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변신술의 미학 2023.12
Mask, the aesthetics of transformation
서촌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기에 더욱 변화가 무쌍하다. 가게들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은 자영업을 망가뜨린 뒤 그런 현상을 더욱 자주 목격하게 된다. 식당이 카페로 바뀌는 건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사는 청운동부터 경복궁역까지 가다 보면 상가들이 수시로 바뀐다. 가게가 바뀐다고 상가 건물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건물은 그대로이고 입주하는 상가의 성격에 따라 파사드가 바뀌는 것이다. 한번은 누상동을 지나는데 새로운 건물이 분명한 듯한 카페를 보았다.<사진 1> 그곳은 요즘 대왕 크루아상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손님들이 쟁반에 놓인 커다란 크루아상을 찍고 있었다. 이 카페 건물은 옛날 양옥 건물을 개조한 것이니 새로운 건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새롭게 보였을까? 그건 이 건물이 예전에 식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사진 2> 마치 머리와 수염을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동굴맨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을 지나면서 특이하다고 여겨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이 카페가 바로 예전에 내가 찍어두었던 바로 그 동굴맨 건물이라는 걸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된 듯하다. 그러다 보니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들은 물론 벽을 타고 올라가는 식물들이 통제되지 않은 채 건물을 완전히 뒤덮은 것이다. 예전 건물과 카페로 개조된 건물을 비교하면서 디자인이란 일종의 마스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촌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상가 건물들에서 예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다. 이때 그 건물은 일종의 마스크를 쓰며 변장하기를 반복한다. 몇 년 전부터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촌의 유명한 먹자골목 금촌시장은 이런 마스크 변장술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3대 미식가’라는 술집이 있었다.<사진 3> 이 술집은 건물의 표면을 나무로 다시 마감한 뒤 마치 복고풍 마스크를 썼다. 최근에 가보니 ‘첫잔’이라는 술집으로 바뀌었다. 건물 표면에 붙인 나무를 다 떼어내고 기존의 최종 마감재인 벽돌을 드러냈다. 원래 벽돌을 되살린 건 아니고 짙은 색으로 칠을 했다.<사진 4>
이런 종류의 마스크는 그나마 규모가 작은 편이다. 강남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겨 압구정역에서 내려 을지병원 사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여기저기에 마스크를 쓴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그 건물들은 원래 마감재 위에 또 다른 재료로 한껏 치장을 한 것이다. 반복적인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모든 면을 완전히 감싼 건물(거대한 파우치 같은 인상을 준다), 고전 양식의 기둥과 아치 모양 장식을 입구에 붙인 건물, 기하학적인 패턴의 구멍을 뚫은 금속 면을 1층 매장 입구 위쪽에 붙인 건물들, 수많은 건물들이 원래 마감재를 가린 마스크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꽃 모양의 패턴과 작은 구멍을 규칙적으로 뚫어 장식한 거대한 황금색 금속 면으로 덮인 건물이다.<사진 5> 이 건물은 5층이었는데, 이 거대한 황금 마스크는 그보다도 높은 6층 규모였다. 마침 내가 그곳을 걷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이 건물은 황금색으로 불타오르며 주변 건물들을 압도했다. 이 가면을 쓴 건물은 성형외과였다.
이처럼 한국 도시의 상가 건물들은 대부분 뭔가로 뒤덮여 원래의 재료를 드러낼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한다. 그 표현 방법은 건물의 마감재보다 훨씬 풍부하다. 금속, 나무, 돌과 같은 기존의 재료는 물론, 복고풍, 일본풍, 몰딩 장식을 한 서양풍, 한옥풍 등 그야말로 상점이 지향하는 모든 스타일을 구현한다.<사진 6> 그뿐만 아니라 간판이나 광고 메시지로 덮이기도 하고, 예술가들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덮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각 건물을 운영하는 주체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서 디자인한 것이다. 그 필요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된 의식이 있다. 그건 최초의 재료에 대한 무시다. 최초의 표면은 그것을 디자인한 건축 예술가에게는 중요한 선택 사항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재료의 선택과 그에 따른 표면 질감은 기능적, 미학적,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선택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의도는 늘 무시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재료로 덮이는 걸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하는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큰 비용이 들지 않게, 또 미적으로 크게 모나지 않게 남들이 흔히 하듯이 그렇게 그냥 무심하게 지은 건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그렇게 우습게 싸구려 재료와 간판과 광고와 삼류 그림들로 덮어버리는 것일 테다.
이렇게 정말 파괴적인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은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어떤 확고한 의식 때문인 듯하다. 바로 ‘모든 것은 임시방편이다’라는 의식이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어떤 최종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 끝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늘 언젠가는 떠날 집이다. 세입자는 계약이 끝나면 떠나야 하고, 집주인은 집값이 오르면 팔고 떠나야 한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언제 망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앉은 채 살아간다. 뭔가를 확정하기에는 늘 불만족스럽거나 불안한 것이 한국 사람들의 평균 정서가 아닐까?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어떤 최종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내면화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 과정은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할 인내의 대상으로서 과정이지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말할 때의 그 소중한 과정이 아니다. 빨리 지나가야 할 힘든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과정을 즐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과정을 가볍게 본다. 늘 지금은 지나가는 과정이므로, 즉 바뀌어야 할 것이므로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는 늘 언젠가 변신하게 될 것이므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다.
그런 의식 속에서는 오리지널에 대한 존중이 싹틀 수가 없다. 아니 오리지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오리지널, 즉 이상적인 과거 속의 문화, 즉 전통의 유산,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불상, 불교 건축, 위대한 기록 문화 같은 박제화된 전통에 대해서는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은 그런 유산이 현대에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것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시기, 즉 목표로 향해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동 중이므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임시방편이며, 따라서 늘 뭔가에 덮이더라도 뭐 그리 큰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산에 오르거나 도심을 걸을 때나 늘 만나게 되는 오리지널 재료를 덮어버리는 그런 서툰 가짜 마스크를 볼 때마다 그런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