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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필리핀 대회가 남긴 것들 2023.11

월간 건축사지 2023. 11. 30. 09:25
Lessons from the ARCASIA in Philippines

 

 

 

지난 9월 필리핀에서 개최된 제20회 아시아 건축사대회(ARCASIA Congress)에서 차기 2025년 대회의 인천 개최가 확정됐다.

 

지난 9월 17~23일 개최된 제20회 아시아건축사대회(ARCASIA Congress, 아카시아 대회) 참석차 필리핀의 보라카이 섬으로 향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출장단은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첫 번째, 2025년에 열리는 차기 아시아건축사대회(ARCASIA Congress)를 대한민국의 인천에 유치하는 것이다.
2025년은 1965년에 설립된 대한건축사협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우리 한국의 건축사들에게는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의미가 남다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시각에서도 의미 깊은 해가 될 것이다. 2025년은 전 세계 195개 나라가 비준한 파리기후협약이 달성하기로 한 탄소중립의 목표시점인 2050년을 향해 가는 과정의 정확히 절반이 되는 시점이다. 즉, 21세기에 들어서 사반세기가 흐른 시점에서 전 세계의 건축과 도시의 변화상을 중간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인 것이다. 전 세계가 공통 목표로 상정한 기후변화, 탈탄소의 여정에서 건축과 도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대표단의 도착을 환영하는 필리핀 주최 측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학생대표와, 석정훈 회장(우측 끝)과 신춘규 부회장(좌측 첫 번째)

 

대한건축사협회는 2022년 9월 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아카시아(ARCASIA) 포럼에서 석정훈 회장이 처음으로 유치 희망 의사를 표명한 이후, 수차례 회의 끝에 한국이 제안할 아카시아 대회 개최 장소를 인천으로 선정하면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개최 도시인 인천광역시와 대회 유치를 위한 MOU를 체결한 6월 21일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고, 유치제안서 제출 시한인 7월 31일에 맞추기 위해 국제위원회와 유치준비위원회를 가동하며 신청서 마감일까지 유치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제안서에 담아야 할 내용은 광범위했다. 개막식, 학술행사, 아시아 건축의 미래를 담당할 주역인 학생 잼버리 등의 아카시아 대회 각종 행사를 비롯해 각종 투어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제안서에 담아야 할  내용은 끝이 없었다. 2017년 UIA 서울세계건축사대회 계획을 주도한 오동희 유치준비위원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천 지역의 건축사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한편, 인천광역시의 글로벌 도시국의 지원과 협조를 받으면서 행사 장소, 프로그램 일정 등의 세부 사항을 조율했다.  

아시아 각국 건축사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대회 주제의 선정은 대한건축사협회가 어떤 시각과 철학을 담아 2025년 대회를 준비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UIA와 ARCASIA라는 중요 국제기구들이 기존에 치러 낸 대회들의 주제를 분석해서 참고하는 한편, 인천대회가 담을 수 있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발굴하고자 국제위원회에서는 두 가지의 주제 후보안을 만들어서 내부 토론을 진행했다.  

 

 

ACA21(제21회 아카시아 대회)의 주제를 설명 중인 오동희 유치준비위원장


‘Connecting the Future’와 ‘Better Tomorrow’라는 두 개의 주제 후보를 두고 논의한 결과, 기존의 건축국제기구가 주관한 대회의 주제가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응하는 건축을 지나치게 딱딱한 과제 위주로만 운영해 왔다는 자성이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인천대회에서는 더 밝은 미래로 전진하자는 희망을 전파하고, 긍정적 접근 방법을 담기 위해 가장 단순한 단어로 구성된 ‘더 나은 미래(Better Tomorrow)’를 대회 슬로건으로 제안서에 담기로 했다.  

개최지를 선정하는 투표는 아카시아 대회 중 열리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카운슬 미팅 마지막 날의 하이라이트이다. 9월 21일 오후 2시경 산적한 아카시아 현안들의 토론이 끝나고 차기 대회 개최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석정훈 회장이 선두에서 왜 대한건축사협회(KIRA)가 한국의 인천을 개최지로 제안하는지를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짚어 설명했고, 이어 오동희 대회유치  준비위원장이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인천의 장점을 제안했다. 협회 대표단은 아시아 20여 개 국에서 온 각국 건축사협회 회장단이 제안설명을 경청하며 메모하고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긴장 속에서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었다. 인천광역시장을 대리한 류윤기 글로벌도시국장의 “인천은 아시아의 모든 건축인들을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프리젠테이션이 마무리되었다.  

이윽고, 아카시아 회장 아부 사예드(Dr. Abu Sayeed) 박사가 각국의 의견을 묻는 시점에 참가국들은 박수로서 만장일치로 인천을 차기 개회지로 승인하는 의사를 보여주었다. 당초 예상한 경쟁 후보였던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은 강력한 후보인 인천의 위상과 잘 갖추어진 국제회의 인프라를 접하고 유치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필리핀 아카시아 카운슬 미팅에서 인천이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한국건축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기대와 인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래에 K-건축의 가능성을 인천에서 선보이고 각종 행사를 통해 우리 협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5년 대회에서 한국건축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탄소중립의 어젠다를 한 차원 더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 건축사협회 회원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공동의 과제가 될 것이다. 

 


아시아 건축사 단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다
두 번째 노력은 협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중요정책(민간 발주 프로젝트에서 공정한 업무대가의 실현)에 아카시아 회원국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 것이었다. 우리 건축사협회의 노력이 국제적 시각에서 봐도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국내에서 다시 우리의 노력을 더 확산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의무가입이 실질적으로 발효된 금년 8월 전후로 새로 가입한 신규 회원들이 협회에 갖고 있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적인 연대와 지지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협회 국제위원들은 보라카이 현지에서 아카시아 각종 세미나, 위원회 미팅들이 열리는 짬짬이 아카시아 회장단과 상임 위원장들과의 다양히 접촉하며 의견을 교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아카시아 이사회인 카운슬 미팅에 이 안건을 상정하면 회원국들의 자유토론에서 의견을 모아보자는 기운을 확산시켰다. 

회원국 회장들이 다 모이는 전체회의에서 개별 국가 건축사들의 내부 사정을 토론한 전례가 거의 없어서 회의 분위기를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민간대가 공정화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건축사들이 보편적으로 당면한 것이라는 점, 사전 접촉을 담당한 국제위원들로부터 오히려 외국의 건축단체장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석정훈 회장의 결단과 아카시아 회장단의 일원인 신춘규 건축사(ARCASIA Zone C 부회장)의 지원에 힘입어, 이사회 전날 이 안건을 상정하기로 방침을 정할 수 있었다. 

전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이사회 제안설명이 완성되었다. 제안 설명 때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싱가포르건축사협회(Singapore Institute of Architects)의 회장 멜빈 탄(Melvin Tan)은 한국의 제안문을 같이 검토해 주며 따뜻한 공감과 지지를 보여주었다. 

 

아카시아 이사회에 참석한 석정훈 회장(우측)과 이건섭 국제위원장(좌측)
대한건축사협회(KIRA)의 용역비 개선 노력을 설명하는 이건섭 국제위원장
문건에 서명하는 아카시아 차기회장 사이푸딘 아매드(Ar. Saifuddin Ahmad)


9월 20일, 총회에서 한국의 발언 순서가 되었다. 이전 발표자로 나선 싱가포르의 멜빈 회장이 건축설계를 잘 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용역비를 받지 못하면서 업무를 하는 현상이 자국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는 산업 자체의 저하와 공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뒤였다. 

배턴을 이어받은 대한건축사협회는 지난 수년간 의무가입의 실현을 통해 건축사들의 단결과 윤리의식 제고를 위해 노력해 온 것, 현재도 저가 용역비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민간부문의 문제들을 언급한 뒤, 이제 “한국의 건축사협회가 최초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는 10월 초에 공정대가 실현(Achieving fair level of fee)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앞두고 있으니, 아카시아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서 한국 건축사들의 노력을 지지해 달라”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의안이 통과되면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20개국 건축사협회 회장들과 아카시아 회장단이 지지 문건에 서명하게 되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 네팔, 인도네시아 등의 대표단이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역비 과도 경쟁의 사례들을 짤막하게 언급하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이어지는 토론과 투표를 통해 총회는 KIRA 지지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사회 결의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우리 아시아건축사협의회 회원들은 한국에서 ‘건축사업에 있어서 정당한 업무대가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대한건축사협회의 노력을 공동 대응, 적극 지원한다.” 이어서 “건축분야가 현재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일반 대중과 정부는 더 좋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건축사들에게 적극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공정•정당한 건축사 업무대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와 도시에 기여하기에 이를 위한 대한건축사협회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지한다”고 했다. 즉, 공정한 용역비를 받는 것이 건축사들의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 국민 전부가 더 나은 건축물, 도시, 안전한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결의안에서 이어서 언급하는 내용은 아시아 건축사들이 공통으로 당면한 압력들이었다. “건축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는 친환경인증, 추가적으로 부과되는 심의, 인허가, 승인 프로세스 및 BIM 요구 사항을 포함해 낮은 대가와 늘어난 과업범위 하에서 공정•정당한 업무대가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해 건축사가 미래 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일반 대중은 물론 전문직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건축설계대가 수준이 지난 20년 동안 변함이 없기 때문에 현재 많은 국가에서 업무대가 상황은 ‘최저가 관행(생존)’이 만연해 있어 이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적으로 결의문을 통해 아시아건축사협의회는 “한국 건축사, 대한건축사협회의 노력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공공 안전 보장과 커뮤니티의 미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연대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결의안 통과 직후 항상 자존심이 센 중국 건축학회 ASC(Architectural Society of China)의 대표자가 찾아와서 한국의 사례를 배우고, 이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본 JIA(Japan Institute of Architects) 지도부에서도 앞으로 대한건축사협회가 이 이슈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알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무엇보다 기뻐해 준 사람은 싱가포르 SIA의 멜빈 탄 회장이었다. 그는 앞으로 SIA와 KIRA 간에 디자인과 건축실무뿐 아니라 제도 개선,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위해 광범위한 협력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아카시아 대회에서는 차기 대회를 인천에 유치하는 것과 협회를 지원하는 이사회 결의안 통과 외에도 다양한 차원에서 우리 회원들이 활약했다. 아카시아가 상설위원회로 두고 있는 건축실무, 건축교육, 친환경, 사회공헌, 신진건축사위원회 등에서 협회 회원들이 고르게 참여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국제회의는 국제위원들만 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협회의 각 분야를 실제로 관장하고 있는 해당 위원회 위원들이 그 분야를 담당하는 국제위원들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대한건축사협회가 아카시아 활동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국제 연대 없이는 도시와 지구환경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명확해진 지금 대한건축사협회가 그 대의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향후 K-architecture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추세가 잘 이어진다면, 강화된 협회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국제적으로도 담당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2025년 인천 아카시아 대회를 잘 치르면서 더 심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의무가입을 기점으로 건축설계 업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건축계가 처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건축사로서의 긍지, 권리 회복이 가장 우선이 될 것이다. 국제위원으로서 협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안건에 작은 노력과 성과를 보태게 된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우정의 밤(폐막식) 행사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

 

 

 

 

 

글. 이건섭 Rhie, Gibson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장

 

 

이건섭  건축사 · (주)삼우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장,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전무
연세대 건축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삼성미술관,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 Virginia Tech에서 교환교수로 건축역사 및 이론을 가르쳤다. 현재 삼우설계 상근자문역으로 근무 중이며 글로벌 프로젝트 다수를 담당해왔다. 지은 책으로 Naver에서 오늘의 책으로 선정된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있다.

gibson.rhie@sam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