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환경을 만들고 미래를 창조하다 ⑦ 도시에서 길의 의미와 종류 2023.11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⑦ Meaning and types of streets in the city
건축은 도시를 흥미롭게 만드는 중심 요소이다. 건축들의 군집은 도시를 만든다. 건축은 자연발생적으로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외부공간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존재한다. 건축과 외부공간과의 관계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 건축이 연출하는 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흥미로움, 때로는 지루함, 때로는 경이로움을…….
현대의 건축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에게 많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때문에 건축이 만드는 공간이 지루하면 생동감을 잃는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생동감 없는 공간에 가지 않는다. 또한 건축과 건축을 연결하는 과정은 관계가 형성되는 사회학적 공간을 만든다. 사람들이 멈추고 대화를 하거나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인간적 도시 형성, 인간성 회복의 성질을 띤다. 길, 도로, 가로가 바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건축 외부의 관계 공간은 기능과 내용의 구분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교통의 의미가 강한 ‘도로’,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가로’, 인문적 의미로도 사용되는 ‘길’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미세한 특징을 차이로 저마다 다양하게 불리는데, 이는 영어권에서도 유사하다. Road / Street / Alleys / Passage / Paths 등의 표현 모두 각기 다른 ‘길’의 기능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다. 교통이 되었건 보행이 되었건, 혹은 공간이나 장소적 특성이 되었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 ‘길’을 선택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자! 이제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교통이나 통과의 개념에서 말하는 도로가 있다. 도로는 기능이 중심이 되며, A에서 B로 가기 위한 동선의 기능을 갖는다. 이동 개념의 도로에서는 사람과 건축의 커뮤니케이션, 즉,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도로는 도시를 가로지를 수도 있고, 도시 외곽에 존재할 수도 있다. 또 거대한 주거단지 주변에 위치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나무가 많고 조경이 잘된 아파트 단지라 할지라도 주변을 걷는 이들은 통과 목적으로만 길을 이용한다. 규모가 큰 경우는 걸어가기보다 효율 좋은 자동차로 스쳐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좋게 말하면 궁의 담벼락인 셈이고, 나쁘게 말하면 교도소 담벼락일 뿐이다. 그나마 담이 쌓인 직설적인 방어막 구조가 아닌 투시형 또는 차폐 조경으로 구성된 점은 천만다행이다.<사진 1>
이런 유형의 도로로 채워진 도시의 블록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 때문에 삭막한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의 치안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적막한 도시는 옳지 않고, 지속가능성에서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도로는 길을 포함한 보행공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공간적 의미보다는 선형의 의미가 강하고, 교통의 개념이 크다. 이 글에서는 도로로 교통이나 이동의 목적이 강한 기능적 의미로 제한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길 역시 포괄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추상적이고 인문적 의미가 있다. 도로와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주로 사람이 다니는 곳을 말한다.
우선 도시의 맥락에서 도로를 비롯한 길에 대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 가로 또는 거리(Street) : 거리는 도로보다 좁으며, 주로 인근 지역과 도시 지역 내에서의 지역 교통을 위한 곳인 동시에 보행이 공존하는 곳이다.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주차 공간이 포함될 수도 있다. 또 도시의 주거지, 기업 및 기타 편의 시설 등의 건축에 접근하는 데 필수적이다.
· 골목(alley) : 골목은 도시 지역의 건물 사이나 건물 뒤를 잇는 좁은 일방통행 통로인 경우가 많다. 이런 골목은 유형에 따라 다시 세분화되기도 한다. 우리말의 골목길과 미세한 의미 차이가 있지만, ‘Alleyway’ 같은 건물 사이의 길도 있다. 물론 뒷골목처럼 쓰레기 수거, 배달 또는 후방 주차와 같은 서비스 접근용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미국 신도시 주거 필지들은 전면 도로에 정원과 주택이 있고, 뒷마당 면한 작은 도로가 있는데 이런 경우가 alleyway이다.
· 통로(Passage) : Passage에 대한 정확한 번역 같지는 않지만, 통로는 일반적으로 건물, 쇼핑몰 혹은 도시 단지 내의 폐쇄형 또는 반밀폐형 통과 공간이다. 보행자를 위한 보호 경로를 제공해 구조물이나 쇼핑 지역의 다양한 부분을 연결한다.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 지붕이 있는 형식도 있고, 사람들이 건물 자체를 지나가도록 동선을 계획해 유도하기도 한다.
· 경로 : 경로는 도시 내 공원, 자연 보호 구역 또는 휴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걷기 또는 자전거 경로를 의미한다. 동선의 궤적을 말하는데 더 적합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로가 아닌 관계의 공간은 매력적인 도시를 만든다
도시 내 도로, 거리, 골목, 통로의 상호 연결성과 존재성은 거주자의 사회적 교류에 있어 중요한 사회학적, 심리적, 건축학적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이러한 요소가 단절되거나 축소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건축의 외부 공간으로 등장하는 가로에 주목하고 있다. 도시에서 가로, 골목, 길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인 만큼 가로, 거리는 영역의 구분에 대한 규정 역시 중요하다.
제인 제이콥스는 이런 부분에서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언급한다. 먼저 서로 명확한 경계를 갖는 것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영역 구분과 역할이 있음을 설명한다. 또 거리를 향한 다양한 시각의 관찰을 언급한다. 마지막으로는 보행자의 체류, 즉 보행자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적 도시에서 보행하고, 경험하는 주체로서 사람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은 도시에 있는 건축의 외부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행위와 활동의 이유라고도 설명하는데, 다양한 교류와 동시에 항시 개방적인 시선을 담게 되면 행동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모두를 서로 관찰하고 안전하게 하는 ‘길 위의 눈(eyes on the street)’이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항시 개방적이고 열려있으면서도 적절한 공적/사적 영역이 타협을 이루는 도시 구성은 매우 이상적이고 친절하다. 하지만, 이런 도시 삶의 구조가 폐쇄적인 고밀도 구조의 도시에서 구현되기는 매우 어렵다.1) 고밀도와 거주, 또는 생활하는 사람들이 상호교류를 할 수 있는 도시 속 건축은 건축사들에게 매우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2023년 대한민국의 도시는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물질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거대하게 과시된 광장과 폭포 또는 연못이 있는 거대한 정원은 풍요롭고 풍족한 쇼윈도 선전용 공간에 더 적합하다. 부동산 유튜브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첨단 단지형 아파트들은 한낮엔 한가할 정도의 외부공간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커뮤니티 행동은 단지 내 골프장이나 사우나에서만 가능하다.
왜 이렇게 비판적인가 하면, 현재 우리 도시에서 자랑하는 한국형 아파트 단지 건축들이 전형적 의미의 가로와 가로 행태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류보다는 단절을 보여주며, 연대보다는 독립의 공간으로 고밀도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교류 목적이 아닌 과시의 목적으로 조경이 동원되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들이 구성된다. 물론 이 커뮤니티 시설들의 일부는 관계의 공간으로 활용되지만 그, 비율이나 숫자가 상당히 미미하다.<사진 2> 건축적 구성에서 사람들의 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버린 셈이다. 작게는 지역 커뮤니티, 동이나 구의 연대, 한발 더 나아가서 도시의 연대 등이 실제는 불가능에 가까운 건축 구성이다. 굳이 제인 제이콥스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도시에서 가장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며 부지불식간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도시 공간에서 사람들과 건축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다양한 삶의 환경 가치가 개선되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이런 개방성은 심리적 포용심을 키워주고 삶의 가치 또한 확장해주는 요소다. 실제로 도시에서 관계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요소들과 핵심을 반영해서 개선하고 주도해 실제 계획이나 도시 정책에 반영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초 고밀도의 도시인 뉴욕 맨해튼을 들여다보면, 제인 제이콥스의 활동 배경인 만큼 섬세한 정책들이 돋보인다. 고층 건물 사이의 틈새 공간을 포켓파크로 명명해서 작은 공원화를 시도하고, 도로 한복판의 교차로 사이 공간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휴식할 수 있는 교통섬을 만들기도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맨해튼의 한계를 극복하는 폐철도 공원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이라인은 한발 더 나아가 위락 시설도 구성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은 격자형 블록 사이의 가로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체류와 행위가 가능하도록 스트리트 카페 전략을 펴서 길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직주 근접의 도시인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는 새로운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건축 바깥의 가로와 도시 구성에 다양한 관계 기능들을 부여하고 있다. 공원을 단지 조경의 개념이 아니라 그 이상의 휴식과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디자인하며 보행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다양한 스트리트 퍼니처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외부 공간, 가로에 대한 해석은 지역의 활성화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흥미롭게도 상업적 수익을 내야 하는 부동산 회사가 비 수익적, 비 상업적인 이러한 관계와 교류의 공간에 주목해서 적극 적용하기도 한다. 일본의 모리 부동산 주도로 재개발된 록본기 힐즈나 아자부다이 힐즈는 아이러니하게 관계 형성의 외부 공간을 적극 구성해서 재개발 블록 내의 유동성과 활력도를 높인다.
관계 형성의 배경이 되는 가로의 가치와 몇 가지 관점
가로에서의 관계 형성을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길과 건물이 있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자동으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멜버른의 다운타운에 오픈 카페를 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가로나 길은 이미 있었고, 주변으로는 온통 낮은 건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이용과 그로 인한 번잡함 등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심리적 유혹, 심리적 동인(動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공간의 프로그램 · 가로 주변의 디자인 · 상업적 공간 · 각종 가로에 있어야 하는 스트리트 퍼니쳐나 디자인이 우수한 공공시설 등이 있어야 가능하다.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Performance)가 필수적이다. 주차 방지대나 건물의 입구, 쇼윈도, 보행도로의 페이빙 등 사소한 요소들도 이를 자극하고, 건축 입면이 개방적이거나 디자인이 되어 있거나 하는 부분에도 자극받는다.<사진 3> 그리고 이렇게 프로그램이나 디자인의 경중, 공간의 기능 등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며, 쾌적하면서도 활동적인 공간을 만들게 된다.
· 사회학적 관점 : 가로의 적극적 구성은 지역 내 거주자 또는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교류를 이끌어내어 소속감과 연대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통합과 관용적 사고가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필수 서비스 이용, 이웃과의 교류, 지역사회 활동 참여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사회적 응집력 증가는 사람들이 만나고 결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소셜 네트워크의 활성화는 지역사회의 신뢰와 소속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회에 대한 노출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사진 4>
· 심리적 관점 : 연결된 도시 공간은 주민들 사이에 연대감을 증가시킬 수 있고, 접근 가능한 통로 확보로 야외 활동과 휴식 기회가 늘어난다. 사회적 상호 작용이 늘면 외로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쉽다. 사람들은 정서적 웰빙을 위해 사회적 연결이 필요하며, 물리적 장벽이 없어 보다 용이한 의사소통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 특히 크지 않더라도 생활 속의 포켓 파크나 작은 녹지길, 자연환경은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사진 5>
· 건축학적 관점 : 다양한 가로와 통로, 보행길로 연결된 개방된 블록은 기반 시설이 되는 주차장이나 각종 인프라 시설을 공유하면서도 도시 환경적인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동시에 커뮤니티를 증가시킬 수 있다. 가급적 직주 혼용의 블록으로 구성되어 출퇴근 시간이 15분에서 30분 이내인 보행권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 가로와 보행길 등으로 세분된 각각의 필지에 건축된 건물들은 각각의 형태로 존재해서 도시 경관의 다양성과 매력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가로가 연계된 건축적 방향은 보다 적극적인 디자인의 개입과 협의 과정을 통해 건축 영역의 물리적 제한을 융통성 있게 구성할 수 있다.<사진 6>
이런 관점을 정리해 보면 도시에서 도로, 거리, 골목, 통로의 설계와 통합은 사회적 상호작용, 정신적 웰빙, 효율적인 도시 생활을 육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요소를 분리하거나 축소하면 고립과 불평등과 같은 사회학적 문제, 스트레스와 외로움과 같은 심리적 문제, 비효율성이나 미학과 관련된 건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도시 계획과 설계, 그리고 건축의 방향과 구성은 도시 거주자의 웰빙과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상호 연결되고 접근 가능하며 포용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도시에서 건축의 외부 공간으로 상호 간의 교류와 관계 배경이 되는 가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