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나는 내일,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할까? 2023.5

월간 건축사지 2023. 5. 16. 16:31
Tomorrow, what will I forget and what will I remember?

 

 

구글의 검색창에 ‘잊지 않는 법’이라는 검색어가 뜨자 ‘망각을 피하는 4가지 방법’, ‘잊어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7가지 유용한 조언’ 등 다양한 검색 결과가 모니터 화면에 뜬다. 그중 ‘디테일, 즉 세부사항을 반복할 것’이라는 답변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이어서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아내인 로레타와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에 요청한다. ‘여기 당신의 사진이 있다’는 자막과 부부의 사진 두 장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그 사진에서 콧수염을 기른 자신의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로레타가 내 콧수염을 싫어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요구한다. 이 명령을 들은 구글 어시스턴트는 기억하겠다고 답변한다. 
구글이 개발한 구글 어시스턴트는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서 질문을 파악하고 음악 재생이나 예약, 스케줄 조회, 메시지 전송 등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AI) 비서 시스템이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내의 사소한 버릇과 취향을 기억해 달라고 구글 어시스턴트에 대고 요구하고, 구글은 모든 요구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그가 기억하라고 얘기했던 것들을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연속해서 보여준다. 입력된 날짜는 2017년부터 광고가 제작된 2020년까지 이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로레타를 아내로 맞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자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은 아내를 잊지 않기 위해 구글 어시스턴트를 이용하는 85세 된 노인의 실화를 영상으로 만든 광고의 내용이다. 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의 2020년 시즌에 전파를 탔다. 

 

 


검색창 질문)       잊지 않는 법


검색창 답변)       세부사항들을 반복할 것


남V.O/자막)        나와 로레타의 사진을 보여 줘. 


검색창 답변)       여기 당신의 사진이 있어요. 


#부부의 사진 두 장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사진 한 장 속의 남편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남V.O)                하하 기억해 둬, 로레타는 내 콧수염을 싫어했어.


검색창 답변)      오케이, 기억할게요. 


남V.O)                기억해. 로레타는 알래스카 여행을 좋아했어, 그리고 가리비도.


검색창 답변)      네, 기억할게요. 


남V.O)               우리의 기념일 사진을 보여 줘.


#기념일에 찍은 사진과 로레타가 웃는 모습이 화면에 뜬다.


남V.O)                기억해! 그녀는 웃을 때 늘 코웃음 소리를 냈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줘. 


#영화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이 보여진다.


검색창 답변)      여기, 나에게 기억하라고 말했던 것들이에요. 
                          로레타는 뮤지컬에 나온 노래를 콧노래로 부르곤 했어. / 2020. 1. 26.
                          로레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튤립이야. / 2019. 11. 27.
                          로레타는 손글씨를 참 아름답게 썼어. / 2018. 7. 2.
                          로레타는 무척 기뻐하며 말하곤 했어. / 2017. 8. 23.
                          로레타는 항상 말했어, 젠장 나만 너무 쳐다보고 있지만 말고 집 밖으로도 좀 나가요. / 2017. 5. 14.


남V.O)                기억해 둬.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야!


자막)                  작은 일에 작은 도움이 됩니다.(A little help with the little things.)

 

구글_구글 슈퍼볼 CM_로레타_2020


CNN비즈니스는 2020년 2월 3일자 뉴스에서 “구글의 광고 목표는 기업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어서 광고 속 주인공이 실제 구글 직원의 할아버지라는 사연을 소개하며, 광고를 볼 때 눈물을 닦을 휴지를 준비하라고 쓰고 있다. 이 광고는 CNN의 보도 당시 이미 유튜브에서 거의 1,200만 뷰를 기록했다. 미국의 가장 큰 방송사 그룹 중의 하나인 TEGNA는 2020년 “슈퍼볼 경기는 패트릭 마홈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우승했지만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구글의 로레타 광고”라고 논평했다. 
자꾸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첨단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는 80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광고의 주인공 할아버지와 아내 로레타

  
기억력이 좋아졌으면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미국의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가 ‘두뇌 임플란트’ 시술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두뇌 임플란트는 기억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뇌에 컴퓨터와 직접 통신하는 칩을 이식하는 치료법이라는데, 이 시술을 받으면 자신의 기억을 보조기억장치에 저장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뉴럴링크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2016년 설립했다. 일론 머스크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앞으로 인간은 AI와의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뉴럴링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지난 3월 2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뉴럴링크가 뇌 임플란트 임상시험 참가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 자주 생각이 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고는 왜 열었는지 한참을 생각할 때가 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짝이었던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까맣게 잊어버린 내게 필요한 시술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아빠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고, 눈 감고도 외우던 소월의 짧은 봄 시(詩)가 헷갈리고, 방금 코끝에 스친 익숙한 향기가 무슨 냄새인지 떠오르지 않는 내가 받아야 할 시술인 것도 같다. 


하지만 잊고 싶은, 잊어버려서 다행인 치욕과 부끄러움, 배신과 상실, 비참함이나 쓸쓸함의 기억들을 생각하면 망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망각이란 나이 먹어 생기는 손실이 아니라, 뇌가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의도적인 ‘편집 기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단다. 적극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뇌와 컴퓨터칩을 심어서라도 기억을 붙들어 두고 싶어 하는 뇌가 모두 내 안에 있다.  
5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전부 오월에 몰려 있다. 까맣게 잊은 내 아이들의 어린 날과 내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초중고 선생님의 얼굴들이 인상파 그림처럼 흐릿하게 떠오른다. 이 오월에 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또 무엇을 잊어야 할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뇌 속에서는 뭐가 희미해졌고 뭘 또 잊어버렸을까? 아마 나도 이미 누구에게는 희미해졌고 누구에게는 잊혔을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를 기억하는 이를 내가 잊는 일이 슬플까, 아니면 나는 기억하는 사람이 나를 잊어버리는 게 더 서글플까?
저질 기억력을 가진 나는 그저 오늘 기억하는 일을 해치우고, 오늘 기억나는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 몫의 기억을 끌어내서 오늘 몫의 인생을 살고 오늘 몫의 행복이나 쓸쓸함을 뇌세포 한구석에 넣어두는 것이 내 오늘의 최선이다. 지금 기억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지금 내 곁의 일과 사람에 뜨겁게 집중하자고 마음먹는다.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그래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BWp6HdS7Uw 
구글_구글 슈퍼볼 CM_로레타_2020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