 그가 쓴 글씨체는 간첩 글씨체가 된 셈이다. 간첩의 글씨체로 어떻게 국정원의 원훈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신영복의 글씨체는 ‘어깨동무체’로 널려 알려졌고, 디지털 서체로 만들어져 누구나 쓸 수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영복은 존경받는 학자, 아니면 간첩이라는 극단적인 판정으로 엇갈린다. 이 글에서 신영복이 진짜 간첩이냐 아니냐, 그래서 그의 글씨체가 진짜 간첩 글씨체냐 아니냐를 밝히려는 생각은 없다. 어떻게 특정한 글씨, 또는 특정한 형태와 디자인에 특정한 의미가 달라붙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글꼴, 또는 서체란 하나의 유형(type)을 갖춰야 한다. 사람이 쓰는 글씨체도 특정한 유형이 있지만, 인쇄를 위한 활자는 문자 하나하나가 수천, 수만 번을 찍어도 조금의 변화도 없이 완벽하게 똑같다. 그런 점에서 활자는 사람이 쓴 글자보다 더욱 견고한 타입이다. 활자는 영어로 ‘typeface’다. type은 일정한 형태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기에 왜 얼굴(face)이라는 말이 붙었을까? 구텐베르크가 디자인한 납활자는 자루 모양이고, 그 끝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사진 1> 글자가 새겨진 그 맨 윗부분이 바로 얼굴이다. 활자의 얼굴인 셈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처음 만들었을 때 어떤 글꼴로 만들었을까? 그는 자신이 활자로 인쇄한 책이 필경사들이 손으로 일일이 써서 만든 책인 채식필사본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낯선 글꼴로 디자인하면 안 된다. 중세 필사본에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글씨체 모양으로 활자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에 따라 최초의 활자는 중세의 서체, 이른바 ‘고딕체(gothic)’가 유럽의 첫 번째 활자가 되었다.<사진 2>

<사진 2> 구텐베르크가 디자인한 납활자의 모양은 중세 필사본에 쓰인 글자의 유형을 따랐다. 나중에 이를 ‘고딕체’라고 이름 붙였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디자인할 때 기초로 삼은 중세 필사본의 글씨체는 중세 건축인 고딕 성당을 닮았다. 고딕 성당의 첨탑처럼 글자의 세로획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뾰족하다.<사진 3> 건축은 언제나 그 시대의 문화 규범으로서 가구와 서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고딕 가구 역시 고딕 성당을 축소한 것 같은 모양이다.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은 전 유럽으로 퍼졌다. 15세기는 르네상스 시대였고, 유럽 문화의 중심지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만큼 베네치아가 유럽 출판물의 50%를 생산할 정도로 인쇄 중심지가 된다. 당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업가보다 인문학자가 많았다. 자존심이 강한 이탈리아의 인문학자들은 독일인이 디자인한 고딕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고딕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사진 3> 중세 고딕 양식 건축의 첨탑(spire)과 고딕체는 유사하다.

고딕 양식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고, 독일과 영국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의 민족은 갈리아족, 게르만족, 켈트족, 앵글로색슨족, 고트족 따위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 알프스 산맥 북쪽의 민족들은 이탈리아인에게는 야만족으로 취급받던 부류다. 동아시아에서 자기들이 문화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이 주변 이민족인 돌궐, 선진, 흉노, 몽고, 여진 등을 오랑캐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유럽 문화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인문학자들이 그런 오랑캐가 만든 활자로 고귀한 책을 만든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베네치아에서는 구텐베르크가 만든 고딕체와 다른 새로운 활자를 만드는데, 그것을 ‘로만체(roman)’라고 부른다.<사진 4> 오늘날 로마자로 쓰인 책들의 본문에서 가장 흔히 보는 글꼴이다.

프랑스인들이 창조한 고딕 양식에 ‘고딕(gothic)’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은 조르주 바사리(1511~1574)다. 조르조 바사리는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에 활동한 화가이자 예술비평가이며 인문학자다. 바사리는 그의 명저 『예술가 평전(Lives of the Artists)』에서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양식을 ‘고딕’이라고 이름 붙이고, ‘야만적인 독일 양식(barbarous German style)’이라는 말로도 풀이했다. 고딕이란 고트족을 뜻한다. 고트족은 4세기부터 줄곧 로마를 위협했고, 410년에 로마를 점령해 사흘 동안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엄청난 양의 값나가는 물건을 약탈했다. 북쪽 오랑캐들 중에서도 고트족은 로마인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준 철천지원수다. 그러니 고트족은 이탈리아 인문학자들에게 위대한 고대 문명의 파괴자로 인식된다. 따라서 바사리가 ‘고딕’이라고 지칭한 것에는 이 양식을 경멸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고딕 양식’이라는 용어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고딕 활자가 이탈리아에 전해진 15세기에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에는 이탈리아인들도 고딕체로 채식필사본을 만들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문화를 재생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인들은 로마식 문자로 고딕체를 대체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던 것이다. 이에 따라 베네치아 인쇄소에서 재빨리 로만체를 만들어 고딕체를 대체했다. 구텐베르크가 고딕 활자를 만든 뒤 불과 30년도 안 돼서 로만체가 등장했다. 로만체는 게다가 고딕체보다 가독성이 훨씬 좋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에서도 로만체가 고딕체를 대체했다. 무엇보다 로마시대 기념비에 쓰인 글자에서 그 형태의 기원을 가져온 로만체는 이탈리아 인문학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만했다.<사진 5>

<사진 4> 베네치아 인쇄소에서 새롭게 개발한 로만체. 프랑스인 니콜라스 장송이 1460년대 말부터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사진 5> 로만체의 기원이 되는 대문자는 로마시대 트라야누스 황제의 승전 기념비에 쓰인 글자체다.

엄밀한 의미에서 글자의 형태와 그것에 덧붙여진 의미는 필연성이 전혀 없다. 고딕체라고 명명한 그 중세의 서체와 고트족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통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만든 것이다. 신영복이 쓴 그 글자 모양과 간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신영복을 미워하고 그를 간첩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의미일 뿐이다. 어디 서체뿐인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물과 특정한 형태와 모양, 색채에 주어진 그 수많은 의미들, 예를 들어 장미는 사랑이니, 흰색은 순결이니 하는 그런 상징적 의미들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즉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정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신영복이 쓴 글자로 레이블을 만든 소주 처음처럼은 ‘좌파소주’가 되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에 특정한 뜻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멈출 수 없는 종이다. 그런 의미에는 인종, 성, 계급, 정치적 정체성을 판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음에는 글꼴 이외에 이런 정체성을 담은 여러 가지 형태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