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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시간이 멈춘 마을, 서천군 판교면 판교마을

Disappearing village _ A village where time has stopped,
Pangyo Village in Pangyo-myeon, Seocheon-gun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마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으로 어느 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이 살았던 건물들만 남은 듯한 풍경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을 시간이 멈춘 마을, 타임캡슐 마을이라 부른다. 판교마을이라 부르는 현암리(玄岩里)는 서천군 판교면의 15개 리(里) 소재리로서 면사무소와 치안센터, 우체국, 농협 등 각 기관이 있으며 판교중학교와 오성초등학교가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서천군 동면에 속해있다가 1943년에 판교면에 편입되었고, 현암리의 지명 어원은 현재도 남아있는 ‘검은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현암리가 판교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된 것은 1930년 일제강점기에 식량 수탈과 징용 등을 위해 만든 장항선의 판교역이 들어서고 1932년 판교리에 있던 장터와 면사무소, 주재소 등 행정기관이 옮겨오면서였다. 전북과 충남의 상권이 이곳으로 집중되고 1970년대 제재·목공, 정미·양곡·양조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판교장(板橋場)의 규모가 충남의 3대 시장으로 커지고 충남에서 가장 큰 우시장(牛市場)이 생기면서 주변 지역 중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에 따른 대도시 집중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떠나고, 2008년 11월 27일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역사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4차선인 국도 4호선과 충남 서천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교통과 경제의 지리적 중요성을 잃고 경제가 급격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마을 또한 성장하던 때처럼 빠른 속도로 쇠퇴하였다. 마을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대지로 건축이 제한되면서 마치 1970~1980년대의 세월에서 멈춘 듯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조차 하나 없는 개발의 진전이 전혀 없는 곳, 마치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재 판교마을 인구는 200명이 안 되며 65세 이상 비율이 70%를 넘는다. 2021년 10월 13일에 구 판교역 주변으로 형성된 상권 지역 22,956제곱미터가 국가 등록문화재(제819호)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되어 문화 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해 왔지만, 이미 상실된 마을의 존재감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멈춤은 사라지는 시간을 내포하고 있고 개발과 파괴의 저항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라짐을 막기 위해 박제형 보존을 할 것인지 또는 새로운 변화의 지표로 삼아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숙제가 있다. 하지만 이미 상실된 마을의 존재 의미, 그리고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자연적 소멸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성장의 동력인 경제력이 상실되고 유입인구가 없는 마을은 더 이상 존재적 의미조차 상실한 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동일 정미소, 동일 주조장, 장미사진관, 오 방앗간(삼 화장 미소), 판교극장, 구 중대 본부, 일광상회 7개 건물 외에도 이곳에서는 애국지사 고석주 선생을 기념한 기념공원, 구 적십자, 의용소방대, 구 판교면 사무소, 전도관 등 30~70년대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구. 판교역
일제강점기인 1930년 11월 1일 식량 약탈과 전쟁물자 수송 징용 징병을 목적으로 개통한 장항선 역사로서, 옆 앞의 광장과 5분 거리에 오일장인 판교장이 있어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었다. 이곳은 지역민들의 만남의 장소로서 행정과 문화의 매개 장소로서 인근에 판교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으며, 판교마을의 번성기와 쇠퇴기를 만든 역사의 장소이다. 1930년대 주민 신봉균과 박동진 씨가 심은 역전 소나무는 역 광장 앞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과 전쟁과 산업화 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판교마을의 아픔과 번영과 쇠퇴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금은 그 당시 역사의 일부만 남기고 판교특화음식촌으로 새롭게 변모하여 서천9미를 맛보게 하고 있다.

판교장(板橋場)
판교역의 개통과 더불어 1932년 판교리 복판에 있었던 판교장이 이곳 현암리로 옮겨오면서 원근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물자를 사고파는 큰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곡물 의류 잡화 등을 판매하는 전통 오일장이었으며 주거래품목은 소와 세모시였는데 우시장은 광천, 논산과 더불어 충남의 3대 우시장으로, 세모 시장은 모시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저산팔읍(苧山八邑- 서천·비인·한산·홍산·임천·부여·공주·남포) 보부상들이 모시를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곳 우시장은 7~9월에 약 1,000여 마리 정도의 소가 묶여 있었고 하루에 수백 마리의 소가 거래되는 곳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을 정도였다. 우시장 주변은 소와 함께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회한과 기쁨 등으로 함께 한 정겨운 곳이었지만, 세월은 흐르고 현재는 그때의 모습을 담은 벽화만 남아있다.

옛 공회당(판교극장)
1960년대 지방 정부 홍보 및 집회시설로 사용할 공회당 건립을 추진하면서, 1961년 판교면이 우수 면으로 선정되어 지어졌다. 처음에는 지역민의 공공 행사를 위해 사용되다가 1967년부터 극장으로 활용되었다.
판교역과 판교장과 연관해서 197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는 영화 상영과 유명 코미디언 또는 가수들의 공연, 지역 콩쿠르 등 다양한 인근 지역 사람들의 문화 활동 공간으로 큰 역할을 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 보급에 따라 극장은 하향길을 걷게 되고 지금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그때의 추억을 아련하게 전하고 있다.

오 방앗간(삼화 정미소)
1930년대 문을 연 판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방앗간으로 주인의 성을 붙여 오 방앗간으로 불렸지만, 정식 이름은 삼화 정미소이다. 삼대에 걸쳐 운영했으며 상호의 삼화(三和)는 삼 형제가 의좋게 운영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담아 지은 것이라 한다. 절충식 목조구조체 독특한 외관과 함께 정미용 설비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로서 현재에도 기본적 건축형식의 원형과 내부 설비까지 작동 가능한 상태로 잘 보존되고 있다.

장미사진관
1932년에 판교면을 지배했던 일본인 부호 11명이 사용했던 곳이다. 남자 다섯, 여자 여섯이 동면 사람들 5,515명을 지배하며 농토와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 당시 일본 지주는 일본어로 일왕을 찬양하며 만세 삼창을 외쳐야 쌀을 빌려줬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의 여관으로 사용하다가 그 후 쌀가게와 사진관이 반반씩 사용하였고, 지금은 빈 건물로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마을의 유일한 2층 적산가옥으로 일제강점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일 주조장 / 동일 정미소
회백색 콘크리트 외벽에는 검은색의 세월의 때가 묻어 있다. 1932년에 지어진 주조장 건물로 이 지역 최고의 부호 박호성이 운영하던 술도가였다. 3대째 이어오다 2000년 12월 문을 닫았다. 1970년대 원활한 쌀 수급을 위해 바로 옆에 동일 정미소를 함께 운영했었다. 주조장 바로 앞 우시장과 오일장의 주막과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제공했던 곳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기서 번 돈으로 바로 옆에 판교중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판교의 현존하는 유일한 주조장으로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판교의 근대사적 상징적 산업시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촌닭집
1932년 행정기관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관공서 관련 업무인 행정문서를 작성해주는 대서방으로 사용되다 양품점·만화방·한의원·건강원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닭집으로 사용된 이 낡은 건물에는 마을 주민들의 삶이 겹겹이 붙은 채 시간이 정지된 건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건물의 뒤편에 마을의 상징인 현암 바위가 있고, 일자형 목구조로서 전면공간은 상가 용도로 후면 공간은 주택용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 오래된 간판의 글씨체들이 그 당시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서체 박물관 같은데, 이곳의 모습도 많은 글씨를 지니고 있다.

세월
– 곽재구​

사랑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세월은 가슴팍에 거친 언덕 하나를 새겨놓았다

사람들이 울면서 언덕을 올라올 때
등짐 위에 꽃 한 송이 꽂아놓았다

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을 모아 염전을 만들었다

소금들은 햇볕은 만나 반짝거렸다
소금은 소금 곁에서 제일 많이 빛났다

언덕을 다 오른 이가 울음을 그치고
손바닥 위 소금에 입맞추는 동안

세월은 언덕 뒤 초원에
무지개 하나를 걸어놓았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