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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환경을 만들고 미래를 창조하다 ⑥ 욕망의 절제와 균형, 좋은 도시의 조건 2023.10

월간 건축사지 2023. 10. 31. 09:40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⑥ Moderation and balance of desire, conditions of a good city

 

 

 

도시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욕망은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 중 하나다. 따라서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욕망의 충돌이 생기고, 이성의 존재인 인간은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하고 합의하면서 상호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도시는 이런 욕망의 절제와 균형이 발현되는 곳이다. 근대 이전의 사회는 철저한 힘의 논리로 통제되었다. 건축은 그런 통제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상징이나 규모, 형태나 색상 등은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예를 들면 강력한 왕권 국가의 수도였던 베이징은 황제의 권한으로 온갖 색을 공개된 장소에 사용하지 못했다. 색뿐만 아니라 용의 형상까지 제한했다. 색과 용의 형상을 사용하는 것은 반역으로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런 이유로 민간의 부유한 상인이나 관료들은 함부로 집을 키울 수도, 형태를 만들 수도, 색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부와 지위를 겉으로 과시하는 행위 자체를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수많은 민간 건축은 외부에서 보면 철저하게 색이 통제되었다. 용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문화적 취향 역시 용 모양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해서 입에 문 여의주를 뺀다던가, 발톱이나 뿔을 없애는 방법으로 피해 나갔다.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력한 권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덕분에 베이징의 일반 건축들은 거리에서 보면 회색빛 일색이다. 물론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공간이 나오지만, 도시의 시각에서 바라본 건축은 무채색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베이징의 별명 중 하나가 회색 도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강력한 힘으로 통제돼 질서를 이뤘던 도시는 근대 이후 개인의 자유가 커지면서 질서와 규칙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도시는 다시 정리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소위 민주주의 사회에서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지루하다.
도시를 점유하는 토지와 건축은 특히 눈에 보이는 갈등의 중심에 있다. 토지와 건축은 개인의 이익이라는, 욕망의 출발점을 철저히 자극하는 요소다. 자산가치뿐만 아니라, 자산증식의 수단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어, 런던과 파리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런던은 시대에 맞게 도시 구조를 개편하려고 했지만, 발언권이 있던 상인과 귀족들의 이익과 타협된 도시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때문에 런던에는 다양한 골목길이 남아 있고, 건축의 규모 역시 제각각이다. 작은 동네들 중에 계획적으로 조정된 부분은 남아 있지만, 도시 전체를 보면 일목요연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낡은 건물 사이로 최첨단의 신식 건물들이 들어서는 무질서한 특징을 드러낸다. 리처드 로저스는 이런 런던의 풍경과 대비되는 파리를 언급한 적이 있다. 파리의 시장이었던 오스망은 강력한 집행력을 행사했다.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도시 개조를 진행한 결과, 파리는 일목요연하고 정리된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결코 옳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파리의 계획적 재구성은 오히려 과거의 흔적이 생존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파리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지 않는 건 아니다. 라데팡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지역을 만들어서 완전히 새로운 첨단의 건축과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렇듯 파리와 런던의 대비되는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보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다가가야 하는지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도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되는 만큼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국가 권력 또는 지배 권력이 절대적이던 시대에서 국민 주권시대로 이동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존 도시를 개조하긴 쉽지 않다. 파리나 런던 모두 모델이 될 수 있지만 둘 다 ‘설득’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설득에 드는 시간이다. 그 때문에 이런 설득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규칙, 법으로 보완해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설득만 잘 되어 동의를 얻으면, 매력적인 도시 만들기는 어렵지 않게 진행된다. 십수 년간 400여 명의 지주를 설득해서 단 몇 년 만에 재개발을 진행한 록본기 힐즈는 이런 측면에서 매우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런 사례가 드물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시사한다.
건축과 도시의 수많은 개념과 주장들 상당수는 이런 개개인의 욕망 조율이 필수이기에 가급적 욕망을 통제할 수 있거나 도덕과 신념, 이성 등으로 조절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바로 그런 것을 담당하고, 고민하며, 구성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부작용 많은 게이티드 커뮤니티
도시구조의 개편, 또는 개선은 도시 거주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동의를 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자산증식 효과가 나타나는 도시라면 동의를 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들은 언제든 집단적인 이익 추구 성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이익, 자산 증식 기회는 매우 중요하다. 개인이 공통의 이해관계로 뭉치면서 이익집단화가 되어 도시와 건축을 맘대로 요구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이익집단화는 균형과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도시에서 굉장히 첨예하고 예민한 현상이다. 이익집단화는 어떤 장르나 분야에서보다 도시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도시에서의 이익집단화는 영역화로 드러나며, 대표적인 것이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다. 성안의 마을로 읽힐 수도 있는데, 성안이라는 표현만큼 폐쇄적이고 타인을 배제하는 공간이다. 허허벌판의 개척지에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다양화의 가치가 존재하고 흐름이 중요한 현대 도시에서는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건축, 도시 계획, 사회적 갈등 또는 경제와 관련한 심각한 단점이 있다. 단지 물리적이고 영역적인 울타리가 아니라, 도시 기능을 심각하게 마비시키고 효율을 저해한다. 더 큰 문제는 이익을 목적으로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구성될 때다. 이 경우 한층 배타적이고, 도시의 특정 부분을 독점해서 전체 기능을 마비시킬 위험까지 있다.
건축과 도시적 시각에서는 종종 전체 도시 구조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 도시의 다른 부분들 사이가 단절된다. 도시의 영역 사이를 분리하며 대중의 접근을 제한하고 다양한 소득 계층을 분리함으로써 도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한다. 사회적으로는 계급 분열을 악화시키고 거주자 간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제한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도시의 나머지 지역은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로 폐쇄된 지역 사회 내에 자원과 서비스를 집중시킴으로써 불평등이 증가한다. 수많은 디스토피아 영화에 나오는 전혀 다른 계급사회다.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건축 계획적 관점 
· 격리 : 게이트가 있는 커뮤니티는 종종 독립적인 건축 디자인을 갖고 있어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 격리된다. 이는 도시 구조 내에서 통합과 응집력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
· 단조로움 : 문이 있는 커뮤니티는 종종 균일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므로 도시의 전반적인 건축 정체성에 기여하는 다양성과 특성이 부족하다.
· 제외 : 이러한 커뮤니티의 아키텍처는 디자인과 레이아웃이 더 광범위한 대중과의 상호 작용을 방해하므로 독점성을 강화한다.

<사진 1> 수변공간에 대한 공공 보행 접근을 차단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도시의 공간 이용률을 낮추고, 조망 독점으로 가치의 경제적 독점 이익을 취하고 있다.


B. 도시 계획적 관점
· 접근성 제한 : 폐쇄형 커뮤니티는 대중의 접근을 제한하여 도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고 연결을 방해할 수 있는 인공적인 장벽을 만든다.
· 도시 스프롤(Urban Sprawl) :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종종 개발을 위해 더 넓은 면적의 토지를 필요로 하며, 귀중한 열린 공간을 소비하고 통근 거리 증가에 기여하기 때문에 도시 스프롤현상이 확산된다.
· 파편화 : 개발이 전체적인 도시 전체 계획보다 개별 영토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게이트된 커뮤니티의 존재는 파편화된다.<사진 1>


C. 사회적 갈등 문제
· 사회경제적 분리 : 게이트가 있는 커뮤니티는 고소득 거주자를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어 도시 내의 사회경제적 분리와 분열에 기여,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계급공간화가 일어난다.
· 배타적 사회와 사고방식 : 폐쇄된 커뮤니티의 배타성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조장하여 커뮤니티 거주자와 외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 사회적 구조의 침식 : 폐쇄된 커뮤니티 거주자와 일반 대중 간의 상호 작용 감소는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침식하여 문화 간 및 계층 간 상호 작용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D. 경제적 부조리와 비효율성
· 자원 집중 : 폐쇄형 커뮤니티는 서비스, 편의 시설, 녹지 공간과 같은 자원을 기득권 중심으로 경계 내에 집중시켜 도시의 나머지 지역에서 자원을 분산시킨다.
·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 주변 이웃과의 경제적 참여가 제한되어 잠재적으로 지역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고 해당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감소시킨다.
· 불평등 증폭 : 폐쇄된 커뮤니티와 도시, 그리고 다른 부분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자원과 기회가 이러한 고립 지역에 불균형적으로 집중되어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건축적 고립을 일으키고, 도시 계획을 방해하며,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적 및 경제적 라인에 따라 도시를 더욱 분열시킬 수 있는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대한 정책의 착각과 대안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대한 착각으로 이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정책적으로 묵인할 수도 있다. 특히 현실적으로 공공이 관리할 대상인 공공도로나 보행로 등 각종 공공 인프라 영역이 게이티드 커뮤니티로 흡수되어 관리 대상 규모가 축소되는 것에 주목한다. 관리 대상이 축소되기 때문에 각종 책임으로부터 부담이 덜할 수도 있으며, 공공비용 지출도 줄어들 수 있어서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소위 선택과 집중의 정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잠재적으로 비용 절감 또는 잉여 자금을 통해 공공 서비스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진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 이런 길을 갔었던 산업국가들은 이내 이런 시각을 버리고 도시 내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다양한 방식으로 억제 또는 금지하고 있다. 많은 연구에서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보안에 더 유리하다는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게이티드 커뮤니티 구축에 대한 문제를 앞서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몇가지 문제도 있다.

도시 공동체 위해(危害)
a. 정체성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 : 개인 편의 시설이 있는 폐쇄된 커뮤니티는 주민들이 공공장소, 문화 기관 또는 지역 기업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지역 사회 주도권(initiative,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원을 감소시킬 수 있다.
b. 통합 부족 : 신중한 계획과 통합 없이 대규모 게이트 커뮤니티가 도심에 개발되면 도시 경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이것은 단절되고 미학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도시 경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c. 경제적 의존성 : 게이티드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잉여 자금에 의존하면 시 예산이 부동산 시장의 경제적 변화에 취약해질 수 있다. 시장이 흔들리면 도시의 재정 안정성이 손상될 수 있다. (부동산 급등락을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d. 공공 관리 통제력 상실 : 잉여 자금이 처음에는 유익해 보일 수 있지만, 통제된 ​​커뮤니티 내의 민간 기업에 공공 관리 통제권을 양도하면 해당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책임과 투명성이 감소할 수 있다.
e. 장기적 지속 가능성 : 개발 추세, 시장 조건 및 거주자 선호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잉여 자금을 위해 게이티드 커뮤니티, 즉 폐쇄된 커뮤니티에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사진 2> 단지 내 공공보행로에 대한 갈등 기사들

 

<사진 3> 단지 내 공공보행로에 대한 전문가들의 순진한 발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분당 신도시의 공공보행로처럼 실제 적용된 경우를 보면 완전히 독립된 경우만 가능함을 알 수 있다.(신도시 보행자 도로 _분당)


이에 대한 대안은 당연히 느슨한 형태 또는 개방된 구조의 커뮤니티 공간 구성이다. 즉, 통과 도로와 보행공간 등으로 누구에게나 이용 가능한 지상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접한 영역의 접근성을 개방하는 것이다.<사진 2, 3>

일견 합리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토지 효율성과 가용성은 경제적 지위에 따른 공간 계급화나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성에 대한 대립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정치적 발언권이 커지는데, 이런 정치적 발언은 공공성이나 모호한 가치 지향성을 띠기보다는 선명한 이익 중심적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오래전부터 뉴스에 등장하는 통행로 폐쇄나 등하굣길 차단, 공공시설의 선별적 배치 등은 이런 이익 중심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에서 비롯된다.
자연재해나 환경의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한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아닌 경제적 자산증식 수단으로 오용되는 환경 구성을 가급적 억제하거나 법으로 지양하는 것이 타당하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