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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대관람차 2018.04

월간 건축사지 2022. 12. 1. 10:11
Beach, Ferris Weel

 

판타지랜드는 단조롭고 타락하고 무능력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게 미소 짓는 영감의 장소이다. 이에 더하여 그런 곳들은 미리 보장된 흥분, 오락, 흥미를 제공하는 유토피아를 어느 정도까지는 진짜처럼 보여준다.

<장소와 장소상실>, 에드워드 렐프

 

대관람차를 좋아한다. 해변을 좋아한다. (분지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까? 내게는 여행지나 장기 체류지를 선택할 때, 그 장소가 바다나 강을 끼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보는 습관이 있다.) 항구도시의 대관람차를 좋아한다. 대관람차의 폐쇄적인 순환이 쳇바퀴를 도는 지옥 같은 일상을 닮았다는 상투적인 비유 때문은 아니다. 수많은 영화에서 데이트 장소로 출현하는 대관람차의 로맨틱함 때문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대관람차를 좋아하는가? 야경 때문이다. 한밤중에 네온사인이 들어온 대관람차를 보는 것은 환상과 현실이 뒤범벅된 짜릿한 느낌을 준다. 물론 대관람차를 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해질녘이나 밤중에 대관람차를 타고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으면 안 되고 마주보고 앉아서 동그란 기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대관람차를 시계로 보았을 때, 대관람차가 12시 정각 즉 정상에 올랐을 때의 아찔한 흔들림도 좋아한다. 대관람차라면 많은 사람들이 런던의 빅 아이를 떠올리겠지. 도시를 지켜보는 커다란 눈알이라니. 대도시의 시각적인 이미지에 쉽게 압도되는 사람으로서 그 이름조차도 마음에 든다. 이 글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항구도시의 대관람차 세 개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원더휠

코니아일랜드는 롱아일랜드비치와 함께 뉴요커들이 자주 찾는 여름 휴양지다. (겨울에 가기 좋은 바닷가로는 몬탁이 있다.) 이곳은 맨해튼 지하철 노란 노선(Y)의 종점에 위치해 있는 만큼, 작열하는 태양과 쨍한 노란색을 닮은 해변이다. 한여름이었다. 우리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돌아다녔다. 백사장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들의 현기증 나는 경로를 눈으로만 쫓으면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며 일광욕을 즐겼다. 우디 앨런의 근작인 <원더휠>에 나오는 대관람차 원더휠은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반복되지만 꿈처럼 반복되는 연애관계를 닮았다.

 

2.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21지구, 코스모클락21

미래의 항구라는 뜻을 가진 이름과는 달리, 이곳에 미래적인 대도시 풍경은 없다. 하지만 도쿄에서 40분가량만 이동하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항구도시에 도착할 수 있다. 봄이었다. 우리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봄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잔디밭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요코하마의 상징 같은 코스모클락21은 정중앙에 전자시계가 달려있다. 우리는 해질녘에 1시간이 넘도록 줄을 서서 15분가량 운행하는 대관람차를 탔다. 하늘에 떠 있었던 시간보다 대기시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지루해하지도 않고 바보나 아이처럼 설렘이 번져있었던 사람들의 표정 때문일까? 대관람차가 뭐라고.

 

3. 싱가포르, 싱가포르 플라이어

겨울이었다. 적도와 가까운 싱가포르는 여름밖에 없는 도시국가다. 우리는 패딩을 공항에 맡기고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마지막 날 저녁에 싱가포르 플라이어를 탔다. 해가 진 마리나베이의 검은 물빛과 가든스바이더베이의 현란한 인공 나무들의 보라색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대관람차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행자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전망을 선물한다. 세계 곳곳의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이기도 하다. 대관람차가 아주 조금 흔들리며 야경을 비출 때, 나는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눈앞의 환상적인 불빛 들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원환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황홀한 환상으로 범벅이 된 대관람차가 운행을 멈추면. 여기서 내리면, 그러면. 놀이공원에도 폐장 시간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꿈과 놀이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우리의 휴가는 빠르게 끝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름이 영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대관람차는 내가 통과하고 있는 이십대를 참 많이 닮아있다.

 

. 원성은 Won, Sungeun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