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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환경을 만들고 미래를 창조하다 ⑧ 낡은 건축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23.12

월간 건축사지 2023. 12. 30. 09:55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⑧ A new interpretation of old architecture

 

 

 

경제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단지 낡았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없어져야만 할까? 도시와 건축에서 이런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돼왔으며,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개발의 경제성과 충돌하면서, 인문적 시각에서의 보존과 경제적 시각에서의 개발은 지속적인 문제로 존재한다. 낡았다는 것은 쓸모없거나 수명이 다해 소멸해가는 개념이다. 이런 대립적 시각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 전반에 드러나는 시각이기도 하다. 대체로 보존은 서정적이고 정의로운 듯 보이고, 건강한 가치관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한편으로 순수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 같은 보존에 관한 주장은 극도의 보수적 사고(이런 반발도 있다. 영국 찰스 3세의 도시계획에 대한 언급은 극도의 과거 회귀주의이기도 하다)로 치부되며 공격받기도 한다. 낡은 건축과 공간에 대해 이토록 양극단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매우 특이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낡은 것은 문화재적 가치 유무를 우선한다. 심지어 문화재적 가치조차도 개발 논리, 즉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생활인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어 제거 대상이다(엄청난 부동산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도 이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낡은 것이 주는 여러 가치와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 우선,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장소와 공간이 품은 시간의 연속성이 의미를 갖는다. 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과 행위들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되어 가치를 확보한다. 낡은 공간, 낡은 건축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장소와 공간, 건축에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지역 사회의 자부심과 결속력과도 관련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지나쳐도 문제지만, 컴퓨터를 새로 구매하는 것처럼 공간과 건축을 매번 새로 초기화하게 된다면 정서적 연속성이 사라지게 되며 이는 정착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불안감을 안게 된다. 집에서 머무는 것과 호텔 같은 숙박 시설에서 머무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내일을 고민하는 집과 내일이 없는 숙박 시설에서의 삶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비록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이 선명하지 않더라도 낡은 건축과 공간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충분하다.

 

<사진 1> 맨해튼 허스트 사옥. 과거의 재사용은 기능 활용뿐 아니라 상징적 가치로도 활용된다. 그렇다고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통한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를 조금 더 분석적 시각으로 나누면, 사회학적 중요성과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낡은 공간, 또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사건들이 존재했던 공간들은 그 자체가 장소 또는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가지며 지연 사회의 자부심, 결속력과도 관계를 맺는다. 동시에 경제적 이익으로는 첫 번째로 관광 자원화 대상이 된다. 단체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관광 체험의 개인화에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며 가치를 읽는 것이다. 개인화 사회에서 소비 범위가 커짐에 따라 관광은 중요한 경제적 행위가 된다. 동시에 이런 관광 활성화는 부동산적 가치로 연결될 수도 있고, 유동인구와 상징적 장소성으로 인해 기업 마케팅의 장소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낡은 것의 범위와 대상이 넓어지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는데, 이는 적응형 재사용 가능성 확대 개념이다.<사진 1>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적응형 재사용 가능성
(Adaptive Reuse Potential)

 

<사진 2> 맨해튼 DVF 사옥. 적응형 재사용은 이미 새로운 기능과 환경에 적응해서 새롭게 재탄생하는 경우도 많고, 공공시설도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에서는 이를 개념 재설정에 의한 ‘new’라는 시각으로 마케팅화하기도 한다. 뉴욕 맨해튼의 수많은 패션 기업들은 과거의 모습에 미래를 투영해서 새로움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사진 3> 14세기 피사 대성당의 외벽 부분. 기본적으로 기존 건축의 부분과 형식을 새로운 기능과 내용, 형식에 차용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수없이 나타난 현상이다. 이미 중세 시대 건축에 고대 로마의 건축이 재활용된 피사 수도원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낡은 것을 오롯이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복원과 보존은 대상의 내용과 가치, 그리고 건축 자체의 본질을 분석하고 해석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수가 많고 대상이 넓은 낡은 공간, 낡은 건축일 때는 새로운 기능과 프로그램 등을 부여해야 한다. 건축적 재탄생에는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 적용을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으로 정의하고 있다. 적응형 재사용이란 기존 건물을 다양한 목적으로 재사용하기 위한 프로세스로, 상업적 프로그램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의 교회가 지역 도서관이 되거나, 오래된 주택이 기업의 사옥이 되는 등의 재활용 전환적 프로세스이다. 이는 자산의 운영 또는 상업적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효과적 전략인 동시에 지속가능성과 순환 경제 측면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도시재생의 중요한 방법론이 되어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연장시키거나 확보하는 유효한 전략이다. 다만 이런 적응형 재사용은 매우 창의적인 접근과 경제적 현실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당연히 건축사들의 아이디어와 경험이 반영되며 관계자들(건축주·건설사업가·사회운동가·기업가 등)의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사실 이런 개념은 오늘날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사진 2> 당장 기울어진 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에 가보면, 로마시대의 자재와 대지를 그대로 재사용하고 건설한 것을 볼 수 있다. 튀르키예의 소피아 성당이 카톨릭에서 이슬람으로 용도 전환한 것을 보면 종교시설조차 프로그램이 바뀔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 3>

따라서 오늘날 과거의 어떤 형식의 건축이 증개축을 통해 전혀 다른 용도와 기능으로 재사용 되는 것은 그 나름의 전통(?) 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적응형 재사용 된 건축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는 충분하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비용 절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 구조물을 개조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완전 철거 이후의 신축보다 효율적일 수 있고, 오래된 역사 유적의 경우 지자체와 같은 공공예산, 즉 세금을 절약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당장 미국 보스턴 시 한복판에 운영되고 있는 가구회사 RH의 쇼룸을 통해 기업의 상업공간과 문화재적 건축자산이 어떻게 응용되고 활용되는지 목격하게 된다. 설사 건축 형식과 형태의 가치가 부족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기존 도시의 맥락을 유지·확보한 상황에서 다양한 복합 용도화되는 새로운 도시 재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다. 즉, 지역의 규모와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지역의 시각적·공간적 일관성이나 정체성을 지속시킬 수 있다. 

과거의 것을 전면 철거하고 고밀도로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장소적 고유성과 특성은 소멸되어 버린다. 또 무차별적 철거를 통한 매립 폐기물이나 탄소 배출 감소, 에너지 소비량 감소 등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성 증가와 건물 유용성 및 비용 효율성 확장 등의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기존 건축, 특히 오래되고 낡은 건축을 재활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일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건축과 구조를 재사용한다는 것이 비용 증가 요인일 수도 있으나, 경험과 소득이 증가할수록 가치 지향적 소비와 호응이 커지는 시대적 흐름을 본다면 이 또한 경제적 효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를 무조건 강요하기는 매우 어렵다. 적응형 재사용을 위해서는 구조적 무결성 문제, 건축법에 대한 새로운 적용과 해석·제안, 정부의 정책, 기존 건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유지 관리에 대한 효율성과 적정성 등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낡은 건축이 사회적 공공재라는 다수의 인식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합법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건축에 대한 접근이다. 고대 이래 도시의 건축 모두가 통제나 규율 아래 완성된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불법 또는 무허가로 지어진 무등록 건축이 존재한다. 무허가 또는 무등록 건축이 장시간 형성해온 가치와 의미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부분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수십 년에서 백 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개발 시대에 지어진 여러 건축이 그렇다. 시간의 축적은 장소와 공간, 지역에 대한 정체성으로 전략화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이를 합법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따라서 적응형 재사용 개념에서는 낡은, 즉 오래된 건축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은 건축을 풍요롭게 하며, 
다양한 시각적 측면에서도 재건축 이상의 효과가 있다


재사용, 최근 십수 년간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용어로 재생의 개념에서 건축과 도시에 대한 시각이 너무 교과서적으로 경직될 경우 선택의 폭은 매우 좁아진다. 따라서 탄력적이고 현실적인 미래지향적 변용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해석하고 적용하면, 적응형 재사용은 실천되기 어려운 방법론이 된다. 

 

<사진 4> 아모레 성수. 2020년 전후로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낡고 오래된 건물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운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로 인한 급격한 지가 상승과 건축법적 제한이 풀리면서 2023년 현재 상황은 일시적으로 보인다. 향후 대규모 재건축으로 전혀 새로운 건물들이 예상되고 있다.



탄력적이고 영리한 적응형 재사용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상업적 대성공을 거둔 성수동 대림창고라는 이름의 카페는 적벽돌의 낡은 공장 건물을 카페로 전환하면서 약간의 구조보강과 설비(냉난방) 등 소극적 개선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유럽이나 일본 등 사회경제적 변화를 먼저 겪은 곳에서도 동일하게 진행하던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 조금 더 확장되면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처럼 극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런던 한복판에 있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낡은 발전소의 굴뚝을 그대로 존속시킨 건축을 완성했으며, 이는 가장 혁신적 건축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이 사례는 재사용이 현대적 건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상징적이면서도 인지도 면에서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사진 4>

 

<사진 5> 오스트리아 빈의 가스오메터르


발전소가 미술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호텔이나 심지어 주상복합 같은 복합 주거 건축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스오메터르는 약 615개의 아파트와 247개의 학생주택으로 재구성되었다. 1899년 유럽 최대의 발전소였던 건물로, 당시의 건축적 방식으로 수공예적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발전소는 1975년까지 사용되다 시대 상황에 맞춰 철거 등의 논의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논쟁 끝에 재생으로 결정되었으며 건축적 외관은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 재구성되었다.<사진 5>

단지 건축물 몇 개가 아니라 지역 또는 블록 자체를 전략화하는 경우도 많다. 적응형 재사용을 위한 건축적 발상과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제도와 영역에 걸쳐 있어서 실제 적용하고 실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전문 영역 간의 다툼이 발생되기도 하고, 허공에 붕 뜨는 경우도 많다. 실제 적용에는 다양한 발상과 아이디어,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탄력적 접근이 필요하며, 구체적이고 섬세한 현실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뿐만 아니라 노후된 모든 건물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진 6>2007년 상하이의 한 창의산업센터. 중국 상하이는 오래된 건축 또는 군락을 창의산업단지로 전환해 광고·사진·공예·디자인 등 창의력을 집중하는 산업군 사업장으로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 2009년 당시 약 2만여 명의 종사자를 창출했다.


이런 접근의 이점으로는 우선 역사적·문화적 증명으로 지역 정체성이나 자부심,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 구조적·기술적 대안과 해결을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적 도전이 반영될 수도 있다. 또한 기존 도시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개발할 수 있는 법적 다양성도 필요하다. 전통 개념의 용적률, 건폐율을 기준 삼는 시각으로는 충분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따라서 적응형 재사용 전략을 적용하기 위한 건축, 장소, 대지의 경우 철저하게 아이디어의 창의적 접근과 협상, 토론으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접근이 가능하려면 지방정부, 또는 지역 경제계와 정치권의 적극적 동의가 필요하다.<사진 6>

 

<사진 7> 보존의 개념을 넘어서 재가치화를 추구하는 싱가포르 헤리티지 블록 지도. © https://www.ura.gov.sg/maps/?service=MP


개별 건물이 아닌 블록 전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접근은 실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이나 도시 등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 구도심의 낡고 오랜 골목길을 안고 있는 블록이 그렇다. 차이나 스퀘어나 클라키 같은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전면적 개발로 도시 대부분이 반복적 재건축으로 인한 시간적 연속성 상실로 이어졌고, 이런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1970년대에 관련 보존법을 만들고 1989년에는 보존에 대한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사진 7>
이런 장점을 몇 가지 키워드로 서술해 보면 ▲건축 자재 비용 절감 ▲철거 등 환경 파괴 요소 축소 ▲시간의 절약 ▲지방 자금의 가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세금 제도의 개선 ▲공공 및 사회적 비용 감소 ▲에너지 보존 또는 저탄소 에너지 사용 등을 언급할 수 있으며, ESG4)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 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