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를 한 줄로 쓴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 2022.7
If you describe yourself in one sentence, what would it be?
거울을 본다. 차곡차곡 참 알뜰하게도 늙은 이 사람은 누구지? 나에게 내가 낯설다, 어쩐지 좀 민망하다. 염색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미용실을 찾았다. 휴대전화의 지도를 보며 찾아간 허름한 미용실에는 주인인 원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흔한 보조 미용사도 없고 머리를 손질하는 손님도 없었다. 한 시간에 딱 한 명 예약한 손님만 받으며 주인 혼자 꾸려 간다고 했다. “애들 다 대학 졸업했어요, 이제는 그냥 슬슬 즐기면서 하려고요.” 주인의 말에서 느긋함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눈이 참 크고 맑아요. 아주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실 것 같아요.
염색하고 나면 성격처럼 우아해 보일 거예요.”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기다리는 동안 원장이 말했다. 겨우 3만5천 원 염색 값을 내고 그 열 배쯤 되는 칭찬을 들었다. 어쩐지 남는 장사를 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처음 만나는 남에게 나는 차분한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그런데… 과연 나는 차분한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미용실 원장의 가벼운 덕담에 조금 무거운 질문을 품고 데스크톱을 열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새로 올라온 광고들을 보다가 간단한 한 줄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광고 카피를 만났다.
나는 꽤 깊은 사람. 뛰어들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어라, 이거 뭐지? 커서를 뒤로 돌려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피쉬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프립’이라는 취미・여가 활동 플랫폼에서 호스트로 활동하는 프리다이빙 강사 박태현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였다. 박태현은 15년 동안 수영 선수로 활동하다가 수영 강사가 되고, 다시 프리랜서 다이빙 강사로 변신한 실재 인물이다.
박태현O.V) 나는 15년의 수영을 버렸다.
잘나가던 수영 선수는 잘나가는 수영 강사가 되었다.
문득, 겁이 났다.
수영 강사가 내 커리어의 끝일까?
남들이 가지 않는 물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뛰어들었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커다란 세상에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욕심과 집착이 사라졌다.
물 속의 깊이만큼 내 속의 깊이도 깊어져 갔다.
나는 꽤 깊은 사람.
뛰어들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대단한 시작은 없어, 시작이 대단한 거지.
프립.
자막) Frip 발견해봐 진짜 나를
프립은 아웃도어, 스포츠, 원데이 클래스, 여행상품, 모임 등 다양한 여가활동을 가르치거나 제공하는 호스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취미・여가 플랫폼이다. 2016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해 2022년 4월 현재 누적회원 120만 명, 누적 호스트 1만7,000명에 이르고 있다. 전체 회원의 92%가 2030 MZ세대, 누구나 호스트가 될 수 있고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특히, 호스트 개인의 특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상품들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립의 참여자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성격을 재해석하고 몰랐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광고는 그들의 발견을 한 줄로 정리한다.
예를 들면, 프립의 주인공 포토그래퍼 장동원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꽤 호기심이 많은 사람. 사진을 찍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홈베이킹을 즐기는 이정인은 다음처럼 스스로를 정리한다.
나는 꽤 인생을 즐기는 사람. 직접 해보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러닝 전도사라는 직업을 새로 만든 안정은의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보자.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전공에 맞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오랜 꿈이었던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비자 문제로 1년을 백수로 지내야 했다.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접어야 했던 때 우연히 만난 달리기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처음 달린지 6개월 만에 첫 풀코스를 완주한 그는 마라톤 풀코스, 철인 3종 경기, 27시간 동안 한라산 111㎞ 완주 등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달리기로 성취감을 맛볼수록 자존감은 높아졌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했다. 그 결과 지금은 러너, 마라토너, 칼럼니스트, 강연자, 모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정은O.V) 나는 인생 실패자였다.
6개월 만에 퇴사한 첫 직장, 비자 문제로 합격 취소된 승무원.
대인기피증, 우울증.
침대에서 1년간 나오지 않았다.
그날은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고 눈물이 났다.
흘리는 눈물이 창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렸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150번의 마라톤 완주를 끝냈다.
나는 꽤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
달리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대단한 시작은 없어, 시작이 대단한 거지.
프립.
자막) Frip 발견해봐 진짜 나를
느긋하고, 경쟁을 싫어하고, 비관적인 성격이라 스스로를 싫어했던 정세준은 프립에서 요가를 하면서 생활의 기준이 서서히 바뀌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요가를 하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스스로를 이름없는 화가이자 작은 취준생이라고만 생각했던 김강은은 산에 올라 그림을 그리고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프립의 광고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꽤 넓고 큰 사람. 산에 오르기 전엔 단지 내가 누군지 몰랐을 뿐.
한 사람을 한 줄로 다 말할 수 없겠지만, 한 줄만 읽어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프립의 광고를 보고 깨달았다. 나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가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신이 없다.
대단한 시작이 아니라 사소한 시작을 한다면 내 안의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될까? 나에 대해 새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아마도 아주 작고 평범한 것이리라. 이를테면, ‘나는 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 같은.
무엇이 되었든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시작’부터 시작해 볼까? 어쩌면 지금은, 내 안에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줄 용감한 시작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7mq7WFN_kDg
프립_영상광고:피쉬맨 박태현 편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ZkTMN6fR5b8
프립_영상광고:러닝전도사 안정은 편_2020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