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점점 편리해질수록 나는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2024.1
“As the world is getting more convenient, I feel more and more uncomfortable.“
집 앞에 꽈배기 가게가 새로 생겼다. 간판도 내부도 깔끔하고 맛나 보여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한 명이 판매대 앞에 서있었다. 메뉴를 보고 주문을 하려는데 옆에 있는 키오스크를 가리킨다. 매장을 둘러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던 기계다. 익숙하지 않은 키오스크를 잡고 씨름하느라 겨우 꽈배기 하나를 결제하는 데 5분이나 걸렸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놈의 NFC는 왜 새 기계에 대기만 하면 말썽인지… 내가 씨름을 하거나 말거나 꽈배기 가게 주인은 무심했다. 손님도 없고 혼자 우두커니 서있느니 그냥 주문을 말로 받으면 되는 거 아냐? 은근히 부아가 났다. ‘어머 새로 개업하셨네요~ 자주 올게요!’ 평소라면 저절로 나왔을 법한 수다가 스르르 사그라들었다. 설탕 듬뿍 묻은 꽈배기가 입에 썼다.
“세상이 점점 편리해질수록 나는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라고 독백했던 광고 속의 50대 사내가 떠올랐다.
#1 남자는 앨범을 보면서 딸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딸이 부르기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가는 딸바보 아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이 챙겨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해주지는 못 하고 오히려 나중에 짐이 될까 미리 걱정스럽다. 앨범을 보다가 퇴근하는 딸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마중을 간다.
남자O.V) 세상 모든 일 앞에 아빠만 붙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알던 내 딸.
남자) (전화에 대고)어, 어디야? 그래 나갈게 잠깐 기다려.
딸) 아빠!
남자) 많이 힘들었지?
딸) 다 똑같지 뭐.
남자) 결혼 준비는 잘 돼 가니?
딸) 아빠 결혼 준비는 걱정 마세요. 내가 진짜 잘하고 있으니까.
남자O.V) 이젠 이 녀석이 먼저 내 걱정을 한다.
남자) 아빠가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딸) 에이 또 그러시네. 괜찮다니까.
남자O.V) 지금이라도 더 챙겨 주고 싶지만 나중에라도 짐이 될까 두렵다.
#2 남자의 직장은 커다란 물류센터처럼 보인다. 남자는 하루 일을 마치고 다음 주 스케줄을 잊지 않으려고 본인의 카톡으로 전송한다. 그것을 본 부하직원이 핸드폰에 스케줄 저장하는 기능을 알려준다. 편리한 기능을 알았지만 어쩐지 마음은 오히려 불편하다.
팀원) 팀장님, 뭐 하세요?
남자) 아 이번 주 스케줄 까먹을까 봐 내 톡에 보내놓는 중이야.
남) 에이 요즘 누가 그렇게 써요? 줘 보세요.
남자) 아이 이런 기능이 다 있어? 어허허허.
남자O.V) 세상이 점점 편리해질수록 나는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3 버스에 앉아있는 남자의 귀에 버스 승객들의 대화가 들린다. 가상화폐니 NFT니 죄다 모르는 소리들뿐이다. 은퇴 후에 더 벌어질 자신과 세상과의 시차가 점점 더 걱정이 된다.
버스승객1) 야 너 그 기사 봤냐? 가상화폐로 대박 나서 은퇴한 사람도 있대.
버스승객2) 난 겁나서 못 하겠더라. 아 맞다, 요즘 NFT가 필수라며?
남자O.V) 갈수록 늘어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은퇴 후 나와 세상의 시차는 얼마나 더 벌어지게 될까…?
#4 큰 병을 앓고 회복 중인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친구는 병원 벤치에 앉아 몸이 나은 건 다행이지만 아픈 뒤가 더 무섭다는 얘기를 한다. 중년의 나이에 마음 같지 않은 건 몸뿐이 아니라 어쩌면 전부 다인지도 모른다.
남자) 그래 몸은 좀 어때?
친구) 많이 나아졌어.
남자) 천만다행이다.
친구) 그래 다행이지, 다행이긴 한데…
남자) 왜 그래 뭐 무슨 일 있어?
친구) 아픈 거보다 무서운 게 아프고 난 다음이더라.
뭐 후유증 때문에 복직하기도 힘들 텐데 모아 놓은 것도 없고 애들 뭐 졸업도 못 시켰고…
남자O.V) 자신 넘치던 청년들은 어느덧 자식과 자산이 걱정인 중년이 되었고,
마음 같지 않은 건 몸뿐만이 아니란 걸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5 모처럼 아내와 산책을 한다. 은퇴 후에도 살아야 할 시간이 무한처럼 남아있음에 놀라기도 하고 허탈해 하기도 하며 석양을 바라본다.
남자) 당신 그거 알아?
부인) 뭐?
남자) 우리가 60에 은퇴해서 100살까지 산다고 치면
먹고 자는 시간 빼고도 10만 시간이나 보내야 된대.
부인) 하아~ 그렇게 길다고?
여보, 우리 괜찮을까?
남자) 글쎄… 허허허. 좀 길긴 하다 그지?
Na) 은퇴 후 당신이 만나게 될 10만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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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만간 55세에서 75세 사이의 은퇴기 시니어 인구가 약 1,500만 명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내 주변의 무수한 50대가 떠오른다. 60세가 되기 한참 전에 은퇴해야만 했던 50대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남겨진 10만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있을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24’의 핵심 키워드로 ‘분초사회’를 제시했다. 분초사회란 시간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며 산다는 의미다. 현대인들이 극도로 ‘시간의 가성비(시성비)’를 중요시하며 앞으로 돈만큼 시간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4년 분초사회라는 트렌드와 은퇴자의 10만 시간이 서로 묘한 부조화의 느낌을 자아냈다. 10만 시간을 가진 은퇴자들도 분초를 다투며 살게 될까? 분초를 아끼기 위해 일부러 키오스크에 주문을 하고 무인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2시간 길이의 영화를 20분짜리 짧은 축약본으로 보게 될까? 그렇게 분초를 아껴서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갈증을 없애는 약을 파는 장사꾼이 나온다. 1주일에 한 알을 먹으면 다시 목이 마르지 않고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1주일에 53분을 절약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왕자가 묻는다.
“그럼 그 오십삼 분으로 뭘 하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나에게 그 오십삼 분을 쓰라고 하면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어.” 어린 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분초를 아끼는 것도 좋지만 어린 왕자의 선택이 내겐 더 매력적이다.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10만 시간이 생긴다면 아마 나는… 남들이 아껴준 분초를 모아 그 시간을 세상 가장 무용하고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에 흥청망청 쓸 것이 분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PM9NZHsK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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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