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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 구조의 민간 설계대가, 산업생태계 존폐의 기로에 있다 2023.2

월간 건축사지 2023. 2. 17. 17:22
The exploitation of private architecture design fees at the crossroads of the existence of industrial ecosystem

 

우연히 1995년에 논문을 쓰고 쉬는 동안 진행했던 지인의 다가구 주택 설계 계약서를 발견했다. 선배를 도와 설계한 연면적 600제곱미터 미만의 다가구 주택 설계금액은 3,500만 원이었다. 약 28년 전이다. 그때는 건축법적으로 설비나 소방 등 지금처럼 복잡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공사비 상승이나 분양가 상승, 임금 상승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10배 이상은 받아야 한다. 그러면 한 3억 5,000만 원 정도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28년 전에 비해 인상 없는 한심한 수준이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이 하락했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들이 열중하는 공동주택은 어떤가? 시장에서 소위 말하는 평당 순수 건축설계비는 1995년도에도 4~5만 원이 낮다고 아우성이었는데, 28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더 낮게 책정받고 있다. 그러니 아파트를 하는 건축사사무소들은 연면적 키우기에 열중하고, 통합이니 대단지니 하면서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으니, 실시설계 외주라는 고도의 생산성 증가 경영 노하우로 극복하고 있다. 실시설계 외주는 건축사 책임 하의 건축물이 동시에 얼마나 가능한지, 법적 논쟁거리다. 아무튼 이런 노력도 민간 건축설계대가의 퇴보상황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형화한 건축사사무소의 BPS나 사업성장관리 개발, 성과관리 시스템 선진화가 타 업종에 비하면 느린 이유도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지적으로 무너진 건축설계대가 체계로 인해 건축설계산업은 근본이 무너져왔다.
1인 건축사사무소가 전체 회원의 80% 정도인 우리나라의 시장 구조적 문제도 있다. 이는 업종의 특성이기에 악성 요인으로 보면 안 된다. 일본이나 대부분 국가들도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가장 큰 차이는 시장의 구성이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차이가 더 극명하다. 건축 시장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주거 건축은 극적 차이를 보여준다. 6층 이상 주택 구성이 전체의 10%를 차지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60% 가까이 차지한다. 대체로 6층 이하 주택이 소상공인 급의 건축사 시장이라고 한다면, 이를 통해 우리나라 건축설계산업 시장의 어려움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우리나라 인구의 3배 가까이 된다.
국제적으로 주택 설계시장 구조는 대부분 일본과 유사하다. 대량공급 주택정책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공산국가인 중국 정도가 비슷할 뿐이다. 더구나 주거는 나라마다 문화적 특성이 강해서 우리나라 주택 설계가 해외의 대중적 시장을 파고들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결국 국가적 건축 설계 경쟁력을 위한 선진화 방향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상공인급 건축설계산업을 붕괴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사업채산성 악화다. 민간 설계대가가 퇴보하는 사이 국내 인건비는 인권의 문제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급상승했다. 1990년대 1,200원대였던 최저 임금은 2023년 올해 만 원에 조금 못 미친다. 자그마치 8배 이상 상승했다. 설계대가는 퇴보했으나 각종 인증과 책임, 인건비 상승 등이 건축사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지면의 한계로 상세하게 서술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민간설계대가의 질낮음이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악화시킬지 장황하면서도 촌각을 다투는 문제다.
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는 건축설계대가, 소형 건축설계 시장, 국제경쟁력 없는 낮은 생산성의 대형건축사사무소…. 이런 비전으로는 세계적 건축사사무소들이 디자인한 것을 실시설계하는 수준의 건설사 부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민간 건축설계대가부터 정상화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덤핑하는 건축사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 건축설계대가 정상화는 더 이상 물러서기 어려운 산업존폐와 설계산업 종사자들의 생존 문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