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코로나가 가고 무엇이 남았을까? 2023.6

월간 건축사지 2023. 6. 21. 16:49
COVID-19 is gone and what's left behind?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나니…


구약성서 전도서의 1장 9절에 나오는 말이란다. 맞는 말이다. 머리를 쥐어짜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남이 만든 광고에 있는 아이디어였던 경험이 부지기수다. 광고만큼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말이 들어맞는 영역도 드물 것이다. 광고인들은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거의 습관적으로 지금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과 연예인, 유행어 등의 트렌드를 조사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유행하고 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쪽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벌써 있는 줄 모르고 남과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끔은 아예 이미 히트한 광고나 영화, 드라마를 패러디해서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에 본 아주 잘 만든 패러디 광고는 영국의 패션 브랜드 버버리(Burberry)의 2020년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이다. 버버리는 1952년 제작된 고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원제목:Singin' in the Rain)에서 주인공 진 켈리(Gene Kelly)가 춤추는 장면을 화려한 현대적 안무로 탈바꿈시켜 광고를 만들었다. 비가 아니라 커다란 얼음 우박이 떨어지는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버버리의 옷을 차려입은 4명의 무용수가 우박을 절묘하게 피하며 춤을 준다. 그들은 펄쩍 뛰고 빙빙 돌면서 얼어붙은 우박 덩어리를 빗나가게 하고 손으로 쳐서 부수며 바다로 나아간다. 우박이 내려도 젖지 않고 춤사위가 흔들리지 않는다. 

 


BGM 노래 가사)


나는 빗속에서 노래하고 있어요. 
빗속에서 노래해요.
정말 즐거운 느낌이에요. 
그리고 난 다시 행복해졌어요.
아주 어둡고 높이 있는 구름을 보고 웃고 있어요.
태양은 내 마음속에 있고 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폭풍우 치는 구름을 쫓아버려요.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비를 따라와요.
난 미소를 띠고 있어요.
행복한 후렴구를 부르며 좁은 길을 내려가요.
빗속에서 노래해요, 빗속에서 춤을 춰요.
난 다시 행복해요.
빗속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어요.
빗속에서 춤추며 노래하고 있어요. 


버버리_크리스마스 시즌_영상광고_2020

 


미국의 광고전문지 애드에이지(AdAge)는 2020년 제작된 최고의 브랜드 캠페인 중 하나로 이 광고를 꼽으며, 버버리가 ‘(코로나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가 가진 신속한 회복력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은유’로 이 광고를 포지셔닝했다고 평가했다. 
이 영상을 만든 버버리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는 이 광고를 “그것은 한계를 밀어제치는 두려움 없는 정신과 상상력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캠페인은 젊음에서 영감을 받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양한 재능과 사람들이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하나가 되게 합니다. 열정, 헌신, 사랑으로 결속된 이 캠페인은 그들의 꿈, 탐구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제작한 영국의 감독 집단 메가포스(Megaforce)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작의도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메가포스는 버버리의 창립자가 극지 탐험가들을 위해 악천후에 견디는 혁신적인 옷을 만든 것에서 비바람에 맞서는 버버리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들은 고전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버전을 만들고 싶어서 몇 가지 장치를 했다. “올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해였기 때문에, 우리는 비를 얼음덩어리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역경을 겪을 때는 함께 겪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주인공을 한 명에서 네 명의 친구 그룹으로 변경했습니다.”라는 것이 메가포스의 설명이다. 
요약하면, 이 광고의 제작 의도는 전 세계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격리되고 고립되어 고통받고 있을 때 다양한 사람이 함께 모여 악천후에 굴하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2분 남짓한 상업광고 영상 하나가 무슨 그렇게 큰 뜻을 표현하고 있을까 싶고, 시청자 중에 몇 명이나 그런 의도를 알아봐 줄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아직도 지구 어느 곳에는 이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버버리 광고가 오마주한 영화의 동영상을 찾아본다. 1996년에 세상을 떠난 배우 진 켈리가, 비 쏟아지는 날 여자 주인공을 집에 데려다주고 문 앞에서 키스하고 돌아서면서 기쁨에 겨워 노래를 한다. 자신을 기다리던 택시를 그냥 보내고 우산도 접은 채 팔짝팔짝 뛰면서 빗방울을 튕기는데 굵은 빗줄기가 가로등 아래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이 장면의 촬영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떠돌고 있다. 매일 6시간씩 가짜 비를 뿌리며 일주일쯤 걸려서 촬영했고, 비가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물에 우유를 섞었는데 그래서 진 켈리가 입은 양모 정장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그중 하나이다. 진 켈리가 39도나 되는 고열에 시달리며 촬영을 강행했다는 소문도 있다. 또 낮에 촬영하면서 밤의 어둠을 연출하기 위해 영화사인 MGM 뒤 주차장 두 블록을 방수포로 덮고 오버헤드 스프레이를 설치했다고 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커다란 우박 덩어리로 화면을 가득 채운 버버리의 ‘싱잉 인 더 레인’과 비교하면 원시시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노래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은 나시오 허브 브라운(Nacio Herb Brown)이 작곡하고, 작사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아서 프리드(Arthur Freed)가 작사한 곡인데,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가 2004년에 공개한 20세기 미국 영화의 100대 노래 목록(AFI's 100 Years…100 Songs)에서 3위에 올랐다. 

 

 

영화 속에서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노래하는 진 켈리


칼럼을 마무리하는 동안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퍼부었다. 소나기 속으로 뛰어나가 한바탕 춤을 추는 상상을 하며 우산을 받쳐 들고 문밖으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비에 뛰던 아이 하나가 빗줄기가 거세지자 뜀박질을 멈추고 천천히 걷는다. 피할 수 없으니 아예 흠뻑 젖기로 한 모양이다.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코로나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6월부터 국내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최고 수위인 ‘심각’에서 ‘경계’로 떨어지면서 코로나 창궐 3년 5개월여 만에 ‘엔데믹’ 세상을 살게 되었다. 확진자의 7일 격리 의무가 해제돼 5일 격리 권고로만 남고,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 대부분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도 사라졌다. 지난 3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아득하다. 아마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서 견딜 수 있었지 싶다. 남들도 나처럼 다 힘들고 남들도 나만큼 다 답답하니까 그럭저럭 살았던 것 같다. 하릴없이 ‘고립’에 동참하면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나랑 더 자주 만났던 시간이기도 했다. 버버리 광고 속에서 얼음덩어리를 피해 춤추는 댄서들처럼 코로나라는 우박을 피해 용케 여기까지 왔다. 
코로나가 가고 거실 서랍장 한구석에 300장이 넘는 마스크가 남았다. 평생을 써도 남을 양이다. 코로나가 가고 마음 속의 장롱에도 눈엔 보이지 않는 마스크가 남았다. 평생을 쓸 수 있는 전천후 마스크다. 언제 어디서 꺼내 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어떤 나쁜 바이러스에게도 지지 않고 나를 지켜줄 든든한 마스크다. 그 마스크의 다른 이름은 사랑, 그리고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p2YxSG2sik&t=13s 
버버리_크리스마스 시즌_영상광고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wloMVFALXw 
Singin' In The Rain OST_1952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