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ChatGPT)야 4월의 광고를 찾아 줘! 2023.4
Hey ChatGPT, find the advertisement for April!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흐른다. 방금 월간 건축사 3월호를 받아 들었다 싶은데 4월호 칼럼의 마감이 벌써 코앞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해도 딱히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없다. 완연한 봄, 꽃 피는 계절 4월에 딱 어울리는 광고가 뭐 없을까 여기저기 광고 관련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눈에 띄는 광고는 별로 없고 ‘챗GPT’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인다. ‘챗GPT’는 오픈에이아이(Open AI)가 2022년 11월 30일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공개 단 5일 만에 하루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출시 두 달 만인 올해 1월에 월 활성사용자(MAU) 1억 명이 되었다. 그리고 2월 13일 기준 유료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다른 앱이나 인터넷 서비스들이 세웠던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챗GPT가 미국 변호사 시험을 상위 10% 성적으로 통과하고, 미국 수능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미국 하원의원의 연설문까지 대리 작성했다는 뉴스가 들리더니, 챗GPT의 기획안대로 찍은 TV 광고가 나왔다는 얘기도 보도되었다.
챗GPT의 등장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하는 일만 해도 챗GPT를 이용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자료 검색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가 사라질 수 있다. 나도 트렌드를 따라 첨단 ‘생성 AI’를 활용해 봐야지, 하는 깜찍한(?) 생각을 하고 챗GPT에게 질문을 던졌다.
4월에 어울리는 감동적인 광고 10가지와 그 이유를 설명해 줘.
그리고 그 광고들의 유튜브 링크도 알려 줘.
챗GPT가 영어를 더 잘한다고 해서 영어로 물었다, 물론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질문을 만들었다. 30초 만에 대답이 올라왔다.
오호, 이것 봐라! 신기한 마음으로 내용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챗GPT가 뽑은 열 개의 광고 중 어느 것도 딱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다. 질문이 좀 애매모호했는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링크를 눌러보았다. ‘이 동영상을 더 이상 재생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고 아무것도 재생되지 않는다. 목록의 1번부터 차례로 링크 연결을 시도했다. 일곱 번째까지 누르니 겨우 재생이 된다. 2019년 큰 논란을 일으켰던 질레트 면도기의 광고다. 그간 ‘남성성’이란 가치 아래 방관됐던 여러 폭력적인 상황이나 성희롱 같은 언행을 비판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변화의 때가 왔다고 이야기하는 광고다. 영상은 과거 질레트 광고가 나오는 스크린을 찢으며 젊은 남성들이 뛰쳐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치 과거의 남성성에 대한 탈출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광고는 남성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남성성 그리고 남성이 보여줘야 할 올바른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연령대 남자들의 괴롭힘과 성추행, 성차별적인 행동, 과격한 모습 등이 보여지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Na) 이런 것들이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인가요?
이것이?
우리는 숨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너무 오래 지속돼 왔습니다.
웃어넘길 수도 없어요.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라고 오래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뭔가가 변했습니다.
다시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자 안에 있는 최고를 믿기 때문입니다. (Because we believe in the best in men.)
올바른 것을 말하세요, 올바르게 행동하세요.
일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일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는 어린 소년들이
미래에는 우리를 닮은 남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도전해야만
우리는 ‘최고의 우리’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자막)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The Best A Man Can Get)
당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남성(The Best Men Can Be)
2023년 3월 22일 현재 유튜브 조회 수 3836만, 좋아요 83만을 기록하고 있는 질레트의 이 광고영상은 발표와 동시에 ‘남성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큰 논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불매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들도 있었는데 질레트는 “이 광고가 많은 열정적인 대화를 촉발시키는 것을 안다. 이를 통해 최고가 된다는 것이 뭔지 우리가 멈춰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광고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라고 입장을 밝히고 단호하게 광고를 계속했다.
4월과 어울리는 광고는 아니었지만 챗GPT에게 꽤 흥미로운 광고를 소개받은 나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었다. ‘봄이나 꽃을 소재로 만든 감동적인 광고 10개를 찾아 그 이유를 설명해 줘.’ 챗GPT는 역시 1분도 안 돼서 대답을 했다. ‘꽃’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지정해서인지 이번의 목록은 꽃다발, 꽃길, 꽃무늬 옷 등이 등장하는 광고로 채워져 있었다. 구찌, 렉서스, 에스티로더, 갤럭시S21 등 유명 브랜드들이 꽃을 소재로 만든 광고를 소개했는데, 앞의 것보다는 질문에 좀 더 걸맞은 대답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광고들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챗GPT의 설명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상표와 광고 제목으로 검색하니 찾을 수 없는 광고가 여럿이었다. 광고는 있는데 내용 설명이 틀린 것도 있었다. 중요한 등장 모델인 장애를 가진 강아지를 ‘사슴’이라고 설명한 것이 한 예이다. 열 개의 리스트 중에 어는 것이 진짜인지 어느 것이 가짜인지 가리는 데 시간이 들었다. 정보의 홍수가 사라진 대신 가짜 정보를 판단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유료 버전은 대답의 오류가 훨씬 줄어들었다는데 아직은 내면서까지 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똑똑한 AI가 엉뚱하거나 거짓인 답을 하는 이유는 ‘헐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현상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챗GPT는 대답의 진위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단어를 인식하면 그 단어와 연관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통계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단어들을 조합해서 대답을 하는데 여기서 이상한 대답이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출근길 스마트폰으로 메일 도착 알림이 뜬다. 제목을 보니 ‘챗GPT와 광고산업의 변화 그리고 취업’이다. ‘ChatGPT 활용사례 및 활용 팁’과 ‘챗GPT 광고 활용방법’이라는 문서가 첨부파일로 붙어있다. 페이스북에는 카이스트 교수와 챗GPT가 나눈 대화를 책으로 만들어 출판했다는 소식이 보인다. 문장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알고리즘을 짜는 AI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나오고 있다.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일상의 속도를 멈춤에 가깝게 낮춰버렸다면, 챗GPT로 대변되는 AI는 세상의 속도를 무섭도록 빠르게 앞으로 돌리고 있다. 이 안에서 1년 뒤, 5년, 10년 뒤에 ‘쓰는 사람’은, 카피라이터는, 콕 찝어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인터넷에 적응하고 스마트폰을 기꺼이 쓰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더 편리하게 생활하며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을까? 그런 글이 있기나 할까? 기대와 두려움의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혼자 속 끓이지 말자. 이럴 땐 누구에게든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얼른 칼럼을 마무리하고 챗GPT에게 물어보자!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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